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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성에서 맞이하는 봄맞이축제

    안성에서 맞이하는 봄맞이축제

    얼쑤∼. 흥겨운 풍물소리가 봄을 열었다. 예년보다 봄꽃이 늦게 피어 상춘객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다. 그렇다면 봄의 흥겨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가족들과 오붓하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땐 지난 주말부터 바우덕이 풍물단의 남사당놀이 토요상설공연이 시작된 경기도 안성이 ‘안성맞춤’. 눈꽃을 닮은 화사한 배꽃이 은은한 향을 날리고, 뛰어난 광택을 자랑하는 안성유기에 천년고찰 칠장사와 청룡사의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마당놀이는 조선시대 전국 제일의 남사당으로 이름을 떨쳤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꼭두쇠 바우덕이의 후예들이 펼치는 공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외줄타기 공연이 압권이다. 특히 공연과 주요 관광지의 주차·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봄을 타고 온 짜릿함과 흥겨움 “꽹괘 꽹괘 꽹꽹꽹!!!” 4월 첫 주말인 2일 오후 6시30분. 꽹과리 소리가 어스름한 저녁 하늘에 울려퍼지자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남사당전수관 야외공연장에 모인 상춘객 500여명의 어깨가 장단에 맞춰 들썩거린다. 오는 10월까지 계속되는 안성시립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www.baudeogi.com·031-675-3925)의 첫 공연. 악사들의 풍물반주에 맞춰 고사굿이 시작되고 설장구 합주와 살판(땅재주 놀이), 덧뵈기(탈놀이), 버나놀이(가죽접시돌리기), 상모놀이 등이 숨가쁘게 펼쳐졌다.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다.” 살판이 벌어져 어릿광대와 재주꾼이 묘기를 부리며 쏟아내는 재담에 공연장에는 한바탕 폭소가 터진다. 이어 인형의 목덜미를 쥐고 있다는 말에서 유래된 인형극 ‘덜미’ 공연이 시작되자 아이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드디어 공연의 최고 절정인 어름(외줄타기) 공연이 시작되자 이내 장내가 숨을 죽였다. 악사의 반주에 맞춰 줄광대(어름산이)가 3m 높이의 줄 위에 부채 하나 달랑 들고 아슬아슬 줄을 탄다. ‘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스럽다.’는 뜻에서 어름이라고 불리는 공연. 줄광대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대균씨. 그가 줄 위에서 중심을 잃은 듯 표정을 취하면 관객들의 ‘어이쿠’하는 외마디 비명이,‘별 것 없는 공연 보러 먼 길들 오셨네.’라며 익살을 부리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된다. 20여분간의 공연은 어름산이가 줄 반동을 이용해 수차례 1∼2m 솟구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풍물단의 전신은 조선 최고 처녀 꼭두쇠 바우덕이의 후예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꼭두쇠로 남사당패 100여명을 이끌어 전성기를 이루다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바우덕이의 애달픈 전설은 공연의 흥미를 배가시킨다.1848년 태어난 그녀는 다섯살 때 병든 홀아비를 떠나 남사당패에 들어와 기예를 배웠다.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과 미색을 겸비해 경복궁 복원공사 때 풍물놀이를 벌여 대원군으로부터 정3품 벼슬아치에게 주는 옥관자를 하사받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21살에 폐병에 걸려 꽃다운 나이인 23살에 요절하고 만다. 그녀의 시신은 그녀를 사모하던 이경화란 남사당에 의해 이름없는 냇가에 묻혔다고만 전해진다. 바우덕이 공연과 함께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안성 태평무 전수관(www.taepyungmu.net·678-2812)에서 열리는 전통무용. 태평무와 부채춤, 무당춤, 학춤 등 태평무 이수자와 강선영 무용단의 공연이 1시간 동안 무료로 펼쳐진다. ●배꽃 향기와 안성맞춤 볼거리 바우덕이가 어린시절 외줄을 타던 서운산 자락 불당골엔 4월 중순이면 새하얀 배꽃 물결이 일렁인다. 곳곳이 배 과수원인 안성에서는 어느 곳에 가도 배꽃 천지지만 시내에서 57번 지방도를 타고 남으로 서운산 자락의 배밭길을 달리는 것이 장관이다. 특히 청룡저수지 아래 개울가에는 바우덕이의 커다란 가묘를 만들어 그녀의 예술혼을 기리고 있다. 볼거리도 적지 않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각축장으로 수도권의 경주라고 할 만큼 다양한 문화유산이 있다. 송문주 장군이 몽고군을 격퇴시킨 죽주산성(경기도 기념물 제69호)을 비롯해 불교문화의 보물창고 칠장사에는 혜소국사비, 칠장사 철당간, 오불회 괘불탱 등 국보·보물급의 문화재를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죽산리 5층석탑(보물 435호)과 죽산향교, 영창대군묘, 이덕남 장군묘 등이 있다. 또 시인 조병화의 생가인 편운재문학관(674-0307)과 혜산 박두진 시비 등과 함께 천주교 초대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묘를 모신 미리내 천주교성지, 죽산 성지 등을 찾으면 종교·예술인들의 발자취도 느낄 수 있다. ‘안성맞춤’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뛰어난 광택을 자랑하는 안성유기(중요무형문화제 제77호)를 전시한 안성맞춤박물관(676-4352)과 안성맞춤 유기장, 안성브랜드 센터 등 안성의 특산물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가족단위 나들이를 하기에는 남사당 전수관 옆의 갤러리 아트센터 마노(www.mahno.co.kr)가 좋다.‘거꾸로 선 집’과 ‘옆으로 지어진 집’ 등 이색적인 미술전시관과 레스토랑, 펜션은 신기함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 3만평의 농원에 펼쳐진 2000여개의 장독대가 장관인 서일농원(673-3171)도 봄나들이 최적지. 이 곳에서 담근 각종 장아찌와 청국장·된장찌개(7000원)는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한다. 또 안성천문대(777-1771)에서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감상할 수 있다. 먹을거리도 풍부하다. 안성 쌀밥과 쫄깃하고 고소한 안성 한우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옛날 손맛을 그대로 대물림해온 80년 전통의 한우탕 집 안일옥(675-2486)과 청룡호수 부근 민물새우 매운탕집 남한산성(674-5923)이 맛있다. 일죽 IC 부근에 있는 찜질마을 건강나라(674-8255)에서 심신의 피로를 말끔하게 해소하는 것은 여행의 보너스. 평일에는 1만원, 주말에는 1만 3000원. 안성시 문화체육관광과(678-2064). ● 강릉 다른 지역의 가면극과 달리 연회자가 관노들이었다는 특징에서 지어진 강릉 관노가면극은 지역색이 물씬 풍겨나는 전통공연이다. 한국의 가면극 중 유일한 무언극으로 대사 이전에 춤과 몸짓으로 연회가 구성돼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일요일 오전 11시에 강릉관노가면전수회관에서 열린다.(033)642-1008.(www.kwanno.or.kr) ● 수원 정조대왕의 옛 발자취를 따라 가는 화성행궁 토요상설마당도 지난달 27일 개막돼 오는 11월26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경기 수원시 화성행궁에서 열린다. 매월 다른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이달에는 ‘새벽에 창덕궁을 떠나다’를 주제로 열린다. 재단법인 성정문화재단 (031)257-4500.(www.sungjung.org) ● 양주 중요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된 양주별산대놀이가 지난 3일 막을 올렸다. 오는 10월30일까지 펼쳐지는 행사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에 경기 양주시 양주별산대놀이 전수회관에서 열린다. 경기도 지방에 전승돼 온 가면극으로 대표적인 서민 오락이다. 거드름춤과 깨끼춤의 몸짓으로 연극적 요소를 가미하고 덕담과 재담으로 서민의 애환을 풍자해 왔다. 양주별산대놀이 전수회 (031)840-1389.(www.sandae.com) ● 남원 남도민요와 판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남원 민속국악상설공연이 지난 1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전북 남원시 광한루원에서 열린다. 춘향전과, 흥부전, 심청전, 시집가는날, 남원전 등 공연과 우리가락 따라부르기 등 관객과 함께하는 행사가 진행된다. 공연이 끝난후 30분간 영상레이저 쇼도 상영한다.(063)620-6484.(www.namwon.jeonbuk.kr) ● 안동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열리는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마당놀이.4월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열리며,5∼10월까지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에 열린다. 무동마당과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선비마당 등 6개 마당 공연과 관람객과의 뒤풀이 한마당이 펼쳐진다.(054)851-6393.(www.hahoemask.co.kr) ● 부산 오는 11월12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부산시 용두산공원 민속놀이마당에서 진행되는 전통민속놀이마당에서는 부산의 중요무형문화재인 동래야류, 수영야류, 좌수영 어방놀이, 부산농악 등 매주 다양한 행사가 이어진다.(051)888-3281.(www.festival.busan.kr) 안성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낙산사 창건 당시 모습 복원”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6일 “낙산사는 이번 화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철저한 고증을 거친 뒤 불나기 이전의 상태가 아니라 통일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할 당시에 가깝게 복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청장은 이날 오전 강원도 양양 낙산사를 찾아 1시간 가량 화재 현장을 둘러본 뒤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를 지켜내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철저한 복원을 위해 낙산사 복원추진단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청장은 “어제는 낙산사의 보물 3점에 피해가 없다고 보고를 받았는데 오늘 새벽에야 동종이 소실됐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면서 “동종은 이른 시일 안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소실된 보물 제479호 동종은 지난해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의뢰해 실측한 자료가 있어 복원은 어렵지 않다.”면서 “다만 원형을 잃었다는 점이 안타깝고 우리의 귀중한 보물을 잃은 것은 틀림 없다.”고 침통해했다. 유 청장은 “녹아 버린 동종의 잔해는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 성분을 분석하여 앞으로 문화재 복원의 지표자료로 삼도록 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복원을 한다고 해도 이미 원형이 훼손됐기 때문에 문화재 지정은 해제되며 해당 보물번호는 비워둔 채로 남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낙산사의 국가지정문화재 3점 가운데 보물 제1362호 건칠관음보살좌상은 가까운 유스호스텔 지하로 옮겨뒀고, 보물 제499호 7층석탑은 기단부가 10×30×2㎝ 가량 떨어져 나갔다.”면서 “이번 기회에 이 부분을 복원하고 그동안 복원을 미뤄놨던 추녀 4개도 함께 복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청장은 낙산사의 원형 복원을 위해 발굴조사를 실시할 방침임을 분명히했다. 그는 “현재의 낙산사는 1953년 6·25전쟁 이후에 급히 지어진 것으로 원형에 맞춰 복원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중창된 것”이라면서 “원통보전을 비롯해 중요한 전각터를 발굴해서 원형을 찾아 복원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양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식목일 산불] 낙산사는 어떤 절

    [식목일 산불] 낙산사는 어떤 절

    낙산사(洛山寺)는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오봉산(五峯山)에 있는 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재위 시절인 671년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해 창건됐으며 사찰 전체가 시·도유형문화재 35호로 지정돼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낙산사는 처음에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 창건했으며, 그 직후에 의상과 함께 신라 불교의 쌍벽을 이룬다고 평가되는 원효대사가 이곳을 찾기도 했다. 그만큼 유서가 깊은 사찰로서 한국 고대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낙산사는 관동팔경(關東八景) 가운데 하나로, 이곳에서 보는 동해의 일출이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또한 인천 석모도의 보문사, 경남 남해 금산의 보리암과 더불어 3대 관음기도 도량 가운데 하나로 365일 기도를 드리는 신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낙산사는 그동안 다섯차례 화마(火魔)에 휩싸여 다시 지어지기를 반복했다.786년 화재로 사찰 대부분이 불에 탔다가 858년 범일(梵日) 스님에 의해 중건됐다. 이후 1231년 몽고의 난 때 전소된 낙산사는 조선 세조 때 중창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때도 소실됐다가 1953년에 다시 창건됐다. 낙산사에는 명성에 걸맞게 각종 유물도 많다. 보물 479호인 낙산사 동종은 높이 1m58㎝, 입지름 98㎝로 1469년 조선 예종이 아버지 세조를 위해 낙산사에 보시한 종이다. 보물 499호 낙산사 칠층석탑은 1467년에 조성됐으며, 수정으로 만든 염주와 여의주가 탑 속에 봉안됐다고 한다. 낙산사는 대웅전이 없는 대신 원통보전(圓通寶殿)이 본전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학적으로는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팔자 모양으로 돼 있는 원통보전 안에는 보물 1362호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양양·고성 산불… ‘재난사태’ 선포

    양양·고성 산불… ‘재난사태’ 선포

    식목일인 5일 발생한 산불로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의 건물 대부분이 완전히 불에 타 붕괴됐다. 당국은 불길이 설악산과 속초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밤새 전전긍긍했다. 정부는 이날 양양과 고성군 전 지역에 대해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이날 밤 11시30분 현재 180㏊의 산림이 탄 양양을 비롯해 고성과 충남 서산 등 전국에서 23건의 산불이 일어나 모두 240여㏊의 산림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4일 밤 11시50분쯤 양양군 양양읍 파일리∼강현면 물감리 도로변 야산에서 발생한 양양 산불은 5일 오후 낙산사 주변 송림을 타고 천년고찰 낙산사로 번졌다. 이 산불로 관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낙산사의 본전인 원통보전(圓通寶殿)을 비롯, 보타전(寶陀殿)과 원장(垣墻), 홍예문(虹霓門) 등 20여채에 이르는 건물의 대부분이 완전히 불에 타 붕괴됐다. 대신 낙산사 경내에 있던 보물 등 유물들은 다행히 피해를 면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낙산사 경내의 ‘건칠관세음보살좌상’(보물 1362호)과 7층석탑(보물 499호) 등은 안전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물 479호인 낙산사 동종은 범종각과 함께 불에 타 훼손됐다. 문화재청은 낙산사의 피해 추정액인 30억여원은 국비만으로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낙산사를 삼킨 산불은 밤 11시30분 현재 양양읍 물감리에서 설악산 방향인 서북쪽으로 15㎧의 바람을 타고 이동 중이라 6일 국립공원 설악산까지 산불이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양양군 물갑리와 화일리, 거마리의 15만 4000V 특고압 송전선로 앞 800m까지 불길이 번져 한때 강릉과 고성 등 동해안 일대에 대거 정전사태가 발생할 뻔하기도 해 주민들이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양양에서는 이날 군경과 소방관, 공무원, 인근 주민 등 5800여명과 헬기 17대, 소방차량 49대 등이 진화작업을 펼쳤다. 또 양양군에서만 134가구 34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 지난달 29일 북한지역에서 처음 발생했다가 2일 내린 비로 꺼진 고성 산불은 지난 4일 오전 9시15분쯤 고성군 동부전선 비무장지대 고황봉 서쪽 2㎞ 지점에서 다시 살아났다. 이어 5일 밤 11시30분쯤 통일전망대를 지나 최북단마을인 현내면 명파리 전방 1.5㎞까지 불길이 남하하면서 30여㏊의 피해를 냈다. 군장병 300명 등 1200여명과 헬기 14대, 소방차 10대 등이 이날 살수작업을 벌였지만 지뢰지대로 접근이 어렵고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어려움을 겪었다. 강원도산불대책본부는 이날 오후 10시부터 야간진화조로 ▲양양 1450명과 소방차 40대 ▲고성 1050명과 소방차 10대를 편성,6일 새벽까지 진화작업을 계속했다. 양양 조한종 유지혜 이재훈·서산 이천열기자 bell21@seoul.co.kr
  • [클릭 이슈] 문화재 보존 해법은 무엇인가

    [클릭 이슈] 문화재 보존 해법은 무엇인가

    지난해 9월 유홍준 문화재청장 취임후 ‘문화재 보존방식’을 둘러싼 설전이 뜨겁다. 취임 이전 미술사학자(명지대 교수)로 문화재 행정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그가 무분별한 복원의 폐해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문화재 보존관리정책이 잇따라 재검토되고 있는 것. 그러나 복원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며 ‘유홍준식 보존정책’을 비판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아 문화재 복원문제는 당분간 문화재계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재검토되는 문화재 복원계획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국보로 지정된 석조문화재 6건에 대한 보존대책 보고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석가탑, 감은사지탑 등 안전진단에서 문제가 드러난 문화재의 보수 및 복원계획이 담긴 보고서였다. 문화재청은 지난 21일 옛 국립중앙박물관 회의실에서 보고서 내용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했다. 그러나 이 문건은 지난해 10월 이미 문화재위원회에서 사실상 해체 및 복원 결정이 났던 석가탑의 경우 장기간 지켜본 뒤 보수방향을 결정하는 것으로 바뀌는 등 유 청장의 의중이 상당부분 반영되면서 ‘해체’ 또는 ‘복원’보다는 장기간의 ‘정밀관찰’이나 ‘부분 보수’쪽으로 상당히 기울어 있었다. 유청장은 앞서 지난 연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여수 진남관은 해체복원 방안을 전면 재검토하고, 석가탑과 다보탑, 감은사지 동·서 3층석탑 해체및 보수계획 복원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었다. 이와 함께 복원이 완료된 미륵사지 동탑을 ‘20세기 최악의 복원사업’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충북 보은 법주사의 청동대불,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 철원 도피안사의 철조 비로자나불좌상 등의 예를 들어 복원의 폐해를 강력 비판했다. 유 청장은 “차라리 그대로 두었다가 무너지면 그때가서 복원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문화재 복원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해체·복원의 불기피성 주장도 적지 않아 문화재 해체·복원에 대한 유청장의 이같은 거부감에 대해 문화재청이나 문화재연구소 일부 전문가들은 “실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빚어진 현상”이라고 반감을 나타냈다. 문화재연구소의 한 간부는 “석가탑의 경우 정밀 안전진단 결과 더 이상 두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 해체·복원이 사실상 결정됐었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까지 통과한 사안이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다른 간부는 “기존의 해체복원 방안도 충분한 관찰과 추가적 검사를 전제로 한 것이었는데 청장 발언 이후 기존의 정책이 모두 무분별한 것으로 비쳐졌다.”며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전문가들 “원형손상 더 심해져” 이들은 “무너지면 그때가서 복원해도 늦지 않다.”는 청장의 말은 무분별한 해체복원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나온 상징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목조 문화재의 경우 무너지면서 목재가 늘어지거나 부러질 수 있으며, 석조 문화재도 붕괴 과정에서 석재가 추가로 부서져 원형 손상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분 보수를 통해 무너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그것마저 한계에 다다르면 해체·복원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다만 미륵사지 동탑 등 충분한 조사와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해체복원의 결과물은 유 청장의 지적대로 문제가 적지 않음을 시인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특별관리중인 문화재-석가탑 해체·복원 보수유지로 전환 현재 논의의 중심이 되는 문화재는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제21호)과 다보탑(국보 제20호),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및 동삼층석탑(국보 제112호), 미륵사지 서탑(국보 제11호),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등 6개다. 이들은 모두 7∼8세기 건립된 우리나라 최고의 석조 문화재로, 오랜 세월이 경과함에 따라 균열과 풍화, 내부 공동화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어 ‘특별관리’에 들어간 지 오래됐다. 지난 21일 국립문화재연구소 배병선 건조물연구실장은 이들 석조문화재의 현재 상태와 보존관리 대책을 브리핑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감은사지 서삼층석탑은 맨 꼭대기층을 덮은 옥개석의 탈락 우려가 있고 옥개 받침석이 파손되는 등 옥개석 구조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 이에 따라 연구소측은 최소한 꼭대기층인 3층의 해체보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불국사 3층석탑은 당초의 해체복원 계획에서 장기계측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균열 및 이격 부위 등 위험 부위에 각종 계측장치를 부착해 실시간 모니터링에 들어가기로 했다. 모니터링 도중 안전상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 해체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벌어지거나 파손된 부위를 석재로 메우는 방법(의석 처리)을 쓰고, 표면강화제 처리로 더 이상의 부식이나 파손을 막는 방식으로 보수를 진행하게 된다. 다보탑은 누수가 석탑 훼손의 주요 원인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난간부 해체후 누수경로를 파악해 누수를 막고, 균열된 부재를 접합·강화처리할 계획이다. 미륵사지 서탑은 4년 전부터 해체조사가 시작돼 이미 1층만 남기고 모두 해체된 상태다.1층까지 해체조사가 완료되면 이를 바탕으로 보수 및 복원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여주 걸구쟁이네

    [뒷골목 맛세상] 여주 걸구쟁이네

    엄동설한(嚴冬雪寒), 그야말로 깊은 한겨울이다. 겨우살이 짐승들은 가장 깊은 잠에 빠진 채 더 이상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한껏 몸피를 움츠릴 터이며, 벌거벗은 나목들도 더 이상 수액을 얼리지 않기 위하여 한껏 중심을 뿌리에 내릴 터이다. 모든 생명들이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하여 안간힘으로 혹독한 추위에 맞서고 있을 때, 어디 사람이라고 다르랴. 더군다나 혹독한 추위가 비단 수은주만은 아닌, 사람살이의 여러 어려움에서 오는 것이라면 더욱 몸피를 움츠리고 차라리 주검이듯 뿌리 밑바닥으로 잦아들 터이다. ●한겨울 소풍농월에 어울리는 여주 8경 추위며 사람살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혹독하다면, 그대는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 소중한 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 보자.‘소풍농월(嘯風弄月)’이라는 멋스러운 말이 있다. 바람에 휘파람을 불고 달을 희롱하며 기꺼이 한 몸이 되는 경지를 이른다. 어떤가, 차라리 저 바람이며 달만은 아닌 엄동설한과도 어울려 기꺼이 한 몸이 되어 보는 것이.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인 여주에는 뜻밖에도 소풍농월에 어울리는 풍광들이 많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여주팔경’ 혹은 ‘금사팔경’이라 하여 여주의 빼어난 풍광 8가지로, 여주 일대의 남한강을 일컫는 여강에 내려앉는 기러기, 청심루에서 바라보는 달빛,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학동마을의 저녁연기, 신륵사의 종소리, 마암 아래 떠있는 고깃배들의 등불, 영릉의 푸른 신록, 팔대수의 청청한 숲을 꼽았다. 과연 어느 곳에나 드맑게 고답한 기운이 서려 있어, 소풍농월의 그대를 금방이라도 감싸 안을 풍광이다. ‘여주팔경’ 중에서도 나로서는 신륵사 종소리를 우선하지 않을 수가 없다.1980년대에 신륵사에는 원경(圓鏡)스님이 주지로 주재하고 있었는데, 나는 거의 사흘이 멀다 하고 신륵사를 찾았다. 물론 원경 스님을 찾아서이다. 모르기는 해도 나는 자신이 지닌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는 없는 혹독한 시절이었을 터이다. 어느 때는 스님을 따라 나 또한 머리를 깎고서 단식을 하거나 혹은 한 달 넘어 머물면서 새벽이나 저녁이면 예불 대신에 신륵사의 종을 치기도 하였는데, 아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통하여 마침내 온누리로 퍼져가던 종소리의 파장과 진동이라니! 처음에는 속된 중생의 손에 의하여 울리는 종소리가 혹여 삼십삼천의 뭇생명들을 잘못 인도할까 두려워 심장마저 벌벌 떨려났으나, 차츰 내 손으로 울리는 서른세 번의 종소리가 뭇생명들을 깨우고 또한 잠재울 수 있으리라는 원력이 더욱 커져갔다. 그러다 보면 또 알랴, 어느 날 새벽에 저 종소리의 파장과 진동 속에서 마침내 자신의 어떤 무지함에도 번쩍 눈뜨게 될지. 원경 스님을 처음 대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 스님은 역시 여주에 있는 흥왕사라는 절에서 주재하고 있었는데, 신륵사와는 달리 달랑 대웅전과 요사채만 있는 참으로 빈한한 절이었다. 절 식구 또한 빈한한 절답게 원경 스님과 벌써 허리가 많이 굽은 공양주보살 이렇게 달랑 둘이었다. 당시 작가 송기숙, 작가 황석영, 시인 조태일, 작가 이문구, 시인 이시영 등의 여러 문인들이 어울려 원주의 김지하 시인 집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여주를 지나는 어름에 황석영 선배가 갑자기 원경 스님 이야기를 꺼내어, 에라,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고 흥왕사를 찾은 것이었다. 이미 원주에서 술이 거나해진 일행은 흥왕사에 오를 때도 아랫마을에서 한 말들이 막걸리 두어 통을 들고 올라와 대웅전 앞마당에 대뜸 술판부터 차렸는데, 송기숙 선생이 원경 스님에게 시비를 걸었다. ●신륵사 종소리 뭇생명 일깨우고… “어이, 원경, 저 부처가 내 동생인데, 그러면 자네하고 나는 촌수가 어떻게 되는 것이여?” 그러자 원경스님이 호쾌하게 껄껄, 웃어넘겼다. “부처님 촌수야 너무 어려우니까 따지지 말고, 까짓것 저하고도 그냥 형님 아우 합시다. 형님!” “좋아, 그러면 부처 대신 아우가 먼저 내 술 한 잔 받게.” “좋지요.” 원경 스님은 막걸리 사발을 들어 단숨에 들이켜더니 다시 송기숙 선생에게 넘겼다. 그런 원경 스님을 대경으로 우러러보는 나에게 누군가가 귓속말로 ‘저 스님,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아들이야.’라고 소곤거렸다. 순간 나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대로, 행여 이름 모를 새라도 근방에서 귓속말을 엿들을까 싶어서였다. 시절이 많이 좋아진 지금이야 하늘이며 땅에 대놓고 무슨 말인들 못하랴. 그러나 당시로서는 박헌영이니 공산당이니 하는 말은 무슨 비상(砒霜)보다도 더 무서운 독극물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훗날 알았지만, 허리가 많이 굽은 공양주보살은 바로 원경 스님의 어머니였다. 빈한한 절, 한 사람은 스님이 되고 또 한 사람은 그 스님의 옆에서 공양주보살 노릇을 하는 박헌영 남로당 당수의 살붙이들. 역시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도 흥왕사 시절의 원경 스님만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눈시울이 젖어온다. 벌거벗은 나목이듯 뿌리를 밑바닥에 깊이 내리고 숫제 주검처럼 살아온 모자에게는 사람살이가 사시사철 엄동설한이 아닌 때가 없었으리라. 소풍농월의 여주에 어찌 드맑게 고답한 맛이 뒤따르지 않으랴. 신륵사 입구에서 원주로 가는 도로로 5km쯤 달려 강천면 이호나루를 지나면 바로 목아불교박물관이라는 새로운 관광명소가 나온다. 그리고 그 박물관의 한 쪽에 있는 듯 없는 듯 수줍게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걸구쟁이네’(031-885-9875)가 있다. 그러나 걸구쟁이네에 가기에 앞서 반드시 박물관에 들러 먼저 눈을 맑게 할 일이다. ●오신채·육류·해물 없지만 진수성찬 목아불교박물관의 목아(木芽)는 박찬수 관장의 호인데, 목조각 부문의 무형문화재 제108호인 그이가 필생으로 빚어내거나 수집한 6000여 불교 관련 작품들을 2600여평의 드넓은 터에 전시해 놓은 곳이 목아불교박물관이다.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 야외조각공원에는 연못이며 수목들 주변에 돌이며 청동 같은 재료로 정교하게 빚어낸 미륵삼존대불, 백의관음상, 비로자나불,3층석탑 등 40여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미륵삼존대불이다. 높이가 15m에 이르는 미륵삼존대불은 제작기법이 종전의 여느 부처상과는 달리 몸체 자체의 선을 반추상 기법으로 과감하게 처리하여 현대적인 세련미를 느끼게 한다. 이밖에도 인도의 석굴사원을 모방했다는 지상 3층, 지하 1층의 붉은 벽돌건물인 전시관은 외양부터 아름답지만, 안에 있는 여러 전시품을 둘러보다 보면, 박물관장의 예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깊은 종교적 심성 또한 무슨 향기처럼 저절로 보는 이의 가슴에 드맑게 스며온다. 걸구쟁이네는 주인인 안은자씨가 태어나서 자란 ‘걸구쟁이’란 동네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바로 인근에 있는 강촌면 걸구쟁이에서 나고 자라 마흔 나이에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주인의 순진한 인상에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원래 사찰음식은 오신채라 불리는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를 멀리 하고, 육류며 해류 따위 고기를 일체 쓰지 않은 고답한 음식이다. 오신채며 고기 대신에 스님들의 수행 중에 부족한 기름기는 깨며 콩, 부각 등으로 보충하고, 계절마다 산야에서 나오는 냉이나물, 취나물, 유채나물, 곤드레, 씀바귀, 소루쟁이, 고사리, 도라지, 머위, 근대, 곰취 등 각종 싱그러운 나물들을 주로 한다. 오이며 고추, 무, 가죽나물, 깻잎, 콩잎, 더덕, 산초 같은 여러 장아찌류에 버섯구이, 호박꼬지, 박꼬지, 산초두부, 장떡, 도토리묵무침에 된장국이며 청국장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한상 떡 벌어진 진수성찬이다. 걸구쟁이네는 사찰정식(1만5000원) 이외에도 도토리 요리도 전문으로 해서, 도토리수제비(6000원), 도토리묵밥(5000원), 도토리총떡(5000원), 도토리묵(1만원)이 있고, 각각 8000원짜리인 곤드레돌솥밥, 취나물돌솥밥, 산나물돌솥밥에, 모듬버섯전이며 장떡도 있다. 어느 것이나 안주 삼아 곡차라고 부르는 동동주 몇 사발까지 거나하게 마실 수가 있다. ●12가지 한약재 사용한 별미 돼지고기 보쌈 만일 여러 이유로 목아불교박물관이며 사찰음식이 저어된다면, 역시 신륵사에서 원주로 가는 도로에서 박물관으로 가는 도중에 북내면으로 접어들 일이다. 거기에 넓은 벌을 앞마당 삼아 무슨 사대부 집안처럼 고풍스러운 전통한옥의 형태의 ‘예닮골(031-883-5979)’이 있다.‘예닮골’이란 그대로 옛날을 닮은 마을이란 뜻인데, 얼핏 둘러보아도 뜰 안의 대청마루며 물레방아에서 가옥 뒤편의 장독대며 심지어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든 주인 되는 이순옥씨의 섬세한 손길이며 마음씨가 쉽게 묻어난다. 예닮골의 맛은 무엇보다도 예닮정식(1만 2000원)이 우선이다. 무려 12가지 한약재를 사용하여 돼지고기 특유의 비린내를 없앤 돼지보쌈에다가 묵은 김치에 시래기를 섞고, 두부며 당면, 고기를 사용하여 커다랗게 빚은 왕만두에, 뚝배기 위로 샛노란 연꽃처럼 예쁘게 부풀어 오른 계란찜이며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고등어조림, 동치미, 망초대, 시래기무침, 표고버섯볶음, 도토리묵, 잡채, 짜배기김치, 멸치볶음, 고추장아찌, 무장아찌, 멸치조림 등 25가지에 이르는 반찬이 커다란 상이 좁아라고 가득 펼쳐진다. 게다가 이천쌀에 못잖은 여주쌀의 기름진 쌀밥이 나오고, 끝머리에는 누룽지까지 기다리고 있다. 아니, 식사를 끝내기 전에 주인이 자랑하는 예닮주를 반드시 맛볼 일이다. 전통적인 비법에 따라 빚었다는 예닮주의 누룩냄새가 은은하게 남아있는 향이며 입에 살갑게 감쳐드는 감칠맛은 얼마든지 자랑해도 좋았다. ■ 전통차 손수 끓여보세요 여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뭔가 미진하다면 마지막으로 신륵사 앞에 있는 세계도자기엑스포의 토야도예공방에 들러보자. 내가 즐겨 찾던 80,90년대와는 달리 신륵사 앞 넓은 강변이며 들판은 어느 새 관광지가 되어 강에는 황포돛배가 떠있고, 강변에는 보트장이며, 퍼팅장, 야영장 같은 다양한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고, 산뜻한 외양의 식당이며 숙박시설들이 또한 뒤따르고 있어, 옛날의 황량한 강변이며 들판만 기억하고 있는 나의 눈을 차라리 설게 만든다. 그런 신륵사 일대에서도 먼저 돋보이는 것은 단연 재단법인 세계도자기엑스포 건물들이다. 생활도자전시관을 비롯하여 토야도예공방 건물이 드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시원시원하게 들어서 있어서 보는 이의 발길을 저절로 이끈다. 토야도예공방은 이를테면 세계도자기엑스포를 찾는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 공간이다. 직접 도자기를 빚어볼 수 있는 ‘흙체험’에서부터 도예작가가 될 수 있는 ‘도예교실’, 아이들을 위시한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흙놀이’, 전통차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토야다실’까지 모두 비영리로 운영되고 있다. 이중에서 ‘토야다실’(031-884-8552)은 전통차를 다룰 줄 모르는 이에게도 본인이 손수 차를 즐기게끔 찻물을 끓이는 법부터 차를 마시고 난 후 설거지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고른 도자기 찻잔으로 차를 담아 입안에 오래 맴도는 드맑은 차향을 얼마든지 즐긴 끝에, 나중에는 도자기 찻잔도 집으로 가져갈 수가 있다. 차향을 즐기고 도자기 찻잔을 챙기는 값이 불과 커피 한 잔 값인 5000원이다. 토야도예공방의 휴무인 월요일만 제외하면 언제든지 토야다실을 이용할 수 있다.
  • [책꽂이]

    ●지휘계통(시모어 M. 허시 지음, 강주헌 옮김, 세종연구원 펴냄) 9·11테러에서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포로학대사건까지 일련의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감춰진 ‘추악한 전쟁’의 실상을 파헤친 책. 저자는 35년 전 베트남전 밀라이 학살사건 진상 폭로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 기자다.1만 6000원.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찰스 P. 킨들버거 지음, 주경철 옮김, 까치 펴냄)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 1500년 이후 세계 경제를 잇달아 주름잡아온 나라들의 경제적 흥망과정을 살핀다.1만 8000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조범환·문왕 지음, 푸른역사 펴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개혁군주 경문왕 이야기. 설화속 인물이었던 경문왕에게 역사학의 옷을 입힌 역사 다큐물로 재구성했다.1만원. ●최초의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김산해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5000년 전 지구상에 그 어떤 문명도 존재하지 않았던 선사시대에 수메르인들이 이룩한 찬란했던 초고대문명 이야기. 수메르문명은 20세기 인류가 이루어낸 최대의 고고학적 발굴로 꼽힌다.2만 8000원.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1·2(모리스 마이스너 지음, 김수영 옮김, 이산 펴냄) 거대 인구의 낙후된 국가에서 근대산업국가로 전환하는 첫걸음을 내디딘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 그리고 덩샤오핑 시대를 맞아 지본주의 세계질서 속에서 막강한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을 살펴본다. 각권 1만 9000원.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이종호 지음, 인물과 사상사 펴냄) 발굴의 황금시대를 연 마우솔레움부터 아틀란티스와 트로이, 아르테미스 신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진시황릉, 아프리카 대짐바브웨, 스키타이 등 고대 문명사를 바꾼 대발굴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1만 5000원. ●교육학의 거장들 1·2(한스 쇼이얼 등 지음, 정영근 등 옮김, 한길사 펴냄) 현대 교육학 정립에 큰 영향을 미친 학자들의 교육사상을 살펴본다. 에라스무스, 몽테뉴 등 르네상스 이후부터 마르크스, 피아제 등 20세기의 거장까지 21명의 인물을 다룬다. 각권 2만 5000원. ●영한사전 비판(이재호 지음, 궁리 펴냄) 7개 유명 영한사전에서 발견한 오류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영한사전의 슬픈 현실을 고발한다. 한자어나 일본식 번역, 실용어 누락, 장황한 설명, 내용상 오류 및 오자, 혼란스러운 인명·지명 표기 등등.1만원. ●한국의 석조문화-그 아름다움의 절정(박정근 소재구 등 지음, 다른세상 펴냄) 암각화, 남근석, 돌장승, 석불, 석탑, 석축, 석성, 돌다리, 고인돌 등 석조문화 속에 담긴 미학을 발견하고, 석물에 배어있는 선조들의 정신적 발자취를 찾아간다.1만 5000원. /***●라루스 서양미술사 시리즈(생각의 나무 펴냄) 세계적 권위의 ‘라루스 백과사전’을 편찬한 라루스가 편찬한 서양미술사 시리즈.‘르네상스’‘중세미술’‘근대미술’‘낭만주의’‘고전주의와 바로크’‘현대미술’ 등 6권이 발간됐다. 각권 1만 9000원./***/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48)울산의 처용과 박제상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48)울산의 처용과 박제상

    ●악귀 내쫓는 처용은 해양문화의 소산 지금은 사라졌지만 연말이면 악귀를 쫓는 나례 풍습이 있었다. 붉은 탈을 썼으니 처용이 그 원조이다. 동지에는 붉은 팥죽을 쑤어 악귀를 내쫓았다. 이러한 유풍의 근원에 처용이 늘 버티고 서있다. 그 처용이 해양문화의 소산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처용을 만나려면 울산으로 가야 한다. 경주가 신라의 본향임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또 하나의 본향인 울산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저 공해에 찌든 땅으로만 알고 있는 울산이야말로 경주 감포와 더불어 신라가 동해로, 세계로 나아가던 출구였다. 울산에는 동해를 굽어보던 유서깊은 절터가 남아 있다. 오늘날 울산항으로 엄청난 국제적 물동량이 오고감을 생각해볼 때, 신라 천년의 출구 역할이 지금껏 이어진다고나 할까. 호젓한 문수산(옛 영취산)을 오르다보면 망해사지(望海寺址)를 만난다. 글자 그대로 바다를 바라보는 절. 솔잎 냄새 풍기는 숲속에 부도 2기가 의연하게 서 있는데, 이 절이 세워진 내력은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너무도 유명한 망해사지와 처용설화가 그것이다. 신라 49대 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에서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졸지에 길을 잃어버렸다. 왕이 괴상하게 여겨 측근에게 물으니 일관이 답하되,‘동해 용의 장난이니 좋은 일을 하여 풀어버려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왕이 명령하여 그 용을 위해 세죽나루 근처에 절을 세우라 하였더니 홀연히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다. 동해 용이 기뻐하여 곧 일곱 아들을 데리고 임금 수레 앞에 나타나 춤과 노래를 연주하였다. 그의 아들 하나가 임금을 따라와 국정을 보좌하였는데 이름을 처용이라 하였다. 왕이 그를 미인에게 장가들게 하였는데 역병 귀신이 밤마다 그 집에 가서 몰래 처용의 아내를 품고 잤다. 어느날 처용이 동경 밝은 달밤에 이슥히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었다.‘둘은 내해었고,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다마는 빼앗는 것 어쩌리!’ ●처용의 아버지 ‘용’에 대한 해석 분분 용은 누구일까. 학자들마다 해석이 구구하다. 조금이라도 이 분야에 조예가 있는 학자들은 저마다 구구한 해석을 내놓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용이 해상 세력과 관련있음이 분명하다. 울주에서 조금만 북상하면 문무대왕이 동해 용왕이 되길 꿈꾸었던 동해구(東海口)가 나오고, 동해 용왕이 드나들던 감은사지가 지척이다. 혹자는 용을 외국인, 보다 정확하게는 아라비아 상인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개운포가 국제무역항이었음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나 증거는 없다. 혹자는 울산 바닷가에 기반을 잡고 있던 해상 호족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세종실록지리지 울산군 처용암 조에도 ‘고을 남쪽 37리 개운포 가운데에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신라때 동해 용왕의 아들이 거기서 나왔으며, 모양이 기괴하고 가무를 좋아하여 사람들이 처용옹이라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까지 전설처럼 처용암과 설화가 전승되었다. 고려시대에 학연대합설처용무 춤이 추어졌으니 역병을 쫓는 전통은 천년을 뛰어 넘어 이어진 셈이다. 설화 속의 역병도 단순한 전염병이 아닐 것이다. 당대의 ‘사회적인’ 역병을 은유한 것은 아닐까. 헌강왕조라면 신라가 돌이킬 수 없이 기울었던 때 아닌가. 처용은 역병을 물리치는 춤을 추고 있다. 처용의 춤은 흡사 무속의 악귀물림과도 같은 것이리라. 훗날 처용춤은 궁중정재로 편입되고, 민중 사이에서 제융의 역할을 도맡게 된다. 문헌기록상 무당으로 간주되는 신라 남해차차웅, 악귀를 쫓는 처용, 제액을 물리치는 제융 등은 한 가지를 뜻하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처용은 분명히 이두식으로 표현된 한자임에 틀림없다. ●공해 찌든 처용암에도 상록수는 우거져 망해사 바로 옆에는 늠름한 청송사 3층탑이 있다. 너무도 당당하고 의연하여 감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이 장중한 석탑이다. 거기서 더 올라가면 문수사가 있으니 울산이나 부산 사람들이 영험하다 하여 쉬도 때도 없이 찾아든다. 삼국유사 전편을 통하여 영험한 문수보살은 노파로 변신해 기행을 일삼는다. 처용과 문수보살, 신라인이 창조한 인물군이 영취산을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청송사지와 문수사 가는 길은 지금이야 경관이 가려져서 바다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그 옛날 신라인들은 국제항 개운포 풍경을 굽어보면서 이 산을 올랐으리라. 망해사지를 보았다면, 반드시 처용암을 찾아야 할 터인데, 아서라, 그냥 지나칠 수도 없고, 차마 찾아갈 수도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황성동 세죽리 앞바다의 처용바위는 신라 천년의 역사를 고증하고 있건만 석유화학단지의 공해로 바다는 찌들고, 보상금을 받아 쥔 마을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 제를 지내는 당집의 나무도 시들어 처용바위의 처지를 말해주고 있다. 시비(詩碑)도 세워 두었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나마 매립이 되어 처용바위 자체가 사라질 판인 것을.“매립이 되더라도 처용암만큼은 반드시 보존하는 방향으로 지킬 것”이라는 김광오 울산시 공보관의 말에서 그나마 작은 희망을 얻는다. 처용암이 있는 세죽나루는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다. 공단이 들어서면서 근로자를 상대로 하는 횟집들이 번창하기 시작했다.90년대 초반까지 동해의 온갖 횟감이 팔리던 횟집도 이제 서서히 문을 닫는 판국이다. 더 이상 지독한 냄새를 견디지 못해서다. 그러나 생명의 힘은 그토록 무서운 것일까. 처용암 위에 빽빽하게 들어선 팽나무 사철나무가 사철 상록의 잎그림자를 바다에 드리운다. 처용암 지척에는 상록수림으로 유명한 춘도도 있어 동백나무숲이 그대로 전해진다. 바다 경관이 무너졌음에도 나무들은 제 역할을 다하며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처용암에서 울산의 문화축제인 처용문화제도 열린다. 처용제의를 비롯하여 처용콘서트, 처용합창제, 처용얼굴 그리기 등등 처용을 기리는 행사가 열려서 글 모르는 아이들도 울산에서만큼은 처용을 알고 있다. 공장으로 둘러싸인 개운포에 포로처럼 갇혀 있는 처용암을 보노라면 근대산업화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결단낸 그늘진 면을 보는 것 같아 무척 마음 아프다. ●박제상 그리다 돌이 된 치술령의 슬픈 전설 처용암에서 천년 전설의 현장이 무너졌음을 보상받고 싶거들랑 반드시 은을암(隱乙庵)으로 방향을 잡기 바란다. 왜국에 볼모로 잡힌 내물왕(柰勿王)의 미해왕자를 구출하고 대신 죽음을 당한 박제상을 그리다가 망부석이 된 전설이 전해지는 치술령 자락의 그 은을암이다. 공단의 매캐한 공해바람에 컥컥이다가 은을암으로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신비로운 숲속에 들어서 있음을 알게 된다. 경주 남산으로 이어지는 치술령 능선에서 박제상의 아내는 세 딸을 데리고 일본으로 배가 떠난 율포(栗浦)를 바라보면서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끝내 돌이 되었다. 넋은 새가 되어 은을암의 동굴로 날아들었다. 사람들은 그 동굴에 제각을 짓고 용왕당이라 이름하여 모시고 있다. 국제항 율포와 용왕당이란 이름에서 바다와의 인연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울산은 신라의 대외 창구로, 중국의 명주, 양주 등으로 곧장 도항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들 중국지역은 동남아에서 무역 주도권을 장악한 대식국(아라비아)상인들이 동진하여 붐비던 곳이었으니, 이들 아라비아인을 통하여 일찍이 신라의 존재가 세계에 알려졌다. 이들이 울산지방을 통하여 입국했을 가능성이 높아 처용이 이슬람상인이라는 가정법이 등장한 것이다. 박제상 일가의 충효는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두고두고 운위되어 삼강행실도에 등장하는 등 ‘따라야 할 모범’으로 규정됐다. 당대 지방장관 정도의 높은 직위에 있었을 박제상이 왜국에까지 가서 볼모를 빼내와야 했던 기록은 끊임없이 왜구의 약탈을 받아야 했던 신라의 어려움을 잘 말해준다. ●“일본을 바라보니 하늘에 닿은 고래물결 가이없네” 일본의 규슈는 한반도에서 가까웠기에 그들은 뻔질나게 한반도 해안을 들이쳤다. 선진 문물에 목말라했던 왜인들은 신라에서 문화 약탈의 원정을 꿈꾸었던 것이다. 해류상으로 규슈의 북단인 하카다(博多)나 시모노세키(下關) 등지에서 배를 들이밀면 고스란히 울산쪽에 닿았다. 울산은 신라의 왕도인 경주를 침략하는 해상 루트였으며, 임진왜란때 왜군이 울산 학성에 왜성을 쌓고 버틴 것도 이런 역사문화적 배경을 지닌다. 오죽하면 문무대왕이 동해 용왕이 되길 자청했을까. 지배집단에서 박제상 일가의 충효는 시대의 사표로 선전되었으며, 치술신사에 배향되기도 했다. 신중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한때 울주에 벼슬살이 하러 내려왔던 김종직이 한역했다는 치술령가가 나온다. 당시 울주에서 들은 노래를 다소간 윤색했을 것이다.‘치술령 머리에서 일본을 바라보니, 하늘에 닿은 고래물결 가이 없네. 낭군이 가실 때에 다만 손만 흔들더니, 살았는가 죽었는가 소식이 끊어졌네. 길이 이별함이여, 죽은들 산들 어찌 서로 만날 때 있으랴.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다가 문득 무창의 돌로 화하니, 열녀의 기운이 천추에 푸른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렇지만 반드시 지배층의 의도대로만 박제상의 행적이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의 부인은 치술신모가 되어 모권적인 무속신으로 재창조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민중들에게 ‘치술령의 영험한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다. 은을암에서 굽어보니 경주 남산까지 이어진 치술령 산자락 아래로 운무가 비끼고 어디선가 새가 날아들고 있다. 무심한 저 새의 혼에도 치술신모의 넋이 깃들어 있지 않을는가.
  • 말말말˙˙˙

    전북 익산 미륵사지 동탑 복원은 20세기 한국 문화재 복원 최악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유홍준 문화재청장이 16일 미륵사지 석탑(서탑) 해체 조사보고회에서 “지난 1993년 모든 전문가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권력자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졸속으로 복원이 돼 버렸다.”며-
  • 미륵사지 석탑 국보급 유물 나올까

    미륵사지 석탑 국보급 유물 나올까

    국내에서 현존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석탑으로 알려진 익산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을 완전히 해체하고, 이를 정비해 다시 복원하는 대역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998년 구조안전진단 결과 그대로 둘 경우 보존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작업에 나서 현재 2층까지 해체조사가 완료된 상태. 연구소측은 16일 800여명의 문화재·미술사·건축학계 관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그동안의 해체조사 현황을 보고하는 현장 설명회를 가졌다.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미륵사지석탑은 백제 무왕 때(600∼640년 추정) 세워진 높이 14.24m, 좌우폭 각 10.6m의 다층석탑이었으나 서남쪽 부분은 무너지고 북동쪽 6층까지만 남아 있었다. ●전문가 초청 현장설명회 김봉건 소장은 “일제 때 덧댄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석재 하나하나를 손상이 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해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수십년의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드잡이공 홍정수(65·드잡이 기능자 190호)씨가 해체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덧댄 콘크리트는 석재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전통 석조각공이 정으로 일일이 깨뜨리는 수작업으로 185t에 이르는 양을 모두 제거했다. 해체된 석재 하나하나에 대해 실측도를 작성하고, 사진 촬영과 함께 3D 스캔을 실시해 원형복원에 대비하고 있다. 조사작업을 마친 석재는 미륵사지 내에 조성된 적재장으로 옮겨 쌓아 관람이 가능케 했다.1층만 남겨놓고 지금까지 해체한 석재의 양만 해도 어마어마하다.1∼2.5t 무게의 석재가 2000여점에 달할 정도. ●해체 석재량 지금까지 수천톤 미륵사지석탑은 1915년 일인들에 의해 콘크리트로 보강하는 수리가 있었다. 그 이전에 탑을 보수했다는 기록은 ‘혜거국사비문’에 922년 미륵사 개탑(開塔)에 관한 기록이 단편적으로 나올 뿐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해체된 석재들을 조사한 결과 치수와 형태가 일정한 규격을 보이지 않고 서로 혼재되어 있으며, 고려청자 조각들과 기와조각, 엽전(상평통보) 등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1915년 이전에도 2층까지는 최소한 1차례 이상 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구소측은 전체적인 해체복원은 아니고 흩어진 석재를 대충 끼워맞추는 수준이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김덕문 연구관은 “미륵사지탑의 현재 모습은 백제 시대의 원형으로 보기 어려우며 이후 몇 차례 변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김 연구관은 “1400년 동안 탑에 일어난 현상들은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른 역사적 사건이므로, 이후 보수 정비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하나의 실마리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차례 원형개조 확인 해체과정에서 아직 별다른 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탑 1층에 유물을 봉안하는 관례로 미루어 남아 있는 1층을 해체하면 특별한 유물이 나오지 않을까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문화재연구소는 당초 해체조사 및 정비사업을 2007년까지 완료할 예정이었으나, 진행이 생각보다 더뎌지면서 복원도 늦어질 전망. 김봉건 소장은 “2005년까지 1층 해체작업을 끝내고, 이후엔 정비 및 설계작업에 들어가 2008년 말 또는 2009년께나 사업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제천 장락사 삼국시대 창건됐다

    지금까지 사찰 창건 시기가 불분명했던 제천 ‘장락사지’가 삼국시대에 처음 세워진 사찰의 터임을 입증해 주는 기와들이 쏟아져 나와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0월1일부터 충북 제천시 장락동 장락사지 발굴작업을 진행중인 충북대박물관측은 최근 “출토된 직선문기와 및 연화문기와, 무문기와 등으로 미루어볼 때 늦어도 삼국시대 말엔 장락사가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장락사지엔 7층모전석탑(보물 제 459호)만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을 뿐 별다른 유물이 거의 없어 그동안 학계에선 장락사 창건 시기를 알아내는 데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또 일부 학자들은 석탑의 형태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혹은 고려시대에 사찰이 창건됐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으나, 이번 발굴로 그 시기가 앞당겨지게 됐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장락사지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6차례에 걸쳐 중창되었음이 확인됐는데, 그때마다 토층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유물과 유구가 존재하는 지층은 표토층을 포함해서 6개 층위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3층에서 ‘長’자가 새겨진 명문기와 및 복합문기와, 청자류 등 고려시대 유구가,4층과 5층에서 직선문기와, 사선문기와 등 통일신라의 유구가 노출됐으며,5층 하부와 6층에서 무문(無紋)암막새기와, 연화문(蓮花紋)수막새새기와, 승문평기와 등 삼국시대 유구가 확인됐다. 모전7층석탑에도 접근해 조사를 실시했으나 탑과 관련된 층위를 확인할 수 없어, 석탑 기단 하부의 층위를 조사해야만 탑이 세워진 정확한 시기 및 장락사와의 관계를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철새 알고 보면 재미도 가득

    철새 알고 보면 재미도 가득

    ‘푸드덕∼, 푸드덕∼, 쉭∼, 쉭∼’ 날이 저물자 금강하구 모래톱에서 쉬고 있던 가창오리떼가 시커멓게 하늘을 뒤덮었다. 강 가운데 머물던 가창오리떼가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하늘을 향해 힘찬 날갯짓을 한 것이다. 희미한 노을을 배경으로 치솟은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떼.‘와∼’. 짧은 탄성과 함께 주변에 잠시 적막감이 흘렀다. 가족들과 함께 철새 탐조에 나선 탐조객들은 자신들의 위세를 과시하듯 날아오르는 철새들의 경이로운 ‘군무’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루에 한번 먹이를 찾아 떠나며 펼친 가창오리떼의 군무는 수분 남짓 짧은 순간에 아쉬움을 남긴 채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철새탐조는 초·중학생 자녀를 둔 사람들에게 가족 여행으로 제격. 올겨울에는 한번쯤 철새들의 경이로운 ‘반란’을 보러 떠나자! ●철새들의 경이로운 ‘반란’ 승용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 2시간 30분여만에 도착한 곳은 충남 서천군 마서면 도삼리 금강철새탐조대. 서해안고속도로 서천 IC를 빠져나와 금강하구둑에 이르렀다. 망원경이 설치된 3층 탐조대와 생태전시체험관을 둘러 본 뒤 곧바로 탐조대에서 운행하는 ‘철새탐조 투어버스’(평일 오전 11시, 오후 2시, 주말 오전 11시, 오후 1시,3시)에 올랐다. 가격은 어른 5000원, 초·중·고생 3000원. 버스에는 ‘푸른서천리추진협의회’(041-965-2310)에서 나온 철새 전문가가 함께 탑승, 철새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철새탐조투어 전문가이드 신경순씨는 “새를 향해 손짓을 하면 새가 총을 쏘려는 것으로 오인해 날아간다.”며 간단한 주의사항을 말해준 뒤 철새 자랑이 시작된다. 신씨는 “시베리아에서 날아 온 40여종 70여만마리의 철새가 금강에서 겨울을 보낸다.”면서 “특히 전세계 가창오리 35만마리의 97% 이상, 전세계 검은무리 물떼새(천연기념물 326호) 1만마리의 95%를 이 곳에서 볼 수 있다.”고 자랑했다. 신씨에 따르면 금강 하구에는 관측 포인트마다 다른 철새가 관측된다. 금강 하굿둑 아래 바닷물에는 큰기러기, 쇠기러기, 고방오리 등이, 민물지역인 금강하굿둑 위에는 붉은부리갈매기, 댕기물떼새, 괭이갈매기, 모래톱이 형성된 금강대교 인근에서는 개리, 큰고니, 물총새, 종다리 등을 볼 수 있다. 가창오리는 와초리에서 볼수 있으며, 검은머리물떼새는 장항앞바다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작은섬 유부도에서 관측된다. 탐조버스는 망월리 제1관측소와 금강대교, 신성리 갈대밭을 거쳐 일몰이 다가오자 가창오리떼의 군무를 보기 위해 와초리에 도착했다.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떼가 펼치는 군무는 철새탐조의 하이라이트.“와∼. 마치 거대한 비행선이 인간을 향해 몰려오는 것 같다.”며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서천군 금강철새 탐조투어는 내년 2월28일까지 100일간 진행된다. ●편리한 탐조시설, 초보자도 OK 다음날 아침 금강대교를 건너 전북 군산으로 넘어왔다. 먼저 금강 하굿둑 옆에 새로 지은 국내 최대 시설의 철새 조망대를 방문했다. 철새조망대(성인 2000원, 어린이 500원)는 망원경을 설치한 대형 탐조대(9층·11층)와 한바퀴 도는데 2시간가량 소요되는 회전식 조망식당, 영상관, 전시실 등이 마련돼 있다. 탐조대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과 유치원 등에서 온 단체 관람객이 성황을 이뤘다. 유치원생 아들, 남편과 함께 서울에서 온 주부 김미선(35)씨는 “아이들에게 생태 교육을 시켜주고 도시생활에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정말로 오기 잘했다.”면서 “철새가 시베리아로 떠나기전에 다시한번 꼭 찾아 올 생각”이라고 극찬했다. 1∼5일 군산 금강철새조망대와 금강하구 일대에서는 ‘군산세계철새관광 페스티벌’이 열려 짧은 시간에 다양한 철새 탐조를 할 수 있다. 또 국제철새심포지엄과 학술대회,6대주 희귀조류 박제 전시회, 북한 조류 사진전 등이 열린다. 군산철새관광 페스티벌조직위원회 (063) 450-6275. 충남 서산의 천수만은 간척사업으로 생긴 농경지와 간월호, 부남호 등 대규모의 인공 담수호로 이뤄진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다.10월 중순부터 가창오리와 노랑부리 저어새, 큰고니 등 300여종 40만마리의 철새가 천수만을 찾는다. 내년 1월31일까지 천수만 겨울 철새학교가 열리고 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 한시간 간격으로 간월호 주변을 돌며 철새를 관찰하는 탐조버스가 운행된다(어른 5000원). 천수만 철새기행전 위원회 (041) 669-7744.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는 청둥오리, 큰기러기를 비롯해 재두루미나, 고니 등 20여종의 철새가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찾아온다. 주남·동판·산남저수지 등 3개의 저수지가 연결돼 넓이가 180만평에 이른다. 창원시청 관광진흥과 (055) 280-2043. 전남 남해안의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있는 순천만은 남해안 개펄 가운데 자연생태가 잘 보전된 곳으로 개펄과 50만평에 이르는 갈대밭 주변에 천연기념물 흑두루미 등 두루미류를 비롯한 철새들이 찾아와 겨울을 난다. 순천시청 관광진흥과 (061) 749-3328.탐조는 새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선 탐조 옷차림은 가급적 눈에 잘 띄는 붉은색과 흰색 계통의 옷을 피하고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갈색 복장을 택하는 것이 좋다. 또 야외에서 관찰을 해야 하는 만큼 매서운 바람을 막아낼 두껍고 가벼운 옷이 최상이다. 새는 후각에 예민하므로 냄새가 많이 나는 화장품이나 향수는 삼가야 한다. 특히 탐조에 앞서 조류 도감을 통해 탐조 지역의 특징, 주요 조류에 대해서는 미리 공부해 가는 것이 좋다. 망원경으로 철새를 보고 수시로 조류도감을 펴 종류와 특징을 확인해야 한다. 망원경을 이용해 가족이 돌아가며 관찰한 뒤 이름을 알아내고 메모장에 적는 것도 좋다. 디지털 카메라와 소형 녹음기를 준비한다면 금상첨화. 틈틈이 안내원의 철새 이야기를 녹음하고 사진으로 찍어 더 실감나는 기록을 만들 수 있다. ■ 눈 요기 맛 요기 끌리네 ‘철새와 함께 볼거리, 먹을거리도 즐기고‘ 철새 탐조에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주변 볼거리와 먹을거리다. 새는 환경에 민감한 동물로 새가 많은 곳은 깨끗한 자연 환경과 함께 먹거리가 풍부하다. ●볼거리 충남 서천의 마량 동백나무 숲은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는 애절한 전설과 함께 5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동백나무 85그루(천연기념물 169호)가 있다. 금강하구 인근인 충남 한산면 신성리 갈대밭은 폭 200m, 길이 1㎞이상 펼쳐진 면적이 6만여평에 이르는 우리나라 4대 갈대밭 중의 하나로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천군 문화관광과 (041) 950-4224. 또 금강대교 건너편 전북 군산에는 서해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월명산과 1∼2시간 안에 닿는 고군산 군도에는 선유도해수욕장과 섬이 있고 섬을 연결하는 하이킹 코스가 아름답다. 전북 군산에서 부안에 이르는 웅대한 규모의 새만금 방조제도 둘러보면 좋다. 군산시청 문화관광과 (063) 450-4554. 한편 차를 타고 30분가량 달리면 인근인 전북 익산에서 우리나라 최대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을 볼 수 있으며, 국내 최대의 보석박물관이 있다. 보석박물관에는 10만여점의 진귀한 세계 각국의 보석이 전시돼 있으며, 구입도 가능하다. 미륵사지 관광안내소(063-836-7804), 보석박물관 관광안내소 (063-850-4988) ●먹을거리 충남 서천군 서산회관(041-951-7677)의 갯벌에서 갓 잡은 주꾸미를 불판에 데쳐먹는 것과 알이 토실한 5월 꽃게와 된장이 어우러진 군산 하굿둑 꽃게장(063-453-6670)은 철새 탐조 여행의 맛을 더해 준다. ■ 알고 보‘새’요 새라고 다 똑같은 새가 아니다. 새는 크기와 형태, 부리, 꼬리, 날개 모양이 모두 다르다. 탐조에 앞서 새의 특성과 모습을 미리 익히면 큰 도움이 된다. ●가창오리 기러기목 오리과로 몸길이는 약 40㎝, 날개 길이는 약 21㎝. 먹이는 풀씨, 낟알, 수서곤충으로 시베리아 동부에서 번식하고 한국·중국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세계적인 희귀조로서 ‘멸종위기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수록되어 전세계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검은머리물떼새 천연기념물 326호. 몸길이 약 45㎝, 날개길이 23∼28㎝이다. 하구나 해안 간석지에 살면서 조개·갯지렁이·지렁이·게 따위를 잡아 먹는다. 몸 빛깔은 윗면을 비롯하여 이마와 목이 검정색이고 부리와 다리는 붉은색이다. 아랫면은 흰색이다. ●큰고니 천연기념물 201호. 몸 전체의 깃은 흰색이고 다리는 검은색이며, 부리의 뒷부분만 노랑색이다. 몸길이는 약 1.5m, 펼친 날개의 길이 약 2.4m이다. ●큰기러기 몸길이 76∼89㎝이다. 낮동안에는 한쪽 다리로 서 있거나, 배를 땅에 대고 머리를 뒤로 돌려 등깃에 파묻는다. 일반 기러기보다 짙은 갈색을 띠며 부리는 검정색이나 끝 가까이에 등황색 띠가 있다. 다리는 오렌지색이다. ●청머리오리 몸길이 약 43㎝이다. 수컷은 얼굴이 녹색이고 이마와 정수리에 댕기 모양으로 길게 갈색 줄이 나 있다. ●개리 천연기념물 325호. 기러기류 중 대형종으로 머리와 목 부분은 앞쪽과 뒤쪽의 색갈차이가 뚜렷해 다른 기러기류보다 밝게 보인다. 날개길이 41∼48㎝, 꽁지길이 11∼17㎝이다. ●발구지 흔하지 않은 겨울철새로 오리류의 무리에 섞여 월동한다. 둥지는 물가 초습지의 풀숲이나 숲속 땅위에서 풀을 이용해 만든다. ●넓적부리 몸길이 약 50㎝, 날개길이 약 23㎝이다. 윗부리와 아랫부리 사이에 있는 은 판으로 물을 여과시키면서 수중의 플랑크톤을 걸러먹는다. 이마와 정수리 및 턱밑은 검은 갈색이며 뒷목의 깃털은 약간 길고 아랫부분에 흰색 띠가 있다. 글 서천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산박사 홍순섭 산산산] 경기 양평 예봉산·운길산

    [산박사 홍순섭 산산산] 경기 양평 예봉산·운길산

    경기도에서 6시간 정도의 종주산행을 맛볼수 있는 유일한 곳이 예봉산과 운길산이다. 서울에서 동쪽으로 40㎞,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되는 양수리에서 서북쪽으로 4㎞거리에 솟아 있는 산들이다. 산 아래까지 시내버스가 연결돼 교통이 편리하며 산세가 부드럽고 등산로가 순탄해 가족산행이나 가벼운 주말산행에도 좋다. 특히 수종사에는 지방문화재 제 22호인 팔각 5층석탑과 500년이 넘는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가 눈길을 끈다. 남한강과 북한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권할 만하다. 또 수종사에 가면 무료로 그윽한 차를 마실 수 있어 초겨울 산행의 맛을 더한다. 송촌 쪽에서 예봉산, 적갑산을 거쳐 운길산으로 하산하는 ㄷ자모양의 종주코스를 소개한다. 팔당댐을 지나 천주교 묘역에 내려서 산행을 시작한다. 천주교 묘역앞의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은 초입부터 만만치 않다. 경사난 길이기 때문이다. 철탑 밑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점점 더 가팔라지는 산길, 거친 숨을 토해내며 ‘담배를 끊으리라’고 다짐을 했다. 일망대라는 바위가 나온다. 아래로 팔당과 양수리의 풍경이 그만이다. 눈 앞을 가로막는 조그마한 암릉벽. 우회해서 오르니 승원봉. 쌀쌀한 날씨임에도 땀이 비오듯 흐른다. 내내 오르막길을 만났기 때문이다. 잠시 앉아서 꿀맛 같은 휴식을 맛본다. 신선한 공기와 서늘한 바람이 지쳐있던 몸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역시 이맛이야.’산행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을 간직한 견우봉과 직녀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힘들게 올라선 견우봉 좌측으로 팔당댐 하류와 검단산이 만들어내는 멋진 풍경을 뒤로하고 직녀봉(예빈산)으로 향한다. 예빈산 정상에는 정약용 선생과 그의 형제들이 학문을 닦던 곳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율리봉을 지나니 가장 힘들다는 예봉산 깔딱고개. 정말 숨이 넘어갈듯하다. 가장 높은 예봉산에 오르니 이제부터 내리막이다.‘룰루 랄라’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제부터 능선의 고저가 완만하다. 철문봉을 지나 적갑산에서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운다. 출발한 지 3시간이 넘었다. 전망 좋은 바위에 앉아 먹는 도시락은 정말 어떤 진수성찬 부럽지 않다. 송전탑을 거쳐 새우젓고개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니 첫번째 봉우리가 나온다. 무려 6개의 봉우리를 넘으니 이제 다리가 풀려간다. 마지막 남은 운길산 정상을 향해 올랐다. 정상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견우, 직녀, 예봉 등 지나온 많은 봉우리들이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쓸쓸한 모습에 가슴이 저며온다. 우리의 인생도 이러하지 않은가. 파랗던 젊음이 빠져나가면 우리도 저런 모습으로 서 있지 않은가. 쓸쓸함을 뒤로하고 수종사에 들렀다. 조그마한 절, 물맛이 좋아 정약용선생이 벗들과 차를 즐겼다는 그곳. 다구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테이블이 있는 수종사 다원으로 갔다. 문 앞에서 보살님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아 따뜻하고 향기로운 차로 욕심과 번뇌를 다스렸다. 돈은 받지 않는다. 주지스님의 마음을 담은 차를 마시며, 속인의 마음 전할 길이 없어 불전함에 지폐 몇 닢을 넣는 손이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는 길이 없으니. 내려오니 오후 3시30분. 오전 9시에 산행을 시작했으니 꼬박 6시간30분이 걸렸다. 볕이 따뜻한 내년 봄날 다시 한번 찾으리라 마음 속으로 약속했다. 찾아가는 길:서울 청량리 시장 앞에서 양수리로 향하는 2228번(구 166번)이나 8번 버스를 타고 팔당댐을 지나 천주교묘원에서 내리면 된다. 차가 안 막히면 1시간정도 걸린다. 6번 국도는 주말에는 상습 차량정체구간이므로 기차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기차는 하루에 3번 다닌다. 하지만 청량리에서 아침 6시50분기차를 타야 하고 서울행은 팔당역에서 오후 6시35분에 출발하는 기차이외에는 일정이 맞지 않는 불편함이 있다. 팔당역(031-576-2888).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는 팔당대교를 지나 양평쪽으로 5∼6㎞가다가 팔당댐이란 표지를 보고 오른쪽으로 빠져 구길을 이용해야 한다. 실전명산 순례 700코스 중에서 hss1708@korea.com
  • 달빛아래 國寶감상 ‘특별한 체험’

    달빛아래 國寶감상 ‘특별한 체험’

    국립경주박물관이 이달부터 올 연말까지 매주 한 차례씩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금요일 밤의 국보 순례’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김성구 관장을 비롯해 박물관 담당 큐레이터들이 국보급에 해당되는 전시물들을 일반인들과 함께 감상하고, 직접 해설해 줌으로써 행사가 거듭될수록 인기를 끌고 있다. ●둘째날 참가자수 210여명 육박 행사 둘째 날인 지난 19일 오후 7시 국립경주박물관 대강당.180여석의 좌석이 참석자들로 가득찼다. 자리를 찾지 못해 통로에 서 있던 30여명은 박물관측이 서둘러 마련해 준 간이의자에 앉아 강의를 들을 정도였다. 이들은 경주는 물론 포항, 울산, 대구, 부산,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직장인과 주부, 학생, 스님들이었다. 대학 교수를 비롯해 의사와 판·검사, 변호사 등 사회지도급 인사 상당수가 참가했다. 이는 지난 12일 첫날 행사 때보다 참가지역 및 범위가 대폭 확대된 것으로, 참가자 수도 50여명 늘어났다. 이날 행사는 김 관장의 ‘신라의 탑과 건축’에 대한 강의로 시작됐다. 박물관 전면에 설치된 대형 파워 포인트 화면을 통해 신라 가람(사원·사찰) 배치의 변천과정을 비롯해 고구려·백제 가람과의 비교, 우리나라 가람 배치가 일본에 미친 영향 등이 사진과 함께 알기 쉽게 소개됐다. 60분간에 걸친 강의는 시종일관 진지했으며, 참가자들은 주요 강의내용을 일일이 메모하는 모습들이었다. 강의에 이어 참가자들은 곧바로 박물관 경내에 있는 ‘고선사지 3층 석탑’(국보 제38호) 앞으로 안내됐다. 이 탑은 지난 75년 경주시내 덕동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해진 것을 옮겨온 것이다. 먼저 박물관 임재완(석탑 전공) 큐레이터의 고선사지 석탑이 조성된 시대적 배경과 조성방식, 규모 등에 대한 설명이 있은 뒤 참가자와 큐레이터간의 질의 응답이 20여분간에 걸쳐 이뤄졌다. 이날 행사가 끝난 뒤에도 참가자들은 은은한 달빛 아래서 박물관 경내에 소장된 40여점의 국보를 비롯해 각종 전시품들을 밤늦게까지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년에도 해설행사 이어갈 것” 울산시 울주군에서 왔다는 이영숙(53·여·대학강사)씨는 “평소 관심이 많은 문화재에 대한 야간 강의 소식을 전해듣고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다.”면서 “강의가 즐겁고 유익해 앞으로도 계속 참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병주(43·회사원·대구시 동구 신암동)씨는 “주 5일 근무제 실시로 지난주에 이어 가족들과 함께 참가했다. 아내는 물론 초·중학생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김성구 박물관장은 “행사 기획 단계때는 매회 참가인원을 20∼30여명 정도로 구상했으나,1회 행사 때부터 인기가 폭발적”이라면서 “내년에도 박물관 야간개장과 함께 해설행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글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식

    금강산 신계사(神溪寺) 대웅보전 낙성식이 대한불교 조계종 및 북측 조선불교도연맹, 현대아산㈜ 공동 주최로 20일 신계사 터에서 성대히 치러졌다.1951년 6·25 전쟁중 폭격으로 소실돼 석탑 등만 남아 있던 신계사는 지난 4월 착공에 들어가 약 7개월 만에 복원불사의 첫 결실인 대웅보전 준공을 보게 됐다. 금강산관광 6돌(19일)에 맞춰 열린 행사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신계사 복원추진위원장 종상 스님, 현정은 현대 회장,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유홍준 문화재청장, 시인 고은씨 등이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최일람 문화보존지도국 설비보존차장 등 4명이 직접 행사를 지켜봤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농업인의 날 171명 훈·포장

    농림부는 1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9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농업과 농촌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 171명에게 산업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기념식에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농촌발전에 기여한 농업인 이기열(57·경기도 이천시 율면)씨가 은탑산업훈장을 받았고, 도시민 초청 동백축제를 개최한 농장주 최애순(44·충남 서천군 마서면)씨가 산업 포장을, 국내 최초로 1000승을 달성해 경마 대중화에 기여한 기수 박태종(39·한국마사회)씨 등 23명이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 ▲은탑산업훈장 이기열 ▲동탑산업훈장 이종민 ▲철탑산업훈장 최준구 김인호▲석탑산업훈장 조한규 곽기성 김봉환 홍은수▲산업포장 김상음 김창한 박관식 조상균 최애순 김성연 이억수 안형순 지재돈
  • [이사람] 일흔넘어 식당 연 ‘헤어디자이너계 대모’ 그레이스 리

    [이사람] 일흔넘어 식당 연 ‘헤어디자이너계 대모’ 그레이스 리

    ●‘단발머리’ 바람 일으킨 유학파 1호 한국 헤어디자이너계의 대모(代母) 그레이스 리(73)가 요리사 겸 식당주인으로 변신했다. 더욱이 서울도 아닌 남도의 항구, 통영으로 옮겨 새롭게 시작했다. 일흔을 넘긴 할머니로서 ‘왕년의 영화’에 묻히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젊은 사람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시작하기에 늦은 때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 보인 것일까. 그는 경남 통영에 낚시차 내려왔다가 풍광에 반해 다음날 덜컥 머물 곳을 구했다.“입에 맞는 음식점을 못찾아서 식당을 열었습니다.”종심(從心)의 나이에 맞게 마음가는 대로 한 것이리라. 개업한 지 11개월 남짓한 그의 ‘중화요리 이선생’은 한결같은 맛으로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아무런 연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볼거리 많은 통영에서도 ‘명소’ 반열에 들어섰다. “공기가 좋고요, 물이 좋고요, 놀이터(그의 중식당)가 즐겁습니다.”통영에서의 생활이 너무 즐겁단다. 이런 까닭일까,3년전에 받은 유방암 수술의 어두운 그림자는 찾을 수 없다. 그의 얼굴은 요란한 화장없이도 화사하고 목소리는 아주 맑았다. 헤어스타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단발머리. 일흔을 넘긴 할머니가 꼬박꼬박 붙이는 존댓말이 부담스러워 말씀을 낮출 것을 당부했다. 그랬더니 “반말투로 말하는 것이 싫어요.‘늙은이 티’내는 것 같아서요.”라며 말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어색하지 않았다. 그레이스 리는 70∼80년대 멋쟁이들 사이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렸다. 유학파 1호 헤어디자이너인 그는 단발머리로 선풍을 일으켰고, 개인용 헤어드라이어를 소개한 주인공이다. ●겉치장은 안해도 먹는 덴 아끼지 않아 그는 세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로서 서른다섯에 이혼한 후 1967년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미용 기술을 배웠다. 마흔을 앞둔 나이에 미용실 청소와 머리 감기기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폴 미첼 등 세계적인 헤어디자이너들과 교우하며 최고의 헤어디자이너로 인정받았다. 유명 패션잡지 ‘보그’에 국내 최초로 게재된 미용인이다.79년 미용계에 이바지한 공로로 석탑산업훈장도 받았다.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딴 그레이스 리 커트대회가 해마다 두차례씩 열린다. 그의 지인들은 커트 솜씨보다 미각을 더 높이 쳐준다. 그래서 그가 음식점을 운영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란다. 인터뷰하는 날 마침, 미국 뉴욕에 사는 막내딸 김승화(47)씨가 와 있었다.3년 만의 모녀 재회란다.“어머니는 액세서리와 겉치장은 안하지만 먹는 데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고 거들었다. 그 흔한(?) 보석 하나 밍크 코트 한 벌이 없단다. 그레이스 리는 “이 배 안에 빌딩이 몇 채 들어 앉았어요.”라며 배를 두들겼다.“밥은 밥맛이 나야 밥이다.”고 강조하는 그의 음식론은 일견 평범한듯 보이지만 쉽지 않다. 그의 식도락은 70년 세월을 지나왔다. 어릴 적부터 미식가였던 부친을 따라 ‘맛있는 음식점’을 순례했단다.“세계를 돌아 다니면서 안먹어본 음식이 없어요.”그래도 식도락은 계속됐다. 일흔이 된 2001년 그는 연대 어학당에 등록했다.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그였지만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서였다.“중국에 갔을 때 중국 음식을 제대로 주문하기 위해서 공부했죠. 벽마다 중국어를 써붙여 외웠지요.”그런 인연으로 중식당까지 냈다. 그가 통영에 새 둥지를 틀었지만 당일치기 행동반경은 대전까지다. 젊은이 못지않은 보폭이다. 이유는 지방의 숨은 맛집을 찾아내는 것. 맛 있다고 소문이 나면 꼭 찾아 먹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식도락가다. ●눈 나빠져 책 못 읽게 될까 걱정 그에게 빗과 가위를 놓았느냐고 물어 봤다.“영원히 현역이에요, 요즘도 서울에 한 달에 한번꼴로 올라가는데 직접 가위를 듭니다. 내가 안 자르면 ‘머리를 길러 묶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맙지요. 지금도 빗과 가위만 들면 세계 어디서든 밥먹고 살 수 있습니다.”라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법. 그는 근사하고 깨끗하게 늙어 즐겁게 죽는 것을 꿈꾼다. 나이가 들면서 걱정이 하나.“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편인데 눈이 나빠질까봐 가장 걱정이에요. 재미난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못 읽는다면 얼마나 약 오르겠어요.” 가족들에게 유언도 남겼다. 일부를 들려줬는데 익살스럽기까지하다. 장례식에 쓸 꽃은 흰색이 아니라 빨간색 꽃이면 좋겠단다.“이왕이면 빨간 장미가 좋고, 음악도 평소에 즐겨 듣던 것을 틀고, 그런데 메뉴는 짜두지 못했어요.”열정적인 그의 에너지 탓에 유언은 남의 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하고 싶은 일은 즐겁게 한다.”는 그레이스 리. 통영 앞바다에서 갓 잡은 활어처럼 퍼득거리는 그에게서 일흔셋은 그저 숫자일 뿐이다. 통영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그레이스 리 프로필 ▲1951년 이화여고 졸업 ▲1967년 도미, 뉴욕의 월프레드 아카데미(미용전문학교) 수료 ▲1968년 뉴욕의 헨리벤델 졸업, 세계적인 미용사 폴 미첼에게서 6년간 사사 ▲1973년 서울 도큐호텔에서 도큐 그레이스리 미용실 창업 ▲1976년 폴 미첼-그레이스리 조인트 헤어쇼를 개최, 패션잡지 보그에 작품 소개 ▲1979년 아일랜드 국제기능올림픽 미용부문 심사위원, 석탑산업훈장 수상 ▲1990년 그레이스리 커팅클럽 발족 ▲1992년 제1회 그레이스리 커트대회 개최
  • 금강산 신계사 봉안 상량문 북송

    조계종 총무원은 복원 중인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에 봉안될 상량문을 마련,28일 신계사 터로 북송했다. 상량문은 총무원 총무부장 무관 스님이 글을 짓고, 신계사 추진위원장 종상 스님 등이 감수하여 서예가 조종래(전 총무원 부국장)씨가 한지에 붓글씨로 쓴 것이다. 근래 제작된 상량문 가운데 가장 긴 7.9m나 된다. 상량문에는 금강산이 민족의 영산이자, 불교 성지로서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신계사가 서산-사명대사를 비롯한 구국의 도량이자 수행자들의 정신적 귀의처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남북정상회담 후 남북관계의 변화에 의해 시작된 금강산 신계사 복원의 과정과 불사 추진과정, 불사에 동참한 남북 불교도들의 명단도 들어 있다. 금강산 신계사 복원은 남한의 조계종과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이 2002년 12월에 4년 안에 원형 그대로 복원하기로 합의해 지난 4월 착공식을 시작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새달 20일 신계사 대웅보전 및 3층석탑 낙성식을 거행한다.
  • 순천만의 가을 나들이

    순천만의 가을 나들이

    땅거미가 질 무렵, 낯선 마을에 들어서도 밥짓는 향기가 가득한 마을은 따스해 보인다. 거기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먹던 음식, 내 어머니의 솜씨보다 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이 지천에 널려 있지만, 그래도 음식맛이라면 ‘남도’를 으뜸으로 치게 된다. 남도 중에서도 순천은 볼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은 곳이다. 특히 이맘때 순천은 짱뚱어가 맛있는 철이다. 겨울잠을 자러 갯벌로 들어가기 전의 짱뚱어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맛도 좋고 영양도 만점이다. 가을에 떠나는 남도 별미여행, 일단 속을 헛헛하게 비웠다. 맛있는 음식을 향해 떠나는 여행이라 자꾸 입에 가득 침이 고였다. ●순천만의 가을 나들이 아무리 짱뚱어가 손짓해도 해지는 순천만을 놓칠 수는 없는 일. 일단 대대포구로 갔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배를 타고 나간 순천만은 아름다웠다. 아니 황홀했다. 썰물에 드러난 광활한 바다의 속살, 갯벌과 강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곡선의 수로, 군데군데 동그랗게 자리잡고 있는 갈대와 보랏빛의 칠면초, 다가가면 푸다닥 하얀 날개를 펼치며 춤을 추는 이름모를 철새들의 군무,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빠알간 저녁놀까지 누구나 10대의 문학소년·소녀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왼쪽의 여수반도와 오른쪽의 고흥반도에 둘러싸여 드넓은 순수한 갯벌인 순천만에서 해안까지 펼쳐진 갈대군락이 무려 5.4㎞. 유기물이 풍부한 탓에 조개, 갯지렁이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는 갯벌은 철새들의 터전이다. 수로주변에 있던 갈대밭에서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갯벌에서 자리잡아 갈대군락이 이뤄졌다는데 이상하게도 갈대밭이 동그랗게 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원형의 갈대밭은 마치 세포증식을 하듯 합쳐져 타원형에서 더 큰 원형으로 커져가고 있다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혼자 앉아 바다와 파도와 갈대와 철새들과 친구하며 앉아 있고 싶은 곳이다. 가는 길 :서순천IC에서 국도 2호선을 타고 순천시내와 청암대학교 앞 삼거리를 지나 사거리에서 좌회전,818번 지방도를 타면 순천만 도로표지판이 나온다. 대대포구는 이정표가 없어 지나치기 쉬우므로 대대마을에서 길을 반드시 확인할 것. 대대포구에는 순천만을 돌아보는 유람선이 운행중이다. 보통 6명 기준으로 3만원을 받는다. 대대포구에서 순천만을 따라 해안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30분이 소요된다. 대대포구 어촌계장(019-605-0511)에게 연락하면 된다. 바닷가에서 두어 시간 놀다 보니 배가 출출해져서 그만 짱뚱어를 맛보러 일어섰다. 짱뚱어 요리를 잘 한다는 해돋이 가든(061-742-8745)으로 갔다. 순천만이 내려다보이는 경치도 좋지만 친척들이 직접 잡아오는 짱뚱어를 쓰기 때문에 맛과 신선도가 최고다. 짱뚱어는 요즘 가격이 많이 올라 보통 마리당 2000원선이라고 한다. 구이는 잘 달군 프라이팬에 짱뚱어 애(내장)를 복아 기름을 만들어 굵은 소금과 함께 짱뚱어를 굽는다. 고소한 맛이 별미. 짱뚱어전골 또한 이맘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 호박과 시래기 등 갖은 야채를 넣고 된장으로 간을 한 후 살아있는 짱뚱어를 넣고 끓인 전골은 구수하다. 소화가 잘 되고 영양가도 풍부한다. 보통 4인 가족 기준으로 3만 5000원. ●낙안읍성의 음식축제 마침 제11회 남도음식문화큰잔치가 열리고 있는 낙안읍성으로 가봤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음식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낙안읍성 안에 설치된 천막에는 먹기 아까울 정도로 장식된 음식들이 즐비하다. 연포탕, 생각촉김치, 붕장어회, 미역수제비, 돔배젓…. 듣도 보도 못한 남도의 음식들이 즐비하다. 또한 스님들의 발우에 정갈한 나물과 떡 등 선암사 사찰음식도 눈길을 끈다.‘눈’으로만 먹어도 배가 부르지만 ‘입’으로 먹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난전에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을 사다 먹어봤다. 저절로 ‘역시 맛은 남도야!’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그러나 여기서 배를 채웠다가는 낙안 팔진미를 먹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 길을 나섰다. 낙안읍성은 전시를 위한 민속마을이 아닌 사람들이 그곳에서 먹고 자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민속마을이다. 짚으로 엮어 만든 초가집 사이로 빨간 감이 열린 돌담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해질녘이면 초가지붕 옆 굴뚝에서 모락모락 저녁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울타리에 호박꽃, 지붕 위에 주렁주렁 커다란 박이 열리는 곳. 어린시절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둠이 짙게 깔릴 때까지 숨바꼭질을 하던 추억을 깨워주는 고향마을 같은 곳이다. 낙안읍성의 초가에서 하룻밤 묵으면 밤에는 온갖 풀벌레소리에, 새벽에는 성 안팎에서 주고받는 수탉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게 된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좋고 상쾌하다. 해뜰 무렵 높이 약 4m, 둘레 1.4㎞의 성벽을 산책하는 것도 운치있다. 성벽을 한바퀴 돌아보면 초가지붕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낙안읍성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황금빛 논과 주렁주렁 빨갛게 익은 감과 어우러진 가을아침 풍경이 넉넉함을 준다. ●남도음식문화축제 오는 25일까지 열리는‘제11회 남도음식문화큰잔치’는 남도 22개 시·군에서 우리 어머니의 손맛으로 만든 700여종의 음식과 송광사, 선암사 등 사찰음식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한솥밥나눔행사, 떡만들기, 홍탁 삼합 체험 등 다양한 참여 이벤트와 줄타기 공연, 짚물공예, 야외영화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곁들인다. 낙안읍성에 가면 주막 평상에 앉아 낙안 팔진미를 먹어 봐야 한다. 낙안팔미는 더덕무침과 조기, 표고버섯 무침, 녹두부침개, 도토리묵, 꼬막, 돼지고기, 게장 등 갖은 반찬에 남도의 넉넉함을 느끼게 한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반찬이 바뀐다.1인분 1만원. 동동주는 5000원. 찾아가는 길은 호남고속도로 종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송광사나들목에서 빠져나와 27번 국도를 타고 약 10㎞ 가면 된다.낙안온천(061-753-0035)이 차로 5분 거리에 있어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도 좋다. 유황과 게르마늄이 많이 함유된 국내 최고의 온천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5000원. ●조계산과 보리밥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 산중에 정말 맛있는 보리밥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확인을 하기 위해 찾아갔다. 조계산(884m)은 남동쪽에 태고종 고찰 선암사, 북서쪽에 조계종 송광사를 품고 있는 명산이다. 조계산 굴목이재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길로 해발 600고지에 문제(?)의 보리밥집이 있다고 한다. 선암사로 해서 보리밥집을 들러 점심을 먹고 송광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다. 선암사 매표소를 지나 선암사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무지개모양의 다리가 나온다.‘야 멋지다’하는 생각에 다가가서 보니 보물 400호 승선교였다. 최근 보수공사를 끝내고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일주문 앞에는 불교의 심오한 정신을 담고 있는 조그마한 연못인 삼인당. 천년고찰을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선암사로 들어섰다. 삼층석탑, 푸른 하늘이 처마 끝에 걸려 있는 대웅전, 야생차밭 등 볼거리가 많다. 꼭 들러야 할 곳이 ‘해우소’다. 정호승 시인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解憂所)로 가서 실컷 울어라’라고 노래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고 아름다워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이 해우소는 몸 속의 오물뿐 아니라 세속의 욕심과 번뇌까지 버리고 돌아가라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듯하다. 보리밥을 먹기 위해 가야 하는 굴목이재 산행은 6.7㎞, 보통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선암사 들머리에서 ‘송광사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섰다.15분여를 걷자 길 왼쪽에 쭉쭉 뻗은 편백나무 휴양림이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온갖 나무들이 뿜어내는 신선한 냄새를 맡으며 가파른 경사길을 올랐다. 오래간만에 흙을 밟으며 걷고 또 걸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흐른다. 계곡가에 앉아 땀을 식히고 물도 한 모금 마시고 쉬엄쉬엄 올랐다. 배바위 정상까지가 약 1.5㎞인데 1시간이 더 걸렸다. 보리밥 먹으려고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배바위에서 내리막길로 15분쯤 가면 조계산 명물인 조계산보리밥집(061-754-3756)이 보인다.1인분에 5000원. 반찬을 담은 작은 접시가 커다란 쟁반에 가득하다. 변변한 밥상도 없다. 누구나가 평상 위에 앉아 쟁반에 놓인 채로 그냥 밥을 먹는 것이 이 집의 맛이다. 돗나물, 참나물, 호박나물, 부추무침 등 갖은 나물들과 멸치젓, 구수한 시래깃국이 나온다. 참기름과 고추장이 담긴 큰 대접에 보리밥과 나물들을 넣고 썩썩 비벼서 한 입 가득 넣으면 맛이 그만이다. 이 집의 또 다른 별미인 동동주 한잔 들이켜보니 부러울 게 없다.“힘들여 올라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동주, 야채파전, 도토리묵이 각각 5000원. 보리밥집에서 송광사 갈 때는 반드시 윗길 등산로로 가야 한다. 아래쪽 큰길은 장안마을, 깨금골로 빠지는데 이정표가 없어 헷갈리기 쉽다. 여기서 송광사까지는 3.7㎞로 가득찬 배를 두드리며 천천히 내려가도 2시간이 못돼 도착한다. 계곡물소리, 잡목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벗삼아 걷기에 그만이다. 송광사 경내는 대숲과 편백나무 숲길이 아름답다. 법정 스님이 오래 기거하셨다는 불일암도 들러 볼 만하다. 가는길은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주암나들목(IC)에서 빠지면 송광사, 승주나들목에서 나오면 선암사다. ●순천여행 팁 순천은 시티투어버스를 무료로 운행한다. 순천역에서 오전 9시30분과 10시1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하면 편안하게 순천의 명소를 감상할 수 있다.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061)749-3328,www.sc.go.kr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유홍준 문화재청장 공무원·시민대상 강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이자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를 역임한 유홍준(55) 문화재청장이 시민과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보는 눈’이라는 주제로 강좌를 개설한다. 강좌는 다음달 1일부터 12월27일까지 매주 월요일 오후 5시부터 90분간 대전정부종합청사 후생동 대강당에서 이뤄진다. 당초 문화재청 직원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증진 및 문화재 행정의 전문성 제고, 업무혁신 프로그램으로 기획됐지만 문화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해 다른 청 공무원과 대전시민들에게도 개방하게 됐다. 강좌 일정과 내용은 ▲11월1일 - 고려청자와 상감청자 ▲8일 -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15일 - 한국의 선사시대와 한민족의 뿌리 ▲22일 - 삼국시대 고분미술 ▲12월6일 - 불교미술의 기본원리와 석탑의 탄생 ▲13일 - 부도(사리탑)의 발생과 하대신라의 미술 ▲20일 - 불상의 이해와 삼국시대 불상 ▲27일 통일신라의 불상이다. 이후 강좌는 2005년 봄 ‘조선시대의 미술’로 이어질 예정이다. 일반인 수강은 선착순 400명이며, 수강을 원하는 시민 등은 19일부터 문화재청 홈페이지(ocp.go.kr)에 접수하면 된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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