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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마찰 타결 ‘형님외교’ 눈길…코란 인용하며 카다피 설득

    외교마찰 타결 ‘형님외교’ 눈길…코란 인용하며 카다피 설득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를 만나 양국 간 외교마찰을 정상화하고 지난 2일 귀국함에 따라 또다시 ‘형님 외교’가 주목받고 있다. 이 의원은 이 전에도 중남미 자원외교와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한·일 강제병합 사과 담화문 도출 등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대통령의 형이라는 사실 자체가 상대국에 무게감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지만 이 의원의 개인적 노력도 성과를 끌어내는 요인이라는 평가가 외교통상부에서 나온다. 3일 외교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의원은 특사로서 상대국 정상을 만나기 전에 그 정상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우리 외교부 당국자들에게 요구한다고 한다. 관심사는 뭔지, 취미는 뭔지 등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화제를 미리 준비해서 마음을 사로잡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이번 리비아와의 협상에서도 이 의원은 리비아가 이슬람 국가라는 점에 착안, “코란에는 ‘용서가 무엇보다 가치 있는 행위’라고 쓰여있는데 용서를 해 달라.”고 호소했다. 권위주의를 버리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도 상대방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는 평가다. 이 의원은 지난 7월 초 1차로 리비아에 갔을 때 링거 맞은 팔을 보여 주며 “아픈 몸을 끌고 여기까지 왔다.”고 호소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 의원은 기업인 출신이라 그런지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계약을 수주하듯 치밀한 계획을 세워 접근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또 특사로 외국을 방문할 때 현지 한국인들로부터 밥을 얻어먹지 않고 본인이 밥값을 지불하며, 통역 등 지원요원들에게 소정의 수고비를 건네는 등 인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전했다. 한편 리비아는 구금했던 한국인 선교사 구모씨와 농장주 전모씨를 관계 정상화 합의 후 이틀 만인 지난 2일(현지시간) 조건없이 석방했다. 앞서 이 의원은 카다피 원수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 국가정보원 요원의 잘못을 인정하고 장동희 주 리비아대사 소환(경질) 등 담당자 문책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韓·리비아 관계 정상화 ‘형님 외교’ 결국 통했다

    韓·리비아 관계 정상화 ‘형님 외교’ 결국 통했다

    한국과 리비아가 넉 달 만에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외교통상부가 1일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은 지난달 30일 오후(현지시간) 리비아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를 만나 불미스러웠던 한국 외교관 추방사건을 종결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 6월 영사 업무를 중단하고 철수, 현재 중국 베이징에 체류 중인 주한 리비아 대표부 외교관들이 조만간 서울로 돌아와 비자 발급 업무를 재개할 전망이다. <서울신문 9월15일자 1면> 자신의 고향인 리비아의 시르테 시에서 이 의원의 예방을 받은 카다피 원수는 주한 리비아 대표부의 업무 중단 및 리비아 국내법 위반 혐의로 구금 중인 한국인 2명에 대한 석방 문제가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안에 해결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구금돼 있는 한국인 선교사 구모씨와 농장주 전모씨는 추방 형식으로 석방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리비아가 대수로 사업 등의 분야에서 한국 기업과 함께 사업을 추진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앞으로도 한국 기업이 리비아 내에서 불편 없이 사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카다피 원수 예방에 이어 리비아측 요청으로 알 마흐무디 총리를 면담한 뒤 귀국 길에 올랐다. 이 의원 측은 “1시간 동안 카다피 원수를 만났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자는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동안 양국 정보기관 사이에 꾸준한 협의가 있긴 했지만 이 의원의 역할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 의원이 지난 7월 초 중남미 자원외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아픈 몸을 이끌고 대통령 특사로 리비아로 건너가 리비아 측을 설득했을 때 사실상 관계 정상화의 결정적인 물꼬가 터졌다.”면서 “리비아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형이 몸을 낮추고 간곡하게 호소하자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고 했다. 이 의원이 7월 초 리비아 방문했을 때 비록 카다피 원수는 만나지 못했지만 리비아 총리를 무려 세 차례나 만나 설득을 하는 등 ‘정성’을 보인 일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한편 카다피 원수와 이 의원의 면담 성사에는 국내 건설업체의 노력도 한몫했다. 외교문제가 발생했던 초기 리비아에서 사업을 벌였던 대우건설과 포스코건설 등이 중간에서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한 막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리비아에서 100억달러가 넘는 공사를 수주한 대우건설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이상득 리비아 출국…외교마찰 봉합할까

    이상득 리비아 출국…외교마찰 봉합할까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와 만나 외교 마찰을 봉합할까. 이상득 의원이 27일 외교 마찰을 빚고 있는 리비아를 방문하기 위해 출국했다. 지난 7월 ‘스파이’ 혐의를 받은 국가정보원 직원이 추방되면서 표면화된 리비아와의 외교마찰을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문한 이후 2개월여 만이다. 이번 방문은 리비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초청 형식이지만 최근 외교 마찰의 종지부를 찍기 위한 외교 활동 측면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주목된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29일 리비아 현지에서 진행될 대우트리폴리호텔 준공식에 참석해달라는 대우건설의 초청을 받고 출국했다.”면서 “리비아에서 100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주하고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일각에서 거론된 ‘대통령 특사설’과 관련,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리비아를 방문하는 것은 아니고, 대통령 친서를 전달할 계획도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외교 소식통들은 “이 의원의 방문은 종교법 위반 혐의로 각각 지난 6월과 7월 리비아 보안 당국에 체포돼 구금 중인 한국인 선교사 구모씨와 농장주 전모씨의 석방 문제, 주한 리비아경제협력대표부 복원 문제 등을 논의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대우트리폴리호텔 준공식은 리비아 정부 고위 관계자가 대거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여서, 이 의원과 리비아 정부 고위 관계자가 자연스럽게 접촉하는 형식으로 면담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한·리비아 양국 간 실무조율 결과를 토대로 카다피 원수와의 면담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이 리비아 현지 일정과 귀국 일정을 특정하지 않고 출국한 사실도 이 같은 관측을 방증한다. 이 의원 측은 “국정원 직원의 정보활동으로 불거진 외교 마찰 문제로 출국했던 때처럼 리비아 정부 관계자와의 면담일정을 잡고 출국한 것은 아니다.”면서 “현지 사정에 따라 리비아 정부 측과 접촉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이 의원이 대우호텔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계기를 활용하는 것 같다.”고 말해 외교적 활동 가능성을 내비쳤다. 한편 지난 6월 외교마찰 문제로 본국으로 휴가를 떠난 주한 리비아경제협력대표부 직원들은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상연·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부고]

    ●이진행(바른이치과의원 원장)성님(약사)승하(〃)은경(〃)은하(교사)씨 모친상 양행승(세운약국 약사)최동천(사업)손인옥(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김진엽(남서울영상의학과의원 원장)김성근(김성근내과의원 〃)김용석(한국가정의원 〃)김용주(광양피부과의원 〃)씨 장모상 3일 광주 천지장례식장 발인 5일 오전 9시 (062)670-0020 ●박광섭(사업)원섭(대우인터내셔널 두바이지사장)진(분당 박진치과의원 원장)씨 모친상 이방환(팔방물산 대표)김형석(전 연합뉴스 논설위원)김홍진(양양한의원 원장)씨 장모상 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5일 오전 8시30분 (02)3410-6901 ●류동희(연합뉴스 국제뉴스부 기자·전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씨 모친상 2일 충남대병원, 발인 5일 오전 6시30분 (042)257-1704 ●문성옥(곡성 삼화관광농원)정애(곡성 보건의료원)씨 모친상 김회필(전남도의회 홍보담당)씨 장모상 3일 전남 곡성 옥과장례식장, 발인 5일 오전 9시 (061)362-4448 ●추형엽(전 경향신문 기획위원)씨 별세 영준(세계일보 문화부장)승호(재무설계사)씨 부친상 박병권(목사)이형국(선교사)김영백(자영업)씨 장인상 3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6일 오전 6시 (02)2227-7569 ●원용관(창원MBC 보도제작국 부국장)씨 부친상 3일 삼성창원병원, 발인 5일 오전 7시 (055)290-5646 ●김영회(동산전자부품 대표이사)씨 모친상 3일 부천 대성병원, 발인 5일 오전 7시 (032)666-1002
  • 서울시 ODA 세계로 뛴다

    서울시 ODA 세계로 뛴다

    서울시가 아프리카 빈국 에티오피아에 모기장 1만장을 연말까지 보내기로 하면서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가 눈길을 끌고 있다. 10만달러, 우리 돈으로 1억 1380만원어치이다. 적은 액수도 아니거니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난민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다. 모기가 전염시키는 말라리아로 아프리카에서는 30초당 1명, 하루 3000여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모기장 한 장은 한국의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고 각종 협력사업을 이끌어 내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한국이 펼친 ODA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베풂을 받던 나라에서 벗어난 지 오래지 않아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국가 간 경쟁은 곧 도시 간 경쟁이라는 대세 속에서도 세계적인 도시로 뻗어나간 수도 서울의 ODA 역사도 짧다. 그러나 한층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서울시 ODA는 2000년대 이후 활기를 띠었다. 31일 현재까지 주요 사업에 들인 돈을 따지면 최근 아이티 지진피해 구호사업을 합쳐 110억원 남짓이다. 주로 베트남과 미얀마, 몽골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 치중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각종 프로젝트를 지원하거나 기술협력, 긴급 재난구호 활동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베트남 하노이 혼강 개발기본계획 협력 등 지역개발 원조 44억 8200만원, 공무원·청소년 등 인력 초청연수 51억 3100만원, 지진피해 구조 5억 2400만원, 도시정비 등 문화원조 3억 7600만원이다. ODA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서울시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단계로 대외협력기금 184억원을 조성했다. 서울시 ODA와 관련해 널리 알려진 사례로는 인도네시아 소수종족인 찌아찌아족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류가 손꼽힌다. 공식 문자가 없던 이들에게 한글을 사용하도록 도왔다. 서울시 경쟁력강화본부 김진만 국제협력담당관은 “향후 30~50년을 내다보며 성장 및 경제 잠재력, 보유자원, 한국에 대한 지지 가능성, 인종·문화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지원 대상 국가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해외봉사 다녀온 대학생 박지연씨 “가난하지만 순수한 라오스 동생 눈에 밟혀” “너무너무 가난하지만 때묻지 않은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혀요. 그래서 올해가 다가기 전에 또 라오스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어요. 리번(11)을 꼭 만나고 싶어요. 빨간 하트를 그린 예쁜 편지에다 선물까지 받았는데 평생 간직할래요.” 동남아시아 빈국 라오스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박지연(20·성신여대 식품영양학과 2년)씨는 31일 서울시 ‘해외 동행(동생 행복 도우미) 프로그램’에 참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현지 선교사의 손을 빌려 보낸 10여통의 편지엔 ‘리번 ♥ 지연’ ‘전 날마다 누나를 생각해요(I think about you everyday).’라는 글이 또박또박 적혔다. 박씨는 “고교 때부터 다른 나라 사람들을 도우려던 꿈을 이뤘다.”며 웃었다. 박씨를 포함한 자원봉사대 60명은 지금도 ‘라해봉’(라오스 해외봉사)으로 부른다. 새해 맞이로 전국이 떠들썩하던 지난 1월13일 라오스 치앙라이로 떠났다. 처음 활동한 곳은 북부 버캐오 주(州) 후아이스아이. 박씨는 “반후와이옹 초등학교 아이들과 어울렸는데 모험 놀이터를 만들어 주는 작업을 했다.”고 귀띔했다. 대나무를 잘라 얼기설기 얽고 밧줄로 묶어 그네처럼 흔들거나 철봉처럼 매달려 놀도록 만들었다. 처음엔 눈길도 주지 않던 리번은 그제서야 믿음이 갔는지 고구마 같은 먹을거리와 마실 물도 떠다 주며 웃음을 지었다. 놀이터를 만들며 “과연 날마다 나무를 타고 노는 아이들이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는데 기우였다. 그만큼 환경이 열악하다는 점을 단숨에 일깨웠다. 그는 ‘라오스로 다시 오세요.’라고 서툰 한글로 쓴 편지를 짚은 채 “연말 동남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마지막 날 새벽 작별인사를 하려고 몰려들었던 아이들을 만나려고 코스까지 바꿨다.”며 웃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석사과정 지원받은 태국 임퐁씨 “방콕 수상가옥에 한강르네상스 벤치마킹” “30년 전에는 서울과 방콕이 큰 차이가 없었는데, 이젠 서울이 눈부신 성장을 해서 놀라워요. 이렇게 빨리 발전한 원동력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어요.” 서울시 ODA 사업의 하나로 초청받아 도시행정 석사학위 과정을 마친 태국 방콕시청 도시개발부 직원 스콘다 임퐁(30)은 지난 18일 이렇게 말했다.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와 관련한 논문으로 학위를 제출한 그는 이날 수료식을 가졌다. 임퐁은 “방콕 도심을 흐르는 차오프라야 강 마스터플랜의 경우 수상가옥이 즐비해 관광 명물로 유명하지만 계획이나 추진력·실행능력은 한국을 못 따라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방글라데시 공무원인 모하메드 자베드 이크발 초두리(36)는 “항공료를 비롯해 기숙사비, 학비까지 모두 무료로 지원하는 ODA 사업을 펼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파일을 다운받거나 전송할 때의 속도만 봐도 한국이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점을 실감한다.”면서 “한국 정부가 방글라데시의 전자정부 구축을 지원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출신 루싱한(30)은 “심층적인 이론들을 배워 업무를 수행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의 변신은 아주 놀라웠다.”고 말했다. 2기 교육생 18명은 “청계천 프로젝트와 대중교통체계, 한강 르네상스 등을 벤치마킹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학생들은 한국의 교통 시스템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지하철의 경우 여러 노선이 이어져 원하는 목적지를 편하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자매·우호도시의 인적자원 개발 지원을 통한 지한·친한 인사를 확대하기 위해 스리랑카·벨라루스·탄자니아 등 31개국 공무원들을 초대해 석사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3기 20명이 ‘열공’ 중이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아시아 복음화, 길을 찾는다

    아시아 복음화, 길을 찾는다

    아시아 20여개 나라 가톨릭 평신도 대표 400여명이 서울에 모였다. ‘오늘날 아시아에서 예수 그리스도님을 선포하기’를 주제로 1일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에서 봉헌되는 개막 미사를 시작으로 5일까지 열리는 아시아 가톨릭평신도대회에는 대회장이자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의장인 스타니스와프 리우코 추기경을 비롯해 아시아 주교회의연합(FABC) 의장 티로나 로날도 주교, 인도네시아 주교회의 의장 시투모랑 주교 등 고위 성직자와 아시아 각국 평신도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한다.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열렸던 대륙별 주교대의원회의 이후 아시아 대륙에서는 서울에서 첫 대회를 개최하게 됐다. 대회는 ‘아시아 교회의 선교 사명 수행’ 발표를 시작으로 ▲예수 그리스도, 아시아를 위한 선물 ▲평신도 그리스도인을 중심으로 본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 등 7가지 주제발표와 패널토론, 마테오 리치 신부 전시회와 영화상영, 절두산 순교성지 순례 등으로 이뤄진다. 유영훈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사무국장은 “올해 대회는 선교사 없이 평신도의 힘으로 교회를 세우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이룬 한국 교회의 역동성과 저력을 국제적으로 확인시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서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꿋꿋이 복음을 증거한 한국 신앙선조의 순교정신을 되새기며 아시아 복음화 미래를 조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복음화율’(인구대비 신자비율)이 10%를 넘어선 우리나라와 달리 아시아 대륙은 필리핀을 제외하면 평균 복음화율이 1%에 머문다. 아시아 교회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종교 간 분쟁 등으로 인해 복음을 전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대회는 아시아 교회가 이런 현실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아시아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선포하고, 희망을 전할 수 있는가를 집중 논의하는 국제적 행사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필리핀 한인 보호에 적극 협조”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이 “한국 교민들의 활동이 필리핀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만큼 한인 보호에 각별한 관심과 적극적인 협조를 하겠다.”고 밝혔다고 외교통상부가 30일 전했다. 아키노 대통령은 지난 26~28일 필리핀을 공식 방문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만나 “경찰청장에게 한인 안전을 위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직접 지시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밝혔다. 필리핀에서 발생한 한인 살인사건은 최근 선교사 피살사건 등 올해만 12건이나 발생했다. 지난 2008년부터는 모두 25건으로, 이는 같은 기간 나머지 동남아 국가 내에서 발생한 전체 건수보다 많은 수치다. 이에 따라 유 장관은 아키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우리 여행객과 체류 한인들에 대한 강력사건이 빈발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필리핀 내 한인들의 안전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줄 것을 각별히 요청했다. 이에 대해 아키노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명하면서 향후 북한문제 등 한국 입장을 계속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한국인 조태환 선교사, 필리핀서 괴한 총에 피살

    필리핀에서 총을 든 괴한들이 한국인 선교사 1명을 살해하고 2명을 납치하려던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괴한들은 이날 수도 마닐라 동쪽 교외 지역에서 조태환 선교사와 동료들이 탄 차량을 막아선 뒤 조 선교사를 사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운전석에 앉아있던 조 선교사에게 권총 4발을 발사, 숨지게 한 뒤 김 모 목사 등 다른 두 명을 인질로 잡으려 하다가 일행 중 한명이 임산부라고 하자 풀어주고 달아났다. 교단 관계자에 따르면 강도들은 공항에서부터 따라왔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편 숨진 고 조태환 선교사는 생전 유니세프 등과 협력하는 등 필리핀 어린이를 위해 헌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 ▶ 윤은혜, 베이비복스 불화설 해명눈물 ‘뚝뚝’ ▶ ’만삭’ 고소영, 남편 장동건과 나들이 ‘단독포착’ ▶ ’사랑에 빠진’ 서우, 란제리 화보공개…’큐티 글래머’ ▶ 휘성, 직설적 작사 ‘결혼까지 생각했어’…주인공 누구? ▶ 김소향, 임혁필-김지혜 이어 공개 양악수술
  • 조선 근대화위한 고종의 노력과 좌절

    조선 근대화위한 고종의 노력과 좌절

    1910년 8월29일. 한일병합이 공포되고 결국 대한제국은 멸망한다. 사람들은 이 책임을 조선의 26대 왕 고종의 무능함에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고종은 조선에 입맛을 다시던 세계 열강과 친일파들의 감시 속에서 나라를 지켜내고자 고군분투했던 비운의 왕이었다. 16일부터 이틀간 오후 9시50분부터 방송되는 EBS 다큐프라임 ‘한일강제병합 100년 특별기획-잊혀진 나라 13년’은 우유부단하고 무능력하다고만 알려져 있던 고종이 조선을 근대국가로 도약시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과 좌절을 했으며 얼마만큼의 성과를 일궈냈는지 살핀다. 1부 ‘제국의 꿈’은 1903년에서 1906년 사이 여러 차례에 걸쳐 독일 은행에 입금되었던 ‘대한제국 국고예치금 100만마르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고종이 먼 외국은행에 그 많은 돈을 예금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899년 초가지붕 사이로 전차가 다니기 시작하고 호기심 많은 시민들은 전차 주위로 모여든다. 당시 종로를 달리던 전차는 도쿄보다 3년이나 빠른, 동양에서 두 번째로 부설된 승객용 전차였다. 고종은 근대적 국가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됐던 신분제도와 보수파의 사상을 타파하고자 의제 개혁과 관립학교를 설립하는 등 백성들의 의식계몽에도 힘을 쏟는다. 정동에는 각국의 공사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파란 눈의 선교사들에게 신식교육도 적극 허가한다. 고종의 자비로 만든 독립신문은 국민들의 자주정신을 일깨우게 되고 국민들은 만민공동회라는 토론의 장을 마련, 사회문제에 눈을 떠간다. 전신선과 전기를 가설하고, 철도를 부설하며 도시개조 사업을 전개하는 등 고종의 조선 근대화시키기 계획은 점점 무르익어 갔다. 아관파천 뒤 1897년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내세우고 ‘광무황제’로 즉위한다. 방송은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 대한제국 유물을 출품해 세계 여러 나라들에게 대한제국 알리기에도 적극 참여하는 고종의 모습을 전한다. 2부 ‘제국의 전쟁’은 열강에 대한 고종의 치열한 투쟁을 전한다. 세계 열강들 속에서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고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외교활동과 자주독립국가 국민의식이 중요했다. 고종은 관립외국어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재들을 근황세력으로 끌어들여 각국에 파견한다. 방송은 고종의 기밀문서를 가지고 비밀스럽게 움직이던 근황세력들과 그 뒤를 쫓던 일본 스파이의 모습을 전한다. 근황세력은 고종의 강제 폐위 뒤에 해외 독립운동에 나선다. 스티븐슨 사건,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까지 모두 배후에 고종이 있다는 근거 자료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한다. 해외 의병활동에 군자금을 보태고, 끊임없이 세계 열강에 밀사를 보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고종. 방송은 고종이 조선의 끝이 아닌, 항일 투쟁의 시작으로서 그의 업적을 조명한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태평양 비극의 씨앗 심은 루스벨트 항해

    태평양 비극의 씨앗 심은 루스벨트 항해

    고종 “우리는 미국을 형님과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오.” 1882년 고종은 첫 서방 수교국으로 미국을 선택했다. 그는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의 운명을 구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 국무부에 이 같은 말을 여러 차례 직접 건넸다. 1905년 9월19일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딸인 앨리스가 ‘임페리얼 크루즈’의 일원으로 서울을 찾았을 때도 황제 전용 열차, 황실 가마를 제공하는 등 깍듯하게 국빈의 예우를 다했다. 그러나 이때는 일본과 미국이 한국과 필리핀을 식민지로 맞바꾼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체결된 지 두 달 가까이 된 시점이었다. 고종은 절박하고 비장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루스벨트 “일본이 반드시 대한제국을 지배했으면 좋겠소.”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의 26대 대통령이었다. 러·일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체결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총지휘자였다. 그가 고문과 민간인 학살 등을 통한 약소국가 강점을 정당하다고 여긴 전쟁광 제국주의자이자 백인우월주의자였다는 사실 또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침략적 제국주의는 일본의 아시아 지배 야욕을 부추겼고 한국의 비극을 넘어 궁극적으로 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지는 지구적 비극을 낳게 했다. 우리 역사 속 통절한 비극의 한 장면이다. 당시 한국은 국제 정세에 철저히 무지했고,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의 실체를 깨닫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과 일본의 밀약, 그리고 포츠머스 강화조약 두 달 뒤 1905년 11월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됐고, 1910년 일본은 한국을 강제로 병합했다. 그리고 꼬박 100년이 흘렀다. ‘임페리얼 크루즈’(제임스 브래들리 지음, 송정애 옮김, 프리뷰 펴냄)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있기 직전 미국이 취했던 비밀외교와 식민지 침략에 대한 정밀한 보고서다. 부제는 ‘대한제국 침탈 비밀외교 100일의 기록’이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비극적 역사 관계만 담긴 것은 아니다. 미국이 쿠바, 필리핀, 하와이 등을 침략하며 저지른 잔인한 학살, 그리고 그 과정 속에 루스벨트가 행한 역할, 그 결과로 잉태된 비극의 씨앗들을 상세하게 기록해 나가고 있다. 훗날 루스벨트를 이어 27대 미 대통령이 되는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 육군 장관을 단장으로 한 아시아 순방 외교사절단 80여명이 1905년 7월5일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한 뒤 하와이, 일본, 필리핀, 중국, 한국을 거치는 여정을 담아냈다. 루스벨트는 이 순방단에 뉴스메이커인 천방지축 딸 앨리스를 태워 언론과 대중의 말초적 관심만을 유도하며 미국의 식민지 확대라는 비밀 임무를 감췄다. 그리고 순방단은 미국이 필리핀을 강점하는 과정에서 수십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선교사를 앞세워 하와이왕국을 강탈했으며, 조(朝)·미(美) 수호통상조약을 저버리고 일본의 침략과 강점을 용인하는 등 비밀 임무를 차곡차곡 수행했다. 역사는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이들에게만 칼 마르크스의 얘기처럼 ‘한 번은 비극(tragedy)으로, 한 번은 희극(farce)으로’ 반복될 뿐이다. 한국은 10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폭넓은 외교관계를 구축하고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 힘의 균형이 다원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일련의 외교 관계 움직임을 보면 100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미국만 쳐다보는 우를 반복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최근 드라마, 소설 등을 통해 ‘한국의 은인이자 의인’으로 이미지화된 제중원 의사 호러스 알렌 공사가 사실은 루스벨트의 제국주의적 야욕의 구도 안에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내용도 책 속에 공개된다. 알렌 공사가 거의 대부분의 국책사업을 독점하고, 한국을 강점, 탄압한 일본을 지지하는 편지, 문서를 보내는 등의 활동을 했음을 감안하면 놀라울 것도 없다. 다만 이토록 당연한 역사적 사실조차 우리는 미화에 급급할 뿐이고 진실은 미국인이 쓴 책에서 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1만 68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리비아 구금 한인 선교사 일반 구치소로 이감 수용

    지난 6월 불법 선교 혐의로 리비아 보안당국에 체포된 한국인 선교사 구모씨가 8일 현지에서 일반 구치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소식통은 8일 “현지 시간으로 오늘 선교사 구씨가 현지에 있는 가족 2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건강한 상태이며 정보 당국에서 일반 구치소로 이감됐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외교통상부는 현지 대사관을 통해 영사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리비아 측은 “상부로부터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다.”며 이를 허용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아프간 의료봉사활동 미국인 등 8명 피살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에서 미국인 6명, 독일인 1명, 영국인 1명 등 외국 민간인 8명과 현지인 2명이 온몸에 총을 맞은 채 무장괴한들에게 살해됐다고 현지 경찰이 7일(현지시간) 밝혔다. 피살된 이들은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자선단체 국제지원단(IAM)과 관계된 의료요원들로 현지에서 의료 봉사활동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인 5명은 남성이며 나머지 3명은 여성이었다. 탈레반 대변인은 “우리 순찰대가 외국인 기독교 선교사들을 발견해 모두 살해했다.”고 밝혔다. 그는 희생자들이 기독교를 선교하고 미국의 첩자 노릇을 했다고 주장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사설] 시험대 오른 중동외교 전략적 선택 필요하다

    우리 정부의 중동 외교가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국가정보원 요원의 이른바 ‘스파이 사건’으로 한·리비아 관계가 수교 이후 최대의 고비를 맞았고, 미국이 대(對) 이란 제재에 한국이 적극 동참할 것을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두 나라 모두 우리가 지난 30~40년 동안 돈독한 경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외교갈등에 따른 경제적 타격은 불가피하다. 리비아는 아프리카 국가 중 우리나라의 세번째 수출대상국이다. 이란은 지난해 100억달러 가까운 교역규모를 기록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중동의 큰손이다. 그렇다고 우리 국익만 고려해 독자 행보를 취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한·리비아 갈등은 우리 정부는 부인했지만, 리비아 정부가 우리 측에 10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무상으로 해 줄 것으로 요구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꼬이는 양상이다. 리비아에는 한국인 선교사와 현지 교민 사업가가 장기 구금된 상태다. 이란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최근 방한한 아인혼 미 국무부 대북한·이란 제재 조정관은 한국이 유럽연합(EU) 수준의 강력한 추가 제재에 동참해 줄 것을 요구했다. EU는 지난달 26일 수송·에너지·재무 분야에서 이란을 제재하는 법안을 채택한 바 있다. 아인혼 조정관은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자산동결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함 사태 이후 국제사회와 대미 의존도를 높인 우리 정부로서는 유엔결의안 이행을 촉구하는 미국의 요구를 비켜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안이 복잡할수록 장기적 안목에서 고도의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정부가 투트랙으로 이란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옳은 판단이라고 본다.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되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다각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이란과 대화를 지속하면서 반한감정이 조성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리비아 갈등의 진원에는 중동권에 대한 인식부족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관 직원 중 현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전무한 상태에서 그들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차제에 우리의 외교와 경제협력 방식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에 외교공관이 모자라고 인력운용에 문제점이 많다는 감사원 지적을 흘려넘겨선 안 된다.
  • [시론] 체벌금지 이후를 고민하라/윤용규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체벌금지 이후를 고민하라/윤용규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체벌 논란은 왜 잊을 만하면 터지는가. 문제가 될 때마다 미봉책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이 ‘오장풍’으로 바뀌었을 뿐 이번에도 비등하는 비난 여론과 언론매체의 집중보도, 허용과 금지를 둘러싼 열띤 토론과 교육당국의 급조된 재발방지대책 등이 단골 메뉴처럼 이어졌다. 교사의 폭력이 파장을 일으키자 서울시교육청은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하게 체벌 전면금지 대책을 내놓았고, 이에 대해 교총은 객관적 타당성을 갖춘 체벌은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공식처럼 진행되고 있어 그 결론 또한 뻔히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체벌 문제가 좀 떠들썩하다가 곧 잠잠해져도 좋을 일은 결코 아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 똑같은 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이번에도 실익 없는 논쟁으로 끝날 것이다. 교육당국의 대책이 성과를 거두기 바라는 마음에서 두 가지 의문을 제기 한다. 먼저, 서울교육청의 체벌 전면금지에서 금지되는 체벌이 과연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행 교육법규는 이미 체벌을 금지하고, 다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청의 조치는 이 예외적 허용조차 금지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예외적 체벌 허용에는 형법상 정당방위나 긴급피난 등에 의한 허용과 교육법규에 의한 것이 있는데, 전자는 형법의 일반적 정당화원칙이므로 금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면 후자의 경우만 남는다. 교육법규에 의하면 예외적으로만 할 수 있는 체벌에 대해 체벌 장소와 체벌시 제3자 입회, 매의 규격과 횟수 등에 대해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 게다가 학생의 동의를 전제로 해서만 행해질 수 있게 했다. 즉, 학생은 체벌 이외의 다른 벌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동의에 의한 체벌은 그 자체로 아무런 문제도 발생시키지 않지만, 그 이전에 위와 같이 지키기 어려운 조건 때문에 체벌규정은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교육법규에 따를 때 체벌은 이미 완전히 금지된 것과 같다. 바로 이 점에서 교육청의 ‘전면 금지’ 조치가 갖는 실익과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교육청의 조치는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답으로 보기도 어렵다. 체벌은 법적으로 전면 금지된 것이나 마찬가진데 학교에서는 왜 여전히 교사의 폭력이 빈발하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물음이 아닌가. 그러므로 교육청은 어떻게 하면 체벌이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내놨어야 했다. 체벌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 체벌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안을 찾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청은 현행 체벌금지도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더 나아가 예외적인 경우까지 금지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마치 체벌문제를 거의 이용되지도 않는 체벌 허용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발생하고 있는 폭력이 금지를 선언한다고 방지되는 것은 아닐진대, 교육청의 이 조치는 학생인권신장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체벌 발생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따라서 철 지난 체벌 허용·금지의 되풀이는 체벌논의를 퇴행시킬 뿐이다. 법으로 10년 이상 금지한 체벌을 다시 허용하자는 것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자는 것이며, 이미 금지한 체벌을 금지하겠다는 것은 열린 문을 또 열겠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체벌금지 이후의 대책 마련’이다. 오랜 세월 관습법적으로 인정되어온 체벌이 금지됨으로써 생겨날 수밖에 없는 학생지도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대책은 체벌을 금지한 초중등교육법의 제정(1998년)과 함께 만들어졌어야 했다. 교육당국이 이를 부작위함으로써 결국 그 짐을 일선교사에게 떠넘긴 셈이 되었고, 교사는 교사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폭력의 피해자로 고통 받게 했던 것이다. 늦었지만 이번만큼은 학생지도와 제재에 대한 합리적인 방안이 마련되기를 고대한다.
  • 온몸으로 한국사랑 실천한 외국인 독립운동가

    1949년 8월 5일 서울 동대문 너머 위생병원에서 파란 눈의 한 미국인은 기쁨과 회한 속에 눈을 감는다. 그리고 서울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지에 묻힌다. 일제에 의해 추방돼 1909년 떠난 한국을 40년 만에 되밟은지 딱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장례는 외국인 최초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역시 외국인 최초로 이듬해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받았다.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86세의 노쇠한 몸이었지만, 그에겐 미군 군용선을 타고서라도 다시 한국을 찾아야할 간절한 바람이 깃들어 있었다. 호머 헐버트(1863~1949)다. 미 해군의 ‘프레지던트 헤스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기 직전 AP통신 기자에게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엄숙하게 말하며 한국에 대한 사랑을 밝혔고, 미국에서 활동하면서도 “나는 죽을 때 까지 그들을 대변할 것이다.”라고 목청 높여 외쳤던 이다.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근대교육의 기틀 마련에 도움을 준 교육자,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어문학자, 독립신문 창간을 함께 한 언론인이었다. 또 고종의 외교 고문이자 특사이기도 했다. 40년의 세월을 인고하며 한국 땅에 묻히고자했던 소원을 이뤘건만 그가 마지막 눈을 감을 때까지 가슴에 품었던 아쉬움은 무엇이었을까. ‘파란 눈의 한국혼 헐버트’(김동진 지음, 참좋은친구 펴냄)는 헐버트가 일생에 걸쳐 쏟아부은 한국 사랑과 눈물겨운 헌신성에 대해 조명하는 평전이다. 특히 고종이 독일계 은행에 맡겼다가 일본에 빼앗긴 내탕금(임금이 개인적으로 쓰던 돈)과 이를 되찾기 위한 헐버트의 노력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왕실의 사유재산인 내탕금의 예치 규모를 그는 미화 20만 달러 정도라고 메모해놓았다. 저자는 당시 재정 세입의 1.5%에 가까운 규모로 추산했다. 헐버트의 회한은 1909년 10월 어느날 고종이 그에게 내린 임무에서 기인한다. 고종의 조카 조남승을 통해 전달된 내용은 ‘훗날 나라를 위해 요긴하게 써야하니 중국 상하이 덕화은행에 예치한 자신의 내탕금을 찾아 미국은행에 예치해두라.’는 것이었다. 고종에게만 돈을 내주겠다는 덕화은행장의 확인서, 예치금 증서, 고종의 특사확인증 등이 궁궐의 한 무수리 치마 속에 숨겨져 그에게 전달됐다. 이 서류들을 들고 은행으로 찾아 갔지만 이미 일본이 가져간 뒤였다. 그때부터 내탕금을 되찾기 위한 헐버트의 눈물겨운 노력은 이어진다. 변호사를 고용해 조선통감부 초대 외무총장 나베시카의 인출금 수령 영수증을 확인하고, 미국의회에 관련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료를 제출했으며, 나중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게 관련한 모든 보고서를 보내기도 했다. 헐버트의 모교인 다트머스대, 외교통상부, 규장각,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등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80세가 되던 해 관련 서류를 보관하는 이와 난투극에 가까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저자 김동진씨는 헐버트기념사업회장 자격으로 유족 등이 갖고 있던 40년 동안의 관련 메모, 사진 등 자료를 볼 수 있었고, 또한 체이스맨해튼은행 한국대표, 제이피모간체이스은행 한국회장 등을 지낸 금융인이었기에 추적과 기록이 가능했다. 그는 “헐버트가 못다한 일은 우리가 함께 풀어야할 숙제”라면서 “이와 함께 한국을 사랑하고 세계평화를 지향했던 헐버트의 참된 정신과 사상이 우리들 가슴 속에 항상 살아 숨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만 88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리비아, 현대·LG 등 한국기업도 조사했다

    리비아, 현대·LG 등 한국기업도 조사했다

    리비아 당국이 한국의 정보담당 외교관 전 모씨를 추방하기 직전 현지의 한국 기업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한 사실이 밝혀졌다. 리비아는 전씨를 추방하기 직전 한국인 선교사를 구금하는 한편 트리폴리 현지 한국 기업인들을 2주에 걸쳐 차례로 소환 조사했다. 소환 대상은 현대·대우·LG 등 리비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 전부였으며, 이들은 수주계약 관련 비리 여부 등을 조사받았다. 이에 기업인들이 우리 정부에 진상을 문의했고,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외교·정보 당국은 진상파악에 나서면서 전씨의 무리한 정보수집 경위를 알게 됐다. 특히 리비아 측의 강경 입장이 카다피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란 사실을 파악하고 카다피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정권 실세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리비아의 강경 대응에는 한국과 리비아 간 극심한 무역불균형이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우리 기업의 대 리비아 투자금액은 3400만달러인 반면 건설사들이 리비아에서 수주한 금액은 31억달러로 무려 100배에 이른다. 수출입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해 우리 기업들의 리비아 수출 규모는 12억 3500만달러이지만 수입은 290만달러에 불과했다. 기업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한국은 리비아와의 정치적 교류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큰 공사를 많이 수주해왔다.”며 “리비아 쪽에서는 자기들이 주는 만큼 최소한의 것을 받았으면 하는 분위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비아 측은 최근 한국 대사관 등과의 면담에서 자국이 한국 제품을 수입하고, 건설 수주를 도와주는 것에 비해 한국이 투자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섭섭함을 표시하며, 투자 활성화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리비아가 정보 요원을 추방한 것은 처음 해외근무를 하게 된 해당 요원의 미숙한 정보수집 방식이 빚어낸 불상사라는 시각도 있다. 1년여 전 리비아에 들어간 전씨는 첫 해외 근무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의욕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리비아에서는 금기 영역에 속하는 무아마르 알 카다피 국가원수 관련 정보에 접근하려 하는가 하면, 리비아 정보원들에게 ‘세련되지 못한 방법’으로 선물 공세를 폈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이런 그의 행동은 리비아 측에 이상하게 비쳐졌고, 리비아 당국은 한국 정부에 몇차례 경고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결국 리비아 당국은 지난달 18일 전씨를 추방했다는 것이다. 리비아 당국은 전씨가 통상적인 수준을 넘는 첩보활동을 한 것은 미국에 카다피 관련 정보를 넘기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그만큼 전씨의 활동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다는 얘기가 된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리비아 “혹시 미국과 연관…” 의심

    국정원 요원의 리비아 현지 스파이 활동 사건과 관련, 27일 서울의 외교소식통들은 해당 요원이 북한과 리비아의 방산협력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고 말했다. 이 경우라면 리비아 측에서 ‘한국이 미국에 정보를 넘기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을 개연성이 있다. 한·미는 누가 봐도 가까운 우방이기 때문이다. 반면 리비아와 미국의 관계는 팬암기 사건 용의자 인도 문제와 리비아의 핵개발 등으로 악화일로를 걷다가 2년 전에야 겨우 관계가 정상화됐다. 외교소식통은 “과거 한국 정보 요원의 활동은 주로 기업 입찰이나 수주 등에 집중돼 있었다.”고 말해 이번 사건의 이례성을 시사했다. ●일각선 천안함 사건 연관설도 일각에서는 한술 더 떠 천안함 사건 연관설도 나돈다. 해당 요원이 북한 어뢰 설계도가 실린 카탈로그를 리비아에서 무리하게 입수하려다 리비아 당국과 충돌이 있었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을 격침시킨 어뢰 설계도를 제3국에서 얻었다고 했었는데, 그 제3국이 리비아가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나 리비아 언론이 보도하는 진상은 다르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 국가원수 주변에 대해 첩보활동을 벌이다 적발됐다는 것이다. 카다피 관련 사항은 리비아에서 ‘금기시된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리비아는 과거에도 카다피에 대한 접근 내지 모욕에는 매우 극단적으로 대응했었다. ●카다피 정보 접근 매우 민감 지난 2월26일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카다피가 스위스의 이슬람 첨탑 설치 금지 결정에 맞서 지하드(이슬람 성전)를 언급한 연설이 말만 많을 뿐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논평했다가 리비아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리비아는 즉각 트리폴리 주재 미 대리대사를 소환해 항의한 데 이어 자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 석유 회사 대표들을 불러 미 국무부의 논평이 양국 경제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압박했다. 이에 크롤리는 3월9일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이 (리비아를) 불쾌하게 했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해야 했다. 리비아는 다음 날 사과를 수용한다고 밝히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지난해 3월에는 카다피 아들 부부가 스위스에서 2명의 가정부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는데 그 직후 리비아는 스위스 은행에서 수백만달러를 즉각 인출한 뒤 리비아에 주재하는 모든 스위스 기업들에 추방령을 내린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스위스에 대한 석유 판매를 금지했으며 스위스 문화원을 폐쇄했다. 또 리비아 항구에 정박해 있던 스위스 선박의 발을 묶고 해당 경찰의 징계를 스위스 정부에 요구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리비아 지도자의 개인적 이해나 적대감에 의해 국가의 기본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 리비아가 우리한테 보이고 있는 행동, 즉 외교관 추방과 주한 경협대표부 영사업무 중단, 선교사 구금 등도 위의 사례와 비슷하다. ●리비아, 스파이활동 사과 요구 리비아 정부는 우리 정부에 해당 스파이 활동에 대해 시인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우리 입장에서 불법을 시인하는 것은 두고두고 ‘전과’로 남을 우려가 있어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한국 외교관이 추방된 것은 1998년 7월 한·러시아 외교관 맞추방 사건 이후 두 번째다. 당시 주 러시아 대사관 참사관과 주한 러시아 대사관 참사관이 양국 정부로부터 서로 ‘기피인물’로 규정됐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리비아, 한국 정보담당 외교관 추방

    리비아 정부가 현지에 주재하고 있는 한국의 국가정보원 소속 직원에 대해 스파이 혐의를 적용, 지난달 한국으로 추방한 것으로 밝혀졌다. 주한 리비아 경제협력대표부가 지난달 하순 영사업무를 갑자기 중단한 것도 이번 사건에 따른 외교적 마찰 때문으로 알려져, 올해로 30년을 맞는 양국 관계가 중대 국면에 직면해 있다. 27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리비아 관계 당국은 지난달 초 주 리비아 한국대사관 소속 정보 업무 담당 직원을 리비아의 국가안보에 위배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구금해 조사한 뒤 지난달 15일 한국 정부에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통보하고 18일 추방했다. 이 직원의 어떤 활동이 문제가 됐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외교소식통과 리비아 현지 언론 등은 북한과의 방산협력 관련 정보 수집이나 무아마르 알 카다피 국가원수의 국제원조기구 조사, 카다피 원수의 아들이 운영하는 아랍권 내 조직에 대한 첩보활동 등이 문제가 됐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외교소식통은 “문제의 직원이 수행한 정보 수집 활동에 대해 리비아 측은 불순한 의도로 판단해 추방 조치를 했으며,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리비아 정부가 오해하고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태가 발생하자 우리 정부는 지난 6~13일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대통령 특사로 현지에 파견, 최고위층과의 접촉을 시도하며 외교적 설득노력을 기울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어 20일 국정원을 비롯한 정부 대표단을 리비아에 파견, 리비아 정부와 협상을 벌였으며 현재 리비아 측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소식통은 “리비아 정부에서는 한국 정부에 불법 첩보활동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하라는 입장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리비아 정부가 해당 직원을 기피인물로 통보한 지 20여일이 지나서야 특사를 파견한 것은 우리 정부가 초기에 상황판단을 너무 안이하게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리비아 측은 해당 직원을 추방한 지 2주만인 지난달 23일 주한 리비아 경협대표부의 영사업무를 중단하고 직원 3명을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조치를 취했다. 앞서 지난달 15일 선교사 구모씨가 포교 혐의로 구금된 것도 스파이 사건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 당국자는 “주 리비아 대사관 직원의 리비아 내 활동과 관련해 양국 정부 간 이견이 발생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 대표단이 현재 리비아를 방문해 리비아 관계 당국과 협의 중”이라면서 “양국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고 사태가 조기에 원만히 해결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리비아측 오해서 비롯 사태해결 시간 걸릴 듯”

    리비아가 현지에 주재하고 있던 한국인 외교관을 스파이혐의를 적용해 지난달 추방한 사실이 뒤늦게 현지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되면서 우리 정부는 하루종일 급박하게 돌아갔다. 외교통상부는 27일 “양국 정부 간 이견이 발생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 대표단이 현재 리비아를 방문해 관계당국과 협의 중”이라면서 “정부는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어 올해로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리비아 간 우호협력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의 핵심관계자는 “양국의 시스템 차이로 인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면서 “선교사구금건과 외교관 추방건은 완전히 별건이다. 따로 따로 접근해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선교사) 문제는 종교문제로 접근해서 풀어야 하며, 외교관 추방건은 시스템에 대한 오해를 먼저 풀어야 할 것으로 본다. 생각보다는 (해결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내다봤다. 국가정보원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국정원 관계자는 “국익 차원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을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 6~13일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리비아를 방문했던 이상득 의원은 선교사 구금과 관련, “현지에 가서 알았다. 조사 중이라 내가 할 말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외교 문제 관련 이상 기류에 대해서는 “약간 그런게 있으니까 이런 사태가 나지 않았겠느냐.”면서 “그 문제는 외교부에서 앞으로 할 일이고 그것 때문에 기업들이 지장을 안 받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리비아에)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수·이지운기자 sskim@seoul.co.kr
  • “리비아, 한국인선교사 영사접근 불허”

    리비아 당국이 불법 선교 혐의로 체포된 한국인 선교사 고모씨와 고씨를 도운 한국인 농장주 주모씨에 대해 우리 정부의 영사(領事) 접근권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우리 측이 다각도로 영사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나 리비아 측이 불허하고 있다.”며 ”다만 농장주 주씨의 경우 지병이 있어 약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고씨는 현지 종교법 위반으로 리비아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는 사실이 지난 6일 외교 서한을 통해 우리 측에 공식 통보됐으며 주씨는 지난 15일 현지 보안당국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외교부는 리비아 측이 두 사람에 대한 조사를 완료하는 대로 통상적인 외교관례에 따라 신병을 우리 측에 인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고씨의 체포와 장기 조사를 둘러싸고 양국 외교관계에 이상기류가 형성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주한 리비아 경제협력대표부는 지난달 24일부터 비자발급을 비롯한 영사업무를 중단했으며 리비아 대표 직원 3명은 보름 전 모두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리비아가 공식적으로 폐쇄이유를 통고해 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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