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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정화 ‘베스트셀러’에서 광기연기 섬뜩

    엄정화 ‘베스트셀러’에서 광기연기 섬뜩

    배우 엄정화가 영화 ‘베스트셀러’(감독 이정호·제작 에코필름)에서 섬뜩한 연기를 선보인다. 10일 공개된 ‘베스트셀러’의 예고편에서 엄정화는 광기 어린 미소부터 공포에 질린 표정, 표절 강박증에 시달리는 내면 연기까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펼쳤다. 극중 베스트셀러 작가 백희수로 분한 엄정화는 표절 혐의를 딛고 성공적인 재기를 위해 으슥한 별장을 찾는다.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리던 희수는 어린 딸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1988년, 베이츠 선교사 사택 호숫가”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설정으로 소설을 쓴다. 하지만 이 소설은 10년 전 발간된 소설 ‘비극의 끝’을 표절했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이에 희수는 표절혐의를 벗고 자신에게 10년 전의 소설과 똑같은 내용의 소설을 쓰게 만든 진실을 찾기 위해 필사적인 추적을 시작한다. 이번에 공개된 ‘베스트셀러’의 예고편은 22년 전 별장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미스터리와 섬뜩한 주변 환경, 보이지 않는 대상과 대화하는 어린 딸과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몸부림치는 엄정화의 연기 등을 스릴 있게 담아 영화에 대한 기대를 더한다. 미스터리와 스릴러, 호러 등 장르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베스트셀러’는 후반 작업을 마무리하는 대로 오는 4월께 개봉 예정이다. 사진 = 에코필름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설] 로버트 朴 북 억류 43일, 성고문 진실 뭔가

    지난해 12월 북한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겠다며 입북했다가 43일 만에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로버트 박씨가 북한 내에서 극심한 고문을 당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로 인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그는 여태껏 미국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엊그제 퇴원했다고 한다. 북한당국이 저지른 가혹행위의 진상은 아직 불분명하지만, 그의 지인들은 성고문설 등 충격적 제보까지 내놓았다. 정부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진상규명을 북측에 요구하고 북한 내 인권 유린 상황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그동안 박씨의 북한 내 행적에 대해선 그가 침묵을 지키는 통에 구구한 억측만 있었다. 하지만 퍼즐 맞추기처럼 어려웠던 진상의 전모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의 정신적 후견인인 존 벤슨 목사는 미국의 소리(VOA)방송 회견에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불안증세를 보이는 등 가혹행위를 당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전했다. 박씨와 함께 북한인권운동을 벌여온 팍스코리아나 대표의 제보는 더욱 놀랍다. “평양 압송 이후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한 성적 가혹행위가 가해졌다.”고 하니 사실이 아니길 빌고 싶을 정도다. 21세기 개명 사회에서 도대체 있을 법한 얘기인가. 북측은 먼저 진상을 밝혀야 한다. 성고문설이 사실이라면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럴 개연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박씨가 석방될 즈음 조선중앙통신은 박씨가 북한 내 인권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인권 개선운동을 벌여온 데 대해 사과했다는 식의 보도를 내보냈다. 북한 내 수많은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존재 자체를 시인하지 않던 종전 자세에서 한치도 달라지지 않은 태도다. 북한의 인권은 국제적 공동대응을 통해서만 개선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새삼 일깨운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제3자인 미국과 일본조차 이미 북한인권법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동족인 우리는 정파 간 이견으로 북한인권법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주민의 인권에 대해 입을 다물어 북한당국을 자극하지 않는 게 상책인 양 여기는 풍조는 고쳐져야 한다.
  • 3·1절 애국지사 105명 포상

    3·1절 애국지사 105명 포상

    정부는 23일 91주년 3·1절을 맞아 105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하기로 했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33명, 건국포장 21명, 대통령표창 51명이다. 여성 4명, 외국인 1명이 포함됐다. 포상은 3·1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된다. 해외 거주자는 재외공관을 통해 유족에게 전달된다. 국가보훈처에 소속된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이 활동 당시의 행형기록과 일제 정보문서, 신문보도 기사 등을 찾는 등 적극적으로 자료를 챙겼다. 이번 포상자 중 60%인 63명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선정됐다. 특히 15명은 판결문 등 공적 입증자료를 통해 활동내용을 발굴한 뒤 읍·면·동사무소에서 제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 등을 역추적해 후손을 찾아 포상하게 됐다.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된 이경호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황해도 옹진에서 독립선언서 배포로 징역 1년 6개월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활동 등으로 총 3차례에 걸쳐 7년 이상의 옥고를 치른 후 순국한 것으로 이번에 새로 확인됐다. 미국 선교사로 3·1운동을 후원한 윌리엄 린튼 선생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돼 미국에 거주하는 유족들에게 훈장이 전달될 예정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도시와 길] 대구 유명코스로 떠오른 ‘골목투어’

    [도시와 길] 대구 유명코스로 떠오른 ‘골목투어’

    대구 도심에는 문화와 역사의 흔적이 있는 골목들이 참 많다. 진골목을 비롯해 약전골목, 남성로, 종로, 3·1만세운동길 등. 이 골목들이 골목투어라는 관광명소로 탄생했다. 골목투어는 지난 2001년부터 시작돼 명맥을 이어오다 2008년 5월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코스는 경상감영공원∼향촌동∼종로초교∼삼성상회∼달성공원으로 이어지는 1코스(2㎞)와 동산선교사주택∼3·1만세운동길∼계산성당∼이상화·서상돈 고택∼종로∼진골목으로 이어지는 2코스(1.7㎞), 동성로 대우빌딩∼교동∼약전골목∼서문시장의 3코스(2.4㎞), 국채보상공원∼삼덕문화거리∼방천시장∼봉산문화거리∼건들바위까지의 4코스(2.5㎞), 반월당∼상덕사∼성바오로 수녀원∼성모당의 5코스(1.5㎞) 등 총 5가지가 마련됐다. 올해 골목투어는 다음달부터 시행된다. 1·2 코스는 2,4째주 토요일에 운영되며 3·4·5코스는 단체관광객(10명 이상)들의 신청이 있을 때만 진행된다. 올해부터는 야간 투어가 신설된다. 매주 3째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실시할 예정이다. 또 투어 코스 내에 있는 맛집을 찾는 ‘맛기행’도 매월 셋째주 목요일 운영한다. 골목투어를 하면 영남지방 최초 고딕양식 건물인 계산성당, 벽돌건물과 종탑으로 유명한 제일교회,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동산선교사 사택 등 골목 구석구석에 묻어 있는 한 세기 전 근대화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골목투어신청은 중구 홈페이지(gu.jung.daegu.kr)를 통해 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중구 문화관광과(053-661-2194)로 문의하면 된다. 도심문화탐방 골목투어는 전액 무료로 진행되며 4명의 일반인 문화해설사가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투어 중간에는 인력거 탑승 체험 같은 행사도 마련돼 있다. 지난해에는 149차례에 걸쳐 모두 3052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갔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당신의 사랑 잇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의 메시지를 남기고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6일로 1년이다. 각종 추모행사와 열기가 뜨겁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16일 오후 7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과 주교단·사제단의 공동집전으로 추모미사를 연다. 서울대교구 산하 모든 성당과 기관에서도 위령미사를 올린다. 이날부터 새달 28일까지를 김 추기경 공식 추모기간으로 정했다. 21일 오전 11시에는 경기 용인 성직자 묘역에서 추모 미사가 열린다. 추기경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유품전 등 전시회 및 추모음악회도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김 추기경의 나눔 정신을 잇는 나눔과 모금 전문재단 ‘바보의 나눔’ 재단은 새달 출범 예정이다. ‘옹기장학회’도 확대된다. 옹기장학회는 북한을 비롯해 아시아 전역에 파견될 선교사 양성을 위해 김 추기경이 사재를 출연해 만든 장학회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굿모닝 닥터] 주는 기쁨 의료봉사

    110여개의 의료품 상자와 함께 의사, 약사, 간호사 등 9명의 세브란스 의료봉사단이 지난달 21일 아이티로 출발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 1억원이 넘는 의료품과 인력은 재앙의 그늘에 비해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규모 7.0의 강진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전기는 물론 수도시설도 모두 붕괴됐다. 병원이라고 온전할 리 없었다.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는 폐허 자체였다. 봉사단이 가져간 물품도, 인력도 이들을 감싸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봉사단의 노력은 작지만 위대했다. 봉사단은 할 수 있는 모든 의료적이며, 인간적인 노력을 쏟았다. 봉사단은 수술실 한칸 없는 곳에서 무더위와 벌레, 환자, 그리고 자신과 싸웠다. 극악하고 처절했지만 뜨거운 나날이었다. 현지에서 우리 봉사단은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었다. 다른 나라 의료진들도 우리의 능력을 인정해 나중에는 진료 범위를 넓혀야 했다. 봉사단이 철수할 때는 현지인들이 못내 아쉬워하기도 했다. 조선의 가난한 백성들을 치료하기 위해 설립된 광혜원(제중원)의 모습이 연상된다. 의료선교사 알렌이 1884년 제물포에 도착해 명성황후의 조카였던 민영익을 치료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이자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인 광혜원을 세웠다. 가난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던 조선의 백성을 보듬기 위해 선진문물인 서양의학을 소개했고, 후진양성을 위해 세브란스의전을 설립했다. 그 후 126년이 지난 지금,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강국은 그렇게 태동했다. 과거 의료선교사들이 그랬듯 지금 세브란스 후예들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1900년, 세브란스병원 설립을 위해 거금 1만달러를 기부한 루이스 세브란스는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번 아이티 의료봉사단장인 김동수 교수도 의료봉사를 통해 주는 기쁨을 배웠다고 말한다. 우리도 이제는 주는 기쁨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금기창 연세대 의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 ‘제중원’ 션 리차드 “문경에선 이미 유명인사에요!”

    ‘제중원’ 션 리차드 “문경에선 이미 유명인사에요!”

    SBS 월화 사극 ‘제중원’에서 미국 의료선교사 알렌 역을 맡은 션 리차드(26). 그를 본 첫 느낌은 ‘제중원’ 속 모습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카메라 밖에서 수염을 떼어낸 얼굴에는 아직 앳됨이 남아 있었다. 리차드와 대화를 나누면서 든 두 번째 느낌은 솔직함이었다. 간간이 “외국인 배우가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꼭 키가 크고 잘생겨야 하나요?”라고 진지하게 묻는 표정에 가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따뜻한 품성을 가진 조선 최초의 서양식 종합병원 ‘제중원’ 제 1대 원장이면서 백정 출신인 황정(박용우 역)의 의학적 재능을 알아봐 준 스승 알렌 역을 맡은 리차드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 “왜 미국서 연기하지 않느냐고요?” 외모에서 알 수 있든 리차드는 혼혈배우다. 아버지는 영국인,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가족들을 두고 리차드가 한국에 온 건 순전히 연기에 대한 열정과 어머니 나라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왜 미국에서 연기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어요. 글쎄요. 만약에 미국에서 연기자로 성공하더라도 젊었을 때 한국에 가지 않은 걸 후회할 것 같았어요. 어머니 나라에서 꼭 연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리차드가 한국 땅을 밟은 건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명한 국내 매니저가 그를 미국 현지에서 발굴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다.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연기에 대한 열정만 가지고 혈혈단신 한국 땅을 찾은 것이다. “고등학교 때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고 보스턴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죠. 뉴욕에서 연극 활동을 하다가 한국에 가고 싶어졌어요. 한국에 왔을 때 할 줄 알았던 말이요? ‘안녕하세요.’란 인사가 다였어요.” ◆ “2년 만에 문경에서 셀러브리티 됐어요!” 꿈을 이루려면 한국어 실력이 가장 시급했다. 리차드는 서울대와 서강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언어 외에도 예의범절과 문화가 어려웠지만 2년 만에 한국어로 연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일취월장 했다. “미국에 계신 어머니가 제일 기특해 하세요. 미국에서 한국말을 전혀 배우지 못했는데 한국에서 한국어로 연기까지 한다고요. LA에 있는 비디오 가게에 ‘제중원’ 포스터을 두고 사람들에게 제 자랑을 하신대요.” 리차드는 ‘연습벌레’를 자처했다. 언어와 연기를 혹독하게 연습했고 ‘제중원’ 오디션에 응시, 100:1의 경쟁률을 뚫고 알렌 역에 캐스팅 됐다. 현재 소속돼 있는 BH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냐는 질문에 리차드는 “저 문경의 셀러브리티(유명인사)에요!”라고 활기차게 대답했다. 문경에는 ‘제중원’ 야외세트가 있다. “어제 점심에는 문경의 한 식당 아주머니가 계란 프라이도 하나 서비스로 주셨다.”면서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 “송강호 같은 배우 되고파” 리차드에게는 넘은 산 보다는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 한국어 실력을 늘려야 하고 ‘션 리차드’라는 이름을 알리는 것도 남은 숙제다. 무엇보다 리차드에게 국내 연예계에 마치 공식처럼 존재하는 ‘외국인배우=잘생긴 배우’란 틀을 깨는 것이 소망이다. “잘생긴 외국인 배우만 성공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어요. 외국인 배우라도 송강호 선배처럼 다양한 배역에 녹아드는 연기를 하는 게 제 꿈이에요. 인기와 돈은 오락가락하지만 좋은 작품은 평생 남으니까 전 평생 배우로 살래요.”(웃음) 글=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사진=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백령도 주민 90% 기독교인 이유는?

    백령도 주민 90% 기독교인 이유는?

    ‘백령도는 기독교 천국?’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주목을 받는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이곳은 주민의 90%가량이 기독교 신자다.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가 대략 25%인 점을 감안할 때 엄청난 비율이다. 인구가 4900여명에 불과한 섬이지만 교회는 무려 12개에 이른다. 이(里) 단위의 작은 마을에도 어김없이 교회는 자리 잡고 있다. 더구나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남한 최초의 교회도 이 섬에 있다. ●조선개항전 선교활동 시작 백령도에는 조선 개항(1882년) 훨씬 이전인 1832년에 영국인 칼 귀츨라프가 그리스도교 선교사로는 처음 들어와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조선 왕조의 그리스도교 포교 금지로 본토 입성이 어렵자 황해도 장산반도에서 멀지 않은 백령도를 택한 것. 1898년 포교와 교회 설립 등의 제한이 풀리자 개화파 정치인인 허득은 이듬해인 1899년 백령도 연화리에 ‘중화동교회’를 세웠다. 이때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황해도 소래교회에서 건축자재를 공급받았다고 한다. 중화동교회의 초대 당회장은 당시 황해도 지역의 선교를 지휘하던 언더우드 목사다. 이 교회를 중심으로 백령도에 기독교가 발전하게 된 것은 당연지사. 중화동교회 바로 옆에는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를 보여주는 ‘백령기독교역사관’이 있다. ●전쟁도발 높아 구세관과 생활 부합 백령 주민들의 ‘기독교 몰입’은 지정학적 요인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북한을 코앞에 둔 최북단 접경지역에서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적극적인 구세관과 신앙체계를 갖춘 기독교가 부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백령면사무소 최진국(33)씨는 “낙후되고 열악한 삶의 환경과 6·25전쟁 이전부터 남북 간 충돌에 시달려온 주민들이 다른 종교보다 구원관이 강한 기독교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도포 입고 갓 쓴 예수 보셨나요

    도포 입고 갓 쓴 예수 보셨나요

    개항기에 처음 기독교를 접한 조선인들의 손에 성경보다 많이 들려 있던 책이 있었다. 영국의 우화 작가 존 버니언(1628~1688)이 쓴 종교 우화 소설 ‘천로역정(天路歷程)’이 그것. 조선인들은 주인공 ‘크리스천’이 ‘하늘의 도시’로 향하는 고난의 순례 여행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 교리를 배우고 영성을 키워 나갔다. 그런데 17세기 영국 작가가 쓴 책이 성경보다 자연스럽게 조선인 신자들 사이로 퍼져 나간 이유는 뭘까. ‘천로역정’이 우화 형식으로 쉽게 교리를 전달한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국적 색채를 입혀 거부감을 없앤 삽화의 매력 덕분이기도 했다. 천로역정은 첫 출간 때부터 곳곳에 삽화를 넣었다. 1895년 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이 한국어로 번역할 때, 이 삽화 역시 번역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당시 활동하던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이 그림을 맡았는데, 그는 조선의 사정에 맞춰 주인공 ‘크리스천’을 갓 쓰고, 도포 입은 모습으로 재탄생시킨다. 그렇게 한국적으로 태어난 삽화는 총 42장. 삽화가 모두 들어간 책은 현재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만 1종이 남아 있다. 최근 이 박물관이 기산의 삽화 42점에 해제를 붙인 영인도록 ‘텬로력뎡’을 발간해 100여년 전 조상들이 봤던 천로역정을 그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게 됐다. 한국판 천로역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예수의 모습이다. 제11화에 등장하는 ‘기름을 불에 붓는 예수’의 모습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전에 그려진 예수의 모습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예수조차 도포를 걸치고 갓을 쓴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성령의 불을 끄려고 물을 붓는 마귀의 반대편에서 불을 키우는 기름을 붓고 있다. 이뿐 아니라 12화에 등장하는 천사는 날개옷을 입은 선녀로 그려져 있고, 19·20화 ‘멸망의 도시’의 주인 아폴리온과 대적하는 주인공 또한 한국군 장수의 모습으로 그렸다. 악마 아폴리온 역시 불교식 탱화(幀畵·불당 벽에 걸어둔 그림)에 나오는 마귀의 모습을 하는 등 삽화 전체에서 유불선(儒佛仙)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아이티 강진 참사] 식량지원·의료봉사… 팔걷은 한국인

    200년 역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티 살리기에 전 세계가 발벗고 나선 가운데 한인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의 조현삼 목사 등 4명은 서울 소재 교회들로부터 모금한 6만달러를 가지고 15일 아이티에 입국했다. 이들은 아이티에서 교회를 세우고 선교 활동 중인 박병준 선교사의 도움으로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에 도착, 현지에서 트럭 4대분의 의약품과 식량 등을 구입한 뒤 육로로 국경을 넘어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했다. 도미니카공화국 주재 아이티 대사관의 제럴드 카사메이어 영사와 함께 16일 포르토프랭스 시내의 병원을 돌며 준비한 의약품 일부를 나눠주는 것을 시작으로 현지 주민들을 돕기 시작했다. 역시 포르토프랭스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백삼숙 목사도 지진 발생 후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등 현지 난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아이티 사랑의 교회와 사랑의 집 고아원 등을 운영하고 있는 백 목사는 교회로 찾아오는 부상자들을 치료해주고 고아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 현지에서 ESD라는 업체를 통해 발전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최상민 사장은 아이티 전력망 복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지원도 잇따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성금 10만달러를 국제적십자사연맹에 전달했으며 코오롱그룹은 1억 8000만원 상당의 텐트 150여동을 국제구호개발 NG O 굿네이버스를 통해 긴급 지원키로 했다. 포르토프랭스 연합뉴스
  • [아이티 강진 참사]수도는 거대한 시체 안치소… 폐허속 ‘아기 울음소리’도

    [아이티 강진 참사]수도는 거대한 시체 안치소… 폐허속 ‘아기 울음소리’도

    한순간에 아이티 전체를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지진 속에서도 새 생명은 폐허가 된 건물더미를 뚫고 싹을 틔운다. 눈물과 한숨 말고는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은 절망을 이겨내고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작은 기적들이 희망을 부여잡을 힘을 준다. ●지진 발생 두시간만에 여아 출생 브라질 국영통신은 최악의 지진이 발생한 지 두 시간 뒤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브라질군 주둔지인 찰스 기지에서 극적으로 건강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산모는 진통을 느끼던 중 지진이 발생하자 필사적으로 도움을 구하러 헤매다가 찰스 기지 차고에 설치된 임시 진료소에서 브라질 군인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출산할 수 있었다. 산모는 별다른 외상은 없지만 출혈이 멈추지 않아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라고 진료소 관계자는 전했다. 빌딩 5층에 있다가 건물이 무너진 속에서도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고 무사히 살아난 부부도 있다. 호주 일간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따르면 조엘 호프맨과 그의 아내 레이첼은 인권보호활동을 위해 지난해 아이티에 왔다. 이들은 모두 절대적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기독교 한 교파인 메노나이트 교단이 운영하는 인권단체 소속이었다. 공교롭게도 지진이 일어났을 때 빌딩 5층에 함께 있던 이들은 건물이 완전히 무너진 속에서도 잔해 더미 밖으로 기어나왔다. 함께 병원을 찾은 이들은 남편 조엘이 손을 다친 것을 빼곤 아무런 부상도 당하지 않았다. ●8시간 달려 아내 구해낸 남성 한 미국인 선교사가 지진이 발생한 곳으로 8시간을 차를 몰고 달려가 잔해에 깔린 아내를 손수 구해냈다. MSNBC에 따르면 지난 12일 포르토프랭스에서 160km 떨어진 산에 있던 프랭크 소프는 포르토프랭스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아내 질리언한테서 건물에 깔렸다는 전화를 받았다. 소프는 곧장 포르토프랭스로 향했다.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아내의 손을 찾을 수 있었다. 소프는 직접 잔해를 거둬내고 아내를 구해냈다. 질리언은 약간의 부상을 입긴 했지만 무사한 상태이며 남편과 함께 도미니카 공화국에 도착했다. 이들은 곧 미국으로 귀국할 예정이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에 사는 조안 프루돔과 남편 스티브는 지진 소식을 듣자마자 아이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딸 줄리가 살아있는지 걱정으로 가슴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몇 시간 후 짤막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휴대전화에는 “나는 무사해요(I‘m OK)”라고 써 있었다. 조안은 아이티에서 들려오는 단 한 문장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라며 “줄리가 보내준 한 문장은 모든 것을 말해줬다.”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아이티 강진 참사]주민들 “구호품 언제 오나” 발동동

    아이티가 최악의 지진 참사로 행정 기능이 마비되면서 극심한 ‘카오스’(혼돈)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이미 집단 매장지에 7000명의 시신을 묻었다.”는 말만 했을 뿐 이렇다 할 계획도 내놓지 못했다. 아이티 정부는 구호작업은 고사하고 피해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수도 포르토프랭스 시내 중앙광장인 ‘샹 드 마스’는 집을 잃고 몰려든 시민들로 거대한 난민 수용소가 돼 버렸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행정 마비… 구호 작업도 혼란 시민들은 마실 물이 없어 고통받고 있다. 언제 비상식량과 의약품이 도착할지 기약이 없는 상태다. 포르토프랭스는 거대한 시체 안치소로 변해가고 있다. 장 리오넬 발렌틴(여)은 “사촌의 시신을 찾았지만 시신을 옮기는 걸 도와줄 사람도 없고 택시도 엄청난 웃돈을 요구해 그냥 시신 더미에 내버려 뒀다.”며 울먹였다. 구호품이 피해 주민들에게 언제 전달될지는 요원하기만 하다. 항구가 파괴돼 선박 물품 운송이 불가능하다. 교통과 통신망도 끊긴 데다 유엔평화유지군까지 심각한 타격을 입어 물자를 수송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항은 구조요원들을 실은 비행기들이 밀려들고 있어 혼잡을 빚고 있다고 AP통신이 밝혔다. 엘리자베스 비르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 대변인은 “수송여건은 악몽”이라고 전했다. 아이티에서 활동하는 국제 구호단체와 자선단체들도 큰 피해를 입어 임무 수행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아이티 가톨릭교회 주교가 사망했으며, 유엔 직원 36명이 죽고 수백명이 실종되거나 무너진 유엔본부 건물에 매몰됐다. 선교사와 학생, 의사 중에도 실종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 자선단체 ‘푸드 포 더 푸어’의 듀큰 오거스틴 신부는 “우리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피해와 고통, 기아와 절망과 싸워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기다리다 못해 주민들은 곡괭이나 삽을 들고 직접 부상자 구조에 나서고 있다. 무너진 아파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장 말레스타(19·여)는 “누가 지금 우리를 도와주나. 아무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재소자 4000명 교도소 이탈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간신히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생지옥’을 방불케 하고 있다. 구호작업 지연에 불만을 품은 일부 시민이 항의의 뜻으로 시내 몇 곳에 사망자의 시신으로 벽을 쌓아 길을 막는 참혹한 풍경이 발견됐다. 미 CBS방송은 궁지에 내몰린 시민들이 흉기를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약탈까지 서슴지 않는 상황이지만 이들을 막아야 할 경찰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제사회는 절망적인 상황이 폭동으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우려한다. 지진으로 교도소 건물이 무너져 재소자 4000여명이 교도소를 이탈했다는 소식이 이런 우려를 더한다. AP통신에 따르면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창고가 약탈당했다. 이 창고에 비축해 뒀던 식량 1만 5000t 가운데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미군이 아이티에서 당분간 치안을 맡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브라이언 휘트먼 미 국방부 대변인은 “상당수 병력이 아이티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유엔은 그동안 약 20개 국가와 국제기구, 기업 등이 약속한 각종 구호기금이 2억 6850만달러(약 2950억원)에 달한다고 15일 밝혔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부고] 4代 걸쳐 한국사랑… 린튼 목사 별세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한국에서 4대에 걸쳐 선교와 봉사활동을 해온 미국의 유명한 선교사 집안의 드와이트 린튼(한국명 인도아) 목사가 11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별세했다. 82세. 린튼 목사는 이날밤 애틀랜타 인근 게인즈빌에 있는 한 교회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한 뒤 승용차편으로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유족들은 밝혔다. 린튼 목사는 구한말 근대 교육과 의료사역을 펼쳤던 유진 벨 선교사의 외손자로, 한국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선교와 봉사활동을 하다 은퇴한 뒤 게인즈빌에 머물러왔다. 한국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뒤 1952년 한국으로 돌아온 린튼 목사는 25년간 한국에 머물며 의료봉사활동에 전념했다. 1973~1978년에는 호남신학대 학장을 지냈다. 린튼 목사는 린튼 가문이 지난 1995년 북한주민을 돕기 위해 설립한 인도주의단체 ‘조선의 기독교 친구들(CFK)’을 설립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북한에 의약품과 식량, 농기계, 비상구호품, 우물개발기술 전수 등 인도적 지원활동을 펼쳐왔다. 린튼 목사의 외조부인 유진 벨 선교사는 지난 1895년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온 뒤 나주와 목포, 광주 등 전라도 지방에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우고 봉사활동을 했다. 유진 벨 선교사의 사위인 윌리엄 린튼(한국명 인돈) 목사는 장인의 유지를 받들어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고 1959년 대전 한남대를 설립했다. 윌리엄 린튼 목사의 막내 아들이 이번에 별세한 드와이트 목사다. 고인의 형인 휴 목사도 한국에서 선교 및 봉사활동을 해오다 교통사고로 숨져 전남 순천에 안장됐다. 부인인 베티(한국명 인애자) 여사도 순천에서 결핵재활원을 운영하며 30년이상 결핵퇴치사업에 앞장선 공로로 국민훈장과 호암상을 받았으며 현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랙마운틴에 머물고 있다. 휴 목사의 장남과 차남이 1994년 유진벨재단을 세워 대북 의료지원 사업을 하는 스티브 린튼(한국명 인세반)과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존 린튼(한국명 인요한) 박사이다. kmkim@seoul.co.kr
  • 400년전 중국어로 제작된 최초 세계지도 공개

    미주 대륙을 표기해 중국어로 제작된 최초의 세계지도가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지도에는 미국은 물론 또다른 북미국가 캐나다와 중미 과테말라, 남미 칠레 등이 표시돼 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의회도서관에서 공개된 화제의 지도는 1600년대 초 제작된 것. 지도를 제작한 사람은 당시 최초로 중국에 건너간 서양인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선교사 마테오 리치다. 서양의 학문을 중국에 전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는 1602년 중국 명(明)의 제14대 황제인 만력제의 지시에 따라 지도를 만들었다. 지도에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표기돼 있다. 세계 각 지역에 대해서는 그림과 설명이 달려 있다.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과 긴 강이 있는 대륙으로 표시됐고, 북미는 등에 혹이 달린 소와 야생마가 서식하는 곳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캐나다는 ‘카나타’, 과테말라는 ‘와티말라’, 칠레는 ‘칠리’로 표기돼 있다. 지도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에 대한 짧막한 설명도 포함하고 있다. 리치는 “과거에는 북미와 남미, 마젤라니카와 같은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며 “그렇지만 100년 전 유럽 사람들이 배를 타고 여러 해안에 도착하면서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894년 서울, 애국심 있지만 뇌물 횡행… 지금은 어떨까

    거울을 본다. 거짓말 못 하는 거울은 도무지 생경한 모습의 인물 하나를 비춰 낸다. 제 눈으로 보기엔 낯설고 인정하기 싫을지 몰라도, 거울에 비친 인물 또한 엄연한 자기 자신이다. 남들이 바라보는 스스로의 모습, 그게 바로 거울 속의 인물이다. 외국인들이 보는 우리나라는 우리가 보았던 것과 얼마나 다를까. 우리 스스로의 모습은 또 어떻게 비춰졌을까. 1880년대 말 한국과 한국 사회를 바라본 외국인들의 시선을 담은 책이 나왔다. ‘서양인 교사 윌리엄 길모어, 서울을 걷다 1894’(윌리엄 길모어 지음, 이복기 옮김, 살림 펴냄)다. ‘그들이 본 우리’ 시리즈의 12번째 책.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지은이는 1886∼1889년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립교육기관인 육영공원에서 교사를 지낼 당시 한국에서 보고 들은 것을 행정·관습·언어·놀이 등의 14가지 주제로 나눠 정리했다. 꼼꼼하고 정확한 내용 덕에 이 책은 당시 한국을 찾은 서양인들에게 최단시간에 한국을 파악할 수 있는 안내서 역할을 했다. ‘예상했던 대로’ 책은 오늘날 우리도 쉽게 상상하지 못할 만큼 색다른 당시 한국을 담아낸다. “한국인의 지위는 담뱃대의 길이로 대강 분별이 가능하다는 한 여행객의 말은 옳다. 관리는 담뱃대 통에 손이 닿지 않아서 성냥으로 불을 붙이지 못한다. 그래서 지위가 높은 사람은 하인을 시켜 담뱃대를 채우고 불을 붙인다.”거나 “이 시기 서울에서는 가까운 두 친구가 말을 타고 거리를 지나면서 마주쳐도 말을 걸지 않고 서로를 아는 체하지 않았다.”는 등 우리도 미처 몰랐던 당시 실생활의 세밀한 부분까지 묘사하고 있다. 때론 ‘불편한 진실’과도 조우한다. “사람들은 멍청해 보이고, 재미가 없으며, 입을 헤벌린 채로 낯선 광경을 바라보고, 때때로 타고난 생각마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며 한국인을 혹평하기도 하고 “정부 운영에 참여할 학자를 선발하는 시험이 시행되지만, 이런 학자들은 대개 관리의 자녀들 중에서 나온다. 뇌물을 받은 시험관들은 뇌물 공여자의 답안지를 쉽게 찾아서 자랑스럽게 왕에게 보임으로써 높은 점수를 받게 만든다.”며 투명하지 못한 사회를 질타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정확하고 균형된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사람들은 서양인을 보면 길을 양보하며 자신의 나라에 온 손님에게 예의를 표하고, 낮에는 경찰을 보지 못할 정도로 질서정연한 성품을 갖췄다고 서양인 교사는 전한다. 아울러 “한국인은 스위스에 뒤지지 않는 애국심을 가진 민족”이라며 칭찬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또 “한국인은 게으르고 생기가 떨어진다.”고 전제한 뒤 “한국인들의 게으름은 본성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의 노고의 열매를 생존에 필수적인 최소치만을 빼놓고는 만족을 모르는 부패한 관리들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고, 자신들은 그들에게 대항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원인을 정확히 보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만 2000원. 시리즈 13번째 ‘미국인 교육가 엘라수 와그너가 본 한국의 어제와 오늘 1904∼1930’도 함께 나왔다. 1904년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30년 가까이 살았던 와그너가 30년간 지켜본 한국의 모습을 담았다. 1만 4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원대성 목사 별세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농촌계몽운동을 벌인 애국지사 원대성 선생이 6일 별세했다. 94세. 전남 나주에서 출생한 선생은 1933년 2월 전남 순천중 시절 농촌계몽활동과 항일의식 고취활동을 주도하다 일본경찰의 수배를 받자 학업을 중단하고 평양으로 갔다. 1934년 5월 미국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평양고등성경학교에 입학해 평양지역 학생연합운동에 참여했다. 1936년 3월 일본경찰의 사찰강화로 이 학교를 2년 만에 중퇴했다. 이후 평양지역에서 도시 빈민 및 농촌계몽 운동을 전개하고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펼쳤다. 광복 후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04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전봉대씨와 2남2녀. 발인 9일 오전 10시. 빈소 미국(애틀랜타) 1-678-714-8952.
  • [부고]

    ●이영숙(부산시의회 의원)씨 부친상 29일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발인 31일 오전 9시 (02)440-8912 ●김종우(부산도시공사 대외협력실장)씨 장모상 30일 부산 영락공원장례식장, 발인 1월1일 오전 7시30분 011-583-0777 ●오제민(온누리덴탈 대표)제연(신한생명 인사부장)씨 모친상 30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1월1일 오후 2시30분 (02)2227-7547 ●박동완(계명대 교수)승훈(전 경남신문 정치부 차장)성희(경기 용인 현암고 교사)씨 부친상 30일 진주 경상대병원, 발인 1월1일 오전 9시 (055)750-8653 ●최만희(프로축구 수원 삼성 코치)씨 장인상 30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월1일 (031)2072-2010 ●박광규(광주대 건축학과 교수)씨 별세 30일 화순 전남대병원, 발인 1월1일 오전 9시30분 (061)379-7434 ●황규섭(용인시 홍보협력담당)씨 장모상 29일 용인 다보스병원, 발인 31일 오전 9시 (031)8021-2181 ●한진해(전 대성목재 사장)씨 별세 종훈(전 한국휴렛팩커드 서비스총괄 부사장)종헌(신한은행 본부장)씨 부친상 3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월1일 오전 9시30분 (02)3010-2294 ●양병희(한국장로교총연합회 상임회장·영안장로교회 당회장)씨 부친상 3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월1일 오전 8시 (02)3010-2231 ●김규원(경인방송 보도국장)씨 모친상 30일 안양샘병원, 발인 1월1일 오전 8시 (031)467-9772 ●김영수(코오롱건설 상근고문)씨 모친상 이주용(전 한양대 교수)이하범(한림대 강동성심병원 안과 교수)우근영(선교사)씨 장모상 3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월2일 오전 8시 (02)3410-6906
  • 남태평양 원주민, ‘식인’ 당한 후손에 사과

    남태평양 원주민, ‘식인’ 당한 후손에 사과

    “고조부를 ‘먹은’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식인 풍습이 있던 남태평양 원주민들이 170년 전 해친 영국 선교사의 후손들에게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했다. 원주민들의 사과를 받은 사람은 현재 영국 햄프셔주에 사는 찰스 밀너 윌리암스(65). 남태평양 군도에서 활동해 ‘태평양의 사도’로 알려진 선교사 존 윌리암스의 고손자(高孫子)다. 존 윌리암스 선교사는 1839년, 동료인 제임스 해리스와 에로망고섬에 갔다가 살해됐다. 앞서 상륙한 다른 배의 선원들이 섬주민들을 해친 것에 보복을 당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식인 풍습이 있던 당시 에로망고섬 원주민들은 후에 찾은 영국 해군에게 “그들을 모두 먹었다.”고 밝혔다. 존 윌리암스 선교사의 순교 170주년을 기념해 그의 후손들을 만난 원주민들은 손을 잡기도 전에 머리를 숙이며 과거 일을 사과했다. 밀너 윌리암스와 그의 가족들 17명 역시 그들을 일으켜 세우며 용서의 뜻을 보였다. 현재 에로망고섬이 속한 바누아투공화국의 롤루 아빌 대통령은 “에로몽고섬 주민들에겐 꼭 필요했던 자리”라고 현장을 보도한 B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에로몽고섬 사람들을 ‘선교사를 죽인 집단’으로 봐왔다.”며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바누아투 국회의원이자 인류학자인 랄프 레젠바누는 “미안하다는 말은 교류의 시작일 뿐”이라며 “상호 교류를 통해 화해의 움직임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사진=BBC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토요 포커스] 외국인 며느리 가족 한국나들이

    [토요 포커스] 외국인 며느리 가족 한국나들이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제주도 노총각은 현지 처녀에게 한눈에 반했다. 대륙의 딸답게 푸근한 눈매에 이웃집 맏며느리 같은 품이 썩 마음에 들었다. 처녀 역시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에게 왠지 모를 정이 갔다. 14살이란 나이차는 문제 되지 않았다. 둘은 선본 지 이주일 만에 결혼했다. 2005년 2월. 그러나 낯선 이국 땅에서의 결혼생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음식도 설고 한국어는 배워도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꿈에선 고향마을이 보였다. 임신하고 입덧이 시작되자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남편은 서울 동대문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에서 현지 요리를 주문해 줬다. 첫 아이가 태어나자 그제서야 조금씩 생활이 자리 잡아 갔다. 제주도 노총각이었던 강용석(47)씨는 “영화 ‘나의 결혼원정기’가 바로 제 얘기나 다름없다.”고 아내 판올가(33)씨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러나 아내가 이역만리인 친정 나들이를 엄두도 낼 수 없다는 게 못내 미안했다. 그런 이들 부부가 3일 서울에서 처가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타슈켄트에서 결혼식 후 거의 5년 만에 처음이다. 행안부와 새마을운동중앙회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짐에 따라 2007년부터 결혼여성이민자 가족초청 행사를 시작했다. 올해는 몽골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출신 결혼이민자 37가족 70명을 6박7일 일정으로 초청했다. 강씨 가족도 포함됐다. 앞서 6월 말에는 베트남, 태국, 필리핀에서 여성이민자 친정가족 78명이 한국땅을 밟기도 했다. ●청동거울·청동북 보며 한겨레 확인 친정가족들은 지난 2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올가씨는 어머니 문루드밀라(64)씨와 아버지 판알렉세이(66)씨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내자 울음을 터뜨렸다. 가족들은 서로 얼싸안고 “꿈만 같다.”는 말만 반복했다. 다음날 오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강씨 부부는 고려인인 장인·장모와 함께 박물관을 둘러봤다. 러시아어 가이드가 유물을 안내하며 통역을 맡았다. 판알렉세이씨는 전시품들에 큰 관심을 보였다. 사위에게 “청동거울, 청동북은 우즈베키스탄에도 있다.”면서 신기해했다. “고려인 2세로 태어나 한국땅 한번 밟아 보지 않았지만 내 고향처럼 따뜻한 느낌”이라고 했다. “큰딸을 아버지의 나라에 시집보내 안심이 된다.”면서 “조선인, 반갑습니다.”라고 한국말로 힘주어 말했다. 올가씨는 친정엄마 손을 잡고 줄곧 싱글벙글했다. “타슈켄트에 있는 두 여동생, 큰아들(3)과 동갑인 조카딸도 왔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다.”며 아쉬운 기색도 보였다. “제주시 이주여성센터에서 한글교육을 받아 지난해부터 1주일에 한 번씩 초·중·고교에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문화도 가르친다.”고 어머니에게 자랑도 했다. 친정엄마는 “어서 행사가 끝나고 제주도 사위 집을 방문해 딸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보고 싶다.”고 잔뜩 기대했다. 그러면서 “지난달에 무릎 수술하신 시어머니는 좀 어떠시냐.”고 안부를 물었다. 몽골에서 9년 전 이주한 오윤아(37)씨는 대전광역시 인근 이주여성들 사이에선 대모로 통한다.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에서 몽골 출신 여성들에게 모국어로 가정폭력, 성폭력 상담을 해주고 있다. 전문 상담과정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친정에선 넷째 남동생이 친정어머니 지그자브 트센드써렌(62)씨를 모시고 왔다. 이날 저녁 서울 이태원 캐피탈호텔 만찬장에서 어머니와 남동생은 몽골 전통복장 델(deel) 차림이었다. 오씨를 배려한 세심한 손길이었다. 오씨는 “아버님이 안 계시고 동생들도 출가해 어머니가 혼자 지내신다.”면서 “더 나이 드시기 전에 딸이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말하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오씨는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현재의 남편 하모(40·회사원)씨를 만났다. 가족들의 반대는 대단했다. 몽골국립대 의대를 졸업한 재원인데다 6남매 중 맏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한국에서 결혼식을 치른 뒤에야 몽골에 소식을 알렸다. 친정엄마는 딸의 선택을 이해했지만 넷째 남동생의 화는 식을 줄 몰랐다. 그러나 3년 만에 만난 남동생은 “이제 누이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남매는 슬며시 손을 잡았다. ●외국인 며느리들 “출산때 친정엄마 그리워” 외국인 며느리로 한국에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결혼 9년차에 매사 적극적인 오씨도 “간혹 한국인들의 무시하는 눈길에 서운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특히 친정 개념이 애틋한 같은 아시아권 출신으로 상담자 역할을 할 친정엄마의 ‘부재’는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한다. 오씨나 올가씨 모두 “첫 출산 때 친정엄마가 옆에 안 계셔서 힘들었다.”고 했다. 문화·언어적인 차이도 극복요소다. “몽골 사람들은 아주 낙천적이에요. 반면 남편은 언제나 앞일 걱정을 해서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어리둥절해할 때가 많아요.”라고 오씨는 전했다. 올가씨도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고춧가루는 먹지만 아직도 단 음식은 입에 맞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결혼 초기 의사소통이 안 돼 부부싸움조차 할 수 없을 때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말 한마디 안 했다. 다행히 같은 처지의 이주여성 모임은 큰 힘이 된다. 두 사람 모두 한 달에 한 번씩 인근 이주여성들과 친목 교류를 한다. 오씨는 이주여성 당사자이자 상담원으로서 이렇게 권한다고 한다. “먼저 집주소부터 외워둘 것, 한국어를 빨리 익혀 남편, 시어머니와 대화를 늘릴 것, 고부갈등·가정폭력이 심해질 땐 이주여성센터에 지체없이 도움을 구할 것” 이와 관련해 행사를 주관한 행안부는 “다양한 각국 문화를 수용해 결혼이민자들이 편히 살 수 있는 선진행정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전했다. 글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메이킨씨 인돈문화상 시상

    ●한남대 2일 대학교회에서 제15회 한남인돈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메리 수 메이킨(60)에 대한 시상식을 가졌다. 메이킨은 독신으로 평생 아프리카 여성의 질병 퇴치를 위해 봉사해온 미국 선교사이다. 한국인이나 내한 선교사였던 역대 수상자와 달리 외국에서 활동한 사람이 이 상을 받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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