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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분 데이트 (13) - 임장희

    5분 데이트 (13) - 임장희

      IQ 137의 아가씨 미스·상은(商銀) 임장희(任章姬)양 『「미니·스커트」는 싫고요, 그물「스토킹」도 싫고요, 할아버지는 좀 무섭고…』 하다가 할아버지는 무척 잘해주셔서 좋다고 정정하는「미스」상업은행 임장희양. 올해 23세. 진명여고, 성대 도서관학과를 거쳐 올 2월 상업은행에 들어왔다. 임양의 아버지도 조흥은행에 20년 이상 근속한「뱅커」일가다. 키 157cm, 43kg의 체중. 날씬한 건 좋은데 너무 가볍지 않으냐니까『몸만 가볍지 딴 것(행동·생각?)은 가볍지 않아요』하는 재치있는 아가씨. 여고시절 IQ「테스트」에서 137점을 받았다는 재원. 출납계와 보통예금계에서 일 볼 때 한 번 5백원이 남았다가 석 달 뒤에 5백원이 모자라 물어넣었다고. 게다가 1백원씩 두 번 물어넣었으니까 입행(入行) 후 2백원정(整)의 손재수를 입은 셈이라고. 3남 1녀의 외동딸. 오빠 두 분에게선「데이트」자금을 조달받고 남동생에겐 월 5백원의 장학(奬學)·장유(壯遊)(?)비용을 지급하고 있고. 이런 점에선 흑자란다. 은행원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중학시절엔 주산반에 들었었고 대학시절엔 연극반, 방송반에서 일 보기도. 덕택에『졸업 때 상은 여러가지 탔다』는 자가(自家) PR. 첫 월급은 몽땅 선물을 사서 가족·친지들에게 선사.「보너스」가 나오면 어머니에게 드리지만 월급은 용돈, 결혼준비금으로 1백% 활용되고 있다고. 애인 있느냐니까『그런 건 쓰지 마세요』하는 걸 보니 공연히「팬·레터」나 보냈다간 우표값 7원만 손해볼 것 같다. 본점 영업부 영문당좌계 근무. 처음엔 외국인만 보면 겁이 나더니 이젠 익숙해졌고 또 은행을 이용하는 외국인들이「기막히게」한국어를 잘하더라고. ※ 뽑히기까지 상은엔 미녀가 많다.「미스·코리어」출신도 있고 그외 숱한「뷰티·콘테스트」출전자들이 있어 남자행원들도 정작 누구를「미스」상은으로 해야 하는가엔 상당히 당황, 결국 각 부에서 골고루 8명의 아가씨를 선발해왔는데「카메라·테스트」에서 골라진 아가씨가 셋. 이중에서 임양이 창구근무라는 점에서 행운의「미스」상은으로-. [ 선데이서울 68년 12/22 제1권 제14호 ]
  • 한국 최초의 수중결혼식

    한국 최초의 수중결혼식

      수중결혼식 비용 모두 2만원, 답례품은 사진 든 예쁜 카드로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한국 최초의 수중결혼식이 12월 14일 하오 2시 수심 3m의「워커힐·풀」속에서 성대히 거행됐다. 전 세계를 통틀어 7번째인 이 수중경사를 구경하려고 모여든 인파는「워커힐·풀」을 가득 채웠는데 하객들은 모두 신발을 벗어 들고 입장. 구두가 뒤바뀌는 소동도 벌이고. 7백여 하객이 빽빽이 들어선 가운데 먼저 신랑인 현용남(玄勇男)(30·기독교방송근무)군이 물속에 입장, 다음 신부인 이애자(李愛子)(25·기독교방송근무)양이 노란「스폰지」로 된 수중「드레스」에 면사포를 쓰고 물속에 입장. 식은 수심 3m의 물속에서 진행되어 하객들은 장내에 특설된「마이크」를 통해『지금 결혼서약서에「사인」했습니다』『이제 곧 한국최초, 아니 세계최초의 수중「키스」가 있겠습니다』하고 소개되는 것으로 겨우 식의 진행을 알 수 있는 정도. 그동안 하객들은 물위에 떠있는 흰 꽃송이 5, 6개가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모습과 때때로 흰 물거품이 솟아오르는 것만을 구경하고 있을 뿐. 신랑의 할머니뻘 된다는 한 할머니는 흰 물거품이 솟아오를 때마다『저거 저러다 물먹는 거 아니냐?』고 초조해 하기도. 고대(高大) 밴드가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드디어 수중결혼식의「클라이맥스」인「키스」가 성공한 순간 두 개의 소형 축포가 터지고 색채도 선명한「핑크」빛 축연(祝煙)이 물속에서 솟아올라 장내는 삽시간에「핑크·무드」. 식이 끝난 후 신랑 현용남씨가 밝히는 바로는, 이 진기한 수중결혼식에 든 비용은 모두 2만원. 청첩장은「스쿠버·다이빙·클럽」에서 찍어주고「워커힐·풀」은「워커힐」측이 무료제공. 대신 이 두 원앙은 첫날밤을「워커힐」에서 지냈다. 결혼식에 온 하객들에겐 예쁜「카드」가 답례선물로 주어졌는데 이「카드」엔 수중결혼식 광경사진이 들어있다. [ 선데이서울 68년 12/22 제1권 제14호 ]
  • 손님 멋대로 흐느적거리십쇼

    손님 멋대로 흐느적거리십쇼

      뉴요크에 기발한 아이디어 살롱, 놀다 싫증나면 전류의 자극을 즐겨 「뉴요크」시「맨해턴」의「브룹」가 429번지엔 기발한「살롱」이 생겨 화제. 일명『「맥루한」식 기생「하우스」』로 불리는『세레브럼』이란 이「살롱」은 엄격한 회원제로 되어 있다. 회원은 우선 429번지「빌딩」앞에서 비밀히 장치된「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바로 앞 검은 유리문이 열리면서『어서 오십시오. 여기는「세레브럼」입니다』하는 안내자의 말이 들린다. 다음 신발을 벗고 흡사 사제의 것 같은 흰 옷으로 갈아입고「살롱」안에 들어간다. 「살롱」안엔 흰 옷을 입은 남녀들이 제멋대로 누워있다. 어떤 노인은「요가」하는 자세로, 어느 쌍쌍은 부드러운 애무를, 또 머리를 길게 땋아 늘인 처녀는 맨발의「발레」를- 말하자면 제멋대로 굴어도 딴 사람에게 피해만 입히지 않으면 되는 것. 장내엔「모차르트」에서부터 전자음악까지 음악도 제멋대로. 이것도 싫으면 약한 전류를 몸에 통하게 하여 그 짜릿한 자극을 즐기기도. 하여튼 모든 것이 흐느적거리듯 풀어지는 해방감을 준다는 것이『세레브럼』경영자측의 말. 그렇다고『세레브럼』이 음란한 곳이라고 알았다간 큰 일.「키스」나 가벼운 애무 정도는 용납되어도 그 이상의 짓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입장료는 평일엔 1「달러」, 요일이면 1시간에 1「달러」, 그리고 1주일로 계약하면 7「달러」가 먹힌다. 항상 초조와 긴장감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겐 이『세레브럼』이 하나의 도피처이자「에덴」인 듯, 몰려드는 인파로 경영자측은 즐거운 비명. [ 선데이서울 68년 12/22 제1권 제14호 ]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14)

      사연 : 엄마에게 드릴 선물 동생과 뜻이 맞지 않아요 우리 엄마는 학교 선생님입니다. 저는 국민학교 3학년. 제 동생은 1학년이에요. 둘이서 1년간 돼지저금통에 모은 돈이 9백원인데 엄마에게「크리스마스」선물을 드리고 싶어요. 엄마는 양말이 매일같이 줄이 간다고 속상해 합니다. 양말을 사드릴까 합니다. 그런데 동생은 예쁜「브로치」를 사겠대요. 어제는 그래서 싸웠습니다. Q여사님,「브로치」가 좋겠어요? 양말이 좋겠어요? <서울 청량리 영아> 의견 : 의좋게 둘 다 사세요 꼬마 아가씨, 9백원이라면 양말 두 켤레(3백원)와 예쁜「브로치」한 개를 살 수 있답니다. 싸우지 말고 동생과 영아양이 사고 싶은 걸 다 사서 함께 싸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Q> 사연 : 달마다「귀찮은 일」고민 17세의 고교 1년생입니다. 그런데 바로 사흘 전 여자는 누구나 매달 당하는 귀찮은 생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친구들에게 고백했더니 한약 7첩만 먹으면 이런 일이 생전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약을 먹으면 몸에 다른 영향은 없는지 걱정이 되는군요. <전북 이리에서 화> 의견 : 어리석은 짓 마셔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생각은 아예 마세요. 여자에게 그런 일은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이제는 당당한 어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한약은 몸에 몹시 해로울 거에요. 당연히 있어야 할 몸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니 이로울 리가 있습니까? 이런 일은 얼른 엄마나 언니에게 의논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엄마 언니도『우리 화가 벌써 그렇게 컸나?』하고 기뻐하면서 보살펴 주실 거에요. <Q> [ 선데이서울 68년 12/22 제1권 제14호 ]
  • 광복60돌 특집 고은의 백두산행

    SBS TV ‘한수진의 선데이클릭’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시인 고은씨와 함께 백두산행을 동행 취재했다. 내용은 14일 오전 7시40분 방송된다. 한수진 기자는 고씨와 백두산 천지, 비룡폭포, 장백폭포 등을 둘러보며 광복 60주년이 갖는 시대적 의미와 한반도 통일 가능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고씨는 광복과 한국전쟁에 대한 개인적인 감회도 털어놓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열망을 담은 시도 낭송할 계획이다.
  • 아빠 학창시절 그방엔…

    아빠 학창시절 그방엔…

    ■여관 침대밑에 몰래 숨어 현장보고 돈 훔치다 들통 남녀가 재미보는 현장을 훔쳐보고 물건까지 슬쩍하려던 20대 얌체가 철창신세. 서울 청량리경찰서는 6월23일 동대문구 제기동 K여관 객실에 숨어들어가 침대밑에 숨었다가 투숙한 손님의 물건을 훔쳐 나오려던 徐吉秉(23·인천 북구 부평동)를 야간주거침입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徐씨는 6월23일 10시30분쯤 K여관 바로옆에 있던 는 여인숙에일단 투숙을 한 뒤 팬츠와 러닝셔츠만 입은 채 K여관의 비상구를 통해 3층으로 올라가 304호 침대밑에 숨어 있었다. 이방에 투숙한 崔모씨(49·종로구 창신동)와 金모양(23)이 잠이들자 24일 상오 3시30분쯤 崔씨가 벗어놓은 옷에서 현금 10만원을 훔쳐 달아나려다 인기에게 놀라 잠에서 깨어난 崔씨에 의해 붙잡힌 것. 徐씨는 경찰에서 술에 취해 자기집인 줄 알고서 그랬다고 엉뚱한 변명. 그러나 徐씨가 투숙했던 여인숙 주인은 徐씨가 한달전부터 새벽 3~4시쯤에 나타나 여관쪽 방을 기웃거려 왔다고 말하고 있다. 崔씨의 고함소리에 잠에서 어난 金양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5분여동안 기절했다가 崔씨의 인공호흡으로 겨우 어났다고. 여관에 투숙하면 침대밑을 조심하라는 프레이보이들의 새 유행어가 되기도. 선데이서울 1985년 7월7일자 ■ 소매치기인줄 모르고 차에 태워 겁탈하려 길가는 여인에게 엉큼한 마음을 먹었던 회사원이 돈 잃고 봉변까지 톡톡히 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25일 길가던 여인을 자신의 승용차로 유인, 욕을 보이려던 나모씨(32·회사원·서울 강동구 둔촌동)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는데-. 경찰에 따르면 나씨는 6월23일 새벽1시쯤 용산구 한남동 H국교 앞길에서 길을 가고있던 20대여인의 옆에 차를 세우고 “내 차로 가는 데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유인해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동부 이촌동에 이르러 여인을 차안에서 욕보이려 했다는 것. 여인이 반항하며 지른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동네사람들에게 멱살을 잡힌 그는 경찰서로 끌려갔는데-. 경찰에서 조사를 받던 나씨가 주머니를 뒤지다 현금 5만원이 든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뒤늦게 이 여인을 찾았지만 여인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 뒤. 20대 여인은 나씨를 끌고 가는 주민들에게 “자신의 연락처이니 필요하면 연락해달라.”고 전화번호를 적어준 뒤 사라졌는데 경찰수사에서 그 전화번호는 가짜로 밝혀졌다. 나씨는 “오너드라이버의 주머니를 노리는 미인계인줄 모르고 차안에서 접근해 오기에 순순히 따를 줄 알고 몸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그 시기를 교묘히 이용해 소란을 피우며 소매치기를 해갔으니 진짜 피해자는 내가 아니냐.”며 투덜투덜. 경찰은 이 여인이 오너드라이버들에게 접근, 차를 타라는 청에 못이기는 체하며 동승해 엉큼한 남자가 다가오면 옥신각신하면서 지갑을 슬쩍하는 상습적인 여인으로 보고 주책없는 오너드라이버들에게 주의를 당부. 이렇게 되자 경찰은 피해자 입장인 나씨의 처리문제가 난처하게 됐다. 결국 계획적으로 지나던 여자를 유인해 욕을 보이려 했다는 점만은 사실이니 이를 문제삼아 입건하는 선에서 수사를 일단락 지었다. 그리고 수사경찰은 “목적한 것을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 돈뺏기고, 형사입건까지 당했으니 나씨의 망신살이 가련할 정도”라고-. 선데이서울 1985년 7월7일자
  • 섹시군단 ‘천상지희’

    섹시군단 ‘천상지희’

    여성 4인조 아카펠라 그룹 천상지희(天上智喜)가 그동안 감춰뒀던 끼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첫 앨범 타이틀곡 ‘투 굿(Too good)’으로 가창력을 인정 받은 천상지희는 후속곡 ‘부메랑’을 통해 ‘섹시 여전사’로 파격 변신, 팬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관능미 물씬 풍기는 파워풀 댄스는 물론 섹시 컨셉트의 의상을 앞세워 여성 그룹들 사이에서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도 이들의 인기는 뜨겁다. 네티즌들은 여성 그룹의 선두주자로 역시 섹시 컨셉트로 변신한 ‘쥬얼리’와의 닮은꼴 찾기를 벌일 정도. 가장 눈에 띄는 파격 변신은 팀의 막내인 ‘천무(天舞)스테파니’(18). 각종 방송 오락 프로그램과 공연 무대를 통해 빼어난 외모와 함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발레를 통해 다져온 탁월한 춤 실력을 뽐내며 팀내 최고 인기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뿐만아니라 지난해 SM청소년베스트 선발대회에서 노래짱 대상을 수상했을 정도의 뛰어난 노래실력으로 팬들의 귀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 싱글앨범을 발매할 정도로 탄탄한 가창력을 갖추고 있는 ‘지성(智聖)선데이’(18)는 ‘귀여운 여인’의 컨셉트로, 팀의 맏언니인 ‘상미(上美)린아’(21)는 우아하면서도 성숙한 모습으로 어필하고 있다. 연기자로도 팬들앞에 서고 싶다는 지성 선데이는 “여러 가지 색깔의 제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상미 린아는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털털한 성격”이라면서 “기회가 된다면 라이브 무대위에서 강렬한 록 음악을 불러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 앨범 2개를 내고 청춘 시트콤에도 출연하는 등 다재다능한 끼를 보여주고 있는 ‘희열(喜悅)다나’(19)는 섹시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청순한 느낌의 독특한 매력이 무기. 희열 다나는 “파격 변신 모습을 좋아해주시는 팬들에게 감사드린다.”면서도 “4명의 멤버가 철저하게 ‘맨목소리’로 만들어내는 화음에도 계속 격려의 박수를 보내 달라.”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한편 천상지희는 최근 모바일 팬클럽을 오픈했다. 재킷과 뮤직비디오 촬영현장 등을 공개하는 ‘독점 공개! 비하인드 스토리’, 천무스테파니가 댄스 노하우를 소개하는 ‘천무스테파니의 쉘 위 댄스’,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상미린아의 주크 박스’, 각 멤버들의 의상 및 코디법을 소개하는 ‘지성선데이의 패션 포커스’, 천상지희의 일상을 소개하는 ‘희열다나의 일상 다반사’등 다양한 코너가 마련됐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안어벙’으로 유명한 개그맨 안상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안어벙’으로 유명한 개그맨 안상태

    “아무나 박수 칠 때 떠나나.” 20대의 한 젊은이가 있다. 원래는 대학을 진학해 여름방학때 시골집 대청마루에 드러누워 수박을 실컷 먹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다. 또 회사 다니다가 아이 낳고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업보일까. 일찍부터 노숙자같은 생활, 단칸 월셋방과 고시원 전전, 시골카페 DJ생활 등 춥고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슬픔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통째로 웃겨보자고. 친구들과 거리공연에 나섰다. 서울역, 지하철, 대학로, 거리식당 등 닥치는 대로 찾아가 “지금부터 여러분들을 웃겨드리겠습니다.”며 ‘철판 깔고’ 사람들 앞에 섰다. 고진감래(苦盡甘來), 드디어 공중파 방송에 뜨면서 박수갈채를 받기 시작했다. 꿈에서나 생각했던, 그건 분명 인기와 사랑의 보증수표였다. 하지만 돌연 방송중단을 선언, 미련과 욕심을 아낌없이 버렸다.“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을 남기고. 인기 개그맨 안어벙(28·본명 안상태).2004년 혜성처럼 나타나 ‘빠∼져 봅시다.’‘마데 홈쇼핑’ 등의 유행어를 뿌려대며 유명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절정을 달렸다.‘잘 나가던’ 그는 지난 6월26일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매몰차게 방송계를 떠났다. 특히 젊은층은 물론 40∼50대의 장년층 팬들도 많았기에 아쉬움도 컸다. 지난주 서울 종로구 동숭동 탑아트홀.‘안어벙의 깜짝 콘서트’(7월7일∼9월26일)가 열리고 있었다. 출연진은 ‘안상태와 실미도 개그군단’, 모두 15명. 무명시절 고생했던 개그팀 ‘오장육부’의 김대범 황현희도 함께 출연했다.200석 규모의 소극장은 꽉 찼다. 공연이 시작되자 안어벙은 ‘마데홈쇼핑’을 비롯, 랩과 춤 그리고 즉흥 퍼포먼스를 섞어가며 관객을 압도했다. 이튿날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안어벙을 만났다. 어벙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아주 진지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한 청년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먼저 방송계를 떠난 이유를 물었다.“좀더 멋진 모습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로 팬들과 만나기 위해서”라고 운을 뗐다. 이어 “여태것 물흐르듯 살아왔다. 가는 길을 열심히 갈 뿐이다.(방송에)있어도 문제, 나가도 문제라는 생각도 했다. 우선 연기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공연 중인 대학로 개그콘서트에 대해 “하루에 2∼3시간 자면서 두달간 연습했다. 팀원들과 마찰도 많았고, 주위의 걱정도 있었지만 후회없이 행복하게 무대에 올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돈벌이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수입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살면서 늘 감사하고 또 (자신의)이름을 걸고 공연을 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아울러 항상 호응해주는 관객이 있기에 행복하고 또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여자 친구가 있느냐고 하자 잠시 망설이더니 “무명시절, 길거리 공연때에는 눈물도 설움도 참 많았다.”면서 그때 여자친구한테 많이 차이기도 했다며 쓴 웃음을 짓는다. “얼마전 대학로 공연장에 당시 만났던 여자 친구가 찾아왔더군요. 맨앞좌석에 앉아 제 공연을 다 보고나서 만나달라며 안가고 기다리더군요. 할 수 없이 잠시 갔더니 악수를 청하며 ‘이젠 미워하지 않을 거지.’라고 하더군요. 당시엔 뒤도 안돌아 보더니…” 안어벙의 눈물겨운 개그는 2002년 늦가을 서울 응암동 달동네에서 30만원짜리 월셋방에 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동료 3명과 합숙하며 더욱 뻔뻔해지기 위해 ‘오장육부’라는 이름으로 길거리 공연에 나섰다. 서울역 앞부터 대학로까지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았다. 백화점, 경찰서, 지하철 안 등 닥치는 대로 개그 퍼포먼스를 벌였다. 노숙자들과도 자주 접했다. 이때 안어벙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노숙자의 시선에 얻어진, 초점을 잃은 듯한 바보같은 느낌, 덜 미친사람 등을 떠올렸다. 영구나 맹구는 확실한 바보지만 중간형태, 즉 “어벙하게 가자.”고 정했다. 이무렵 안어벙은 개그맨 모집을 보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밀었으나 ‘엿장사 주제에’라는 말과 함께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열심히 머리를 짜내 만들었던 개그 아이템이 아무런 동의도 없이 모방송국 개그프로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적지 않은 배신감을 느꼈다.2003년 2월 대학로의 한 고시원으로 방을 옮겨 심기일전을 다졌다. 오장육부팀은 “개그맨이 안되면 함께 죽자.”며 손가락으로 혈서까지 썼다. 대학로의 소극장을 전전했다. 라면으로 점심을 떼우고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미친 듯이 공연을 했다. 주위에서는 안어벙을 가리켜 ‘인간 영사기’라고 했다. 이때 받은 한달 개런티는 30만원. 고시원 월세 25만원을 내고 남은 5만원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 나중에 월급이 50만원으로 오르자 안어벙은 그날로 은행으로 달려가 매달 10만원씩 붓는 적금통장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주택부금 통장으로 전환했다. 그러던 2004년 4월 오장육부팀은 KBS 개그맨 공채 19기에 응시, 당당히 합격했다. 이날 너무 감격스러워 모처럼 점심밥을 배가 터지도록 실컷 먹고는 다들 남산에 올라갔다.“우리를 배반한 자들은 절대 잘 될 수 없다. 하지만 다 잊자, 앞으로 긍정적으로 살아가자.”고 굳은 결의를 했다. 이날 안어벙의 고향인 충남 아산시 인주면 밀두리 마을입구에는 ‘축 합격, 개그맨 안상태 탄생’이라는 현수막이 크게 내걸렸다. 그해 안어벙이 KBS개그맨 신인상과 개그코너상을 연이어 수상했을 때에도 그랬다. 안어벙은 평범한 농촌의 종가에서 1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는 동네에서 직원 5명 정도의 조그만한 방직공장을 운영했다. 어머니도 여기에 하루종일 매달렸다. 때문에 안어벙은 할머니한테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독서실 등에서 혼자 자취하며 다녔다. 대학은 취직이 잘된다는 전자공학과를 택했다. 이때만 해도 개그맨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성격도 너무 소심하고 조용했다.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았고 부끄러움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인생을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성격을 바꿔보자.”는 고민에 빠졌다. 대학 1학년때 하루는 학과대표와 얘기하던 중 문득 “상태야, 내일 MT가는데 진행을 맡아볼래”라고 제의했다. 안어벙은 아무생각없이 “그래”라고 대답했다. 막상 그러고나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서 “철판을 깔아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또라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온갖 표정연습을 했다. 이튿날 MT진행은 무난했다. 끝나고 나서 과대표의 “수고했다.”는 말에 기분이 너무 좋아 용기를 내 유머책 등을 뒤지기 시작했다. 대학 2학년때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그는 휴식시간마다 자청해서 앞에 나와 훈련병들을 웃기기 시작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느끼가이’.32사단 배치를 받은 뒤에는 보초를 설 때마다 혼자 중얼거리며 음악DJ 연습을 했다. 군생활을 회고하면서 하마터면 대형사고를 칠 뻔했다고 고백했다. 상급자한테 워낙 매를 많이 맞아 몇번이고 죽이려고 했지만 실행직전 꾹꾹 참았다는 것. 이때마다 돌아서서 노래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를 혼자 부르며 마음을 달랬다. 제대하던 날 천안역에 내리자 비가 쏟아졌다. 비를 쫄딱 맞으며 이벤트 카페를 찾아다녔다.DJ를 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4개월여 동안 카페 DJ를 하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 길거리 공연 등에 나서면서 개그맨의 길을 걷게 됐다. “개그란 진지하고 페이소스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한 계층만이 아닌 어린이에서부터 어른까지 다 공감을 얻어야 하지요. 어릴 때 할아버지의 모습, 살아오면서 많은 고생을 했던 경험이 저에겐 소중한 자산이지요.” 안어벙은 그림과 시(詩)에도 많은 끼가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영화 ‘야수와 미녀’에도 출연했듯이 아마 그쪽으로 갈 수도 있다.”면서 “한결같은 사람, 살아가면서 인간적인 사람, 뒷모습이 멋진 사람이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한테 용돈을 드리냐고 하자 머리를 끄덕이며 “얼마전에는 건강검진을 시켜드렸다.”며 웃었다. ■ 그가 걸어온 길 ▲1978년 충남 아산 출생 ▲96년 신림고등학교 졸업 ▲97년 단국대 전자공학과 입학 ▲98년 육군 입대,2001년 만기 제대 ▲2001∼03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지하철 등 거리공연 ▲03년 단국대 졸업 ▲03∼04년 3월 대학로 공연 ▲04년 4월 KBS개그맨 공채 19기 ▲04년 KBS 개그콘서트 ‘A-YO’‘춤추는 대수사선’‘X-FAIL’ ‘깜빡홈쇼핑’ ‘TV는 사랑을 싣고’‘해피선데이’‘비타민’‘해피투게더’ ‘스펀지’‘폭소클럽-록키루키’ 등 오락프로 다수 출연, 영화 ‘안녕, 형아’ 카메오 출연 ▲04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신인상, 최우수 개그 코너상 수상 ▲05년 영화 ‘야수와 미녀’ ‘작업의 정석’ 출연 ▲05년 6월 ‘KBS 개그콘서트-깜빡 홈쇼핑’ 마지막 방송출연 ▲05년 7월 대학로 탑아트홀 ‘안어벙의 깜짝 콘서트’ 공연 km@seoul.co.kr
  • “컨버전스 서비스등 블루오션 찾겠다”

    “차세대 IT분야에서는 1등 사업자가 되겠다.” 취임 한달을 맞은 조영주 KTF 사장은 9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기존 사업뿐 아니라 새롭게 떠오르는 디지털 융·복합(컨버전스) 서비스를 통해 1등 시장 창출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조용한 이미지인 그이지만 이 날은 ‘KTF만의 블루오션’을 찾아 1등 자리에 오르겠다는 각오를 각별히 다졌다. 경쟁사업자인 SK텔레콤을 의식, 시장 점유율을 지금보다 더 낮출 것도 주문했다. 조 사장은 이같은 1등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여러가지 미래 성장전략을 제시했다. 시범 서비스 중인 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WCD MA), 게임·음악·영상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사업 강화,2년후 무선데이터 매출 비중을 현재의 10%대에서 20%이상 확대 등으로 요약된다.조 사장은 또 “새로운 서비스 시장마다 ‘1등 사업자는 KTF’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1200만 고객을 ‘모시겠다.’는 마음을 갖겠다.”고 덧붙였다. KT와 KTF의 합병설과 관련,“시장 환경과 고객의 욕구, 주주 이해가 걸려 있다.”면서 “지금으로선 쉽지 않고, 소모적인 논쟁 또한 그만둘 때”라고 일축했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아빠 학창시절 그방에…] 안경끼면 택시가 싫어해

    택시운전사의 공치사가 화근이 되어 승객과 운전사가 멱살을 잡고 싸움판이 벌어졌는데.지난 12일 아침 6시10분쯤 서울 동대문구 면목동 도로상에서 박모씨(22·경기 광주군 오포면)가 운전 하던 서울 1사51**호 택시에 안경을 낀 김모씨(49·동대문구 장안동)가 승차했다.운전사 박씨가 김씨에게 “다른 택시운전사는 아침에 안경 낀 손님이 타는 것을 싫어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다음에 택시를 잡을 때는 안경을 벗고 잡으면 수월할 것”이라고 거드름을 피웠다. 이에 기분이 나빠진 김모씨가 차에서 내리겠다고 한후 차비를 내지 않자 서로 시비가 붙어 각각 전치 3일씩의 상해를 입고 진단서까지 떼었다는 것.선데이서울 1985년8월25일자
  • [아빠 학창시절 그방에…] “남편인줄 알고 허락했어요”

    남편이 옆에서 자는데도 부인을 덮쳐 일을 치른 배짱 두둑한 사나이가 철창행. 화천경찰서는 19일 김모씨(25·화천군 화천읍)를 준강간혐의로 구속했는데.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7월6일 새벽2시께 술을 마신뒤 인근 최모씨(38)집에 침입, 그와 함께 잠자고 있던 부인 박모씨(28)와 정을 통했다는 것.김씨는 이날밤 남편인 줄 알고 몸을 허락했던 박여인이 뒤늦게 남편이 아닌 것을 알고 옆에서 잠자던 남편을 깨워 경찰에 신고해 붙잡히게 됐다고.선데이서울 1985년8월4일자
  • 5분 데이트 (12) - 유영옥

    5분 데이트 (12) - 유영옥

      『지금 한창「데이트」중인「보이·프렌드」는 있어도 결혼은… 글쎄요. 좀더 두고 보아야 알겠어요』 하며 수줍어하는 유영옥양은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에 만 3년을 근무한「베테랑」. 서울여상을 졸업한 뒤 입사시험에 합격. 근무하면서 대학을 나온 만학파(晩學派) 아가씨다. 방년 23세. 순(純)서울산(産). 159cm의 키에 47kg의 몸매. 월급을 타면 25~30% 가량 어머님에게 드리고 나머지로 적금을 붓고(물론 결혼준비로) 용돈을 쓴다고. 『몸이 건강하면 정신도 건강하니까 우선 건강한 사람. 월급이 3만원에서 3만 5천원 가량이면 가계부에 적자 안낼 자신이 있어요』라며 유양은 결혼상대자의 구비요건을 든다. 가족은 모두 9명. 부모가 계시고 그 밑에 2남 6녀. 그 중 유양은 3녀가 된다. 큰 언니는「처분」되었고 내년엔 둘째 언니 차례. 그 다음인 70년이 유양의「시집가는 해」. 『밥짓기 경연대회를 해도 자신 있어요. 반찬은 좀 서투르지만 책보면서 배우면 될거고요. 장차 남편 되실 분이「코치」해주시면 더욱 좋고요』 여고시절 가까웠던 친구 7명이 매달 만나 1500원씩 모아두었다. 시집가는 친구가 있으면 축하금으로 내놓기도 한다는 아주 영악한(좋은 의미로) 아가씨. 1주일에 한 번쯤 영화구경을 가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고(「마카로니·웨스턴」이나 중국 검객물은 질색) 미술전람회가 있으면 도시락 싸들고 쫓아다니는 열성파. 대학에서 배운 것도 생활미술.「클래식」듣기를 역시 좋아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호도까기 인형』『백조의 호수』등을 작곡한 사람. 과연 누구일까요? ※ 뽑히기까지 「한국유리」측에서 명함판 사진과 이력서를 동봉해 추천해온 아가씨는 모두 세 분. 이중에서 한 아가씨를 골라내는 건 차라리 고역이었다. 기자의 육안을 믿을 수 없어「카메라」를 동원, 세 아가씨를 찍어보았으나 역시 결과는 막상막하. 그래서 고심 끝에 결국 직장의「퀸」을 뽑는 것이라 경력을 참고하기로 했더니 유양이 만 3년 근속으로 1위. 행운이 돌아갔다. [ 선데이서울 68년 12/15 제1권 제13호 ]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13)

      사연 : 남편이 집안일 너무 거들어 걱정인데요 우리는 결혼 4개월의 맞벌이 부부입니다. 다행히 둘의 직장이 다 출근시간이 엄격하지 않아서 군 일손을 두지 않고 단 두 식구의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어요. 남들은 힘이 들 거라고 동정 비슷한 말을 하지만 집이 주부의 활동을 충분히 고려한 구조의「아파트」여서인지 조금도 힘든 줄을 모릅니다. 단 한 가지 불평이 제게 있다면 그것은 남편이 너무 집안일을 거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남편이란 집안일에 초연한 권위있는 남성이라야 한다는 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여성에게 친절해야 된다는 미국식「에티케트」는 저도 찬성이에요. 그러나 제가 혼자서 넉넉히 할 수 있는 일, 즉 방치우기, 설거지, 빨래까지도 남편은 마구 빼앗아서 하는 거에요. 그렇다고 마구 골을 낼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서울 이촌동 신금자> 의견 : 미안한 느낌 덜려는 것, 정신건강에 이롭답니다 「즐거운 비명」이란 바로 이런 일을 두고 있는 말이 아닐까요. 아내가 궂은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깝고 애처로우면 그러시겠어요. 모르긴 해도 당신의 남편은「나한테 시집와서 고생하는구나」하는 죄책감 같은 것을 품고 있는 모양입니다. 집안일을 거들고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줌으로써 그 죄책감을 덜자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물론 무의식 중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미국식의 억지친절이 아니라고 생각되는군요. 설거지는 물론 일체의 집안일을 하고 심지어는 장바구니를 들고 아내의 뒤를 따라다니는 미국영화속의 남편들, 정말 매력 없어요. 이점은 저도 당신과 전혀 동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남편을 잘「길들여진 개」라고 하더군요. 댁의 남편은 이런 무기력하게「길들여진」버릇으로 집안일을 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오히려「아내를 철저하게 호강시키고 가꾸고자 하는」남편으로서의 허영심이 식모 없는 맞벌이 살림으로는 충족되지 않아서 생기는 불만해소작용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나을 것 같군요. 그러니까 집안일 돕기를 완전 거부하는 것은 남편의 정신건강에 그리 이로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눈치 못챌만큼만 남편이 맡은 일을 줄이는 것은 괜찮겠죠. 그러려면 집안에서 하는 남성의 일, 선반달기, 못박기 등의 일을 만들어 내는 한편 재미있는 책이나 잡지를 읽는 동안 부엌일을 재빨리 해치우는 등 책략을 써야겠어요.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집안일에 초연한 권위있는 남편」상으로 멀지 않아 길들여질 겁니다. <Q> [ 선데이서울 68년 12/15 제1권 제13호 ]
  • X마스 카드 12만장을 그린 인간 옵세트

    X마스 카드 12만장을 그린 인간 옵세트

      『인간이란 초극(超克)되지 않으면 안될 그 무엇이다』란「니체」의 말에 심취, 바로「초극」을 위해 만 1년 동안에 정확히 12만 3천 장의「크리스마스·카드」를 그려낸 사나이가 있다. 그러니까 하루 평균 337장의 그림을 그려낸 셈. 가위「니체」도 혀를 내두를 만한 초인적 작업량이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서 선을 하는 자세로 그려 이 초인의 이름은 한 국(韓 國)(30) - 본명은 봉호(鳳浩)였으나「세상에 나와보니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아예 한 국으로 고쳐버렸다는 이 초인의 고향은 전북 완주군 용진면 산정리. 지금도 어머님이 고향에 계시다. 딸 없는 5형제 중 넷째. 국민학교 5학년 때 만화를 그려 친구들에게 회람을 시키고 학교 환경정리를 도맡을 만큼「그림 재주는 남에게 알려진 것」이란다. 그러다 철이 들면서부터는「동서고금, 각종각색의 만권서적」을 독파하고 비로소「문학이란 신천지가 눈앞에 보여」시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말을 빌면「일찍이 19살 때 전북대에서 특강을 한 바 있으며 지방방송국에서 장자(莊子), 노자(老子), 논어(論語) 등을 강론」했다는 것. 그리고 전주에서 20세 전후 해 시화전을 두 번 가졌다고. 『지금도 시작(詩作)은 계속하고 있다』며 빽빽이 앞뒤로 시가 쓰여진 대학「노트」10여권을 풀어 내놓는다. 나이가 들면서부터 동양철학에 깊은 흥미를 느껴 법혁경(法革經), 열반경(涅槃經), 화엄경(華嚴經) 등 불경을 읽고 다음엔 노·장 철학, 그러다 27세 되던 해 달마선사(達磨禪師)가 소림사(小林寺)서 9년 동안 면벽(面壁)하고 난 후에 쓰여진「선문염령(禪問拈領)」을 읽고 선(禪)에 심취하게 됐다고. 그림 그리는 자체가 선(禪), 하루에 10시간씩 작업 「정신과 육체의 고도의 조화」가 즉 선이라는 이 청년은 이때부터「무념무상의 경지에서」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좌선(坐禪)이 앉아 견디는 것」이듯「선화(禪畫)란 그림 그리는 자체가 선」이라는 것. 12만 3천 장이란 어마어마한 양의 그림을 그려내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지난해 모 주간지에 4만여 장의「크리스마스·카드」를 손수 그려냈다는 사람의 기사를 읽고 나서부터. 새벽 4시쯤 일어나 호롱불 밑에서 시작, 5시간 그리고 아침을 먹고 나서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낮에는 충분히 쉰 뒤 밤 9시부터 시작, 12시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니까 하루에 10시간을 그림 그리기에 소비한 셈. 최고로 많이 그려 본 것은 하루 820장. 좀「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3, 4백장을 그렸단다. 물론 가끔 쉬는 날도 있지만. 이렇게 해서 서울, 전주, 산정, 세 곳을 1년 동안 전전하며(장소를 옮긴 건 새로운 분위기를 위해서) 그려낸 그림이 모두 12만 3천 장. 가위「인간 옵세트」라 불릴 만하다. 몸엔 온통 채색 투성이고 여름이면 손바닥에 물집이 생겨 한지(韓紙)를 손바닥에 붙이고 그려야 했다. 붓을 쥔 손가락마다 굵은 못이 박히고 온몸이 돌덩이처럼 굳어져 버렸다. 그래도 새 기록을 세우고 싶어 작업을 계속했다. 붓을 놓은 건 11월 초순. 한간방 가득히 그림이 쌓이고서야 붓을 멈췄다. 세어보니 12만 3천 장. 처음엔 흰 종이에 동양화 소재들을 골라 그리고 때때론 추상화나 구상화도 그렸다. 그러나 묵화(墨畵)로 돌아 매란국죽(梅蘭菊竹)만 그렸다. 물론 그림마다 전혀 다를 수야 없고 비슷하게 50~60점. 그러나 가다 싫증나면 또 바꾸곤 했다.「동양화에 입체감을 준 건 내가 사상 최초」라는 이 사나이는『죽(竹)은 곧고 바른 애정의 불변성, 란(蘭)은 유현한 우정과 깨끗한 사랑, 국(菊)은 서릿바람에도 싱싱·굳은 절개, 매(梅)는 눈 속에서도 피는 깊고 높은 사랑』을 의미한다고 한바탕 자랑. 「동양화에 입체감」이란 건 매(梅)에 붙은 눈송이를 짙은「화이트」로 점묘(點描), 양감(量感)을 주었다는 얘기. 게다가 이 사나이는「창조만이 예술이라고 할 때 올 데까지 다 온 현대 미술의 마지막 탈출구는 양(量)의 미학」이라며 인간「옵세트」화가 지상의 미학임을 주장하기도. 어쨌든 엄청나게 그려놓고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이것들을 상품화해 볼 생각이 난 거다. 그래서 시골처녀 20명을 40여 일간 동원해「예쁘게 상품화」했다.「크리스마스·카드」로 판매하겠다는 것. 이래서 4만 7천 장의「카드」가 모여졌다. 나머지 것들을 모두「카드」화 하고 싶었지만「돈이 모자라서」고향인 산정에 남겨두었다. 머리 뜨거워 쇠베개 베고 선화(禪畵)라면 그림 그린 것으로 족하지 판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으냐니까. 『그림 팔아 공공사업에 쓸 수 있지 않느냐?』며 이익금으로 고향에 도서관을 마련하고픈 게 현재로선 지상의 욕심이라고. 자신을 평해「비비파(非非派)」라고 부르는 이 인간「옵세트」는 아직 미혼-. 『현실세계에 처음 부딪쳐 본 것이 첫 사랑이었는데 결국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결혼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노라고. 학력을 밝히길 굳이 거절하는 이 청년은『「사르트르」가「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것과 같이 그런 류의 권위를 인정하기 싫어』안 밝히는 것이라고.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니까『어렸을 땐「예수」가 되고 싶었는데 이젠 한국의 장자(莊子)가 되고 싶다』 한시(漢詩)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황혼녘의 산책을 좋아한다. 체중 57kg, 키 172cm. 다소 마른 편인 이 인간「옵세트」는 뒷머리가 뜨거워 베개를 베고 자지 못하고 칼등이나 쇠붙이를 베고 자야만 잠이 든다는 괴짜. 그래도 잠이 오느냐니까『그래야만 잠이 온다』며 아예 베개마저 철제(鐵製)로 특별주문해 만들어 두었으니 올 겨울부턴 푹 단잠을 자게 되었다고-. 이 괴짜의 정신세계를 엿보기 위해 자작시 일부를 소개하면-. 심측(深測)으로 매혹(魅惑)하는 그대 눈 바라보면 악마(惡魔)도 뉘우치게 할 어떤 힘에 이끌려 아름다히 만물(萬物)을 치장하는 맑은 햇살 대하듯 천심(天心)의 원광(元光) 사위게 할 가슴속 진홍(眞紅)의 장미(薔薇)! …… 죽은 자를 되살리고 간 자 죽이던 가이없는 사랑이여! 그 고운 눈의 비밀(秘密)이란 색채(色採)짙은 내 환상(幻像) 빼고나면 그 미쳐난 화인(畵人)이여! 해골(骸骨)쪽들 어수선히 웃고 있을 뿐인가? (『반역자(叛逆者)』첫 연(聯)과 마지막 연 ) [ 선데이서울 68년 12/15 제1권 제13호 ]
  • “아들딸 마음대로 낳게 합니다”

    “아들딸 마음대로 낳게 합니다”

      희한한 신종 인기직업이 하나 생겼다. 태아감별사 -. 서울시내에서만 네 명의 사계(斯界)권위(?)가 이 신비의 세계에 도전,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딸만 낳은 설움에서 이 연구를 시작, 이제는 대가(大家)가 되었다고 자처하는 함금성(咸錦聖)(의사·57)씨와 김정순(金正順)(여·39)씨가 말하는「득남법」과「득남법을 이용한 치부법」을 들어보면-. 음식·수태 조절법 강의, 비방약 곁들여 3천원 ★ 함의사 - 연구 8년 자신도 득남했다고 『태아감별은 100%, 생남생녀는 86% 자신 있습니다. 태아조절도 여러가지 방법을 동시에 이용하면 90% 이상 95%까지도 가능해요』 만리동2가 29 양정(養正)고교 입구,「함내과」를 개설하고 있는 함금성씨는 태아조절과 득남법에 관한한 자신만만하다. 내과와 산부인과를 전문과목으로 표방하고 있으나 그의 본업은 생남생녀법 강의. 건당 3천원씩 받는 강의료(?)가 수입의 절대적인「퍼센티지」를 차지하고 있다. 연구기간은 8년. 그 자신 딸만 여섯을 두어 고심하던 중 이 분야의 권위라는 일본의「가기사끼」박사를 사숙, 드디어는 그의 이론에 따라 1남을 얻게 됨으로써 용기백배하게 되었다는 것. ◇ 태아감별법 간단한 태아감별법으로는 첫째 임부의 유방관찰법을 들 수 있다.「몽고메리」씨 선(腺)이라고 불리는「꽈리알」같은 것이 많이 나 있으면 남아, 그렇지 않으면 여아라고. 다음은 대맥(大麥) 소맥(小麥) 이용법. 고대「이집트」에서 이용된 이 방법은 대막과 소맥을 각각 따로 화분에 심은 후 임부의 오줌을 매일 넣어 대맥의 싹이 먼저 트면 여아, 소맥의 싹이 트면 남아, 그 둘도 다 아니면 임신되지 않은 것. 또 태아의 심음(心音)이 1분간 120 이하면 남아, 140 이상이면 여아이며 그밖에 혈액검사, 양수검사 등도 광범히 태아의 성별감정에 사용된다. ◇ 생남생녀법 먼저 식사요법을 사용한다. 남아를 낳으려고 할 때 남편은 어류나 육류를 먹되 육류는 하루 50~60g, 어류는 20~30g을 먹여야 한다. 부인은 고구마와 감자가 특효. 다음은 성교시기를 선택해서 잡는 것. 독일의 의사「지게르」의 연구결과를 응용하는 것인데 그의 연구에 의하면 월경개시 후 1일에서 9일까지 잠자리를 같이 하면 86%가 남아, 10일에서 14일까지는 31%가 남아, 15일에서 22일까지는 14%가 남아로 나타나 있다. 다음은「운다벨가」의 이론으로 중조를 이용한 질(膣)세척법. 질내의 약한「알칼리」성은 남성을 결정하는 Y정자의 운동을 활발하게 하여 남아를 수정하는 기회를 많이 갖게 한다. 성교 전 1ℓ의 물에 큰 숟갈로 한 숟갈 반 정도 중조를 타서 질내를 세척하면 아들을 낳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얘기. 또 온도도 태아의 성 결정에 큰 몫을 차지한다. 금냉법(金冷法)이라고 불리는 이 방법은 남자의 고환을 차게 하고 여성의 하복부를 따뜻하게 하면 수태할 때 남아가 생기기 쉽다는 것이다. 함금성씨는 이와 같은 여러가지 방법을 교수한 후 비방의 약을 이들 환자 아닌 환자들에게 준다. 물론 3천원엔 약값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이번에「생남생녀법과 태아성감별법」이라는 책자도 발간했다. 나이·멘스 주기 등 따져 동침할 날 잡아준다고 ★ 김여인 - 14세 때 일인(日人)에게 배웠다고 세검동 종점. 승가사(僧伽寺)로 빠지는 구기동 111의 언덕목에 김정순(39)씨의「아들 낳게 하는 집」이 있다. 세검동 일대에선 너무나 알려진 집. 하루 손님이 30명에 편지 문의만도 30통이 넘는다는 가위 질풍 같은 인기 속의 여인이다. 『지금까지 수천 명을 보아 왔지만 자료가 불충분한 것을 빼 놓고는 실수율이 거의 손에 꼽을 정도지요. 월경주기, 수태된 달, 부모의 나이 등 기초 자료만 정확히 가져오면 적중률은 거의 100%입니다』 정읍여고를 나와 모여대 약학과를 중퇴했다는 김여인은 자신의 일에 대하여 철두철미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한 건당 수수료는 5백원. ◇ 태아감별법 이것에 필요한 자료는 세 가지- 수태된 해의 부모 나이와 수태된 달, 그리고 수태직전의 산모의 월경 계속 일수이다. 부모 나이를 합쳐 9로 나눈다. 그러면 남는 숫자는 0, 홀수, 짝수의 세 가지. 다음 수태된 달. 1·3·5월…이면 홀수, 2·4·6월…이면 짝수가 된다. 세 번째 월경지속일수는 5일씩 끊어 한 달을 6등분한다. 1~5일은 홀수, 6~10일은 짝수, 11~15일은 홀수, 16~20일은 짝수… 등으로. 이렇게 계산했을 때 세 가지가 모두 홀수면 남자, 모두 짝수면 여자가 탄생된다. 그외「홀수·홀수·짝수」「홀수·짝수·짝수」「짝수·홀수·짝수」… 등 여섯가지 경우는 다시 어떤 숫자 하나를 넣어 계산한다고. ◇ 태아조절법 앞서 든 세 가지 조건을 역으로 이용해 앞으로 남아 혹은 여아를 수태할 수 있는 주기(연·월·일)를 뽑아 준다. 가령 부모 나이를 9로 나눠 홀수가 남을 경우 수태할 달을 1·3·5월…로 하고 수태 직전의 월경지속일을 1~5, 11~15, 21~25일로 하면 그때 수정되는 아이는 틀림없는 남아. 반대로 부모 나이의 합산을 9로 나눠 짝수가 남을 경우, 수태되는 달과 월경지속일수를 짝수로 잡으면 딸을 낳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가령 어느 부인이 남아를 원할 경우 부부가 잠자리를 같이 해야 할 연·월·일을 정해주는 게 김여인의 역할. 너무나 손님이 몰려와 각 도(道)별로 한 명씩 자신의 비법 보급 요원을 배치하고 싶다고 말하는 김여인은 14세 때 아버지의 친구인 일인(日人)에게서 이 방법을 터득, 지금은 절대적인「치부(致富)수단」으로 쓰고 있다. 함의사나 김여인 등「득남생녀법」으로 돈을 벌고 있는 본인들은 절대로 이것이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며 또 높은 적중률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 의학자들은 한결같이 이의 불가능성을 주장하고 있으나 보건당국에서는 장려할 일도, 단속할 일도 아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아직 없다. [ 선데이서울 68년 12/15 제1권 제13호 ]
  • 174死 2生 두 행운의 전차 일대기

    174死 2生 두 행운의 전차 일대기

      이제 서울의 어린이들은「크레용」으로 전차를 그릴 수 없게 됐다. 학교에 가고 집에 돌아올 때 눈에 익던 전차는 70년 영욕(榮辱)을 실은 채 말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고철로 변해버리는 176대의 전차 중 단 2대만은 살아남아 어린이들 틈에서 여생을 즐기게 되었다. 이 행복한 두 칠순 할아버지 전차의 애환어린 일대기를 들어보면. 시민들과 함께 늙어온 몸, 고치고 고쳐 옛모습 잃고 행운의 두 할아버지는 230호와 452호. 문교부의 요청에 따라 230호는 창경원에, 452호는 남산 어린이놀이터에 남겨져 찾아오는 어린이들을 반기며『너희 아버지도 내가 타워다줬지』하고 긴 수염을 내리 쓸게 됐다.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해머」로 두들겨 부셔지고 철(鐵)은 철대로 동(銅)은 동대로 갈기갈기 찢겨 고철로 팔려나가는 옛 동료들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두 할아버지는 그러나 옛 동료들을 대표해 살아남게 된 행운을 기뻐하며 지금 몸치장에 한창이다. 창경원에 남게 될 230호는 제작된 지 올해로 만 35년. 일제 때 일본서 만들어져 다음해 우리나라로 건너왔다. 운전대 오른쪽 위에 달린 자동전류차단기가 전류가「오버」되면『퍽!』하고 불꽃을 튀기며 꺼지던 모습은 전차를 타본 사람이면 한번쯤 구경했을 것이다. 이 전차는 직접 제어방식으로 되어있어 운전대 밑에 제어장치가 달려 있다. 가장 서울시민들의 눈에 익은 전차다. 당초 이 땅에 첫 선을 보였을 땐 반강제(半綱製)로서 차체는 나무로 되어 있었으나 58년에 철제(鐵製)옷으로 바꿔 입었다. 또 원래는「트롤리·폴」형으로 전차가 달리면 뒷 차장이 연방 줄을 잡아당겨 공중 전선에 맞춰 놓아야 했던 것이 62년부터 폐차 직전까지 우리 눈에 익은「뷰겔」형(거꾸로 매단 3각형형)으로 바뀌어 뒷 차장의 일손을 덜게 됐다. 트롤리·중간문 없어지고 2인용 좌석도 긴 의자로 이와 동시에 종래엔 문이 셋이던 것을 둘로 개조하고 좌석도 양쪽에 다 놓여있던 것을 한쪽으로만 몰아, 100인승으로 개조했다. 동시에 가운데 문을 맡던 차장은 폐문과 함께 퇴직해야 했고-. 어린이놀이터에 남겨질 452호는 미제(美製). 제작된 지도 40년이나 되는 장년. 그러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수복 후인 54년. 미국에서 제작되어 한창 사용하다가 전차철거로 폐차 처분된 것을 ICA원조로 우리나라에 들여왔다. 당시 서울시민들은 차체가 좀 넓고 또 2인승 좌석이 나란히 놓여있는「새것」이라 해서 무척 즐겨 탔던 것. 또 종래의 전차가「롱·시트」였던데 비해 이 형은 소위「로맨스·시트」로 되어 두 사람이 나란히 앉게 되어 있었다. 역시 우리나라에 들어올 땐「트롤리」가 붙어 있었으나 62년부터 일제히「뷰겔」로 바뀌었고 시민의 사랑을 받던「로맨스·시트」도「롱·시트」로 바뀌었다. 이 형은 간접제어「시스팀」으로 되어 있어 제어장치가 운전대 아닌 차체 밑에 달려 있는 것이 특색. 새것이라 해체 면한 28대 사갈 만한 임자 없어 골치 멀리「펜실베이니아」의 어느 소읍(小邑)에서 배에 실려 이 땅에 왔다가 이제 같이 온 동료들을 잃고 혼자 남아 이국 어린이들 틈에 끼게 된 벽안(碧眼)의 노옹(老翁)- 그 회포는 어떠할까? 이 두 전차 외에도 해체를 면한 전차는 모두 28대. 이들은 일본「후지」사의 제품으로 63년에 8대, 67년에 20대가 도입되었었다. 이「후지」형은 차체 내의 조명이 모두 형광등으로 되어있으며 선풍기와 자체 난방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최신형. 들여온 지 얼마 안돼 폐차 처분하기가 억울해(?) 남겨두기로 결정을 했으나 사가는 사람이 없어 처리에 골치를 앓고 있다. 외국에선 관광지에 옮겨 숙소·식당으로도 쓰지만 서울시의 계획으론 관광용으로 교외지대에 내보낼 계획이었으나 이 계획이「트램·카」설치 계획으로 바뀌자 궤도문제로 교외운행도 불가능하게 되었다.(「트램·카」는「레일」이 하나뿐) 그래서 서울시 당국은 전차가 없는 대구시, 대전시 등에 구매를 종용했으나 두 도시선 모두 예산부족으로 난색을 보여 갈데올데 없이 동대문 차고에 처박혀 있는 따분한 신세다. 원래 이「후지」형의 도입가격은 8백만원. 서울시측이 각 시·도에 띄운 공문에 따르면 6백만원까지 값을 깎아주겠단다. 그래도 임자가 나서지 않아 주무당국인 서울시 운수사업부는 1억 6800만원짜리 이 전차 처리방안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고-. 가까운 일본의 경우 전차를 민간인이 사서 관광오락지에 부설, 숙소로 개조하거나 식당, 다방 등으로 바꿔 쓰고 있다.「호텔」아닌 전차속 하룻밤이 보다「로맨틱」한「무드」를 마련해 주기 때문.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 전차들을 사서「에어컨」과 난방시설을 모두 유효하게 쓰려면 한 대 6백만원의 전차값 말고도 부대시설인 전기·변압시설 등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 상업적으로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어느 약싹빠른 장사아치의 증언. 미국「샌프란시스코」시에선 전차 철거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시민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쳐 결국 철거에 실패. 오늘날「샌프란시스코」시의 명물로 전 미국에 알려져 있다. 샌프란시스코선 오히려 땡땡소리를 풍물시(風物詩) 삼아 그래서「러시·아워」가 되면 천천히 달리는 전차에 한 손을 잡고 매달린「샐러리·맨」의 못브이 영화나 우편엽서에 등장하고, 관광차「샌프란시스코」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으레 온가족이 함께 차를 타보곤 한다. 이젠 내년부턴 우리도「샌프란시스코」의 시민들처럼 창경원과 어린이놀이터를 찾아 정들었던 전차와 함께 흐뭇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어른들은 하릴없이 서있는 두 전차를 보고『좋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어린이들은『신기한 폐품』속을 마음껏 뛰놀며…. [ 선데이서울 68년 12/15 제1권 제13호 ]
  • 구실 못하는 괴로움을 지켜보겠다

    「3년간 동거」의 변심에 이 여인의 칼날 보복은 수면제 먹이고 면도칼로, 단골 술집서 서로 눈맞아 서울 성동구 행당동 강모(28) 여인. 이 여인은 11월 22일 상오 10시쯤 서울 종로구 신문로 S여관 2호실에서 보약으로 알고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있는 D보험회사 사원 박모(31·서울 종로구 계동)씨의 국부를 예리한 면도칼로 완전히 도려내고 자기도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살아났다. 지금은 철창 안에서 남자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면서 그것 없는 남자의 생활을 지켜보겠다고 도사리고 있다. 강여인이 박씨를 만난 것은 그녀가 중구 화원 시장에서 술장사를 하고 있을 때인 지난 65년 여름. 박씨가 회사 동료직원들과 함께 이 술집을 드나들면서 강여인과 친숙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8월의 어느 날 근처 여관에서 두 남녀는 함께 보내게 되었다. 한번 빠지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이 치정(癡情)관계. 이런 경우 당사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거의 정신 없이 일을 벌여놓고는, 그 쾌락을 종말이 어떤 것이든 짊어지게 되는 것. 이때부터 두 사람은 만나는 회수가 늘어났고 근처의 여관, 여인숙을 전전하게 되었다. 남자는 체격 좋은 총각, 미모의 강여인은「무학(無學)」 부산이 고향인 박씨는 부산에서 D대학을 졸업한 체격 좋은 청년. 서울 계동에 있는 시집간 누이집에 기거하면서 D보험 S출장소 총무로 한 달 1만 8천원의 봉급으로 생활해왔다. 봉급으로 자기 생활만을 하는 박씨였으나 객지에서의 직장생활이 외로웠던 박씨는 자주 술집을 찾게 되었고 마침내는 그런대로 예쁘장한 강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강여인은 학교라고는 근처도 안간 여인. 박씨와는 달리 빈곤한 가정에서 자랐다. 배다른 3남 2녀의 막동이인 강여인은 부모가 일찍 죽어 부모의 얼굴을 모르면서 이미 결혼한 오빠, 언니들의 집을 며칠간씩 옮겨가는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중 22세 때 김모씨와 결혼, 그 후 남편은 병으로 죽고 박씨를 만났을 때는 처자있는 이른바「기둥서방」이모(35·상업)씨와 동거를 해오던 중이었다. 여관 등을 전전하던 이들은 어느 날 강여인의 정부 이씨에게 들켰다. 고소하겠다는 등 몇 차례의 싸움이 오간 뒤 박씨는 3만원을 이씨에게 주고 화해, 강여인을 혼자 차지했다. 그 후로 박씨는 떳떳하게 강여인의 술집, 오빠가 사는 판잣집, 형부집 등을 남편인양 드나들었다. 단꿈「신혼살림」차렸으나,「마담」알면서 마음변해 67년 초 이들은 종로구 관훈동에 보증금 3만원에 월세 3천원으로 방을 하나 얻어 살림을 시작, 마치 신혼부부인양 단꿈에 빠진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곳 저곳의 술집을 자주 드나들던 박씨에게는 또 하나의 여성이 나타났다. 67년 10월 중순쯤 박씨는 서울 종로구 종로3가 국일관 앞「H집」의「H마담」과 정을 통하면서부터 강여인에게 싫증을 느끼고 멀리하기 시작, 더욱이 강여인에게 돈을 빌어서는「H마담」에게 갖다주는 등 박씨의 냉대는 심해졌다.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강여인에게 금년 3월 중순께 오랜만에 박씨가 관훈동을 찾아왔다. 저녁을 시켜먹은 뒤 곧장 집으로 간다는 박씨를 뒤쫓으니 박씨는「H마담」에게로 가고 있지 않은가.「H마담」과 싸움을 벌였다. 이때 옆에서 보고 있던 박씨가「H마담」아닌 강여인 자기를 때리더라는 것. 모욕을 느낀 강여인은 이때부터 박씨의 국부를 자를 것을 결심, 6백원을 주고 예리한 접는 면도칼(길이 15cm)을 사서 품에 넣고 다녔다. 올해 8월 중순부터 4회에 걸쳐 발길을 끊은 남자의 회사로 전화연락, S여관에서 만나 동침할 대마다 기회를 엿보았으나 성공치 못하자 조급한 이 여자는 면밀한 계획을 짰다.(여관에서 만날 때마다 이 여자는 목욕하고 세탁한 옷, 고무신까지 새것을 신었다. 일을 저지른 뒤 자기는 마지막이라 생각, 최후를 깨끗이 하고 싶어서였다) 드디어 마지막 계획실행 일자를 결정, 11월 18일『보약이 있는데 달여줄 테니 만나자』고 D회사로 전화연락, S여관에서 21일 밤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에 박씨와 만나 보약을 달여 먹이고는 교섭 없이 12시쯤 잤다. 이 약을 먹인 것은 수면제를 먹인데다가 국부를 자르면 죽을 것을 염려, 국부를 잘린 뒤 죽지 않고 거뜬히 살 힘(?)을 주기 위해서 또 수면제를 먹고 힘이 없어 죽지 말 것을 바라서 보약부터 먹였다고 했다. 다음날 10시쯤 잠을 깬 강여인은「바카스」에다 수면제 15개를 타서 보약이라고 하고는 먹으라고 주었다. 안먹겠다는 박씨에게『「H마담」이 준다면 안먹겠느냐』고 강짜. 어쩔 수 없이 박씨는 마시고 깊은 잠에 빠졌다. 자신도 수면제 먹고 범행,「아픔보다 아찔함 앞섰다」 한편 강여인 자신도 수면제 40알을 먹고 잠에 떨어질 무렵 품고 있던 면도칼로 박씨의 국부를 완전히 도려냈다. 그리고는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12시 30분쯤 여관종업원 권모(21)군이 방문이 열려있어 닫으려고 보니 방안에 피가 가득했다. 기겁을 하고 112에 신고. 두 남녀의 생명을 구했다. 나중에 박씨는 보약을 마시고 잔 것만을 기억, 그 밖의 것은 모르고 단지 오줌이 마려 일어나니 방안엔 피가 흥건하고 아래가 아파 만져보니 국부가 없었다. 아픔보다 아찔함이 앞섰다. 뒤에 강여인은 국부만을 자르고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은『죽으면 복수가 간단히 끝나므로 살려놓고 괴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두고두고 보고 싶었다』고.『3년간이나 같이 지낸 자기를 농락,「H마담」을 상대한 것에 격분했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이에 대해 박씨는『장난기로 강과 접촉했는데 강이 적극성을 보이자 자기는 총각, 결혼문제도 있고 해서 강을 멀리 하려고「H마담」을 사귄 것』이라고 강여인을 멀리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강여인은 지금 무척이나 즐겁다고 한다. 강여인은 음독 후 병원에서 소생,『나는 이렇게… 했다』면서 자랑스러운 듯이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큰 소리다.『나는 이제 죽는 일만 남았다』면서 마지막 어느 날을 택하겠다고 했다. 지금 박씨는 서울 중부사립병원에서 남에게 알려지기를 꺼려하면서『죽고싶은 심정』이나『앞으로 이성을 멀리 조용히 살고싶다』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박씨의 형도 누이도 박씨가 만나기를 꺼려한다는 말을 전해듣고 조용히 돌아섰다. 강여인은 11월 22일 중상해 혐의로 구속됐다. 한 여름에도 서리가 내리게 한다는 한 여자의 독한 마음이 한 남자의 장래를, 자신의 내일을 그르쳤다. 이런 종류의 관계에서 가령 분별력이라든지 자기들이 빠져 있는 사태에 대한 객관적인 안목을 요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남녀관계이든 최소한도의 분별력은 가지고 있어서 피차「비참」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변우형(邊雨亨)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2/8 제1권 제12호 ]
  • 한국에서 가장 큰 개「용(龍)」전하

    한국에서 가장 큰 개「용(龍)」전하

    거인들과 함께 사는 견공의 현주소 체중 62kg, 키는 1미터 20센티, 비원(秘苑)안 김일(金一)도장의 한 식구 우리나라에서 제일 몸집이 큰 거인들이 모여 사는 곳엔 집 지키는 개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등치가 큰 거구였다. 숲이 무성한 서울 종로구 와룡동 1번지 비원(秘苑) 속 깊숙이 자리잡은「프로레슬러」김일도장의 선수들 숙소인 신선원전을 버티고 있는「용」이 그 개 이름. 몸무게 62kg, 키 120cm의 수컷. 송아지하곤 비교가 안된다.「프로·레슬러」홍무웅씨가 주인이다. 천규덕, 박송남, 박성모 등 체구가 당당한 23명의 김일도장 선수들의「보디·가드」이기도 하다. 이름처럼 용같이 빠르고 힘이 장사란다. 하루 한 끼의 식사(?)는 쇠고기 4근이 모자라는 선수 한 끼의 식사와 맞먹는 대단한 식욕이다. 종자는 토사견으로 우리나라에선 2번째 가는 싸움꾼이다. 지난 9월 사직공원에서 열린 전국 투견대회에 나가 전국에서 뽑힌 1백여 마리의 토사견과 겨뤄「챔피언」「삼손」에 27분만에 TKO를 당하기는 했지만-. 한 마리 덤얹어 7만원에 사들인 것,「레슬러」들과 함께 훈련도 하고 「삼손」은 그 당시 역시 홍무웅씨의 소유였었다.「삼손」을 어렸을 때부터 키워「챔피언」을 만든 홍선수였다. 투견대회가 열리던 날 홍선수는 상대편인 이「용」에게 매력을 느꼈다. 우선 힘이 세고 훈련을 잘 시키면 곧「챔피언」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다. 그래 소유자였던 김모씨에게 또 다른 개 한 마리를 덤으로 주고 7만원에 사들였다. 농구공만한 크기의 머리에 털 색깔이 누런 이「용」에 대한 훈련을 시켰다. 내년엔 가장 무서운 싸움꾼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컹」하고 짖어대는「폼」이 사자같고 한 번 짖는 소리가 온 비원을 진동시킨다. 이 개가 처음 신선원전에 들어온 후 담 너머 주민들은 웬 괴수가 나타난 줄 알았다는 얘기들이다. 무뚝뚝해 꼬리 한번 흔들지 않지만 23명의 주인들은 냄새만으로도 잘 구별한다. 아침 6시면「레슬링」선수들과 함께 비원 뒷동산에서 훈련을 함께하다 중량급 선수가 개줄을 허리에 감고 잡아다녀도 힘자랑은 개가 더 세단다. 거뜬히 끌고 나간단다. 2m의 담을 뛰어 오르는 재주꾼이기도 하다. 신선원전에서 2백m쯤 떨어진 도장에서 하오 3시부터 선수들 운동시간이 시작되면 돌아오는 6시까지 혼자 숙소를 지킨다.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신선원전, 하오엔 큰 집에서 쇠창살이 세로 난 울안에서 엎드려 햇빛을 즐긴다. 선수들이 연습하는 걸 구경하러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관람을 오는 동네 꼬마가 있는데,「용」군은 이 꼬마와 각별히 친하게 지낸다. 꼬마를 바라보는「용」의 눈은 보통 때와 달리 아주 자비롭고, 꼬마니까 봐준다는 식의「포즈」를 취한다.「용」이라는 이름의 음을 따라「용용죽겠지」하며 놀려도 용은 거견(巨犬)답게 이순(耳順)의 경지를 보여준다. 거구의 선수들이 돌아오는 날엔 거구가 우습게「용」은 좋아 날뛴다. 선수들 또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개가 아니면 어디 여기에 합당이나 하냐는 얘기들이다. 엎드려 있는「폼」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 나오는 모습과 흡사하다. 거구답게 의젓하다. 한데 1년에 두어 번 다녀가는 김일선수만은 알아보지 못한다.『거물들의 우두머리(?)를 몰라보는 고얀 놈』이라는 얘기다. 밥은 한 톨 안주고 고기와 뼈를 먹이는데 쇠고기는 씹지도 않고 그냥 꿀꺽 식은 죽 먹기다. 김일도장은 지난 65년 12월 김씨가 일본에서 돌아와 비원 안에 도장을 차렸다. 일정 때 지은 건물에 지금은 23명이 알통을 키우고 있다. 유리창이 깨져나가 엉성한 건물이지만 웃통을 벗고 땀을 흘리는 선수들은 말 한 마디 없다. 공기 좋고 인적 드물어 운동하기엔 가장 좋은 장소라고 모두 자랑들이다. 도장에서 북으로 좀 떨어진 더 깊숙한 곳이 신선원전, 선수들의 숙소다. 방 4개에 옛날에는 궁중에서 썼을 집이 마당엔 빗질이 깨끗하다. 홍무웅선수가 숙소 책임자다. 선수들도 개도 전부「자이언트」들, 그야말로 얼씬하지 못하는 거구들의 집. <최광일(崔光一)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2/8 제1권 제12호 ]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 (12)

      사연 : 콧대가 없어서 고민, 수술을 하고 싶지만 18세의 고교 2년생입니다. 가정형편은 보통이고 공부나 가정 친구간의 인기도 보통이어서 무난하고 평범한 학생입니다. 그러나 커다란 고민이 있어 요즘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름아니라 얼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콧대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코만 아니라면 미남이라 불려도 좋을 만큼 잘 생긴 얼굴이니 더욱 억울합니다. 중학때만 하더라도『네 코는 왜 그러니?』하는 친구들의 놀림을 웃어 넘겼지만 이제는 듣기가 싫군요. 정형수술 하면 된다지만 부모님께서 허락하실지 의문입니다. 수술비는 또 얼마나 들는지요. <대구시 원대동 이종성(李鐘成)> 의견 :「시라노」생각하셔요, 흠 있는 얼굴 더 매력 이군만한 나이에 함직한 고민이군요. 더구나 코만 빼놓은 다른 부분이 모두 본인이 보기에도 잘생겼다니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그러나 외모가 그 삶의 전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면 그러게까지 비판하지는 않을 거에요. 소설『검객 시라노』의 주인공「시라노」를 보세요. 코가 큰 것이 사랑에 방해가 되리라고 잘못 생각한 끝에 정말 사랑을 잃고 말지 않던가요? 너무 완전한 얼굴은 얼핏 보기에는 좋지만 곧 싫증을 느끼게 됩니다. 어딘가 결점이 있는 얼굴, 개성이 있어서 오히려 매력있지 않을까요? 얼굴의 콧대 같은 것은 모두 잊어 버리세요. 그러면 이군의 마음속의 콧대,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콧대는 남부러울 만큼 높아질 것입니다. <Q> [ 선데이서울 68년 12/8 제1권 제12호 ]
  • 5분 데이트 (11) - 강형숙

    5분 데이트 (11) - 강형숙

      『전 외교관 부인이 될래요』 미스·모의(模擬)유엔총회 강형숙(姜馨淑)양 『직접 제가 외교관이 되는 건 싫고요. 외교관 부인으로 뒤에서 뒷바라지 해주고 싶어요』 하는 이 깜찍한 아가씨 강형숙양은 방년 20세. 외대 영어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교동국민학교, 숙명여중, 경희대부고를 거친 재원으로 어학에는 재주가 있어 중·고교 시절부터 꼭 1등 차지. 대신 수학, 역사 등이 싫었고. 『남자친구는 많이 사귀어 보았지만 아직 맘에든 애인감은 없어요. 저와 목적하는 바가 다르거나 똑똑해 보이지 않으면 같이 앉아 말할 기분조차 안나요』 그래서 남학생들 사이에선 약간「콧대 센 아가씨」로 통하는 모양이나 붙임성은 좋다. 한두 번 집안을 통해 중매가 들어왔으나「전적으로 제가 결정할 문제」라 선도 안보았고. 고등학교 때 별명은「새침이」. 중국요리「깜붕기」가 먹기 좋고 겨자든 초밥은 딱 질색. 식모아줌마가 시골간 틈에 꼭 한 번 밥을 지어봤는데 가까스로 먹을만한「61점짜리」가 되었고. 저녁엔 8시, 9시면 잠이 든다는 초저녁파. 그래서 엄마가『시집가서 남편 늦게 돌아오면 어쩔래?』하는 꾸중을 들어도『잠 안오는 약 먹고 기다리죠』하는 정도. 대신 새벽 3, 4시면 깨어 일어나 中·日 등에 사귀어 놓은「펜·팔」에게 편지를 쓴단다. 「펜·팔」하고 있는 사람 중 대만에 있는 대학교수 한 분은 자식이 없다고 강양을 자기 친딸처럼 생각, 지난번 대학총학장회의에 참석차 한국에 왔을 땐 집에 들러 강양의 부모들과 인사를 나누고 하룻밤 묵어가기도. 「퀴즈」를 하나 내라니까『달이 물에 비치면 왜 커보이나?』알아 맞추란다. ※ 뽑히기까지 지난 11월 21일 열린 제7회 모의UN총회엔 70여명의 여대생들이 참가, 시선을 끌었는데 이중에도 특히 한복차림의 귀여운 사회자 강양의 재치있고 애교있는 사회는 이날 남학생들에게 인기의 초점이었다. 그래서 만장일치로「미스·모의UN총회」. 지난번 외대 영어극『다리 위에서의 조망』에서도「히로인」을 맡은 바 있다. [ 선데이서울 68년 12/8 제1권 제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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