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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가미에 걸린 유부녀 “슬로 퀵퀵”

    올가미에 걸린 유부녀 “슬로 퀵퀵”

    「댄스」를 배우다 바람을 피우고, 바람을 피우다 몸까지 빼앗기고 끝내는 올가미에 걸려들어 돈까지 강요당한 어느 가정주부의 사련극(邪戀劇) 시말기. 5년동안이나 놀아나던 불륜행각에 끝내는 제3의 여인이 등장했고 가진 수법으로 거액을 협박당하다 버틸수없게 되자 남편과 시부모앞에 무릎을 꿇고 과거를 고백,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로써 정절을 맹세했던 것. 또 돈을 우려내려고 협박과 공갈을 하며 끈덕지게 달라붙던 여인은 꼬리를 잡혀 철창신세를 지게됐고, 파탄을 불러일으켰던 「댄스」교사는 전국에 수배중이다. 의남매(義男妹) 가장하고 몸과 돈 모두 바쳐 사건전모를 가려달라고 경찰에 고발한 이 여인은 취조형사들앞에서 『춤바람이 이렇게 무섭게 번질줄은 몰랐다』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서울 성동구 인창동에서 남부럽지않은 살림을 꾸려오던 임(林)모여인(38)이 유혹의 수렁으로 스스로 빠지게된 것은 지난 67년 가을 어느날, 중구 묵정동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2층방에 차려놓은 비밀「댄스」교습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부터다. 『사교에 도움이 될것같아서』이 막연한 생각이 알뜰한 가정주부를 자유부인으로 타락시켜버리고 벗어날수없는 굴레속에 빠뜨릴 줄이야. 『배워서 남주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그럴싸한 권유도 있었다. 임여인은 그날로 부끄러움도 잊은채 「댄스」교사 유(劉)모씨의 품에 안겨버렸다. 「슬로…슬로…퀵·퀵」감미로운 선율이 뇌리를 스쳐간다. 「스텝」을 익혀갈수록 교습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남자의 체취가 온몸을 감쌀때는 야릇한 느낌마저 들었다. 임여인의 행동반경은 「댄스」를 배우면서 날로 넓어지기만 했다. 새 친구들을 알게된 임여인은 유교사와 함께 시내 「카바레」로 가 춤실력을 과시하기도 했고, 유원지로 몰려나가 집안에 갇혀 쌓였던 고달픈 심정을 마음껏 풀어헤치기도 했다. 이러던중 임여인은 유씨와 자신도 모르게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렸다. 67년12월15일. 『친구집에 놀러간다』고 적당히 둘러댄 임여인은 유씨와 함께 인천 모「카바레」로 가 춤을 추다 시간이 늦어져 여관으로 끌려들어갔다. 술이라곤 입에도 안대본 임여인은 유씨가 억지로 권하는 맥주반병을 마시고 정신이 몽롱해지자 모든것을 술에 취한 탓으로 돌리고 유씨와 정을 나눴다. 그후 임여인은 유씨의 예속물이 돼버렸다. 임여인도 주위 사람들에게 유씨를 의동생으로 소개, 유흥장과 여관등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사련을 불태웠다. 정을 나눈지 한달도 못된 68년 1월초순이 되자 유씨는 임여인에게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방을 얻어야겠으니 10만원만 달라』는 유씨의 말을 달리 거절할수 없게된 임여인이었다. 두달후에는 「오토바이」를 산다며 20만원을 받아갔다. 지난 69년 8월에는 정부 권희연(權希姸)여인(33)과 약혼을 한다며 약혼반지 살돈 5만원을 요구했다. 그해 8월15일 유씨가 권여인과 약혼식을 할때까지도 임여인은 권여인에게 『유씨와는 남매지간일뿐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불륜의 정사를 계속했다. 놀아난 현장 사진 내놓고 “네 남편한테 보여주겠다” 세사람사이의 묘한 관계는 임여인이 수세에 몰리며 백일천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유씨는 권여인에게 임여인과의 관계를 모두 털어놓고 『지금까지 40여만원의 돈을 손쉽게 빼앗아 썼다』고 자랑까지 하며 임여인을 등칠 새로운 방법을 모의했다. 혼인신고를 한 정식부부로 가장하기로한 유씨는 권여인을 시켜 임여인을 협박, 돈을 긁어내도록 사주했다. 지난6월초 임여인을 전화로 불러낸 권여인은 『그동안 받아온 정신상의 피해를 현금1백50만원으로 보상하지않으면 당신과 우리남편 유씨를 간통죄로 고소하겠다』고 다그쳤다. 이들의 올가미에 여지없이 걸려든 임여인은 권여인을 붙잡고 『가정주부가 무슨 돈이 있느냐』고 애걸을 했고 권여인은 『유부녀 주제에 남의 남편과 놀아나고도 말이 많으냐』며 쏘아댔다. 지난6월19일 유씨와, 임여인이 놀러다니며 단둘이 찍은 사진을 1백80장이나 복사 해 갖고 나타난 권여인은 『돈을 내놓지 않으면 당신 남편 점포앞에 이 사진을 뿌리겠다』며 임여인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했다. 이들의 사기극을 눈치채지 못했던 임여인은 사랑하는(?) 유씨를 집근처 독탕에서 만나 권여인의 감정을 달래줄 것을 부탁했으나 유씨는 『1백50만원이 벅차면 1백만원만 내라』고 오히려 호통을 쳤다. 백(百)50만(萬)원 마련하지 못해 시부모앞에 혈서(血書)로 고백 사면초가가 돼버린 임여인은 『70만원으로 잘 해결하자』고 권여인을 달랬으나 권여인은 『당신네 집은 돈푼깨나 있어보이는데 무슨 엄살이냐』고 7월 10일까지 1백만원을 갖고 시내 모다방으로 나오라고 못박아 말했다. 시한이 지나도록 돈을 마련하지 못하고 벙어리냉가슴이 돼버린 임여인앞에 지난 19일 다시 나타난 권여인은 『당신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들과 학부형에게 모든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고 임여인은 『오는 20일까지만 참아 달라』고 사정했으나 아무소용 없었다. 다음날 임여인의 남편 김(金)모씨(40)가 경영하는 상점부근 다방으로 임여인을 불러낸 권여인은 『더이상 날짜를 연기할수 없다. 당장에 당신 남편을 찾아가겠다』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앞이 캄캄해진 임여인이었다. 상점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을 바라본 임여인은 남편이 이미 권여인으로부터 모든 사실을 전해듣고도 시치미를 떼고 있는것 같아 더이상 속일 힘조차 없었다. 임여인은 남편과 시부모가 모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지난 과거를 모두 자백하고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써 앞으로는 정숙한 아내가 될것을 다짐했다. 임여인은 그 길로 경찰에 고발-길고긴 사련의 막은 내렸다. 서울J여고를 거쳐 S여대 국문과를 나온뒤 친구들과 시내 일류다방을 동업으로 경영해왔다는 권여인은 여자로서의 당연한 질투심 때문에 유씨가 시키는대로 금품을 뜯어내고야 말겠다는 독부의 집념을 갖게됐다고 흐느꼈다. <우홍제(禹弘濟)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8월 1일호 제4권 30호 통권 제 147호]
  • 여대생의「프리·섹스」와 무전 취식

    H=지난 1주일동안은 강도살인범 박원식(朴元植)과 장마비 피해 등 취재로 상당히 바빴겠군, 지난주의 사건 뒤안길은 어떠했는지. E=「프리·섹스」를 즐기던 여대생 2명이 무전취식으로 경찰에 걸렸지. W대학 영문과와 가정과 2년생인 두여대생이 21일밤 11시쯤 C「호텔」「고고·클럽」에 1천5백원씩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지. 거기서 남자 2명을 만나 즉석「데이트」가 시작되고, 새벽4시까지 어울려 몸을 흔들었는데 여대생들은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광란에 젖어들게됐고「핑크·무드」에 빠져버린 거지. 4시가 되자「홀」안이 터져라고 울려퍼지던「고고」도 그치고 문을 닫게됐는데 이때가 되자 남자친구(?)가 청진동으로 가 해장국이나 먹자고 제의. 그길로 가 소주 1병을 4명이 나눠마시고 해장국 한그릇씩을 먹었지. 밖으로 나오니 또 길이 막연하더라는 것. 다시 남자친구들이「호텔」로 가서 몇시간 쉬다 돌아가자고 제의. 여대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따라 N「호텔」로 간 것. 두쌍이 방두개에 나눠들어갔다가 8시쯤되자 두 남자들만 약속이나 한듯이 잠깐 나갔다가 올 테니 기다리란 말을 남기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지. 남았던 여대생들, 아침 점심까지 시켜먹곤 남자들 오기만 기다렸는데 종래 무소식.「호텔」종업원들은 돈내라고 아우성, 그러나 아무리 뒤져보아도 무일푼이었지. 결국 끌려간 것이 경찰서. B=잘하는 짓들이군. D=결국 무전취식이겠지. 총각들 걱정 많이 시키는군.(웃음) [선데이서울 71년 8월 1일호 제4권 30호 통권 제 147호]
  • 한양대「메이·퀸」호영애(扈榮愛)양-5분 데이트(143)

    한양대「메이·퀸」호영애(扈榮愛)양-5분 데이트(143)

    오똑한 콧날에 쌍꺼풀진 눈이 유난히 빛나는 호영애(扈榮愛)양(22). 올해 한양대「메이·퀸」으로 뽑힌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아가씨다. 의류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호양은「패션·디자이너」지망생. 간단한「원피스」나「스커트」, 「블라우스」「홈·웨어」는 거의 손수 만들어 입는다. 심지어는 가족이나 친척들의 옷까지도 주문받아 만들어 준다고. 그렇게 해서 받은 수고비를 용돈으로 쓴다는 기특한 아가씨. 상업을 하는 호기선(扈基善)씨(52)와 부인 이서옥(李瑞玉)여사(44)의 2남2녀중 맏딸. 창덕여고출신. 학교 공부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거의 고정된 일과란다. 아직 학생신분이라서 요란한 옷차림이나 화려한 모임은 의식적으로 피한다는 검소하고 겸손한 여대생. 남성과의「데이트」는『고려중』이라고. 요즘은 다만 학업에만 열중한다는 진지하고도 모범적인 아가씨다. 성격이 밝고 원만한데다 기호가 뚜렷하여 친구들은 모두 그녀와 가깝게 사귀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라고. 취미는 음악 감상.「클래식」에서 부터 요즘 유행하는「팝송」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음악을 다 좋아한다. 졸업후「디자이너」로서 직장생활을 2,3년하고 나서 결혼할 계획이라고. 신랑감은 우선 건전하고 선량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라야 한다는 것이 그녀가 내세우는 첫째 조건이다. 돈이 많으면 생활하기에 물론 편리하긴 하지만 그것이 곧 결혼의 조건은 될수 없다는 견해. 이해와 아량이 넓고 부인을 끔찍이 위해 주는 건강한 남성이라면「오케이」라고. 4학년이 되니까 작년과는 달리 신랑감에 대해 제법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그녀는 마음에 드는 남성을 자연스럽게 사귈수 있는 기회가 아쉽다고 말한다. [선데이서울 71년 8월 1일호 제4권 30호 통권 제 147호]
  • 판문점 인기품목 콘돔

    판문점 인기품목 콘돔

    7월 27일-휴전이 조인된지 18년. 그동안 때로는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긴장속에, 때로는 북괴측의 생떼속에 진행된 판문점 회담에는 신문에 보도되지 않은 비화도 많다. 각 일간신문사 판문점 출입기자들의 방담을 통해서 알려진 비화중의 하나는 북괴기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물품이「콘돔」이라는데-. 참석자 각사(各社) 판문점 출입기자 박승탁(朴升鐸)(한국일보 사회부장대리) 최규장(崔圭莊)(중앙일보 사회부) 조홍래(趙弘來)(동화통신 사회부) 노창식(盧昌植)(현대경제일보 사회부) 강형석(姜亨錫)(서울신문 외신부) 잦은 숙청…「콘돔」써「섹스」해결하는 북괴 상납을 위한 낚시바늘도 크게 인기를 끌고 비화(秘話)중의 비화 A=판문점에서 휴전이 조인된지 올해로 18년. 냉전의 전초지인 이 판문점은 때로는 자유진영과 공산권의 대화의 광장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정치선전장으로, 욕설장으로도 쓰여왔는데 판문점 취재에서 이제까지 신문에 기사화되지 않은 재미있는 비화들을 중심으로 얘기해 봅시다. B=북괴기자들은「콘돔」을 좋아한다, 이런 비화는 어떻습니까.(웃음) C=비화중의 비화군-. B=판문점에 오래 출입하다보면 북괴 기자들과 낯을 익히게 되고 때론 평화「무드」(?)속에 1대1로 접촉할 때도 있는데 그들이 좋아하는 인기품목의 하나가「콘돔」. E=그게 뭐 가족계획에 쓰자는게 아니지.(웃음) A=남녀가 허락없이 좋아하다 임신이라도 하면 큰일 나는 것이 북괴형편. 몰래 중절수술을 할 수 없는데다가 임신이 알려지면 숙청은 뻔한 일이니까 오입이야말로 큰 고민거리라는 거지. 그래서 그쪽에선 구할 수 없는「콘돔」이 판문점 옥외회담(?)중 가장 인기있는 품목. B=그밖에도 인기품목이 많은데 이를테면 낚시바늘- 이건 아마 상납용인 모양이야. C=「라이터」, 화장품도 인기품목이고, 시계도 탐내는 물건이긴 하지만 이건 눈에 띄게 마련이니까 감히 용기를 내는자가 적고…. 회의중 자리 못뜨는 관례로 금기도 많아 “오줌통 커야한다” “물을 마시지말라” 얘기도 물 안마시기 싸움 A=판문점회의는 치열한 입씨름을 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침묵속에 버티기 싸움을 벌이기도 하지. 최장시간 버티기 기록을「마크」한 것은 장장 11시간 35분, 69년 4월 10일 2백89차 본회의가 열렸을 때. 판문점회의는 관례상 회의도중에는 자리를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소변을 누러갈 수도 없는 형편. E=이때문에 회의 대표들은 지구전에 대비, 회의가 시작될 3일전부터 물은 물론 물기많은 음식도 일절 먹지않는다더군. D=언젠가 한번은 안건없이 눈총싸움만 하던 북괴대표가 4시간을 끌던중 소변이 마려워 움츠리고 오만살을 하며 버티다 결국 벌떡 일어난 일도 있지.(웃음) E=그래서 기자들은「누가 오줌통이 더 크나 하는 싸움」이라는 말도 하고.(웃음) 세뇌받은 비둘기들 C=오래전이지만 북괴측이 느닷없이 비둘기장을 마련하고 30여마리의 비둘기를 갖다 놓았는데, 그놈들이 북괴측의 녹색건물에만 앉아 이상하다 했더니 우연히 그 수수께끼가 풀린 일도 있지. D=그런데「유엔」측 건물 지붕색깔이 벗겨져 하늘색 칠을 다시했는데 하늘색이 약간 달라지니까 비둘기들이「유엔」측 사무실 지붕으로도 마구 날아오게 된거야. 이를 본 북괴감시병들, 당황한 나머지 모조리 잡아다 후송해 버렸지. 그후 몇 달이 지나자 다시 훈련시킨 비둘기들을 갖다 놓았는데 역시 하늘색지붕은 외면. 결국 북괴들이 비둘기에까지도 철저한 세뇌공작을 실시한다는 걸 실증한 셈이지. 북괴대표(北傀代表)날린 필름작전(作戰) B=약간 색다른 이야기지만 판문점을 정치선전장으로 만들어놓은 북괴가 상습적인 선전을 펴다 꼬리를 밟혀 완전히「스타일」을 구긴일이 있지. 제「3백차」본회의땐데 북괴대표 이춘선(李春善)은「3백차」를 기념하기 위해 회의를 요청했고 미리 준비했던 장황한 선전을 벌이기 시작, 한강다리밑에는 판잣집이 늘어서있고 실업자가 7백만명이나 되고있다는 등 상투적인 말을 되풀이 했는데「유엔」측은 미리 북괴가 틀림없이 상투적인 선전을 할 것을 미리 예측했던 것. 그래서 한국의 발전상을 기록한 천연색「필름」한편을 준비해두었지. 예상은 적중. 거품을 뿜던 이춘선의 선전이 끝나자,『이것이 네가 말한 서울의 부패상(?)이다』고 응수하면서 재빨리 기록영화를 돌렸지. D=그때「유엔」측의 사전준비는 빈틈이 없더군. 이춘선의 연설이 끝나자 밖에 흩어져있던 미군 경비병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회의장 창문크기와 똑같은「베니어」판을 일제히 들고나와 회의장문을 가려 방안을 어둡게 해주더군. 이어「패티」김의 서울의 찬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고층「빌딩」으로 들어찬 서울시가 지·고속도로·울산공업단지 등 발전상을 샅샅이 비춰주었지. A=이 때 이춘선을 보니 얼마나 당황했던지 담배를 거꾸로 물기까지 하더군.(웃음) 파랗게 질린채 뒤에 서있던 한주경이 퇴장해버리자고 제의하는 듯 이춘선에게 귀엣말을 건네자 핏대가 나 체념이라도 한듯이 이춘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또 북괴대표들중 뒤에 앉아있던 사람은 잘보이지 앉자 고개를 빼다못해 슬그머니 일어나서 열심히 보기도 하더군. C=이 때문에 이춘선은 북괴 판문점대표중 단명기록이 돼버렸지.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평양으로 돌아간 다음 회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표를 바꾸고 이춘선은 숙청되었다는 것. E=말하자면 한권의「필름」이 북괴대표의 모가지를 날린셈.(웃음) 높이기 경쟁 B=판문점 회담이 열리는 건물은 휴전협정 규정에 따라 공동경비구역 직경 8백m의 타원형 벌판 한가운데 서있지. 목조 직사각형 건물이 군사분계선상에 서있고 책상도 이 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에 두줄로 놓여있고. A=냉전은 맞붙어있는 책상에서부터 시작되지. 휴전회담 초창기「유엔」측대표「조이」제독이 회의장에 2「피트」높이의「유엔」기를 세워두었는데 휴회를 한 뒤 다시 입장해보니 북괴쪽이 약간 더 높은 기를 갖다 놓았다는 것. 의자도 당시 북괴대표 남일(南日)이「유엔」대표것 보다 더 높은 것을 썼지. B=결국 양측이 깃대높이기·의자높이기 경쟁을 벌인 셈인데, 회담장소내의 기물 등을 책임진 「유엔」측이 똑같은 높이를 통일하여 부착-. 바캉스는 먹는거냐? A=지난 5월 소위 북괴기자들 20여명이 무더기로 판문점에 나타났는데 모두「샌들」을 신고 나오지 않았겠나. B=저네들 사회에선 그래도 최고로 멋(?)을 부리고 나온거로군.(웃음) A=그래 슬며시 접근,『너희들 오늘 멋냈구먼…』하고 꼬아주었더니『우리가 만든 제품이다』고 제법 으스대기까지 하지않나. E=내가 옆에 섰다가 그말을 듣고『배급탔니』하고 묻자 화를 버럭 내더군. 그들은 배급이란말 질색이지. 그래『이 사람들 멋도 멋이지만 여름도 되기전에「샌들」신는 사람이 어디있어』하고 쏘아주었지. A=요즈음 북괴기자들은 판문점에 오기 하루전에 개성에 집결, 남한에서 방송하는 TV를 열심히 보고 사전에 공작임무를 지령받아가지고 나오는 모양이더군. 그런데 북괴기자 한명이『요즈음 너네들 TV보니「바카스」라는게 있던데 그게 뭐냐』고 묻길래 피로회복제라고 일러주었더니『그럼「바캉스」라는 것도 먹는거냐?』(웃음). 하긴 요즈음「바캉스」라는 말도 TV에 자꾸 나오니까. <기록=학(學)> [선데이서울 71년 8월 1일호 제4권 30호 통권 제 147호]
  • 황소에 물먹이고 6백만원 번 사나이

    황소에 물먹이고 6백만원 번 사나이

    E=도살장행 소에 전문적으로 물을 먹여 무게를 늘려주고 수수료를 받아먹던 김준명(金俊明)씨(38)가 축산법위반과 사기혐의로 구속. 경찰조서를 훑어보니 지난 5월말께부터 영등포구 독산동 206의16 자기집 마당에다 마굿간을 만들고 마방업(馬房業)을 시작했더군. 그래서 집옆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소들은 이곳을 경유토록하고, 하룻밤을 묵게한 다음 소금물 5「갤런」을 먹이고 갈증을 나게해 다시 15「갤런」의 물을 먹였다는 것. 또 소가 물을 먹지 않으면 고삐를 천장에 매달고 입을 벌려「바께쓰」로 마구 퍼붓는다지 뭐야. 이래서 한마리에 평균 30근을 늘려 1만5천원을 번다더군. [선데이서울 71년 8월 1일호 제4권 30호 통권 제 147호]
  • 스트리퍼 끌어안고 무대위서 키스

    경남 창녕경찰서는 13일 창녕군 창녕읍 대동리 이(李)모씨(22)를 업무방해 및 강제추행혐의로 구속. 이씨는 12일밤 10시쯤 창녕읍 대한극장에서「쇼」를 구경하다가「스트립·쇼」가 아슬아슬한 장면에 이르자, 그만 무대에 뛰어 올라가「스트리퍼」오(吳)모양(20)을 끌어안고「키스」세례를 퍼부었다는 것. 이「쇼」중의「쇼」로 공연은 잠시 중지되고 극장안은 한바탕 소동. 경찰에 끌려온 이씨,『소동을 빚어 미안하나 반나체로 춤추어 나를 이꼴로 만든「쇼·걸」도 책임은 있다』고 주장. 「누가 그 여자를 울렸나」라는 말은 있지만…. <창녕(昌寧)> [선데이서울 71년 8월 1일호 제4권 30호 통권 제 147호]
  • 여고교사 하숙방의 소문

    여고교사 하숙방의 소문

    전남 순천시 S여고생 1천여명이 지난 7월13일 아침 9시30분 학교문을 뛰쳐나와 『누명을 벗겨달라』는「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이색「데모」. 기말시험 기간이었지만 시험을「보이코트」하자는게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스캔들」을 밝혀달라는 것. 번화가로 나와 시민들의 눈길을 모으다 경찰의 제지로 학교에 되돌아간「데모」에 얽힌 사연은-. 새벽·밤 특별과외(課外)가 불씨…사모님이 밥지러 간 새에 말썽의 주인공은 지난 3월까지 이 학교 영어교사이자 학생과장직을 맡았던 강(姜)모교사(36). 4월1일자로 자리를 옮겨 지금은 벌교 모 상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강교사가 S여고에 부임한 것은 69년7월. 미끈한 용모에 재치있는 말솜씨로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영어보다는 오히려 춤과 노래솜씨가 더 뛰어났고 별명도 자칭「알랑·들롱」. 일요일이면「오토바이」를 몰고 순천 시내를 누비거나 사냥을 즐기는 멋장이(?)교사였다. 그의 월급만으로는 호방한 멋장이 생활을 감당할수 없었던지 하숙방에 제자들을 불러들여 과외수업을 시킨데서 문제는 발단. 하숙방은 시내 거저동 고(高)모씨 집의 문간방 2간. 20여명을 새벽과 저녁반으로 갈라 한사람에 1천원, 2천원씩의 돈을 받고 영어를 가르쳤다. 이들중 2,3명의 여학생을 그가 건드린 것이 밝혀진 것.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는 이혼을 당하고 벌교 모 상고로 쫓겨났지만『나만이 당할소냐』하는 듯, 그가 다른 교사 2,3명도 제자들을 상대로 같은 짓을 했다고 관계요로에 진정, 말썽이 커졌다. 관계당국의 조사결과 그의 진정사실은 허무맹랑한 모함으로 낙착됐지만 이 추문이 시민들에게 퍼지자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은 등·하교하는 S여고생들에게 손가락질 하며『아줌마 간다』과일을 사먹으면『신것 먹을 때가 됐다』는 등 모욕적인 희롱을 하기시작했다. 20개월동안 고씨집 방을 빌어 과외수업을 해온 강교사가 과외수업맡을 학생들을 끌어모은 수법도 이색적. 학생과장직을 맡고 있었던 그는 학생들의 교외생활지도를 핑계로 극장등에서 적발한 학생들을 자기 하숙으로 불러 강제로 과외수업을 받게 해왔다는 것. 강교사의 추행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은 3월26일 아침6시30분. 결혼한지 한달보름도 채 못된 신부 이(李)모여인(31)에게 현장을 들킨 것. 이여인이 이웃에 사는 친정에서 아침밥을 지어 돌아와 보니 아침반 여학생 한명이 방금 자기가 일어났던 이불속에서 남편곁에 누워있었다는 것. 이로써 이들의 결혼생활은 파탄에 빠지고 이여인의 호소로 학교당국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말았다. “선량한 학생의 피해 구제헤 달라”고「데모」 강교사는 지난2월7일 이여인과 결혼하기 전에도 같은 학교에서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신(申)모여교사와 한달남짓 동거생활을 하다가 S무용학원을 경영하는 이여인과 결혼해버렸었다. 하숙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밥을 이웃 이여인의 친정에서 지어 날라다 먹었는데 첫날밤부터 강교사가 이여인에게 빚30만원을 갚아달라고 조르다가 거절당하고는 부부싸움이 잦았다는 이웃 사람들의 말. 아뭏든『더 이상 수모를 당할수 없다』며「데모」에 나섰던 여학생들의 요구조건은 (1)파렴치한 강교사를 교육계에서 떠나게 하고 (2)말썽난 여학생을 퇴교시켜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없게해 달라는 것. 이에 대해 학교당국은 사친회 간부들과 함께 교장이 광주에 있는 도교위로 달려가 이같은 학생들의 요구조건을 전하는 등, 추잡스런 이문제가 더 이상 번지지 못하도록 애쓰고 있다. 이에 대한 각계인사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최인수(崔仁樹)씨(대한 교련 공보담당)=교직자로서 그럴 수가 있겠는가? 사실이 아닌 와전으로 믿고 싶다. ●손영경(孫永坰)씨(경기여고 교장)=진상을 몰라 경솔히 말할수 없으나 어쨌든 학생들이 학교를 박차고 나와「데모」를 벌인다는 것은 안될일이다. ●최미하(崔美河)씨(가정주부)=다 큰 딸을 둔 주부로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순천(順天)=오형묵(吳亨默)기자> [선데이서울 71년 7월 25일호 제4권 29호 통권 제 146호]
  • 몸판 사랑 외면에 싹독 잘라 앙가픔

    3살때 부모를 잃고 전전, 식모살이를 하다가 여수시 윤락가로 떨어진 이모양(26·전주시)은 5년전 백수건달 황모씨(29·시내 봉산동)를 알게돼 사랑을 했는데-. 이양은『몸팔아 용돈까지 대주고 이사를 해도 꼭꼭 찾아 변함없이 사랑을 나누어 왔다』고 하소연. 7월 초순께 이양은 고향인 진주에 갔다가 오면서 황씨에게 마중나오라고 전보까지 쳤으나 나오지도 않고 만나기를 꺼려하자 격분, 지난 8일 마지막 동침을 간청하고 시내 Y여인숙에 투숙, 황씨가 잠든 틈을 타서 준비했던 면도날로 싹독했으나 기술부족(?)으로 실패했다는 것. 경찰은 이양을 폭력행위로 구속하고 조사중. -기둥서방님도 쉬운일은 아닌 모양. <여수(麗水)> [선데이서울 71년 7월 25일호 제4권 29호 통권 제 146호]
  • 살인범(殺人犯) 박원식(朴元植)은 한방에서 두 여자(女子)와…

    살인범(殺人犯) 박원식(朴元植)은 한방에서 두 여자(女子)와…

    살인강도범 박원식(朴元植·38)이 거쳐간 6인의 여자. 포악하고 비정한 박(朴)이지만 여자다루기에는 명수. 천성이 방랑아였던 그의 발자취가 닿는 곳마다 연인이 생겼고, 그는 또 연인의 돈으로 방랑을 계속, 새 여자를 만들곤 했다. 그의 엽색 행각을 더듬어 보면-. 애인의 돈우려 새 애인 만드는 자금 삼아 박은 1933년3월29일 경남 김해(金海)군 이북(二北)면 병(屛)리 법동곡(法洞谷)부락 695 박모(75·사망)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적에 의하면 박의 형은 1930년에 태어났다가 3살때 죽었으며, 박의 아래로는 3남(34), 누이 둘(29·21)과 4남(24)이 입적돼있다. 이중 4남은 47년에 출생, 53년에 죽은것으로 돼있으나 3남은 주민등록 신고도 없이 행방불명으로 돼 있는데, 부산 영도구 신선동에 살고있는 박의 어머니 김(金)노파(68)에 의하면 3남은 오래전에 죽었다고 한다. 박은 70년 8월 10일자로 김모 여인(30)과 혼인신고가 돼있으며, 70년 3월30일 출생한 딸이 같은 날짜로 입적돼있다. 박이 주민등록증을 발부받은 곳은 시내 서구 남부민동 220번지 4통2반으로 돼있는데 이곳은 박의 시집간 큰누이가 사는곳으로 박이 누이 집에 더부살이 하면서 주민등록을 한것으로 보인다. 박은 찢어지도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못했고 고향인 김해에서 국민학교 3년을 중퇴, 집에서 놀고있다가 14살때 김해를 떠나 부산(釜山) 대구(大邱)등지로 떠돌아 다니다 6·25가 나던 해인 18살때 군에 입대, 20살때 제대한것으로 알려졌다. 군에서 제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박은 남의집 품팔이등으로 가난한 생활을 하다 집안은 부유하나 천성의 벙어리로 시집을 못가고있던 동네 처녀에게 데릴사위 형식으로 장가를 들었다. 장가를 든 박은 처가집에서 놀고먹으면서 벙어리부인을 툭하면 때리는 등 행패를 부리다 1년만에 아무말없이 사라져 버렸다는게 고향사람들이 박을 기억하고 있는 전부다. 이후의 박의 행적중 뚜렷한 것은 22살때 대구지법 영덕지원에서 절도죄로 징역10월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2년뒤 다시 절도죄로 김천(金泉)지원에서 징역2년, 교도소내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소란을 떠는등 문제수(囚)로 지목받았었다. 59년 9월 부산지법에서 모종사건으로 징역7년형을 받고 복역중 64년도 9월 1차감형때 풀려나와 오늘까지 별로 하는일없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베일」에 가린 생활을 해왔다. 성격이 난폭하고 여자낚기와 사격의 명수인 박은 이름도 김창식(金昌植), 박태동등 나오는대로 주워 섬기면서 때와 장소에 따라 「카메레온」처럼 변신해왔다. 박으로부터 제일 처음 피해를 입은 한독약국 김근상씨(34)에 의하면 김씨가 박을 본 것은 7년전이었는데 이때 박은 자기가 모처에서 일을 한다면서 거드름을 떨며 알수없는 몇마디 말을 하고 헤어진후 강도를 당한 지난 6월29일밤 처음 봤다는 것이다. 이처럼 박의 행적은 뚜렷하지않은데, 호적에 입적돼 있는 본처와 어머니가 70년2월이후 살고있는 영도구 신선동 본집에도 한달에 한두번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생활비조로 1,2만원을 던져주고 휙 나가버려 처와 어머니도 박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있다. 박이 현재 본처로 돼있는 김모여인을 만나기는 68년도에 박이 탕아로 부산의 사창가인 완월동 등지를 드나들면서 만나 서로 정이 들자 동거생활로 들어갔다한다. 이때(68년12월) 박은 웬일인지 대구로 김여인과 함께 옮겨가 지난 11일 제2의 범행을 저지른 대구시 비산(飛山)동 296의30 진(陳)기춘씨집 근처에 집을 얻어 생활을 하면서 사형인 진씨에게 『생활이 곤란하면 함께 일본으로 뛰자. 준비는 다 돼있다』는 등의 말로 자주 접근해 왔다. 이를 수상히 여긴 진씨가 모기관에 박을 고발했는데, 고발당한지 5일만에 다시 박이 나타나 『재미없다, 죽을줄 알아라』는 등의 협박을 하고는 부산으로 간다면서 대구에서 바람같이 사라져 버렸다. 여자다루는 마력(魔力) 지녔나? 질투없이 몸대고, 돈대고 70년 3월 부산에 나타난 박은 친척들이나 자기를 오래알고 있던 곳에는 전연 얼굴을 내밀지 않고 남부민동 220 자기 누이집으로 『자신이 다른지방으로 전근간다』면서 가족을 보내고는 행방을 감추었다. 이리저리 혼자 떠돌던 박은 이해 6월 송도 모주점에서 두번째 내연의 처인 문(文)모여인(28)을 만났다. 해녀생활을 하다 주점에 나온지 얼마 안된 문여인은 박의 능수능란한 여자다루는 솜씨에 그만 녹아떨어져 자기집에서 박과 함께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문여인은 이때 얼마나 박을 좋아했는지 박없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맛이 없다는 식으로 제나름의 시를 지어「노트」에 적어놓는등 박을 붙잡기에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박은 두달후에 온다간다 말한마디없이 문여인의 곁에서 증발했는데, 이때 박은 문여인덕으로 먹고살면서 부산의 번화가를 드나들다가 중앙동 K다방의 고용「마담」으로 있던 김모여인(28·동래구 부곡동)을 구슬러 김여인의 언니가 살고있는 부곡동으로 김여인과 함께 옮겨가 버렸다. 박은 새로 사귄 김여인과 어울려 김해를 비롯, 경남(慶南)의 명소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연인과의 정을 두텁게 했다. 하는일없이 놀고먹는 박은 무슨 해상장사를 하겠다는등 알쏭달쏭한 소리를 해가며 김여인과 김여인의 언니돈 89만여원을 갖다 흥청대면서 지난 5월 박이 김여인과 함께 일본으로 밀항하기위해 함남동 문여인집으로 올때까지 죽 이곳에 눌러있었다. 5월말 문여인집으로 김여인과 함께 옮겨온 박은 한집에서 한달가까이 김여인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여인들을 잘돌봤는지 이들은 한번도 싸우거나 불평을 늘어놓은적이 없다고한다. 타고난 「플레이·보이」인 박은 공식적으로 드러난 김·문등 여인말고도 서울 모다방에 있다는 손(孫)모, 대구에 있다는 김(金)모등 이루 헤아릴수없을 정도로 많은 여인들을 주변에 두었는데 이들에게서 들은 박의 여인낚기의 특징은 뛰어난 화술에 있다는 것이다. 중졸정도의 교육을 받은 여인들은 박과 앉아 5분정도만 이야기해도 금방 좋아질 정도로 그는 이 방면에 비상한 재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釜山)=김홍석(金弘錫)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7월 25일호 제4권 29호 통권 제 146호]
  • 「미스·건설부」송인자(宋仁子)양-5분 데이트(142)

    「미스·건설부」송인자(宋仁子)양-5분 데이트(142)

    서글서글한 눈매와 다정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송인자(宋仁子)양(21). 건설부 도로국장실에 근무하는 싹싹하고 명랑한 아가씨다. 하루에도 수십명의 손님을 맞지만 언제 보아도 즐거운 표정. 『직장일이 재미있어요. 때로는 보람도 느낀답니다』마냥 즐겁기만 한 모양이다. 지난 해에 수도여사대 부고를 졸업했다. 요즘은 일이 어찌나 바쁜지 「데이트」할 시간조차 없다고 귀여운 불만. 홀어머니 노진분(盧眞分)여사(55)의 3남4녀중 막내. 막내라고는 하지만 집안이 엄해서 별로 어리광을 부려보지 못했단다. 『직장 일이 재미있긴 하지만 너무 오래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도 앞으로 2년동안만 하고 결혼할 생각이에요』 그러나 막상 결혼한다고해도 한 가정의 주부라는 벅찬 일을 감당해 낼지 좀처럼 자신이 서지 않는단다. 앞으로 2년동안 직장 일을 충실히 하면서 주부수업도 차근히 쌓아두어야겠다는 송양의 섬세한 계획. 『저를 사랑해주는 믿음직한 남성이면 신랑감으로 부족이 없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한마디로 자신있게 얘기할만큼 깜찍한 아가씨. 음악감상과 등산을 좋아하는 그녀는 집안 살림도 알뜰히 보살피는 착한 숙녀다. [선데이서울 71년 7월 25일호 제4권 29호 통권 제 146호]
  • 「샤론·테이트 」살인(殺人)사건…여자(女子)공범의 고백(告白)

    「샤론·테이트 」살인(殺人)사건…여자(女子)공범의 고백(告白)

    비록 내일「개스」실서 처형될지라도 「맨슨」과 함께 있는 오늘은 황홀할뿐 내가「사디·메이·글루츠」라고 이름을 고친 것은 아직 내가 애를 낳기 전의 일이었다. 이름을 바꾼데는 별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연히 그렇게 돼버린 데 불과했다. 우리들의 세상에서는 법률상의 이름이 그렇게 큰 뜻을 가지는 건 아니다. 딴사람이 되고 싶다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될 수 있는 거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은 과거와도 미래와도 관계를 끊어버릴 수가 있었다. 어느날「맨슨」이 그저 우연히 「사디」하고 나를 부른 것이 계기가 된 것뿐. 『어때,「사디·메이」』 「찰리」가 말을 붙여 오면 나는 단지『오·케이』하고 대답만하면 충분했다. 어떻든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게임」처럼 즐거웠다.「찰리」와 「버스」를 함께 탔을 때 이미 우리들은 과거의 세상과는 손을 끊은 셈이다. 따라서 사람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며, 자연의 법칙에도 맞는 일이기도 했다. 덕분으로 나는 과거의 망령에 겁먹을 필요도, 불안과 공포에 떨 필요도 없어졌다. 이런 불안과 공포에서 나를 해방시켜 준 사람은 다름아닌 「찰즈·맨슨」이었다. 비록 내일「개스」실 또는 전기의자에 앉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공포로 새파래지거나 와들와들 떨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찰즈·맨슨」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스판」목장에서의 생활은 끝없는 「뷰티풀」한 「파티」였다. 아침 몇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룰」도 없으니 자기 좋을 때 일어나면 됐다.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때의 식구는 모두 25명, 물론 남녀 합해서였다.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작은 왕국」, 목장은 글자그대로 「자기들만」의 세계였다. 거긴 우리들이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이상향」, 이른바「탈체제(脫體制)」였다. 이러한 세계는 짐승의 세계였다. 문명과는 전혀 인연이 먼 사막에서「섹스」를 즐기고 「마리화나」를 피우며 「스판」목장은 문명과는 뭐하나 인연이없는 「죽음의 사막」, 외부에서 들어오기란 어려운 일이고, 한번 들어서게 되면 길을 잃어 두 번 다시 사바세계로는 돌아갈수가 없는 곳이다. 여덟번인지 아홉 번인지「찰리」가 모는「버스」는 고장을 거듭하면서 달리다 쉬다했다. 「캔디」를 먹으며 「마리화나」를 피우며 야숙을 하다가는 「엔진」이 움직이면 다시 떠난다. 넓으나 넓은 목장의 유일한 교통기관인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은 정말 「스릴」만점이었다. 모두들 가족처럼 지냈다. 「오빠」「언니」로 부르고 불리면서. 나는 언니 구실이 떠맡겨졌다. 아기도 함께였다. 사막의 따가운 햇볕에 모두가 검둥이, 타서 물집이 생길 정도였다. 한낮의 사막은 「프라이·팬」처럼 뜨겁다가도 밤이 되면 냉장고처럼 차가왔다. 우리들은 광부가 버리고 간 오두막 2채에서 얼기설기 얽혀서 잤다. 오두막이라야 이름뿐, 거미집 투성이에 별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고치려는 사람도, 일의 분담도 없이 모두가 제멋대로였다. 요리를 하고 싶으면 해도 좋았고 마음 내키지 않으면 안해도 좋았다. 여자가 많으니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게 마련이었다. 몸에 걸리는 옷이나 내복까지 공유, 매일처럼 서로 바꿔입었다.「변한다」는게 우리들의 사는 보람이었으니까. 과거도 미래도 없이, 있는 것은 다만 현재의 이 순간뿐. 이 순간을 풍부하게 하려면 끊임없는 변화가 필요했다. 이름을 바꾸고 옷을 바꾸고 「섹스」의 상대를 바꾸고…. 밤이면 으레「파티」다. 전등이 없으니 촛불을 켜놓곤 「캔들·파티」. 우리들은 미친듯 춤추고 목청이 터져라 노래했다. 잔소리할 사람이 있을리없다. LSD나「마리화나」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교회도 성서도 없는 그곳, 찬미의 대상은 오직 「찰리」한사람 매일 이런 것에 취해 있는 것 같은 생태였으니까. 「찰리」와 함께라면 「뷰티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찰리」의 여행은 내 여행, 「찰리」의 바램은 내 바램이었다. 광막한 사막에는 철학도 책도 성서도 교회도 없었다. 「찰리」그사람이 철학이며 교회였다. 「찰리」의 생활과 행동이 바로 살아 있는 성서였다. 「찰리」와 우리들의 촉매(觸媒)는 뭣일까. 음악이었다. 그 「기타」와 비길 데 없이 고운 목소리였다. 「뷰티풀」한 음악은 언제나 우리들을 별천지로 날라다줬다. 바로 「천사의 소리」그것이었다. 「찰즈·맨슨」은 정말이지 우리들에게 있어서 신과 같은 존재. 모두「찰리」를 찬미하고 숭배했다. 열광적이었다. 「우먼·리브」인지 뭔지 참으로 어리석은 수작들이다. 정말의「우먼·리브」란 여자로서의 자기를 아는 것. 「찰리」는 내가 훌륭한 여자임을 깨닫게 해줬다. 「이브」가 「아담」에게 사과를 먹인 이래, 여자는 남자를 「콘트롤」해왔다. 「이브」가 「아담」을 속인 것이다. 그럼 왜 「아담」은 속았을까. 남자란 본래 성격적으로 약한 동물, 어이없게도 속기 잘하는 약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여자로서의 자기를 깨달은 나는 이제는 남자를 속일 필요가 없어졌다. 남자를 모욕해서 무슨 소득이 있단 말인가. 남자는 남자를 떠나서 아무것도 아니다. 남자는 어디까지나「킹」이며 여자는 「퀸」인 것이다. 「퀸」은 「킹」이 하자는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그대신 「킹」은 「퀸」을 즐겁게 해줘야만 한다. 「퀸」을 즐겁게 해줄 수 없는 사내는 「킹」의 자격이 없다. 「찰리」는 「킹」중의 「킹」. 그의 이름을 한번 뜯어보는 게 좋다. 「맨슨」은 「맨」(인류)「슨」(아들)-즉「사람의 아들」이란 뜻이다.「사람의 아들」이라 불린 것은 아마도 예수와 「찰리」뿐이리라. [선데이서울 71년 7월 25일호 제4권 29호 통권 제 146호]
  • 더듬다가 들킨청년 “목걸이하고 다녀”

    9일께 부산시내 서면 「로터리」부근을 달리던 시내「버스」안에서 30대의 남녀가 옥신각신 말다툼을 하여 승객들의 시선을 모았는데-. 여자가 먼저『왜 남의 가슴을 함부로 더듬느냐』고 고함, 승객들은 치한이 못된 짓을 하는가보다고 생각했는데 남자는 느닷없이 『개만도 못한 년』이라고 되레 고함. 여자가 『왜 개만도 못하냐』고 대들자 『이년아, 개도 목걸이를 하는데 너는 그런 것도 안차고 다니니까 개만도 못한거지. 사람 노릇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마침 도착한 정류장에 뛰어 내려 도망. <부산(釜山)> [선데이서울 71년 7월 25일호 제4권 29호 통권 제 146호]
  • 심심해서 한번…처녀 할일 따로있지

    평택(平澤)경찰서는 6월29일 주거부정의 김명자양(가명·20)을 즉심에 넘겼는데-. 김양은 28일 수원에서 1-3789호 「코로나택·시」(운전사 현용태)를 잡아타고 신나게 「드라이브」. 무려 2천7백40원의 요금이 올랐것다. 요금을 달라자 빈털터리라면서 한다는 말씀이 『심심해서 한번 차를 타봤을 뿐이에요』 - 쯧쯧, 심심하면 시집이나 갈것이지. <평택(平澤)> [선데이서울 71년 7월 18일호 제4권 28호 통권 제 145호]
  • 이모님 내쫓고 내가 이모될테야

    이모님 내쫓고 내가 이모될테야

    한참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는 예비군앞에 공비아닌「시미즈」바람의 여인이 나타나 어리둥절. 그 여인은 어느 사나이와 활극을 벌이더니 끝내는「누드」가 되어 용감한 예비군 아저씨들에게 겁을 주었는데-. 한집서 살다보니 눈맞아 6년전부터 못끊을 사이 곳=전남(全南) 순천(順天)시 비행장부근 때=6월 27일 하오 사람=김화순(金花順)(가명·25·미혼녀·순천시 매곡(梅谷)동), 정영택(鄭永澤)의 처조카 정영택(가명·34·기혼남·순천시 매곡동)김화순의 이모부 이선녀(李仙女)(가명·31·기혼녀)정의 처, 김화순의 친이모 6월 27일 하오 2시. 뙤약볕 밑에서 순천시 행금(幸金)동 예비군중대원 1백50명은 비지땀을 흘려가며 포복훈련을 받고 있었다. 장소는 시내 매곡동 A지구 비행장 활주로. 『저거…저거…』 누군가 엎드렸던 땅위에서 벌떡 일어서며 비행장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 소리에 동료 예비군들도『뭐야?』하며 일어났다. 약 2백m쯤 될까? 사내 한사람이 앞서고 뒤에는「시미즈」바람의 여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남녀는 예비군들의 따가운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뭔가 서로 삿대질하며 비행장쪽으로 접근했다. 여자의 검정「브래저」와「핑크」색「팬티」의 윤곽이 보일만한 거리에 이르자 갑자기 남자가 뒤돌아 여자를 후려갈겼다. 휘청하며 쓰러질 듯 하던 여자가 이 순간 갑자기 발악하며 남자에게 달려 들었다. 남녀는 서로 껴안고 풀밭에서 뒹굴었다. 이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관전하던 예비군들은 현장으로 달려갔다. 예비군들이 달려갔을 때 싸움의 제1「라운드」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남자는 곳곳에 할퀸 상처가 났고 여자는「시미즈」가 완전히 찢겨졌음은 물론「브래저」도 팽개쳐진 채였다. 팽팽한 고무줄로 된「팬티」도 거의 벗겨져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거 뭐여? 싸우려면 산으로 올라가서 하든지…』 누군가 호통을 치자 비로소 여자는 정신이 난듯 두팔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고 허리를 굽혔다. 그 틈을 이용한 남자가 창피했던지 비행장 뒷산쪽으로 달렸다. 『저 놈 좀 보게, 같이 죽자 같이 죽어』 여자가 벌떡 일어서며 알몸으로 사내의 뒤를 쫓아달렸다. 예비군 훈련은 다시 시작됐고「누드·쇼」는 일단 여기서 1막을 내렸다. 이날의 주인공 여자는 김화순(가명). 호적상으론 처녀로 되어있다. 남자는 승주(昇州)군의 모관청에 임시직원으로 근무한 바 있었던 정영택(가명). 두사람은 이모부와 처조카 사이. 그러니까 정의 아내와 김여인의 어머니가 친형제간이다. 이종 동생까지 몰아내고 “결혼 안하려면 같이죽자” 이모를 몰아내고, 3명의 이종동생까지 추방한 다음, 이모부와 살림을 차리겠다고 아우성친끝에 벌어진 것이 바로 이날 김의「누드·쇼」. 김의 어머니 이모여인에 의하면 이 사건의 시작은 이미 6년이 됐고, 자기가 알게 된 것은 두달 전이라는 것. 6년전 이여인은 살림이 구차하여 동생 이여인집에 얹혀 살게 됐다. 이당시 김의 나이는 19살. 『어떻게 둘이 눈이 맞았는지 모르겠어요. 한 집안에서 살다보니 실수를 한 모양인데….』 그 실수가 실수로 끝나지 않고 6년동안 줄곧 계속되어 왔던 것. 정은 애처가로 소문이 날 정도. 처조카와 불륜의 사랑을 나누면서도 아직까지 한번도 아내를 구박하거나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었다는 이여인의 말이다. 두달전, 결국 소문이 퍼진데다가 김이 정에게『이모와 이혼하고 나와 살자』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면서 속옷차림으로 정의 방을 드나들게 돼 정의 처 이씨와 김의 어머니도 알게 됐다는 것. 어머니와 이모가 알게되자 김은 공공연하게 나왔다. 정은『절대로 그럴 수 없다』며 김의 요구를 거절했고, 그럴수록 김은 당장 이모와 자식들을 쫓아내고 결혼식을 올리자고 대들었다. 김의 성화에 견디다 못한 정은 6월 25일 아내를 승주군 서(西)면의 친정으로 보냈다. 이여인은 다만『남편의 철석같은 애정』만을 믿고 해결의 실마리를 주기위해 고분고분 친정으로 갔다. 이여인은 3일만인 27일 자식들을 거느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으로 들어서니「시미즈」바람의 조카 김이 남편과 대판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모와 이혼하든지, 나와 함께 죽든지 어느쪽이든 선택하라』는 강요였던 것. 잠자리 뺏는 차마 못볼 패륜도 서슴없이 정은 절대로 이혼을 못하겠다고 버텼다. 이말에 울화통이 터진 김은 정을 끌고 비행장쪽으로 가면서 당장함께 죽자고 대들었다. 행금동 예비군들이 목격했던 장면이 바로 여기서부터. 이날 산으로 올라갔던 남녀의 행방에 대해선 현재 아무도 모르고 있다. 김의 어머니가 딸이 알몸으로 뒹군다는 얘기를 듣고 옷가지를 가지고 가 입도록 해준 것이 이 사건의「피날레」. 정과 김은 현재까지 행방을 감추고 있고 정의처 이여인은 다시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가버렸다. 다만 김의 어머니만이 빈집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같은 동네사람들에 의하면 최근 두달동안은 김이 정의 집을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고, 함께 잠자는 이모를 쫓아내고 그 잠자리에 자신이 들어가 밤을 새우는 예가 빈번했다는 것. 정의 성격이 지나치게 우유부단한 반면 김은 악착같이 이모부를 차지하려는 표독한 성미였다는 게 이웃집 사람들의 얘기다. 그들이 정말 지금 자살이라도 했는지 아니면 멀리 달아나 이모부, 처조카라는 인륜을 무시하고 살림을 차렸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순천=김상현(金相賢)·오형묵(吳亨默)기자> [선데이서울 71년 7월 18일호 제4권 28호 통권 제 145호]
  • 성처녀 애배고“할말많다”

    성처녀 애배고“할말많다”

    『「아일랜드」의「잔·다르크」가 임신을 했다 』 - 그렇잖아도 심심찮게 세계의 화제에 오르내리는 영국의 처녀 하원의원「버나데트·더블린」 양(22)이 가을에는 아버지 없는 엄마가 되겠다고 스스로를 폭로해, 본바닥 「아일랜드」와 영국은 고사하고 온 세계에 다시 한번 「쇼킹」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핫·팬츠」로 의사당 휩쓸고…약한자의 대변자를 자부 북「아일랜드」의 「쿠크스타운」빈민가에서 태어나 여자대학생의 몸으로 쟁쟁한 상대후보의 경쟁을 물리치고 겨우 21살의 나이에 영국 하원의원의 자리를 차지한 것만도 영국의회 사상 처음 있는 일이거니와 신사중의 신사만 모이는 「신사의 나라」의 의사당에서 휘파람을 불며 복도건 어디건 마구 뛰어다니기가 일쑤. 그런가 하면 「미니」나 「핫·팬츠」차림으로 느닷없이 나타나 품위를 자랑하는 다른 의원들의 눈둘바를 모르게 만드는 말괄량이 의원도 영국의회 사상으로는 처음있는 일이다. 술·담배가 또한 보통이 아닌 「헤비」급. 북「아일랜드」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종교분쟁으로 온통 폭동의 거센 바람속에 가랑잎처럼 밀려다닐 때, 「데블린」양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에 대항하여 「가톨릭」계의 군중을 선두에 나서서 지휘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이 「아가씨 투사」의 팔짓 발짓의 몸짓 하나하나도 모두가 의표를 찌르는 일들 뿐이라 자연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마련. 비록 가난한 목수였지만 「아일랜드」의 자유와 통일을 염원하고 또 그러한 행동에 가담하기도 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어렸을때부터 「데블린」양에 배어들어 12살 때는 벌써 「반역의 시」를 불러 정치적 항의 행동의 첫발을 내디뎌 「투사」로서의 소질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의 분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세기를 걸쳐 내려오는 숙명적 대결, 언론과 집회를 제한하는 특별권한법, 언제까지나 헤어날 아무런 보장도 없는 서민들의 가난-이런것들이 하나하나 「데블린」양의 과격한 마음에 불을 질러 폭발적 행동을 치닫게 만들었다. “의원(議員)은 정치문제만 대표…사생아 배건말건 개인(個人)일” 타고난 웅변을 종횡으로 휘둘러「벨파스트」대학에 들어가자 이미 학생지도자의 하나로 꼽혔다. 이후로의 「데블린」 양의 생활은 정치집회와 데모의 연속이었다. 능란한 말주변과 지칠줄 모르는 행동력은 희망없는 나날을 지내는 「가톨릭」계통의 빈민들에게 꿈을 심어줬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잘 살수 있는가』그들은 환호속에 「데블린」양을 지도자로 삼았고 성녀(聖女)로 따르기조차 하게 된 것이다. 이번의 「성녀임신」소식은 「아이리시·타임즈」의 여기자가 「데블린」양과 「인터뷰」한데서 명백해진 것인데, 이에 따르면 「데블린」양은 올 2월에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나아갈 길을 결정할때까지 침묵을 지켜 왔다는 것. 이제 마음이 서서 세상에 털어 놓는다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기르려고 했어요. 낙태는 도의상 할수없어요. 아버지가 누구냐고요? 그것은 밝힐 수 없죠. 왜 밝힐수 없느냐는 것도 말할수 없어요』-서슴없는 태도다. 『의원은 정치문제를 대표할 따름이며 도덕적인 문제는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겠어요? 의원도 사람인 이상 아이를 낳는 법. 그것이 사생아건 뭐건 상관할건 없다고 생각해요』-그녀다운 배짱이다. 물론 자기로서도 도덕적인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단다. 『「가톨릭」에서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그렇게 태어난 아기는 사생아의 딱지를 붙여 차별하려고 드니 그런 모순이 어디있어요. 왜 죄가 아기한테 있어요. 있다면 부모지요』 사생아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대학 2학년 때 학생토론회에서 당당한 이론을 펼친적이 있다. 이번의 「임신」은 그 실천에 불과한 것.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의 기본적인 성도덕에 대해 놀랄만큼 모르고 있어요. 모두가 인습에 사로잡힌 옹고집이란 말예요. 자유연애는 인정하지만 사생아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모순이 어디있을까요』 「데블린」양은 결혼도 않지만 의원직도 그만두지 않겠단다. 더구나 다음 선거에도 출마하겠다니…. 지지자가 「가톨릭」신자들이라 그들의 엄격한 윤리관에 비추어 이번 일이 용납이 될는지 다음 선거에서 결과를 기다려 보아야겠지만 장본인인 「데블린」양 생각으로는 별로 타격을 받을 것 같지 않다는 눈치. 「데블린」양의 자서전적인 저서『내 영혼의 가치』를 들춰보면 곳곳에 의회의 타락과 무능을 꼬집고는 자기는 국회의원에의 매력도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연애를 인정한다면 사생아(私生兒)도 인정해야 마땅” 『북「아일랜드」문제가 「웨스트민스터」에서 토의되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선거구에 관심이 없는 의원들, 이권과 지위만이 그들에게는 보물, 의회란 그들의 사교「클럽」입니다. 내가 「아일랜드」를 위해 해준 것은 겨우 벽촌에 우체통 하나를 설치해준 것 뿐예요. 정치란 나에게는 알 수도 없는 「게임」, 내가 국회의원으로서의 의의를 찾자면 「아일랜드」의 비참한 현상위에 이득을 노리는 정객들이 내 자리를 못차지하게 하는 것 뿐입니다』 한편 이번 사건을 놓고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반응은 어떤가. 「데블린」양의 지지파, 중부 「얼스터」독립사회주의자 기구에서는 『얼마나 용기있는 일인가, 역시 「데블린」양은 경탄할만 하다』고 즉각 성명을 발표하곤 공민권운동측의 선동적 악선전을 막기위해 「데블린」양을 북「아일랜드」수도로 불러 재신임을 다짐했다. 「웨스트민스터」사원의 대변인은 『누가 이런 궁지에 몰리더라도 교회는 변함없는 신의 사랑을 내릴뿐』이라고 자못 관용이다. 「데블린」양의 앙숙인 「프로테스탄트」의 지도자 「이안·페이즐리」목사마저도 『죄없는 자만이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외엔 할말이 없소』 식이다. 환호를 지르며 갈채를 보낸 것은 역시 「아일랜드」의 「우먼·리브」. 『어젯 밤을 기해 결혼 않은 엄마의 수치심은 적어도 「아일랜드」에서는 죽어버렸다』 스스럼없이 정치집회에 나온 「데블린」양의 아랫배는 아닌게 아니라 엄마가 될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줬다. <Q> [선데이서울 71년 7월 18일호 제4권 28호 통권 제 145호]
  • 청자를 피고 싶으면 신탄진을 사라

    원망을 들어오던 전매청이 엉뚱한 일로 칭찬을 받은 사건. 6월 25일 강원(江原)도 양구(楊口)군 양구(楊口)면 죽곡(竹谷)리의 연초산매상 이용주씨(35)는 양구전매서에서 배달된 신탄진 5백갑이 이날따라 엄청난 속도로 팔려나가 입이 함박. 1주일동안 죽어라하고 팔아도 신탄진은 5백갑을 팔까말까하던 판이었는데 이날은 한사람이 10~20갑씩 몽땅 사가는 통에 몇시간사이 매진사례. 이(李)씨는 아무래도 이상하여 신탄진을 뜯고 보니 어렵쇼, 예쁘장한(?)「청자」양이 가진런히 들어 있더라는 것. -그 실수 전국에 골구루-. <양구(楊口)> [선데이서울 71년 7월 18일호 제4권 28호 통권 제 145호]
  • 「미스·고려개스공업」류지영(柳智英)양-5분 데이트(141)

    「미스·고려개스공업」류지영(柳智英)양-5분 데이트(141)

    부드럽고 매력적인 목소리의 류지영양(24). 고려「개스」공업 경리과에 근무하는 상냥하고 친절한 아가씨다. 3년전 동아방송이 주최한 전국남녀대학 방송「콘테스트」에서 개인 연기상을 탔을만큼 그녀의 재질과 능력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다 알려져 있다. 『대학 다닐 때 방송부에서 일했죠. 방송「드라머」에 출연했었어요. 또 대학 연극부에도 가입해서 1년에 두번씩 무대에 섰었답니다』 고려대 국문과 3학년 중퇴라는 류양은 아직까지도 방송「드라머」와 연극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조용하고 이지적인 인상을 풍기는 미모, 사귀면 사귈수록 인정이 많다는 평을 듣는 우등생 규수감이다. 상업하는 아버지 류재철(柳在喆)씨(52)와 어머니 정순덕(丁順德)여사(47)의 4남매중 맏이자 외딸. 결혼은 올해나 내년중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살짝 일러주는 수줍은 아가씨. 신랑감은『착실하고 생활력 강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류양은 경리일을 맡아서인지 성격이 꼼꼼하고 치밀하다. [선데이서울 71년 7월 18일호 제4권 28호 통권 제 145호]
  • “너만을 사랑해”는 몽땅 거짓말

    “너만을 사랑해”는 몽땅 거짓말

    「하이·틴」의 우상이 되고있는「보컬·그룹」「멤버」에게 유린당한 한 여인의 수기. 이 수기는「보컬·그룹·팬」들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여기 지적된 Y씨는 지금도 인기 절정의 「드럼」연주자. 필자 윤혜민양(가명·24)은 S대 1년때 그와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달콤한 말 믿었던 여대생(女大生) 본처 있는줄 모르고 임신 여학교를 나와 대학의 문에 갓들어선 나는 마냥 어리기만한 철부지였읍니다. 나는 친한 친구의 소개로 철부지 소녀들의 우상적인 존재였던 한「보컬·그룹」「멤버」를 사귀었읍니다. 현 K「그룹」의「리더」이며「드러머」인 Y씨였읍니다. 『혜민아 난 너만을 사랑한다』는 그의 달콤한 속삭임에 어린 나로서는 너무나 큰 결단을 내려야만 했읍니다. 지방공연을 할 때마다 거의 반강제로 끌려다녔읍니다. 그는 주위사람들에게 나를 아내라고 소개했읍니다. 부끄러웠지만 그이를 사랑했기에 내 가슴은 뿌듯하였읍니다. 정말 꿈 같은 시간들이 반년이나 지난 어느 날. 그와 나 사이에 뜻하지 않은 여자가 나타났읍니다. 그녀는 그의 부인이었읍니다. 그러나 그이는 그저 옛날에 동거하던 정도의 여자라고 얼버무리며 나를 달래는 것이었읍니다. 그이를 믿었기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던 중 아이를 갖게되었고 그이는 월남에 장기 공연을 떠났읍니다. 그이마저 없어 의지할 곳 없는 나는 불러오는 배를 안고 친구집을 전전해가며 피눈물 나는 고생을 했읍니다. 따뜻한 집과 부모님이 계셨지만 이미 죄인이 된 나는 찾아뵐 수가 없었읍니다. 찬바람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나의 몸을 휘감던 작년 2월, 어쩔수없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S병원에 입원하여 딸 쌍동이를 9개월 만에 제왕절개로 조산하였읍니다. 그 때는 이미 부모님들도 그이가 본 부인이 있고, 그 부인한테도 딸이 둘이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래도 아기 아빠가 아이들의 장난감과 아기들이 보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줄 땐 저는 행복에 겨웠읍니다. 그러면서도 본 부인에 대한 양심의 가책만은 어쩔수가 없었읍니다. 그러던 중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이가 돌아오셨읍니다. 아빠는 저와 아기들을 열심히 사랑해 주셨읍니다. 본 부인과 결혼한 그날도 신혼여행은 다른 여자와 부모님들도 집과 차를 사주는등 경제능력이 없는 그이를 위해서 많이 애써 주셨읍니다. 그때마다 그이는 본부인과 이혼하고 저와 정식 결혼을 하겠다고 했읍니다. 저는 본 부인의 아이들까지 맡아 기른다 해도 가정을 이루기 위해선 모든걸 희생할 각오가 돼 있었읍니다. 그러나 저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걸맞지 않는 것일까요. 그이에게 또 다른 제3의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도 항상 복잡다난 했읍니다. 본 부인의 말에 의하면 결혼식은 자기와 올리고 신혼여행은 다른 여자와 갈 정도로 그이는 바람둥이였읍니다. 저는 제3의 여인을 추적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녀는 모 항공사의「스튜어디스」였읍니다. 그녀를 아기아빠가 월남에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알았다고 했을 때 귀국 당시의 천연덕스러웠던 아빠의 행동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저는 누구와 의논할 수도 없었읍니다. 착하기만한 본부인은 그저 저를 달래며 위로해 줄 뿐이었읍니다. 그 부인을 생각 해서라도 그이를 그여자의 손아귀에서 빼내야만 했읍니다. 저는 그 여자를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읍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녀는 생글생글 웃기조차 하면서 자기는 단순히 「엔조이」로 아기아빠를 상대했을 뿐이지 오래 사귀고 싶지도 않다고 하였읍니다. 그뒤에도 그녀는 저에게 전화를 걸어 아기엄마는 너무 상심하지말고 밥 잘먹고 기운차려 애들을 잘 보살피라고까지 하였읍니다. 그리고 아기아빠가 바람피면 알려주겠다고 했읍니다. 얼마나 무서운 여자입니까? 아빠와의 관계를 계속하면서 그런 말로 나를 달랜 그녀. 하지만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읍니다. 단원들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들이 S「호텔」과 D「호텔」등을 전전해가며 동거하고있는 것을 알았읍니다. 새벽4시부터 따라다니며 마침내 현장을 목격했을때의 저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했읍니다. 그이는 처음부터 본부인과 저에게 생활비라고는 조금도 보태주지 않았읍니다. 그렇다고 그이가 수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3의 여인 나타나 이혼키로 했으나 두 가정이 충분히 쓰도도 남을 만큼의 돈을 벌고 있지만 그것은 전부 여자들과의 유흥비로 썼읍니다. 오히려 저의 집에서 「팀」을 만든다고 가져간 돈만도 상당하였읍니다. 집의 차마저 잡혀가지고는 그 여자와의 애정행각에 소비해 버렸읍니다. 드디어 더 견딜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말았읍니다. 그이가 이혼하자고 제의해 왔읍니다. 저는 공항으로 그녀를 찾아갔읍니다. 마침 그녀는 그이와 만나 얘기하고 있었읍니다. 세사람만이 이야기 할수있는 기회였읍니다. 저는 그 여자에게 우리 아이들과 본부인의 아이들을 맡아 키울수 있겠냐고 물었읍니다. 그녀는 당황하는 표정이었지만 애써 자신이 있다고 얘기했읍니다. 그뒤 가산을 정리하여 보니 그이는 내주위 사람들에게 말할수 없이 많은 빚을 지고 있었읍니다. 나는 별수없이 그것을 떠 맡아야만했읍니다. 채권자들이 그를 걸어 고소를 하게되면 우리 아이들이 불쌍해서 였읍니다. 이왕 이렇게 된이상 그 여자와 그이가 결합해서 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를 빌었읍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여자는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자기는 직장이 있고 나이가 어리므로 아이도 맡을수 없고 결혼도 할수 없다는것입니다. 아빠는 본부인을 달래 아이를 맡기고 말았읍니다. 본부인은 그렇게 되면 아빠가 자기가정으로 돌아오고 또 경제적 도움이라도 있을까 해서 맡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활비조차 주지 않고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고 저에게 다시 아이를 데려가라는 것이었읍니다. 저의 아이들의 갈 곳은 어디입니까. 찢어진 가정을 다시 이을수도 없읍니다. 눈물 겹도록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저이지만 이제는 어쩔수 없읍니다. 다시는 사회에 나같은 불행이 없도록 비sms 마음에서 이 글을 썼읍니다. 1970년 7월 7일 윤혜민 드림 [선데이서울 71년 7월 18일호 제4권 28호 통권 제 145호]
  • 「미스·건국대」 이희재(李喜宰)양-5분 데이트(140)

    「미스·건국대」 이희재(李喜宰)양-5분 데이트(140)

    올해 건국대 가정대 의상학과 2학년에 재학중인 이희재(李喜宰)양(20). 키 168㎝, 몸무게 48㎏에 32-22-35의 날씬하고 갸날픈 몸매. 서울 중앙여고 출신의 이(李)양은 평소의 꿈이 일류 「패션·모델」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었다고. 그래서 지난번 「패션·모델」에로의 길이 열리는 목화 아가씨 모집 공고를 보고 가슴을 두근대며 친구는 물론 가족도 모르게 응모했었다. 『제가 뽑힌 것을 알고 다들 깜짝 놀라요. 예상밖이라는 거죠』그러나 그녀 자신은 직업「패션·모델」의 꿈을 오랫동안 혼자서 말없이 가꾸어왔다고 한다. 운수업을 하는 이강대(李康大)씨(49)와 부인 조신현(曺信鉉)여사(49)의 7남매중 세째 딸. 그녀의 전공이 의상학이기도 하지만 워낙 바느질 솜씨가 인정을 받아온 터라고. 「원피스」「스커트」「팬털룬」등 웬만한 옷은 직접 만들어 입는다. 『결혼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표정이 천진스럽다. 남자친구는 있어도 애인은 없단다. (표지사진 배경은 덕수궁뜰에서 열렸던 「제3조형희」조각전에 출품한 오세원씨 작품 『희』의 일부분이다) [선데이서울 71년 7월 11일호 제4권 27호 통권 제 144호]
  • 서장님과 도둑의 정중한 회견

    나이 20살에 도둑질은 처음이라는 정길동(鄭吉東)이라는 친구가 봉천동 최(崔)모씨집에 숨어들다가 주인에게 발각되자 급한김에 뛰어든게 지하실. 독안에 갇힌 쥐꼴이 되었는데 목에 칼을 대고, 들어오면 자살하겠다고 버티고 있어 경찰관이 15명이나 출동,「나와라」「못나간다」로 무려 6시간을 대치하다가 노량진서장과 형사과장이 들어가 범인과 마주 서게되었는데 서장과 주고 받은 말이 걸작이야. 범인=『어느서에서 나왔읍니까?』 서장=『노량진에서 나왔다』 범인=『아 이번에 진급하셨지요? 축하합니다』 서장=『나 진급못했다』 범인=『아니 서대문서장 중부서장도 다 되었는데 서장님은 왜 진급을?』 서장=『임마, 중부서장도 진급못했어』 범인=『아 그래요? 잘 몰라 미안합니다』 이러다가 범인이 유서를 쓰겠다고 해서 내가 만년필과 종이를 주었더니 형수에게 원망조의 유서와 서장에게「소란피워 미안하다. 앞으로 진급이 속히 되길 빈다」는 내용의 글을 남기고 칼로 목을 그어 약간 상처가 났지. 그래 의사를 불러 치료를 해주고 잡았지. 나중에 서장말이「그친구 비록 도둑이긴 하지만 내 진급에 관심이 많아 고맙더군」.(웃음) [선데이서울 71년 7월 11일호 제4권 27호 통권 제 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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