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선거 전후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 용수 확보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 기부행위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 약품안전처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 학교법인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739
  • 주택토지 분양 10년, ‘파주통일동산’ 가보니…

    주택토지 분양 10년, ‘파주통일동산’ 가보니…

    ‘한국의 베벌리힐스’로 각광받던 경기도 파주 통일동산 주택단지가 10년 만에 우후죽순 난립한 다가구 주택과 러브호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곳은 지난 1996년 당초 실향민 부모와 본인·자녀의 ‘3세대 주거전용단지’로 자유로 임진강을 끼고 북한땅이 눈앞에 보이는 탄현면 법흥리 일원에 분양됐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난개발로 주거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다. 1일 오후 통일동산 단독주택 단지. 주택 한 곳엔 ‘다가구로 밟힌 마을 불안해서 못살겠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토지공사가 분양자격을 엄격히 제한해 528필지를 분양한 곳이다. 이중 30여가구가 단독주택을 지어 절반 이상은 현재 실향민이 정착중이다. 난개발은 지난 2002년 6월 지방선거를 전후해 무더기로 다가구 건축허가가 나면서 비롯됐다. 현재 20개 안팎의 원룸·투룸 등을 갖춘 다가구 주택이 40가구나 건립돼 밤이면 단지내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할 지경이다. ‘아름다운 통일동산 만들기 주민협의회’(위원장 황인성)측 관계자는 “건축허가를 받고 착공시한(2년)을 넘겼으나 파주시가 허가를 취소하지 않아 건축이 강행된 다가구도 18가구에 이른다.”면서 “특히 74가구가 건축시한을 넘기고 착공하지 않아 언제 건축이 이뤄질지 몰라 불안하다.”고 밝혔다. 이미 지어진 다가구주택 중에서도 불법 증축했거나 구조를 변경, 가구수를 늘린 경우 등 27건의 난개발 유발행위가 적발되기도 했다. 자유로에 인접한 통일동산 입구 숙박단지의 마구잡이 개발도 문제다. 당초 이곳은 인근 오두산 전망대와 임진각의 안보관광지 내방객과 향후 남북교류 확대에 대비, 호텔 등 대형 숙박시설 입주를 목표로 지정됐다. 그러나 현재 영업중인 8곳의 모텔은 사실상 러브호텔로 변해 성업중이다. 이곳에서 500여m 위쪽으로 30개 안팎의 객실을 갖춘 모텔 한 곳엔 이날 오후 2시쯤 손님들이 몰고 온 승용차 15대가 주차돼 있었다. 이 러브호텔 옆엔 모텔 4곳의 건축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법흥4리 양희철(49·목사) 이장은 “이곳은 토지공사의 분양공고나 계약서에도 ‘3세대 주거단지’로 명문화됐었다.”며 “다가구가 가능한 것을 알았으면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청에 다가구주택 건축 불허가와 불법 증축 등의 시정을 요구중이며, 이후에는 주거환경을 해치는 러브호텔 퇴출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양씨는 “파주시가 당초 다가구 주택을 지을 수 없도록 하고, 숙박시설도 객실 숫자 하한선을 두어 러브호텔 입주를 막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파주시 관계자는 “건축허가 시한을 넘겨 허가를 취소했어야 하는 7∼8가구가 건축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건축법상 단독주택에는 단독주택·다중주택·다가구주택·공관 등이 모두 포함돼 다가구주택을 불허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고 난개발을 막을 후속조치도 부실했음을 인정한 셈이다. 이 관계자는 “허가기한을 넘긴 가구엔 조속히 청문을 거쳐 허가를 취소하고, 순수한 단독주택만 짓도록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난개발의 피해자는 단독주택 소유자뿐만이 아니다. 다가구를 지어 임대소득을 기대하던 이들도 막상 다가구가 난립하면서 임대가 어려워지자 불만이다. 통일동산 주택 한 곳에는 ‘땅주인 빚더미에 울고 건설업체 배불린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을 정도다. 당초 평당 분양가가 60만∼70만원이었던 택지는 ‘한국의 베벌리힐스’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친환경 주거여건이 알려지면서 한때 300만원을 넘었다. 현재 다가구 밀집지역은 200만원선으로 떨어졌다. 양씨는 “일부 다가구 주택의 원룸 주인들은 최근 인구 총조사에 응하지 않아 도피처나 불륜장소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걱정했다. 파주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월드이슈-창당 50돌 日자민당] 질주하는 네오콘 브레이크가 없다

    일본 집권 자민당이 지난 15일 창당 50주년을 맞았다. 올해는 또 일본의 패전 60주년이다. 일본국민들은 이를 계기로 패전의 멍에를 털고 ‘보통국가’가 되는 걸 은연중 희망하고 있다. 그 선두에 자민당이 서 있다. 세계2위의 경제대국 건설을 이끌어 온 자민당은 이제 군사 재무장을 통한 보통국가 실현을 꿈꾸고 있다. 민족주의 열기 속에 재무장과 ‘보통국가’를 가능케 하는 개헌이 다음 과제라고 공언하고 있다. 세계가 불안한 시선으로 자민당의 변신을 주시하고 있다. ■ 자민당 장기집권 계속될까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자민당은 창당후 한편으로는 경제 재건을, 다른 편으로는 ‘강력한 국가 재건’을 기치로 내걸었다. 경제 재건은 비둘기파(온건파)가, 국가 재건은 매파(강경파)가 각각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비둘기파와 매파가 균형을 이뤄 자민당이 장기간 집권할 수 있었다.”(마쓰노 라이조 전 자민당총무회장)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최근 네오콘(신보수)으로 일컬어지는 강경 매파가 독주하고 있다. 이들을 적절히 제어할 비둘기파는 숨죽이고 있다. ●고이즈미는 네오콘의 선두 자민당의 변신을 이끌 네오콘의 선두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서 있다. 임기 내내 주변국과 충돌하는 ‘힘의 외교’를 펼치며, 일본국민들을 시원하게 해줘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는 평이다. 전후 숨죽여 있던 민족주의를 자극,4년 8개월째 장기집권 중인 고이즈미는 내년 9월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자신의 유력한 후임자 가운데 네오콘들을 내각과 당의 전면에 배치했다. 반면 온건파인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등은 당·정 인사에서 배제시켰다. 이에 따라 총리가 될 경우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언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군대위안부에는 강제성이 없었다.”는 등 망언을 서슴지 않는 아소 다로 외무상 등이 민족주의를 자극하면서 ‘포스트 고이즈미’ 경쟁을 가열시키고 있다.‘고이즈미의 복심’ 다케나카 헤이조 총무상도 다크호스다. 여론 동향도 네오콘의 입지를 점점 넓혀주고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여론도 찬성이 반대를 속속 앞서기 시작했다. ●개혁 이미지로 포장 자민당은 지난 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이 대통합, 보수세력의 안정적인 집권체제 구축을 노렸다. 좌·우파 사회당의 전격 통합에 따른 보수세력과 재계의 위기감이 자민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세계2위의 경제대국을 이뤘지만 자민당은 금권에 기초한 파벌정치로 정·관·재계가 이권을 나눠먹는 ‘부패 커넥션’을 형성했다. 절정은 1972년의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록히드·리크루트 사건 등 정치뇌물사건이 터지면서 환골탈태를 강요받았다. 이후 자민당 정치에 대한 염증이 확산되면서 ‘자민당은 부패집단’이라는 인식이 각인됐다. 결국 1993년부터 10개월 정도 정권을 내주었다가 겨우 정권을 되찾은 자민당은 이후 치밀한 전략에 따라 당 자체를 ‘개혁 이미지’로 재포장했다. 우정 민영화로 대표되는 민영화, 공직사회·연금 개혁 등 ‘이미지 정치’를 통해 총선거에서 압승, 화려하게 부활했다. ●장기집권 전망 우세 자민당의 변화 시도에 여론은 뜨겁게 호응하고 있다. 농촌·기성세대에 기반했던 자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도 최근 선거에서 도시·젊은층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혁을 앞세운 새로운 전략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면서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계속될까. 답은 현재의 일본 정치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공산·사민당 등 진보정당은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오카다 가쓰야 전 대표가 “자민당과 이념적인 차이는 없다.”고 할 정도로 색깔이 불분명, 위기가 계속 중이다. 반면 자민당은 개혁이미지를 선점한 데다 변화를 꺼리는 일본 국민들의 성향으로 인해,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새롭게 시작됐다는 평도 있다. 다만 고이즈미 퇴임 후 ‘강력한 리더십’의 공백이 생기거나 개헌론의 본격화 등으로 이합집산 가능성이 거론되는 정도다. taein@seoul.co.kr ■ 위태로운 日 평화헌법 |도쿄 이춘규특파원|지난 22일 열렸던 창당 50주년 기념식 때 자민당은 자위대의 군대화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 초안을 발표했다. 평화헌법 개정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개정 공론화에 주력 일본 ‘평화헌법’은 전문에 평화주의를,9조에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영구히 무력행사를 포기’(1항),‘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은 보유하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2항)고 규정, 전쟁 포기와 군사력 불보유를 다짐했다. 자민당 매파들은 헌법 9조 1항의 전쟁의 영구 포기나,2항의 군대 불보유 두 개항 모두를 바꾸려 한다. 하지만 연립여당의 한 축인 공명당이 당론으로 9조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도 9조 1항 개정에는 반대하고 있지만, 네오콘(신보수)으로 불리는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가 2항 개정에 적극적이다. 이런 배경에서 자민당은 2항만 개정한다는 절충안으로 공명·민주당을 유인하고 있다. 현행 헌법 개정에는 중·참의원 모두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지만 자민당은 양원 모두 자체적으로는 개헌 정족수에 모자란다. 따라서 일단 개헌론을 공론화시킨 뒤 상황을 보면서 ‘전쟁 포기, 군사력 불보유’란 평화헌법을 폐기하려는 작전이다. ●군대보유·보통국가화 자민당 개헌안 초안은 ‘자위군 보유’는 물론 천황제 유지, 개헌요건 완화 등을 담았다. 지난 47년 제정된 현 헌법은 2차대전 패전의 반성에서 출발했다. 자민당 개정안은 ‘자위군 보유’를 명시, 지난 60년간의 평화주의 기본틀을 부정했다. 전쟁을 할 수 있었던 ‘보통국가’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자위대는 이미 국제공헌이란 이름 아래 전세계에 파병하면서 ‘군대보유 금기’사항을 희석시키고 있다. ●평화세력의 입장이 관건 일본의 평화헌법을 유지해온 ‘평화세력’이 약화되면서 개헌의 방어선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사회당·공산당 등이 크게 약화된 것은 물론 제1야당인 민주당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지도부가 들어서며 헌법 9조2항 개헌에 전향적이다. 여론도 민족주의 성향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민당의 개헌안이 곧바로 개헌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고이즈미도 임기 내 개헌을 정치일정에 올리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사회·공산당과 ‘평화시민세력’도 반대하고 있고 민주당도 섣불리 개헌논의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운 처지다. “정치권 내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본격 개헌논의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개헌론의 윤곽이 5년, 혹은 10년이 지나야 드러날 것”이란 분석이다. taein@seoul.co.kr
  • [사설] ‘한국경제 사공이 많다’

    우리 경제는 민간소비의 완만한 회복과 수출의 지속적인 증가세에 힘입어 최근 서서히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 추세대로 가면 내년에는 4%대 후반의 성장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잠재성장 동력 확충으로 이어지기에는 투자는 여전히 미흡하고, 소득 불균형의 심화로 지표와 체감경기의 간극은 커지고 있다. 경제주체, 특히 기업은 정국 불안과 차별적 규제, 정책조정 기능 미비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에 소극적이다. 그래서 한국선진화포럼이 경제부총리 중심의 경제운용 등 10대 긴급 제안을 내놓았다. ‘경제운용에 경제부총리가 보이지 않는다.’‘한국 경제에 사공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통령위원회, 국무총리실, 실세 장관 등 모두가 관여하고 훈수를 두려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책 대안은 남발되지만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 게다가 사공이 많다 보니 정부의 경제 인식은 국민과 괴리될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재경부 당국자가 포럼 월례토론회에 참석해 부처간 업무조율이 어렵다면서 “경제부총리에게 좀더 힘을 실어줘 일관성 있는 경제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맞장구쳤겠는가. 선진화포럼이 지적했듯이 내년은 우리 경제운용의 분수령을 이루는 막중한 시기다. 그러나 내년 상반기 지자체 선거를 전후해 정계의 ‘빅뱅’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의 소용돌이와 상관없이 정책만은 일관성 있게 추진될 수 있는 틀이 마련돼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10대 제안 중 ‘경제활성화를 위한 정치권 대타협’은 귀기울여 볼 만한 제안이라고 판단된다. 우리는 지난 2001년 ‘여·야·정 협의회’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주요 현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정쟁구도만 극복하면 주요 현안의 70% 이상을 합의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정부가 구상중인 ‘국민 대통합 연석회의’가 됐든 명칭에 구애받지 말고 경제와 민생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대타협은 하루바삐 추진돼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 유지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행정구역 통합 학산시 현장탐방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행정구역 통합 학산시 현장탐방

    일본 고이즈미 정부의 주요 개혁과제인 시(市)·정(町)·촌(村) 합병작업인 ‘헤이세이(일본의 연호) 대합병’이 진행 중이다.1999년 3232개이던 기초자치단체는 내년 3월 1821개로 대폭 줄어든다. 총무성은 대통합의 잘잘못을 내년 3월까지 검증, 합병 후의 문제점을 줄여가겠다는 구상이다. 합병 작업이 진행중인 이시가와현 학산(白山)시를 찾았다. |학산(이시가와현) 이춘규특파원|도쿄 서북쪽, 동해안 연안의 이시가와현 학산시는 지난 2월 1시,2정,5촌이 합병해 탄생했다. 이시가와현 최대의 면적에 인구는 11만명이 됐다. 합병 뒤 선거를 통해 새 통합시장이 탄생했고, 각 시·정·촌 의회는 해산, 시 의회로 통합됐다. 격변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는 셈이다. ●변화의 칼바람 맞은 상층부 합병에 따른 변화는 격렬하다. 우선 8개 자치단체장 중 시라미네 촌장 등 7명은 자리를 잃고, 맛토 시장이었던 통합 학산시 카도 미쓰오(74) 시장만이 기초단체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부단체장도 8명에서 1명으로 줄었고, 교육장과 회계·재정담당자도 역시 8명에서 1명으로 축소됐다고 기타노 고이치 학산시 총무부장이 설명했다. 지역사회 상층부 32명 중 28명이 대통합으로 인해 졸지에 자리를 잃은 것이다. 지역유지들인 의회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시·정·촌 의회 8곳의 의원들은 합해서 100명 정도였다. 카도 시장은 “숫자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도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단체장, 부단체장 등이 크게 줄었는데 안줄일 수 없다고 판단,35명으로 대폭 줄였다.”고 설명했다. ●대통합의 바람은 이제 시작일 뿐 하지만 군살빼기는 시작일 뿐이다. 시의회 의원 정수는 차기 선거 때 28명으로 준다. 이처럼 인건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상층부만 줄여도 예산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시관계자들의 설명이다. 8개 시·정·촌 소속 직원들은 한개 시의 직원이 됐지만 아직까지 1040명의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카도 시장은 “10년에 걸쳐서 직원을 200명(20%) 정도 줄이겠다. 인위적인 조기퇴직보다는 채용 인원을 3분의 1, 혹은 5분의 1로 해서 줄이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학산시, 자력갱생 목표 일본 정부는 합병 작업이 지지부진하자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들었다. 재정적인 압박과 지원을 병행한 것이다. 덩치를 줄이는 자치단체는 중앙정부가 재정 지원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깍겠다고 선언, 대부분이 통합대열에 끼었다. 학산시도 마찬가지다. 학산시는 8개 시·정·촌이 기존의 이름을 모두 버리고 일본의 3대 명산 중 하나인 학산 자락에 위치한 점을 살려,‘학산시’로 태어났다. 지명도를 높여 관광과 공업, 농업으로 자립하겠다는 의지였다. 학산시도 통합에 따라 중앙정부에서 10년간 450억엔(약 4000억원)의 특별지원을 받을 자격이 생겼다. 그 중에서도 70%는 중앙정부의 직접 지원금이다. 하지만 카도 시장은 “중앙정부 지원은 빚일 뿐이다. 따라서 100억엔 정도만 지원받으려 한다.”고 말했다. ●학산의 관광자원·특산물 알린다 학산시는 우선 명산 학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 수입을 늘릴 예정이다.8개 자치단체에 흩어졌던 축제, 고산식물 등 관광자원을 모아 시너지효과를 노린다. 학산 브랜드의 각종 상품들을 개발, 판매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학산시내 5개의 니혼슈(청주) 회사들은 ‘학산’을 특허 형식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학산이란 상표로 청주 등을 생산, 판매하며 280년,16대째 이어온 고보리주조사 고보리 히로야스 기획실장은 “최고의 청주 생산을 위해 최고의 쌀과 물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학산이란 청주로 고향도 알리고, 세수 증대에도 기여하려는 것이다. 학산 청주는 도쿄, 홋카이도, 가고시마 등 일본 전역에서 유명하고 해외로 수출도 되고 있다. 학산시를 흐르는 테도리가 천은 매년 10월말부터 11월말까지 연어낚시꾼들로 붐빈다.1978년부터 이시가와수산종합센터가 매년 2∼3월 600만∼800만 마리의 연어 치어를 방류, 매년 1만∼2만 마리의 팔뚝만한 연어들이 모천으로 회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1920년대부터 학산에서는 대규모 산사태가 빈발, 이후 첨단의 사방(砂防) 기술을 발달시켰다. 이런 기술은 한국과 타이완, 중국 등지로 전수되는 중이라고 한다. 일제 식민지 시절 학산에서는 사방공사에 동원된 수많은 조선인들이 100㎏ 전후의 바윗덩어리를 나르다 희생된 어두운 역사도 있다. taein@seoul.co.kr ■ 행정구역개편 이렇게 |학산(이시가와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대규모 행정제도개편은 이번이 세번째다.19세기말 메이지정부가 시·정·촌제를 도입하며 농촌위주의 봉건적 행정체계가 사라졌다. 전후 1953년부터 3년간은 역시 시·정·촌 합병인 ‘쇼와대합병’이 이뤄졌고, 이번 합병이 세번째다.47개의 광역단체 수를 대폭 줄여 도·주제(道州制)를 실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번 대합병의 가장 큰 목적은 악화일로의 재정난 타개다. 시대 흐름에 맞게 통합, 재정지출을 최소화한다는 취지다.50여년 된 현행 제도는 교통망 발달에 따른 생활권광역화에 적합지 않다는 점도 이유다. 이농현상에 따른 농촌·산간지역의 인구 감소도 행정비효율을 초래했다며 통합을 재촉했다. 앞으로 중앙정부는 통합 지자체의 예산과 공무원 수 삭감을 유도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합병은 지자체 의회의 결의와 주민투표 등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재정적 유인책이 컸고, 일부 강제성도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지방자치를 보장한 헌법에 반한다는 비판도 있고, 환상이란 우려도 있다. 대합병에 따른 명암도 엇갈린다. 새로운 통합자치단체 신청사 등 대규모 공공시설공사가 많아 합병특수가 있다. 주민의식조사, 신도시건설 계획 등 컨설팅업체도 분주하다. 반면 서리를 맞는 곳도 적지 않다. 이미 기초단체장, 부단체장, 교육장 등 많은 지역유지들이 자리를 잃었다. 전국의 정·촌을 회원으로 해 정·촌의 요구를 정부에 전달해 온 ‘전국 정·촌회’도 회원수가 격감, 회비수입이 줄며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전국의 정·촌수는 2003년 4월 2513개였지만 7일 현재는 1395개이다. 대합병이 완료되는 내년 3월말에는 1045개로 줄어들 전망이다. taein@seoul.co.kr ■ 학산시 술도가 오쿠무라부부 |학산(이시가와현) 이춘규특파원|우리나라의 막걸리와 흡사한 도부로쿠(탁주)가 고이즈미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 덕분에 대중주로 부활하고 있다. 여관 ‘시시쿠소’ 주인 오쿠무라 에이지 부부도 대합병과 규제완화 등 개혁 바람의 한복판에서 ‘도부로쿠 특구’를 앞세워 새로운 학산시 알리기에 발벗고 나섰다. ▶도부로쿠 특구는 무엇인가.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술도가에서만 제조하던 도부로쿠를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일반시민도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시작했다. ▶조건은 무엇인가. -숙박시설을 갖춘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고, 자신의 집에서 쌀을 생산해야 한다. 면적 제한은 없다. 냉장보관숙성 시설 등 생산설비도 자격요건이다. 주세법의 제약이 남아 있다. ▶왜 이 동네에 특구가 허가났나. -이 곳은 술이나 미소(일본식 된장), 간장, 미네랄 등 공업이 번성했다. 이런 전통에 따라서 도부로쿠 특구도 허가가 난 것으로 보인다.6주간 연수도 필요했다. ▶학산은 왜 술이 유명한가. -기온의 연·일교차가 크기 때문이다. 청주나 도부로쿠를 발효시키려면 온도 조건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나 이시가와현의 지원은 없나. -비품을 시에서 구입한 걸 빌려쓰고 있다. 생산공정도 지원해주고 있다. ▶맛이 궁금하다. -청주와는 전혀 다르다. 알코올 도수는 청주와 비슷하지만 마시기가 쉽다. ▶외부에서 온 손님에게도 파는가. -고객이 와서 사갈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직접 들고 가 팔 수는 없다. 숙박손님이 사서 들고 갈 수도 있지만, 택배로 부칠 수는 없다. taein@seoul.co.kr
  • “종이당원 없애라” vs “창당정신 훼손”

    “종이당원 없애라” vs “창당정신 훼손”

    내년 2월18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열린우리당 내에서 기간당원제 문제가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각 계파들은 내년 지방선거에 이은 대선을 겨냥해 내부 저울질에 나서는 분위기다. 정세균 의장도 당헌·당규 개정 검토 입장을 보이고 있는 등 당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개정쪽으로 흐르고 있다. 그러나 유시민 의원이 이끄는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가 13일 폐지불가 입장을 재확인하는 등 강력 반발 중이다. ‘정동영(DY)계’를 중심으로 한 당내 주류측은 현 기간당원제의 비현실성을 이유로 대폭적인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김근태계’는 크게 반대하지는 않지만, 대폭적 개정은 필요없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져 정동영계와 온도차가 느껴진다. 두 대권주자가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자신들의 입지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미 당내에서는 당비 납부 기간 6개월로 정해진 기간당원제의 요건을 완화하자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공직후보 선출시 국민참여경선 과정에서 일반당원의 참여허용과 여론조사를 반영하자는 등 구체안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계의 한 의원은 “기간당원제 고수를 주장하는 의원에게 ‘솔직히 기간당원 50만여명 가운데 90%는 종이당원 아니냐.’고 하자 ‘90%는 아니고 80% 정도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기간당원제는 밀실·정략·금품 공천을 없애고 당원 중심의 정치를 하겠다는 창당 정신이 담긴 제도지만 그동안 “외부인사 영입을 막는 장애물”,“소수파에 의해 정략적으로 좌우된다.”는 등 비판이 제기돼 왔다. 실제 지난해 7월 2만 5000여명에 불과했던 우리당 당원 규모는 지난 2월 당원협의회장 선거를 전후 23만 5000여명으로 늘었다. 이어 3∼4월 재·보선 후보 경선과 전대를 마친 뒤 14만 8000명 수준으로 빠졌다가 내년 지방선거 공직 후보자 당내 경선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입당 마감일인 8월 말 50만여명으로 급증했다. 지방선거에 출마할 인물들이 대거 종이당원을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동영계인 ‘바른정치모임’의 김현미 의원은 최근 “선거에 이기는 정당을 해야 한다. 정당개혁, 정치개혁만 성공하면 된다는 분들이 있는데, 다른 데 가서 하라.”며 참정연측 유시민 의원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참정연은 종이당원 문제 해결에 공감하지만 당헌 개정까지는 필요없다는 입장이다. 참정연의 김희숙 대변인은 “일부에서 기간당원제 완화나 폐지를 주장하는데 당헌 틀 내에서 당규를 제정하면 된다.”고 밝혔다. 전대를 제외한 당내 최고의결기구인 중앙위 해체 문제도 논란거리다. 기간당원제를 포함해 당헌·당규를 개정하더라도 중앙위 의결을 거쳐야 한다. 현재 중앙위의 20%를 점하고 있는 참정연측은 해체불가 입장이다. 개정안을 부결시킬 수 있는 마지막 방어막이기 때문에 해체불가에는 김근태계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재야파 모임인 민평련(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의 한 의원은 “중앙위를 해체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전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로브·럼즈펠드 경질 임박”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과 정부의 요직을 대폭 개편할 것이라고 시사주간지 타임이 전했다.부시 대통령의 정부 개편은 세금 제도 개편 등 임기말의 핵심 정책을 추진할 동력을 얻고, 내년에 치러질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침체된 공화당에 활력도 불어넣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중간선거가 끝나면 부시 대통령의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이 본격화되고 미 정국은 본격적으로 2008년 대통령선거를 향할 것이라고 타임은 분석했다. 타임은 14일자 최신호에서 먼저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인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 겸 정치고문이 백악관을 떠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최근까지도 로브가 없는 부시 대통령을 상상하기도 어려웠지만 ‘리크게이트’ 때문에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타임은 리크게이트를 수사중인 패트릭 피츠제럴드 특별검사가 로브를 위증 등의 혐의로 기소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증거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면서 로브가 기소되면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처럼 즉각 사임할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특히 타임은 로브가 기소되지 않더라도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볼 가능성이 있다면서 만약 그가 백악관을 떠난다면 백악관 보좌진에 변동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행정부 관리들은 부시 대통령이 1년 안에 앤드루 카드 비서실장을 경질하고 새 비서실장과 공보비서를 임명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함께 부시 대통령은 리크게이트로 기소된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의 유죄가 결정되면 그를 사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고 타임은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이 정쟁 과정에서 희생된 측근들을 임기 말에 사면했던 전직 대통령의 사례를 따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타임은 아울러 재무장관과 국방장관도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02년 백악관과의 의견충돌로 갑작스럽게 사임한 폴 오닐 장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존 스노 재무장관은 그동안 부시 경제팀을 장악하지 못하는 ‘약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의 주요 정책이 될 세제개편을 추진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인물을 찾을 것으로 타임은 예측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경우는 지난해 11월의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부터 경질론이 제기됐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재선 뒤 적어도 1년은 럼즈펠드 장관을 교체하지 않을 것으로 워싱턴의 관측통들은 예상했다.럼즈펠드를 교체할 경우 이라크전에서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장기화된 이라크전 때문에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어 럼즈펠드 장관의 교체 등을 통해 이라크 정책에 새로운 활력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dawn@seoul.co.kr
  • ‘충청발 정계개편’ 급류

    ‘충청발 정계개편’ 급류

    자민련과 심대평 충남지사가 중심이 된 ‘국민중심당(가칭)’이 4일 통합에 합의했다. 심 지사와 자민련·국민중심당 소속 국회의원 6명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당 창당에 동참하고, 창당이 완료되면 자민련은 곧바로 신당에 흡수·통합한다는 원칙을 발표했다. 통합협상에서 걸림돌로 지적됐던 자민련 의원의 당적 문제는 소속 의원 3명 모두가 곧바로 국민중심당 창당준비위원으로 활동하되 김학원 대표만 창당이 완료될 내년 1월까지 현 당적과 대표직을 유지하는 선에서 가닥을 잡았다. 나머지 이인제·김낙성 의원은 “자연스럽게 자민련 당적을 정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로써 내년 5월 지자체 선거를 전후해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는 ‘충청발 정계개편’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당초 자민련 소속이었던 심 지사가 탈당까지 불사했으나 결국 자민련 잔류세력과 손을 잡게 됨으로써 김종필(JP) 전 총재로 대변되는 ‘자민련 색깔’에서 벗어나 세 확산에 나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당 추진파는 이날 “현 정권의 무능과 실정으로 나라의 위기의식이 고조되지만 기존 야당도 대안세력으로 평가받지는 못한다.”면서 “지역 패권정치의 폐해를 시정하고 극복할 수권정당의 밑거름이 되는 신당을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심 지사는 민주당과 합당 가능성, 고건 전 국무총리의 영입설 등에 대해 “(창당 준비)과정에서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특정인을 지칭해 함께 하겠느냐는 문제나 다른 당과의 통합 문제는 창당 이후에 논의하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김학원 대표는 JP와의 사전 교감설에 대해 “(JP는)정계를 떠난 이후에는 전혀 정치문제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데스크시각] 2% 부족한 서울시 행정/김성곤 지방자치뉴스부 차장

    ‘25일 동안 520만명,4개월 만에 700만명’‘동막골’이나 ‘말아톤’의 관객 얘기가 아니라 청계천과 서울숲의 관람객 숫자다. 지난 10월 1일 개통 이래 청계천에는 하루 평균 20여만명의 관람객들이 찾고 있다. 주말이면 걷기 힘들 정도로 혼잡할 때도 있다. 청계천은 하루에도 몇번씩 변신한다. 점심 때가 되면 청계천은 직장동료 등 도심 샐러리맨의 산책로가 된다. 저녁에는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에서 섞인다. 서울사람도 있고, 서울 아닌 다른 곳 사람도 있다. 술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조의 발걸음과 마주치기도 한다. 늦은 밤이나 새벽녘에는 웰빙족도 등장한다. 청계천이 낳은 새 도심 풍속도다. 청계천에는 가끔씩 유채꽃도 만발한다. 노란색 유니폼, 노란색 가방의 행렬들…. 유치원생들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의 청계천 나들이 풍경이다. 이들은 청계천을 찾는 김에 서울광장도 반드시 들른다. 올망졸망한 어린이들이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서툰 젓가락질로 도시락을 먹는 모습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스스로 마음 속에 가둬버린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담 너머 고궁이나 야외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을 서울 도심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서울숲도 마찬가지다. 하루 평균 1만∼1만 5000명이 찾는다. 주말에는 5만∼6만명이 서울숲을 누빈다. 청계천∼서울숲 코스는 지방 학생들의 수학여행코스로 자리를 잡았다. 내국인뿐만이 아니다. 외국인들에게도 청계천은 이제 명소다. 여행사마다 청계천 투어 상품을 개발했다는 소식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굳이 상품으로 내놓지 않더라도 한국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제 청계천 정도는 알고 들어 온다. 타임지가 청계천과 청계천 개발의 주역 이명박 서울시장을 커버로 소개했고, 디스커버리채널도 최근 청계천을 경이로운 눈으로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지천을 먼저 살리지 않고, 청계천을 복원하는 바람에 한강물을 길어다 청계천 유지용수로 쓴다느니, 졸속으로 복원을 추진, 자연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았고, 후세에 제대로 된 개발을 아예 막았다는 비판적인 얘기도 있지만 청계천이 낳은 효과를 가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어쩌면 적절한 비판이 아닐 수도 있다. 예전에 서울에서 가볼 만한 곳을 묻는 외국인 친구에게 “고궁과 남산, 한강유람선…” 하다가 머뭇거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청계천과 서울숲 등은 이런 군색한 필자의 메뉴판을 풍성하게 해줬다. 세계 어디에 내놓더라도 손색이 없는 명소인 것이다. 이런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굳이 계량화한다면 2%쯤 될까.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너무 외과수술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닌지, 또 외과수술의 효과를 과신한 나머지 다른 수술들을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다. 서울에는 겉병 말고도 속병들이 적지 않다. 외과수술 말고도 내과수술이 적잖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간혹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더라도 잠시 메스를 거두고, 이제 속병을 들여다볼 때라는 생각이다. 서울시가 제시한 대형 프로젝트 가운데 마지막 남은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의 착공시기를 놓고도 말이 많다.2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착공하는데 좀더 시간을 두고 철저한 검토와 연구를 거치자는 얘기도 만만치 않다. 혹자는 다음 세대나 다음 시장에게 이 일은 맡기자는 얘기도 나온다. 새겨들을 만한 얘기이다. 부족한 2%는 청계천 복원을 전후한 각종 사고의 처리에서도 느껴지는 대목이다. 복원 첫날 실족사가 난 이후 유족의 섭섭함이나 이후 사고가 난 삼일교 조형물 설계자와 서울시와의 책임공방, 또 “한낮 청계천 복원 기념 마라톤에 참석했던 남편이 저녁에 뇌졸중으로 돌아왔지만 서울시에서 나몰라라 한다.”며 하소연한 경기도 분당에 사는 어느 가정주부의 섭섭함 등도 서울시가 메울 수 있었던 2%로 다가온다. 때론 2% 부족으로 사람이 죽기도 하고,2% 때문에 선거에 지기도 한다는 점을 이명박 시장이나 서울시는 알았으면 한다. 김성곤 지방자치뉴스부 차장 sunggone@seoul.co.kr
  • [사설] 대연정 논란 이젠 없던 일로 하자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어제 “연정 얘기는 끝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직 대연정에 미련을 갖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집권여당 의장이 연정론을 확실하게 정리한 것은 잘한 일이다. 정책·지향점이 다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간 연정을 추진하는 자체가 국정을 혼란스럽게 할 우려가 있었다. 문 의장은 이번 발언을 식언(食言)으로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노 대통령은 올 정기국회가 끝나는 연말까지 대연정 등 정치적 사안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언급했었다. 이는 한시 조치로 여겨졌으며, 적절한 기회에 연정을 재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지난주 청와대는 대연정 논의 진행상황이 포함된 ‘독일총선 전후 정치분석 보고서’를 여야 국회의원 등 각계 인사 3만여명에게 이메일로 보냈다.“연정 재론 의도는 없으며, 독일 사례를 고민하자는 것”이라는 해명에도 불구, 연정론의 군불을 지핀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 의장의 연정론 종료선언 이후에는 이런 오해를 부를 언행이 없어야 한다. 특히 문 의장의 언급이 10·26 재선거 득표를 위한 일회용이어선 안 된다. 문 의장은 “(여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대통령의 연정 발언 때문이라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연정론 종료선언에는 열린우리당의 기존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키기 위한 속내가 깔려 있음을 털어놓은 셈이다. 대다수 국민이 바라지 않는 연정론으로 급격히 떨어진 여당 지지율을 만회해보려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선거가 끝난 뒤 약속을 뒤집는다면 국민으로부터 더욱 외면받게 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문 의장 발언과 관련,“현실적으로 대연정 추진이 어려워진 점을 말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어 “사전협의는 없었다.”고 밝혔으나 노 대통령과 문 의장간 이심전심이 있었기를 기대한다. 내년 이후에도 대연정 논란이 재연되어서는 안 되며, 대통령 임기단축 등 충격 조치도 당연히 없어야 한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을 비롯한 각 정당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맞는 정책을 제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게 떳떳하다.
  • “연정얘기 끝난것으로 본다”

    “연정얘기 끝난것으로 본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이 10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연정 얘기는 끝난 것으로 본다.”고 밝혀 주목된다. 사실상 지난 7월 이후 정계 최대 화두였던 연정론을 공식 폐기한 셈이다. 이날 발언은 문 의장이 여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이유를 가리켜 “경제가 나빠서라는 분도 있고, 대통령의 연정 발언으로 지지층이 이반했다는 분석도 있고, 안보불안 때문이라고 하는데 다 일리가 있다.”고 답하면서 나왔다. 그는 “경제지표가 좋아졌고,6자회담의 성공으로 안보불안이 해소됐으며, 대통령이 당분간 연정 얘기도 안 하기로 했으니 객관적 상황이 변하고 있다.”며 지지율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한 뒤 “더 이상 연정 얘기가 나오는 것은 아마 어렵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못박았다. 이에 대해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현실적으로 대연정을 추진하기 어려워진 것을 말한 게 아니겠느냐.”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뚝심의 리더십’을 강조한 문 의장은 이날 여당의 점수를 매겨달라는 질문을 받고 “주제넘지만 80점 정도”라며 짐짓 자신감을 피력했다. 당 일각에서 제기된 조기 전당대회 요구에 대해서는 “김근태·정동영 두 장관이 복귀하는 것과 조기 전당대회는 전혀 관계없다.”고 일축하며 “임기는 다 채우겠다.”고 공언했다. 다만 두 장관의 복귀 시점은 “내년 지방선거 전후로 거론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고건 전 총리를 영입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선을 각오하고 들어온다면 굳이 마다하지 않겠다.”면서도 “대권후보로 영입하는 건 인위적이라 찬성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문 의장은 의장직 수행과 관련해 “대통령 비서실장 수준이라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 “저는 생각이 다르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그는 “정책적인 당정협의는 ‘일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주, 많이 하고 있으며 소주세 인상문제만 봐도 당이 주도권을 갖고 반대했다.”고 자부했다. 정·재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삼성그룹에 ‘5%룰’ 초과지분 해소를 위해 5년간 유예기간을 두는 박영선 의원의 안에 찬성한다.”면서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를 분리하지 말고)전체적으로 5년간 유예해 팔도록 기회를 주자는 안에 찬성한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이 제안한 8조 9000억원 감세안은 “부자들의 세금만 깎아주겠다는 것”이라면서 “포퓰리즘으로 인기나 얻자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방북 문제에 대해서 문 의장은 “정부에 의사를 표시했고, 거기에 따른 조치를 해달라고 했다.”면서 “특사자격으로 갈지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고, 뭐라고 답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클릭이슈] 선관위-지자체 줄다리기 2R

    [클릭이슈] 선관위-지자체 줄다리기 2R

    전국 기초 자치단체가 내년 5월 치러지는 제4회 지방선거관리 비용의 부담을 거부하기로 결의한 가운데 중앙선관위와 자치단체, 행자부간 비용 규모를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당초 8300억원의 비용을 추산했다가 뒤늦게 2000억원을 줄여 다시 통보하자, 지자체의 거부 움직임을 막기 위해 비용을 축소했으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든다고 자치단체가 거듭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관계자는 3일 “중앙선관위가 당초 내년 지방선거관리비용으로 8299억원을 추산했다가 자치단체에서 예산 편성 거부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대폭 줄여 행정자치부와 자치단체에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선관위가 이처럼 예산을 대폭 축소한 것은 자치단체의 부담이 많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며, 선관위 계산대로 예산 편성을 하면 내년에 선거를 치른 뒤 자치단체에서 예비비로 추가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선관위는 지난 7월30일을 전후해 전국 자치단체에 부담해야 할 금액을 통보했는데, 전국적으로 합산하면 모두 8299억원에 이른다. 선거관리비용 2287억원, 후보자들에게 보전해줄 비용 6012억원이다. 이 가운데 65%는 시·군·구에서 부담을 하고, 나머지 35%는 광역에서 부담토록 돼 있다. 하지만 선관위가 9월30일을 전후해 다시 통보한 금액은 처음 통보한 것보다 2074억원이 줄어든 6225억원이다. 후보자에게 보전해야 할 비용이 6012억원에서 2468억원 줄어든 3544억원으로 축소했다. 반면 선거관리 비용은 393억원 늘었다. 재산정 결과 기초자치단체의 부담은 당초 5398억원에서 1749억원 감소된 3649억원으로 수정됐다. 서울시와 25개 구청에는 당초 1390억원이 필요하다고 통보됐으나 나중에 956억원으로 줄었다. 서울 강남구도 처음에는 47억원의 예산 편성을 요청했다가 23억 7700만원으로 줄었다. 이와 관련, 구청장협의회 관계자는 “협의회가 전국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파악한 결과 보전비용만 6565억원 정도로 선관위가 나중에 통보한 것보다 3021억원 정도 더 들 것 같다.”면서 “선관위가 자치단체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지자체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선관위 관계자는 “관련 법에 예산을 편성하려면 7월30일까지 통보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그 규정을 따른 것”이라면서 “그 뒤인 8월4일 법이 바뀌어 새로운 법에 따라 산출방식을 변경했기 때문에 금액이 줄었다.”고 해명했다. 반발 때문에 축소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행자부는 지자체의 부담을 덜기 위해 산출방식 변경을 선관위와 협의했다고 말해 자치단체의 주장을 ‘어느 정도’인정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지자체의 거부 움직임이 있은 뒤 자체적으로 대책 마련을 검토했으며, 자치단체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선관위와 일부 제도를 변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선관위가 과다계산한 것이 많아 대폭 줄였다는 것이다. 우선 선거 전에 선관위에 보전비용을 납부해야 했던 것을 선거가 끝난 뒤 납부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또 보전비용 산출도 지금까지는 후보자의 법정 경비 전액을 확보토록 했으나 이를 보전비용의 75%정도만 확보토록 해 지자체의 부담을 줄이도록 했다. 기관간 갈등은 후보자에게 보전해줘야 할 금액이 얼마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후보자가 일정비율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을 돌려주는 것인데, 기존엔 15% 이상 득표하면 전액 돌려주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 바뀐 법에는 10∼15%를 얻어도 선거비용의 50%를 돌려주도록 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는 중선거구제가 되고, 보전 대상자가 확대되면서 보전비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중앙선관위는 중선거구제에서는 낙선자들이 10% 이상 득표하기가 쉽지 않아 오히려 줄어든다고 맞서고 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청계천 새물길 열렸다] 47년만에 다시 시민의 품으로

    [청계천 새물길 열렸다] 47년만에 다시 시민의 품으로

    청계천에 다시 물이 흐르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인간이 자연과 떨어져 살 수 없다는,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개발 위주, 편리함을 추구하던 우리사회가 삶의 질 향상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58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복개,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청계고가도로는 개발주의 시대의 상징물이었다. 그 앞에서 600년 역사의 흐름은 무기력하기만 했다. 이제 원래 모습을 되찾은 청계천은 사람과 자연의 행복한 만남의 상징물이다. 차량과 고층 빌딩이라는 도심의 ‘점령군’이 철수한 자리에 원래 주인이었던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게 된 것이다. 급격한 도시화에 따라 ‘서울의 하수구’로 전락했던 청계천에 원래의 푸른 물결을 되돌려주자 벌써부터 버들치와 잉어가 돌아오고, 왜가리 등 새들이 날아와 도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조선왕도의 개국에서부터 일제 침탈까지의 굴곡의 역사를 지켜본 청계천이 잠시 호흡을 멈췄다가 다시 미래로 흐르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화합의 표상이며, 미래를 여는 창인 셈이다. 서울이 정체성을 회복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의의도 크다. 지금 서울에서 600년 고도(古都)의 흔적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 그리고 압축성장을 겪은 서울은 ‘정체성’을 상실한 채 끊임없이 확장돼 왔다. 청계천 복원은 서울이 국적 불명의 상태에서 벗어나 한민족과 함께 어우러지는 ‘인간다운 도시’로 탈바꿈하는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역사성을 되살리는 데 소홀했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은 미완의 숙제로 남는다. 공기를 맞추다 보니 호안석축 등 문화재 복원 등에는 다소 미흡했다. 결국 청계천 100인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이 참여를 중단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결국 청계천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서는 장충단공원에 있는 수표교를 옮기는 등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작업이 계속돼야 한다.‘복원을 빙자한 개발사업’이라는 오명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간과돼서는 안된다. 환경, 그 자체로 소중한 청계천을 가꾸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청계천 주변을 고층 빌딩숲으로 만드는 것에만 급급하지 말고 남산, 종묘, 한강 등 도심의 자연·역사 환경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성숙한 시민의식도 요구된다. 청계천은 이제 서울시의 전유물이 아닌, 서울시민과 국민 모두에게 주어진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역대 서울시장 ‘한마디’ 회색빛 청계천 고가도로와 함께한 역대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사업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서울신문은 10월1일 역사적인 청계천 복원에 맞춰 1970년 이후 15대 양택식 시장에서부터 이명박시장 전임인 31대 고건 시장에 이르기까지 13대 12명의 역대 시장에게 청계천 복원에 대한 촌평을 부탁했다. 역대시장들은 대부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발언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것을 염려하는 시장도 있었고, 접촉이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고건(67):제22대(1988.12.5∼1990.12.26),31대(1998.7.1∼2002.6.30) 두 차례나 서울시장을 역임한 고 전 시장은 “훌륭하고 잘 한 일”이라며 “충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일이다.”라고 호평했다. 그의 재임 중에도 청계천 복원문제가 거론됐었지만 ‘후임 시장들의 몫’이라며 미뤄뒀었다. 그는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탓인지 말을 아꼈다. ●조순(77):30대(1995.7.1∼1997.9.9) “아주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은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운영 과정의 문제점은 그때그때 보완해 나가면 된다.”조 전시장은 취임 직전 삼풍백화점이 붕괴돼 사건 현장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재임 중 성수대교와 당산철교를 새로 놓았으며, 여의도 광장 등을 공원화해 시민의 시정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주춧돌을 놓았다. ●최병렬(67):29대(1994.11∼1995.6) “서울을 바꿔 놓은 역작이다.” 최 전 시장은 “교통난이 우려되는 가운데 대담하게 고가도로를 철거했는데 교통에 영향을 적게 미치면서 서울의 옛 모습을 복원시켜 시민을 즐겁게 했다.”면서 “경제적인 효과까지 거뒀으니 일거삼득이다.”고 극찬했다. 최 전 시장은 이어 “성수대교 붕괴로 시장을 맡은 이후 다리 고치고, 지하철 고치다가 임기를 보냈다.”며 자신의 재임시절을 회고했다. ●김상철(56):26대(1993.2.26∼1993.3.4) 7일 동안 서울시정을 맡았던 김 전 시장은 “청계고가를 해체하고 청계천을 복원한 것은 창조적인 발상의 소산”이라며 “도심에 물길이 흐르면서 도심의 생명력도 살아났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주변 상인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명박 시장과 시청 직원들의 지혜와 추진력이 큰 역할을 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상배(66):25대(1992.6.26∼1993.2.25) “92년에는 교통 혼잡을 극복하는 문제가 가장 큰 이슈여서 복원 사업을 할 여건이 못됐다.” “그때 복원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전 시장은 “이제 정릉천 등 지하에 묻힌 다른 개천들이 복원될 차례”라면서 “삼청공원에서 시작되는 청계천 수원도 원래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세직(72):23대(1990 12.27∼1991.2) 한 달 반정도 서울 시정을 맡은 박세직 전 시장은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 당시 외국손님이 많이 왔을 때 도심에 산책코스가 마땅히 없어 아쉬웠었다.”면서 “이번 청계천 복원으로 도심에 산책코스가 생긴 것은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데에 있어 상당히 잘 된 일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공사 초반 교통문제 등의 우려와 달리 성공적으로 끝나 국내·외적으로 호평을 받는 것은 건축·토목 분야 경험이 많은 이명박 시장의 공”이라고 말했다. ●김용래(71):21대(1987.12.30∼1988.12.4) 김 전 시장은 “과거 서울은 교통정책·도시재개발정책 등 개발정책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으나, 지금은 문화와 환경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면서 “이런 의미에서 청계천 복원은 시대의 흐름을 잘 짚어낸 역작”이라고 말했다. 김 전 시장은 이어 “재임 당시 88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문화와 환경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좀더 인간적인 서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바로 이 때부터 태동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당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고 소개한 뒤 “고가도로 자체의 설계가 정밀하게 되지 못해 일부 구간은 통행을 중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성곤 이두걸 김유영 김기용기자 sunggone@seoul.co.kr ■ 숫자로 본 청계천 ‘연인원 69만 4405명이 동원되고, 돌 6만 9194t이 투입됐다.’ ‘콘크리트 20만 5280㎥, 철근 3만 5000t을 캐냈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대표하는 숫자들이다. 2003년 7월1일 청계고가도로 철거와 함께 첫 발을 뗀 복원공사는 823일 만인 2005년 9월30일 매듭이 지어졌다. 공사구간 3곳에 동원된 공사관계자들은 여름철 강우 때 물이 흘러들 것에 대비, 한겨울에도 모닥불을 쬐가며 하안 벽체를 조성하는 등 공기(工期)를 맞추려고 쉼없이 일했다. 청계천에 얽힌 숫자는 흥미진진하다. 청계천 복원구간 길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5847m. 시오리(里)에 조금 못미치는 거리다. 2년 3개월동안 10t,15t짜리 덤프트럭 13만 5182대가 투입됐으며, 하루 평균 165대가 북적댔다고 보면 된다. 공사에 들어간 인원은 하루 평균 850명이다. 청계천을 유지·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전기사용 용량은 2200㎾로,30W 전구 7만 3000개를 동시에 켜는 것과 맞먹는다. 전기요금만 연 8억 8000만원이나 된다. 가구당 연간 40여만원을 전기료로 낸다고 치면 2000여가구의 아파트단지가 쓸 전력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또 공공 산업용 전기료는 ㎾당 기본요금 4500원, 사용료 당 50원으로 싸게 매겨지기 때문에 민간차원으로 환산하면 어림잡아 21억 4000여만원을 내야 하는 셈이다. 주택과 비교할 때 최고수준인 ㎾당 기본요금 1만 1000원과 비교하면 2.44분의1 정도다. 따라서 실제 요금으로 따지면 서민가정 5000가구가 사용하는 전기량과 비슷하다. 공사 때 쏟아부은 콘크리트는 레미콘 트럭으로 3만 4300대 분량. 바닥면적 300평 건물을 513층 높이로 지을때 들어가는 물량이다. 징검다리와 수경시설 등 구간 곳곳에 설치돼 청계천의 밤을 밝히는 조명등은 자그마치 8973개다. 가로등 464개, 산책로 조명등 818개, 수목 조명등 974개, 수로 조명등 1878개, 시점부 청계광장 등 기타 2529개 등이다. 말 그대로 푸른 청계천이 되도록 주변에 심어놓은 식물은 150만 4109본이다. 나무 19종 8만 9415그루, 초화류 17종 59만 4584포기, 물 위에 살도록 그물 모양의 매트로 엮어 띄워놓은 수상식물 12종 82만 110포기로 엄청난 숫자다. 복개된 구간을 파헤치면서 쓴 석재만 15t트럭 4600대분이다. 경사면 벽체를 맏드는 데 1만 5132t, 호안 조경석에 5만 4062t이 들어갔다. 독도를 알리는 돌을 포함해 제주도 등 우리나라 8도를 상징하는 시점부 폭포 아래의 ‘8도석’도 포함됐다. 청계천에는 하루 12만t의 물을 흘러보내는데, 보통 고지대나 재난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5t짜리 ‘물차’ 2만 4000대를 동원한 꼴이다. 고가도로 및 복개 구조물을 뜯어내면서 생긴 콘크리트와 아스콘, 철재 폐기물은 90만 7000여t이다.15t 트럭으로 6만 500대 분량을 실어날랐다. 이 가운데 콘크리트·아스콘 87만 2000t의 96%인 83만 7100여t은 도로 기층재나 성토용으로 복원구간에 고스란히 재활용됐다. 청계천을 가둬놓았던 폐기물은 돈까지 벌어줬다. 철근 3만 5000여t을 폐기물 재활용 업체에 팔아넘겨 t당 평균 8만 8000원을 받았다. 총액 30억 800여만원을 벌었다. 색다른 수치도 있다. 청계복원추진본부 남원준 총괄담당관은 “착공을 전후해 청계천 주변 상인들과의 원만한 논의를 위해 직원들이 일일이 이들과 면담한 건수만 4220회”라고 밝혔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청계천 백서’는 내년 1∼2월쯤 나온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청계천 철거서 개통까지 청계천이 47년 동안의 어둠을 털고 1일 시민품에 안긴다.2년 3개월 동안의 공사를 마치고 시오리 청계천 물길이 힘찬 약동을 시작한다. 숨이 막혀 청계천을 떠났던 사람들은 다시 찾아온 버들치와 백로처럼 청계천으로 돌아왔다. 청계천은 600년 역사를 물길로 담아왔지만 언제부턴가 천(川)아닌 길로 바뀌었다. 하지만 잊혀졌던 청계천은 물고기가 뛰노는 생태하천으로,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났다. ●청계천 새물맞이 서울시는 1일 오후 6시 청계천 복원의 주역인 이명박 서울시장 등 주요 인사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을 기념하는 ‘청계천 새물맞이’행사를 개최한다. 이날 청계천의 시작 지점인 청계천광장에는 전국 8도의 강과 못(池) 10곳에서 길어 온 물을 청계천에 흘려 보내는 8도의 물의 합수(合水) 의식이 진행된다. 이어 불꽃놀이와 조수미, 보아, 김건모 등 성악가, 가수의 축하공연이 이어진다. 청계천 산책로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개방된다. 새물맞이 행사가 열리는 청계광장∼삼일교 구간은 행사 뒤인 오후 9시부터 개방되지만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청계광장에서 삼일교 방향으로만 진행할 수 있다. 새물맞이 행사를 하루 앞두고 30일 전야제 행사로 열 예정이던 정명훈씨가 지휘하는 기념음악회와 8도의 물 안치식은 비로 하루 연기돼 1일 오후 8시30분에 열린다. 2002년 민선 3기 서울시장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 걸었던 이 시장은 취임 1년 만인 2003년 7월 청계고가도로 철거 작업과 함께 청계천 복원의 대역사(大役事)에 착수했다. 그러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도심부 교통체증은 교통체계의 개편과 시민 협조가 필요했고, 주변 상인들의 반발은 수많은 만남으로 해결했다. 복원과정에서 발굴된 문화재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기도 했고, 장애인에 대한 배려 부족과 악취, 화장실 문제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청계광장∼고산자교에 이르는 5.84㎞의 청계천 물길이 열리게 됐다. 청계천의 복원으로 생태계는 물론 상권도 살아나고 있다. 청계천이 가져온 또 다른 혜택인 셈이다. ●미래로 흐르는 물길 청계천을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점심 무렵에는 주변 샐러리맨들의 휴식처가 된다. 가로등이 켜지는 저녁에는 연인·가족·친구들이 삼삼오오 청계천을 찾아 청계천의 변신에 놀라워한다. 지난 29일 퇴근 후 도심에서 가족과 만나 청계천 구경을 나왔다는 한경준(42·광진구 자양동)씨는 “청계천을 보니 우리도 이제 명소를 하나 가졌다는 자부심이 생긴다.”면서 “앞으로 이를 잘 지키는 데 힘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동료들과 청계천을 찾은 황인규(32·양천구 목동)씨는 “청계천처럼 우리도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털고 밝은 미래를 지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청계천 우표 1만장 발행 청계천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우표첩(바람부는 청계천)’이 청계천 복원을 기념해 4일 발행된다. 판매량은 1만장이다. 서울·경기지역 우체국과 우리은행 창구에 주문하면 된다. 우표책자 제작업체와 서울시가 ‘나만의 우표’ 형식을 빌려 서울중앙우체국에 접수했다.‘나만의 우표’는 개인 또는 기관·단체가 신청하면 우정사업본부가 만들어 준다. 전지 1장(낱장 20장 묶음)당 판매가는 8000원이고, 선물용인 우표첩은 4만 9000원이다. 전지에는 1장당 220원짜리 우표와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공사 중인 사진 포함)의 사진 14장이 실려있다. 우표첩에는 1권당 우표 36장이 첨부돼 있고, 그림엽서가 1장씩 포함됐다. 서울중앙우체국(100.epost.go.kr), 서울시(www.seoul.go.kr) 홈페이지에서 신청 가능하다. 전화는 (02)2278-0038,1544-3869.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이해찬 총리·정동영 통일·김근태 복지 “새달께 동시 당 복귀”

    이해찬 총리·정동영 통일·김근태 복지 “새달께 동시 당 복귀”

    청와대와 여권은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돼온 이해찬 총리, 정동영 통일부·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다음달쯤 동시에 당으로 복귀하도록 한다는데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이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은 특히 21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오는 12월초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연정을 거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소식통은 이날 “이해찬 총리와 정동영·김근태 장관이 동시에 당으로 복귀하도록 한다는데 청와대와 여당의 의견이 대체적으로 접근한 상태”라면서 “이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 사람의 복귀시점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다음달이 유력시된다. 이 총리 등의 당 복귀 시점이 연말·연초 또는 내년 5월 지방선거 전후라는 전망이 제기돼온 만큼 다음달 복귀가 이뤄지면 당초 관측보다 조기에 이뤄지는 셈이다. 지금까지 세 사람의 당 복귀가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대두됐었다. 이 총리와 정 장관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당 복귀에 대해 “나중에 얘기하자.”고 언급을 회피했다. 정 장관은 최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당이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복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에서 입각한 장관 가운데 천정배 법무·정동채 문화관광 등은 교체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은 최근 “열린우리당에서 총리 후보를 뽑아주면 그 사람에게 내각 구성의 전권을 넘겨주고 나는 2선으로 물러나 외교·안보분야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송두율칼럼] 대연정의 한국적 조건

    [송두율칼럼] 대연정의 한국적 조건

    독일 총선이 며칠 후에 있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사민당(SPD) 슈뢰더 총리가 던진 승부수가 이번에는 실패할 것으로 내다보았던 여론조사 결과는 투표일을 일주일 앞두고 서서히 반전, 이제는 사민당이 기민당(CDU)과 기사연(CSU)의 보수연합과 함께 대연정을 수립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 원래 사민당과 녹색당(Die Gruene)이 한 축을, 기민당과 기사연 그리고 자민당(FDP)이 다른 한 축을 구성한 정치판도에 옛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PDS)과 사민당의 우경화된 노선에 등을 돌린 좌파 ‘선거대안:노동과 사회정의’(WASG)가 함께 새롭게 결성한 ‘좌익-민사당’(Die Linke.PDS)이 뛰어들었다. 그래서 위에 지적한 두 축의 어느 한 쪽도 의회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할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게 되었다.‘좌익-민사당’의 힘을 빌려 다시 집권하지는 않겠다는 슈뢰더의 발언을 믿는다면 사민당 앞에 남는 길은 이제 보수연합과 대연정을 수립하는 길밖에 없게 되었다. 사실 사민당의 지도부 일각에서는 대연정은 죄악도 아니고 재정정책면에서는 보수연합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입장을 이미 제시하면서 그러한 가능성을 넌지시 열어 보이고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대연정에 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가? 대연정은 바이마르공화국의 혼란기에 있었고, 전후에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기민당의 키징거 총리와 사민당의 브란트 외무장관이 이끌었던 대연정이 1966년 말부터 1969년 사이에 한번 있었다. 바로 이 대연정이 1968년 독일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강한 원외저항(APO)을 불러일으켰다. 서로 경쟁하는 두 거대 정당간에 있어야 할 필수적인 정책대결에 근거한 의회민주주의 역동성의 소멸은 결국 의회 밖으로부터 강한 압력과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계화라는 엄청난 압력 앞에서 독일적 복지국가의 총체적 개혁이라는 어려운 과제 앞에 여야가 힘을 합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라는 논리로써 대연정을 옹호하지만 정당정치와 의회민주주의의 약화에 대한 쓴 경험들은 먼저 대연정의 득보다는 실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에 대한 구상과 이를 둘러싼 논쟁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우선 몇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우선 내각책임제가 아니고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에서는 독일의 대연정(grosse Koalition)보다는 프랑스의 동거정부(cohabitation)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다른 정당출신의 대통령과 총리가 함께 구성하는 정부형태로서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 아래서 두 번, 그리고 시라크 대통령 집권시기에 한 번의 동거정부 경험이 있다. 이제는 대통령과 국회임기를 다같이 5년으로 만들어 이러한 불편한 동거정부의 재등장을 막아 보려고 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대연정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의 내용이다. 고질적인 지역감정이 정당정치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에 지역적 구도를 넘어서는 대연정의 필요성이 이야기되고 있는 데 대하여 정당정치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정치가 지역구도에 묶여 있다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정반대의 해석이 있다. 그러나 둘 다 원인과 결과를 너무 단선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역주의와 정당정치의 실종은 동전의 양면으로서 어디까지나 동시적인 해결과제다.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부응할 수 없는 현재의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혁파하기 위한 화두로서 던진 대연정이라면 무엇보다도 내각제 개헌과 선거법의 전면적 개정도 동시에 제기되었어야만 한다.45년 전의 짧고, 또 부정적인 인상만을 남긴 내각제였지만 이제는 ‘제왕적 대통령’에 의존하는 정치문화도 꽤 약화되었다.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정책정당을 육성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서 독일식의 정당명부제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문제다. 자기 지역구의 국회의원을 뽑는 첫번째 칸보다는 어떤 정당에 자기 표를 던지는지를 표시하는 두번째 칸의 의미를 특별히 돋보이게 하는 독일의 투표용지를 다시 한번 떠올리면서 대연정의 한국적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 ‘연정불가’ 거듭 주문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와 노무현 대통령의 회동과 관련,5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다. 의원들은 2시간여 동안 다양한 주문을 쏟아냈다. 주된 내용은 ‘연정 거부와 정략적 의도에 휘말리지 않기’였다. 그러나 관심을 모은 회동 시간과 의제, 배석 여부 등은 지도부에 일임했다. 지도부는 의총 직후 협의를 시작,7일 오후 2시 청와대에서 회동하되 정책위의장·비서실장·대변인이 배석키로 결정했다.●“연정 불가” 원칙 속 다양한 방법론 등장 박 대표도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 의총 모두 발언에서 “국정에 책임 있는 정당으로서 대통령이 국정 전반에 관해 의논하고 싶다고 제의해온 데 대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국정 전반에 대한 국민의 뜻을 전하겠지만 연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의 입장이 확고하고 변함이 전혀 없다.”고 반대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한선교 의원은 “회동 시기는 대통령 순방 뒤가 적절하고 ‘하야 발언’은 당 차원에서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문수 의원은 “소연정은 중대선거구제 관철을 위한 것이고 대연정은 개헌을 위한 것”이라며 “개헌엔 단호하게 반대하고 중대선거구제는 위헌 요소가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병석 의원은 “대통령과 만나면 영수관계가 형성된다.”며 “회동 뒤에도 우리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라를 살리기 위해 ‘반노(反盧) 정책 라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협상기술 ‘조언’도 일부 의원들은 대통령의 화법에 말리지 않는 해법도 제시했다. 공성진 의원은 “전후 좌우를 보면서 설득하는 노 대통령의 화법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라.”며 “정확한 자료를 갖고 실정을 지적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이어 “당·정·국회가 함께 민생경제활성화특위를 구성하자고 역으로 제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 배일도 의원은 “오랜 노사협상 경험에 비춰볼 때 이번 회동은 사측에서 주로 잘못을 저질렀거나 급할 경우 제안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연정 제안 거부’를 요구했다. 이어 “세금 15∼20% 정도 내려달라고 요청해도 국민은 알아주지 않으니 여당이 받아들이지 못할 큰 것을 주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 의원은 “연정문제 논의 대신 청와대 참모진 전원 교체를 요구해야 한다.”며 “현 참모진처럼 이렇게 본분을 이탈한 독설·궤변은 없었다.”고 비판했다.이종수 구혜영기자 vielee@seoul.co.kr
  •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5) 성적소수자의 권리(네덜란드)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5) 성적소수자의 권리(네덜란드)

    흔히 네덜란드를 ‘성적소수자의 천국’이라 부른다. 세계 최초로 동성간 결혼을 인정해 동성애자들도 드러내 놓고 떳떳한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네덜란드다. 성전환자에 대한 의료 지원도 철저하다. 성(性)에 대한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오랜 과정을 거쳐 법과 제도로 반영된 결과다. 네덜란드 성적소수자들의 생활을 현지 취재로 생생히 살펴본다. ■ 세계 첫번째 레즈비언 부부의 삶 |암스테르담(네덜란드) 이효용특파원|암스테르담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20㎞ 떨어진 한적한 동네의 한 아담한 복층 아파트. 곳곳에 걸린 가족사진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집 안으로 들어서자 지극히 평범한 두 ‘아줌마’가 기자를 맞았다. 지난 2001년 ‘세계 최초의 합법적 동성부부’로 외신을 장식했던 헬레네 파센(38)과 안느-마리 튀스(36) 부부다. ●두 아이 낳고 완벽한 가족으로 “이쪽은 우리 엄마고요, 이쪽도 우리 엄마고요, 얘는 내 동생이에요.” 2층에서 쪼르르 뛰어 내려와 조잘조잘 가족을 소개하던 나탄(5)이 수줍은 듯 헬레네 뒤로 숨는다. 나탄은 이들이 인공수정을 통해 얻은 아들이다. 헬레네와 마리는 1998년 12월 친구들의 소개로 만나 한눈에 서로 ‘인생의 동반자’라고 느꼈다.1주일 만에 가족들에게 소개하고 동거에 들어갔다.2001년 4월1일,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에서 동성커플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이 시행되던 날 0시를 기해 결혼식을 올렸다. 나탄에 이어 딸 미르틀러(3)를 낳고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헬레네는 사실 마리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몰랐었다. 명문 프리예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공증인으로 일하던 그는 공부와 일에 바빠 31살이 되도록 연애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마리를 처음 본 순간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으며, 그것은 동성이건 이성이건 상관없는 사랑 자체였다.”고 말했다.15세 무렵 성 정체성의 고민을 시작한 마리는 19세 때 동성애자임을 알았다고 한다. 다행히 둘 다 가족의 반대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아이 문제는 녹록지 않았다.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 부부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입양과 인공수정 두가지. 마리가 아이를 낳고 싶어 했기 때문에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으로 2000년 첫 아들 나탄을 낳았다. 생모인 마리는 출산과 동시에 부모의 자격을 얻었지만, 헬레네가 나탄의 부모로 인정받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네덜란드 현행법은 출산이든 입양이든 일단 한명만 부모로 인정하고, 동성 배우자는 3년이 지나야 ‘입양’ 형식으로 부모가 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둘째 미르틀러까지 모두 입양 절차를 마쳤다. 여느 부모와 다른 상황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도 고민스러웠다. 아이가 물으면 “너는 아빠가 없고 엄마가 둘이다.”라고 말해줬다. 혹여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편부모나 미혼모와 마찬가지로 조금 다른 형태의 가족일 뿐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둘 다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남매는 구김살 없이 자라고 있다. ‘행복해 보인다.’는 기자의 말에 “가족이니 행복한 게 당연하죠.”라며 활짝 웃던 헬레네는 “네덜란드에서도 불과 30∼40년 전에는 동성 커플이 가족을 이루고 산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이성애와 동성애가 적어도 법적으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 인정 후 편견 극복을”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제동성애정보자료실에서 책과 뉴스 수집을 담당하는 김혜진(21)씨는 3개월에 한번씩 진료와 호르몬 치료를 위해 프리예 대학병원을 찾는다. 벨기에 입양아인 김씨는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성 정체성이 여성이며, 성적 지향 또한 여성인 트랜스젠더 레즈비언이다. 성적으로 소수자 중의 소수자인 셈이다. 어릴 때부터 인형놀이를 좋아하던 김씨는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늘 헷갈렸고, 부모는 그를 게이(남성동성애자)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여성이 되고 싶으면서도 자꾸 여성에게 끌렸다. 트랜스젠더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트랜스젠더 레즈비언임을 깨달았다.“입양이 실패했다.”며 냉랭하게 등을 돌린 양부모를 떠나 2002년 암스테르담에 와서 동성애 자료실에 일자리를 구했다. 다행히 네덜란드는 성전환을 치료의 대상으로 보고 수술 및 평생 해야하는 호르몬 치료까지 모두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물론 까다로운 신체검사와 심리검사를 통과해야 한다.18세부터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김씨는 내년 10월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동양인이며 트랜스젠더에 레즈비언이라는 3중의 핸디캡과 싸워온 김씨는 “특히 소수자에게 인권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면서 “우선 솔직하게 자기 정체성을 인정하고, 그 다음 편견과 싸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를 위한 15년의 노력 네덜란드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한다.’는 헌법 1조에 따라 단계적으로 성적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갖춰 왔다.1980∼90년대에 유명 연예인들과 몇몇 정치인들이 커밍아웃하면서 꾸준히 이슈를 만들어 나갔다.1991년 동성애자였던 당시 내무장관이 기반이 되는 법안을 만들었고,1998년 동성간 ‘등록 파트너제’가 합법화된 데 이어 2001년 동성간 결혼과 동성부부의 입양이 허용됐다. 스작 얀슨 법무부 법률고문은 “성적 정체성이 다름을 이유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법의 기본 정신”이라면서 “올 가을 동성부부의 입양 때 한쪽이 3년 뒤에야 입양할 수 있도록 하는 제약을 수정하는 법안이 상정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최대의 동성애 운동 단체인 COC의 아르요스 벤드리그(30)는 “지난 4월 ‘여왕의 날’ 행사를 취재하던 미국인 동성애 운동가이자 기자인 크리스 캐인이 집단 폭행을 당하는 등 아직 차별이 남아 있다.”면서 “법적으로 보장됐다 하더라도 예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려면 지속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utility@seoul.co.kr ■ 동성애자 정치인 디트리시|암스테르담(네덜란드) 이효용특파원|“동성애자니 이성애자니 하는 성 정체성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결국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개성과 능력입니다.” 네덜란드 연립 여당 가운데 하나인 D66의 당대표 보리스 디트리시(50)는 잘 알려진 동성애자 정치인이다. 암스테르담 한 노천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코멘트할 수 없다.”고 예의 정치인다운 첫마디를 날리면서도 “결국 동성애자들 스스로 적극적으로 권리를 찾아 나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1955년 유트레흐트에서 태어난 그는 명문 레이든 대학에서 법학 석사를 받은 뒤 1981년 중도진보 성향의 D66에 입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유고연방에서 망명해 레이든대에서 동유럽학을 가르친 교수였다.20세를 전후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된 그는 1981년부터 25년째 한 남성과 함께 살고 있다. 부모는 처음엔 놀라고 슬퍼했지만 언젠가부터 파트너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정치인인 그가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것은 1993년 처음 국회의원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할 때였다. 평가가 엇갈렸지만 “본인에게 솔직하다면 국민에게도 솔직할 것”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무난히 당선됐다. 국회의원으로는 첫 커밍아웃이었다.1993년 동성결혼허용 법안을 제안했고,2003년 당 대표가 됐다.151석 가운데 6석을 차지, 제1·2당인 CDA·VVD와 연립여당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보수 성향 정치인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었다.1996년 기독연합당 대표가 한 잡지 인터뷰에서 “보리스가 사는 방식은 제대로 된 방식이 아니며 동성애는 이성애보다 열등하다.”라고 비난했다. 일부 의원들이 “정당의 대표가 공개적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다.”며 소송을 걸었지만, 항소와 상고를 거듭한 끝에 결국 ‘의사표현의 자유’라고 결론났다. 그는 “수치심과 모욕을 느꼈던 순간이지만 결코 커밍아웃한 것을 후회하거나 불편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면서 “오히려 누가 뭐라고 하든 정치인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개인의 권리나 능력이 억압받아서는 안된다.”면서 “동성애운동단체, 언론, 정치인 등이 꾸준히 동성애 문제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utility@seoul.co.kr
  • [어제는 한길 오늘은 딴길] (4) 민병두 vs 정병국

    [어제는 한길 오늘은 딴길] (4) 민병두 vs 정병국

    1980년 봄. 전국 최초로 총학생회 부활을 앞두고 성균관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사회학과 3학년 정병국에게 한 동기가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운동권 대부’이자 이론가로 유명한 무역학과 민병두였다. 당시 언더 운동권의 핵심인 그가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운동권과 중도파로 표가 분산되면, 비운동권 후보와 맞서기 힘들기 때문에 중도파인 정병국에게 ‘후보 사퇴’를 제안했다. 민 의원은 “어렵사리 학생회를 부활하게 됐는데 그 열매를 비운동권이 따먹을지 몰라 학교 근처 여인숙에서 새벽 4시까지 사퇴를 설득했다.”고 불발로 끝난 당시 비화를 털어놓았다. 같은 장면에 대해 정 의원은 “총학생회 부활을 준비하면서 운동권과 MT도 가고 노선 정립 등 지도도 받았기에 곤혹스러웠다.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함께 준비한 선·후배들 때문에 출마가 불가피했다.”고 기억한다. ●“학생운동 땐 내가 정통파” 두 사람이 모두 학생운동을 했지만 동기와 위상은 달랐다. 민 의원은 목적의식적 운동그룹인 비합법 공간에서 주로 활동했고, 정 의원은 자연발생적으로 운동에 참여했다. 민 의원은 고교 시절 독서토론회 등에 가입해 일찍 사회문제에 눈을 떴다. 대학 입학 뒤 ‘인상 좋은 고교 선배’(현재 이종걸 의원)의 권유로 흥사단 활동을 거쳐 본격적으로 ‘변혁의 대오’에 나섰다. 시국은 두 사람의 거리를 좁혔다. 정 의원은 80년 광주 항쟁 소식을 접하고 잠입을 시도하다 실패한 뒤 귀경하다 용산에서 검거된다. 강제징집성으로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 정병국’은 체계적으로 운동에 참여했다. 박종철 고문 폭로대회 등 87년 당시 주요 집회장에 뿌려진 유인물은 거의 그의 작품이었다. 같은 기간 민 의원은 비합법 운동권의 거물로 자리잡았다. 대중운동을 지향한 정 의원과는 달리 철저히 ‘전위 그룹’에 속했다. 서울 난곡의 ‘낙골 야학’에서 활동한 뒤 81년 ‘학림사건’,87년 ‘제헌의회(CA)그룹 사건’으로 두 차례, 총 3년6개월 옥살이를 했다. ●“정치 입문은 내가 선배” 88년 사회주의 붕괴 등을 전후해 대부분의 민주화세력은 분기점을 맞았다정 의원은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캠프에 합류,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16·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민 의원은 ‘전국 민족민주 운동연합(전민련)’이라는 생애 첫 합법 공간에서 1년 일한 뒤 13년 동안 기자로 활동하다가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의원이 됐다. 성균관대민주동문 등 동기모임에서 간헐적으로 만나던 두 사람은 국회 문화관광위에서 본격 조우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여야 충돌의 핵심인 4대법안 가운데 정기간행물법을 놓고 격돌했다. 마주 보며 언론사 시장점유율 제한 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평가는 후하다.“민 의원은 초선인데도 자기 원칙이 있다. 운동권 시절 빛난 기획력이 논의의 큰 줄기를 잡는 데 큰 힘이 되는 것 같다.”(정) “국회에서 만난 정 의원은 ‘학생 정병국’이 아니었다. 야당 의원으로서의 투쟁성도 강하면서도 막무가내식 반대가 아니라 합리적 질의와 진지함이 넘쳤다.”(민) 피차 아쉬움도 있다.“소속 당의 입장이 있겠지만 굳이 한나라당의 과거를 연계해 흠집내려는 작은 정치보다 큰 정치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에너지를 쏟았으면 좋겠다.”(정) “정 의원은 재선으로 ‘뉴 제너레이션’으로서 자기가 대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냥 의원으로 남을 것인지 지도자가 될 것인지 정해야 할 것이다.”(민)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日 우정민영화법 부결 후폭풍] (하) 대외정책에는 어떤 변화가

    |도쿄 이춘규특파원|우정민영화 부결에 따른 일본의 중의원 해산으로 주일미군 재편, 이라크 파견 자위대의 처리,6자 회담 대응책, 대테러전 대책 등 연이은 외교현안이 차질을 빚게 됐다. 9일 오노 요시노리 일본 방위청 장관은 야마구치현 이와구니시 시장 등 주일 미군기지가 있는 이와구니 인근 지자체장들이 미군부대 추가이전에 반대하는 진정을 제출하자 “이런 정치정세에서는 9월까지 예정된 주일미군재편협정 중간보고서 책정은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만을 전달할 수 있었다. 총리실 지도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어 대책 마련이 지연되고 미·일 공동대처 방안 협의가 미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상 등 외교사령탑이 총선거에 직접 출마, 공백이 불가피하다. 가장 타격을 받는 부분이 주일미군재편이다. 일본은 미국과 9월중 열려던 외무·국방 담당 장관급 미일안전보장협의회(2+2)를 총선거 때문에 현지조정이 어렵다며 10월로 연기하고 중간보고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10일 오노 방위청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개별기지들을 포함한 재편안을 마련하기 위해 9월초 지방정부와 조정에 들어가려 했으나 총선체제로 돌입해 일정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중간보고를 확인하기 위한 장으로서 9월중 개최키로 검토됐던 부시 미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미·일 정상회담도 총선후 임시국회 등의 국내정치일정이 빠듯하기 때문에 어렵게 됐다. 오노 장관은 올해내 주일미군재편 협상 마무리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차질이 예상된다. 미국 정부의 불신감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미·일동맹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보인다. 오는 15일을 전후해 한국이나 중국과의 관계도 경색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도 일본 외교의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정치공백상태에서 양국으로부터 압력을 받을 경우에도 일본 정부차원의 적절한 대처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유엔 개혁을 위해 일본이 독일, 인도, 브라질 등 4개국(G4) 결의안 채택을 단념하는 것을 검토하는 가운데 9월중으로 예정된 유엔개혁에 관한 특별정상회담에 어떻게 임해야 할지에 대한 전략마련도 차질이 우려된다고 외무성 관계자가 이날 밝혔다. 북방 4개섬을 둘러싸고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와도 11월 중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지만 러시아가 일본의 정치혼란을 틈타 대일외교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밖에도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나 한국인관광객 영구비자문제 등 대외정책도 지연이나 차질이 예상된다고 도쿄 외교소식통이 분석했다. 특히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의 사실상 좌절,6자 회담에서의 고립 등을 부른 고이즈미 정부의 강경외교는 총선결과에 따라서는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전망을 했다. 아울러 중의원을 통과한 우정민영화법안을 부결, 개혁정책에 제동을 건 ‘참의원 벽’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자민당이 승리해도 다시 반란이 일어나거나, 민주당 집권시에도 참의원의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일본의 외교나 경제정책에도 ‘참의원 벽’이 변수로 등장했다. 개혁법안이 차질을 빚을 경우 중·장기적으론 경제에도 영향이 예상된다. taein@seoul.co.kr
  • “삼성, 昌·DJ에 거액지원”

    “삼성, 昌·DJ에 거액지원”

    MBC는 22일 삼성그룹이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을 통해 당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에게 거액의 대선자금을 건넸다는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비밀도청팀의 불법 도청내용을 보도했다. 도청 내용대로 실행됐다면 모두 100억원 규모의 자금이 이후보에게 제공된 것으로 MBC는 추정했다. MBC의 보도에 따르면 삼성은 또한 야당후보인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에게도 거액의 정치자금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MBC는 이날 저녁 9시 뉴스에서 안기부가 운영한 특수도청팀 ‘미림’이 불법도청한 테이프를 토대로 97년 4·9·10월에 작성된 내부문건인 ‘안기부 X파일’을 전격 공개했다.MBC는 “97년 신한국당 경선을 앞두고 홍석현 사장은 이학수 삼성 비서실장을 만나 이 후보의 지지방안을 논의하면서 “이회창 후보가 안을 짜가지고 올 테니 기다리겠지만 15개(15억원) 정도가 아닐까라고 이야기했다.”고 보도했다. 홍 사장은 이 비서실장을 다시 만난 자리에게 ‘창(이회창 후보) 측근을 통해 30억원 줬는데 다 썼다. 또 다른 측근을 통해 18개(18억) 더 줬다.’고 말했다. 홍 사장은 또한 ‘이 후보 이미지 작업에 11억원 든다고 하더라.’며 삼성측에 지원을 요청했고 이 비서실장은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는 것이다. 한달 뒤 이 비서실장은 ‘회장님의 방침’이라며 이 후보에게 30개(30억원) 추가지원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삼성그룹은 홍석현 사장을 통해 당시 김대중(DJ)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에게도 접근했다. 홍 사장은 97년 9월 초 김대중 후보를 만나고 돌아온 뒤 이학수 비서실장을 만나 ‘DJ가 (이건희)회장에게 편지를 보내왔다.’면서 ‘일반편지 봉투에 스카치 테이프로 봉한 것을 보니 특별한 내용이 없고 ‘호의’에 대한 감사의 뜻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내부 문건은 이 ‘호의’를 정치자금 제공으로 해석했다. 검찰 간부들도 삼성그룹의 로비대상이었음이 ‘X파일’에서 밝혀졌다. 삼성은 떡값을 전달할 전·현직 검찰간부 10명을 실명으로 거론한 뒤 절반은 대기업측이, 나머지는 신문사주가 500만∼2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보도됐다. 문소영 구혜영 안동환기자 symun@seoul.co.kr
  • [사설] ‘내각제 수준 권한이양’ 진의 뭔가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내각제 수준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이양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모처럼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을 청와대로 불러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밝힌 내용이다. 전후 맥락을 따져보면 노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짐작은 간다. 정치권이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선거·정치제도 개혁에 합의하고, 뜻을 같이하는 정당과 연정이 이뤄졌을 때 국회 다수파에 내각구성권을 줄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이는 노 대통령이 여러차례 언급해왔던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덜 정제되고, 앞뒤가 생략된 채로 중요 발언이 불쑥 튀어나오니 국민들은 불안하고 정국이 혼란스럽다. 내각제에서 대통령은 국가를 상징할 뿐, 실질 권한은 없는 자리다. 정치권에 조각권을 나눠준다고 해서 ‘내각제 수준 대통령’으로 바로 비유해선 안 된다. 우리 헌법은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건의권, 정부의 법안제출권 등 내각제 요소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대통령제를 지향하고 있다. 국군통수권을 비롯, 대통령에게 막중한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 정치판의 구조적 문제점은 하루이틀 사이에 생겨난 것이 아니므로 끈기있게 개선해 나가면 된다. 그 때문에 당장 나라가 결딴나지도 않는다.“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면 대통령 권력을 내놓겠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임기가 있는 대통령으로서 무책임하게 비쳐질 수 있다. 노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하더라도 헌정질서가 흔들린다는 느낌을 주는 일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본다. 노 대통령은 집권 초기 여소야대 상황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후 여대야소에서도 마음먹은 대로 현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이제 세상은 바뀌었고, 의석과 관계없이 집권쪽의 일방통행식 정국운영은 불가능해졌다. 야당과 대화·타협을 이루려면 불만스럽더라도 여당의 양보가 불가피하다.4월 재·보선으로 여소야대가 됐어도 여당이 과반에서 부족한 의석은 불과 몇석 안 된다. 정치력을 발휘하면 오히려 여대야소때보다 능률적으로 정국을 이끌 수 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부결은 여당이 나아갈 바를 보여준다. 투쟁일변도에 벗어나도록 야당에 요구하기에 앞서 여권부터 통합·조정력을 키워야 한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치는 오래가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 여대(與大)로 전환한다.”고 ‘여대’에 대한 집념을 보였다. 과도한 집념은 정치적 오해를 낳는다. 노 대통령이 내각제까지 운운하면서 ‘여대’를 강조하니까 당연히 개헌 의도를 의심받게 된다. 연정론으로 일단 정치판을 흔든 뒤 개헌으로 이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이 노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여당이 분명히 정리해야 할 대목이다. 야당과 사안별 정책연합을 놓고는 정치권의 거부감이 적고, 여론 지지도가 높다. 사안별 정책연합으로도 부족함을 느끼면 연정을 추진해도 된다. 다만 그 방식이 과거처럼 밀실야합이거나 지역구도를 심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정 야당과 정책적 지향점을 같이하니까 연정을 하겠다고 떳떳이 밝히면 여론이 비판 일변도로 흐르지는 않으리라 예상한다. 최근 연정 관련 여론조사에서 찬반이 엇비슷하게 나오고 있다. 모호한 언급으로 정치권, 나아가 국가 전체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연정을 하고 싶으면 방향성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 마침 민주노동당이 다음주 의원단워크숍에서 연정론을 논의할 예정이다. 여권은 민노당이건, 민주당이건 연정상대를 골라 연정을 해야 되는 이유를 밝히고, 국민과 정치권의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권력구조 논쟁보다는 경제, 교육, 안보에 빈틈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정치와 경제를 함께 챙기겠다고 말했지만, 국가틀을 바꿀 수 있는 권력구조 문제를 쟁점화하면 관심이 그곳에 쏠릴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이 이 정도 화두를 던져놓았으니, 청와대 참모들과 여당 지도부가 정제해 차분하게 구체적 밑그림을 그리는 게 좋겠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밝혔듯 부동산투기 근절, 대입제도 혼선방지와 북핵 해결 등 외교안보 분야에 정부·여당이 혼신의 힘을 쏟을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가 혼란스럽고, 정책이 혼선을 빚는 상황은 이제 끝내야 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