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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산관리법 덕분에 어린이 재벌 탄생

    재산관리법 덕분에 어린이 재벌 탄생

    최근 「네덜란드」에선 14살의 꼬마가 스스로의 힘으로 예비재벌 아닌 기성재벌 백만장자가 되어 화제. 문제의 주인공은「하인·니콜라스」군. 그는 3「옥타브」를「커버」할 수 있는 풍부한 성량과 개성있는 목소리 하나만으로 불과 2년 사이에 백만장자가 무색할 돈벌이를 했을 뿐 아니라 세계적인「뮤지컬·스타」가 될 것이라는 명망까지 얻게 되었다. 12살때 광부를 그만두고 술 장사를 하던 아버지의 술집에서 손님을 위해 노래를 부르다가 손님중의 한「쇼」단「매니저」에게 발탁되어 『재수있는 꼬마소년』이란 「쇼」에 출연함으로써 명성과 돈을 얻기 시작한 그의 노래는 지금 1천만장 이상의「레코드」를 취입 판매되고 있으며, 독일에서 제작된 영화에 불과 1년사이에 3번이나 출연한 기록을 세웠다. 밤 출연에 평균 4천「달러」를 버는 그의 재산은 어린이 재산에 관한 법에 따라 모두 예금이 되고 있는데, 1백만「달러」를 훨씬 넘는다고. [선데이서울 70년 5월 10일호 제3권 19호 통권 제 84호]
  • 술집 아가씨로 오해받는 선생님들

    경남 충무시 A국민학교 여교사들이 요즈음 술집아가씨 취급을 받고 있는데…. 사연인즉 낮에는 학교에서, 밤에는 술집에서 전화를 공동으로 쓰기 때문이라고. 전날밤 술자리에서 아가씨를 눈여겨 보아 두었던 손님들이 낮에 전화를 걸어 전화를 받는 여교사들에게 『미스 金?』『미스 李, 지금 만날까?』 운운… 징그럽게 굴기가 일쑤라는 것. 아무리 궁하다고 학교 전화를 술집에 빌려 줘서야. [선데이서울 70년 5월 10일호 제3권 19호 통권 제 84호]
  • 이뽑자「키스」했다 신세망친 칫과의사

    이뽑자「키스」했다 신세망친 칫과의사

    며칠전 부산시 반여동 무면허 칫과의사 K씨(42)는 이웃에 사는 P여인(38)의 썩은 이빨을 뽑아 주고 있었는데…. 난데 없이 P여인의 남편 O씨(40)가 나타나 『내 마누라 하고「키스」하는 현장을 분명히 봤다』고 펄펄뛰면서 D서에 간통혐의로 고발을 했것다. 경찰의 조사결과 간통이란 터무니 없는 생트집이었음이 밝혀졌으나 무면허 칫과의사임이 드러나 결국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것다. 쇠고랑 차면서 탄식하는 K씨- 『손님 한번 잘못 받았다가 내 신세 망쳤구나 -』 [선데이서울 70년 5월 10일호 제3권 19호 통권 제 84호]
  • 누가 좋아서 삥땅을 하나

    누가 좋아서 삥땅을 하나

    『삥땅?』유식한 체하기 좋아하는 친구를 그거 혹시 「프랑스」의 유명한 「샹송」가수의 원산지 발음이 아닐까 넘겨 짚을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전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낱말이고 그것도 국어사전을 뒤져 보아야 나오지 않는 개운찮은 뒷맛을 가진 치사한 낱말. 4월 28일 서울 YMCA 강당에서 열린 색다른 모임-「버스」여차장의 「삥땅」의 정의와 그 슬프기조차한 내력을 들어보면-. 「버스」차장을 3년동안 해온 한 아가씨가 어느 날 한국노사문제연구협회 회장 박청산(朴靑山)씨를 찾아와 눈물겨운 호소를 했다. 『저는 3년 동안 「버스」차장을 해 온 19세의 여차장 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생명보다 더 소중히 믿고 있는 기독교 신자입니다. 그런데 저는 매일 죄악과 양심의 갈림길에서 괴로와 하고 있읍니다. 차장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르지 않으면 안되는 「삥땅」 때문입니다. 하루 3백여원 씩을 회사의 눈을 피해서 빼 가지는 「삥땅」 수입이 없으면 저의 집안은 살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그런 도둑질을 하면서 제가 어떻게 하느님의 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읍니까? 아무래도 저는 교회 나가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하겠읍니다. 양심상 괴로워서 도저히 더 이상 나갈수가 없읍니다』 이 애절한 소녀의 호소를 들은 박씨는 그냥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래서 찾아가 의논한 사람이 천주교 원주 교구장으로 있는 지학순(池學淳) 주교이었다. 이 두사람이 뜻을 모아 마련한 것이 YMCA 에서 가진 『여차장의 「삥땅」에 대한 심포지움』이라는 색다른 모임이었다. 우선 「삥땅」 의 정의부터 내려보면 「별로 힘 들이지 않고 얻어지는 조그만 소득」 쯤으로 풀이 할 수가 있다. 차장의 경우 승객으로부터 받은 요금 중에서 얼마를 빼서 실례해 버리는 것을 뜻한다. 「택시」운전사의 경우에는 그날의 수입 중에서 차주에게 입금시키기로 돼있는 액수(대개 하루 6천원 정도)를 제한 나머지를 뜻한다. 그러므로 「택시」운전사의 경우 영업이 부진한 날이면 자칫 자기 주머니의 돈 까지 보태서 차주에게 입금시켜야 할 때도 있게 된다. 「삥땅」의 어원은 화투노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섰다에서 「삥」이라고 하면 송학 즉 1자를 이른다. 이 「삥」자만 갖게되면 이른바 족보축에 끼는 「9삥」「장삥」「4삥」「1·2」「삥땅」(1땅) 등이 될 확률이 많아서 노름꾼에게는 행운의 패. 그리고 「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섰다판에서는 임금이다. 이 「삥」과 「땅」이 합해서 「삥땅」이라는 묘한 발음의 복합어를 만든것. 일설에는 「삥땅」의 「삥」은 남의 것을 가로챈다는 뜻의 은어이고 「땅」은 「일당(日當)」의 「당」이 강하게 발음된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즉 그날의 정당한 보수와 부수입을 뜻한다는 것인데 어느 설이든 간에 정당하지 못한 수입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삥땅」의 역사는 멀리 1·4 후퇴 직후로 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그때는 운수업 한 사람치고 돈 벌지 못하면 병신이라고 할 만큼 운수업계의 황금기. 군용「트럭」을 헐값에 불하받아 「드럼」통을 펴서 얹어놓으면 갈데 없이 「버스」가 되었고 그렇게 해서 굴린 「버스」가 석달만 지나면 어김 없이 또 한대의 「버스」를 만들만큼 돈이 굴러 들어 왔다는 「기막히게 좋은 시절」이었다. 눈사람처럼 돈이 불어나는데 신이 난 차주들이 운전사와 차장 조수에게 몇푼씩의 막걸리 값을 쥐어주곤 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이 몇푼의 막걸리값 「선심」이 「삥땅」의 초기 형태였다. 이 차주의 「선심」은 운수업의 기업화와 함께 서서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대신 그때까지 수동적으로 「선심」을 누려 오던 종업원들이 능동적인 방법에 의해서 수입을 가로채는 형태로 발전해갔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삥땅」시대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몇년 전 까지만 해도 「버스」의 차장은 남자들로서 그들은 「삥땅」에 대한 욕심보다는 운전기술을 배우겠다는데 더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남차장의 시대가 가고 여차장의 시대가 오면서부터는 갑자기 「삥땅」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여자의 경우 남자와는 달리 오로지 보수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 하루 18시간을 일해야 하는 고달픈 중노동에 비해 월급은 고작 6천~7천원. 그것도 식비 숙박비 등을 제하고 나면 4~5천원밖에 손에 쥘 수 없는 실정이니 어쩔수 없이 「삥땅」에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없으면 도저히 생활을 지탱해 나갈 수 없는 형편이다. 「삥땅」을 눈 감아 준다는 조건으로 정기적인 여감독들이 「세금」을 받아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다. 「삥땅」은 비단 운수업계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그래서 이날 「심포지움」에서 연세대의 이계준(李桂俊)목사는 『큼직한 부패에 비한다면 여차장의 「삥땅」쯤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다만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에 있는 여차장들이 죄악감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고 있어 장래의 어머니가 될 그들의 정신위생이 크게 염려될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심포지움」에서 주장한 「삥땅」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1)적정시간의 근로 (2)적정임금 (3)경영자의 합리적인 기업운영 (4)환경시설의 개선 (5)여감독제도의 폐지 (6)운수업의 대기업화내지 공영화 (7)노동조합의 강력한 단결력 등이었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10일호 제3권 19호 통권 제 84호]
  • “탤런트 되려면 미쳐야해요”

    “탤런트 되려면 미쳐야해요”

    TV「탤런트」를 모집할 때마다 그야말로 구름처럼 모여드는 지망생들- 웬만큼 자신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탤런트」의 꿈을 키워보지만 막상 병아리「탤런트」들이 당해야 하는 설움을 맛보면 너무「탤런트」좋아하지 마시오다. 지난해 봄에 부푼 꿈을 안고「탤런트」의 문을 두드렸던 J양은 1년이 지난 지금 완전 실의에 빠져있다. 처음 그렸던「브라운」관 주인공에의 화려한 꿈이 산산조각이 난 것은 옛날이고 뒤숭숭한 대합실 같은「탤런트」실의 한구석에서 조그마한 단역이라도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가냘픈 희망에 얽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리고 있다.『「탤런트」가 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점심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겠다』고. 각 TV 방송국에서는 해마다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전속「탤런트」교육생을 모집하고 있다. 모집인원은 대개 20명 정도. 이 20명안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모여드는 지망생이 2천여명이 넘는다. 1백대1의 치열한 경쟁율이다. 이렇게 바늘구멍을 뚫고 합격한 사람들은『이제는 왔구나!』하는 감격을 안고 부푼 가슴으로 6개월의 교육에 들어가게 된다. 선배「탤런트」들의 눈부신 모습, 연출가들의 고맙기만 한 격려,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방송국 안의 신기한 물건들…. 그러나 이런 부푼 꿈을 안고 교육에 들어간지 채 한달도 안되어서부터 그들의 마음 속에는『이게 아닌데…』하는 회의와 함께 깨져 흩어지는 화려한「탤런트」의 꿈을 가눌 수없게 된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나 엄청난 실망만이 회오리바람처럼 그들의 가슴을 스치고 갈 뿐이다. 그들에 대한 방송국의 무관심 때문이다. 월급은 7천원부터 시작 2년되어야 1만5천원 6개월의 교육기간이 지나고 나면 벌써 성급한 낙오자들이 상당수 나온다. 20명중 실제로 남는 사람은 10명 정도. 나머지는 이름만 걸어 놓은 채 뿔뿔이 흩어져 거의 방송국에는 나오지 않게 되고 만다. 교육이 끝나면 일단 그들은 방송국과 전속계약을 맺게 된다. 말하자면 이제부터는 정식「탤런트」대접을 받는 셈이다. 6개월간의 전속계약을 맺는데 월급제와 출연료제의 두가지가 있다. TBC는 월급제이고 KBS와 MBC는 출연료제다. 월급제의 경우 초봉이 7천원. 6개월마다 승급을 하게 되는데 1만원, 1만2천원, 1만5천원으로 올라 간다. 1만5천원을 받으려면 2년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출연료제의 경우 교육이 끝나면 1천원 고정. MBC는 3개월 뒤 부터 A B C급으로 등급을 두어 1회출연에 A급 2천5백원, B급 2천원, C급 1천5백원을 준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이 출연하는, 횟수는 1주에 평균 2편이 넘지 못하는 실정. 따라서 1개월 수입이 고작 2만원을 넘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그것도 1년이 넘은 A급의 얘기고 보면 그밖의 사람들은 월급제의 경우와 별로 차이가 없다. 동기(同期)인데도 등급을 두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경쟁심과 의욕을 북돋우자는 뜻에서라고 한다. 그래서 6개월 후 재계약 할 때에 C급이던 사람이 A급으로 뛰어 오를 수도있고 A급이 C급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A급이나 C급이나 수입면에 있어서는 턱도 없는 액수이기 때문에 사기에만 영향을 줄 따름이라는 그들의 불평이다. 「프리」가 될 때까지 2년 넘어 그렇게 지내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도중하차」해버리고 만다. 배정된 역할도 없이 매일「탤런트」실에 나와서 빈둥거린다는 것은 웬만한 인내심이나 끈기로는 견딜 수없는 노릇이다. 장기나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내다가 혹 재수가 좋아서 단역이라도 걸리면 다행이지만 그런 기회도 역시 가뭄에 콩나기 정도. 따라서 느지막에 얼굴만 비치고는 사라져버리는 명색만의「탤런트」가 대다수다. 끈기있게 견디는 사람은 20명중에서 2,3명정도 이렇게 해를 거듭하다가 보면 결국 남는 인원은 극소수. 1기에 2,3명 정도가 마지막까지「탤런트」의 자리를 지키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 MBC-TV의 이기하(李基夏) 제작국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방송국 실정으로 보아서 교육시킬 만한 여력이 없다. 민방(民放)의 경우에는 더욱 곤란한 형편이다. 교육에 투자를 했다면 그만큼 건져야 되는 것인데 과연 그게 가능할는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외국에서는 극단이나 조합이 있어 거기에서「탤런트」를 양성하고 있다. 그래서 극단이나 조합과 방송국이 직접 계약을 해서 완전한「탤런트」로서의 「상품가치」를 구하고 있다. 「탤런트」들에 대한 시청자의 식상 역시「탤런트」자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하루 아침에「스타」의 자리에 앉기를 꿈꾸는 망상이 그것이다. 『「탤런트」는 뭣보다 끈기와 인내 그리고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선배들이 하는 것을 부지런히 쫓아 다니며 배우고 혼자 연습해 보는, 말하자면 완전히 미쳐야 하는 것이다. 얼굴만 가지고 머리만 가지고 연기가 되는 건 절대로 아니다』 역시 이기하씨의 말이다. 그러나「탤런트」들의 불만에도 충분한 근거는 있다. 『교육을 받는 동안 벌써 우리들은 꿈을 버린거예요. 모두가 다 실망하는 거죠. 뽑아 놓았다면 그만한 책임있는 교육이 있어야 할게 아니겠읍니까? 자기가 무슨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지 누구나 의심스러워 하고 있어요. 또 보수 문제도 그래요. 의상비는 커녕 교통비도 제대로 되지 않을 지경이에요』『』「탤런트」경력 2년인 K양의 불만이다. 어쨌든 안방극장의 화려한 주역을 꿈꾸며 하늘의 별따기로 합격한「탤런트」라는 직업은 바깥에서 생각하고 있듯이 그렇게 화려한 직업만도 아닌 모양이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3일호 제3권 18호 통권 제 83호]
  • 미스·화신가구(和信家具) 이상숙양-5분데이트(80)

    미스·화신가구(和信家具) 이상숙양-5분데이트(80)

    『학력은 물론 대졸이어야 하겠지만 그밖에는 마음씨 착하고 건실하다면 되겠죠. 월수로 사람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아요』-「미스·화신가구(和信家具)」 이상숙(李相淑)양 (20)이 펼치는 이상적인 남성상이다. 가무스름한 피부, 단정한 이목구비 그리고 깊고 맑은 두 눈동자가 인상적인 아가씨이다. 홀어머니 이순화(李順花)씨(46)의 3남3녀중 네째. 위로는 3명의 오빠가, 아래로는 두명의 여동생이 있다고. 수도여사대 부속 중·고등학교를 거쳐 올봄 서라벌 예대 병설 초급대학 공예과를 졸업했다. 화신가구에 입사한지는 한달 남짓 되는 직장 초년병이다. 『직장에서는 사장비서직을 맡아보고 있어요. 직장에서 다루는 가구는 제 전공인 공예와 관계되는 부분이 많은 만큼 재미 있어요』 취미는 음악감상과 집안 가꾸기. 『예스터데이』를 즐겨 듣는다고. 학교때의 전공이 공예인만큼 실내장식은 자신의 손으로. 69년엔 「미스·아이·콘테스트」에서 「미스·아이·산스타」로 뽑히기까지 한 표정있는 아름다운 눈의 소유자이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3일호 제3권 18호 통권 제 83호]
  • 여자에겐 관심없는 총각 배우재벌(俳優財閥)

    여자에겐 관심없는 총각 배우재벌(俳優財閥)

    여자처럼 예쁜 이런 얼굴이 그런 사나이다운 일을 할 수 있었구나-생각하자마자 「마론·브란도」의 그 단단하고 거친 얼굴이 이성훈(李星勳·29)씨의 여상(女相) 위에 겹친다. 과묵한 점에서도 그렇다. 1백50㎞로 「오토바이」를 모든 「드릴」을 비롯, 모든 「드릴」있는 일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제임즈·딘」이다. 자동차 부속품의 기름을 온통 손과 가슴에 칠해온 또하나의 「자이언트」의 주인공. 고(高)3때 부친(父親) 돌아가시자 학교다니며 차부속(車部屬)팔아 고교 3년때부터 자동차 부속품이라는 쇳덩어리를 자기의 삶처럼 어루만지고, 주무르고, 들어 올리고, 짊어진 이야기는 아닌게 아니라 선명한 영화 「신」처럼 「리얼」하다. 3남4녀중 장남이고 중앙(中央)고 3년때 아버지를 여의고 그래서 아버지가 하던 자동차 부속품상 「만흥상회」를 떠맡고 서강대(西江大) 독문(獨文)학과를 마칠 때까지 줄곧 쇳덩어리와 공부를 짊어 지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막막하더군요』 그러나 계속 막막해 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그렇죠, 고등학교때부터 기술적인 걸 배웠어요. 상품의 가치를 판별하는 법도 배웠지요. 갑자기 돌아가셨으니까 유언도 못하셨는데 평소에 저한테 죽 일러오셨읍니다. 사람은 노력해야 한다고요. 돈은 들어오면 놓치지 말아라. 조금 한눈을 팔면 다른 데로 샌다. 돈은 자기가 버는 게 아니라 남이 벌어준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어려서는 몸이 약했으므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육상 야구 축구 배구 등 운동이라면 거의 다하게 되었고, 거의 「프로」에 가까운 실력이어서 선수권을 가진 종목도 있고 그리고 합기도가 3단.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무역해 놓은 물건이 있어서 바탕은 허약한 편이 아니었어요. GMC 회사에서 「베베루비뇽」「샤도우」같은 부속을 수입해서 7~8배 남겼죠』 대학 2년때 미8군으로부터 부속품을 불하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쇠와 땀에 얽힌 싸움의 「드라머」가 보인다. 당시 미8군에서 고철을 불하한다고 하면 거기에 미친 사람들은 머리를 싸매고 몰려들었다. 불하라고 하지만 실은 중간 업자들의 농간에 의해서 버리다시피 하는 고철의 매매행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야바위 입찰경매라는 것으로 떠들썩하기도했다. 『저는 중간 상인을 피하고 미군과 직접 상대했어요.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대령이었어요. 외국인과 사귀려면 역시 머리에 좀 든게 있어야겠더군요』 미군(美軍) 고철 불하(拂下)받으려고 두달동안 설득끝에 성공 『그때 그 대령은 제가 학생으로서 뭘 해보겠다고 애쓰는데 대해 무척 감동했어요. 잘보였죠. 두달동안을 매일 쫓아 다녔읍니다. 불하 면장을 받아 가지고 어머니와 같이 동두천 미군부대로 갔어요』 불하 받은 부속은 GMC「데우」 2백대분. GMC 20대로 운반해야 할 양이었다. 10대씩 두번 날라다가 창고에 쌓았다. 『처음에 GMC 10대를 끌고 어머니와 함께 맨 앞차의 운전석에 앉아 나오는데 검문소에서 차를 세워요. 무조건 다 내려 놓으라는 거예요. 일단 내려놓고 조사하자는 거죠. 그때는 모두 먹자판이었거든요. 처음에는 몰라서 돈 많이 버렸어요. 돈 뭉치를 창 밖으로 던지고 떠나오니까 아무 말도 못하고 멀거니 서서 바라보고 있더군요』 두번째 10대를 끄고 나올때는 꾀를 냈다. 『돈 안 아까운 사람 어디 있어요? 더구나 피땀 흘려 번돈인데 말이죠. 누구나 땀 흘려 번 돈은 막 뿌리지 못해요.두번째는 앞차에 다른 사람을 태웠어요. 10대에 모두 다른 사람을 태우고 맨 앞 사람이 이렇게 말하도록 했죠. 주인이 맨 뒤에서 돈을 뿌리며 온다. 주인과 상의해라. 10대가 다 통과하고 나서 나는 다른 차를 타고 지나왔죠. 검문소에서는 허, 하고 입만 벌리고 있더군요』 창고에 쌓아놓고 상점에는 「샘플」만 몇 개 갖다놓았다. 『그때 미제 「데우」라면 수요에 따르지 못했어요. 「샘플」본 사람들이 몇 대분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을 차에 태워 창고있는 데로 갔죠. 2백대분을 1년에 다 팔았어요. 그 뒤로는 큰 몫이 없었죠. 대기업들이 치고 들어오니 당해낼 도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직접 전방 미군부대 폐차장으로 나갔죠』 벌떼처럼 달려드는 깡패 쫓으려다 수 없이 몸다쳐 중간 「브로커」를 이용했다. 어떤 물건이 있는데 값은 얼마고 어떤 줄을 타야 된다는 등의 정보를 얻는 것이다. 대학 3학년때. 『「트럭」에다 싣고 나오면 그곳 깡패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어요. 차가 떴다 하면 2백~3백명이 몰려들어 길을 막는 거예요. 기계 하나 뽑아서 떨어뜨려봤자 그 많은 사람들의 배를 채울 수는 없지 않아요? 그 사람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러는 거였으니까… 차를 세워 놓고는 사방에서 차 위로 기어오르는 거예요』 그 벌떼를 막기 위해 이씨는 쇳덩어리 위에 앉아서 왔고 기어오기 시작하면 쇠뭉치를 들고 「트럭」위 울퉁불퉁 제멋대로 실려 있는 쇳덩어리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이 쪽을 막으면 저 쪽에서 기어 오르고 걷잡을 수 없었어요. 제 다리에 상처가 많은데 그때 쇠에 부딪히고 까지고 한거죠. 다리 살이 칼로 찔러도 안 들어가요』 쇳덩이에 부딪히고 깨어지다가 쇳덩어리가 된 다리의 살. 그 때 상점에서 손수레를 끄는 영감님이 차 위에서 같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는데 상점에 도착해서 쇠를 운반하다가 머리가 깨져 입원뒤 일을 못하고 있다. 충분히 보살펴 주지못해 마음 아프단다. 학교 공부가 궁금하다. 『지금도 책상 서랍 열어보면 빙긋이 웃어요. 독일 「괴테·유니버시티」에서 온 초청장이 거기 들어 있거든요. 곽복록 선생이 거기 가 계실때 보내주신 거예요. 초청장 보고 빙긋 웃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잘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 때문이죠』 독일유학 제철기술 배우고 싶었는데 경영학과 법학을 집에서 혼자 공부하기도 했는데 한양대(漢陽大) 법과에 2년 다니기도 했다. 『독일 간다면 철의 강도를 조절하는 기술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녹인 쇠를 약품 처리해서 굽는 과정의 온도 조절이 제일 중요해요』 『일본의 「도요다」같은 회사에서 무역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나는 일본놈들 하고는 장사 안하기로 했어요. 차라리 「양키」 것을 훔쳐낼 지언정 일본놈들 하고 할 생각은 없어요. 우리나라도 미군들 폐차된 부속품 훔쳐내는거 권장 했으면 합니다. 권장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일본놈들은 「오끼나와」의 미군부대에서 훔쳐내는 거 권장할 뿐만 아니라 「에스코트」까지 해준대요. 훔쳐낸 물건 쓰면서 자기네 것은 외국에 수출합니다. 일본놈들 돈 벌기위한 계략은 치사할 정도예요. 「덤프·트럭」만 해도 67연도 형 부속은 68년에 안만듭니다. 1년 지나면 부속품 형을 바꿔버려요. 그러니까 67년에 산 차는 1년만에 못쓰게 되는 거죠. 폐차 시키지 않으면 새로운 형의 부속을 다시 사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부속을 계속 팔아먹어요. 저는 그게 메스꺼워서 형이 바뀌는데 따라 내가 개조해요. 그래서 새「트럭」이 나와도 쓸 수 있도록 합니다. 구형 부속으로 못쓰고 버릴 바에야 개조해서 쓰도록 하는 것이 「달러」를 버는 길입니다. 요새 거리에 「기모노」차림의 일본인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띄는데, 그 사람들 보면 침뱉어 주고 싶을 정도로 미워요』 현재 금강상회는 신진6「톤」반, 쌍(雙)「덤프」5「톤」반, 「이스트·덤프」등의 「덤프·트럭」부속품을 주로 취급한다. 연간 유통자금은 1억원. 무교동에 미도 「빌딩」(6층)도 가지고 있다. 공장도 세울 계획. 새영화에서 문희(文姬)와 주연(主演) 밑바닥부터 배워 제작(製作)도 최근에는 『그여자에게 옷을 입혀라』라는 영화에 문희와 함께 주연으로 등장, 촬영을 끝마쳤는데 5월15일께 개봉할 예정이다. 『「액션」물을 하고 싶어요. 영화의 밑바닥부터 배워서 차차 제작에도 손을 대고 싶습니다』 이번 『그 여자…』에서도 「오토바이」를 십분 활용했는데, 이씨는 「오토바이」선수권을 가지고 있고 요즈음에도 김포가도를 1백50「킬로」로 달리는 「엑스퍼트」. 앞으로는 「스카이·다이빙」도 하고 싶은데 그런 「드릴」있는 것과는 전혀 먼 낚시도 한다. 오늘이 있기까지 어머니의 힘이 컸다고 강조하는 이성훈씨는 「가톨릭」신자. 일이 바쁘다 보니까 지금은 성당에 못나가고 있지만. 총각인데,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단다. 『정말 관심이 없어요, 정말』 불고기 15인분을 먹는 대식가. [선데이서울 70년 5월 3일호 제3권 18호 통권 제 83호]
  • 간통혐의 문초받던 아가씨 맞춤법 강의

    간통혐의 문초받던 아가씨 맞춤법 강의

    며칠전 부산시 동래 경찰서 수사과에서 간통혐의로 문초를 받고 있던 李모양(25)이 진술서를 쓰고 있는 담당형사 L씨(38)에게 맞춤법이 틀렸다고 호통(?)치면서 맞춤법 강의를 한바탕해서 모두들 어리둥절. 이 날 이양은 진술조서를 받던중 L형사가 조서에 「올키」라고 쓰자「옳게」라고, 「부억」이라고 쓰자「부엌」이라고 고쳐주면서, 그것도 모르냐고 일침, L씨를 붙잡고 맞춤법 강의를 친절하게(?) 해주었다는 것. 「친절한 선생님」을 만난 L형사는 그저 머리만 긁적거리고…. [선데이서울 70년 5월 3일호 제3권 18호 통권 제 83호]
  • 독살된 러 첩보원이 쓴 책 영화로 만든다

    방사성 물질인 폴로늄 210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드러난 러시아 연방보안부(FSB) 전 정보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 인터넷판은 24일(현지시간) 리트비넨코가 러시아 역사학자인 유리 펠시틴스키와 함께 쓴 ‘러시아 날려버리기(Blowing Up Russia)´의 판권을 미국 할리우드 영화사인 ‘브라운 엔터테인먼트 그룹’이 구매했다고 보도했다. 리트비넨코는 자신의 책에서 FSB가 1999년 러시아에서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탄테러 사건을 배후 조종했다는 ‘음모론’을 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폭탄테러 사건을 체첸 반군의 소행으로 몰아붙였고 지지도 상승으로 크렘린에 입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리트비넨코의 독살 배후로 지목을 받고 있는 러시아 정부의 심기가 더욱 불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여대생 미인이 왜 나빠”

    “여대생 미인이 왜 나빠”

    올해 「미스·코리어」진(眞)으로 뽑힌 유영애(劉永愛)양(20)이 재학중인 숙명여대(淑明女大)에서 제적(除籍)당할 운명에 놓여있다. 재학중에는 미인대회, TV 「탤런트」 또는 「모델」로 나가지 못한다는 학칙에 걸린 것. 미인다사(美人多事) 랄까? 지난 해엔 「미스」아닌 「미스·코리어」로 말썽이더니 올해엔 학칙이 말썽. 지난 4월 6일 「미스·코리어」본선대회에서 「미스·경기(京畿)」의 자격으로 출전한 유 양은 애교만점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께 부탁 드릴 일이 있어요. 딸을 낳으시거든 숙대(淑大)에 넣으시고 며느리는 꼭 숙대 출신을 고르셔요』 숙대재학생의 숙대PR에 관중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한 숙대PR가 아니었다. 바로 대회 2시간전. 「미스·코리어」에의 꿈에 부푼 유 양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출전 미녀들의 대기장소인 대원(大元)「호텔」에서 유 양은 화장을 하다 말고 전화를 받았다. 『나 숙대학생처장인데 유 양 본선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숙대는 더 다닐 생각 말아요. 아시겠죠? 그러니 유 양이 잘 알아서 처리해요』 전화는 끊겼다. 숙대쪽으로부터 유 양에게 이런 협박(?)이 있기는 이미 여러 차례. 그러니까 대회 2시간전 걸려온 전화는 최후통첩인 셈이었다. 전화가 끝나고 약 30분뒤 이번엔 숙대쪽이 보낸 공식 사절이 대원「호텔」에 나타났다. 이번 대회에 가짜 숙대생이 한명 있었으며, 「미스·경북(慶北)」으로 출전한 A양은 가명으로, 유 양은 본명으로 출전했다. 대원「호텔」에 나타난 숙대조교 역시 학생처장의 말과 같은 말을 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숙대쪽의 협박(?)보다는 미(美)의 정상을 향한 집념이 더 강했든지 유 양은 본선대회에 나갔고 끝내는 올해 「미스·코리어」진으로 뽑혔다. 새 「미스·코리어」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4월 16일 유 양의 집에 다시 속달우편이 도착했다. 4월 18일까지 자퇴원을 내지 않으면 총장 재량으로 유 양을 제적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유 양과 함께 「미스·경북」으로 출전했던 A양은 이미 출석일수(出席日數) 미달이란 명목으로 숙대에서 제적 당했다. 유 양은 자퇴원을 쓰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막상 「펜」을 잡고 보니 『저 크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살아오신 홀 어머님 생각이 나서』 자퇴원을 쓸 수가 없었다고. 「미스·코리어」 선발대회를 주관한 H사 쪽에서 유양을 돕기 위해 앞장 섰다. 지난해 「미스·코리어」인 임현정양은 현재 숙대 영문과 3학년에 재학중. H사쪽은 숙대까지 「미스·코리어」 선발대회 출전을 막는 경우 「미스·코리어」 의 질적 저하를 들며 숙대쪽의 재고를 요청했다. 그러나 숙대쪽은 학업에 충실해야 할 여대생이 미의 여왕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결과적으로 대학재학생이 「미스·코리어」 선발대회 「스폰서」 기업체의 광고 「모델」 로 까지 전락하는 것을 두고 볼수 없다고 팽팽히 맞서있다. 한편 『재학중에는 미인대회, TV「탤런트」 또는 「모델」등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학칙도 말썽거리. 숙대학칙엔 이런 명문(明文) 규정이 없다. 그러나 숙대쪽은 69년 9월부터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숙대의 공식태도를 밝혀 왔으니 불문율(不文律)이 돼있다는 주장. 그러나 유 양의 가족쪽은 『합법적인 입시를 통해 숙대에 들어간 이상 성적불량 혹은 출석일수미달등 학칙을 어기는 행위가 없는 이상 총장재량에 의한 제적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아버지 없는(6·25때 작고(作故)) 유 양을 8살때부터 고교졸업때까지 맡아 키운 유 양의 외조부(外祖父) 박종우(朴鍾禹)씨는 『어떻게 키운 외손년데 학교 못 다니게 하느냐?』면서 화를 벌컥 냈다. 『미인이라고 학교 못 다니게 하면 이 세상 미인은 모두 멍텅구리 되라는 말이냐? 지난 해에도 「미스·코리어」가 숙대에서 나왔다는데 그 아가씨는 학교 다니게 하고 우리 외손녀는 못 다니게 하다니 그런 법이 있느냐?』고. 유 양의 홀어머니 박정애(朴正曖)여사는 『학교에서 자퇴원 내라고 속달이 왔을때 하마터면 기절할 뻔 했어요.「미스·코리어」 된 뒤에 공부를 잘 못했다거나 결석을 많이 했다면 몰라도 .「미스·코리어」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학교를 못 다니게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해요』라고 학교당국의 재고를 바랐다. 당사자인 유 양은 『어떤 교수님은 자퇴할 필요가 없다. 또 어떤 교수님은 자퇴하라고 하니 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요. 주위에서 어떤 분들은 딴 학교로 전학을 하라거나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2년 공부를 마치고 오라고 해요. 그러나 다니던 우리 학교를 두고 왜 딴학교로 옮겨야 하나요?』 유 양의 학교성적은 우수한 편. 1학년때 성적이 평균 B학점. 유 양의 희망은 대학졸업뒤 여고 무용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숙대1학년때 교직과목 4학점은 모두 A. 유 양의 말로는 『절 공부시키려고 어머님이 너무 애쓰시는것 같아 2학년때는 더 공부를 잘해 장학금을 타려 했는데…』하며 말끝을 흐린다. 유 양은 「미스·코리어」가 되었다고 『절대로 학교 공부나 몸가짐이 전보다 소홀해 지지 않을 것이니 학업을 계속케 해달라』 고 호소. 유 양의 희망은 올여름 있을 「미스·유니버스」선발대회에 참석해야 하니까 이번 한 학기만은 휴학계를 받아주었으면 하는것. 이런 유 양쪽의 주장에 대해 숙대쪽의 입장도 사뭇 강경하다. 숙대 윤(尹)학생처장은 『지난해 까지만 해도 숙대는 재학생의 「미스·코리어」출전을 허용해 왔어요. 그러나 이대(梨大)등 다른 여대가 모두 불허(不許)하고 있는 것을 숙대만 허용하고 있다고 학부형들의 비난이 많았어요. 게다가 학업에 전념해야 할 여대생이 「뷰티·콘테스트」에 나가고 신문광고에 오르내리는 걸 찬성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난 9월부터 여러차례 학생들에게「오리엔테이션」을 통해 경고해 두었어요. 이미 불문율이 되어 버렸죠』라고 공식태도를 밝혔다. 앞으로 이 문제는 숙대 교수회의의 의결을 거쳐 확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당수의 교수들이 유 양을 동정하고 있어 과연 제적이 되느냐는 두고 볼 문제. [선데이서울 70년 5월 3일호 제3권 18호 통권 제 83호]
  • [딸자랑] 서라벌예술대학장 임동권(任東權)씨 맏딸 선혁(仙赫)양

    [딸자랑] 서라벌예술대학장 임동권(任東權)씨 맏딸 선혁(仙赫)양

    서라벌 예술대학장 임동권씨(44)의 2남2녀중 맏이인 선혁양(20)은 풋과일처럼 마냥 싱싱한 아가씨. 사과를 닮은 새빨간 두 볼과 웃을 적마다 깊게 파이는 볼우물이 여간 사랑스럽지가 않다. 이화(梨花)여대 2학년에 재학중. 전공은 시청각교육학으로 방송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 꿈이란다. 『선혁이는 집안 어른들과 떨어져 서울에서 신접살림을 하던중 태어난 아이라서 가장 내 손길이 많이 간 아이죠. 엄마가 식사준비를 하면 으례 선혁이는 내차지였고 저녁뒤 산책이라도 할 때면 항상 선혁이를 안고 다녔읍니다』 원래부터 산책을 즐기던 아빠와 아기때부터 바깥에 나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꼬마 선혁양은 의기가 상통, 저녁이면 늘 동네 산책을 즐겼다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딸아이와 함께 거리를 걸을 때가 있는데, 자연스럽게 내 팔을 잡고 걸어요.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그런 「매너」가 생활화하지 않아 거북살스럽지만 참고 견디죠』, 가끔씩은 엉뚱한 아가씨와의 「데이트」인듯 오해를 받아 곤란하기도 하나 역시 아빠는 발랄하고 구김살 없는 맏따님과의 「데이트」가 즐거운 눈치이다. 『역시 딸 아이는 크면 친구같이 되는 것 같아요. 커다란 문제부터 잘디잔 일상적인 문제까지도 일단 우리 가정의 일은 딸아이와 의논을 합니다. 딸 아이가 찬성을 해주면 일단 안심이 되고 흐믓해집니다』 어머니 이정원(李貞遠·42)씨의 말이다. 『대학에서의 전공을 선택할때 나는 문과(文科)계통을 권했어요. 여러 면에서 교양을 높인다는 의미로…. 그러나 자신은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시청각교육학과를 택하더군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사진「클럽」에를 들더니, 열심히 일요일이면 「카메라」를 들고 나가더군요』 취미로 시작한 「카메라」는 「프로」급. 지난 3월에는 시청각 교육과 주최 사진전에 작품 2점을 출품하기도 했고, 그중의 1점은 사진잡지「포토그래픽」에 실리기도 했다는 아빠의 자랑이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감수성이 예민해요. 「센스」도 빠르고…. 항상 상냥하고 싹싹해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죠. 그러나 요즈음은 유난히 애교를 떨 때는 조심을 해야죠』 새 옷을 사달라고 할 때, 또는 용돈을 좀더 올려 달라고 요구할 때는 엄마 아빠에 대한 「서비스」가 놀랍다는 걸 뻔히 알고 있지만 귀여운 재롱에 그만 아차, 아빠는 속아넘어 간다는 것. 그러나 아빠는 도시 싫은 내색이 아니다. 『내 전공이 민속학이니까 「민속학 개론(民俗學 槪論)」이라는 책을 항상 가까이 놓고 지냈어요. 어려서도 한자라고는 모를 나이인데도 언제나 책을 찾는 눈치이면 얼른 「민속학 개론」을 갖다 주더군요. 4살짜리 꼬마가…』- 아버지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고는 신통하다는 듯 고개를 기웃거린다. 『선혁이는 여러가지 「서비스」를 기분내키는대로 하지만 항상 잊지않고 계속되는 것이 하나 있어요. 차 심부름입니다. 밤 늦도록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이 일과인 만큼 늦게까지 일을 하다 보면 목이 컬컬해질 때가 있어요. 그럴때면 언제나 「코피」를 끓여옵니다』 아무리 피로한 때라도 따님이 끓여주는 한잔의 「코피」를 마시고 나면 온갖 피로가 깨끗이 사라진다는 아빠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3일호 제3권 18호 통권 제 83호]
  •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탄력받나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탄력받나

    영국과 결별하려는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움직임이 결실을 맺을수 있을까. 최근 여론조사에서 분리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내년 5월 스코틀랜드 의회 총선에서 다수당이 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영국의 정치 판도가 크게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20일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2007년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정치통합을 이룬 지 300돌이 되는 해다. 선데이 텔레그래프가 지난달 영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주민 2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양쪽 주민의 과반수가 쌍방의 분리독립을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알렉스 샐먼드 SNP 당수는 총선에서 승리하면 100일 이내에 분리독립 희망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제안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상황이 이쯤 되자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SNP가 높은 지지를 얻는 것에 대해 공개적인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도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운동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비례대표제인 스코틀랜드 의회 체제 아래서 특정 당이 다수당이 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SNP가 다수당이 되더라도 다른 당과 연합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독립에 대한 열기가 식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SNP가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10여년간 장기집권한 노동당에 대한 반발이라는 정치적 명분과 더불어 세계 유가 상승에 따른 실리적 이유가 공존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SNP는 북해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90%가 스코틀랜드 소유라고 주장해 왔다. 샐먼드 당수는 “10년간 원유로 벌어들이는 돈의 절반을 사용해도 900억파운드의 신탁기금을 운용할 수 있다.”며 “스코틀랜드를 위한 선택은 명확하다.”며 애국심에 불을 질렀다. 또 다른 갈등 요인은 글래스고에 있는 트라이던트 핵잠수함이다.SNP는 “독립 스코틀랜드는 비핵화 지대가 될 것이며, 트라이던트는 국경 남쪽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블레어 총리는 최근 신형 핵잠수함을 건조하겠다는 계획임을 밝혔다. 1970년대 경제불황 아래서 강력하게 대두된 스코틀랜드 국가주의는 1998년 블레어 정부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 지방분권 정책을 실시하면서 수그러들었다. 현재 영국은 외교와 안보, 세제 정책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의회에서 관할하고 있으며, 의료와 교육은 각 지역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지방분권 정책은 잉글랜드 내에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일각에선 잉글랜드 국가주의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스코틀랜드 출신 의원이 웨스트민스터 의회에서 투표하는 것에 반발,‘잉글랜드 투표권은 잉글랜드 의원에게’를 요구하는 법안이 제출된 것이 단적인 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미스·삼정물산(三鼎物産) 주선진(朱善鎭)양 - 5분 데이트(79)

    미스·삼정물산(三鼎物産) 주선진(朱善鎭)양 - 5분 데이트(79)

    가무스름하고 갸름한 얼굴에 버들잎을 닮은듯한 긴 눈을 가진 금주의 표지「모델」은 주선진(朱善鎭)양. 49년생, 3개월째 삼정물산(三鼎物産)의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다. 어머니 김연옥(金連玉·61)씨의 3남3녀중 막내. 어머니는 인천에 살고 서울에서는 큰 오빠집에 묵고 있단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이면 퇴근과 함께 인천행. 한 주라도 인천행(仁川行)을 거르는 때면 엄마가 보고 싶어 못견딘다는 아직 애송이 아가씨이다. 인천여상(仁川女商) 출신. 결혼은 언제쯤? 이란 물음에는 『어유, 아직 어린걸요. 오래 오래 있다가, 엄마랑 오래 살다가 갈래요』- 펄쩍 뛴다. 『남자친구들은 두어명 있어요. 그냥 친구일 뿐이에요. 친구들과 만나면 주로 야외로 놀러 가죠. 등산도 하고…』 좋아하는「타이프」의 남성으로는 우선 똑똑한 사람이어야겠다고. 『겉모양 보다는 속이 알찬 사람이 좋겠죠. 착실한 사람, 뭐든 나보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좋아요』 그리고는『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덧붙인다. 『나이가 많아야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되지 않아요. 나이가 많은 편이 여러가지로 안전할 것 같아요』 요즈음은 회사에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역사소설『대원군(大院君)』을 읽고 있다. [선데이서울 70년 4월 26일호 제3권 17호 통권 제 82호]
  • 쥔있는 몸 털던 계(契)판의 사나이

    쥔있는 몸 털던 계(契)판의 사나이

    노름판에서 사귄 가정주부를 꾀어내 정을 통한 상습도박꾼이 남편에게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을러대며 100여만원을 뜯어쓰다 결국은 행패를 못이긴 여인의 고발로 쇠고랑을 찼다. 말다툼 판에 나타난 의리(義理)의 사나이 계를 하던 동네부인들과 집안에 모여 심심풀이 화투놀이를 하던 김귀자(金貴子·32·가명·서울 서대문구 합동)여인이 도박꾼의 검은 함정에 빠진 것은 지난해 5월초, 남편이 지방출장을 떠나 보름동안 집을 비운 사이였다.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며 동네부인들을 안방에 불러놓고 화투놀이를 하던 김여인 집에 하루는 안면이 전혀 없는 40대여인 한 사람이 찾아왔다. 「혁이엄마」라는 이 40대여인은 『이웃에 새로 이사왔는데 인사도 할겸 놀러왔다』고 했다. 이 여인은 그 뒤 매일같이 찾아와 김여인들과 어울려 화투놀이를 벌였다. 그러다가 1주일뒤 이 여인은 낯 모르는 30대청년 한 사람을 데려왔다. 「혁이엄마」의 동생이라고 자기 소개를 한 뒤 화투판에 끼어들려는 이 청년에게 김여인과 동네부인들은 『여자들끼리 심심풀이로 하는 놀이에 남자가 무슨 참견이냐』면서 거절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고분 고분하게 물러나려 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등 시비조로 나오며 문밖으로 쫓아 내려는 김여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이때 나타난 사나이가 김여인의 행복을 끝내 갈갈이 찢어놓은 박경술(朴京述·30·서울 영등포구 봉천동 94). 김여인이 뒤에 안 사실이지만 모든 것은 박이 꾸민 연극이었다. 말썽꾼 몰아낸 그사내가 화투놀이에 끼어 들더니 박은 김여인과 실랑이를 벌이던 30대청년의 멱살을 쥐고 「못된 놈」이라면서 호통을 친 뒤 주먹으로 서너대 후려갈겨 쫓아 보냈다. 혹시 경찰에 신고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던 김여인은 갑자기 나타나 말썽을 부리던 청년을 쫓아준 박이 고마왔다. 박은 『여자에게 행패하는 놈은 그냥 못두는 성질』이라면서 자기 소개를 한 뒤 사라졌다. 그 다음날 저녁 동네부인들이 김여인집에서 화투놀이를 벌일 때 박이 김여인을 찾아왔다. 김여인을 누님으로 삼겠다면서 능란한 말솜씨와 「유머」로 동네부인들과 어울려 화투판에 끼어들었다. 주로 돈 많은 동네부인들이 모인 김여인의 곗군들도 누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박을 마다하지 않고 호의를 베풀었다. 이웃 황모여인(36) 집에서 화투놀이를 벌이던 지난해 6월 초여름 어느 날 김여인이 대준 밑천으로 박은 얼마간의 돈을 딴 뒤 자기는 「꾼」이며 노름을 해서 잃어본 적이 없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김여인이 보기에도 박의 솜씨는 놀라왔다. 며칠뒤 박은 노름판에 간다면서 1만원을 꾸어달라고 졸랐다. 김여인이 대준 돈으로 10만원을 딴 박은 용돈으로 3천원만 가졌을 뿐 나머지는 『누님의 살림에 보태쓰라』면서 모두 김여인에게 주었다. 돈도 돈이려니와 박의 이러한 행동에 김여인은 『의리를 지킬줄 아는 동생』이라고 동네부인들에게 자랑까지 했다. 그뒤 박은 한남동 모처에서 큰 노름판을 벌인다면서 김여인에게 구경삼아 같이 가보자고 꾀었다. 박을 따라 비밀도박판에 간 김여인은 담배연기가 자욱한 좁은 방에서 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화투장을 튕기며 충혈된 눈으로 열을 올리는 남녀도박꾼들이 모습에 시간 가는줄 몰랐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난 노름에서 박은 15만원을 땄다. 돈얻어가고 끝내는 덮쳐 “남편에게 알리겠다” 공갈 『축하 「파티」를 열자』는 박의 꾐에 끌려간 곳은 삼각지 「로터리」앞 모 음식점. 박이 따라준 축하술에 속이 달아오른 김여인은 도박판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채 박에게 손목을 잡혀 부근여관에 들어갔다. 술김에 박과 하룻밤을 지낸 김여인은 남편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슴이 떨렸으나 남편 외의 남자와 동침하는 「드릴」도 싫지는 않았다. 그 뒤부터 박은 동침할 때마다 노름밑천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선뜻 박의 요구를 들어주던 김여인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함정으로 빠져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돈을 순순히 내주지 않으려는 눈치만 보이면 박은 은근히 협박을 해댔다. 『네 남편에게 이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것. 이 핑계 저 핑계로 남편에게 돈을 뜯어내는 동안 가계부는 적자 투성이가 됐다. 지난해 12월에는 느닷없이 찾아온 박을 본 남편에게 「먼 친척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해대고 항상 박을 위해 준비해둔 10여만원을 박에게 주며 『다시는 오지 말아 달라』고 눈물어린 호소를 했으나 박이 모처럼 잡힌 돈줄을 쉽게 놓을리 없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에 김여인이 나오지 않을 때는 번번이 집으로 찾아와 큰 소리로 떠들며 행패를 부리고 돌아갔다. 김여인이 여러차례 박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4월6일 저녁 박은 칼을 품고 김여인 집을 찾아왔다. 마침 아이들은 건넌방에서 잠들었고 남편이 집에 오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있어야 했다. 안방에 제집처럼 나들며 칼을 꽂고 협박하기까지 마치 제집처럼 안방에 누워 김여인에게 소주 1병을 사오라고 해서 술을 마시며 박은 칼을 방바닥에 꽃아 놓고 협박을 시작했다. 『돈 20만원을 더 내놓든지 너의 행복을 포기하든지 둘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을러댔다. 김여인은 부탁을 들어줄테니 이제는 깨끗이 헤어져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박은 1주일 뒤에 다시 오겠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 4월14일 박이 찾아와 약속한 20만원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돈을 내놓지 않으면 네 남편을 만나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면서 술에 취해 안방에 드러 누웠다. 이 이상 더 참을 수 없다고 느낀 김여인은 밖으로 뛰어나가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고 떨리는 손으로 112「다이얼」을 돌렸다. 잠시뒤 달려온 백차에 실려 서울 서대문경찰서로 연행된 박은 피해진술조서를 쓰는 김여인을 바라보며 『차마 경찰에 신고할 줄 몰랐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우홍제(禹弘濟) 기자>[선데이서울 70년 4월 26일호 제3권 17호 통권 제 82호]
  • 꿈과 인생을 재혼에 걸고

    꿈과 인생을 재혼에 걸고

    떳떳하게 재혼하리라 나는 다시 한번 결혼할 작정이다. 나의 여성적인 부분은 비록 외과의에 의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일지언정 멀쩡하게 제 구실을 하도록 만들어졌고 그 구실때문에 나는 충분하게 만족한 마음을 만끽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 자신에게 있어서나 내 친구들에게 있어서 나는 한 사람의 여성이다. 판사가 뭐라고 하든 말든 나는 여성이라는 얘기다. 그 판결때문에 나는 꿈, 나의 미래를, 또 나의 평생을 수포로 돌릴 수야 없지 않겠는가. 만일 내가 지금 고려중인 재심(再審)에서 이기지 못하는 날에는 나를 여인으로 인정해 줄 것 같은 「프랑스」나 그밖에 다른 나라에 가볼까 한다. 사실 나는 외국에 가는 것은 질색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 영국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여성으로서 살아갈 수가 없다면 사랑하는 영국을 체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처럼 천신만고해서 얻은 나의 여성, 여인으로서의 신분, 인생, 기쁨을 어떻게 버릴 마음이 생길 것인가. 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양자로 얻어 시골에서 살았으면 한다. 요리솜씨엔 자신있어 나는 아마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이 어떤 방면에 흥미를 갖는지 어떤 점을 못마땅해 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꽤 알뜰한 주부가 될 자신도 있다. 바느질은 얼마 익숙하지 않지만 나는 요리라면 초일류인데다가 특히 「스페인」식 생선요리 솜씨는 일품이다. 열네명쯤의 「디너·파티」를 자주 열어온 솜씨다. 이런 「파티」때 나는 요리를 전부 맡아서 음식 칭찬을 듣곤 했다. 나의 장래 남편은 몹시 유별난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나와 결혼함으로써 그는 무척 여러가지 문제에 맞부딪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유별난 남성취향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이미 몇명의 남성과 정사(情事)를 가졌지만 그 한사람 한 사람이 다른 「타이프」였다. 단지 나에게 있어서 남성이란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느낌은 있다. 그러면서도 무척 「터프」해야만 할 것이다. 그는 비열한 욕을 먹고도 꾹 참을 줄 아는 남성이어야 할테니까. 다정다감한 이가 좋아 「섹스」의 정신적인 기쁨은 육체적인 면보다 훨씬 나에게 소중한 것이다. 참된 기쁨이란 몇달동안이나 서로 상대방의 욕구에 응하고 동조하곤 하면서 한 남성을 알고 난 다음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남성에 따라서는 이렇게 화합 할 수가 없는경우도 없지 않다. 그런 남자들은 너무나 둔감하고 게다가 자기중심이기까지 해서 만일 그런 남자와 결혼한다면 말할 수 없이 불행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세상 어디엔가 매력적인 남성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다정하고 「터프」하고 「센시티브」한 인품에, 남의 말에는 눈 하나 깜짝 않는 용감한 남성, 그러나 나는 나의 이상인 이 남성과 빨리 만나고 싶지 않다. 지금 같아서는 남성과의 교제조차도 성가실 지경이니까. 지금 상태로라면 나의 남성교제는 동성애가 돼버리니까 말이다. 정말이지 법률적인 입장이란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를 증명하기 위해 나는 어떤 바보짓이라도 해버리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 지금의 문제는 돈벌이 내가 교도소에 들어갈 만한 범행을 저지른다면 나는 남자감방에 수용될지, 여자쪽에 수용될지…. 나라에 따라서는 나를 완전한 여성으로 받아들이는 곳도 있다. 단지 영국의 법률만이 문제인 것 같다. 내 재심청구는 1년안에 받아 들여질 가망이 지금은 없다. 그동안 나는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되는 어려운 형편이 돼 있다. 새로운 사업을 하나 벌일 작정이다. 「데스몬드·모간」이라는 오래 된 친구와 「레스토랑」을 하나 차릴 작정이다. 그는 요리장이 되고 나는 지배인이 되는 것이다. 굉장히 재미있는 「레스토랑」을 만들어 보겠다. 가게 전체에 손님을 약 1백명 수용할 수 있도록 하고 「카운터」에 30명쯤이나 빙 둘러 앉아 술을 마실 수 있는 호화찬란한 「칵테일·코너」도 만들 작정이다. 그러면 나는 매일밤 성대한 「칵테일·파티」를 열고 있는 기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개점날이 여간 기다려 지지 않는다. 야심은 여자로 사는것 나는 전에 「레스토랑」을 경영한 일도 있고 TV에 출연한 일도 있고 해서 대중의 눈이 쏠려오는 것 같은데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나의 가장 큰 야심은 내가 여자답게 살고 그리고 한 사람의 여자임을 세상에 증명하는 것뿐이니까. 나와 만나서 얘기를 해 본 사람은 누구나 문제 없이 나를 여성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 준다. 그러니까 내 몸만 보여 주면 모두들 믿어주려니 싶어 지는 것이다. 언젠가 「피터·오툴」이랑 「오마·샤리프」와「나이트·클럽」에 앉아 있었는데 가까이 앉아 있던 두 사람의 친구들과 싸움이 붙었다. 보다 못해 내가 나서서 중재를 했더니 곧 화해가 되었다. 그걸 보고 있던 「오마·샤리프」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에이프릴」, 당신은 보통 여자일 뿐만이 아니고 정말 훌륭한 「레이디」야.』 나는 이 말이 무척 기뻤다. 그렇게 되는 것이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멋있고 우아한 「레이디」가 되고 싶다. 여자와 결혼해서 혹은 「호모」인 남자와 같이 살면서 괴상한 짓을 하면서 사는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조심하고 현명한 아내, 가정주부가 되고 싶은 것이다. <끝> [선데이서울 70년 4월 26일호 제3권 17호 통권 제 82호]
  • [딸자랑] 변호사 김봉일(金鳳逸)씨 외딸 명희(明姬)양

    [딸자랑] 변호사 김봉일(金鳳逸)씨 외딸 명희(明姬)양

    변호사 김봉일(金鳳逸·60)씨의 3남매중 막내이자 고명딸인 명희(明姬)양은 숙명여대(淑明女大)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25세의 「영·레이디」. 옷맵시며 사람을 대하는 「매너」가 여간 세련된 것이 아니다. 아빠는 이 따님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언제고 옆에 두고 보살펴주고 보살핌을 받고 싶지만 그럴 수만도 없는 것이 불만이란다. 『제가 판·검사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명희는 8,9차례나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어요. 사내 아이들은 한곳에 두고 다녔지만 명희만은 어느 부임지고 데리고 다녔읍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고 별 탈없이 공부도 잘해 주었고 말썽도 부리지 않아 엄마가 없어도 힘드는 줄 모르고 키운 아이입니다』 명희양이 어머니를 여읜 것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도 훨씬 전. 따라서 명희양은 오로지 아버지의 손에서만 자란 아버지만의 딸이란다. 그러나 명희양에게서 느껴지는 인상은 전혀 엄마 없이 자란 딸이라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게 밝기만 하다. 『요즈음에는 딸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입니다. 과음을 한 다음날 아침이면 얼큰한 해장국을 끓여내고 아버지 상에는 일절 누구도 손을 못대게 하고는 모든 반찬을 구미에 맞도록 직접 만들어 상에 올린답니다』 아버지 김봉일씨가 즐기는 따님의 솜씨는 만두국. 아버지는 어느 집에서고 따님이 만든 만두국보다 더 맛있는 것은 맛보지 못했다고 자랑이다. 또한 아빠의 옷차림새를 보살피는 것도 물론 명희양. 「넥타이」며 양말등 자질구레한 일용품으로부터 「수트」의 색깔선택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명희양의 취미 그대로라는 것. 『명희는 또 아이가 사람을 다룰줄 알아요. 주부가 없는 집이니까 식모를 두어야만 했는데 어떻게 조정을 잘 하는지 일단 집에 들어온 식모는 계속 적어도 4,5년 동안은 아무런 불평없이 잘 살아주더군요』 식모를 다루는 일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도 새로 시집온 큰 올케와도 사이좋게 지낸다고 아버지는 흐뭇해 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취직을 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별로 달갑지 않아 그만두도록 했읍니다. 엄마없이 키운 아이라 혹 주부수업에 부족된 점이라도 있을까 해서 여러가지를 배우도록 하고 있읍니다』 이런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따님은 지난해 가을 운전기술을 배워 이미 운전면허를 얻어 두었고 지금은 4개월째 양재를 배우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던 67년에는 3개월 「코스」로 된 요리학원의 전문부를 「마스터」한 바 있고. 명희양이 꽃꽂이를 시작한 지는 이미 3년여. 임화공(任華公)씨의 애제자로 4월16·17일 이틀동안 조선「호텔」「볼·룸」에서 열렸던 임화공씨의 꽃꽂이 동우회전(同友會展)에 출품한 것. 어쨌든 1급 신부감이 갖춰야 할 조건은 모두 갖춘 셈이 되는 아가씨다. 『귀중한 보석을 갈듯 열심히 꾸준히 딸아이가 가진 재질을 찾아내어 개발하도록 애썼읍니다. 그러나 아이가 내가 바라는대로 잘 따라 주고 또 성격도 명랑하고 쾌활해서 지금은 한결 마음이 놓이는군요』 아빠는 감개어린 눈으로 따님을 지그시 바라본다. [선데이서울 70년 4월 26일호 제3권 17호 통권 제 82호]
  • 아내를 20명까지에「너무하셔」

    아내를 20명까지에「너무하셔」

    한때「미니·스커트」와 가발, 나팔바지 그리고 화장같은 것은 퇴폐적이라 하여 대통령이 이를 엄금하는 특명까지 내려 여자대학생들이 항의, 초「미니」를 입는 시위까지 벌여 화제가 되었던「탄자니아」에 본격적인 여성 항의운동이 벌어졌다. 『한 남자는 한 여자만 거느려라!』-때늦은 느낌이 있지만 1부1처제를 들고나와 맹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 2중으로 되어있을 뿐아니라 1부다처제를 용납하고 있는 현행 혼인법을 고쳐야 한다는 아우성이 빗발치듯 일어나고 있다고. 현행법에 의하면「탄자니아」에서는 그의 부족관습과 종교관습, 재산이 용납하는데 따라 얼마든지 많은 여자를 아내로 맞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믿고 있는「모슬렘」교는 아내를 4명까지 가질수 있게 되어 있고, 기독교는 1명 그리고 기타부족 관습에 따라 20명까지도 용납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종교율이 사회관습에 이기지 못하고 있는 형편. 될수 있는대로 많은 부인을 거느려야 행세하는 것이 이 나라 풍습. 「메루」라는 한 추장은「가롤릭」신자인데도 얼마전 성당에서 15번째 결혼식을 올렸는데 신부님 당부는『나는 14명의 전 부인들을 버리라고는 말할 수 없소만 잠잘때는 한 부인하고만 자시오』라고 말했다고. 그래서 현실적으로 이혼법개정을 한다 하더라도 이 뿌리깊은 사회관습 때문에 쓸데 없을 것이라는 것이 당국자들이 변. [선데이서울 70년 4월 26일호 제3권 17호 통권 제 82호]
  • [프렌치 리포트] (9) ‘위대한 프랑스’에 대한 향수

    [프렌치 리포트] (9) ‘위대한 프랑스’에 대한 향수

    지난봄 제5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프랑스의 신문과 잡지는 미국의 여류감독 소피아 코폴라와 앙투아네트 역을 맡은 커스틴 던스트의 인터뷰 기사로 도배했고, 방송에서는 연일 이 영화의 주요 장면들을 보여주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비평가들로부터는 역사적 사실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해석했다는 혹평을 들었지만 프랑스 사회에 앙투아네트 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앙투아네트가 7세 때 입었다는 옷을 본뜬 의상을 판매하는가 하면, 유명 제과점에서는 앙투아네트 초콜릿을 선보였다. 한 레스토랑에서는 앙투아네트가 즐겨 먹었던 요리들을 중심으로 특별 메뉴를 내놓았다. 최근 프랑스의 향수전문가 프란시스 커크지앙은 정밀한 고증을 통해 앙투아네트가 사용했던 향수를 재현했다는 뉴스까지 들린다. 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지 20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인들이 이처럼 앙투아네트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태양왕’이 다스리던 그 시절이 그립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家)의 왕녀로 14세에 프랑스 부르봉가의 루이 16세와 결혼, 베르사유에 입궁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화려한 궁중생활을 즐기다 프랑스혁명 세력에 의해 남편과 함께 처형됐다.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 하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철이 없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요즘의 프랑스인들이 관심을 보이는 부분은 이런 부정적인 측면이 아니다. 프랑스의 장식예술 수준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그의 세련된 취향과 미적 감각을 높이 평가한다.“앙투아네트의 뛰어난 안목 없이는 궁전 구석구석을 그렇게 아름답게 꾸밀 수 없는 법”이라며 침이 마르게 칭찬한다. 앙투아네트를 치켜세우는 배경에는 그가 살았던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한 ‘태양왕’ 루이 14세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강한 자부심이 깔려 있다. 베르사유궁은 1682년부터 1789년 혁명 때까지 100여년간 왕권의 중심지이자 정치·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사냥터까지 갖춘 엄청난 규모의 숲과 아름다운 정원, 최고의 건축가가 지은 화려한 궁전은 “짐은 곧 국가”라고 한 루이 14세가 확립한 절대왕권의 상징이었다. 5세에 왕위에 오른 뒤 섭정을 포함해 무려 72년을 통치한 루이 14세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던 낭트칙령을 철회하는가 하면, 너무 많은 전쟁으로 재정위기를 초래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태양왕의 프랑스는 유럽 대륙의 최강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재무대신 콜베르는 사법과 재정을 개혁하고 상업과 무역을 적극 장려했다. 군사대신 루부아가 있었기에 적들이 감히 넘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해외진출도 확대됐다. 라살이 미국 대륙에 루이지애나를 건설한 것도 이 즈음이다. 프랑스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나폴레옹은 국민적 영웅” 융성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나폴레옹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코르시카의 가난한 귀족 출신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군사학교를 졸업한 뒤 반왕당파의 쿠데타를 성공시킨 공로로 장군이 된다.1796년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혁혁한 승리를 거둔 뒤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그는 공화정을 철폐하고 1804년 12월2일엔 노트르담 성당에서 대관식을 갖고 나폴레옹 1세로 등극했다. 2004년은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200년이 되는 해였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대관식 200주년을 기념해 자크 루이 다비드의 ‘대관식’ 그림과 관련한 각종 기록화를 전시하는 등 다양한 전시회와 토론회가 1년 내내 계속됐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과 영달을 위해 혁명정신을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지만 프랑스인들은 그가 프랑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점에 더욱 감동한다. 나폴레옹이 민중혁명 세력을 누르고 프랑스의 영광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의 검열과 사찰에 의존하는 극도의 권위주의 체제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신 프랑스의 행정체제를 개편해 중앙집권적인 현대 프랑스의 기틀을 다진 점을 높이 평가한다. 르피가로가 발행하는 피가로 매거진이 프랑스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9%는 나폴레옹이 ‘시대를 앞서가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을 알았던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정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독재자라고 평가한 사람은 39%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852∼1870년 재위)는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구가했으며 서부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에 식민지를 건설, 프랑스를 열강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도시 전체가 예술품이라고 불러도 좋을 현재의 파리도 이때 완성됐다. ●그리워라 옛날이여! 대혁명을 통해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진 나라가 프랑스다. 권위주의라면 온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자유를 중시하는 그들이 절대왕정 시대와 권위주의 시대의 인물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에 대해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프랑스인들이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향수)를 갖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이같은 프랑스인들의 과거 지향성은 사회적·경제적 악재들이 이어지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의 파리 교외지역 소요사태와 올봄 학생들의 시위 등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해지고 경제는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건만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한다.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그리워할밖에.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초상집 미망인에 키스

    초상집 미망인에 키스

    부산시 동구 좌천동 김(金)모씨(45)는 며칠전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가 죽자 그날 밤으로 초상집에 문상를 갔것다. 초상집에서는 으례 그렇듯 그날밤 김씨는 여럿이 어울려 화투를 치며 밤샘을 했는데 새벽녘이 되자 술이 취한 김씨는 엉뚱한 충동에 못이겨 미망인 박(朴)모여인(40)을 끌어 안고 연거푸「키스」를 퍼부었것다. 다른 때라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괘씸한 소행이거늘 하물며 상을 당한 친구의 부인에게 그런 못된 짓을 하다니- 분을 참지 못한 박여인이 김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서에 끌려온 김씨-『고인도 심정을 알아 줄거라』고 사뭇 애원의 표정이었다는데…『괘씸한 놈인 줄은 고인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경찰이 일침. [선데이서울 70년 4월 19일호 제3권 16호 통권 제 81호]
  • 보이·프렌드와 즐겁고 황홀하게

    보이·프렌드와 즐겁고 황홀하게

    사랑하는 행복감에 젖어 내 들은 모두 한결같이 나를 순수한 여인으로서 대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몇명의 「보이·프렌드」와 사랑을 나누면서 굉장히 즐거웠고 황홀경에 젖어 있었으며 호강에 넘치는 충만한 행복감을 맛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나의 가장 여성적인 부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의 행위를 갖고 내가 그것을 즐길 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해서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 몸이 그렇지 않다면 남성들쪽에서도 사랑의 기쁨은 사라져버릴 것이 아닌가. 수술을 한 것은 23살때였지만 내가 완전한 여성으로서 살아 갈 수 있게 된 것은 수술 후유증이 나은 뒤였다. 내가 태어났을때 내몸의 아주 작은 부분은 남성이었고 수술을 할 때까지 그 부분은 남성인채 있었으나 나라는 인간의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영혼은 당초부터 여성 내 몸의 훨씬 큰, 그리고 실로 뚜렷한 부분은 내가 여자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런 보이지도 않는 곳이 대단하게 생각되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같은 사람들은 남성의 육체라는 덫에 걸려 있는 여자라는 허명(虛名)으로 불려 왔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나의 몸이 남성의 육체와 닮았다는 것일까. 가슴이 커지기 시작한 18살때부터 내 몸의 99%가 여성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남성의 육체라는 덫에 걸려있다는 말인가. 분별있는 신앙심 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의 가장 소중한 것은 단하나 불멸의 영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고 진찰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마음 역시 육체와 마찬가지로 소중한 것임을 인정할 수가 없단 말인가. 만일 그것을 인정한다면 여성의 마음을 갖고 여성의 모습을 지닌 사람이 문제없이 여성임을 또한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지 않겠는가. 이혼은 너무나 큰 불행 나는 외과수술(外科手術)이나 약품의 산물(産物)이 아니다. 「호르몬」이 몸의 모습을 바꿀수는 없으며 마음의 모습을 바꿀수도 없다. 나는 이름을 「에이프릴·애슐리」라고 개명(改名)해 버렸다. 이제까지 영국의 「패스포트」는 성별을 명기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나는 여성의 신분으로 마음대로 여행을 할 수가 있었다. 나는 몇명의 남성들과 동거생활을 하는 경험을 치렀고 그런 뒤에는 아내로서 스스로의 능력을 불안스럽게 생각해 본 일이라곤 없었다. 그러나 불행에 휩쓸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예감은 늘 있었다. 「아더·코베트」씨와의 결혼식은 1963년 9월 10일 「지브롤터」에서 올렸다. 결혼생활은 겨우 2주간으로 끝났으므로 이 결혼은 결국 불행하게 막음을 한 셈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이 결과는 너무나 큰 불행이었다. 스스로 살아가고, 서야 할 땅이 어딘지 새삼스럽게 불안감이 솟는 것이었다. 7년 가까이 끈 재판이 얼마전에 영국 최고재판소에서 판결이 났을 때 이 결혼에는 종지부가 찍혔다. 그리고 이 일은 아마도 나의 일생에서도 가장 굴욕적인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줄곧 신경안정제를 먹어야만 했다. 재판에서 증언하는 사람들의 말을 잘 알아 듣기 위해서 약을 먹어야 했던 것이다. 남자라는 판결 받았으나 그리고 판사는 내가 남자라고 판결을 내렸다. 나는 이제 여자이면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독의 생활을 선고받은 셈이지만 나는 그것을 단연 거부하겠다. 진짜 고독이란 어떤 것인지를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고독한 생활을 나의 미래로서 받아 들일 생각은 손톱끝 만큼도 없다. 그것은 자연과 법과의 충돌이다. 자연은 항상 나로 하여금 여성일 것을 의도해왔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판사의 판결에 불복이다. 곧 재심제구(再審諸求)를 할 작정이다.이 판결이 나의 자연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대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마음속 깊이 소망하고 있던 단 한가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속 깊이 소망하고 있던 것-그것은 남편이었고, 아이(비록 양자일지라도)가 있는 가정이었고, 행복이었다. 판결속의 무서운 의미 영국의 법률은 내가 자신의 인생을 타인과 함께 즐기는 것을 금했고,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을 나에게 금했고, 그리고 여느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서 나를 떼버리려 하는 것이다. 그 판결에는 그런 무서운 의미가 있는 것이다. 10대에서 나는 그런 인생의 고독을 맛보았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여성이면서 딱 한군데만이 남성이었던 그 시절 얘기다. 나는 너무나 여성처럼 보였기 때문에 남자화장실에도 들어 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특별한 곳이 남성이었기 때문에 당당한 계집애로서 살 수도 없었다. 나는 남자와도 여자와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하는 수가 없었다. 나는 남녀를 막론하고 동성애(同性愛) 주의자들에게 쫓기는 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서운 옛날 이야기. 수술한 뒤로는 많은 정상적인 남녀가 서로 사랑하듯 껴안고 춤추고, 그리고 같은 방에서 살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첫번 결혼에 실패했다고 해서 다시 결혼할 수 없다는 결론은 너무 가혹하다고 밖에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계속> [선데이서울 70년 4월 19일호 제3권 16호 통권 제 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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