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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일축하 모임 식순은?-Q여사에게 물어보셔요(58)

    [사연] 「그릴」아니면 다방 또는 가정에서의「생일축하」모임을 가지려는데 그 모임의 식순 같은 것을 몰라 쩔쩔매고 있는 꼬마 군인입니다. 한 20여명 정도의 모임입니다. 어떻게하면 격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즐기며 모임을 갖겠읍니까? <군우155~116 제9119부대 작전과 꼬마 병사 이재우> [의견] 격식떠난 모임의 멋을 아무리 푸른 제복의 군인이라곤 하지만「꼬마」인 이상에야 격식을 따지려 고민 할 필요가 있겠읍니까. 제일 자연스러운 것은 격식을 떠난 모임이 아닐까요. 그러나 기발해서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되는 모임이었으면 하는 것이죠? 또 생일을 당한 사람에게 축하의 표시를 뭐든 물건으로 해야겠고 또 축사도 해야 되겠다고 느끼는 것이겠죠? 「파티」참석자가 모두 주인공에 관한 유쾌한 농담 한가지를 종이에 써서 미리 모아가지고「파티•오픈」은 이것들의 낭독으로 시작하면 어떨까요. 적당한 크기의 고급종이에 이 농담을 각자가 자필(自筆)로 재미있게 그려「사인」첩을 만들어 주어도 주인공은 기뻐하겠죠. 그 다음에야 노래, 술, 잡담의 적당한 합성(合成)으로 충분히 유쾌하지 않을까요. <Q> [선데이서울 70년 2월 8일호 제3권 6호 통권 제 71호]
  • 동침 약속뒤 슬쩍 토정비결 노인 봉변

    대전 지검에서는 전정아양(18•가명)을 절도혐의로 구속했는데…. 전양은 대전 원동 T여관에 유숙중인 박모(69) 관상가의 방에서 박노인과 동침 할 것을 자청하여 함께 투숙하고 난뒤 박노인의 토정비결책 92권 (5천2백원 어치)를 훔쳐 달아났다는 것. 동침후 토정비결책을 슬쩍한 아가씨나 밑천인 그 책자를 빼앗긴 박노인 모두 올해 토정비결에 액운이 끼었던 모양 [선데이서울 70년 2월 8일호 제3권 6호 통권 제 71호]
  • 당정, 청소년 무선데이터요금 30%인하 추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27일 청소년들의 무선데이터 통화요금을 30% 내리는 방안을 적극 추진키로 합의했다. 노인, 장애인 등 저소득층 24만 6000명의 통신요금도 감면키로 했다. 당정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강봉균 정책위의장과 노준형 정보통신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이같이 결정했다. 당정은 이 방안이 실현되면 연간 2100억∼2800억원가량의 통신요금 인하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동통신업계는 채산성을 무시한 채 당정의 30% 인하 요구를 전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인하 시기 및 폭은 유동적인 상황이다. 변재일 열린우리당 제3정조위원장은 “전기통신사업법상 지배적 사업자인 SKT의 무선데이터 통화요금을 인하토록 하면 KTF와 LGT도 요금을 인하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당정은 단문메시지서비스(SMS) 요금의 경우 통신사업자들이 이용자 요금을 경감하기 위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토록 요구하기로 했다. 아울러 18세 미만,65세 이상, 장애인 등 저소득층에 대해 월소득 평가액이 14만원 이하인 경우에만 요금을 감면해 오던 것을 상한을 폐지, 혜택 대상을 18만명에서 43만명으로 확대키로 했다. 또 초고속 인터넷을 통신요금 감면대상 서비스로 새로 지정해 저소득층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관계자는 “투자와 경영 현황 등을 고려해서 무선데이터 요금 인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KTF측는 “시장 상황에 따라 접근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사업자의 입장이 배제된 당정간의 합의로 향후 조율해야 할 부분이 많다.”면서 “지속적인 요금인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30% 인하 요구는 과하다.”고 말했다. 전광삼 김경두 기자 hisam@seoul.co.kr
  • 김인숙(金仁淑)양 - 5분 데이트(67)

    김인숙(金仁淑)양 - 5분 데이트(67)

    순정(純情)「스토리」의 소녀만화에서 앙증맞고 귀여운 소녀 주인공이 살아 나왔나 싶은 착각을 준다. 새하얀 잇속을 살짝 드러 내면서 짓는 미소도 어김없이 그런 순정소녀의 표정이다. 69년 2월에 보건사회부에 처음으로 취직한 직장초년생. 나이도 앳될 수 밖에 없는 스물둘.배화여고 68연도 졸업생이다. 홀어머니 최(崔)여사 밑에서 언니 하나 남동생 하나가「재미있게 사는」3남매. 『언니도 보사부(保社部)에 같이 있어요. 언니는 벌써 5년이나 됐지만요』 말하자면 이 아름다운 자매(姉妹)는 보건사회부의 명물 여직원(女職員)들인 셈. 『같은 방은 아니지만 언니가 있으니까 처음부터 직장에 대한 서먹함은 없었어요. 가끔 짓궂은 청년들이 언니를 통해서「데이트」신청을 해요. 언니가 중간에서 잘 막아 주니까 저는 난처한 입장을 면하지요』 이번 표지에 나온 뒤 혹시 방자해질까 보아 그것만이 언니 현숙(賢淑)양의「큰 걱정」이라고. 『학교때는「테니스」선수였어요. 지금도 시간이 나면 좀 하죠. 가을에는 등산, 여름에는 수영해요』 164cm의 키, 48kg의 체중, 34-22-35의 체위.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 남성은 인간성은 부드럽고 난경에 부닥쳤을때 대장부다운 남자랄까요』 『어두워질 때 까지』를 좋아하는 영화로 꼽고 있다. 『상영된지는 오래됐지만 여주인공의 꿋꿋한 성격이 좋았어요』 [선데이서울 70년 2월 1일호 제3권 5호 통권 제 70호]
  • 기왓장 같은 눈썹 때문에-Q여사에게 물어보셔요(57)

    [사연] 저는 눈썹이 기왓장 모양으로 생겨서 고민입니다. 그 눈썹을 면도하든가 집게로 뽑아서 예쁜 반달 모양으로 만들려는데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그 자리에 더 많이 털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어쩔까 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저의 눈썹은 눈 바로 위에 있지 않고 좀 옆으로 나 있어서 보기 좋지 않아요.어떻게 하면 똑 바르게 만들 수 있을까요. 눈썹이 모자라는 부분을 면도하면 되는지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신촌 고민녀> [의견] 눈썹 살리는 메이크•업을 현대는 개성미(個性美)를 쳐주는 시대입니다. 눈썹이 기왓장 같다고, 반달 눈썹 보다 미관상 나쁘다는 단언을 할 수 없는 것이 요즘의 미를 보는 것이에요. 반달 눈썹으로 고치기 전에 그것이 당신의 눈•코•볼•입•귀와 조화되는 모양일지 어떨지 알아 보세요. 그래서 정말 그래야만 하겠다면 고치세요. 면도보다는 뽑는 것을 권합니다. 1류 미용실에 가서 의논해 보는 것도 좋겠죠. 모근(毛根)의 처리를 해서 털을 뽑는 약을 이용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털을 더 나게 하기 위해 면도하는 것은 백해 무익입니다. 발달 모양으로 눈썹 연필로 그리는 편이 나을 거예요. 그러나 그런 모든 일보다는 기왓장 모양의 자기 눈썹을 살리는 방향의 개성있는「메이크•업」이 당신을 가장 매력있게 해줄 것입니다. <Q> [선데이서울 70년 2월 1일호 제3권 5호 통권 제 70호]
  • 굴속의 곰 노인 부부

    굴속의 곰 노인 부부

    멧돼지와 호랑이만 지나다니는 산중턱에 6순의 두 노인이 살고있다. 20년 가까이 생식을 하며 살아온 6순의 이 부부는 구천동(九千洞) 의 「로빈슨·크루소」. 그러나 길을 잃고 헤매는 사냥꾼들 30여명을 구하기도 했다. 해발 1천5백m의 덕유산 중턱에 자리잡은 통나무 굴집-이 집이 「구천동(九千洞) 곰노인 부부」라 불리는 길관수(吉寬洙)씨(65)와 이대길(李大吉)노파(63)의 보금자리다. 吉노인의 고향은 평안북도, 공산당이 싫어서 해방되던해 단신 남하한 吉씨는 강원도 경기도로 떠돌아 다녔다. 6·25동란 다음해인 51년 吉씨는 벌채 인부들 틈에 끼어 처음으로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 에 발을 디뎠다. 벌채가 끝나고 동료 인부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떴다. 그러나 웬일인지 吉씨는 구천동(九千洞) 을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 병풍속의 한폭 그림같은 대자연, 바람과 산새 소리뿐인 고요, 이런 것들이 길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의 모략, 배신, 속임수 들이 없는 이런 곳에서 한평생을 보내기로 吉씨는 굳게 마음먹었다. 길씨는 양지바른 바위 틈에 움막을 치고 그해 여름을 났다. 한길이 넘는 산풀을 깎아 말려 이불과 요를 만들고 동료들이 주고 간 식량과 부식으로 배를 채웠다. 낮에는 펀펀한 산 비탈을 파고 갈아 오는 봄의 파종에 대비했고 밤이면 관솔불 아래서 말린 풀을 엮어 겨우살이 준비를 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됐다. 길씨는 우선 이웃 동굴속으로 집을 옮기고 생식을 시작했다. 처음 한달 동안은 소화가 안되고 이가 시리는등 부작용이 있었으나 곧 괜찮아졌다. 눈이 쌓였다. 동굴앞과 뒤로 수많은 짐승의 발자국이 지나갔다. 길씨는 짐승의 왕래가 잦은 곳에 땅을 파서 함정을 만들고 칡덩굴을 끊어 덫을 만들었다. 첫 수확이 좋았다. 1백 20근짜리 멧돼지가 걸려들었다. 약 6km 떨어진 마을로 끌고 내려가 5천원에 팔았다. 한 겨울동안 토끼와 노루 너구리 여우 멧돼지등 수많은 산짐승을 잡았다. 일부는 팔고 일부는 털을 베어 옷과 이불로 대용했다. 새봄이 왔다. 마을에 내려가 옥수수와 조 그리고 수수씨등을 구해 파종을 했다. 그리고는 낮이면 약초와 고사리 도라지 등을 채집하고, 밤이면 동굴속에서 관솔불을 밝힌채 날을 보냈다. 이듬해 여름 산골짜기를 지나가다 꿀벌집을 발견, 산대나무로 엮은 둥우리속에 담아와 동굴앞에 놓았다. 늦가을까지 꿀 세 사발을 떠 한 그릇에 3천원씩 사냥 나왔던 포수에게 팔았다. 또 겨울이 오고 그 해 눈이 무척 많이도 내린 겨울밤 吉씨가 파놓은 함정 근처에서 으르렁거리는 호랑이 소리에 몸을 떨었다. 밤을 지내고 아침에 가보니 멧돼지를 잡으려고 쳐놓은 덫에 호랑이가 죽어있었다. 소식을 듣고 한달만에 찾아온 무주(茂朱)군 설천면 李모씨에게 2만원에 팔았다. 구천동(九千洞)의 「로빈슨·크루소」吉씨의 생활은 이렇게 해가 바뀌어 갔다. 63년 덕유산 꼭대기에서 약초를 캐던 吉씨는 인기척에 까무러치도록 놀랐다. 웬 여인이 산나물을 캐고 있었다. 덕유산 너머 경상북도 어느 마을에서 산나물을 캐러 온 여인이었다. 두사람은 이렇게 해서 쉽사리 만났고(그때 나물 캐던 여인이 현재의 吉씨 부인 李노파이다) 곧 이어 신세가 비슷한 둘은 동거생활로 들어갔다. 그런데 한가지 난점이 생겼다. 吉씨는 생식을 하는데 李여인은 생식을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吉씨는 생식을 중단키로 했다. 집도 동굴에서 나와 양지바른 산비탈에 통나무를 엮고 흙을 발라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동안 모아놨던 돈으로 옷가지와 이불도 장만하고 마을에서 암탉 1마리와 수탉 1마리를 사 길렀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무주(茂朱)군 당국에서도 이들을 돕기로 하고 매월 약간의 밀가루와 보리쌀을 보내줬다. 이제 이들 부부는 더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새 살림을 꾸려 나간다. 밭도 더 넓히고 씨도 뿌리고 가을이면 호박과 박도 거두었다. 비록 옥수수와 고구마 그리고 조밥을 먹을 망정 떳떳한 자급자족 생활이었다. 더우기 마음이 편해 더 바랄게 없었다. 이 늙은 신혼부부(?)는 낮이면 밭은 갈고 밤이면 옛날 애기로 꽃을 피웠다. 지난 65년부터는 경찰에서도 자주 吉노인의 통나무 굴집을 찾아 모든 걱정을 해주는가 하면 이 두노인을 상대로 반공 교육과 계몽을 실시, 지리산으로 통하는 덕유산 일대에 나타나는 낮선 사람을 신고토록 하고 조난자를 구하는 역할을 도맡게 했다. 오늘까지 이들은 길 잃은 포수와 등산객의 유일한 구세주가 됐고 무려 30여명의 인명을 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가지 큰일이 생겼다. 어두운 곳에서만 지내다 보니 눈이 이상하게 변했다. 좀 나쁜 표현으로 짐승의 눈과 같아져 갔다. 광채가 나고 고양이의 눈을 닮아갔다. 그밖에 건강은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비록 고기는 못 먹고 호의호식은 못할망정 마음이 편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데다 산채와 약초를 먹고 여름철이면 뱀까지 먹으니 건강이야 좋을 수밖에 없다. 아름드리 통나무를 젊은 사람들 보다 더 많이 짊어지고 산에서 내려오던 吉노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앞으로 30년은 더 살테니 자주 만납시다. 허허…』 [선데이서울 70년 2월 1일호 제3권 5호 통권 제 70호]
  • [딸자랑] 梨大 金用濟씨 막내 따님 金東惠양

    [딸자랑] 梨大 金用濟씨 막내 따님 金東惠양

    이대(梨大) 법정대(法政大) 교수 김용제(金用濟)씨는 여성전유(女性專有)의 「캠퍼스」에서 뿐만 아니라 자택에서도 소녀들 틈에서 시간을 보내는 행복한 신사(紳士)다. 여러방면으로 서로 다른 재능을 보여 흐뭇하게 해 주는 딸만 4공주를 둔 아버지다. 모두 아버지를 숭배하지만 막내따님 동혜(東惠)양은 제일 대단한 숭배자란다. 『딸만 넷이니까 누구를 내 후계자로 삼겠다 하고 기르질 않아서인지 성격들이 같질 않고 취미나 좋아 하는 것들도 다 달라요』 막내인 동혜양은 식품영양학이 전공. 새 봄에 2학년이 되지만 아직은 「프레시맨」. 그위로 셋째따님 동윤(東允)양은 생활미술과 전공. 원래가 조소(彫塑)방면에 취미가 있는 금년 졸업의 학사. 둘째따님 동실(東實)양은 졸업한 독문학사(獨文學士). 시집가서 미국에 살고 있는 맏따님 동진(東眞)양은 가정과(家政科) 전공. 『전공도 이렇게 다른 아이들이 취미도 가지 가지예요. 동혜 이 녀석은 음악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어 보여요. 「피아노」도 곧잘 치고 「기타」를 잘 탑니다. 학교에서 「채플」시간에 「기타」 연주를 하기도 하고…. 이 방면으로 꽤 파고 들어가 보고싶은 의욕을 느끼고 있는가봐요. 그런가 하면 무용에도 소질과 흥미가 있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공부는 물리 화학 수학에 재미를 붙였거든요. 이공과(理工科) 계통을 전공하겠다는 막연한 결심은 그때 벌써 하고 있었어요. 졸업 임시해서 어른이 되더라도 영양(營養)사같은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고 하면서 식품영양학과를 택하더군요』 그런데 세째는 음악에는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고 다른 자매(姉妹)들이 악기를 만지는 일을 부러워 하지도 않은채 손으로 만드는 것에만 몰두를 해 왔다는 것. 둘째는 서도(書道)를 하는 독문학사다. 따님들의 다채로운 재능과 취미를 소개하는 아버지를 동혜양은 정말 숭배자답게 자랑스러운 말투로 가로 막는다. 『저희들의 취미가 그렇게 다채로운 것도 아버지 덕택이에요. 아버진 굉장히 하시는게 많으세요. 승마도 하셨죠. 「펜싱」도 하셨고 권투도 하셨대요. 미술, 서도, 음악, 전부 하세요. 셋째 언니가 아마 제일 아버지 닮았나봐요. 재주가 제일 있거든요. 큰 언니들은 아버지 따라서 승마도 하고요』 무척 양순한 표정으로 언니와 아버지 자랑이 끝없다. 딸 넷 모두가 한결같이 이화가족(梨花家族) 『같은 것은 모두 이화(梨花)가족이라는 거에요. 첫째는 이대(梨大)사대부속중고등학교가 생기기 전이어서 이화여고(梨花女高)를 나왔지만 나머지는 모두 「이화부속」에 대학도 이대니까요』 『시중도 곧잘들 들어 주는데 해 주고는 꼭 손을 내밀거든요. 구두 닦았다고, 유리 닦았다고…』 여름이면 아름다운 녹지대(綠地帶)가 되는 넓은 정원을 가꾸는 어머니 李여사를 따님들은 또 열심히 돕는다. 『아버지는 여행도 좋아 하세요』 『68년에는 아버지 어머니 단 두분만의 세계1주 여행을 3개월이나 했어요』 3개월 세계일주끝에는 미국에 있는 맏이 동실씨 집에 엄마만 2개월 더묵었다. 『그동안에 이녀석들 셋이 살림하고 있었죠. 둘째는 은행에 다니는 중이었기 때문에 셋째 넷째가 살림을 맡아 주었습니다』 『셋째 언니는 워낙 살림을 잘 해요. 전 그때 별로 한 일도 없는 걸요』 [선데이서울 70년 2월 1일호 제3권 5호 통권 제 70호]
  • 영화에 진출하는 TV 연출가

    영화에 진출하는 TV 연출가

    『10년안으로 「베니스」, 「칸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 연출가 이남섭씨(李南燮·36)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면서 펼치는 포부. 직접 TV「드라머」를 쓰고 연출하던 솜씨로 영화에서도 각본·감독 겸업의 양수겹장이다. TV연출가가 영화감독으로 진출한 예는 『미워도 다시한번』의 정소영(鄭素影)감독에 이어 두번째다. 공교롭게도 이남섭·정소영 두사람은 KBS-TV에서 4년 가까이 함께 일한 동료PD, 연출과 집필을 겸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고있다. 이남섭씨의 처녀작품이 될 영화는 구정 「프로」로 개봉될 『의리(義理)의 사나이 돌쇠』다. KBS-TV의 인기연속극으로 역시 李씨자신이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던 『녹슬은 단검(短劍)』이 원작이다. 1월25일 TV방영(放映)이 끝나기가 바쁘게 영화촬영도 끝냈으니까 TV극의 영화화(映畵化)에도 초 「스피드」의 기록을 세운 셈이다. 촬영기간이 불과 8일이었다는 점도 李씨의 일솜씨를 자랑하는게 된다. 그의 TV이력은 KBS-TV의 개국(61년 12월)과 함께 시작됐으니까 이미 1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그가 꼽는 대표작품은 『배신자(背信者)』 『사직골 구(具)서방』 『잡았네요』 『녹슬은 단검(短劍)』. 이 4편중 3편이 영화가 됐지만 연속극으로서도 모두 성공한 작품이다. 특히 『잡았네요』이후의 『녹슬은-』같은 「코미디」극은 새로운 유행어를 탄생시키면서 TV가(街)에 선풍을 일으킨 작품들이다. 『이른바 예술 작품으로 「데뷔」못하는게 좀 서운합니다. 그러나 문제작을 들고 나간다는 결의보다는 우선 흥행부터 성공시켜놓고 볼 생각이죠. 영화계 안에서의 기반부터 닦아놓고 그 다음에 하고싶은 영화를 만들 참입니다』 『의리(義理)의 사나이 돌쇠』는 「코믹·터치」의 사극(史劇)이지만 TV 「드라머」에서 불가능했던 분야를 개혁, 완전히 새로운 영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처음으로 「메거폰」을 잡아본 뒤의 소감은 『영화가 TV보다 수월하다』는 것. 『TV는 녹화하는 순간 「카메라」 조명, 편집등 기술적인 문제까지 동시에 해야하는 까다로움과 시간에 쫓기는 피로감이 있지만 영화는 기술적 여건의 제한이 적어 훨씬 여유를 느꼈다』한다. 서울大 불문과(佛文科)를 나온 李씨가 영화감독에 뜻을 둔 건 대학 2학년 때부터. TV 연출을 맡으면서 차차 자신이 생겼고 63연도에 도불(渡佛)하여 1년가량 본격적인 영화공부를 했다. 『그곳에서 이른바 세계적인 감독의 영화를 매일 한두편씩 보았죠. 「칸느」「베니스」등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들, 정말로 멋이 있읍니다. 영화야말로 모든 예술중에서 가장 다양한 표현수단이 될 수 있어요』 『한국영화는 소재도 문제지만 「테크닉」이 너무 떨어져요. 소설을 그림으로 읽어주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감정, 분위기 묘사가 천편일률이고 대사가 맞지 않요. 대체로 말이 너무 많고』 신중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털어놓는 李감독은 국산영화가 관객을 잃고있는 이유가 『작품의 질이 낮기때문』이라고 못박았다. 그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춘향전(春香傳)』같은 한국고유의 소재를 가지고 현대적인 「테크닉」을 구사한 작품. 고유문화의 전승(傳承)을 주제로 현대적인 영화를 만들고싶단다. 뜻대로 된다면 내년쯤 「유럽」에 가서 그곳 영화를 좀더 보고올 예정. TV「탤런트」 김난영씨(金蘭榮·28)가 부인이고 두 동생 창홍(昌弘·30), 만홍(萬弘·27)씨가 DBS, KBS-TV의 「프로듀서」인 방송가족. TV극 『녹슬은 단검』에 출연했던 김난영씨는 남편의 「데뷔」영화에서 남정임(南貞任), 박노식(朴魯植) 등과 공연(共演)한다. [선데이서울 70년 2월 1일호 제3권 5호 통권 제 70호]
  • 시쳇물(屍水)먹은 원효대사 본받아?

    전주 경찰서는 며칠전 시체의 뼈가루를 특효약이라고 속여 팔아온 전주시 보건소 직원 정(鄭)희철씨(37)를 구속. 전주시 인후(麟后)동 화장장 기사로 근무하는 정(鄭)씨는 지난 해 1월부터 14차례에 걸쳐 유족 몰래 유골을 훔쳐 내 가루로 만들어 간질, 해소, 결핵등에 특효약이라고 속여 60g 에 7백원에서 8백원을 받고 팔아 왔다고-. 이밖에도 鄭씨는 수속을 밟지 않은 시체 1구당 3천원씩을 받고 부당하게 화장을 시켜 준 혐의도 받고 있는데 이쯤되면 허술(許術) 가위 70연대식이라고 주위에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전주> ● 차방(茶房)에 대성방곡(大聲放哭) 며칠 전 부산시 동래 E다방에서는 난데없는 곡(哭) 소리가 터져나와 손님들이 기겁을 하고 뛰쳐 나오는 소동을 벌였는데…. 알고 보니 이곡 소리는 어느 인기 방송극에서 흘러나왔던 것. 손님들이 찻값도 내지 않고 나가버려 화가 난 H 「마담」은 곧 그 방송국에 전화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다방선 라디도 대신 전축을 쓰시오』 라는 퉁명한 응답. 더욱 화가 난 H「마담」, 분을 못참아 그만 빈 다방에 주저앉아 진짜곡을 터뜨렸다고. <부산(釜山)> [선데이서울 70년 2월 1일호 제3권 5호 통권 제 70호]
  • “지구 온난화 막는데 30억弗 기부”

    영국의 억만장자 리처드 브란슨(56) 버진그룹 회장이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앞으로 10년 동안 30억달러(2조 900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항공사, 철도회사, 레코드사 등 방대한 계열사를 갖고 있는 브란슨 회장은 2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글로벌 이니셔티브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구촌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의 기업가, 정치인들이 나서자는 취지로 기획된 행사다. 브란슨 회장은 “온난화는 세계를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며 “교통분야 사업에서 앞으로 10년간 올리는 이익 30억 달러를 지구 온난화를 막는 데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버진스타일 벤처캐피털을 통해 기금을 확보한 뒤 이 돈을 석유 및 석탄 등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체 에너지 연구 및 개발, 환경친화적인 항공연료 개발 등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기부액 규모도 놀랍지만, 친환경적인 연료 개발에 앞장서겠다는 브란슨 회장의 계획은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훌륭한 아이디어”라며 반겼다. 16세때 우편으로 레코드를 판매하는 사업에 착안, 떼돈을 벌어 버진 레코드를 창업한 그는 처음으로 세계 최초의 저가 항공사를 설립한 뒤 그룹 이름대로 사업에서의 처녀지를 개척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50억달러로 추산된다. 그는 또 혼자 열기구나 경비행기, 요트 등을 몰아 대서양을 단독 횡단하거나 세계를 일주하는 등 모험 사업가로 이름이 높다. 지난해 5월에는 2010년 말 목표로 민간 우주여행 사업에 나서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함혜리기자 lotus@seoul.co.kr
  • 해일같은 섹스풍조에 섹스상인도 걱정

    해일같은 섹스풍조에 섹스상인도 걱정

    「섹스」의 물결은 독일에도 밀어닥치고 있다. 밀어닥치는 정도가 아니라 압도할 상태. 해일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 최근의 소식이다. 본거지는 서북부의 항구도시「함부르크」. 광고에 등장하는「누드」의 갖가지 형태 그리고 도색 출판물과 영화관을 판치는 성영화등 해서 이대로 가다가는 마침내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것이「섹스」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걱정거리이기까지 하다는 것. 최근「섹스·무드」로「클로스·업」되고 있는「함부르크」의 성「파울리」에는 한달에 평균 30여만명이 여러가지로「섹스」관계를 경험하고 구경하러 몰려들고 있다. 남의 이목을 꺼리는 돈많은 실업가들은 지하철로 통하는 이 곳에서 간단히「섹스·파트너」를 구하고「엘리베이터」를 타면 지상의「호텔」방으로 안내되어 문제를 해결한다고. 그러나 역시「섹스」의 물결에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지하신문들. 지금 독일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나하리히텐」과「짜이퉁」지. 68년에 처음 나온「태블로이드」의「나하리히텐」은 지금「아프리카」와 호주의 독자까지 포함, 모두 70만부의 발행부수고「짜이퉁」은 53만5천부를 발행하는데 이들은 모두 1백만부 초과란 시간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선데이서울 70년 1월25일호 제3권 4호 통권 제 69호]
  • 막걸리집에서 결혼식

    막걸리집에서 결혼식

    막걸리 집에서 백년해로를 맺은 부부 한쌍의 얘기. 며칠전 부산시 남포동 어느 막걸리「홀」에서는 신랑 고재윤군(23)과 신부 남경자양(23)의 결혼식이 거나하게(?) 베풀어졌다. 벽엔「메뉴」표 대신 태극기가 걸렸고 막걸리 탁자 앞엔 엄숙히 선 신랑·신부의 모습-. 신부는 분홍치마 저고리, 신랑은 평소의 양복 차림으로. 신부는 시종 부끄러운듯 눈을 아래로 깔고 있었고 신랑은『분에 넘친 결혼식 보다 낫지 않느냐』면서 싱글벙글했다. 원래 막걸리를 좋아했고 구수한 막걸리 맛같은 결혼 생활을 하고 싶어 이곳을 예식장으로 택했다는게 신랑·신부의 말. 축하객들에게는 답례겸 피로연으로 막걸리「파티」가 베풀어졌고 이 날 든 결혼식 비용은 모두 1만2천원 쯤. 50초밖에 걸리지 않은 초(超)「미니」주례사도 이색적이었다. [선데이서울 70년 1월25일호 제3권 4호 통권 제 69호]
  • 못기다린다는 약혼녀(約婚女)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56)

    [사연] 29세의 남성이며 현재 월남에 있는 미국 토건회사에 근무하고 있읍니다. 23개월 전 이곳에 오기 전에 10년(年) 연하(年下)의 여인과 약혼을 하고 왔읍니다. 처음 떠나 올때 첫 계약인 18개월만 끝내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가정 사정으로 12개월만 더 있다 가려합니다. 그러나 약혼녀가 말을 들어 주질 않는군요. 15개월 되는 때에 휴가는 다녀왔읍니다. 편지도 약혼녀(約婚女)에게 매일 쓰다시피 하는 2년을 보냈읍니다만 곧 간다고 하고 2개월씩 연장하며 자내다 보니 이젠 편지도 끊어져 버린지 달포가 가까와옵니다. 어떻게 잘 타일러 계획하고 있는 날까지 있다가 가려 하는데 묘안이 없겠읍니까? < 월남에서 「무명씨(無名氏)」> [의견] 돌아오는 것만이 최선 문면(文面)으로만 본다면 당신에게 기간을 단축하고 싶은 의사는 전혀 없는 것 같군요. 그러니 사태는 절망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겠어요. 당신하고 가까이 있는 것 밖에는 원하지 않는 그녀에게 당신 자신이 돌아와 주는 것밖에 다른 묘안이 무엇이겠읍니까? 사람의 등신대(等身大)쯤 되는 장난감 곰이라도 하난 서서 『사랑해!』라는 편지를 가슴에 달아 약혼녀에게 보내 보셔요. 골이 잔뜩난 그녀가 폭소를 터뜨려 버리고 달포 밀린 답장을 쓸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하자면 미봉책에 지나지 않아요. 돈도 좋고 일도 좋지만 귀여운 약혼녀를 영영 잃어 버리지 않으려거든 얼른 귀국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Q> [선데이서울 70년 1월25일호 제3권 4호 통권 제 69호]
  • ‘죽여도 좋다’ 각서를 쓸때

    ‘죽여도 좋다’ 각서를 쓸때

    연약한 여자를 고위층과 친분이 두텁다고 속여 정조를 유린한 다음, 못질을 한 방에 가두고 폭행을 일삼는 등 모진 학대를 해온 파렴치한이 경찰에 붙들렸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1월 16일 자칭 철도청 영등포 공작창 화물 하역소장이라는 민병진(閔丙振)(35)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입건. 구속영장을 청구함으로써 여심(女心)을 울린 이 사기한의 행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민(閔)은 지난해 9월 10일, 전직 국회의원 金모 여사의 중매로 알게된 신정숙(申貞淑)양(24·가명·서울영등포구 상도동)을 총각이라고 속이고 농락한 뒤 강제로 자기 집 방에 가두어 놓고 모진 학대를 하며 신(申)양의 어머니 정(鄭)모여인으로부터는 돈까지 갈취했다는 것. 주로 처녀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해온 민(閔)이 행여나 다른 여자에게 또이런 사기행각을 할까 두려워 경찰에 고발한 것이라고 신(申)양은 한숨짓듯 말한다. 민(閔)의 사기극에 걸려들어 감금생활을 하면서 학대를 받아오던 신양의 입을 통해 그의 행각을 들어보면-. 신(申)양이 민(閔)을 알게된 것은 지난해 9월. 이미 작고한 신(申)양의 아버지가 어느 고을 군수로 재직때 뒤를 도와주던 전직 국회의원 김모여사의 중매로 맞선을 본 것이 신(申)양에게 인간 지옥 속을 헤매게 한 동기였다. 지난 해 9월, 신(申)양과 민(閔)이 맞선을 보는 자리에는 신(申)양의 어머니 정(鄭)여인과 중매를 선 김여사가 자리를 같이 했다. 김여사의 신랑감에 대한 칭찬은 정(鄭)여인으로 하여금 딸을 맡겨도 안심이 될 정도로 홀딱 반하기에 충분했다. 소개가 끝나자 두 여인은 이 남녀들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기위해 자리를 떠났다. 민(閔)은 신(申)양에게 자신이총각이라면서 35세가 되도록 장가를 못간 것은 청년운동을 하다 때를 놓친 때문이라면서 자기 소개를 그럴듯 하게 청산유수 처럼 늘어놨다. 『그 사람 첫 인상은 별로 탐탁치 않았지만 그만 그의 감언이설에 제가 속은 것이지요』 신(申)양은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민(閔)은 신(申)양에게 『앞날의 설계를 세울 우리 집을 가보자』고 유인, 민을 따라간 신(申)양은 그 날로 그의 집에서 정조를 빼앗겼다. 그가 신(申)양에게 들려준 학력과 이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학생운동에 참여해 오다가 도덕재무장 한국본부 부총장을 거쳐 대한 국토건설단 중앙단 부단장, 전국 청년단체연합회 기획위원을 지냈으며, 지금은 국민도의선양회 회장에 있노라고 제법 굵직굵직한 직함들을 장광설로 늘어놓았다는것. 신(申)양은 민(閔)의 거짓말이 뻔히 들여다 보일 때도 남자의 허세이거니 생각하고 탓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 그러나 민(閔)의 가면은 신(申)양앞에 하나씩 그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민(閔)은 자신의 가면을 벗기지 않으려고, 차차 의심을 품기 시작한 신(申)양의 어머니를 찾아가 신(申)양과 약혼식을 올려줄 것을 강요하면서 만약에 이를 거절한다면 폭탄을 들고와서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위협을 했다. 민(閔)의 강압에 못이긴 정여인은 지난해 10월 25일 8만원을 들여 약혼식을 올려주었다. 민(閔)은 전처의 소생이 3명이나 있는 홀아비. 신(申)양은 약혼식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이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신(申)양은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러나 민(閔)은 신(申)양의 태도가 점점 자기 곁을 빠져 도망칠 것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지난해 11월 2일부터 밖에 나갈 때는 신(申)양을 방에 가두고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민(閔)은 신(申)양을 방에 가두고 방문을 쇠창살로 굳게 못질하고 큰 자물쇠를 채워놓고는 식사는 식모를 통해 부엌으로 통하는 샛문으로 들여보내게 하고 대소변까지 방안에서 보도록 했다. 『작년 가을이었읍니다. 일요화가회에서 미술전을 열었을때의 일입니다』 그때 민(閔)은 신(申)양이 보는 앞에서 방문객 「사인」난에 「金鍾X형」이라고 쓰고는 『이래도 날 의심하느냐』고 할 정도로 지능적이었단다. 신(申)양은 68연도 M미술대학 서양화과를 나온 아가씨. 『그래도 저는 모든 것을 믿으려 했읍니다.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읍니다. 아마 학대만 하지 않았어도 그를 고발치는 않았을 것』이라고 신(申)양은 한숨짓는다. 그의 감시·학대벽은 점점 극에 달해 하다못해 극장에서 화장실을 가면 여자화장실까지 쫓아와 도망치려고 하느냐면서 마구 엉덩이를 구둣발로 차기도. 이런 날은 집에 들어와 단도를 빼어들고 『배반하면 죽여버려도 좋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라고 강요하기가 일쑤였다. 만일 신(申)양이 각서를 쓰지 않으면 뜨거운 주전자물을 머리에 붓는 등 그의 행패는 날이 갈수록 심했다. 그 때 그가 신(申)양의 머리에 부운 물에 신(申)양은 화상을 입고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다. 이렇게 난폭한 민(閔)은 항상 주머니에 명함대신에 요인들과 찍은 사진 3장을 넣고 다녔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를 할때는 사진을 내보이며 요인들의 팔과 같은 일꾼이라고 속여 청와대를 무상으로 출입한다고 큰 소리쳐 왔다는 것. 딸의 이런 생활을 까마득히 모르던 신(申)양의 어머니 정(鄭)여인은 신(申)양이 지난해 12월 29일 수면제를 먹고 음독자살을 기도했을 때야 뒤늦게 알고 경찰에 고발했다. 지금은 K병원에 입원해 있는 신(申)양은 『더 이상 상고 싶지 않았다』면서 그 때의 감금생활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난다고 부르르 떨었다. 경찰이 민(閔)의 집을 수색한 결과 그의 「캐비니트」 속에서 신(申)양 이외에도 다른 여자로부터 『배반하면 죽여도 좋다』는 내용의 각서를 발견, 경찰은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민(閔)은 경찰신문에 1건의 전과도 없다고 딱 잡아떼어 그의 사기술을 활용하려다 지문조회결과 68년 6월28일자 서울 서대문서에서 폭행혐의로 구속된 것을 비롯, 전과 5범으로 판명됐다. 민은 경찰에 검거되던 날도 전화로 당직형사계장을 찾아 『나같이 높은 사람이 어떻게 경찰에 출두할 수 있겠느냐』면서 담당형사가 직접 찾아와 조서를 받도록 하라고 호통을 칠 정도로 허풍을 떨었다. 장석영(張錫英)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1월25일호 제3권 4호 통권 제 69호]
  • [딸자랑] 변호사申淳彦씨 둘째딸 善華양

    [딸자랑] 변호사申淳彦씨 둘째딸 善華양

    변호사 신순언(申淳彦)씨는 주위에 다복한 가장(家長)으로 소문이 나 있다. 미남 미녀의 자녀를 그것도 6남매나 두고 효도(孝道)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 중에도 지금 가장 효도 삼매경의 처지에 있는 게 둘째따님 선화(善華)양. 대학 졸업 후 2년동안 줄곧 아버지 시중을 들고 있다. 『우리 집은 요새 부모답잖게 효도만은 마음껏 받고 있죠.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부모 밥상만은 꼭 딸들이 차려서 저희들이 들고 들어와서 권합니다』 신순언(申淳彦)씨는 흐뭇한 표정이다. 3남3녀 중에 순서로는 다섯째, 딸로는 둘째 딸인 선화(善華)양은 청덕여고를 거쳐 덕성여대 상과를 졸업한 1946년생. 바로 위가 언니인데 CPA 의 「스튜어디스」. 효도하는 버릇은 이 언니에게서 부터 실천되던 가풍(家風)이란다. 『고등학교만 들어가면 부엌에 나가서 일하는 걸로 돼있어요. 제 언니때부터』웬만하면 불평들을할텐데 재미가 나서들 한다고 어머니 손(孫)여사도 늘 기특해 하고 있다. 『정성을 들여서 그런지 얘 요리솜씨가 이 아버지 입에는 썩 맛있어요. 어떤 때는 요리책을 보고 창작을 하는데 잘 만들거든요. 음식점 것 보다 낫다고 칭찬을 해주죠』 그래서 아버지 신순언(申淳彦)씨에게는 사무실과 자택이 하루의 직행 「코스」로 결정돼 있다. 고교 때부터 부엌일 돕고 아빠 시중 잘드는 글래머 『아버지께선 보수적이시고 대하기 어렵지만 정말 가정적이세요. 친구들과 어울려서 밖에 나왔다가도 아버지께서 들어와 계실 시간이면 얼른 들어가 시중 들어드려야 한다고 서두르니까 친구들에게 핀잔을 받죠』 방안을 온통 환하게 만들어 버릴 것처럼 화사하게 웃으면서 선화(善華)양은 아버지 자랑을 한다. 『그렇다고 무취미한 아이도 아니어서 신통합니다. 어려서 부터 예술방면에 소질을 보였어요. 고전무용으로 무대에도 더러 섰지요』 본업으로 삼게하고 싶지않은 부모 뜻에 좇아서 이제는 무용쪽은 폐업을 했단다. 『덕성여대 졸업반 때는 학교에서 「퀸」을 정하는데 뽑혔더군요. 그리고 나니까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나중에는 무슨 영화사에서 출연교섭이 와요. 아예 안된다고 호통을 쳐 주었지요』 대학(大學) 땐 「퀸」으로, 영화출연 교섭받기도 67년 연방영화사에서 몇편의 영화를 갖고 한동안 교섭이 왔었단다. 부모뜻을 어겨본 일이 없는 선화(善華)양은 미련도 없이 거절했다. 역시 재학시절이지만 TBC-TV 아침방송 『생활의 지혜』사회도 한동안 맡았었다. 그런 쪽에서 탐내는 것도 무리가 아닌 미모의 아가씨다. 1백 64cm, 체중 53kg, 체위 35-23-36「인치」니까 수준이상의 「글래머」. 『양재학원에 다니면서 바느질도 배우고 틈틈이 수(繡)를 놓는 것이 요즘 얘 일과입니다』 『효도 받는 것이 흐뭇한 한편 우리 내외는 어깨가 무겁습니다. 막내딸은 아직 어리지만 선화(善華)까지 합쳐서 위의 5남매가 모두 매사에 「부모 뜻 대로」하라는 순종형이에요. 연애할 생각도 한번 안 하거든요. 그러니 걱정은 안 시켜서 좋으나 좋은 배필 구해줄 책임이 여간 무겁습니까? 한창 나이인데 무단외출 한반 안하니까요』 [선데이서울 70년 1월25일호 제3권 4호 통권 제 69호]
  • 이분득(李分得)양 - 5분 데이트(66)

    이분득(李分得)양 - 5분 데이트(66)

    『여고 졸업한 뒤 곧 취직이 되어서 벌써 5년이나 은행원 생활을 하고 있어요。그동안 직장생활이 여성수업(女性修業)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본 일은 한번도 없었어요』고운 반달 눈썹밑에서 새까만 눈동자가 반짝한다。 경남 김해가 원 고향이고 부산진여상(女商)을 나온 경상도 아가씨。 사투리는 음악적인 「리듬」을 말끝에 넣어 줄 정도인데 음성이 무척도 낮고 조용하다。사투리가 자랑처럼 공중 앞에서 버럭버럭 음성을 높이는 현대형은 아니다。『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가서 수를 붙잡고 앉아요』 학교때 재봉·수예 선생님의 애제자였다。어느 핸가는 수 병풍이 국제전에서 입선한 적도 있는 「베테랑」급。『월급은 일어(日語)학원의 월사금과 교통비 면제하고는 적금을 들고 있어요』 주산 1급에 「타이프」도 곧잘 치는 A급 사무원이지만 꿈은 「패션·디자이너」。 『대단한 명성을 얻겠다는 뜻이 아니라 아주 조그맣게 자기 「워크·숍」을 갖고 자립하는 생활이 꿈이에요』일어(日語)강습도 혹시 일본(日本)에 가서 「디자이너」수업을 하게 되면 싶에서 - 받고 있다。 공무원인 오빠와 단 남매。아버지는 작고하셨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요즘은 또 새로운 취미를 개발했다。등산과 「클래식」음악감상。 『「오페라」가수 「스테파노」를 제일 좋아해요』 [선데이서울 70년 1월25일호 제3권 4호 통권 제 69호]
  • 신부 저승에 홀로 잠들었건만

    신부 저승에 홀로 잠들었건만

    27세의 젊은 시인이 죽은 약혼녀의 사진을 들고 결혼식을 올렸다. 마침 이 날은 죽은 약혼녀의 4·7제(만 28일째)를 지내는 날이자 두 사람의 결혼식 날로 택일해 두었던 날. 싸락눈이 내리던 1월 10일 서울 신흥사(新興寺)에서 있은 일이다. 독경속에 사진 안고 입장 손님들이 먼저 울어 버려 이 날 하오 3시. 신흥사(新興寺) 대법당은 조촐한 결혼식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신랑 XXX군, 신부 XXX양의 결혼식장이란 알림쪽지도 붙어 있지 않았다. 법당안엔 주례를 맡아 볼 주지스님과 25명 남짓한 하객(?)들이 말없이 앉아 있을 뿐. 이윽고 대법당의 문이 열리고 신랑 성영일(成英一·27·서울성북구)이 검은 띠를 두른 신부의 사진을 들고 입장했다. 「웨딩·마치」대신 주지스님의 독경소리가 낭랑했다. 약 10분간에 걸린 이 산신랑과 죽은 신부의 결혼식은 조용히 진행되었다. 이따금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하객들이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뿐. 식이 끝나기 전에 끝내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신부의 어머니가 터뜨린 울음을 신호로 결혼식장 안은 온통 울음 바다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끝내 울지 않은 단 한사람이 있다. 신랑 成군이었다. 成군은 식이 끝날 때까지 울지 않았을 뿐더러 식이 끝난 다음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장인·장모를 부축해 약1백m 떨어진 피로연 식장까지 모셔갔다. 성급한 놀이꾼들의 장구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열린 피로연 식장서도 신랑은 끝내 울지 않았다. 이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모두 신부쪽 일가친척들. 신랑쪽이라곤 신랑의 절친한 친구 3명밖에 없었다. 신랑쪽 부모는 물론 친척조차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목메이는 울음 참던끝에 신랑은 신부이름을 외쳐 1시간반 남짓한 피로연이 끝나고 하객들이 모두 돌아간 뒤 맨 마지막으로 신랑 成군이 친구들과 함께 눈 길을 내려왔다. 길이 미끄러워서였을까? 신랑 成군은 비탈길을 내려오다 그만 눈구덩이위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신랑의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영아야- 』 두 남녀가 서로 알게 된 것은 두 사람 모두 20세 되던 해 여름이었다. 당시 대학교 2학년생이던 成군은 우연한 모임에서 이영(李映·가명·신랑과 동갑)이란 아가씨를 알게 되었다. E여고를 졸업, E여대 가정학과에 재학중인 아가씨였다. 두 사람은 서로 첫 눈에 사랑을 느껴, 이후 7년동안 한시도 보지 않고선 못견딜 사이가 되었다. 신랑 成군은 H고교를 졸업, 모대학 불문과를 졸업했고 62년도엔 모신문 신춘문예 詩 부문에 당선하기도. 李양은 D철강 사장을 아버지로 둔 6남매의 셋째 딸. 6남매중 가장 똑똑하다하여 온 집안의 귀염을 독차지해온 아가씨였고 成군은 장남. 두 사람의 사랑은 여러 차례 파란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끝내 69년 12월6일 약혼식을 갖게 되었다. 12월6일 약혼하면서 두 집안서 결혼날짜로 택일해 두었던 날이 바로 1월10일. 그러나 죽음의 신이 돌연 덮쳐왔다. 약혼식이 끝난지 나흘뒤인 12월10일, 李양은 원인모를 고열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급히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월12일 병상에서 숨지고 말았다. 정확한 병명은 의사들도 내리지 못한 채 사망진단서엔 급성뇌염으로 적혀 있었다. 장인·장모는 가슴이 아파 훌훌 서울을 떠나버리고 처음엔 成군의 집은 물론 李양의 집에서도 펄쩍 뛰었다. 成군의 장인이 될 李양의 어버지까지도 『내 딸을 잊지 못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젊은 사람이 장래를 생각해야지』 하며 극구 말렸다. 그러나 成군은, 막무가내. 두 집안에서 다 반대하면 혼자서라도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우겼다. 마침내 李양 집에선 成군 부모들을 찾아가 동의를 얻은 뒤 결혼식을 올리기에 이른 것이다. 결혼식이 끝난 뒤 成군의 장인은 成군을 「자네」라고 부르며 하루 빨리 자기딸을 잊고 새 장가를 가라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언제든 우리 집을 찾아오면 사위 대접을 하겠다』고. 죽은 딸에게서 사위를 본 이 장인·장모는 결혼식을 올린 다음 날인 11일 아침 9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떠났다. 가슴에 맺힌 슬픔이 풀릴때까지 서울엔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 그러나 이 날 제주도에 갔어야 할 장본인은 成군과 죽은 李양. 즐거운 신혼여행길에 올라 있어야 할 신랑 成군은 결혼식 올리던 날 밤 윗 동서와 친구들과 어울려 무교동 거리에서 술에 취해 있었다. 술취한 신랑은 친구에게 “그녀는 어엿한 나의 부인” 成군은 친구들에게 『비록 육체는 없어도 영아는 이제 내 본부인이란 말야』 하며 주정을 했다. 그가 굳이 결혼식을 고집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첫째 이유가 李양과의 결혼식을 올려 눈 감지 못하고 죽었을 李양을 위로해 주자는 것. 둘째는 자기자신을 위해서. 결혼식을 올림으로써 자기사랑을 정리하고 싶었다고. 다음이 장인·장모들을 위한 마음. 평소 자기를 친아들 이상으로 잘 대해주던 장인·장모에게 결혼식으로나마 효도를 하고 싶었다고. 아직 27세니까 물론 앞으로 다시 결혼해야 할 젊은이다. 成군 자신도 다시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成군에 의하면 그 결혼은 자신에게 재혼이 될 것이며 李양은, 언제까지나 자신의 조강지처로 있으리라는 것. 『누군들 재혼이야 안하느냐?』는 게 成군의 주장. 결혼식 날 밤 成군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와 李양이 생전에 보내온 사랑의 시들을 읽었단다. 이틀 뒤인 12일 월요일 成군은 아침 9시정각, 직장에 출근했다. [선데이서울 70년 1월18일호 제3권 3호 통권 제 68호]
  • 번지는 섹스 음악에 말썽

    번지는 섹스 음악에 말썽

    「섹스」음악 - 아직은 뭔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 말이지만 지금「유럽」에서는 선풍적으로 번져가고 있다.「섹스」음악의 바람을 몰고 가는 문제의 주인공은 70연대「유럽」의「섹스」의 상징이 될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제인·버킨」양(22) -「프랑스」태생 여배우이자 가수이다. 그녀와 남자배우「게인스버그」둘이서 불러 지금「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로 번지고 있는 노래「지·뜨엠」을 듣고 있노라면 정사를 연상시킨다는 것. 2박자, 3박자로 흐르는 이 곡은 처음부터 사랑하는 남녀의 성적인 교섭을 드러내어 작곡한 것. 성교과정을 그대로 음악화 시킨 것. 시적이고 감성적인 배경을 강하게 넣긴했지만. 이「레코드」는 판매나 방송을 모두 금지시키고 있는 나라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팔리는 것이 문자 그대로 날개 돋친듯. 완전금지를 시키고 있는「브라질」에서 7만5천장이나 팔렸다니 기타 나라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3년전 영화잡지「블로우·업」에서 여러 장의「컬러·누드」로 등장함으로써 육체파로 각광을 받은 그녀는『내게는 아무 것도 숨길 것이 없다』는 것이 신조. 영화에서 벗는 것은 완전히 무의식적이란다.「섹스」의 상징으로 군림하자면 아직은 가슴이 모자란다는 것이 약점. 그러나 그녀는 『어때요, 그걸 더 좋아하는 관객이면 되잖아요』-지금 그녀의 음악과 함께 그녀의「누드」는 세계 각국의 이름난 신문잡지에 다투어 실리고 있다. [선데이서울 70년 1월18일호 제3권 3호 통권 제 68호]
  • 패션계에 컴•백한 86세 샤넬여사

    패션계에 컴•백한 86세 샤넬여사

    20세기「프랑스」「패션」계의 여왕「가브리엘•샤넬」여사가 86세되는 올해 일선에「컴•백」할 것을 선언하여「패션」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패션」계는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고있다』면서 젊은 남성을 양편에 거느리고 사기 왕성한「샤넬」. 염문속에 패션주름잡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여왕 「가브리엘•샤넬」- 이 이름이 낯선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난 육체파 여배우「마릴린•몬로」의 저 유명한 말을 생각하면 된다. 『잘 때 입는 것은「샤넬」5번!』. 이 향수가「가브리엘•샤넬」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샤넬」여사만큼 세계의「패션」계에 영향을 미친 여성도 없다. 20세기「프랑스」「패션」계의 여왕이며 창시자였던「샤넬」 여사는 60여년동안 온 세계의「패션」을 움직이고 1, 2차세계대전을 겪은 지금에도 아직 건재. 그뿐 아니라 그녀는 이 나이가 될 때까지「유럽」여러나라 왕실(王室)과의「로맨스」를 비롯, 외교관•예술가들과의 끊임없는 염문(艶聞)으로 말하자면「패션」계의 전설적인 여성이었다. 자신이 『30세부터 전혀 나이를 먹지 않은 기적의 여성』이라고 자부하는「샤넬」여사는 86세인 지금에도 30세로 자칭하여 할머니 취급하기에는 딱한 형편. 이번「패션」계의「컴•백」선언은 동시에「샤넬」의 여자로서의「컴•백」인지도 모른다. 『여자의 성욕이 없어지는 것은 재가 될 때』라는 옛말도 있고 미국에서는 여성이 아무런 걱정없이「섹스」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생리현상이 없어진 다음이라고 한다. 이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패션」계「컴•백」선언 이후「샤넬」의 주위에는 젊은 남성들이 모여들고 모 예술가와「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느니 또 누구 누구와「데이트」를 하고 있다느니 하는 소문이 들린다. 또『그녀가 86세가 된 지금에도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젊은 남성의 정기를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듯이「샤넬」여사 그 자신「기적의 여성」인지도 모른다. 53년 첫번째 컴•백때에도 비웃던 사람들 무릎끓어 「샤넬」의 애칭을「꼬꼬」라고 하는데 작년 12월부터 미국「브로드웨이」에서는 그녀의 일생을 그린『꼬꼬』를 주연하는 배우는「아카데미」여우 주연상을 세번이나 탄「캐더린•헵번」. 90만「달러」의 제작비는 거의가「세실•비튼」에 의한「디자인」에 들었는데 이는 그 옛날「샤넬」이 만든 의상을 주로 한「디자인」이다. 따라서 이「뮤지컬」은「샤넬」의「패션•쇼」를 보는 느낌.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1년전인 1938년에 은퇴를 성명하고 15년 후인 53년에「컴•백」했었다. 따라서 이번은 그녀의 두 번째「컴•백」선언. 53년「샤넬」이「컴•백」했을 때 사람들은『별것 아닌「올드•패션」』이라고 비웃었지만 그녀는 『전세계의 여성이 나를 필요로 하기에「컴•백」했다』고 태연히 선언하여「패션」계는 또다시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었다. 그러므로 이번 두 번째「컴•백」에 대해서도 아무도 비웃는 사람이 없다. 세번까지는「패션」계가「샤넬」의 마음대로 될 것을 예측할 뿐이다. 시인인「장•콕토」는「샤넬」을 평하여『그녀가 한번 고개를 갸우뚱하면 그것은 사형선고를 의미한다. 그녀는 대법관(大法官)이다』라고 했다. 즉「샤넬」의 일거일동으로「패션」계가 움직이고『「꼬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라고 그녀의 안색을 살피는 정도였다. 그녀의「패션」의 특징은 우선 실용적이며 매력있는「디자인」을 쉴새없이 만들어 내는데 있다. 한 예로 지금까지 싸구려 옷감으로 알려진「저지」를 사용하여 우아한「카디간」이나「드레스」를 만들어 사람들을 놀라게했다. 「오벨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샤넬」이 어떻게 해서「패션」계의 여왕이 되었는가는 아직도 수수께끼지만 그녀가「파리」에 나와 변두리의 조그마한 모자집 직공이 된 뒤 차차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성(全盛)시대의 파트너 중엔 유명인(有名人)들이 기라성처럼 전성시대의「샤넬」은「파리」제1의 돈많은「디자이너」였다. 5천만「달러」를 벌고 향수 공장, 옷감 상점을 비롯,「프랑스」전국에 26개나 되는「샤넬」의「아틀리에」에는 2천5백명의 종업원을 포용하고 있었다. 그 무렵엔「패션」계뿐만 아니라 예술계의「스폰서」로 무용, 음악계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피카소」같은 대화가도 그녀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는 얘기.「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변호한 것도 그녀이며「모던•댄스」의 대가「디아기레프」의 생활을 돌보기도 했는데 이들과의 염문이 자자했던 것도 당연한 일. 「샤넬」과 애인관계 여부는 본인에게 물어야 확실하겠지만 그「파트너」라고 하는 남성들은 모두 유명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음악가「스트라빈스키」, 시인「장•콕토」, 무용의「디아기레프」, 화가인「피카소」와「다리」, 그리고「윈스턴•처칠」의 이름까지 끼여있다. 그녀의 남성에 대한「에피소드」하나. 영국의「웨스터민스터」공작이 구혼했을 때, 이를 기꺼이 수락할 것으로 보았는데 깨끗이 거절했다. 이 때의 대답이『「웨스터민스터」공작 부인이 될 사람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지만「샤넬」은 단 한사람 밖에 없으니까요』라고 자신만만. 그 자신(自信)을 86세인 지금까지 조금도 잃지않고 있다. 「샤넬」은「롤스•로이스」는 타지 않고「캐딜락」을 쓰고 있다. 그 이유는- 「롤스」는 할머니들만이 타는 차니까 – 그녀 자신은 아직도 할머니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만만한「샤넬」이지만 86세로서 설마 그러한 일은 없겠지만』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 그녀 주변에는 언제나 젊고「핸섬」한 청년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러고 보면「샤넬」은 아직도 시든 꽃은 아닌 것같다. 적어도 그녀 자신은 아직도 싱싱한 30세의 매력있는 여자로 자처하고 있으니-. 현대 기적의 여성「샤넬」이「패션」계에의「컴•백」은 가능할까? 「샤넬」의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는 것일까? [선데이서울 70년 1월18일호 제3권 3호 통권 제 68호]
  • 동서 항렬 따지는 사위-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55)

    저는 딸, 아들, 딸의 차례로 3남매를 가진 아버지입니다.복잡하게도 큰 딸 작은 딸은 시집보내고 보니 사위 둘이 파(派)는 다르지만 종씨입니다. 작은 사위가 큰 사위보다 나이가 3살 위고 항렬로는 할아버지 뻘이 되는군요. 동서간에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이 고장 여론은 구구 각색입니다. 서로 존대하자고 하는 큰 사위의 말에 작은 사위는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나이가 위인 데다가 항렬이 할아버지뻘인데 어떻게 존댓말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나이가 척은 처남(자기의 처(妻)에게는 오빠가 되는)에게는 말을 존대하면서 그보다 손위인 처형의 남편되는 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안하겠다는 것이 작은 사위의 주장입니다. 처가는 장차 낳을 저희들 자식에게는 외가가 아닙니까. 처가항렬을 무시 한다는 것은 어머니를 무시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딸들의 아버지로서 여간 고민이 아니며 한편 분한 마음도 듭니다. <전남 고흥군 고흥면 남계리 550의1 유상철> 답변: 딸들의 항렬로 설득을 달 나라에 사람이 발을 두번이나 디뎌본 우주시대에 그 댁 작은 사위님의 켸켸묵은 머리는 어룰이지도 않는군요. 예절도 좋지만 가까운 친척도 아니라는 처지에 자기 고집만 세우는 그 청년의 머리를 한대 꽝 때리고 싶군요. 아뭏든 딸들의 항렬이며 순서도 틀림없는 항렬이니까 장인의 입장을 굽힐 필요는 없을 줄 압니다. 밖에서야 어떻든 『내집에서는 용서 못한다』고 형제의 차례를 단호하게 고집하기를 권합니다. <Q> [선데이서울 70년 1월18일호 제3권 3호 통권 제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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