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정부관계 “해빙조짐”/눈길끄는 잇단 유해제스처
◎계열사 분리·상반기 1조원 설비투자/“신경제 동참”… 청와대입장 누그러져/「현대차 호남공장」 건설땐 획기적 호전 전망
지난 7일 열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대통령선거법 위반 제3차 공판은 20여분 만에 간단히 끝났다.지난번 2차 공판이 3시간이 넘게 걸린 것과 비교할 때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이에 앞서 지난 2일 최수일 현대중공업 사장에 대한 비자금 관련 선고공판에서는 최사장 등 5명에 대해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요즘 「현대맨」들의 표정은 차츰 밝아지고 있다.현대 주위에 짙게 드리워졌던 「먹구름」이 걷힐 조짐이 나타나는 탓이다.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달 29일 새정부 출범후 처음 청와대를 방문했다.한미재계 회의에 참석하는 인사들과 함께 한 모임에서 김영삼대통령에게 『부정부패 척결을 환영하지만 너무 길어지면 굳어지게 마련』이라며 『(지나간 것은 묻어두고) 이제부터는 용서 없다고 한다면 기업의 투자의욕이 되살아 날 것』이라고 말했다.일반론에 빗대어 현대그룹의 얘기를 한 것으로도 이해될 수있다.이에 김영삼대통령은 『열심히 잘 해 주십시오』라고 격려를 보냈다.
현대는 지난달 중순 청와대에 건의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이 건의서에서 현대는 산업은행으로부터의 4천9백억원 지원과 정부 부처와의 원만한 업무 협의를 위한 실질적 관계개선,그리고 선거법 위반 직원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그후 현대는 8개 계열사의 분리 및 통합을 전격적으로 선언했고,적극적인 투자를 요구했던 대통령의 뜻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상반기 중 1조1천억원의 설비투자를 집행키로 하는 등 정부정책에 재빠르게 호응하고 있다.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남은 일은 이제 한가지 뿐이라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현대자동차가 오는 2000년대 2백만대의 자동차 생산을 위해 구상 중인 신규 공장을 과연 호남에 세우느냐 여부이다.
이는 정부나 현대 모두에게 일종의 「꽃놀이 패」 같은 것이다.정부는 5·18 광주문제의 해결과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현대자동차의 호남 유치를 바라고 있고,현대 역시 정부와의 화해와 삼성의 승용차 진출을 막기 위해 굳이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분위기로 해석되고 있다.
현대는 이 문제를 금융규제 해제와 신규 공장건설에 대한 지원으로 연결시킨다는 복안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내부적으로 호남 입지를 거의 결정했으면서도 정부와 완전 화해의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 공식 입장을 유보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한편 민주당은 호남에 자동차 공장이 들어설 경우 고용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기대를 걸고 치열한 로비를 벌이고 있으며,실제 유인학의원은 지난달 27일 청와대를 방문,박관용 비서실장에게 이를 강력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거론되는 부지로는 목포 대불공단,여천공단,광양공단 등 3곳이지만 대불공단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꼽히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2공장의 호남유치 문제는 향후 정부와 현대의 관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라는데 별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