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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셔요] 춤추며 노래하는 민요가수 최정자(崔貞子)양

    [안녕하셔요] 춤추며 노래하는 민요가수 최정자(崔貞子)양

    녹두빛 저고리에 앵두색 치마, 장삼과 족두리를 갖추고 민요가수 최정자(崔貞子)양이 부채춤을 추고있다. 본격적인 민속무용을 배우기 시작한지 3개월. 이제 무대에 올라서면『막대기 처럼 몸매가 굳어버리는 버릇』은 없어질 것 같단다. 「레코딩」가수에서 무대가수로 폭을 넓히자는게 최정자양이 춤을 시작한 이유인것같다.『무대에 올라서면 율동은 커녕 막대기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다』는게 이제까지 그에대한 농담 아닌 진담이고보면 최양의 남모를 고충을 짐작할 수 있다. 「레코드」판매율로 치자면 최정자는 이미자(李美子) 다음가는「달러·복스」다. 더구나 이미자의 인기가 하락세를 보인 70년에 들어서는 단연「톱·클라스」의 민요 가수로, 적어도「디스크」가에서는 그렇게 인정이 되었다. 그러나「레코드」계의 여왕이지만 최정자가 무대에 올라서면 마치 나무둥치. 이것은 TV무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TV, 극장무대, 하다못해「나이트·클럽」이 가수의 주요활동무대가 되고있는 이때 이 부동자세의「스테이지·매너」는 곤란을 느낄수 밖에. 그래서인지 최정자양은 좀처럼 무대에 나서질 않았다. 물론 이유는 딴데에도 있다. 그의 동반자이자 작곡가인 황(黃)우루씨는 최양을 일반극장이나「나이트·클럽」에 내보내지 않는 이유를 『돈벌이에 악착같다는 인상을 받기가 싫어서』그리고 『그런데 나가서 배울게 별로 없기때문에』라고 못을 박았다. 「레코드」취입이나하고 하고싶은 노래를 계속하면서 노래와 가정을 양립시키는 것을 만족하면 그것뿐이란 계산이다. 그런데 최정자양은 황씨의 의사와는 달리 무대가수를 꿈꾸고 있다. 무용연구소를 다니기 시작한 것도 실은 몰래 몰래. 하루 1시간씩 석달을 다니는 동안 주변에서 아무도 알지를 못했다. 최양이 다니는 무용연구소는 서울역전의 은방초(殷芳草) 무용연구소. 최양을 지도해온 은방초(殷芳草)씨는『무용 전공자보다도 굉장히 열성이에요』라고 칭찬이 대단했다. 3개월간에 기초는 완전히 끝냈고 화관무, 살풀이등 전문적인 춤을 익히기 시작했는데, 이 진도는『일반 교습생에게서 찾아 볼수 없게「스피디」하다』는 것. 노래할때 몸매를 부드럽게 하기위해 시작했지만 경우에따라서는 민속춤을 부전공으로「마스터」할 뜻도 엿보인다. 부르는 노래가 민요니까 민속춤을 전공하는 것이 어쩌면 필수과목에 해당할는지 모른다. 사실상 TV화면에 비치는 최정자의 자태는 전보다 상당히 유연해졌다. 부동자세의 나무둥치에「리듬」이 붙기 시작한 증거다. -좀 더 춤실력을 자랑해보이지 않는 이유는? 『성격탓인가봐요.「스포트」가 비치면 자꾸 떨리고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는걸요 』 가수이력 5년의「스타·싱어」답지않게 소심한 성격. 어떤 사람은 최양의 이 소심하고 섬세한 감정이 바로 그녀의 장점이라고 추어세웠다.『연예계 10년이 돼도 딴따라가 될수없는 성격』이라고. 이것은 이제까지 그녀가 불러온 노래에서도 나타난다. 5년전『월남에서 보내주신 오빠의 편지』로 「데뷔」한 최양은『옹달샘』 『초가삼간』등 「히트」를 비롯해서 5백곡 가까운 노래를 취입했다. 그녀의 노래는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민요조이면서도 결코 비탄조가 아닌게 특색. 특히 70년에 들어서면서 최양은『창부타령』『매화타령』의「클린·히트」로 서울신문 문화대상 수상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다. [선데이서울 70년 9월 20일호 제3권 38호 통권 제 103호]
  • 폭처시하에 벌벌떨던 남편 고소

    폭처시하에 벌벌떨던 남편 고소

    며칠전 부산시 온천동 안(安)모씨(40)는 『호랑이같은 마누라를 처벌해 주소』라는 색다른 고소장을 경찰에 냈다. 안씨는 작년봄 키1m75cm, 몸무게 70kg 의 여장부 이모여인(30)과 재혼했는데 이여인은 걸핏하면 남편과 전처의 자식들을 두들겨패 온집안이 불안과 공포에 싸여 떨고 있다는 것. 『이건 엄처시하가 아니라 폭처시하군』-솟장을 보던 경찰관들 각기 한마디. <부산(釜山)> [선데이서울 70년 9월 20일호 제3권 38호 통권 제 103호]
  • 『숲속의 여인』서 주연 맡은 최지희(崔智姬)

    『숲속의 여인』서 주연 맡은 최지희(崔智姬)

    「누드·모델」아니면 외국영화의 한「신」같지만 실은 국산배우 최지희(崔智姬)양. 김기덕(金基悳)감독의『숲속의 여인』중 한 장면이다. 3년전 결혼과 함께「스크린」을 떠났다가 3살짜리 아들을 얻고 다시 영화계에 돌아온 최지희는 지금 정상에의 도전엔 거의 필사적이다. 이처럼 옷을 훌훌 벗어던진 것도 말하자면 필사적인 노력을 나타내는 전신투구의 열의라고나 할까? 「카르멘」을 원본으로한『숲속의 여인』(유병훈(柳秉薰) 각색)에서 최지희는 주연인 가련한「집시」역을 맡았다. 옷을 벗는게 꼭 필요해서라기보다 서슴지않고「카메라」앞에 전라를 드러낼수있는 용기와 의욕이 장하다 할지-.「스타」재개업후 칼싸움아니면 왈가닥류의 영화에만 출연하던 최지희에겐『숲속의 여인』이 그녀의 쌓였던 의욕에 불을 지른셈. 이 온몸으로의 연기장면이 과연 당국의 가위질을 모면할 수 있을지…? [선데이서울 70년 9월 20일호 제3권 38호 통권 제 103호]
  • 한꺼번에 눈뜬 장님형제

    한꺼번에 눈뜬 장님형제

    장님 4형제가 한꺼번에 눈을 떴다. 눈을 뜬 형제들에게 맨처음 비친 모습은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 그 가슴에 함께 매달려 벅찬 기쁨에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빛을 찾아준 의사와 간호원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참으로 흐뭇하고 인간애 넘친 이야기가 여기 있다. 전남 승주(昇州)군 별양(別良)면 두고(斗庫)리 박영순(朴永順)씨 (42)의 다섯아들중 네형제에게 4대째 만에 광명을 찾아준 이는 순천(順天)시 매곡(梅谷)동 민(閔)안과원장 민경봉(閔庚峰)씨(45)-. 성용(成容)(20) 성곤(成坤) (14) 성문(成文)(11) 성인(成仁)군(2)등 형제에게 민원장의 인술(仁術)의 손길이 뻗치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 장님일가의 생활의 기둥이었던 아버지 이정수(李正洙)씨(46)의 죽음때문이었다. 지난달 13일 새벽 이웃마을에서 독경을 해주고 번 쌀 5되와 보리쌀 2말을 짊어지고 돌아오던 이씨가 앞을 못본 탓에 열차에 치여 숨져버린 것이다. 쌀과 보리쌀이 섞여 마구 흩어진 철길위에서 피투성이가 된 이씨를 부둥켜 안고 몸부림치는 박여인과 눈먼 아들들의 통곡은 너무나 처절한 것이었다. 어느덧 몰려든 마을사람들도 오열을 참지 못했다. 눈먼 시아버지와 남편, 아들들을 거느리고도 한마디의 불평없이 살아온 박여인의 슬픔은 온 마을의 슬픔이었다. 동네 아낙네들이 쌀과 보리쌀을 보내 치른 장례식에서도 온 마을이 통째 통곡에 잠겼다. 이 슬픈 장님 가족들의 이야기가 전해지자 (서울신문 8월 22일 충남판 삼거리등) 도내 곳곳에서 온정의 밀물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광주맹아학교에서 사람이 달려와 장님 형제를 맡겠다고 나섰다. 어떤 공무원은 박봉을 쪼개 보냈으며, 이웃마을 사람들은 쌀과 보리쌀을 보내줬다. 이런가운데 이들 형제를 무료로 수술해 주겠다고 나선 사람이 바로 민원장-. 정밀한 진찰끝에 『수술을 받으면 눈을 뜰 수 있겠다』 고 진단했을 때 박여인은 하늘같은 남편을 잃은 슬픔도 잊은채 어쩔줄 몰라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6년전 16살 때 장님 이정수씨에게 시집온후 오직 성한 눈을 가진 아들 낳기만을 소원으로 한결같이 살아온 박여인이었다. 둘째아들 성찬(成燦)군(16·별양중1)을 빼고 4형제를 모두 장님으로 낳았을 때마다 몸부림치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달래며 숙명이라고 체념해버린 그녀였다. 증조할아버지 진석(鎭錫)씨가 어릴때 홍역을 앓고난 후 눈이 멀어버리자 할아버지, 아버지 형제를 거쳐 4대째를 이어 장님으로 태어났던 불운의 가족. 이씨가 독경으로 생활비를 벌어 들이기 시작한 것도 불과 5년전의 일. 생활을 도맡아야 했던 박여인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과 들을 헤매며 품을 팔아 땔감과 먹을 것을 벌어들여 억척스럽게 장님 가족의 생활을 꾸려나가야 했었다. 효부 열녀로 아낌없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남편이 독경을 배워 판수가 된 후부터는 생활이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우울한 그녀의 마음은 조금도 밝아질 수 없었다. 그러나 효심과 공경으로 시부모와 남편을 극진히 섬기고 아들들을 끔찍이 사랑하여 불평없이 살아온 갸륵한 여인-. 이러한 그녀 앞에서 아들 4형제가 모두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었으리라. 4형제를 선천적인 백내장(白內障)으로 진단한 민원장은 『처음에는 주저했으나 꼭 한번 불쌍한 형제들에게 광명을 찾아주자는 결심으로 수술을 했읍니다』고 말한다. 민원장은 지난달 28일부터 4일동안 하루 1명씩 수술을 했다 하루 3시간씩의 어려운 수술에도 피로를 느끼지조차 않았지만 수술 결과에 애가 타서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었다는 얘기-. 9월 4일 낮2시 숨막히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민안과의 입원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민원장의 떨리는 손이 성용군의 눈에서 붕대를 벗겨 나갔다. 천천히 천천히…. 마침내 『보이느냐』는 민원장의 애타는 목소리에 성용군은 의사옆에서 초조히 지켜보던 어머니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흐느끼기 시작했다. 민원장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오열을 깨물며 이튿날부터 4형제의 붕대를 차례로 모두 풀어냈다. 수술은 모두 성공이었다. 4형제는 난생 처음 보는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아들4형제가 눈을 뜨게 된 기적이 일어났다. 다섯 모자는 얼싸안고 한 덩어리가 되어 벅찬 희열을 주체할 줄 몰랐다. 이 정경을 지켜보던 원장도 간호원도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평생 처음 의사로서의 보람을 맛보았어요』라고…. 민원장은 또 할아버지 이상덕(李相德) 노인(62)의 수술도 해보자고 했으나 노인은 『너무나 염치없고 이제 다 늙어 수술하면 뭣하겠느냐』고 한사코 사양. 전남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 출신인 민원장은 51년 전남의대를 나와 군의관 생활을 거쳐 61년 순천(順天)에서 개업했다. 4형제의 첫 시력은 0.5정도. 오는 15일까지 치료를 하면 0.8정도로 시력이 좋아지겠으며 안경을 끼면 생활에 지장이 없으리라는게 민원장의 말이다. 강렬한 우성유전에 의해 장님이 된 이들은 비록 눈을 떴지만 다음대에서 장님이 나오지 않는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순천> [선데이서울 70년 9월 20일호 제3권 38호 통권 제 103호]
  • 「미스·경희대(慶熙大)」유정란(劉貞蘭)양-5분데이트(100)

    「미스·경희대(慶熙大)」유정란(劉貞蘭)양-5분데이트(100)

    금주의 표지 「모델」로 나서준 유정란(劉貞蘭)양은 52년생의 발랄한 아가씨. 경희(慶熙)대학교 무용과 1년에 재학중이지만 국립(國立)무용단에 「픽·업」되기도 한 재원. 유(劉)양이 무용을 시작한 것은 한성(漢城)여중 1학년때부터. 중학교 2학년때 이미 「발레」로 이대(梨大) 무용 「콩쿠르」에 입선했고 고등학교 3학년때는 또 한국무용으로 경희대학 「콩쿠르」에 1등으로 입상. 국립무용단 단원이 된 것은 70년 1월. 그전에는 송범(宋范)씨의 제자로 「발레」와 한국무용을 골고루 익혔다. 무대에 선 경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니 퍽도 조숙한 아가씨다. 가정쪽으로는 상업을 하는 아버지 유덕수(劉德壽)씨(47) 의 2남 4녀중 세째 딸. 어려서부터 무용을 했기 때문에 강습비다, 의상비다 해서 집안의 돈을 많이 쓰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저를 제일 귀여워 해요』라고 살짝 귀띔. 『옷은 모두 무대에 설때 입는 무용복이라 평소에는 입을 수도 없는 것만 옷장 가득히 걸려 있어요』 그렇다고 평상복을 더 해입겠다고 부모님께 조를 수도 없고 무용이 좋아서 그렇게 된거니까 별 불평은 없단다. 하기야 학교엘 안가는 주말에도 무용연구소에 나가서 연습만 한다니까 별 지장은 없을게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계속 국립무용단에서 무용을 하겠다는 결심. 『결혼은 생각해본적도 없어요』취미는 낙서. 존경하고 있는 「발레니너」는 「마고트·폰테인」.[선데이서울 70년 9월 20일호 제3권 38호 통권 제 103호]
  •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팬들 가슴에 묻힌 장덕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팬들 가슴에 묻힌 장덕

    [다시보는 선데이서울-표지모델편 ③] “사랑했던 사람은 곁에 없지만 사랑했던 마음은 남아있어요.” 1990년 2월 대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지만 항상 외로웠던 한 여가수가 조용히 세상을 등진다. 그로부터 반년 후 그녀의 오빠 역시 세상을 떠난다. 가수 장덕. 80년대 후반 빅 히트곡 ‘님 떠난후’의 가사처럼 그녀는 그렇게 마음만을 남겨놓고 우리곁을 떠났다. 장덕은 1962년생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음반 프로듀서다. 진미령의 노래로 유명한 ‘소녀와 가로등’은 장덕이 불과 중학교 2학년때 작곡한 곡일 정도로 그녀의 천재성은 어릴때 부터 빛났다. 그러나 번뜩이는 천재성의 뒷면에는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불우한 어린시절도 존재한다. 음악이 유일한 친구였던 장덕. 그런 그녀를 세상으로 이끈 것은 오빠 장현이다. 남매는 ‘현이와 덕이’라는 듀엣으로 활동하며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같은 추억의 히트곡을 남긴다. 가수로서 작곡가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그녀. 그러나 대중속에서도 항상 외로웠던 그녀는 수면제로 인한 약물 과다 복용으로 1990년 팬들 곁을 떠난다.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노래로 추모했던 오빠 장현 역시 7개월 후 ‘설암’으로 인생을 마감한다. ’사랑받았지만 항상 외로웠던’ 남매의 명복을 빈다. 사진=선데이서울 501호 (1978년 6월 25일자) 나우뉴스 박종익기자 pji@seoul.co.kr
  • 미스 여군(女軍) 선발대회

    미스 여군(女軍) 선발대회

    9월 6일로 창설 20돌을 맞은 여군은 푸짐한 자축행사로 초가을을 수놓았다. 2일 「타자 경기대회」를 비롯하여 사흘간 계속된 이번 잔치의 절정은 3일 있었던 「미스 여군」선발 대회. [선데이서울 70년 9월 13일호 제3권 37호 통권 제 102호]
  • 웃어서 남주나, 재치학교 세운다고

    웃어서 남주나, 재치학교 세운다고

    KBS의 장수 인기「프로」『재치문답』의 재치 박사들이 목하 「재치학교」의 설립을 추진중이다. 메마른 세대에 웃음과 「유머」를 선사하자는게 재치학교 설립동기. 이 재치있는 학원의 재치있는 운영계획을 들여다 보면-. 농담이 진담으로 바뀔 듯… 저마다 재치있는 계획짜 『가만, 우리 이럴게 아니라 재치학교 같은거 하나 세우면 어떨까?』라고 재치문답박사답게 재치있는 「아이디어」를 낸 최초의 발설자는 금년 4월부터 재치문답「프로」에 출연하고 있는 민병근(閔秉根)박사(성심(聖心)병원 정신과과장). 이 기발한 얘기의 발단은 지난 9월1일 하오3시 서울 충무로에 있는 빵집, 6명의 재치박사 전원이 참석한 자리에서였다. 첫 발단은 오혜령씨(여류극작가)가 이제 그만두겠다고 방송하고 난 뒤라 『당신이 빠지면 어쩌노?』하는 얘기가 오고갔다. 『그러고 보니까 최초의 박사 안의섭(安義燮)씨(만화가)를 비롯해서 5명이 『재치문답』을 졸업했고 이번엔 오혜령씨 마저 졸업하는 셈이 되는건가? 졸업생도 내고 했으니 아주 학교를 세우지…』 농담으로 꺼낸 민박사의 얘기지만 한번 생각해 볼만한 얘기라고 박사들은 맞장구. 이날은 이 정도로 헤어졌다. 다음날인 2일 하오 2시께, 남산 S다방에서 민박사와 마주 앉게된 이상헌(李相憲)씨(새생활 설계실장). 『어제 그 얘기 생각 해보니까 참 좋아요. 아주 우리 본격적으로 재치학교 하나 세우도록 합시다』 농담으로 꺼낸 얘기가 진담으로 바뀌고 말았다. 『좋아요. 그럼 우리 어디 재치학교 설립에 대한 각자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다음주 만날 때 종합검토해 보도록 합시다』 이래서 재치박사들은 각자 재치학교 설립에 대한 재치있는 계획을 짜내기에 골몰, 우선 재치박사들이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들어보면-. 웃음과 지혜를 배워주고 수업료 재치있게 받자고 ▲ 민병근박사=한국인이 원래는 낙천적이고 풍류가 섞인 아주「위트」가 넘치는 민족이었는데 그동안 역사적으로 풍상을 겪는 동안 웃음을 잃었다. 외국인이 우리 한국사람을 보고 너무 표정이 없다고『한국인은「데드·마스크」같다』평할 정도니 재치학교설립은 시급하다. 또 정신의학적인 면에서도 긴장이 계속되면 신경장애를 가져와 수명을 단축케 한다. 웃음을 배급 해주는 학교를 두어 우울한 사람들이 찾아와 자동차를「보링」하듯 한바탕 웃어 우울을 말끔히 씻고 명랑한 기분이 되어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한편 우수한「코미디언」도 양성 배출토록하면 어떨까? 수업료요? 받기는 받아야 할텐데 재치있는 방법으로 받아야지요. ▲ 이상헌박사=우선 학원으로 발족토록 한다. 물론 원장에는 민병근박사. (발설자니까) 명동근방의 「빌딩」2층쯤에 방 하나를 빌어 「재치학원」이라는 간판을 건다. 사람이 웃으면 성격이 희망적으로 형성되어 운명도 개조될수 있다. 『웃으며 삽시다』란 큰 현수막을 간판 아래 또하나 붙인다. 강사진은 우리 6명의 재치박사들. 아주 친절하게 손님과 마주앉아 생활의 지혜를 배워준다. 수강자는 어린이에서부터 80 할아버지 까지 누구라도 좋다. 상담에서부터 문제해결까지 전부 무료로 하면 수강자는 인산인해를 이룰건 틀림없는 일. 그 외 부대사업으로 『웃고 사는 비결』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여기서 들어오는 수입은 학교로 발전시키기 위한 기금으로 삼는다. ▲ 오현주(吳賢珠)박사 (전「미스·코리어」)=우선 외국의 「차밍·스쿨」식으로 「파티·매너」도 아울러 배워주도록 한다. 대부분의 경우 모임에 나간 사람들 화제가 없어 꿀먹은 벙어리이기 일쑤고 그저 눈치 보며 음식이나 먹고 헤어지는게 고작이다. 이렇게 되면 즐거운 「파티」가 고역으로 끝나는 셈이니 이건 말도 되지 않잖아요? 멋진「유머」와 「조크」를 배워 즐거운 생활인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거죠. 모든 경비는 원장이 부담토록 한다는 이상헌씨안에 적극 찬성한다. ▲ 왕수영(王秀英)씨(여류시인)=남편과 싸운 아내를 우선적으로 접수, 상담에 응한다. 왜 싸웠나? 아내가 반성토록 시간적 여유를 준다. 그 다음「위트」로 남편을 설득시킬 수 있는 비결을 주어 보낸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언제 싸웠나 싶을 정도로 이 둘은 행복한 부부가 될게 아니냐? 여기에 대한 보상은『선생님의 재치덕분에 우린 아주 행복한 부부가 되었답니다』하는 감사의 편지로 족할 뿐. 좋은일 해서 남주나요? 죽으면 천당은 맡아논 것이니까, 이 또 얼마나 반가운 일 입니까? 설립날짜등 아직 못정해 다시만나 구체안 짜기로 오혜령씨=우선 강사진들의 교양을 높인다. 그 다음 사람에게서 제일 중요한 언어문제에 주력, 언어훈련실습을 철저히 하도록 한다. 그 다음 시간엔 만사를 유쾌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워주도록 한다. 또 참신한 새로운「유머」를 많이 개발, 찾아오는 상담자들에게 나누어 준다. 기왕 시작한다면 본격적으로 해야지 그저 그렇고 그렇다 할 정도라면 애당초 그만두는게 나을 것 같다. 이상 5사람들의 구상을 들어보았다. (김현민씨는 연락이 닿지 않아 의견을 듣지 못했음) 아직은 재치학교설립이란 기발한「아이디어」에만 합의를 보았을 뿐, 이들 여러사람의 뜻하는 바가 제가끔임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은 다시 만나 각자의 의견을 종합, 통일할 예정이며, 설립에 필요한 경비문제등을 해결할 생각. 어쨌든 메말라 가기만 하는 요즈음 모처럼 재치있는「아이디어」를 안출, 세상을 보다 명랑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이들을 나무랄 사람은 없을 듯. 그러나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웃음과 재치를 이 재치학원에서 배급받아 갈것인지는 학교가 서 보아야 알 일. 그러나 61년 4월에 시작, 근 10년가까이 계속된 『재치문답』의 박사들이 강사진이고 보면 웃음이 익어갈 희망은 충분히 있다.[선데이서울 70년 9월 13일호 제3권 37호 통권 제 102호]
  • [안녕하셔요] 수다장이 싫다는 극성파 강부자(姜富子)

    [안녕하셔요] 수다장이 싫다는 극성파 강부자(姜富子)

    안방극장의 극성파 주인공 강부자양은 요즈음 모처럼 마련한 새집 단장에 여념이 없다. 한강 「맨션·아파트」 34동 203호. 남편 이묵원(李默園)씨와 함께 「탤런트」부부 합동작전으로 『셋방신세 3년만에 내집 마련했읍니다』고 희색이 만면-. 극성파 일변도엔 질색 “현모양처가 적격예요” 「드라머」에서는 수다장이에다 억척꾼으로 극성을 부리곤하지만 실제로는 알뜰한 주부. 차분하게 들려주는 말솜씨라든가 풍겨주는 인상이 한마디로 현모양처형. 「드라머」에서 처럼 극성을 떨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분위기를 풍겨준다. 『어쩌다 그런 극성스런 역에만 출연하다 보니 이젠 아예 내 자체가 그런 「타이프」인 것처럼 시청자에게 인상지어져 버렸어요. 달갑잖은 일이에요. 어디 여자가 그렇게 왈가닥일 수가 있겠읍니까? 그런데 안타까운 건 방송국에서 이제 그런 역이 아니면 내가 할 역이 없다고 딱지를 붙여 놓은 거예요.지금까지는 그저 주는대로 아무 역이나 마다않고 했는데 이제부터는 좀 가려가면서 해야겠어요』 물론 작가나 연출가가 모두 잘 알아서 맡기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극성파 일변도로만 딱지를 붙이면 곤란하다는 얘기. 자기 용모나 성격으로 보아서 현모양처역이 가장 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니죠. 나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연출가의 말을 절대적으로 지켜오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작정이에요. 설사 내가 옳고 연출자의 말이 못마땅하다고 할지라도 내쪽에서 고집을 꺾어요. 그러는게 도리이고 또 연예계의 「룰」이라고 생각해요. 안그러면 가뜩이나 흩어지기 쉬운 이 세계가 도저히 제대로 발전해나갈 수가 없다고 봐요』 요즈음 신인 「탤런트」들을 보면 공연히 「폼」만 먼저 잡으려고 하는데 그런 태도는 삼가야하리라는 의견. 강양의 「데뷔」 당시에는 그저 「열심」히 하자는 마음 하나로 매달렸다는 것과 비교하면 요즈음엔 그런 정열과 정신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고 못마땅한 표정. 녹화시간 지키지 않는 탤런트를 제일 싫어해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야죠. 무슨 일이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어디 하루 아침에 「톱·탤런트」가 될 수 있겠읍니까? 그만큼 노력해야 하고 인내해야 하고 배워야죠. 제가 KBS-TV 2기로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간 사람이 15명이었는데 지금 남은 사람이 저와 두사람(이묵원, 권명오(權明五))뿐이에요. 그것만 보아도 이 직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잖아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과 자세. 조금만 인기가 높아지면 으례 녹화시간에 한 두시간씩 늦게 나오는데 그럴 수가 없는거라고 언성을 높인다. 『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녹화시간만은 꼭 지키고 있읍니다. 9시 집합이라고 하면 8시에 나가서 미리 화장하고 소도구 챙겨놓고 모든 준비를 완료해야 하는 겁니다. 모두 그렇게 한다면 왜 밤을 새운다, 빵꾸가 난다하는 소동이 일어나겠읍니까? 출연자 때문에 「슈팅」이 늦어진다는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준비 다 해놓고 한 두사람 때문에 몇시간씩 기다리는 것이 지겨워, 한때 영화에 나가던 것을 그만 두었다고. 영화는 주연배우가 나타나기 기다리다 해 다 보내는 것 같아서 생리에 맞지가 않더라는 것. 강양은 KBS-TV 「탤런트」2기생. 충남 강경이 고향으로 강경여고를 거쳐 충남대학 국문과를 62년에 졸업하고 그해 12월에 「탤런트」 시험에 응시한 것이 「재수가 좋아」 합격됐다고. 1기 모집때에는 「얼굴」만 보고 모집했기 때문에 아마 그때 응시했으면 틀림없이 미역국을 먹었을 거란다. 무작정 출연하다 보니 도움도 됐고 손해도 봐 「탤런트」시험에 응시한 것은 별로 뚜렷한 동기에서가 아니고 우연히 해본 것일뿐. 어렸을 때부터 예능 방면에 소질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꿈은 「아나운서」나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성우가 되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탤런트」시험이 먼저 있어서 그냥 연습삼아 응시해본 것이 합격, 오늘에 이르렀다. 남편 이묵원씨와는 KBS-TV 동기생. 처음에는 동료 「탤런트」로 친구처럼 지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에 빠졌고 4년 동안의 연애끝에 67년 5월에 「골·인」-. 8년 동안 「탤런트」 생활을 하면서 출연한 작품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작품은 별로 없단다. 『그만큼 아무 작품에나 나갔다는 얘기겠죠. 무슨 역이든 주면 마다 않고 그냥 했으니까요. 도움이 된 점도 많지만 손해도 많아요. 돈만을 생각한다면 많이 출연하는게 이익이겠지만 어디 꼭 돈만을 생각할수가 있겠어요? 차분히 생각해볼 문제예요』 그러나 이말은 연출가의 말을 거역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못박는다. 9월10일 효창운동장에서 열릴 제2회「탤런트」축구경기에 대비, 매일 연습장에 나가 「콜라」 빵을 사주며 성원하는 것이 일과. 그밖에 녹화가 없는 날이면 하루종일 연습장(휘문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살았다. 조용히 자연을 벗삼아 농장 경영하는 것이 꿈 「유호(兪湖)극장」 『꿈은 좋았는데』가 끝나고 이어서 들어가는 『언니』에는 「타이틀·롤」을 맡았다. 그밖에 『고독한 길』에 출연 중. 연극무대에도 열을 올리고 있어 63년부터 극단 「산하(山河)」의 「멤버」다. 무대작품수 30~40편을 헤아리는 고참(?) 배우지만 역시 연극은 어렵고 어려운 것. 할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 연극인 것 같다고. 「라디오」에도 심심찮게 출연해왔는데 요즈음에는 동아방송에 『사모님 만세』라는 「프로」에 나가고 있다. 결혼 3년만에 집을 마련한 강양의 앞으로의 꿈은 농장을 경영하는 것. 조용히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최대의 행복일 것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꼭 「여류작가」가 되겠단다. 대학 전공과목이 「국문학」이긴 했지만 웬일로 살아가노라니 글로 써서 남기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막상 글재주가 없어서…. 그러나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꼭 문학공부를 해서 여류작가가 되고 싶어요』하며 수줍게 미소 짓는다. 외딸 헌주(憲柱)양은 올해 2살.[선데이서울 70년 9월 13일호 제3권 37호 통권 제 102호]
  • 김희준 아씨, 미국 가게 되나

    김희준 아씨, 미국 가게 되나

    아씨 김희준(金喜俊)양이 서울에 있는 외국 대사의 주선으로 멀지 않아 미국 나들이를 하게 된다는 소문이다. 과거 김희갑(金喜甲) 김진규(金唇奎) 유현목(兪賢穆)씨등 한국 영화 예술인들이 미국무성의 초청으로 미국에 다녀온 바 있다. 이 소문에 대한 방송국 주변의 반응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동료 「탤런트」들은 부럽다 못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아씨』의 담당 PD 고성원(高聖源)씨는 『그럴리가-』라고 전혀 이 소문을 믿으려조차 하지 않았다. 1백50회를 넘기는 동안 거의 절대적인 인기를 모은 이 연속극은 인기가 유지하는한 연말까지 끌고갈 계산이고 단 1회라도 김희준이 빠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드라머」의 세 기둥 중 하나인 시아버지 주선태(朱善泰)를 죽은 것으로 처리했고 그러지 않아도 극이 처지는 느낌인 현재 김희준을 다른 「탤런트」로 바꿔치울수는 도저히 없다는 것. 김희준의 탈락은 곧 『아씨』의 종결과 동일하다는 얘기다. 『야! 저기 아씨 간다』 김희준이 거리를 거닐면 어린아이들까지도 「아씨」를 알아본다. 「탤런트」로서의 김희준이란 이름은 몰라도 누구나 「아씨」는 안다. 한국적인 고즈넉한 「이미지」때문이다. 한국적이라는 것-.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향수어린 그리움을 갖게한다. 고요속의 미덕, 고전적 한국의 여성미는 더욱 외국인들에게 「어필」한다. 그 실례가 있다. 『아씨를 보시는 시간입니다』 서울의 어느 외국 대사관 직원들 사이에 간혹 이런말이 오고가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대사관 고위층이 그 시간을 보기 때문에 급한 용무가 아니면 되도록 그 사람과의 그 시간 업무를 사양하자는, 이것도 한국적인 미덕이랄까…. 한글학자인 한갑수(韓甲洙)씨는 「아씨」란 말을 현대에도 적용시켜 쓰자고 주장한다. 어쩐지 「아씨」하면 옛날 여성을 연상케하지만 오늘날에도 그 말을 자꾸 쓰면 습관에 따라 조금도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란 얘기. 그런데 이미 한글학회에서는 그말을 쓰고 있다. 한글학회에 전화를 걸어보면 『저「미스」김 이에요』 하지 않고 『저 김(金)아씨에요』한다. 「김(金)아씨」「이(李)아씨」「박(朴)아씨」「유(柳)아씨」… 나쁘지 않다. 한갑수씨는 심지어 「마담」을 「마님」 이라도 부르자고 까지 제의한다. 흔히 다방에서 「가오마담」이라고 하는 것을 「허울마님」이라고 부르자는 것. 「가오」는 일본말 「얼굴」이란 뜻이지만 얼굴보다는 「허울」로 해서 그렇게 부르자는 의견-. 이런 얘기도 김희준의 「아씨」에 연유해서 나올 정도다. 한글학자의 어휘연구에까지 「아씨」가 등장하는데 고위층 외국관리나 또 국내의 저명인사들이 한국적인 「이미지」인 「아씨」를 좋아하고 본대서 흉될 것은 없다. 오히려 자랑거리다. 바꾸어 말하면 김희준이란 「탤런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전형적 한국의 여성상을 좋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전제로해서 얘기를 꺼내보자. 우리 정부의 고위층 한분도 「아씨」의 「이미지」를 좋아한다는 것. 어느날 모 외국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가 나누어졌다. 한국적인 아름다움. 고미술품이라든가, 한국무용이라든가, 건축미라든가, 정원이라든가, 교양인이 만나 얘기할 수 있는 자연스런 대화속에 TV 「드라머」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는 것. 그때 외국대사는 자신이 본 한국영화나 TV 「드라머」가운데 가장 한국적인… 더구나 여성의 미덕을 통해 그것을 나타낸 『아씨』란 작품에 대해 퍽 호감을 갖고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것. 대부분의 한국영화나 TV「드라머」가 국적불명, 이를테면 한국말 대사가 없으면 어느나라 얘기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주체성이 없는 것들인데 반해 『이것이 뚜렷하게 한국만이 가질수 있는 얘기』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방 아니면 당구장…그렇잖으면 「고고·하우스」…. 일반 가정에서 보기드문 훌륭한 응접실이 아니면 영화나 TV「드라머」의 배경이 될 수 없는가 싶을이만큼 알쏭달쏭한 것들이 판을 치는 속에서 「아씨」가 지적되었다고해서 이상할 것 없다. 자랑스러운것…. 너도 나도 자랑스러운것은 더욱 자랑하고 싶어지는 것. 자랑스런 「이미지」를 풍겨주는 김희준을 미국에 소개하면 어떨까. 그래서 김희준을 미국에 보내자는 얘기는 자연스럽게 나왔을 법하다. 「아씨의 미국 나들이… 」 김희준은 『그렇게 된다면 오죽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녀 자신은 이에 관한 소문의 사실여부를 『아직 알수없다』 면서 『공식적인 통지는 전혀 받지않았다』 고 밝혔다. 대개의 경우 초청 도미는 5~6개월의 수속기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있다. 그러니까 김희준의 도미수속이 실제로 진척된다해도 연속극 『아씨』에는 별 지장을 주지 않으리라는게 다른 관측자의 얘기다. 70년말까지 끌고 나갈 예정인 『아씨』도 경우에 따라서는 2백회로 종료할거라는 또 하나의 관측이 이 김희준 도미설과 묘하게 관련되어있다. TV「탤런트」로는 처음으로 김희준이 이 자랑스러운 나들이를 하게될는지 그것은 아직 확정사실은 아니다. 다만 주선에 나선 외국대사를 비롯한 외국사절이 『아씨』의 「팬」이었고 그것이 이 김희준 도미라는 열매를 맺는다면 김희준은 훌륭한 민간 외교사절의 임무를 맡게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TV 시대의 전개와 함께 행운을 잡고 TV의 여왕이 된 김희준은 지금 한창 미국나들이의 꿈에 가슴 설레고 있는 것이다. [선데이서울 70년 9월 13일호 제3권 37호 통권 제 102호]
  • 안방문 열었더니 발이 넷

    안방문 열었더니 발이 넷

    부산시 M회사 유(兪)모씨(30)는 회사일로 야근을 하고 밤늦게 집으로 들어가 안방문을 열어보았더니 남녀 한쌍이 한자리에서 정답게 취침중, 기겁을 했것다. 『웬 놈이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자고 있던 남자도 벌떡 일어나 마주 『넌 웬 놈이냐』고 고함, 대판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웃 사람들이 달려와 싸움을 말려 피보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고. 유씨는 그날 아침 출근하면서 다른 집으로 이사간다는 부인의 말을 들었는데도 회사일에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그만 부인의 말을 깜빡하여 습관대로 집을 찾아들었다가 그같은 실수를 범한 것이라나. 『이사 자주 다녀야하는 가난뱅이 신세가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유씨는 한탄. <부산(釜山)>[선데이서울 70년 9월 13일호 제3권 37호 통권 제 102호]
  • 「미스·관광 안내소」박공순(朴公順)양-5분데이트(99)

    「미스·관광 안내소」박공순(朴公順)양-5분데이트(99)

    표지「모델」로 나서준 아가씨는 서울시청 부설 종합 관광 안내소 11인의 여성안내원중의 한 사람인 박공순(朴公順)양(22). 원래는 경기도청 관광과에 소속된 아가씨로 종합 관광 안내소에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수원 매향(梅香)여고 출신으로 경기도청에 근무한지는 꼭 1년째. 서울에 파견근무를 하게 된 것은 석달전부터라고. 아버지 박성열(朴成烈)씨(52)의 4남 1녀중 고명딸. 외딸이라서인지 집에서는 오빠와 남동생들이 극진히 위해 주고 있다면서 흐뭇해 한다. 수원이 집이라서 기차로 출퇴근을 하고 있어 아침 5시면 집을 나서야 하지만 지각 한번 한적이 없다는 부지런한 아가씨. 취미는「스케이트」와 낚시. 여고시절부터 수원에 있는 호수「서호」에서 익힌「스케이트」실력은 준「프로」급. 낚시광인 오빠를 따라간 한두번 나들이에서 재미를 붙여 요즈음은 주말이면 꼭 낚시터를 찾는다고. 낚시터로는 가까운 신갈저수지가 박양의 단골터. 음식은 가리는 것 없이 무엇이나 잘 먹지만 특히 김치 깍두기를 즐긴다는 평범한 식성. 남자친구는 몇 있으나「스테디」한 관계인 사람은 없고…. 결혼은 아직 생각지도 않고 있다.[선데이서울 70년 9월 13일호 제3권 37호 통권 제 102호]
  •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은막뒤로 사라진 정윤희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은막뒤로 사라진 정윤희

    [다시보는 선데이서울-표지모델편 ②] 장미희, 유지인과 함께 70년대와 80년대를 주름잡던 여배우를 아시는가? 84년 결혼과 함께 무대뒤로 사라진 배우. 바로 정윤희(53)다. 지금은 40대 이상이 되었을 팬들의 기억속에는 사진속 처럼 여전한 미모로 존재할 것이다. 타 배우들과는 달리 은퇴후 공식적인 외출을 극도로 삼가해 그녀의 근황은 좀처럼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2001년 7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정윤희 영화주간’ 행사에 자신의 큰 딸, 막내아들과 동반해 ‘깜짝 외출’을 했다. 이날 정씨는 “애들 아빠가 가보라서 해서 왔다.”며 “요즘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신의 근황을 밝혔다. 그녀의 남편은 중앙산업 회장인 조규영씨.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나우뉴스 박종익기자 pji@seoul.co.kr <출연작> 사랑의 찬가 (1984) 동반자 (1984) 사랑하는 사람아 3 (1984) 질투 (1983) 안개마을(1982) 죽음보다 깊은 잠(1979)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 정부(1982) 목마와 숙녀(1976) 속 사랑하는 사람아(1983) 사랑하는 사람아 3(1981)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 길아랫집 살다 타이어 세례받아

    8월24일 밤 9시쯤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 강(姜·31)모씨는 집앞 뜰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하늘에서「트럭」「타이어」가 굴러 떨어져 강씨의 엉덩이를 치받아 중상을 입었다고. 그날 마침「시멘트」를 싣고 그곳을 지나가던 부산영 7-738호「트럭」의 왼쪽「타이어」가 갑자기 빠지면서 길 아래 12m 낭떠러지에 있는 강씨의 집으로 굴러들어 이같은 불상사가 일어난 것인데 병원에 입원한 강씨- 『무서운 세상, 죽지 않은게 다행아닝교』라고 자위. [선데이서울 70년 9월 6일호 제3권 36호 통권 제 101호]
  • [안녕하셔요]첫 해외 TV 녹화 다녀온 꽃집 아줌마 정혜선(鄭惠先) 양

    [안녕하셔요]첫 해외 TV 녹화 다녀온 꽃집 아줌마 정혜선(鄭惠先) 양

    KBS-TV의『꽃집 아줌마』(이근삼(李根三)작 이성재(李聖宰)연출)가 한국 TV로선 처음으로 일본에 출장 녹화를 했다.「타이틀·롤」정혜선양(28)으로선 첫 외국나들이기도 하지만 이번 일본 여행에는 여러 가지로 잊을 수 없는 일이 많았단다. 코로나 차(車) 탄채 일본(日本)까지 가까운 나라라는 실감을 8월16일 KBS 방송국 앞을「코로나」로 출발, 경부 고속도로를 단숨에 달려 부산에서「부관 페리」를 타고 일본「시모노세끼」항에 도착하고 보니 일본이란 나라가 바로 이웃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시모노세끼」에서「오사까」까지 19시간 동안을 자동차로 달리며 일본의 농촌, 중소 도시를 둘러보며 강행군했는데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네들의 부(富). 『정말 모두 잘 살고 있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소나 외양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동차와 차고가 있고 초라한 초가지붕 같은 건 눈을 씻고볼래야 볼 수가 없어요. 약오를 만큼 잘 살고 있어요』 또한 아무리 깊은 산골이라도 길이 모두「아스팔트」포장이 돼있어 흙길은 구경할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한결 여행하는 맛이 나고 짜증스럽거나 지리하지가 않았단다. 『또 부러운 것은 산에 그렇게 나무가 많더군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우리나라의 산을 보고 현해탄을 건너가서 일본의 산을 보니 도대체 비교가 안 될 지경이에요. 어디를 가든 빽뺵이 들어선 나무, 정말 부럽더군요』 반드시 그것만으로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여유가 있고 풍성함이 있을 것이 아니냐고. -함께 여행한 사람은 누구 누구죠? 『「꽃집 아줌마」를 연출하는 이성재씨, 함께 출연하는 이치우(李致雨)씨「카메라맨」권유철(權有哲)씨 그리고「짐·가우어씨」이렇게 모두 5명이었어요』 -며칠동안이었죠? 『나는 영화 전우열(全右烈 감독「인정 사정 보지 마라」) 촬영「스케줄」때문에 20일에 다른분들보다 먼저 왔어요.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와서 관광호 편으로 서울에 왔는데 이번 일본 여행은 그러니까 자동차 배 비행기 기차 모두 탄 셈이죠. 다른 분들은 8월26일에 돌아왔어요』 -일본을 여행하면서 특별히 우리나라와 다르다고 본점은? 『어디를 가나 조용하더군요. 농촌을 가도 그렇고 도시를 가 보아도 그렇고 도무지 거리에 나다니는 사람이 없어요. 물론「오사까」같이 큰 도시는 서울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많지만 그의 도시는 아주 조용해요. 왜 그런지 궁금했지만 일본말을 할줄 모르니 물어 볼 수도 없고. 아마 모두 일터에 나가 일을 하느라고 한가한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엑스포 70」을 보고 느낀점은?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구경을 할 수가 없었어요. 내부구경을 한 건「한국관」뿐이었는데 굉장히 외국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었어요. 그때까지 일본에 대해 부러운 것만 보아서 우울했던 마음이 으쓱해지더군요. 다른 나라 전시관들은 대강 외양만 훑어보아서 잘 모르지만 어쨌든 굉장하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교포들의 환대를 받으며 새삼스럽게 조국애 느껴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제일 어려웠던 점은? 『말이 통하지 않은 점이죠. 그리고 우리나라 운전면허가 일본에서 통하지가 않더군요. 우리나라가「국제 면허회」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인정을 못 받고 있어서 그렇대요. 그래서「시모노세끼」임시「넘버」를 달고 다녔는데 화가 나는 일이에요. 서울 거리에는 일본「넘버」를 단 차가 마음대로 다니는데 일본거리에선 왜 우리나라 넘버가 통하지 않는지』 『「꽃집 아줌마」의 녹화는 예정대로 성공했습니까?』 이번『「꽃집 아줌마」일본 녹화의 의의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첫번째로 해외에서 녹화를 했다는데 있는게 아닐까요? 제대로 여건을 갖추지도 않았는데 해외에서 녹화했다고 해서 좋은 작품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요. 모두들 열심히 했고 고생도 많이 했죠』 -제일 잊을 수 없었던 일은? 『재일교포들이 정말 환대를 해 주었어요. 어디를 가나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어려운 점을 보살펴 주고 정말 신세 많이 지고 왔어요. 해외에 나가니까 참 조국애라든가 민족애라는 걸 느낄 수가 있더군요』 1942년 서울태생. 60년 서울 수도여고를 졸업하고 6개월동안 충남 대전 방송국에서 성우생활을 한 것이 연예계와의 첫 인연. 61년 KBS-TV「탤런트」1기로 TV계에 진출하여『그날이 오면』「데뷔」작『상아의 노래』『실화극장』『녹슨 단검』등「셀 수 없을 만큼」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지금은『꽃집 아줌마』 외에『박쥐』에 출연중. 3년 전에『제3지대』로 영화계에로 진출하여『홍콩에서 온 마담장』『여자의 길』 등 20여편에 출연. 연극에도 관심이 있어『해물리트』(동인극장)『유리 동물원』(동인극장) 분례기(糞禮記)에 출연하기도. 그러나 역시 TV가 제일 마음에 든다고. 연극은 너무 딱딱한 것 같고 영화는 호홉의 연결성이 없어서 어쩐지 썩 당기지 않는다는 말. 그리고 무엇보다 방송국의 분위기가 마음에 맞아서 TV가 최고란다. 부부「탤런트」“오히려 서로 도움커요” 64년 같은 KBS-TV 동기생이 박병호(朴炳浩)씨 (현재 TBC-TV「탤런트)와 3년 동안의 연애 끝에 결혼, 1남(4) 1녀(6)를 두었다. -두 사람이 같은「탤런트」생활을 하자면 곤란한 점이 많을텐데? 『웬걸요. 저는 오히려 도움이 돼요. 만약 전혀「탤런트」실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부인이 밤을 새운다. 지방에 나간다. 외박한다 하는 걸 이해해 주겠어요? 아빠는 같은 처지이니까 다 이해해 주죠. 부부가 함께「탤런트」를 해서 곤란한 건 오히려 남자 쪽인 것 같아요. 아내 몰래 뭘 하고 싶어도 빤하니까 못하게 되죠. 만약 했다가는 금방 알게 되고 속일 수가 없죠』 -박병호씨는 TBC에 있고 정양은 KBS에 있으니 서로「라이벌」의식 같은 건? 『아무래도 경쟁방송국이니까「라이벌」의식이 있게 되죠. 빤히 억지인줄 알면서도 서로 우리 방송국 것이 최고다 하고 우길 때가 많아요』 첫번째 외국 나들이로 닷새 동안에 3천km를 여행한 정양의 꿈은 역시 훌륭한「탤런트」가 되는 것뿐. 서울 동숭동 기자「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선데이서울 70년 9월 6일호 제3권 36호 통권 제 101호]
  • 득남 핑계로 소실 두었지만 딸쌍동이

    득남 핑계로 소실 두었지만 딸쌍동이

    8월24일 하오 부산시 B병원 앞에서 색다른 부부 싸움이 벌어져 행인들이 모여들어 소동. 딸 셋을 둔 전(田)모씨(39·부산시 중앙동)는 아들을 둘 욕심으로 소실을 두었는데 이 날 소실 K여인이 B병원에서 해산을 하고보니 딸 쌍동이. 이에 화가 치민 전씨의 부인이 병원으로 달려와 전씨의 멱살을 부여잡고 『공연히 소실을 보아 딸만 둘 더 늘어났다』고 싸움을 벌였던 것. [선데이서울 70년 9월 6일호 제3권 36호 통권 제 101호]
  • 관능적(官能的)인 여성(女性)이 되는 법

    관능적(官能的)인 여성(女性)이 되는 법

    8월24일자 「뉴스위크」지는 『섹스는 어떻게 배워야 하나?』란 특집을 마련, 『관능적인 여성이 되는 법』을 1천5백년전 인도의 『카마·수트라』이래의 성전(性典)이라고 밝히고 다음과 같이 평했다. 『모든 사람들의 놀라움속에 출판된 「관능적인 여성이 되는 법」은 값어치 있는 현대의 성전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수녀들에겐 필요 없겠지만 환희를 맛보고 싶은 모든 여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관능적인 여성이 되는 법」은 사창가에서 쓰이는 용어들은 마구 쓰고 있어 얼핏 읽기에는 30대 중년의 남성이 속내의 바람으로 써갈긴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 미혼여성인 「존·개리티」양. 「개리티」양은 자주 그녀의 성불만을 친구인 「스튜어트」(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의 사장)에게 털어놓았는데 그녀의 「섹스·프로그램」에 감탄한 「스튜어트」의 권유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이 책의 인기는 숱한 실례와 더불어 「당신의 육체를 훈련함으로써 섹스를 배우고 즐길 수 있다」는 주장에 있다. 「마스터즈」와 「존슨」(「인간의 성적반응」의 저자)두 박사가 운영하는 「에잘렌」연구소는 이 책의 「섹스·프로그램」을 환자들의 치료용으로 쓰고 있으며 이미 11판을 거듭, 40만부가 매진됐다.』 마음 가짐을 편히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동작은 세상 태어난 뒤 배운 것들입니다. 걸음마에서 시작, 말을 배우고 읽기 쓰기 노래부르기 수영 가계부 맞추는 법「브리지」놀이하는 법 시장에서 물건값 깎는 법 등 모두가 배운 것입니다. 당신의 관제탑이라 할 수 있는 머리로.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관제탑은 당신을 관능적인 여성으로 만들 수 있읍니다. 당신이 하실 일은 오직 마음을 편히 가지는 것 뿐입니다. 당신이 「트럭」운전사처럼 생겼든 「튀기」처럼 말라깽이든 「베티·데이비스」처럼 뚱뚱보든 상관이 없읍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노력으로 남성들은 즐겁게 해 줄수 있고 남성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민한 감수성을 관능적인 여성이 되려는데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여성잡지에선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읍니다. 새로운 화장법이 라든가, 무늬진 「스토킹」,뇌쇄적인 향수, 그런 것은 침실에선 별로 쓸모가 없읍니다. 이런 외향적인 것보다는 당신 자신의 육체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관능적인 여성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음의 4가지 열쇠입니다. ① 예민한 감수성 ② 갖고싶은 욕망 ③ 주고싶은 욕망 ④ 성(性)기교 이번 장(章)과 다음 장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첫 번째 열쇠인 예민한 감수성입니다. 사랑을 나눔에 있어서 당신의 육체는 곧 사랑의 기계가 됩니다. 기계는 일단 돌기 시작하면 최대한의 능률을 내야지요. 악기는 안아껴야 「아더·루빈시타인」이나 「반·클리번」같은 천재적 「피아니스트」는 그들의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피아노」를 아끼는 일을 없답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1급 연인이 되고 싶으실 거예요. 그렇다면 당신의 연인이 당신의 육체를 마구 혹사하도록 만드세요. 자신이 마치 「루빈시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이르게끔 말예요. 명기(名器)는 명연주자를 만들기도 한답니다. 이번 장과 다음 장에서 당신이 하게 될 훈련들은 틀림없이 당신을 「섹시」한 「스타인웨이·피아노」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하나 미리 알려드릴 것은 이제부터 시작할 훈련들이 장난이 아니란 점입니다. 당신은 아마 처음엔 좀 우습겠지요. 그러나 그건 당신이 아직껏 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지나면 당신은 피곤한 발을 주무르는 일이나 당신의 얼굴에 「크림·마사지」를 하는것처럼 이 훈련들을 해낼수 있을 것입니다. 눈감고 알아내기 〈관능훈련1〉이 첫 번째 훈련은 당신의 촉각을 예민하게 하는 훈련입니다. 가죽장갑 분갑 비눗갑 털모자 머리「핀」 접시 비단목걸이 빵조각 진주목걸이 나뭇잎 등 당신 주변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모두 모아 탁자위에 놓으셔요. 그 다음 전등을 끄고 안락의자에 앉아 당신의 눈을 수건으로 동여매세요. 그 다음 천천히 차례차례로 손가락을 움직여 탁자위의 물건이 무엇인지를 알아맞혀 보세요. 하나하나의 구조가 당신 손가락에 익도록. 촉감·기억력 훈련 자, 이번엔 손을 탁자에서 떼고 지금 당신이 만진 물건이 무엇이었던가를 천천히 음미해 보세요. 진주목걸이의 차고 딱딱한 맛, 분갑의 얄팍함, 털모자의 부드러운 촉감등 당신은 당신의 촉감의 기억력에 아마도 놀라실거예요. 다시 한번 탁자위의 물건들을 만져 볼까요? 됐어요. 이젠 쉬세요. 상체에 차례차례 〈관능훈련2〉 눈을 감고 탁자옆에 다시 앉을까요? 이번엔 상의를 올리세요. 그런 다음 털, 가죽, 수건등을 차례로 집어 당신상체에 부드럽게 대어보세요. 조심조심 그리고 천천히 상체 이곳 저곳을 건드려 보세요. 오른손에 잡고 왼손의 손가락끝부터 왼쪽 팔의 안쪽 겨드랑 목덜미 뺨 머리 눈썹위 코 오른쪽 뺨 입술 목 어깨 그 다음 가슴 아래 위로 건너가 보세요. 다음, 다시 탁자위에 물건을 놓고 지금 느낀 감촉을 되살려 보세요. 물론 눈은 여전히 감은 채로입니다. 다음은 가죽 차례. 그리곤 손수건으로, 「코스」로 돕니다. 당신의 상체 곳곳은 지금 받고 있는 촉감을 틀림없이 기억해 둘 것입니다. 잠들기전의 훈련 〈관능훈련3〉 잠들기 직전에 하기 좋은 훈련입니다. 우선 침대에 깨끗한 「시트」를 까세요. 그위에 당신이 좋아하는 향수를 뿌려놓고 전깃불을 끄고 촛불을 켜 놓으세요. 다음 당신이 좋아하는 「레코드」를 틀거나 마음에 드는 「라디오」음악을 틀어 놓으세요. 준비가 되었으면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오랜 목욕차례. 당신 몸의 긴장을 모두 풀어버리는데 도움이 되실거예요. 목욕이 끝나면 흡사 왕녀라도 된듯한 기분으로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으세요. 그리곤 발가벗은채 그대로 침대에 뛰어드는 거예요. 로션을 바르셔요 은은한 촛불과 감미로운 음악속에 당신은 발가벗은채 운동을 시작합니다. 구르고 뻗어보고 몸을 움츠려보고 뒤로 젖혀보고 당신 발끝을 돌려 보세요. 다음, 당신이 쓰는 「로션」을 가슴부터 시작, 하복부까지 천천히 발라내려 가세요. 물론 눈을 감으셔야죠. 당신의 굴곡진 육체를 더듬어 내려가는 손길이 아주 멋있죠? 당신을 「나르시시스트」로 만들 생각이냐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당신이 「라켈·웰치」같은 몸매를 갖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당신 몸에 제일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녜요? 「로션」 바르기가 끝났다고요? 그럼 수건으로 닦아내세요. 이제 다 끝났죠? 촛불을 끄고 잠을 청하세요. 잠이 무척 잘 오죠? [선데이서울 70년 9월 6일호 제3권 36호 통권 제 101호]
  • “파리를 잡수세요” 정력(精力)요리

    “파리를 잡수세요” 정력(精力)요리

    우리나라에도 요즈음 정력 강장제「붐」을 타고 갖가지 해괴한 식도락이 염치없는 유행을 이루고 있지만 「섹스」선풍을 탄 세계의 식도락도 어제가 옛날. 「몬도가네」가 무색할 정도로 괴팍해지고 다양해질뿐 아니라 그 인구도 엄청나게 늘어 가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먹지않는 진기한 요리 1만5천종 식도락이라고 하면 맛을 즐기는 것-. 그래서 보다 색다른 먹이를 찾고 그 맛을 음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요즈음의 식도락은 모두가 정력강장과 통하는 먹이의 추구와 음미다. 「섹스」강장제라면 독약도 마실 것이라는 게 요즈음의 식도락「붐」을 풍자하는 말이 되었다. 물론 식도락꾼들이 모두 정력강장제만을 찾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갑자기 「붐」을 이루고 있는 것은 주로 정력강장에 좋다는 식품(?)들이 라는 데서 이같은 주장이 나온다. 그리고 결국 식도락으로 즐기는 식품은 대개가 정력강장에 좋고 또 역사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정력강장을 위한데서 식도락이 풍습이 생겼다는 많은 주장도 있다. 요즈음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식도락 식품은 개미알, 도마뱀알, 「초콜리트」를 씌운 개미, 메뚜기, 쐐기벌레, 매미, 귀뚜라미, 나비고치, 새새끼 「샌드위치」, 코끼리다리, 원숭이 입술, 고래혀, 진흙등으로 요리된 것들이 많다. 이중에서도 특히 진흙요리는 철분이 고질적으로 부족한 「아프리카」와 일본의 귀부인들이 즐겨 찾는데 이들은 진흙요리를 먹으면 예뻐진다고 믿고있다. 불에 구워 적당히 잘라 먹는데 그것은 고급의 경우이고 하층에서는 생으로 먹기도 한다. 이밖에도 개, 고양이, 너구리, 냉동원숭이고기, 코끼리코, 하마의 허벅지, 도마뱀 등등해서 식도락꾼들이 먹을 수 없는 것이란 없다고 할 만큼 다양하다. 보통 사람들이 먹는 음식류를 제외한 식도락가들만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의 종류만도 1만5천종이 넘으며, 연간 세계 도처에서 소비되는 액수는 자그마치 20억「달러」어치로 추산되고 있다. 식도락을 통해 세계를 볼때 단연 두각을 드러내는 곳은 중국대륙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아시아」의 식도락의 특징은 주로 곤충류가 많이 동원된다는데 있다. 진딧물이라든가 좀벌레등 여러가지 벌레의 유충을 기름에 튀긴 것들이 인기가 높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보편화 되다시피 하고 있는 개고기요리는 서양사람들의 눈엔 그들이 하마요리를 즐기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는 것 만큼이나 신기하다. 중국에서 최고로 치기는 바다새둥지로 만든 요리 중국에서 인기 있는 것은 해파리, 곰의 턱, 지렁이, 고양이, 오리의 혀, 진딧물, 생선의 입과 아가미, 거미, 풍뎅이의 「주스」 등이다.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조미료는 월남산 「카·쿠옹」- 「온스」당 1백「달러」에 팔리는데 풍뎅이 요리엔 이것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중국의 식도락 요리의 일품은 바닷가 벼랑에 사는 칼새의 둥지로 만든 요리. 「보르네오」섬이 원고향으로 수백만 마리씩 떼지어 사는 이 새의 둥지는 이새들 특유의 아교질 침으로만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에서는 1급으로 치는 것은 돼지고환과 송이버섯에 해초「샐러드」를 곁들인 한 접시 2천원짜리 요리. 그리고 유명한 것은 「고베」의 「스테이크」인데 이「스테이크」는 우유만 먹고 매일 「마사지」를 받는 암소고기로 만들어 연한 것이 세계제일. 남미(南美)에선 파리를 산채 다리와 날개만떼고 꿀꺽 그런데 작년 50만「달러」를 쓰며 20년을 두고 맛있는 「스테이크」를 찾아다니던 미국의 식도락가 「드레시어」는 『고기가 감칠맛이 없는 것이 흠인데 그것은 맥주를 먹이지 않은 탓일거』라고 충고, 다음날 술먹은 소들의 주정으로 「고베」시가 떠들썩한 적도 있었다. 인도에서는 박쥐새끼요리를 제일로치며 「아프리카」에서는 파리요리가 별미란다. 남미에서도 파리는 인기인데 이곳에서는 다리와 날개를 제거하고 산채로 먹는 것이 특색. 「멕시코」에서는 이겨서 먹는다. 이밖에도 미국 「프랑스」등 구미에서도 하마의 간이라든가 낙타고기속에 양고기 알, 닭속에 생선, 생선속에 달걀을 넣은 별난 요리를 비롯해서 거북이알, 박쥐, 방울뱀, 도롱뇽, 바다쥐, 「캥거루」,「벵갈」호랑이, 「아프리카」사자, 코끼리뒤꿈치등 별의별 요리가 없는 것이 없으며 주로 살코기가 붙은 동물을 쓰는 것이 특색이다. 그러나 식도락이라기 보다는 일상식품이면서도 진귀한 식품으로 단연 1등상을 줄만한 것은 극지대의 「에스키모」족이 즐기는 「티트머크」. 구덩이 속에 진흙과 풀을 섞어 연어를 묻어 썩히고 발효시킨 것인데 그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수「마일」밖에까지 풍기고 개들도 질겁을 해서 도망가며 무엇이든 신기하면 먹어보려하는 세계의 식도락가들도 이것만은 못먹는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섹스」선풍을 타고 세계 곳곳의 진귀한 식품들은 경쟁적으로 식도락가들의 구미를 돋우고 있는데 식도락의 역사는 또한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것이 특색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성시를 이루었던때는 「로마」제국시절 하룻밤 연회에 50가지의 식품이 등장했고 「네로」는 하룻밤 궁전연회에 50만「달러」어치 음식을 내었다는 기록도 있다. 사람고기만 먹인 사자를 즐겨먹던 로마의 임금도 기독교인의 고기를 먹인 사자고기만 먹은 왕도 있었다. 「오레리안」황제시절의 어떤 관리는 한 자리에 앉아 양과 돼지 각각 1마리, 빵 1개, 1통의 술을 먹어치워 이제껏 이기록을 깬 사람이 없을 정도. 「페르샤」의 「다리우스」황제는 1만명의 조리사를 고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미녀왕으로 이름 높은 「클레오파트라」는 동방의 진시황이 무색할 만큼 불로초 아닌 성욕 자극제를 추구했으며, 식초속에 진주를 녹인 약을 먹으면 영원한 성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미신을 믿어 이를 만들거나 얻으려고 일생을 두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정부 「안토니오」를 위해 매 시간 멧돼지 불고기를 먹이기도 했다는 야사의 기록이 있다. 「프랑스」의 「루이」16세는 괴상한 음식을 즐겨 먹기로 유명했는데 죽은뒤 시체해부 결과 위가 보통의 3배나 되었고 엄청난 회충, 촌충등 기생충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선데이서울 70년 9월 6일호 제3권 36호 통권 제 101호]
  • 「미스·금융 풀」성진옥(成珍玉)양-5분데이트(98)

    「미스·금융 풀」성진옥(成珍玉)양-5분데이트(98)

    금융기관 화재보험 공동 인수사무소(일명 금융「풀」)라는 길고 거창한 이름의 직장 대표로 뽑힌 성진옥(成珍玉)양은 50년생 아가씨. 69년 동구(東丘)여상을 졸업하자 곧장 금융「풀」에 들어와 1년7개월째 총무부에 근무하고 있다. 중학교 교사인 아버지 성영수(成榮洙·42)씨의 1남3녀중 장녀. 집이 있는 안양(安養)에서 통근한다. 장녀답게 규모가 있는 아가씨로 월급을 타서는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20만원짜리 적금을 붓고 있고. 용돈도, 자신이 옷가지 장만도 모두 월급으로 해결한다는 야무진 아가씨다. 취미는 서예. 고등학교시절 서예반에서부터 익힌 만만찮은 솜씨. 목각인형을 수집하는 취미도 가지고 있어 귀엽고 예쁜 것만을 50점가량 모았다고. 가장 즐거운 때는 한가한 마음으로 동생들과 어울려 노는 주말. 외출을 별로 즐기지 않는 그녀는 동생들의 훌륭한 상담역할을 해서 부모의 칭찬을 듣는다고. 결혼에 관해서는 별로 생각한바가 없고 단지 『나이가 어리니까 3년쯤 뒤에나 생각할거예요. 부모님들도 아직 생각지도 않으시는 걸요』 환한 얼굴로 웃는다. 즐겨 입는 옷의 빛깔은「베이지」색, 북청색. 양재를 배워「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이 아가씨의 꿈이다. 숭배하는「디자이너」는「코코·샤넬」. [선데이서울 70년 9월 6일호 제3권 36호 통권 제 101호]
  •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탤런트 윤미라 30년전 미모 여전

    [다시보는 선데이서울] 탤런트 윤미라 30년전 미모 여전

    [다시보는 선데이서울-표지모델편 ①]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78년 5월 꽃다운 외모의 한 연기자가 선데이서울 표지모델을 장식한다. 최근 드라마 ‘칠공주’ 등으로 현재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윤미라다. 1972년 영화 ‘처녀뱃사공’으로 데뷔한 그녀는 78년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으로 연기파 배우로서 입지를 확실히 다진다. 사진에서 처럼 30년 전의 그녀와 현재의 모습은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여전한 미모를 자랑한다. ※ 나우뉴스에서는 [다시보는 선데이서울-표지모델편]을 연재합니다. 나우뉴스 박종익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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