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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52년 일지

    [1945년] △11.22 서울신문 창간 [1946년] △3.1 제1회 ‘3·1기념 서울∼인천간 왕복마라톤 경기대회’ 개최(77년 32회까지 존속) [1948년] △10.18 시사지 ‘주간 서울’ 창간 [1951년] △3.8 한국전쟁 중공군 참전으로 부산 피난 △4.6 서울 환도 진중 신문 발행 [1953년] △8.16 첫 견습기자 공채 실시 △9.1 어린이신문 ‘주간소년서울’ 창간 [1954년] △1.1∼8.6 소설 ‘자유부인’ 연재 [1956년] △10.18 신문사상 첫 한글판 제작 [1958년] △10.1 첫 조석간 발행 [1960년] △4.19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 전소 △4.26 휴간 △6.27 속간 [1961년] △5.9 경영난으로 휴간 △12.21 속간 [1962년] △8.13 석간으로 전환 [1966년] △2.9 국내 최초 1백만원 고료 장편소설 당선작 시상 [1968년] △9.22 대중주간지 ‘선데이서울’ 창간 △11.22 전면 한글전용 단행 [1975년] △3.30 ‘주간스포츠’ 창간 △11.2 ‘주간소년서울’ 폐간 [1978년] △10.5 보관자료 마이크로 필름화 [1980년] △12.2 조간으로 전환 [1981년] △7.18 주간지 ‘TV가이드’ 창간 [1985년] △1.1 언론사상 최초로 CTS 도입,태평로 신사옥 입주 △6.23 스포츠전문일간지 ‘스포츠 서울’ 창간 [1990년] △여성월간지 ‘퀸’ 창간 [1992년] △7.31 구로공장 준공 △12.31 ‘선데이서울’ 폐간 [1992년] △1.5주간 ‘피플’ 창간 △7.3 대구인쇄본부 준공 △12.25‘피플’을 ‘뉴스피플’로 제호 변경 [1994년] △2.18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본부’ 발족 [1995년] △11.22 서울신문·스포츠서울뉴스넷 개통 [1996년] △1.29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국내 첫 동화상 속보체제 시작 △10·1 전면 가로쓰기 단행 [1997년] △7.1 세계최초 타워형 샤프트리스 윤전기 배치 △11.20 5세대 CTS 및 타워형 샤프트리스 윤전기 본격 가동
  • 주간지 「선데이서울」 수사

    ◎검찰 “서울신문서 복간” 허위선전… 명예훼손 서울지검은 11일 서울신문사가 지난 91년 발행을 중단한 주간지 「선데이서울」이 마치 속간된 것처럼 펴낸 주간지 「선데이서울」의 대표 손병만씨와 발행인 조매월씨를 서울신문사의 고발에 따라 명예훼손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수사키로 했다. 손씨 등은 지난 8일 서울신문사가 68년 9월부터 91년 12월까지 발행한 선데이서울과 서체마저 똑같은 제호로 주간지를 발행하면서 권두언을 통해 서울신문사가 이 주간지를 복간한 것처럼 선전하고 저속한 내용의 기사를 실어 서울신문사의 공익성과 신뢰성을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서울신문사는 독자와 광고주,시민단체 등으로 부터 서울신문사가 복간한 주간지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보고 이 주간지의 배포 및 판매중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을 취하기로 했다.
  • 서울신문사 성장사(서울신문 50돌 특집)

    ◎국익·공익 우선의 정론 50년/반세기 달려 온 서울신문/최첨단 제작시설 구비… 제2의 도약기에/타블로이드로 출발 정간 49일 시련겪고 85년 새 사옥 준공/국내 첫 납활자 없애 서울신문 50년사는 곧 우리나라의 광복 50년사이다. 겨레가 광복을 맞아 국가의 독립을 다지는 시기인 45년 11월 22일 창간된 서울신문은 창간 이후 50년동안 국가의 발전과 민족이 겪은 영광과 고난의 길을 함께 해왔다.「해방조국의 진실한 대변기관」임을 밝힌 창간호는 타블로이드 양면으로 해방직후의 정국과 세태를 그대로 투영한 최고의 권위지였다.일간지 총발행부수가 50만부 미만이었던 당시 서울신문의 발행부수는 10만부였다. 좌익과 우익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울신문은 엄정 중립을 표방했다.서울신문은 1949년 5월 3일 공보처에서 내린 발행정지처분으로 정간되는 시련을 겪고 49일만인 6월22일자부터 다시 속간됐다.속간 직후 국내 언론사상 처음으로 4면 조·석간제를 도입,사세 신장을 꾀했다.6·25가 일어나자 서울신문은 28일 새벽 2시 반까지 12차례의 호외를 찍으며 전쟁상황을 알렸다. 1·4후퇴 당시 부산으로 피란했던 서울신문은 그해 4월 6일 중앙일간지중 가장 먼저 폐허가 된 서울로 환도,유일하게 진중 신문을 발행하는 신화를 남겼다.56년부터 60년까지 「한글판 서울신문」을 석간으로 발행하던 본사는 68년 11월 22일부터 국내최초로 전지면의 한글 전용을 단행했다. 서울신문은 세월과 역사의 아품을 겪으면서 중립지·정간사태·반공지,또 다시 정간·휴간·화재등 거친 풍파를 헤치면서 성장해왔다.65년 창간 20주년이 되던 해 서울신문은 활자를 개혁하고 국내 최초로 고속 윤전기를 도입했다.68년 11월 22일 본지 전지면을 한글전용으로 바꾸고 70년에는 6인승 취재용 경비행기를 도입했다. 80년 언론 통폐합 당시 서울신문은 12월 1일부터 종래 석간으로 발행하던 관행을 바꾸어 조간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광화문 일대의 스카이 라인을 바꾼 현재의 서울신문사옥은 지난 85년 1월 1일 준공했다.새 사옥을 짓는 동안 서울신문은 82년 1월1일 을지로 5가 임시사옥으로 이전한 뒤 3년동안 그곳에서 신문을 만들었다.대지 2천35평위에 연건평 1만7천8백49평,지하 4층 지상 22층의 웅장한 모습으로 우뚝 선 서울신문 사옥에는 25개 국내언론단체와 5개의 주한외국언론기관이 입주해 명실상부한 프레스 센터기능을 하고 있다. 새 사옥 입주와 함께 서울신문은 85년 1월 1일자를 국내 일간신문으로는 처음으로 납활자 대신 전산제작방식인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로 발행했다.서울신문의 CTS 도입은 1백년의 한국신문사상 신기원을 이룩한것이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르면서 서울신문은 컴퓨터를 이용한 기사작성과 입력·송고체제를 도입,90년 5월 국내신문사로는 최초로 기자입력 하드웨어를완비했고 93년 6월1일부터 편집국에 펜과 잉크를 없앴다. 95년 1월 16일 손주환사장은 『서울신문은 국내정상의 고급정론지로 거듭 태어나 정부와 국민의 가교역을 하는 신문으로 맡은바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제2의 창간을 선언했다.지난 8월에는 4백억원이라는 자본금 확충이 이루어짐으로써 대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증자를 통해 서울신문은 CTS체제 정비와 최신형 윤전기도입등 토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됐다. 특히 서울신문사는 광복·분단 50년과 창간 50돌을 맞아 95년 10월30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LG구룹 협찬으로 제1회 「서울신문 국제포럼」을 개최,정론지로서의 위상을 한층 드높였다.「한민주 통합을 준비한다」는 주제로 열린 이 포럼에는 한·미·중·일·독·러시아의 세계적 석학 및 전문가들이 참석,한민족 통합방법에 대한 진지한 의견 개전과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통일준비 방안을 놓고 심도있는 토론을 벌였다. 한반도 통일문제와 관련해 신문사에서 대규모 국제포럼을 마련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앞으로 이같은 국제적인 학술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국가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이 서울신문의 방침이다. ◎스포츠·대중문화 발전 “선도”/언론 소명 다해 온 자매지/스포츠 서울­스포츠지 대명사… 정상 질주/QUEEN­여성·주부에 다양한 정보 제공/TV 가이드­X세대∼노년 모두에 사랑받아/뉴스피플­뉴스 분석·화제 인물 집중발굴 광복의 기쁨 속에서 태어난 서울신문이 지난 반세기동안 민족 정론을 이끌어 온 것과 더불어 서울신문사는 숱한 자매지를 내 언론의 소명을 다했다.이 자매지들은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선보였고 제 구실을 다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서울신문사가 서울신문 말고도 현재 발행하고 있는 자매지는 스포츠서울,TV가이드,뉴스피플,QUEEN(퀸)등 4종. 19 85년 6월22일 창간한 일간지 스포츠서울은 여섯달만에 경쟁지를 압도하고,스포츠신문 시장을 석권하는 「기적」을 이루었다.그러나 이는 「기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당연한 일일는지 모른다.스포츠서울은 언론사에 남을 획기적인 방식을 몇가지 도입했기 때문이다.먼저 일간지로는 처음으로 전면 가로쓰기로 편집하고,1면등 주요 지면을 컬러로 제작했다.또 철저하게 한글만으로 지면을 채웠다.스포츠신문이라는 특성에 걸맞는 「보는 신문」「즐기는 신문」을 만든 것이다. 지난해 말 자체 조사에서 스포츠신문 가운데 스포츠서울을 첫손에 꼽은 독자는 56.6%였다.스포츠서울이 변함없는 정상임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TV가이드는 19 81년 7월「젊은 잡지,가족 잡지」를 내세워 창간됐다.본격적인 컬러TV시대에 발맞춰 나온 이 주간지는 10대에서 노년층까지 가장 폭넓은 독자층에게서 사랑을 받는 잡지로 꼽힌다.방송·연예계의 따끈한 뉴스,인기인에 관한 화제기사를 다루되 스캔들 보다는 건전한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다른 주간지와 구분되는 장점이다. 전파매체인 방송과 시청자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 구실을 성실하게 해낸 점도 인기 요인의 하나이다. 월간 여성지 QUEEN은 1990년 7월호로 출발했다.여성지가 범람하는 상황에서도 QUEEN이 5년여만에 정상권에 우뚝 선 원인은 무엇보다 흥미있고 유익한 기사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데 있을 것이다.변화하는 신세대 주부들의 문화 진단,화제인물의 숨은 이야기 공개,다이어트 비법,육아·부부 문제,건강정보등 QUEEN이 싣는 기사는 여성에게 정신적인 풍요를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사 주간지 뉴스피플은 1992년 12월12일 첫호를 냈다.20∼40대 중산층 지식인을 대상으로 한 이 잡지는 시사뉴스와 함께 화제인물 발굴에 주력했다.아울러 주간지라는 특성을 살려 시사뉴스를 깊이있게 분석한 특집을 발빠르게 처리했다.이같은 차별화에 힘입어 뉴스피플은 창간 3년만에 광고 신장률 6백%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이제는 없어졌지만 간행 당시 제 구실을 톡톡히 한 자매지는 많다. 먼저 1968년 9월22일 등장한 「선데이서울」을 들 수 있다.이 잡지는 1991년 송년호(제 1192호)를 끝으로 폐간될 때까지 주간지의 대명사로 불릴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TV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60∼70년대 선데이서울은 국민에게 흥미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하며 대중문화 발전을 이끌었다. 서울신문 간행 초기인 1940년대에는 월간지 「신천지」와 시사잡지 「주간서울」이 나와 독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다.신천지는 서울신문 창간 석달 뒤인 1946년 2월에 나와 55년 63호로 마감했다.주간서울은 1948년 10월18일에서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50년 6월26일까지 맥을 이었다. 또 주간지 「소년서울」은 1953년 9월 첫 간행돼 54년 6월 중단됐다가 1970년 4월 같은 제목의 다블로이드판 주간신문으로 부활한다.다시75년 11월 286호로 막을 내렸다. 스포츠 잡지시장을 12년동안 선도한 「주간스포츠」는 1975년 3월30일 창간돼 87년 7월25일 632호까지 냈다.주간스포츠는 TV의 스포츠중계가 많아진데다 스포츠신문의 인기에 밀려 폐간됐다.하지만 간행 당시 스포츠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들었다. 1984년 봄호로 창간한 계간 비평지 「예술과 비평」은 비록 긴 생명을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문화는 있으나 비평은 없는」당시 문화 현실에서 「예술과 비평」은 단단히 한몫을 했다.3년여 뒤에 폐간됐다가 「계간 문예」란 제목으로 1991년 겨울 복간됐다. 이밖에 주간 「서울평론」이 1973년 11월4일에서 75년 11월6일까지 나왔고 1959년에는 「서울연감」을 간행하기도 했다.
  • 서울신문 출판편집국 채영미 기자 별세

    서울신문사 출판편집국 출판부 채영미 기자(차장급)가 28일 상오7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우성7차아파트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향년 48세. 채기자는 73년 입사해 편집국 교열부,주간국 선데이서울부,TV가이드부 등에서 일해왔다. 발인 30일 상오10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의료원 영안실에서 사우장으로.연락처 445­4749.
  • 사양길 걷는 「오락주간지」/「선데이서울」 폐간 계기로 본 실상

    ◎TV·비디오등 영상매체와 경쟁 안돼/시사·정보지로 탈바꿈 “시대적 추세” 주간지들이 경쟁적으로 고급화와 전문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대중오락지로서의 주간지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60년대 중반 이후 대중문화의 창달을 표방하며 탄생한 주간지들은 오랜 세월 대중과 벗하다가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 시대적 사명을 끝내고 마침내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주간지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던 「선데이 서울」이 지난 연말 23년만에 자진종간을 선언한 것은 이같은 시대적 추세를 그대로 반영해주는 일로서 대중 오락주간지의 시대는 사실상 이것으로 종언을 고한 셈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시대적 추세에 따라 기존의 주간지들은 하나 둘씩 시사·정보·교양 등의 전문지로 바뀌었거나 여타의 신생 주간지들도 그러한 방향으로 추구해가고 있다.「선데이 서울」이 종간 되면서 새로 선보인 인물정보교양지 「피플」은 이러한 주간지들의 나아갈 방향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뜻에서 주목된다.현재 유일하게 오락지로 남아있는 「주간경향」이 곧 「피플」과 비슷한 인물교양지를 창간할 예정이라거나 「시사저널」도 그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 등은 이같은 주간지의 새로운 큰 흐름을 잘 알려주고 있다. 주간지들이 이렇게 방향전환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오락매체로서의 기능을 다른 매체에 빼앗겨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먼저 TV의 컬러화·비디오의 보급 등으로 영상매체에게 많은 독자를 빼앗겼을 뿐 아니라 최근에 와서는 여성지 등 각종 월간지나 스포츠지가 주간지의 역할을 겸함으로써 주간지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가장 인기를 누리던 「선데이 서울」의 경우 70년대 전성기에는 17만부나 되던 판매부수가 80년대 들어 하락일로를 달리면서 종간 직전에는 6만부에 그쳤음은 이같은 사정을 잘 보여준다. 판매 저조와 함께 또 하나 문제가 된 것은 주간지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많은 주간지의 경쟁속에서 황색지로 변질되는 등 저질적 일면도 없지 않았던 주간지에 대해 사회의 눈총은 시종 따가웠던 것이다.특히 대부분 주요일간지에서 주간지를 발행하는 상황에서 그 따가움의 도는 더욱 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같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주간지의 긍정적인 면을 결코 간과할 수는 없다고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특히 60∼70년대 갈곳이라곤 남산과 창경원밖에 없었고 볼것이라곤 흑백TV밖에 없던 시절 주간지가 수행한 대중문화창달과 오락 제공의 역할은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전성기에 각축을 벌이던 중앙의 주요주간지는 「주간한국」「주간중앙」「선데이 서울」「주간조선」「주간경향」「주간여성」등 6종으로 이들은 지난 20여년동안 부심을 계속해 오면서 혹은 폐간되고 혹은 방향전환을 해야 했다. 지난 64년 9월 「주간한국」이 일반신문 절반크기의 타블로이드판으로 첫선을 보임으로써 새 장이 열린 주간지시대는 이후 68년8월부터 69년1월 사이 「주간중앙」「선데이 서울」「주간조선」「주간경향」「주간여성」의 순으로 연속 창간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됐다.판형은 「주간한국」을 비롯,「주간중앙」「주간조선」등은타블로이드판이었고 나머지는 4×6배판 책자였다.이중 「주간조선」은 출발부터 시사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뤄 약간 성격을 달리했으며 「주간한국」은 80년초 시사지로 방향전환을 했다.또 90년초에는 「주간여성」도 여성전문지로 제모습을 찾아 갔으며 「주간중앙」은 88년에,「선데이 서울」이 지난 연말 각각 자진폐간했다.마지막 남은 「주간경향」도 경쟁지 없는 대중지는 자연도태된다는 잡지생태로 볼 때 그다지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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