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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온선물세트’ 강이천 ‘개혁군주’ 정조를 궁지에…

    ‘불온선물세트’ 강이천 ‘개혁군주’ 정조를 궁지에…

    ‘시대를 잘못 타고난 선비’ 강이천이 한 역사학자에 의해 되살아났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백승종 지음, 푸른역사 펴냄)은 ‘조선 후기 르네상스’라 불리는 영·정조 시대에 ‘문화투쟁’을 벌이다 옥중에서 사망한 강이천(1768~1801)을 주인공으로, 조선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다.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등의 책을 쓴 저자 백승종씨는 정감록을 연구하다 강이천을 만나게 된다. 현재 백씨는 충남의 한 시골마을에서 한문고전과 독일어 성경을 가르치며 마을 사람들의 구술생애사를 연구 중이다. 18세기만 해도 천주교는 당시 크게 유행했던 예언서인 ‘정감록’과 밀접한 관계였다. 몇몇 천주교 신자들은 정감록에 담긴 ‘해도진인’(海島眞人·섬에서 진인이라 불리는 영웅이 나와 조선을 멸망시키고 새 나라를 세운다는 설)이란 관념을 빌려 갔다. 정감록 신앙집단은 천주교의 말세관에서 왕조 교체의 심층적 의미를 발견하기도 했다. 일찍이 진사 시험에 합격했고, 소년 시절부터 몇 차례나 정조 앞에 불려 나가 시를 짓기도 했던 강이천은 꽤 유명한 선비였다. 하지만 천주교뿐 아니라 정감록에도 마음을 빼앗겨 결국 정조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꼴이 되고 만다. 흔히 ‘조선 시대의 개혁 군주’라 불리는 정조에 대해 백씨는 “정조처럼 개인적으로 특출한 능력을 갖춘 왕이라면 응당 시대를 앞서가는 진보 성향을 띠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런 믿음은 그릇된 것으로, 정조는 결코 실험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정조는 도교와 불교는 물론 새로 도입되기 시작한 천주교에 대해서도 적대적이었다. 오직 주자의 사상만을 정학(正學)으로 여겼고 양명학은 물론이고 중국에서 나온 신간 서적의 수입도 엄금했다. 이른바 ‘패관소품’(요즘의 단편소설이나 수필에 해당하는, 사람이 느낀 감정을 거짓 없이 기록하는 글.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당시 이런 문체를 대표함)의 문체가 조금이라도 묻어 있는 글이면 무조건 과거시험에서 떨어뜨렸다. 이는 조선의 왕들은 보수 성향을 띨 때만 비로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 게 저자의 분석이다. 조선의 어떤 왕보다 두뇌가 명석했던 정조는 기득권 세력인 양반의 특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조선 국왕의 권위는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서 나왔고, 이를 부정하는 북학이나 실학, 천주교와 서양의 새로운 과학기술을 받아들였다가는 왕의 권위가 추락하는 것은 물론이요, 자칫하면 목숨조차 건지기 어려웠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지켜본 정조는 누구보다 보수적인 왕이었다. 하지만 강이천은 조선 사회가 요구하던 성리학 공부에 묻히기를 거부했다. 조선의 지배층이 이단으로 규정한 천주교와 정감록, 패관소품에 관심을 뒀다가 1797년 불길한 유언비어를 퍼뜨려 혹세무민한 죄로 유배를 갔고 정조 사후 이 사건으로 결국 옥중에서 숨진다. 저자는 강이천이 18세기 불온한 분위기를 한몸에 지닌 ‘종합선물세트’였으며 정조를 궁지에 빠뜨린 공상적 이상주의자였다고 평가한다. 존재 자체가 체제에 대한 위협이었던 강이천의 말로가 결국 옥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1만 65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그림이 된 詩

    그림이 된 詩

    옛 선비들은 시와 그림을 하나로 보았다. 그림이란 붓으로 쓴 시이고, 시는 글로 그린 그림이라고 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은, 강은교, 김지하 등 시인 74명의 시를 두고 화가 43명이 그림을 덧붙인 ‘시화일률’(詩畵一律)전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재홍과 미술평론가 윤범모,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은 작품을 엄선해 뽑은 뒤 작가들에게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미술로 표현해보라고 주문했다. 시와 그림이 함께 있다고 하니 언뜻 수묵화가 연상될 법도 한데, 극사실주의에서 추상화, 비디오 아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향의 작가들을 섭외한 덕분에 이채로운 작품이 눈에 많이 띈다. 가령 ‘긴 강을 헤엄쳐 온 내 안의 상처들은/ 어느덧 하늘의 가슴에 밀물지는데/ 길게 꼬리 진 노을 속에 젖은 외로움 하나/ 아직도 솟대처럼 우두커니 서있다.’고 읊은 ‘강변에서’(백수인 시인)를 맡아 그린 이는 한국 팝아트의 기수로 꼽히는 권기수다. 시는 전반적으로 우수에 찬 느낌인데 그림은 권기수의 특징으로 꼽히는 강렬한 빨간색과 ‘동구리’ 캐릭터가 등장해 묘한 느낌을 낳는다. 김남조 시인의 ‘면류관’은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이 표현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화려한 4계절 동영상 버전의 ‘신인왕제색도’로 제작해 화제를 모았던 이이남답게, 알프레드 뒤러의 ‘자화상’ 그림을 동영상으로 처리했다. 자화상에 면류관이 얹어지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다음 달 6일까지. (02)720-1020. 2월 23일부터는 부산 중동 가나아트로 자리를 옮겨 전시될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소설가 이순원 “한없이 다정한 어머니 꼭 다시 돌아오세요”

    선생님…, 다시 한번 또 불러봅니다. 선생님…. 지난 22일 아침 저는 전국에서 모인 길꾼들과 함께 제 고향 강원도의 바우길 위에 있었습니다. 길을 걷는 도중 김영현 선배가 전화문자로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거짓말 같은 소식인가 믿어지지 않아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나무숲 사이의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겨울 하늘은 저토록 차고 맑은데, 제 기억 속에 하고많은 선생님의 모습 중 3년 전 어느 봄날, 박경리 선생님을 저 세상으로 보내 드리던 영결식장에서 저희를 두고 이렇게 떠나시면 남은 사람들의 빈자리는 어떻게 하시냐고 우시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차분히 하려고 해도 차분해지지 않았습니다.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자 모두 저처럼 놀란 얼굴을 하였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오래도록 선생님의 책을 읽어온 독자들에게도 가슴 한구석을 텅 비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23년 전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내리 10년간 신춘문예에 낙방하다가 어느 문예지에 응모한 제 작품을 선생님께서 뽑아 주셔서 정식으로 한국 문단에 나왔습니다. 옛날 선비들에게는 어려서부터 글을 가르쳐 준 사사스승과 과장에서 글을 뽑아 준 발탁스승이 있는데, 두 스승에 대한 예를 언제나 같이 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새 작가로 저를 뽑아 주신 것을 지금도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언젠가 동인문학상 시상식 때 선생님께서는 제 어머니에게 다가오셔서 두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저에게는 그 모습이 마치 저와 저의 문학이 이 땅에 있게 해 주신 두 어머니의 모습 같았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에 대한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후배 작가들이 우리가 현역작가로 함께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선생님께 한없이 기대고 의지하며 위로받아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문단에 참으로 큰 어머니의 모습으로 선생님께서 후배 작가들을 지켜봐 주셨고, 저희는 또 선생님의 넓은 품에 저마다 한식구로 위안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어디 우리 작가들에게만이겠습니까? 제가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 모두 똑같은 마음과 똑같은 얼굴로 놀랐던 것은 한국의 모든 독자들 역시 지금껏 선생님의 글에서 한없이 따뜻하고 넓은 어머니의 모습을 느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에 어떤 독자는 선생님의 글에 대해 세 줄만 읽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책을 다 읽고 나면 한없이 다정한 모습으로 위로받은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독자들도 그렇고 함께 글을 쓰는 작가들도 그렇고, 선생님은 선생님을 직접 뵌 사람들에게도 뵙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어머니의 모습으로 우리 문학을 지켜 오셨고, 마지막까지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은 현역 작가로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 더 믿을 수 없고, 더 애통한 것인지 모릅니다. 선생님의 수많은 독자분들도, 또 글을 쓰는 저희도 아직 선생님을 놓아 드릴 준비가 전혀 안 되었는데 어느 아침 선생님께서는 홀연히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별의 놀라움은 언제나 이제까지 겪어 보지 못한 일처럼 낯설고 눈물은 또 언제나 이렇게 늦게 흐르는가 봅니다. 선생님…, 우리에게 너무 크시고 고우신 선생님…. 누가 이렇게 바쁜 걸음으로 선생님을 우리 곁에서 데려가는지요. 좀 더 오래, 그리고 아직도 많이 선생님을 봐야 할 우리의 빈 가슴은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선생님을 데려가는지요.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겠습니다. 가셔도 잊지 마시고 저희와 이 땅의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돌아오세요, 선생님. 손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꼭 돌아오세요, 선생님…. ●이순원은 1958년 강릉 출생. 1988년 등단.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등 수상. ‘은비령’, ‘정동진’, ‘워낭’ 등 출간
  • 안식년 틈타 지리산 산자락서 삶을 돌아보다

    서울서 지내는 이라면 바닷가 항구도시에서의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정갈하고 과묵하게 시(詩) 쓰는 선비에게는 시의 서정을 다듬기에 그마저도 번잡스러웠나 보다. 허형만(66) 시인이 내놓은 열세 번째 시집 ‘그늘이라는 말’(시안 펴냄)은 목포대 국문과 교수이면서 안식년을 틈타 구순 어미의 품으로, 지리산 산자락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시어(詩語)로 풀어낸다. 시의 시선은 땅으로, 낮은 곳으로, 작은 것으로, 침묵으로 향한다. 39년째 접어든 시력(詩歷)이 궁극적으로 머무는 지점은 자기 자신이다. 시편 ‘절하다’에서 어머니가 밭에서 캐낸 ‘줄줄이 딸려 나와 세상을 밝히는/ 저 붉은 고구마’에게도 두손 모아 절하고, ‘우루루 쏟아지는’ 어머니의 독경 소리에도 절하는 시인의 섬김의 뜻이나, ‘야생의 바람을 껴안고 잠든 강을/ 이리 무심히 바라보고 있느니’(‘겨울 노래’ 중)라며 자연으로 침잠함은 한결같은 성찰의 몸짓이다. 지리산으로 들어선 이유 또한 시로 설명했다. ‘…들어서는 안될 소리 듣고 말았으니/…/아예 귀 자를 수밖에, 그래 자른 귀 염(殮)하여/ 솔바람소리 맑은 양지 바른 곳에 묻기 위해’(‘귀를 염하다’ 중)였다고 부끄러이 고백한다. 연작시 ‘산거’(山居)에 이르러서는 산중에 묻힌 여유로움과 기쁨,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정수가 느껴진다. ‘말 잊은 지 이미 오래’인지라 ‘졸참나무 숨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갓밝이 닭울녘/ 동녘 하늘로 아스라이 번지는/ 저 빛살 참 곰살갑다’고 소박하게 노래한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발문을 통해 “허형만 시인은 우리 시단의 세 흐름인 서정, 실험, 참여 가운데 서정의 적자로 꼽힌다.”면서 “이번 시집에서 선보인 서정의 간단 없는 심화는 자기 성찰과 타자 발견의 시학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고 평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설선물 가이드] 국순당-막걸리부터 이화주까지 다양

    [설선물 가이드] 국순당-막걸리부터 이화주까지 다양

    우리 명절엔 우리 술. 국순당이 50만원대 최고급 약주부터 1만원대 실속 있는 막걸리까지 다양한 설 선물세트를 출시했다. 막걸리에 지역 특산물인 더덕과 오미자 등을 넣어 빚은 ‘자연 담은 막걸리 선물세트’를 비롯해 ‘백세동정춘’,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조를 지키기 위해 마셨다던 송절주 등 다양한 복원주 세트가 나왔다. 고급약주 세트를 비롯해 상황버섯, 오미자, 복분자 등을 첨가해 고려시대 혼양주법으로 빚은 명작 세트, 이화주, 신도주 등 우리 술 복원주도 있다. 자연 담은 막걸리는 전북 고창 복분자 생산 농가와 함께 만든 복분자 막걸리(2병)를 비롯해 횡성 더덕과 오미자로 빚은 더덕 막걸리(1병), 오미자 막걸리(1병)로 구성됐다. 각각 360㎖에 1만원. 약주 제조법으로 만든 프리미엄 전통주 온고지신 선물세트도 인기다. 전통주법으로 빚은 명작 선물세트도 있다. 약속재배를 통해 100% 해당 지역 원료로만 생산했다. ‘명작 상황버섯’, ‘명작 오미자’, ‘명작 오가자’, ‘명작 복분자’ 각 1병(375㎖)이 들어 있고 2만 4000원이다. (02)513-8663.
  • 경북 ‘한옥에서 하룻밤’ 인기만점

    경북 ‘한옥에서 하룻밤’ 인기만점

    경북지역 ‘전통한옥 체험 숙박’이 웰빙 바람을 타고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도는 19일 “2010년 한해 동안 안동 등 도내 전통한옥에서 숙박한 전체 관광객은 11만 2500여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년도 6만 8376여명보다 4만 4000여명(64.6%) 증가했고, 2008년 4만 5000여명에 견줘 2.4배나 크게 늘어났다. 또 지난해 숙박객 가운데 외국인은 전체의 10%에 육박하는 1만 1000여명으로 전년 5000여명에 비해 2배 이상이나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유교 문화권인 안동 5만 6000여명 등 북부지역이 8만 5000여명으로 전체의 76%를 차지했다. 이어 신라 문화권인 경주 2만명, 가야 문화권인 고령·경산 7000여명이다. 가장 선호한 전통한옥 체험지는 안동 하회마을이 1만 4000여명으로 가장 많았고, 영주 선비촌과 선비문화수련원, 경주 사랑채가 각 8000여명, 경주 양동마을과 고령 개실마을 각 3000명 등이었다. 특히 배낭 여행객들의 인기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에 소개된 경주 황남동 사랑채의 경우 지난해 숙박객 7600여명의 절반 정도인 3600명이 외국인이었다. 이처럼 도내 전통한옥 체험이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단순히 보는 관광에서 체험 관광으로 관광 트렌드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택 음악회와 전통 혼례, 공예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다. 또 2004년부터 76억원을 들여 경주, 안동 등의 고택과 종택 등 90곳에 화장실과 샤워장, 주방 등을 확충해 관광 인프라를 개선한 점도 한몫했다. 도는 이에 힘입어 올해 전통한옥 체험 관광객 유치 목표를 지난해보다 30% 늘려 잡았다. 김주령 도 관광진흥과장은 “문화재 지정 고택 296곳과 전통한옥 가옥 2000여채를 보유한 경북이 국내외 관광객들의 전통한옥 체험 숙박 메카로 자리잡고 있다.”면서 “전통한옥 체험 프로그램을 더욱 확충하고 홍보를 강화해 관광객 유치 확대와 이미지 제고를 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7) 충남 예산 용궁리 백송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7) 충남 예산 용궁리 백송

    한파 특보를 몰고온 동장군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는 엄동, 눈을 잔뜩 품은 구름이 거센 바람 따라 휘몰아치는 설한이다. 엄동설한의 한적한 시골길은 정적에 휩싸였다. 독야청청 푸른 소나무도 하릴없이 침묵에 들었다. 숱하게 겪어온 겨울의 기억을 나무는 수백개가 넘는 나이테로 줄기 안쪽에 깊숙이 쌓았다. 다시 하나의 나이테를 쌓으며 나무는 혹한의 계절을 흘려보내는 중이다. 추위로 얼어붙은 겨울 시골 길 위에 사람의 발길이 뚝 끊겼다. 나무에는 가느다란 떨림조차 없다. 나무의 속살에, 그리고 나무 앞에 놓인 겨울의 침묵이 견고하다. 나무가 겪어온 세월의 깊이만큼 깊고 먼 침묵이다. ●번식도, 옮겨 심기도 까다로운 나무 나무는 200여년 전인 1809년 추사 김정희 선생이 손수 중국에서 들여와 심고 애지중지 가꾼 백송이다. 백송은 소나무와 사촌 간인 나무이지만, 생김새가 유난스러워 눈에 잘 띈다. 줄기는 흰색 바탕에 밝은 회색의 얼룩이 신비롭게 어우러졌다. 그래서 백송이라고 부른다. 중국이 고향인 백송은 고향을 떠나서 자라는 생육 능력이 미약해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나무다. 자람이 더딜 뿐 아니라, 옮겨심기도 무척 까다롭다. 우리나라에 살아 있는 오래 된 백송은 중국을 오가던 사신이나 양반가의 선비들이 한 그루씩 얻어와 심어 키운 나무들이다. 백송도 봄이면 여느 소나무들과 같이 꽃을 피우지만, 그것의 꽃가루를 받아줄 다른 나무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가수정이라는 최후의 수단으로 꽃가루받이를 겨우 이룬다 해도, 튼실한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 토종 생물의 생태계를 뒤흔들 만큼 강력한 생명력을 가진 여느 귀화식물과 달리 백송은 여전히 희귀 식물일 수밖에 없다. 까닭에 여태 살아 있는 백송은 대부분 식물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실마리를 품은 문화재로서의 의미가 크다. 거개의 오래 된 백송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귀하게 보호하는 이유다. 추사가 자신의 생가 곁에 심은 예산 용궁리 백송 역시 천연기념물 제106호로 지정한 문화재다. ●추사의 삶을 증거하는 대표적 자연물 신비로운 흰빛의 백송은 추사 고택에서 조금 떨어진 추사의 고조부 김흥경의 묘지 앞에 있다. 백송에서부터 과수원 길을 따라 600m쯤 걸어오면 추사 고택이 나온다. 나무 앞의 견고한 침묵과 달리 고택 주위에는 매운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가는 사람이 다문다문 눈에 띈다. 젊은 연인도 있고, 삼대의 가족을 동반한 관광객도 있다. 그들 사이에 문화재 해설사 김선자(48)씨가 있다. “백송은 흔치 않은 나무인데, 추사 선생은 어릴 때부터 백송을 보면서 자랐어요. 청나라 연경에서 백송을 들여올 만큼 애정이 각별했지요. 키우기 어려운 나무이지만, 고택 안팎에 몇 그루의 백송을 더 심은 것도 선생의 그런 뜻을 기리기 위한 거죠.” 추사 고택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김 해설사는 추사 선생의 행적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연물이 백송임을 강조한다. 고택 주위에 백송을 새로 심은 까닭도 자분자분 풀어놓는다. 고택 뒤란과 솟을삼문 앞에 제가끔 한 그루씩의 백송을 심은 건 28년 전이다. 뒤란의 백송은 젊은 나무의 기세로 잘 자랐으나, 솟을삼문 앞의 백송은 이태 전 여름에 말라죽어 어린 백송을 새로 심었다. 추사 고택에 백송이 빠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추사가 백송을 처음 만난 건 천연기념물 제4호였던 서울 통의동 백송이었다. 1993년 고사해 지금은 볼 수 없는 나무로,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이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와 혼사를 치른 뒤, 영조가 마련해 준 월성위궁(月城尉宮·현재의 정부종합청사 부근) 앞에 서 있었다. 월성위궁에 머무르며 박제가에게 가르침을 받던 어린 시절의 추사에게 깊은 인상을 준 나무였다. 이후 24세의 청년이 된 추사가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연경에 간 적이 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연경에서는 백송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백송을 추사는 자신의 집에 가져다 심고 싶었다. 그때 그가 가져와 심은 나무가 바로 용궁리 백송이다. ●역사로 살아나는 나무의 견고한 침묵 훗날, 사람들은 추사가 백송의 씨앗을 필통에 넣어 들여왔다고도 하고 어린 묘목을 가지고 왔다고도 한다. 씨앗 번식이 쉽지 않은 백송의 생육 특징을 감안하면 묘목으로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지난여름, 태풍 곤파스가 닥쳤을 때에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어요. 혹시라도 우리 백송이 다칠까 봐 안절부절못한 거죠. 그때 백송 주위에 서 있는 큰 나무 160그루가 처참하게 쓰러졌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많은 나무들이 무너져 내리던 그날 밤에도 백송은 가지 하나 부러지지 않고 온전히 살아 남았어요.” 김 해설사의 홍조 띤 얼굴에 백송에 대한 극진한 애정이 한가득이다. 세개의 가지 가운데 두개를 잃고 한개의 가지만 남았건만, 나무가 뜸직한 자태로 추사의 삶을 증거할 수 있는 건 김 해설사처럼 나무를 제 몸처럼 여기는 이곳 사람들의 애정이 살아 있는 까닭인 게 분명하다. 다시 나무 앞에 섰다. 여전히 나무 앞에 놓인 침묵은 견고하다. 흐르는 바람 따라 백송 앞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은 아주 천천히 역사가 되고 언어가 된다. 침묵이 깊을수록 그 안에서 배어나오는 언어가 더 신비롭다는 걸 겨울 백송이 깨우쳐준다. 글 사진 예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산73-28. 새로 난 대전·당진 간 고속국도의 고덕나들목을 이용하면 추사 고택까지 편리하게 갈 수 있다. 고덕 톨게이트에서 1.2㎞쯤 가면 대천교라는 작은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건너자마자 좌회전해 500m 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다시 좌회전해 11㎞ 가면 용궁사거리에 이른다. 좌회전하여 1.4㎞ 가면 왼쪽으로 추사 고택과 기념관에 닿는다. 나무는 고택에서 600m 더 들어가면 볼 수 있다.
  • [주말 하이라이트]

    ●시크릿 가든(SBS 토요일 오후 9시 50분) 걸어가는 라임(오른쪽)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주원(왼쪽)은 뒤돌아보며 자신에게 예쁘게 손을 흔들어 주는 라임의 모습을 본다. 기억을 잃은 21살의 주원은 자신도 모르게 뛰어나가 라임을 잡고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라임은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며, 얼른 뛰어나왔어야지.’라고 말한 뒤, 미팅이 있으니 자신이 운전하게 차 키를 달라고 한다. ●학자의 고향(KBS1 일요일 오전 7시 20분)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과 같은 시대에 살면서 대유학자로 쌍벽을 이루었다. 남명에게는 당시 유학자들과 구분되는 특별함이 있었다. 평소 ‘성성자’라는 방울과 ‘경의검’이라는 칼을 차고 다녔다고 한다. 선비인 그가 칼을 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큐멘터리 3일(KBS2 일요일 오후 10시 25분) 화려한 카니발, 정열의 삼바, 그리고 열광적인 축구응원으로 유명한 나라. 지구 정반대에 있는 나라 브라질이다. 130여개의 다양한 민족이 사는 나라답게 다양하고, 개성 있는 패션을 추구하는 브라질 사람들. 패션의 중심지인 봉헤치로 거리에서 브라질의 유행을 창조하는 한국인들을 만나 본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45분) 산림원에서 경비 일을 하고 있는 잭.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으로 뒤덮이면서 그에게 황당한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그 두 번째 이야기. 1942년 필리핀 마닐라. 일본은 마닐라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필리핀을 격파할 계획을 세운다. 절체절명의 순간 필리핀 유격대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주말연속극 글로리아(MBC 토요일 오후 8시 40분) 본격적으로 드라마 촬영에 들어간 진진. 강석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진진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건강을 챙긴다. 한편 만석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동아는 병원으로 달려가고, 만석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SBS 스페셜(SBS 일요일 오후 11시 10분) 메모지로만 7년을 대화한 노부부가 있다. 결혼 생활 40년을 끝으로 황혼 이혼을 한 노부부를 만나 본다. 그리고 횡성의 한 시골 마을에 꽃상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 날 갑자기 이용희씨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를 통해 사라진 짝은 어떤 존재로 와 닿는지 그녀의 망부가도 들어 본다.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토요일 오전 10시 10분) 뉴질랜드 남섬 최대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는 해안선을 따라 수십여 개의 폭포가 있다. 협곡들과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장엄한 폭포, 울창한 원시림을 마주하는 순간 절로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삶의 오아시스가 되어 주는 뉴질랜드 남섬으로 떠나 본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6) 경기 이천 도립리 반룡송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6) 경기 이천 도립리 반룡송

    달력 하나 바꾸었을 뿐이지만 새해가 되면 누구나 자못 비장한 마음으로 갖가지 희망의 다짐을 하게 마련이다. 더불어 스스로 이루기 어려운 일이라면 하늘을 향해서든 바람을 향해서든 소원 하나씩을 바라곤 한다. 내용이야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그 희망과 소원이 한해 동안의 삶을 애면글면 이어가게 하는 힘의 근원인 것만은 틀림없다. 사람의 소원을 적어도 한 가지씩은 꼭 들어주는 나무가 있다. 새해를 맞아 찾아가 봄 직한 나무다. 1000년 전인 통일 신라 때 풍수지리를 정립한 도선 스님이 손수 심은 천연기념물 제381호 이천 도립리 반룡송이다. ●천연기념물 381호… 통일 신라때 도선국사가 심어 “물론이지. 소원 하나씩은 꼭 들어주고 말고.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무 때나 그 나무를 찾아가서 맑은 물 한 대접 올리고 소원을 빌곤 했어. 당연히 사람들은 소원을 다 이뤘지. 요즘 좀 뜸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해.” 51년째 이 마을에서 살아온 경안댁(73) 아주머니의 이야기다. 도대체 무슨 소원을 빌었고, 그 소원이 어떻게 이뤄졌기에 그리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까.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나무의 영험함은 지금도 여전할까. 그러나 터무니없는 욕망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사람들이 품은 소원이라면 제 아무리 영험한 나무라 해도 애시당초 글러먹은 소원일지 모른다. 반룡송이란 이름의 이 소나무는 봄이면 산수유 꽃잔치로 유명한 경기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마을 벌판에서 지난 1000년 동안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온 수호목이다. 나무는 너른 들판 한가운데에 기이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다. 키가 작은 데다 나뭇가지가 비틀리고 꼬인 채로 자란 까닭에 서 있다기보다 웅크리고 있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에게 서서히 드러내는 기기묘묘한 나뭇가지의 꿈틀거림은 참으로 신묘하다. 뱀처럼 길다란 몸을 가진 짐승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는 뜻의 생소한 한자 반(蟠)을 넣어 이름을 붙인 것도 그래서다. 쓰기도, 발음하기도 어려운 탓에 그냥 용송이라고도 부르고 1만년을 살아갈 나무라는 뜻에서 만년송이라고도 부르지만, 이 나무에 가장 알맞춤한 이름은 반룡송이다. 나무에 전설 속의 짐승인 용을 빗대어 이름 붙이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도립리 반룡송만큼 용틀임 직전의 꿈틀거림이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신비로운 나무는 흔치 않다. 반룡송이라는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옛 모습 사라졌어도 나무는 여전 반룡송이 들판에서 마을 바깥을 지켜주는 나무라면, 6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안쪽을 지켜주는 건 육괴정이라는 아담한 정자 주변의 여섯 느티나무다. 육괴정은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를 피해 낙향한 선비 엄용순을 비롯한 여섯 선비가 제가끔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고, 마을의 중심으로 삼은 곳이다. 예의 경안댁 아주머니의 집은 바로 육괴정에 잇닿아 있는 뒷집이다. 마침 이 댁에 마실 온 옆집 아주머니는 반룡송을 이야기하면서 옛 모습이 사라졌다는 게 아쉽다는 이야기부터 꺼낸다. “20년 전만 해도 반룡송은 지금과 달랐어요. 반룡송 앞으로 작은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바깥으로는 도토리나무가 울창했지요. 게다가 반룡송 주변에는 어디에서 온 건지, 산 위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커다란 바윗돌이 놓여 있어서, 걸터앉아 쉬기에 십상이었어요. 한마디로 아주 좋은 마을 숲이었죠.” 반룡송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1996년이다. 지금 반룡송은 들판 한가운데에서 쓸쓸히 겨울 바람을 맞고 있지만, 그 전에는 나무 주위에 서너 채의 살림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 앞의 밭에서는 고추 농사를 크게 지었고, 가을에는 마을 사람들이 고추 갈무리 울력에 나서곤 했다. 일을 하다가 땀을 식히던 곳은 어김없이 반룡송 앞의 너럭바위들이었다. 도시락을 펼쳐 놓고 둘러앉아 새참을 먹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늘을 깊게 드리우는 우거진 숲도 마을 사람들을 반룡송 앞으로 끌어들이는 요인이었다고. “나무 줄기가 축축 늘어져서 땅에 닿아 있었지. 괴이쩍은 짐승처럼 울퉁불퉁해서 어떻게 보면 무섭기까지 했다니까. 지금은 늘어진 나뭇가지들을 보호하느라 그랬는지, 지지대를 세워 놓아서 옛날 그 모습은 없어.” 옆집 아주머니 이야기에 경안댁도 오래 전 울창했던 마을 숲을 헤치고 들어가 반룡송 앞에 막걸리를 바치고, 소원을 빌던 때를 떠올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던 때부터, 살아있는 수호신이라는 마을 사람들만의 살가운 의미보다, 볼거리로서의 의미로 바뀐다는 게 아쉽다는 이야기다. ●참 평화를 찾는 사람들의 참 지혜 반룡송은 도선국사가 함흥, 서울 등 전국의 풍수 좋은 다섯 곳을 표시하기 위해 심은 나무 중에 살아남은 한 그루다. 당시 도선 국사는 나무를 심으며 장차 이곳에서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그러면 도립리에서 훌륭한 인물이 얼마나 나왔는지 궁금했다. “훌륭하다는 기준이 뭔데? 돈 많이 벌고, 정치하는 사람 돼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 우린 그거 하나 부럽지 않거든. 자식 잘 키우고, 정직하게 사는 게 제일 훌륭한 거야. 소원도 그래. 우리네는 대단한 욕심 없어. 남 속이지 않고 화평하게 잘 사는 게 제일 큰 소원이야. 우리 반룡송이 그걸 다 이뤄준 거야. 그래서 우리 마을엔 허리 굽은 노인도 없이 다 건강하고 내남 없이 잘 지내지. 그게 최고지 뭐.”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많이 나왔느냐는 질문에 끼어든 속물 근성을 부끄럽게 하는 칠순 노인의 지혜로운 대답이다. 훌륭한 나무의 덕을 입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바로 이것이지 싶다. 순백의 눈이 소복이 덮인 반룡송 마을 뒷산으로 저무는 붉은 노을이 한없이 평화롭게만 느껴지는 겨울 저녁이다. 글 사진 이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경기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201-11. 중부고속국도 서이천나들목으로 나가서 좌회전한다. 3㎞쯤 가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300m 남짓 가면 신둔교차로가 나온다. 우회전하여 5㎞ 가면 나오는 증포교차로에서 다시 이포 백사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5.5㎞ 가면 자동차 정비공장들을 지나면서 사거리에 이른다. 좌회전하여 1㎞쯤 가면 오른편으로 반룡송 주차장이 나온다. 나무는 주차장 반대편 들판으로 200m쯤 걸어가면 볼 수 있다.
  • 대한민국은 지금 ‘까도남 앓이’

    대한민국은 지금 ‘까도남 앓이’

    요즘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 김주원(현빈)이 장안의 화제다. 연말 연시 한파로 불어닥친 감기 바이러스는 간신히 피했지만 ‘주원 앓이’만큼은 피할 수 없다고 토로하는 20, 30대 여성들이 많다. 40대 이상 여성들에게도 주원은 그들만의 아이돌, 그 이상이다. 여성뿐인가. 극 중 현빈의 패션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 남성들은 물론, 트위터와 페이스 북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인기 드라마 속 ‘까도남’(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캐릭터를 논하는 중년 남성들이 크게 늘었다. 바야흐로 까도남이 대세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은 물론, 수목극 ‘역전의 여왕’의 재벌 상속남 박시후와 ‘마이 프린세스’의 엘리트 외교관 송승헌(이상 MBC), ‘아테나’의 첩보요원 정우성과 미국 국토안보국 동아시아 지부장 차승원, ‘싸인’의 천재법의학자 박신양 등이 까도남 캐릭터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인기리에 끝난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가랑 박유천도 아름답지만 까칠한 선비였다. 왜 대중은 이렇듯 까도남에 열광하는가.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시대별 남성 트렌드의 종합선물세트 ▲신데렐라 증후군(언젠가 신데렐라 같은 인생 역전이 본인에게도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현상) ▲캐릭터에 대한 동경 등을 꼽았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11일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 유행했던 남성 트렌드인 메트로섹슈얼(세련된 남성), 짐승남, 훈남, 나쁜 남자 캐릭터의 종합선물세트가 까도남”이라고 정의했다. 주 교수는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까도남은 세련된 외모와 자신감, 사회적 지위, 재력, 짐승남의 성적 매력까지 두루 지녔다.”면서 “그러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에게만은 순종적인 훈남의 이미지마저 완벽하게 갖춰 치명적 매력으로 다가온다.”고 풀이했다. ‘아테나’의 정우성만 하더라도 작전 수행 중에는 냉혹한 킬러이지만 사랑하는 여자(수애) 앞에서는 바보스러울 만큼 순정남으로 돌변한다. 길라임(하지원)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시크릿 가든’의 현빈도 마찬가지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중들의 잠재 심리인 ‘신데렐라 증후군’에서 까도남 인기 비결을 찾았다. 황 교수는 “능력있고 부유한 남성 캐릭터는 까칠함도 매력이라는 심리가 대중들에게 존재한다.”면서 “특히 드라마를 보며 까도남이 사랑하는 여자 주인공에게 잠재적으로 자신을 그대로 투영, 타인에게 까칠한 능력남 까도남이 자기 자신에게만 매달린다는 대리 감정을 느끼고 만족해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여성이 까도남을 좋아하는 데에는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인 이유도 있지만 너무 (극에) 몰입한 나머지 까도남이 사랑하는 여성에게 하는 행동을 마치 자신에게 하는 것마냥 착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남성의 경우도 나이대를 떠나 까도남이 지닌 사회적 능력과 매력에 대한 욕망 및 동경 차원에서 관심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까도남의 인기 이면에는 대중의 지나친 감정이입도 자리한다는 지적이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롯데월드 놀이기구 ‘풍선비행’ 10대 줄줄이 멈춰… 50여명 30m 상공서 ‘아찔’

    서울 롯데월드에서 놀이기구가 30m 높이 천장에 매달린 채 멈춰서는 바람에 승객들이 30분 넘게 공포에 떨었다. 6일 오후 6시 40분쯤 서울 잠실동 롯데월드 어드벤처에서 ‘풍선비행’놀이기구 10대가 운행 중 갑자기 멈췄다. 풍선비행은 천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놀이기구다. 이 사고로 탑승객 50여명이 30m 상공에 매달린 기구 안에서 길게는 40여분 동안 갇혔다. 사고가 나자 롯데월드 측은 놀이기구를 한 대씩 수동으로 조작해 내리고 탑승객들을 구조했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레일을 따라 돌던 10대 중 한 대에 문제가 생겼고 다른 기구들의 작동도 자동으로 멈췄다.”면서 “문제가 생긴 기구를 천장에서 떼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겼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월드는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풍선비행의 운행을 중단할 계획이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檢, 한만호씨 녹음CD 제출… 한씨 또 부인

    檢, 한만호씨 녹음CD 제출… 한씨 또 부인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공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검찰이 핵심 증인인 한만호(49·수감 중) 전 한신건영 대표가 구치소 등에서 어머니와 나눈 대화 내용 녹음 CD 등을 추가로 공개했다. 지난 공판에서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네지 않았다며 검찰진술을 번복한 것에 대한 후속 대응이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여전히 한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준 적이 없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우진) 심리로 열린 한 전 총리에 대한 3차 공판에서 검찰은 한 전 대표가 서울구치소와 의정부교도소에서 면회인과 나눴던 대화 녹음 CD를 증거로 새로 제출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CD에는 한 전 대표가 자신의 어머니와 나눴던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돼 있었다. 한 전 대표의 어머니는 지난해 5월 18일 “내가 문숙이(한 전 총리 측근인 김문숙씨를 지칭하는 듯)한테도 전화를 해봤어. 명숙이(한 전 총리를 지칭하는 듯)가 미국 가 있대. 우리가 이렇게 나갈 집도 없고 하니까, 좀 어떻게 서로 돕는 방법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그랬더니 무슨 말씀으로 전화했는지 알겠대.”라고 한 전 대표에게 말했다는 것. 한 전 대표는 또 같은 해 6월 30일 “3억 얘기했었거든. 3억이 적은 돈이 아니잖아요. 어떤 대답이 오긴 올 거예요. 그리고 한명숙 서울시장 나오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 될지 안 될지는 모르니까.”라고 어머니에게 말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같은 대화 내용이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자금을 전했다는 증거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한 전 대표가 구치소에서 외부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편지 내용을 인용해 그를 신문했다. 한 전 대표와 함께 구치소에 수용된 사람들의 진술을 인용하기도 했다. 검찰은 “우리가 (부도난 당신의) 회사를 되찾는 데 도움 주지 않을 것 같으니까 정치권과 접촉해 진술을 바꾼 것 아니냐.”고 신문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나의 수감으로 근심하고 있던)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 없어서 했던 말”이라며 검찰 신문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어 “구치소에서 아버지에게 ‘정말 못할 짓을 했다’고 말하는 등 (한 전 총리 모함을) 후회한 발언도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이날 추가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밝힌 CD 등은 사실상 ‘히든카드’였다. 그러나 한 전 대표의 바뀐 증언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데는 사실상 실패했다. 검찰은 또 CD 내용 일부를 재판부가 허가도 하기 전 언론에 공개, ‘여론몰이’를 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3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한 전 대표로부터 대통령 후보 경선비용 등으로 3회에 걸쳐 현금과 미화, 수표 등 총 9억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지난달 21일 열린 공판에서 한 전 대표는 검찰 진술을 모두 부정하고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임주형·강병철기자 hermes@seoul.co.kr
  • 충무로 스타작가 오페라를 탐하다

    충무로 스타작가 오페라를 탐하다

    지난해부터 국립오페라단이 준비해 온 창작 오페라 ‘아랑’이 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올랐다. 애초 60분짜리 소극장 공연에서 90분 분량의 중극장용으로 커졌고, 시각적으로도 더 화려해졌다. 이런 ‘아랑’의 진화 뒤에는 오은희(44) 작가가 있다. 영화 ‘내 마음의 풍금’(1999), ‘오! 해피 데이’(2003), ‘주문진’(2010)을 비롯해 흥행 뮤지컬 ‘동숭동 연가’, ‘사랑은 비를 타고’ 등의 대본을 쓴 스타 작가다. 너무 대중적인 게 오히려 비판의 소지가 되곤 했던 오 작가가 대중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오페라 영역으로 넘어오다니, 사뭇 의외다. 지난 13일 서울 태평로 서울신문 본사에서 그를 만나 ‘이유 있는 도전기’를 들어 봤다. ●“우리말이 오페라에 안 맞는다?” 먼저 처음 도전한 오페라 대본을 끝낸 소감부터 물었다. “영화나 뮤지컬보다 운율적으로 쓰면 되니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지던 데요.” 뜻밖의 대답이다. 우리말은 발음이나 음절, 억양이 서구 언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명확하고 분절적이라 오페라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엄연히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운율적으로 쓰면 돼 편했다? 부연 설명이 따라온다. “우리말은 끝에 ‘다’가 많이 붙는데 그럼 좀 딱딱해져요. 이럴 땐 도치법을 쓰는 거죠. 가령 ‘너는 보았다’를 ‘보았다 너는’으로 바꾸면 울림소리인 ‘는’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우리말을 부드럽게 바꾸기 위해 애쓴 노력이 전해져 온다. 오 작가는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익숙함’이 가장 큰 적이었다.”고 정색하며 말했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워낙 인기 있어 익숙해진 것일 뿐 우리말에도 좋은 음절이 많아요. 2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말은 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들 했어요. 하지만 서태지(의 출현) 이후 랩은 우리 대중가요의 주요 레퍼토리가 됐잖아요. 대중화가 되고 익숙해지면 얘기는 달라져요. 오페라도 그런 과정을 거칠 수 있다고 봅니다.” ●“영화와 오페라의 차이는 자유로움” 영화 작업과의 차이를 물었다. “자유로움!” 이어지는 설명. “영화는 산업예술인 동시에 감독예술입니다. 제가 쓴다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투자자들도 생각해야 하고 캐스팅에 따라 대본도 달라집니다. 원래 ‘내 마음의 풍금’은 배우 심은하를 염두에 둔 영화였는데, 주연 배우가 전도연으로 바뀌었어요. 그러면서 대본도 그(전도연) 이미지에 맞게 더 발랄해졌습니다. 오페라는 상대적으로 이런 점에서 자유롭더라고요. (‘아랑’을 쓰면서) 극 속의 인물에만 신경 썼습니다.” 그의 손으로 넘어오면서 ‘아랑’의 스토리 라인은 많이 바뀌었다. 원래 이야기에 따르면 아랑은 음흉한 유모와 지방관아 심부름꾼의 흉계로 칼에 맞아 죽는다. 오 작가는 유모를 ‘시월이’라는 시종으로, 관아 심부름꾼을 김 판서의 아들 ‘김유석’으로 바꿨다. 시월이는 아랑의 어릴 적 친구였지만 아버지가 역모에 휘말리면서 노비로 전락했고, 김유석은 아랑을 연모하는 선비다. 왜 이렇게 바꿔 놨을까. “이야기가 조금 잔잔해 욕망이라는 코드를 넣고 싶었습니다. 시월이는 노비이지만 과거 양반이었기 때문에 신분 상승의 욕망이 큰 팜므파탈로, 김유석은 도덕률이 강했던 선비 사회에서 (억누르고 있던) 사랑의 욕망을 분출하고 싶은 인물로요. 그러면서 캐릭터가 좀 더 명확히 대비됐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랑 전설의 ‘정절’ 코드가 싫었단다. 결국 아랑도 정절을 중시했던 조선 사회에서 욕망에 희생된 인물이라는 게 오 작가의 말이다. 여기에는 현대인의 욕망이 중첩된다. 아랑의 현대적 해석인 셈.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좋아한다는 오 작가는 “인간의 속성을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있는 게 오페라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솔직히 영화 같은 대중예술은 한계가 있어요. 다만 오페라도 비주얼 요소를 좀 더 강조해 대중의 흥미를 유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대중들도 그 에너지를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글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눈길 잡아끄는 문단·언론계 ‘인물론’

    글은 제 주인을 닮아간다. 그리고 글은 주인의 삶을 다 안다는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찧고 까불며 혼자 노닌다. 그렇다면 글의 주인은? 그저 흐뭇한 웃음으로 제 글 노는 광경을 지켜볼 따름이다. 노(老)작가 최일남(78)이 내놓은 에세이집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문학의문학 펴냄)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넉넉한 시선을 느끼게 해주는 글로 채워져 있다. 여든을 앞둔 작가의 원숙한 시선이 느껴지는가 하면 젊은이 못지않은 재기발랄한 문체가 지면 위를 통통 튕겨 다닌다. 말 그대로 잡문(雜文)이다. 영어를 배우느라 절절맸던 유년의 추억, 유행가부터 가곡, 샹송, 팝송, 재즈, 민중가요까지 섭렵했던 노래와 얽힌 인연, 일본 문학사에 대한 일람 등이 느긋하면서도 해박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박람강기를 천연덕스럽게 늘여놓는 와중에도 주제를 한줄로 꿰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사람이다. 그와 수십년의 시간을 함께했던 이들에 대한 새삼스럽지만 정연한 인물론이 곁들여졌다. 언론계와 문단에서 자신과 인생의 굴곡을 직접 나눴던 최정호·김중배·조세형·김소운·하근찬·정운영·이규태·이시영·김윤식에 대한 것이다. 이 밖에도 자신의 결혼식 주례를 서줬던 일석 이희승 선생은 물론, 스스로 사숙했고 장례식 먼 발치에서나마 봤던 백범 김구의 두 가지 선비론에 대한 기억 등이 보태졌다. 최일남은 “애초에 작심한 건 아닌데 이번에는 사람들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역사가 공공의 재산이라면 개개인의 삶은 필경 사람에 대한 기억과 사연으로 점철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 했지만 여든을 앞둔 노작가이자 원로 언론인인 그의 글은 젊은 후배들이 부끄러워할 정도로 여전히 해학이 넘쳐난다. 재기와 해학이 넘치다 못해 아예 발랄하다. 시인 곽효환의 헌시 ‘그리운 청년, 최일남’은 글과 삶 사이에 있는 최일남을 넌지시 내비쳐 절로 흐뭇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대구·경북 3대 문화권 조성 9개 사업 1조 6554억 투입

    국책 사업인 30대 선도 프로젝트의 하나인 대구·경북의 ‘3대 문화권 문화 생태 관광기반 조성사업’ 사업비가 확정됐다. 경북도는 기획재정부가 KDI에 의뢰해 문화체육관광부의 ‘3대 문화권 사업 기본계획’에 대한 비용·편익 등 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한 결과 , 대구·경북의 3대 문화권 9개 선도사업에 1조 6554억원을 투입하기로 확정했다고 1일 밝혔다. 이번에 사업비가 확정된 사업은 대구 1개, 경북 8개 등 모두 9개 사업이다. 사업별로는 ▲대구 역사 유적공원(482억원) ▲세계 유교 선비문화공원(안동·봉화, 3140억원) ▲한국 문화 테마파크(안동·영주, 2954억원) ▲가야국 역사루트 재현과 연계자원 개발(고령·성주, 1108억원) ▲신화랑·풍류 체험벨트(경주·청도·영천·경산, 2295억원) ▲삼국유사가온누리(군위, 1374억원) ▲낙동강 이야기 나라(상주, 1554억원) ▲황악산 하야로비공원(김천, 102억원) 등이다. 이에 따라 도는 내년부터 이들 사업을 본격 추진해 2016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한편 문화·생태기반 조성사업 26개 전략 사업의 내년도 추진을 위한 국비 예산 540억원은 국회 상임위를 통과해 현재 예결특위에서 심의 중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3대 문화권 문화·생태 관광기반 조성사업’은 유교·신라·가야 3대 문화권과 낙동강·백두대간·낙동정맥의 녹색생태축을 묶어 개발하는 것으로 경북만이 가진 탁월한 문화·생태자원을 활용, 경북도와 대구시가 함께 미래 먹을거리를 준비한다는 전략에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⑩ 논산 갈산리 쌍군송 마을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⑩ 논산 갈산리 쌍군송 마을

    나무가 견뎌내기에는 늦가을의 바람이 지나치게 매웠던 것이 분명하다. 단풍에도, 낙엽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거늘, 그 지당한 자연의 순서가 이 가을에 바뀌었다. 큰 나무들이 유난히 그렇다. 겨울 오기 전에 나무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줄기 속에 담아두었던 물을 덜어내야 한다. 생명의 물이건만 자칫 몸 안에서 얼어붙으면 하릴없이 동해(凍害)를 입을 수 있어서다. 단풍은 나무가 수분을 덜어냈다는 증거다. 낙엽은 그 다음에 따라와야 맞다. 그런데 간간이 불어온 매운 바람은 나무들을 놀라게 했다. 수천의 가을을 겪었건만, 이 가을 바람에 든 추위가 뜻밖이었던 나무들은 채 단풍도 들지 않은 초록의 나뭇잎들을 서둘러 땅 위에 내려놓았다. 충남 논산시 광석면. 앞들에서는 쌀이 많이 나오고, 뒷산에서는 칡이 많이 자란다 해서 갈미(葛米) 마을이라고 부르던 갈산(葛山)리. 한눈에도 풍요롭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 마을에서 사람살이를 지켜주며 정확히 355년을 살아온 나무가 있다. 독야청청 늘 푸른 소나무다. 쌍군송(雙君松)이라는 이름의 갈산리 소나무는 나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나무다. 대개의 경우, 300년쯤을 넘게 산 나무의 나이는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나무는 낡은 세포 조직을 덜어내고, 해마다 새로운 세포를 키워낸다. 오래된 세포는 나무 줄기 안쪽에서 서서히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오래된 생명의 흔적은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갈산리 쌍군송은 정확히 355살, 틀려봐야 고작 두세살쯤의 오차가 있을 뿐이다. 누가 언제 심은 나무인지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나무가 이곳에 처음 자리 잡은 건 1655년이다. 당시 이 마을에는 권육(1587~1654)이라는 선비가 살았다.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호위하기 위해 청나라에 따라 들어갔던 그는 중국의 앞선 문물과 과학서를 접했고, 고국에 돌아와서는 이를 바탕으로 요긴한 생활품과 병기를 만들어냈다. 나중에 예조판서까지 지냈던 그가 67세에 세상을 떠나자, 효종은 손수 소나무 두 그루를 골라, 그의 묘 앞에 심도록 했다. 그것이 1655년의 일이다. ●효종, 신하 권육 죽자 손수 보내 마을 사람들은 임금이 내린 한쌍의 소나무가 황송했고, 임금의 뜻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임금 군(君)자를 내세워 쌍군송이라 불렀다. 그 소나무가 여태껏 푸르게 살아 있는 것이다. 처음에 튼실한 묘목을 심었을 테니, 당시 대략 3년쯤 된 묘목이었을 것이다. 나무의 나이를 360살쯤으로 추정하는 근거다. 소나무라 했지만, 정확히는 바닷가에서 자라는 해송(海松), 우리말로는 곰솔이다. 최근 몇 해 동안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던 아름다운 곰솔들이 벼락을 맞거나 도시화의 피해로 잇달아 쓰러져 죽었다. 전주 삼천동 곰솔을 비롯해, 서천 신송리 곰솔, 익산 신작리 곰솔이 모두 생명을 잃었다. 오래된 곰솔을 보는 마음이 유난히 각별해지는 이유다. 더구나 임금이 손수 보낸 나무라니 더욱 각별하다. 쌍군송은 1982년 충청남도에서 지방기념물 제27호로 지정한 두 그루의 곰솔이다. 그중 한 그루는 16m의 키에 둘레가 3m 가까이 되고, 자람이 조금 늦은 다른 한 그루는 12m의 키에 둘레가 2m가 넘는다. 같은 시기에 심은 나무지만, 바람과 햇살에 따라 자람에 차이가 생겼다. 마을 안쪽 동산에 10여m의 거리를 두고 서 있는 한쌍의 곰솔은 제가끔 마을의 살림살이를 보살피듯 허리를 마을 쪽으로 살짝 굽혔다. 살아온 연륜에 비하면 규모가 큰 나무라 할 수야 없지만, 오랫동안 마을의 자존심으로 지켜온 만큼 여느 큰 나무 못지않은 도도한 기품을 갖췄다. 쌍군송은 지난 36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마을의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이다. 나무 곁으로는 나무가 넉넉히 자랄 수 있는 생육 공간을 두고, 둘레에 울타리를 쳐서 엔간한 사람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울타리 한쪽에 여닫이문이 있지만, 커다란 자물쇠가 입을 앙다물고 나무를 지키고 있다. ●도도한 기품으로 사람살이 지키다 “나무 보러 왔어? 이게 임금님 나무야. 임금님!” 옛 선비와 그를 추모한 임금의 배려를 떠올리며 넋을 놓고 있는데, 지팡이에 의지해 더듬더듬 다가오던 노파가 말을 걸어온다. 쌍군송 바로 앞 집으로 시집 와 60년 넘게 살았다는 노파다. ‘나무 앞에서 마을의 특별한 행사는 지내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노파는 들은 체하지 않고 제 이야기만 풀어 놓는다. 귀가 어두운 탓도 있겠지만, 60년 동안 보아온 나무의 사연이 많은 탓이 더 클 것이다. “얼마 전,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큰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졌어. 그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좋았지. 좋았고 말고. 그때까지만 해도 저 뒤에 있는 집에 살던 사람이 나무를 보살폈는데, 지금은 떠났어. 이제는 시(市)에서 나무를 봐 주지.” ‘어디 가실 참이냐’고 어두운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묻자, 머리가 아프고 허리도 뻑뻑해서 병원에 가는 길이라 한다. 동구 밖으로 향하던 노파가 갑자기 나무 곁에 다가가려면 울타리 뒤로 돌아가야 한다며 나그네의 손을 잡아끌었다. 혼자 가도 된다고 만류했지만, 노파는 굳이 ‘내가 보여줘야 한다.’며 울타리 뒤편으로 접어드는 모퉁이로 나그네를 이끌었다. 어떻게든 나무를 잘 보여주려는 마음이 주름투성이의 깡마른 손아귀에 한가득 담겼다. 나무 줄기 바로 앞에까지 다가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노파는 동구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갈산리 쌍군송은 그렇게 사람과 나무가 서로 보살피고 자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침묵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기야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나무가 어디 갈산리 쌍군송뿐이겠는가. 나무 없이 세상의 어떤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으랴. 글 사진 논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충남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산 26-22. 천안 논산 간 민자고속국도의 서논산나들목으로 나가서 셋으로 나뉜 갈림길의 가운데 길로 들어서야 갈산리로 들어갈 수 있다. 입체교차로를 한 바퀴 돈 뒤, 곧바로 오른쪽으로 난 마을 길로 들어선다. 100m쯤 가서 좌회전하면 700m쯤 앞에 옹기종기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 보인다. 쌍군송은 마을 뒤편에 있어서, 마을 밖에서는 안 보인다. 골목 길 300m쯤 안쪽에 마을회관이 나오고 그 앞에 쌍군송이 있다.
  • 소백산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논란 확산

    경북 영주시가 소백산국립공원 일대에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나서자 환경단체 등이 반발하고 있다. 30일 영주시에 따르면 풍기읍 삼가리 야영장에서 연화봉과 비로봉 사이 능선을 잇는 4㎞ 구간(능선 노선)과 단산면 좌석리에서 상월봉 4.2㎞ 구간(상월봉 노선)을 잇는 2개 노선에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시는 이를 위해 지난해 9월 사업 타당성 조사에 이어 케이블카 설치사업 기본 계획안 용역을 발주한 상태이며, 내년 5월 용역이 확정되면 환경성 검토와 실시 설계를 거쳐 환경부에 사업을 신청할 계획이다. 시는 사업이 승인되면 2014년 사업비 300여억원(시비 50%·국비 50%)을 투입하거나 민자유치 사업으로 추진해 2015년 완공할 예정이다. 시의 이 같은 케이블카 설치 사업은 환경부가 2008년 12월 국립공원 내에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게 한 데다 지난해 9월 중앙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늘어나는 관광 수요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시는 이들 구간에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소백산과 국립산림테라피단지, 풍기온천과 소수서원, 부석사, 선비촌 등을 연계한 관광 인프라가 구축돼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단체 등은 환경 훼손 등을 우려해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소백산은 연간 관광객 40만여명이 찾아 자연 훼손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면서 “시가 관광 활성화를 명분으로 케이블카까지 설치할 경우 자연은 물론 경관까지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소백산 국립공원은 각종 희귀 동·식물이 잘 보존된 곳인 만큼 자연을 그대로 잘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케이블카 설치에 신중해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영주시 관계자는 “소백산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자연 및 경관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공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연평도 애틋한 사연 2제] 군무원 남편두고 피난살이 박춘옥씨, 그저 눈물만…

    “지금 비상이라 길게 통화 못해. 거기(찜질방) 많이 불편할 텐데 노인네(어머니) 잘 부탁해. 아프지 말고….” 사흘 만에 듣는 남편의 반가운 목소리. 휴대전화를 붙잡은 박춘옥(47·연평면 남부리)씨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애써 울음을 삼킨 박씨가 짐짓 밝은 목소리를 내며 농담인 양 말을 꺼냈다. ●‘사지’에 있는 남편 생각에 애타 “살아만 돌아와. 나중에 보면 당신 좋아하는 우럭 매운탕 끓여 줄게. 나랑 어머니 걱정은 말고.” 피곤한 탓인지 낮게 잠긴 남편의 음성. ‘얼마나 두려울까. 잠은 잘 잘까.’ 그는 혼자 두고 온 남편 생각에 목이 메었다. 연평도 토박이인 박씨는 북한의 해안포 공격 당일 밤 11시 인천으로 빠져나왔다. 여든이 넘은 시어머니 박선비(85)씨와 함께였다. 30년째 해병대 군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남편 김모(54)씨는 그대로 섬에 남았다. 피난길 내내 남편과 쌓아 왔던 30여년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남편은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랐던 이웃 동네 오빠였다. 두 사람은 1984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나이 차가 있어서인지 유난히 자상하고 착한 남편이었다. ●연락 끊긴 사흘간 꼬박 밤샘 그런 남편만 ‘사지’에 두고 온 것 같아 박씨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북한의 추가 도발 관련 소식만 들리면 다른 피난민보다 애간장이 더 탔다. 노모는 “죄인 같은 심정”이라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박씨는 김장을 하다 이웃집이 포탄에 맞아 불타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고 맨발로 뛰쳐나왔다. 부둣가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안 들려, 안 들려.”라는 말만 들리고 전화가 바로 끊겼다. 그 뒤 남편과의 생이별로 연락이 끊긴 사흘간 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29일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인천 신흥동 찜질방에서 붉게 충혈된 눈의 박씨를 만났다. 혹시 남편에게 해가 갈까 봐 한사코 남편 이름과 본인 사진 공개를 꺼렸다. 지금 심정을 묻는 기자에게 그가 대답했다. “몸 건강히, 잘 있을 거예요. 아니 잘 있어야 해요. 꼭….” 백발의 노모가 옆에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인천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K9·F15K 도입 1조3993억 투입

    정부가 K9 자주포와 F15K 전폭기 구입에 내년 1조 3993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맞대응 과정에서 오작동을 일으킨 대 포병 탐지레이더의 차기모델 연구 개발 예산도 29억원이 편성됐다. 26일 기획재정부와 국방부 등에 따르면 정부의 내년도 국방예산안(31조 2795억원·전년 대비 5.8% 증가) 중 무기 도입 및 연구·개발(R&D) 등과 관련된 방위력 개선비로 전체 예산의 30.9%에 해당하는 9조 6613억원(6.1% 증가)이 잡혔다. 나머지 69.1%는 인건비, 급식비, 피복 및 시설 등에 쓰이는 경상운영비다. 방위력 개선비 중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핵심전력 확충 비용은 올해(5조 2078억원)보다 14.1% 늘어난 5조 9426억원이 책정됐다. 특히 K9 자주포의 구매비용은 올해 3883억원에서 내년 4850억원으로 25% 증액됐다. 대당 40억원가량인 점을 고려하면 내년에는 100대가량이 추가로 도입된다. 북한 도발 직후 공군이 출격시켰던 최신예 전폭기 F15K의 2차 도입 비용은 9143억원이 책정됐다. 공군은 2008년 5월 미국 보잉사와 F15K 2차 사업 계약을 맺었고 2012년까지 8회에 걸쳐 총 21대의 F15K를 추가 도입할 계획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땜질 처방’ 국방예산 적절성 논란

    ‘땜질 예산이 군을 망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6일 2011년도 국방예산안에 대해 “인건비의 연례적 과다 계상 및 재원활용이 부적정하다.”, “국방부는 재정현실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망해 국방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정부가 전년 대비 5.8% 늘어난 31조 2791억원을 편성해 제출한 국방 분야 세출 예산안을 분석한 뒤의 비난이다. 예산정책처는 특히 국방비의 69.1%로 책정된 인건비 및 경상운영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졌다. 이는 올해 뿐만이 아니다. 2009년도 예산 결산 때도 지적됐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예산정책처는 아예 분석 자료에 “2011년 예산 심사시 최소한 불용액만큼의 인건비를 삭감하도록 적정 편성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달아놨다. 2009년 예산안에 8조 6261억원으로 책정됐던 인건비 가운데 1135억원이 불용처리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국방부가 인건비 흥정에 주력하는 동안 무기 현대화 등을 위해 절실한 방위력 개선비 증액은 뒤로 밀렸다. 2000년 전체 국방 예산의 36.9%를 차지했던 방위력 개선비의 비중이 2011년 30.8%까지 곤두박질쳤다. 예산정책처는 국방개혁 예산의 허황함도 꼬집었다. 국방부가 2020년까지 경제성장률을 평균 7.1%로 예상하고 국방비 증가율을 그에 맞췄지만, “재정여건상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예산정책처의 지적이다.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급급했던 ‘땜질 처방’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방부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 K9 자주포 확충 등의 명목으로 2600억여원을 증액하겠다고 국회에 통보했다. 이에 대해 일부 의원들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며 혀를 찼다. 미래희망연대 송영선 의원은 “해병대가 이미 지난해 백령도·연평도 대포병 레이더 2대의 충원을 요구했지만 반영시키지 않고 육군에서 빌린 레이더를 계속 사용케 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또 해병대가 지난해부터 두 차례나 연평도 전력증강을 위해 K9 자주포 6문과 K1전차 6대를 추가 요청했지만 합참 등이 합동전력으로 반영하겠다며 미반영시킨 사실도 들춰냈다. 군이 전력 증강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한 채 ‘땜질 처방’에만 급급하다 보니 심각한 안보 공백이 생겼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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