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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7) 우아한 취미 ‘서화 감상’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7) 우아한 취미 ‘서화 감상’

    김홍도의 작품 ‘그림 감상’을 보자. 유건을 쓴 유생들이 둘러서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워낙 단순한 그림이라 그림 자체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할 것이 없다. 작자 미상의 ‘후원아집도(後園雅集圖)’는 연못까지 있는 부유한 양반가의 후원을 그린 것이다. 왼쪽에는 바둑이 한창이다. 그 오른쪽 소나무에 기댄 두 사람을 보기 바란다. 두루마리를 펴서 감상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그림이나 글씨를 보고 비평하는 중일 것이다. ●안평대군 서화 소장품 어마어마 이처럼 서화를 감상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있던 일이다. 하지만 그 농도는 다르다. 이 부분을 약간 검토해 보자. 세조 때 인물인 신숙주의 ‘화기(畵記)’란 글은 안평대군의 어마어마한 서화 소장품에 대한 기록이다.‘화기’를 통해 조선전기 서화의 수집과 감상 풍조가 유행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서화들은 남아 있지 않다. 고려와 조선전기 서화가의 작품도 전해지는 것은 몇 안 된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전쟁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면서 궁중에 소장된 책과 서화, 골동품 등이 모두 소실되었다. 또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판이니, 민간에서도 서화를 챙길 여유가 없다. 이래서 대부분이 망실된 것이다. 서화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다. 이 문제를 조금 살펴보자. 박지원의 글 중에 ‘필세설’이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시커멓고 우묵하게 생긴 돌덩이 하나를 골동품이라고 하며 팔러 다니는데, 그게 무슨 골동품이냐며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연암의 친구 중 서상수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그 물건을 보더니, 단박에 “이것은 필세(붓 씻는 그릇)다.”라 하고는 그 재질과 생산지를 따지더니, 보물이라면서 거금을 던지고 소유해 버린다. 연암은 이 글에서 서상수의 높은 안목을 칭찬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인즉 “처음 시작한 공로는 있지만 감상안은 투철하지 못했다.”라고 평가한다. ●18세기 서화·골동 수집의 선구자 김광수 그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광수부터 골동품과 서화의 감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만은 틀림없다. 김광수는 김동필의 아들인데, 김동필은 소론 온건파로서 영조의 탕평책에 협조하고,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이조판서에 이른 인물이다. 김광수는 “감식안이 신묘하여 한 물건이라도 마음에 들면 가산을 기울여 후한 값을 치렀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소장품의 대부분이 중국 수입품이란 것이다.19세기의 서화가 조희룡은 김광수를 두고 “사람됨이 소탈하고 우아하여 집 재산을 기울여서 멀리 연경에서 고서·명화·벼루·먹·골동품 등을 많이 사들여 종일토록 그 사이에서 읊조리고 완상하였다.”라고 했으니, 김광수는 서화와 예술품, 골동품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것을 자기 인생의 유일한 즐거움으로 알았던 사람이었다. 김광수는 1696년 출생이고 사망한 해는 모른다. 대체로 영조 일대를 살았을 것이고, 좀 오래 살았다면 정조의 치세도 경험했을 것이다. 김광수가 서화 골동을 소장하고 또 애호하는 취미의 선구자라면, 조선후기의 서화 골동 취미는 18세기 이후의 산물인 것이다. 김광수에게서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그가 북경에서 서화와 골동품을 수입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 주목해 보자. 조선은 병자호란 이래 청을 섬기게 되어 여전히 북경에 사신단을 파견했다. 청은 조선을 의심하여 조선 사신단을 숙소에 묶어 놓고 내보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18세기 중반에 와서 청 체제가 안정되자 조선의 사신들은 비로소 서적과 서화, 골동의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유리창 거리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거창한 규모의 서화와 골동품이 서울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최초의 대량 구입자가 바로 김광수였던 것이다. 이 수입 서화와 골동은 국내의 생산을 자극했다. 도화서와 선비 화가들의 작품이 쏟아져 나와 감상과 품평의 대상이 되고, 급기야 예술품 수집가들의 소장 대상이 되었다.18세기를 지나면서는 그 풍조를 비판하는 소리까지 나왔다.18세기의 문인 이정섭은 이런 풍조를 “요즘 사람들은 고서화를 많이 소장하는 것을 청아한 취미로 삼아 남에게 비단 한 조각이라도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떳떳하지 못한 온갖 수단으로 기필코 구해 농짝을 가득 채우고 진귀한 보배인 양 자랑을 한다.”라고 비판하였다. 이제 서화와 골동품을 수집하고 그것에 대해 지식을 쌓아, 그림이나 글씨 혹은 골동품을 보면 거기에 대해 진위를 가리고 비평을 하는 것은 양반들의 독특한 문화가 되었다. 서화 수집가이자 비평가인 남공철(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멋있게 포장했다.“정자를 용산과 광릉 사이에 지어두고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를 많이 심어 간소한 차림으로 나가서 한가롭게 거닐었다. 손님이 찾아오면 향을 사르고 단정히 앉아 경전과 역사에 대해 토론하였고, 곁에 고금의 법서(法書)·명화·골동품을 두고 품평하고 감상하였으니, 마음이 담박하여 세상의 영리를 바라지 않았다.” 서화와 골동을 품평하고 감상하는 것을 아주 고상한 삶의 형태로 보고 있는 것이다. ●광통교서 산 그림을 자기 작품이라 속이기도 이런 풍조로 인해 별별 희극이 다 벌어졌다. 다산 정약용이 이정운이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보내주신 신선 그림은 대릉(이정운이 살던 곳을 말함)에 계시는 여러분의 그림은 아닌 듯싶은데 혹 광통교에서 사 오신 것은 아닙니까? 어떤 신선이기에 눈은 순전히 욕심으로 불타 있고 얼굴은 순전히 육기뿐이니 말입니다. 우열을 비교해 봤자 반드시 하등일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림으로 승부를 걸려면 반드시 우리 모임의 벗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대면하여 직접 그린 것만이 시합에 응할 수 있도록 기준을 세워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간사스러운 폐단이 있어 두루 방어할 수 없을 것이니, 우스운 일입니다. 이정운은 다산과 같은 서클에 든 사람이고, 이 서클은 그림을 그려서 서로 돌려보며 품평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위의 그림도 그런 그림 감상, 품평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정운은 그림에 별 솜씨가 없어 광통교에서 파는 그림을 사와서 자기 그림이라고 남에게 돌려보였던 모양이다. 광통교는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다. 추측건대 18세기 후반에 광통교에 그림을 걸어놓고 파는 상인이 생겼고, 서울 시민들은 집치레 그림을 여기서 구입하였다. 이정운은 요즘 말로 하자면 이발소그림을 사서 동료들에게 자신의 것인 양하고 보냈다가 들통이 난 것이다. 다산은 또 윤참판이란 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윤참판이 자신에게 그려 보내준 난초와 매화 그림을 격찬한 뒤 장난조로 다시 이정운을 비난한다.“오사(이정운)께서는 언제나 광통교 위에서 걸어놓고 파는 하찮은 그림을 사다가 사중에서 일등을 하려고 하니 이러한 사실을 시험관에게 알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정말 웃음이 터지는 일입니다.” 이정운의 가짜 그림은, 그림을 그려 동료들 간에 돌려 보이고 품평하는 풍조가 낳은 희극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이발소에 가면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시골풍경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그림을 보며 지루한 이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이발소그림을 굳이 예술사조로 따지면 낭만주의 풍이다. 이발소그림이 다루는 가장 흔한 제재, 곧 목가적 풍경이나 장엄한 풍광이 낭만주의 풍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얼마 전 퇴근길에 보니 길거리에 그림을 잔뜩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이발소그림이었다. 반가운 생각이 왈칵 들었다.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천천히 그림을 보았다. 배운 사람들은 이발소그림을 한 마디로 폄하하지만, 이른바 제대로 된 예술품 대접을 받는 그림은 값이 너무 비싸 구입하기 어렵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발소그림이야말로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이상향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김홍도의 ‘그림 감상’을 보고 절로 떠오른 생각이다. 그런데 ‘그림 감상’ 속의 그림은 어떤 그림이었을까? 궁금하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텐트속 별보기 어때요

    텐트속 별보기 어때요

    계곡에서, 바다에서 텐트 속으로 자연을 끌어들일 수 있는 캠핑은 영원한 휴가의 테마. 캠핑의 불편함을 다소나마 덜기 위해 차를 이용해 오토캠핑을 즐기는 인구가 점차 늘고 있다. 최근 경기도 가평에 대형 오토캠핑장이 들어서는 등 오토 캠핑장 또한 느는 추세다. 가볼 만한 오토캠핑장 네 곳을 소개한다. #은구슬 쏟아지는 폭포에 발을 씻고…금원산 자연휴양림 경남 거창에는 쉬어가기 딱 좋은 숲들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위천면의 금원산 자연휴양림.2.5㎞에 달하는 휴양림 내 유안청 계곡을 따라 미폭과 자운폭포, 유안청폭포 등 다양한 형태의 폭포와 소, 담이 이어진다. 특히 유안청계곡은 예전 선비들이 홍진(紅塵)을 피해 즐겨 찾았을 만큼 풍광이 빼어난 골짜기다. 넓은 반석 사이로 시원스레 흐르는 물줄기와 골짜기 양옆을 빼곡하게 채운 나무들이 아름답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운폭포에서 숲속 교실로 향하는 계곡 양편에 방갈로와 야영지가 주르륵 늘어서 있다. 도로와 가깝고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오토캠핑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휴양림 외에도 거창의 명소인 수승대, 넓은 바위가 많은 남덕유산 자락의 월성계곡, 돌담길이 예쁜 황산 고가(古家)마을, 구연서원과 덕천서원 등 둘러볼 곳이 많다.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간고속도로→지곡 나들목→24번국도→안의면→3번국도→마리면→37번국도→위천면→금원산 자연휴양림. 거창군청 문화관광과 055)940-3183. #텐트 속에 동해바다를 품다…송지호 오토캠핑장 지난해 7월 문을 연 강원도 고성군 송지호 오토캠핑장은 7번 국도와 송지호해수욕장 사이 너른 터에 자리를 잡고 있다. 송지호해수욕장은 화진포해수욕장과 더불어 고성군을 대표하는 해수욕장. 수심이 낮고 백사장이 깨끗해 피서객들에게 인기다.7번 국도에서 곧바로 진입할 수 있는 데다, 캠핑장 바로 앞이 송지호해수욕장 해변이라는 것이 장점. 텐트를 칠 수 있는 잔디밭 공간 90개, 통나무집 10채, 급수대 10군데, 화장실과 샤워장 각 1군데, 관리사무소 등으로 구성돼 있다. 1번∼30번 텐트 사이트는 해변,71번∼90번 사이트는 국도변,31번∼70번 사이트는 반원형의 잔디밭을 따라 배분되었다. 각 사이트마다 긴 의자와 탁자가 일체형으로 된 목제 테이블이 있어 챙이 넓은 파라솔을 꽂아둘 수 있다. 주변에 송지호철새관망타워, 왕곡민속마을, 가진항, 거진항, 화진포호수, 건봉사 등 둘러볼 명소도 풍부하다. 서울→6번 국도→양평 용두교차로→44번 국도→인제 한계삼거리→46번 국도→진부령→고성 대대삼거리→우회전→7번 국도→송지호 오토캠핑장, 또는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 현남나들목→7번 국도→속초→청간정→천학정→송지호 오토캠핑장. 고성군청 문화관광과 033)680-3361∼3. #국내 최초 오토캠핑장-방화동 가족 휴양촌 전북 장수의 방화동 가족휴양촌은 전국 30여개 오토캠핑장 중 가장 먼저 조성된 곳. 전북의 명산 장안산 줄기에서 발원한 방화동계곡에 조성된 휴양지로 오토캠퍼들이 좋아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캠프 사이트와 주차 공간이 마련됐고, 그 주변을 오래된 나무들이 시원하고 아늑한 그늘로 만들어 준다. 취사장, 잔디밭, 삼림욕장 등 관련 시설도 잘 조성돼 있다. 더 안쪽은 방화동 자연휴양림. 산림문화휴양관과 숲속의 집 등 숙박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야영이 부담스러우면 이곳을 이용해도 좋겠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용성 스님의 생가가 있는 죽림정사, 매달 1,6일에 서는 번암장, 논개생가 등도 가볼 만하다. 천천면 월곡리 ‘블루 새들’(Blue Saddle)은 대형 승마리조트.1인당 4만원에 승마체험을 할 수 있다. 실내수영장과 스쿠버 풀 등도 갖췄다. 경부고속도로→비룡분기점→대전∼통영간고속도로→장수 나들목→장수읍→방화동. 장수군 산림문화관광과 063)350-2312, 방화동 가족휴양촌 353-0855. #눈길 가는 곳마다 비경-충북 단양 충주호로 흘러드는 물줄기가 곳곳에 빼어난 계곡을 만들어 놓은 충북 단양에는 소선암·다리안·황정산·남천·천동 등 캠핑장들이 구석구석 잘 정비돼 있다. 그중 단연 앞줄에 서는 곳은 소선암캠핑장이다. 두악산 품에 안겨 있는 소선암캠핑장은 원목으로 지은 화장실과 깔끔한 개수대 및 음수대를 구비하는 등 오토캠핑장으로서 손색없는 면모를 갖추고 있다. 원목 야영 데크는 무료로 제공된다. 캠핑장 뒤쪽 2시간 코스의 두악산 등산로에서는 때묻지 않은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소선암자연휴양림 쪽으로 약 500m쯤 올라가면 유명한 ‘냉천약수터’가 나온다. 선암계곡뿐 아니라 금강산 봉우리를 축소해 놓은 듯한 사인암, 세 개의 봉우리가 남한강에 유유히 떠 있는 도담삼봉과 석문, 그리고 옥순봉과 구담봉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단양(대강)나들목→5번 국도 신단양방면→북하삼거리(충주·청주방면)→단성면삼거리(문경·방곡도예촌방면)→소선암자연휴양림. 단양군청 문화관광과 043)420-3150. #이런 상품 준비해 가세요 캠핑 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모기와 나방, 깔따구 등 날벌레들. 친환경용품 전문기업인 엔퓨텍은 이런 해충들의 특성을 이용한 전자식 살충기를 출시했다. 충전형은 6만원선, 비충전형은 4만 5000원선. 모기장도 진화했다. 야외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원터치 형식으로 제작됐다.3∼4인용 3만원선. 리펠라이트란 해충방지전구도 등장했다. 전구에 날벌레가 인식하는 파장이 나오지 않도록 특수 액체를 코팅한 제품. 기존 전구 소켓에 사용할 수 있다. #휴양섬 베스트30 한국관광공사는 행정안전부와 공동으로 ‘2008 휴양하기 좋은 섬 베스트30’을 선정, 발표했다. 문화유적이나 빼어난 경관 등 볼거리와 향토음식, 그리고 갯벌체험 등 관광 매력과 함께 편의시설 등도 주요한 고려 대상이었다고 공사 관계자는 밝혔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 [책꽂이]

    ●조선잡기(朝鮮雜記)(혼마 규스케 지음, 최혜주 역주, 김영사 펴냄) 1894년 한 일본인이 혼돈의 조선 풍속과 사회상을 스케치해 엮은 여행담. 양산 대신 우산을 쓴 사람들, 갓을 쓰고 싸움하는 선비들, 소금을 보물처럼 여기는 서민들…. 청국을 꺾고 일본이 조선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방법 등 정치색 짙은 대목도 많지만,1세기 전의 조선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는 묘미가 각별하다.1만 3000원.●이성의 섬(요제프 바이첸바움 등 지음, 모명숙 옮김, 양문 펴냄) 저자는 인공지능 연구의 선구자였다가 훗날 비판자로 돌아선 독일의 저명 전산학자.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할 수 있다는 현대인들의 생각을 비판하며, 인간의 뇌처럼 작동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하는 연구자들에 대해서도 “광기에 가까운 ‘신(神)놀이’를 하고 있다.”고 공박한다.1만 2500원.●고고학의 모든 것(폴 반 엮음, 원형준 등 옮김, 루비박스 펴냄) 투탕카멘의 왕묘를 발견한 하워드 카터 등 세계 고고학계의 이정표를 마련한 학자들의 면면에서부터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고학 유적지 등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500여장의 천연색 사진과 유적지 지도가 곁들여졌다.2만 4800원.●마지막 강의(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살림 펴냄) 지난해 9월 말기 췌장암 환자로 마지막 강의에 나선 모습이 유튜브에 올라 미국사회를 울렸던 카네기멜론대 랜디 포시 교수 이야기. 절망 대신 재치와 낙천적 유머로 일관한 그의 마지막 강의가 삶을 긍정하는 힘을 갖게 한다.1만 2000원.●거짓말의 딜레마(클라우디아 마이어 지음, 조경수 옮김, 열대림 펴냄) 인간은 왜 거짓말을 하는지, 남자와 여자의 거짓말은 어떻게 다른지, 아이들은 어떻게 거짓말을 배우고 사랑과 연애의 과정에서 거짓말은 왜 필요한지 등을 분석했다. 위작과 위폐, 통계의 오류와 함정, 사진과 영상의 조작, 동식물의 놀라운 속임수, 정치인들의 거짓말, 거짓말 탐지기 체험….‘거짓말’과 관련한 흥미로운 관심사들을 총망라했다.1만 3800원.●중국 부동산 생생리포트(중국부동산연구회 지음, 디지털미디어리서치 펴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출신으로 구성된 ‘중국부동산 연구회’가 중국 부동산 사업 노하우를 총망라했다. 투자, 개발, 재테크, 조세, 법률 등 다양한 항목으로 세분해 중국 부동산 제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1만 8000원.●량샤오민, 중국경제를 말하다(량샤오민 지음, 황보경 옮김, 은행나무 펴냄) 중국의 경제학자인 저자가 경제개방 이후 빠르게 변해가는 중국 경제상황을 대중적 눈높이에서 쉽게 설명했다.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농업에서 엄격한 보호정책을 펴고 있을 뿐 아니라 국민의 민족주의 정서도 강해, 여전히 현대화의 진통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1만 3000원.
  • “실용주의 거봉의 삶 자유롭게 그렸죠”

    “실용주의 거봉의 삶 자유롭게 그렸죠”

    “‘다산’이라는 거대한 준봉을 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습니다. 이제는 그 어떤 소설도 쉽게 써내려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는군요.” 소설가 한승원(69)이 조선 실학자 정약용의 삶을 파고든 역사소설 ‘다산’(전2권, 랜덤하우스)과 시집 ‘달 긷는 집’(문학과지성사)을 동시에 펴냈다. 다산의 제자 초의 스님을 다룬 ‘초의’(2003), 다산의 둘째형 정약전을 그린 ‘흑산도 하늘 길’(2005), 다산의 후학 김정희를 복원한 ‘추사’(2007)에 이어 내놓은 시리즈 완결편이다.‘초의’ ‘흑산도 가는 길’ ‘추사’는 모두 ‘다산’을 위한 전주곡에 불과했던 셈이다. ●작가 스스로 유폐된 삶 선택… 토굴 짓고 글쓰기 “10여년 전 다산 공부를 시작하면서 소설로 한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다산은 18년간 전남 강진에 유배돼 갇혀 살면서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500권이 넘는 책을 쓰면서 철저히 자기 삶을 승화시킨 분이었습니다.” 작가 또한 스스로 ‘유폐의 삶’을 택했다.”나를 가두면 뭔가 큰 일을 이루지 않을까 싶어 13년 전 서울을 떠나 전남 장흥으로 내려와 토굴을 짓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그 결과물이 바로 ‘다산’입니다.” 소설은 다산이 결혼 60주년 회혼일(回婚日)에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시작된다.“‘다산’을 시간 순으로 다루진 않았습니다. 다산의 임종을 전후해 시간을 넘나들며 영상적인 기법으로 처리했습니다.” 역사소설의 딱딱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배려라는 작가는 “그림으로 치면 남종화처럼 자유롭게 썼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정조 임금의 승하 후 1801년 서용보의 간언으로 다산이 형제들과 함께 잡혀들어가는 장면에서 다시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참 선비의 길을 걷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등 긴박감 넘치는 구성이 가능했다. 물론 다산이 오랜 유배를 통해 절대 고독을 체험하고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적 고뇌도 생생하게 그렸다. “다산은 유학자였지만, 천주교·불교·도교 등 다른 종교와의 교유가 폭넓게 이뤄진 까닭에 사상체계가 방대하죠. 때문에 이들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다산의 저술은 물론 천주교의 천주실의·칠극, 도교의 노장서적, 유마경·화엄경의 불경, 사서삼경 등 200권 이상을 독파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다산은 실용주의를 앞세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특히 재조명되고 있는 인물”이라며 ”다산은 성인의 뜻에 따라 백성을 이끄는 것을 ‘사업’이라 했고 이런 사업을 하는 사람을 선비로 봤다.”고 설명한다.“단지 밥밖에 모르고, 그 천덕스러운 밥을 위해 백성들을 속이는 실용주의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각권 1만원. ●샤머니즘과 불교가 융합된 원초적 생명의 세계 함께 나온 시집 ‘달 긷는 집’은 소설을 집필하는 틈틈이 쓴 71편의 시를 묶은 것.‘열애일기’(1991),‘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1995),‘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1999)’에 이어 네번째로 펴낸 시집이다. 내 몸을 소진시켜 진리를 추구한다는 뜻이 담긴 ‘달 긷는 집’은 한과 샤머니즘, 불교가 융합된 원초적 생명의 세계를 진솔하게 그려냈다.“우주를 화려하게 색칠하는 것이 꿈인 나는/피어나는 것이 아니고/혈서처럼 세상 굽이굽이에 시를 쓰는 것입니다.”(시 ‘꽃’중에서) 꽃과 바다, 구름 등 천하만상(萬象)이 불교적 색채 속에 오롯이 휘감겨 있다. 작가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경계 없이 사유하는 것인 만큼 굳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며 “내 시는 특별한 기교가 없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밝혔다.“그동안 쓰고 싶었던, 인간의 근원적인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어요. 문학으로 삶의 시원을 탐구해보자는 것이지요.” 7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물돌이’가 만든 풍요의 땅 경북 영양 삼지마을

    ‘물돌이’가 만든 풍요의 땅 경북 영양 삼지마을

    전북의 ‘무진장’(무주·진안·장수)에 흔히 비유되는 경북의 오지가 이른바 ‘BYC’(봉화·영양·청송)다. 구주령과 황장재, 창수령 등 높은 산마루에 갇혀 있는 영양은 그 중 한 곳. 한국전쟁이 발발한 줄도 모르고 있다가 시장에 장보러 나온 주민을 통해 그 소식을 들었다는 수비면 오무마을로 상징되는 대표적인 오지다. 시인 조지훈, 소설가 이문열 등 걸출한 문인들을 낳아 문향으로도 불리는 이곳에 삼지(三池)마을이 있다. 이제껏 삼지마을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본 사람이 많지 않아 세상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비단조개를 닮은 독특한 풍광이 압권인 삼지마을을 다녀왔다. ●빼어난 조형미… 조개 뚜껑 열면 인어가 튀어 나올 듯 사물은 종종 바라보는 높낮이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곤 한다. 삼지마을이 그렇다. 평탄한 길에서 보는 일상적인 모습도 아름답지만, 공중에 뜬 새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더없이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한다. 구도의 완벽함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미술가의 정교한 작품을 보는 듯도 하다. 마을 인근 산자락에서 본 마을 풍경은 딱 비단조개의 형상이다. 뚜껑을 열면 비너스를 닮은 인어가 긴 머리 휘날리며 튀어 나올 것만 같다. 삼지들녘을 씨줄날줄로 휘돌아 간 마을길은 경계선 역할을 담당하며 주변과 완벽하게 분리되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람이 거주하기 훨씬 전 삼지마을은 안동 하회마을이나 예천 회룡포 등과 같은 물돌이동이었다. 일월산에서 발원한 대천(大川·현재의 반변천)이 옥산(玉山·현재의 코끼리산)에 부딪혀 마을을 돌아나가며 그림같은 물돌이동을 만들어 놓았다. 세월이 흘러 산은 물에 길을 터줬고, 마을에는 더 이상 물이 돌지 않았다. 그 자리가 뭍이 되면서 삼지들녘이 형성된 것. 현재는 원댕이못(元塘池)과 탑밑못(塔底池), 바대못(坡大池) 등 세 연못이 남아 그 시절을 웅변하고 있다. 삼지마을이란 이름은 바로 이 세 연못에서 비롯됐다. ●낙향한 선비들이 숨어살던 곳 영양군청 관계자에 따르면 이런 지형을 학술적으로는 곡류단절지라고 하는데, 풍경이 수려하고 토지가 비옥해 조선시대 선비들은 이런 곳을 택해 낙향하는 경우가 흔했다. 영양의 옛 지명이 ‘선비들이 숨어살기 좋은 곳’이란 뜻의 고은(古隱)이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군지(群誌) 등에서는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한 사람을 한양의 세도가 조원이라고 적고 있다. 그의 입향 이후 삼지마을은 한동안 한양 조씨 집성촌을 이루기도 했다. 조원의 후손 조임이 한양 조씨 종택인 월담헌(月潭軒)을 축조하면서 지은 ‘월담헌기’를 보면 그가 이곳 풍경에 얼마나 심취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나.“이런 경치는 백리, 이 백리를 가더라도 구하기 어려운데 이같이 가까운 곳에서 얻게 되었으니 조물주가 공교로움을 다하고 기이함을 나타내어 백년을 감추어 두었다가 오늘이 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삼지마을을 보는 몇가지 방법 삼지들녘은 높낮이를 달리하며 한 바퀴 돌아봐야 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영양읍내에서 삼지2리 이정표를 보고 삼지마을로 향하다 곡식 저장창고 뒤편으로 돌아가면 높다란 언덕이 나온다. 이곳이 첫 번째 전망 포인트. 모양새가 한반도 지형을 닮은 탑밑못과 정자 등 가장 수려한 삼지2리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삼지2리 마을 위쪽 여기산 중턱의 연대암이 두 번째 전망 포인트다. 일월산의 올톡볼톡한 산마루가 감싸고 있는 듯한 삼지들녘 풍광이 빼어나다. 삼지2리에서 하원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원댕이못과 만난다. 이곳은 평지에서 보는 게 외려 낫다. 새벽안개가 연못을 감쌀 때면 뒤쪽의 초록 융단이 깔린 듯한 코끼리산과 어우려져 선경을 펼쳐낸다. 삼지들녘 한가운데 솟아 있는 코끼리 산에 오르면 바대못과 영양 읍내가 조망된다. 예전엔 올톡볼톡한 모양새가 옥구슬을 꿴 듯하다 해서 ‘옥산’이라 불렸다.8월이면 각 연못에서 연꽃이 펴 아름다움을 더한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전언이다. 군은 2010년까지 삼지마을에 삼지연꽃테마파크를 조성할 계획이다. 연꽃을 중심으로 한 생태테마공원이다. ●많은 문인 배출한 문학의 고장 영양은 다수의 문인을 배출한 ‘문향(文香)의 고장’이다.‘승무’‘봉황수’ 등 주옥같은 시로 사랑받고 있는 조지훈, 최초의 시 전문지 ‘시원’을 창간한 오일도,‘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저자 이문열 등이 이곳 출신이다. 이들의 생가와 문학관 등을 찾아 문학기행을 떠나도 훌륭한 테마여행이 될 듯하다. 일월면 주실마을은 조지훈의 생가와 시비, 문학관 등이 있는 곳. 영양읍 감천마을에서는 오일도 시인의 어린시절을 느껴볼 수 있다. 청송과 이웃한 석보면 두들마을에서는 소설가 이문열의 문학이력을 되짚어볼 수 있다. 전통 음식과 예절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전통문화프로그램들도 마련돼 있다. 글 사진 영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서안동나들목→34번 국도→월전→31번 국도→영양→삼지2리 표지판→삼지마을. 영양군청 문화관광과 680-6067. ▶잘 곳 : 영양에서 구주령을 넘어가면 한화리조트 백암온천이 나온다. 국내 최고의 수질로 정평이 나있다. 지하 400m에서 용출되는 원천도 볼거리. 객실 1박과 조식(2명), 온천사우나(2명) 등으로 구성된 패키지를 이달 말까지 주중 7만 2000원, 주말 8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787-7001. 검마산자연휴양림(682-9009)도 깨끗하다. ▶맛집 : 최초의 한글요리책과 동명인 두들마을 ‘음식디미방’에서는 책에 나오는 요리법대로 만든 한정식을 선보이고 있다.2만∼5만원. ▶주변 볼거리 : 입암면 연당리의 선바위와 남이포는 영양의 상징과 같은 곳. 남이포 뒤편의 서석지는 보길도의 부용원, 담양의 소쇄원과 더불어 한국 3대정원으로 꼽힌다. 수비면 수하계곡은 수달과 은어가 뛰논다는 울진 왕피천의 상류. 계곡 안쪽에 반딧불이 천문대가 있다. 무속인들이 ‘접신(接神)의 땅’이라 부르는 일월산은 차로도 오를 수 있다.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4) 담배 가게와 담배 피우기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4) 담배 가게와 담배 피우기

    김홍도의 ‘담배 써는 가게’다. 이 그림에는 남자 넷이 등장하는데, 각각 하는 일이 다르다. 먼저 아래쪽을 보자. 아래의 오른쪽에 있는 남자는 넓은 잎사귀를 펼쳐서 다루고 있다. 그 아래에 차곡차곡 쌓인 것은 담뱃잎이다. 필자는 담배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지만, 위 그림이 담뱃잎을 가공하고 있는 것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위쪽을 보자. 위쪽 왼편의 사내는 작두로 장방형으로 생긴 물건을 가늘게 썰고 있다. 오른편의 사내는 작두질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이 사내가 오른팔을 기대고 있는 커다란 나무 상자는 돈궤로 보인다. 물론 돈 이외의 다른 것을 넣기도 할 것이다. 작두 앞에는 둥근 물건과 삼각형 물건이 있는데 무엇인지 모르겠다. 작두로 썰고 있는 물건도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왼손으로 꽉 누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흔들리면 안 되는 물건이다. 추측건대 그림 아래쪽의 웃통을 벗은 사내가 차곡차곡 쌓은 담배를 작두로 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래쪽 왼편에 있는 탕건을 쓴 사내는 부채질을 하면서 책을 읽고 있다. 아마 소설 따위의 가벼운 책일 것이다. ●18세기 엽초전·절초전 상권 분쟁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은애전(恩愛傳)’에 참고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 강진현의 처녀 은애는 자신이 정조를 잃었다고 헛소문을 낸 노파를 죽인다. 이 사건을 보고 받은 정조는 은애를 정녀(貞女)라고 하면서 살려주고 이덕무에게 ‘은애전’을 짓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은애가 아니고, 정조의 말이다. 옛날 어떤 사내가 종로 거리의 담배 가게에서 패사(稗史)를 읽는 것을 듣고 있다가 이야기가 영웅이 실의하는 곳에 이르자, 홀연 눈초리가 찢어지도록 눈을 크게 뜨고 입에서 거품을 내뿜다가 담배 써는 칼을 집어 들고 패사를 읽는 사람을 찔러 그 자리에서 죽이고 말았다. 패사는 곧 역사소설이다. 영웅인 주인공이 좌절하는 대목에 이르러 소설에 빠진 사내가 흥분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칼을 들어 소설을 읽어주는 사람을 찔러 죽이고 만 것이다. 정조는 아마도 이 사건을 심리했거나 아니면 관계되는 문서를 읽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담배 가게에서 소설을 읽었다는 것이다. 담배 가게는 약국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조선후기 서울 시민의 카페와 같은 곳이었다. 여기서 고담(古談)을 하기도 하고 또 소설책을 읽기도 했다. 그림 위쪽의 돈궤에 기대어 있는 사내나 책을 읽고 있는 사내는 아마도 놀러 온 사람일 터이다. 담배를 썰어서 파는 곳을 절초전(切草廛)이라 한다. 조선 후기에 와서 담배가 널리 퍼지자, 조정에서는 담배 판매의 독점권을 갖는 엽초전의 개설을 허락하였다. 그 뒤 담뱃잎을 그냥 팔거나 큼직하게 잘라 파는 엽초전에서 담뱃잎을 사다가 피우기 좋도록 가늘게 썰어서 파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것은 엽초전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18세기 이래 엽초전과 절초전 사이에 상권을 둘러싼 분쟁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절초전도 국역(國役)을 담당하기로 하고 절초의 독점판매권을 얻었다. 하지만 뒤에 절초전의 절초 독점 판매권은 더 영세한 상인들이 절초를 파는 것을 막는다는 문제를 야기해 1742년 폐지된다. 그러다 1791년 육의전(六矣廛) 이외 모든 시전의 금난전권(禁亂廛權)을 없앤 신해통공으로 인하여 다시 담배를 썰어 파는 가게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위 그림은 아마도 신해통공 이후의 사정을 반영한 것일 터이다. ●송시열은 금연론자… 정조·정약용은 골초 담배는 17세기 초에 들어온 것이다.‘인조실록’ 16년(1638) 8월 4일조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몰래 담배를 심양에 보냈다가 청나라 장수에게 발각되어 크게 힐책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는 병자호란(1636)으로부터 불과 2년 뒤이고, 소현세자를 비롯한 많은 조선 사람들이 심양에 억류되어 있을 때였다. 이 당시 심양의 청나라 사람도 담배를 좋아해 뇌물로 가져갔던 것인데, 청 태종이 담배의 중독성에 주목해 금지하였으므로 담배를 가지고 간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날의 기사를 보자. 이 풀은 병진년(1616)·정사년(1617) 어림에 바다를 건너 들어왔다. 피우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리 성행한 것은 아니었는데, 신유년(1621)·임술년(1622) 이래로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위의 기록에서 보듯 담배는 1616년에서 1617년 사이에 처음 전래되었고, 불과 5년 뒤인 1621·1622년간이면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퍼졌던 것이다.‘인조실록’ 6년(1628) 8월19일조에 광주(廣州)의 선비 이오(李晤)의 응지 상소를 보면 정묘호란 이후 조정에서는 청나라의 공격에 대한 대비책은 세우지 않고 “여러 신하들이 비변사에 모여 농담이나 지껄이고 담배만 피울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바,1628년이면 이미 담배가 조정의 관료들 사이에도 널리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담배에 관한 문헌은 무수하게 많다. 그 문헌들은 대개 두 가지로 갈린다. 담배 유해론과 담배 유익론이다. 담배가 유해하다는 것은 그것의 중독성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명인들 역시 담배에 관해 서로 의견이 갈린다. 대동법을 만들었던 명재상 김육, 고문의 명인이었던 이식, 그리고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인 송시열은 모두 담배를 싫어한 금연론자였고, 역시 고문의 대가였던 장유,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 군주인 정조, 그리고 정조를 능가하는 학문의 태두 정약용은 담배 유익론자이자 골초였다. 이들이 남긴 담배에 관한 글을 읽어보면 요즘과 다를 바 없다. 건강에 나쁘고 냄새가 심하게 난다는 것이 담배 유해론자의 견해이고, 그럴 수도 있지만 심화(心火), 곧 스트레스를 다스리기에 담배가 인간에게 이롭다는 것이 담배 유익론자의 견해다. ●흡연도구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까지 담배의 해로움이 널리 퍼지고, 또 조정에서 이따금 담배 금지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담배는 17세기 이래 일상에서 없앨 수 없는 필수적 기호품이 되었다. 서울 시전에는 절초전만 생긴 것이 아니라, 흡연도구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까지 등장했던 것이다.‘동국여지비고’란 책을 보면, 군기시와 약현의 연죽전(煙竹廛)에서는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인 담뱃대와 담배통을 팔았고, 종로의 도자전(刀子廛)에서는 장도, 은비녀, 부인네의 패물, 금은 가락지와 함께 담배통을 팔았다고 한다. 이교익(1807∼?)의 작품 ‘쉴 때 피우는 담배 한 모금’에서처럼 심심하면 손이 가는 것이 담배다. 담배 역시 일종의 ‘마약’이다. 담배의 중독을 이덕무는 ‘한죽당섭필’에서 아주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우연히 여러 사람과 각각 좋아하는 것을 말하였다. 한 사람이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담배·술·고기 셋이지요.“ 내가 물었다. “만약 다 갖추지 못한다면 어떤 것을 빼겠는가?” “먼저 술을 빼고, 다음에 고기를 뺄 겁니다.” 내가 그 다음 뺄 것을 묻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담배를 뺀다면 산들 무슨 재미가 있겠소.” 담배가 없다면 살아 있어도 재미가 없다는 말은, 사실 흡연이 쾌락을 유발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담배의 중독 상태를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필자는 건강상 문제로 담배를 끊었지만, 몇 년 전까지는 골초 중의 골초였다.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 한 갑,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 갑, 그리고 오후 6시부터 잠들 때까지 한 갑, 이렇게 하루에 세 갑을 피웠다. 집에도, 연구실에도, 들고 다니는 가방에도 여러 종류의 담배가 늘 구비(?)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문헌을 읽다가도 담배에 관한 기록이 나오면 모아 두었다. 만약 건강이 허락된다면 다시 그 향기를 맡아보고 싶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소설 ‘꽃피는 고래’ 펴낸 김형경

    소설 ‘꽃피는 고래’ 펴낸 김형경

    “고도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우리 사회가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떠나보내고,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중견 작가 김형경(48)이 3년만에 장편 ‘꽃피는 고래’(창비)를 펴냈다. 그는 2006년 심리치료 산문집 ‘천개의 공감’을 냈을 정도로 상처를 치유하고 달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섬세한 글솜씨의 작가다. 제목 ‘꽃피는 고래’는 고래잡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꽃이 핀다.’라는 말에서 빌려 왔다. 고래가 급소에 작살을 맞고 도망가다 지쳐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작살에 급소를 맞았을 때 마치 피를 뿜어내는 듯한 마지막 숨을 뜻한다. “원래 구상은 환경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10년 전부터 자료를 모아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소설을 쓰려고 하니 환경이라는 주제가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많아 좀더 구체적인 주제인 고래로 잡았습니다.” 소설은 열일곱살 소녀 ‘니은’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마음의 구멍을 어떻게 메워나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크나큰 상실감을 채울 수 없는 니은은 아빠의 고향 처용포를 찾는다. 울산시 장생포를 모델로 한 허구의 공간인 처용포는 소설 속에서도 국내 유일의 고래잡이 항구가 있는 곳이자 대형 공업단지로 변모하는 장소로 그려진다. 그곳에는 포경 금지령으로 잡지 못하는 ‘신화처럼 숨 쉬는 고래’, 금지령이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장포수 할아버지, 일흔이 넘어 한글을 배우러 다니는 왕고래집 할머니가 있다. 니은은 장포수 할아버지와 함께 배를 손보면서, 한편으론 왕고래집 할머니의 한글교실 숙제를 도와주면서 점점 마음 속 슬픔을 다스리는 법을 알아가게 된다. “주인공 니은뿐 아니라, 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세대의 등장인물들 모두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집 할머니 역시 고래잡이에 토대한 삶을 잃어버린 인물이지요.” 부모를 잃는다는 극도의 상실을 경험한 니은은 고래에 대한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잃어버리고 지내던 처용포에서 상실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차츰 키우던 개를 잃은 후 이십년 동안 울지 못한 엄마와 처용포 이야기만 나오면 자못 진지해지는 아빠의 말 못할 상실도 차츰 이해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고향에서 멱을 감고 얼음배를 타던 강물이 칠팔년 후 흰 거품이 끓고 나쁜 냄새가 나는 더러운 물로 변해버린 데서 느꼈던 상실감도 이 소설의 하나의 모티프가 됐다.”고 털어놨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바탕으로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왔다며 다음 작품 구상에 대해 귀띔했다.“전문가의 시대가 되면서 오히려 총체성을 잃어가고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역학과 풍수, 한의학 등에 흥미를 느껴 조금씩 공부하고 있는데 꽤 재미 있었습니다. 우주와 인간에 달통한 인간인 조선시대의 선비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9800원.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양성지는 아첨꾼 아닌 주체적 실학자”

    “양성지는 아첨꾼 아닌 주체적 실학자”

    규장각은 조선 정조가 즉위한 1776년 개혁정치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고자 세웠지만, 단초는 300년 이상이나 앞선 세조 9년(146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규장각 설치를 건의한 사람은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1415∼1482)였는데, 정조는 규장각을 출범시키면서 그의 아이디어가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한영우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가 내놓은 ‘양성지-조선 수성기 제갈량’(지식산업사 펴냄)은 눌재를 다룬 최초의 본격적인 평전이다.1992년부터 4년 동안 서울대 규장각 관장을 지낸 한 교수는 “눌재를 되돌아보게 된 것은 정조의 정신적 스승의 하나가 그였다는 사실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양성지는 눌재라는 아호처럼 더듬거리는 말투에, 집현전 직제학으로 있으면서 동료들이 사육신이나 생육신으로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할 때 세조의 총신(寵臣)으로 자리잡아 훗날 사림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듣지 못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어눌함을 극복하고자 항상 글로 뜻을 드러내어 ‘아는 것이 있으면 말하지 않고는 못배긴다.(知無不言·지무불언)’는 평을 들을 만큼 자신을 끊임없이 독려한 인물이다. 세조와는 시정개혁과 국방정책의 적극적인 조언자이자 이론가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 인물이기도 했다. 눌재를 제갈량에 비유한 것도 세조이다. 한 교수는 “1970년대 초 ‘눌재집’을 읽고 그 애국적이고 주체적인 경륜에 놀랐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면서 “조선 선비들은 주체성이 없고 중국을 지나치게 숭상한 사대주의자들이었다고 단정한 것은 나뿐 아니라 당시 학계의 일반적인 분위기였으나 ‘눌재집’은 나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뜨렸다.”고 털어놓았다. 한 교수는 눌재를 ‘주체성 있는 실학적 성리학자’로 규정한다. 그는 “눌재의 상소문 대부분은 관념적인 주장보다 병학, 지리, 역사, 문학 등 각 분야의 실용적인 정책 제안을 담고 있다.”면서 “눌재가 추구한 ‘유용지학(有用之學)’,‘경제실용(經濟實用)’의 학문은 18세기 이후 실학의 학문적 토양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눌재 사상의 기본 목표는 ‘자주독립된 부강한 왕조국가의 건설’이었다.”면서 “그는 단군을 전조선왕(前朝鮮王)이라는 역사적 실재인물로 파악하고, 중국과 우리는 제가끔 하늘의 일방(一方)을 차지하여 별개의 건곤(乾坤·구역)을 이루는 나라라고 우리 역사의 독립성을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눌재는 특히 조선은 강토가 본래 요동을 포함한 ‘만리지국(萬里之國)’으로 우리 땅을 수복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군사력의 강화는 물론 명나라 세력이 이 지역으로 뻗어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조의 지나친 부국강병 정책은 지방세력의 희생을 강요하는 부작용을 낳았고, 이런 점 때문에 성종 이후 지방에서 올라온 신진 사람이 눌재를 ‘오직 임금에게 아첨하고 재물을 탐한 노인’으로 보는 근본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한 교수는 분석한다. 한 교수는 “눌재가 300년 만에 망각의 늪에서 빠져나와 위대한 실학자로 부활한 것은 사림 정치가 부작용을 낳으면서 왜란과 호란을 불러오고, 다시금 강력한 지도력과 실용정치를 요구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라면서 “명분보다 실리를 중요시하고, 왕권강화를 옹호하는 실학이 일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그 선구자로 양성지가 주목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3) 떠돌이 장사치의 괴로움, 행상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3) 떠돌이 장사치의 괴로움, 행상

    나는 김홍도의 ‘부부 행상’(그림 1)을 볼 때마다 애잔한 생각이 들곤 하였다. 남자는 지게를 지고 지게 작대기를 들었고, 여자는 광주리를 이고 있다. 남자의 벙거지는 낡아서 너덜거린다. 여자는 아이를 업고 있다. 희한하게도 아이는 처네로 업지 않고 옷 속에 업고 있다. 이들은 부부임이 분명하다. 남편의 지게에는 나무로 엮은 통이 얹혀 있다. 줄로 단단히 묶은 이 물건은 무엇인가, 새우젓인가? 아내의 광주리에 실린 것은 또 무엇인가, 푸성귀인가. 그리고 둘은 마주보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세금 거두고 행상 면허증도 발급 ‘포구의 여자 행상들’(그림2) 역시 김홍도의 작품이다. 이 그림에 붙은 강세황의 제사는 이러하다.“밤? 게? 새우? 소금/ 광주리와 항아리에 가득 채우고, 새벽녘 포구를 떠나니, 해오라기 놀라 난다.” 포구에서 이것 저것 이고 지고 도시로 행상을 떠나는 아낙네들을 그린 것이다. 조선시대는 농업사회다. 농민은 정주민이다. 농토를 갈아 곡식을 심고 거두어 땅에 붙어 산다. 제 땅이 있다면 친숙한 고향을 떠나 멀리 낯설고 물선 이향을 돌아다니며 오늘은 이곳에서 내일은 저곳에서 잠을 청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행로가 만약 반복적 일상을 벗어나 전에 보지 못했던 지리와 문화를 경험하기 위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그림 (1)의 등에 진, 광주리에 인 변변치 않은 물화를 보라. 옷차림 또한 남루하다. 제 손으로 끊지 못한 나머지 고생스레 이어야 하는 목숨을 위해 이토록 타향을 떠돈다면, 그것은 저주에 가깝다. 행상의 역사는 오래다.“달아, 높이곰 돋으샤, 어기야 머리곰 비취 오시라.”로 시작되는, 행상을 나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의 심정을 절절히 노래하는 ‘정읍사’는 저 아득한 옛날 백제의 노래가 아닌가. 행상은 역사 이래 없었던 적이 없었다. 조선시대에도 당연히 행상은 있었다. 하지만 떠돌이 행상이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에 세금을 내야 하고, 또 면허증을 받아야 했다.‘경국대전’ 호전 잡세조에 이런 규정이 있다. 행상에게는 노인(路引·여행 허가증)을 발급해 주고 세금을 거둔다. 육상(陸商)은 매월 저화(楮貨) 8장, 수상(水商)은 대선(大船)이 100장, 중선이 50장, 소선이 30장이다. 조정에서는 행상을 등록시키고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행상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것을 억제했던 것이다. 조선조의 지배층 양반들은 상행위를 아주 천한 것으로 보았다. 명종 21년 윤연(尹淵)이란 사람이 장연현감(長淵縣監)에 임명되었는데, 사관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윤연은 여염의 천인(賤人)이다. 그 아비가 행상이었기 때문에 남에게 천대를 받았다. 때문에 그는 과거를 보러 가서 이름을 올릴 때 자기 아비를 적어내지 않고 아저씨 이름을 적어냈다. 이 같은 사람이 오히려 조정 반열에 끼었으니, 어찌 통분할 일이 아닌가.(‘명종실록’ 21년 6월21일). 적어도 명종 때까지는 행상을 하던 상인의 자식도 과거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행상을 천시하는 관념은 너무나 깊었다. 그것은 유가가 원래 상업을 물질적 생산 없는 이익추구로 본 데 기인한 것이다. 행상을 천시한 것은, 그것이 또 고되고 위험한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행상은 물화를 갖고 움직이기 때문에 강도의 표적이 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10년 윤4월10일조에 의하면, 황해도의 강도가 인가를 불태우고, 행상을 살해하며 재물을 강탈했다고 하고,‘성종실록’ 2년 11월7일조에는 행상에게 강도질을 한 죄로 개성부의 백성 최백이 등 3명이 참형을 언도받고 있다. 행상을 노리는 도둑은 조선시대 내내 존재했다. 숙종 때 관료인 민유중(1630∼1687)의 말을 들어보자. 민유중은 명화적이 민가를 약탈한 사례를 열거하고 난 뒤 이렇게 말한다. ●보부상 단결해 강도 재물 강탈 막아 전주의 행상 몇 사람은 정읍현에서 숙박하다가 도적의 칼에 찔렸고 그 중 한 사람은 즉사했습니다. 영남 사람은 공물을 받으러 금산 땅을 지나다가 밤에 화적을 만났는데, 한 사람이 살해되었습니다. 남원, 장수의 백성 10여명은 소금을 거래하기 위해 전주의 시장으로 가서 관문에서 10리 떨어진 들에서 묵었는데, 초저녁에 도적이 돌입하여 말 7필과 말에 실었던 재물과 포목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두 사람은 피살되고 두 사람은 다쳤습니다. 사실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행상은 지극히 위험한 직업이었다. 보부상의 단결 역시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의 반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행상의 활동에 대해서 전하는 자료는 드물다. 하지만 조선후기가 되면 행상이 상당한 수로 불어났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여러 자료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창협(1651∼1708)은 ‘홍천에서 인제에 이르기까지 길에서 만난 사람은 대개 과거를 치러 가는 유생이었고, 또 장사꾼으로서 영동 지방에서 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짓는다.’라 하고 “나그네 되어 대관령 동쪽 길 가노라니/ 서쪽으로 오는 사람은 많이 만나누나/ 책상자를 진 과거 칠 선비거나/ 생선을 한 바리 실은 행상들이로다.”라는 시를 쓰고 있다. 김창협은 강원도 홍천에서 인제로 넘어가는 길에 동해 바다 생선을 잔뜩 실은 행상들을 만났던 것이다. 하지만 전국의 사정이 꼭 같았던 것은 아니다. 남구만이 1670(현종 11)년에 올린 상소에 의하면, 충청도 청주는 배가 다니는 길과 멀어 장사할 길이 없고, 시장에는 곡식을 사고파는 행상이 없다고 하였으니, 지역에 따라 행상이 오가며 상업이 활발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던 모양이다. 양반이 상인을 천하게 여기는 풍조를 식견 있는 사람들은 비판하였다. 정조는 이렇게 말한다. 중국의 경우 벼슬하던 사람이 비록 재상까지 지냈다 하더라도 은퇴하면 모두 행상을 하기에 아주 가난한 데 이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대로 경상(卿相)을 지낸 집안이라 하더라도 한 번 벼슬길이 끊어지면, 자손들이 가난해져 다시 떨치지 못하여 심지어 유리걸식하는 사람이 나오기까지 하니, 단지 압록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거늘, 풍속이 같지 아니함이 이와 같다. ●상인 천시 양반들도 소금장사로 연명 정조뿐만이 아니라,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유수원과 박제가 역시 양반이 상업을 천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양반 역시 상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한데 양반이 상행위에 뛰어든 경우도 없지 않다. 홍성민(1536∼1594)은 임진왜란 직전 함경도 부령으로 귀양을 간다. 이내 빈털터리가 된 그는 먹을 것을 마련할 방도가 없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바닷가의 싼 소금을 사서 곡식이 넉넉한 오랑캐 땅에다 팔아 보란다. 홍성민은 장사치가 될 수 없다며 망설이다가 주림을 참지 못하고 소금 장수를 시작한다. 한데 이 소금 장수가 재미있다. 그는 종에게 몇 되의 곡식을 주어 90리 밖의 바닷가에서 소금을 사서 함경도 북쪽 120리 길을 다니며 곡식과 바꾸어 오게 하였다. 곱이 남는 장사였다. 일시에 굶주림이 해결되었지만, 곡식이 떨어지자 종을 또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장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다가 괴로워하다가 마침내는 장사가 잘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장사하는 일이 양반인 그를 얼마나 괴롭혔던지, 급기야 때때로 혼자 허허 웃다가 자신을 불쌍히 여기기도 하는 등 아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홍성민은 종을 시켜서 한 상행위에 대해서조차 더할 수 없는 치욕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는 귀양에서 풀려나면 한 사람의 착실한 농군이 되어 밭을 갈고 김을 매어 가을에 거두어서 나라에 바치고 자기 한 몸을 먹여 살리겠노라 다짐한다. 사회의 지배층이 상업에 대해 이렇게 뿌리 깊은 수치감을 갖는 사회에서 상인에 대한 처우가 어떠했을까? 상업이 발달할 수가 있었을까.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경기, 보육대상 어린이 생후 1년→3년 미만으로

    경기도는 맞벌이 가정의 자녀보육 문제 해결을 위한 ‘가정보육교사제도’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서울신문 5월2일자 15면 보도)에 따라 보육대상 어린이를 확대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다고 5일 밝혔다. 우선 보육대상 어린이를 생후 12개월 미만에서 36개월 미만으로 확대하고 참여 가정에 보육료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다. 가정보육교사가 어린이를 돌봐주는 기간도 기존 ‘생후 24개월까지’에서 ‘부모가 희망 때 만 5세까지’로 수정했다. 또 이 제도에 참여할 수 있는 가정보육교사 자격도 ‘도내 거주자로서 1·2·3급 보육교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보육경력이 2년 이상인 자’로 제한했으나 앞으로는 출산 및 육아 경험이 있는 보육교사의 경우 보육경력 유무와 관계없이 참여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다음달부터 가정보육교사제를 이용하는 취업 여성에게 자녀 보육료 및 가정보육교사 이용 지원금을 일부 지원하고 보육교사에게도 처우개선비와 특수근무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도는 지금까지 가정보육교사와 각 가정 연결, 가정보육교사 관리 등의 역할을 해 왔으나 이 제도를 이용하는 부모나 보육교사에게 재정적 지원은 하지 않았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夜~好 그곳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夜~好 그곳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여행은 밤에도 멈추지 않는다. 은은한 경관 조명이나 교교한 달빛 아래 낮보다 빼어난 자태를 뽐내는 여행지가 적지 않다.‘꿈결 같은 야간 여행´에 걸맞은 여행지를 모았다. # ‘별 헤는 밤´ 경기 양주 송암천문대 송암천문대는 스페이스센터와 천문대, 호텔급 숙소 등을 갖추고 있는 천문테마파크다. 첨단우주체험기기로 가득 차 있어 낭만과 즐거움을 찾는 연인, 가족 모두에게 제격인 별 여행지. 천문테마파크 너머 북한산까지 이어진 능선 위로 총총하게 박혀 있는 별들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 천문대 아래 스페이스 센터에는 사계절의 별자리를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플라네타륨과 우주공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 그래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챌린저 러닝센터 등이 갖춰져 있다. 개관시간 주중 오전 11시∼오후 10시, 주말은 오전 10시∼오후 10시. 천문대 이용권+케이블카 왕복 탑승권+플라네타륨 관람권 어른 2만 6000원, 청소년 2만 3000원.3인 가족은 패밀리티켓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6만 1000원. 양주시청 문화체육과 031)820-2121, 송암천문대 894-6000∼2. # ‘천년의 도시´ 전북 전주 한옥마을 한옥마을은 1930년대 일본인의 세력 확장에 반발한 인사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면서 시작됐다. 이 일대 한옥군은 주변 일본 가옥들과 대조를 이루는 한편, 화산동 선교사촌 등 서구식 건물들과 어우러지며 기묘한 도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해질 녘 한옥마을 야경 탐방에 나서면 호젓하게 도보여행을 즐길 수 있다. 경기전을 기점으로 도보로 10분 거리에 풍남문, 전동성당, 오목대 등의 볼거리는 물론 감칠맛 나는 오모가리탕 집들이 늘어선 가리내길 등 전주를 대표하는 맛집들이 늘어서 있다. 덕진공원 야경도 빼놓으면 서운하다. 여름이면 연꽃이 만발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을 불러모은다. 전주시청 문화관광과 063)285-5151, 전주한옥마을 282-1330. # 화려한 신라의 달밤 경북 경주 경주 야경의 백미로 꼽히는 임해전지(안압지)와 월성, 계림, 첨성대 등은 국립경주박물관과 대릉원 사이 7번 국도 1.5㎞ 구간에 모여 있다. 천천히 걸어도 20분 정도면 닿는 거리. 저마다의 야경도 화려하거니와 이들을 자연스레 이어주는 산책로 또한 무척 운치가 있다. 임해전지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7시30분 공연이 펼쳐진다. 신라문화원에서 마련한 ‘달빛·별빛 역사기행’도 인기 프로그램. 매월 보름을 전후한 토요일에 경주시 유적지를 둘러본다.14일,21일 출발. 참가비는 별빛 1만 4000∼1만 6000원, 달빛은 1만 6000∼1만 8000원. 경주시청 문화관광과 054)779-6061, 신라문화원 774-1950. # “밤이 멋져부러∼” 전남 여수 수많은 섬과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이 어우러지며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여수는 밤만 되면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야경의 하이라이트는 유람선 투어. 해맞이 포인트로 유명한 오동도의 음악분수대 앞에서 출발해 자산공원∼해양공원∼돌산대교∼국동 어항단지를 1시간가량 돌아본다.10월 말까지 운항한다. 여수의 또 다른 관광명소인 진남관은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 단층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향일암은 한국 4대 관음기도처 중 한 곳. 암자 내 울창한 동백나무숲과 아열대 식물이 금오산 주변 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항아리 속처럼 오목한 방죽포 해수욕장도 가볼 만하다. 여수시청 관광진흥과 061)690-2037. # 달빛 아래 젖는 효심(孝心) 수원 화성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수원시 화성은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배어 있는 곳.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가까이에서 어머니 헌경왕후(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살기 위해 2년8개월에 걸쳐 축성했다. 저녁이 되면 수원화성 전체가 은은한 조명 속에서 한껏 매력을 드러낸다. 특히 정조의 어좌가 있었던 방화수류정의 용연은 ‘용지대월(龍池待月)’이라 해서 수원8경의 하나로 꼽힌다. 하늘에 뜬 달이 용연과 술잔에 비치고, 다시 그 달들이 연인의 눈동자에 뜬다는 것.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무예 24기 시범, 장용영 수위의식 등 다양한 상설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창룡문 근처에 활쏘기체험장, 용차탑승장 등이 있다. 활쏘기 체험은 초등학교 1학년 이상이면 누구나 가능하다.1순(5발)당 1000원. 용차는 연무대앞과 팔달산 강감찬 장군 동상 앞을 순환하는 코스로 운영된다.1500원. 수원시청 문화관광과 031)228-2068, 수원시화성사무소 228-4410∼4, 수원시티투어 256-8300. # 야(夜)한 곳 찾아가는 여행상품 ▲‘감춰진 보석 김천! 별빛기행’은 김천시에서 지난달 31일 처음 시작한 야간 프로그램. 해 지는 직지사 경내를 둘러보는 산사체험과 경쾌한 음악 분수쇼를 즐길 수 있다. 솔항공여행사 02)2279-5959. ▲‘야(夜)∼한 밤에 섬&크루즈’는 퇴근 후 데이트를 즐기고픈 커플들을 위해 저녁시간대에 유람선을 출발시킨다. 인천 연안의 고즈넉한 섬, 세어도에서의 도보 데이트와 서해 야경을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현대마린개발 032)885-0001. ▲‘별 따라 소리 따라 남도 선비여행’은 첫날 전남 장흥 천문문학관에서 별 헤는 밤을 체험하고, 이튿날 밤 목포 루미나리에 거리 야경을 감상한다. 롯데관광개발 1577-3700.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 [이대통령 취임 100일] 정치원로 3인의 제언

    [이대통령 취임 100일] 정치원로 3인의 제언

    국민의 압도적인 기대를 안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취임 100일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해결책은 무엇일까? 국정경험이 풍부한 원로들은 누구보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환골탈태’를 주문했다. 차가운 채찍질보다는 따뜻한 손길을, 높은 곳의 영광보다는 겸손한 눈물을, 임기응변식의 변명보다는 진솔한 사과를 망설이지 말아야 뒤틀어진 민심을 돌려놓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이만섭 전 국회의장 ▶미국산 쇠고기 국면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무조건 재협상을 해야 한다. 정부가 미국의 입장에 서서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국민 입장에 서서 강력하게 (미국에) 요청해야 한다. 쇠고기 협상 파동은 정부가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일어난 측면이 있다. 협상 과정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했어야 한다. ▶정부는 장관과 청와대 수석 4∼5명에게 인사 책임을 묻기로 했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장관 중에 누구도 사표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정상이 아니다. ▶정치권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해 사태가 장기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가 미 쇠고기 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갖고 싸움만 했다. 이제라도 18대 원 구성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원 구성이 늦어지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을 것이다. ▶정부가 최근 한반도 대운하 등에 대해서도 정면돌파 의지를 내비쳤다. -정책은 국민과 함께 가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 무시됐을 때 이번 쇠고기 파동과 같은 일이 또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 대통령이 취임 100일 동안 미국과 일본, 중국을 방문했다. 새 정부의 외교 방향은 어떻게 평가하나. -4강외교를 강화하는 방향이 옳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해내려면 고도의 외교적 기술을 갖추고 균형 잡힌 감각으로 임해야 한다. ▶많은 국민들이 새 정부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새 정부가 민심을 추스르고 원래의 목표인 경제 살리기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우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할 것을 주문한다. 두 번째로 친박 진영은 물론 야당을 국정파트너로 대우하며 포용정치를 펴기를 바란다. 세번째로 대통령이 혼자 다 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권력을 이양해 장관들이 소신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줬으면 한다. 네 번째로 부동산 투기하는 장관과 참모를 교체해 깨끗하고 국민에게 책임감 느끼며 일할 수 있는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경우에라도 국민을 설득하고 함께 가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평소 개헌론 등에 대한 주장을 펴왔다. -대통령이 혼자 모든 것을 하는 것보다 권한을 내각에 분배, 분산시킬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김용태 전 靑비서실장 ▶청와대가 쇄신안을 마련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성난 민심을 가라앉힐 수 있으리라고 보는가. -쇄신안을 요약하면, 청와대와 내각을 정무형으로 바꾼다는 얘기인 것 같다. 그런데 그것으로 여론이 무마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지금은 내각 총사퇴 수준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야권은 전면 재협상을 요구한다. -외교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런 예가 별로 없었던 게 아닌가. 국제적으로 이단아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대신 국내 정책을 통해 보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각이 총사퇴한다면 후임 인선 문제가 또 다시 생길 것 같다. 청와대가 구인난에 허덕이게 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이)사람을 가리는 것 같다. 가령 과거 정권에서 일을 했다고 해서 발탁하는데 배제하는 요소가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일을 잘 했고, 검증된 사람이라면 발탁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인사들 가운데 코드에 안 맞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그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능력이 검증된 사람에게는 응당 협조를 구해야 한다. ▶미 쇠고기 사태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대통령’ 이미지가 부각되지 않고 있다. -경제 살리기가 이 대통령의 주된 공약인데, 국민들의 기대는 성급한 반면 세계 경기 환경은 좋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서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팀이 잘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국민들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기름값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데, 정부는 유류 절약정책마저 쓰지 않고 있다. 방치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걱정되는 부분이다. ▶경제팀 역시 인적 쇄신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경제팀 중에도 고소영 인사, 강부자 내각의 대표적 인물들이 있다. 민심을 수습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면 배제하는 인사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내각과 청와대 수석에 교수 출신들이 많아 정무능력이 취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교수 출신이라고 무조건 배제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선비들만 데려다 쓴다면 문제가 있다. 정책에 뛰어난 사람과 정무에 능한 사람을 골고루 써야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할 점은 내각을 총괄할 국무총리와 청와대 수석들을 총괄할 대통령실장에게 대통령이 힘을 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문희상 전 靑비서실장 ▶이 정부가 곤경에 처한 가장 큰 이유는. -공자는 신뢰를 잃으면 국가 자체가 없다고 했다. 지금 국민이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다. 민생경제를 못 챙겼다. 정부가 잘못을 100% 인정해야 한다. 쇠고기 수입 장관 고시를 철회하고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재협상이 가능한가. -못 할 게 없다. 미국이 안 받더라도 요구해야 한다. 우리 국민보다 미국이 더 중요한가? ▶촛불시위 확산을 볼 때, 민심진단 시스템에 문제점이 있다고 보나. -시스템보다는 신뢰의 문제다. 제도로 고친다고 하지만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국민 전체를 상대로 크게 항복선언을 해야 한다.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외교라인 시스템의 문제는 없었을까. -외교부 관료들은 프로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외교관들이 쇠고기 협상에서 미국과 신경전을 펴는 등 버티다가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보하라고 지시해 물러선 것은 5살짜리 아이들도 안다. 외교라인 교체는 지엽적인 문제다. ▶고소영, 강부자 내각 파문도 여론 악화에 기여했을까. -불신을 가중시켰다. 대대적인 인적쇄신이 필요하다. ▶대통령으로서 국정실책을 자인하면 레임덕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판단, 망설인다는 관측도 있는데. -국정실책을 자인한다고 해서 레임덕이 오지는 않는다. 그런 자세라면 국민을 섬기는 게 아니다. ▶인적쇄신이 민심수습에 도움이 될까. -대폭적인 인적쇄신은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단계적 처방은 필요없다.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을 비정치인으로 채운 아마추어리즘이 국정을 난맥상에 빠뜨렸다는 지적도 있는데.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비판은 참여정부에서 더 했다. 인적자원이 부족하다는 변명은 필요없다. 특정 지역뿐 아니라 특정 교회 얘기까지 나오니까 국민이 절망하는 것이다. 국민이 못 믿으면 다 아마추어다.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등에서도 저항이 재현될 가능성이 큰데. -똑같은 문제다. 국민 공감대가 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국민 70%가 반대하는 대운하를 밀어 붙인다면 저항을 받을 것이다. 공기업은 설득의 문제다. 프로그램을 잘 짜서 국민을 설득하면 오히려 박수를 칠 수 있다. ▶인적쇄신 방향은.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중용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성과지향적 리더십 민심외면 위기초래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현 정부가 위기에 처한 근본 원인을 이명박 대통령 특유의 리더십에서 찾았다. 그는 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차가운 기능주의’로 규정했다. 과업지향적 리더십으로서 인간 개개인의 생각과 인권보다는 성과를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이 대통령은 상고를 나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기업에서 잔뼈가 굵다보니 인생관 자체가 실적과 성과를 중시하는 성향으로 굳어졌다.”고 했다. 최 소장은 “과업지향적 리더십은 대통령이란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미덕이 될 수도 있었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로는 마이너스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실패한 최고경영자(CEO) 출신 정치 지도자들이 보이는 공통적 약점”이라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이 대통령이 위기를 인식하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했다. 이 대통령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구세주형 지도자’를 지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이 대통령이 국민저항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게 아니라 극복해야 할 시련과 장애물로 인식하는 신앙인적 사고를 할 우려가 있다.”면서 “이런 인식은 과도한 낙관주의를 낳으면서 국민에게 오기로 비칠 수 있다.”고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과 비교도 눈길을 끈다. 최 소장은 “루스벨트도 욕심이 많고 성취지향적이고 독선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그는 국민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언론과 수시로 소통함으로써 성공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21) 나룻배와 강 건너기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21) 나룻배와 강 건너기

    김홍도의 그림 ‘나룻배와 강 건너기’를 보자. 나룻배가 두 척이다. 이 배는 바닥이 넓은 평저선이다. ●조선의 배는 바닥이 넓은 평저선 원래 조선의 배는 바닥이 넓은 평저선이다. 일제시대 이후 평저선이 사라지고 현재 우리가 보는, 바닥이 삼각형인 일본식으로 바뀌었다. 다만 유원지 같은 곳에서 두세 사람이 타는 작은 배의 바닥을 보면 모두 평평하다. 안정성을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배가 과연 조선 배의 전통을 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아마 지금도 조선 배의 전통에 따라 평저선을 뭇는 장인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림에는 나룻배가 둘이다. 위쪽 나룻배에는 사람 열 둘과 소 두 마리가 타고 있다. 소까지 태웠으니, 꽤나 큰 배다.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자. 고물 쪽의 두 사람은 사공인데, 큰 배라 힘이 드는지 둘이 같이 노를 젓는다. 바로 그 앞에 더벅머리 총각 하나와 맨상투의 상한(常漢)이 앉았는데, 마주 앉아 곰방대를 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행이 분명하다. 두 사내 앞에 아이를 동반한 아낙네 한 사람이 있다. 머리에 올린 것은 옷이다. 이런 식으로 머리에 옷을 올리는 장면은 신윤복의 그림에도 나오니, 이 당시 풍습이었던 것이다. 아낙네의 앞에 삿갓을 쓴 사내가 있는데, 아마도 상한일 것이다. 그 뒤에 갓을 쓴 양반이 있다. 양반은 뒤에 길쭉하게 포장한 것을 지고 있는데,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그 옆에 소 두 마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서 있다. 등에 잔뜩 진 것은 땔나무다. 서울의 저자에 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소 사이에 더벅머리 총각이 곰방대를 물고 있고, 왼쪽 소의 왼쪽에 다시 삿갓을 쓴 사람이 있다. 아마도 삿갓을 쓴 두 사내와 총각은 땔나무를 팔러가는 일행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에는 갓을 쓴 선비가 앉아 있고, 또 그 왼쪽에는 갓을 쓴 양반이 장죽을 물고 있다. 아래의 나룻배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역시 오른쪽 끝에는 사공이 등을 돌리고 노를 젓고 있고, 그 왼쪽에는 망건 바람의 사내가, 그 오른 쪽에는 갓을 쓴 선비가 있다. 삿갓을 쓴 사내도 셋이 있고, 아이를 업은 아낙도 있다. 맨 왼쪽에는 학자풍의 양반이 점잖게 앉아 강을 보고 있다. 배의 왼편에는 빈 길마를 얹은 소가 한 마리, 말이 한 마리다. 그리고 왼쪽 소의 옆에 검은 물체가 보이는데, 역시 말로 보인다. 어린 총각이 말을 돌보고 있다. 두 척의 나룻배는 조선사회의 상하, 남녀를 모아놓고 있다. 김홍도의 다른 풍속화에는 사람들의 표정이 있는데, 이 그림에 등장하는 26명의 인물은 표정이 없다. 무료해 보인다. 인물들이 너무 작게 그려져 그렇다고. 천만에! 화가는 작은 얼굴일지라도 표정을 드러내 보인다. 아마도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말수가 많은 사람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갑자기 조용해진다. 더구나 여기는 강 한 복판이다. 탁 트인 넓은 공간, 그것도 일상에서 늘 경험하지 못한 공간에 오면 그저 강물을 바라볼 뿐이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 속에서 멍해지는 느낌! 이형록(1808∼?)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또 다른 그림 ‘나룻배’를 보자. 배가 두 척인데, 위쪽의 배는 햇볕을 가리는 포장이 쳐져 있고, 배에 탄 사람은 모두 갓을 쓴 양반들이다. 아래쪽의 배에 탄 사람과 구분이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토록 다양한 신분의 많은 사람, 그리고 장사꾼과 소와 말까지 태워 동시에 두 척의 배가 강을 건너는 곳이라면 한강의 어느 나루에서 출발한 나룻배일 것이다. 서울의 나루터라면 어디인가. 나는 이것을 밝혀낼 아무런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말이 난 김에 한강의 나루터에 대해서 몇 마디 덧보탤까 한다. ●광나루·노량진에 별감 첫 배치 ‘태종실록’ 14년 9월 2일조에 의하면 처음으로 광진(廣津)과 노도(露渡)에 별감을 두었다고 하는데, 곧 지금의 광나루와 노량진이다. 이 기사에서 경기관찰사는 경기도 안의 임진·낙하(洛河)·한강에는 별감을 두고 기찰을 하지만, 금천·노도·광주·광진·용진(龍津)에는 기찰하지 않아 범죄자들이 태연히 드나든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지명은 ‘낙하’를 제외하면 지금 서울 사람들이 잘 아는 곳들이다(노도는 노량진, 광진은 광나루, 용진은 용산이다.‘한강’은 지금의 한남동 앞의 강을 말한다).‘연산군일기’ 11년 5월 9일조를 보면 한강·마포·광진·두모포 등의 나루가 보이는데, 마포와 두모포가 새로 추가된 것이다. 마포는 지금의 마포고, 두모포는 지금의 옥수동 앞이다. 다시 ‘선조실록’ 26년 10월 3일조를 보면, 한강 나루 중 남쪽 길과 통하는 광진·한강·노량·양화 나루는 모두 대로(大路)지만 그 외의 삼전도·청담·동작은 폐기해도 상관없는 소소한 나루터라고 하고 있다. 나루에도 랭킹이 있었던 것이다. 한강에 이렇게 나루가 많이 생긴 것은 한양이 조선의 수도가 되면서부터이다. 한양이 수도가 되니, 한강은 절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은 충청도와 강원도를 경유하기에 두 지방의 세금을 받아 옮기는 길이었고, 또 전라도 일대의 세금과 물자를 바닷길로 옮겨서 다시 서울로 운송하는 길이었다. 한강은 또 서울을 방어하는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한강은 동시에 길을 끊는 장애물이었다. 자연히 강을 건너기에 편리한 곳, 또는 꼭 건너야 할 곳에 자연스럽게 나루가 생겼다. 국가에서는 또 그런 곳에 나루를 설치해 관리하기도 하였다. 국가가 관리하는 나루터의 사공은 나라로부터 일정한 토지를 지급받아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생활한다. 이런 나루터를 이용하는 사람은 나룻배를 타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효종 6년의 ‘실록’ 기사에 의하면, 원래 한강의 동작, 노량, 광진, 삼전도, 양화도, 공암 등 나루터에는 병자년 이전에는 모두 위전을 지급하고 나룻배를 책임지고 갖추도록 했는데, 병자호란 뒤 이 위전들을 한강 가에 사는 사대부들이 강제로 점유한 탓에 뱃사공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먹을 것도 안 생기는 일에 열심일 사공은 없다. 배는 만들지도 않고 수리도 않는다. 결과는 뻔하다. 여행객들이 강을 건널 수 없다. 효종은 다시 위전을 찾아서 주고 경기감사에게 나루터의 관리에 신경을 쓰라고 명령한다(‘효종실록’ 6년 10월 7일). 그 뒤로도 나루터 관리를 두고 별별 일이 다 벌어졌다. 나루터의 사공은 천민이었다. 나루를 떠날 수 없는 그 직업은 고달팠다. 한밤중에라도 강을 건너는 양반이 있으면 배를 내어야 한다. 예컨대 현종 때는 종실 몇이 궁노를 데리고 한강 너머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다가 동작 나루에 와서 나룻배를 빨리 대령하지 않았다고 사공을 마구 구타했다(‘현종실록’ 5년 9월 9일)고 하니, 사공의 괴로움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모든 나루터가 국가 직영인 것은 아니었다. 개인이 돈을 받고 강을 건너게 해주는 사선(私船)도 있었다. 사선은 관선(官船)에 비해 서비스가 좋았던 모양이다. ‘세종실록’ 25년 10월 11일조를 보면, 노도·삼전도·양화도의 관선은 무거워 사람과 말이 쉽게 건널 수 없고, 사선은 가볍고 빨라 쉽게 건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선을 이용하지만 사선은 삯이 비싸 백성들이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한강 이외의 강의 나루에는 보통 근처 마을에서 배를 장만하고 사공을 따로 두었다. 사공은 봄 가을로 삯을 몰아서 받고 따로 뱃삯을 받지는 않았다. 나룻배로 넓은 한강을 건너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숙종때 선비 80명 한강서 몰사 숙종 44년에 과거를 치르고 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비들 80명이 한강 나루를 건너다가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몰사한 사건이 있었다.“배가 뒤집혀 빠졌을 때 애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강 언덕에 퍼져 차마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숙종실록’ 44년 11월 4일). 나루라고 하면 뭔가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나루를 건너는 것은 먼 길을 떠나는 것이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이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경림 시인의 ‘목계나루’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목계 나루의 구름과 바람과 방물장수는 모두 정주하지 않는, 늘 떠나는 것들이다. 나루라, 어쩐지 서러운 말이로구나.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섬 192곳 경제활성화 3243억 지원

    행정안전부는 7일 192개 섬에 경제활성화와 주민생활환경 개선비 3243억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2008년 도서종합개발 사업계획’을 7일 확정, 발표했다. 도서종합개발사업은 낙후된 섬 지역에 생활·생산 기반, 문화·복지 기반시설 등을 조성해 도서주민의 소득과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사업으로 1988년부터 10년 단위로 계획을 수립해왔다. 행안부는 “1,2차 10개년 계획은 인프라 구축에 무게를 둔 반면 이번 3차 계획은 그간의 성과를 토대로 도서지역의 경제활성화와 실질적 소득향상에 목표를 뒀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도서의 여건과 특성을 고려해 관광·소득 기반시설 등에 집중 투자하는 유형화·특성화 사업을 추진해 관광객 유치, 지역주민 소득증대 등에 주력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등 6개 부처는 192개 섬,465건의 사업에 3243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행안부는 생활, 생산, 문화관광 시설 등 141개 섬이 추진하는 243개 사업에 1443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행안부는 “도서 지역의 경제활성화 및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업을 대상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원해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지도층이 선비정신 계승을”

    “그 옛날 선비가 가장 먼저 자기를 닦고 솔선수범했듯이 지식인과 지도층이 수신제가(修身齊家)하는 것이 선비정신을 이어받는 길입니다.” 김병일(64) 전 기획예산처 장관이 선비정신 전도사로 나섰다. 김 전 장관은 7일 퇴계학진흥협의회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샹제리제 웨딩홀에서 개최한 월례 조찬모임에서 ‘21세기 한국사회와 선비정신’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선진사회의 덕목으로서 ‘선비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부산 메세나운동 확산

    올 들어 부산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기업들의 ‘메세나운동’이 확산되고 있어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와 신세계백화점은 7일 부산 해운대 웨스틴 조선비치호텔에서 오는 9월 개최되는 부산비엔날레 행사에 2억원을 지원하는 협약을 체결한다고 6일 밝혔다. 신세계가 지원하는 2억원은 2000년 부산비엔날레가 본격 출범한 뒤 단일 기업으로 가장 큰 액수이다. 이에 앞서 지역 기업체인 부산은행도 지난달 29일 부산국제연극제 조직위원회에 향후 5년간 1억원을 지원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부산은행은 앞서 3월에는 부산시립예술단과 가마골소극장에 5000만원과 2500만원을 후원했으며, 지난해에는 지역 예술단체 지원을 위해 5억원을 내놓았다.이 밖에 지역 의류업체인 세정㈜이 3억원을, 부민병원이 요산 김정한 선생 기념사업회 운영비로 3000만원을 기부하는 등 지역 업체들의 메세나운동 참여가 늘고 있다. 부산시도 지난달 29일 메세나 활성화를 통한 부산의 문화예술 저변 확대를 위해 부산상공회의소, 한국예총 부산시연합회와 양해 각서를 체결하고 ‘1기업 1문화예술단체 자매 결연’을 추진하는 등 메세나 운동 확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최근 들어 기업체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메세나사업 참여 업체들이 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지역 순수 문화예술 단체들의 창작 활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Local] 고교생 과거시험 체험행사

    부산 동래구의 고등학생들이 7일 조선시대 선비의 과거시험 체험에 나선다. 부산 동래구청은 7일 동래구의 4개 고교에 재학 중인 1학년 학생 35명을 대상으로 ‘장원급제 과거시험장 체험행사’를 갖는다고 5일 밝혔다. 학생들은 동래향교 대성전에서 갓을 쓰고, 괴나리봇짐을 멘 채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상경하기 전에 치렀던 의식인 ‘고유례(告由禮)’를 거행한 뒤 버스를 타고 서울로 이동한다. 학생들은 또 성균관에서 성균관대 최영갑 교수 등으로부터 과거시험과 성균관의 역사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서울대를 방문, 규장각과 수의과학대의 실험실습장을 찾는 등 캠퍼스 투어를 할 계획이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靑 직원들 “구둣방 아저씨 돕자”

    청와대 직원들이 뇌종양으로 병상에 누운 ‘구두닦이 아저씨’를 돕기 위해 팔을 걷었다.1일 청와대에 따르면 청와대 직원들은 30일 뇌종양으로 병원에 입원한 강해구(39)씨의 병원비에 보탬을 주기 위해 560만원을 모금해 전달했다. 현재 추가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강씨는 2004년부터 청와대 안에 설치된 구둣방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월 1만원씩을 받고 구두 수선과 구두닦이 일을 해 왔다.91년 뇌종양 수술을 받은 뒤 얼굴이 비뚤어지는 안면장애와 시력장애를 입었다. 이후 큰 문제 없이 지내다가 최근 계속되는 어지럼증에 병원을 찾았다가 뇌종양 재발 진단을 받았다. 다음주 수술을 받을 예정인 강씨는 임신 7개월의 아내와 6살 딸,4살 아들을 두고 있다. 한 청와대 직원이 구둣방에 갔다가 강씨 얼굴의 상처를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강씨가 “다시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내가 울고불고 난리다.”라는 사정을 털어놓았다.이 직원은 강씨의 딱한 사정을 청와대 내부 게시판을 통해 알렸고, 직원들은 자발적인 성금 모금 운동을 벌였다. 한 직원은 “꼭 돌아오시라.”며 1년치 구두수선비를 미리 내놓았고, 일부 부서는 간식비 등을 몽땅 전달했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최고과학기술인상’에 김기문 교수 등 4명

    ‘최고과학기술인상’에 김기문 교수 등 4명

    ‘한국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상금이 3억원에 달하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 4인이 선정됐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현대중공업 민계식(66) 부회장과 포스텍 김기문(54) 교수, 서울대 최양도(55) 교수, 울산의대 송호영(54) 교수를 선정했다고 20일 밝혔다. 2003년 개편된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은 자연과학과 공학, 농수산, 의·약학 등 4개 분야에서 매년 최대 4명의 수상자를 선발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상으로 수상자에게는 대통령 상장과 3억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공학, 자연과학, 농수산, 의·약학 분야에서 각각 선정된 수상자들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이같은 영광을 안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공학분야 수상자인 민 부회장은 ‘으뜸가는 선비는 상이나 명예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상사망명’(上士忘名)을 수상소감으로 밝히며 “연구한 결과물들이 제품화되는 것을 보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기문 교수는 위아래가 열려 있는 통 모양의 화합물인 ‘쿠커비투릴’ 동족체와 기능성 유도체 합성법을 최초로 발견해 약물전달과 촉매, 바이오칩, 나노소자, 다공성물질 합성 등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열며 초분자화학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 교수가 2000년 ‘네이처’에 발표한 키랄 다공성물질 연구는 900회 이상 인용돼 순수 국내 연구업적 중 최다 피인용을 기록하고 있다. 농수산분야의 최양도 교수는 ‘유전자 이식을 통한 초다수확성 생명공학 벼’를 개발해 독일 바스프 플랜트사이언스에 기술을 수출했고 가뭄이나 저온 등 환경 스트레스에 잘 견디는 슈퍼 벼를 공동 개발해 인도에 기술을 이전했다. 최 교수는 “학생들이 밤을 새우면 선생이 상을 타는 것 같다.”고 겸손해하면서 “유전자조작작물(GMO)은 국내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일인데 이번 수상이 그런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의·약학 분야의 송호영 교수는 피복된 팽창성 금속스텐트와 제거할 수 있는 스텐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식도와 위장관, 눈물관, 혈관, 요도, 기도, 담도의 양성 및 악성 협착증을 개복수술 없이 치료하는 새로운 이론을 확립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한옥마을 개장 오후 10시로 연장

    서울시는 우리나라 고유의 야간 정취와 풍류를 알리기 위해 10월31일까지 남산골 한옥마을 관람시간을 오후 10시(기존 오후 8시)까지로 연장한다고 18일 밝혔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매일 저녁 피리, 해금, 아쟁 등 전통악기와 판소리, 민요 등 공연이 열리고 호롱불 아래서 아낙네의 다듬이질과 선비가 글 읽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또 한지 공예, 탁본, 매듭 공예 등을 배울 수 있는 전통공예 체험교실이 매일 운영된다. 양반, 수문장 등이 입던 전통복식을 입고 사진촬영을 해 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된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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