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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한 선비가 대단히 아끼는 옹기가 있었다. 어느날 그것을 일부러 방바닥에 던져 깬 다음 외출에서 돌아온 것처럼 하고서 두 아들을 불러들여 호통을 친다. 『너희들 짓이지. 누가 깼느냐?』 ◆두 아들은 그 물건을 아버지가 얼마나 끔찍하게 아끼는 줄을 안다. 물론 자기들이 깬 것은 아니다. 한데 10살짜리 형이 고개를 떨구면서 말했다. 『소자가 깼습니다』. 그러자 8살짜리 동생이 나섰다. 『아닙니다. 아버지,그건 소자가 깼습니다』. 그러자 그 선비는 두 아들을 와락 그러안았다. 『알았다. 장하구나. 죽는 날까지 이 우애를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 50여년 전에 있었던 실화다. ◆물론 세상에는 이와 반대되는 일들이 더 많다. 『쟤가 했어요,저는 안했어요』. 제가 해놓고도 남에게 떠넘기려 드는 경우가 많은 것이 세상사. 이를 전·현직 두 서울특별시장님들이 연출한다. 『쟤가 했어요,저는 몰라요』. 방송국에 전화질까지 해서 『쟤가 한 일이라구요,나는 모른다구요』. 그들이 1천만 서울시를 이끌어 가는 우두머리인가 싶기만 하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한성부윤」쯤 되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의 인품은 갖추어야 한다. 「10살·8살 형제」의 미덕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시의적절한 발명 기회는 언제고 있을 수 있는 것. 그를 못참는 입방아질로 이전투구의 치사한 몰골을 드러낼 게 무언가. 그들에게는 임면권자의 처지도 안중에 없는 듯하다. 그저 나만 발뺌하면 된다는 식의 단세포적 언행. 수서사건 그 자체 못지 않게 심각해지는 것은 고위직 공직자의 도덕성과 의식수준을 보는 서글픔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이 터질 때마다 보게되는 불쾌함이 『쟤가 했어요, 나는 몰라요』. 이번 사건에서 역시 두 시장 말고도 국회·정계·관계부서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꼴불견이다. 『군자는 자기에게 책임을 추구하고 소인은 남에게 추구한다』는 명구는 역시 공자의 말일 뿐인가.
  • 김성일 제주지법원장(신임 법원장급 16인의 얼굴)

    ◎「판결 간이화」 최초시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온화하고 조용한 성품의 선비형 법관이다. 항상 웃는 얼굴로 상대방을 편하게 해준다. 판결 간이화를 최초로 시도하는 등 업무개선에도 관심이 많다. 북부지원장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주석민법」 「민법연습」이 있다. 취미는 축구이고 남문자여사(50)와의 사이에 1녀.
  • 원리원칙에 충실한 선비형/안우만 법원행정처장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원리원칙을 중시해 공사를 분명히 하는 강직한 성품. 서울 민·형사지법 수석부장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서울형사지법 원장을 역임,재판업무 뿐만 아니라 법원행정 모두에도 막힘이 없다는 평. 미술 등 예술에 관한 식견도 상당한 수준이어서 지덕을 겸비한 선비형. 김덕주 대법원장을 보좌해 사법부개혁을 진두 지휘하게 된다.
  • 천관우선생 영전에

    밤중에 갑자기 선생의 부음을 접하고 애통한 마음을 금할길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1949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말년까지 현역 언론인으로 활동해오면서 한국 역사학계에 공헌하신바 참으로 크십니다. 스스로는 『비아카데미 사학도』니 『겸연쩍은 역사학도』니 하면서 겸손해 하셨지만 대학 연구실을 지키는 사람 이상의 학문적 정열로 한국사 연구에 크나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1952년 「역사학보」에 발표하셨던 논문 「반계 유형원연구」는 비록 대학 졸업의 학사논문이지만 실학연구의 효시로 오늘날의 탄탄한 실학연구의 기초를 닦은 것이었습니다. 실학연구와 함께 조선사 연구에 남다른 열정을 기울여 군제사를 중심으로한 조선의 정치 및 사회·경제 제도연구에 괄목할 성과를 올리고 「한국사 근세 조선전기편」(진단학회편)의 발간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말년에는 고대사에도 눈을 돌려 「인물로 본 한국고대사」 「고조선사·삼한사연구」 등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만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하셨던 근세사 연구도 병행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선생께서는 평소 『역사학 논문을 쓰려면 개설서를 한 줄이라도 고칠 수 있는 논문을 써야 한다. 대담한 가설을 세우되 고증은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바로 그것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실학연구가 그 가장 좋은 표본입니다. 인간적으로는 후배들에게 항상 따뜻한 인정으로 대하셨습니다. 아무리 신문사일이 바쁘더라도 찾아간 후배들을 항상 따뜻이 맞아 주셨고 선생이 계시는 직장이나 집동네를 지나치면서 선생을 찾지 않을 경우엔 매우 섭섭해 하셨습니다. 또한 일단 찾아온 손님은 무엇이든 대접해 보내야 마음편히 여기는 선비의 체질을 끝까지 간직하셨습니다. 결국 오늘의 불행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 된 두주불사의 애주도 이같은 맥락에서 말미암았을 것입니다. 선생의 정치적·사회적 활동에 대해 평가할 입장은 아니고 또 잘 모르지만 민족자주와 민주개혁이란 굳은 신념의 발로이었을뿐 항간의 일부 오해처럼 추호도 사욕이 개재된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정녕 드문 천부적 재질과 뛰어난 풍모와 건강을 지니셨던 분이 이토록 빨리 가시다니 비단 한국역사학계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사회의 큰 손실입니다. 고이 잠드소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 허선도 국민대교수
  • 환경보전종합계획의 의미(사설)

    정부가 확정한 「환경보전중기종합계획」은 95년가지 범부처적으로 추진할 환경개선정책의 청사진을 담고 있다. 8조3천억원 규모의 예산추정도 하고 있고,대기의 아황산가스농도·수질오염도 등에 대한 개선목표 기준수치들도 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현실에 입각한 구체적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권역별환경관리위원회」설치나 「환경분쟁조정위원회」같은 오염피해 구제제도안도 내놓고 있고 오염유발부담금제도로써 재원마련의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환경오염에 대처함에 이제 비로소 실질적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 계획의 실제적 성취가 과연 얼마나 이루어질 것인가에는 아직도 많은 의문을 갖게 된다. 이 계획서에도 지적돼 있는 바,무엇보다 각 부처간 유기적 협력체계의 형성이 아직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기득권의 관점에서 여전히 환경행정의 체계는 여러부처에 산만하게 널려 있다. 뿐만 아니라 지속돼온 성장위주 경제정책도,환경을 고려하며 새로운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세계적 대세에 적절한 전환을 하고 있지못하다. 따라서 이 게획들의 진척이 목표에 도달할만한 힘을 가질 수 있기에는 아직도 더 근본적인 인식의 개혁이 필요하다.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보통 국민들에게서 더 진전돼 있다. 환경처의 국민의식조사자료에서 보듯이 국민은 지금 「범죄와의 전쟁」 다음으로 「환경오염방지」를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로 보고 있고,「환경보전은 사회간접자본의 의미를 가진다」에 72%이상이 동의를 함으로써 경제발전과 환경보전을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임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결국 환경보전 노력의 가장 중요한 요체는 모든 행정부처와 생산체 그리고 국민간의 일치된 문제의 인식과 그 대안의 합의된 선택에 있는 셈이다.; 생산체들의 입장은 훨씬 더 절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에 관한 국제협약들이 한두개가 아니고 이미 오염물질사용의 생산물들은 무역규제를 하겠다는 일정도 나와 있다. 프레온가스 사용의 생산품만도 우리의 현단계에서 4조원 규모이다. 환경정책은 이제 국제무대에서 경제정책이 아니라 정치적 정책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 이점에서 환경처는 보다 적극적인 문제의 이해도 넓히기를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재원의 내용에서도 부족하기 마찬가지다.8조원이라고 하지만 이중 민간부분 3조원은 액화천연가스 공급시설과 탈황시설설치의 비용일 뿐이다. 공공투자 5조원중 2조원은 또 단지 하수종말처리장 40곳을 만드는 데 쓰일 돈이다. 그리고 1조6천억원을 오염유발부담금으로 충당토록 되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다 근본적인 개선비용 부분이 너무 적고 막연하다.그러나 오염방지 투자는 오염의 실상을 전국 총량으로 파악하는 일과 이를 기초로 환경산업부문의 「경비 대 효용」의 규모를 실질적으로 알아내는 일에서 시작이 돼야 한다. 따라서 환경 및 생태학 전문가들을 키우는 일과 오염을 방지하는 기술들을 개발하는 일에 더 많은 투자가 일시에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점이 더 보완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계획은 문제를 체계적으로 접근한다는 방법에서 의미를 갖고 있다.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신미년 설계

    ◎“올핸 만주벌 누비며 「북방 경협의 폭」 넓힐터”/“전환기 기업 국제정세 변화 읽어야 할 일 많아 1백살까진 경영일선에”/소 원자재 확보는 국내산업 발전에 큰 힘/자본주의 경영비법 북한에도 알려줘야/노사협조로 생산성 오르고 모든 근로자의 수입도 늘었으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몸과 마음은 언제나 20대 청년이다. 새해를 맞아 76세가 됐어도 그의 활력과 의욕은 어느 자리에서나 젊은이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재작년부터 북한과 소련을 왕래하며 금강산 개발,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면담 등 굵직한 뉴스의 주인공이 됐던 그는 올해 중국쪽으로도 발길을 넓혀 볼 생각이다. 북한과의 경제교류에 앞장서고 있는 정회장은 이들과의 경제협력이 결국은 북한의 개방을 촉진,남·북한간의 관계개선으로 이어져 한반도의 정세를 안정시키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의 길도 빨라진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북방국가들과 그가 갖는 접촉은 이미 기업가로서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라는게 재계의 평가이다. 그만큼 국제정세에 대한 안목이나 분석도 예사롭지 않다. 그는 3년이내에 북한과 사람 및 물자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정회장은 지난해의 경제성장은 그 내용이 바람직하지 않았다며 새해에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사치와 낭비를 몰아내야 건실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정회장 같은 분이 더이상 받을 복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 개인으로는 바랄게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복을 많이 받아 복된 사회에서 살고 싶습니다.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복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풍요로운 나라,서로 사랑하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게 내 소망입니다.』 -우리 경제가 잘 되라고 덕담하나 해 주시지요. 『나야 뭐 멋있는 그런 덕담은 할 줄 알아야죠. 올해에는 우리경제에 어려운 점도 적지 않지만,도움이 되는 호재도 많다고 봅니다. 지난해 한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맺었고 노태우대통령이 방소해서 고르바초프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지 않았습니까.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2시간이 넘는 대담에서 북한이 절대로 무력행사를 못하도록 하겠다는 보장을 받았으리라고 봅니다. 이로써 우리의 안보는 이제 절대 안심해도 좋을 것입니다. 경제와 안보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경제에 엄청난 호재입니다. 또 시베리아로부터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여건도 조성됐습니다. 게다가 중국에 우리나라 무역대표부가 설치됨으로써 이 거대한 시장에 대한 전망도 아주 밝습니다. 물론 페르시아만사태 등 악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미국의 경기가 심각한 불경기에 빠져 하반기에나 소생하리라는 전망도 악재라 하겠죠. 악재에 미리미리 대비하면서 호재를 잘 활용하면 지난해보다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소 정국 불안이 난관 -시베리아의 매력은 어떤 것이며 또 계획대로 개발이 되면 우리 경제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무엇보다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 물가안정에 도움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목재를 연간 10억달러,석탄을 1억5천만달러어치나 수입하는데 모두 바다를 건너 들여옵니다. 수송기간이 짧게는 왕복 20일에서 길게는 60일입니다. 그런데 정작 석탄이나 목재 값에서 차지하는 운임비중이 원거리의 경우 석탄은 약 3분의 1,목재는 5분의 1이나 됩니다. 왕복 3∼4일밖에 안걸리는 소련에서 들여오는 것과 비교할 때 운임과 시간의 차이가 얼마나 큽니까. 목재의 경우 운임비중이 2∼3%로 떨어집니다. 게다가 이 기간중의 금리부담을 생각해보세요. 내가 자원,자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어려움도 적지 않을 터인데요. 제일 큰 난관은 무엇입니까. 『첫째로는 소련의 정국이 안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권리·의무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와의 협력사업이 성사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두번째의 어려움은 루블화가 국제적 교환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소련 붐을 일으킨 주역은 정부라기보다는 오히려 정회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내가 아니고 민간기업이라고 해야지요. 지난 연말 노태우대통령이 소련을 서둘러 방문하지 않았다면 방소시기가 1년은 늦어졌을 것입니다. 소련정부는 자기네 경제문제를우선 한국과 의논해서 해결하고,안될 때는 태평양국가 중에서는 일본·미국의 순서로 의논해 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금년 4월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면 어떤 형태로든 일본과 소련간의 투자협정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덤벼들면 우리에게 좋은 프로젝트가 돌아오겠습니까. 그에 앞서 소련에 한국정부는 믿을 수 있으며,또 한국과 손잡는게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이미 심어주었다는게 잘된 일이지요』 -새해에는 중국에 자주 가시겠다면서요. 『중국은 지난해 아시안게임때 처음 가봤습니다. 새해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한차례씩 네번은 가볼 생각입니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와 중국은 모든 면에서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과 경제협력을 하게되면 틀림없이 자기들이 한국과 교류하는 것처럼 북한에 대해서도 한국을 이해시키고,또 자기들과 똑같이 한국을 대하라고 종용할 것입니다. 우리와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는 만큼 남·북한은 가까워지게 돼있습니다』 -기업인의 입장에서 중국과 소련의매력은 어떻게 다르다고 보십니까. 『소련은 자원에,중국은 시장에 각각 매력이 있다고 해야지요. 중국의 경우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소련보다 훨씬 빨리 정착될 것입니다. 농업국가인 중국이 캐나다에서 연간 2천만달러어치의 곡물을 수입하다가 집단농장을 해체하니까 주곡은 자급하게 됐고 잡곡은 해외에 내다팔게 됐어요. 이러니 절대로 공산주의로 되돌아갈 수가 없지요. 지난해 만난 중국지도자들도 한결같이 자유경제로 식량을 자급하게 됐는데 왜 다시 집단농장을 하느냐고 반문하는데 나는 그 말을 믿습니다』 -양국의 경제력 차이는 어떤가요. 『통계상으로는 소련이 나은 것으로 나와 있지만 실상은 중국과 똑같다고 봅니다. 소련국민들의 생활상이 중국보다 낫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소련이 우리와의 수교라든가 노대통령의 방소 등의 문제를 북한과 전혀 의논을 안하는데 비해 중국은 우리와의 관계개선을 일일이 북한에 얘기해 주고 양해를 구하는게 다르지요.중국은 북한에도,남한에도 잘 해줘서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겠다는 생각입니다. 소련 역시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생각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주변 여건과 환경을 예의 주시하며 이해당사국들과 긴밀하고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일을 하셨는데 여러 곳에서 앞으로 25년간은 더 활동을 하겠다고 호언하시던데…. 하시고 싶은 일이 그렇게 많습니까. 『내가 지난해 75세였으니까 25년이 되는 1백살까지 일선에서 지금과 똑같이 일하겠다는 뜻입니다.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건강관리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골프를 치든 등산을 하든 젊은 사람 못지 않거든요. 노쇠현상은 자기가 하는 일에 흥미가 없을 때 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피로를 모릅니다. 항상 활기찬 기분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기분이 언짢은 일은 빨리 잊어버리지요』 -정회장 같으신 분도 뜻대로 안됐다거나 잘 안된 일이 있습니까. ○대북한 경협도 추진 『많지요. 내가 좀 둔해서 정권이 바뀌면 잃어버리는 것이 많아요.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남의 것을 차지하는데 우리는 제 것도 잃어버립니다. 5공때 지금의 한국중공업을 현대가 빼앗기고 우리 정인영회장은 형무소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때 빼앗긴 현대양행은 지금까지 청산을 못받고 소송을 하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정부는 현대가 좀 컸다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며 섭섭해 하고 있어요』 -재작년 북한을 다녀오시고 작년에는 못 가셨지요. 『지금도 오라고는 합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가봐도 될 일이 없기 때문에 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년에는 갈 생각입니다. 북한은 동구권의 붕괴,노태우대통령의 방소와 모스크바선언 채택 등 국제정치의 엄청난 변화에 맞서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오는 연말이면 중국이 권하는 대로 개방을 선택,남한과의 교류에 나서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금강산 개발에 관한 구체적인 안이 있습니까. 『북한에 갔을 때 의논한 것이 있습니다. 외금강,해금강,내 고향 통천에 있는 삼일포를 각각 어떻게 개발한다는 얘기를 다 했지요. 외금강·옥류동·팔담을 거쳐 비로봉에 이르는 코스에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리면서 호텔과 위락시설·케이블카 등을 어떻게 설치하고,관광객이 돈을 많이 쓰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들을 다 했습니다. 당시 북한과 약속한 5개의 사업은 모두 그 쪽이 제안한 것인데 내년이면 모두 실행에 옮겨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실제 통계로 나타난 성장률은 괜찮은 편입니다. 물론 물가나 국제수지 등은 성적이 나쁘게 나오긴 했습니다만. 『수치로 9%성장을 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수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실절적으로 도움이 되는 성장은 수출에 의한 성장입니다. 무역수지 적자는 60억달러에 달했는데 이런 식으로 간다면 우리 경제는 끝장이 납니다. 지난해 주택공급이 확대된 것. 빼고는 내수가 늘어난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올해에는 국제수지를 최소한 균형으로는 맞춰야 합니다. 그러려면 개인은 사치와 낭비를 없애야 하고,기업은 내수보다는 수출위주의 투자를 해야 하며,정부도 재정에 의한 투자를 줄여야 합니다. 경부고속전철이나 영종도비행장 건설처럼 아직 착공하지 않은 사업은 5∼6년 뒤로 미뤄야 합니다. 한꺼번에 벌여놓으면 물자도,사람도 다 모자랍니다. 그래가지고는 우리경제가 건실하게 성장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불과 10년 남짓하면 대망의 2천년이 되는데 그때의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가 될까요.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아시아의 중추적인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근검·절약하고 알뜰한 것이 우리 사회의 정신이고 문화입니다. 이를 발전시켜 나가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비록 경제나 기술은 일본이 우리보다 더 앞설지 모르지만 정신문화에서는 우리를 쫓아올 수가 없습니다. ○“부의 고른분배 중요” 그러나 정신문화적으로 볼때 우리나라는 언제나 일본을 앞섰습니다.아직도 이 분야에서는 그들이 우리를 쫓아오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중추국이 될 수 있습니다. 2천년대 한국의 위상은 타고르의 시처럼 세계에 찬란하게 빛나는 그런 나라가 될 것입니다』 -6공화국 이후 과도기를 겪으며 재계에 대한 국민의 비판적 시각이 높아진 것같습니다. 재계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재계에 대한 존경은 고사하고 오히려 지탄의 소리가 높다는 얘기인데 이는 보는 사람 나름입니다. 요즘처럼 혼란한 시기에 사업가 집이 그래도 돌팔매질은 안당했어요. 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식자층일수록 더합니다. 이는 청부락도를 보람으로 여기는 유교의 선비정신 때문입니다. 돈은 죄악인데 왜 돈이 많으냐,그러니 재벌은 죄벌이다,이러는 것이죠. 그러나 기업이 커지는 것을 시비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기업은 계속 커져야 하되 개인의 부가 보다 골고루 나눠져 불균형이 시정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언론이나 식자층에서 기업주들에게 회사의 주식을 모든 국민들에게 팔아 회사를 키워나가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업의 경영권이 자연히 기업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기업주의 자식도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대기업의 주식을 많은 국민들이 골고루 나눠갖게 되면 그때 바로 국민의 기업,국가의 기업,공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대기업그룹의 경영체제가 2세체제로 바뀌었는데요. 그들이 잘 한다고 보시는지요. 『창업주보다는 경영을 더 잘 합니다. 창업주들은 다 각자가 자기 뚝심으로 해왔습니다. 그러나 2세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경영학을 배워 합리적으로 경영하는 식견을 지녔기 때문에 창업주보다는 2세시대의 기업이 휠씬 더 융성할 것으로 봅니다』 -3년내에 통일이 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요. 『요즘 세계의 흐름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까. 이런 기회를 포착하지 못한다면 기회는 그대로 흘러가버리고 맙니다.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온 노대통령이 평양가는 길이 열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북한이 문을 꼭꼭 닫아 걸고 있지만 멀지않아 문을 열게될 것입니다. 결국 양쪽 국민들이 서로 왕래하고 경제교류를 하는 국민적 통일은 3년안에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빠르면 후년,늦어도 그 다음 해까지는 우리가 북한에 상당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정치적 통일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요』 -근로자에게희망을 주는 말씀을 한마디 해주시지요. 『노사가 잘 협조를 해서 많은 능률을 올리고 모든 근로자들의 수입이 더 많이 늘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금년 연말에는 모든 근로자들이 보너스를 듬뿍 받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특별인터뷰=양해영경제부장)
  • 박용도 상공부차관/새 차관급 20명(얼굴)

    과묵한 성품에 대인관계가 원만한 선비형의 관료. 행정고시 1회 출신으로 상공부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관운이 아주 좋은 이른바 TK출신. 매우 성실한 성격에 다소 꼼꼼하다는 평을 듣고 있으나 청렴도 면에서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부인 이정아여사(47)와 2남1녀. ▲경북 청도출신(53세) ▲서울대 법대 졸 ▲상공부 기획관리실장·2차관보 ▲공업진흥청장
  • 최창윤 공보처/12·27 개각… 새 장관·청와대 비서진(얼굴)

    ◎균형감각 지닌 육사출신 학자 말끔한 용모에 흐트러짐이 없다. 육사출신이지만 서울대 문리대,하와이대 정치학박사 등의 이력이 말해주듯 학자·선비형. 5공출범 당시 국보위 외무분과 위원으로 정치에 입문,문공차관,13대 전국구의원 등을 거치며 정부와 당에서 고루 감각을 익혔다.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과 특출한 영어실력 등이 돋보인다. 부인 주인숙여사(45)와의 사이에 1남2녀.
  • 민경배 보훈처/12·27 개각… 새 장관·청와대 비서진(얼굴)

    ◎2군사령관 지낸 외유내강형 육사 14기로 58년에 임관,30여년간 군생활을 하다 지난 1월17일 2군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했다. 지휘관시절 부하들의 경조사에 항상 관심을 보여 희노애락을 함께 해왔다. 외유내강형으로 독서량이 많고 바둑을 즐겨 선비형 지휘관이라는 평도 받았다. 한양대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안보정책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부인 나정숙여사(53)와의 사이에 2남1녀.
  • 국군합동군제 창설 산파역/송 합참제1차장(얼굴)

    60년 육사 16기로 소위에 임관된 뒤 사단장·군단장·합참본부장을 역임했다. 합참본부장 때에는 제2창군의 의미를 갖는 합동군제형 새로운 합참 창설의 산파역인 818기획단장으로 한반도 안보상황에 맞는 새로운 군제를 창설하는 데 전력했다. 선비풍의 외모에 기획력과 설득력이 뛰어나며 온화한 성품으로,앞으로 남북군사회담과 중·장기 국군의 전략수립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부인 김봉희 여사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취미는 독서와 골프.
  • 자신감을 잃어가는 사회/김대환 이대교수·사회학(서울시론)

    ◎기백·실천력 있는 젊은이 기르자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사회도 분명 하나의 생명체이다. 그러기에 사회도 나름으로 숨쉬고 맥박치며 또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기에 사회는 때에 따라 의기충천하면서 고동치기도 하고 생기소침하여 침체쇄약하기도 한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건전해야 하는 것처럼 사회 또한 건강하고 건전해야 한다. 사회의 생기와 맥박은 곧 역사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 ‘요즈음 우리사회는 어떻다고 진단해야 할까. 갖가지 염려스러운 징후들이 많지만,그중에서도 크게 우려됨은 정치·경제·사회,그리고 문화 등에서 그 기백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다. 사실 2년전 우리사회는 「하면된다」는 식의 거의 만용에 가까운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던 우리사회가 지금은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6·29 민주화의 선언과 올림픽 이후 우리의 놀랍던 기개도 간데온데 없고 뭣인가 이룩해 보려는 의지도 박약해지고 있다. 왜 그렇게 되고 말았을까를 우리 모두 곰곰 생각해 봄직하다. 사회의 핵심은 인간이다. 사회란 결코 넓게 닦은 포장도로나 하늘에 치솟는 고층빌딩의 숲으로 대변되는 것은 아니며 넓디넓은 대로를 메우는 차량의 물결도 아니다. 물론 수출고나 국민평균소득,전자기기의 보유,그리고 문맹률 등이 그것들을 가름하는 지표가 될 순 있지만 그러나 그것들이 절대적인 잣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더욱이 그것들이 인간의 인간다움을 축적하는 삶의 질을 저울질 하는데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오래전의 이야기지만 언론계의 「선비」격이었던 고 선우휘선생이 어느 세미나석상에서 한 말이있다. 「청년문화와 자녀교육」에 관한 발표자와 질의자의 열띤 토론이 오가고 있었다. 흔히 있는 것처럼 외국의 생경한 이론들도 우리의 실정과는 아랑곳 없이 아무런 취사선택없이 마구 늘어놓고 주고받는 이야기의 판이었다. 세미나 석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날도 으레 따라붙는 이야기는 자유니 평등이니 인권이니 하는 말이 현란할 정도로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러던차 선우선생의 말문을 열게하기 위한 사회자의 짖궂은 촉구에 마지못해 하는 이야기의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여러분 모두들 해박한 지식과 좋은 말씀은 다 했습니다. 그런데 자녀의 인격도 좋고 민주화도 좋고 개성의 존중도 다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유방임과 과잉보호로만 자녀를 길러야만 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현실은 어렵고도 각박합니다. 우리는 지금 다른 나라들이 경험치 못한 남북분단의 현실속에 있고 경제적으로는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아 남기 위하여 기술도 축적하고 해외시장도 개발하고 더 열심히 노동해야 합니다. 냉엄한 생활여건과 국제경쟁의 틀속에서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선 강한 인간을 길러내야 합니다. 뭣이든 오냐 오냐 하면서 애들 하자는 대로 시키고 내버려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때로는 야단도 치고 잘못하면 매질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저는 내자식이 밖에서 까닭없이 얻어맞고 비굴하게 울고 들어 올라치면 야단도 치고 때론 쥐어박기도 합니다. 그래야만 이 험한 세상을 참고 견디면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강한 애로 자랄 것 아닙니까? 아이들은 강하게 길러야 합니다』 대충 위와 같은 내용의이야기였다. 다소는 윤색이 됐지만 큰 줄거리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하다. 요즈음 젊은이들을 보면 용맹도 없고 기백도 부족한 듯하다. 끈기도 없고 부지런함도 없다. 왜 그럴까? 우리의 학교교육뿐 아니라 가정교육·사회교육이 한결 잘 못 되어 있는 듯하다. 물론 이 이야기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이 앞서 말한 사람들의 말에 찬물을 끼얹는 말투고 함축된 의미였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자신은 하나도 「민주화」가 돼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언필칭 민주화를 구두선처럼 하는 사람에게는 가시돋친 말이 된듯도 했다. 과연 귀여운 자녀들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는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만 지나치게 익애만은 능사로 하는 부모들이 우리주변에는 적지 않은 것 같다. 잘먹이고 잘입히고 과잉보호나 방임만을 일삼는 부모들이 허다하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바르게 보고,선악을 판단하고,아름답게 그리고 성스럽게 살아 갈 수 있는 삶의 지혜와 능력을 길러주는 일이다. 몸과 마음이 튼튼한 것으로 자라날 수있는 생활환경과 부모의 인격적인 사랑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인격적인 사랑이 필요한 아이에게 물질적인 것으로만 충당하고 보상시키려드니 아이들의 마음은 공허해 질 수 밖에 없다. 때는 바야흐로 입시 시즌이다. 미국의 직장에서는 개인적인 이력서에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천신만고라 할까,와신상담이라 할까,한번쯤은 어려운 지경에서 자기 힘으로 벗어나고 이겨난 좀더 적극적이고 자신있고 실천력있는 젊은이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같은 젊은이들이 갖는 정신적인 건전과 육체적인 건강,그것이 밑받침 될 때 우리사회는 생명을 약동시키게 될 것이다. 행동은 뒤따르지 않으면서 말만 번지르르 늘어놓는 젊은이도 많다. 그런가 하면 다수의 힘만 믿고 헛가락만 부리는 젊은이도 없지 않다. 얼핏 보기에는 그들이 매우 강한듯도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를데없는 나약한 사람이기 일쑤이다. 얼핏 보기에는 범죄와 비행으로 얼룩진 사회를 보고 이대로 세상 끝장나는 것이 아니냐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러나그보다는,올림픽 이후 젊은이들의 기백이 위축되고 사회전체의 분위기가 퇴영과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이 현실이 어찌보면 더 안타깝고 불안한 징조인듯 싶어진다.
  • 외언내언

    예날 시골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올 때에는 노자로 쓸 피륙이나 엽전을 품고,지고 몇날 며칠을 걷거나 말을 타고 한양을 찾아와야 했다. 그러자면 서둘러 오느라고 밤길을 도와 험한 산고개도 넘고 지름길을 찾아 길 없는 길을 더듬어 와야 했다. 그럴 때면 깊은 산에 진을 치고 도적놀이를 하는 산적에게 걸려 노자를 몽땅 털리기도 하고 여우에 홀려 산속을 헤매다 골짜기로 구르기도 했다고 한다. ◆옛날 이야기에나 나오는 이런 불상사가 번화한 도시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고입 연합고사를 보러 아침길을 재촉하던 중 3 수험생이 길에서 강도를 만나 실신하도록 얻어 맞고 시험도 못 쳤다. 겨우 15살짜리의 가진 돈이 1천원뿐인 소년에게서 돈을 뺏고도 모자라 실신시켜 시험보러도 못 가게 하는 이런 인종지말 같은 폭력이 언제까지 들끊을 것인지… ▲길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고사장인 교실에까지 10대 폭력배들이 쳐들어와 수험생을 패고 다음 시간에 또와서 협박을 했다고 한다. 그러는데도 학교측은 무얼하고 어른들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인솔교사·감독교사 주변 단속하는 관할 경찰이 얼마든지 있을 터인데 이것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젊은이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것에 어른들이 숫제 겁을 먹는 분위기다. 슬슬 피하고,쉬쉬 쓸어덮고,모르는 척 외면하고…. 어른들의 이런 소극적이고 비겁한 행위가 못된 아이들을 더욱 조장하고 있다. 걸핏하면 교육제도나 욕하고 공권력 핑계나 대며 모든 기성체제에 손톱자국을 내는 일에는 용감하면서 아이들 따끔히 나무라고,날뛰는 아이들 다부지게 붙잡아 혼찌검을 내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모든 폭력배 범법자들이 기고만장이다. 시교위라는 데서는 그걸 「쉬쉬」했다고 한다. 용렬한 짓이다. 모든 어른들의 이런 무책임한 미망이 아이들을 모두 망치고 있다. 대입고사날도 멀지 않았는데 새로운 걱정거리가 늘어 초초한 수험생을 더 불안하게 하고 있다.
  • 사립대“내년등록금15∼20%인상”/경인지역32개대 기획실장협 합의

    ◎올보다 17만∼38만원선 올라/학생들,“한자리수” 주장… 마찰 빚을듯 경인지역 32개 사립대 기획실처장협의회(회장 이재창·고려대 기획처장)는 21일 내년도 등록금을 15∼20%쯤 올리기로 합의했다. 각 계열간의 등록금 차이는 올해처럼 인문·사회계를 1로 볼때 이학·체육 1.16,공학·예능 1.32,약학 1.34,치·의학 1.83의 비율을 적용키로 했다. 협의회의 이같은 결정은 지방 사립대의 등록금 책정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새해 등록금의 인상폭이 이같이 조정될 경우 한해 등록금은 인문·사회계가 1백53만∼1백66만8천원,이학·체육 1백78만∼1백86만원,공학·예능 1백87만∼1백95만원,약학 1백76만∼2백4만원,의·치학은 2백18만∼2백28만원으로 올해보다 17만∼38만원정도 오르게 된다. 사립대측이 이같이 등록금의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학생들은 신입생과 재학생의 등록금을 올해 수준에서 동결하거나 한자리수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새해 등록금의 최종 인상률은 국립대가 중·고교의 등록금 인상폭인 9% 내외를 인상할 예정인 점 등을 감안하면 올해와 마찬가지로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사립대측이 올해와는 달리 공동보조를 취하는 등 학생들과의 조정에서 훨씬 완강한 자세를 보이고 있어 등록금문제로 인한 학내분규가 예년보다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협의회는 이에대해 『각 대학의 낙후된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20∼40%선의 인상이 불가피하나 대폭 인상에 따른 문제점을 우려,축소 조정했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내년도 등록금의 자연 인상요인으로 ▲물가인상에 따른 4% ▲국립대 교직원의 봉급인상에 맞춘 교원봉급 인상폭 7.6% ▲지난해 대부분 대학들의 등록금 동결에 따른 보전액과 여건개선비 4% 등 모두 15.6% 등을 들었다.
  • 대학 주점가도 과소비 바람/양주ㆍ맥주등 고급술집 흥청

    ◎막걸리ㆍ소주집은 폐업 속출/과외ㆍ아르바이트로 용돈 여유… 술값 수표 결제도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향락을 앞세운 과소비풍조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한 가운데 지성의 상징인 대학가에도 이같은 풍조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대학가 과소비풍조가 특히 두드러진 곳은 대학주변 주점가로 막걸리나 소주 등 값싼 술을 팔던 주점들이 장사가 안돼 문을 닫는 대신 맥주나 양주 등을 파는 고급 술집들이 부쩍 늘어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관악구 신림9동 서울대앞쪽 「녹두거리」는 3∼4년전까지만 해도 「선비촌」 「갑산집」 등 실비주점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2∼3년전부터 하나 둘씩 카페가 등장하기 시작,지금은 2백여m 남짓 사이를 두고 무려 40여개의 카페ㆍ레스토랑ㆍ맥주집이 들어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동숭동 대학로 이웃 명륜동 성균관대 앞에도 골목마다 막걸리집을 밀어내고 카페 레스토랑 등 고급술집이 들어섰다.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이 몰려 있는 신촌일대도 마찬가지로 연세대앞 골목을 메웠던 막걸리ㆍ소주집들은자취를 감추고 카페와 레스토랑 천지가 됐다. 이처럼 대학가 주변의 고급술집들이 성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과소비ㆍ향락문화가 대학사회에까지 스며든데다 과외활동이 양성화되면서 「여유자금」이 풍족해진 대학생들의 소비패턴이 고급화ㆍ사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사회학연구실습팀이 최근 실시한 「서울대생들의 의식과 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59.2%가 부직활동을 하고있고 이 가운데 97.5%의 학생들이 과외교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개업한 신림동 J카페 종업원 박모씨(21ㆍ여)는 『손님의 대부분이 대학생들이며 최근들어 이들이 수표로 술값을 내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 「범죄와의 전쟁」 이기는 길을 찾는다(질서있는 사회로:5)

    ◎전문가 대담/“행동철학이 제시된 새생활운동 펴라”/“방법론 없는 즉흥 발상”호응 못얻어/도시민의 공동체의식 형성이 과제/고립된 삶이 「범죄온상」구실… 합의정신이 바탕된 질서모델 계발을 범죄와 무질서,과소비 등을 추방하기 위해 노태우 대통령이 「새질서 새생활 실천운동」을 선언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새질서 새생활운동」이 국민운동으로 확산돼 질서있고 건전한 새로운 사회를 이룩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운동의 방향과 방법 등을 두 교수의 대담으로 들어본다. ○통제가 무너진 사회 ▲김대환교수=이번 노태우 대통령이 선포한 새질서 새생활 실천운동은 새마을운동과 비견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72년 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당시만해도 일부의 비판과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잘살아보자는 국민적 합의 아래 실천적 운동으로 발전해 큰 반향을 얻었지만 지금의 시대적 상황은 그때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왜 지금 이런 운동이 제기되었는지의 문제부터 풀어가기로 합시다. ▲송복교수=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당시 농촌인구와도시인구는 반반이었지만 90년대에는 2,3차산업 인구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사회구조에 대한 새로운 진단이 필요합니다. 우리사회는 지난 10년동안 해마다 9백만명씩 모두 9천만명이 주거를 옮겨 인구의 9.7%만이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는 등 국민의 대부분이 타향살이를 하는 부동사회(Floating society)가 됐습니다. 한곳에 머무르는 기간이 평균 3년에도 못미치다 보니 이웃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고 사회통제 메커니즘이 와해돼 공중에 떠다니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김교수=그동안 정치ㆍ사회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경제적인 축적이 이루어져 개인의 생활이 풍요해 졌으나 양적 팽창에 상응하는 질적 변화가 이어지지 못한데 따른 정신적 빈곤이 사회악의 증가와 사회질서의 파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실성과 정직성이라는 농업사회의 생활방식이 공업사회로 바뀌면서 붕괴,내부적인 파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송교수=직업구조의 개편속도도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지난 74년에는 1천5백개의 직업이 있었으나 86년에는 1만2천6백개로 늘어났습니다. 현재 한 직업에 5년이하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44%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10년 이상 종사하는 사람은 25% 정도로 지역공동체 뿐만 아니라 직업공동체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김교수=경제구조의 왜곡도 심각합니다. 제조업의 기반위에 3차산업이 형성돼야 하는데 80년대말까지만 해도 제조업이 성행,직업구조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는 상태였으나 지금은 서비스업이 지나치게 팽창했습니다. ▲송교수=그렇습니다. 경제구조면으로 보면 87년을 정점으로 제조업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의 제조업 비율이 전성기에 45%,지금도 36∼37%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37%를 고비로 현재는 31∼32%를 유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제조업이 꽃을 피운 바탕위에 서비스업이 발전했다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하기 쉽고 돈을 벌기가 쉽기 때문에 서비스업이 번창하는 경제구조 왜곡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 고소득 납세자의 3위에서 5위까지가 부동산업자이고 1백위안에 든부동산업자의 수가 지난해 보다 3배나 늘어났습니다. ○경제구조 왜곡도 심화 ▲김교수=미국사회의 경우 제조업체에서 고학력자들이 일하려 들지 않고 컴퓨터ㆍ사무관리 등 고학력인력이 필요한 직종은 수요에 한계가 있어 원하는 일터는 없고 원하지 않는 일터는 많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국민소득 5천달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의식의 세계는 일본을 앞질러야 한다는 허황된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송교수=90년대 우리의 사회인식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불로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70년대에는 제조업에 고용의 기회조차 없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기피하는 실정입니다. 15∼24세의 젊은이가 제조업에 취업한 숫자는 지난 87년 37만명이었던 것이 88년에는 34만명으로 지난해에는 20만명대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국민소득 5천달러는 세계에서 34∼35위의 수준이나 사고와 요구는 2만달러 이상입니다. 의시기의 허황됨이 큰 문제입니다. 이제 이 운동의 성공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김교수=현재의 상황과 조건,운동의 주체,방법 등을 놓고 볼 때 일단 상당히 전개가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이런 문제가 있으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다각적으로 검토해야만 합니다. 이번의 경우 어찌보면 즉흥주의와 편의주의의 인상이 짙습니다. 정부안에서 문제가 일단 제기되면 진지하게 토론하고 검토해 정보를 모아 운동의 성격과 방향이 도출되어야 하나 이번의 경우 총론만 나오고 각론이 나오지 않은 성급함이 보이고 있습니다. ▲송교수=국민들도 운동전개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아직까지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교수=그렇습니다. 「전쟁선언」이라는 표현부터 조금은 거부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과거의 행태로 볼 때 정부 각 부처 행정관료들의 특성상 성과위주ㆍ전시위주로 경쟁 비슷하게 해나가는 가운데 국민들은 『어디 해볼테면 해봐라』하는 방관적 심정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이념이 필요합니다. 새마을운동의 저변에는 토착적인 농민들의 민족주의 이념이라는 철학이 밑바닥에 흘렀습니다. 임기응변으로 운동을 전개하려 하면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없고 설득력도 호소력도 잃게 됩니다. ○자발적인 지도자 필요 ▲송교수=70년대의 새마을운동과 90년대의 새질서운동을 비교해 보면 운동의 주체가 되는 사람도 크게 변했지만 운동을 이끄는 사람의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상 새마을운동의 이론을 제공하고새마을운동의 시작과 전개,체계화에 깊이 관계하신 김교수께서 지금과 비교해 말씀해 주십시오. ▲김교수=3공화국시절 새마을운동은 시대적 요청이 있었기에 나 스스로가 일부 지식인의 빈축을 사가며 참여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학자나 지식인이 능동적으로 운동에 참여해야 성공한다는 생각에서 운동의 시발에서부터 참여한 것입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성공한 것은 지식인의 이론제공의 결과가 아닌 「운동의 리더」가 존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에는 김준씨 같은 농촌운동의 상징적 리더가 있어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뒷받침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봅니다.또 자발적인 소단위의 리더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도시의 새마을지도자들은 「지식인은 할 일이 못된다」「정부에 빌붙는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희생적이었습니다. 결국 운동의 성패는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위에 자발적인 지도자의 유무에 달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송교수=새질서운동의 이념으로 2가지를 내세우고 싶습니다. 첫째는 공동체를 재건해 도시의 이웃공동체와 직장이나 직업공동체를 확립해야 합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회는 국가의 힘으로 유지되고 가장 현명한 사회는 공동체의 건설로 저절로 유지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이 함께 살면서 심층적,직접적,전체적 인간관계,익명적이 아닌 거명적 인간관계를 형성해 공동체에 낯선사람,이방인이 없는 사회가 돼 서로가 서로를 의식치 못한 가운데 감시,견제하는 사회가 되면 도덕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비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방인들 끼리 모여 있는 사회가 범죄의 온상이 됩니다. 공동체가 재건되면 질서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입니다. ▲김교수=그러나 우리사회는 지금 너무 많이 파괴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송교수=두번째 이념은 우리사회 특유의 질서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좋은 질서모델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그것을 준거로 해서 행동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효를 바탕으로 한 가족주의 모델입니다. 효의 근본은 공경입니다.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자신을 수련했고 그 결과 어떤 사회적 지위를 얻는다는 것은 곧 사회의 발전이 되고 주위의 칭찬과 존경을 받는 것이 곧 사회통합을 이루어나갔던 것입니다. 공동체는 협동성과 정의에 기반을 두어 대립보다는 합의에 중점이 두어진 것입니다. 조선이 5백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밖에 합가치성에 기반을 둔 선비주의를 들 수 있습니다. 엘리트의 모든 행위가 이 때문에 공익적이었습니다. ▲김교수=그렇습니다. 조선시대 내내 관주도가 아닌 자발적인 구국운동이 있었습니다. ▲송교수=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가족주의가 족벌주의,이기주의,기득권주의로 모델이 거꾸로 부서져 버렸습니다. 또 공동체는 개인적인 정에 좌우되는 대립주의로 흘렀습니다. 선비주의는 목적달성에 수단방법을 안가리는,합가치성에서 합목적성으로 타락하는 등 역작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김교수=중종시대의 정치 사회적 내우외환과 선조때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광조와 율곡,퇴계 등에 의해 시작된 향약운동은 고종 말년까지 지속됐습니다. 이 운동은 향촌중심의 민간운동으로 북한이 천리마운동을 시작할 때 그 이념을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새마을 운동도 향약에 기초를 둔 이념이 있었습니다. ○국민운동으로 승화를 ▲송교수=새질서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이 복원되어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잘못을 사회에 두지 자기가정에 책임을 돌리지 않습니다.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부모상이 깨지고 쩔쩔매는 약한 아버지와 과잉서비스 과보호의 어머니가 있을 뿐입니다. 현재 강력범죄의 50% 이상이 10대가 저지르고 있습니다. ▲김교수=요즈음을 개인주의시대라고 하지만 과거의 규범인 수신제가도 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자기 중심의 도덕ㆍ윤리였습니다. 지금은 「개인적인 사회」가 아닌 「무정부사회」라고까지 할 수도 있겠습니다. 과거의 전통을 복원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송교수=공동체건설을 위해서는 지금 24%에 이르는 지역간 이동성을 10% 선으로 줄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동성이 줄어들면 마을마다 유수한 지식인들에 의해 우리마을의 질서는 우리가 지키자는 운동이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김교수=이번 운동은 정권적인 차원을 떠나서 추진되어야 합니다. 민족을 위한 운동이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부터 다시 점검을 해야 할 것입니다. 원점에서 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노력이 10년ㆍ20년 이어질 때 조금씩 조금씩 지금보다 좋은,인간적인 사회로 바꾸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운동의 목표를 오판해 정치적효과와 행정적업적을 겨냥하면 실패합니다. 국민전체가 참여하지 않는 부분적인 운동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없으며 종합적ㆍ전체적인 운동으로 이어져 지도력이 발휘되면 국민들이 적극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 파출소서 소란피운 폭행피의자/경관에 맞은뒤 절명

    ◎부검의 “사인은 급성신부전증” 【부산】 부산시 북구 엄궁동 21의29 오정숙씨(40)는 21일 아들 안준호씨(20ㆍ무직)가 집단폭행사건과 관련,경찰에 연행됐다가 경찰관에게 폭행을 당해 숨졌다고 주장,아들의 사인규명과 폭력경관을 처벌해 줄것을 호소했다. 오씨에 따르면 이날 상오0시45분쯤 폭행혐의로 부산 북부경찰서 사상파출소에 연행된 아들 안씨가 『가해자를 놔두고 피해자만 연행하느냐』고 항의하다 근무중이던 이호종순경(23)에게 발길로 가슴 등을 채어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중 상오1시쯤 숨졌다는 것이다.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안씨는 이날 상오0시쯤 사촌형제인 병준(19),명준씨(20ㆍ북구 엄궁동 산15) 등 3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중 북구 괴법동 517 앞길에서 K상사 공원 김석홍씨(33ㆍ북구 괴법동 517의20) 등 일행 11명(남자6,여자5명)과 시비끝에 이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던중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사상파출소 경찰관에 의해 김씨와 함께 연행됐다는 것이다. 안씨를 폭행한 이순경은 『안씨가 파출소에 연행된뒤 큰소리를 쳐 「조용히 하라」며 발길로 안씨의 가슴 등을 걷어 찼었다』고 폭행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한편 부산 북부경찰서는 이날하오 경찰공의 김인기 서진근씨 등 2명의 집도로 숨진 안씨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안씨가 「선천성 흉선비대체질로 인한 급성신부전증으로 심장마비사」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순경의 폭행사실은 인정돼 폭행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 포철 손비과다 계상/2백34억원 세 추징

    국세청은 회계상 손비처리되는 비용을 과다계상해 세금을 적게 낸 포항제철에 대해 법인세 등 2백34억원을 추징키로 했다. 22일 국세청에 따르면 포항제철은 작년 3월 88년도 사업분 법인세 신고시 특별수선충당금을 손비산입하면서 현행 법인세법상 손비처리가 가능한 선철제조용 용광로 및 열풍로에 대한 수선비용외에 원자재 저장시설과 운반시설에 대한 수선비까지 포함해 계상했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신고당시 이를 그대로 인정했다가 지난 6월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 최근 포항세무서를 통해 법인세 등 2백34억1천2백89만원을 추가 납부하라는 고지서를 발부했다.
  • 허남훈 환경처장관(신임장관ㆍ지사 프로필)

    ◎고시양과에 합격… 친화ㆍ설득력 뛰어나 상공부ㆍ동자부 등을 두루 거친 수재형의 정통경제관료. 고등고시 사법ㆍ행정 양과에 합격한 실력파로 동자부 자원정책실장 재직시에는 유류 파동에 효율적으로 대처,원유확보정책 수립에 기여. 선비같은 풍모와 함께 과묵할 정도로 말수가 적고 더듬거리는 듯한 말투가 오히려 호감을 준다. 그러나 일단 입을 열면 상대방을 설득하는 힘이 강하며 친화력도 뛰어나다. 상공부차관에서 대전엑스포사무총장으로 자리를 바꿔 일하면서 대전엑스포를 국제공인받게 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부인 민병애여사와의 사이에 2남1녀.
  • 「명기 홍도」의 전말을 보며…/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느닷없이 기생 「홍도」의 묘비가 화제를 만들었다. 30년대 신파극의 대표적인 히로인 홍도가 실은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원래 그런 이름의 명기가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극중 주인공이라는 식의 화제였다. 찬찬히 따져보면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좀 우습다. 어차피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하는 홍도는 화류계 출신이고 화류계에 진출하려면 옛날 기생이름을 따는게 관례처럼 되어 있었으니,변사또의 수청기생 점고만 귀여겨 들어도 찾아질 수 있는 홍도를 작가는 주인공이름으로 채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조선시대의 기생 홍도가 그 모델이기라도 한 것처럼 연결하는 일은 턱도 없는 짓이다. 이치가 이렇게 명료한데도 미디어마다 이 뉴스를 상당한 크기의 지면을 별러가며 소개하고 있다. 제목도 「조선기생 홍도는 실존인물」식으로 붙여서 사진 곁들여 큼직큼직하게 소개했다. 왜 그랬을까. 「홍도」에 대한 관심이 왜 그리 높은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새로 발견한 「명기」의 존재와 행적때문이었던 것 같다. 「명기」라는 말에는 호방한 남성문화가 조소되어 있다. 요즘처럼 왜소해지고 위축된 시대의 남성들에게는 아득한 전설처럼 들릴 그런 문화다. 새로 발견되었다는 「홍도의 묘비」는 남성들의 마음속 낡은 창고속에 먼지를 쓰고 망각되어가던 어떤 정서를 들춰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잡초가 무성히 자라 돌보는 이 없어보이는 스산한 무덤앞에 중둥머리께가 딱 잘린 채 서 있는 비석과 묘는 이상하게 누구의 눈길이나 끌게하는 데가 있기는 하다. 특히 당대의 지방 문장가와 풍류객들이 비문을 쓰고 모금을 해서 세웠다는 비석은 흥미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어떤 풍류객들이었을까. 문득 떠오르는 시조 한 수가 있다. 『청초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묻혔는다/잔잡아 권할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선조때 문인 임제의 시조다. 뛰어난 문장가요 기개있는 선비였던 그가 천하 명기 황진이의 무덤앞에서 읊은 시조다. 벼슬자리에 부임하러 가던 길에 이 시조를 써서 읊은 그는 신성하게 이도에 임해야 국록받는 선비가 한낱 천기 무덤앞에서 함부로 문장을 농했다고 해서 이후에 불이익을 당했다는 일화가 따른다. 유난히 규율과 규범이 엄격했던 것이 선비들의 삶인데 비명에 당당히 이름을 새겨넣어가며 기생을 찬양해놓은 이 홍도의 비는 꽤 흥미롭다. 더구나 이 비석은 사진으로 보아서는 허리께가 딱 잘려졌음을 보여준다. 더러 금이 가는 수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딱 잘린 것은 아무래도 누군가가 심술삼아 잘랐던 것같아 보인다. 풍류로만 떠도는 지아비를 둔 어느 양반집 내당여인이 누군가를 시켜 잘라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하는 몰골이다.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께서는 딸들을 나무랄때 입버릇처럼 기생을 들먹이셨었다. 『기생이냐,버선을 지루신게?』 『상스럽게 반절을 하면 못쓴다. 기생이나 그런 절을 하느니라』 『망측스럽게 치마를 외루 입었구나. 기생이나 그렇게 입는 법이니라』 조선시대 기생은 백정ㆍ장인ㆍ중과 함께 낮은 신분에 속했었다. 관에 기적이 매어 있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종과 진배없는 신분이었다. 그렇게 낮은 신분이면 양반집 내당마님들은 경멸만 하면 그만이었을터인데 사사건건 빗대어가면서 기생을 들먹여 빈정거리는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보면 기생이라는 존재가 사대부가의 아낙들에게 끼쳤던 심리적 갈등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천하의 영웅 호걸이라도 눈이 멀어 녹아나는 것은 「기생첩」이었다. 「권련의 마지막 한대」를 아낀다는 뜻으로 『기생첩도 안준다』는 말도 있다. 남성들이 애지중지할 수 있는 상징의 집약이 「기생」이었을 터인즉,임금의 장인께 사랑받으며 만고의 호강을 다했을 기생 홍도가 자유로운 새가 되어 낙향을 즐기는 모습은 규방깊숙이 갇혀 사는 내당마님들에게는 눈허리가 시었을 게 뻔하다. 게다가 아무리 명문가의 며느리가 되어도 죽은 뒤에 아녀자의 무덤앞에 묘석같은 기념비가 세워질 수는 없다. 더구나 글을 읊는 호걸 한량들이 문장을 지어 바치는 명예로운 대접은 받지 못한다. 홍도 묘비의 허리를 자르고 싶은 심경을 가진 양반가의 「부인」들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경주시 도지동 야산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기생 홍도의 잡초무성한 무덤과 비석이 화려하게 화제를 뿌리게 된 까닭은,웬만하면 남성이 영웅호걸이 될 수 있었던 옛날에 대한 향수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서양의 기사도가 아름다운 숙녀에 대한 존경을 척도로 했듯이 동양의 영웅을 구성하는 조건도 미색에 있었다. 그 미색은 법도나 가문에 의해 정해지는 「부인」으로 대체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홍도는 「살롱」 문화의 여주인처럼 풍류객들의 「대모」노릇도 했던 모양이다. 이를테면 경주가 낳은 「조르주 상드」쯤 된다. 그런 여인을 향해 찬사를 바치고 비명을 지어줄 수 있었던 당대의 남성들에게 오늘의 남성이 선망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10여년전 일본에서는 이제는 고인이 된 전직 수상이었던 거물급 정치인이 자신의 소첩이던 여인의 죽음을 맞아 영정을 들고 장례식에 참례하여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그런 그를 가리켜 「최후의 명치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아닌게 아니라 마돈나선풍을 일으키며 새 수상감이 나오는 족족 「스캔들」 방망이를 휘두르는 일본여성들의 힘을 보며 「최후의 명치인」이라는 말의 탁월한 지적을 다시 음미하게 되었었다. 천한 신분의 기생들 사이에서 원석하나를 찾아내어 「명기」로 탁마해 놓고 호방하게 천하를 논하던 조선시대의 사대부를 추념하노라면 우리 남성들은 오늘의 자신들이 좀 작아진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홍도전말」이 그런것이었던듯 여겨진다. 시대는 한참 변했고 남성들에 의해 「히로인」이 만들어지던 시대도 이제는 가버린 것 같다. 아무리 아쉬워하고 쓸쓸해 해도 변하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안됐지만 그것이 오늘이다.
  • 소나무등 많이 심어 생태계 보존해야

    ◎「남산 제모습찾기」 계획 전문가 견해/「콘크리트」 아닌 조상의 얼ㆍ숨결 담기도록/방사동물은 환경적응력 강한 것 골라야/자연훼손 없게 시설물 설치는 엄격히 제한하길 서울시의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계획이 발표되자 대부분 시민은 물론 각계 전문가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이와함께 이들은 이번 계획이 종전처럼 전시행정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사업이 완료되면 서울이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진 세계적 도시가 돼 서울시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게 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건축ㆍ민속ㆍ동식물ㆍ조경분야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는다. ▲이상연씨(건축가)=이번 계획을 전폭적으로 환영한다. 외인아파트와 하이아트호텔 등은 건설 당시부터 문제가 되었다. 당시 김수근씨를 비롯한 건축가들은 이를 강력히 반대하며 도심의 세운상가와 남산을 연계하여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들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건축가들의 능력은 정부와 재벌의 이익위주 부동산가치 개념을 깨뜨리지 못했고 남산은 계속 망가졌던 것이다. 이번 계획은 남산 하나만으로서가 아니라 북으로는 북한산,남으로는 용산 미군기지의 공원화계획및 한강까지,그리고 도심부까지 연계한 구상으로 검토되어 서울이라는 도시의 성격을 분명히 해줘야 할 것이다. 국가태평성대를 보장하는 명산인 북악과 남산이 획일적으로 사대사상과 재벌의 이익수단에 끌려다닌 행정편의적 도시계획등을 과감히 탈피,새롭게 태어나길 기대한다. ▲오창영씨(전 서울대공원 동물부장)=남산의 동물 방사및 식물서식계획은 해방이후 지금까지 몇차례 시도돼왔으나 모두 흐지부지됐다. 특히 동물 방사계획은 최근 서울의 대기오염도가 국제기준치를 웃돌고 있는 데다 수질도 상당히 오염됐기 때문에 환경처ㆍ산림청ㆍ서울시 등 관계부처가 이같은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동물을 선택해야 한다. 산토끼의 경우 동물공원에서조차 방사가 어려울 정도로 성질이 예민하다. 런던시내의 공원에 놓아 기르고 있는 다람쥐ㆍ비둘기 등 동물은 상당한 기간동안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단계적인 절차를 거쳤다.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는 야생짐승들의 습성과 생활방식은 물론 종족보존기능조차 상실케 하는 수도 있다. 식물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연구가 필요하다. ▲윤국병(고려대교수ㆍ조경학)=남산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한다니 매우 기쁘다. 몇십년간 훼손된 자연을 회복시키는 일이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므로 세부계획을 철저히 세워 차질없이 추진해야 할 것이다. 소나무ㆍ참나무 등은 될수록 많이 심어 남산 본래 이미지를 살려야 한다. 지금까지의 남산 가꾸기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자연을 훼손시킨 경과에 비춰 시설물 설치는 엄격히 제한하고 산책로도 생태계 보존차원에서 최소한도로 줄여야 할 것이다. ▲신영훈씨(문화재관리국 비상근전문위원)=남산은 예로부터 가난한 선비들이 모여 산 남촌골로 불리며 행세깨나 하며 살던 가회동쪽 북촌골과 대비를 이뤘다. 이 때문에 청렴결백한 선비를 이르는 「딸깍발이」라는 유명한 말도 생겨났으며 소설 「허생전」에는 남산골의 모습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이같은 남산이 제모습을 찾게 된다니 기쁘기 그지 없다. 그러나 남산골은 용인 민속촌에서 보듯콘크리트가 내재된 인위적 전통마을로 재현될 것이 아니라 조상의 얼과 숨결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상세한 고증과 1천만 서울시민의 정성을 함께 담아 장기적 안목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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