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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울어~ 교장(校長)과 여학생(女學生)과 교사(敎師)와

    누가 울어~ 교장(校長)과 여학생(女學生)과 교사(敎師)와

    학교에서 파면당한 여선생이 파면에 불복 소송, 급기야는 대법원에까지 올라가게 되어 화제가 되더니 똑같은 학교에서 파면당한 또 한분의 여교사도 소송을 제기 - 패소와 승소로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파면조치뒤엔 교장선생과 제자의 「스캔들」이 있다는게 이 여선생님들의 주장. 파면불복 승소한 두선생 “교장이 스캔들 숨기려고” 68년 11월 26일. 서울D여고 교장 이운하(李雲夏)씨(67·가명)는 국어담당여교사 강(姜)모씨(45)를 「파면」 했다. 강교사는 이에 불복, 69년 초 서울지법에 「면직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과 「면직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어 승소했다. 이교장은 『파면됐으면 순순히 물러나야 할게 아니냐』는 생각으로 즉시 불복항소했지만 역시 패소, 대법원에 까지 밀고 올라갔다. 70년 대법원은 이를 다시 고법에 환송, 지금껏 계류중에 있고 강교사는 학교에 계속 나오고 있으나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강교사가 파면당한 이유는 68년 2월에서 3월 사이 여러차례 벌어진 학생들의 「데모」사건에 개입,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것. 또 화학교사인 13년 장기근속자 손(孫)모여교사(40)가 68년 6월 초순께 파면당했다. 이유는 출근도 하지않고 도장을 사환에게 맡겨 출근부에 찍게 했으며, K대학 부도사건에 관련, 스승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는 것. 그러나 손교사는 한 시간도 빠뜨린 일이 없고, 징계위원회도 소집한 일 없이 즉흥적으로 파면처분한 것이라 주장, 69년 5월 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70년 2월 1심에서 패소한 손씨는 2월 14일 고법에 항소, 70년 12월 18일 승소판결을 받았다. 『저나 강선생 뿐만이 아니고 많은 선생들이 뚜렷한 이유없이 파면당했읍니다. 현재 C국민학교에 간 서(徐)모교사, S여고에 간 박(朴)모교사, 서무실 근무의 백(白)모·정(鄭)모선생, 고등학교 한(韓)모교감이 모두 그만 두었어요』 손교사는 이렇게 많은 인원의 교사들이 전원 타의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은 바로 모종의 「스캔들」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문제의 「스캔들」사건은 지난해 연말 12월 24일께 표면화 되기 시작했다. D여고 이운하 교장의 양조카이며 동계여중의 교장인 이천승(李天昇)씨(가명·48)와 제자간에 얽힌 소문. 『70년12월24일 상오에 전화가 왔었어요. 이천승씨 부인인데 돈을 줄테니 만나자는 거예요. 그래서 동생들이 멋모르고 나갔는데, 종로(鍾路)서의 이(李)모형사가 「좀 갑시다」해서 끌려 갔대요. 3일동안이나 경찰서 보호실에 있었어요. 죄목은 「공갈협박죄」라는데 이상한건 잡아넣었으면 법원에 넘길 일이지 3일만에 되돌려 보낸건 뭐죠?』 학생때 몸버렸다는 제자 교장부인은 공갈로 고소 이 「스캔들」사건의 당사자인 양(梁)모여인(27·미혼)언니가 전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양모여인 언니의 주장과는 달리 경찰조서에서 나타난 사실은 사뭇 의외다. 즉 70년12월24일 종로서 형사과는 이교장부인의 고발로 양여인과 그 오빠를「공갈및공갈미수」혐의로 입건하고 검찰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조서에 따르면 양여인과 그 오빠는 지난 8년간 모두 1백만원의 돈을 이교장으로부터 받아 썼으며 다시 이교장과의 관계를 청산한다는 조건으로 2백만원을 요구했다. 이교장쪽과 상의한 결과 이 금액은 1백만원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이교장쪽이 미처 1백만원의 돈을 만들지 못하고 50만원만 준비, 그러자 양여인쪽은 1백만원을 채워줄 것을 요구하고 50만원마저 받지않아 공갈미수의 혐의를 받게된 것. 한편 검찰에 청구한 구속영장은 ①사건원인발생기간이 너무 오래 경과되었고(62년부터) ②양여인이 처녀의 몸이란 이유로 기각, 이 사건은 불구속입건된채 현재 종로서에서 수사를 계속중. 양여인은 이천승 교장과의 간통사실에 대해서 「사실증명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 「사실증명서」는 잇따른 교사파면 사건과 이교장의 추문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동교출신 동창생들이 모여 양여인과 직접 면담, 본인의 자필로 된 고백서를 받아둔 것이라함. 날짜는 미상, 양여인의 지장이 찍혀있다) 『저는 학생시절에 방송실에서 선생님한테 처녀성을 뺏겼읍니다. 야간수업이 끝날 무렵 교실에서도 또 교장실에서도 또 강당에서도 그리고 D동 목욕탕에서도 그랬고 중국집 M마루에 가서도 여러번 그랬읍니다. 학생시절에 제가 뭘 압니까? 저는 제몸이 이렇게 됐으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달라고 그랬읍니다. 이천승이라는 분이 나를 괴롭힌 그 죄를 어떻게 씻을 수가 있겠읍니까』 “당했다” “당하지 않았다” 는 자백서 두가지 당시 양여인은 고교 3년생으로 방송반에 있었다. 62년 전방위문을 가면서 양여인과 당시 교감이던 이씨의 관계는 막을 열었던 것으로 돼있다. 학교를 졸업한 양여인은 생활수단으로 이교장으로 부터 돈을 얻어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치사하지만 돈받은 액수를 생각나는대로 기입하겠읍니다. 4월4일(연도는 명시하지 않음) 8만원, 자기집 방에서 부인으로부터 5만원, 2만원은 5월께에 주고, 나머지 3만원은 결혼청첩장을 보고 확인을 한 다음에 준다고하여 청첩장(주(註)=가짜로 찍은 것으로 추측됨)에는 언니의 지장을 받고 3만원을 주었읍니다』 이 사건의 가장 걸작은 이천승교장쪽에 추행당하지 않았다는 양여인의 자백서와 녹음 「테이프」가 있다는 것이다. 『부인이 나한테 전화로 자기집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이씨가 나를 강간하지 않았다고 쓰라고 해서 서면으로 썼읍니다. 그것을 교장선생님한테 갖다 드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양여인이 두사람의 관계를 부인하는 녹음이 교장실에 비치되어 있다는 것. 녹음할 당시 이씨쪽으로부터 20만원을 받았다는 양여인쪽의 주장이다. 한편 문제의 녹음 「테이프」에 관해 본인인 이교장의 해명을 요구했으나 연3일간에 걸친 면담요구에 이교장은 무슨 까닭인지 계속 회피했으며 녹음 「테이프」의 제시도 거절했다. 이씨를 대신해 기자와 만난 동교서무실장은 녹음 「테이프」의 유무(有無)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으며 제시요구에 『이교장과 직접 만나보라』며 회피. 작년 12월 24일, 양여인과 그의 오빠가 갑작스럽게 종로서에 구속된 것은 바로 이러한 8년에 걸친 거래관계가 깔려 있었던 것. 양여인쪽의 「금전요구」와 때로는 『악착같이 교장선생님과 살아 보겠다』는 끈덕진 압력에 못이겨 이씨의 부인이 「공갈협박」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치사한 「사제지간」의 소문은 양여인이 학교를 찾아 갈 때마다 더욱 번져갔다. 서모교사는 양여인의 고백을 들었고 박모선생 역시 같은 「케이스」. 서무실 근무자들은 울며불며 포악하는 양여인을 달래다가 소문의 내막을 알게 됐던 것. 이러한 소문은 자꾸 퍼지는 법. 교장쪽의 입장도 짐작할만하다. 한편 양여인쪽은 혼인을 빙자한 간음죄로 곧 이씨를 사직당국에 고발할 예정. 교장선생쪽은 「공갈협박」혐의로 이에 맞설것이 예상되어 어떻게 시시비비가 가려 질지는 모르지만 만일 파면당한 여선생의 주장처럼 교장선생의 비행을 감추기 위해 무고한 교사들을 파면했다면 결코 감추어 두거나 덮어두어야 할 일은 아니다. <식(植)> [선데이서울 71년 1월17일호 제4권 2호 통권 제 119호]
  • 「미스·국회」 김성자(金星子)양 - 5분데이트(116)

    「미스·국회」 김성자(金星子)양 - 5분데이트(116)

    「미스·국회」김성자양은 올해 19세의 앳되고 귀여운 아가씨. 국회 도서관 입법조사국장 비서로 근무한지 아직 두달밖에 안되는 직장생활의 햇병아리다. 70년 봄에 충북 영동여고를 졸업하고 곧장 서울로 올라온 그녀는 그동안 기거하던 언니집에서 나와 요즘은 혼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168㎝의 늘씬한 키에 아직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순진하고 천진스러운 얼굴. 『5분「데이트」를 3분 정도로 빨리 끝낼 수 없을까요. 늦으면 국장님한테 야단 맞아요』 애교있는 안달이다. 요즘은 직장생활에 재미를 붙여 세월가는 것도 잊고 열심히 일하고 있단다. 『사회에 처음 나왔을 때는 어떻게 일을 해내야 할지 몰라 아주 고민이었어요. 처음엔 회의도 하고 절망도 했었죠. 그런데 점점 요령을 터득하게되고 또 국장님이 원채 저에게 친절히 해주시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조용히 타일러 주시곤 하니까 다시 의욕이 생겼어요. 직장생활의 성공은 곧 내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직장에 충실해야 되겠다고 다짐하죠』 나이보다는 어른스러운 말을 한다. 성자양에게는 하루에도 평균 5통의 「데이트」신청 전화가 걸려 온단다. 그러나 이중 90%는 거절. 이상적인 신랑감은 첫째 능력이 있는 사람, 둘째는 키 큰 사람이라고. 『경제력이나 사회활동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능력이 있어야 안심하고 한평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워낙 키가 크니까 상대방은 적어도 저보다는 키큰 남자여야 되지 않겠어요』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옛날 사진첩을 꺼내놓고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과 동생들 생각에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단다. <란(蘭)> [선데이서울 71년 1월17일호 제4권 2호 통권 제 119호]
  • 남정임 결혼 누가 덕보나

    남정임 결혼 누가 덕보나

    11일 11시, 「스타」남정임(南貞妊)양(26)과 재일교포 임방광(林芳光)씨(29)의 결혼식이 서울 세종「호텔」에서 거행되었다. 결혼과 함께 5년간의 배우생활도 매듭지을 뜻을 발표한 남정임은 이로써 만인의 연인의 자리에서 한사람의 아내 위치로 전향하게 되었다. 은퇴기념작 『첫정(情)』의 촬영이 끝나는 3월말이면 너무도 유명한 이름 남정임은 완전히 「스타」이전의 이민자(李敏子·본명)로 환원하게 된다. 남정임이 영화계를 떠나면 좋든 궂든 한국영화의 여우판도는 수정을 가하게 된다. 남정임·문희(文姬)·윤정희(尹靜姬), 누가 이들중 더 인기가 있느냐를 따질 수 없게 팽팽한 대결을 보여준 수년 동안 한국영화는 한마디로 이들이 끄는 「트로이카」에 의해 지배되었다. 65연도 신정 「프로」로 30만 관객을 끈 『유정(有情)』(김수용(金洙容)감독)은 제작사 연방(聯邦) 영화사를 돈방석위에 올려놓았고 「히로인」남정임을 일거에 「톱·스타」로 만들어 놓았다. 50만원 현상 「개런티」의 신인모집이 성공한 첫 「케이스」였다. 그뒤로 제작자들의 신인 공개 「콘테스트」가 하나의 유행처럼 성행했지만 이만한 정도의 성공은 전무한 상태. 그때 남정임은 한양(漢陽)대 영화과 1년생이었다. 눈자위와 입술이 유달리 도톰했던 이 소녀에게 배우 될 것을 권유했고 결과적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든게 한양대교수 겸 감독 현상열(玄相悅)씨. (고 현제명(玄濟明)씨의 아들) 그로부터 5년만인 지난 1월2일, 남정임은 자기를 영화배우로 권유한 그 현상열씨의 사회로 「결혼·영화계은퇴」의 발표회를 가졌다. 전례없이 전격적인 이 결혼발표는 영화계에 적지않은 「쇼크」를 주었다. 결혼할 것이란 소문이 전혀 없던건 아니지만 장본인쪽이 끝내 이를 완강히 부인해왔고 남정임의 여건이 좀더 배우생활을 할것이란 객관적 견해가 송두리째 뒤집힌 것이다. 지난 12월 31일 하오2시 서울 수유리의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양가쪽 가족만 모여 이미 약혼식을 올렸다는 사실도 1월2일에야 밝혀졌다. 전격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장본인들의 결혼, 영화계은퇴 「스케줄」자체가 급「커브」를 돈 까닭이다. 도대체 두사람이 첫대면을 한 것이 6개월전, 70년 6월중순 일본에서였다 한다. 「자카르타」영화제에 참석했던 남정임은 귀로에 일본에 들러 임씨와 2일간의 「데이트」시간을 가졌었다. 신랑 임방광씨가 9월에 잠시 한국을 다녀갔고, 그뒤 10월엔 남양의 어머니 김순희(金順姬)씨가 딸을 데리고 약 10일간 일본에 다녀온게 이들 교제의 전부. 혼인을 전제한 교제였다 하더라도 「풀·스피드」의 결혼작전이었다. 영화계를 떠나는 이유는 신랑쪽의 요구에 의한 것 같다. 신랑쪽은 처음엔 영화배우인줄 몰랐었다. 영화배우인 것을 알게되자 앞으로 촬영할 영화의 출연료 받은 것을 모두 돌려줄테니 그만두라고 했다. 계약한 것만 출연하고 다시는 영화에 나가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써주었다-. 이것이 남정임쪽의 설명. 신랑은 「도쿄」에서 자산 5백억(남양 어머니 말에 의하면)의 재벌인 동흥흥업(東興興業)사장(임원오(林源五)씨·56)의 5남1녀중 둘째. 약혼선물로 5「캐러트」「다이어」반지, 비취「브로치」등 값진 물건을 주었고, 남정임의 은퇴기념작품의 제작비(약 2천만원)를 선사했다는 얘기다. 「오나시스」란 즉흥적인 별명이 붙었지만 어쨌든 『돈 많고 장래성 있고 건강한 청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게 남양 측의 「스피디」한 결혼작전의 이유인 것 같다. 어쨌든 남정임은 결혼과 함께 「스크린」에서 떠날 뜻을 분명히 했다. 『한국에 있으면 또 영화하고 싶어질까 걱정이 돼요. 외국으로 떠나는건 이런점에서 다행이에요. 앞으로는 사업가의 아내로서 성실할 결심이에요』라고. 당초 배우생활은 5년쯤 한다는 생각이 결과적으로 이행됐다고도 덧붙였다. 이 기한부 배우생활은 남정임뿐 아니라 윤정희도 마찬가지로 선언한바 있다. 67년에 「데뷔」한 윤정희는 몇번인가 『3년만 하겠다』고 언명한 일이 있다. 3년 기한부는 이행되지 않아서 이미 1년이 초과되었다. 남정희의 결혼이 전격적으로 이행된 이제 영화계 뒷면에서는 『윤정희도 71연도에는 영화계를 떠난다』는 소문이 그럴싸하게 퍼져있다. 평소의 발언이 그랬던 것을 상기하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물론 장본인쪽에서는 현재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절정의 인기에 있을때 「스크린」을 떠난다는 것은 「스타」가 마지막으로 꿈꾸는 염원인 것 같다. 자신의 영상을 관객속에 영원히 깨끗한 것으로 심어놓고 싶다는 속셈이다. 배우생활을 하면서 대학(우석대(友石大)을 나오고 대학원(중앙대(中央大))진학까지 한 윤정희에게는 이런 것이 모두 은퇴이후의 준비와 유관하다는 관측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무너진 「톱·스타·트리오」의 여우판도에는 문희 혼자만이 남게 된다. 주목되는 것은 남정임이 떠난 자리를 그 누가 메우게 되느냐는 점이다. 윤정희마저 추측처럼 71연도에 역시 「스크린」을 등진다면 한동안 풍성했던 한국영화의 여우판도가 근본적으로 뒤흔들리기 마련이다. 여기서 신인들의 「톱」을 향한 대결이 필연적으로 예상된다. 새로 등장할 신인과 「톱·트리오」에 가려서 빛을 못받은 신인들이 이 기회를 노려 정상에의 몸부림을 펼게 분명하다. 그 후보 여배우들을 꼽아보면 전혀 무망한 것도 아니다. 『필녀(必女)』에서 호평을 받은 김윤정(金倫廷), 『비전(秘殿』에서 화제가 된 윤연경(尹姸景),『숨겨논 여자』의 오유경(吳有卿), 세기(世紀)상사가 뽑은 고상미(高想美), 오수미(吳樹美) 요즘 『여고생의 첫사랑』에 출연중인 김순복(金順福), 그리고 TV겸업의 김창숙(金昌淑)이 이 범주에 속할 것 같다. 이렇게 보면 남정임이 떠나는 71년 한국영화는 그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많은 신인들의 경쟁장이 되어 한층 푸짐한 화제를 만들 것 같기도 하다. <관(觀)> [선데이서울 71년 1월17일호 제4권 2호 통권 제 119호]
  • 중동정세 혼미 가속

    중동정세가 심상치 않다. 이라크 반군 공세에 시달리던 영국군이 최종 철수 움직임을 보이며 이라크 정세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미국이 이란의 1200개 목표물에 대규모 공습작전을 강구중 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이란 핵문제도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바스라 시내 바스라궁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 550명이 2일 철수를 시작했다. 반군들의 박격포 및 로켓 공격에 시달리다 철수를 시작, 3일 철수를 마쳤다. 수일내로 치안 임무를 이라크 보안군에 이양한다. 바스라궁에 주둔하던 영국군 550명은 당분간 약 11㎞떨어져 있는 공군기지로 이동한다. 외신들은 550명은 10월까지 완전히 이라크를 떠나고, 그 나머지 병력들도 결국 이라크를 철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내에서는 이라크 철군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AP통신은 바스라에서 영국군이 철수할 경우 석유자원이 위험에 처하고, 쿠웨이트에서 바그다드로 가는 보급로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국방부는 핵 개발 문제로 국제사회와 날을 세운 이란의 군사력을 사흘 안으로 무력화시키기 위한 대규모 공습작전 계획을 강구하고 있다고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가 2일 보도했다. 이란 핵시설에 제한된 공격이 아니라 전체 군사력을 괴멸시켜버릴 공격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닉슨센터의 알렉시스 디베이트는 신문에 미국이 이란의 1200여개 목표물을 타격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문에 “한정적인 공격을 하든, 전면적인 군사작전을 전개하든 이란측의 반응은 똑같을 것”이라면서 “대규모 공습이 대단히 적절한 전략적 방안”이라고 지적했다.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 피임율 100% 새 무기(武器) 등장

    피임율 100% 새 무기(武器) 등장

    먹는 피임약의 유해론으로 한때 세상이 떠들썩하자 많은 여성들은 피임약의 복용을 중단하고 자궁내 장치 이른바 IUD로 피임방법을 바꾸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는 종전의 IUD가 가진 결점을 제거한, 부작용도 없고 피임효과도 높은 새로운 피임방법을 고안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궁내 삽입 기구로 모양은 T자와 방패 이 새로운 방법도 결국은 자궁내 장치의 일종인데 다만 지금까지「플라스틱」이나「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IUD에다 구리를 첨가했다는 점. 그리고 IUD의「디자인」을 T자(字) 모양과 방패 모양으로 바꾸었다는 것이 개선의「포인트」. 미국에서는 2백만명이상의 부인들이 IUD를 착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IUD때문에 고통을 당해 온 부인의 수도 적지 않다. 자궁속에 장치해 놓은 IUD가 빠져 달아나는가하면 경련증 과잉 월경출혈 또는 드문 예이지만 자궁벽에 구멍이 뚫리는등 여러가지 부작용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 장치가 자궁벽속에 깊숙이 파고 들어 제거하기 어렵게 되는 수도 있다. 암이나 혈액 응고 등 부작용 없어 대인기 그런 반면 IUD가 가진 장점은 우선 한번 삽입해 두면 오랜 기간 동안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임신을 막아준다는 점, 그리고 먹는 피임약과 같이 암이나 혈액응고같은 무서운 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거기다가 최근에 고안해낸 새로운 IUD는 먹는 피임약에 손색없는 높은 피임율에다 종전에 나타났던 부작용이 없으므로 많은 부인들에게 대환영을 받고 있다. 지난 12년동안 30가지의 제 가끔 다른 형태의 IUD가 고안되었지만 최근 구리를 곁들여 IUD를 만든 것은 확실히 획기적인 발전. 왜냐하면 구리 그 자체가 이미 강력한 반(反)수태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T자 모양은 우선 다른 IUD 보다 작아서 삽입하거나 제거하기 간편한 것이 장점. 자궁 벽의 팽창 막고 빠질 염려 거의 없어 거기다가 모양도 자궁의 형태를 따라 만들어졌으므로 자궁벽의 팽창이 거의 없다. 불규칙적인 출혈 같은 부작용도 없고 빠져 달아나는 비율도 지극히 낮은 편. 이 T자 모양의 IUD에다가 구리「코일」을 감아서 사용한 결과『극적이고도 지극히 의미심장한 임신율의 저하』를 기록했다고 미국인구협회 생리의학실 책임자「하우워드·태텀」박사는 말하고 있다. 새로운 방패모양의「디자인」도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고 피임효과도 만족할 만한 상태. 자궁벽에 접촉되는 부분이 크면 클수록 피임율도 높은데 이 방패모양의 IUD는 한가운데에 막이 있어서 표면의 면적을 최대한으로 넓혀주고 있다.『여기에다 구리를 첨가했더니 피임효과는 1백%였다』고「존스·홉킨스」의과대학 산부인과 교수「휴·데이비스」박사는 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리가 효소의 작용을 방해해서 효소로 하여금 정자(精子)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또는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선데이서울 71년 1월17일호 제4권 2호 통권 제 119호]
  • 경찰 신세 지게된 처녀막 증명

    전남 함평(咸平)경찰은 이중배(李重培)씨(41·목포(木浦)시 상락동)와 최석규(崔錫圭)씨(39·목포시 축후동)를 허위진단서 작성혐의로 입건 조사중-. 69년 8월, 함평군 H중 서무과서 남모씨(50)와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박(朴)모양(22)이 부정한 관계를 맺었다가 들통, 학교로부터 파면당했는데…. 박양은 절대로 그런일이 없다고 잡아 떼면서 그 증거로 진단서를 제출,『처녀막에 이상없음』이라는「처녀건재」를 주장했다. 바로 이 문제의 진단서를 발부한 의사가 이·최 양씨. 경찰은 의심쩍었던지 광산(光山)군 송정읍의 S의원에 박양을 감정(?)시킨 결과 약2mm정도의 처녀막이 파열되었다는 진단을 받아내게 됐던 것. -어지간히 말도 많은 처녀막이군. <함평> [선데이서울 71년 1월17일호 제4권 2호 통권 제 119호]
  • ‘브로드웨이의 황제’의 삶 무대 올리는 송한샘 쇼팩대표

    ‘브로드웨이의 황제’의 삶 무대 올리는 송한샘 쇼팩대표

    10살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평생 뮤지컬에 몸을 바친 브로드웨이의 황제 조지 엠 코핸(1878∼1942).51개의 뮤지컬,500개의 싱글 넘버를 작곡하고 노래 사이를 대사로 잇는 현재 뮤지컬의 포맷을 구축한 그는 지금도 동상으로 남아 브로드웨이를 지키고 있다. 그의 이야기 ‘조지 엠 코핸 투나잇’이 9월7일 동양아트홀에서 개막한다. 지난해 3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을 보고 다음날 바로 계약했다는 쇼팩의 송한샘(33) 대표를 만나 작품 얘기를 들어봤다.‘헤드윅’‘벽을 뚫는 남자’ 등을 성공시키고 지난해 공연기획사 쇼팩을 차린 송 대표.270석 규모의 동양아트홀도 운영하는 그가 첫 작품으로 ‘조지 엠 코핸 투나잇’을 선택한 이유는 행복 뒤의 쓸쓸한 뒷맛, 앞만 보고 내달리는 인생의 발걸음을 늦추라는 메시지 때문이다. “배우라면 맘 먹으면 얼마든지 커튼콜을 할 수 있는 존재 아닌가요?그런 그가 죽는 순간 커튼콜은 없다고 말합니다. 한 시간동안 단 한 번의 퇴장도 없이 관객을 웃기며 잘난 척하던 그가 사라진 빈 무대를 페이소스와 슬픔이 꽉 채우죠.” ‘조지 엠 코핸 투나잇’은 뮤지컬 팬들에게 솔깃한 작품이다. 브로드웨이가 형성되고 뮤지컬이 틀을 잡아가는 20세기 초 뮤지컬 장인의 이야기이기 때문. 임춘길, 고영빈, 민영기 세 배우가 코핸이 되어 원맨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인다.100분간 A4용지로 60장을 가득 메우는 대사와 30곡의 노래, 현란한 탭을 소화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배우 한 명이 극을 이끌어가는 모노 뮤지컬이 국내 관객에게 낯설지는 않을까.“모노 뮤지컬은 호감 있는 배우를 90분간 해바라기로 바라보며 즐기고 배우가 긴장과 이완을 조절할 수 있어서 리드미컬합니다. 기본적인 연출 동선만 받아 배우가 다시 요리하는 거죠.”기존 작품들은 초 단위로 약속할 정도로 꽉 짜여져 있지만 ‘조지 엠 코핸 투나잇’은 배우가 마음껏 쥐락펴락한다. 연출은 ‘헤드윅’의 이지나씨가 맡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10월 개막하는 여성들의 모노 뮤지컬 ‘텔미온어선데이’도 그가 지휘한다.“이지나 연출은 자타가 공인하는 모노뮤지컬의 1인자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진행으로 속도감 있게 몰아부치죠.” 쇼팩의 차기작은 내년 3월 개막할 ‘이블데드’. 코믹 호러의 고전, 이블데드 1·2편을 합친 작품이다.“좀비들이 나오고 피가 난무해요.3번째 줄까지는 피 맞으러 오는 관객이죠.” 내년 하반기에는 핀란드의 유명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기발한 자살여행’을 임도완·이수연의 공동 극작으로 재구성한다. 한국, 북한, 장가계를 이어 통일된 미래의 한 시점을 배경으로 삶의 소중함을 보여줄 생각이다.“뮤지컬 판권도 사들였는데 라이선스로 다시 파는 게 목표예요. 요즘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논버벌이 해외로 많이 진출하는데 우리 뮤지컬도 영화처럼 되팔고 우리의 언어로 무대화하는 게 꿈입니다.” 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김희달(金喜達)박사의 성문제 상담실]단한번의 성행위로 임신이 가능한가요

    <물음> 저는 16세되는 여고 1년생입니다. 약 1달전 어떤 일요일에 저의 남자친구와 등산을 갔다가 어떻게 잘못돼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말았읍니다. 그런데 저는 그 단 한번의 실수로 임신이 되어버렸읍니다.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 여러번의 성교로도 임신이 되지 않는다 하는데 정말 한번의 성교로도 임신이 가능한지요? <해답> 배란이 불규칙한때 부질없는 일 삼가야 성이란 부질없는 향락만을 추구하는 장난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성스럽고 숭고한 것이고 사랑을 승화시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춘기의 남녀가 철없이 부질없이 하여서는 안됩니다. 「임신의 성립」 은 성숙한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 있으면 자동적으로 따르기 마련인데 임신이 성립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구비되어야 합니다. (1) 여성의 성기가 성숙하여 난소에서 건전한 난자를 배출할 수 있어야 하며 (2) 남성의 성기 고환에서 건강한 정자가 생산되어서 정액을 사정할수 있어야 하며 (3) 여성의 배란기에 정자가 자궁경관을 통과하여 결합하는데 수정된 난자가 자궁내막에 무사히 착상하여 정상적인 발육을 하는 상태를 임신이라 합니다. 난자의 생존능력은 대단히 짧아서 배란후 5~6시간부터 보통 하루(24시간) 정도 밖에 생존 능력이 없고 보통 배란일은 「오기노」씨 학설에 의하면 월경 주기와 관계없이 다음 12~16일 사이의 5일간에 배란하므로 수태기는 다음 월경전 12~19일 까지의 8일간이 됩니다. 또 남성측의 정액은 한번 사정된 정자는 사정후 약 1시간후가 활동력이 가장 좋지만 여성의 성기속에서도 보통 3일간은 수정 능력이 있어 이 시기에 배란되면 곧 수정되어 임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교의 횟수가 문제가 될 수 없고 배란기에 일치하면 임신이 성립하게 됩니다. 또 위에서 말한 것같이 성숙한 여성에 있어서는 배란일이 일정하나 사춘기 소녀때는 배란일이 불규칙하므로 절대로 부질없는 행동은 삼가야만 합니다. 김희달 박사 [선데이서울 71년 신년특대호 제4권 1호 통권 제 118호]
  • 「미스·중앙대」이효춘(李孝春)양 - 5분데이트(115)

    「미스·중앙대」이효춘(李孝春)양 - 5분데이트(115)

    중앙대 연극영화과 3학년생인 이효춘양은 가냘픈 인상의 아가씨. 『여학교때부터 연극을 좋아해서 대학도 연극영화과를 택했어요』침착하고 조용하면서도 애교 넘치는 목소리가 사뭇 매혹적이다. 극단 「탈」의 「멤버」로 있었던 효춘양은 69년 겨울 서울 YMCA 강당에서 가졌던 『안네의 일기』공연에서 「안네」역을 맡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70년부터는 TV 「탤런트」로 출발, 요즘 TV「드라머」에 출연하고 있단다. 『거의 다 보잘 것 없는 단역들이에요. 「탤런트」가 되었다고 해서 금방 「스타」가 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죠』 아버지 이대노(李大老)씨(51)는 현재 광주에 있는 전남여고 교장선생님. 2남5녀의 7남매중 셋째. 광주여고에 다닐 때부터 한국 고전 무용과 「발레」를 좋아했고 요즘은 「팝·송」듣는 시간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란다. 좋아하는 가수는 『비정의 사나이』를 부른 「잉글버트·험퍼딩크」. [선데이서울 71년 신년특대호 제4권 1호 통권 제 118호]
  • 뉴요크 한복판서 백만장자(百萬長者)의 꿈을

    뉴요크 한복판서 백만장자(百萬長者)의 꿈을

    <뉴요크=김경식(金景植)특파원> 말이 쉬워 1천2백만「달러」지 돈 많은 나라 미국에서도 이 정도의 매상이면 백만장자축에 낀다. 이런 미국에서 10년전 단돈 50「달러」를 가지고 건너온 한 한국청년이 이 기적을 이루어 놓았다. 바로 가발 수출업체인 다나무역의 안인모(安仁模)사장(37). 흑발 전문의 가발업자로 이미 미국선 널리 알려져 「뉴요크」시 한복판 「웨스트」32번가. 밀림처럼 들어선 「빌딩」가 한복판에 자리 잡고 앉은 다나무역 「뉴요크」사무소는 흑발(黑髮) 전문의 가발수출업자로 이미 미국안에선 널리 이름나 있다. 「웨스트」32번가 하면 미국 가발시장의 핵심. 미국안에서 소비되는 가발의 50%가 한국산이니 32번가 한복판에 안사장의 사무실이 들어앉았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서 흔히 자수성가라고 일컫는 재력(財力)에의 욕망을 미국선 「밀리어네어」(백만장자)의 꿈으로 부른다. 재력이 그 사회서 차지하는 비중이 유독 큰 미국인지라 백만장자가 되려는 꿈은 청년이면 누구나 한두번쯤 품어보는 꿈. 숱한 세계의 젊은이들이 백만장자의 꿈을 안고 「뉴요크」를 찾아오지만 정작 이 자수성가의 꿈을 이룩한 사람은 미국 전인구의 0.5%도 채 못된다. 더우기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에겐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고작해야 백인의 그늘에서 먹고 살만한 처지가 되면 다행이다. 이런 하늘의 별따기를 안사장은 투지와 「아이디어」로 이루어 놓았다. 안사장이 「뉴요크」에 꿈을 둔 것은 10년전인 1960년. 그해 외국어대학을 졸업한 안사장은 거친 사회에의 첫발을 소위 취직시험이란 관문을 거쳐 내디뎠다. 안사장이 처음 이력서를 내민 직장은 자동차판매를 주로하는 어느 외국인상사. 취직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같은 대학의 2,3년 선배를 포함, 모두 1백명에 가까왔다. 그중에서 시험을 거쳐 최종합격된 사람은 단 두명뿐. 물론 안사장도 그 두사람중의 하나였다. 50대1의 험난한 관문을 뚫고 취직은 되었으나 그다음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초라했다. 일을 했으면 당연히 받아야 할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월급밀리기 석달째. 안사장은 회의에 잠겼다. 도미후 먹고 살기도 바빠 아예 공부할 생각은 포기 『이런 취직을 왜 해야하나?』 험한 경쟁을 뚫고 입사했을 때의 꿈은 월급 3개월 체불로 말끔히 사라졌다. 생각끝에 사표를 내기로 했다. 『미국에 가 다시 더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고 사표를 써 집어내던진 것이 취직 6개월째. 그러나 마음먹은 미국가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미국시장에 진출하려는 무역회사가 있어 이회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도미후 무보수로 이 회사의 일을 거들어 준다는 조건으로 도미수속에 필요한 절차상의 편의를 제공받게 된 것. 60년 겨울. 「트렁크」 한개와 1백「달러」를 가지고 김포공항을 떠났다. 주위에서 얼마 돈을 더 보태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으나 1백「달러」이상을 갖고나가는 것은 불법이며 또 귀한 외화를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거절했다. 오직 믿는 구석이 있다면 「뉴요크」 「자마이카」 병원에 석달 먼저 와 「인턴」으로 지내고 있는 아내뿐. 「뉴요크」에 도착, 아내와 만났을땐 호주머니속엔 겨우 50「달러」가 남아 있었다. 공부를 계속할 생각으로 여러 대학에 「스칼라십」을 얻기 위해 편지를 내어보왔다. 그러나 주급 70「달러」인 아내의 월급으론 대학공부는 커녕 먹고 살기도 바빴다. 그래 어느 보험회사에 들어갔다. 3백여 사원중 황색인종은 안씨 단 하나뿐. 제법 좋은 성적을 올렸으나 주위의 질시로 이 직장도 끝. 다음 들어간 것이 어느 한국수출업계의 한 회사. 그러나 결국 「샐러리맨」으로선 아무런 승부도 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자립의 길을 찾았다. 안사장은 밤이면 도서관에 틀어박혀 한국에서 원료를 많이 구할 수 있고 또 인건비가 싼 한국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런 안사장 머리에 가발이 떠올랐다. 당시만 해도 세계 가발시장은 「유럽」제품이 지배하고 있었고, 일본제품이 서서히 파고들기 시작할 무렵. 안사장은 우선 일본제품을 사들여 미국시장에 팔아 보았다. 제법 잘 팔려나갔다. 63년 안사장은 「체이스·맨해턴」은행으로 부터 3천「달러」를 융자받아 기술자와 약품을 들고 서울로 돌아와 공장을 차렸다. 첫 제품은 아무래도 「유럽」제품보다는 못했다. 흑인여성에게 알맞은 검은 가발에 착상 그러나 장사는 판로가 제일 큰 문제. 안사장은 이미 「유럽」제품에 정들어 있는 백인여성들 대신 흑인여성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성이라면 흑백을 불문하고 아름다와지려는 욕망은 마찬가지. 이런 점에 착안한 안사장은 검은 「세일즈맨」을 써 한국산 검은 가발을 검은 여성들에게 팔았다. 이 판매전략은 그대로 적중했다. 첫 해에 벌써 물건이 달려 못 팔 지경. 자신을 얻은 안사장은 서울공장을 신갈로 옮겨 확장했다. 해마다 매상은 3배에서 10배까지 뛰어올랐다. 그간 안사장이 가발 수출한 실적을 살펴보자. 66년엔 6만7천「달러」, 67년엔 67만「달러」, 68년엔 1백만「달러」, 69년엔 4백80만「달러」, 올해는 11월말 현재 1천55만「달러」를 수출했다. 이렇게 보면 한해 수출액의 증가율은 2배에서 10배. 다나무역의 성장율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엄청난 성장율 뒤에는 『질좋은 상품, 새로운 「디자인」, 그리고 신용만 지키면 가발시장은 튼튼하다』는 안사장의 철학이 숨어 있다. 안사장은 또 『돈을 무덤에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다』란 신조를 갖고 있다. 외대(外大)재학시절부터 불우아동을 돕는 「등대회」「멤버」이던 안사장은 해마다 시립아동병원의 어린이들에게 구호의 손을 뻗친다. 내년부터는 모교인 외대에 장학기금도 마련할 생각. 1천2백명의 여공을 갖고있는 신갈공장에선 매달 한번씩 YWCA와 공동주최로 교양강좌를 연다. 단순히 봉급받고 일하는 직장이 아니라 다나의 가족을 만드는 것이 노사협조를 위한 지름길이라 믿고 있기 때문. 그래서 여공들의 기숙사는 마치「호텔」과도 같다. 지난 11월30일 제7회 수출의 날에 철탑산업훈장을 탄 안씨의 구호는 『「달러」를 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①간접비의 절약 ②과감한 수출행정의 간소화 ③국내업자끼리의 과당경쟁 지양등이 우선 이루어져야겠다고. 이제 안사장의 꿈은 포화상태인 미국시장을 떠나 「유럽」시장을 꼭 제패하고야 말겠다는 것이 안사장의 포부. 2남1녀를 둔 아버지이기도 하다. [선데이서울 71년 신년특대호 제4권 1호 통권 제 118호]
  •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재혼전도사’ 된 ‘사극의 여왕’ 김영란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재혼전도사’ 된 ‘사극의 여왕’ 김영란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 표지모델편] 그녀가 1979년 8월 선데이서울 표지모델로 등장한 무렵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5회 아시아영화제에서 <물도리동>으로 사극부문 연기상을 받고 돌아온 직후였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TV와 영화출연 스케줄이 꽉 짜여 3년째 피서다운 피서를 못했다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MBC TV 일일연속극 <하얀 민들레>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영화 <혼자 사는 여자>를 찍고 있었으며 CF 모델로서의 촬영도 줄을 잇고 있을 때였다. 비키니 차림으로 달력에 나타나 젊은이들의 가슴을 콩닥거리게 했던 섹시한 모델들이 요즘은 머리 염색약이나 관절염약 모델로 출연하니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하게 한다. 그녀는 1976년 TBC(동양방송) 공채 17기 탤런트로 데뷔했다. 대학 1학년시절 탤런트 시험에 응모해보라는 친구들의 권유로 장난삼아 응모했는데 덜컥 합격이 된 것이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된 그녀의 연예인 생활은 탤런트 보다는 영화배우로 먼저 뜨기 시작했다. 77년 영화 <처녀의 성> 주연을 맡아 영화평론가와 교수, 그리고 영화 저널리스트 등이 선정하는 영평상(현대영화비평가그룹상)과 대종상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받으면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주로 멜로 영화의 주연을 맡으며 전성기를 누렸다. <아스팔트 위의 여자>(1978), <물도리동>, <독신녀>(79년) 등에 이어 80년에는 변장호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 번 ’80>으로 흥행 1위의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안방극장의 인기 탤런트로 스타덤에 오른 것은 78년 MBC 드라마 <옥녀>를 통해서였다. 이 드라마를 시작으로 <안국동 아씨>, <새아씨>, <교동마님>을 비롯, 1996년에 출연한 <용의 눈물>까지 인기 사극에 자주 등장해 ‘사극 전문 탤런트’로 명성을 얻었다. “글쎄 그게 참 이상하네요. 제가 옛날사람 역할을 별로 잘 하지도 않는데 자꾸 방송국에서 맡겨요.” 79년 12월 <안국동 아씨>에서 혜경궁 홍씨로 출연하던 중, 다시 선데이서울 표지모델로 등장한 그녀는 스스로도 사극에 연달아 출연하는 이유를 궁금해 했다. 81년엔 MBC TV드라마 <교동마님>으로 백상예술대상 TV 여자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1983년부터 7년간 장기 방송된 대하사극 시리즈 <조선왕조 500년>에서도 거의 매 작품마다 왕비나 명문가의 안방마님으로 등장해 한동안 ‘왕비 배우’ 라는 별명이 따라다닐 정도였다. 2000년부터 한국전통문화연구원에서 주관하는 조선시대 궁중연회 재현 행사에도 중전 역을 가장 많이 해본 탤런트라는 이유로 잇달아 중전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한창 꽃피고 잘나가던 그녀는 83년 10월 사업가 출신의 곽모씨를 만나 결혼하고 연기생활을 계속했지만 4년 만에 파경을 맞게 된다. 종갓집 6남매 중 장남이었던 남편과, 1남 2녀 중 둘째로 사랑을 받기만하며 자란 그녀는 문화적 차이를 좁히기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 잦은 제사와 수많은 친척들을 돌봐야하는 일은 드라마라면 모를까, 연기를 병행하는 신혼의 그녀에게는 벅찬 역할이었다. 그녀는 인생에서 첫 실패작이 된 이혼으로 큰 충격을 받았으나, 이를 계기로 ‘좋은 사람’을 찾기보다 ‘나와 잘 맞는 상대’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1990년 사업가인 이영남씨를 만나 재혼하여 지금까지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딸은 미국 시애틀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고, 현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은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재혼전문 결혼정보업체 ‘행복출발’의 사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성공적인 재혼으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된 셈이다. 평소 재테크에 관심도 많아 <김영란의 주부 경제>, <알뜰 재테크> 등 경제와 관련한 TV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고, 덕분에 탤런트로서는 경제지식도 많이 갖추고 있다. 지난 97년에 8개월 동안 ‘김영란의 재테크 강의’를 신문에 연재했고, 그 내용을 묶어 ‘탤런트 김영란의 주부경제학’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하늘이시여>(2005), <그 여자의 선택>(2006)에 이어 최근 종영한 <문희> 등에 출연, 연기활동도 여전히 활발하게 하고 있다. 표지=통권 560호 (1979년 8월 19일) 박희석 전문위원 dr39306@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자손86명의 대가족(大家族) 새해잔치

    자손86명의 대가족(大家族) 새해잔치

    한국 기독교 80년사상 처음의 경사인 희년(禧年)축복예배가 새해 첫 일요일 전남(全南) 여천(麗川)군 율촌(栗村)교회서 거행된다. 주인공은 전 부통령 함태영(咸台永)씨와 동기동창인 88세의 조의환(曺義煥)목사. 조목사는 50주년째 현직 목사로 있으며, 7남매의 자녀가 모두 생존하여 슬하에는 무려 증손자까지 86명의 가족이 뻗어나 화제가 되고 있다. 60넘는 자녀만 4명이나 손자는 34명 증손자 45명 88세로 50년동안 목사 일을 맡아보고 있는 조의환 목사는 이젠 걷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 그러나 정신력은 또렷 또렷하여 주일이면 반드시 교회에 나가 축복예배를 드리고 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데모데」서 4장 7절을 즐겨 설교하며 『나의 갈길 다하도록 예수 인도하시니…』하는 찬송가를 즐겨 불렀다. 『저희 아버님은 지금도 매주 한번씩 꼭꼭 저에게 편지를 써보내십니다. 안경도 안쓰시고 필력(筆力)도 좋으십니다』 역시 60세에 목사가 된 장남 조기영(曺基榮)씨(61)의 말이다. 조의환 목사는 전남 여천군 율촌면 마을에서 조병하(曺秉夏)씨의 5남매중 둘째로(세째는 전 외무장관 조정환(曺正煥)씨) 전 부통령 함태영선생과 동창 사이가 된다고. 『무엇보다도 복된 것은 우리 7남매가 모두 살아서 아버지의 50주년 희년예배를 함께 보게 된 것입니다』. 조목사의 슬하에는 장남 기영(목사·서울), 차남 기선(基善·교통센터·서울), 3남 기성(基成·국민교장·여수), 장녀 영관(永寬·70·서울), 차녀 정은(貞恩·66·구례(求禮)), 3녀 안희(安熙·63·서울), 4녀 영은(英恩·서울)씨등이 모두 복된 가정을 가지고 있다. 이러니까 7남매중 60세이상의 아들딸이 4명이며, 그들의 몸에서 난 손자가 34명, 증손자가 45명이나 되어 혈통이 모두 86명. 조목사는 24세때 예수교를 믿기 시작하여 30세때 평양(平壤)신학교에 입학하여 8년만에 졸업, 39세때 비로소 목사가 되었다. 『그동안 아버지는 광양(光陽) 여수(麗水) 제주 교회등에서 일했읍니다. 무엇보다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제주도 모슬포교회에서 6년을 일보시는 동안 두번이나 투옥을 당하신 일입니다』 2차대전때 혹독한 일제의 압박에도 신사참배(神士參拜)를 거부했다. 또 조목사는 당시 순천(順川)지구 노회(老會) 선교사로 있다 미국으로 귀국당했던 「프레스턴」목사와 국내 정세를 연락했다고 해서 투옥, 많은 고초를 겪었다. 모든식구 한자리에 모여 소원대로 산제사 모시게 그런가운데서도 조목사는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아우 정환씨를 10년동안이나 미국에 유학시켜 공부하게 했다. 『저도 일본경찰서에 몇차례나 끌려갔읍니다. 그놈들은 술만 취하면 한밤중에 날 경찰서로 잡아다 놓고 일본도를 빼어 내 목에 겨누는 등 행패를 부렸지요. 그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판임관 시험을 치르기도 했읍니다』 장남 조기영 목사의 설명. 조기영목사는 연전(延專) 상과, 숭실전(崇實專) 농과, 명치(明治)학원 영문과 등에서 수학한뒤 호남비료 서무과장, 무역업에 종사해오다가 나이 60세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목사가 되어 지금은 「망각지대선교회」회장일을 보고 있다. 『7남매 모두 따로 살고 있지만 이번에 전부 모여 아버지 소원대로 산 제사(祭祀)를 지내는 축복예배를 보기로 했읍니다』 조의환목사는 원채 나이가 많으시니까 아들이나 손자들이 찾아오면 『사탕 좀 사오너라』하고 명령을 한다는 것. 그래서 단 것을 장만해서 이번에 행사를 벌이기로 한 것인데, 그 「단 것」선물의 거의 전부가 교회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진다. 이래서 어린이와 할아버지의 사탕잔치가 한꺼번에 벌어진 것인데 88세 할아버지 목사님은 여느날에도 『사탕 먹으니까 맛있죠? 나도 맛있어요!』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재미. 노목사는 아들딸을 제외하곤 아무리 어린나이의 증손자에게도 반드시 존칭을 쓰는 버릇이 몸에 배어 있다. 77살에 재혼 아직도 정정 장수의 비결은 절제주의 한가지 섭섭한 것은 57년에 7남매의 어머니 김월봉(金月鳳)여사가 돌아가신 것. 이듬해 김영엽(金永葉·72)씨를 계모로 맞아 아버지와 짝을 지어 드렸다. 그러니까 조의환 목사는 76살때 재취 장가를 간 셈. 조목사는 지금도 기억력이 생생해서 86명속에 끼어 있는 손자와 증손자의 이름까지 모두 외고 있으며, 아무날 어느 손자, 또는 증손녀가 무슨 과자를 사왔다는 내용을 모두 「노트」에 적어놓고 있다고 자녀들이 아버지를 놀리자(?), 아버지는 『야 이놈들, 산 제사를 지내려면 단것 좀 많이 사와라!』하고 농담으로 받아 넘긴다. 조의환목사의 뜻을 받아 60세에 목사가 된 장남 조기영씨는 「예수」 믿고 보이지 않는 천당가는 신앙보다 보이는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더 값있는 일이라고 망각지대를 향해 선교를 나섰다. 『망각지대란 것은 글자 그대로 소외당하고 잃어버린 땅을 향해「예수」의 정신을 심자는 것입니다. 난 돈도 명예도 없어요. 푼돈이 생기면 그대로 양로원 고아원 또 사형 확정수들을 찾아다니며 「예수」말씀을 전하고 있읍니다』 조기영목사는 60세에 안수를 받았지만 정열이 대단하다. 국제신학교 강사로 나가면서 어떤때는 하루종일 서울역 남대문 지하도 근처를 헤매면서 서울역에서 내리는 시골손님들의 길을 안내하고 짐을 들어다주곤 하는 생활-. 다만 조의환목사의 3형제중 일제때 만주국(滿洲國) 48(王)중의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형님 조일환(曺日煥)씨와 아우 정환(正煥)씨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간 것이 슬프다고 88세의 원로목사는 기쁜중에도 섭섭한 눈물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 이처럼 장수하는 비결은? 『절제주의입니다. 나는 술과 담배를 평생 안했거든요. 또 성욕도 많이 절제하면서 산셈이야요. 내가 젊어서는 미남자였거든요. 만약 목사가 안되었다라면 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웠을지 알아? 그랬더라면 86명 자손이 아니라 수백명일 뻔했지? 하하하…』 조목사는 이런 농담으로 곧잘 잔치집에 온 하객들을 웃긴다. <여천에서 이용선(李鏞善)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신년특대호 제4권 1호 통권 제 118호]
  • “술마시며 참여(參與)하니 아니 좋으냐”

    한 신출나기 술집이 요새 문단에서 유행하는 참여를 쳐들고 나왔다.「니나노」가락만 뽑을게 아니라 미술전람회도 열고, 국악발표회도 갖고, 민속자료전시회에서 시낭독회까지 열어보자는 별난「예술참여」. 주인사내 3명이 몽땅 33세 동갑 문화인인 이 신종「예술참여파」에「참여」해 봤더니-. 무료로 상설화랑 구실을 색다른 동양화누드 선뵈 술집에서 미술전람회를 갖겠다고 하니 아무래도「개발에 주석편자」격. 더더구나 상설화랑으로 제공하겠다는 포부이고 보면 듣는 쪽이 이상해질 정도이다. 「홀」에 5점의 판화, 방안에 14점의 동양화가 전시된「쪽샘」이 바로 문제의 술집. 출품작가는 화단의 중견작가들이 중심이 돼 있다. 국전에서 국회의장상을 수상한 박원서(朴元緖)씨를 비롯, 백양회 공모전 수상작가 김철성(金徹性)씨, 동아(東亞)판화「비에날레」대상 수상작가 김상유(金相游)씨, 한국미술 대상전 우수상의 송번수(宋繁樹)씨 등이 출품했고, 동양화의 신수회(新樹會)「멤버」인 나부영(羅富榮) 송수남(宋秀南) 서기원(徐基源) 오낭자(吳浪子) 오태학(吳泰鶴)·(국전특선), 이경수(李炅洙) 이덕환(李悳煥) 이용철(李容徹) 조평휘(趙平彙) 최재종(崔在宗) 홍용선(洪勇善) 제씨와 조각의 박석원(朴石元)씨, 판화의 서승원(徐承元)씨 등이 이번 전람회 출품작가. 10여평 남짓한「홀」에 정교한 솜씨의 판화들이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걸려 있다. 방은 모두 2개. 가운데 마루를 두고 마주보는 방으로 사방 벽에 동양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약간의 서양화풍으로「스케치」된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전통적인 산수화(山水畵)「스타일」에 의해 전원풍경이 묘사된 작품도 있다. 그중에서도 안방쪽의 내벽에 걸린 동양화「누드」한폭이 가장 이채. 동양화「누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것같다. 주로 옛날 기와조각에 새겨진 무늬를 소재로 삼았던 이경수씨(均明高교사)가 이번 전람회에「전례없는」취향의 작품을 내놔 이 방면의 동호인과 작가들에게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동양화에서 종래까지는 주로 전원풍경이라든가 4군자가 소재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근래에는 차차 구체적으로 움직이는 사물, 작업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묘사되어 동양화 소재선택의 방향에 조그마한 변화에 모색이 있어 왔던건 사실. 동갑네 세친구가 손잡고 연주무대로 마루도 비워 그런데 이씨에 의해서「최초라면 최초라 할 수 있는」여인의 벌거벗은 육신이 대담하게 소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미술평론가 김인환(金仁煥)씨는 이씨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이번 전람회의 값진 수확의 하나』라고 논평. 힘찬선과, 율동미가 넘쳐흐르는 완곡한 육체의 부분부분이 묘사된 작품『나부(裸婦)』를 하필이면 절절 끓는 안방에 걸어놨을까 하는 주객들의 엉큼한(?) 질문도 더러 있다. 『앞으로 상설화랑으로서의 면목을 갖추어 보려고 합니다. 화랑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미술의 대중화를 꾀해보자는 소박한 의도입니다. 출품작가들이 나와서 얼큰히 취해 자기 작품을 해설할 수도 있고, 자유롭게 미술대담(美術對談)을 하게 할 작정입니다』 이「쪽샘」경영의「트로이카·시스팀」가운데 한 사람인 한상림(韓相霖)씨의 포부. 한씨는 미술과는 동떨어진 성악가로「예그린악단」단원이다. 술집에선 노래「서비스」로 남기(男 妓?) 노릇도 할 예정. 『정기적으로 국악 발표회를 갖는 한편 음악은 국악녹음「테이프」로 할 예정입니다. 24일에 가야금산조 연주회를 가졌고, 제야(除夜)에는 남사당(男寺黨) 놀이와 창(唱) 발표회를 열겠어요』 연주회 무대용으로 마루를 비웠다는 미술평론가이며 경영자의 한 사람인 김인환씨(홍익대(弘益大)강사)의 포부. 그런가하면 역시 경영자의 한사람인 강동영(姜東榮)씨(사업가)의 포부도엉뚱하다. 『안동(安東)과 경주(慶州)쪽에 사람을 보내서 민속자료를 채집중입니다. 가짜토기니하는 것 말고요.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아주 사소한 생활용품들을 가져오게 했읍니다. 뿐만 아니라 시낭독회도 부정기적으로 열겠읍니다. 술 팔아서 장사하겠다고요? 물론 그 목적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럴바에야「슈퍼·미니·스커트」입힌 아가씨들을 채용해서 쿵작작거리며 하는게 좋지 이게 다 뭡니까? 여자도 없어, 술이라곤 막걸리 단 한가지 뿐이고, 앉는 의자도 그냥 딱딱한 통나무, 장치는 싸리나무로 촌스럽게 엮어 놨으니 망하기 아주 십상이에요. 그러나 우리 모여 한번 고상한 얘기 나눠보자, 이겁니다』 “마시며 흐뭇하고 열띤 예술론 펴기 소원” 출품작가중의 한사람인 나부영씨는, 껄껄거리며 웃더니『우선 홀가분하게 마시니 좋고, 그림얘기며 문학얘기로 핏대올릴 생각하니 흐뭇하지 않습니까?』 하고 호사가(好事家)스러운 표정을 한다. 『우리 모두 33세에 동갑입니다. 사실은 10년이상 막역한 사이의 친구들이죠. 어느날 하루는 권커니 잣거니 하다가 문득 우리 조상들이 즐겨 마시던 술에 우리 조상들이 좋아했던 주막집식의 술집을 했으면 어떨까 하는「아이디어」가 나왔죠. 이로부터 얘기는 무르익어 강형이 자기의 집을 제공하기로 하고 막걸리 전문의 술집을 내서 화랑에다 공연장을 겸해서 문화의 광장이며 대화의 장소가 될 집을 마련하게 됐죠. 정작 이 집의 내막을 고증해보니 1백년 이상된 고옥(古屋)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문화재 겸해 원형은 전혀 손질하지 않고 벽지만 새로 바르는 정도로 다듬었습니다. 남들이 장삿속이다 하고 비난해도 좋습니다. 아닌 말로 손님없어도 좋아요. 우리 셋이 모여 놀죠, 뭘』 태평스러운 표정의 한씨는 신바람난다는듯이「옥타브」를 높인다. 이 철저하게 한국적인「쪽샘」의 한국적인 요소를 찾아 보면 안동지방에서 수집한 12개 개다리소반상, 서울교외 퇴계원의 어느 독공장에서 구워낸 질그릇,「피아노」재목으로 쓰인다는 오대산(五臺山) 심산유곡에서 날라온 복작나무「테이블」, 안방의 출입문이 이조시대 중인(中人) 가정에서 통용했던「들어 올리는」들문이라는 점등이다. 「쪽샘」이라는 명칭도 경주교외의 어느 마을 이름인데「주막들이 몰려있는 곳」이라는 뜻. 주로 법주(法酒)를 만들어 내는 곳이라고. 앞으로 개인 전람회를 갖고싶은 작가에게는 언제나 무료로 개방하겠다는 주인들의 선언. [선데이서울 71년 신년특대호 제4권 1호 통권 제 118호]
  • 금융감독 당국 속내는 뭘까

    2년 가까이 안개 속에 묻혀 있던 외환은행의 미래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유럽 최대 투자은행인 HSBC의 외환은행 인수에 관한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재매각 논란이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에 금융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당국은 명확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HSBC, 외환은행 통해 한국 영업확장 시도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26일 HSBC가 55억달러에 이르는 외환은행의 지배 지분 인수를 위해 4년 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 전에 조건부 계약이라도 체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도했다. 외국계 은행이 접근할 수 있는 마지막 한국의 대형 금융자산을 어떻게든 인수하려는 HSBC측의 의지가 드러난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앞으로 2개월 안에 최종 계약이 타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현재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보유 지분 51%를 인수하기 위해 단독 협상중인 HSBC는 외환은행의 행명과 상장 및 고용, 해외지점 유지 등 구체적인 청사진을 공개, 협상이 상당히 진전됐음을 시사했다. 사실 HSBC는 오래전부터 외국계 자본 가운데 외환은행의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서 인수·합병(M&A)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독자 성장 전략을 계속 강조해 왔다.HSBC의 입장변화는 외환은행 인수가 자본시장통합법 도입을 앞두고 한국에서 영업을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데다 대주주 적격성에도 문제가 없어 인수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외환은행 관련 주체들 입장 명확히 해야 외환은행 재매각이 처음 불거져 나온 것은 2005년 8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외환은행 매각주간사로 씨티그룹이 선정됐다고 보도하면서부터. 지난해 3월에는 국민은행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5월 본계약을 체결, 종결을 눈앞에 뒀었다. 그러나 론스타가 지난해 11월 계약 파기를 선언한 뒤 농협과 국민연금,DBS(옛 싱가포르개발은행) 등이 외환은행 인수를 타진하거나 추진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후 론스타가 6월 외환은행 지분 13.6%를 매각한 데 이어 지난달부터 HSBC와 지분 인수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면서 기나긴 매각 작업이 종착역에 도달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원래 국민은행이 론스타 측에 제시한 외환은행 인수가격은 5조원 정도. 그러나 론스타의 지분이 64.62%에서 51.02%로 줄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9개월여만에 1조 2000억여원의 프리미엄이 붙은 셈이다. HSBC가 외환은행을 손에 넣으려면 더이상 은행을 외국계 손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부정적인 국민정서를 넘어야 한다.이미 외환은행의 지점장급 및 본점 부장급 이상으로 이뤄진 부점장 비대위는 HSBC에 대해 토종 자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입장을 밝혔다.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관한 불법 논란이 해결될 때까지 지분 매각과 관련한 결정을 유보한다는 방침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은행만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다거나 HSBC의 인수를 금지한다는 등의 당국의 지침도 없고, 외환은행을 넘보고 있는 다른 은행들 역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지 않아 혼란만 계속되고 있다.”면서 “외환은행의 영업망 위축을 막기 위해서라도 관련 주체들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딸자랑] 김상신(金相信) 여사 딸 정복영(鄭福永)양

    새해는 돼지의 해. 돼지 해를 맞은 돼지띠 아가씨 정복영양(24)은 새로운 꿈과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 있다.『며칠전엔 돼지꿈을 꾸었어요. 새해에는 운이 좋으려나 봐요. 그동안 수속을 밝아오던 미국 유학의 꿈이 올해엔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좋은 신랑감이 있으면 시집도 가고 싶고요』정말 돼지같이 욕심을 부린다. 복영양은 69년 2월에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를 나온 쾌활하고 서글서글한 성품의 아가씨. 165cm의 늘씬한 키에 알맞게 균형잡힌 체격, 차분히 가라앉은 속삭이는듯한 목소리가 사뭇 매혹적이다. 아버지 정하용(鄭夏鎔)씨는 서울북아현동에서 30여년동안 내과의사로 개업을 해오던 분으로 북아현동 일대에선「정의원」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 아버지가 지난해에 동맥경화증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지금은 홀로 남아 계신 어머니 김상신여사(64)가 딸 복영양에 대한 통솔은 물론 전체 집안관리를 도맡고 계신다. 『자랑거리가 뭐 있어야 말이죠. 그저 평범하고 특별히 남부끄러운 점이 없는게 자랑이라면 자랑일까요』독실한「크리스천」이기도 한 김여사는 사뭇 겸손하게 딸자랑을 사양한다.『아이가 통이 큰 편이지만 예상외로 성격이 치밀하고 세심하죠』 이딸의 소망대로 새해에는 미국 유학과 좋은 배필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두가지 꿈이 모두 실현되기를 김여사 자신도 딸못지 않게 바라고 있다. 복영양은 딸만 5자매 있는 가정의 막내 딸. 제일 큰언니 귀영(貴永)씨는「워싱턴」의「아메리컨」대학에서 국제법을 전공했고 지금은 외무부 기획관리실장의 부인이기도 하다. 둘째언니 부영(富永)씨도 미국「에머리」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콤퓨터·프로그래머」인 형부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있다. 이화여대 음대를 나온 세째언니 민자(敏子)씨는 실업가와 결혼해서 역시 행복한 가정의 주부가 되었다. 위로 3자매가 다 결혼했고 복영양의 바로 웃 언니인 영자(英子)양(27)은 아직 미혼으로 미국에서 상업미술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 『저도 미국가서 신문학을 전공해 볼까해요. 그러나 좋은 사람만 있으면 결혼도 반대하지 않겠어요. 호호호…』복영양은 장난스럽게 웃는다. 대학 졸업후 아직 한번도 직장을 가져보지 않은 그녀는 특별히 친구를 만나는 날 외에는 늘상 집에만 있다. 『사회생활에 아직 익숙치 못해서 그런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를 못해요. 그동안 취직을 안해본 것이 저의 인생에 큰「마이너스」나 아닌지 모르겠어요』좋은 직장이 있으면 취직도 해보겠다니 이건 정말 이만저만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다.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 일이 별로 없고 보니 남성과「데이트」할 기회도 없단다. 신랑감의 조건이라면『생활력이 있고 의지와 책임감이 강하며 가정적이고 성실한 남성』이라고 어머니 김여사가 대신 설명해준다. 요즈음은 공부하는 시간에는 음악을 듣거나 손수「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하는 일을 좋아해요』복영양의 말에 어머니 김여사는 『넌 역시 돼지띠라 편한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구나』라고 말해 집안에 한바탕 즐거운 폭소를 자아냈다. [선데이서울 71년 신년특대호 제4권 1호 통권 제 118호]
  • [뮤지컬]

    ■ 스위니토드 9월15일∼10월14일.LG아트센터. 토니상 8개를 휩쓴 손드하임의 역작. 빅토리아 여왕 시대 판사에게 아내를 뺏긴 이발사 벤저민의 복수극. 에드리언 오스몬드 연출.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3시·7시30분 일·공휴일 오후 6시30분.4만∼10만원.(02)501-7888.■ 텔미온어선데이 10월1일∼11월18일 두산아트센터. 실연의 상처를 잊으러 뉴욕으로 떠난 런던 싱글녀, 완벽남·유부남·연하남을 두루 만난다. 이지나 연출. 화목금 오후 8시 수 오후 4·8시 토 오후 3·8시 일·공휴일 오후 2·7시.4만∼5만원.(02)501-7888.
  • 「미스·러키화학」 최정원(崔正願)양-5분데이트 (114)

    「미스·러키화학」 최정원(崔正願)양-5분데이트 (114)

    「미스·러키화학」최정원양(22)은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에 언제나 즐거운 미소를 잊지 않는 상냥한 아가씨. 「러키」화학 「비닐」사업부 상무 이재연(李載淵)씨 비서로 근무한지 만 2년. 비서실에서는 벌써 고참사원으로 통한다. 갸름한 얼굴에 오똑한 콧날, 매끈하고 고운 피부, 조용한 말소리가 사뭇 매혹적이다. 진명여고를 거쳐 동덕여대 상업미술과 2학년까지 다니다 중퇴했다. 발랄한 젊음과 우아한 지성미를 아울러 갖춘, 나이에 비해 조금 성숙해 보이는 정원양. 그래서 그런지 그녀를 아는 주변의 남성들은 으례 정원양에게는 애인이 있을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감히 「프로포즈」를 못하는 모양이다. 직장 일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고작. 진짜 애인이 없어 외로울 때가 많다고. 인쇄업을 하는 최량진씨(崔良鎭·47)와 부인 이남화(李南花)여사의 1남3녀중 맏이. 바쁜 직장생활을 틈타 1년동안 「오리엔털」양재학원에 다니며 「디자인」공부를 마친 열성파. 의상「디자인」 공부는 앞으로도 계속 하겠단다. 직장을 그만 두면 깨끗하고 아담한 의상 「살롱」을 하나 꾸미고 싶다는 「디자이너」지망생. 『결혼문제에 대해선 아직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진 않았어요』 수줍은듯 말을 꺼낸다. 『하지만 우선 경제적으로 넉넉해야 될 것 같아요. 결혼이란 물론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하나의 엄연한 현실이니까 경제문제를 무시할 수 없죠』- 또박 또박 말하는 정원양은 꼼꼼한 성격보다는 통이 크고 활달한 남자를 더 좋아한다고. <란(蘭)> [선데이서울 70년 12월 27일호 제3권 52호 통권 제 117호]
  • 아내를 바꾸게된 여보·당신 새출발

    아내를 바꾸게된 여보·당신 새출발

    아내를 손아래 정부(情夫)에게 빼앗긴 남편이 그 정부의 아내와 새삶의 보금자리를 차렸다. 아내를 빼앗긴 남편과 남편을 빼앗긴 아내는 서로 억울한 처지를 위로하다가 마음이 맞은 것-. 부러운것 없이 잘지내던 자동차 정비사와 그 아내 70년 세밑에 화제를 뿌린 문제의 주인공은 김성오(金成五·45·가명)씨와 이순자(李順子·27·가명)여인. 아내를 빼앗긴 김성오씨는 아내를 빼앗아간 남자의 아내 이순자여인과 아픈 슬픔을 씹어 삼키며 내일의 밝은 새 아침을 기약한 것이다. 이 결혼식에는 축복하는 이 하나없이 달아난 요부(妖婦) 어머니 대신 어진 새엄마를 맞는 어린 5남매가 있었다. 김성오씨는 일본「히로시마」에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 해방과 함께 귀국, 춘천에서 알아주는 자동차의「베테랑」정비사. 이곳에서 22년전 윤문희(尹文姬·37·가명)여인과 결혼, 지금까지 2남3녀의 자녀를 거느리면서도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지내온 중류 이상의 가정을 꾸렸다. 춘천시 소양로2가에서 조그맣게 정비공장을 차리고 있던 김씨가 지난 65년부터 인력 수출에 힘입어 월남행 비행기를 탔다. 떠날때 정비공장을 정리하여 지금 사는 사농동으로 살림집을 옮겼다. 김씨는 파월 1년도 못돼 당시 고용회사였던「필코」회사가 망해 그대로 귀국했다. 월남「투이호아」에서 그렇게 고된 일을 하면서도 매일 남십자성 아래 듬뿍 내리는 이슬을 맞으며 아내와 자식들에게 알뜰한 사연을 보내는 것이 즐거움의 전부였다. 윤여인도 하루도 거르는 날 없이 편지를 보냈다. 꿈에도 그리던 월남가신 임이 예상외로 빨리 귀국하자 중년의 부부는 더없이 다정했다. 이때만해도 이웃 누구하나 이들 부부를 부러워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가정의 행복은 영원한 것인 것처럼…. 남편이 돈벌러 월남가자 가정교사와 눈맞아 도피 그러나 이 집안에도 불행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김씨는 지난 68년 가을 가족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돈을 벌겠다며 재차 월남기술자로 떠났다. 1년후의 뿌듯한 해후를 위해 비지땀을 흘려 번돈 일금 7백「달러」를 매달 꼬박꼬박 부인앞으로 송금했다. 경제적으로는 풍족했으나 윤여인은 항상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 이럴때 국민학교 4학년짜리 맏아들 경호군(10·가명)의 가정교사로 이웃에 있는 모 고등학교 국어교사 박관호씨(34·가명)가 집에 들어왔다. 서울 모대학 국문학과를 나와 6년째 한학교에서만 줄곧 교편을 잡고있는 박교사는 퍽이나 이지적이고 얌전한 축에드는「인텔리」였다. 이곳에 부임하던 해 이여인과 결혼, 1남1녀의 두자매까지 뒀다. 매일 한숨으로 지새던 생과부 윤여인은 아이들이 공부를 끝내고 잠든후면 박선생을 붙들고 하소연을 가득 담은 대화를 밤깊도록 했다. 세월이 흐름에따라 이들은 밀회를 즐기는 사이가 됐다. 꽉 막힌 방대신 야외를 찾아다니며…. 한번 허물어진 여자의 성은 장마비에 보터지듯 겉잡을 새가 없었다. 분별없는 사랑은 그래도 현직교사라는 위치때문에 남의 눈을 피했다. 이때 생각해낸 것이 사랑의 도피행. 박교사는 지난 2월 대학원을 다닌다고 속인후 처자식까지 내팽개치고 윤여인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간 것이다. 사련에 눈이 먼 윤여인은 젊은 정부를 따라 어린 자식들까지 버리고 간후 매달 송금때만 찾아와 몽땅 현금으로 찾은후 아이들에게는 2만원만을 생활비로 남겨주고 모두 가지고 갔다. 이웃이 창피해 쉬쉬해오던 아이들이 급기야 월남에있는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불륜을 알렸다. 하지만 선량하기만한 김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아내가 부정을 저지르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일절 믿지않았다. 그동안 송금한 돈은 아내가 다 써버렸다고 해서 김씨는 귀국을 연기했다. 최소한의 생활비라도 벌어오기위해 7개월을 더 머물렀다가 지난 10월 귀국했다. 한편 박교사의 처 이여인은 전북 이리에서 부정한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을 두차례나 찾아가 이성을 되찾으라고 애원했다. 잃은자끼리 서로 상처달래주다 정들어 그러나 한번 빠져든 박교사를 돌이킬수는 없었다. 남편을 빼앗긴 이여인은 어린 두 남매를 데리고 호구지책으로 삯바느질과 고등학교때 익힌 편물로 겨우 생계를 이어왔다. 귀국한 김씨는 아내를 빼앗아간 박교사를 증오하면 증오하는만큼 이여인에 대한 동정이 컸다. 남편을 연상의 정부(情婦)에게 빼앗긴채 돌봐주는 이 없이 단간셋방에서 아비잃은 두남매를 부둥켜안고 슬픔을 짓씹던 이여인을 찾아가 위로했다. 『모두가 내처의 방탕한 생활 탓』이라고 용서를 빌었다. 이여인 역시 남편의 눈먼 사련으로 부인을 빼앗긴 김씨를 위로했다. 두 사람은 증오대신 서로의 아픈 상처를 감싸주었다. 김씨는 고생하는 이여인에게 쌀과 연탄등도 사줬다. 그러다 보니 김씨 자신이 이여인을 좋아하게 됐다. 거의 매일 찾아가 함께 도와가며 살자고 졸랐다. 이여인도 어질기만한 김씨를 끝까지 뿌리치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아는 이들 새 부부는 자식들을 위해 결합하기로 했다. 이여인은 부산에서 숨어사는 불륜의 남녀를 찾아가 이혼서류에 도장을 받고 또 찍어줬다. 법조계에서도 바람직하다거나 권장할 일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같이 해서 법없어도 산다는 김씨는 정말 법없이 사는 본보기가 됐다. [선데이서울 70년 12월 27일호 제3권 52호 통권 제 117호]
  • 돈 주고 몸도 준 자매의 살인 계획

    돈 주고 몸도 준 자매의 살인 계획

    가정 주부인 미모의 자매가 살인을 기도했다.『우릴 못살게 구는 저 빚장이 여자를 죽여 달라』고 자객을 샀다. 그러나 자객의 칼질이 빗나가 실패로 돌아가자 처음 약속했던 10만원 사례(?)에 웃전으로 몸까지 주어가며 두번째는 엽총으로 쏴죽이려 했으니…. 화장품 장사를 하던 어느「어글리·시스터즈」의 청부살인(미수) 사건의 끔찍한 행각기-. 지난 10월20일 밤8시30분쯤 대구시 봉덕동 734의 15 아담한 한식집 마루를 막 내려 서려던 이집 안주인 장윤자(張潤子·27)여인은 괴한으로 돌변한 방문객의「재크·나이프」에 가슴을 맞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괴한은 심장으로 짐작된 곳에 또 한번, 그리고 배를 또 한번 이렇게 연거푸 세번을 찌르고 대문밖에서 망보던 또 한명의 자객과 함께 후닥닥 도망쳤다. 눈깜작할 사이였다. 곧 이웃 사람들이 놀라 뛰어왔으나 남은 것이라고는 선혈이 낭자한 현장뿐…. 이로부터 2시간쯤 지났을까. 시내 동구 상동에 있는 신명자(申明子)여인집 안방에서는 저주받을 남녀 일당의 축배(?)가 벌어졌다. 장여인에게 1백10만원을 빚진 신명희(申明姬·27·대구시 대명동), 신명자(24) 자매와 살인을 청부맡았던 주국명(朱國明·23·하수인), 정훈재(鄭勳在·22·망보기)등 4명이었다. 10만원의 사례에서 일부 잔금은 이튿날 거사결과가 확인되고 나서 주고 받기로 하고 이들은 헤어졌다. 그런데 악인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장여인은 죽지 않았다. 한달 치료가량의 상처만 입은 것이다. 『!』-. 자매는 당황했다. 주·정 하수인을 곧 호출했다. 장담과는 달리 낭패가 된 결과에 주·정은 동성로일대의 D다방 S다방으로 사흘동안이나 신자매에게 불려다니면서 호된 꾸중을 들었다. 이미 공모자가 된 그들 처지로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던 10월24일 밤8시쯤 N다방에서 신명희의 똑같은 성화를 또한번 당하고 있던 주는 문득『큰누부요, 이번엔 틀림 없을테니 총만 얻어주이소』하고 엉뚱한 제의를 했다. 뜻밖의 살인실패에 당황…이번엔 엽총 훔쳐줬으나 주의 속셈은 구하기 힘든 총을 핑계삼아 적당한 시기에 손을 뗄 심산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궁리에 잠겨만 있던 신은 주의 속셈과는 달리 새로운 조건을 선뜻 받아주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시숙이 가지고 있는 엽총이 떠올랐던 것이다. 두자매가 장여인을 죽이기로 모의한 것은 하수인의 첫 범행이 있기 4일전인 10월16일의 일. D백화점에서 화장품상 2년만에 다털어먹고 빚만 1백10만원을 걸머지고 갚을 수 없게 되자 하수인을 사서 돈준 사람을 없애기로 합의한 것-. 이때 공동투자를 한 언니와 동생이 진 빚은 본전만해도 6백만원. 이 돈을 도저히 갚을 수 없게 된 언니 신명희는 그중 장여인의 돈을 떼어먹기 위한 수단으로 장여인의 남편 남모씨(31)에게『사랑한다』는 편지를 여러번 부치기도 하고 다방으로 불러내어 은근히 동침하기를 비쳐 유혹하곤 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 오히려 남편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장여인의 빚독촉은 질투까지 곁들여 더욱 빗발치게 만든 결과만 냈다. 줄 돈은 없는데 유독 재촉이 불같은 장여인이 겁나 자매는 집에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여인숙으로만 피해다닐만큼 궁지에 빠졌다. 그러다가 짜낸 것이 장여인만 없으면 친척들에게 진 빚 5백만원도 무난히 떼어먹고 배짱을 내밀 수 있다는 그녀들 나름의 살인하청 계산서-. 망설이는 하수인 못믿어 몸으로 마음잡아 두려고 하수인으로는 장사를 할 때 자연 얼굴을 익혔던 교동시장의 불량배 주와 정이 지목됐다. 그날(10월16일 하오2시)로 동생 신명자는 주등 2명을 대구역전 N다과「홀」에 불러 일금 10만원에 해치우기로 살인협상이 이뤄졌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주등은 일찍 소년원 신세를 지기도 했던 뜨내기 건달들. 감쪽같을 완전범죄의 기회만을 노렸다. 드디어 며칠 안가 장여인의 남편 남씨가 서울에 일보러간「찬스」가 왔다. D「데이」인 10월20일, 사건이 나기 바로 1시간전 두여인은 장여인집 근처 봉덕동 O약국 골목 어두운 길에서 선금3만원과 함께「재크·나이프」와 과도를 하수인에게 쥐어주었다. 그러나 일은 상처만내고 실패했다.악착같은 두자매는 그래도 집념을 못버렸다. N다방에서 주에게 약속한 엽총을 4일만인 10월28일 시내 서변동에 있는 그녀의 시숙집 어린애를 꾀어 빌어냈다. 그런데 엽총을 받아쥔 주의 표정은 어쩐지 굳어만 있었다. 『첫번째 일이 안되자 정(공범)이 장여인에게 귀뜀한 것같다』는 주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그의 말이 진짠지 가짠지를 가려내기 앞서 우선 주의 마음이라도 붙잡아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밤으로 그녀는 주를 수성유원지 뒷산까지 유인해 자기를「큰누나」로 불렀던 연하의 공범자에게 몸을 주면서 또하나의 살인까지 명령했다. 즉『정이 배신할 것같으니 일이 끝나는대로 그마저 없애면 돈을 더주겠다』고. 몸으로 하수인의 마음을 다짐하는 수차의 간통까지 해가며 끈질기게 기도해온 이 살인 음모가 약 50일만에 들통난 것은 문제의 엽총 때문이었다. 엽총 잡히던 하수인걸려 처음엔 입을 다물었으나 (장여인의 피해를 경찰은 엉뚱한 강도살인 미수로보고 수사를 폈기때문에 이 음모는 묻힐 수밖에 없었던 것-) 받았던 선금이 떨어져 용돈이 아쉬웠던 주·정은 지난 12월초 맡아둔 엽총을 시내 북성로1가 모총포사에 잡히고 1만1천원을 빈 것이 덜미를 잡히는 계기가 됐다. 주인은 엽총에 비해 어울리지 않는 두 젊은이를 경찰에 고발했다. 바로 주·정은 절도혐의로 구속됐으나 며칠동안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의 누님(모여관종업원)이 면회를 왔다. 이 자리에서 정은 신자매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는가를 물었다. 뒷일은 보아줄 것으로 믿었던 정은 배신의 분노를 느끼자 모든 전말을 털어놓고 말았다. 그때까지 시내 태평로 일대의 여인숙을 전전해 숨어다니던 미모의 악녀 자매의 손목에 마침내 쇠고랑은 채워졌다. 『남편을 도와 살림을 꾸리려던 것이 이 꼴이 됐다』고 두여인은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있는대로 털어먹고 호사를 했는지 몰라도 6백만원의 빚을 진 가정치고는 두집 모두 해놓은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수사관들의 뒷이야기. 가정주부인 두자매가 꾸민 이 엄청난 음모를 뒤늦게나마 눈치챘던 남편들은 그들이 붙잡히기 얼마전 먼저 이혼을 해버렸다. [선데이서울 70년 12월 27일호 제3권 52호 통권 제 117호]
  • [딸자랑] 경희대 도서관장 서중석(徐仲錫)씨 외딸 선영(仙瑛) 양

    [딸자랑] 경희대 도서관장 서중석(徐仲錫)씨 외딸 선영(仙瑛) 양

    쾌활하고 발랄한 성격에 말썽이라곤 부려본 적 없는 착한 아가씨. 인천(仁川) 앞바다의 선감도(仙甘島)란 섬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섬의 구슬 선영(20)이란 이름을 가졌다. 경희대학교 도서관장 서중석씨(47)와 국립정신병원 사회사업과 과장 김순실(金順實) 여사의 5남매중 외딸.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3학년에 재학중이다. 『예능방면에 취미와 소질이 많은 편이에요. 지금 공부하고 있는 성악외에도 무용, 그림, 연극, 「피아노」등을 다 잘 합니다』 아버지 서교수는 딸이 이 나이가 되도록 말썽 한번 안 부리고, 더구나 예능방면에 재질을 보이는 것이 대견하고 신통스럽기만 한 모양이다. 단 하나뿐인 딸이 재주도 있고 성질도 온순한데다 얼굴까지 예쁘고 보니 아버지로서는 그만하면 만족스러울 수 밖에 없을게다.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딸이 아버지가 원하는 약학을 전공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대학에 진학할 무렵 약학과를 택할 것을 딸에게 꽤 열심히 권했지만 딸은 끝내 음악을 하겠다고 우겼다. 『음악에 소질은 많지만 음악을 전공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이왕 음악을 전공하게된 지금은 차라리 그방면에 정진해서 잘 되기를 바라고 있지요』 그래서 딸이 대학을 졸업하면 본인의 희망에 따라 해외유학도 시켜줄 계획이란다. 국민학교때부터 교내 음악대회에는 빼놓지 않고 나가 선생님들의 칭찬을 독차지했던 선영양. KBS어린이 합창단「멤버」로 방송도 여러 번 했다. 한동안은 이관옥(李觀玉)선생에게 사사를 받기도 했다.『선생님들은 저의 목소리를「릴릭·소프라노」라고들 하세요』긴머리를 위로 틀어 올려 빗은 화려한「업·스타일」의 선영양. 거기에다 화장까지 곱게 해서 나이보다는 좀 성숙해 보인다. 「푸치니」의「오페라」『나비부인』의「프리마돈나」역을 꼭 한번 해보고싶다고. 「피아노」솜씨도 보통이 아니라 경희여고 2학년 때부터「피아노」개인지도를 해서 벌어들이는 돈이 많을 때는 한달에 2만여원. 아버지는 딸의 등록금만 마련하면 된다. 그래선지 선영양에게는 보통 여대생들보다는 옷이 많은편. 어떤 장소에서나 입어도 화려하고 멋있다는 평을 받을만한 옷이 30여벌. 깔끔하고 색깔의 조화를 잘 맞추어 입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멋장이로 알려져있다. 무용을 본격적으로 배운적은 없어도「발레」나 한국고전무용 등 무엇이나 하면 척척. 지난 여름에는 숙명여고에서 무용강습을 의뢰해와 보름동안 학생들을 지도했는데 선영양이 가르친 무용반이 교내 무용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단다. 연극도 좋아해서 봄·가을 공연때는 거의 빠뜨리지 않고 구경간다. 서울문리대를 나와 경희대에서 정치사(政治史) 강의를 맡고 있는 아버지 서교수는 서울대연극동문회 회장. 부녀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가끔 연극얘기로 꽃을 피우기도 한다. 선영양에게는 한때 어떤 이름있는 극단으로부터 출연교섭이 온 일도 있었다고. [선데이서울 70년 12월 27일호 제3권 52호 통권 제 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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