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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 美 금창리 타결후 남북관계

    동서 냉전의 마지막 고도(孤島)였던 한반도에도 봄바람이 불 것 같다.북한금창리 지하시설문제가 북·미 협상에서 타결됨으로써 한반도를 둘러싼 냉기류가 걷히고 있다. 이 기류 변화는 일차로 북한의 ‘현실적 선회’에 기인한다.당장 핵개발에박차를 가하기보다는 일단 외부로부터 식량 등 경제지원을 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일이 金大中대통령의 지론인 대북 포용정책에 반해 강경노선으로치달을 개연성이 적어졌다는 것을 뜻한다.북·미 합의에 따라 미국이 단계적으로 대북 식량지원에 나서게 됨은 말할 것도 없다.일본도 대북 관계개선을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설 참이다.그렇게 되면 5월 이후엔 한반도 냉전 종식을 위한 한·미·일의 포괄적 접근방안이 급류를 탈 가능성이 높다.미국측의 금창리 현장접근이 순조롭게 끝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당장 이달 29일부터 평양에서 개최될 북·미간 미사일협상이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정착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특히 북한의 ‘선미후남(先美後南)’노선이 일거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란관측이 우세하다.대미 직접협상으로 최대 70만t의 식량을 확보한 북측이 당장엔 당국간 대화에 호응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개발포기 및 미·일과의 관계개선 등 우리의 일괄타결 구상에 손바닥을 마주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예컨대 우리측은 북한과 미국의 수교를 적극 권장한다는 입장이다.북한은 경제지원과 체제보장 등 과실을 원하지만 평양에 미국 공관 개설 등 가시적 문제에선 주춤거리고 있다.체제개방시의 위험부담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제반 현안을 일괄타결하자는 우리의 목표는 실제 적용단계에서 단계적 타결수순을 밟아갈 가능성도 있다.다만 그 과정에서 북한이 또다른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한·미·일간 공조를 유지하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 (25)

    ◆친일 미술가 金仁承·景承형제 작년 11월말 한 시민단체가 보낸 공문 한 통이 국가보훈처에 접수됐다.발신자인 신시민운동시민연합(의장 고경철)은 공문을 통해 “친일조각가 손으로세워진 애국선열의 동상을 방치하는 것은 민족사의 왜곡행위로 뜻있는 국민들의 성금으로 다시 세워 민족정기 회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보훈처의조치를 촉구하였다. 이 공문에서 신시민운동연합측은 ‘친일조각가’로 김경승을 지목하고 “해방후 역대 정권과 결탁해 비호를 받으면서 조각계의 거목으로 변신한 김경승이 그 더러운 손으로 민족사에 길이 남을 애국선열과 역사적 기념물을 제작했다는 사실은 반만년 문화민족임을 자부하는 우리민족에게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을 주는 반역행위”라고 지적하면서 “하루 빨리 친일반역자의 작품을철거하고 국민들의 정성을 모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공문에서 김경승이 제작한 애국선열의 동상으로 광화문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1953년 제작),남산 안중근 의사상(1959년 제작),백범 김구 선생상(1969년 제작),도산공원의 도산 안창호 선생상(1973년 제작),서울 종묘공원의월남 이상재 선생상(1989년 제작)등을 들었다. 김경승(金景承,1915∼1992)은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손꼽히는,유명한 조각가이다.그는 서양화가 김인승(金仁承,89·미국 거주)의 친동생으로 두 사람은형제 미술인으로도 유명하다.두 사람은 일제 강점기부터 80년대까지 한국 화단(畵壇)의 원로로 군림해온 사람들이다.이들은 일제 때는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미술전람회에서 상(賞)을 휩쓸었고,해방후에는 교단과 화단에서 다시명성을 날렸다. 특히 김경승은 국내의 대표적인 위인·애국선열들의 동상 제작을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예인(藝人)으로서 이들 형제는 재능을 떨쳐왔지만 민족사에서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해묵은 미술사 한 페이지를 들춰 그 이유를 알아보자. 1915년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문학부를 나온 지주 김세형의 6남매중 장남과 차남으로 태어난 김인승·경승 형제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여 학생미술전에서 수차례 입상했다.1932년 김인승은 재능을 살리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미술학교 유화과에 입학하였다.김경승도 2년 뒤 형을 따라 이 학교에 입학했는데 과(科)는 형과 달리 조각과를 택하였다. 1887년 일본 메이지정부에 의해 관립학교로 세워진 이 학교는 소위 서양미술을 가르치는 일본내 유일의 미술학교였다.이 학교는 일본인 외에도 조선·대만의 미술학도들을 청강생으로 받아 장학금을 주면서 미술교육을 시켰다. 이들 형제 외에도 조선인으로 심형구(沈亨求·1908∼1962)가 이 학교를 졸업하였다.김인승과 심형구는 선전(鮮展·조선미술전람회의 약칭)출품과 친일활동은 물론 해방후 이화여대에서 재직하는 동안 반평생을 단짝으로 지낸 사이다. 한편 김인승은 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평균 98점이라는 학교 최고점을 기록하면서 우등생으로 졸업(1937년)하였다.재학시절 그는 이미 일본 문부성이 주최한 ‘황기(皇紀) 2000년(1940년)봉축기념전’에 출품,입선하면서 화단에 얼굴을 내밀었다.졸업하던 해인 1937년에는 제16회 선전(鮮展)에 ‘나부(裸婦)’를 출품하여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하였다. 3·1 만세의거 이후 소위 일제의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시작된 ‘선전’은 1944년까지 23회나 개최되었는데 초기 서예나 4군자를 제외하고는 모든부문의 심사위원이 주최측인 총독부가 위촉한 일본작가였다.따라서 선전에출품된 조선인 작가들의 작품은 일본인 심사위원들의 취향을 반영한,왜색(倭色)이 짙은 작품들이 주로 입선되었다. 바로 이 ‘선전’에서 김인승은 1937년부터 연속 4회 특선,1940년 선전의추천작가가 되었다.이 때 서양화 부문에서 추천작가로 오른 사람은 그를 포함해 심형구·이인성(李仁星) 세사람 뿐이었다. 형에 이어 동생 김경승 역시 ‘선전’에서 연속 입상하였다.1939년 ‘S씨상’(흉상),40년 ‘목동’(전신상)등이 특선으로 입상하였고 41년에는 남자 입상(立像)인 ‘어떤 감정’으로 총독상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여명’이라는 작품으로 총독상을 2회째 수상하였다.‘선전’에서 관록을 쌓은 그는 43년 마침내 추천작가가 되었다.44년 그는 ‘선전’에 ‘제4반’을 출품하였는데 이는 관변조직인 애국반(愛國班)의 반원인 조선여성이 전시하 후방에서근로봉사에 나선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김경승이 ‘선전’에 출품한 작품들은 추천작가로서 출품한 작품을 포함,다섯 점 모두가 강한 ‘시국색(時局色)’을 띠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일제침략전쟁을 후방에서 지원하기 위해 식량증산이나 근로에 동원된 조선인들을담은 것으로 이는 은연중에 전쟁협력을 부추기고 있다. 두 사람은 또 일제하 대표적인 친일미술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에서 간부로활동하였다.1941년 2월 22일 시국하의 ‘회화봉공(繪畵奉公)’을 맹세하면서 탄생한 이 단체는 당시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시오바라(鹽原時三郞)가 회장,학무국 사회교육과장 계광순(桂珖淳)이 이사장,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학예부장 백철(白鐵)등이 이사로 있던 관민합작 단체였다.두 사람은 각각서양화부(김인승),조각부(김경승)의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이 단체는 나중에 조선문인협회·선전미술협회·보도사진협회 등 11개 예술단체와 더불어 1943년 1월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의 예술가단체연락협의회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들은 전람회를 열어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바치기도 하였다. 한편 김인승의 대표적인 친일행위는 그가 단광회(丹光會)에 참여하여 활동한 점이다.이 단체는 ‘성전하(聖戰下) 미술보국(美術報國)에 매진한다’는취지로 1943년 2월 조선인·일본인 화가 19명으로 결성됐는데 ‘선전’ 추천작가 중심의 최고 엘리트화가 집단이었다. 이 단체는 1943년 8월 조선인 징병제가 실시되자 이를 기념하여 회원 전원이 4개월간 합숙하여 100호 크기의 ‘조선징병제시행기록화’(사진참조)를제작하였다.이 그림은 징집된 조선청년을 중심으로 조선군사령부 보도부장,지원병훈련소장,총력연맹 사무국 총장,경기도지사,친일파 윤치호 등이 등장해 징병으로 나가는 조선인 청년을 믿음직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내용이다.특히 이 그림은 인물 주위로 남산의 조선신궁(朝鮮神宮)과 병사들의 행진모습등을 곁들이고 있어 일본정신 고취와 성전(聖戰)출전의 분위기를 조장하고있다. 김인승은 이밖에도 1944년까지 3차례에 걸쳐 열렸던 ‘반도총후미술전(半島銃後美術展)’에 운보 김기창(金基昶)·심형구·월전 장우성(張遇聖)등과 함께 추천작가로 참여하였다.그는 또 작품의 제작연대를 일본식 황기(皇紀)로표기하였으며 ‘선전’ 출품작에는 작가 사인을 ‘김인승’의 일본어 발음인 ‘Jinsho,Kin’으로 표기하였다.그의 친일의식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할 수 있다. 해방후 이들 형제는 친일미술가로 낙인찍혀 ‘조선미술건설본부’에서 제외당하는 수모를 겪었다.그러나 이들은 도쿄미술학교 출신,‘선전’ 추천작가등의 화력(畵歷)을 앞세워 다른 친일미술가들과 함께 승승장구 하였다.김인승은 47년 이화여대 미술과 교수로 부임한 것을 시작으로 49년 제1회 국전(國展)추천작가·심사위원,예술원 회원·목우회 창립주도,이화여대 미대 학장,미협(美協) 이사장 등을 지내면서 서양화 구상계열을 주도했다. 김경승 역시 국전 심사위원·예술원 회원 등을 비롯해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조각가로서 평통(平統)자문위원을 지냈다.특히 그는 충무공 이순신장군·백범 김구·도산 안창호 선생·안중근 의사 등 애국선열의 동상을 도맡아 제작하였다.이들 형제는 상복도 많아 문화훈장을 비롯해 ‘3·1문화상’까지나란히 수상하였다.남산의 백범 동상을 새로 만들자는 주장은 이래서 나오는것이다.
  • 격침 北잠수정서 사체1具 인양

    국방부는 22일 남해안에 침투하다 격침된 북한 반잠수정에서 사체 1구를 인양했다고 밝혔다. 해군은 이날 낮 12시 거제도 남방 150m 해저에 가라앉은 북한 반잠수정에대한 본격적인 인양작업에 앞서 심해잠수구조기구를 이용해 반잠수정의 상태를 확인하던 중 선미에 로프로 묶여 있는 사체 1구를 발견,인양했다. 사체는 얼굴 부분은 부패해 백골상태이며 진해항으로 옮기고 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 스키복 안감 소재… 점퍼·티·조끼에 활용

    얇고 가볍고 따뜻하면서 가격도 싸다.활동하기 편하고 눈을 맞아도 잘스며 들지 않고 툭툭 털면 된다. 패딩에 이어 올겨울 선보인 ‘폴라 플리스’(Polar Fleece)소재로 만든 옷 들이 바로 이것.지난해까지는 주로 스키복 안감으로 사용했으나 올해는 점퍼 나 티,원피스,조끼는 물론 모자,장갑,머풀러 등 각종 소품으로 활용되고 있 다.주로 캐주얼의류에 많이 사용되며 방수가 잘돼 스키웨어 대용으로 입어도 가능하다. 코오롱 마시모의 허미하실장은 “올해 내놓은 겨울제품의 3분의 1은 이 소 재를 사용했다”며 “가격이 저렴하고 귀여운 느낌을 줘 ^^는 이들이 많다” 고 말했다. 삼성플라자의 이선미대리는 “니트나 점퍼보다 가격도 싸고 물이 묻어도 바로 털면 스며들지 않는다”며 “스키복대신 입을수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가격은 브랜드에 따라 차이가 있다.조끼는 2만∼3만원선,점퍼는 3만2,000∼ 7만9,000원,후드티는 2만∼7만3,000원,장갑 2만원내외,모자 1만2,800∼2만3, 000원,머풀러 1만5,000원선이다. [姜宣任] **끝** (대 한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약속’ 한달만에 관객 56만명 돌파

    ◎내년초까지 상영… 최대 흥행 기록 경신 관심 상영 1개월만에 관객 56만명(서울지역 기준,전국 130만명) 돌파. 지난달 14일 개봉한 한국영화 ‘약속’의 성적표다.스크린쿼터 축소반대 움직임이 격렬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거둔 성공이라 더욱 빛을 발한다. 내년초까지 계속 상영될 예정이어서 근래 최대 흥행기록인 ‘편지’의 82만명을 경신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 영화는 지난해 ‘접속’의 전도연,‘편지’의 박신양 등 스타급과 함께 새로 캐스팅된 조연 정진영의 돋보이는 연기로 관객동원에 성공했다. 편지에 이어 이 영화를 성공시킨 신씨네의 한 관계자는 “두 주연배우의 탄탄한 연기와 신인 정진영의 신선미가 상승효과를 일으켜 흥행에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다른 영화사의 관계자는 “괜찮은 영화로 조연 정진영이 눈길을 끌었다”면서 “맡은 배역을 성실히 연기할 수 있는 좋은 배우”라고 평가했다. 영화평론가 강한섭 서울예술대교수는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여성이 좋아하는 사랑과 남성을 이끄는 의리가 골고루 들어있어 대중정서에 맞아 들었다”면서 “대중영화가 발전해야 예술영화도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흥행성공은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이모저모

    ◎‘상팔담·천선대’ 첫 개방 관광 만끽/‘KBS기자 관광’ 보도 현대상선 부인/정주영씨 금강호로 귀선/신혼여행 신청 커플 첫 등장 ●금강산 관광 이틀째인 20일 기온은 영상 5도∼16도로 19일에 비해 6도 가량 높아졌으며 하늘도 쾌청해 관광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이 날은 특히 전날 눈발이 날리고 기온이 낮아 안전사고 우려로 개방되지 않았던 구룡폭포코스의 상팔담과 만물상코스의 천선대가 각각 개방돼 관광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고 현대측은 밝혔다. 관광을 마치고 유람선으로 돌아온 관광객들은 저녁식사후 6층 공연장에서 방송인 宋海씨의 사회로 마련된 선상 전국노래자랑에 참가하거나 공연 등을 관람했다.선착장에 마련된 기념품판매장은 20일에도 관광객들로 북새통.송화분(송화가루)과 인삼제품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관광에 나서기에 앞서 북한측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금강호에 직접 올라와 관광에 나설 승객들의 숫자와 명단을 파악.관광객들은 카메라를 목이나 손에 걸고 배낭에는 유람선에서 나눠준 보온도시락통만 지참하는등 여행수칙을 잘 지켜 출입국관리소를 지날 때 그냥 통과할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 ●금강호 잔류자 20명 가운데 KBS기자 일부가 금강산관광을 했다는 KBS 9시 뉴스 보도와 관련,현대상선측은 이를 공식 부인.오후 10시쯤 이루어진 현지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20명은 여전히 북측에서 입북을 거부하고 있어 금강산에 가지 못했으며 이 사실은 통일부,안기부,홍콩현지 사무소를 통해서도 확인됐다”고 단언. 그러나 현대 대북사업단측은 “KBS기자 11명가운데 4명을 제외한 7명이 이날 아침부터 관광을 했으며 잔류자는 조선일보 기자 5명,통일부직원 4명,KBS 4명 등 13명”이라고 설명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19일 하루종일 금강산 초대소에 머물렀던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아들 鄭夢九 회장과 함께 해금강 코스를 관광한 뒤 초대소로 가지 않고 유람선으로 귀선.鄭世永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은 19일에 이어 이날도 구룡폭포코스를 관광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 ●20일부터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 장전항의 관광선에서 한국에 전화를 할때 종전 온세통신과교환원을 연결하던 수동방식과는 달리 자동통화방식으로 통화가 가능해 졌다. ●20일 출항하는 1만8천t급의 대형 유람선 봉래호의 순수 관광객 641명 가운데 현대그룹 계열사 직원이 30%에 달할 정도로 현대가족 일색. 봉래호에는 소설가 崔仁浩씨를 비롯 연예인 11명이 탑승했으며 조선일보 기자 4명(월간 필 1명,월간 산 1명,주간조선 2명)은 북한측의 입북금지 조치로 승선을 포기하기도. ●봉래호에는 네살짜리 꼬마 趙서연양이 최연소 탑승자 기록을 갱신.95년생인 趙양은 현대상선에 근무하는 아버지 趙泳勝 차장이 특별휴가를 얻어 금강산 관광에 나서게 됨에 따라 어머니 李선미씨와 함께 금강산을 직접 보는 기회를 잡은 것. ●신혼여행을 금강산에서 보내는 최초의 커플도 탄생.광주에 사는 趙양훈씨(29)와 宋지영(27)씨는 오는 30일 출발하는 금강호를 타고 금강산에서 신혼여행을 보내기로 합의하고 금강산 관광여행을 신청.이들은 9등급 객실을 신청했으나 현대 드림투어측은 최초의 신혼부부라는 점을 감안,趙씨 커플이 복도쪽 선실 대신에 바다가창밖으로 보이는 6∼7등급의 선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특별배려.
  • 어린이 2명 유괴 살해

    ◎5세 여아 성추행까지… 사체 1구 바다서 발견/부산서,인근동네 사는 40대 범행일체 자백 40대 남자가 인근 동네에 사는 남녀 어린이 2명을 유괴,살해한 뒤 바다에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16일 어린이 2명을 유괴,살해한 張世明씨(42·무직·부산시 수영구 민락동 147)를 붙잡아 조사중이다. 張씨는 지난 15일 하오 9시10분쯤 부산시 수영구 광안1동 충남슈퍼 앞에서 놀고 있던 이 동네 金모군(7)과 文모양(5)을 1㎞ 가량 떨어진 민락동 수변공원 선착장에 데려가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張씨는 경찰에서 “친척 결혼식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중 슈퍼앞에 있던 아이들에게 과자를 사주고 ‘바닷가에 놀러가자’고 꾀여 선착장에 갔는데 金군이 정박중인 어선에 올라가는 순간 넘어지면서 선미에 머리를 부딪쳐 깨어나지 않아 죽은 줄 알고 밧줄을 온몸을 감았다”고 말했다.張씨는 이어 “옆에서 우는 文양을 성추행한 뒤 목졸라 죽이고 밧줄로 묶어 바다에 버린 뒤 金군을 10여m 떨어진 다른 어선위로 올라가 바다에 던졌다”고 진술했다. 金군은 16일 하오 7시쯤 수심 5m 아래 바다에서 얼굴에 비닐봉지가 씌워지고 온몸이 밧줄에 감긴 상태로 인양됐다. 경찰은 張씨가 지난 95년 이혼한 뒤 혼자 살아왔고 직업이 없는 점으로 미뤄 돈이 궁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정확한 동기를 조사중이다.
  • 친일행각 張勃 흉상 철거 논란/서울대 미대 초대학장 역임

    ◎金珉秀 교수 임용 탈락 계기 민족정기수호聯 “직접 철거” 여류 친일인사 金活蘭씨의 이름을 딴 ‘김활란상’ 제정을 둘러싸고 ‘친일논쟁’이 한창인 가운데 이번엔 서울대 미대 초대학장을 지낸 張勃씨(97·재미화가)의 친일행적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8월31일자로 이 대학 디자인학부 소속 金珉秀(37) 조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데서 비롯됐다.대학측은 金교수의 재임용 탈락사유가 연구실적 부진 때문이라고 밝혔다.반면 독립운동가단체들은 金교수가 張勃씨 등 미술대 교수 출신 원로들의 친일행적을 거론한 데 대한 ‘괘씸죄’ 때문이라며 96년 미대 건물 앞에 건립된 張씨의 흉상철거를 주장하고 나섰다 金교수는 지난 96년 개교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초대 미대학장 張勃씨를 포함,교수 출신 원로 3명의 친일행적을 거론한 바 있다.이 가운데 張씨는 일제하 조선미술가협회 서양화부 평의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있다.이 단체는 수차례 전람회를 열어 그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바친 친일단체. 민족정기수호연합(대표 趙文紀) 등민족단체들은 최근 총장 앞으로 보낸 공문에서 “11월15일까지 張씨의 흉상을 철거하지 않을 경우 우리 손으로 철거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흉상철거를 둘러싸고 한 차례 충돌이 예상된다. ◎梨大,金活蘭장학금 신설 한편 이화여대는 8일 ‘우월 김활란상’을 제정하기로 한 데 이어 ‘우월 김활란 장학금’도 신설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대학 관계자는 金박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내년에 20억원의 기금을 적립,학부 및 대학원생을 위한 장학금을 신설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활란상 상금 10억원,김활란 장학금 기금 20억원 등 총 3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모금활동을 펼친 결과 현재 21억원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 하이퍼 리얼리즘 작가 이석주 개인전

    ◎북한강 새벽안개 화폭에 흐르고 들판과 숲,산 등 목가적 대상을 배경으로 잔상을 남기며 질주하는 기관차와 백마,낙엽 시계…등. 정교한 묘사의 극치를 보여주는 하이퍼 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작가 이석주씨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5년만에 개인전을 갖는다(11월8일까지). 이번 전시회에는 ‘환(幻)’을 주제로 한 연작 등 20여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이중 2,000호 1점을 포함해 200호 이상 대작이 3점이나 된다. 경기도 양평군 대성리 북한강변 경치가 빼어난 작업실에서 1년여동안 그린 작품들이다. 70년대말 국내에 도입된 하이퍼 리얼리즘은 현대성을 담보할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들로부터 호감을 받아 국내화단에서도 일정한 영역을 차지했다. 이씨는 미국의 하이퍼 리얼리즘을 흡수,서정성이 깃든 독자적인 극사실 형상의 경지를 이루어낸 작가. 문명에 대한 냉소와 회의가 가득했던 이씨의 초기화면은 그러나 90년대 들어 서정성을 띠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같은 변화에 대해 “현대미술이 폭력 섹스 마약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서정성을 잃어가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서정성이 더욱 깊어졌다.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들게 한 이번 작품들은 북한강변의 새벽안개를 머금은듯 뽀얗게 처리돼 한층 더 몽환적으로 느껴진다. 이씨는 홍익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아시아 비엔날레 금상과 국전 특선,91년 선미술상을 수상했다.
  • 그리운 북녘산하 화폭 가득/한국화가 황창배씨 북한기행 작품전

    ◎단군릉·구월산·선죽교…/주민모습·생활상 까지 대형작품 40점 선보여 “흥분하기 위해,자극받기 위해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이번 북한여행만큼 흥분한 적은 없습니다” 24일부터 오는 10월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북한기행 작품전을 갖는 중견 한국화가 황창배씨. 지난해 12월 남한화가로서는 처음으로 12일동안 북한지역을 답사하며 풍경과 주민생활 모습 등을 현장에서 직접 그린 스케치와 돌아와서 큰 화폭으로 옮겨 완성도를 높인 작품 등 40점을 선보이는 황씨는 아직도 그때 흥분에 젖어있다. 이번 전시회에 대한 기대도 크다.규모는 작지만 내용은 지금까지 그가 가진 그 어떤 전시회보다 의미있는 전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어찌 황씨 뿐이랴.우리국민 모두가 가보고 싶은 산하가 아닌가.하여 극진한 관심과 심혈을 기울인 자연사생(寫生)을 담은 이번 전시회는 특히 실향민들에게는 형언하기 어려운 향수를 불러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주로 평양시내 풍경과 황해도 평안도지역의 명승지,자연풍경,체류중에 접촉한 북한주민들의 모습,생활상 등을 담았다.특히 안악고분,단군릉,대동강지역의 고구려 유적,구월산 정방산 박연폭포 을밀대 선죽교 등 해방후 5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젠 거의 잊혀져 가는 산하의 모습이자 생생한 삶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황씨는 기존 한국화의 틀을 깨는 파격과 변화를 추구하는 등 자유분방하면서도 역동적인 그림세계를 구축해온 작가.그런 그가 이번 북한기행그림을 통해 오랫동안 묵혀왔던 묘사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작가 스스로가 “오랜만에 사실작업을 하니 아카데믹한 느낌이 든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그동안 구상작업보다는 추상표현 작업만 해왔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지난 91년 그동안 재직해오던 이화여대 교수직도 버리고 충북 괴산군 청안면 백봉리,심심산골로 들어와 작업실을 짖고 혼자 생활하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지난 89년 미 국무부 초청으로 뉴욕주 올버니 근처에 있는 아티스트 콜론 야도에서 3개월동안 작업만 할 때의 기억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괴산으로 내려오게 됐다고 한다. “야도에서 고립무원으로 혼자서 작업만 할 때 뭔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하도 생생해 다시 그런 느낌으로 창작작업에만 몰두하기 위해 서울을 떠났다”는 것이다.그리고 벌써 7년이나 됐다.요즘은 경기대대학원 등 멀지 않은 지역의 대학으로 가끔 강의도 나간다. 황씨는 78년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가.또 87년에는 부단한 실험과 독창적인 조형성으로 ‘선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월간미술 96년 6월호에서는 한국화부문 생존작가중 가장 비중있는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변화가 없이는 전시를 갖지 않는다는 그는 이번이 9번째 개인전이다.
  • 방패연 모습 지붕 통일과 희망 상징/미리 가본 상암동경기장

    ◎전통양식 가미 곡선미 부각/난지천 살려 환경친화 강조 21일 공개된 월드컵주경기장은 우리의 전통적인 요소에 우아하고 세련된 조형미를 가미한 거대한 방패연 모습을 띠고 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손님을 맞는 전통 소반 위에 풍요를 상징하는 팔각모반이 겹쳐진 형상이다.철골과 강선구조로 짜인 거대한 방패연 지붕은 경기에서의 승리는 물론 새로운 세기를 맞는 우리 민족의 통일염원과 인류의 희망을 상징한다.유리섬유 소재의 ‘막(테프론 패브릭) 구조’로 지붕 일부를 덮고 네 귀퉁이는 한국 전통의 지붕 및 처마선으로 표현,빼어난 곡선미를 갖추고 있다. 자연경관과의 조화도 빼놓지 않았다.주경기장이 한강과 가까운 점에 착안, 마포나루를 드나들던 황포돛배가 모여 있는 모습을 부각시켰다.지붕 중앙은 연꽃의 가운데처럼 뚫려 있고 나머지 부분은 바람에 휘날리는 돛처럼 주름으로 처리했다.남쪽에는 난지천을 부활하고 주변에 꽃길을 조성,환경친화적 성격도 갖췄다. 경기장은 전체적으로 월드컵 기념광장→상징조형물→연결다리→주경기장(번영의 마당)→보조경기장(화합의 마당)→통일의 문(전통의 마당)의 순으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공간 흐름을 유도하고 경계선마다 고유의 기능을 부여했다.특히 통일의 문과 연결되는 전통의 마당은 고유의 담장 형태로 만들어 한국적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시켰다. 경기장 설계는 부산 사직야구장과 올림픽공원내 5개 경기장 등 국내 대형건축물은 물론 말레이시아의 시라와크 주경기장을 설계하고 최근 중국 최대의 건물인 868타워의 국제 현상설계에서도 당선된 종합건축사무소 이공 대표 柳春秀씨가 맡았다.
  • 親日의 군상:3/3·1문화상과 皇國예술인(정직한 역사 되찾기)

    ◎민족 짓밟고 해방후 민족상까지 받아 ‘3·1문화상’이라는 상이 있다.1960년에 제정돼 올해로 39회째 수상자를 냈다.3·1문화재단(이사장 文仁龜)에서 주관하는 이 상은 대한유화 창업자 李庭林(작고)씨가 제정한 것으로 시상분야는 학술·예술·기술 등 세 분야.재단측이 밝힌 이 상의 제정취지는 “조국광복을 지향하여 거족적으로 발양된 위대한 3·1정신을 영원히 기념하여……”다.상 이름에도 ‘3·1’이 들어가고 또 매년 3·1절 당일 시상식을 갖는 것으로 봐 이 상은 3·1정신을 길이 계승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 분명하다.그런데 이 상의 역대 수상자·심사위원 중에는 일제 당시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거나 친일 작품을 남긴 예술가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예술분야 수상자중 13명,심사위원 중에는 20여명(일부 수상자와 중복됨)이 이에 해당된다.그들의 면면과 구체적인 일제시대 행적을 살펴보자. ◎상받은 예술인 13명의 친일행적은…/문인·화가 등 30여명 ‘위대한 3·1정신’ 왜곡/식민정책 전위대 역할… 청년 징병 내몰아 우선 예술분야 수상자가운데 문학가는 趙演鉉(13회)·安壽吉(14회)·白鐵(17회)·毛允淑(21회)·崔貞熙(24회)·李周洪(28회)등 6명,미술가는 李象範(4회)·金景承(5회)·金殷鎬(6회)·金仁承(9회)·朴泳善(10회)·金基昶(12회)등 6명,음악가는 金聖泰(22회) 1명이다. 문학 분야의 趙演鉉은 대학 재학시절부터 친일 잡지 ‘동양지광’에‘동양에의 향수’(1942년 5월),‘아세아부흥론 서설’(42년 6월)등 친일성향의 평론을 썼다.이중 아세아부흥론 서설은 ‘동양지광’이 현상공모한 ‘지상(紙上)결전 학생웅변대회’에서 3등으로 입선한 작품으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찬양하고 이 땅의 청년학도들이 아시아부흥의 투사로 나설 것을 부추긴 내용이다.‘북간도’로 유명한 소설가 安壽吉은 친일 문학잡지 ‘국민문학’(42년 2월)에 발표한 ‘원각촌’ 이외에도 ‘벼’,‘북향보’등의 친일성향의 작품을 쓴 바 있다. 평론가 白鐵은 작품보다는 친일단체에서 활동이 두드러졌다. 그는 친일 문인단체인 조선문인협회(회장 李光洙) 상무간사,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를 지냈으며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학예부장 시절 친일 미술가 沈亨求(해방후 반민특위에 의해 구속됨)와 함께 조선미술가협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여류문인으로 이 상을 수상한 사람은 毛允淑,崔貞熙 두 사람이다.이들은 모두 조선문인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41년 2월27일 부민관(현재 서울시 의회 건물)에서 개최된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결전부인대회’에 참석해 강연을 했다. 아동문학가로 활동한 李周洪 역시 상당수의 친일 작품을 남겼다.그는 친일 잡지인 ‘동양지광’에 수필 ‘청년과 도의’(43년 7월)를 비롯해 단편소설·시 등도 남겼다.그는 유일하게 사후에 이 상을 수상했다. 미술계의 친일논쟁은 해방직후부터 시작됐다.문화예술인의 최초 조직이었던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 조선미술건설본부는 金殷鎬·金基昶·金景承·沈亨求·李象範·尹孝重 등을 친일 미술가로 규정,회원에서 제외시킨 바 있다.이들의 대다수는 41년 2월21일 결성된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황민문화’ 건설을 목적으로 조선문인협회·보도사진협회 등 11개예술단체와 더불어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단체로 활동하면서 전람회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내놓기도 했다.43년 1월9일∼17일 정자옥(丁子屋·일제 당시 현 미도파백화점 자리에 있던 백화점)에서 ‘애국백인일수(愛國百人一首) 전람회’를 열어 그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내놓은 것이 그 예다. 미술가로서 첫 수상자인 李象範(4회)은 沈亨求와 더불어 국민총력연맹 문화부 문화위원을 지냈으며,金景承·金仁承 형제는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평의원을 지냈다. 특히 金仁承은 朴泳善과 함께 선일(鮮日)합작 미술단체인 단광회(丹光會)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단광회는 43년 3월 징병제 실시를 앞두고 회원 21명이 4개월에 걸쳐 공동으로 ‘조선징병제 실시’(100호 규모)를 제작,제1회 단광회 유화전에 출품하였는데 나중에 이 그림은 조선군 애국부를 경유하여 군에 헌납되었다. 순종(純宗)의 초상화를 그린 金殷鎬 역시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37년 중일전쟁 무렵에는 조선여성들이 당시 용산 사단사령부 모 일본군 장성에게 금비녀·금반지 등을 바치는내용의 ‘금채봉납도(金釵奉納圖)’를 그리기도 했다.金基昶은 최근까지도 친일논쟁이 있었던 인물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등의 친일성향의 그림을 그린 바 있다. 음악가로는 金聖泰가 유일하다.그는 玄濟明 등과 함께 ‘가창지도대’,‘경성후생실내악단’등 친일 음악단체에서 활동하였다.이 단체들은 ‘음악보국음악회’,‘비행기헌납 음악대연주회’등을 개최,황민음악을 보급하였다. ◎‘역사의 심사’받아야 할 심사위원은… 3·1문화상의 역대 심사위원 중에도 20여 명의 일제 식민정책 협력자들이 포함돼 있다.이들중 申奭鎬와 李丙燾는 총독부·조선사편수회에 근무하면서 조선역사를 왜곡하고 식민사관을 뿌리내린 장본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의료계의 鄭求忠과 尹日善도 학병권유 논설을 쓰고 시국강연회에 참석했다. 白樂濬은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경제학자 高承濟는 ‘국민문학’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등에 수많은 친일 평론을 남겼다.언론인 高在旭은 경성배영(排英)동지회와 전조선배영동지회연맹에서 상무이사를 지냈으며 여류 교육가 高凰京은 金活蘭·毛允淑 등과 같이 각종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문인중에서는 金八峰·朴鍾和·兪鎭午·郭鍾元 등도 다소 차이는 있으나 모두 친일 논설·작품을 남겼고 극작가 柳致眞·徐恒錫,음악가 金元福(피아니스트) 등도 모두 친일 예술활동을 한 적이 있다.柳致眞의 경우 친일 행적이 문제가 돼 고향 충무에 세워졌던 그의 흉상이 95년 주민들에 의해 철거됐다. ◎“아니! 이럴수가…” 독립유공자 심사까지/‘식민학자’ 등 10여명 18년간 활동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포상은 지난 62년 군사정부가 6·25 전상자를 위한 ‘군사원호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정부는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세우고 독립유공자들의 공로를 후세에까지 전한다는 취지에서 매년 광복절 등 역사적 기념일에 이들에 대한 포상을 실시해 왔다. 현재까지 독립유공 공로로 포상을 받은 국가유공자는 모두 8,514명(외국인 40명 포함)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역대 독립유공 서훈자 가운데 ▲친일 기관·단체 등에서 활동한 사람이 포함돼 있다거나 ▲가짜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 ▲서훈자가 서로 뒤바뀐 경우 ▲형평에 어긋난 포상 등의 논란이 있어 왔다.또 이들중 일부 친일 경력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돼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역대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중에도 친일 단체나 기관 등에서 활동한 인사가 일부 포함됐었다는 지적도 있다. 첫 포상이 실시된 62년도 이후 80년까지의 역대 심사위원 중에는 10여명(일부 중복자 포함)의 일제 식민정책 협력자가 포함돼 있다. 1962년 문교부 산하 독립유공 공적조사위원회의 위원 7명(위원장 포함)가운데 申奭鎬·李丙燾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申奭鎬는 1930년∼37년의 총독부수사관보(修史官補)를 거쳐 37년부터 수사관으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으며,李丙燾는 1925년∼27년에 총독부 수사관보,이후는 촉탁으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다. 1963년에는 내각사무처 독립운동유공자 상훈심의회에서 심사를 맡았는데 심사위원 22명 중에는 4명의 친일인사가 들어 있다.高在旭·申奭鎬·柳光烈·李甲成 등이 그들이다.高在旭은 1937년 7월 12일 결성된 경성배영동지회와 같은 해 8월5일 결성된 전조선배영동지회에서 상무이사를 지냈다.柳光烈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편집국장과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조선언론보국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친일논설 및 친일 시국해설 다수를 발표한 언론인이다.李甲成은 상해서 밀정노릇을 했다는 주장이 있다. 1968년에는 총무처 독립유공자 상훈심의회가 심사를 맡았는데 심사위원 21명중 高在旭·白樂濬·申奭鎬·柳光烈·李丙燾·李瑄根·洪鍾仁·金聲均 등 8명의 친일 기관·단체 등에서 활동한 인사가 들어 있다.白樂濬은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을,李瑄根은 만주국 협화회의 협의원을,洪鍾仁은 ‘매일신보’의 사회부장과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를 지낸 사람이다.金聲均은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언론·출판 검열담당)에서 근무한 기록이 있다. 1977년 원호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 11명 가운데도 柳光烈·李殷相 등 2명이 포함돼 있는데 李殷相은 만주에서 발행되던 친일지 ‘만선일보’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에 포함된 친일 경력자 논란은 1980년까지 계속됐다.이 해 원호처의 독립유공자 심사위원 11명 중에는 申奭鎬가 ‘끈질기게’ 포함돼 있다.그는 62년 첫 심사부터 63년,68년,80년도에 걸쳐 독립유공자 심사에 참여했었다. 친일파연구에 일생을 바친 고(故)林鍾國씨는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논하는 자리나 대일(對日)외교 무대 등에는 친일파들이 나서서는 안될 자리”라고 강조한 바 있다.
  • 沈壽官/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한국의 예술에 대해 한국인보다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던 일본의 미술사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도자기의 아름다움은 ‘자연이 보호’ 해주는 ‘무사(無事)의 아름다움’이며 그곳에 깃들인 자재미(自在美)와 무심미(無心美)는 ‘조선인이 아니면 아무나 할수 없는 조선만의 창조’라고 감탄했다. 따라서 조선의 도자예술은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으며 ‘뽐내며 피는 모란꽃이 아무리 강하고 아름다워도 가련한 수련의 아름다움을 거부할 수없다’고 철저히 편들었다. 임진왜란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도공의 후예 沈壽官이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400년만의 귀향­ 沈壽官家 도예전’을 일민미술관에서 갖게 된다고 한다. 심수관가는 일본 도자기의 대표적인 대명사인 사쓰마야키(薩摩燒)의 종가로 1598년 남원성(南原城)이 함락되면서 왜장이 끌고간 조선도공 중 沈當吉이 이룬 일가다. 올해로 일본의 최남단 가고시마(鹿兒島)에 정착한지 400년. 그동안 조상이 물려준 성(姓)을 그대로 간직한채 일본 최대의 도예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일본인들은 조선도 공들에게 좋은 흙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도예작업에만 매달릴 수 있도록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순수혈통을 잇기 위해 잡혼을 금지하는등 조선에서 천대받던 조선의 기술을 그들은 일본에서 마음껏 꽃피울수 있게 했다. 특히 이번에 선보인 작품중에는 끌려가면서 가져간 흙과 잿물로 빚었다는 초대 沈當吉의 ‘히바카리’도 들어있다. 그의 도예는 조선미술에 심취하다 조선땅에 묻힌 일본인 아카사카 다쿠미에 의하면 ‘사람의 손으로 빚은 또하나의 자연’이다. 역시 심수관가의 도자기를 본 소설가 한수산도 그의 작품은 ‘본것이 아니라 만난 것이며 귀기가 느껴질 정도로 무섭다’고 했다. 한 문화사학자는 ‘온갖 위대한 문화의 역사는 그 문화가 지닌 도자기에서 찾아볼수 있다’고 지적한다. 400년간을 이국땅에서 살았으나 오염되지 않는 도공의 순수성은 아무나 흉내낼수 없는 무욕(無慾)경지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사람이기 때문이며 심수관의 도예는 바로 조선도혼(陶魂)의 맥을 잇는 그 흔적일 것이다.
  • 키부츠에 가면 세계가 보인다/손혜신 지음(화제의 책)

    16세기부터 1917년까지 팔레스타인을 통치한 오스만 터키와 그 뒤를 이은 영국의 위임통치 시절(1917∼1948),팔레스타인 통치자들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단속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이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서로 힘을 모으는 것이 절실했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키부츠,곧 집단농장이다. 키부츠는 히브리어로 연합된 그룹이란 뜻. 이 책에서는 키부츠를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핀다.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전,동부 유럽의 유대인들은 1882년부터 5차례에 걸친 이민을 통해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키부츠와 자작농 협동마을인 모샤브를 만든 사람들은 2차(1904∼1914)와 3차(1919∼1923) 이민단이다. 이들은 교육받은 지식인들로 사회주의와 시오니즘에 자극받은 이상적인 개척자들이었다. 2,000년 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히브리어를 일상의 언어로 만든 것도 이들이었다. 최초의 키부츠는 1910년 이스라엘 독립 이전에 갈릴리 호수 남쪽에 세워진 드가니야 키부츠.현재 이스라엘에는 273개의 키부츠가 있다. 키부츠는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사회로 생산과 소비의 공동화,상호 책임과 협조,민주적 자치,자체 노동의 원칙 등을 기본 이념으로 삼는다. 지은이(이스라엘 키부츠연합 한국대표부 코디네이터)는 키부츠는 “유토피아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시대적 산물”이라고 말한다. 선미디어 7,000원.
  • 北 잠수정 인양에서 내부수색까지

    ◎두번째 해치 견고… 맨홀 열고 진입/선수·선미에 에어백 4개 달아 인양/軍警 무장상태·침투목적 밤샘 조사/크레인 이용 방파제 위로 올릴 채비 【동해=특별취재반】 북한 잠수정의 내부 수색작업은 25일 밤 늦게까지 계속됐다.부슬부슬 내리는 장마비도 잠수정 주변을 감싼 긴장감을 흐트러뜨리지는 못했다.잠수정 내부의 폭발물 설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군도 더욱 신중하게 작업을 했다. 수색 현장은 각종 서치라이트로 대낮같이 밝았다.그러나 늦게까지 승조원 전원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만 나돌 뿐 몇명의 사체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쉽게 확인되지 않았다.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잠수정 개방 및 내부조사=예인된 잠수정은 하오 6시쯤 동해항 북방파제에 설치된 250t짜리와 150t짜리 두대의 대형 크레인에 의해 마침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냈다.이어 대기중이던 대 테러 전문요원 8명이 2중으로 돼있는 잠수함 해치(Hatch)를 열고 들어갔다.첫번째 해치는 예상과 달리 손으로 쉽게 열렸으며 저항의 기미는 없었다.두번째해치가 열리지 않아 대 테러 요원들은 선수쪽 맨홀을 열고 잠수정 내부로 들어가 차례 차례 정밀 수색을 실시했다.이 과정에서 대 테러요원들이 폭발물이 설치됐을 경우에 대비해 탐지작업을 하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다. ▲육상 인양=밤 늦게까지 해상에서 1차 조사를 마친 잠수정은 크레인에 들려 방파제 위로 옮겨질 예정이다.대기 중인 군과 안기부,경찰 등 합동신문조 요원들은 육상에서 잠수정의 제원,성능,무장상태,침투목적 등에 대해 정밀조사한다. ▲예인 및 접안=이에 앞서 동해항에서 1.8㎞ 떨어진 침몰지점에서 수면으로 끌어 올려진 잠수정은 하오 3시37분쯤 예인보조선(YTL) 2대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부두로 예인됐다.잠수정은 앞부분 2m 정도를 물밖으로 드러낸채 YTL에 이끌려 하오 4시45분쯤 동해항 북방파제 내항으로 접안됐다.대기하고 있던 대 테러요원들이 잠수정 내부 진입을 위한 탐지작업을 시작했다. ▲부상=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부상작업은 동해 앞바다에 정박중인 4,300t급 잠수함 전문구조함 ‘청해진함’의 주도 아래 해군 해난구조대(SSU)가 맡았다.SSU요원 70여명은 24일 상오 9시부터 34m 해저로 들어가 잠수정 선수와선미에 지름 4.1㎝ 철제 와이어를 감은 뒤 잠수정의 연결고리에 20t 짜리 공기주머니 4개를 차례로 연결했다.이어 25일 하오 1시50분쯤 청해진함에 연결된 호스로 잠수정에 부착해 놓은 공기주머니에 압축 공기를 주입,한 시간만인 3시쯤 수면으로 부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잠수정 예인 일지 ▷22일◁ ▲하오 4시33분=속초 동남방 11.5마일 해상서 북한 잠수정 발견·신고 ▲하오 4시40분=경계태세 1급 발령 ▲하오 5시30분=1함대 소속 초계함 1척 등 현장 도착 ▲하오 7시25분=군산함 예인 시작 ▷23일◁ ▲상오 0시20분=기사문항으로 들어오다 동해항으로 예인 장소 변경 ▲하오 1시=동해항 앞바다 1.8㎞ 해상에서 잠수정 침몰 ▷24일◁ ▲상오 5시=잠수정 인양작업 착수 ▲하오 8시30분=공기주머니 부착에 필요한 철선 연결후 작업중단 ▷25일◁ ▲상오 5시30분=인양작업 재개 ▲하오 3시=공기주머니 이용 잠수정 부양 성공 ▲하오 4시45분=동해항 방파제 바지선까지 예인 완료 ▲하오 6시16분 수중폭파대 잠수정 투입 시작 ▲하오 6시30분=사체 발견
  • 공기주머니 매달아 浮揚/北 잠수정 나포­인양 어떻게

    ◎구조함 2척 船首·船尾 묶어 이동/실패땐 구조선 설악호 투입키로 【특별취재반】 바다 밑에 가라앉은 북한 잠수정은 어떻게 인양될까. 합참에 따르면 북한 잠수정은 23일 하오 1시쯤 동해항 방파제로부터 1.8㎞지점에서 가라앉기 시작해 40분 후 깊이 33m 해저에 침몰했다. 잠수정의 선미 부분을 묶었던 로프는 끊겼고 선수 부분에만 로프가 연결돼 있다. 수면을 향해 머리쪽이 들린 형태이며 선미쪽 스크루 5개 중 2개가 해저에 묻혔다. 군 당국은 선체의 일부가 수면 위에 떠있을 때는 압축 공기를 잠수정 안에 넣어 부양시킨 뒤 자세를 바로잡아 내항으로 옮기려 했으나 선체가 완전히 침몰함에 따라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침몰 현장에는 해군 수중폭파대(UDT)와 잠수사가 투입돼 잠수정이 파손됐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등 인양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본격적인 인양은 24일 상오 시작된다. 군 당국은 공기주머니를 선체 양편에 부착시킨 뒤 팽창시켜 수면에 떠오르게 한 다음 2척의 구조함을 잠수정의 앞뒤에 배치,선수와 선미를 각각 로프로 연결해자세를 안정시킬 계획이다. 이 때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조금이라도 쏠리면 다시 가라앉을 수 있다. 군은 공기주머니에 의한 인양작업에 실패하면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때 투입됐던 구조선 설악호를 투입할 계획이지만 설악호는 부산에 정박 중이어서 이동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잠수정이 항구에 도착하면 수중폭파대 요원들이 투입돼 선체 내부를 정밀수색한다. 이어 15명으로 구성된 합동신문조가 조사작업에 들어간다. 합참의 朴仁鎔 해상작전과장은 “공기주머니에 의한 선체 인양은 외국에서도 널리 쓰이는 방법이지만 잠수정은 선체가 둥글기 때문에 균형을 맞춰 부착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 北 문화재 데이터베이스화/통일부,남북협력사업 승인

    통일부는 21일 경향신문 부설 한민족문화 네트워크 연구소(소장 李埰洛)가 북한 문화재 자료 데이터 베이스화를 위해 신청한 남북 협력사업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한민족문화 네트워크 연구소는 금강산 국제그룹(회장 朴敬允)과 협력,북한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조선민속박물관,조선미술박물관의 문화재 자료 7만건을 대상으로 화상,음성 등을 포함한 멀티미디어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할 예정이다.
  • 민족문화 네트워크연구소/정부 남북협력사업자 선정

    통일부는 11일 북한 문화재 관련자료를 북한으로부터 넘겨받아 데이터 베이스화 작업을 추진키로 한 한민족문화 네트워크 연구소(소장李埰洛)를 남북협력사업자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한민족문화 네트워크 연구소는 앞으로 금강산 국제그룹(회장 朴敬允)과 협력,북한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조선민속박물관,조선미술박물관의 문화재 자료를 전산자료로 제공받아 데이터 베이스 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다.한민족문화 네트워크 연구소가 추진중인 사업은 남한 소프트 웨어를 이용해 북한 문화재 자료의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으로 남북한 사이에 추진되는 최초의 정보화 관련 협력사업이다.
  • 5·10 제헌국회 총선 50주년­역사적 의의

    ◎봉건사회 종언… 독립정부 토대 구축/사상 첫 민주선거… 王朝국가서 국민국가로/냉전체제속 ‘반쪽선거’ 분단고착화 초래 ‘역사의 등불은 선미(船尾)만을 비추는가’-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된 전철(前轍)을 밟기 마련이다.특히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시대인들에게 제헌국회 총선 50주년의 의미를 교훈으로 되살리는 작업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국민의 정부’를 맞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새김질하는 차원에서도 더욱 그렇다. ‘5·10 선거’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보통선거다.지리적 이념적으로 ‘반쪽선거’에 그쳐 분단을 고착화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대한민국건국을 위한 합법성의 기초가 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정치적으로는 통치엘리트의 교체를 공식화한 의미를 갖는다.국왕을 정점으로 양반계급내에서 통치엘리트가 충원되던 봉건적 신분제 사회가 막을 내리고 시민계급이 통치행위의 전면에 부상한 계기가 된 것이다.‘5·10 선거’를 기초로 48년 5월 31일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7월17일에는대한민국헌법이 공포되어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다.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논리도 ‘5·10 선거’의 유효성에 근거한다. ‘5·10 선거’가 남한 단독선거로 치르진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미·소간의 치열한 패권주의적 신경전 때문이다.일제 패망이후 한반도내 민주적 임시정부의 구성 문제를 논의하던 미·소 공동위원회가 정부 구성에 참여할 정당·사회단체의 범위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미국은 47년 9월17일 한국문제를 유엔에 상정한다.미국은 유엔에서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총선거실시안을 추진하지만 소련이 “인구비례에 의한 선거는 남한진영의 승리와 소련에 비우호적인 정부의 수립으로 연결된다”며 반대,결국 남한 단독선거로 귀결된다.국내에서도 단독선거 반대 주장이 제기됐지만 “정부수립을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의견이 대세를 탄다.이에 따라 한반도의 공산화를 우려하며좌익소탕 작업을 벌이던 미군정은 48년 3월1일 ‘조선인민대표의 선거에 관한 포고’를 통해 ‘선거실시’를 공식 발표하고 단독선거와 단독정부수립운동을 적극 지원한다.당초 선거날짜는 일요일인 5월9일이었지만 기독교계의 변경 요청으로 하루 늦춰진다. 정치권에서는 선거 참여파와 불참파,남북협상파 등으로 나뉘어 치열한 세다툼이 벌어진다.李承晩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한국민주당,민족청년단,대동청년단,서북청년회,대한노총 등 반탁·반공의 우익세력들은 선거를 적극지지한다.특히 朴憲永계의 좌익세력 ‘조선인민공화국’에 맞서 결성된 한민당은 “선거를 반대하는 것은 소련의 앞잡이인 남로당이나 북로당의 모략에빠져 사회혼란을 초래하는 행위”라고 규정한다.반면 남로당과 민주주의민족전선 등 좌익세력은 파업,시위,방화 등 폭력행사를 통해 선거반대 투쟁을 벌인다. 양쪽의 치열한 대립 속에 金九와 金奎植 등 우익 중간파들은 “남한 단독선거는 민족분단을 영구화한다”며 남북협상을 추진한다.金九 등은 ‘3천만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라는 성명에서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데는 협력하지 않겠다”고 절박한 심정을 토한다.우여곡절끝에 4월20일 평양을 방문한 이들은 ‘전조선 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단독선거배격운동을 촉구하는 결정서를 채택하지만 취약한 국내 기반과 국제적 냉전체제의 가속화,협상의 전략적 실패 등으로 ‘통일정부 수립’의 꿈을 접고 만다.이처럼 ‘5·10선거’는 독립정부 수립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분단의 고착화라는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그러나 왕조국가에서 국민주권국가로 발돋움한 토양을 마련,건국의 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5·10선거’의 역사적 의미는 결코 퇴색될 수 없다.
  • 호프집 불 8명 질식사/성남

    ◎비상구 없고 유독가스로 출구 못찾아 참변/경찰,누전 추정… 방화 가능성도 조사 【성남=尹相敦 金慶雲 姜忠植 기자】 초저녁 호프집에서 불이 나 손님과 종업원 등 8명이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17일 하오 7시25분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1동 5498 3층짜리 상가건물 3층 ‘카라파라’호프집(주인 김익구)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호프집 종업원 임권태씨(25·수정구 수진1동)와 부인 김은진(20),손님 김선미씨(22·여·용인시 모현면),1층 ‘지오다노’ 의류점 종업원 강은미씨(25·여) 등 모두 8명이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의류점 종업원 강씨는 호프집 옆 옷창고에서 정리작업을 하다가 불이 난 것을 보고 호프집에 들어가 형부에게 불이 난 사실을 알린 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사망자는 인근 인하병원과 소망병원으로 분산해 안치했다. 또 옥상 가건물에 사는 김한기씨(65)가 연기를 피해 옆건물로 건너뛰다 다리를 다쳐 인하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귀가했다. 불은 호프집 내부 70여평과 복도등을 모두 태워 2천여만원의 재산피해(소방서 추정)를 낸 뒤 하오 8시20분쯤 꺼졌다. 불을 처음 본 호프집 종업원 강성민(20)씨는 “1층 입구에서 광고전단을 나눠주다 건물 3층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뛰어올라가 보니 3층 복도 입구에서 심한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고 말했다. 불이 난 건물의 1층 입구에서부터 3층 호프집으로 연결되는 계단의 벽과 천정이 강화플라스틱(FRP)으로 장식돼 있고 호프집 내부창문이 석고보드로 막은 통유리로 불법 개조돼 유독가스가 빠져나가지 못해 인명피해가 컸다. 또 호프집안에 소형 소화기가 2대가 있었으나 사용을 못했으며 출입구를 외에 비상구가 없고 2층에서 3층으로 통하는 계단에 카펫이 깔려 있어 인명피해를 더했다. 경찰은 일단 누전으로 인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으나 방화의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사망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임권태 ▲김은진 ▲김선미 ▲강은미 ▲임영란(27·여) ▲허윤경(20·여·수정구 신흥1동) ▲김영태(22·군인) ▲박성민(21·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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