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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예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운보 성화 해설집 출간

    조선의 예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운보 성화 해설집 출간

    운보 김기창(1914~2001) 화백이 6·25 전쟁 피난 시절인 1952~1953년 그린 ‘예수의 생애’ 성화가 70년 만에 해설집으로 출간됐다. 김 화백은 전북 군산으로 피난 갔던 시절 앤더스 크리스 젠센(1897~1956) 선교사의 권유로 예수의 일대기 30점 연작을 군산영명고등학교(현 군산제일고등학교)에서 그렸다. 갓을 쓴 예수로 당시 화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한국적인 화풍으로 예수의 일대기를 완성해 색다른 미학을 자랑했다. 김 화백은 청각 장애가 있었지만 독실한 신앙과 예술 활동으로 장애를 극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7일 출간된 이번 해설집은 전북 출생으로 운보가 그림을 그린 군산제일고 출신의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직접 해설에 나섰다. 현직 시인이기도 한 소 목사는 “화백께서 그림으로만 남기셨기에 성화 완성 70주년을 맞아 출판사에서 간곡한 요청이 와서 목회자와 시인의 감성으로 성화의 성경 배경을 해설하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소감을 전했다. 예수의 일대기가 소 목사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소개된다.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인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는 추천사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침탈의 고난 역사 가운데 운보 김기창 화백의 예수 성화를 통해 구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주셨고, 성화 완성 70주년을 맞은 이때 시인으로도 잘 알려진 소강석 목사님이 성화 작품의 성경적 해설을 쉽고도 입체적으로 표현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예수의 생애’ 해설 성화집은 쿰란출판사에서 고급 양장본으로 출간됐다. 기독교서점과 출판사에서 구매할 수 있다. 176쪽. 15만원.
  • “정명석 메시아 아니다”…‘JMS 2인자’ 돌변했지만 15년 구형

    “정명석 메시아 아니다”…‘JMS 2인자’ 돌변했지만 15년 구형

    잠옷을 건네며 “주님을 지키면서 자라”고 정명석 총재(78)와 동침을 지시했던 ‘JMS 2인자’ 정조은(44·여·본명 김지선)이 ‘정명석 메시아’를 부인했다. 정조은은 26일 대전지법 형사12부(재판장 나상훈) 심리로 열린 10차 공판에서 검사가 “지난번 정명석씨를 ‘메시아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예수님만이 메시아라는 말로 대체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JMS 교리상 교주가 신도들에게 속옷을 선물하거나 수영복 사진을 요구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묻자 “교리상 설명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조은은 2018년 3∼4월 홍콩 국적 여신도 메이플(29)에게 잠옷을 건네며 “여기서 주님을 지키며 잠을 자라”고 지시하는 등 정 총재의 성범죄를 도운 혐의로 JMS 간부들과 함께 구속기소됐다. 정 총재도 메이플과 호주 여신도 에이미(30), 한국인 여신도를 성폭행·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정조은은 이날 공판에서 있은 피고인 신문에서 “정 총재가 한국인 여신도의 특정 부위를 만졌다는 얘기와 다른 외국인 여성 신도들도 (성범죄)피해를 봤다는 이야기도 보고받았다”면서 “정 총재한테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했다. 20년 동안 (정 총재를) 계속 메시아로 믿고 따랐던 저도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정조은은 “내가 부흥 집회를 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됐지만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린 내게 JMS 단체를 물려주는 것을 우려하면서 수감 중인 교주에게 ‘2인자’로 지칭했다”며 “그렇지만 내가 모든 것의 그림을 짜고 가담한 사람이 되지 않길 바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메이플·에이미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지만, (피해를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 단체가 사과하길 원했고, 이 때문에 나도 선교회에서 배척당했다”고 거듭 ‘JMS 2인자’임을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번 재판에서 JMS 국제선교국 간부인 A씨는 정조은에 대해 “권력이 막강한 사람이고, 많은 이들이 두려워했다”며 ‘독재자’라고 표현했다. A씨는 “정조은의 방향을 비판한 목회자가 쫓겨난 적도 있다”면서 “정 총재의 수행비서를 직접 배치하고, 원하는 사람들을 공석(간부)에 앉혔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정조은에게 징역 15년, 민원국장 김모(51·여)씨에게 징역 10년, 나머지 JMS 간부 4명에게는 징역 3∼5년을 구형했다. 김씨는 메이플이 정 총재에게 성폭행당했다고 호소하자 “그것이 하나님의 극적인 사랑”이라고 말하고, 이후 메이플이 성범죄를 당할 때 근처에서 대기하기도 했다.
  • 파랑새가 되어 돌아올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가터 [한ZOOM]

    파랑새가 되어 돌아올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가터 [한ZOOM]

    전북 고창에는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 1855~1895년) 장군의 생가터가 있다. 2001년 고창군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파괴된 전봉준 장군 생가를 복원했지만 복원 직후부터 고증실패 논란에 휩싸였다. 몰락한 양반집안의 후손이었던 전봉준은 당시 농민들이 살던 초가삼간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그런데 복원된 생가는 양반이나 지주가 살았을 법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결국 2019년 고창군은 복원한 생가를 허물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고(故) 신영복 교수가 쓴 전래민요 ‘새야새야 파랑새야’가 새겨진 비석만 남아있다. 현재 고창군은 고창군 일대 동학농민혁명 성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이곳 생가터에는 ‘전봉준 기념공원’이 세워질 예정이라고 한다. 평등한 세상을 추구한 ‘동학’의 탄생 19세기 중반 청나라는 아편전쟁과 같은 서구열강의 침략과 태평천국의 난과 같은 내부의 분열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조선에서도 서구열강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가고 있었다.  최제우(崔濟愚,1824~1863)는 서양의 학문과 종교를 말하는 서학(西學)에는 서구열강이 조선을 침략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으므로, 서학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신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860년 서학의 장점은 받아들이고 유교, 불교, 선교 등을 종합한 동학(東學)을 창시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동학은 지독한 가난과 양반들의 핍박 속에 살던 농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지금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동학의 인본주의와 평등주의는 조선의 신분제 사회질서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결국 최제우는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죄로 1864년 처형됐다. 하지만 동학의 맥은 끊어지지 않았고, 1905년 3대 교주 손병희가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어 계승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불씨, 탐관오리 조병갑 1893년 지금의 전북 정읍인 고부에 신임군수 조병갑이 부임했다. 고부는 전라도 내에서도 유명한 곡창지대였다. 부패한 탐관오리였던 조병갑도 그 사실을 알고 농민들을 수탈하기 위해 고부군수로 온 것이었다.  예상대로 조병갑은 부임하자마자 각종 세금으로 농민들을 수탈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았다는 ‘불효죄’, 형제자매 간에 화목하지 않았다는 ‘불목죄’ 등 없던 죄를 만들어 농민들을 수탈했다. 심지어 자신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는 공적비를 세운다고 세금을 뜯어갔다. 흉년으로 굶어 죽은 백성들은 늘어가는 만큼 조병갑의 곳간에는 쌀이 쌓여갔다. 어느 날 조병갑은 새로운 저수지, 만석보(萬石洑)를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농민들은 당황했다. 이미 멀쩡한 저수지가 있는데도 새로운 저수지를 짓는다는 것이었다. 조병갑은 농사일에 바쁜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심지어 임금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만석보가 다 지어지자 조병갑은 만석보의 물을 사용하는 대가를 지불하라며 농민들에게 또 세금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조병갑의 횡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농민들은 몰락한 양반 전창혁(全彰赫)을 찾아가 탄원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전창혁이 쓴 탄원서를 받은 조병갑은 그 자리에서 탄원서를 들고 온 농민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탄원서를 쓴 전창혁도 붙잡아와 곤장을 때렸다. 곤장을 맞은 전창혁은 후유증을 견디다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1894년 음력 1월 10일 전창혁의 아들 전봉준은 1000여명의 농민들을 이끌고 고부관아로 향했고, 조병갑은 도망쳤다. 전봉준은 죄 없이 갇힌 사람들을 풀어주고, 조병갑이 수탈한 쌀을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편 조정에서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병갑을 파직하고 완도로 유배를 보냈다. 그리고 진상파악과 상황수습을 위해 안핵사 이용태를 파견했다. 그러나 이용태는 민심을 달래지 않았다. 고부에 도착한 이용태는 농민들을 모두 동학교도로 몰아 체포했다. 심지어 반항하는 이들은 집을 불태우고 죽였다. 이는 민심수습보다는 신분제 사회질서를 뒤흔드는 동학을 뿌리뽑아 다시는 봉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당시 조정과 양반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전봉준은 부패한 탐관오리와 양반들로 썩어버린 세상을 바로잡고자 사람들을 모아 한양으로 향했다. 4000여 명이던 동학농민군도 어느덧 1만여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한양으로 가기 위해 전주성을 향하던 동학농민군은 ‘황토현 전투’에 이어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에게 승리했다. 전주에 있던 전라감사와 관군들은 동학농민군이 온다는 소식에 도망쳤고, 동학농민군은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전주성을 접수했다.  한편 위기를 느낀 고종은 청나라를 끌어들이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음력 5월 5일 청나라 군대가 충청남도 아산에 도착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일본군이 인천에 도착했다. 1884년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텐진조약’ 때문이었다. 텐진조약은 청나라와 일본 중에 한 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보내면 다른 나라도 군대를 보낼 수 있도록 한 조약이다.  두 나라의 군대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전봉준은 동학농민군 자진 해산을 결단했다. 혁명도 중요하지만 만약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에서 전쟁을 벌인다면 백성들이 위험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전봉준은 조정에 자진해산 후에도 동학농민군을 탄압하지 않을 것, 농민들이 지방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구인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동학농민군이 자진해산 했는데도 일본군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경복궁을 점거하고 친일내각을 구성했다. 일본군은 애초부터 동학농민군이 아닌 조선장악을 목적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1894년 음력 9월, 전봉준은 전라북도 완주에 있는 삼례지역을 중심으로 동학농민군을 다시 모았다. 처음에는 탐관오리가 목표였지만 이제는 조선을 침략하려는 일본군이 목표였다. 처음 4천여 명이었던 동학농민군은 어느덧 4만여 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조선관군과 너무도 달랐다. 공주를 지나던 동학농민군은 최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의 화력 앞에 무참히 무너졌다.  1894년 음력 11월 9일,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 고개에서 일본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이미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살육하라는 일본군 총지휘관 명령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동학농민군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하지만 평생 농사만 짓던 동학농민군은 최신식 무기와 군사훈련을 받은 일본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2만여 명의 동학농민군은 500명도 남지 않았다. 전봉준은 남아있는 농민들이라도 살리기 위해 동학농민군 해산을 결정했다. 그리고 일본군을 피해 숨어 지내다가 부하의 밀고로 체포되어 1895년 음력 3월 30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결코 실패하지 않은 혁명의 계승 동학농민혁명은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한 혁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이 혁명을 실패로 기록하지 않았다. 조선후기에 일어난 갑신정변, 갑오개혁 등은 대부분 지배계층이 주도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피지배계층이었던 농민들이 중심이 된 민중항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신분체 철폐와 같은 조선의 근대화와, 의병활동을 통한 자주국권 회복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농민혁명은 여전히 평가절하되어 있다. 심지어 전라도 농민봉기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동학농민혁명의 의미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갈 수 있도록 고창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성지화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를 기대해본다.
  • 정명석 피해 여성 ‘숙소까지 미행시킨’ JMS 간부, 법정구속

    정명석 피해 여성 ‘숙소까지 미행시킨’ JMS 간부, 법정구속

    JMS 정명석 총재(78)의 성범죄를 은폐하려고 피해 여신도를 회유하고 숙소 미행까지 지시한 JMS 남성 간부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나상훈)는 22일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기소된 JMS 전 대외협력국장 A씨(60)에게 “선교회 안에서 벌어진 성범죄 및 비위를 알고도 신도들이 이를 외부로 발설하지 못하도록 장기간 회유하고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초범이고 범행을 반성하는 점은 고려했다”고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A씨의 지시를 받아 증거인멸에 나섰던 당시 같은 국 차장 B씨(35)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A씨와 B씨는 2021년 가을 정 총재의 성폭행 범행을 폭로한 홍콩 국적 여신도 메이플(29)이 정 총재를 고소한다는 소식을 듣고 메이플과 친분이 있는 두 사람을 홍콩으로 보내 회유한 데 이어 검·경 수사에 대비해 관련자들의 휴대전화 교체를 지시하는 등 증거인멸을 공모하고 실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A씨는 메이플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에 출연한다는 사실을 알고 인천국제공항에 직원들을 대기시켜 숙소까지 미행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B씨는 지난해 4월 세종시의 한 사무실에서 관련자 20명 화상회의를 열고 “포렌식에 대비해 휴대전화를 모두 교체하고 경찰이 물어보면 분실했다고 하라”고 A씨의 지시를 전달한 혐의다. 재판부는 B씨와 관련해 “여러 행위를 분담한 점을 보면 공동정범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며 “다만 A씨 지시에 따라 가담해 죄책이나 비난 가능성이 A씨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점은 있다”고 판시했다.
  • 21대 국회, 의원직 상실 6명·형사재판 12명도 기로에

    21대 국회, 의원직 상실 6명·형사재판 12명도 기로에

    2020년 5월 임기를 시작한 21대 국회의원 중 법정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을 확정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사람은 20일 기준 모두 6명이다. 이날 항소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윤미향 무소속 의원을 비롯해 내년 5월 국회의원 임기 만료를 앞두고 개인 비위로만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의원은 12명이 더 있다. 최근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 준 혐의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의 원심판결을 확정하면서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했다. 현행법상 현역 국회의원의 경우 ▲일반 형사사건에서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포함)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는다. 최 전 의원 외에 당선무효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한 이는 민주당 정정순(충북 청주 상당), 이규민(경기 안성), 이상직(전북 전주을) 전 의원과 국민의힘 김선교(경기 여주·양평), 정찬민(경기 용인갑) 전 의원 등이다. 이 중 불법 후원금 모금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전 의원의 경우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지만 선거캠프 회계책임자에게 벌금 1000만원이 선고돼 의원직을 잃었다. 공직선거법 등에 따르면 후보자의 선거사무소 회계책임자가 벌금 300만원 이상을 선고받아도 후보자의 당선은 무효가 된다. 21대 국회의원 중 개인 비위로 형사재판을 받는 의원은 모두 12명이다. 황운하·한병도 민주당 의원은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11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각각 징역 5년, 징역 1년 6개월을 내려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항소심이 진행 중인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1심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당선무효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 21대 국회의원 법정서 의원직 상실 6명…총선 앞두고 개인비위 재판 중인 의원도 12명

    21대 국회의원 법정서 의원직 상실 6명…총선 앞두고 개인비위 재판 중인 의원도 12명

    더불어민주당 4명, 국민의힘 2명 의원직 상실일반 형사사건에서 금고형 이상,정치자금법 위반 등 벌금 100만원 이상 2020년 5월 임기를 시작한 21대 국회의원 중 법정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을 확정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사람은 20일 기준 모두 6명이다. 이날 항소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윤미향 무소속 의원을 비롯해 내년 5월 국회의원 임기 만료를 앞두고 개인 비위로만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의원은 12명이 더 있다. 최근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의 원심판결을 확정해 의원직을 상실했다. 현행법상 현역 국회의원의 경우 ▲일반 형사사건에서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포함)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는다. 최 전 의원 외에 당선무효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한 이는 민주당 정정순(충북 청주 상당), 이규민(경기 안성), 이상직(전북 전주을) 전 의원과 국민의힘 김선교(경기 여주 양평), 정찬민(경기 용인갑) 전 의원 등이다. 이중 불법 후원금 모금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전 의원의 경우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지만, 선거캠프 회계책임자에게 벌금 1000만원이 선고돼 의원직을 잃었다. 공직선거법 등에 따르면 후보자의 선거사무소 회계책임자가 벌금 300만원 이상을 선고받아도 후보자의 당선이 무효가 된다. 21대 국회의원 중 개인 비위로 형사재판을 받는 의원은 모두 12명이다. 황운하·한병도 민주당 의원은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11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각각 징역 5년, 징역 1년 6개월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항소심 중인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1심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당선무효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 [사설] ‘지연된 정의’ 논란 남긴 최강욱 의원 유죄 판결

    [사설] ‘지연된 정의’ 논란 남긴 최강욱 의원 유죄 판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써준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임기 8개월여를 남기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최 의원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어제 확정했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형이 실효될 때까지 피선거권을 박탈하도록 한 공직선거법과 국회법 규정에 따라 최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내년 총선 출마도 불가능하다. 최 의원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로 일하던 2017년 10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발급해 줘 대학원 입시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1·2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쟁점이었던 전자정보의 증거 능력에 문제가 없고 인턴 확인서는 허위가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도 뒷맛은 개운치가 않다. 증거 다툼과 사실 관계가 비교적 단순한 재판인데도 기소에서 최종심까지 무려 3년 넘게 걸렸다. 이 바람에 최 의원은 의원직을 거의 다 채웠다. 신속한 판결이었다면 들지 않았을 국민 세금이 수십억원 넘게 그에게 들어갔다. 의도적인 늑장 재판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정치적 사안의 재판 지연이 반복되고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후원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된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1심 판결에 2년 5개월이 걸렸다. 조국 전 장관은 1심 판결에만 3년 2개월이 걸렸다. 반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0만원을 확정받고 의원직을 상실한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은 2심 이후 3개월 만에 확정 판결을 받았다. ‘지연된 정의’ 논란과 함께 정치 성향이 같다면 사법부도 끝까지 봐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 “항문만 봐도 누군지 안다”… ‘스마트 변기’ 韓과학자, 이그노벨상 수상

    “항문만 봐도 누군지 안다”… ‘스마트 변기’ 韓과학자, 이그노벨상 수상

    한국인 과학자가 항문의 생김새로 신원을 식별하고 배설물을 분석해 질병을 진단하는 변기를 개발해 올해의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을 수상했다. 미국 하버드대 과학유머잡지 AIR(Annals of Improbable Research)는 지난 14일(현지시간) 하버드대에서 시상식을 열고 화학·지질학, 문학, 기계공학, 공공보건 등 10개 분야 수상자를 발표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소속 박승민 박사는 이 가운데 공공보건 분야 수상자로 선정됐다. AIR는 박 박사를 수상자로 선정한 배경에 대해 “인간 배설물을 신속히 분석하고 추적 관찰하기 위해 소변 분석용 담금봉 검사와 배변 분석을 위한 컴퓨터 영상 시스템, 항문 모양(anal-print) 센서와 연동된 신원확인 카메라, 통신 링크 등 다양한 기술이 사용된 장비인 ‘스탠퍼드 변기’를 발명했다”고 설명했다. 이 변기는 대변 모양을 시각적으로 분석해 암이나 과민성 대장증후군 징후를 찾아내는 것으로 전혀졌다. 또 소변에 포도당이나 적혈구 등이 포함돼 있는지도 확인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지문처럼 사람마다 형태가 다른 항문 모양으로 신원을 파악해 여러 사람이 사용할 경우에도 추적 관찰이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박 박사는 영국 PA통신 인터뷰에서 “가장 개인적인 공간으로 여겨지는 화장실은 우리 건강의 조용한 수호자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그노벨상 수상에 대해 “파격적인 장소에서 답을 찾으려는 연구자와 멘토, 공상가들에게 보내는 헌사 역할을 하는 겸허해지는 경험”이라며 “오늘 우리는 스마트 헬스케어 변기란 생각을 비웃을지 몰라도 이번 수상은 가장 개인적인 순간조차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잠재력이 크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 이그노벨상 화학·지질학상은 왜 많은 과학자가 바위를 핥는 것을 좋아하는지를 규명한 영국 라이세스터대의 얀 잘라시에비치 교수에게 돌아갔다. 기계공학상은 죽은 거미의 몸을 조종해 자기 체중보다 무거운 물건을 집어들 수 있도록 한 인도·중국·말레이시아·미국 연구진에게, 의학상은 시신을 분석해 양쪽 콧구멍의 코털 수가 같은지 확인한 과학자들이 받았다. 물리학상은 멸치의 성적 활동이 해수가 섞이는 정도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측정한 다국적 연구진에게 수여됐다. 수상자들에게는 트로피와 함께 2000년대 발행된 1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 1장이 상금으로 수여됐다. 짐바브웨가 초인플레이션을 겪을 당시 발행된 이 화폐는 현재는 사용되지 않으며, 1∼2만원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노벨상을 풍자해 만든 이그노벨상은 AIR이 매년 노벨상 발표에 앞서 재미있고 기발한 과학 연구를 한 연구진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 박 박사에 앞서 이그노벨상을 받은 한국인은 모두 4명이다. 1999년 향기 나는 양복을 발명한 FnC코오롱의 권혁호씨가 환경보호상을, 2000년에는 대규모 합동 결혼을 성사시킨 공로로 통일교 문선명 교주가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는 5명의 다른 종말론자들과 함께 인류 마지막 날을 매번 틀리게 예측해 2011년 이그노벨 수학상을 받았다. 2017년에는 커피잔을 들고 다닐 때 커피를 쏟는 현상에 대해 연구한 한지원씨가 유체역학상을 수상했다.
  • “정명석 성범죄 방어용 바지 아니다”…‘주님과 자라’한 그녀 저격

    “정명석 성범죄 방어용 바지 아니다”…‘주님과 자라’한 그녀 저격

    ‘JMS 2인자’ 정조은(44·여·본명 김지선)에 대해 “독재자였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12일 대전지법 형사12부(재판장 나상훈) 심리로 열린 정씨 등 정명석 총재(78)의 성범죄를 도운 JMS 간부 6명에 대한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JMS 국제선교국 여성 간부 A씨는 정조은씨와 관련 “권력이 막강한 사람이고, 많은 이들이 두려워했다”며 이같이 표현했다. A씨는 “정조은의 방향을 비판한 목회자가 쫓겨난 적도 있다”며 “정 총재의 수행비서를 직접 배치하고, 원하는 이들을 공석에 앉혔다”고 전했다. 정명석 총재의 ‘후계자’로 알려진 정씨는 2018년 3∼4월 홍콩 국적 여신도 메이플(29)에게 잠옷을 건네주며 ‘여기서 주님을 지키며 잠을 자라’고 지시해 정 총재의 준유사강간 범행을 도운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또 2021년 9월 초 정 총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한 여성 피해자에게 “그것이 하나님의 극적인 사랑이다”라며 세뇌하고, 정 총재가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대기하거나 통역도 해준 혐의이다. A씨도 국내외 ‘신앙스타’를 선발·관리하며 이들을 상대로 정 총재가 범행할 때 도운 혐의로 다른 간부들과 함께 재판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증언은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며 소문으로 들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정씨 변호인이 “정씨가 정명석 총재의 범행을 막기 위해 여신도의 접근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런 노력에 대해 들어봤느냐”고 묻자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변호인이 “정씨가 여성 수행원들에게 일부러 긴 바지를 입도록 하지 않았느냐”고 되묻자 A씨는 “수련원이 햇볕이 워낙 강한 데다 벌레도 많이 쏘여 다들 긴 운동복 바지를 입는다. (정 총재의) 성범죄를 막기 위한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정씨 측은 “실제 맡은 역할이나 지위는 알려진 것과 상당 부분 다르다”며 ‘2인자임’을 부인하고 있다. 이 재판부는 2018년 2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충남 금산 월명동 수련원 등에서 23차례에 걸쳐 국내외 여성 신도들을 성폭행·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명석 총재의 1심 재판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날 증인 신문에 이어 오는 18일 오전 10시 다음 재판을 진행한다.
  • 해외선교 중 “당신 목사 맞냐”는 아내 살해 암매장한 목사, 18년 확정

    해외선교 중 “당신 목사 맞냐”는 아내 살해 암매장한 목사, 18년 확정

    필리핀 선교 중 “목사 자격이 있느냐”는 아내를 살해해 앞마당에 암매장한 60대 목사의 형량이 징역 18년으로 확정됐다. 11일 대전고법에 따르면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목회자 A(63)씨가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검찰도 상고하지 않아 항소심에서 선고된 징역 18년이 확정됐다. 필리핀에서 선교 활동 중이던 대전 모 교회 목회자 A씨는 지난해 8월 25일 오전 현지 거주지에서 말다툼하던 아내가 “당신이 목사로서 자격이 있느냐”고 따져 묻자 격분해 둔기로 수차례 내리쳐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후 A씨는 아내의 사체를 천막으로 감싸고 끈으로 묶어 자신의 앞마당에 흙과 자갈 등으로 덮어 암매장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들 부부는 범행 전부터 서로 대화하지 않고 지내는 등 큰 갈등을 겪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범행 후 가족과 지인들에게 “아내가 실종됐다”고 숨겼지만 자녀 등이 실종신고해 수사가 착수되자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에 찾아가 자수했고, 이후 국내로 압송돼 인천국제공항에서 전격 체포됐다. 1심 재판부는 “우발적 범행이고 A씨의 자녀 등이 선처를 탄원하지만 생명을 박탈한 범죄는 돌이킬 수 없어 엄벌이 필요하다”며 “어쩔 수 없이 자수하는 등 범행 후 정황도 좋지 않다”고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합리적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고 1심을 유지했다. 1·2심 모두 징역 30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A씨가 타국에서 남편을 뒷바라지한 아내를 쇠 파이프로 무참히 살해했다. 살해할 만한 동기가 아무것도 없다. 자수도 자녀에게 범행이 발각되자 한 것”이라고 밝혔다. A씨는 지난 7월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면서 “속죄하겠다”고 말했다. A씨는 재판부가 “자녀가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를 선처해달라고 탄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살인자의 자식이란 오명을 짊어지게 해 미안하다. 면목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 “도와준 유일한 사람인데…” 양부모 무참히 살해한 아들

    “도와준 유일한 사람인데…” 양부모 무참히 살해한 아들

    미국의 한 부부가 입양 후 7년간 사랑으로 보살핀 아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사연이 전해지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7일(현지시간)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디마 타워(21)가 플로리다주 노스포트 자택에서 양아버지 로비 타워(49)와 양어머니 제니퍼 타워(51) 부부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그는 현재 새러소타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사건 당일 타워 부부의 이웃은 “누군가 집 문을 두드리며 ‘도와달라’고 소리 지른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이 이웃이 문을 열었을 때는 핏자국만 남아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자택에서 피투성이로 머리를 맞대고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타워 부부를 발견했다. 경찰에 따르면 거실 소파, 안방 침대, 현관 등 집안 곳곳에 피가 있었고, 부엌 싱크대에서는 피 묻은 수건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매우 소름 끼치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면서 “폭력적인 공격이 여러 번에 걸쳐 장시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부부의 아들인 디마를 마주친 경찰은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디마는 이를 무시하고 양부모가 사준 차를 타고 도주했다. 이후 차를 버리고 숲속으로 도망친 그는 체포될 때까지 약 8시간을 숨어 있었다. 2016년, 우크라이나 보육원에서 입양한 아들 부동산 중개인이었던 타워 부부는 평소 깊은 신앙심으로 남을 도왔다고 한다. 과거 우크라이나로 기독교 선교와 봉사활동을 여러 차례 떠났는데, 디마를 만난 것도 2016년 우크라이나의 한 보육원에서였다. 당시 14세였던 디마는 엄마를 잃고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에게 버림받은 상태였다.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타워 부부는 디마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아버지 로비의 삼촌 워렌 린스는 “두 사람은 디마의 인생에서 디마를 도우려 한 유일한 사람이었다”면서 “디마를 친아들처럼 대했다”고 전했다. 어머니 제니퍼의 소셜미디어(SNS)를 보면 “매 순간 디마 너를 사랑한다”, “우리 삶에 널 주신 하나님과 널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생모에게 감사하다” 등의 글들이 다수 올라와 있었다. 셋이 웃으면서 찍은 사진도 게재돼있다. 린스는 디마가 처음부터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디마가) 복싱에 관심이 많아 보였지만 스포츠로서의 복싱은 원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를 때리고 싶어했다”고 밝혔다. 디마는 학교에서도 자주 싸움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에는 로비가 디마에게 폭행당해 눈에 멍이 들었다. 이에 경찰이 출동했고 디마는 한동안 친척들이랑 지내야 했다. 그러나 타워 부부는 곧 디마를 집에 돌아오도록 했다. 린스는 “그만큼 부부는 디마를 사랑했다. 다 용서했고 원하는 걸 다 사줬다”면서 “모든 것이 전부 나쁘지는 않았지만, 디마는 이곳에 오기 전 이미 많은 증오를 품고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살해 이유는 전해지지 않았다. 한편 부부의 이웃들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이웃은 지역 언론에 “정말 착하고 상냥하고 좋은 부부였다. 요즘 시대에 정말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현재 온라인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GoFundMe)에는 타워 부부의 장례비용을 위한 페이지도 개설돼 있다.
  • 모로코 강진 ‘사망자 300명’ 육박…“교민 피해 아직 없어”

    모로코 강진 ‘사망자 300명’ 육박…“교민 피해 아직 없어”

    주모로코 한국대사관은 중부 마라케시 인근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인한 교민 피해가 아직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8일(현지시간) 대사관 관계자는 “지진 발생 후 한인회 등을 통해 교민 피해를 파악하고 있다. 다행히도 아직 교민 관련 피해는 접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아직 새벽 시간인 데다 강진 발생 인근의 일부 지역에 통신 장애도 있기 때문에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대사관이 파악하고 있는 모로코 내 한인은 대략 360명가량이다. 대부분 교민은 현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최근 북부 지역에 들어온 자동차 부품 회사 등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이 발생한 마라케시 인근에는 비정부기구(NGO) 종사자나 선교사 등 10여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모로코 정부 “강진 사망자 최소 296명…부상자 153명” 전날 모로코 중부 마라케시 남서쪽 약 71㎞ 지점에서는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했으며, 3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숨지고 15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모로코 내무부는 모로코 국영 방송을 통해 “잠정 보고에 따르면 알하우즈, 마라케시, 우아르자자테, 아질랄, 치차우아, 타루단트 등지에서 296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부상자는 현재까지 153명으로 집계됐다. 사고 발생 초기인 데다 건물 잔해에 매몰된 실종자 등 가능성을 고려하면 향후 희생자 수는 늘어날 수 있다. 지진은 전날 오후 11시 11분쯤 마라케시 남서쪽 70여㎞ 지점에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도시 마라케시부터 수도 라바트까지 곳곳에서 도심 건물이 흔들리거나 파괴됐으며, 주거 환경이 열악하고 접근이 어려운 산간 지역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가 건물 잔해에 깔려 숨졌으며, 일가족 5명이 전원 희생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교황, 신도 1450명뿐인 몽골 첫 방문…한국 주교단도 함께…임형주 축하 노래

    교황, 신도 1450명뿐인 몽골 첫 방문…한국 주교단도 함께…임형주 축하 노래

    프란치스코 교황이 역대 교황 가운데 처음으로 몽골 땅을 밟았다. AFP 통신 등에 따르면 교황은 31일 오후 6시 40분(현지시간) 전세기 편으로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을 떠나 1일 오전 10시(한국시간 1일 오전 11시)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교황은 관례대로 중국 영공을 지나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주석과 중국인들에게 안부의 인사를 전한다”며 “국가의 안녕을 위한 내 기도를 확언하면서, 나는 여러분 모두에게 통합과 평화의 신성한 축복을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바티칸의 축복은 우호와 선의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과 바티칸은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며 “중국은 바티칸과 마주 본 채 건설적인 대화를 하고, 이해를 증진하며, 상호 신뢰를 쌓아 양자 관계의 개선과 진전을 끌어내기를 원한다”고 화답했다. 몽골은 전체 인구 330만명 중 약 60%가 종교를 갖고 있으며, 대부분 불교를 믿는다. 가톨릭 신자는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1450명 남짓이다. 1921년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몽골은 여전히 중국과 정치적,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로이터는 교황청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 이번 방문이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황청은 몽골이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 뿐만아니라 러시아와도 관계가 경색돼 있다. 86세 고령에도 4박 5일간 몽골을 방문하는 교황은 울란바토르 도착 첫날은 휴식을 취한 뒤 2일 몽골 정부가 주최하는 공식 환영식에 참석하며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한다. 교황은 이어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과 만난 뒤 몽골 정부 관리와 외교관, 시민사회 대표단을 만나 첫 연설을 할 계획이다. 뒤이어 울란바토르 지목구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주교단과 성직자, 수도자, 선교사, 사목 협력자들과 만나 두 번째로 공식 연설을 할 예정이다.3일 오전에는 그리스도교 다른 종단 대표와 다른 종교 대표를 만나고, 오후에는 스텝 아레나 경기장에서 옥외 미사를 주례하고 강론한다. 미사 식전행사에 우리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엔딩 무대에 올라 ‘아베 마리아‘, ’유 레이즈 미 업‘, ’생명의 양식‘ 등 세 곡을 부를 예정이다. 교황은 4일 ’자비의 집‘에서 사회복지 활동가들을 만난 뒤 로마행 귀국 비행기에 오른다. 교황의 몽골 일정에 한국 주교단이 대거 함께 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를 비롯해 염수정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 대전교구 총대리 한정현 주교 등이 몽골 현지에서 교황을 맞는다.
  • 하나님의 교회 강원도 새 성전서 헌당예배

    하나님의 교회 강원도 새 성전서 헌당예배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강원 원주와 홍천에 지은 새 성전에서 헌당기념예배를 드렸다고 30일 전했다. 원주시 원동에 마련된 원주교회는 지난 7월 완공했고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다. 홍천읍에 위치한 홍천교회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졌다. 하나님의교회에 따르면 올해만 13번째 헌당식이다. 이들은 지역 사회와 함께하겠다는 각오다. 배동기 목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만큼 이번 강원 지역 헌당식을 계기로 봉사와 문화행사 등 다채로운 활동으로 지역사회 화합과 소통에 더욱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헌당예배를 찾은 1200여명의 신자들은 앞다퉈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주철 목사는 “지역민은 물론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삶의 행복을 얻고 재앙에서 보호받으며 천국 축복도 함께 누릴 수 있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필리핀 선교 중 아내 살해 암매장 혐의 60대 목사 ‘징역 18년’

    필리핀 선교 중 아내 살해 암매장 혐의 60대 목사 ‘징역 18년’

    법원 “생명 박탈 범죄, 엄벌 필요”60대 목사, 아내 살해하고 암매장 혐의 필리핀에서 아내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목사가 2심에서도 1심과 같은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대전고법 형사1부(송석봉 부장판사)는 25일 살인 등 혐의에 대한 25일 A(63)씨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필리핀에서 목회 활동을 해왔던 대전 모 교회 목회자 A씨는 지난해 8월 25일 현지 거주지에서 말다툼하던 아내를 격분해 둔기로 수차례 내리쳐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아내가 숨지자 비닐 천막 등으로 시신을 감싸 집 앞마당에 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범행 이후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에 찾아가 자수했으며, 이후 인천국제공항으로 압송돼 공항에서 체포됐다. 1심 재판부는 “우발적으로 범행이 이뤄졌고 피고인의 자녀 등 피해자의 유족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나 생명을 박탈한 범죄는 그 행위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엄벌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A씨의 변호인은 최후 변론에서 “A씨가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 자수 역시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검사의 항소를 기각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A씨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한 검찰은 형이 너무 낮다며 항소했으나 2심도 “원심 판단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 “타협 못 하는 우리 민족… 지금 고쳐야 선진국”

    “타협 못 하는 우리 민족… 지금 고쳐야 선진국”

    “단절된 세대 간 대화의 장 필요지나치게 배타적 태도 버려야” 인요한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는 23일 국민의힘 내 친윤(친윤석열)계 공부모임인 ‘국민공감’의 강연자로 나서 ‘타협의 부재’와 ‘세대 간 대화 단절’을 해결해야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짚었다. 인 교수는 이날 국회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 우리가 잃어버린 1%’를 주제로 강의하며 “미국말로 ‘compromise’(타협)는 ‘내가 손해 보고 이긴 것’, 한국말로 타협이라는 것은 ‘내가 손해’”라며 “우리가 고쳐야 할 점은 타협을 못 하는 민족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인 교수는 세대 간에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정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저는 온돌방 아랫목에서 지식을 배우고 지혜를 배웠다”며 “대한민국에는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venue’(장소)가 없다”고 말했다. 이 외 인 교수는 “병원에서도 선거를 하면 경기고, 용산고, 제물포고등학교가 대단한데 저는 외국인학교를 졸업해서 줄 설 데가 없었다”며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하고 이로 인해 단합하지 못하는 한국의 문화를 비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감정적인 점과 배타적 태도,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문화를 버려야 한다며 “비행기가 안 뜬다고 데모하는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으며, 한국인은 미워하는 사람을 제쳐버린다”고 말했다. 인 교수는 강연이 끝난 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 때 국빈만찬에서 부른 ‘아메리칸 파이’에 대해 “‘아메리칸 파이’는 미국인 고유의 상징성을 가진 노래로 미국인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라고 설명했다. 또 인 교수는 “어제 기자에게 전화가 와 ‘당신 국민의힘 출마하느냐’고 해서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인 교수는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 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었다. 대한민국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특별귀화자 1호’로 지정된 인 교수는 19세기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선교사 유진 벨의 증손자다. 인 교수 가문은 4대째 대를 이어 한국에서 교육·의료 활동을 펼치고 있다.
  • 강기정 시장 “정율성 논란 멈추고 역사에 평가 맡기자”

    강기정 시장 “정율성 논란 멈추고 역사에 평가 맡기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강기정 광주시장이 23일 국가보훈부에 “더 이상의 논란은 멈추고, 정율성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겨두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강 시장은 이같은 입장은 전날인 22일 “북한의 애국열사능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인가”라며 ‘정율성 공원 조성사업 철회’를 요구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충돌했던 불편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행정안전부에서 23일 오후 늦게 광주시에 정율성 공원 조성사업에 관한 기본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강 시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정율성 선생에 대해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논의하는 도시 광주,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날 박 장관의 ‘사업철회’ 요구에 대해 “정율성 선생은 시진핑 주석이 한중 우호에 기여한 인물로 김구 선생과 함께 꼽은 인물”이라며 ‘적대의 정치’는 그만하고, 다른 것, 다양한 것, 새로운 것을 반기는 ‘우정의 정치’를 시작하자는 반박문을 올린 지 하룻만이다. 강 시장은 사단칠정을 논한 고봉 기대승, 독립신문 서재필 박사, 남종화 대가 남농 허건, 소리꾼 임방울, 임란의 영웅 고경명 장군, 광주학생독립운동, 5·18 영령들을 자랑스러운 인물로 언급했다. 이어 “광주의 청년 서정우 하사도 기억할 것”이라며 “정율성 선생은 그 아버지와 5남매, 친가와 외가 모두 호남을 대표하는 독립운동 집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정율성 선생의 외삼촌인 오방 최흥종 목사에 대해서는 “광주YMCA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선교사들과 함께 근대교육과 의료와 돌봄을 실천하신 광주의 정신”이라고 소개했다. 강 시장은 “광주가 정율성동요제를 이어온 게 18년째고, 정율성공원은 6년 전에 조성키로 계획됐으며 이미 48억원이 집행돼 올 연말 완성될 예정”이라며 “150억원을 투자한 밀양 ‘김원봉 의열기념공원’과 123억원을 투자한 통영 ‘윤이상 기념공원’에는 오늘도 많은 이들이 찾는데, 그 기념관과 공원도 문을 닫자는 말씀이냐. 더 이상의 논란이 없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박 장관은 22일 SNS에 올린 글에서 “정율성은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이라며 “그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해 조선인민군 구락부장을 지냈으며, 인민군 협주단을 창단해 단장이 됐다”며 “그가 작곡한 조선인민군 행진가는 한국전쟁 내내 북한군의 사기를 북돋웠다”고 비판했다. 이어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위문공연단을 조직해 중공군을 위로한 사람”이라며 “중국으로 귀화해 중국 공산당을 위한 작품을 쓰며 중국인으로 생애를 마쳤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김일성도 항일운동을 했으니 기념공원을 짓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라며 “광주시 차원의 시 재정이 쓰인다고는 하지만 시 재정은 국민의 혈세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자유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앞장섰던 사람을 국민 세금으로 기념하려 하는 광주시의 계획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며 “전면 철회돼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강 시장은 곧바로 SNS에 ‘광주는 정율성 역사공원에 투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반박했다. 강 시장은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영웅시하지도, 폄훼하지도 않는다”며 “뛰어난 음악가로서의 그의 업적 덕분에 광주에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찾아온다.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광주의 역사 문화자원으로 발굴하고 투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박 장관은 다시 SNS에 글을 올려 “다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라고요? 돈이 되는 일이면, 국가정체성이고 뭐고 필요 없단 말입니까”라고 재반박했다. 그러면서 “시대적 아픔을 알기에 더 분노하는 것”이라며 “그가 만든 군가를 부르며 몰려왔던 적에게 죽임을 당한 수많은 이들의 피가 아직 식지 않은 대한민국”이라고 강조했다.
  • 17년을 캄보디아 정글에서 ‘잊혀진 전쟁’ 벌인 그 “AK47 대신 가스펠”

    17년을 캄보디아 정글에서 ‘잊혀진 전쟁’ 벌인 그 “AK47 대신 가스펠”

    지금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교회에서 가스펠을 부르며 손뼉을 마주치지만 젊은 시절의 그는 베트남전쟁이 종결된 뒤에도 정글 깊숙이에서 17년을 베트남 공산군 부대와 싸웠다. 늘 AK47 소총을 끼고 살았다. 그가 이끄는 부대원들은 그저 잊혀진 부대였을 뿐이다. 늘 달아나 세상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숨기에 급급했다. 반군이랄 것도 없는 그의 부대는 먹거리를 수집하고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에게 세금을 바치기 위해 호랑이 가죽을 벗겨 팔았다. Y 힌 니에(63)는 부대원들의 자유를 내걸고 협상을 타결지은 1992년까지 그들은 무기를 버리지 않았다. 첫 번째 죽을 고비는 1968년 1월 30일(현지시간) 밤 베트콩의 이른바 신정 대공세 때였다. 중부 고원지대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부온 마 투옷에서 자라난 그는 어릴 적부터 미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자랐다. 부모는 여덟 살의 그를 선교사들에게 맡기고 떠나버렸다. 가난하므로 그가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한다는 이유였다. 그를 떠맡은 대모 캐롤린 그리스올드는 로켓이 떨어졌을 때 잠들어 있었다. 선교사들은 공산군 부대가 집안에서 폭탄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캐롤린의 아버지 레온이 즉사했다. 친구 집에서 잠자고 있던 힌 니에가 득달같이 달려와 잔해 속에서 캐롤린을 끄집어냈지만 얼마 뒤 눈을 감았다. “대모도 고통스럽게 죽었다. 하느님이 난 살려놓으셨다.” 힌 니에는 벙커 속에 몸을 숨겼는데 다른 선교사들도 죽거나 붙잡혔다. 그는 혼자 교회를 지키며 그나마 남은 것들로 성경학교를 운영했다. 미국이 지원하는 남베트남군이 와해되고 부온 마 투옷에서 철수했을 때까지도 참전하지 않았다. 포탄이 비처럼 쏟아져도 힌 니에와 32명의 성경학교 학생들은 빠져나와 몇㎞를 걸어서 피난했다. 이 때 압제받는인종 해방 연합전선(FULRO) 전사들과 만났다. 프랑스어로 ‘몬타낭드(Montagnard)’로 불리는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에 흩어져 사는 소수인종의 자치권을 얻기 위해 싸우는 반군 운동이었다. 이들은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갖은 차별과 박해를 받아 궐기했다.이들은 미국인 선교사들과 인연이 깊은 그의 영어 능력을 이용해 미군과 다시 연결됐으면 하고 바랐다. 미군 부대들은 1973년 이전까지 수만명의 고원 전사들을 전선에 투입해 왔다. 힌 니에는 기독교를 굳게 믿는 이들 전사와 만난 것이 운명처럼 여겨졌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가슴에 와 닿았다.” 1975년 3월 10일 그는 그들과 함께 정글로 숨었다. 처음 4년은 베트남 영토 안에 머물렀다. 늘 달아나 숨었다. “쏘고 도망가고, 쏘고 도망갔다. 강한 무기도 없었다.” 그 자신은 교전에 가담하지 않으려 했다. 대신 자위 차원과 사냥을 위해 AK47를 들고 다녔다. 1979년 무렵, 베트남 부대들은 FULRO를 쫓아 작전 범위를 넓혔고, 그의 부대는 캄보디아로 숨어들었다. 더 위험한 적을 상대할 수 밖에 없었다.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가 국경 일대를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크메르 루주가 집권한 4년 동안 170만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잔존 세력이 이곳으로 숨어들어 베트남 지원 세력에 맞서고 있었다. FULRO가 머무르려면 크메르 루주의 허락이 필요해 힌 니에가 몬둘키리 지방의 정글에서 지역 사령관을 만났다. “내가 ‘우리는 같은 적을 갖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게 합의한 유일한 내용이었다. 베트남 공산당이 오면 우리는 그들에게 알릴 것이라고 했다.”크메르 루주는 허락했는데 대가로 달마다 “세금”을 내라고 했다. 호랑이와 뱀의 가죽, 사슴 뿔을 바쳐도 좋다고 했다. 그의 부대는 덫을 놓아 호랑이를 잡았다. 호랑이들은 부대원 셋을 해쳤는데 호랑이보다 더 두려운 것이 크메르 루주였다. “그들은 아주 화가 나 있었고, 모든 것을 따졌다. 여러 차례 ‘세금을 내지 않으면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FULRO는 순찰을 계속 돌며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한 달 이상 머무르지 않았는데 이따금 베트남 부대와 마주쳤다. 동물처럼 돌아다니며 나무 뿌리 등 닥치는대로 먹었다. 코끼리도 총을 쏴 죽였다. 이 때 아내 H 비우와 결혼했는데 같은 부대원이었다. 정글에서 세 자녀를 낳았는데 한 명은 죽었다. 새로운 장소에 이르면 힌 니에가 맨먼저 하는 일은 십자가를 세우는 일이었다. 이어 병사들과 여자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성탄절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1982년 어느 날 밤에 캐럴을 부르고 있었는데 크메르 루주에 가담한 현지인 무리가 멀리서 듣고 찾아왔다. 베트남군 병사도 한 명 찾아왔는데 FULRO도 크메르 루주도 쫓지 않았다. 종군 목사이기도 했지만 힌 니에는 수석 연락장교이기도 했다. 매일 아침 단파 라디오를 통해 영국 BBC,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 베트남 라디오 등을 들으며 자신들을 잊어버린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으려 했다. 집권한 지 38년 만에 이달 초 권력을 아들에게 물려준 훈 센이 왕자와 공동 총리를 맡았을 때인 1991년 캄보디아군은 힌 니에에게 새로운 위협이 됐다. 이 때만 해도 FULRO 부대원들의 옛 지휘관조차 이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고사하고 살아 있는지 여부도 알지 못했다. 국제사회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듬해 힌 니에가 유엔 관리들과의 협상을 시작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들 놀라워했다. 유엔 관리들은 평화유지 업무의 일환으로 캄보디아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싶어했다.힌 니에는 유엔 관리를 만나 프랑스어로 필담을 나눴다. “우리는 FULRO, 자유와 여러분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달 뒤 일단의 유엔 관리들이 그를 찾아왔다. “일주일 정도 조사해 왜 내가 정글에서 살고 있는지 추궁했다. 그들은 내가 크메르 루주인지 알고 싶어했는데 나는 아니라고 했다.” 다른 유엔 모임에서 그는 공산당과 싸우려면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다고 청했는데 불가능하다고 했다. “너희는 400명 밖에 안 되는데 베트남 병사는 수백만이다. 우리는 너희가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 그 해 8월 미국 기자 네이트 테이어가 찾아와 세상 밖으로 나온 마지막 FULRO 전사라고 기사를 썼다. 테이어는 그들의 지도자는 17년 전에 이미 크메르 루주에 죽어는데 이들은 그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프놈펜포스트에 썼다. 일부는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울먹였다. 힌 니에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전쟁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그들은 여전히 미국이 돌아와 도와줄 것이란 비현실적인 희망을 지니고 있었다. 국경에 갇힌 신세였는데도 FULRO 전사들은 조국을 위한 투쟁을 포기하고 난민으로 지내고 싶지 않아했다. 힌 니에는 미국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묻는 테이어의 질문에 “화가 나지는 않는다. 다만 미국이 우리를 잊었다는 것이 아주 슬프다. 미국인들은 우리 맏형 같았는데 형이 우리를 잊었다는 사실이 매우 슬프다”고 답했다. 이제 전사들은 총을 내려놓는 데 동의했고, 미국으로 망명하고 싶어 했다. 이들은 통상 난민들이 밟는 절차를 생략하고 몇 달 안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테이어가 모든 과정에 함께 했다. 그는 지난 1월에 세상을 떠났고, 힌 니에가 많은 용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를 집전했다. 11월에 그들은 미국에 도착했다. 환영 현수막에 “잊혀진 부대”가 들어가 있었다. 힌 니에 부부와 자녀들은 그린스보로에 정착했다. 곧바로 강연에 불려 다니고 미국 의회 증언대에 섰다. 베트남 국영매체들의 타깃이 됐다. 베트남 정부는 힌 니에 같은 인물들이 반란을 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1년 VOV 통신은 “종교 집단을 위장해 베트남 연방국가에 대한 사보타주를 사주하고 지역민들을 선동했다”고 깎아내렸다. BBC는 힌 니에의 긴 인생 얘기를 기사로 19일 내보내며 베트남 정부의 코멘트를 청했으나 답이 없었다고 밝혔다. 힌 니에의 몬타낭드 기독교회 예배에는 수백명이 모이곤 한다. 그는 영어와 베트남어, 라데어(Rade)로 설교하고 노래할 때는 중부 고원 지대 사투리도 동원한다. “그들은 나에 대해 역선전을 지금도 늘어놓고 있지만 FULRO도 죽고, 모두가 죽었다. 베트남은 사람들 입을 다물게 하려고 하는데 나 여기 있다.”
  • 이동관 “KBS, 정파적 보도 쏟아내는 시스템 선교정”

    이동관 “KBS, 정파적 보도 쏟아내는 시스템 선교정”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KBS에 대해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수 없다”면서 “정파적 보도를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그런 시스템을 먼저 교정한 후에 필요하다면 지원도 강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왼쪽으로 기운 방송을 오른쪽으로 기울게 하겠다는 게 아니다. 평평한 곳에서 공정하게 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태도”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수신료 폐지에 대해 80%에 가까운 국민이 동의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며 “단순히 돈 내기 싫어서가 아니라 이런 방송에 준조세를 내면서 하는 항의의 표시다. (KBS가) 가치 있는 일을 한다면 100% 자발적으로 내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는 또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이 자신에 대한 여러 의혹을 보도한 데 대해 “이제는 낙마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지 않고 흠집 내기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이 후보자가 자녀 학교 폭력 사건 당시 학교에 외압을 행사했다며 공세를 퍼부었다. 서동용 민주당 의원은 “아들이 다른 친구를 두드려 패고 했던 내용이 기재돼 있는 진술서라면 아들에게 물어보고 잘못했으면 훈계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며 “진술서에는 (이 후보자 자녀가) 휴대전화를 뺏어서 게임하고, 책상에 머리를 300번 부딪히게 하고, 매점에서 자신의 것을 사라고 강제해서 돈을 쓰게 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장경태 의원은 “(자녀) 학폭만으로도 고위공직자 자격 박탈이라고 생각한다”며 “가해 사실이 있는데 학폭위가 열리지 않고 전학을 보냈다는 것은 특혜를 줬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학생들이 화해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고, 학생들이 친구가 강제 전학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한 것으로 안다”며 “이 후보자가 압력을 행사해 학폭위를 열리지 않게 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도 “언론을 통해 (진술서 내용을) 뒤늦게 봤고, 아들한테 사실을 물어봤다. 10차례 불러서 물어봤다”면서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갈취나 휴대전화를 뺏거나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 남양주시, 서울시에 9호선 남양주 연장 협조 요청

    남양주시, 서울시에 9호선 남양주 연장 협조 요청

    경기 남양주시는 지하철 9호선 남양주 연장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서울시에 대승적 협조와 지원을 요청했다고 16일 밝혔다. 주광덕 남양주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날 회동을 갖고 왕숙신도시 광역교통개선대책 중 하나인 9호선 연장 강동하남남양주선 등 양측 협의가 필요한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주 시장은 “왕숙 신도시와 연계돼 추진되는 9호선 남양주 연장 사업은 남양주를 넘어 수도권 동북부의 열악한 광역교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추적 사업”이라며 “정부가 힘쓰고 있는 3기 신도시 ‘선교통 후입주’ 원칙 실현을 위해서라도 해당 사업을 조속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강동구 주민은 물론 남양주시민과 하남시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인 만큼 (관련 지자체가) 상생 방안을 모색하고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며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서울시의 대승적 협조와 적극적인 행정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수도권 교통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사업인 만큼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강동과 경기 하남·남양주를 잇는 9호선 남양주 연장(강동하남남양주선)은 총연장 18.1km, 총사업비 2조 1032억 원이 투입되는 3기 왕숙 신도시 광역교통개선대책의 핵심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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