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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왜 그리고’ 펴낸 철학인생 50년 박이문 교수

    ‘나는 왜 그리고’ 펴낸 철학인생 50년 박이문 교수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으십니까.” 대뜸 물어본 질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노학자는 아직도 계속 책을 내고 있다. 쏟아낸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것도 공부하는 분야가 속된 말로 ‘잘 안 팔린다.’는 철학인데도. 일흔여섯이 적지 않은 나이라고는 하지만, 대학강단에 선 지 50여년 만에 써낸 책이 대략 헤아려도 50여권이다. 한해에 1권꼴이다. 여기다 한권을 더 얹었다.‘나는 왜 그리고 어떻게 철학을 했나.’(삼인 펴냄)이다. 그렇게 많은 말을 했는데도, 마치 “아∼ 이제야 뭔가 알고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바로 원로 철학자 박이문 선생이다. 이제 연세대에 출강하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이 없다. 호젓하니 책만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단다. 안 움직이고 책만 보니 편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노안 때문에 안경도 모자라 돋보기까지 동원해야 할 판이니 독서는 중노동일 터이다. 그럼에도 책을 보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고 즐겁단다. 요즘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묻자 ‘통섭’이나 ‘현대 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처럼 인문학적 주제에 대해 생물학자나 물리학자들이 쓴 책들 제목이 줄줄줄 이어진다. 이런 책을 고른 이유는 내후년쯤 책 한권 더 낼 생각이어서다.“‘지(知)’란 무엇인지,‘존재’란 무엇인지,‘선악’은 무엇인지, 이런 개념들에 대해 제 나름대로 생각했었던 것을 정리해볼 참입니다.” 50여년에 걸친 지적 여정의 총결산인 셈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과외 안하고 학교수업에만 충실했다는 수석합격생의 모범답안 같다. 그러나 박이문 선생은 차원이 다르다. 그가 걸어온 ‘삶’ 자체가 증거다. 그리 궁핍하지 않던 선비 집안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일본 유학생이던 큰형 덕에 일찍 문학과 철학에 눈떴다. 중학생 때 목표가 이미 사상가였다. 그 뒤 단 한번도 다른 길을 쳐다본 적 없다. 불문과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장도 버리고 철학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미국으로 떠돈 생활도 그렇게 시작됐다. 철학하는 데 짐이 될까봐 결혼도 안하다 쉰셋에야 가정을 꾸렸다. 운전에도 취미가 없어 일산에서 인터뷰가 있던 서울까지 버스 타고 왔다. 취미는 오직 공부였다. 오죽했으면 2000년에 낸 책 제목이 ‘나의 출가’였겠나.“지금 생각하면 얼른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게 최고인데, 그 땐 왜 그렇게 결연했는지 몰라. 허허허….” 그런 만큼 그의 책은 특징이 뚜렷하다.‘나는,’이라는 주어를 절대 생략하지 않는다. 똑 부러지게 ‘내 생각은 이렇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어렵거나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금세 무너뜨린다. 자기 생각을 적다보니 개념이나 문헌자료가 줄줄 나열되는 다른 책과 다르다. 그래서 초판만 나가도 다행이라는 인문서 가운데 반응이 제법 좋다.“제 생각을 얘기하니까 읽으시는 분들도 편안하다, 진실되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의 이름을 널리 떨쳤던 1980년작 ‘노장사상’도 마찬가지다.“서양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죠. 그런데 학교에서 강의하라고 해 어쩔 수 없이 들여다봤는데, 한 10여년 강의하니까 요게 재미가 있더란 말씀이죠. 그래서 10여년 동안 강의 준비했던 자료를 참고 삼아 두세달 만에 쓴 책이에요.” 이 책은 14쇄를 넘기다 최근 재개정판까지 냈다. 지난해에 낸 ‘논어의 논리’도 그렇게 나온 책이다. 후학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자, 손을 계속 내젓더니 한마디를 남긴다.“자주적으로 학문하세요. 국수주의나 민족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라, 외국 사상과 문물을 받아들이더라도 내가 이해한 만큼, 또 소화한 만큼만 얘기를 하세요.‘유행’이나 ‘거품’에 휩쓸리면 절대 안됩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전남도 ‘중매쟁이’ 나섰다

    행정기관이 민간인과 손잡고 농·어촌 총각 중매쟁이로 나섰다. 전남도는 18일 “‘행복한 농어촌 가정 만들기’의 하나로 총각 결혼 시키기를 적극 주선한다.”고 말했다. 도내 30세 이상 미혼 남성은 4412명이고 이 가운데 40세 이상이 1544명이다. 지난해 결혼한 전남지역 농·어촌 총각 1088명 가운데 428명(39%)이 중국·베트남·필리핀 등 외국여성과 결혼했다. 그러나 전남도는 국제 결혼보다는 국내 결혼에 중점을 두고 민·관합동지원단을 구성했다. 예산은 5000만원을 책정, 새마을회, 자원봉사단체, 여성단체, 종교계, 재경 향우회 등과 손을 잡고 ‘선남선녀 만남의 장’을 연다. 결혼이 이뤄지면 도의 역점사업인 한옥마을 우선 입주를 비롯, 자녀 양육비와 생활환경 개선비 등을 지원한다.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4)전북 장수군 천천면 신기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4)전북 장수군 천천면 신기마을

    백두대간 큰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호남정맥. 새로운 줄기가 시작되고 금강과 섬진강이 발원하는 전라북도 장수는 물길이 길다 하여 예부터 장수(長水)라 부른다. 금강 상류지역은 물줄기 굽이굽이 흐르는 곳마다 조그만 마을들이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다. 무주와 장수 그리고 진안 세 군(郡)의 접경 물굽이에 자리잡은 신기마을은 언뜻 보면 여느 오지 마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곳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서당이다. 상투를 틀고 도포 입은 선비가 살고 있다. 마을의 유일한(?) 교육기관인 명륜학당 훈장 김대중(55)씨. 김씨는 원래 지리산 청학동 사람이었다. 지난 1989년 청학동에서 이주해 올 당시 이곳은 전국 각지에서 심신단련을 위한 수행자들이 유난히 많이 몰려들었다. 그런 이유로 지리산 청학동 ‘도사’들이 이주해 와 살고 있는 마을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리산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후 아이까지 낳고 생활했던 그가 이곳에 들어와 서당을 연 이유는 따로 있다. “청학동이 옛 문헌에 나와 있는 전설적인 마을로 알고 방송국에서 취재를 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온통 마을이 뒤죽박죽된 거야. 소 키우던 움막이 외지 사람들 숙소로 변하고, 욕심 없이 살던 사람들도 돈 맛을 알게 됐지, 농사도 잘 짓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급기야는 서로 의견 충돌로 싸움질이고…. 그래서 나오기로 결심했어요.” 99년에 지었다는 ‘명륜학당(明倫學堂)’. 서당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교와 동양사상을 가르친다. 사서삼경을 바탕으로 한 충효(忠孝)와 예(禮)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상범(17)이는 작년 여름방학 때 2주교육을 받고는 겨울방학 때 다시 들어와 눌러앉았다. “집에 가고 싶을 때가 더 많죠. 하지만 공부를 마칠 때까지는 여기 있기로 엄마와 약속했어요. 여기는 놀 것이 없어 공부만 해요.” 상범이는 이따금 밭일도 거들고 사슴에게 풀도 뜯어주면서 외로움을 달랜단다. 방학이 되면 ‘버릇 없는’ 아이들이 부모 손에 억지로 이끌려서 찾아오지만, 간혹 색다른 가치를 찾기 위해 오는 학생들도 있다.“단기간에 예절과 인성교육을 시키기 위해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들이 많지만, 쉽게 이뤄지지 않지요. 평소 부모부터 솔선해서 부부간, 가족간의 예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기마을도 다른 오지처럼 생활이 강퍅하기는 마찬가지. 농사 소득만으로 먹고 살 수 없어 날품일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이웃간에 홀로 된 노인들을 돌봐주며 욕심 없이 사는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는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만큼이나 아름답고 마을을 풍요롭게 만든다. 이웃 월곡마을 교회 이경재(60) 목사는 또래의 노인들로 구성된 가사 도우미들과 함께 신기마을 이서운(81) 할머니집에서 봉사활동을 한다.“혼자 사는 노인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텃밭을 일구기는커녕 밥도 지어 드시지 못하는 노인들도 많지요. 한 달에 두 번 정도 방문해 밑반찬을 만들어주고 청소도 해주고 텃밭도 가꾸어줍니다.” 마을 어귀 비닐하우스에서 담뱃잎을 말리기 위해 잎을 엮고 있던 유근오(39)씨는 옆에서 돕는 아내를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단다. 지난 겨울 식을 올린 베트남 출신 아내의 정성스러운 시부모 수발이 고마워서다. 천사 같은 아내 덕에 일이 조금도 힘들지 않다. 한여름 따가운 햇살에 논 아지랑이가 피어 오른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을 가르치는 도시의 학원숲 속에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팍팍한 모습이 어지러운 아지랑이 속에서 피어오르다 스러진다. 사진 글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회색도시 떠나 내 마음속으로의 여행

    회색도시 떠나 내 마음속으로의 여행

    산사에 가면 특별함이 있다. 번잡한 도시의 일상을 떠나 느끼는 자유로움에다 깊은 산속의 고요함이, 둥둥 떠다니며 방황하던 ‘자아’와 마주보게 한다. 혼자라도 좋고, 가족과 함께라도 좋다. 아이들을 위한 불교 학교도 있고, 외국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템플스테이가 점점 전문화되면서 참선과 명상 외에도 차 만들기, 선무도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대자연을 품고 있는 산속 사찰에서 며칠만 머물러도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 것이다. 올 여름 참선의 삼매에 빠져 보자. 조계종 산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사업팀(02-732-9925,www.templestay.com)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템플스테이를 찾을 수 있다. 글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사진 한국불교문화사업단 (61) 전북 부안 내소사 마음의 때를 벗겨, 무명(無明·어리석음)을 밝히는 일이 이리도 힘들까. 출가한 스님처럼 평생도 아니고, 단 며칠에 불과한데 새벽잠 설치고 예불 드리는 것부터가 만만찮다. 그래도 어렵사리 일어나 천년 고찰 내소사의 법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쏟아질 듯 총총히 박혀 있는 새벽별들, 이른 아침 전나무 숲에서의 감동, 울력과 아침공양을 마친 뒤 차탁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시며 스님과 나누는 정겨운 대화, 전통다도 강좌, 청련암으로 향하는 길의 고즈넉함…. 내소사에서는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어거지 공부처럼 느껴지지 않고 몸에 착 달라 붙어 마음의 거울을 닦아준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산사에서의 하루 하루가 즐거워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대웅보전은 물론 정교하게 연꽃과 국화꽃이 수놓인 나무 꽃 창살을 매일 만날 수 있는 것은 이곳 템플스테이만이 주는 선물이다.(063)583-3035,www.naesosa.org (62) ‘철새탐조’ 특화 충남서산 부석사 부석사가 위치한 천수만 일대 서산 간척지가 각종 철새들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보니 이를 활용한 프로그램이 단연 돋보인다. 새벽 예불, 아침 발우공양후 이뤄지는 ‘철새 탐조’가 바로 그것. 장다리물떼새가 논에서 하얀 날갯짓을 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황토방 10개가 있어 가족들과 머물기에는 더없이 좋다.(041)662-3824,www.pusoksa.org (63) 저승 체험속 지혜를… 전남 보성 대원사 죽음의 지혜를 가르치며, 죽음을 준비하는 도량이다. 직접 관에 누워 보는 저승체험도 하고 유서도 써 본다. 자신이 죽었다는 가상 아래 지장보살을 찾는 기도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다. 또 자신이 지은 죄의 중압감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생명의 귀중함을 새삼 깨달아 올바른 삶의 방향을 갖게 한다. 전통 무예 수벽치기 수련도 있다.(061)852-1755. (64) 동굴법당 인기, 경북 경주 골굴사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으로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나한굴 등 여러 동굴법당이 있다. 신라화랑들의 수련장이던 명성을 이어 받아 전통 무예와 불교의 참선을 결합한 선무도 수련체험이 특징.‘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경내에서 외국어 통용이 가능해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054)744-1689,www.golgulsa.com (65) “월인석보 탁본해보자” 충남 공주 갑사 계룡산 숲길의 산림욕 시간과 불교 무술을 직접 배우는 시간은 몸을 건강하게 하는 웰빙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있다. 특히 도예 만들기 프로그램도 미리 신청하면 가능하다. 또 갑사만의 자랑인 월인석보 판목(보물제 582호)을 탁본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가족들을 위한 전용 숙소도 있어 가족 템플스테이 장소로 적합하다.(041)857-8981,www.tibetmuseum.org (66) 전남 해남 대흥사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僧軍)의 총본영이 있던 곳이자 차의 성지이다. 두륜산 숲길 산책과 차로 유명한 일지암 등 암자를 순례하는 일정이 마련돼 있다. 두륜산에 많은 차밭이 있어 직접 차를 따서 덖어 보는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참선에 관심이 있다면 별도의 참선수련회에 참가하면 된다.(061)535-5775,www.daeheungsa.com (67) 각종 프로그램 완비, 강원 오대산 월정사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이 머무는 이곳의 템플스테이는 하늘을 덮는 전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가족수련회, 어린이들을 위한 불교학교, 단기출가, 주말수련회, 여름수련회, 산사의 하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피부병을 얻어 고생하다가 불교에 귀의해 병을 고쳤다는 상원사가 인근에 있다. (033)332-6664, www.woljeongsa.org (68) 참선 중심 수행, 전남 순천 송광사 목사와 신부 등 타 종교 성직자들도 찾을 정도로 여름 수련회의 명성이 자자하다. 이곳 템플스테이는 이색 체험을 내세우는 다른 사찰과 달리 참선 위주의 수행 방식을 고수한다. 송광사의 큰 스님들이 직접 나서는 불교 교리와 경전 강의도 들어 볼 만하다. 어린이 불교학교도 있다. (061)755-0107,www.songgangsa.org (69) 최고 목조건물 극락전, 경북 안동 봉정사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하고,‘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등의 영화 촬영지가 될 정도로 아름다운 사찰이다.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국보 제15호인 극락전도 볼 수 있다. 새벽예불과 108배, 영산암에서의 참선, 저녁예불과 다도 그리고 창건과 관계가 깊은 천등굴 산행 등 알찬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054)853-4181,www.bongjeongsa.org (70) 무릉계곡 비경, 강원 동해 삼화사 백두대간 두타산 무릉계곡의 아름다운 비경 속에 자리한 삼화사 지척에는 푸른 동해바다가 펼쳐져 있어 사찰에 머물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대자연속에서 이뤄지는 범종치기 체험, 참선, 스님과의 대화는 물론 이른 아침 일출보기, 산행 명상은 세속을 떠나 마음을 가라 앉히는 프로그램들이다. (033)534-7676,www.samhwasa.or.kr ■ 팜스테이&전통 체험마을 강릉 선교장, 아산 외암마을 등 전통체험마을을 거닐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조선시대 생활상을 느끼며 현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다. 낮에는 감자를 캐거나 고기를 잡고,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잠들 수 있는 팜스테이. 전국의 250여개의 팜스테이 마을에서 오붓하게 가족끼리 색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다.‘팜스테이´(02-2080-5588,www.farmstay.co.kr)에 지역별, 체험별로 자세하게 정리가 돼 있다. 자녀들과 함께 역사 기행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강릉 선교장과 아산 외암마을 등 전통체험 마을에 가면 조선시대 생활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글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사진 농협, 문화재청 (71)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선교장 명품 가방, 명품 옷과 같은 명품의 홍수시대에 이 고즈넉한 고택 선교장을 둘러보면 그야말로 ‘명품 집’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세종의 형 효령대군 11대 손인 이내번에 의해 처음 지어졌다.10대에 걸쳐 300년이 흐르도록 집의 형태와 기운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낸다.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가옥인 이 선교장은 독특한 아름다움과 웅장함으로 민간 소유의 고택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1965년 국가지정 문화재가 됐다는 안내인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안채 주옥을 시작으로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외에도 큰대문을 비롯한 12대문이 그대로 있어 대장원을 연상케 한다. 고택 곳곳에서 이씨 가문의 인품과 향기가 절로 느껴진다. 사람의 손으로 이리도 예쁘게, 그러면서도 위엄을 갖춘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싶다. 여름이지만 따뜻하게 군불 땐, 문간의 행랑채에서라도 하룻밤 묵고 가고픈 마음이다. 이는 다 후손들이 지금까지 거주하며 전통의 고택을 ‘과거’가 아닌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현재’의 집으로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진 이 집은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또 하나의 자연이 됐다. 강릉 경포대 호수 가까이 자리잡은 명당 선교장 뒤로는 몇 백년 된 소나무가 우거져 있고, 앞으로는 큰 연못에 연꽃이 활짝 피어 있다. 아마도 이 연못의 정자‘활래정’에서 이 집 주인들은 경포 호수의 경관을 보며 시 한 수를 읊었으리라.(033)648-5303,www.knsgj.net (72) 소금 만들기 체험, 태안 볏가리 마을 “아, 참 신기하네. 어떻게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 수 있을까?” 충남 태안반도를 끼고 있는 바닷가 마을 태안 볏가리 마을에서 염전 체험을 하는 아이들의 탄성이 바다에 울려 퍼진다. 바둑판 같은 염전에 놓여진 바닷물이 태양 아래서 염도 2도에서 27∼28도로 올라가자 하얀 소금이 만들어진다. 아이들의 손에 직접 채취한 하얀 소금이 햇볕을 받아 반짝인다. 염전에 물을 퍼올리는 수차와 용두레 등을 돌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5000원만 내면 해설을 해주는 가이드와 함께 1시간 남짓 체험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다 보니 벌써 이달중 염전체험의 예약이 끝난 것이 못내 아쉽다. 갯벌에서는 돌게잡이 등 생태학습을 하고 포도 따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인근에 마애삼존볼과 꽃지해수욕장이 있다. 마을의 명칭은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세웠던 볏가리대에서 유래됐다. 숙박비 4만원. 한원석 001-9635-9356, www.byutgari.com (73) 계단식 다랑논 풍경 독특, 남해 다랭이 마을 바닷가에 인접한 농촌마을 경남 남해 다랭이 마을은 바닷가 절벽을 깎아 계단식의 작은 다랑논의 독특한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 곳이다. 손그물 고기잡기, 떼배타기, 바다 래프팅, 문어잡이 등 다른 농촌마을과 차별화된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점. 숙박비 1만원.(055)862-4511,www.darangyi.gozvil.org (74) 조선시대 생활상 생생…아산 외암마을 지난 2000년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된 민속마을이다. 이십여 채의 기와집과 삼십여 채의 초가집이 고루 뒤섞여 있어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마을 곳곳에 조선시대 생활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물레방아, 연자방아, 디딜방아는 물론 참판댁, 참봉댁 등 양반가옥과 초가집이 원형 그대로다.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가장 유명한 집은 영암댁이란 이름이 붙여진 180년쯤 된 기와집. 거북, 두꺼비와 같은 십장생 형상의 정원석과 반달 모양의 연못 등으로 꾸며진 정원이 유명하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부인이 이 집안 사람이었기에 영암댁의 현판 등의 글씨는 대개가 추사의 것이다. 농촌과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041-541-0848,www.oeammaul.co.kr (75) 15세기 골기와집 옹기종기…경주 양동마을 고색 창연한 골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양동마을은 15∼16세기에 형성된 전형적인 민속마을이다. 마을 가옥의 대부분이 문화재인데도 그것도 모자라 마을 전체를 다시 중요 민속자료로 다시 한번 지정할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월선 손씨의 종가 서백당과 중종이 회재 이언적 선생의 모친 병간호를 배려해 지어 준 향단, 성종과 중종 양대에 걸쳐 벼슬을 한 우재 손중돈 선생의 관가정 등은 조선시대 대저택을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 길을 걸으면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해 재밌다.(054)762-4541,www.yangdongsarang.com (76) 조선시대서 시간이 멈춘 곳, 영주 선비촌 경북 영주의 고택 열두 채를 원형대로 재현, 조선시대 양반과 상민의 생활상을 두루 느낄 수 있는 전통 체험 마을이다. 살림살이 집은 물론 정자, 물레방아, 대장간, 곳간 등 76채의 건물로 저잣거리와 전통골목까지 꾸며져 있다. 이곳 열두 채의 전통 가옥에서는 실제 숙박도 가능해 하룻밤 글 읽는 선비생활을 할 수 있다.‘소수서원’‘소수박물관’과도 연결되어 있어 자녀들과 함께 역사 공부하기에 딱 좋다.(054)638-7114,www.sunbitown.com 번잡함이 싫어 여행을 떠나지만 사실 여행지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에 치이기 쉽다. 한적한 시골길, 특히 돌담길이 예쁜 곳을 찾아 떠나보자. 콘크리트 벽과 길 속에 지친 마음이 야트막한 돌담길을 걷노라면 어느샌가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다. (77) 실개천 감싼 경남 의령 산천렵마을 정겨운 농촌마을 경남 의령 산천렵 마을은 풀섶에 뒤덮인 실개천과 마을을 감싸안고 있는 찰비산, 아름다운 동굴법당의 일붕사 등이 있다. 산천렵마을이란 이름에 걸맞은 체험의 하이라이트는 미꾸라지 등의 물고기잡기. 이밖에 짚공축구나 전통사냥 도구인 덮치기를 이용해 참새를 잡는 덮치기 참새사냥, 대나무 낚시 등을 할 수 있다. 숙박 2만원.(055)572-8185.www.yedong.go2vil.org (78) 고구마 심기 체험, 인천 장봉도 인천 장봉도는 영종도에서 배로 45분거리로 인접한 신도와 시도 등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섬이다. 국사봉 등 섬안에 봉우리가 많아 장봉이라 불린다. 이곳에서는 직접 고구마 심기 등 농사체험 외에 갯벌체험이 가능하다. 백사장의 옹암해수욕장에서 아이들은 게와 조개들을 잡을 수 있다. 일과후 숙소의 푸른 풀밭에서 열리는 숯불 바비큐 파티가 일품.(032)746-8003,017-312-8003, www.nongwon.org (79) ‘팜스테이 1호’ 여주 상호리마을 놀다 보면 하루해가 짧게 느껴지는 경기 여주 상호리마을은 팜스테이 마을 1호로 지정된 곳이다. 산자락에 파묻혀 옹기종기 지붕이 보이는 전형적인 시골마을. 두부, 인절미, 손수건 천연염색, 천연향비누 등 다양한 만들기 체험뿐 아니라 금싸라기 참외, 찰토마토, 호박따기 등 다양한 농사체험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숙박비는 2만원.010-9763-0160,www.suksoo.com (80) 맑은 계곡물 압권, 강릉 해살이마을 여름 피서지로 인기 높은 강원 강릉 해살이 마을은 마을 뒷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압권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놀다가 문득 바다가 그리워지면 인근 동해안 해변으로, 산이 그리워지면 오대산 국립공원으로 달려갈 수 있다. 동네 사람들과 수리취떡 만들기와 감자 캐기를 할 수 있다. 막사발 도자기 만들기와 솟대 만들기, 짚물공예, 천연 염색도 체험할 수 있다. 숙박비는 1인당 1만원.(033)641-8251,www.haesari.go2vil.org (81) 고성 학동마을 돌담길 수백년간 대대로 만들어져 온 경남 고성 학동마을 돌담길은 수태산 줄기에서 나는 납작돌(판석두께 2∼5㎝)과 황토를 섞어 쌓았다. 이 가운데 마을 안길의 긴 돌담길은 주변 대숲과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고성군청 문화관광과 (055)670-2221. 이밖에 문화재로 등록될 정도로 예쁜 옛 돌담길 6곳을 소개한다. (82) 성주 한개마을 돌담길 경북 성주 한개마을의 돌담길은 비와 눈을 피하기 위해 기와를 담위에 얹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담은 영화 ‘춘양전´의 촬영 장소였던 한주종택이다. 성주군청 새마을과 (054)933-0021. (83) 강진 병영마을 돌담길 전남 강진 병영마을의 돌담길은 담장 중단 위쪽으로 얇은 돌을 약 15도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다음 층에는 다시 엇갈려 쌓아 일종의 빗살무늬 형식으로 담쌓기를 해 다른 지방과 구별된다. 강진군청 문화관광과 (061)430-3229. (84) 거창 황산마을 돌담길 경남 거창 황산마을의 돌담길은 나지막한 이곳 산세처럼 키가 작지만 기와를 이용해 꽃모양을 수놓아 미적 감각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느껴진다. 거창군청 문화관광과 (055)940-3183.
  • “외부재앙 막아야” “평화결실 거두자”

    “재앙은 내부에서도 오지만, 외부에서도 일어난다.” 11일 부산에 도착한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참사의 발언이다. 권 단장은 이날 조선비치호텔에 마련된 환담장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태풍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외부 재앙론’을 폈다. 권 단장의 발언은 미사일 국면에서 한·일 양국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권 단장은 “태풍피해는 남과 북이 없는 것같다.”면서 “우리가 좀 잘해서 외부에서 온 재앙을 대처할 필요가 있다. 잘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석 장관은 이에대해 “날씨처럼 정세와 상황이 어둡고 힘든데, 이럴 때 남과 북이 지혜롭게 대응하자.”면서 “평화와 안전에 대해 좋은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지난해 APEC(아태 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렸던 누리마루 하우스에서 열린 만찬에서 기자들과 만나 권 단장의 ‘외부 재앙론’에 대해 “날씨 얘기일 뿐이고 직접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지칭한 건 아니다.”고 의미를 축소했다.그는 이어 “권호웅 단장이 시종 굳어있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만찬도 북한 미사일 발사로 인한 국내외의 긴장감 때문인지 과거 회담 때보다는 한결 간소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이날 만찬사에서 양측은 모두 미사일 사태로 조성된 긴장국면을 우회적으로 표현했으며, 남북대화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장관은 “최근 조성된 상황으로 인해 지역정세가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남북관계도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어려운 상황일수록 진지한 대화를 통해 타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권호웅 단장은 “북남 쌍방은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건 이 궤도에서 절대로 탈선하지 말고 우리 민족이 선택한 6·15의 길을 끝까지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의 만찬사에서는 의례적인 미사여구가 사라졌으며 길이도 평소보다 간결했다. 총리 주최 환영 만찬은 이종석 장관 주최만찬으로 대신했다. 회담 테이블은 지난해의 원형 테이블 대신에 사각 테이블로 대체됐다. 두 단장의 얼굴도, 환담장에 배석한 양측 대표들의 얼굴도 미사일 사태로 조성된 긴장국면 탓인지 굳어있었다. 이런 모습은 “상당히 어려운 회담이 될 것”이라는 정부 고위당국자의 전망과 맥을 같이 한다. 한편 회담장에는 내신기자 130명과 주로 일본기자인 외신기자 60여명이 몰렸다. 일본기자 숫자는 과거 남북대화 때보다 이례적으로 많은 것이다.부산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사진작가 구본창 전시 30일까지

    사진작가 구본창이 조선 백자의 본질을 사진작업을 통해 새롭게 해석한 전시를 서울 사간동 국제갤러리에서 열고 있다.30일까지. 작가는 “백자는 무늬없이 뽐내지 않는 규방여인과 선비의 이미지가 제격인데, 박물관 유리상자에에 갇혀 차가운 이미지로만 보여지고 있다.”며 “사진작업을 통해 백자 자체의 존재감과 떨림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02)735-8449.
  • [씨줄날줄] 아름다운 길/육철수 논설위원

    인간과 자연을 잘 어울리게 이어주는 끈은 ‘길’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산’과 ‘강’도 친밀하나, 그건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생긴 것들이다. 그러나 길은, 사람이 자연과 어우러져 발자국을 남겨야만 제구실을 하게 된다. 인간의 숨결과 체취가 한번도 스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길은 엄밀히 따져서 없다. 그래서 길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 만나 이루어낸 ‘접점’과도 같은 것이다. 인간끼리의 ‘소통’이라는 깊은 의미도 지녔다. 인생이 길에 비유되는 것도 이런 친밀감이 바탕이다. 꼬불꼬불한 길, 울퉁불퉁한 길, 죽 뻗은 신작로는 우리네 인생들과 너무 닮았다. 하지만 좁고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에는 인정과 여유, 특히 자연의 정경과 여운이 담겨있다. 이런 길은 유독 인간만 맞아들인다. 따라서 산길, 들길처럼 사는 인생이라고 해서 슬퍼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속도와 경쟁 같은 ‘이물질’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만도 훌륭한 인생이 아닌가. 인공의 길은 멀리 2300년전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길이 침략과 권력의 상징이었다. 로마는 소금운반로를 마찻길로 바꾸어 놓았다. 세계 요로를 연결하는 길을 수십만㎞ 닦았고, 일부 도로에는 아스팔트를 깔고 배수로까지 설계했단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거저 나온 게 아니다. 반면 현대식 도로는 차량이동과 물류운반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당연히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길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걸어서는 얼씬도 할 수 없고, 터널이다 교량이다 해서 산을 뚫고 강을 가로질렀으니 자연도 상처투성이다. 이런 각박함을 깨달았는지, 최근 건설교통부는 전국의 ‘아름다운 길’ 100곳을 선정했다. 미관·역사성·기능성을 고려했다고 하나, 역시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바다와 섬을 벗삼은 남해의 창선·삼천포 대교, 가로수가 멋들어지게 울창한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 영남 선비들의 땀방울이 맺힌 문경새재,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으뜸인 덕수궁 돌담길 등이 여기에 꼽혔다. 길에는 인생이 있다는데, 아름다운 길에는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 법도 하다. 이번 여름휴가엔 아름다운 길, 아름다운 인생을 찾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떠나보자.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불합리한 수도권 규제 철폐”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3일 오전 취임식에 앞서 ‘민선4기 도정 핵심현안 사업 4개 추진기획단’을 출범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도정 업무에 들어갔다. 핵심 현안은 ▲팔당 상수원 1급수 달성 ▲수도권 교통 혼잡 개선 ▲수도권의 불합리한 규제 개선 ▲구도심 격차 해소및 주거환경 개선 등이다. 이를위해 팔당수질개선기획단, 경쟁력강화기획단 등 4개 기획단 현판식을 가졌다. 김 지사는 선거기간중에도 이들 현안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특히 각종 규제혁파는 취임사에서도 깊은 관심을 나타냄에 따라 수도권 규제와 관련해 경기도와 중앙정부 및 타 시·도와의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지사는 그러나 “현재 경기도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이라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악법으로 묶여 공장도, 대학도 짓지 못하고 외국자본은 중국 등지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면서 “이는 책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땅에 묻어버렸던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보다 더 나쁜 법”이라고 비난했다. 김 지사는 “공장을 짓지 못하게 하면서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겠느냐.”면서 “규제를 철폐해야 도쿄 상하이 등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고 ‘떠나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돌아오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며 수도권 규제완화에 올인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6) 칠곡·구미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6) 칠곡·구미길

    대구 옛길은 북구 팔거천을 건너 경북 칠곡 땅으로 들어선다. 지금은 어렴풋이 흔적만 남은 조선시대의 유목정(柳木亭)부터 칠곡 땅이 시작된다. 이곳을 지나 태봉산을 좌측으로 끼고 가면 동명면 소재지가 나온다. 태봉산은 조선시대 중종의 왕자 봉성군의 태(胎)를 이 산에 묻었다 해서 붙여졌다고 칠곡군지는 적고 있다. 옛날에는 왕자가 태어나면 명산에 그 태를 묻는 풍습이 있었다. ●일제이전 정상부근에 태실 담은 석함 존재 칠곡군 향토사학가 이승원(84)씨는 “일제의 강압 이전까지만 해도 봉성군의 태실임을 알 수 있는 석함이 산 정상 부근에 있었다.”며 “그러나 이후 어디론가 사라져 정확한 문헌적 근거마저 잃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이 마을 촌로들은 일제가 우리 왕실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민족정기를 말살하려 태실을 파괴했다고 확신한다. 면소재지인 금암2리를 거쳐 삼산동을 지난 옛길은 국도 5호선과 겹쳐 소야고개를 넘는다. 이 길 중간에는 평민들이 묵었다는 동명원이 있었으나 정확한 원터는 찾을 길이 없다. 이씨는 이 마을의 유래에 대해 들려줬다. 마을 이름은 원래 독명원(犢鳴院)이었으나 일제 때 개명작업으로 동명(東明)으로 고쳐졌다. 독명은 길손과 함께 짐을 싣고 한양을 오가던 소가 날이 저물어 밤이 되고 젖마저 붓자 집에 떼놓고 온 송아지(犢)를 생각해서 울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했다. 야트막한 소야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조선시대의 역과 원이 있었던 가산면 다부리가 나온다. 이 마을 토박이라는 김영학(67)씨는 “어릴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곳을 ‘다부리’라 하지 않고 ‘다부원’이라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씨는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이곳엔 관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국가관할의 소야원(所也院)이 있었으나, 후기에는 역으로 기능이 확대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과 원터는 개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 중의 하나였던 이곳엔 다부동 전적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기념관 송길준(60) 소장은 “한국전쟁 당시 55일간에 걸친 다부동 전투에서 아군 1만여명을 비롯해 모두 2만 7500여명이 사상한 곳”이라며 “이곳에서의 전투 승리가 인천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전 다부동 전투때 2만 7500명 사상 이어 옛길은 중앙고속도로 가산인터체인지 입구로 난 굴다리를 지난 뒤 국도 25호선 밑을 통과해 조선시대 상림역이 있던 구미시 장천면으로 들어선다. 조선시대 장이 섰던 상장리(웃장터)와 하장리(아랫장터)가 있는 장천면 소재지를 빠져 나온 옛길을 따라 2㎞쯤 가면 상림역에 도착한다. 지금의 상림리 마을회관이 역터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상림역에는 역리 227명과 노비 31명, 중마 2마리, 짐 싣는 말(卜馬) 4마리 등이 배치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 구미 지방도와 나란히 난 옛길을 가면 도로변에 서있는 대리석 표석 하나가 눈에 띈다. 표석에는 ‘서울 나들이길, 영남 선비 과거(科擧)길’이라고 적혀 있다. 구미시문화원이 지난 2000년 선조들의 한양길을 안내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시 문화원은 당시 이곳부터 상주시와의 경계지역까지 옛길 50여㎞ 구간 40여곳에 표지석을 세웠다. 이곳에서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를 따라 난 옛길은 사창·서울나들 마을로 이어진다. 사창마을은 조선시대 때 곡식을 거둬 저장했던 곳이며, 선산부지도에는 장천면에서 도개면 낙동나루까지 7개의 사창을 표시하고 있다. 동행한 구미문화원 부설 구미향토문화연구소 김홍균(68·전 구미문화원장) 소장은 “낙동강을 낀 사창마을 일대가 곡창지대였음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산골프장 건설로 끊긴 옛길은 골프장을 벗어나면서 이어져 서울나들마을(지금의 산동면 신당2리)로 향한다. 김 소장은 “2000년 당시 골프장 내에도 서울길 표석을 세웠으나 오늘 와보니 없어졌다.”며 골프장 관계자들을 의심했다. 서울나들마을에 도착하면 마을 입구에 세워진 서울 나들길 표지석을 발견할 수 있다. 토박이 김태준(68)씨는 “마을 복판으로 난 이 길이 옛길이며, 주막들도 있어서 길손들이 목을 축여 갔다.”고 말했다. ●도리사,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 사찰 이 마을 북쪽고개를 넘어 도개면 소재지로 향하는 옛길 오른쪽에는 도리사(桃李寺) 일주문이 자리하고 있다. 도리사는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사찰로 화상이 불법을 강론할 때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눈속에 만발한 것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도리사 일주문 앞을 통과한 옛길은 양쪽으로 고분이 거대하게 분포한 낙산고분군(사적 제336호)을 지나 술에 취해 잠든 동안 화재를 당한 주인을 살린 뒤 죽었다는 개 이야기를 간직한 해평면 일선리 의구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낙산고분군은 신라 또는 가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205기의 고분이 6만 9000여평에 즐비하다. 옛길은 일선리 삼거리에서 두갈래로 갈라진다. 우회전해 상주로 가는 길을 길손들이 더 많이 이용했다. 상주 땅으로 이어지는 옛길은 낙동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이 나루는 현재의 의성군 단밀면과 상주시 낙동면을 걸쳐 놓인 낙단교가 들어서기 전인 지난 86년대 이전까지 이용됐다. 뱃사공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나루터 나들목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의성 향토사학가 한종수(66)씨는 “조선시대 낙동나루는 부산 동래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조공배들로 가득했다.”면서 “낙동장터와 주막도 낙동나루를 끼고 번성했으나 일제시대때 물난리로 없어졌다.”고 말했다. 글 사진 칠곡·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의로운 개의 무덤 ‘의구총’ 의구총(義狗塚)은 경북도 민속자료 제105호로 죽음으로 주인을 구했다는 의로운 개의 무덤이다. 의열도(義烈圖) 의구전(義狗傳)에 따르면 지금부터 300여년전 경북 선산군 해평면 산양리에 사는 우리(郵吏·집배원) 김성원 혹은 노성원이라는 사람이 황구 한마리를 길렀다. 하루는 주인이 이웃마을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 귀가하던 중 월파정(지금의 해평면 일선리) 북쪽 길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때 길섶에서 불이 나 주인이 위험하게 되자 이를 본 개가 300m쯤 떨어진 낙동강으로 달려가 온몸에 물을 묻혀와 주인의 주위를 뒹굴며 불을 끄고 자신은 탈진해 죽었다.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 개가 자신을 구하고 죽은 것을 보고 크게 감동해 관(棺)을 갖추어 월파정 인근에 매장하고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의구총은 원래 무덤만 있고 의구의 행적이 구전돼 왔다. 이를 조선 인조 7년(1627년)에 선산부사 안응창(安應昌)이 의열도에 의구전을 기록하고 비를 세웠으며,1685년 화공이 의구도 4폭(목판본)을 남겼다. 1962년 무덤이 도로공사로 편입되고 비에 일부가 파괴된 것을 수습하여 일선리 마을 뒷산에 복원하였으나 일선리 마을 조성으로 다시 이장될 처지에 놓였다. 이에 구미시는 지난 1994년 ‘개띠의 해’를 맞아 낙산리 철장마을 입구 사유지 300여평을 매입, 의구총을 새롭게 단장했다. 자연석으로 기단과 봉분을 쌓고 무덤 뒤로 길이 6.4m, 높이 1.6m의 화강석에 의구도 4폭을 새기는 등 말끔히 정비했다. 봉분은 직경 2m, 높이 1.1m 정도. 구미시는 매년 2∼3차례씩 벌초를 하는 등 의구총을 정성껏 관리하고 있다. 한국애견협회는 2002년 봄부터 충견의 넋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이곳에서 ‘의구총 애견제전’을 개최하고 있다. 대회는 진돗개·삽살개·풍산개 등 견공 3000마리가 넘게 참가하는 전국 규모이다. 사람도 죽어 남기기 어려운 이름을 의로운 견공이 남겼기 때문일까. 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28) 梅花不賣香(매화불매향)

    儒林 (623)에는 ‘梅花不賣香’(매화 매/꽃 화/아니 불/팔 매/향기 향)이 나온다.朝鮮(조선) 中期(중기)의 학자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野言(야언)’에는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로항장곡),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이라는 글이 있다.‘오동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늙어가면서 항상 거문고의 가락을 간직하고,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결코 그 향기를 팔아 安樂(안락)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梅’는 意符에 해당하는 ‘木’(나무 목)과 音符 구실을 하는 ‘每’(매양 매)를 결합하여 ‘매화나무’의 뜻을 나타냈다.‘每’는 원래 ‘잘 차려입은 여자’를 나타낸 글자이다. 아랫부분은 성숙한 여인을 나타내는 ‘母’(어미 모)이며, 위쪽은 ‘머리 장식’을 표현한 것이다. ‘花’는 본래 ‘華(화)’의 俗字(속자)였다.‘花’자는 풀의 상형인 ‘艸’와 ‘ (인:바로선 사람을 뜻함)’과 ‘匕(비:거꾸로 서있는 사람)’가 어우러진 글자이다.‘不’은 나무나 풀의 ‘뿌리’를 본뜬 象形字(상형자)이다. 공교롭게도 뜻만 있고 글자가 없던 ‘아니다’라는 뜻의 부정사와 發音(발음)이 같았기 때문에 결국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굳어졌다. ‘賣’는 ‘물건을 팔러 나간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出’(날 출)과 ‘買’(살 매)를 결합한 會意字(회의자).‘香’은 ‘벼’의 상형인 ‘禾’(화)와 ‘발 없는 솥’이 변한 형상인 ‘曰’이 결합한 會意字이다. 추위에 굴하지 않는 매화는 淸貧(청빈) 속에서 살아가는 깐깐한 선비의 氣槪(기개)이고 눈 속에서도 몰래 풍기는 매화의 향기는 君子(군자)의 덕이다. 청빈한 선비는 결코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올곧은 선비는 志操(지조)를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히 여겼다.“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고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不正(부정)과 不義(불의)한 권력 앞에는 最低(최저)의 생활,最惡(최악)의 곤욕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조지훈이 ‘志操論’(지조론)에서 한 말이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망명 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선 채로 세수를 하기 때문에 찬물이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묻자,‘내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머리 숙일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逸話(일화)가 전한다.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은 晩年(만년)을 서울 성북동 소재의 尋牛莊(심우장)에서 보냈다. 나라 잃은 울분을 토하며 셋방을 전전하는 처지를 딱하게 여긴 知人(지인)들이 뜻을 모아 집 한 칸을 마련해 주기로 하였다. 남향의 좋은 터를 권했지만 일제 총독부와 마주 보기 싫다 하여 故意(고의)로 北向(북향)을 택할 만큼 옹골찬 선비였다.‘이 땅의 마지막 선비’로 일컬어지는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은 獨立運動(독립운동)을 하다가 혹독한 拷問(고문)의 후유증으로 두 다리가 마비되는 장애를 얻었다. 일본의 植民統治(식민통치)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법을 무시했고,抗訴(항소)도 辯護士(변호사)도 거부했다. 죽을지언정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信念(신념)이었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오늘의 눈] 전통공예,남북 상생/김미경 문화부 기자

    조선시대 선비들의 대표적인 관모인 갓. 아직도 해외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갓을 떠올린다는 게 장경희 한서대 교수의 이야기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미 갓 만드는 전통이 사라졌다고 한다. 마지막 전수자가 올해 초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소수의 민속공예 전수자들이 갓 만드는 명맥을 겨우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다음달 4일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2006 남북공예교류전’은 이런 의미에서 남북 공예예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남북 최고 수준의 민속공예가 160여명이 출품한 작품 450여점을 통해 분단 이후 60여년간 다양한 전통공예 속에 배어있는 생활상을 살펴보고, 남북이 한 민족 한 핏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주최측의 설명이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북측의 민속공예가들을 수소문해 개성에 사는 전통혼례식용 활옷 전문가인 박창숙 할머니를 찾아냈다고 한다. 그로부터 분홍색 활옷 한 점을 받았다. 사라져가는 남북의 문화전통을 보존·계승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미리 둘러본 전시회에는 북측에서 온 다양한 가구와 나전칠기, 단청·자수작품 등이 맵시를 뽐내고 있었다. 북측에서만 볼 수 있다는 댕기와 병풍, 단청 등도 눈길을 끌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남한의 비슷한 작품들에 비해 수준이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남한 작품들은 상업화로 인해 기교가 넘치고 화려했으나 북한 작품들은 순수성과 소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 작품들 중에는 재료가 부족하고 기술이 떨어져 마감·바느질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미완성작도 눈에 띄었다. 전문가들은 남북 민속공예의 장점이 결합된다면 인사동을 휩쓸고 있는 중국 제품을 몰아낼 수 있는 우리만의 공예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주최측은 이번 기회에 남북 공예가들이 참석하는 세미나와 해외전시를 통해 민속공예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전통공예를 통한 한류를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남북이 손잡고 만든 민속공예품이 전세계로 나갈 수 있다면 드라마를 통한 한류 못지않게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내년 8∼9월 미국 유엔 본부 갤러리로 자리를 옮기는 남북공예교류전이 남북 민속공예 세계화의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미경 문화부 기자 chaplin7@seoul.co.kr
  • 2차 FX사업 내년 시동

    2009년부터 도입을 목표로 한 제2차 ‘차세대 전투기 구입 사업’(FX사업)이 내년부터 본격 착수된다.국방부는 28일 이같은 사업 등을 반영한 24조 7505억원 규모의 2007년도 국방예산안을 편성, 기획예산처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22조 5129억원보다 9.9% 증가한 규모다. 방위력 개선비는 19% 증가한 6조 9103억원이며, 경상운영비는 6.8% 늘어난 17조 8402억원으로 편성됐다. 먼저 지난해부터 2008년까지 F15K 전투기 40대를 도입하는 1차 FX사업에 이어 추가로 F-15급 고성능 전투기 20여대를 도입하는 사업이 내년부터 시동을 건다. 총사업비 2조 3000억원이 투입될 이 사업을 위해 내년에 290억원이 반영됐다. 방위사업청은 올 하반기 중 후보기종을 선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는데,1차에 이어 2차 FX사업에서도 미국 보잉사가 사업자로 낙찰될지가 관심이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어린소녀 상습 성폭행한 교사가 우수 선생님?

    “원 세상에,어린 소녀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교사가 우수 선생님 표창을 받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얘깁니까.” 중국 대륙에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짐승 같은 담임 교사가 덜미를 잡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중국 가오유(高郵)시 처뤄(車邏)진 자허(閘河)초등학교의 40대 남자 교사가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는 반 여학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해오다가 그 여학생이 과다 출혈로 혼절하는 바람에 들통나 주변 사람들에게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고 광주일보(廣州日報) 인터넷신문 대양(大洋)망이 2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금수나 다름없는 장본인은 춰러진 자허 초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 양샤오핑(楊小平·48)씨.그는 교사이기 이전에 80여세의 할아버지와 어머니,간염을 앓고 있는 부인,공장에 나가는 20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는 어엿한 가장이다. 그런데도 양은 전형적인 ‘인두겁을 쓴 짐승’이었다.그가 공식 석상에서는 선비처럼 점잖고 겸손하게 행동해 훌륭한 교사라고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 동료 교사들의 대체적인 평가였다.덕분에 지난해 ‘우수 선생님’ 표창까지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여학생들에게는 ‘지옥에서 온 사자’나 다름없었다.성폭행 사건은 지난 20일 오전 일어났다.다른 학생들보다 학교에 일찍 나온 저우샤오징(周小景·9)양은 아침 일찍 맑은 정신으로 어려운 한자 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담임인 양이 조용히 교실에 들어온 뒤 문을 닫고는 샤오징의 치마를 걷어올리며 다리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감행했다.이어 몇분 뒤 그는 샤오징을 방송실로 데리고 간 뒤 끝내 성폭행을 저질렀다.일을 끝낸 양은 아파서 울고 있는 샤오징에게 만약에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샤오징을 본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고 바지의 여러 군데에 혈흔이 보였기 때문이다.바지를 걷어올려보니 다리에도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샤오징의 어머니는 샤오징에게 어떻게 해서 상처가 생겼느냐고 따져 물었다.샤오징은 울먹이며 “화장실에 있는데 반 여자친구들이 뒤에서 밀어버리는 바람에 미끌어져 다쳤다.”고 말했다.하지만 그 상처와 혈흔은 미끌어져 생긴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샤오징의 어머니는 곧바로 샤오징을 가오유 인민병원으로 데려가 진찰을 받았다.담당 의사는 “샤오징이 성폭행을 당했으며 처녀막이 파열됐다.”고 밝혔다.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지는 분함을 삭히며 샤오징을 차근차근 달래가며 사건의 경위를 추궁했다.그러자 그녀는 담임 교사에게 당한 사실을 그대로 털어놨다. 더욱이 샤오징은 이전에도 가슴을 주무르는 등 몇 번에 걸쳐 양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까지도 털어놔 어머니를 격분케 했다. 모든 사실은 확인 어머니는 득달같이 학교로 달려가 교장에게 양을 파면조치해주록 요구했다.하지만 교장은 “이번 일을 조사해보겠다.”며 “교육청 등에서 알아서 처리할테니 우선 집으로 돌아가라.”고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화가 난 샤오징의 어머니는 가오유시 공안(경찰)분국에 양을 고소했다.공안분국은 양을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체포했다. 온라인뉴스부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벌레시사 詩社/문태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벌레시사 詩社/문태준

    시인이랍시고 종일 하얀 종이만 갉아먹던 나에게 작은 채마밭을 가꾸는 행복이 생겼다 내가 찾고 왕왕 벌레가 찾아 밭은 나와 벌레가 함께 쓰는 밥상이요 모임이 되었다 선비들의 정자亭子 모임처럼 그럴듯하게 벌레와 나의 공동 소유인 밭을 벌레시사詩社라 불러주었다 나와 벌레는 한 젖을 먹는 관계요 나와 벌레는 무봉無縫의 푸른 구멍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일한 노동은 단단한 턱으로 물렁물렁한 구멍을 만드는 일 꽃과 입과 문장의 숨통을 둥그렇게 터주는 일 한 올 한 올 다 끄집어내면 환하고 푸르게 흩어지는 그늘의 잎맥들
  • 儒林(631)-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14)

    儒林(631)-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14)

    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14) 두향은 퇴계와 헤어질 때 거문고의 줄을 절현함으로써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으며, 또한 퇴계가 잘라준 저고리의 옷섶을 강선대 바위 밑에 파묻음으로써 퇴계를 위해 종신 수절할 것을 맹세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두향에 대한 상사를 매화꽃과 암향에 빗대어 은근히 노래한 퇴계의 정취와는 달리 율곡은 보다 적극적이며 노골적이다. 율곡도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해주에 있을 때인 38세 때, 관기로 있었던 유지(柳枝)라는 기생과 로맨스를 펼친다. ‘버들가지’란 뜻을 가진 그 기생에 대해서 박종홍씨는 ‘당시 28세로서 몸이 가냘프고 자색이 수려할 뿐 아니라 영리하며 귀엽고 매력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또 한편으로 당시 유지는 아직 16세가 채 안된 소녀였다고도 알려져 있다. 율곡은 자신이 만났던 유지에 대해서 48세 때인 1583년 9월,‘사(詞)를 지어서 그 정(情)을 깨우쳐 주는 글’이란 헌사를 남긴다. 기록의 원문은 ‘율곡전서’에 전해지지 않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율곡이 직접 쓴 원문의 내용으로만 남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지는 선비의 딸이다. 신분이 몰락하여 황주 기생으로 있더니, 내가 황해도 감사로 갔을 적에 어린 기녀로 수종들었으니, 날씬한 몸매에 곱게 단장하여 얼굴은 맑고 두뇌는 영리하므로 내가 가련하게 여겼으나 처음부터 정욕의 뜻을 품은 것은 아니다. 그 뒤 내가 원접사(중국사신을 맞아들이는 벼슬)가 되어 평안도로 오고 갈 적에도 유지는 언제나 안방에 있었지만 일찍이 하루도 서로 몸을 가까이 하지는 않았다. 계미년(癸未年,1583년 율곡의 나이 48세)가을, 내가 해주에서 황주로 누님을 뵈러 갈 때에도 유지를 데리고 여러 날 술잔을 함께 들었고, 해주로 돌아올 때에 그녀는 조용한 절까지 나를 따라와 전송해 주었다. 그리고 이별하였는데 내가 밤고지(황해도 재령) 강촌에 묵게 되었는데 밤에 어떤 이가 문을 두들기기로 나가 보니 그녀였다.…마침내 불을 밝히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 기생이란 다만 뜨내기 사내들의 정을 사랑하는 것이거늘 누가 도의를 사랑하는 자가 있을 줄 알 것이랴. 게다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고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며 도리어 감복하는 것은 더욱 보기 어려운 일이다. 아깝다. 여자로서 천한 몸이 되어 고달프게 살아가다니 그래서 노래를 지어 사실을 적어 정에서 출발하여 예의에 그친 뜻을 알리는 것이니 보는 이들은 그렇게 짐작하시라.” 율곡 자신이 직접 쓴 글의 내용을 보면 유지라는 기생은 ‘날씬한 몸매에 곱게 단장하여 얼굴은 맑고 두뇌는 영리하였던 미인’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곡은 자신이 유지에게 ‘정욕을 품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심지어 한적한 강촌에 묵게 되었을 때 한밤중에 문을 두들겨 찾아온 유지를 맞아들였으나 불을 밝히고 밤새도록 이야기만 나누었을 뿐 유지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있는 것이다. 몸을 주러 왔으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고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도리어 감복하였다는 유지. 날이 밝아 유지가 남의 눈을 피해 율곡이 머물렀던 집을 떠나려 하자 율곡은 유지에게 이별시를 지어준다.
  • 儒林(629)-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12)

    儒林(629)-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12)

    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12) “놓고 가거라.” 퇴계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언제 단양으로 돌아가려 하는가.” “이제 나으리께 두향 아씨로부터 받은 모든 물건을 전해 드렸으니, 당장이라도 밤을 도와 돌아가려 하나이다.” “벌써 날이 저물었다.” 퇴계는 창밖을 내다보며 말하였다. 이미 뉘엿뉘엿 기울던 햇살은 저물어 곧 땅거미가 스며드는 저녁녘이었다.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떠나시게나.” 마침 완락재 옆에는 작은 쪽방이 하나 있었다. 서당을 지을 때 대목수 역할을 맡아하던 정일 스님이 머무르던 당직실이기도 하였다. 그곳에는 작은 부엌 아궁이가 하나 있었는데, 이는 취사용이 아니라 난방용 공간이었다. 몸이 쇠약하여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는 퇴계를 위해 장작 같은 것을 쌓아두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곳이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자연 완락재의 방바닥에 온기가 전달될 수 있도록 설계된 작은 쪽실이었다. 유생을 불러 노인을 그곳에서 하룻밤 유하도록 하게 한 후 퇴계는 묵묵히 완락재에 홀로 앉아 있었다. 서탁 위에는 노인으로부터 전해 받은 두향의 편지가 있었으나 퇴계는 피봉을 뜯지 않고 여전히 묵묵히 매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퇴계는 평생 동안 매화를 사랑해오고 있었다. 이러한 퇴계의 매화사랑은 북송시대의 학자 임포(林逋)를 마음깊이 사숙하고 있었던 영향 때문이기도 했었다. 임포는 서호(西湖) 고산(孤山)에 은거하면서 20여 년간 산을 내려오지 않고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며, 오직 학을 사육하고 매화를 완상하면서 살았다.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처럼 길렀으므로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불렸다. 후세사람들은 ‘매처학자’란 말로 청빈한 선비생활을 비유하였는데, 이 무렵 퇴계야말로 아내도 없이 오직 매화를 사랑하는 매처학자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평소에 임포와 일치된 삶을 본받고자 했던 퇴계였으므로 평생 동안 75제 107수에 달하는 매화시를 썼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퇴계는 평소에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 매선(梅仙)으로 의인화해 부르면서 매화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접할 정도로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퇴계는 살아생전 ‘매화시첩(梅花詩帖)’이란 매화를 노래한 시집까지 편찬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두향이가 보낸 매화야말로 퇴계가 지금까지 보았던 매화 중에 으뜸이었다. 매화꽃을 꺾고 책상 위에 두고 바라보기도 하고, 뜨락의 매화를 바라보고 매화와 서로 묻고 화답하는 문답시까지 읊었던 퇴계. 때로 매화를 형이라 부르면서 찾아온 문인들과 술잔을 나누기도하고, 매화가 겨울추위에 손상되었음을 슬퍼하는 애상(哀想)의 시를 읊기도 했으나 두향이가 보내온 매화야말로 임포가 아내로 삼았던 매처(梅妻) 그 자체였던 것이다.
  • 儒林(627)-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10)

    儒林(627)-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10)

    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 (10) 그러나 퇴계는 이방이 가져왔던 삼다발을 단호하게 물리치지 아니하였던가. 이덕홍(李德弘)이 기록한 ‘퇴계언행록‘에는 퇴계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러자 선생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닌데 왜 그것을 가져왔느냐.’하고 물리치셨다.” 이를 퇴계는 20여년이 흘렀으나 노인의 행동거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들어오시게나.” 퇴계는 노인을 완락재로 불러들였다. 그러잖아도 유생이 가져온 분매를 본 순간 퇴계는 그 매화꽃이 두향이가 보낸 것임을 꿰뚫어 보고 있었는데, 단양에서 온 아전을 확인하자 퇴계는 정확하게 전후 사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좌하여 앉고서도 퇴계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유생이 떠온 열정의 우물물을 말없이 들이켜던 퇴계가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어 말하였다. “그래 언제 단양을 떠났는가.” “이틀 전에 떠났사옵니다.” 단양에서 안동까지의 거리는 200여리. 도중에 소백산을 넘고 죽령의 고갯마루를 넘는 험준한 태산준령의 연속이었다. 이틀 만에 도착하였다는 것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먼 길을 내쳐 달려왔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쇤네가 나으리를 뵙기 위해서 불원천리하고 안동까지 달려온 것은 다름아닌 두향 아씨의 청원 때문이었나이다.”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비로소 노인의 입에서 두향의 이름이 흘러 나왔지만 퇴계는 묵묵부답, 아무런 대답 없이 물끄러미 서탁 위에 놓인 두향이가 보낸 매분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으리께오서 단양을 떠나시자마자 두향 아씨는 신임 사또의 관아를 찾아가서 기적에서 빼어 달라 소청을 하시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두향 아씨는 면천을 받아 관기에서 벗어나 상민이 되셨나이다.” 예부터 조선의 선비들은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란 그림을 벽에 붙여두고 봄을 기다리곤 하였다. 동지로부터 날짜를 세기 시작하여 81일간이 구구에 해당하는 것이다. 흰 매화 81개를 그려놓고 매일 한 봉오리씩 붉은 색을 칠하여 81일째가 되면 백매가 모두 홍매로 변하는 그림으로 이때가 대충 3월10일 무렵이 되는 것이다. 퇴계가 두향으로부터 받은 분매가 도착하는 것이 바로 그 무렵. 즉 두향이가 보낸 매화꽃과 더불어 입춘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입춘방(立春榜). 두향이가 보낸 20년 기른 고매는 그 해의 봄을 알리는 일지춘심(一枝春心)이었던 것이다. “나으리” 노인은 다시 말을 이었다. “두향 아씨는 기적에서 면천되자마자 강선대가 눈 아래 굽어보이는 적성산 기슭에 조그만 초당을 짓고 그곳에서 종신수절하고 계시나이다.”
  • 쿠렁~ 나무가 물을 마셔요

    쿠렁~ 나무가 물을 마셔요

    초록의 들판으로 터진 길 위에서 중얼거려본다. 나무 나무 종달이 지빠귀 어치 씀바귀 민들레 강아지풀…… 내 몸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다. 손가락 끝 발가락 끝에 초록색 물감이 들기 시작한다. 뻐꾸기 뻐꾸기 할미새 보리똥열매 참빗나무 하눌타리…… 내 몸이 더욱더 작아진다. 온몸에 초록색 물감이 든다. 드디어 나는 한 마리 초록의 벌레가 되어 나무 이파리 위를 기어간다. 이제 나무 이파리는 드넓은 벌판이다. 더듬이를 세워 허공을 휘저어본다. 모처럼 맑은 하늘이시다. - 나태주의 시 ‘모처럼 맑은 하늘’ 위 시처럼 우리도 온몸에 파란색 물감을 들이러 숲으로 떠나보자. 천년의 원시림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흥겨운 몸짓, 하얀 햇살에 부서지는 연초록 잎사귀의 아름다움이 있는 곳, 그냥 스치듯 지나쳤다면 이젠 제대로 한번 느껴보자. 그리고 귀 귀울여보자. 수천, 수만의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소리, 흙과 물 그리고 바람이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어보자. 푸른 6월의 숲은 가장 시퍼렇고 살아있는 생명의 소리로 가득하다. 숲은 수첩을 들고 무엇인가를 배우러 가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을 활짝 열고 몸에 닿는 대로, 마음에 느껴지는 대로 가슴에 담는 그런 곳. 숲에서 신명나게 놀아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신기한 숲학교 6월의 숲은 짙푸르게 옷을 갈아입어 1년 중 가장 아름답고 활기찬 생명력을 뽐내는 시기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을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걷는 것이 익숙한 어른들은 상관없지만 아파트 놀이터에 익숙한 아이들에겐 숲은 그냥 ‘나무더미’이고 힘든 곳일 뿐이다. 하지만 숲을 놀이터 삼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무엇을 하며 놀까 한번 알아보자. # 숲은 자연이 만들어 준 놀이동산 숲 연구소(ww.ecoedu.net)의 생태학습 교육관인 경기도 퇴촌에 있는 ‘율봄 농원’에서 열린 숲 체험에 참가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꼬맹이들이 나뭇잎 모양의 이름표를 달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다. “야, 찾았다. 아빠 거미다 거미. 이것 잡아주세요.”라고 환호성을 올리는 나희(7).“나희야 아빠는 뭐 잡았는지 보여줄까.”라며 애벌레 한 마리를 내미는 김성훈(38·교원나라 벤처투자)씨. 숲 해설가 장인영(35)씨 앞에 모인 네가족. 저마다 잡아 온 곤충을 내민다.“야 정말 여러가지 곤충을 잡았네. 경택이네는 매미의 애벌레, 나희네는 거미와 나방의 애벌레, 윤서네는 무당벌레를 잡았구나.”라며 설명을 해준다. 그러고는 “얘들아 이런 애벌레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나비가 없어져요.”“새도 없어져요. 먹을 것이 없으니까요.”“숲이 지저분해져요.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이 없으니까요.”라고 저마다 다르지만 생각보다 똑똑한 답을 내놓는다. 옆에 있던 유진이 아빠는 “어른보다 낫네.”라며 웃는다. “그래요. 애벌레가 없으면 숲이 망가져요. 새도, 나비도, 곤충들도 없어지지요. 그럼 우리가 숲속 친구들을 집으로 가지고 갈까, 여기에 놓아줄까.”“여기에 놓아주어요.”라고 합창하는 아이들. 자 이번엔 나무가 무슨 말을 하나 듣는 시간. 도대체 무슨 소린가, 나무가 말을 하다니. 장인영 해설사는 준비해 온 청진기를 꺼내 아이들에게 보여준다.“이건 의사 선생님이 너희들 몸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때 쓰는 청진기지. 우리도 청진기를 끼고 나무에 대어보면 나무가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한번 해보자.” 아이들은 무슨 의사 선생님이 된 양 청진기를 귀에 끼고 나무에 대어본다. “쿠렁 쿠렁” 비록 소리는 작지만 나무가 물을 빨아올리는 신기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의진이가 소리친다.“선생님, 이 나무는 아무 소리가 안 들려요. 혹시 죽었나봐요.”, 그러자 “이리 와 봐. 이 나무는 소리가 들려.”라는 유림이. 아이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청진기로 나무 소리를 들어본다. 나무가 살아 있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지만 이렇게 몸으로 느껴보기는 처음이다. “아까 우리 애벌레 잡았지. 애벌레는 눈도 없고 신발도 안 신고 다니지. 우리 이번엔 애벌레가 되어볼까.” 신발을 벗고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오직 신체감각에 의존해 앞사람 어깨를 잡고 걷는다.“정신을 집중해 봐. 무슨 소리가 들리나. 어떤 느낌이 오나.” 정말 신기하게 맨발에 느껴지는 나뭇잎, 전혀 들리지 않았던 새소리, 향기로운 나무 냄새가 전해진다. “너무 힘들어요. 애벌레에게 눈도 달아주고 신발도 사줘요.”라는 정민(6)의 말에 모두 웃는다. 이렇게 숲속에서 모든 감각을 동원해 느껴보는 시간이 숲 체험이다. “그저 숲이란 걷는 곳이라고 알았는데 이렇게 몸으로 느껴보니 정말 재밌네요. 친구가 숲 해설가를 한다고 했을 때 ‘이상한 녀석이군’했는데 정말 이해가 됩니다.”라는 나희 아빠.“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저에게도 큰 경험입니다. 이렇게 자연을 느껴 본 것이 처음이거든요.”라는 유진의 아빠 정민재(36·서울 성동)씨. 아이들에겐 재미나고 어른들에겐 색다른 경험이고 체험이다. 이밖에도 거울을 눈 밑에 대고 하늘을 보며 걷는 ‘뱀 되어보기’, 누워서 커다란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는 ‘독수리는 어떻게 볼까’ 등 다양한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정말 나무나 곤충의 이름을 하나 외우는 단순한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느끼고 만지고 상상하면서 스스로 자연을 배워 나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숲이다. ■ 얘들아 숲놀이 하자 # 숲은 진정한 인간의 마지막 안식처 반짝이는 나뭇잎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솔잎 향기가 가득한 숲은 힘들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해 준다. 푹신한 낙엽을 ‘사각사각’ 밟는 소리,‘스스슥’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마음이 너무 편해진다. 아무리 유명한 음악가가 작곡한 교향곡도 이렇게 모든 인간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노래를 만들어 낼 순 없다. 이런 편안한 자연의 소리뿐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냄새.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선하고 깨끗하게 해주는 그 냄새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피톤치드(phytoncide)다. 어쩌면 숲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커다란 선물일 것이다. 나무가 병원균에 저항하기 위하여 방출 또는 분비하는 물질로 쉽게 말해 숲이 내는 기분 좋은 특유의 향기이다. # 숲에서 이런 놀이 해보세요 숲 연구소 남효창 소장이 쉽게 할 수 있는 숲속놀이를 소개한다. 숲에는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까. 흩어져 있는 모든 것이 보물이다. 먼저 아빠나 엄마가 아이들에게 “숲속의 보물이란 나뭇잎도 될 수 있어. 나뭇잎은 썩어서 나무가 잘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되니까.” 등 보물이란 꼭 거창한 것이 아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보물이 된다고 알려주고 10∼20분동안 찾아 온 보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돌멩이, 곤충, 솔방울 모두가 보물이다. 상상력과 인지능력, 발표력 등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물론 부모도 함께 해야 한다. # 느리게 달리기 놀이 달리기 하면 무조건 빨리 달려야 할 것만 같은데 숲에서는 천천히 달려보자. 각자 원하는 동물을 정하고 흉내를 내면서 일정한 거리(1m)를 가장 느리게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경주한다. 주의할 점은 한 순간도 멈추거나 뒤로 가서는 안 되고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이 1등이다. ‘느리게 달리기 놀이’를 한 후 아이들과 천천히 움직이는 동물과 빨리 움직이는 동물에 대해 이야기 해보면 더 재미있고 유익하다. # 숲속에서 뒹굴 뒹굴 숲에 들어오면 편안함이 느껴진다. 가족이 모두 함께 숲 바닥에 누워보자. 누운 상태에서 숲 하늘을 가슴에 담아보거나 숲의 공기를 깊이 들이마셔 본다. 눈을 감고 숲의 소리를 들어보거나 낙엽을 살짝 들춰내고 그 속의 향기도 맡는다. 오감을 통해 숲을 느낄 수 있는 놀이다. # 같은 물건 찾아오기 숲을 걷다 보면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이나 열매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똑같은 것을 찾아오는 놀이다. 관찰력과 기억력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신기한 곤충이나 몰래 숨어 있던 동물, 나무 열매 등을 찾는 재미도 있다. ■ 가볼 만한 숲 꼭 ‘숲’이란 멀리 가야만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난 ‘숲’에 가면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 서어나무 군락과 정상부의 왜솜다리 자생지인 조령산은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경계를 이루면서 울창한 산림과 어우러진 암벽지대가 많고 기암과 괴봉이 노송과 조화를 이뤄 한 폭의 그림처럼 그 경치가 뛰어나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갈대와 억새풀이 어우러져 자라는 숲에 머물면 아무 곳에서나 쉽게 맛볼 수 없는 황홀경에 젖어 들게 된다. 좀 편하게 숲을 체험하려면 문경시의 문경새재도 추천한다. 문경새재는 옛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이 다녔던 길로 울창한 숲과 깨끗한 계곡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2관문,3관문 주변에 옛 영남대로 길을 가면 그야말로 나무와 풀들이 지천이다. 오대산 북대사쪽의 숲도 좋다. 토양이 비옥하여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기에 안성맞춤인 오대산은 신갈나무, 굴참나무, 소나무, 서어나무, 자작나무 등 나무의 보고이다. 또 물봉선, 도깨비부채, 노랑무늬붓꽃, 개불알꽃, 금강초롱꽃 등 많은 식물도 자생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강원도 평창에 있다. 밤꽃이 유명한 명지산은 경기도 가평에 있어 하루 나들이로 제격이다. 계곡의 맑은 물이 돋보이는 산으로 여름철에는 우거진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수려한 산으로 사계절 내내 자연이 만들어 내는 색의 신비와 깊이에 놀라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야생화 군락과 참나무가 아름다운 강원도 평창 계방산은 봄에는 철쭉, 여름엔 녹음이 우거진 울창한 숲을 자랑하며 가을 단풍도 예쁘다. 또한 3월초까지 흰 눈꽃을 피워내며 거대한 설경을 펼쳐내어 계방산을 찾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 儒林(622)-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6)

    儒林(622)-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6)

    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6) 서탁 위에 올려진 분매의 모습을 본 순간 퇴계의 입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흰 매화꽃이 극채색(極彩色)의 요염을 드러내고 있었고, 또한 꽃들은 천진한 옥설(玉雪)향기를 뿜고 있었다. 매화불매향(梅花不賣香). ‘매화는 춥더라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은 퇴계가 매화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 이 문장의 뜻을 통해 퇴계는 한평생 선비로서의 기개와 청빈을 지켜나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생이 들고 온 매분에서는 낯익은 천향(天香)이 풍겨오고 있음이었다. 그 향기는 퇴계가 까마득히 잊었던 추억의 내음이었다. 언제였던가. 퇴계는 서탁 위에 놓인 매분을 쳐다보면서 생각하였다. 저 매화 꽃의 천향을 맡았던 적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그 순간 퇴계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올해 퇴계의 나이는 68세. 퇴계가 그 천향의 냄새를 맡았던 것은 까마득한 48세 때의 일이었으니 정확히 20년 전의 일이었던 것이다. 퇴계가 처음으로 매화의 향기와 같은 여인향기를 맡은 것은 바로 두향(杜香)으로부터였던 것이다. 그때 두향의 나이는 18세. 퇴계가 48세의 장년의 나이에서 어느덧 죽음을 바라보는 노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듯 두향이도 이제는 소녀의 나이에서 초로의 나이로 접어든 중년일 것이다. 퇴계는 알 수 있었다. 비록 화분에 심어진 분매이긴 하였지만 그 등걸은 기고(奇高)한 모습으로 용틀임치고 있었다. 적어도 20년은 족히 되었을 매화 등걸이었다. 매화를 기르는 데에는 가지치기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지치기에 따라서 매화의 모습이 고(古)하고, 아(雅)하고, 아름답게 보이는데, 그 요령으로 말하면 등걸은 드러나야 하고, 줄기는 구부러져야하며, 가지는 성깃해야 하고, 꽃은 드문드문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매화 중의 으뜸은 단연 백매지만 백매 중에서도 최고는 육화(六花)의 엽이 모두 흰눈처럼 새하얀 단엽(單葉)이 최고의 명품이었던 것이다. 평소에 매화를 좋아하는 퇴계로서도 그 꽃은 처음 보는 최고의 빙기옥골(氷肌玉骨)이었다. 문자 그대로 흰눈과 얼음 같은 살결과 옥과 같은 뼈대를 지닌 화괴(花魁)였던 것이다. 이런 매화를 가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사람. 그것은 두향이뿐이었다. 두향이가 매화를 양매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지녔다는 것은 오늘날 두향의 묘비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비문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지 않을 것인가. “성명은 두향. 중종조 시대의 사람이며, 단양태생. 특히 거문고에 능하고 난과 매화를 사랑하였으며, 퇴계 이황을 사모하였다.” 비문에 새겨진 대로 매화를 사랑하여 양매를 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던 두향. 두향은 퇴계와 헤어진 20여 년 동안 오로지 임을 생각하는 상사(相思)하나로 분매를 가꾸고, 가지치고. 꽃을 피워 마침내 퇴계가 평생 동안 처음으로 볼 수 있는 아취고절(雅趣高節)의 매화 한그루를 이루어낸 것이다.
  • 儒林(621)-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4)

    儒林(621)-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4)

    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4) “하오면” 노인은 등에 메었던 걸망을 벗어 내려놓으며 말하였다. “퇴계 선생께오서 서당에 계시옵니까.” “무슨 일이오.” 유생은 우물 속에 두레박을 던져서 물을 길어 올리고 있었다. 두레박에 든 물을 물동이에 가득 채우면서 여전히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한눈에 보아도 서당 안을 드나들 수 있는 선비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놈도 아닌 중인의 행색을 하고 있었으나 선생의 안부를 물을 만한 위치의 사람은 더더욱 아니어서 유생의 말투는 자연 시비조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으리께 드릴 물건이 있어서 그러나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인은 벗은 걸망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우물가에 놓았다. 유생은 노인이 꺼낸 물건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분매였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도 그 매화는 여느 매화가 아니었다. 흔히 흰눈이 내리는 엄동설한에 피는 매화를 설중매(雪中梅)라고 하였고, 섣달에 피는 매화를 기우(奇友), 봄에 피는 매화를 고우(古友)라 하였는데, 노인이 꺼내놓은 매화는 고우 중의 으뜸인 백매(白梅)였던 것이다. 유생은 매화에 문외한이었으나 퇴계 선생이 유난히 매화를 사랑하여 평소에 매화를 매형(梅兄), 매선(梅仙)으로 의인화해 부르면서 하나의 인격체로 대접할 정도로 유난히 매화를 사랑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뿐인가. 스승께서는 서당 서동쪽에 절우사(節友社)의 단을 쌓고 솔, 대, 매화, 국화를 심고 이들과 함께 절의를 맹세하는 결사를 이루지 않았던가. 이때 스승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솔과 국화는 도연명 뜰에서 대와 함께 셋이더니 매화형(梅兄)은 어이해서 참가 못했던가. 나는 이제 넷과 함께 풍상계를 맺었으니, 곧은 절개 맑은 향기 가장 잘 알았다오.” 풍상계(風霜契). 문자 그대로 함께 바람과 서리를 견디는 결사를 맺은 스승 이퇴계. 스승은 이들 중에서 매화를 가장 사랑하여 매화를 형으로까지 부르고 있지 아니한가. “어디서 온 누가 보내는 물건이라고 여쭙는단 말이오.” 남루하기 짝이 없는 걸망에서 나온 화려한 분매를 보자 유생의 태도는 한결 누그러졌다. “그것은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나으리께서 이 분매를 받아보시면 자연 누가 보낸 것인가 알아보실 것이나이다. 쇤네는 이 우물가에서 기다리고 있겠나이다. 나으리께서 매화꽃을 받아보신 후 쇤네를 부르시면 들어가서 문안인사를 여쭐 것이옵고, 부르시지 않으시오면 그대로 이 우물가에서 찬물이나 몇 잔 더 마시며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돌아갈 것이나이다.” “알겠네.” 유생은 선뜻 한 손에는 물동이를 다른 한 손에는 노인으로부터 받은 분재를, 들어올리며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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