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와룡선생 상경기
시골 바닷가에서 사는 와룡선생은 한 번도 경성에 가본 적이 없었다.경성을 다녀온 이웃이 자랑을 할 때면 그는 뚝심있게 “나는 볼일이나 있으면 모를까 사진이나 한 장 박으려고 경성 가는 일은 없을끼다.” 하면서 버텨오던 터였다.그의 말투는 거칠었지만 진솔하게 들렸다.그는 늘 시골사람들의 자존심을 강조하면서 제법 원칙과 소신을 가진 듯 반(反)경성을 외치기도 하고,당당하게 경성의 깡패들에게 맞서기도 했다.마을 사람들은 그를 대견하게 여겨 마침내 동네 읍장으로 뽑아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성의 왕초로부터 한번 다녀가라는 전갈을 받았다.그렇지 않아도 그는 언젠가는 경성에 한번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해 오던 터였다.마을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을 경성 같은 큰 도시에 팔아야 했다.마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도 왕초의 환심을 사야 했다.더구나 같은 부족이지만 건너편 산간마을에 사는 무리들이 툭하면 “땔감을 보내라.”,“쌀도 사서 보내라.”,심지어는 “양어장 생선은 필요 없으니,깊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자연산 생선을 보내라,안 그러면 재미없다.”고 떼를 쓰던 중이었다.
와룡선생은 고민에 빠졌다.그동안 무턱대고 큰 소리를 땅땅 쳤었는데,막상 왕초를 만나려니 겁부터 났다.“누가 읍장이 될 줄 알았나,괜히 겁없이 떠들어댔잖아,체통이 있지,이제 와서 납작 엎드릴 수도 없고.”,“만약 마을 사람들이 그런 내 꼴을 보면 뭐라 카겠노,요즈음은 집집마다 테레비가 안 있나,참말로 고민이데이.”그는 참모회의를 소집했다.“자네들 생각은 어떤가,내가 왕초 만나러 갈 때 꼬리를 내려야 하겠나,안 카면 고개를 빳빳이 들고 가야 옳겠나?” 그때 읍 사무장이 나섰다.“왕초를 만나는 것도 일종의 외교행위입니다.외교는 뭐니뭐니 해도 역시 명분보다는 실리입니다.
명분은 선거용일 뿐이고,읍장은 마을의 실익을 챙겨야 할 책임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체통이 밥 먹여 줍니까.옛말에 ‘모로 가도 경성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그것을 소위 실용주의라고 하지 않습니까?” 순간 와룡선생은 사무장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역시 변신의 귀재는 다르구먼,5대에 걸쳐 읍장을 모셔온 경륜이 어디 가겠나,하긴 그래서 내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네를 사무장으로 임명하지 않았겠나.”하면서 기뻐했다.
와룡선생은 독서도 많이 했고 비교적 유식해 보였다.경성을 향해 달리는 기차 안에서 그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떠올렸다.“그래,바로 이거야,사람이 하룻밤 자고 일어나 보니 벌레가 되어있었다고 했지.벌레면 어때,마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전술적 변신이라고 하면 되지.” 와룡선생은 역시 ‘와룡선생스러웠다’.필요에 따라서는 고전작품도 제 멋대로 해석하고,그것을 박력있게 몸으로 실천해보이는 배짱 또한 두둑했다.경성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의 치기는 하늘을 찔렀다.그는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을 부추기는 말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지난번 이웃마을과 싸움이 났을 때 경성의 왕초가 도와주지 않았었더라면 저는 지금쯤 감옥에 있을지도 모릅니다.”,“경성은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요,자유와 정의가 넘쳐나는 실로 기똥찬 세상입니다.” 그는 이쯤해서 끝내려고 했다.그때 재기가 넘치는 수행원이 “이왕 여기까지 오셨는데,마지막 쐐기를 박으시는 것이 안 좋겠습니까?”하며 다가왔다.
‘그래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경성의 이상과 제도,협력이 가장 성공적으로 꽃피운 마을이 바로 저희 마을입니다.”라는 말로 그는 대미를 장식했다.기차역까지 마중나온 사무장이 “만나 보신 왕초의 인상은 어땠습니까 .”하고 물었다.“아 좋고 말고,역시 ‘텍사스’ 출신이라 그런지 화끈하더군.꼭 나를 닮은 것 같단 말이야.”하면서 으스대며 마을로 향했다.
이 영 자 가톨릭대교수 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