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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박상면씨 부친상, 고병철씨 부친상, 김도형씨 모친상, 장시형씨 별세

    ●박상면(GS건설 전무)·박미옥씨 부친상, 김애경(단국대 교수)씨 시부상, 박지영(법무법인 정원 변호사)·박지성씨 조부상, 7일 오후 2시25분께,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 2호실(9일 오후 12시부터 조문 가능), 발인 11일 오전 9시. 02-2258-5940 ●부경희씨 남편상, 고병철(현대정보기술 유헬스사업부문 상무)·고현철(한울회계법인 이사)씨 부친상, 박은혜(건강보험심사평가원 차장)씨 시부상, 8일 오전 9시20분께, 고려대 구로병원 장례식장 202호실(8일 오후 5시 이후 조문 가능), 발인 11일 오전 7시, 장지 제주 황사평 천주교 성지. 070-7606-4213 ●김선희·김재민(전 현대내장 대표)·김민구(엠케이상사 대표)·김도형(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김기정(연세대 정외과 교수)·김기홍(스페이스컬쳐 이사)·김기영(전 아폴로파트너스 상무) 씨 모친상, 고영란·임연숙·나재은·노미경·박영선 씨 시모상, 8일,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실 1호, 발인 11일 오전 6시 30분. 02-2227-7500 ●장시형(조선비즈 정보과학부장) 씨 본인상, 장태형·장선아·장지형 씨 형제상, 8일, 일산동국대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 11일 오전 6시 30분. 031-961-9400
  • [부고]

    ●김방신(타타대우상용차 대표)·방홍(KBS제주방송총국 심의위원)·방희(방송인)씨 모친상, 김진(뉴스1 정치부 기자)씨 조모상 9일 제주 부민장례식장, 발인 11일 오전 7시 30분 (064) 742-5000 ●박노정(청십자약품 창업주 회장)씨 별세 김애숙씨 남편상 박윤신·성신·윤규씨 부친상, 원소윤씨 시부상 임상택·권유욱씨 장인상 7일 포항시민전문장례식장, 발인 10일 오전 9시 (054) 253-4444 ●정석호(전 현대중공업 이사)씨 별세 정나영(일산하이병원 재무원장)·나나·나은씨 부친상 김영호(일산하이병원 병원장)·박정호(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시니어 엔지니어)·박종범(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차장)씨 장인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6시 (02) 3010-2230 ●신철하(예비역 육군 중령)씨 부인상 신동진(전 예금보험공사 이사)·동욱(신송사업㈜ 전무이사)·명미씨 모친상, 신태섭(삼성SDS 프로)·윤아(JTBC 콘텐트허브 사원)씨 조모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6시45분 (02) 3410-6915 ●장시형(조선비즈 정보과학부장)씨 별세, 김경희씨 남편상, 장태형·지형·선아씨 형제상 8일 동국대 일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6시 30분 (031) 961-9400 ●정순식(헤럴드경제 산업섹션 재계팀장)·군식(LG생활건강 파트장)씨 부친상 9일 부천 순천향대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 (032) 327-4002 ●석장문(전 외환은행 지점장)씨 별세 이윤숙씨 남편상 석유진·주완(청담 우리들병원 부장)씨 부친상 현병화(회계법인 한영 시니어매니저)씨 장인상 김민경(권안과의원 부원장)씨 시부상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0일 오후 3시 입실 예정), 발인 12일 오전 8시 (02) 3410-6914 ●김종설(전 한양대·영남대병원장)씨 별세 김영태(재미 의사)·영애(재미 의사)씨 부친상 8일 국립중앙의료원, 발인 12일 오전 6시 (02) 2262-4817 ●태용문(NH농협은행 충북영업본부장)씨 부친상 8일 충북대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43) 269-7211
  • [부고]

    ●김방신(타타대우상용차 대표)·방홍(KBS제주방송총국 심의위원)·방희(방송인)씨 모친상, 김진(뉴스1 정치부 기자)씨 조모상 9일 제주 부민장례식장, 발인 11일 오전 7시 30분 (064) 742-5000 ●박노정(청십자약품 창업주 회장)씨 별세 김애숙씨 남편상 박윤신·성신·윤규씨 부친상, 원소윤씨 시부상 임상택·권유욱씨 장인상 7일 포항시민전문장례식장, 발인 10일 오전 9시 (054) 253-4444 ●정석호(전 현대중공업 이사)씨 별세 정나영(일산하이병원 재무원장)·나나·나은씨 부친상 김영호(일산하이병원 병원장)·박정호(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시니어 엔지니어)·박종범(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차장)씨 장인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6시 (02) 3010-2230 ●신철하(예비역 육군 중령)씨 부인상 신동진(전 예금보험공사 이사)·동욱(신송사업㈜ 전무이사)·명미씨 모친상, 신태섭(삼성SDS 프로)·윤아(JTBC 콘텐트허브 사원)씨 조모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6시45분 (02) 3410-6915 ●장시형(조선비즈 정보과학부장)씨 별세, 김경희씨 남편상, 장태형·지형·선아씨 형제상 8일 동국대 일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6시 30분 (031) 961-9400 ●정순식(헤럴드경제 산업섹션 재계팀장)·군식(LG생활건강 파트장)씨 부친상 9일 부천 순천향대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 (032) 327-4002 ●석장문(전 외환은행 지점장)씨 별세 이윤숙씨 남편상 석유진·주완(청담 우리들병원 부장)씨 부친상 현병화(회계법인 한영 시니어매니저)씨 장인상 김민경(권안과의원 부원장)씨 시부상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0일 오후 3시 입실 예정), 발인 12일 오전 8시 (02) 3410-6914 ●김종설(전 한양대·영남대병원장)씨 별세 김영태(재미 의사)·영애(재미 의사)씨 부친상 8일 국립중앙의료원, 발인 12일 오전 6시 (02) 2262-4817 ●태용문(NH농협은행 충북영업본부장)씨 부친상 8일 충북대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43) 269-7211
  • 서울시, 여성 불안해소 세트 지원

    최근 서울에서 강간미수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1인 가구 여성들의 불안감이 높아진 가운데 서울시가 여성들이 위급 상황에 활용할 수 있는 각종 안전장치 지원에 나선다. 서울시는 여성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양천구와 관악구 등 2곳에 ‘불안해소 4종 세트’ 지원 사업을 시범 실시한다고 6일 밝혔다. 불안해소 4종 세트는 초인종을 누르면 모니터로 외부 사람을 확인하고 캡처도 가능한 ‘디지털 비디오 창’을 비롯해 문이나 창문을 강제로 열면 경보음과 함께 지인에게 문자가 전송되는 ‘문열림센서’, 위험상황에서 112와 지인에게 비상메시지가 자동 전송되는 ‘휴대용 비상벨’, 도어록 외에 이중 잠금이 가능한 현관문 보조키 등이다. 관악구에서는 신림동, 서원동, 신사동, 신원동 등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일대 반경 700m 이내의 4개 동을, 양천구에서는 목2동, 목3동, 목4동을 시범지역으로 선정했다. 관악구 150가구, 양천구 100가구에 지원한다. 서울시는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내년부터 대상 지역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이 밖에 해당 지역의 여성 1인 점포 50곳에 위험 상황에 벨을 누르면 경찰서, 구청 등의 폐쇄회로(CC)TV 관제센터와 3자 통화가 가능한 무선비상벨도 지원한다. 여성 1인 가구나 30세 미만의 미혼모·모자가구 중 전월세 임차보증금이 1억원 이하인 주택에 거주하는 단독 세대주면 신청할 수 있다. 점포의 경우에는 심의위원회에서 현장실사 후 선정한다. 신청 기간은 오는 10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법인의 활발발] ‘본다’에서 ‘보인다’로

    [법인의 활발발] ‘본다’에서 ‘보인다’로

    암자의 일상이 시들하고 무료해지면 나는 이웃 마을로 나들이를 간다. 아무리 좋은 곳도 오래 살다 보면 시들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건너편 풍경으로 몸과 시선을 이동해야 한다.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과 김남주 시인의 생가를 가끔 찾는다. 김남주 시인이 살았던 집의 마루에 앉아 질박한 촉감을 느끼고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상념에 젖는다. 또 고정희 시인의 서재에서 묵은 책들의 묵향을 맡기도 한다. 세 곳은 내가 살고 있는 대흥사와 10여분 거리에 있다. 터를 바꾸니 마음도 새롭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말소리에서 벗어나 한적한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좋다.근자에는 강진 월출산 아래의 백운동 원림을 찾는다. 자연친화적인 정원이 있는 별서를 원림이라고 한다. 백운동 원림은 최근 명승지로 지정됐다. 벽에 새겨진 불화가 많은 무위사와 수려한 산 아래 펼쳐진 차밭이 원림과 닿아 있다. 이 원림은 조선 후기 문인 이담로(1627~1701)가 월출산 옥판봉 아래 조성한 곳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은둔의 원림은 1812년 월출산 소풍을 마치고 이곳에서 하룻밤 머문 다산 정약용 선생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산은 연하의 선승이자 한국 차의 중흥조인 일지암 초의 선사에게 주변 풍경을 그리게 했다. 그리고 백운동 12경에 대한 시를 남겼다. 이 원림은 정선대라고 이름 지은 정자에서 바라본 옥판봉과 밖에서 물을 끌어들여 만든 유상곡수가 일품이다. 검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아름다우나 사치스럽지 않은 이 별서정원은 은근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기품이 있다. 답사하는 사람들도 이런 풍경과 분위기에 끌린다고 소감을 말한다. 모란이 활짝 핀 날 원림이 명승으로 지정된 기념식을 마치고 여러 사람과 차담을 나누었다. 모두들 원림의 풍경에 감탄하고 칭송하면서 이후 몇 가지 걱정과 바람을 말했다. 혹여 관광의 바람에 휩쓸려 원림을 만든 본래 의미가 퇴색하고 탈색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를 내비쳤다. 한 해 이곳을 방문하는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자칫 서비스 차원에서 주변에 여러 건물을 짓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옆의 사람들도 그렇게 신신당부했다. 선비정신이 깃든 처소의 아름다움은 생략과 절제에 있다. 오래 가는 아름다움은 노골적이지 않고 숨기는 멋과 맛에 있다. 여유와 소요의 가풍이 깃든 곳일수록 최소한의 모습만을 드러내야 한다. 다행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소식을 들었다. 백운동 원림을 지키고 있는 후손 이승현 선생은 생각이 깊으신 분인데, 본인 스스로 원림의 정신과 기품을 잘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마침 그분과 통화할 일이 생겨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점차 유명해지고 있는 원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저는 여느 관광지처럼 훌쩍 점찍고 가는 곳으로 만들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넉넉한 시간 속에서 원림의 정취를 충분히 느끼고 갔으면 합니다.” 넉넉한 시간 동안 머물렀으면 한다는 생각에 믿음이 듬뿍 갔다. 내가 사는 일지암도 초의 선사와 차의 향기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는다. 일지암을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문의를 하면 나는 몇 가지 규칙을 말한다. 먼저 최소 30분 이상 머물고, 오자마자 촬영부터 하지 않으며, 스마트폰 검색을 하지 않고, 빠르게 감탄하지 마시라. 그리고 눈과 귀를 무심의 경지에서 고요히 열어 놓으시라. 그리하면 늘 보던 하늘과 나무와 물소리가 새삼스럽게 보이고 들릴 것이다. 최근에 둘레길이 유행하고 문화 답사가 흥행하는 일은 매우 좋은 조짐이다. 그러나 먼저 번잡한 세속의 습관을 내려놓고, 쫓기는 발걸음을 멈출 때 비로소 보고 들었던 것들이 새삼스러워질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 한 구절이 문화 답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짧은 시간 허둥지둥 스치듯 사진을 찍으며, 그저 ‘보는’ 풍경은 누구나에게 똑같은 피사체일 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조선 시대 어느 문인의 말뜻을 새긴다면 풍경은 마침내 ‘보일 것’이다. ‘보는’ 풍경은 그저 똑같은 사진으로 남을 것이고, ‘보이는’ 풍경은 저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다를 것이다.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우리가 비하한 서원, 세계인들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경탄”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우리가 비하한 서원, 세계인들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경탄”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앞장선 박성진 국장이 말하는 ‘서원의 가치’“우리 한국이 서원(書院)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 신청을 했다는 소식에 중국이 많이 아쉬워해요. 서원의 시발지인 중국이 유학 내지 성리학의 종주국을 마치 빼앗긴 것처럼 못내 애석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을 인정하고 있고, 성리학적 전통이 한국화되어 정착한 독특한 사례로 보고 있습니다. 서원 9곳이 한꺼번에 동시에 유네스코에 등재되게 된 것은 우리가 서구문화를 좇으며 소홀히 한 그 가치를 서구인들이 알아보며 깜짝 놀라 합니다. 서원이 변질되면서 훼철이라는 역사의 철퇴를 맞은 적도 있지만 그래도 민족의 혼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입니다.” 7월 3~6일 아제르바이잔서 열리는 총회서 확정朴사무국장, 9년간 무보수로 서원 세계화에 앞장덕수궁 수문장교대식 첫 고증 재연한 문화전문가 지난달14일 한국의 서원이 이코모스에 의해 등재 권고를 통지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서원 등재를 위해 9년 동안 ‘무보수’로 일한 이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수소문 끝에 서원에 세계화에 앞장선 박성진(60)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사무국장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지난 28일 그를 찾아가면서 혹시 갓 쓰고 도포를 입는 사람이 아닐까 했는데 캐주얼 차림이었다. 박 사무국장은 1994년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최초로 고증해 낸 우리 문화 전문가다. ‘무보수로 일하는 것이 맞느냐’고 확인하니 그는 수줍은 듯 “먹고 살만합니다. 그 대신, 비상근으로 일하지요.”라며 살짝 웃는다.이코모스 심사평가서에는 대한민국이 등재 신청한 9곳 서원 모두를 등재(Inscribe)할 것을 권고했다. 등재되는 서원은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안향)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퇴계 이황)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서애 류성룡) ▲경북 경주의 옥산서원(회재 이언적)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한훤당 김굉필)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일두 정여창)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하서 김인후)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고운 최치원)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사계 김장생)이다. 이들 서원은 7월 3~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그동안 이코모스의 권고가 거부된 적이 없어 이들 서원은 등재를 예약한 상태다. 이로서 한국은 모두 14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서원 유네스코 등재에 中 종주국 뺏긴듯 아쉬워해서구인들, 500년 전통 사립 엘리트 교육 명맥 경탄우린 서원 가치 폄훼… 세계인 탁월한 보편 가치 인정” - 실사왔던 이코모스, 반응이 어땠나. “작은 나라 한국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엘리트 양성 사립학교 시설이 있을 수 있었나 하고 놀라워합니다. 조선시대에 서원이 900여곳이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서원에 배향된 선현들에게 끊이지 않고 약 500년간 제향을 어떻게 이어올 수 있었는지에도 경탄합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도 했어요. 전국에 서원과 사당이 그처럼 많은 것에도 놀라워하고 있고요. 결국 수많은 외침 속에 민족의 생존을 위해 헌신한 학자나 순절한 충신이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전쟁이 나도 지역 유림이 위패를 생명처럼 모시고 피란 갔다가 온 일화들이 많습니다. 근 현대화에 밀려 우리가 서원의 가치를 폄훼했지만 세계인들이 서원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왜 9곳?… 국가사적 기준에 역사성·완전성 고려조광조·율곡 이이·남명 조식·황희 정승 서원 빠져‘우린 왜 뺏느냐’ 항의도 …다른 선양 기회있을 것”- 왜 하필 이 9곳 서원인가. “현재 남한에만 672개의 서원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대원군에 의해 훼철된 서원이 다시 복원된 것이지요. 훼철을 피한 서원 23곳 가운데 국가가 문화재로 지정한 국가사적이면서 역사성과 완전성 등을 고려해 선택된 것입니다. 6·25 한국전쟁 때 피폭 여부도 고려되었습니다. 남명 조식 선생을 제향하는 산청의 덕천서원이나 율곡 이이 선생을 모시는 파주 자운서원, 조광조 선생을 기리는 용인 심곡서원, 황희 정승을 배향하는 상주 옥동서원이 포함됐더라면 하는 바람이 많습니다. 또 이들 서원으로부터 ‘우리도 같이 신청하지 않고 왜 뺏느냐’는 항의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서원 전체가 인정받은 것이니만큼 다음에 다른 방안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 개성역사유적지구에 있는 정몽주를 제향하는 숭양서원, 율곡을 기리는 황해도 소현서원도 같이 남북이 힘을 합쳐 신청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서원에 대원군에 의해 적폐로 지목됐다. “서원은 조선시대 사설 엘리트 교육기관이었습니다. 향교가 공공 교육기관이었지만 조선 중기 이후 파폐(罷弊)되면서 그 역할이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지방에서 이를 대신한 것이 서원입니다. 사액서원이 되어야 국가로부터 토지와 서적·노비 등을 지원받습니다. 국왕으로부터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받은 것이죠. 성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서원당 10~20명쯤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하였지만 거의 대부분 무료였어요. 그런 만큼 재정이 취약했지요. 사액서원이 되지 않으면 서원 설립자 혹은 그 문중에서 운영비를 모두 조달하였습니다. 서원이 그 설립 정신을 잃고, 당쟁이나 붕당 정치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식 전수와 인격 도야 기관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이 지대했습니다. 그런 점을 높이 샀기에 대원군 시절에도 서원이 살아남았습니다.” “서원, 교육 공간 넘어 천인합일 추구한 수양처영남은 산자락… 전라·충청은 들판 시작점 위치서원, 영남에 많은 이유?… 벼슬길 막힌 학풍 탓호남엔 유학보다 의리 실천한 ‘충절 서원’ 많아”- 서원, 지역별 차이가 있나. “서원은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라 천인합일의 경지를 추구한 수양처입니다. 건축물 배치는 전당후묘(前堂後廟·앞에는 교육강당, 뒤에는 사당 설치), 전저후고(前低後高·앞이 낮고 뒤가 높음) 질서를 따르지만 서원마다 독창성도 있지요. 풍광이 빼어난 곳에 위치하지만 지역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경상도 서원이 대체로 산자락에 있다면 전락도·충청도 서원은 대개 산자락이 끝나고 들판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합니다. 영남쪽 서원이 많은 게 아니냐고 하는데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것과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낸 서원을 선정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서원이 영남 쪽에 많은 것은 조선시대의 지역별 학풍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남 쪽 학자들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거나 빨리 그만두고 낙향해 후진 양성을 많이 한 편이었습니다. 인조반정(1623년) 이후 관직 진출이 막힌 남인들이 벼슬을 못하자 신분유지가 어려워졌습니다. 차선책으로 유학자를 배출하는 것이었지요. 영남 양반에겐 현실적 이해가 걸린 절실한 문제였습니다. 반면 호남엔 유학을 연구하는 서원(77곳)보다 이를 실천하는 사우(108곳)가 더 많았습니다. 의리의 실천에 중점을 두면서 충절인의 비율이 높은 것이 호남 쪽 특징입니다. 그래서 영남은 도학서원, 호남은 충절서원이 많다고들 합니다.” - 서원이 다른 나라에도 있나. “서원은 우리나라와 중국 뿐만 아니라 유사한 유산으로 일본과 베트남에도 있었습니다. 유학 문화권에 있는 것이지요. 중국은 관료시험 등과 같은 정부의 교육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통일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공부하는 과목도 정부 정책에 따라 변화되었습니다. 그런 서원에 가보면 과거시험 합격자의 명단을 새긴 제명비(題名碑)가 좍 늘어서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서원에 들어올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 서원은 지방의 지식인 집단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성리학을 학습하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선 중국과는 달리 오직 지역 단위의 선현에 제향을 지냈습니다. 일본의 경우 설립자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커리큘럼도 서원마다 달랐습니다. 의학과 산학도 가르쳤습니다. 이게 사숙(私塾)입니다. 일본 근대화에 큰 힘을 보탰지만 한국의 서원은 지방 지식인의 구심점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주희가 중건한 중국 장시성 여산(廬山)의 백록동서원은 서원 자체가 아니라 세계자연유산의 일부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서원은 청나라 시대에 관학화되고,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그 맥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다 최근 한국으로부터 오히려 배워가고 있는 실정입니다.”박성진 사무국장은 고급스러운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재현하며 관광상품화하자는 차원에서 1995년 문화행사 전문기업인 예문관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정조대왕릉 행차, 고종과 명성황후 가례 재연, 고종 황제 즉위식 재연, 과거시험 재현 등을 해마다 하고 있다. 영주선비촌과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운현궁, 남산한옥마을 등을 위탁운영하기도 했다. 10년을 투자해 강원도 영월에 단종의 유적 발굴과 기념관도 만들었다. 또 거의 10년간 준비해 고향인 경북 문경에 박열 의사와 가네코후미코 기념관을 만들기도 했다. “2016년 철회 때 연로한 유림 어른신들 낙망中日 서원과 차이 보강해 재도전… 1년반 심사中, 관료 교육… 과거 급제자인 ‘제명비’ 늘어서日, 의학·산학도 가르친 사숙… 근대화 힘보태韓, 서원서 과거준비 못해… 제향 전통 中과 유사”- 유네스코 등재신청을 철회한 적도 있다던데. “3년 전인 2016년 4월 이코모스의 반려 의견에 따라 자진 철회한 적이 있습니다. 연속유산으로서의 논리 등 준비가 부족했던 탓입니다. ‘단순한 지식전수 기관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인성을 도야하는 천인합일적 경관과 한국 성리학 정신의 독특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죠. 연로한 유림 어른신들의 기대가 엄청 컸는데, 크게 낙담하셨죠.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유산구역의 재조정, 다른 나라들과의 차이 등을 보완해서 1년 반 동안 이코모스의 심사를 받았습니다. 재도전한 끝에 따낸 것이어서 의미가 더 크다 생각합니다.” - 어떻게 서원과 인연을 맺었나.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성균관 기획실장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차에 당시 유행하던 사물놀이와 농악차원보다 더 고급스러운 궁중문화를 선보이고자 문화전문법인인 ‘예문관’을 설립해 운영해왔습니다.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최초로 고증해 냈습니다. 성균관 유교교육원 교수, 유교방송본부장도 지냈습니다. 한국서원연합회 상임이사로 일하던 2010년쯤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님께서 ‘우리의 교육전통인 서원 전통을 너무 모른다’며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서원은 한국의 교육전통이고, 교육은 우리 민족의 지적 자산이라는 것이죠. 작년에 등재된 산사 7곳도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 고양 차원으로 추진했던 것이지요.” - 서원하면 엄숙, 근엄이 연상된다. 친근하게 다가설 수 없나. “서원의 학교 기능은 제도 자체가 바뀌어서 이제는 유효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향 전통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서원마다 소속된 유림이 1년 두 번 향사를, 한 달에 두 번 제향을 올리는 전통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물론 향교나 성균관에서도 이런 전통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제향 행사 한 번에 유림 40여명이 참여합니다. 경주의 옥산서원이나 장성의 필암서원 같은 곳은 지역 유림이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강학을 하고 있습니다.” “서원, 교육 기능 멈춰… 향사·제향 전통 계속정좌수련, 도인술, 선비체험 등 ‘서원스테이’도청소년에 친근하게 다가설 활성화 방안 고민서원의 오늘날 의미?… 타협과 조화 더욱 요구치열한 공론, 올곧은 선비정신은 되새길 기회”- 서원 활성화 방안은. “사실 그 부분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만 안동 도산서원은 ‘서원스테이’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연간 20만명이 찾고 있습니다. 주로 교사와 공무원, 학생들이 1박2일, 또는 3박4일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영주 소수서원은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을 운영하면서 4만명 이상이 교육에 참가하고 있고요. 선현들이 했던 수양방식 따라 정좌 수련과 일종의 신체단련인 도인술도 합니다. 이외에도 비석에 아무 글도 새기지 않은 ‘백비’가 있는 장성의 필암서원도 2만명 이상이 찾습니다.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청렴교육이 됩니다. 그리고 유네스코 등재는 아니지만 일부 서원은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등재 추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사실, 문화재청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만 유네스코 등재 신청은 해당 지자체가 하게 돼 있습니다. 이번엔 서원이 있는 광역 및 기초 14곳이 균등하게 예산을 출연했습니다. 이 예산은 신청서 쓰고, 사례조사 하고, 연구비 지원하는데 소요됐습니다. 서원 9곳, 작년 산사 7곳 이렇게 하니 유네스코 등록이 쉽게 되는 줄 아는데 절대 그게 아닙니다. 그리고 해당 국가는 1년에 한 건 밖에 신청 못 합니다. 저 큰 서울시가 한양도성, 몽촌토성, 성균관 등을 신청하려 하지만 국내 경쟁도 뚫지 못하고 있지요. 올해 세계유산 등재 후보 목록은 총 38건이지만 이중 19건만 이코모스 등재 권고를 받았습니다. 절차 하나하나가 다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오래된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변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도덕은커녕 가치관마저 극도로 혼란해합니다. 쏟아지는 정보와 가짜 뉴스 속에 우리 사회 구성원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국민이 계층으로, 이념으로 사분오열되고 있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타협과 조화가 더욱 요구됩니다. 진지한 토론의 과정을 거쳐 공론을 도출한 서원을 역할을 한번 되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치열한 논쟁을 통한 공론의 장, 공익을 위해 과감하게 결단하거나 자신을 희생했던 올곧은 선비 양심, 교육입국이 살길이라고 가르치던 서원의 역할은 앞으로도 주목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인사] 한국철도시설공단, 중소벤처기업부, 조선비즈

    ■ 한국철도시설공단 △ 안전본부장 김용완 △ 안전계획처장 이종범 △ 기술연구처장 양인동 ■ 중소벤처기업부 ◇ 과장급 전보 △ 일자리정책과장 권순재 ■ 조선비즈 △ 정보과학부장 장시형
  • 2기 신도시 교통개선비 10조원 ‘낮잠’

    ‘파주운정3’ 9711억원 미집행 11곳 중 최다 입주민 평균 1200만원… 모두 집행 3곳뿐 “교통 문제 해결 후 추가 신도시 건설 필요” 2기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입주민에게 거둬들인 광역교통개선대책 사업비 가운데 10조 6262억원이 잠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부가 동탄2 신도시 등 수도권 2기 신도시 11곳 주민들이 낸 광역교통개선대책사업비는 모두 31조 8208억원이며, 이 가운데 10조 6262억원이 미집행됐다고 28일 밝혔다. 홍 의원에 따르면 광역교통개선대책 사업비는 신도시 입주자들이 주택을 분양받으면서 낸 것으로, 2기 신도시 입주자가 낸 평균 교통부담금은 가구당 12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도시별 가구당 교통부담금은 수원광교가 22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성남판교(2000만원), 파주운정(1700만원), 위례(1400만원), 김포한강 및 동탄2(각 1200만원), 동탄1(1000만원), 파주운정3 및 평택고덕(각 800만원), 양주(700만원), 인천검단(600만원) 순이다. 하지만 2기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확보한 광역교통개선대책 사업비의 33.4%를 제때 투자하지 않아 입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40만 인구를 수용할 동탄2신도시의 경우 입주가 시작된 지 4년이 흘렀지만 GTX-A노선 등 광역철도망, 국지도82호선 확장 등 14개 사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포한강신도시 역시 상당 부분 입주가 이뤄졌는데도 당초 약속과 달리 김포경전철 개통은 늦어지고 있다. 신도시별 ‘집행률’은 파주운정3이 6%(9711억원 미집행)로 가장 낮았다. 인천검단(6.4%, 1조 810억원 미집행), 위례(25.7%, 2조 7974억원 미집행), 평택고덕(26%, 1조 1779억원 미집행), 동탄2(30.1%, 3조 6524억원 미집행) 등이다. 사업비를 모두 집행한 곳은 성남판교, 동탄1, 김포한강신도시뿐이다. 홍 의원은 “광역교통개선 투자가 뒷전으로 밀리면서 2기 신도시 입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며 “2기 신도시 광역교통개선대책을 먼저 해결하고 나서 추가 신도시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사람이 좋다’ 김봉곤이 지금의 훈장님이 되기 위해 한 노력은?

    ‘사람이 좋다’ 김봉곤이 지금의 훈장님이 되기 위해 한 노력은?

    청학동 훈장님 김봉곤이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연한다. 28일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는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차림새의 주인공 청학동 훈장님 김봉곤이 출연한다. 댕기머리의 청학동 소년이 청학동 이단아로, 또 지금의 호랑이 훈장님이 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리산 청학동 해발 900미터 고지의 산골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봉곤. 온 가족이 약초를 캐서 물물교환으로 쌀을 사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가던 시절, 김봉곤 가족은 해마다 보릿고개를 견디며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중 1987년,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배운 후 성공해 효도하겠다는 일념으로 청학동을 떠난 김봉곤. 그러나 산골에서 나고 자란 청년에게 도시 생활은 쉽지 않았다. 판소리 공부를 하면서도 서빙, 청소, 노숙 등 갖은 고생 끝에 1989년 그는 드디어 서울에 서당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1992년 방송 활동을 시작하며 세상에 청학동 총각 훈장으로 처음 모습을 알렸다. 재치 있는 말솜씨로 인기를 얻은 김봉곤은 앨범 발표, 영화 제작 등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이며 당시 폐쇄적이었던 청학동 개방에도 힘을 썼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 댕기머리 총각 훈장은 어느덧 1남 3녀를 슬하에 둔 가장이 되었다. 2012년부터는 조상인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진천으로 터를 옮겨 예절학교를 운영하며 집안의 대를 잇고 있는 김봉곤. 21세기 마지막 선비, 전통과 예절의 아이콘 청학동 김봉곤 훈장의 인생사는 오늘(28일) 저녁 8시 55분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경북 시군 연계 8개 주제 관광상품 개발

    경북 시군 연계 8개 주제 관광상품 개발

    경북의 문화·관광을 8개 권역화한 관광상품이 나온다. 경북도는 27일 도청 동락관에서 경북문화관광공사, 시군 관광 관련 담당자가 참석한 가운데 경북문화기행 통합 컨설팅 착수 보고회를 가졌다. 도는 이번 컨설팅의 주안점을 시군간 연계 관광을 활성화하고 관련 콘텐츠 육성에 두기로 했다. 2021년까지 94억원을 들여 통합 컨설팅을 하고 시·군 연계형 관광상품 8개를 개발·운영할 계획이다. 주제별로는 장계향 선생이 지은 한글 최초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중심으로 영양, 안동, 청송, 의성, 영덕의 음식과 유교 문화를 결합한 ‘산골 걷는 선비 맛멋 여행’을 만들 예정이다. 또 ‘가야의 재발견 디스커버리 가야’를 주제로 고령, 성주, 김천을 묶어 인지도가 낮은 가야 콘텐츠를 알리고 관광 상품화한다. 울릉과 울진을 엮은 ‘출발 수토나라 체험단’, 낙동강 물길과 유교 문화를 결합한 ‘낙동강 선비유람’, 영주·봉화를 중심으로 선비 콘텐츠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선비의 힐링’도 운영한다. 경주와 주변 시·군을 묶은 ‘화랑 즐거운 경험’, 구미·김천·칠곡 문화체험 상품인 ‘인생샷 김칠구’, 경주·포항 도심 역사문화 체험형인 ‘2030 아름다운 역사여행’도 개발한다. 한만수 경북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이번 사업은 신라, 가야, 유교 3대 문화권 관광진흥사업의 하나로 추진되며, 도내 23개 시군의 우수한 관광자원을 묶고 테마별 상품을 개발·운영해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송인택 울산지검장 “검찰총장 후보 ‘정권 충성맹세’ 루머… 태생적 한계 고쳐야”

    송인택 울산지검장 “검찰총장 후보 ‘정권 충성맹세’ 루머… 태생적 한계 고쳐야”

    송지검장, 국회의원에 이메일… 9개 개혁방안 제시 “검찰총장, 법무장관, 청와대 檢권력집중 개혁해야”“법무부장관에 수사, 처리 사전보고를 해야 하나”“민정수석실, 사건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면 위선”“표만 의식 검찰 해체… 세월호 해경 해체와 같아”송인택(56·사법연수원21기) 울산지검장이 국회에서 논의 중인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세월호 참사 때 해경을 해체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담은 e-메일을 국회의원 모두에게 보냈다. 송 지검장은 검찰 권력이 검찰총장, 대검, 법무부 장관, 청와대에 집중되는 구조라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9가지로 정리해 제시했다. 송 지검장은 26일 오후 8시 국회의원 300명에게 ‘국민의 대표에게 드리는 검찰 개혁 건의문’이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 문서엔 A4용지 14장에 달하는 장문의 건의가 담겼다. 송 지검장은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가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수사,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잃은 수사, 제 식구 감싸기 수사를 한다는 의혹과 불신에서 비롯돼 그 책임이 검사에게 가장 많다는 것을 잘 알고 국민께 얼굴을 들기가 부끄러울 때도 많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송 지검장은 “검찰이 국민의 비판을 받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분석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공안·특수 분야에 대한 개혁방안 없이 마치 검사의 직접수사와 검사제도 자체가 문제였던 것처럼 개혁의 방향이 변질되어 버렸다”며 “표만 의식해서 경찰의 주장에 편승한 검찰 해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 때 재발 방지를 위한 개혁이라고 해경을 해체한 것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송 지검장은 “지금 정치권에서 수사권 조정이라는 명분으로 논의 중인 법안들은 경찰에게는 마음껏 수사를 할 수 있다가 언제든 덮을 수 있어서 좋고 변호사들에게는 새로운 시장이 개척돼 돈 벌 기회가 늘어서 좋다고 반기는 내용들 뿐”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송 지검장은 현재 검찰 권력이 검찰총장, 대검, 법무부 장관, 청와대에 집중되는 구조적 문제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민정수석은 권력의 핵심이고, 법무부 장관은 정권에 의해 발탁되고 정권에 충성해야만 자리를 보전한다”고 한 송 지검장은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 진행 과정과 처리 사항을 왜 일일이 사전보고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대통령 아들 수사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고 자리를 버린 법무부 장관도 있지만 이는 극히 예외일 뿐이다. 이 한목숨 다 바쳐 충성을 다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한 어느 법무부 장관처럼 정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분도 많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 송 지검장은 “민정수석실이 우리는 보고 받지 않는다거나 보고는 받았어도 사건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초등학생도 믿지 않을 위선”이라고 꼬집었다. 송 지검장은 조만간 이뤄질 검찰총장 인사에 대해서도 “검찰총장 후보들이 거론될 시점이 되면 누가 충성맹세를 했다는 소문이 돌곤 한다. 현재 시스템이라면 태생적으로 검찰 내부의 신망과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분이라기보다 코드에 맞는 분, 최소한 정권에 빚을 진 사람이 검찰총장이 되게 돼 있다”고 했다. 다음은 송 지검장이 제시한 검찰개혁 분야 9가지 건의다. ▲법무부나 청와대에 수사 정보를 사전에 알리는 현행 보고 시스템 개선 ▲정치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상설특검 회부 요구 장치 마련 ▲부당·인사권침해 수사를 한 검사를 문책하는 제도 ▲청와대 같은 권력기관에 검사를 파견할 수 없도록 제도 개선 ▲공안·기획이나 특수 분야 출신 검사장 비율 제한 ▲검찰 불신을 야기한 정치적 사건과 하명 사건 수사는 경찰이 주도하도록 변경 ▲대통령이나 정치 권력이 검사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독립적인 위원회의 인사 제도 등이다. 다음은 송인택 지검장이 보낸 e-메일 전문이다. 국민의 대표에게 드리는 검찰개혁 건의문 저는 진실을 밝혀 옳은 것을 옳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직업,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이 직업이 좋아서 검사의 길을 택했고, 가족을 돌볼 겨를도 없이 사건과 기록에 파묻혀 사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제는 집보다 사무실이 더 편한 그런 검사입니다. 공안·기획이나 특수 전담을 제외한 대다수의 검사들은 형사부와 공판부에서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을 한다는 긍지 하나로 야근은 물론 주말 근무도 마다하지 않아 왔음을 저는 잘 압니다. 저 스스로가 검사라면 주말도 하루정도는 나와서 근무해야 한다고 강요하던, 후배들이 힘들어 하던 선배였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논할 사건보다는 사기, 횡령, 공갈, 폭력, 강·절도 등 보통 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분쟁에서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할 사건들, 그러나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여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해도 더러는 속고, 더러는 범죄자에게도 마음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그런 사건들에 파묻혀 살아왔습니다. 밀려오는 사건의 대다수가 기록만으로 판단이 서지 않거나 보완할 점이 너무 많기에, 때로는 경찰에게 수사방향과 보완할 점을 요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수사를 통해, 더러는 꿈에서조차 진실을 찾아 헤매면서 죄가 밝혀지면 기소하고, 없으면 불기소하는 일만 해오던 대다수의 검사들이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시비를 일으킨 주범으로 취급되는 작금의 검찰개혁 논의를 보면서 세월호 비극의 수습책으로 해경이 해체되던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을 개혁하여야 한다는 요구가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수사,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잃은 수사, 제 식구 감싸기 수사를 한다는 의혹과 불신에서 비롯되었고, 그 책임이 검사에게 가장 많다는 것을 잘 알고 국민께 얼굴을 들기가 부끄러울 때도 많습니다. 누구든 검사를 고발할 수 있고, 경찰이 검사를 수사하는 제도적 장치도 있으며, 상설특검제도도 마련되어 있는 데다가, 이제 공수처까지 더 생긴다니 제 식구 감싸기 수사를 한다는 논란은 곧 없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검찰 개혁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시비가 공안, 특수, 형사, 공판 중 어느 분야의 수사에서 생겼는지, 검찰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초래하는 잘못된 사건처리를 가능하게 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검찰의 진지한 반성 위에서 충분한 논의 절차를 거치고, 국민의 불편을 경감시키는 방향으로, 국민이 억울함을 당하지 않는 방향으로, 권력에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 질 수 있는 방향으로 수사구조와 검찰에 대한 개혁이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법안들은 애초의 개혁 논의를 촉발시킨, 수술이 필요한 공안과 특수 분야의 검찰수사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는 덮어버리고, 멀쩡하게 기능하고 있는 일반 국민들과 직결된 검사제도 자체에 칼을 대는 전혀 엉뚱한 처방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사제도 자체가 악은 아닙니다. 검사제도의 근간인 수사지휘제도와 영장통제제도, 검사에 의한 수사종결제도 때문에 검찰수사가 공정성과 중립성이 지켜지지 않는 것일까요? 검사의 권한이 크고, 그게 문제여서 이를 경찰 등에게 나누어주면 대한민국에서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이 저절로 확보될까요?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할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의 형사사건 수사가 왜곡되는 것인가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수사를 초래하는 공안과 특수 분야의 보고체계와 의사결정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정치권력의 마음에 들지 않는 수사를 하면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개선하는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작금의 개혁안들이 마치 그동안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인 것처럼 추진되는 것을 지켜보자니, 진상을 잘 모르시는 국민께 진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죄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부합하도록 논의되어야 할 수사구조 개혁이 엉뚱한 선거제도와 연계시킨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되어, 무엇을 빼앗아 누구에게 줄 것인지로 흘러가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형사분쟁에 있어서는, 경찰이 수사권 발동에 아무런 제약없이 언제든지 수사를 개시하고, 계좌와 통신과 주거를 마음껏 뒤지고, 뭔가를 찾을 때까지 몇 년이라도 계속 수사하고, 증거가 없이도 기소의견으로 송치하거나 아니면 언제든지 덮어버려도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입니다. 경찰이든 검사든 국민에 대한 수사는 마음껏 할 수 있게 허용해서는 안 되며, 까다로운 절차와 엄격한 통제 속에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에서 수사권 조정이라는 명분으로 논의 중인 법안들은 경찰에게는 마음껏 수사를 할 수 있다가 언제든지 덮을 수 있어서 좋고, 변호사들에게는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어 돈을 벌 기회가 늘어서 좋다고 반기는 내용들일 뿐입니다. 평범한 국민들간의 분쟁사건 수사에 있어서 검사가 최종 책임을 지는 수사종결제도와 보완을 요구할 수 있는 수사지휘제도 때문에 검찰수사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검사가 책임지고 최종 결론을 내기 때문에 경찰 수사단계에서 소위 빽이 통하는 일도 적어지고,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검사보다 경찰이 더 공정하게 수사하고 검사보다 경찰이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진실규명에 더 부합하는 결정을 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검찰개혁안들이 국민에게는 불편과 불안을 가중시키고, 비용은 늘어나게 하며, 수사기관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제도의 잘못으로 인하여 진실과 다르거나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는지에 대하여 정치논리를 떠나 진지하게 검토되었는지 의문입니다. 만일 그런 위험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처럼 모든 검사를 적폐와 개혁의 대상인 것처럼 취급하며 검사들의 의견수렴 절차를 생략한 채 추진되고 있는 개혁안들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과 제도를 설계할 때 절대 금물은 일단 시행해 보았다가 문제가 드러나면 그 때 가서 고친다거나, 부작용이 적기 때문에 감수하고 간다는 태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검사들의 개인적 경험과 문제를 제기하는 구체적 사례는 매우 소중하고 반드시 반영해야할 중요한 자산입니다. 특히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형사법의 대 원칙은 어떠한 경우에도 준수되어야 할 가치이기에 국가의 수사구조에 관한 제도의 변경이 섣부른 실험의 대상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승진을 위해 무고한 국민을 범죄자로 만들어 보도자료만 배포하려는 수사, 유죄를 받아내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아니면 말고식 떠넘기기 수사, 범죄혐의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범죄혐의 자체를 발굴하기 위해 수사단서가 나올 때까지 압수수색과 별건수사를 계속하는 수사의 폐해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그와 같은 경찰 수사에 대한 정당한 사법통제를 강화하고, 수사결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검찰개혁 필요성을 촉발한 가장 큰 이유인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논란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고, 저도 비록 개혁의 대상으로 몰린 검사이지만 그런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누구보다도 열렬히 응원하고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수사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논란이 벌어졌고, 검찰이 권력의 충견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 것인 지에서부터 개혁의 논의가 시작되고 처방되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저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전 정권 사람들이나 미운 사람들을 쳐내고 손보려는 소위 하명사건, 정치권에서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사법으로 끌고 들어와 진실보다는 진영논리에 갇혀 사법기관들을 비난하고 국민을 선동하는데 이용하는 사건들에 대한 잘못된 수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사인 저 조차도 일반 국민의 삶과는 무관한 정치권이 가장 관심 갖고 싸우는 분야인 공안사건과 특수사건 수사에서 그동안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누구에게는 신속하고 가능하면 되는 쪽으로 사건을 처리하고, 누구에게는 가급적 천천히 가급적 안 되는 쪽으로 사건을 처리한 예가 없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때로는 증거확보의 어려움을 알아주지 않는 억울한 비판도 있겠지만, 특검에서 뒤집힌 사건, 과거사위원회에서 문제된 사건 등 국민들이 검찰의 잘못된 수사관행이라고 지적하는 문제에 대하여 검찰은 진솔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러한 비판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제대로 된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누구는 말합니다. 검사들이 다 정치적이고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다. 과연 수사팀 모든 검사가 그럴까요? 검사들은 다 인사에 목을 매고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다. 과연 제도와 시스템은 문제가 없는데 단지 사람만의 문제일까요? 진심으로 개혁을 원한다면, 검사들의 인성을 비난하며 모든 검사가 선비가 될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런 인간 본성을 전제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이 가장 욕을 먹고 개혁의 도마에 오르게 한 정치적 사건이나 하명사건 수사에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국민은 물론 심지어 검사들 중에서도 연륜이 짧거나 중요사건 수사에 참여해 본 경험이 없는 검사들은 정치적 사건 등에 있어서 검사의 수사가 검찰청법 제4조의 규정대로 주임검사의 책임으로 단독으로 진행되거나 검찰청법 제21조에서 규정한 검사장의 책임 하에만 진행되는 줄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특수나 공안 사건 중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는 주요사건에서 수사의 개시와 진행 및 종결에 대한 결정이 주임검사 단독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부장검사와 차장검사 및 검사장의 결재를 거쳐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대검의 사전지휘를 받게 되어 있고, 압수수색 영장의 청구나 사람의 소환은 물론 수사에 착수할 것인지 여부도 대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사건에서 대검은 일선의 수사상황을 법무부에게 보고하고, 법무부는 청와대의 민정수석실에 보고합니다. 우리나라 정치권력은 사법의 영역에 있어서 조차 국민의 기대와 달리 내 편인가 아닌가를 구분하고, 내 편에 불리한 수사나 재판을 하면 적으로 간주하고 인사에 불이익을 주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내 편에 대한 수사 진행상황을 보고받고 법과 원칙에 따라 내편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도록 과연 놔두었던 적이 있었는지 정치권력도 스스로 반성하고, 국민에게 양심고백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현재와 같은 검찰 수사의 의사결정시스템과 보고시스템 아래에서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에 터 잡아 추진해야만 검찰개혁은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민정수석은 권력의 핵심이고, 법무부장관은 기본적으로 정권에 의해 발탁되며, 언제든지 해임될 수 있는, 정권에 충성해야만 자리를 보전하는 자리입니다. 대통령 아들 수사에 대하여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고 자리를 버린 법무부장관도 있지만 이는 극히 예외일 뿐, “이 한 목숨 다 바쳐 충성을 다하여 정권 재창출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한 어느 법무부장관처럼 정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분도 많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법무부장관에게 수사진행과정과 처리예정사항을 왜 일일이 사전보고를 해야 합니까? 개인적으로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만일 꼭 그렇게 해야 할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로 한정할 것인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민정수석실에서 사전보고를 받을 사항이 굳이 있다면 무엇으로 정할 것인지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보고받지 않는다거나 보고는 받았어도 사건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초등학생도 믿지 않을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찰총장 후보들이 거론될 시점이 되면 누구누구는 충성맹세를 했다는 소문이 돌곤 합니다. 총장의 임면이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라면 태생적으로 검찰내부의 신망과 국민으로부터 존경 받는 분이어서라기 보다는, 좋게 말하면 코드에 맞는 분, 나쁘게 의심하면 정권에 충성서약을 했다고 인정하는 분은 없을 테니 최소한 정권에 빚을 진 사람이 검찰총장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정권에 빚을 진 검찰총장이 임명권자의 이해와 충돌되는 사건을 지휘함에 있어서 100%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의 바람대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지휘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공짜는 없고 빚을 지면 갚아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과거사위원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대부분의 사건들, 특검에서 결정이 번복된 사건들은 모두 대검의 지휘를 받은 사건임에도 공정성 시비 문제에 휘말렸다는 점에서,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대검의 손을 타는 바람에 망가졌다고 봐야 할 사건들입니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 중인 검찰개혁안의 핵심은 공수처 설치와 수사권 조정에 관한 문제인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시비와 권력의 충견이라는 비판을 초래한, 그래서 가장 시급히 개혁해야 할 직접적 분야인 공안, 정치, 특수 사건 수사에 대한 개혁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이들 사건 수사에서 검찰이 국민의 비판을 받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분석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공안·특수 분야에 대한 아무런 개혁방안도 없이, 마치 검사의 직접수사와 검사제도 자체가 문제였던 것처럼 개혁의 방향이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직접수사권 폐지하고, 수사지휘권 폐지하고, 수사권을 어떻게 떼어줄 것인가로 개혁논의가 옮겨간 것은 개혁의 대상과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라 아니할 수 없고, 표만 의식해서 경찰의 주장에 편승한 검찰 해체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세월호 사건 때 재발방지를 위한 개혁이라고 해경을 해체한 것과 무엇이 다른지 여쭙고 싶습니다. 집권 경험을 가진 여야 정치권을 포함하여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법안들을 검찰개혁으로 추진하는 모든 분들은 진정한 검찰개혁을 바라는 모든 국민께 다음 두 가지를 분명하게 납득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회에서 추진 중인 검찰개혁안이 환부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기초한 환부에 대한 수술인지, 그리고 그 제도가 도입되기만 하면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은 저절로 확보될 것인지 입니다. 만일 환부가 아닌 엉뚱하게도 멀쩡한 다른 부분을 수술하는 것이라는 비판에 귀를 닫고 검사들조차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밀어붙인다면, 진정한 검찰개혁을 기대하고 있는 국민들에게는, 집권시 정권의 칼로 검찰을 계속 활용하고 싶은 여야 정치권의 속마음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검찰의 이해와 통제받지 않고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경찰의 이해가 서로 맞아 떨어진 위선이거나, 평소 검찰에 대하여 갖고 있던 불편한 감정을 풀기 위한 정치권의 보복으로 비쳐질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공안·특수의 요직을 거친 검사는 아닙니다만, 검찰에서 24년 넘게 근무한 검사장으로서 검사로서의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솔직한 심정에서 몇 가지 건의를 드리고자 합니다. 다소 표현이 과하더라도 충정으로 이해해 주시고, 제대로 된 검찰개혁안이 도출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면서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시비에서 비롯된 검찰개혁 논의가 본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제대로 깊이 있게 논의되어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결과가 도출되었으면 하는 바램뿐 입니다. 첫째, 검찰총장 임면절차를 개선하여 정권에 충성서약하거나 빚을 진 총장이 아니라 국민과 검찰 구성원 모두로부터 신망과 존경을 받는 분이 임명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은 권력의 옷을 벗어버렸을 때 참모습이 드러나 제대로 된 인품과 능력을 검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검사가 현직에서 총장으로 승진하는 구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고, 가급적 이번 총장부터 당장 개선되기를 기대합니다. 현직검사가 아닌 사람 중에서 검찰업무에 관하여 능력과 인품을 검증하고,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쳐 임명되도록 함으로써, 총장을 바라보는 고검장들, 정치권력과 관계되는 수사를 가장 많이 맡게 되는 서울중앙지검장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여건을 마련해 주고, 검사장 이상에게는 국민만 바라보고 일하다가 퇴직하는 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그렇게 임명된 검찰총장이라 하더라도 지금처럼 구체적 사건마다 모두 만기친람하며 수사의 착수여부, 구속여부, 기소여부는 물론 어디를 압수수색하고 누구를 불러 조사할 것인지조차 총장 또는 총장의 위임을 받은 대검 참모의 사전지휘를 받게 하는 검찰총장의 제왕적 지휘권은 반드시 제한되어야 합니다. 검찰총장이 참모를 내세워 아무런 근거도 남기지 않고 지휘하는 비민주적 의사결정 관행은 총장에게는 편리하나, 문고리권력만 양산하고 책임소재는 불분명하게 하는 등 부작용이 훨씬 큽니다. 총장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지휘권은 검찰청법 제4조와 제21조를 형해화시키지 못하도록 그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지휘권을 발동할 경우에도 반드시 문서로 직접하고 참모에게 위임하지 못하게 해야 하며, 문서로서 지휘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또 지휘권을 행사한 때에는 기소나 불기소 결정과 함께 총장의 서면지휘 내용이 그때마다 국민에게 공개되도록 의무화하여 반드시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국회에서 오래전에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법률을 개정하여 폐지한 상명하복과 구속승인제도 조차 지금은 그 입법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지침 하나로 사실상 과거보다 훨씬 못한 상태로 부활되어 있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종 지침과 예규 제정에 관한 총장의 무제한적 지휘권한도 그것이 조직 전체의 업무와 밀접히 관계된 제도라면 검사장회의와 평검사대표 기구의 심의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등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는 절차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정치권력에게는 내 편의 사람에 대한 수사정보를 사전에 알려서 개입을 유발하는 일이 불가능하도록 수사에 관한 현행 보고 시스템을 당장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무부나 청와대의 소속 직원이 사전에 보고를 받도록 허용되지 않은 수사 사항에 대하여 보고를 받은 것이 밝혀지면 지위나 보직에 불문하고 보고를 받은 사람은 물론 보고를 한 사람까지 형사처벌을 하는 규정을 도입해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알려주고 수사해야하는 구조로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국민의 뜻으로 특별검사제도와 상설특검제도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권력과 시민단체는 늘 검찰을 비난하면서도 고소·고발장은 검찰에 제출합니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은 검찰로 집중되는 정치적 사건을 특검이나 경찰로 보내지 않고 직접 수사를 자처해서 검찰을 정치적 분쟁의 하수구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장관이나 총장에게 맡겨서는 앞으로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므로 차제에 일정 수 이상의 검사장들이나 평검사 대표들이 상설특검 등의 회부를 요구하면 특검에 회부되도록 하여 검찰 스스로가 정치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장치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섯째, 의욕이 앞서서, 또는 상관의 지시에 굴복하여 부당하거나 인권침해 수사가 벌어진 경우에는 그 검사를 문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함께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검사는 정의로움이 지나쳐 잔인하게 수사할 우려가 있고, 간부는 인사상 불이익 때문에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는 수사를 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사는 1년마다 하고, 재판결과는 몇 년이 걸려야 확정되기 때문에 수사결과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 현행 인사시스템도 권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유발하고 있으니, 늦어도 1심 판결 선고 직후에는 반드시 책임소재를 따지는 절차를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섯째, 청와대, 국회, 국정원 등 권력기관에 실질적으로 검사를 파견할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질적 파견금지를 위해서는 그러한 기관에 근무한 사람은 아예 검사로 복귀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사표내고 나갔다가 곧바로 돌아오는 편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검사의 권력기관 파견제도는 정치권력과의 유착만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현재 검사장 이상은 대부분 공안기획이나 특수 분야 출신들입니다. 지금 같은 공안기획 및 특수 분야 출신 검사를 우대하는 인사제도는 잘나가는 간부에게 잘 보이게 하여 결국 검사들을 말 잘 듣는 검사로 순치되게 하고 있으니, 우수한 검사들이 형사부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공안기획이나 특수 분야 출신의 검사장은 일정비율 이하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덟째, 서민의 생활과 직결된 일반사건이 아니라 검찰에 대한 불신을 야기해 온 정치적 사건과 하명사건에 대한 수사는 경찰이 주도하도록 변경하는 방안도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검찰개혁 논의가 촉발되었는데도 이렇다 할 개선책은 없이 검찰에 왜 그대로 남겨두겠다는 것인지 그 뜻을 모르겠습니다. 경찰이 오랫동안 독자적 수사 종결권을 갖고 마음대로 수사하고 싶어하는 영역인 만큼 경찰을 크게 만족시킬 수 있는 반면 설사 경찰이 일차적 수사종결권을 부당하게 행사하거나 수사권을 남용하는 사례가 있다 하더라도 일반국민의 민생과는 무관한 힘 센 분들에 관한 것이므로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니 검사가 그분들의 인권침해를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이 일정기간 이내에 수사를 끝내지 않고 계속할 경우, 그 즉시로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고 송치명령까지 할 수 있게 한다면 부작용도 최소화될 것입니다. 아홉째, 대통령의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내려놓고, 정치권력이 검사 인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도록 검찰이나 법무부 밖에 독립적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실질적인 인사가 이루어지도록 검사인사제도가 개선되어야 합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판사에 대한 인사제도와 달리 검사는 대통령이 마음대로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해 놓고, 정작 업무 수준은 검사에게 판사와 같은 정도로 중립성과 공정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검사 인사에서 손을 떼고, 장관이나 총장이 전횡할 수 없도록 프랑스 등 외국처럼 독립적 위원회에 검사에 대한 인사를 맡긴다면 검사장 직급을 강등시킨다 한들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검사들은 대통령의 정무적 인사권 행사가 가능하게 하는 차관급 예우보다는 검찰의 인사독립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검찰 개혁에 관한 사항은 아니지만 이 기회를 빌어 말씀드리자면, 국민적 관심사건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게 처리되는 원인은 의지와 능력이 부족한 검사에게 그 일차적 책임이 있습니다만 진실을 규명할 방법이 없는 잘못된 영장재판제도에도 그 원인이 있는 경우가 있다는 점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진실을 규명하려면 진실규명에 꼭 필요한 자료를 확보해야 하는데, 국민적 관심사건이 된 당사자들은 잃을 것이 많고 힘도 세므로 스스로 자료제출을 하지 않고, 참고인조차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므로 결국 압수수색과 통신 및 금융계좌 추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판사 들 중에는 진실규명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한 영장도 구속영장에 대한 재판처럼 범죄사실의 입증부터 먼저 소명하라고 기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는 범죄혐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한 핵심자료를 보자는 압수수색 영장 등에 대하여 혐의부터 입증하라는 것이어서 선후가 바뀐 것입니다. 그 결과 수사기관 인지사건도 아닌 고소·고발 사건의 경우까지 그들에게 입증책임을 전가시키는 결과가 되어, 임의수사로 확보한 자료만으로는 진실규명이 안되므로 증거부족을 이유로 피의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밖에 없게 됩니다. 특히 그것이 국민적 관심사건이고 상식에 반하는 결과일 때 수사기관은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수사기관의 인지수사가 아니라면 개인의 주거가 아닌 공공기관 등에 보관중인 자료에 대하여는 범죄혐의 유무 판단에 필요한 압수수색에 범죄혐의에 대한 입증부터 먼저 요구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억울함을 밝혀달라는 국민에게 입증책임을 전가시키는 영장재판 관행은 꼭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늘도둑은 가진 것이 없다보니 주거가 부정으로 구속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도망의 염려가 없다고 소도둑도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적용하여 구속영장을 기각함으로써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데도 현실은 이렇다 할 불복 방법이 없습니다. 검사조차도 구속기준 자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영장재판의 현실임을 알아야 합니다. 차제에 법원의 영장기각에 대하여 불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그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결정하게 하여 구속여부든 압수수색이든 국민이 영장심사에 참여하여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영장재판에 대한 합리적 국민통제 제도를 도입해 주시기를 건의드립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문화유적지에서 이장 회의 개최…고령군 쌍림면사무소 눈길

    문화유적지에서 이장 회의 개최…고령군 쌍림면사무소 눈길

    ‘이장 회의는 문화가 흐르는 곳에서…’ 경북 고령군 쌍림면사무소가 이장 회의를 지역의 주요 문화유적지에서 개최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24일 고령군에 따르면 쌍림면은 전날 22개리 이장이 참가한 회의를 고곡리 송암 김면(1541∼1593) 장군 유적지에서 개최했다. 김 장군은 고령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당시 대표적으로 활동했던 의병장이다. 의령의 곽재우(1552∼1617), 합천의 정인홍(1535~1623)과 함께 ‘영남 3대 의병장’으로 불린다. 이날 회의는 관광해설사로부터 김 장군의 생애와 활동, 장군의 위패를 모신 도암서원 유래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들었으며, 지역의 최대 현안인 남부내륙고속철도 고령역 유치 결의도 다졌다. 쌍림면은 앞으로 매월 2회씩 열리는 이장 회의를 ▲고령 신씨 시조묘가 있는 산주리 만대산 ▲조선시대 김종직(1431~1492)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합가리 개실마을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인 안화리 암각화(경북기념물 제92호) ▲고령의 옛 문서를 간직한 송림리 매림서원 등에서 가질 계획이다. 또 대가야생활촌 등 군의 주요 사업 현장에서도 회의를 개최해 군정에 대한 전폭적인 이해와 협조를 아끼지 않기로 했다. 박광배(56) 쌍림면 이장협의회장은 “쌍림은 예로부터 충효와 선비정신을 오롯이 간직한 자랑스런 고장”이라며 “앞으로 충효사상을 높이 받들고 문화유적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이장협의회가 앞장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임영규 쌍림면장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김면 장군의 숭고한 나라사랑 뜻을 기리기 위해 장군의 유적지에서 이장회의를 개최했다”고 말했다. 한편 고령군은 2011년 쌍림 고곡리 6769㎡의 부지에 도암서원을 비롯해 사당, 신도비, 묘소 등을 일괄 지정한 김면 장군 유적지(경북도기념물 제76호) 성역화 사업을 완료했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금요칼럼] 성리학 근본주의의 폐단/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금요칼럼] 성리학 근본주의의 폐단/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조선 사회는 성리학 근본주의에 푹 빠졌다. 주희의 학설을 신성시했고, 조금이라도 거기에서 어긋한 것은 처벌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조선의 성리학은 마치 신학과도 같았다. 교조주의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이러한 풍조가 초래한 사회적 폐단은 한둘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가장 날카롭게 지적한 이가 누구였을까. 창강 김택영이었다. 그는 구한말의 대표적인 학자요, 문인이었다. 그는 이건창, 황현과 더불어 문명을 떨쳤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돼 국가의 운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자 김택영은 중국으로 망명했다. 자나깨나 국권회복을 소망하던 그는, 1918년 중국 퉁저우에서 ‘한사경’(韓史?)이라는 조선 역사책을 간행했다. 총 여섯 권이나 되는 방대한 조선통사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난 500년 동안 조선왕조가 저지른 실수와 잘못을 통렬히 비판했다. 시대순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의 여섯 가지 폐단이 가장 비중 있게 다뤄졌다. 첫째 태종이 도입했다는 서얼차대법, 둘째 성종의 개가금지법, 셋째 세조의 단종 폐출, 넷째 영조의 사도세자 살해, 다섯째 순조 때부터 극성을 부린 세도정치, 끝으로 당쟁의 폐단이었다. 김택영은 유학의 전통인 사론(史論)의 형식을 빌려 조선 역사의 잘못을 가차없이 파헤쳤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배신하고 국왕까지 시해했다는 왕위 찬탈설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이 책을 읽은 고국의 유림들은 크게 반발했다. 선비들은 그를 “사적”(史賊)이라며 격렬히 비난했다. 김택영의 사관을 비판하는 책도 나왔다. ‘한사경변’(韓史?辨)이 두 종씩이나 출간됐던 것이다. 두 책 모두 1924년에 간행됐다. 그중 하나는 맹보순이 편찬한 것이다. 한흥교 외 101명이 총 162조항에 걸쳐 ‘한사경’의 주요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들의 글은 1923년 9월에 어느 일간지를 통해 일반에 이미 공개된 것이었다. 또 한 권의 책은 이병선이 편찬을 주도했다. 정확히 1907년 송병화가 창설한 유교계열의 신종교 단체인 태극교본부에서 만든 책이었다. 거기에 총 213조항의 반박문이 실렸다. 뿐만 아니라 김택영을 향한 통고문, 성토문, 서울 및 지방의 유생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반박문도 첨부됐다. 이것은 물론 구한말 유림의 총의를 모은 집단창작이었다. 유림의 집단적, 조직적 반발이 실로 대단했다. 그럼에도 나는 김택영의 주장이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성리학 중심의 조선 사회에는 아닌 게 아니라 심각한 문제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춘원 이광수를 비롯한 신지식인들도 성리학 망국론을 제기했다. 불과 20년쯤 전에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나와서,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성리학이 가부장적이고 여성 차별적인 사상이라는 비판은 오늘날 상식으로 통할 정도다. 그러나 성리학의 폐단에 대한 일반 시민들과 지식층의 날카로운 비판이 꼭 합당한 것은 아니다. 가령 성리학 사회라서 정도전이나 세종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출현할 수 있었다. 이황, 이이와 같은 큰 스승도 연달아서 나왔다. 더구나 500년 동안 과거제도가 실시돼 모두가 공부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신분과 성별을 초월해 많은 사람이 지식을 쌓기에 이르렀다. 서민문화가 크게 발전한 것도 성리학 사회라서 가능했다. 또 인간의 존엄을 극도로 강조한 동학의 훌륭한 가르침도 성리학에서 수용한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성리학의 폐단을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설득력이 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엄연한 사실이다. 성리학 근본주의의 공과는 앞으로 면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외나무 다리, 세상과 이어주는 영주 무섬마을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외나무 다리, 세상과 이어주는 영주 무섬마을

    # 시인 조지훈의 흔적, 폭 25cm 외나무 다리 그대로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가고” <조지훈의 시, 별리(別離) 중에서> 영주의 무섬마을을 노래한 조지훈(1920-1968)의 시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로 시작되는 <승무(僧舞)>를 비롯하여 <고풍의상>, <봉황수> 등 우리 귀에 꽤나 익숙한 작품을 지은 조지훈은 혜화전문학교(동국대학교 전신)에 다녔다.당시 동학(同學) 친구였던 김용진의 본가가 영주 무섬마을이어서 방학 때마다 이곳에 들른다. 그리고 인연은 이어진다. 1939년 독립운동가였던 무섬마을의 선비 김성규의 장녀 김난희에게 장가를 든다. 스무 살 앳된 신랑은 사랑을 찾아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예나 지금이나 양반마을이 아니라 선비마을이라 불리는 영주의 무섬마을, 그리고 외나무 다리다.우선 경상북도 영주로 가는 길부터 만만치는 않다. 서울 시내에서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3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중부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중앙고속도로로 길을 바꾼 뒤 영주IC로 빠지고도 한참이나 길을 가야 드디어 문수면 수도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곧이어 무섬마을로 안내하는 다리가 나온다. 오직 튼튼하게만 지은 듯한, 1983년에 들어선 총연장 180m, 폭 5.5m의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인 수도교(橋)다. 무섬마을 안으로 이제야 접어든다.# 오지(奧地) 무섬마을,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물돌이 마을 무섬마을은 경상도에 위치한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마을의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지형) 중의 하나다. 안동 하회마을을 비롯하여 예천의 회룡포 등이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들인데, 그 중에서도 무섬마을은 마을 깊이로는 첫 손에 꼽힐 만큼 내륙 중의 오지로 불렸다. 오죽하면 ‘물 위의 섬’이라 불러 ‘무섬’을 마을이름으로 지었을까? 낙동강에서 옆으로 뻗쳐 흐르는 내성천과 영주천이 무섬마을에서 합해져 인근의 태백산과 소백산을 한 바퀴 휘돌아 나가고, 마을 뒷면으로는 숲이 우거지고 앞으로는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러하니 한 번이라도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를 건너온 사람이라면 고즈넉한 마을 풍광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다.무섬마을은 1666년 반남(潘南) 박씨인 ‘박수’가 마을에 터를 닦은 후 예안 김씨 가문이 박씨 문중과 혼인하면서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있다. 입향조(入鄕祖)인 박수 어른이 만든 만죽재(晩竹齎)를 비롯해 19세기 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해우당 고택, 김규진 가옥, 김위진 가옥 등 9점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와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특히 폭 20~25cm, 높이 60cm로 만들어진 외나무다리는 수도교가 들어서기 전까지 350년 동안이나 무섬마을과 세상을 이어주었다. 지금의 외나무다리는 2005년에 복원한 것으로 무섬마을의 현재와 과거를 여전히 연결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무섬마을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영주 부석사, 소수서원을 오전에 방문한 뒤에 천천히 오후 반나절을 쉬고 싶다면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특히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라면 3. 가는 방법은? - 경북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234번길 31-12 - 일반 버스 20, 무섬마을 행 4. 감탄하는 점은? - 좁디 좁은 외나무다리와 비껴 다리, 조선 중기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택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생각보다 방문객들이 많지 않다. 6. 꼭 봐야할 것은? - 만죽재, 해우당, 각종 한옥들. 외나무 다리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영주 축협 한우프라자, 묵호문어집, 명동감자탕, 일월식당, 약선당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musum.kr/home/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부석사, 소수서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 무섬마을은 관광지가 아니라 지금도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다. 그러하기에 여느 관광지와는 다른 생활의 공간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곳이다. 조용하고 평온한 쉼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추천!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관광의 이름으로… 경북, 케이블카·모노레일 설치 붐

    관광의 이름으로… 경북, 케이블카·모노레일 설치 붐

    울진, 동해 관망 왕피천 케이블카 추진 포항·경주도 동참… 민간투자 유치 건설경북의 시군들이 관광 케이블카 및 모노레일 설치 사업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문경시는 오는 9월 백두대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단산(해발 959m) 모노레일(PRT)을 준공할 예정이라고 20일 밝혔다. 현재 하부 승강장 구조물 및 레일을 설치하고 있다. 시 예산 100억원을 투입해 문경새재리조트~단산 정상 왕복 3.6㎞ 구간에 승강장 2곳을 설치한 뒤 8인승 모노레일 10대를 운영한다. 또 모노레일 상부 승강장 주변에는 숲속 별빛 전망대, 사계절썰매장, 오토캠핑장 등 다양한 관광·레저공간이 들어선다. 울진군은 152억원을 들여 근남면 왕피천 엑스포공원과 해맞이공원(710m)을 잇는 케이블카를 놓고 있다. 왕피천 케이블카는 일반 캐빈 10대와 투명바닥인 크리스털캐빈 5대를 설치한다. 현재 공정률은 50%이며, 10월 준공 목표다. 시범 운영을 거쳐 내년 3~4월에 개장할 예정이다. 왕피천 케이블카가 건설되면 청정 동해 경관은 물론 왕피천에 회귀하는 연어 등 어류와 조류를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엑스포공원, 망양정해수욕장 등을 한꺼번에 관망할 수 있다. 군은 케이블카가 해수욕장 등과 연계돼 연간 3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모을 것으로 기대한다. 포항시는 민간자본 687억원을 유치, 영일대해수욕장과 환호공원 전망대를 연결하는 길이 1.8㎞의 해상 케이블카 건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사업에 착수해 내년에 완공할 계획이다. 시는 이 사업으로 연간 128만명의 수요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경주시는 주낙영 시장 공약에 따라 보문호수 주변에 관광 모노레일 설치 사업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이달 중 보문관광단지 관리를 맡은 경북문화관광공사, 보문호 용수를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와 함께 사업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시는 민간투자사업으로 2022년까지 860억원을 들여 보문호수에 길이 6.5㎞ 모노레일을 설치한다는 구상이다. 영주시는 관광용 모노레일 설치 사업을 추진하다 발목이 잡혔다. 2022년 3월까지 순흥면 청구리 소수서원(사적 제55호)~단산면 병산리 선비세상 관광단지 2.8㎞ 구간에 100억원을 들여 모노레일을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일대 경관 훼손 논란으로 지난해 6월 경북도 투자심사에서 사업안이 반려됐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바다를 한 입에… 더위 싹, 기운 쑥

    바다를 한 입에… 더위 싹, 기운 쑥

    2003년 여름이 지날 무렵 충남 서천군 판교면 행사장에 동물보호단체 등이 쳐들어와 솥을 엎고 천막을 걷어냈다. 면내 개고기 음식점 주인들이 첫 ‘보신탕 축제’를 열 참이었다. 축제는 결국 무산됐고, 쌍방 간에 고소·고발이 오갔다. 전통적인 여름철 보신 음식의 쇠락(?)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종림 판교면 부면장은 16일 “당시 7~8곳에 이르던 보신탕 집이 지금은 두 곳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판교는 조선시대인 1770년대 백중장에서 처음 판매가 이뤄진 보신탕의 원조로 알려졌다. 힘든 농사일을 거의 끝낸 머슴에게 휴식을 주는 ‘백중’(음력 7월 15일)에 열린 장에 머슴들이 몰려와 개장국을 사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후 콜레라 등이 번창해 돼지고기 등을 기피하게 되면서 십수년 전까지 판교를 중심으로 한 서천군과 인근 부여군에서는 더위에도 잘 상하지 않는 보신탕을 상가에서 문상객에게 대접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부면장은 “애견 인구가 늘고 동물보호 관련 단체들이 반발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보신탕이 줄어든 결정적인 이유는 상을 치르는 장소가 집에서 장례식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라며 “요즘은 풀베기 등 마을 공동작업 때만 개를 잡는다”고 전했다. 보신탕이 아니라도 여름철 건강 음식은 지천이다. 특히 푸른 바다가 그리워지는 계절에 ‘갯것’으로 만든 전통 해산물 음식은 뜨거운 날에 더할 나위 없이 반갑다. 여름이 성큼 다가오면서 더위를 식히고, 기운을 돋우고, 떨어진 입맛을 살릴 해산물 음식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속 시원한 맛, 태안 박속밀국낙지탕 겨울에 주로 먹는 토속음식 게국지와 우럭젓국으로 유명한 충남 태안은 여름이 오면 박속밀국낙지탕과 붕장어(일본명 아나고)구이가 미식가를 유혹한다. 박속밀국낙지탕은 조선시대 낙향한 선비들이 즐겨 먹었다고 하나 널리 알려진 것은 수십년 전이다. 정지수(47) 태안문화원 사무국장은 “1989년 서산에서 태안이 분리되기 전 역사적으로 서산에 속했다 떨어지길 반복해 태안이 원조여도 서산 것으로 대표되는 게 많다. 박속낙지탕만 해도 낙지를 잡는 가로림만 갯벌은 태안에 많고 이원·원북면이 이 음식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박속과 낙지는 궁합이 맞고 수확 시기도 엇비슷하다. 바가지를 만드는 박이 완전히 익기 전인 7~8월 속을 긁어내고 산란기 때 태어난 세발낙지도 이맘때 살이 부드럽고 맛이 좋다. 박속을 넣고 물을 끓이면서 낙지를 데쳐 샤부샤부로 먹은 뒤 수제비나 칼국수를 넣어 요리한 것이다. 정 사무국장은 “예전부터 서해안 일대에서 많이 쓰던 ‘밀국’이라는 말이 붙은 걸 보면 애초 수제비를 넣어 먹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시어머니에 이어 2대째 운영 중인 이원면 이원식당 주인 안국화(59)씨는 “내가 어릴 때는 박속과 낙지를 가마솥에 넣어 찌개를 만들어 먹었는데 요즘은 샤부샤부가 대부분”이라며 “박속을 넣으면 무보다 훨씬 시원하고 담백하다. 국물이 바로 식지 않아 낙지 고유의 맛을 더 오래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여름 주말 하루에 300명이 오는데 날이 더워지며 벌써 손님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소금 톡톡, 담백한 태안 붕장어구이 태안 붕장어구이는 주로 소금에 구워 먹는 게 특징이다. 소금은 충남에서 태안이 주산지다. 정 사무국장은 “태안은 조선시대 이름난 조정의 자염(바닷물을 끓여 만든 소금) 생산지였다. 공주 부동산 갑부 김갑순이 등장하기 전에 태안 이희열(1831~1918)이 구한말 충남 최고 갑부가 됐던 게 소금”이라며 “지금도 태안은 충남에서 천일염 염전이 가장 많이 남아 소금이 흔한 곳으로 구이에 주로 쓰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소금으로 구우면 담백하고 붕장어 고유의 맛이 잘 산다. 조석시장에 아예 붕장어구이 골목이 있다. 문기석 상인회장은 “붕장어 맛이 가장 좋은 여름철이 되면 손님이 점점 늘어난다”고 전했다.갯벌의 소고기, 순천만 짱뚱어탕 요즘 전남 순천만 갯벌에 가면 짱뚱어들이 마구 뛰어다닌다. 짱뚱어는 청정 갯벌에 사는 물고기로 순천만이 천국이다. 간척 등 갯벌이 훼손된 해안에서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개체수가 줄고 양식도 안 돼 귀한 대접을 받아 ‘갯벌의 소고기’로 불린다. 잡기도 쉽지 않다. 갯벌의 짱뚱어에 낚싯줄을 정확히 던져서 맞혀 잡는 ‘달인’이 TV 등에 나오기도 하지만 이 물고기는 매우 민첩하다. 귀가 어둡지만 영리하고, 예민하고, 볼록 솟은 큰 눈이 주변을 전방위적으로 둘러볼 수 있어 상황감지 능력이 탁월하다. 갯벌의 게와 갯지렁이 등을 먹고 산다. 거무튀튀한 색깔과 생김새는 메기나 미꾸라지 같고, 팔딱팔딱 뛰고 잽싸게 기는 모습은 도마뱀을 닮았다. 솜씨 좋은 낚시꾼도 널배로 갯벌을 미끄럼 타며 홀치기낚시나 맨손으로 한 마리씩 잡아 망태를 채울 뿐이다. 짱뚱어 100마리를 먹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일찍부터 순천에선 보양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고도의 인내심과 체력, 숙련된 기술로 잡는 걸 보면 절이라도 하고 수저를 들어야 할 판이다. 아무것도 안 먹고 한 달을 사는 특징 때문에 스태미나 음식으로도 꼽힌다. 전골, 구이, 탕으로 요리한다. 된장을 풀고 시래기, 우거지 등을 넣어 추어탕처럼 끓인 탕은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1980년대부터 언론에 자주 소개돼 순천만을 상징하는 ‘전국구’ 음식이 됐지만 여름철 건강식으로 빼놓을 수 없다.여름 별미 물회 본고장, 포항 동해안으로 눈을 돌리면 제주에서 강원까지 여름철에는 물회가 제일이다. 이 중 경북 포항은 물회 대중화의 본고장으로 유명하다. 고 허복수씨가 1960년대 ‘영남물회’를 열고 최초로 물회를 팔기 시작했다. 지금은 영일대해수욕장 인근 ‘설머리물회지구’에만 물회 전문 식당이 20여곳에 이른다. 죽도시장, 바닷가길, 북부해수욕장, 환여동 및 두호동 회타운 등에도 많다. 바쁜 어부들이 큰 그릇에 막 잡은 생선과 채소를 썰어 넣고 고추장을 푼 뒤 시원한 물을 부어 후루룩 마신 데서 유래한다. 종류는 다양하다. 도다리물회, 세꼬시물회, 해삼과 전복을 넣은 특미물회, 꽁치물회 등이 있다. 먹는 방식도 다채롭고 맛 또한 다르다. 고추장에 배·상추·잔 파와 깨소금·참기름을 넣어 비비는 전통 물회와 멸치·다시마·버섯 등을 우려낸 얼음 육수로 만든 2000년대 유행 물회는 맛 차이가 크다.뼈째 썰어 막된장에, 제주 자리물회 반면 제주에는 토박이들이 즐기는 자리물회가 있다. 갓 잡은 싱싱한 자리돔을 뼈째 썰어 채소와 함께 막된장으로 양념한 뒤 시원한 물을 부어 먹는다. ‘여름철 자리물회 다섯 번만 먹으면 따로 보약이 필요 없다’고 할 만큼 제주 사람들의 대표 여름 특식이다. 자리물회는 식초를 뿌려 만들지만 제주토박이들은 여기에 더 톡 쏘는 빙초산을 한 방울 떨어뜨려 먹는다. 제피나무 잎을 약간 넣으면 향도 좋고 비린내도 가신다. 섶섬 바다 절경으로 유명한 서귀포 보목포구 앞바다가 주산지로 마침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이 일대에서 활자리돔 즉석 시식, 자리돔 맨손으로 잡기, 대나무 고망낚시, 통통배 타고 보목바당 유람 등 자리돔 축제가 열린다. 물회는 불포화지방산과 칼슘 등 영양이 풍부하고 시원하고 고소해서 더위를 떨치는 음식으로 딱 맞다. 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외지인들이 순천에 정착해 사는 이유는

    외지인들이 순천에 정착해 사는 이유는

    외지인들은 대한민국 대표 정원도시이자 생태도시인 순천시의 어떤 매력에 푹~ 빠질까. 순천시가 인구정책 일환으로 타지역에 거주하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살게 된 이웃들의 이야기를 모아 ‘순천에 뿌리내린 사람들’이라는 정착 사례집을 발간했다. 사례집은 ‘순천 정착 사례 공모전’을 통해 모집한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 속 이야기와 옛 선조들이 맨 처음 순천에 정착하게 된 입향 성씨(入鄕 姓氏)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됐다. 순천 정착 사례는 올 초 공모전을 통해 교육, 환경, 귀농·귀촌 등 다양한 사연들이 접수 됐다. 시는 정착사례 공모 및 발굴된 총 95건 중 내용의 진정성, 적응도, 독자의 관심성 등을 평가한 후 25편의 작품을 선정해 사례집으로 제작했다. 수기 작품에는 난임으로 어렵게 둘째를 가졌던 엄마가 순천으로 이사온 후 기적적으로 셋째 아이를 가져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 아이들 교육과 깨끗한 공기를 찾아 순천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는 내용 등이 들어있다. 귀농·귀촌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얘기 등 살기 좋은 도시 순천에 대한 시민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순천만 갈댓잎 바람에 춤추고~ 국가정원 사계절은 천국의 동산~ 상사호 물결 따라 구름은 흘러 ~ 낙안읍성 선비의 숨결을 따라 ~ 고택의 선암사 깊은 산골 불경소리는 순천의 봄을 부르는 아름다운 선율이어라’ 51세에 직장생활을 접고 2년전 상사에서 귀농 귀촌 생활을 하고 있는 어느 정착민이 지은 시 구절이다. 그는 ‘도시가 꽃이라면 농촌은 뿌리다’라는 주장과 함께 오늘도 나는 이름 없는 작은 시인이 되어 순천을 노래한다는 말로 진한 순천사랑을 드러냈다. 허석 시장은 “사례집이 시민과 향우들, 그리고 순천을 사랑하고 앞으로 사랑하게 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순천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는 작지만 강한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는 2019년 순천 방문의 해를 맞아 전국의 관계 기관·단체, 향우회, 도서관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무성서원 일대에 선비원 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둔 전북 정읍시 무성서원 일대에 선비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문화시설이 조성된다. 14일 정읍시에 따르면 시는 신라 시대 문장가인 최치원의 숨결이 어린 무성서원 인근에 선비문화를 체험하는 ‘태산 선비원’을 만들 예정이다. 200억원이 투입될 이 사업은 오는 7월 전북도의 투자심사를 받는다. 선비원은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무성서원 인근 4만 2492㎡ 부지에 조성된다. 선비체험관과 한옥체험관, 저잣거리 등이 들어선다. 선비체험관은 청소년과 성인이 선비문화를 배우고 체험하는 공간이다. 한옥 체험관은 전통한옥으로 만든 숙박시설로 150명을 수용할 수 있다. 태산 선비원이라는 이름은 통일신라 말기 유학자인 최치원이 지금의 정읍시 칠보·태인·산내면 일대를 돌보는 태산 군수로 재임하며 쌓은 공적을 기리기 위해 조선 성종 때(1483년) 건립된 태산사에서 따왔다. 태산사는 이후 숙종 22년(1696년)에 사액(임금이 이름을 지어주고 서적, 노비, 토지 등을 하사하는 일)을 받아 무성서원이 됐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1968년 사적 제166호로 지정됐다. 정읍시 관계자는 “무성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이라며 “사계절 관광 인프라를 구축해 호남의 선비문화를 교육하고 안동의 도산서원 규모로 키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데스크 시각] ‘한국 3대 정원’ 너머의 것들/손원천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한국 3대 정원’ 너머의 것들/손원천 문화부장

    지난달 하순 조선시대 때 조성됐다는 정원 한 곳이 공개됐다. 서울 성북구 북한산 자락에 숨어 있던 성락원(명승 제35호)이 주인공이다. 조선 후기의 전통 정원 양식이 살아 있는 데다 장삼이사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정원이었던 까닭에 개방과 동시에 주목을 받았다. 6월 11일까지 50일간의 관람 예약이 진작에 꽉 찼으니 세간의 관심 정도를 가늠할 수 있겠다. 포털사이트에서 ‘한국의 3대 전통 정원’이라는 ‘연관 검색어’도 생겼다. 사실 좀더 정확히는 한국의 3대 전통 ‘민간’ 정원이라고 해야 맞다. 조선의 임금 정조가 ‘지혜의 샘’이라 불렀다던, 저 유명한 창덕궁 후원 등 여러 궁궐과 공공 건물의 정원들과 견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연관 검색어에 이어 ‘지식인’에까지 관련 내용이 등장하면서 성락원은 이제 전남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 부용동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정원의 자리를 단단히 꿰차게 됐다. 누가, 어떤 근거로 ‘한국의 3대 전통 정원’을 정했는지를 따질 생각은 없다. 외려 그만한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이 같은 서열화, 혹은 차별화가 미구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3년 전 들렀던 전남 강진의 백운동 원림(園林)에 대한 기억이 여태 선연하다. 월출산 차밭 아래 숨어 있는 호남 선비의 멋들어진 별서 정원이다. 애초 백운동 원림(명승 제115호)을 조성한 이는 강진의 처사 이담로(1627~?)였지만 세상에 알린 이는 다산 정약용이다. 강진에 유배됐던 다산은 1812년 월출산 산행에 나섰다가 하산길에 백운동 계곡을 지나게 된다. 매화와 동백숲 등에 눈길을 뺏긴 다산은 계곡 한가운데 터를 잡은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 간다. 여기가 백운동 원림이다. 다산은 백운동 안팎의 풍경을 ‘백운동 12경’이라 이름 짓고 이를 ‘백운첩’이란 서화집으로 남겼다. 현 백운동 원림은 백운첩을 근간으로 복원한 것이다. 원림의 뜰에는 시냇물을 끌어들여 마당을 돌아 나가게 만든 ‘유상곡수’ 유구, 화계(花階ㆍ꽃계단) 등이 남아 있다. 강진 나들이에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던 곳도 있다. 다산의 제자 황상이 살았던 ‘일속산방’(一粟山房)이다. 좁쌀 크기의 단칸 초옥이지만 웅지만큼은 불가에 전하는 ‘수미산을 담은 겨자씨’처럼 크고 넓다는 은근한 자부심이 담긴 집이다. 강진군에서 명소로 가꾸기 위해 ‘일속산방길’을 닦는 등 공을 들였지만,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유야 간단하다. 사람들이 발걸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 안의 옛집 정원들 가운데 철학이 깃들지 않은 곳은 없다. 그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외양이나 규모로 가늠할 수는 없다. 이를 서열화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성락원 이전에 ‘한국 3대 정원’의 하나였던 경북 영양의 서석지, 비교적 최근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백운동 원림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어떻게 바뀌게 될까. 담양의 명옥헌, 봉화 청암정 등 수많은 크고 작은 누정들은 몇 위에 턱걸이를 하게 될까. 이런 서열화가 국민들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선순환의 마중물이 됐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순위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눈길을 주지 않는 게 세간의 인심이다. 관광산업은 관심을 먹고 자란다.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곳이 명소가 되고, 살뜰한 보살핌도 받는 법이다. 이미 ‘한국 3대 정원’에 대한 평가는 널리 퍼져 있다. 기왕 여기까지 왔다면 이를 호명되지 못한 다른 옛 정원들이 재조명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도 아니라면 최소한 시선에서 벗어난 곳들에 대한 돌보기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거나. angler@seoul.co.kr
  • 뜬금없는 ‘이승만·박정희 국부론’… 71년 정쟁 ‘우율 문묘종사’ 닮았다

    뜬금없는 ‘이승만·박정희 국부론’… 71년 정쟁 ‘우율 문묘종사’ 닮았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8일 뜬금없이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부론’을 다시 꺼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와 선진화의 아버지가 그것이다. 국부론이 성립하려면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절이 돼야 하고 상하이임시정부의 법통은 부정돼야 한다. 상하이임시정부 법통론을 두고, 그가 북한 정권 수립을 옹호하려는 것이라는 해괴한 주장까지 제기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부화는 이른바 사이비 보수주의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관변 학자들이 나서서 ‘8월 15일은 건국절’이라고 주장했다. 건국절이 된다면, 이승만은 자연스럽게 건국의 아버지가 된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통해 역사를 아예 정부가 관장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끝내려 했다.‘국부화’는 이들에게 찍힌 친일과 독재의 낙인을 한 방에 지울 수 있는 수단이었다. ‘대한민국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이 나라의 정통성의 원천으로 공인받는 것으로 그 후예들은 이 나라의 적통이 된다. 역사적 정통성은 현실 정치에서 집권의 정당성으로 이어진다. 이들을 거부하면 체제 부정 세력이 된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모 인사가 제기하고 가짜 보수집단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민주화의 아버지 이승만’은 한 발 더 나갔다. 그들은 한국 현대정치의 흑역사를 열어 놓은 이승만의 ‘부산정치파동’(1952년 5월 25일 계엄령 선포부터 같은 해 7월 7일 제1차 개정헌법 공포까지 이어진 정치적 소요)을 한국 최초의 민주화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건국, 산업화는 물론이고 민주화까지 혈통 속으로 끌어들여 ‘한국판 백두혈통’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국부화’ 논란은 조선의 문묘종사 정쟁에 연원을 두고 있다. 조선 중기 등장한 붕당은 제각각 자파의 영수를 문묘에 종사하기 위해 대를 이어 가며 정쟁을 벌였다. 문묘에 종사된다는 것은 조선의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의 법통을 승계했음을 공인받는 것이다. 집권의 정당성은 이념적 정통성 위에서 가능하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부화는 대한민국 역사의 문묘 맨 윗자리에 그 위패를 안치하려는 것이니, 조선의 문묘종사와 다르지 않다. ‘아버지 운운’하는 것이 조선의 ‘현인’ 논란보다 훨씬 더 유치하고 구리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인조 13년(1635년) 성균관(지금의 국립서울대학교에 해당한다)에 난리가 났다. 유생들이 수업 거부, 동맹휴학, 제적, 자퇴, 가투까지 벌였다. 시위대가 대궐 앞까지 진출했으니 왕조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난리였다. 5월 11일, 송시형을 소두(상소의 대표자)로 하여 유생 270여명이 서인의 종장인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문묘에 종사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이른바 ‘우율 문묘종사 상소’다. 그러자 남인 유생 57명이 채진후를 소두로 하여 맞섰다. 농성장인 동학(관립 4부학당 중 하나. 지금의 동대문 옆 옛 이화여대부속병원 자리에 있었다)으로 가면서 지름길인 지금의 대학로를 놔두고 굳이 창덕궁 앞으로 돌아갔다. 대궐 앞 시위를 위해서였다. 인조는 우율 문묘종사를 거부했다. 그러자 인조반정의 공신들이 들고일어났다. 12일 영의정 윤방, 우의정 김상용이 중신 회의에서 우율 문묘종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3일엔 송시형이 다시 상소를 올렸고 오윤겸, 조익 등 대신들이 두둔했다. 점입가경이었다. 서인은 채진후 등 남인계 유생 6명에게 정거(과거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벌) 처분을 내렸고 남인계 유생 50여명은 수업 거부에 해당하는 권당에 들어갔다. 조정에서는 이조판서 최명길이 성균관 관련 직책인 대제학과 지성균관사의 사표를 걸고 3명에 대한 정거를 주장했다. 지방에서도 황해도, 경기도, 평안도, 전라도, 충청도의 서인 유생들이 릴레이 상소를 했다. 인조는 불쾌했다. 최명길이 낸 대제학, 지성균관사 사표를 수리했다. 지방 유생들의 상소에는 “유생의 본분이나 지킬 일이지 알지도 못하는 일을 거론해 남의 비웃음을 사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우율 문묘종사 청원이 시작된 것은 인조반정 직후였다. 반정에 성공하고 불과 13일 만인 1623년 3월 27일, 서인 유순익이 율곡 이이의 문묘종사를 청원했다. 이에 민성징, 이민구, 유백증 등 반정공신들이 인조에게 윤허를 청했다. 인조는 점잖게 거부했다. ‘중차대한 문제를 쉽게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인조는 문묘종사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었다. 42년의 논란 끝에 광해군 초 결말이 난 5현 문묘종사의 전말을 지켜봤고 이언적과 이황의 위폐를 문묘에서 빼는 문제(회퇴변척)를 놓고 벌인 북인과 남인의 정쟁도 지켜봤다. 서인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조정을 장악한 것도 모자라 학문과 이데올로기의 정통성까지 독점해 항구적인 집권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 아닌가. 재위 기간 내내 상소는 계속됐지만 인조는 외면했다. 정쟁이 다시 불붙은 것은 효종 즉위년이었다. 서인은 왕이 어리숙할 때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1650년 1월 성균관 유생 홍위 등 수백 명이 문묘종사를 청원하는 상소를 했다. 긴장한 남인 유생들은 2월 경상도 진사 유직을 소두로 900여명이 반대 상소를 올렸다. 영남의 거의 모든 읍이 참가했다. 그러자 성균관의 서인 유생들은 유직에게 삭적과 부황의 처벌을 내렸다. 유생 명부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고 그의 이름을 쓴 종이를 큰 북에 붙이고 북을 치며 장안을 도는 처벌이었다. 흉악범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과 같은 조처였다. 남인 유생들은 공관으로 맞섰다. 일종의 동맹휴업이었다. “과거를 보기 위해 구차스럽게 반궁에 남아 있을 수 없다.” 서인 유생도 염치가 없었던지 공관을 했다. 효종은 속이 끓었지만, 자신의 즉위를 기념해 치르는 증광시가 무산될 수 있어 걱정이었다. 영의정 이경여와 우의정 조익이 부황 처벌만 면제하는 수습책을 냈다. 그러나 서인 유생들은 막무가내였다. ‘선현을 모욕한 자들에 대한 처벌을 철회할 수 없다.’ 효종은 역정을 냈다. “너희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자들이 아닌가.” 그러자 서인 유생들은 “‘불학무도한 놈’이 어떻게 성균관에 들어갈 수 있느냐”며 다시 수업을 거부했다. 손을 든 것은 효종이었다. 7월 3일 ‘군왕으로서 거친 말을 한 것은 잘못’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훗날 소론의 영수가 되는 박세채 등이 우율 문묘종사 청원과 함께 부황 처벌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효종이 상소의 수용을 거부하자 이번엔 승정원에서 치받았다. ‘유생의 상소에 답하지 않는 것은 선비를 대우하는 바른 도리가 아닙니다.’ 효종은 다시 사과를 해야 했다. ‘유생들에게 불평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 내 자신이 매우 부끄럽다.’ 성균관 공관 사태는 이것으로 일단락됐다. 6년 뒤 서인의 두 영수가 직접 소두로 나섰다. 송준길은 1657년 10월, 송시열은 이듬해 12월에 우율 문묘 종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효종은 거부했다. 서인의 의도와 집요함에 넌더리가 났다. 현종이 즉위하자 서인들은 다시 공세에 들어갔다. 즉위년(1659년) 관학 유생 윤항 등이 5차례 상소를 올렸고 부제학 유계 등 대간들도 차자를 올렸다. 효종 3년엔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충청도, 전라도 유생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상소했다. 현종 역시 거부했다. 우율 문묘종사 정쟁은, 당쟁을 왕권 강화에 이용한 숙종 때에야 끝났다. 경신환국(1680년·숙종 6년)으로 남인을 남김없이 쓸어버린 뒤 숙종은 서인의 요구에 따라 1682년 우율 종사를 윤허했다. 처음 청원이 있고 59년 만이었다. 숙종은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을 통해 서인을 숙청한 뒤 남인의 주장에 따라 우율의 위패를 문묘에서 철거(철향)했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을 숙청한 뒤 위패를 복향했다. 무려 71년 만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이와 성혼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학문적 정치적 궤적에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서인의 권력 기반은 확고부동해졌다. 서인의 노론 소론 분당 이후엔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 등 노론의 종장이 차례로 문묘에 종사됐다. 조선은 노론의 천하가 되었다. 조선이 불가역적인 쇠락의 길을 걷던 조선 말(고종 20년)에는 김집의 문묘 종사가 이루어졌다. 참으로 집요했다. 그 집요함은 지금 ‘대한민국 아버지’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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