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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 달린 아이’ 놀림받던 마다가스카르 청년, 한국서 새 삶

    ‘혹 달린 아이’ 놀림받던 마다가스카르 청년, 한국서 새 삶

    입 안에 생긴 얼굴 크기만 한 거대 종양 때문에 따돌림받던 마다가스카르의 한 청년이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얻게 됐다. 서울아산병원은 마다가스카르 오지의 열악한 의료 환경 탓에 15㎝ 이상의 종양을 방치해온 플란지(22)가 최근 한국에서 거대세포육아종을 제거하고 아래턱 재건과 입술 주변 연조직 성형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3일 전했다. 회복한 플란지는 오는 5일 귀국을 앞두고 있다. 플란지에게 거대 종양이 생긴 건 8살 때 뽑은 어금니 탓이다. 발치가 잘못돼 어금니 쪽에 염증이 생겼지만 제때 치료하지 못하고 10년간 방치했다. 작았던 염증은 거대세포육아종으로 진행되며 점차 커졌다. 이 질환은 100만명 당 한 명에게서 발병한다고 알려진 희귀질환이다. 초기에는 약물로 쉽게 치료할 수 있지만, 플란지의 경우 오랜 기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종양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거대해졌다. 음식을 먹는 것은 물론 대화도 힘들었고, 종양을 만지거나 부딪히면 출혈이 발생해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친구들의 놀림으로 플란지는 학교까지 중퇴했다. 이런 플란지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는 이재훈 의사다. 수술할 수 있는 한국의 의료기관을 수소문해 아산병원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 병원 성형외과 최종우 교수팀이 이비인후과와 협진해 수술했다. 치료비용은 전액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아산병원에서 지원했다. 플란지는 “평생 혹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좌절감뿐이었는데, 처음 꿈이 생겼다”며 “선교사가 되어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손닿을 듯 아스라한 금강산… 묵직하게 저려오는 평화[권다현의 童行]

    손닿을 듯 아스라한 금강산… 묵직하게 저려오는 평화[권다현의 童行]

    군인 아빠의 영향인지 두 아들은 어릴 때부터 전쟁이나 무기에 관심이 많았다. 또래 남자아이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우리 집 녀석들은 독일군과 일본군 등 꽤 구체적인 역할을 정해 전투를 벌였다. 생일 선물로 총을 사 달라고 할 때도 몇 년도에 어느 나라 군대가 사용했던 무기인지 콕 집어서 요구했다. 이쯤 되니 전쟁의 참혹함과 무기의 잔인함을 단순한 흥미의 대상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엄마는 걱정이 된다. 오랜만에 떠난 강원 고성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금강산이 아스라한 이곳에서 아이들이 전쟁보다는 평화를, 무기보다는 이해와 공존의 힘을 직접 느껴 보길 바랐다.고성 통일전망대는 찾아가는 길부터 분단국가의 현실이 피부로 느껴진다. 예약은 필요 없으나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출입신고소에 먼저 들러야 한다. 표지판을 무시하고 달렸다간 검문소에서 되돌아오는 불편을 겪는다. 가족이 함께 자동차로 이동할 경우 대표자의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하고 차종과 차량 번호, 탑승 인원까지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안보 교육도 이어진다. 8분짜리 영상물을 시청하는 게 전부지만 아이들에겐 낯선 풍경일 수밖에 없다. 교육관을 나서도 개별 출발은 금지다. 정해진 시간에 먼저 온 순서대로 차량이 출발하고, 검문소에 도착하면 출입신고서를 제출한 뒤 출입증을 받아 차량 전면에 비치한다. 군인들이 직접 눈을 맞추며 인원을 확인하자 긴장한 듯 아이들 표정이 잔뜩 굳었다. 검문소에서도 5분여를 더 달린 후에야 언덕 위에 우뚝 솟은 고성통일전망타워가 눈에 들어왔다.●“정말 금강산 맞아요?” 아이가 물었다 2018년 12월에 새롭게 문을 연 고성통일전망타워는 기존 통일관을 압도하는 34m 높이에 비무장지대(DMZ)를 상징하는 ‘D’자 형태의 외관이 독특하다. 1층 테라스와 2층 전망교육실, 탁 트인 조망을 자랑하는 3층 관람실에서 모두 북녘땅을 눈에 담을 수 있다. 특히 정면으로 보이는 구선봉은 우람한 바위산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홉 신선이 바둑을 두고 놀았다는 구선봉은 금강산 가장 동쪽에 자리해 일만이천봉의 마지막 봉우리로 여겨진다. 오른쪽으로는 만물상과 부처바위 등 해금강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맑은 날에만 볼 수 있다는 외금강의 수려한 산자락이 육안에 들어온다. 첫째 아이는 이름으로만 들었던 금강산이 실제로 눈앞에 있으니 몇 번이나 “저기가 정말 금강산 맞아요?” 믿기지 않는 얼굴로 묻는다.●北 레이더기지 위치한 국지봉 선명 조선 최고의 비경으로 꼽혔던 금강산이 손에 닿을 듯 가깝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구선봉 뒤로 북한군 레이더기지가 위치한 국지봉이 선명하고, 외금강 바로 앞에 자리한 초소 풍경도 서늘하다. 일행 중 한 명이 과거 육로를 이용해 금강산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데, 북쪽으로 쭉 뻗은 도로를 바라보니 감회가 깊은 모양이다. 삼촌에게 금강산 여행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몇 마디 설명하는가 싶더니 “그땐 언제든 다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금강산을 찾았던 다른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내가 금강산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해 왔다.타워에 전망시설만 있는 건 아니다. 2층 전망교육실 옆에 통일홍보관이 자리하는데 규모는 작지만 전시 내용이 꽤 알차다. 먼저 ‘남과 북, 두 개의 고성’이라는 주제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분단도(道)이자 분단군(郡)인 고성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휴전 당시 고성 주민 대부분은 이북 출신 피난민이었고, 1980년대까지도 인구의 77%가 실향민이었다. 여기서 북한 고성군까지 3.8㎞ 거리라고 하니 우리가 지나온 출입신고소보다 가까운 셈이다. 첫째는 북한에도 강원도 고성군이 있다는 게 놀라운 모양이다. 하긴 교과서에 실린 몇 줄 글로 한 명 한 명이 감당해야 할 분단의 상처가 어찌 다 설명될 수 있을까. ●“기차 타고 유럽 가즈아!” 잠시나마 통일된 미래를 꿈꿔 볼 수 있는 공간도 이어진다. 북한 지역에 매장된 풍부한 자원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남한의 다양한 기술, 북한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유라시아철도의 시작점이 될 고성 제진역 이야기가 아이들의 관심을 모은다. 통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던 첫째도 전시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더니 통일의 염원을 적는 코너에 “기차 타고 유럽 가즈아!”라고 썼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6·25전쟁체험전시관으로 향했다. 이곳에선 한국전쟁의 참상과 당시 상황을 사진과 영상, 유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겁이 많은 둘째는 일부 전시관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에 걸음을 망설였다. 하지만 뼈만 앙상하게 남은 전사자 유해 앞에선 저 어린아이도 마음이 아픈지 한참 들여다보고 섰다. 그렇게 전쟁이 남긴 묵직한 비극을 아이들은 제법 진지하게 마주했다.통일전망대와 함께 민통선 내에 자리한 DMZ박물관도 놓쳐선 안 된다. 한반도 DMZ의 탄생 과정부터 치열했던 냉전의 흔적, DMZ의 역사적·생태적 가치를 아이들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우리와 비슷한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독일의 통일 역사를 되짚어 보는 공간도 마련돼 더 넓은 시야에서 우리의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경험도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에 관심이 많았던 첫째는 베를린장벽을 뚫고 자유를 찾아왔던 동독의 국민차 트라반트를 실제로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 마침 금강산 관광 재개를 기원하는 특별전 ‘금강산을 그리다’도 열리고 있어 아이들은 물론 엄마 아빠들도 흥미롭게 관람했다. 야외전시도 눈여겨볼 만하다. 1960년대 동부전선 DMZ 남방한계선에 실제 설치됐던 철책을 비롯해 대북 심리전에 활용된 확성기, 2011년 북한 주민 21명이 목숨을 걸고 서해를 넘어올 때 탔던 목선 등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 또 베를린장벽 붕괴를 기념한 카니 알라비와 카스라 알라비 형제의 벽화, 독일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에서 기증받은 분단 시기 철책 등 하나하나 뜻깊은 전시 작품들이 가득하다. DMZ를 주제로 한 에코가방과 티셔츠 만들기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험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특히 다른 박물관에선 보기 어려운 인식표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해 남자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아빠의 군번줄을 내내 부러워했던 둘째는 자신의 이니셜을 새긴 인식표를 완성해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통일전망대에서 나오는 길에 화진포에 들렀다. 예부터 수려한 풍광을 자랑했던 이곳에 우리나라 현대사를 뒤흔들었던 김일성과 이승만, 이기붕의 별장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민통선 지역도 아니고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위치에 김일성 별장이 있다니 아이들은 신기한 모양이다. 앞서 박물관에 들렀던 효과인지 “여기가 예전에는 북한 땅이었던 거야”라며 첫째가 동생들에게 설명하는 모습이 꽤 의젓하다. 실제 화진포가 북한에 속했던 1948년, 김일성은 가족들과 함께 공산당 간부 휴양소였던 이곳에서 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어린 김정일이 소련군 자녀들과 함께 별장 입구에서 찍힌 사진이 그 증거다. 무엇이 사진 속 이 천진한 표정의 아이를 독재자로 만들었을까 새삼 씁쓸해진다. 김일성 별장으로 알려진 이 건물의 실제 주인은 선교사였던 셔우드 홀이다. 부인과 함께 해주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던 그는 결핵치료 자금을 모으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은 평양에서 청일전쟁 희생자들을 돌보다 과로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은 조선 최초의 어린이병원과 여성병원, 맹인학교를 건립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박 에스더를 탄생시킨 후원자 역시 그녀다. 대를 이어 이 땅에서 가장 약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가족은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함께 안장됐다.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별장도 멀지 않다. 담박하지만 빼어난 전망을 자랑하는 이곳 별장은 1954년에 지어졌던 것을 1997년에 재건축해 1999년부터 전시관으로 활용 중이다. 독립운동가에서 정치가로 변신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의 생애를 한자리에 정리해 뒀다. 이승만의 오른팔로 불렸던 이기붕의 별장은 선교사들이 지은 건물을 활용해 건축양식이 김일성 별장에 가깝다. 규모는 작지만 아늑한 마당과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별장다운 정취가 오롯이 묻어난다. 이들 별장을 품은 화진포도 느긋하게 돌아보기 좋다. 동해안 최대 규모의 석호답게 다채로운 풍광과 잔잔한 물결이 어우러져 걸음이 절로 느려진다. 둘레길도 잘 다듬어져 있고 자전거를 빌려 한 바퀴 돌아볼 수도 있다. 김일성 별장에서 바라본 화진포해수욕장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들은 잘 여문 가을볕에 늦은 물놀이를 만끽했다. 바다와 호수 사이에 자리한 덕분인지 파도도 얌전하고 모래는 부드러웠다.고성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 삼은 예술공간도 있다. 조각가 김명숙이 운영하는 바우지움조각미술관이다. 채소를 키우던 땅과 울산바위를 넘어온 높새바람, 드넓은 동해를 주제로 삼은 미술관은 그 자체가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느껴진다. 특히 가까이에 설악산이, 멀리 금강산이 바라보이는 고성에서 돌은 가장 중요한 오브제였다. 대관령 터널 공사장에서 걷어 온 쇄석과 원암리의 돌덩이가 어울려 ‘돌의 정원’이 완성됐고, ‘물의 정원’과 ‘잔디 정원’에는 거푸집에 돌을 깨어 넣고 콘크리트를 부어 낡은 듯 허름한 담을 둘렀다. 미술관 이름이 바우지움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볼거리도 알차다. 먼저 근현대조각관에서는 조각계의 대가 김영중을 비롯해 근대조소 1세대로 꼽히는 김경승,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며 예술문학기사 훈장을 받은 문신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각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김명숙조형관에서는 여체의 아름다움을 생동감 넘치는 석조와 청동으로 작업한 결과물들이 이어진다. 분기별로 새로운 작가의 기획전시가 열리는 아트스페이스는 다양한 개성을 만나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랑받는다. 여기선 아이들이 좋아하는 나만의 컵 만들기 프로그램도 상설 운영된다. 미리 예약하면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색채심리상담도 가능하다.고성에 왔다면 막국수도 맛봐야 한다. 강원도 특유의 구수한 풍미를 자랑하는 메밀 면에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넣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양념도 자극적이지 않아 아이들이 좋아한다. 이 지역에선 수육을 주문하면 명태식해를 함께 내는데,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함이 매력이다. 푸짐하게 속을 채운 메밀만두나 갓 부쳐 낸 전병을 곁들여도 훌륭한 한 끼가 된다. 고성 특산물인 문어를 활용한 숙회나 국밥도 아이들과 먹기 좋은 별미다. 여행작가
  • “버려진 돌의 도전 삶, 힘든 세상 용기 됐으면”

    “버려진 돌의 도전 삶, 힘든 세상 용기 됐으면”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마태복음 21장 42절) 이 구절은 임용근(오른쪽·87) 전 미국 오리건주 상원의원의 인생을 이끄는 지표가 됐다. 임 전 의원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버려진 돌 임용근 스토리’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예수를 미워하던 사람들이 예수를 잡아죽이려 했지만 그 돌이 세상의 머릿돌이 됐다”며 책 제목에 대해 설명했다. 그 역시 사회에서 버려진 돌이었다.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처형됐고, 폐결핵에 걸려 생사를 오갔으며, 사람들이 정신병자로 취급해 첫사랑과 헤어져야 했다. 또한 군대에 가고 싶었지만 폐결핵으로 떨어지고 주변에선 “빨갱이 새끼”라는 말을 들었다. 버려진 돌이었던 그를 머릿돌이 되게 한 것은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이었다. 폐결핵 회복을 위해 누워 있는 동안 7500개에 달하는 영단어를 외웠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그를 눈여겨본 한국 컴패션의 로버트 모건 목사가 한국 고아들로 구성된 4중창단의 미국 순회공연을 도와줄 사람으로 임 전 의원을 추천했다. 임 전 의원은 미국 방문을 계기로 그곳에 정착했고, 청소부로 시작해 여러 도전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 오리건주 상·하원에서 5선 의원을 지냈다. 미주 한인 역사상 최초의 미국 의원 당선이었다. 그는 “나같이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별로 없다”면서 “요즘은 많은 사람이 세상 살기가 어려우면 하직하더라. 이 책이 한국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용기를 주어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 청소부에서 미국 의원이 되기까지… ‘버려진 돌’이 주는 희망

    청소부에서 미국 의원이 되기까지… ‘버려진 돌’이 주는 희망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태복음 21장 42절은 임용근(87) 전 미국 오리건주 상원의원의 인생을 압축하는 성경 구절이다. 임 전 의원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버려진 돌 임용근 스토리’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예수님을 미워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죽이려 했지만 그 돌이 세상의 머릿돌이 됐다”며 책 제목에 대해 설명했다. 10년 전에 생각해둔 제목이라고 한다. 미국 오리건주에서 상·하원 5선을 지내며 한인 최초의 미국 의원으로 새 역사를 쓴 임 전 의원은 화려한 이력 뒤에 남모를 아픔을 겪은 ‘버려진 돌’이었다. 6·25 전쟁의 여파로 소방서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처형됐고, 폐결핵에 걸려 생사를 오갔으며, 주변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자로 취급해 첫사랑과 헤어지는 아픔도 겪었다. 군대에 가고 싶었지만 폐결핵으로 떨어졌고, 주변에선 “빨갱이 새끼”라는 말을 듣는 인생이었다. 임 전 의원은 “사상적인 면에서 어려움을 당해 나라에서 버려졌고, 폐결핵 때문에 육체적으로 버림당했고, 정신질환이라며 사회와 애인한테 버림당했고, 군 입대를 못해 군대에서도 버려졌다”며 자신의 인생을 설명했다. 삶을 포기할 만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교회를 세우고, 미국 선교사로부터 도움을 받아 인생을 바꿀 수 있었다.폐결핵 회복을 위해 누워 있는 동안 임 전 의원은 7500개에 달하는 영단어를 외웠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그를 눈여겨본 한국 컴패션의 로버트 모건 목사는 한국 고아 4명으로 구성된 4중창단의 미국 순회공연을 도와줄 사람으로 임 전 의원을 추천했다. 병역 문제가 걸렸지만 무사히 출국하게 되면서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미국에서 3개월의 순회공연 후에 그는 미국에서 신학생이 됐다.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학생비자를 받고 미국 생활을 무사히 시작할 수 있었고 청소부로 시작해 편의점, 부동산 사업, 유통업 등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돈을 어느 정도 벌자 사회에 공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인회 회장을 시작으로 여러 직분을 거쳤다. 주지사에도 도전해 7명 중 2위를 한 그는 자신감을 얻어 의원직에도 도전했다. 상원의원을 거쳐 하원의원까지 5선을 했다. 미주 한인 역사상 최초의 미국 의원 당선이었다. 여러 실패가 있었지만 곧바로 다른 기회로 이어졌고,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 의지로 미주 한인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그는 “나같이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별로 없다”면서 “요즘은 많은 사람이 세상 살기가 어려우면 하직하더라. 이 책이 한국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용기를 주어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나같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 北억류자 카드 꺼낸 통일부… 핵실험 유예 때 ‘대화 골든타임’ 잡나 [뉴스 분석]

    北억류자 카드 꺼낸 통일부… 핵실험 유예 때 ‘대화 골든타임’ 잡나 [뉴스 분석]

    북한이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기간인 이번 주 핵실험 유예 기간에 진입했다는 관측 속에 북한의 적대 행위 중지 및 대화 재개를 위한 다각적 시도가 절실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앞서 지난 16일~다음달 7일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오는 21일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의 가족들과 면담한다. 제7차 핵실험 임박 등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와중에도 인도적 이슈인 인권 등을 고리로 북한에 우회적 소통의 손길을 뻗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조중훈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브리핑에서 “권 장관이 (북한에) 억류된 국민 중 두 분의 가족을 만나 위로를 드리고 우리 정부의 억류자 문제 해결 의지를 설명할 예정”이라며 “통일부 장관이 억류자 가족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정부 당시 통일부는 억류자에 대한 입장을 북한 측에 전달한 바 있으나 북한은 ‘검토해 보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은 2013년 이후 북중 접경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억류된 선교사, 탈북자 등 총 6명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포 사격 등 잇단 도발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지만 억류자 송환 등 인권 문제를 앞세워 대화를 시도해 보려는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임박한 것으로 관측된 7차 핵실험을 앞두고 고착된 현 상황에 대해 “9·19 군사합의 파기 등 강경 조치는 북한으로부터 기대할 실익도 없는 만큼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당장 ‘우선적인 적대 행위 중지’에 대한 명분론을 국제사회는 물론 중러의 틀까지 활용해 최대한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 정부의 확장억제 강화 전략, 대북 독자 제재 조치 등이 후퇴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을 바탕으로 한 대화의 문이 항상 열려 있다는 신호를 북한에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사실상 7차 핵실험 또는 전술핵 실험이라고 해서 6차 때와 달리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중러의 반대로 인해 유엔을 통한 대북 제재도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국제사회에서 대화와 명분 전략에서 밀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는 이날 북한의 도발을 한목소리로 규탄하면서도 해결책을 놓고서는 결이 달랐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김정은의 도발이 점입가경”이라며 “북한이 무력 도발을 감행할 경우 곧바로 김정은 정권 붕괴로 이어질 것임을 힘으로 보여 줘야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군사 긴장을 고조시키고 남북 간 신뢰를 훼손하는 모든 형태의 도발 중단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면서도 “남북 관계가 적대적으로 되돌아가선 안 된다는 과거 경험을 되살려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한편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쐈다가 추적 신호가 끊겼던 에이태큼스(ATACMS) 전술지대지미사일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 北억류자 카드 꺼낸 통일부… 핵실험 유예 때 ‘대화 골든타임’ 잡나[뉴스 분석]

    북한이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기간인 이번 주 핵실험 유예 기간에 진입했다는 관측 속에 북한의 적대 행위 중지 및 대화 재개를 위한 다각적 시도가 절실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앞서 지난 16일~다음달 7일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오는 21일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의 가족들과 면담한다. 제7차 핵실험 임박 등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와중에도 인도적 이슈인 인권 등을 고리로 북한에 우회적 소통의 손길을 뻗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조중훈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브리핑에서 “권 장관이 (북한에) 억류된 국민 중 두 분의 가족을 만나 위로를 드리고 우리 정부의 억류자 문제 해결 의지를 설명할 예정”이라며 “통일부 장관이 억류자 가족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정부 당시 통일부는 억류자에 대한 입장을 북한 측에 전달한 바 있으나 북한은 ‘검토해 보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은 2013년 이후 북중 접경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억류된 선교사, 탈북자 등 총 6명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포 사격 등 잇단 도발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지만 억류자 송환 등 인권 문제를 앞세워 대화를 시도해 보려는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임박한 것으로 관측된 7차 핵실험을 앞두고 고착된 현 상황에 대해 “9·19 군사합의 파기 등 강경 조치는 북한으로부터 기대할 실익도 없는 만큼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면서 “당장 ‘우선적인 적대 행위 중지’에 대한 명분론을 국제사회는 물론 중러의 틀까지 활용해 최대한 쌓아야 한다”고 했다. 현 상황에서 정부의 확장억제 강화 전략, 대북 독자 제재 조치 등이 후퇴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을 바탕으로 한 대화의 문이 항상 열려 있다는 신호를 북한에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사실상 7차 핵실험 또는 전술핵 실험이라고 해서 6차 때와 달리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지는 않는 상황”이라며 “중러의 반대로 인해 유엔을 통한 대북 제재도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국제사회에서 대화와 명분 전략에서 밀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는 이날 북한 도발을 한목소리로 규탄하면서도 해결책을 놓고서는 결이 달랐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김정은의 도발이 점입가경”이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 사용을 공언하며 펼치고 있는 미치광이 전략의 복사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이 무력 도발을 감행할 경우 곧바로 김정은 정권 붕괴로 이어질 것임을 힘으로 보여 줘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남북 간 신뢰를 훼손하는 모든 형태의 도발을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안보는 어떤 이유로도 악용돼선 안 된다”며 “남북 관계가 적대적으로 되돌아가선 안 된다는 과거 경험을 되살려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 북한 핵실험 “유예 기간”..제재 억제 강화냐 대화 시도냐

    북한 핵실험 “유예 기간”..제재 억제 강화냐 대화 시도냐

    북한이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기간인 이번주 핵실험 유예 기간에 진입했다는 관측 속에 북한의 적대행위 중지 및 대화 재개를 위한 다각적 시도가 절실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은 앞서 이달 16일~새달 7일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통일부 장관은 오는 21일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의 가족들과 면담한다. 제7차 핵실험 임박 등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와중에서도 인도적 이슈인 인권 등을 고리로 북한에 우회적 소통의 손길을 뻗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조중훈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브리핑에서 “권 장관이 (북한에) 억류된 국민 중 2분의 가족을 만나 위로 드리고, 우리 정부의 억류자 문제 해결 의지를 설명할 예정”이라며 “통일부 장관이 억류자 가족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정부 당시 통일부는 억류자에 대한 입장을 북한 측에 전달한 바 있으나, 북한은 ‘검토해 보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통일부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은 2013년 이후 북중 접경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억류된 선교사, 탈북자 등 총 6명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포 사격 등 잇단 도발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지만 억류자 송환 등 인권 문제를 앞세워 대화를 시도해 보려는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임박한 것으로 관측된 7차 핵실험을 앞두고 고착된 현 상황에 대해 “9·19 군사합의 파기 등 강경 조치는 북한으로부터 기대할 실익도 없는 만큼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면서 “당장 ‘우선적인 적대행위 중지’에 대한 명분론을 국제사회는 물론 중러의 틀까지 활용해 최대한 쌓아야 한다”고 했다. 현 상황에서 정부의 확장억제 깅화 전략, 대북 독자제재 조치 등이 후퇴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을 바탕으로 한 대화의 문이 항상 열려 있다는 신호를 북한에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사실상 7차 핵실험 또는 전술핵 실험이라고 해서 6차 때와 달리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지는 않는 상황”이라며 “중러의 반대로 인해 유엔을 통한 대북 제재도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국제사회에서 대화와 명분 전략에서 밀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는 이날 북한 도발을 한목소리로 규탄하면서도 해결책을 놓고서는 결이 달랐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김정은의 도발이 점입가경”이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 사용을 공언하며 펼치고 있는 미치광이 전략의 복사판”이라고 비판했다. 정 비대위원장은 “자유주의 연대 결속을 강화해야 한다”며 “북한이 무력 도발을 감행할 경우 곧바로 김정은 정권 붕괴로 이어질 것임을 힘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주당은 거듭 북한의 무력 도발을 강력 규탄한다”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남북 간 신뢰를 훼손하는 모든 형태의 도발 중단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이 대표는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안보는 어떤 이유로도 악용돼선 안 된다”면서도 “남북관계가 적대적으로 되돌아가선 안 된다는 과거 경험을 되살려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 권영세, 北억류자 가족 만난다…긴장 국면서도 ‘인권’ 강조

    권영세, 北억류자 가족 만난다…긴장 국면서도 ‘인권’ 강조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오는 21일 북한에 억류된 국민의 가족을 만난다. 통일부 장관이 억류자 가족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지난달 말부터 전술핵운용부대 훈련에 이어 대남 공세를 본격화하는 등 긴장 국면에서도 정부는 북한이 껄끄러워하는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를 지속하고 있다. 조중훈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장관은 21일 억류된 국민 중 두분의 가족을 만나 위로를 드리고 우리 정부의 억류자 문제 해결 의지를 설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부는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의 송환은 자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 책무로 반드시 해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며 “앞으로도 가족 면담과 위로를 비롯해 남북회담 및 국제사회 협조 등 다각적 경로를 활용해 생사확인, 면회, 석방 및 송환 등 억류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통일부 장관이 북한 억류자 가족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2019년 천해성 당시 통일부 차관이 설 명절에 앞서 북한에 억류돼 있는 김정욱 선교사의 가족을 방문한 바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은 2013년 이후 북중 접경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억류된 선교사와 탈북민 등을 포함해 6명이다. 국제 엠네스티는 지난해 ‘2020/21 연례 인권보고서’에서 최소 6명의 한국인이 북한에 억류돼 무기노동교화형 등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지만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해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천족·방족… ‘전족 단죄’ 담론 깨부수다

    천족·방족… ‘전족 단죄’ 담론 깨부수다

    12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무려 1000년 가까이 이어진 중국의 ‘전족’(纏足)은 여성에게 가한 야만 그 자체였다. 여성의 발을 천으로 꽁꽁 동여매어 강제로 성장을 멈추게 하는 이 기이한 풍습에 대해 많은 연구자가 책과 논문을 수없이 쏟아냈다. 누군가는 성적 욕망으로 보고, 혹자는 여성을 집안에 잡아두기 위한 방법으로 풀었다. 명청시대 연구에서 저명한 학자 도러시 고는 전족의 기원과 이를 둘러싼 사회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특히 여성에 대한 억압, 전횡, 인권의 관점에서만 다룬 기존 연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했다. 기존 연구대로라면 여성은 폭력적인 남성과 사회에 억압돼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즉 주체성 없는 존재에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저자는 우선 근대에 나오기 시작한 반전족 담론들을 분석하고, 이런 운동이 전족 여성을 향한 혐오를 강조한 점에 주목했다. 반전족 담론은 서양 선교사들이 1880년대부터 주장한 자연스럽게 타고난 그대로의 발을 의미하는 ‘천족’(天足)에서 출발했다. 이어 1900년대에는 중국 지식인 중심으로 전족을 풀자는 의미의 ‘방족’(放足) 운동이 번진다. 서양 열강에 굴복하고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중국으로선 우스꽝스런 전족이 너무나도 창피했을 법하다. 그러나 천족이나 방족은 전족 여성의 발 사진을 활용해 모욕을 주고, 관리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서서 강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다른 한편으로는 전족의 기원과 사회적 유행에 대한 사료를 통해 전족의 발생을 뒤쫓는다. 고전 시, 필기, 민가, 근대의 신문과 잡지, 정부 문서, 서양인의 보고서 및 회고록까지 섭렵하며 전족의 역사를 폭넓게 파헤쳤다. 12세기 문학에서나 간혹 등장하던 변태적인 묘사가 현실로 차츰 옮겨 오고, 보편적인 관습으로 자리하는 과정을 밝혀냈다. 남성의 비뚤어진 욕망으로 탄생한 풍속이긴 했으나, 여성에게는 전족이 자아의 표현이었던 부분에도 주목했다. 엄혹한 가부장제의 강요 아래 피눈물을 흘리며 발을 싸맸던 가련한 여성의 이미지를 걷어낸다. 여성 역시 전족 풍속의 능동적인 참여자였다는 의미다. 기존 진보 사관 혹은 페미니즘 시선에서 보면 기절할 이야기지만, 실제로 당시 중국의 전족 여성은 작은 발을 적극적으로 가꾸며 하나의 패션으로 인식하거나 성공의 수단으로도 여겼다.여기에 파묻힌 주인공인 전족 여성들의 목소리도 되새긴다. 근대 반전족 운동 기간에 나이 많은 여성이 느낀 굴욕감, 전족을 해야 하는 여성의 초조함 등 여성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갑작스런 가치관의 변화, 여기에서 오는 갈등, 그럼에도 고통과 물심양면의 보상이 뒤따랐다. 중국 여성들은 복잡한 속내로 자신의 신체를 사회의 욕망에 맞췄다. 전족이라는 악습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과정 자체가 특히 한국사회에 가득한 혐오 담론을 풀어내는 데에도 유용할 법하다. 페미니스트 일부가 남성을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고, 젊은 세대 일부가 기성세대를 구악으로 몰아치는 세상이다. 정파가 다르다고 무조건 혐오하고 욕하며, 일부 국가를 비하하고 한국이 최고라는 식의 분위기도 넘쳐 난다. 편협한 이분법 틀 속에서 자라는 혐오의 소용돌이는 추악할 따름이다. 하나의 풍속을 1000년에 걸쳐 각종 사료로 분석해 내면서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아주 정교하게 깎아 낸 저자의 역량은, 그런 점에서 감탄스럽기만 하다.
  • 독립운동·의료헌신까지… 초심 찾아나선 교회

    독립운동·의료헌신까지… 초심 찾아나선 교회

    일제 제암리 학살사건 알린 석호필3·1운동 태극기 찍은 정동제일교회한국 근대화에 교회의 헌신 보여줘류영모 “교회 위기… 본질 찾아야”3·1운동의 들불이 전국으로 번져 가던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은 경기 수원군 향남면(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교회에 15세 이상 마을 남성을 모이게 했다. 앞서 만세 시위를 강경진압한 것에 대해 사과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교회당에 사람들이 모이자 일본군은 출입문과 창문을 잠그고 총을 난사했다. 남편을 찾으러 온 부인까지 포함해 23명이 사망한 이 사건은 ‘제암리 학살사건’으로 불린다. “1980년 제암교회에 부임했을 때 역대 31대 교역자라고 했습니다. 3·1운동을 기념하는 교회의 31대 목사라는 데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됐어요. 제암리는 ‘예수 믿다 망한 동네’라는 가슴 아픈 소문이 퍼졌는데도 맥을 이어 오고 있다는 데 고마움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에서 지난 5일부터 3일간 진행한 근대기독교문화유산답사 중에 만난 제암교회 강신범 목사에겐 ‘제암리 학살사건’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느껴졌다. 제암교회 일대는 곳곳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건 당시 여러 선교사가 제암교회를 찾았고, 프랭크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선교사가 일제의 만행을 널리 알린 것은 일제가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독립운동에 교회와 선교사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제암교회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1887년 서울 중구 정동에 세운 정동제일교회 강단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그 아래 좁은 공간에서 유관순과 동지들은 3·1운동 당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다. 비밀 공간이었기에 일제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었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동료 선교사들이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고종을 위해 직접 불침번을 서는 등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들은 자발적으로 헌신하며 한국인들과 운명을 함께했다. 근대 한국에 교회와 선교사가 공헌한 분야로 의료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7일 개관한 전북 전주시 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에서 파송된 7인의 선교사가 의료 혜택을 전혀 못 받고 병들고 죽어 가던 한국인들을 구제하기 위한 헌신을 기억하는 장소다.또 다른 순례지인 광주 호남신학대학교에선 대한간호협회를 창립한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 숭일학교와 수피아여고를 세운 유진 벨 선교사 등이 묻혀 있다. 김병내 광주 남구청장은 “오늘날 광주정신이라고 하는 것의 모태는 선교사님들의 희생정신”이라고 말했다. 답사의 마지막 장소였던 대구에선 대구제일교회와 YMCA회관, 대구 3·1운동의 중심지였던 청라언덕 등에 뿌린 선교사들의 씨앗이 오늘날 대구 근대문화골목으로 열매 맺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곳곳에서 만난 기독교문화유산은 한국의 근대화에 교회의 헌신이 결코 적지 않음을 보여 줬다. 이런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정치권과 결탁해 이념 논쟁, 세대 분열 등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일부의 행태로 개신교 전체가 비난받는 현실이다. 이번 답사는 이를 반성하고 초심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차원에서 진행됐다. 류영모 한교총 대표회장은 “교회는 지금이 가장 위기”라며 “다시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은 종교 없이 살아갈 수 있어도, 종교는 세상 없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초대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교회가 돌아갈 출발점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고 부연했다.
  • 유관순이 숨어서 태극기 찍던 이곳… 독립열망 품은 정동제일교회

    유관순이 숨어서 태극기 찍던 이곳… 독립열망 품은 정동제일교회

    잠겨 있던 문을 열자 작은 다락방 같은 공간이 나왔다. 사람이 있을 곳은 아니되, 몸을 피하고자 하면 또 그런대로 숨을만한 곳이었다. 독립운동을 위해 숨어서 뭔가를 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기도 했다.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서양식 예배당으로 알려진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의 ‘벧엘예배당’은 1887년 미국의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에 의해 세워진 곳이다. 이곳에는 1918년 설치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예배 때 활용하던 이 파이프오르간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폭격에 소실됐다가 2003년 이 교회의 고(故) 이종덕 권사 유족이 마련한 헌금으로 원형대로 복원됐다. 교회의 역사가 담긴 파이프오르간에는 또 다른 숨은 역사가 있다. 파이프오르간 벽면 속에 감춰진 작은 공간인 송풍실은 바로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숨어 있던 곳이다. 이 송풍실에서 유관순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몰래 인쇄하고 기도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지난 5일 한국교회총연합회가 마련한 근대기독교문화유산답사의 일환으로 송풍실이 공개됐다. 잠긴 문을 열자 복층 구조의 공간이 보였다.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파이프오르간 틈으로 빛이 들어와 환했고, 아래쪽은 빛이 들지 않아 어두웠다. 송풍실 내부로 들어간 한교총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는 공간 좌우 폭을 재듯 양팔을 벌리면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몰래 등사한 곳이 바로 이 송풍실”이라며 “뒤쪽 공간이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곳으로 송풍실은 3·1운동 이후에도 독립 관련 자료를 몰래 만드는 장소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정동제일교회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학생, 외교관들과 성경을 공부하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서양식 건물로 완공된 이곳은 이전에 없던 건물 양식에 정동 일대의 명소가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펜젤러가 1902년 성서번역위원회 참석차 인천에서 목포로 가는 뱃길에 올랐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이 교회와 예배당은 독립을 꿈꿨던 이들의 교류 장소로 이어졌다. 파이프오르간 송풍실의 크기는 작지만 이곳에서 벌어진 일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이곳에서 꿈꾸던 독립에 대한 열망의 크기 또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독립운동사에 빼놓을 수 없는 장소로서 정동제일교회는 오늘도 독립운동을 펼치던 이들의 기지처럼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일제에 학살당한 제암교회… “다시는 아픔 오지 않도록 해야”

    일제에 학살당한 제암교회… “다시는 아픔 오지 않도록 해야”

    3·1운동의 들불이 전국으로 번져가던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은 경기 수원군 향남면(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교회에 15세 이상 마을 남성을 모이게 했다. 예배가 없는 날이었고, 앞서 벌였던 만세 시위를 강경진압한 것에 대해 사과하겠다고 공지했다. 교회당에 사람들이 모이자 일본군은 출입문과 창문을 잠그고 총을 난사했다. 22명의 교인 중 19명이 교회당에서 죽었다. 3명이 도망쳤고, 그중 2명이 죽었다. 소식 없는 남편을 찾으러 온 부인 2명도 죽었다. 이제 막 신앙을 품기 시작한 교인 23명이 사망한 이 사건은 ‘제암리 학살사건’로 불린다. 일본군은 시신을 교회 밖에서 태웠다. “1980년 3월 25일 제암교회에 부임했을 때 역대 31대 교역자라고 했습니다. 3·1운동을 기념하는 교회에 31대 목사라는 데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됐어요. 제암리는 ‘예수 믿다 망한 동네’라는 가슴 아픈 소문이 퍼져 나갔는데 문을 닫지 않고 맥을 이어 오고 있다는 데서 고마움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지난 5일 제암교회에서 만난 강신범 목사의 목소리에는 ‘제암리 학살사건’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느껴졌다. 강 목사가 처음 부임했을 당시 교인은 할머니 4명, 할아버지 2명으로 총 6명에 불과했다. 제암교회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로 덜컥 부임한 그는 ‘예수 믿다 망한 교회’라는 제암교회가 유지되고 있음에 기뻐했고, 그때부터 제암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교인 중에는 사건 당시 남편을 잃은 전동례 할머니도 있었다. 할머니는 몰래 매장지를 다니며 희생자들이 어디에 묻혔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강 목사는 전동례 할머니의 증언을 따라 1982년 희생자들이 매장된 곳을 발굴했다. 찾아낸 유해는 교회 뒷동산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교회의 일이다 보니 제암리 학살사건에는 여러 선교사가 관심을 보였다. 프랭크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선교사는 일제의 만행을 널리 알렸고, 이는 일제가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는 계기로 이어졌다.103년이 지난 제암리 학살 현장에는 곳곳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제암교회는 1905년 안종옥 권사의 살림집에서 시작했고 이후 신축과 증·개축을 반복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3·1운동 100주년인 2019년에는 제암교회 예배당에서 일본 목회자 10여명이 단체로 엎드려 절을 하며 “일본인들을 용서해달라”며 절규했던 일은 한국과 일본인 모두의 마음을 울렸다. 작은 규모의 교회지만 제암교회가 전하는 메시지는 묵직했다. 2012년 은퇴한 강 목사는 지금도 제암교회의 슬픈 역사를 여기저기 전하고 있다. 강 목사는 “일본에서도 뜻있는 사람들이 순례를 오고,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필요한 곳에 가서 말씀을 전한다”면서 “일본 가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면 ‘듣지도 배우지도 못했다’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제암교회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지 않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강 목사는 “과거 역사를 기억하며 다시는 아픔이 오지 않도록 뭔가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지 않겠느냐”면서 “지금도 제암리 주민들은 제암리 사는 것을 보람 있게 생각하고 있고, 어디 가서나 제암리의 역사를 아는 대로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든이 넘은 나이지만 제암리의 일을 전하는 강 목사의 모습은 여전히 강건했다.
  • [나우뉴스] 어린이 350명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안데스 괴물’ 어디에

    [나우뉴스] 어린이 350명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안데스 괴물’ 어디에

    국경을 넘나들며 무참히 어린이 수백 병을 살해한 살인마는 살아 있는 것일까. 살아 있다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안데스의 괴물’로 불리는 희대의 살인마 페드로 로페스의 행방을 경찰이 여전히 찾고 있다고 중남미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살인마가 생존해 있다면 그는 이제 70대 중반의 노인이 됐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한 주민은 “내 눈으로 그를 똑똑히 봤다”며 “로페스는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콜롬비아 태생인 로페스는 1970년대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등 3개국에서 어린이 350여 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페루 아야쿠초에서만 그에게 피살된 어린이는 100명이 넘는다. 많게는 1주일에 3명의 어린이를 납치해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최악의 연쇄살인범 로페스에게 ‘안데스의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로페스는 8~13살 여자어린이들을 유인,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 작은 선물을 주고 아이들의 경계심을 풀어버린 뒤 데리고 가 범행을 저지르곤 했다. 피해 어린이들은 대개 빈민 가정 출신이었다. 그는 경찰에 “파란 눈의 관광객 자녀들도 노렸지만 부모들이 너무 꼼꼼하게 아이들을 챙기더라. 접근이 불가능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78년 로페스는 페루에서 한 여자어린이를 납치하려다 주민들에게 발각돼 린치를 당했다. 격분한 주민들은 그를 생매장했지만 한 선교사가 “책임지고 경찰에 넘겨 벌을 받게 하겠다”며 나서 그를 살렸다. 페루는 그러나 그의 신병을 에콰도르로 넘겨버렸다. 에콰도르에선 당시 인신매매 사건이 유행하고 있었다. 현지 언론은 “빈민가에서 발생한 사건에 관심이 없던 페루가 골칫덩이를 쫓아내듯 그를 에콰도르로 사실상 추방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신매매 의혹을 받던 로페스는 에콰도르에서 살인이 드러나면서 징역을 살았다. 당시 그의 범행이 드러난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큰비로 침수가 발생하면서 로페스가 암매장한 아이들의 시신 4구가 발견된 것이다. 로페스는 1980년 에콰도르에서 징역 16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에콰도르 형법이 허용하는 최고형이었다. 복역 중 그는 콜롬비아로 송환됐다. 콜롬비아 정부가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면서다. 콜롬비아 사법부의 명령에 따라 송환 직후 정신병동에 입원, 사실상 수감생활을 한 그는 1998년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다. 인터폴은 2002년 납치와 성폭행, 살인 혐의로 로페스에 수배령을 발령했다. 에콰도르에서 징역을 살긴 했지만 수백 건의 여죄가 있어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로페스는 종적을 감춘 뒤였다. 로페스가 어디에 몸을 숨겼는지, 생존해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의 이름은 여전히 언론에 등장했다. 2012년 콜롬비아의 지방도시 툰하에선 여자아이가 납치돼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언론은 “범행수법이 로페스와 동일했다”며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1999년 주민증을 갱신하기 위해 보고타의 주미등록소를 찾았을 때다.
  • 어린이 350명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안데스 괴물’ 어디에 [여기는 남미]

    어린이 350명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안데스 괴물’ 어디에 [여기는 남미]

    국경을 넘나들며 무참히 어린이 수백 병을 살해한 살인마는 살아 있는 것일까. 살아 있다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안데스의 괴물’로 불리는 희대의 살인마 페드로 로페스의 행방을 경찰이 여전히 찾고 있다고 중남미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살인마가 생존해 있다면 그는 이제 70대 중반의 노인이 됐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한 주민은 “내 눈으로 그를 똑똑히 봤다”며 “로페스는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콜롬비아 태생인 로페스는 1970년대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등 3개국에서 어린이 350여 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페루 아야쿠초에서만 그에게 피살된 어린이는 100명이 넘는다. 많게는 1주일에 3명의 어린이를 납치해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최악의 연쇄살인범 로페스에게 ‘안데스의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로페스는 8~13살 여자어린이들을 유인,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 작은 선물을 주고 아이들의 경계심을 풀어버린 뒤 데리고 가 범행을 저지르곤 했다. 피해 어린이들은 대개 빈민 가정 출신이었다. 그는 경찰에 “파란 눈의 관광객 자녀들도 노렸지만 부모들이 너무 꼼꼼하게 아이들을 챙기더라. 접근이 불가능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78년 로페스는 페루에서 한 여자어린이를 납치하려다 주민들에게 발각돼 린치를 당했다. 격분한 주민들은 그를 생매장했지만 한 선교사가 “책임지고 경찰에 넘겨 벌을 받게 하겠다”며 나서 그를 살렸다.  페루는 그러나 그의 신병을 에콰도르로 넘겨버렸다. 에콰도르에선 당시 인신매매 사건이 유행하고 있었다. 현지 언론은 “빈민가에서 발생한 사건에 관심이 없던 페루가 골칫덩이를 쫓아내듯 그를 에콰도르로 사실상 추방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신매매 의혹을 받던 로페스는 에콰도르에서 살인이 드러나면서 징역을 살았다. 당시 그의 범행이 드러난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큰비로 침수가 발생하면서 로페스가 암매장한 아이들의 시신 4구가 발견된 것이다.  로페스는 1980년 에콰도르에서 징역 16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에콰도르 형법이 허용하는 최고형이었다.  복역 중 그는 콜롬비아로 송환됐다. 콜롬비아 정부가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면서다. 콜롬비아 사법부의 명령에 따라 송환 직후 정신병동에 입원, 사실상 수감생활을 한 그는 1998년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다.  인터폴은 2002년 납치와 성폭행, 살인 혐의로 로페스에 수배령을 발령했다. 에콰도르에서 징역을 살긴 했지만 수백 건의 여죄가 있어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로페스는 종적을 감춘 뒤였다.  로페스가 어디에 몸을 숨겼는지, 생존해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의 이름은 여전히 언론에 등장했다. 2012년 콜롬비아의 지방도시 툰하에선 여자아이가 납치돼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언론은 “범행수법이 로페스와 동일했다”며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1999년 주민증을 갱신하기 위해 보고타의 주미등록소를 찾았을 때다.  사진='안데스의 괴물'로 불리는 연쇄살인범 로페스 (출처=자료사진)
  • 계명문화대 전문기술 선교인 양성 나서

    계명문화대 전문기술 선교인 양성 나서

    계명문화대가 전문대학 최초로 ‘국제협력선교과’를 신설했다. 국제협력선교과는 신학대학에서 하는 말씀 위주의 선교보다는 선교 시 필요한 전문기술 위주의 수업과 △선교학 △성경의 이해 △예배와 찬양과 같은 선교훈련 등 현지에서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말씀과 이론 등을 배우게 된다. 국제협력선교과는 대학내 우수한 교육 인프라를 바탕으로 전문기술 교과목 운영으로 선교사역 시 단순 봉사에서 벗어나 현지인들에게 기술전파로 자생능력을 배양하고 보다 윤택한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게 된다. 또 △다문화와 NGO의 이해 △국제개발협력의 이해 △국제지역캡스톤디자인 등의 교과목을 통해 국제개발협력단체 활동에 바로 적용이 가능한 사업 제안서 작성 및 국제개발 전문기술을 단계적으로 습득하게 된다. 방학 중에는 단기 해외 선교 및 봉사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ODA(공적개발원조)자격증, 한국어 교원 자격증, 전문기술 자격증 등을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국제협력선교과 김상미 책임교수는 “예전 청년들이 선교사역을 주도하던 모습과 달리 고령화된 현상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에 국제협력선교과가 가교적 역할을 통해 청년들이 꿈과 비전을 품고 선교에 힘을 더하여 다시 한 번 더 부흥이 일어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 선예, 반려견 심장병 고백 “심장이 너무 커져서…”

    선예, 반려견 심장병 고백 “심장이 너무 커져서…”

    원더걸스 출신 선예가 반려견의 심장병에 대해 고민했다. 선예는 24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우리 커몽이 심장이 너무 커져서 요즘 숨쉬기가 힘들대요. 심장이 왜 커졌을까”이라는 글과 함께 한 편의 영상을 게재했다. 공개된 영상 속에는 선예의 반려견 커몽이의 모습이 담겼다. 선예는 반려견의 심장질환을 고민하며 걱정하는 모습으로 많은 견주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한편, 선예는 2013년 선교사와 결혼, 슬하 세 딸을 두고 있다. 2015년 원더걸스를 공식 탈퇴했다.
  • ‘한중협력’ 상징 中 옌볜과기대는 왜 사라졌나

    ‘한중협력’ 상징 中 옌볜과기대는 왜 사라졌나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옌볜주)가 지난 3일로 창설 70주년을 맞았다. 9·3제(옌볜주 설립 기념일)를 맞은 주도(州都) 옌지는 불꽃 축제와 문예 공연, 전시회 등을 열어 70번째 생일을 자축했지만 조선족의 앞날은 오리무중이다. 100만명 이상 해외 이주로 인한 인구 감소와 노골화되는 중앙정부의 한족(漢族) 동화 기조로 민족 정체성이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어서다. 기자는 9·3제를 맞아 중국의 첫 중외합작대학(외국인 투자대학)인 옌볜대 과학기술대학(옌볜과기대·YUST)를 찾았다. 옌지~룽징 고속도로가 어렴풋하게 보이는 북산가 언덕에 자리잡은 캠퍼스는 너무도 적막했다. 지난해 6월 마지막 졸업생을 내고는 문을 닫은 탓이다. 여느 대학 같으면 9월 개강을 맞아 새내기 대학생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겠지만 여기는 풀벌레 소리가 그대로 들릴 만큼 조용했다. 한때 ‘한중 협력의 상징’으로 각광받던 옌볜과기대는 왜 언론에서조차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을까.●재미교포 김진경, 조선족 인재 육성 위해 대학 설립 YUST는 재미 사업가 겸 교수였던 김진경(87) 박사가 기획했다. 1985년 중국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베이징에서 한국 경제학을 강의한 그는 중국에 대학을 짓고 기독교 이념을 전파하기로 마음 먹었다. 구한말 한국을 찾아와 학교를 세운 서구 선교사들의 길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1987년 옌볜주를 찾은 김 박사는 재미교포들과 달리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켜가던 조선족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이곳에 대학을 세우기로 했다. 옌볜주는 ‘중국 내 조선족의 중심지’라는 상징성이 컸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를 잇는 경제적 요충지가 될 잠재력도 충분하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중국은 외국인의 대학 설립을 허용하지 않았다. 혈맹인 북한의 요청까지 모두 거절할 만큼 교육 분야 개방에 소극적이었다. 워싱턴 역시 미국 국적의 김 박사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구상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럼에도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89년 옌지시 정부와 ‘옌볜조선족 기술전과학교 합작 설립에 관한 협작서’를 체결할 수 있었다. 버려진 공동묘지터 66만㎡를 30년간 임차해 건물을 세워 1992년 9월 ‘옌볜조선족기술전문대학’이라는 이름으로 1년 과정의 기술교육을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4년제로 확대했다. 당시 중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가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중국 국립 옌볜대와 합병 통해 법률적 미비 극복 이 학교는 개교 초기 몇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베이징 중앙정부에서는 이 학교가 기독교 이념을 배경으로 조선족 학생 위주로 운영된다는 사실에 불만이 컸다. ‘종교는 아편’이라는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특정 소수민족을 선교하려는 YUST의 운영 방침이 마음에 들리 없었다. 이 학교는 일부 법률적 미비 등으로 정식 졸업장도 발급할 수 없었다. 결국 김 전 총장은 1996년 중국 국립대이자 조선족 계열 종합대학인 옌볜대와의 합병을 선택했다. 형식상 옌볜대의 지배를 받는 단과대학 형태로 바뀌고 중국 공산당의 일부 통제를 받아들이는 대신 학교의 명칭과 운영 방식을 유지키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옌볜과기대는 국가가 인정하는 4년제 정규대학이 될 수 있었고 한국의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가오카오(高考)를 치른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게 됐다.●한인 동포사회 후원으로 운영…중국 100대 중점대학 선정 옌볜과기대는 짧은 연혁에도 눈부신 성과를 냈다. 전 세계 한인 동포사회의 후원과 한국 기업들의 지원을 더한 YUST는 조선족과 한국 출신 유학생뿐 아니라 한족과 고려인, 재일동포, 북한 출신까지 모집해 ‘글로벌 한민족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학생 비율은 조선족 80%, 한족 17%, 고려인 및 소수민족 3% 정도였다. 한국과 미국, 뉴질랜드, 호주, 영국, 캐나다, 독일 등에서 온 교수진이 250명에 달해 교수 대 학생 비율이 중국에서 가장 낮았다. 졸업생은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를 구사했고 컴퓨터도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YUST 출신을 우대해 취업율이 100%에 가까웠다. 학교가 해외 유학을 적극적으로 장려해 학부 졸업생의 20% 정도가 장학금을 받고 전 세계로 나갔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서 YUST는 ‘100대 중점대학’에 선정될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중국 내 대학이 3000개에 육박하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실적이었다. YUST의 성공은 2010년 북한에 평양과학기술대(PUST)를 설립하는 데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 청주시 20세기 무심천 미호강 기록물 1100여점 모았다

    청주시 20세기 무심천 미호강 기록물 1100여점 모았다

    청주시는 청주기록원이 최근 두달간 ‘우리 물줄기의 기록을 찾습니다’를 주제로 1900∼2000년 무심천·미호강 관련 기록물 수집 공모전을 펼쳐 1100여점을 모았다고 5일 밝혔다. 기록물은 대부분 사진이며 슬라이드 필름, 책자, 지도, 문서 등도 있다. 기증자 중 박희동(70)씨는 가장 많은 기록물 600여점을 기증해 관심을 끌었다. 청주 개신동에 거주중인 그가 내놓은 기록물은 자신이 젊은 시절 촬영한 무심천과 미호강 관련 사진, 청주시 전경 사진 등이다. 박씨는 “청주를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이제 많은 이들이 함께 보면 좋겠구나 싶어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청주지역에서 ‘수집왕’으로 이름난 남요섭(72)씨도 그간 수집한 기록물을 선뜻 내놨다. 청주시 공무원이었던 남씨는 재직 당시 모아뒀던 무심천 관련 자료들과 청주시 각종 자료 50여 점을 기증했다. 미호강과 무심천이 눈에 띄게 그려진 청주시가도(市街圖)와 제1회 무심천 벚꽃축제 사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씨는 “공무원으로 일할 당시 특정 행사가 끝나면 관련 자료를 폐기하기 마련인데 나는 정이 들어 그랬는지 버리지 않고 모두 남겨 놨다”라며 “사진을 다시 들춰보니 옛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기증자 가운데 외국인도 있다. 미국인 스티븐 쉴즈(60)씨는 1970년대 청주 무심천 사진을 포함해 60여 점의 사진을 기증했다. 청주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스티븐 씨는 그 시절 청주지역 도로, 시청, 시장, 마을 풍경, 학교,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내놨다. 농부들이 모내기하는 모습이 신기해 자신이 논에 들어가 같이 모내기하고 새참까지 먹는 사진도 기증했다. 스티븐 씨는 “지금도 업무 관계로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데, 청주의 옛 모습을 담은 기록물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동안 간직하고 있던 사진을 내놓은 것”이라며 “내 사진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을 추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주기록원은 수집된 기록물을 오는 12월 개관할 시민기록관에 보관·전시해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기증자들은 시민기록관 개관식에 초청돼 감사장을 받는다.
  • “귀츨라프를 아시나요”…그가 선교한 작은 섬의 영화제

    “귀츨라프를 아시나요”…그가 선교한 작은 섬의 영화제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신교 선교활동이 이뤄진 조그만 섬에서 그를 기리는 첫 영화제가 열린다.충남 보령시는 25일 오천면 고대도에서 ‘제1회 칼귀츨라프 국제영화제’의 막을 올린다고 밝혔다. 이날 섬에는 주민 200여명과 전국에서 여객선을 타고 온 기독교 신자 200여명 등 400이 개막을 기다렸다. 개막작은 오후 7시 귀츨라프 기념공원에서 한국선교 190주년 기념식 후 ‘한글성경, 조선을 깨우다’가 상영된다. 오는 31일까지 기독교 관련 영화 7편이 상영되며, 폐막작은 ‘성경의 땅 이집트’로 선정됐다. 독일 루터교 목사인 칼 귀츨라프(1803~1851)는 1832년 여름 고대도에 20일 동안 머물면서 주민들에게 성경, 전도 문서, 약품 등을 나워주며 선교활동을 했다. 1866년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나 1884년 인천항으로 입국한 의료선교사 알렌보다 훨씬 앞선다. 지금도 섬 주민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로 2014년부터 매년 7월 칼 귀츨라프의 날을 열고 있다. 고대도는 대천항에서 북서쪽 14㎞ 떨어진 섬으로 여객선으로 40분, 지난해 말 개통한 보령해저터널을 통해 원산도로 가 여객선을 타면 10분 걸린다. 한국섬진흥원은 7월 고대도를 ‘이달의 섬’으로 선정했다. 김동일 보령시장은 “특별한 역사·문화적 가치를 가진 섬이어서 영화제 의미가 각별하다”고 말했다.
  • 동해항 한·러·일 국제카페리 2년 반만에 운행 재개

    동해항 한·러·일 국제카페리 2년 반만에 운행 재개

    강원도 동해항을 모항으로 하는 한·러·일 국제카페리(이스턴드림호)의 정기여객운항이 2년 6개월만에 정상화 됐다. 동해시는 러시아 체류 한국인 26명이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을 통해 전날 입국하면서 막혔던 한러일 국제카페리 정기여객운항이 재개됐다고 21일 밝혔다. 국제카페리 정기운항으로 여객이 동해항을 통해 입국한 것은 지난 2020년 2월 이후 2년 6개월만이다. 지난 15일 한국인과 러시아인 등 114명의 여객과 자동차 124대 등 화물을 싣고 동해항을 출항해 지난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항에 입항한 이스턴드림호는 다시 한국인 승객 26명을 탑승시켜 지난 19일 블라디보스톡항을 출발해 20일 오후 동해항에 입항했다. 이번 러시아에서 배편으로 동해항을 통해 입국한 여객은 러시아 거주 교민과 체류 근로자, 상인, 회사 직원, 사업가 등 내국인들이며 러시아인 등 외국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스턴드림호의 선사인 두원상선은 22일 오후 5시 내·외국인 100여명을 태우고 동해항을 출항할 예정이며, 오는 26일에는 블라디보스톡항에서 50여명의 한국인을 탑승시켜 27일 동해항에 다시 입항한다. 러시아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톡에 선교사로 갔다가 서울에 있는 가족을 보러 귀국했다는 박정애(65·여·사진)씨는 “러·우 전쟁이후 항공 직항노선이 끊기면서 우즈베키스탄이나 몽골, 두바이 등으로 경유해 다녔는데 최대 4박5일까지 걸리는 등 비용과 시간 모두 기존의 2~3배 정도 들어 부담이 엄청 컸다”며 “이제 동해와 블라디보스톡간 정기 카페리 노선이 재개돼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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