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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천대, 개교 80주년 기념 상징조형물 ‘무한대상’ 제막

    가천대, 개교 80주년 기념 상징조형물 ‘무한대상’ 제막

    가천대학교는 9일 가천관 앞 잔디광장에서 교직원과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교 80주년 기념 조형물인 무한대상 제막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무한대상은 가천대의 무한(無限) 발전을 기원하고 미래 핵심인재로 성장할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기 위해 상징화한 조형물이다. 前 가천대 예술대학 김유선교수작품으로 기획부터 설치까지 2년이 걸렸으며 작품의 규격은 8m(폭)×10m(넓이)×19m(높이)이다. 조형물은 스테인리스 스틸, 철, 브론즈 재질로 곡면이나 곡선으로 굽히는 벤딩(Bending) 작업 후 캠퍼스로 옮겨 설치했다. 조형물은 전면에서 볼 때 무한대(∞)와 그리고(&) 모양으로 표현되며 후면과 측면 등 보는 각도에 따라 곡선미와 함께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여 예술적 조형미와 독창성을 갖추었다. 조형물 맞은편에는 우주의 중심을 의미하는 의자를 배치해 학생이 무한대 조형물을 배경으로 무한의 꿈을 펼쳐 나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가천대는 이에 앞서 대학 예음홀에서 80회 개교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국내외 학술지에 우수한 논문을 발표하고 후학양성에 이바지한 공로로 나노화학과 장창현 교수를 비롯해 10명이 가천학술상을, 경찰·안보학과 이완희 교수를 비롯해 22명이 강의혁신과 우수상을 받았다. 이길여 총장이 교수들의 연구활동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총장특별장려금은 간호학과 김지수 교수 등 35명이 받았다. 전임교원 중 연구력 향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전기공학과 손성용 교수 등 2명을 ‘연구우수교수’로 선정하고 위촉장을 수여했다. 이와 함께 유럽어문학과 길해옥교수를 비롯해 45명의 교직원들이 영년근속상을, 이외 행정우수부서와 모범직원 등을 선정하고 포상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포토] ‘욕설 논란’ 한선교, 한국당 최고위원회의 참석

    [포토] ‘욕설 논란’ 한선교, 한국당 최고위원회의 참석

    자유한국당 한선교 사무총장이 9일 오전 울산시 북구 매곡산업단지 내 한국몰드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한 총장은 지난 7일 오전 당 사무처 당직자에게 욕설이 섞인 폭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 제 욕심만 챙기는 구태 정치인… 당직자 하인·부하 취급

    단순 해프닝 아닌 후진 정치문화 치부 물건 던지고 개인적 잔심부름도 시켜 당직자는 파트너… “의원 인식 바꿔야” 자유한국당 한선교 사무총장이 지난 7일 당 사무처 당직자에게 욕설을 한 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후진적인 우리 정치 문화의 치부가 드러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직자를 ‘파트너’가 아닌 ‘부하’, 심하게는 ‘하인’ 취급하는 일부 국회의원의 저급한 인식 때문에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고도 ‘을’로 차별받는 당직자들이 눈물짓고 있다. 8일 한국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총장한테서 욕설을 들은 40대 당직자 A씨는 당일 사직서를 제출한 뒤 이날 현재까지 잠적한 상태다. 한 총장은 A씨에게 사과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서울 거주지 주소를 몰라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교안 대표는 이날 한 총장의 욕설 사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정확한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겠다. 피해자라고 하는 분이 연락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한 총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을 파악해 봐야겠다”고만 답했다. 일각에서는 당내 권력을 놓고 쌓인 갈등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 운영은 기본적으로 사무총장이 맡게 돼 있는데 황 대표는 박근혜 정부 시절 총리실에서 함께 일한 추경호 전략부총장에게 중책을 맡겼고 이 과정에서 한 총장이 대표 일정 등을 제때 공유받지 못하는 일이 몇 차례 발생하자 이번에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정이야 어떻든 엄연히 인격체인 당직자에게 폭언을 한 건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한국당 당직자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저지를 위해 국회에서 밤샘 농성을 하고 거리 집회를 위해 주말까지 반납하며 모두 고생하고 있는데 어떻게 사무총장이라는 사람이 제 식구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할 수 있느냐”며 “이건 당직자를 부하나 아무렇게나 부려도 되는 도구 정도로 인식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요즘은 일반 회사에서도 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데 스스로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칭하는 국회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 참담하다”며 “대한민국을 바꾸겠다는 말을 하기 이전에 정치인 스스로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 전반의 갑질문화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는 반면 국회의원들의 갑질 행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당직자, 보좌진 등 정치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총장처럼 고압적인 자세로 욕설을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물건을 집어던지는 경우도 있다. 본업과는 관계없이 국회의원의 사적인 일에 투입되거나 잔심부름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군사독재 정치의 유산 속에서 헤매고 있는 일부 정치인에게 국회는 자신들의 집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하인”이라며 “이런 사람들은 양지 속에서 자기 살길만 찾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당직자의 고통이나 눈물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노승재 서울시의회 부위원장, 서울다누림관광센터 개관 축하

    노승재 서울시의회 부위원장, 서울다누림관광센터 개관 축하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노승재 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 송파1)은 지난 30일 서울다누림관광센터 개관식에 참석해 센터 곳곳을 돌아보고 서울을 찾는 관광객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관광 환경 조성에 힘써달라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서울시는 2017년 무장애 관광도시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서울을 찾는 관광객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관광도시 서울’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다누림관광센터 개관으로 관광약자를 포함한 누구나 여행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무장애관광, 유니버설관광 환경 제공이 기대된다. 서울다누림관광센터는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리프트버스 ▲여행용보조기구 대여 ▲콜센터(1670-0880)를 통한 관광정보 제공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관광정보 공유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더불어 관광약자에 대한 서비스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서비스 응대 매뉴얼 제작, 서비스 개선교육 실시로 관광 현장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노 부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서울이 누구나 여행하기 편한 도시로 거듭나는데 센터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달라”라고 당부하며 “서울시가 무장애 관광, 유니버설관광의 중심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황교안 ‘한선교 욕설’에 “피해자 연락 안돼…내용 파악부터”

    황교안 ‘한선교 욕설’에 “피해자 연락 안돼…내용 파악부터”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8일 당 사무처 당직자에게 욕설이 섞인 폭언을 한 한선교 사무총장 거취에 대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해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이날 ‘국민 속으로 민생투쟁 대장정’ 일환으로 찾은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한 총장 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피해자와 연락이 잘 안되는 것 같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거듭 한 총장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자세한 내용은 파악해봐야 한다”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이어 상황 파악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 묻자 “글쎄요”라고만 답했다. 한 총장은 전날 국회에서 황교안 대표의 전국 순회 일정을 포함한 당무 현안을 보고 받던 도중 내용에 불만을 제기하며 한 당직자에게 “XXX, X 같은 놈” 등이라는 욕설과 함께 언성을 높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당직자는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며 잠적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총장은 황 대표가 ‘민생투쟁 대장정’ 첫날 찾은 부산 자갈치시장이 휴무였고, 세부적인 일정을 보고하지 않은 점을 문제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당 사무처 노조는 성명서에서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비정상적 욕설을 하고 참석자들을 쫓아내는 등 비정상적 행태를 저지른 사무총장을 즉각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며 “사무총장은 욕설을 들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해당 회의에 함께 있던 사람들, 그리고 사무처 당직자들에게 진심 어린 공개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또 “사무처 당직자들은 원내외 투쟁을 이어나가기 위해 휴일도 반납하고 가정도 포기한 채 밤낮없이 오직 당무에만 매진해오고 있다”며 “그런데도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인격 말살적, 인격 파괴적 욕설과 비민주적 회의 진행으로 사무처 당직자들의 기본적인 자존심, 인격을 짓밟았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한 총장은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회의를 주도해야 하는 사무총장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이었음을 인정한다”며 사과했다. 또 “회의에 참석한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이후 회의 진행에 좀 더 진지하게 임하겠다”며 “사무처 당직자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사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이수진 최고위원은 “한 총장이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당의 손과 발 역할을 하는 당직자들의 인격을 무너뜨린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며 “스스로 사퇴하는 것이 제일 나은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X같은 XX” 한선교 욕설…한국당 사무처 “물러나라” 초유의 사태

    “X같은 XX” 한선교 욕설…한국당 사무처 “물러나라” 초유의 사태

    한 “부적절한 언행 사과 드린다” 보도자료 황교안, 자갈치시장서 ‘국민속으로’ 회견 시민 발언 듣다가 “애국의 마음” 눈물도자유한국당 한선교 사무총장이 7일 사무처 직원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이에 사무처 노조가 한 총장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정당 사무처 직원들이 사무총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국당 사무처 노조는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모든 사무처 당직자들이 헌신적인 자세로 근무하는 이 시점에 사무총장은 정상적 사람이라면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비정상적 욕설을 하고 참석자들을 쫓아내는 등 비정상적 행태를 저질렀다”며 “사무총장은 욕설을 직접적으로 들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해당 회의에 함께 있던 사람들, 그리고 사무처 당직자들에게 진심 어린 공개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무총장을 즉각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며 “사무총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거취를 표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국회 한국당 사무총장실에서 열린 한 총장 주재 사무처 회의에서 한 총장은 이날부터 시작돼 19일 동안 이어지는 황교안 대표의 전국 민생 대장정과 관련해 구체적인 일정을 요구한 반면 직원들은 현장 상황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현시점에서는 대략적인 일정만 짤 수밖에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한 총장은 또 이날 치러지는 황 대표의 부산 방문 일정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직원들을 질책했다.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이 휴무일인데도 실무자들이 황 대표의 방문지에 포함시킨 데 대해 한 총장이 발끈했고 언성이 높아지면서 한 총장이 직원에게 “야 이 XXXX야”, “X 같은 XX”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해당 직원은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며 잠적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한 총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회의를 주도해야 하는 사무총장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이었음을 인정한다”며 사과했다. 또 그는 “회의에 참석한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이후 회의 진행에 좀더 진지하게 임하겠다”며 “사무처 당직자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한 총장이 이번 민생탐방 대장정을 잘해 보려고 사무처를 닦달했던 것이 화근인 듯하다”며 “그럼에도 내부적으로 대정부 총력 투쟁을 해야 하는 시점에 이런 논란이 불거져 동력을 잃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한편 황 대표는 자갈치시장 정문 앞에서 열린 ‘국민 속으로 민생투쟁 대장정’ 출정 기자회견에서 “온 국민들이 못살겠다고 울부짖고 있는데 대통령은 정책기조를 바꿀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기자회견 후 현장에 참여한 시민들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애국의 마음에서 나온 말씀들이다. 눈물이 난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는 황 대표 방문에 맞춰 덕포시장 앞에서 ‘황 대표의 부산 방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으나 황 대표 지지자들이 이들을 둘러싸고 고함과 욕설을 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당직자들 “가정도 포기했는데”…한선교 ‘X 같은 놈’ 욕설 논란

    당직자들 “가정도 포기했는데”…한선교 ‘X 같은 놈’ 욕설 논란

    한선교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이 7일 당 사무처 당직자에게 욕설이 섞인 폭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노조가 반발하고 나섰다. 한 총장은 국회에서 황교안 대표의 전국 순회 일정을 포함한 당무 현안을 보고 받던 중 내용에 불만을 제기하며 한 당직자에게 “XXX, X 같은 놈” 등이라고 하며 언성을 높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당직자는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며 잠적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 사무처 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비정상적 욕설을 하고 참석자들을 쫓아내는 등 비정상적 행태를 저지른 사무총장을 즉각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며 “사무총장은 욕설을 들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해당 회의에 함께 있던 사람들, 그리고 사무처 당직자들에게 진심 어린 공개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 “사무처 당직자들은 원내외 투쟁을 이어나가기 위해 휴일도 반납하고 가정도 포기한 채 밤낮없이 오직 당무에만 매진해오고 있다”며 “그런데도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인격말살적, 인격파괴적 욕설과 비민주적 회의 진행으로 사무처 당직자들의 기본적인 자존심, 인격을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사무처는 “사무총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거취를 표명해야 한다”며 “이런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정상적인 당무 수행이 어려워질 것이며, 앞으로도 사무처 노조는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 사무총장 측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회의 중 당직자들과 마찰이 있었다”며 “조만간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것으로 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무지개 옷’ 입었던 신학생들 “올해도 차별 없는 예배를”

    ‘무지개 옷’ 입었던 신학생들 “올해도 차별 없는 예배를”

    명예훼손 등 징계·동아리 재등록 위기 학교 징계 따르지 않고 법정 소송 제기 이번에도 5.17 ‘모든 사람의 예배’ 기획 “예배는 그 누구도 소외해서는 안 돼” 혐오자 방해 우려해 개별적 장소 공지“세상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예배가 필요합니다.” 성소수자 차별 반대 행사를 했다가 학교로부터 징계당한 예비 목회자들이 올해도 같은 목소리를 낸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든 소수자가 될 수 있는데 예배는 그 누구도 소외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서총명(28)씨 등 장신대 신학대학원 학생들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오는 17일 오후 5시 17분 서울 모처에서 ‘모든 사람의 예배’(포스터)를 드릴 예정이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방해할 수 있기에 참가를 원하는 이들에게만 개별적으로 장소를 알리기로 했다. 예배는 학생들과 뜻이 같은 현직 목사가 진행한다. 이들은 홍보 포스터에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라는 문구를 썼다. 서씨는 “성소수자를 포함해 학교 채플에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예배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서씨 등 대학원생 5명은 지난해 5월 17일에도 장로회신학대 채플 수업에서 무지개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리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징계를 받았다. 무지개는 ‘성소수자 차별 반대’를 상징한다. 징계 수위는 정학 6개월, 근신 등으로 높았다. 학교 측은 서씨 등이 행사를 통해 학교와 구성원의 명예를 훼손한 점, 교수 지도를 따르지 않은 점, 수업을 방해하거나 지장을 준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반성문 등 후속 과제도 요구했다. 이를 따르지 않은 서씨는 징계 기간이 지났음에도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서씨는 “학교의 뜻을 따르면 학교로 돌아가 졸업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번에 침묵하면 다음에 또 누가 당할지 모른다. 학교가 자유롭게 학문하는 곳으로 역할을 하기 원한다”고 말했다. 학교와 학생들은 법정 소송까지 벌이고 있다. 서씨를 포함한 학생들은 징계가 부당하다며 지난해 12월 학교를 상대로 징계 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고 첫 공판이 지난달 25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렸다. 학생들은 지난 3월 말 징계 처분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도 제기했으며 선고만 남았다. 이들이 속했던 30년 역사의 도시빈민선교회 ‘암하아레츠’도 정식 동아리로 등록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학교 측은 동아리에 공문을 보내 “규정 위반이 확인됐다”며 “재등록하려면 동아리가 하려는 기획행사인 ‘불장난2’에서 불장난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고 기존에 불법 모금한 내역과 사용처를 지도교수를 통해 학교에 보고하라”고 했다. 장신대 관계자는 “재등록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규칙 위반에 대해 수정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암하아레츠 관계자는 “사실상 올해 등록은 어려워졌다”며 “회원들과 향후 동아리 운영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특파원 생생리포트] 베이징 엑스포, 에덴동산 재연한 바티칸관 최고 인기

    [특파원 생생리포트] 베이징 엑스포, 에덴동산 재연한 바티칸관 최고 인기

    지난달 29일 개막한 베이징 엑스포 세계원예박람회에서 역사상 최초로 엑스포에 참여한 바티칸 교황청의 국가관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바티칸 교황청은 명나라 때부터 중국에 선교사를 파견했으나 아직 대만과 정식 수교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 내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교황청은 지난해 9월 중국과 주교 임명에 대한 협약을 맺으면서 관계 회복에 나서고 있으며 이번 베이징 엑스포 참여도 정식으로 중국과 수교를 맺기 위한 과정으로 분석된다. 약 200㎡ 규모의 바티칸 국가관은 원예박람회란 주제에 맞게 정원과 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에덴동산을 재현한 그림이 관람객의 관심을 끌고 있다. 피터 벤첼이 그린 그림은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과 200마리의 동물을 담고 있는데 새 한 마리만 일부러 색깔을 칠하지 않았다. 관람객은 디지털 기구를 통해 새의 색깔을 입힐 수 있는데 가장 뛰어난 작품에는 상이 수여될 예정이다. 바티칸 국가관 내부에는 교황도서관의 문서부터 식물 종자, 약용 식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베이징 엑스포에는 남북한을 포함해 모두 110개 국가와 국제 기구가 참여해 162일간 각국 정원의 특색에 대해 국가관을 세워 홍보하게 된다. 바티칸 교황청은 9월에 중국에서 환경에 관한 콘퍼런스를 열어 중국 과학자와 연구진도 참여할 예정이다. 토마슈 트라피 바티칸 국가관 담당 추기경은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 확장 기회를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밟아가기를 희망한다”며 “중국과 교황청 간에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킬 어떤 기회라도 환영하며 우리의 선의를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라며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트라피 추기경은 “지난해 중국과 교황청 간에 맺은 협약은 시작일뿐으로 정원과 같은 문화를 통해 서로 다른 이념도 교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바티칸 박물관은 중국 내 여러 기관과 문화 교류를 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달에는 베이징의 고궁박물관(자금성)에서 바티칸 박물관의 전시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베이징시 정부가 지난 3월에 발표한 바 있다. 이 전시는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국의 문화유산도 공개할 예정이며 바티칸의 소장품이 모국인 중국에서 전시되는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베이징 엑스포에는 남북한도 각각 국가관을 개설해서 참여 중이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베델 선생은 국가·민족 초월해 폭력 맞선 세계인”

    “베델 선생은 국가·민족 초월해 폭력 맞선 세계인”

    서울신문의 모태 ‘대한매일신보’ 창간 각계 인사·시민 등 100여명 모여 추모 “그의 항일·언론 활동은 3·1운동 밑거름” 본지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시리즈 류지영·오경진·민나리 기자 감사패 받아구한말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의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110주기 경모(추모) 대회’가 1일 그의 묘역이 있는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서 열렸다. 베델선생기념사업회가 마련한 이 행사에는 이병구 보훈처 차장과 장영달 우석대 총장, 닉 메타 주한 영국대사관 부대사 등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 회원,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행사 대회장을 맡은 장 총장은 “베델의 독립운동과 언론 활동은 1919년 3·1운동의 소중한 밑거름이 됐고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독립과 인류 정의를 위해 싸운 그의 행동은 지금 봐도 위대한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서면으로 보낸 경모사에서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세계 평화를 위해 제국주의 폭력에 분연히 저항한 세계인”이라며 “그의 숭고한 뜻에 고개 숙여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고 전했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는 메타 부대사를 통해 대독한 추도사에서 “베델은 조용한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인생과 건강을 희생했다”며 “그는 언론 자유의 챔피언이자 한국 독립의 챔피언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홍기 서울신문 이사는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신보의 정신과 지력을 계승하고 있다. 베델의 정신과 대한매일신보의 창간 취지를 다시금 확인하고 언론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베델은 1872년 영국에서 태어나 16세이던 1888년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에서 무역업을 시작했다.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조선으로 건너와 신보와 영자지 KDN을 발행했다. 그는 당시 일본의 노골적인 한국 침략 시도를 목격하며 언론의 자유와 항일운동을 지원했다. 대한매일신보사를 국채보상운동 모금소로 활용하고 항일 비밀단체 신민회(1907~1911)의 본부 역할도 할 수 있게 했다. 그는 영국 법정에서 두 차례 재판을 받은 뒤 건강 악화로 37세에 생을 마쳤다. 우리 정부는 그에게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이날 행사에서 본지 류지영·오경진·민나리 기자는 베델선생기념사업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지난해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기획 시리즈를 통해 베델의 생애를 널리 알리고 한국 언론학계의 주요 과제였던 베델의 영국 생가(현주소 54 Egerton Road, Bishopston, Bristol)를 찾아낸 성과를 인정받았다. 영국 내 베델 후손들이 보관하던 유품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왔고, 베델의 미공개 사진 6점을 새로 확인했다. 베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910년대 미국 작가의 소설 두 편도 발굴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달랑 205원 50전에 낙찰돼 사라진 돈의문…그 애환과 마주하다

    달랑 205원 50전에 낙찰돼 사라진 돈의문…그 애환과 마주하다

    대한민국 근현대 100년의 기억 보관소, 서울미래유산 현장을 찾아가는 ‘2019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가 2일 올해로 네 번째 시즌을 시작한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는 지난달 27일 제1회 돈의문 안과 밖을 시작으로 오는 12월 21일까지 모두 35회에 걸쳐 매주 말 서울 곳곳을 샅샅이 누빌 예정이다. 올해는 지역별 유형유산 탐방 횟수를 줄이고 문학과 영화, 대중가요 등 서울의 내밀한 과거를 품은 무형유산의 비중을 넓힌 게 특징이다. 시와 소설은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정비석의 ‘자유부인’,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박완서의 ‘나목’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체취가 묻은 작품 현장으로 떠난다. 이만희의 ‘귀로’, 유현목의 ‘수학여행’ 등의 영화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 같은 대중가요도 탐방의 대상이다.분야별 전문성을 갖춘 서울도시문화지도사 출신 베테랑 해설자 18명이 돌아가면서 해설을 맡는다. 답사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여 동안 진행된다. 7월 27일부터 8월 24일까지 5회는 무더위를 피해 야간 투어를 한다. 국내 도보답사 프로그램 중 최초로 도입한 오디오가이드 시스템을 이용, 품격 있는 탐방 환경을 제공한다. 참가 신청은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의 참여하기 코너에서 답사 신청을 하면 된다. 매주 월요일 40명을 선착순 무료로 모집한다. 참가자가 투고한 견문기는 서울신문 매주 목요일자에 게재한 뒤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한다.2019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회 ‘돈의문의 안과 밖’이 지난달 27일 광화문과 순화동 일대에서 산뜻하게 돛을 올렸다. 새로 지은 새문안교회 앞에서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구세군회관 생명의 말씀사~경희궁~돈의문박물관마을~4·19혁명기념도서관~임시정부 서울 연통부지~소덕문 터~평안교회로 이어지는 코스를 두 시간여 동안 탐방했다.우리가 보통 서대문이라고 부르는 문의 원래 이름은 돈의문(敦義門)이다. 돈의문은 애환이 많은 문이다. 4개의 대문 중 가장 늦게 지어졌고, 제일 먼저 헐렸으며, 유일하게 제자리에 돌아오지 못했다. 서대문구에는 서대문이 없다. 돈의문은 중구에 속하기 때문이다. 돈의문의 비극은 풍수학자 최양선이 경복궁 좌우 팔에 해당하는 창의문과 돈의문의 사람 통행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태종이 받아들여 문을 폐쇄하면서 비롯됐다. 대신에 지금의 사직터널 부근에 새로 지은 문이 서전문(西箭門)이다. 세종 때 도성을 고쳐 쌓으면서 서전문을 막고 경교(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앞에 세 번째 문을 설치했다. 돈의문이 가장 늦게 지어진 까닭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문이라면서 신문(新門)이라고 적고, 새문이라고 읽었다. 지명에 ‘새문안길’이나 ‘신문로’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가끔 ‘막힐 색(塞)’ 자를 써서 ‘색문’ 또는 ‘새문’이라는 기록도 나온다. 조선 개국공신 이숙번의 집이 돈의문 앞에 있어서 번잡함을 막으려고 문을 폐쇄했다는 야사에서 나왔다. 성문을 막은 집이라는 ‘색문가’(塞門家)라는 표현이 색문 또는 새문이라는 속칭으로 변했다는 얘기다. 1614년 이수광이 쓴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에 보면 “팔문(八門)의 정남은 숭례라 하며 속칭 남대문이라 부르고, 정북은 숙청이라 부르고, 정동은 흥인이라 하며 속칭 동대문이라 부르고, 정서는 돈의라 하며 속칭으로 신문(新門)이라 부르고, 동북은 혜화라 하며 속칭은 동소문이라 부르고, 서북은 창의라 하고, 동남은 광희라 하며 속칭으로 남소문이라 하고, 서남은 소덕이라 하며 속칭 서소문이라 부른다. 또 수구문이 있어 이 양문(소덕문과 광희문)으로 장사 지낼 사람이 나간다”고 썼다. 그렇다면 서대문이라는 명칭은 언제, 어떻게 생겼을까.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발간된 독립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 등 신문기사에도 이 일대를 지칭할 때 새문의 안쪽은 ‘새문 안’, 새문의 바깥은 ‘새문 밖’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미뤄 일제강점기 이후 서대문이라는 명칭이 정착됐다고 볼 수 있다. 1928년 마쓰다코가 지은 ‘조선만록’(조선총독부 간)에 “돈의문을 조선인은 신문, 내지인은 서대문이라 부른다”고 설명한 대목이 유력한 근거다. 돈의문은 왜 사라졌을까. 1915년 3월 7일자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낙찰된 새문 목재만 205원, 입찰자 10명 가운데 경성 염덕기가 205원 50전에 낙찰…”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경매에 부쳐진 돈의문은 나무 값만 받고 헐렸다. 명목상 이유는 성곽도시 서울의 간선도로망 정비를 통해 공간 구조 재편을 꾀한 경성시구개수(京城市區改修) 공사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1915년 9월에 열릴 예정인 조선물산공진회라는 박람회 개최를 성공시키고,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를 신축해 식민통치를 굳히려는 속셈이었다. 경성시구개수 공사의 29개 노선 중 15번째 노선이 경희궁~서대문~독립문 노선이었다. 서울 서부 외곽의 주요 간선인 독립문에서 도심을 연결하는 전찻길을 넓히고 직선화할 목적이었다. 당시 서대문경찰서장이 ‘서대문의 존치를 바라는 조선인들의 여론’을 보고했지만 총독부는 철거를 강행했다. 문을 그대로 두고 도로를 내는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돈의문과 문을 에워싼 성곽은 1915년 6월 시야에서 사라졌다.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임진왜란 때 왜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각각 입성한 개선문이라는 이유로 살아남았다. 돈의문은 중국 사신이 드나들었다는 괘씸죄 탓에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입었는지도 모를 일이다.돈의문 밖은 1876년 조선과 일본 간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뒤 개항장인 인천 제물포에서 양화진을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제일 관문으로 부각됐다. 1882년 미국과 한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이후 입국한 서양인 대부분이 이 길을 택했다. 돈의문에서 지척인 정동에 서구 열강의 공사관이 들어선 것도 편리한 교통 때문이다. 1899년 정동과 이어지는 서대문정거장~청량리 간 전차가 놓였고, 서대문정거장 옆에 서양식 스테이션 호텔(정거장호텔)이 들어서 외국인 선교사와 외교관, 상인들이 새문 밖으로 몰려들었다. 1900년 한강철교가 놓인 뒤에는 서대문정거장에 서울 최초의 기차역이 들어서면서 서울을 찾는 외국인은 정동과 새문안에 집결하다시피 했다. 새문 안은 서울의 기점이자 종점이었고, 새문 밖 경기감영 앞은 도성 밖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 돈의문 안팎은 중국 가는 의주로에 이어 두 번째 황금시대를 맞았다.돈의문은 살아나지 못했다. 2009년 서울시는 2013년 완공을 목표로 복원 계획을 발표했지만 원형 복원의 어려움과 예산 문제에 부딪혔다. 종로~신촌~마포 간 교통 흐름을 해결하고 원래의 자리에 복원하려면 지하차도를 건설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당시 지하차도 건설 비용은 1300억원 정도였지만 공사 기간에 우회도로를 마련하기 어려웠다. 복원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돈의문 대신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독립운동가의 집, 돈의문구락부 같은 16개 동의 전시관과 한지공예 등 9개 동의 체험관, 드라마갤러리 등 9개 동의 마을창작소가 시민들을 맞는다. 서울미래유산관도 있다. 옛 새문안 동네에 있던 집 63채 중 40채를 활용했다. 1년 내내 전시와 공연, 마켓이 열리는 참여형 공간이다. 구릉과 골목, 계단이 공생하는 이 마을은 돈의문도, 서대문도 아닌 새문안 마을이다. 마치 흘러간 시간의 섬처럼 갖가지 추억을 간직한 채 인왕산과 안산의 품에 깃들여 있다. 돈의문이 존재하지 않는 덕분에 돈의문 안과 밖은 구분이 사라졌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선호 연구위원
  • [제37회 교정대상-교정 참여 인사] 박애상- 엄정순 서울남부구치소 교정위원

    [제37회 교정대상-교정 참여 인사] 박애상- 엄정순 서울남부구치소 교정위원

    1993년 서울구치소·안양교도소·수원구치소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으며 2003년 서울남부구치소 종교위원으로 위촉돼 신앙 교육 및 개별 상담을 하는 등 26년간 수용자 교정·교화에 앞장섰다. 96년 새생활교정선교회를 설립해 출소자 재활사업(70여명), 수용자 서신 고충상담(352명), 불우수용자 가족 지원 등 출소자의 안정적인 사회 정착을 돕는 등 재범 방지에 기여했다. 또 불우수용자 영치금(460명·930만원), 부활절 예배 계란(5회·370만원), 명절 백설기 지원(10회·1500만원) 등 지금까지 3000만원 상당을 지원해 왔다.
  • “수고했다” 진술 엇갈린 ‘의붓딸 살해사건’…친모 범행증거는

    “수고했다” 진술 엇갈린 ‘의붓딸 살해사건’…친모 범행증거는

    ‘의붓딸 살해 사건’을 수사 중인 광주 동부경찰서는 1일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된 친모 유모(39)씨가 “나는 살인 현장에 없었다”며 범행을 부인하자 관련 증거를 확보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유씨는 경찰에서 “남편은 당시 나와 아이를 목포터미널 부근에 내려준 뒤 승용차를 몰고 어디론가 떠나 살인을 저질렀다”며 “나는 딸이 살해된 현장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범행 전말을 자백한 남편 김모(31)씨의 진술을 토대로 추가 조사를 펴는 한편 유씨의 주장 등에 대한 사실 확인에 나섰다. 경찰은 이날 유씨의 딸(12)을 공중전화로 불러냈던 전남 목포에 수사팀을 급파했다. 목포 터미널 주변에서 딸을 승용차에 태워 살인 장소인 무안군 한 초등학교 인근 농로까지 이동한 경로를 따라 설치된 폐쇄회로(CC)TV 영상 자료 등을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 또 노끈과 청테이프 등 범행 도구를 구입한 목포의 한 마트 CCTV 영상, 유씨가 사용한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할 발신 기지국 자료도 확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CCTV 영상과 휴대전화 위치 정보는 유씨 주장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증거가 된다”며 “ 유씨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새 남편인 김씨와 함께 지난달 27일 오후 6시30분쯤 무안 농로의 승용차 안에서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김씨는 의붓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광주 동구 너릿재터널 인근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살인 및 사체유기)로 유 씨보다 이틀 먼저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는 자신이 의붓딸을 목 졸라 살해하던 순간 유씨가 승용차 앞 좌석에 앉아 아들을 돌봤고, 시신을 유기하고 집으로 왔을 때 ‘고생했다’며 다독였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경찰은 또 이날 사건 전말을 규명하기 위해 유씨 딸(12)의 시신이 발견된 광주 동구 선교동 저수지에서 현장조사도 실시했다. 김씨는 지난달 27일 부인 유씨와 함께 승용차로 목포에 내려가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경찰에 알린 의붓딸을 공중전화로 불러내 살해한 뒤 시신을 트렁크에 싣고 광주와 경북 문경 등지를 돌아다니다가 다음날인 28일 오전 5시 30분쯤 광주의 한 저수지에 버린 혐의로 구속됐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나라·고향 지킨다는 일념 하나로 뭉쳐… 전사한 후배 생각하면 눈물”

    “나라·고향 지킨다는 일념 하나로 뭉쳐… 전사한 후배 생각하면 눈물”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창립과 활동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9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했다. 20년간 노력해 마침내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은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안두영 인터뷰 일시 1997년 8월 18일 장소 인천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사무실(이규원치과 3층) 대담 안두영(인천학도의용대 내동분대원)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원장(이경종 큰아들) 다음은 이규원 6·26 참전사 편찬위원장이 묻고 안두영이 답하다. →안녕하십니까, 안두영 님. 6·25 당시 인천학도의용대의 행적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는데도 기록이 없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도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간 대학생 간부 형들이 그때의 활동과 업적을 기록해놨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하나도 없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제는 당시 주인공들의 나이가 60 중반이나 70의 고령들입니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파묻혀 버리게 됩니다. 먼저 6·25 발발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625 당시 우리 집은 인천축현국민학교 정문 앞 수일구 한의원이었으며 아버지께서는 한의사를 하셨습니다. 6월 25일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집에 있었습니다. 6월 26일은 월요일이라 학교로 가서 오전에는 정상적인 수업을 받았습니다. 6월 27일은 이미 상황이 악화돼 학교에는 갈 수 없어 못 갔습니다. 7월 4일 갑자기 쇠바퀴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가 아침에 들려왔습니다. 우리 가족은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 외삼촌 댁으로 피란을 갔습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우리 가족도 다시 인천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9·15 수복 후 인천학도의용대가 창설되었는데, 어느 분대에 소속되셨고,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나는 인천학도의용대 제1대대 내동분대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학도의용대에 들어갈 당시 대원들은 어린 중학생들부터였으며 대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들은 치안을 돌보았고 중요 건물에 대한 경비도 하였으며 아직까지도 학도의용대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을 방문하면서 참여를 권유하기도 하였습니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축현국민학교를 출발하여 남하하셨는데, 그 힘들었던 남하 과정을 생각나시는 데로 말씀해 주십시오. -1950년 12월 18일 축현국민학교에는 학도의용대원들이 참 많이 모였습니다. 12월 19일 새벽 안양에 도착했습니다. 안양에서 새벽잠을 자고, 수원에 도착하니까 대구에 모이라는 연락받고 거기서부터는 각자 행동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2월 24일 대구에 도착했습니다. 대구에서 2~3일 있으려니까 다시 목적지는 마산이라 해서 삼랑진을 거쳐 마산으로 갔습니다. 12월 29일 마산에 도착했습니다. →남하할 때 이동 방법은 어떠셨나요. -안양에서부터는 각자 남하했으며, 다음 장소를 정하여 어디로 모이라고 하는 전언(傳言)이나 연락을 받으면 그곳으로 이동하는 식이었습니다. →부산 육군통신학교에 입교하셨는데 통신학교에서의 훈련을 말씀해주시지요. -우리들은 부산 동대신동에 있었던 육군통신학교에 가서 군복을 정식으로 지급받게 되었습니다. 지급품은 작업복 2벌, 정복 1벌, 방한복 1벌, 팬티 2장, 런닝 1장, 담요 1장, 양말 2켤레, 맞지도 않는 군화 1켤레 이것들이 통신학교에서 처음으로 받은 보급품이었습니다. 나는 유선교육대에서 유선 가설 교육을 4주 받았습니다.→인천지역 중학생들로만 편성이 되어 창설된 통신부대가 있었다는데, 말씀해주시지요. -1951년 2월 28일 부산육군통신학교를 졸업하고, 인천학생 110명이 창설된 통신부대 화랑중대에 배속되었습니다. 화랑통신부대는 71 통신 가설대대(571부대)의 신설 중대였습니다. 대대본부 기간 요원으로 인천학도의용대 출신의 학생들이 기억납니다.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칠웅(인천상업중학교 6학년) 서민석(공립인천중학교 6학년) 안두영(서울중학교 6학년) 김태정(인천상업중학교 5학년) 한양배(인천상업중학교 5학년) 김진오(강화중학교 5학년) 고종순(인천중학교 4학년) 이응도(서울사범학교 4학년) 이종린(인천상업중학교 4학년) 이성진(인천상업중학교 4학년) 김태식(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6·25 국가위난(國歌危難) 속에서 인솔했던 형들은 나름 최선을 다했고, 끝까지 형들을 믿고 따랐던 학생들은 “형들을 따라가는 것이 이 시대에 사는 우리가 할 일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끝까지 형들을 따랐을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안두영 님은 어떤 생각으로 참전하셨는지, 그리고 전사한 인천학생들에 대한 마음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때의 인천학도의용대원들은 동지애(同志愛)로 뭉쳐 나라를 구하고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쟁터에 간 것입니다. 살아서 돌아온 우리들이 힘을 모아 위령탑을 세워 전사 인천학생들 이름이라도 새겨 주었으면 하는 생각은 살아 돌아온 우리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또한 ‘인천시에도 6·25 참전 인천학생들의 참전역사는 기록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마침 반갑게도 인천학생들의 625 참전역사 편찬사업이 시작됐다는 소식에 기쁨과 기대에 벅차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인천학도의용대 내동분대원으로 같이 활동하다가 부산까지 같이 걸어가서 함께 자원입대하여 통신병으로 참전하여 전사한 동네 후배 김태식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고 슬픕니다.→끝으로 인천사람들과 후대(後代)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해 주십시오. -6·25에 참전한 우리들은 일본강점기에 태어났고, 교육은 일본어로 시작해 국민학교 3~6학년 때 해방이 되어 우리나라 글을 처음 배웠고, 그 후 중학교 들어가서 좀 배우려 하니까 625가 터져,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창 공부할 나이에 입대하여 5~6년씩 군대 생활을 하고 제대했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공부는 더할 수도 없게 됐고, 먹고 살기에 바빠 세월이 어느덧 흘러 이 나이가 됐지만, 그래도 그때 내 고향을 지키겠다는 정신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인천학생들의 625 참전 역사는 인천을 위해서는 아주 큰 의미가 담겼다고 생각되며, 앞으로도 인천에서 살아가는 인천사람들에게 교훈과 자부심을 같이 일깨워질 수 있도록 참전 역사를 잘 기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안두영 ▲인천학도의용대 내동분대 대원 1933년 1월 26일 인천 중구 경동 출생 1950년 9월 30일 인천학도의용대 내동분대 1951년 1월 10일 육군 통신병 입대(군번 0241016) 1954년 5월 1일 만기 제대
  • 딸 죽인 남편에게 “고생했다”고 다독인 엄마

    딸 죽인 남편에게 “고생했다”고 다독인 엄마

    의붓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30대를 수사중인 경찰이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보이는 친모를 긴급 체포했다. 광주 동부경찰서는 30일 남편 김모(31)씨와 공모해 두살배기 젖먹이 아들 앞에서 중학생인 딸을 목 졸라 숨지게 한 유모(39)씨를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씨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지난 27일 오후 5시 30분쯤 전남 목포와 무안의 경계로 추정되는 농로의 차량 안에서 의붓딸 A(12)양을 목 졸라 살해한 뒤 다음날인 28일 오전 5시30분쯤 광주 동구 한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친모인 유씨는 이를 공모·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부부는 ‘김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친부에게 알린 A양을 불러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A양 친부는 지난 9일 경찰에 성추행 관련 수사를 의뢰했으며, 유씨로부터 신고 사실을 전해들은 김씨가 ‘의붓딸을 죽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지난 27일 생후 13개월 된 아들과 여행 도중 목포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목포터미널 주변에서 공중전화로 친부와 목포에 거주하던 A양을 불렀고, 미리 마트에서 범행 도구(청테이프·노끈·마대자루)를 구입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들 부부는 A양을 만나 차에 태운 뒤 범행 장소로 이동했다. 이어 김씨가 의붓딸을 살해하는 동안 유씨는 차량 운전석에서 아들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숨진 A양을 트렁크에 옮겨 실은 뒤 광주 북구 집으로 돌아와 유씨를 내려주고, 시신 유기 장소를 찾기 위해 고향인 경북 문경까지 12시간 동안 배회하다가 포기하고 광주로 돌아왔다. 김씨는 이어 28일 오전 5시30분쯤 광주 동구 선교동의 한 저수지에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우고 벽돌이 가득 담긴 마대 자루에 발목을 묶어 시신을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시신은 반나절만인 같은 날 오후 3시쯤 행인에 의해 발견됐다. 유씨는 28일 오전 A양 시신을 유기하고 귀가한 김씨를 “고생했다”며 다독인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경찰은 유씨가 성추행 신고 사실을 인지했고 김씨의 부탁을 받고 공중전화로 A양을 불러낸 점, 살해 당시 차량에 함께 있었고, 유기 뒤 저수지를 찾았던 점 등으로 미뤄 공모 경위와 동기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유씨는 그러나 “나는 딸을 공중전화로 불러낸 뒤 남편과 다툼으로 차량에 함께 타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한 채 함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에 따라 1일 중 이들 부부의 당일 동선을 따라 김씨의 의붓딸이 살해된 구체적 정황을 확인한 뒤 유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을 계획이다. 숨진 A양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광주에 사는 의붓아버지 집과 목포의 친아버지 집을 오가며 지냈다. A양은 최근 친아버지에게 의붓아버지와 생활하는 동안 성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했고, 친아버지는 지난 9일 목포경찰서에 관련 혐의를 조사해달라고 진정서를 냈다. A양은 사흘 뒤인 지난 12일 담당 수사관을 찾아가 김씨가 자신을 강간하려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털어놨다. 이에 따라 목포경찰서는 사건을 전남경찰청으로 넘겼다. 전남결찰청은 미성년자인 A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와 국선변호인, 진술 분석가 등과 일정을 조율하느라 사흘을 허비했다. 또 피의자로 지목된 계부 김씨의 주소지인 광주경찰청으로 사건을 이첩하는 과정에서 일주일 가량이 걸렸고, 광주경찰청은 지난 24일에야 친부에게 연락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이같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A양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지 18일이 지난 27일 계부 김씨 등에 의해 살해됐다. 경찰의 대처가 빨랐더라면 살인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의붓딸 살해사건, 친모도 공범으로 드러나

    의붓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30대를 수사중인 경찰이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보이는 친모를 긴급 체포했다. 광주 동부경찰서는 30일 남편 김모(31)씨와 공모해 딸을 숨지게 한 혐의(살인·사체유기)로 유모(39·여)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김씨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지난 27일 오후 5시 30분쯤 전남 목포와 무안의 경계로 추정되는 농로의 차량 안에서 의붓딸 A(12)양을 목 졸라 살해한 뒤 다음날인 28일 오전 5시30분쯤 광주 동구 한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다. 친모인 유씨는 이를 공모·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부부는 ‘김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친부에게 알린 A양을 불러 이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A양 친부는 지난 9일 경찰에 성추행 관련 수사를 의뢰했으며, 유씨로부터 신고 사실을 전해들은 김씨가 ‘의붓딸을 죽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지난 27일 생후 13개월 된 아들과 여행 도중 목포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이날 목포터미널 주변에서 공중전화로 친부와 목포에 거주하던 A양을 불렀고, 미리 마트에서 범행 도구(청테이프·노끈·마대자루)를 구입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들 부부는 A양을 만나 차에 태운 뒤 범행 장소로 이동했다. 이어 김씨가 의붓딸을 살해하는 동안 유씨는 차량 운전석에서 아들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숨진 A양을 트렁크에 옮겨 실은 뒤 광주 북구 집으로 돌아와 유씨를 내려주고, 시신 유기 장소를 찾기 위해 경북 문경까지 12시간 동안 배회하다가 포기하고 광주로 돌아왔다. 김씨는 이어 28일 오전 5시30분쯤 광주 동구 동구 선교동의 한 전수지에 시신을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시신은 반나절만인 같은날 오후 3시쯤 행인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유씨가 성추행 신고 사실을 인지했고 김씨의 부탁을 받고 공중전화로 A양을 불러낸 점, 살해 당시 차량에 함께 있었고, 유기 뒤 저수지를 찾았던 점 등으로 미뤄 공모 경위와 동기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한편 숨진 A양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광주에 사는 의붓아버지 집과 목포의 친아버지 집을 오가며 지냈다. A양은 최근 친아버지에게 의붓아버지와 생활하는 동안 성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했고, 친아버지는 지난 9일 목포경찰서에 관련 혐의를 조사해달라고 진정서를 냈다. 의붓딸 성추행 의혹 사건은 목포경찰서에서 광주지방경찰청으로 이첩돼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 때문에 경찰의 대처가 빨랐더라면 살인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한일 선린우호교류의 장,‘조선통신사 축제‘ 내달 3일 개막

    한일 선린우호교류의 장,‘조선통신사 축제‘ 내달 3일 개막

    한일 친선교류의 상징인 조선통신사 축제가 새당 3일부터 6일까지 부산 용두산공원과 광복로 일대에서 열린다.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은 부산 용두산 공원 및 광복로, 부산항만공사 행사장(옛 연안여객터미널) 등에서 조선통신사 축제를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조선통신사 축제는 ‘과거를 통해 미래로’라는 주제로 조선통신사재현선 출항, 동래부사 접영 등 역사 속 통신사 콘텐츠를 조명하고 어린이날을 맞아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올해 축제에서는 ‘조선통신사 행렬재현’과 ‘조선통신사 재현선’이 등장한다.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은 내달 4일 오후 2시 용두산공원에서 출발해 광복로를 거쳐 부산항 연안여객터미널까지 2㎞ 구간에 열린다. 옛 조선통신사 모습을 본뜬 전통 의상을 입은 1500명이 행진하는 장관이 연출된다. 또 동래부사가 3사(정사, 부사, 종사관)를 맞이하는 의식인 접영식도 함께 진행된다. 조선통신사 재현선은 지난해 조선통신사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해 광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진수한 이후 부산에서는 처음 공개된다. 조선통신사 행렬과 연계한 출항식을 하고 선상 박물관도 운영한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는 매일 3차례씩 모두 9회에 걸쳐 승선체험 기회를 제공한다.승선체험자는 사전 신청을 받아 360명을 선정했다. 새달 3일 국립부산국악원에서는 조선통신사 사행길에 함께한 동래 화가 변박의 여정을 그린 장편소설 ‘유마도’(강남주 작)를 테마로 한 공연이 열린다. 일본의 대표적인 거리예술인 ‘다이도우게이’와 부산을 대표하는 거리예술가 공연도 용두산공원 무대에서 펼쳐진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휠체어 장애인의 삶 나아지도록… KT, 앱 ‘휘리릭’ 개발

    휠체어 장애인의 삶 나아지도록… KT, 앱 ‘휘리릭’ 개발

    KT는 포항시장애인종합복지관, 한동대와 협업을 통해 휠체어 장애인의 편의증진을 위한 커뮤니티 매핑 애플리케이션 ‘휘리릭’(Wheeliric)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한동대 학생과 교수가 개발에 참여한 ‘휘리릭’은 휠체어의 ‘휠’(Wheel·바퀴)과 매우 빠른 동작을 의미하는 순 우리말 ‘휘리릭’이 더해진 합성어다. ‘휘리릭’은 휠체어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각종 시설물의 입구 형태, 장애인 주차장, 장애인 화장실, 방지턱, 경사로, 입식 식탁 유무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직접 개발에 참여함으로써 휠체어 장애인들에게 꼭 필요한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KT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필요한 아이디어 제안에서부터 개발 과정 전반에 공동으로 참여했으며,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휘리릭 서포터스’를 운영해 장애인 편의시설 정보를 지속적으로 추가할 계획이다. 또 KT는 ‘휘리릭’을 장애인 IT강사 양성 교보재로 활용할 계획이며, 초중고등학교 학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식 개선교육에도 활용할 예정이다. KT 지속가능경영단장 이선주 상무는 “휠체어 장애인들을 위한 단순한 정보 공유 애플리케이션이 아닌,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휠체어 장벽을 무너뜨리고 차별을 없애는 데 기여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배현진 “시집도 못가고 회사에서 쫓겨난 37세 청년”[종합]

    배현진 “시집도 못가고 회사에서 쫓겨난 37세 청년”[종합]

    배현진 자유한국당 송파을 당협위원장이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에서 한 발언이 화제다.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열린 한국당의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에 참여한 배현진은 “한선교 사무총장께서 자신을 꿩대신 닭이라고 했지만 나도 회사에서 쫓겨났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닌 대한민국”이라고 주장했다. 아나운서로 몸담았던 MBC의 퇴사 과정에 대한 억울함을 피력했다. 배현진은 “저는 청와대와 여당의 주구가 된 민주노총, 언론노조의 뜻에 굴하지 않았다고 해서 ‘반동’ 취급을 받아 회사에서 쫓겨났다. 이게 맞는 일이냐. 반드시 자유대한민국을 사수해 달라”로 말했다. 더불어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반을 개, 돼지로 여긴다”고 강력 비판했다. 배현진은 자신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37세 청년”이라고 소개한 뒤 “일하느라 시집도 못 가고 부모님을 모시며 열심히 살았다. 세계 어느 곳을 여행 가도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대접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여기 계신 부모님들, 그리고 나와 같은 청년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곳에 나와 있는 여러분과 저, 모두를 한심하게 보는 이 정권은 우리를 대표할 수 없다”면서 “‘이니 하고 싶은 것 다해’를 외쳤던 청년들은 이제 ‘이니 스톱’을 외치고 있다. 이 브레이크 없는 열차를 멈출 수 있도록 한국당에 힘을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선교 사무총장은 “여러분, 우리 배현진이 이러지 않았다. 늘 예쁜 아나운서였다. 이 나라가, 문재인의 나라가 배현진, 예쁜 우리 배현진을 민주투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배현진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나는 문재인 정권의 반동분자요, 민주 노총의 반동입니다’라는 게시글을 올리고 “오늘만 광화문에 5만 국민이 모여 호소했다. 권력자의 뜻에 반하면 ‘반동’이 되는 저급한 국가가 아닌 누구나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자유 시장경제가 유지되는 헌정 자유대한민국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배현진 위원장은 2010년부터 8년 동안 MBC 뉴스데스크 앵커를 지냈다. 그러나 2012년 시작한 MBC 노조 파업 도중 노조를 탈퇴하고 앵커로 복귀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후 배 위원장은 2017년 12월 최승호 MBC 신임 사장이 취임과 동시에 앵커 자리에서 제외됐고, 지난해 3월 8일 퇴사했다. 퇴사 후에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권유로 입당해 지난해 6월 송파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았으나 홍준표 전 대표가 정계에 복귀하면서 대변인직을 내려놨다. 현재는 홍준표 전 대표의 유튜브 ‘TV홍카콜라’ 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이하 배현진 위원장이 SNS에 올린 글 전문> <나는 문재인 정권의 반동분자요 민주노총의 반동입니다> 권력의 삼엄한 틈에 외쳤습니다. 경찰은 혹시 오늘 낮 광화문 cctv를껐습니까? 오늘만 광화문에 5만 국민이 모여 호소했습니다. 우리는 반통일 세력도 아니며 무엇보다 친왕조세력이 아닙니다. 권력자의 뜻에 반하면 ‘반동’이되는 저급한 국가가 아닌 자유 민주주의! 자유! 누구나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자유 시장경제가 유지되는 헌정 자유대한민국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통일도 ‘자유’의 기틀아래 이뤄집니다. 여당 당 대표도 산수 못하는 선거법꼼수 막아 주십시오. 깨어난 국민들이 나라를, 우리 가정을 지킬겁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배현진 “‘이니 다 해’를 외치던 청년들이…” 한선교 “예쁜 배현진이 민주투사로”

    배현진 “‘이니 다 해’를 외치던 청년들이…” 한선교 “예쁜 배현진이 민주투사로”

    MBC 아나운서 출신인 배현진 자유한국당 송파을 당협위원장이 지난 27일 한국당의 문재인정부 규탄 집회에서 “이니 스톱”을 외치며 “문재인정부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반을 개돼지로 여긴다”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배 위원장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MBC 선배 아나운서였던 한선교 한국당 사무총장에게서 마이크를 넘겨받은 뒤 “청와대와 여당의 주구가 된 민주노총, 언론노조의 뜻에 굴하지 않았다고 해서 ‘반동’ 취급을 받아 회사에서 쫓겨났다. 이게 맞는 일이냐”면서 “우리가 사는 곳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닌 대한민국”며 이렇게 주장했다. 배 위원장은 이어 “‘이니 하고 싶은 것 다 해’를 외쳤던 청년들이 이제 ‘이니 스톱’을 외치고 있다”면서 “브레이크 없는 열차를 멈출 수 있도록 한국당에 힘을 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또 “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37세 청년이다. 일하느라 시집도 못 가고 부모님을 모시며 열심히 살았다”면서 “세계 어느 곳을 여행 가도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대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여기 계신 부모님들, 그리고 나와 같은 청년들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배 위원장은 “여러분과 저, 모두를 한심하게 보는 이 정권은 우리를 대표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 사무총장은 배 위원장이 발언한 뒤 “우리 배현진이 이러지 않았다. 늘 예쁜 아나운서였다”면서 “문재인의 나라가 예쁜 우리 배현진을 민주투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2008년 MBC에 입사한 배 위원장은 2010년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했다가 2012년 파업 중 앵커직을 내려놨다. 이후 노조를 탈퇴하고 다시 뉴스데스크로 돌아가 최장수 앵커를 기록했다. 2017년 최승호 MBC 사장이 보도국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며 앵커직에서 물러나 2018년 3월 퇴사한 뒤에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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