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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8) 경남 하동군 화개면 삼정·의신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38) 경남 하동군 화개면 삼정·의신마을

    벽소령 대피소의 북쪽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이고, 남쪽 초입은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삼정 마을’, 그러니까 벽소령 등산로를 기준으로 남과 북에 각각 ‘삼정’이란 똑같은 이름의 동네가 있는 셈이다. 마천의 삼정은 지난 호에 소개했던 대로 음정, 양정, 하정을 합친 이름이고, 화개의 삼정은 대성리 안에 속한 작은 마을이란 게 다를 뿐. 어디에서 시작하든 산 밑까지 바짝 들어선 이 마을들 곁을 따라 산행에 나서야 하는데, 마천 삼정(음정)이 벽소령까지 6.7㎞인 반면 화개 삼정은 고작 4.1㎞로 그 거리가 대폭 줄어든다. 다만 화개 삼정에는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므로 버스 종점인 의신에서 치자면 이 역시 6.8㎞. 따라서 남이든 북이든, 마천이든 화개든,‘삼정’을 거쳐 벽소령으로 오르는 길은 비슷비슷한 편이다. 굳이 걷는 맛을 따지자면 임도가 잘 뚫린 마천 쪽보다는 오롯한 산길이 남은 화개 쪽 길이 조금 더 나을 듯도 하다. ●의신서 벽소령까지 6.8㎞ ‘화개면지’에 따르면 의신은 대성리의 중심 마을로 화개에서도 사찰이 가장 많았던 불교의 요람지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의신사’ 혹은 의신의 암자에서 도를 닦은 ‘의신조사’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의신 윗마을 삼정은 삼각등, 말안장터 등 ‘세 곳의 길지가 있어 이곳에 묘를 쓰면 세 사람의 정승이 나올 것’이라 하여 삼정 혹은 삼점이 되었다 한다. 삼정에는 벽소령 등산로 말고도 빗점골, 왼골, 사태골, 절골 등의 샛길이 주능선까지 이어지는데 그 중 빗점골은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최후 격전지이기도 하다. 슬하에 9남매를 둔 채 빗점골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조성오(77)옹은 “지리산 산신령의 은총” 덕분에 산삼을 무더기로 캐는 횡재를 하고 20년 전쯤 의신마을의 가장 끝, 그리고 마을에선 거의 처음으로 ‘운해산장’이란 민박집을 열게 된다. 정확히는 전쟁이 끝나고 원래 살았던 집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의신에서 삼정을 지나 벽소령을 넘나들던 길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남녘에서 서울을 오가던 가장 짧은 길 중 하나였다. 가깝게는 남해의 소금가마를 지고 마천으로 넘나들던 길이기도 하다. 조옹의 장남과 차남은 국립공원 대피소가 생기기 전까지 그 길목에 간이천막을 치고 막걸리며 부침개를 팔았다. 그 대가로 묻혔던 샘물을 찾아내고 등산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환경지킴이 역할을 자처해 왔다. 이들의 부침개 냄새를 맡고 멀리 선비샘에서부터 “지짐 해 놔라!”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 등산객들도 있을 정도였다고. 산꾼들의 목을 적셔 주던 막걸리는 부인 최다엽(73)씨의 솜씨다. 지금도 운해산장에선 지리산 맑은 물로 빚은 최씨만의 비법을 맛볼 수 있다. ●1950년대까지 남녘서 서울가던 가장 빠른 길 약초꾼으로 살던 1978년까지만 해도 야생곰을 더러 보아 왔다는 조성오 옹은 선대와 자손까지 4대째 의신에 터를 잡고 있다. 그 이는 이곳을 청학동이라고 믿는다.“화개에서 제일 큰 부락인데도 그 난리(6·25전쟁) 속에 희생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그 이유. 게다가 50여 가구 대다수가 식당과 민박을 겸하지만 외지에서 들어와 정착했다 하여 원주민들과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기며 물이며 산이며 숲이며, 여기보다 더 좋은 데가 있습니까?”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큰 만큼 국립공원에 묶여 제한받는 불만과 불편은 별 수 없이 감내해야 한다. 먼당 칠불사가 불에 타고, 빨치산을 피해 몇 번씩 마을에서 쫓겨 가는 등 그보다 더한 고통도 잘 견디어온 까닭이다. #가는 길 경남 하동군 화개면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을 이용한다. 자가용의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장수나들목,88고속도로 지리산나들목, 남해고속도로 하동나들목 등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화개로 진입한다. 이후로는 쌍계사 방면으로 직진하여 길이 끝나는 곳까지 계속 올라간다. 도로 마지막 지점이 의신이고 의신에서 다시 비포장 수준의 소로를 2.7㎞ 올라가면 삼정마을에 닿는다. 글·사진 황소영 자유기고가
  • [부고]

    허성관(전 행정자치부 장관)성탁(전 마산시 선거관리위원)성춘(부산 하나병원 원장)성무(전 청와대 민원제도개선비서관)씨 부친상 이석기(자영업)최정열(〃)씨 빙부상 허정필(삼성병원 레지던트)씨 조부상 25일 부산 인창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51)464-5831 구자춘(푸르덴셜생명 강남지점장)세훈(ING자산운용 부사장)씨 부친상 이언구(현대자동차 부사장)씨 빙부상 정혜원(한컴 광고본부 부국장)씨 시부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2)3410-6914 김철호(전 동광기업 회장)씨 별세 홍진(코캄 이사)홍덕(동광기업 대표)경녀(도로교통공단 연구기획팀장)정아(미국 유학)씨 부친상 남미경(이화여대 청소년커리어 코치)씨 시부상 우상배(한국체대 교수)김은식(에스비티 이사)씨 빙부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010-2293 김동수(경희의료원 교수)명수(한양대 〃)옥주(인하대병원 간호팀장)씨 부친상 24일 경희의료원, 발인 27일 오전 6시 (02)958-9549 이문호(법무법인 프라임 대표변호사)씨 부친상 23일 경남 거창장례식장, 발인 26일 오전 8시 (055)941-1382 유영목(전 현대건설·현대에너지 전무)씨 빙모상 24일 분당 제생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31)781-6723 정창호(농수산홈쇼핑 상품팀장)씨 부친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2)3410-6901 권태식(자영업)태한(광운대 동북아대학장)태일(AMECO 상무이사)씨 모친상 25일 부산 강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51)532-9794 김홍진(숭실대 명예교수)씨 모친상 25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30분 (031)787-1503 권용수(예비역 공군 대령)씨 별세 동준(제이엘계전 사장)동철(기술보증기금 팀장)동숙(경복대 교수)인숙(약사)씨 부친상 정진실(자영업)조성구(GS홈쇼핑 상무)씨 빙부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02)3010-2295 조용연(경찰청 경무기획국장)택연(홍익대 산업디자인과 교수)상연(뉴질랜드 거주)씨 부친상 임서욱(자영업)씨 빙부상 25일 경찰병원, 발인 27일 새벽 (02)3400-1400
  • 영남 옛길 복원 관광자원화

    경북 지역 시·군들이 ‘영남 옛길’ 관광자원화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25일 문경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길 관련 명승 유적으로 지정된 마성면 신현리 ‘토끼비리(명승 제31호)’ 옛길을 복원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문화재청은 최근 문화재 보수 사업지침 조사를 마쳤다. 시는 올해 안에 1차 사업으로 1억원을 들여 토끼비리 500여m 중 위험 구간에 대한 석축 쌓기와 목조 난간 설치를 끝내기로 했다. 내년 2차 사업으로 전망대와 안내판, 편의시설 등을 갖출 계획이다. 조선시대 간선도로인 토끼비리는 한양∼동래간 영남대로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봉화군은 올해 말까지 2억 5000만원을 들여 명호면 이나리 낙동강변에서 청량산 입구까지 2㎞에 이르는 낙동강 예던길(선비들이 거닐던 길)을 폭 2m 내외로 시범 복원한다. 낙동강 예던길에는 신라시대 서예가 김생과 문장가 최치원,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 등에 대한 전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안동시도 역시 올해 말까지 도산면 단천리∼가송리 4㎞ 구간의 퇴계(퇴계) 오솔길을 정비할 계획이다. 한편 경북도는 내년부터 2015년까지 7년 동안 800억원을 들여 ‘영남 옛길’ 생태 탐방로 1000㎞를 복원할 계획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각종 개발로 사라져 가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옛길을 복원하고 역사·문화자원과 연계해 관광자원화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4) 길쌈하는 여인들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4) 길쌈하는 여인들

    김홍도의 ‘길쌈’(그림 1)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고, 또 길쌈하는 그림인 줄은 누구나 다 안다. 그림 2는 유운홍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길쌈’이란 작품인데, 김홍도의 그림과 내용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런 길쌈하는 그림은 제법 많이 전하고 있다. 다만 이제 길쌈이란 말 자체가 거의 사어(死語)가 된 형편이다. 예순이 넘은 분들만이 이 그림을 별다른 설명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이하의 연배, 그리고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길쌈의 과정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모르는 분들을 위해 무명 짜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다. 봄에 목화를 심어 가을에 목화꽃을 거둔다. 목화꽃이 곧 목화솜이다. 목화솜에는 씨앗이 들어 있어서 실을 그냥 뽑을 수가 없다. 씨아를 이용하여 씨를 빼내고, 활로 솜을 탄다. 탄다는 것은, 활줄로 퉁겨서 솜을 부풋하게 부풀리는 것이다. 그 다음 넓은 판대기 위에 목화를 올리고 수수깡 같은 것을 30㎝쯤 잘라 심으로 삼아 손으로 밀면 기름한 솜덩이가 된다. 이것을 물레에 걸어 실을 뽑는다. 이 실을 막 바로 베틀에 올리는 것은 아니다. 그림 1의 위쪽을 보면, 실을 길게 메고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 바르고 있다. 풀이다. 실이 엉키지 않게 풀을 먹이는 것이다. 여자의 오른손 아래쪽에 있는 것은 숯불이다. 풀을 말리는 것이다. 이렇게 풀을 먹이는 것을 베매기라 한다. ●지루하고 고된 노동 노래로 털고 씻어 베매기를 한 실이 날줄이 된다. 이 날줄을 도투마리(베틀 가장 왼쪽에 실을 묶은 부분)에 맨다. 이제 씨줄을 만들 차례다. 날줄을 둘로 나누어 엇건 뒤에 그 사이의 공간으로 씨줄을 통과시키면 천이 되는데, 이 엇건 공간으로 넣는 것이 곧 북이다. 북에 들어갈 씨줄은 따로 감아둔다. 북을 날줄 사이로 통과시키는 것은 씨줄을 넣는 것이다. 씨줄이 들어가면 바디를 내려 쳐서 천을 단단히 짠다. 조선시대의 피륙에는 비단, 삼베, 모시, 무명이 있었다. 무명은 알다시피 고려 말에 문익점이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무명은 농사짓기가 쉽고 피륙을 짜기도 수월하며, 또 보온성이 뛰어나 이내 삼베나 모시, 비단을 물리치고 가장 많이 생산하는 피륙이 되었다. 여기서 무명 짜는 것을 예로 든 것도 무명이 가장 일반적인 옷감이었기 때문이다. 삼베나 모시, 비단은 실을 얻는 과정이 다를 뿐 짜는 원리는 동일하다. 그림 1과 2에 등장하는 길쌈하는 사람은 모두 여성이다. 조선시대의 수신교과서 ‘소학’은 아예 여성을 조리와 직조(織造)하는 존재로 규정하였고, 특별히 귀한 가문의 여성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여성은 두 노동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다.‘소학’이 아니라 해도 조리와 직조를 여성이 맡았던 역사는 아마도 인류 역사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그 기원의 흔적을 찾자면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왕 9년 조다. 유리왕은 나라의 여자들을 두 패로 나누고 자신의 딸을 각 패의 우두머리로 삼게 한다. 그리고 7월16일부터 매일 아침 가장 큰 고을의 뜰에 모여 밤 10시 쯤까지 길쌈을 하게 한다.8월15일에 그 성적을 따져 진 패가 이긴 패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게 한다. 이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온갖 놀이를 벌인다. 이것을 ‘가배’라고 한다. 진 패의 여자는 일어나 ‘회소, 회소’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아름답고 구슬퍼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 ‘회소곡’이란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이 ‘가배’가 뒷날 ‘가위’ 곧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추석의 유래는 직조와 관계가 있었던 것이고, 여성 직조의 역사는 역사의 기원까지 소급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라 길쌈대회 ‘가배´서 한가위 유래 조선시대 옷감을 짜는 것은, 심상한 행위가 아니었다. 인간의 삶은 입을 것, 먹을 것, 비바람을 피하고 잠을 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데 집이야 한 번 지어놓으면 그만이지만, 먹을 것과 입을 것은 그야말로 끊임없이 소모된다. 다시 보충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먹을 것만큼은 아니지만, 입을 것의 무게란 중세 경제에서 엄청나게 무거운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지금 값싼 옷이 지천인 세상에서의 입을 것이 갖는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옷감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옷이 되었고, 나라에 바치는 세금이 되었으며, 집에서 만들지 못하는 물건을 사들이는 화폐의 구실을 하였다. 그리고 먼 길을 떠날 때면 노잣돈이 되었으니, 한 필 무명이야말로 지금의 현금카드와 같은 구실을 했던 것이다. 옷감을 짜는 과정은 고되고 지루하였다. 그 노동의 고통을 여성들은 노래를 불러 잊었다. 수많은 길쌈노래, 물레노래, 베틀노래가 그 증거다. 어디 베틀노래 하나를 들어보자. 경상북도 의성 지방에 전하는 노래다. “시집 갔든 사흘만에/ 과거 빈다 소문 듣고/ 과거 보러 가신 낭군/ 밤낮으로 기다리니/ 밤도 길어 해도 길어/ 길쌈이나 시작하세” 남편은 과거 보러 떠났다. 아내는 기다리기 지루하여 길쌈을 하면서 기다리는 지루함을 잊으려 한다.“송이송이 따 모아서/ 참나무쐐기에 앗아내어/ 대나무활로 타다놓고/ 수수회기로 비벼내어/ 정데정이 치은 가락/ 버드나무 물레에 미여 넣고/ 당태실 같이 뽑아내어/ 파람파람 뽑아다가/ 앞마당에 날아다가 뒷마당에 매어다가/ 베틀이나 차려보세” 목화송이를 따서 활질을 하고 실을 뽑는 과정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그 다음은 베틀을 차리는 과정을 길게 늘어놓고, 그 다음 베를 짜는 과정을 늘어놓는다.“바디집 치는 양은/ 광한루 높은 정자/ 신선들이 모여 앉아/ 장기 바둑 뚜는 듯다/ 북이라고 노는 양은 청학이 알을 품고/ 들락날락 하는듯다/ 잉애라고 바란 양은/ 모시국이 실묵시를/ 놋전반에 받친 듯고” 이렇게 해서 짠 것을 이제 씻어 간직한다.“앞 냇물에 씻어다가/ 줄어 너니 줄 때 묻고/ 손에 드니 손때 묻어/ 고이고이 말라내어/ 은실겅에 얹어 얹고” 남편을 기다린다. “과거 선비 오실까봐/ 동창문을 열어놓고/ 날이 날로 기다려도/ 한양 선비 자취 없네” 아무리 기다려도 한양에 간 남편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나가는 선비에게 물어본다.“말 묻기 어려우나 말 한 마디 물읍시다. 한양서 오시며는 우리 선비 안 옵디까?” 어렵게 말을 꺼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엉뚱하다.“오기사 오드마는 칠성판에 얹혀 와요” 아내는 절망한다.“아이고 답답 내 일이야/ 암행어사 하실까봐/ 고대고대 바랐드니/ 칠성판이 웬일인고” 남편은 과거를 치러 가서 무슨 사건으로 인해 죽어 시체가 되어 칠성판에 얹혀서 돌아온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노동과 가혹한 운명을 이 노래를 부르면서 털고 씻고 잊었다. ●군역 대신 낸 군포… 한과 눈물의 응집물 여성들이 짜낸 무명은 그야말로 한과 눈물의 응집물이었다. 가혹한 노동의 결과라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무명이 ‘군포’란 말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조선후기 사회가 앓아야 했던 거대한 모순이 되고 만다. 군포는 군역을 지는 대신 내는 무명이다. 조선은 원래 16세에서 60세까지의 장정은 모두 군역을 지게 되어 있었다.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면 남는 큰 줄거리는 이렇다. 곧 조선후기에 와서 군역의 의무는 그대로 남지만, 실제 군대는 직업군인으로 채워지기에 16세에서 60세까지의 남성들(양반은 제외)은 모두 직접 군역을 지는 대신 1인 당 2필의 군포를 납부해야만 하였다. 조선은 대가족제도다. 따라서 한 집안에 남자 장정이 6명이면 12필을 내어야 한다. 그 뿐인가. 죽은 사람에게도 군포를 물리는 백골징포, 어린아이에게도 받는 황구첨정이 있다. 군포를 못내고 달아나면 그 동네 사람에게 받거나(동징), 친척들에게 받아낸다(족징). 군포의 징수가 얼마나 가혹했던지 자살하는 사람, 달아나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이 다 있었고, 급기야 마을 하나가 송두리째 없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가혹하게 거둔 군포 위에 조선이란 국가와 양반체제가 서 있었던 것이니, 저 그림 속에 보이는 여성 노동은 조선 후기의 체제모순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Local] 영주, 선비고을 관광상품 선보여

    경북 영주시는 22일 올 가을 관광상품으로 매주 토요일 ‘선비고을 별밤여행’을 운영한다고 밝혔다.23일부터 8차례에 걸쳐 매주 토·일요일 1박 2일 일정으로 마련될 별밤여행은 유적지인 소수서원과 선비촌, 부석사 일원에서 다양한 이벤트 행사와 함께 열린다. 여행 첫날에는 소백산 예술촌에서 모듬북 배우기, 연꽃 도자기 만들기 등 예술 체험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저녁에는 부석사 노을 감상, 저녁 예불 체험 등이 이어지고 예술촌 별밤공연과 캠프파이어도 즐길 수 있다. 둘째 날에는 소수서원과 선비촌 일대를 자유롭게 관람한 뒤 죽령옛길을 걸어보는 체험 행사가 마련된다. 참가비는 성인 1만원, 초·중·고생 6000원이며 영주소백산예술촌(http://cafe.daum.net/yjsbmartv)으로 신청하면 된다.영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함양서 아마바둑 최고수 가린다

    함양서 아마바둑 최고수 가린다

    전국의 아마추어 바둑 애호가들이 선비의 고장 경남 함양에 모여 반상(盤上) 대결을 펼치며 고수를 가린다. 경남 함양군은 21일 함양군 실내체육관에서 23·24일 ‘제1회 노사초배 전국 아마추어 바둑대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함양 출신으로 일제시대 전설적인 천재 국수로 이름을 날렸던 사초(史楚) 노석영(1875∼1945년)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 처음 마련된 대회다. 대한바둑협회와 함양군, 서울신문이 공동으로 주최한다. 올해 처음 열리는 대회인데도 전국 바둑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대회 참가 정원 500명은 접수 10여일만에 일찌감치 마감됐다. 현역 유명 국수와 전국 바둑관련 단체장들도 대거 참석해 대회를 빛낸다. ●프로에 손색없는 ‘실력자’ 64명 모여 유창혁 9단, 문명근·박진열 8단, 김찬후·박성수 3단 등이 참석해 대회장에서 즉석 신청을 받아 지도다면기(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사람과 두는 바둑)와 지도 대국 등을 하며 바둑을 가르치는 자리가 마련된다. 조진호 대한바둑협회장, 한화갑 전 한국기원 총재, 김상수 바둑협회장, 이명덕 여성바둑연맹회장, 노진환 서울신문 사장 등도 참석할 예정이다. 대회는 전국대회부와 지역대회부로 나눠 부문별로 진행된다. 각 부문별로 1조 4명씩이 예선 리그전을 해 조별 상위 2명씩이 본선에 진출한 뒤 토너먼트로 승부를 가린다. 전국대회의 경우 백두부는 아마 랭킹 64위 이내의 연구생 출신만 참가한다. 초등부와 중·고등부는 초단 이상이 출전한다. 대한바둑협회 관계자는 “아마 랭킹 64위 이내면 소속만 아마일 뿐이지 기력은 프로에 손색 없는 실력”이라고 말했다. 시상금은 아마 최강부 우승 500만원부터 경남초등 유치부의 감투상 3만원까지 모두 2080만원을 골고루 준다. 아마 최강부 등 우승자에게는 아마 6단증, 단체전 우승자 1명과 중·고·초등 우승자에게는 아마 5단증을 수여한다. 아마 바둑은 전국대회 최강부에 첫 우승하면 6단을 수여하고 세번 이상이면 아마 최고인 7단증을 준다. 대한바둑협회측은 아마 7단 안팎의 기력이면 바둑 공부를 적어도 10년 이상은 해야 쌓을 수 있는 바둑 고수로 프로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실력이라고 밝혔다. 천사령 함양군수는 “올해 처음 시작하는 노사초배 바둑대회를 전국 최고·최대의 아마 바둑대회로 만들어 우리나라 바둑 발전의 토대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제시대 천재 국수 노사초 기려 노사초는 함양군의 대표적인 명문가 출신으로 일제시대 우리나라 바둑의 맥을 잇는 등 바둑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조남철 국수가 한국기원을 만들기 이전 시대에 활동한 그는 바둑계의 명실상부한 1인자로 전국을 유랑하며 바둑을 즐기면서 평생을 보냈다. 때로는 집이나 논 문서를 걸고 내기 바둑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내기 바둑으로 함양군 개평리 집이 ‘가차압’되는 일이 되풀이 돼 27차례나 등기가 바뀐 일화도 전해진다. 호방한 전투형 바둑으로 패싸움을 좋아해 별명이 노(盧)패, 노상(盧上)패로도 불렸다. 또 상대방과 서로 큰 손해 없이 운치 있게 내기를 두는 선비형 바둑을 즐긴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함양군은 노사초 선생의 이같은 바둑계 공로를 기려 생가가 있는 지곡면 개평마을에 기념비를 건립해 23일 오전 11시 30분 제막식을 한다. 노사초 선생의 생가는 증조부가 호조참판을 지내 노참판댁으로 불리며 경남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함양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HAPPY KOREA] “변화는 두려움 아닌 희망의 시작”

    [HAPPY KOREA] “변화는 두려움 아닌 희망의 시작”

    마을이 변한다. 이에 앞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려고만 했던 주민들의 의식이 바뀐 덕분이다. 이같은 변화를 통해 주민간 소통이 이뤄지고, 잠재돼 있던 자신감도 이끌어내고 있다. ●볼품없던 빈촌이 풍성한 체험마을로 경북 영주시내에서 순흥면 방향으로 6㎞쯤 가다보면 길가에 장승과 조형물 등이 설치된 마을과 마주한다.‘피끝마을’이다. 단종 복위운동을 전개하다 발각돼 순흥으로 유배온 금성대군을 비롯, 죽음으로 항거했던 선비들의 피가 죽계천을 따라 10여리 떨어진 마을까지 흐른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86가구,210명의 주민 소득이 경북 평균 농가소득 3000만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던 빈촌에 변화의 계기가 만들어졌다.2005년 이곳으로 귀농한 박광훈 이장이 농외소득을 높이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 지난해 마을의 장점을 살리기 위한 ‘보물 찾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피끝마을은 소수서원·부석사·선비촌 등의 뛰어난 인문자원을 곁에 두고 있는 데다, 마을 옆에는 대규모 종합레저타운이 조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농촌 고유의 자연환경 등은 보존한 채 만족감과 쾌적성은 높이려는 ‘농촌 어메니티’ 개념을 적용한 체험마을로 변신을 시도했다. 우선 원두막·성황당·물레방아·우물터 등을 복원해 옛 농촌의 모습을 되살렸다. 우물터 복원에는 경험많은 노년층이, 원두막·소공원 조성에는 힘좋은 중년층이, 꽃길 가꾸기는 꼼꼼한 부녀회가 맡는 등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이어 마을회관 2층에 찜질방을 만들었고, 마을 뒷산인 미궐봉 정상에 이르는 왕복 6㎞ 구간은 산림욕장으로 꾸며졌다. 복원된 공간에 맞춰 ‘두레박 물깃기’와 ‘물동이 이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외지에 마을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뒷받침되고 있다.‘허수아비와 추억만들기’라는 마을축제를 열고, 인터넷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박 이장은 “농촌이 어려운 것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다.”면서 “시작은 힘들었지만, 주민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성과가 이어지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탈선공간이 주민 휴식처로 충북 제천시 남천 동현동 남천5통 주민들은 남천공원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제천시내에서 유일한 소나무 숲일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땀과 노력으로 빚어낸 도시 숲이기 때문이다. 참살기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을 통해 공원으로 탈바꿈하기 전에는 통행로는 물론, 조명시설도 없는 버려진 땅이었다. 주변에는 초등학교·유치원·노인정 등이 있지만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차츰 쓰레기 불법투기장으로 변했다. 게다가 밤에는 청소년들 탈선의 장으로 돌변, 주민들이 인근 지역을 지나는 것조차 꺼리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결국 주민들이 나섰다. 지난해 마을기금으로 해마다 한차례씩 실시했던 단체여행을 취소하는 대신,1000여만원을 공원 조성비로 내놨다. 이 돈을 ‘종잣돈’삼아 주민들은 나무를 솎아내고 보안등을 설치해 밝은 환경을 꾸몄다. 공원 입구에는 목책계단을 만들었고 조경수·잔디 등도 심었다. 이어 남천초교에서는 운동기구를 기탁했고 유치원·초등학교 어머니회에서는 벤치를 기증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5000㎡ 규모의 공원은 이렇게 탄생했다. 공원 조성 이후 하루 이용객이 400여명에 이르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에는 아예 공원에서 밤을 지새우는 가족들도 눈에 띈다. 공원 안에는 쓰레기는 물론, 흔하디 흔한 담배꽁초도 찾아볼 수 없다. 하루에도 몇번씩 경로당 어르신들이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기 때문이다. 심규봉 남천5통장은 “공원 조성 후 관리 문제를 걱정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면서 “대형 들마루와 정자도 만들어 어린이들의 학습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영주·제천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절제된 詩語로 죽음을 통곡하다

    절제된 詩語로 죽음을 통곡하다

    옛 선비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슬픔을 좀체 겉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자식을 잃어도, 아내를 잃어도, 지음(知音)을 잃어도 그 슬픔을 애써 삭이며 마음 속으로만 울어야 하는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슴속에 똬리를 튼 애통함을 어찌할까. 마음의 고질이 돼 몸만 갉아먹을 텐데…. 해서 옛 선비들은 죽은 자를 위한 산 자의 슬픔의 노래인 ‘만시(輓詩)’를 짓게 된 것 같다. 조선시대의 만시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풀어낸 ‘옛 사람들의 눈물’(전송열 지음, 글항아리 펴냄)이 나왔다. 한시를 전공한 저자가 조선시대 문집에 실린 만시 35편을 가려 뽑아 그 역사적 유래와 미학적 특징을 분석, 옛 사람들의 슬픔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엿보게 해주는 책이다. ●자신 죽음 읊은 자만시 등 輓詩 35편 저자에 따르면 만시는 자신의 죽음을 기리는 자만시(自輓詩)를 비롯해 자식을 잃은 참척(慘慽)의 아픔을 노래한 곡자시(哭子詩), 먼저 간 아내를 위해 지은 도망시(悼亡詩), 벗을 보낸 아픔을 삭이며 쓴 도붕시(悼朋詩)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자만시. 죽음을 예상하고 자신이 썼다는 점에서, 죽은 뒤 누군가가 써주어야 하는 일반적인 만시와는 사뭇 다르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압축해 표현한 만큼 그 사람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조선 중기 대문장가 이식의 자만시 등 3편이 실렸다.“살아온 세월이 예순네 해나 되었어도/장부의 한평생 쉴 틈이 없이 고달팠네/문장의 헛된 명성 끝내 화만 초래했고/(중략)/이제 저 세상 돌아가면 모든 생각 끊어지겠지만/푸른 산은 변함없고 물은 동으로 흐르리라” 고위 관료인 대제학을 지낸 이식이 죽기 20일 전에 삶의 역정을 고백한 이 시는 인생이 그저 한번 왔다가 가버리는 나그네의 길이라는 점을 새롭게 일깨워 준다. 자식을 앞세우는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이 있으랴. 오죽하면 ‘상명지척’(傷明之戚·공자의 제자 자하가 자식을 잃고 너무 슬퍼한 나머지 눈이 멀어 버렸다는 고사에서 유래)이라고 했을까. 조선 중기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남매를 차례로 잃고 지은 참척의 만시 등 5편이 수록돼 있다.“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다가/올해엔 또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중략)/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랄까/부질없이 황대사를 읊조리며/피눈물 흘리며 슬픈 울음소리를 삼키노라” 아이 하나만 잃는 것도 견디기 힘든 고통일 텐데, 그것도 남매를 한꺼번에 먼저 보낸 애통함은 도저히 말로써 표현할 길이 없는 아픔이 녹아들어 있다. ●추사 김정희 아내 잃은 슬픔 노래 인생의 고락을 함께한 아내를 잃은 슬픔 또한 어찌 깊지 않겠는가. 추사 김정희가 유배중 아내의 부음을 듣고 쓴 시 등 아내를 기리는 11편이 실렸다.“뉘라서 월모에게 하소연하여/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천 리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 유배 간 남편을 대신해 병든 몸으로 집안 대소사를 감당해야 했던 아내의 죽음을 천리 밖 유배지에서 들을 수밖에 없던 추사의 절절한 슬픔을 오롯이 담아냈다. ●선비들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 고찰 둘도 없는 벗을 잃은 통절한 슬픔을 드러낸 만시도 있다. 조선 중기 문장가 이안눌이 40년 지기 권필의 죽음을 애도하며 썼다.“(중략)/내가 오래 살았음이 한스러운 것이 아니라/내게 눈이 있다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네/다시는 이 사람 보지 못하리니/이 험한 길에 부질없는 눈물만 흐르네”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표현을 써 통절함을 강조한 이 시는 벗의 죽음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저자는 “만시는 자신의 슬픔을 설명하지 않는 대신 오히려 깊이 농축된 한없는 슬픔을 느껴보라고 한다.”면서 “제문이나 묘지문 같은 산문이 아닌 만시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말초적 감정에만 매달리고 있는 요즘, 옛 선비들이 슬픔을 시를 통해 승화시키는 절제의 미학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1만 48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3000만그루 나무심기 등 삶의 질 향상

    3000만그루 나무심기 등 삶의 질 향상

    ‘나무 심기, 생태하천, 자전거, 작은도서관….’ 박성효 대전시장이 취임 이후 “경제가 삶의 행복과 도시 경쟁력을 결정짓는 전부는 아니다.”며 줄곧 추진해온 도시의 질을 높이는 아이템들이다. 요즘 대전교차로 등에는 다른 지방에서 보기 힘든 소나무가 몇 그루씩 서 있다. 쭉쭉 뻗은 줄기 위에 잎사귀 몇 개를 이고 있는 소나무들이 지조 있는 선비처럼 도시의 품격을 드러낸다. ‘3000만그루 나무심기운동’의 결과다. 지난해 207만그루에 이어 올 상반기 130만그루를 심었다. 하반기에 70만그루를 더 심을 계획이다.“먹고살기 힘든데 웬 나무 심기냐.”는 빈축이 있었지만 박 시장의 생각은 다르다.“이산화탄소 배출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세계 어느 기업도 대전에 올 수 없다. 자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행복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도록 우리가 해줘야 한다.” 실제로 나무 심기가 이뤄진 중앙분리대 주변 여름철 지표면 온도가 없는 구간에 비해 최대 12도나 낮았다. 충남대 오거리∼유성사거리 구간의 경우 녹지형 중앙분리대가 있는 곳은 38.06도, 없는 도로 주변은 50.01도로 나타났다. 다른 도로도 그러했다. 대전·유등·갑천 등 대전의 3대 하천은 자연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대전천은 하류의 물을 상류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생태계 복원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한밭대교 밑 하류에서 물을 끌어올려 8.7㎞ 떨어진 상류 옥계교로 보내 흘려보낸다. 지난 5월 말 옥계교 인근에서 통수식이 있었다. 하루 7만 5000t의 물을 흘려보내면서 걸핏하면 메말랐던 대전천이 수심 10∼30㎝를 유지, 물고기가 노닐고 30년 전처럼 헤엄도 칠 수 있게 됐다. 시는 117억원을 투입했다. 이어 3대 하천 둔치에 설치된 하상도로를 없애고 대전천 위의 홍명상가를 철거한 뒤 옛 목척교를 복원한다. 오는 10월에는 공용자전거 5000대가 등장한다. 매년 5000대씩 2만대로 늘려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하철역마다 10여대씩 비치된 녹색자전거도 인기를 끈다. 대전시는 지난해 11월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자전거도시’를 선언했다. 대전지역 전체 48만여대로 가구당 1대 이상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고 교통분담률이 2.8%로 크게 늘어 무공해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책 읽는 도시’를 표방하면서 도서관도 부쩍 늘었다.2006년 15곳이던 공공도서관이 20곳으로 증가했다.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 96곳에서 140곳으로 크게 늘어나 시민들의 마음을 살찌우는 디딤돌이 되고 있다. 대전시는 행정안전부가 주최하는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산업정책연구원의 ‘도시 미래경쟁력’ 1위로 선정됐고 산림청의 ‘도시숲 조성’ 최우수상도 받았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공군 ‘人力 비행기’ 만든다

    공군 ‘人力 비행기’ 만든다

    공군이 사람의 다리 힘만으로 하늘을 나는 ‘인력(人力) 비행기’ 제작에 도전한다. 공군은 공군사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진을 중심으로 총 7명으로 제작팀을 구성, 기계의 힘이 아닌 인간의 힘만으로 이·착륙과 비행을 할 수 있는 인력비행기 제작에 착수한다고 12일 밝혔다. 인력비행기는 조종사가 자전거처럼 두 발로 페달을 밟아 프로펠러를 돌리는 개념이다. 기어의 방향을 직각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에서 0.3마력의 미는 힘을 발생시키는 게 뜨는 힘의 요체다.0.3마력이면 사이클 선수가 대회에서 출발 10분 정도 지났을 때 전력으로 페달을 밟는 힘 정도로 보면 된다. 다리 힘이 엔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력비행기는 잠시도 쉬지 않고 페달을 밟지 않으면 추락하게 된다. 인력비행기는 공중에 뜨기 좋도록 비닐 재질의 최대한 가벼우면서도 긴(30m) 글라이더형 날개를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무게 50∼60㎏의 가벼운 비행기를 만든 뒤 시속 20㎞의 속도로 2㎞를 비행한다는 게 공군의 목표다. 최성옥 공사 교수는 “인력비행기에 이용되는 가벼운 재질을 만드는 기술은 향후 장시간 저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무인기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다.”며 “특히 인력비행기 제작 기술이 진보할 경우 미래에는 개인용 비행기로 활용될 날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업 등의 후원으로 3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이번 프로젝트는 이달부터 12월까지 설계를 거쳐 내년 8∼9월 완제품 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한국은 미국, 일본, 영국,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인력비행기 개발에 성공한 국가로 기록된다. 일본은 인력비행기를 이용해 1983년 1.4㎞의 직선비행에 성공했고 미국은 1988년 3시간54분 동안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산토리니까지 119㎞를 날아 최장거리 인력비행기 비행기록을 갖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12일 TV 하이라이트]

    ●세계 세계인〈트리탑 산책로〉(YTN 오전 10시40분) 영국 런던 교외의 왕립 식물원 큐가든. 이곳에 하늘 위의 산책길이 생겼다.‘트리탑 산책로’의 높이는 18m, 길이는 200m에 달한다. 매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은 산책로를 거닐며 큐가든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를 직접 보고 만지는 등 새로운 경험을 한다.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사랑의 징표로 커플링을 나눠 가진 나타샤, 유장관씨. 그러던 어느 날 장관씨는 뜻밖의 사고를 당한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한결 같이 그의 곁을 지킨 나타샤.2년 전, 러시아에 두고 온 딸 레나와 함께 살게 된 이 가족의 사연. 사랑과 믿음으로 하나 된 나타샤 가족의 행복이야기를 들어본다.   ●최강칠우(KBS2 오후 9시55분) 민승국은 유생과 선비들을 모아 본격적인 반정을 도모하고, 김자선은 이들의 회합 장소를 기습한다. 반정 회합 장소를 습격한 김자선은 진무양과 조성두를 잡아가고 흑산은 아버지가 김자선에게 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칠우는 명황제 제사에 참석한 인조를 암살하기 위해 승국, 자자와 함께 길을 떠난다.   ●춘자네 경사났네(MBC 오후 8시15분) 가게를 청소 중이던 춘자는 길을 지나던 대팔의 누나 대순에게 물을 끼얹는다. 대충 넘어가려는 춘자의 태도에 대순은 화가 난다. 한편 태삼과 분희는 영화관에서 혼자 여자 핸드백을 들고 있는 정우를 발견한다. 정우에게 핸드백의 주인을 묻는 순간, 화장실에서 나오는 주리가 정우쪽으로 걸어 오는데….   ●스페이스 공감(EBS 밤 12시10분) 10여 년간 묵묵히 연주인의 길을 걸어온 최고의 베이스 연주자 서영도. 그는 전제덕,BMK, 이소라 등의 음반과 라이브 공연 작업을 하며 최고의 베이스 연주자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아 왔다. 재즈계를 이끌어 가는 대표적인 뮤지션들과 함께 한 서영도의 2집 앨범을 살펴 본다.   ●며느리와 며느님(SBS 오전 8시30분) 주리는 부모님께 강민의 부모님이 생각했던 것보다 수준이 떨어지고, 어머니는 교양 없고 무식하며, 아버님은 맏며느리에 대한 부담을 줬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주리의 집 앞에 주차된 차 안에서 주리의 2층 방을 바라보고 있던 강민은 불 켜진 주리의 방을 보며 전화를 걸까 말까 망설인다.
  • 영주, 선비촌서 달빛음악제 개최

    경북 영주시는 9일 오후 7시부터 순흥면 청구리 선비촌 내 죽계루 앞 특설 무대에서 ‘선비촌 소백산 달빛 음악제’를 연다.‘가곡과 가요의 만남’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음악제에서는 소프라노 김수정 등 유명 성악가들이 나서 ‘그리운 금강산’ 등 아름다운 우리 가곡과 뮤지컬 ‘명성황후’ 주제곡 등을 부르며 가수 김종환도 출연해 다양한 대중 음악을 선사한다. 선비촌은 소수서원과 이웃해 있으며 만죽재 고택, 해우당 고택, 김문기 가옥, 인동장씨 종택, 김세기 가옥, 두암 고택, 김상진 가옥 등 기와집 7채와 장휘덕 가옥, 김뢰진 가옥, 김규진 가옥, 두암고택 가람집, 김구영 가옥 등 초가집 5채가 들어서 있다.영주시 순흥문화유적권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이번 음악회는 옛 선비들이 즐겼던 한여름 밤 소백산 자락의 풍류를 함께 즐겨보기 위해 마련했다.”고 말했다.영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경기도 洞 통폐합 ‘지지부진’

    ‘지방 행정조직 슬림화’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경기도내 소규모 동(洞) 통폐합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일선 자치단체들이 도심 재개발사업에 따른 행정구역 변경과 인력 감축 문제 등을 이유로 통폐합 추진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6일 경기도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지난 5월 ‘지방자치단체 조직개편 지침’을 지자체에 내려보내 인구가 적거나 면적이 작은 소규모 동을 통폐합하도록 했다. 도는 이에 따라 인구 2만명 이하, 면적 3㎢ 이하 85개동(12개 시·군)을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 시행에 들어갔다. 는 동 통폐합을 가속화하기 위해 연내 통폐합을 마무리하는 자치단체에 대해 동당 1억원을, 올해 착수해 내년에 완료하는 곳에는 6000만원의 시설 개선비 명목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통폐합이 마무리된 곳은 수원시의 행궁동(팔달동·남향동·신안동)과 원천동(원천동·이의동) 등 5개동에 불과하다. 나머지 22개동은 통폐합 작업을 추진중이며 58개동은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도심 재개발 및 택지개발 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자치단체의 경우 인력 부족과 행정력 낭비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어 상당기간 지연될 전망이다. 성남시의 경우 도심 재개발 사업과 판교택지개발 사업 등으로 향후 인구수와 면적이 변경되는 만큼 2011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부천시는 동 동폐합후 원활한 업무 추진을 위해 현재 5급인 동장의 직급을 상향조정해 구청장과 같은 4급으로 승격시키고 그 밑에 5급 담당을 설치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청학동 서당교육 인기몰이

    청학동 서당교육 인기몰이

    “맹자가 말씀하시길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그를 사랑하고,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남도 그를 항상 공경하느니라∼.”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나라 ‘서당교육 1번지’인 지리산 자락 하동 청학동 마을에는 충·효·예절 교육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TV·컴퓨터 없어도 재미는 두배 서당 집단촌인 이곳 청학동 일대에는 20여곳의 서당이 있다. 여름방학 충·효 캠프에 참가한 전국 수천여명의 어린 학생이 삼복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옛 성현들의 말씀을 되뇌고 가슴에 새기는 일에 여념이 없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청학동서당은 3일 여름방학 예절학교 3차 수련생 130명을 입소시켰다. 지난달 20일부터 최근까지 실시된 1,2차 교육에는 270명이 수료했다. 수련생들은 주로 초등학교 3∼6학년과 중학교 1∼3학년으로 서울과 수도권 등 전국에서 몰렸다. 오는 30일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진행될 예절학교 캠프에는 모두 70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마감이 임박한 상태다. 교육 프로그램은 매주 일요일 입소해 토요일에 퇴소하는 1주일 과정으로 짜여졌다. 생활 방식은 합숙이며 수업은 옛날 서당에서 배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과는 오전 7시 기상해 밤 10시 잘 때까지 상투를 튼 훈장 선생님의 각종 고전 강의 및 생활예절 교육, 물놀이, 전통놀이체험 등으로 이어진다. 서당에는 TV나 컴퓨터가 없고 휴대전화 사용도 일절 금지돼 있다. 가게도 없어 군것질 또한 불가능하다. 대신 시원한 한옥 대청마루와 앉은뱅이 책상, 풀벌레 소리가 친구가 돼 준다. 수강료는 1주일 기준 22만원. ●6시30분 일어나 10시 잠자도 ‘초롱초롱´ 몽양당 청학동 예절학교 수련원도 오는 23일까지 여름방학 예절교육 캠프를 연다.3,4주짜리 교육과정은 이미 마감됐으며,1,2주,9박10일 과정의 수강생을 모집 중이다. 매일 6시30분에 기상해 밤 10시까지 계속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효·인성·예절·서당식 한문 교육을 비롯해 전통문화체험, 체력단련 등으로 빡빡하게 짜여 있다. 강의는 청학동에서 태어나 전통 서당공부를 배운 훈장 선생님들이 주로 맡는다. 수강료는 1주일 단위 초등학생 28만원, 중학생 30만원. 청학동의 청림·선비·청림·고운원·난야 서당도 이달 말까지 각각 ‘여름방학 충·효·예절’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서당들의 캠프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여벌옷과 샌들, 자판기용 동전, 페트 물통, 세면도구, 필기도구 등을 지참해야 한다. 청학동서당 2주짜리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A군은 “1주일 교육을 받고 나니 과거에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면서 “앞으로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라야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같은 서당에 다니는 B군은 “집에서는 매일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나 앞으로는 이곳에서 배운 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실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인철(56) 청학동서당 훈장은 “대가족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버릇 없거나 나약하게 자라지 않을까 하는 부모들의 걱정이 서당체험을 찾게 하는 이유”라며 “학생들이 입소 초기에는 ‘지겹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교육이 진행될수록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동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청학동 서당교육 인기몰이

    청학동 서당교육 인기몰이

    “맹자가 말씀하시길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그를 사랑하고,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남도 그를 항상 공경하느니라∼.”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나라 ‘서당교육 1번지’인 지리산 자락 하동 청학동 마을에 충·효·예절 교육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TV·컴퓨터 없어도 재미는 두배 서당 집단촌인 청학동 일대에는 20여곳의 서당이 있다. 여름방학 충·효 캠프에 참가한 수천여명의 어린 학생이 삼복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옛 성현들의 말씀을 되뇌고 가슴에 새기는 일에 여념이 없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청학동서당은 3일 여름방학 예절학교 3차 수련생 130명을 입소시켰다. 지난달 20일부터 최근까지 실시된 1,2차 교육에는 270명이 수료했다. 수련생들은 주로 초등학교 3∼6학년과 중학교 1∼3학년으로 서울과 수도권 등 전국에서 몰렸다. 오는 30일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진행될 예절학교 캠프에는 모두 70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마감이 임박한 상태다. 교육 프로그램은 매주 일요일 입소해 토요일에 퇴소하는 1주일 과정으로 짜여졌다. 생활 방식은 합숙이며 수업은 옛날 서당에서 배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과는 오전 7시 기상해 밤 10시 잘 때까지 상투를 튼 훈장 선생님의 각종 고전 강의 및 생활예절 교육, 물놀이, 전통놀이체험 등으로 이어진다. 서당에는 TV나 컴퓨터가 없고 휴대전화 사용도 일절 금지돼 있다. 가게도 없어 군것질 또한 불가능하다. 대신 시원한 한옥 대청마루와 앉은뱅이 책상, 풀벌레 소리가 친구가 돼 준다. 수강료는 1주일 기준 22만원. ●6시30분 일어나 10시 잠자도 ‘초롱초롱´ 몽양당 청학동 예절학교 수련원도 오는 23일까지 여름방학 예절교육 캠프를 연다.3,4주짜리 교육과정은 이미 마감됐으며,1,2주,9박10일 과정의 수강생을 모집 중이다. 매일 아침 6시30분에 기상해 밤 10시까지 계속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효·인성·예절·서당식 한문 교육을 비롯해 전통문화체험, 체력단련 등으로 빡빡하게 짜여 있다. 강의는 청학동에서 태어나 전통 서당공부를 배운 훈장 선생님들이 주로 맡는다. 수강료는 1주일 단위 초등학생 28만원, 중학생 30만원. 청학동의 청림·선비·청림·고운원·난야 서당도 이달 말까지 각각 ‘여름방학 충·효·예절’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서당들의 캠프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여벌옷과 샌들, 자판기용 동전, 페트 물통, 세면도구, 필기도구 등을 지참해야 한다. 청학동서당 2주짜리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A군은 “1주일 교육을 받고 나니 과거에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면서 “앞으로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라야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같은 서당에 다니는 B군은 “집에서는 매일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나 앞으로는 이곳에서 배운 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실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인철(56) 청학동서당 훈장은 “대가족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버릇 없거나 나약하게 자라지 않을까 하는 부모들의 걱정이 서당체험을 찾게 하는 이유”라며 “학생들이 입소 초기에는 ‘지겹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교육이 진행될수록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동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Local] 영주, 선비문화수련원 운영 협약

    경북 영주시와 성균관은 31일 영주시청에서 영주 선비문화수련원 위ㆍ수탁운영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김주영 영주시장과 최근덕 성균관장 등 양측 관계자 10여명이 참석했다. 성균관은 영주시의 위탁을 받아 오는 9월 1일부터 2010년 12월 31일까지 영주 선비문화수련원을 운영한다.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으로 2003년 착공돼 다음달 준공 예정인 선비문화수련원은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일대 부지 6만 395㎡에 자리잡고 있다. 영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씨줄날줄] 이청준 단상/우득정 논설위원

    1970년대 중반, 서울 봉천동 하숙집에서는 밤마다 소주와 줄담배를 곁들인 토론이 벌어졌다. 철학도를 꿈꾸던 K형, 법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소설가로 방향 선회한 L형, 이따금 신랄한 촌평을 날리던 Y형…. 항상 안줏감은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당시 회자되던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등이었다. K형은 유신이라는 엄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관념의 세계로 도피하는 최인훈과 이청준에 대해 항상 거품을 물며 험담을 퍼부었다. 대학신문에 기고해 소주값을 마련하던 L형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언어의 유희’가 공격의 주무기였다. 그럴 때면 L형은 하이데거나 칸트, 카뮈, 사르트르를 들먹이며 예봉을 피하곤 했다. 내게 이청준은 그렇게 다가왔다. 지겹도록 관념적이어서 한숨에 읽어내리기에는 엄청난 인내를 요구한다. 화두를 던져놓고 돌에 글을 새기듯 힘겹게 되새김질하며 심연을 향해 다가간다. 그래서 이청준의 소설은 한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수면제가 되기도 하고,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하는 각성제가 되기도 한다. 어느 단편에선가 이청준은 대기업에 취업한 동기생과 비교하면서 아침 9시에 집필실(옆방)로 출근해 저녁 6시 퇴근하기까지 매일 몇십장의 원고를 써야 한다며 고통을 하소연한 것이 기억난다. 이청준의 소설은 그래서 고통스럽다. 스스로 영혼을 학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천재성이 아니라 장인정신이다.‘향토적’이면서 ‘구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K형은 “문학을 모시고 살았던 세대의 마지막 선비작가”라고 단언한다. 그렇게 많은 작품을 쓰면서도 절대 글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청준은 최인훈과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는 ‘서울대 출신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지적인 오만성이 짙게 배어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시대적 고민을 교묘하게 회피했다는 뉘앙스도 담겨 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출신 작가들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그래도 그 시절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과의 조우는 내겐 행운이었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씨줄날줄] 제2의 애치슨 라인/김인철 논설위원

    1950년 1월12일 당시 딘 G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깜짝 연설을 했다. 소련과 중국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은 “알래스카 알류샨열도에서 일본-오키나와를 거쳐 필리핀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이 결과 남한은 ‘애치슨 라인’으로 불리는, 미 방위선에서 제외됐다. 그 6개월 전인 1949년 6월30일 주한미군이 철수한 데 이어 나온 조치였다. 그리고 5개월여 뒤인 6월25일 한국전이 발발했다. 북한이 소련과 중국의 협조 아래 남침했음을 보여주는 사료들이 속속 발굴되고 있지만, 애치슨 라인은 남한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오판을 낳기에 충분했다. 미국이 김일성에게 남침을 감행토록 빌미를 주었다는 주장이 지금도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전 당시 종군기자로 활약했던 존 리치 전 미 NBC 방송 부사장은 지난 25일 정전 55주년을 맞아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가진 강연에서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은 커다란 실수(Great Mistake)였다.”고 회고했다. 미 정부는 자국의 지명위원회(BGN)가 최근 한국령 독도를 ‘주권 미지정’으로 변경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원상회복 조치를 요구하자 지록위마(指鹿爲馬)식의 강변을 늘어놓고 있다. 곤살로 갈레고스 국무부 부대변인은 “미 정부의 입장과 관련이 없으며, 미 정부의 입장은 변화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 역시 “전문가들이 정치적 고려 없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수십년간 사용해온 한국령 표기를 주권 미지정으로, 리앙크루 바위섬의 변형된 표현의 순서를 다케시마-독도로 바꿔놓고서 ‘미국은 중립’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인들에게 한국민들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지렁이로 보이는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눈 길 어지러이 가지마라/오늘 내가 지난 발자국 훗날 뒷사람의 길이 될지니” 조선 후기의 선비 이양연이 남긴 야설(野雪)이 새삼스럽게 기억나는 아침이다. 오늘의 갈지(之)자 행보가 일본의 독도 야욕을 부추기는 ‘제2의 애치슨 라인’이 되었다는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미국의 현명한 조치를 당부한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0) 여름날의 짚신 삼기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0) 여름날의 짚신 삼기

    김득신의 작품 ‘여름날의 짚신 삼기’(그림1)다. 사내가 웃통을 벗고 앉아 발가락에 신날 둘을 걸고 짚신을 삼고 있다. 왼쪽 발 앞에는 벌써 삼은 한 짝이 놓여 있다. 짚신은 신틀(그림3 ‘신틀’)에 걸어서 삼지만, 신틀이 없으면 그냥 발가락을 이용해도 된다. 윤두서가 그린 ‘짚신 삼기’(그림2)라는 그림도 있다. 김득신의 그림과 다를 것이 없다. 짚신은 조선시대에 가장 보편적인 신발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짚신인가. 신발이 닳아 없어지는 물건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그 재료는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 것 둘뿐이다. 먼저 잘 닳지 않는 것이 재료가 될 가능성이 있다. 가죽 같은 것이다. 하지만 가죽은 구하기 어렵고 가공하기도 어렵다. 또 하나는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풀이나 짚 같은 것이다. 벼농사를 짓고 사는 사회에서 짚신은 두 번째의 이유로 해서 선택된다. ●신을 수 있는 신발 계급별로 정해져 짚신의 역사는 오래다. 중국 송나라 마단림은 ‘문헌통고’에서 마한(馬韓)의 풍속을 소개하면서,‘신발은 초리(草履)를 신는다.’고 했는데, 이 초리가 곧 짚신이다. 서긍은 ‘고려도경’에도 초구(草)란 항목에서 “초구(짚신)의 형태는 앞쪽이 낮고 뒤쪽이 높아 모양이 이상하지만, 온 나라의 남자 여자 어른 아이가 다 신는다.”고 하고 있으니, 짚신은 역시 고려 시대의 남녀노소가 신는 보편적인 신발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짚신을 신는 전통 역시 저 삼국시대 이전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흔히 옷은 그 사람이라 한다. 무슨 옷을 어떻게 입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됨을 파악하고 평가하게 된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미국 드라마 ‘섹스앤드더시티’의 사라 제시카 파커가 좋아하는 마놀로 블라닉 구두란 것은 단순한 구두가 아니다. 어떤 브랜드를 소비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취향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드러난다. 현대는 그 취향 뒤에 있는 사회적 지위를 돈이 구체화하지만, 조선시대는 신분, 곧 양반인가 아닌가, 관료인가 아닌가 하는 구분이 사회적 지위를 구체화한다. 곧 조선시대 신발은 계급별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경국대전’ 예전의 ‘화혜(靴鞋)’를 보면, 정1품부터 정9품까지 품계가 있는 벼슬아치는 조복(朝服)과 제복(祭服)에는 흑피혜(黑皮鞋), 공복(公服)에는 흑피화(黑皮靴)를 신게 되어 있었다. 다만 1품에서 3품까지는 평상복에 협금화(挾金靴)를 신는다고 규정되어 있다.4품에서 9품까지는 평상복에 어떤 신발을 신으라는 규정이 없다. ‘화(靴)’와 ‘혜(鞋)’는 같은 신발이지만, 서로 다르다.‘화’는 목이 긴 신발이고,‘혜’는 목이 없는 신발이다. 여성들이 신는 가죽신인 운혜나 당혜가 모두 목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흑피란 검은 가죽이니, 이런 신발들은 검은 가죽으로 만든 신발이다. 협금화는 금속, 즉 징을 박은 신발이다. 앞의 흑피화 바닥에 징을 박은 것이 아닌가 한다. 특별히 정1품에서 3품까지는 평상시에도 징을 박은 가죽신을 신도록 허락했던 것이다. 가죽신을 신는 사람이 이렇게 정해져 있다 보니, 짚신은 자연스레 돈이 없고 신분 처지가 낮은 사람들의 차지다. 그림(1)과 (2)에서 보듯 조선시대 백성들은 대부분 짚신을 삼을 줄 알았다. 다만 솜씨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조선시대라 해도 도시 사람, 곧 서울 사람들은 신발을 사서 신었다. 당연히 서울 시내에 신발을 파는 가게가 있다. 유본예의 ‘한경지략’에 의하면, 미투리전에서 생삼, 숙마의 미투리와 짚신을 판다고 하였고, 미투리전은 여러 곳에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파는 짚신 중에 가장 인기가 있는 짚신은, 서린동 전옥서 감옥에서 죄수들이 삼은 것이라 하였다. 왜냐고? 죄수들은 할 일이 없어 시간을 죽이는 사람들이다. 신을 삼아 팔면 먹을 것이 나온다. 한데 그것이 직업은 아니니까 정성을 들인다. 신발이 꼼꼼하고 질길 수밖에 없다. ●재주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편 되기도 죄수에게 짚신 삼기가 돈이 되듯, 보통 사람에게도 짚신 삼기는 돈이 되었다. 이유원의 ‘임하필기’를 보면 이지함이 굶주린 백성을 살린 일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 흥미롭게도 짚신 이야기가 나온다. 요지는 이렇다. 선조 3년(1570)에 영남 지방에 기근이 들었다. 이지함이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는 백성들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는 큰 집을 지어 유민들을 수용하고 사람의 소질을 보아가며 이런 저런 수공업을 가르치고 그것으로 먹고 살 방도를 마련해 준다. 그런데 언제나 아무 재주도 없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볏짚을 가져다주고 짚신을 삼으라 한다. 곁에서 챙겨보니, 하루에 열 켤레는 삼는다. 이렇게 해서 만든 물건을 내다 파니, 먹을 것이 생긴다. 돈을 모아 옷도 다시 지어 입도록 한다. 이처럼 짚신 삼기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편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가죽신은 원래 벼슬을 하거나 돈 많은 양반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 관습도 조선후기가 되면 바뀐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예전에는 선비들이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짚신을 신고 걸어 다녔고, 말을 타는 일은 드물었다. 지금은 조관(朝官)처럼 가죽신을 신고 말을 타고 다닌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없다.”고 하고 있다. 즉 임진왜란 이전에는 벼슬아치들만이 가죽신을 신고 말을 타고 다니고 선비들은 짚신을 신고 걸어 다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 이후 선비들도 가죽신을 신고 말을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이익은 이런 풍조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는 ‘성호사설’의 ‘초갹(草 )’ 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왕골신과 짚신은 가난한 사람이 늘 신는 것인데, 옛사람은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선비들은 삼으로 삼은 미투리조차 부끄럽게 여기고 있으니, 하물며 짚신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영남 지방의 풍속은 보통 때는 짚신을 신고, 미투리는 외출할 때만 신는다 하니, 그 검소함을 본받을 만하다.” 영남 지방에만 검소한 풍속이 남아 있어 선비들이 집에서는 짚신을 신고 외출할 때만 미투리를 신는다는 것이다. 미투리는 볏짚이 아니라, 삼이나 노(종이를 비벼 꼰 줄)로 만든 신이다. 짚신에 비해 훨씬 정교하다. 서울 선비들은 고운 삼으로 삼은 미투리조차 신지 않으려 하는데, 영남 사람들은 그 미투리를 외출용 신발로 신는다는 것이다. 이익은 영남의 검박(儉朴)한 풍습에 감동했는지 곳곳에서 칭찬을 거듭하고 있다.‘영남속(嶺南俗)’이란 글에서는 다시 영남 선비들이 짚신을 신고 미투리조차 잘 신지 않는 풍습을 소개한 뒤 “경기 지방 선비가 만약 영남의 검소한 풍속을 본받는다면, 사람들이 반드시 그와 혼인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버리는 짚신은 거름으로 재활용 외출을 하려고 문간에서 신발장을 열어 보니 안 신는 신발이 가득하다. 예전에 신발 뒤축이 한쪽만 자꾸 닳아 샀던 가게에 가서 밑창을 갈아달라고 하니, 엉뚱한 것으로 갈아준다. 그 신발을 신고 다니다가 빗길에 미끄러져 무릎을 다친 뒤로는 다시는 밑창을 갈아 신지 않는다. 그러니 신발장에 위쪽은 멀쩡하건만 한 쪽 밑창이 닳은 신발이 여럿이다.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짚신조차 아꼈던 사람의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시대 때 지씨 성의 구두쇠 재상이 있었는데,“설과 한식이 되면 공동묘지에 사람을 보내 지전을 주워 오게 해서 도로 종이를 만들고, 남이 신다 버린 짚신을 주워 땅에 묻고 동과 씨를 심었는데, 동과가 잘 열려 많은 이문을 남겼다.”고 한다. 짚신을 거름으로 썼던 것이다. 실제 허균은 ‘한정록’에서 버리는 짚신을 외양간에 넣어 소의 똥오줌에 썩혔다가 마늘을 심는 데 거름으로 넣으면 마늘이 굵게 자란다는 농법을 소개하고 있다. 홍만선 역시 ‘산림경제’에서 버리는 짚신은 말 오줌에 담가두었다가 파초를 심을 때 거름으로 쓰면 파초가 잘 자란다고 하고 있다. 짚신도 버리지 않고 이렇게 활용하는데, 신발장 속에 쟁여 있는 멀쩡한 내 신발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풍요로운 자본주의 시대라 하지만 솔직히 말해 아까운 생각,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어디 이번 여름에는 나도 짚신이나 신고 다닐까 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사설] 군초소 붕괴로 사병들이 숨졌다니

    올해 국방예산은 26조 6490억원으로, 전체 국가예산의 10%를 차지한다. 이중 F-15전투기 구입 등 방위력 개선비 7조 6813억원을 뺀 나머지 71.2%, 18조 9677억원이 경상운영비로 쓰인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이런 대한민국의 국방비를 국가별 순위 11위로 평가했다. 이런 당당한 군대에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후진적 참사가 발생했다. 어제 새벽 경북 포항시내 해안가 절벽에 있는 해병대에서 경계 근무중이던 사병 3명이 초소 지붕이 붕괴되면서 매몰, 또는 추락해 모두 숨졌다. 사고가 난 초소가 지은 지 30년이 넘었을 만큼 낡았다는 등의 해명은 ‘정예화된 선진강군’이란 거창한 구호에 비춰 구차할 뿐이다. 게다가 국방부는 올 초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경상운영비에서)낙후된 군시설 유지보수 소요에 전년보다 483억원이 늘어난 2224억원을 반영했다.”고 밝히지 않았던가. 군 당국은 사고 한달전쯤 초소 지붕에 열영상감지장치(TOD)를 설치하면서 10㎏짜리 모래주머니 40여개를 쌓은 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건 아닌지 철저히 규명하기 바란다. 아울러 전체 군시설 2202만㎡ 가운데 20%인 510만㎡가 지은 지 26년이 넘는 등 낡았으나 예산부족으로 제때 보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국방부 차원에서 총체적인 안전점검을 실시할 것을 당부한다. 전투도 훈련도 아닌,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하다 횡액을 당하는 군대에 어느 부모가 기꺼이 자식을 보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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