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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641)-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4)

    儒林(641)-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4)

    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4) 설혹 내가 갈대를 베어내 그 날카로운 잎으로 얼굴을 긁어내려 망신창이를 만들고 그 상처 위에 곤죽같이 된 흑감탕을 발라 일부러 성이 나게 하여 곯고 부어오른 추악한 귀신의 얼굴이 된다 하더라도 나으리께서는 이 두향이가 누구인지 알아보시고 나를 내치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강물을 거슬러 오는 듯한 뱃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평소에도 강선대가 마주 보이는 강 건너편에는 이조대란 바위가 있어 바위를 굽돌아가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바위에 부딪치는 물소리가 아니라 강을 거슬러 오는 나룻배의 소리임에 틀림이 없었다. 두향은 전모를 쓰고 집 밖으로 나가 보았다. 과연 호수 위로 나룻배 한 척이 노를 저으며 두향이가 있는 강선대 쪽으로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춘삼월이라 쌀쌀하였지만 겨우내 얼어붙었던 얼음들은 한꺼번에 해빙되어 물살들은 와랑와랑 성미 급한 물소리를 내면서 흘러가고 있었고, 마침 석양 무렵이었으므로 강물 위는 그대로 핏빛 천지였다. 나룻배 위에 탄 사람이 누구인가, 두향이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닷새 전에 매분을 가지고 안동으로 떠났던 아전이었던 것이다. 순간 두향은 선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방금 전 낮잠 속에서도 큰 별이 떨어지는 흉몽을 꾸었으므로 행여 공들여 키운 분매를 나으리께 전하지도 못하고 대신 나으리께서 돌아가셨다는 흉보를 전해 듣게 되는 것이 아닐까 노심초사하여 두향은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어 버린 듯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윽고 나룻배는 강선대 바위에 닿았다. “아씨마님.” 강 한복판에서부터 나와 기다리는 두향이를 보고 있었던 듯 배가 바위에 닿자 여삼이가 뛰어내리며 말하였다. “방금 안동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요, 아씨마님.” 여삼이가 다가오자 두향은 전모를 눌러쓴 채 얼굴을 가리고 먼저 초막집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삼이가 한때 나으리를 모시던 아전이라 하더라도 두향에게 있어서는 엄연한 외간 남자. 두향은 먼저 방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근 후 창호지를 사이에 두고 내외하며 말하였다. “나으리는 만나 뵈셨습니까.” “물론입니다요, 아씨마님. 만나 뵈었을 뿐 아니라 하룻밤 서당에서 황공스럽게도 쇤네를 유하게 해주시었기 때문에 지척에서 모실 수도 있었나이다.” 다시 긴 침묵이 왔다. 여삼은 툇마루에 앉은 채 답답한 마음으로 하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儒林(639)-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2)

    儒林(639)-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2)

    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2) 두향은 가슴이 와랑와랑 뛰었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보니 아직 볕이 한참이나 남아 있는 석양 무렵이었다. 그새 잠깐 낮잠에 빠져든 모양이었다. 잠깐 든 낮잠 속에 그런 흉몽을 꾼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 여삼이란 아전에게 매분 한 그루와 편지를 띄워 노잣돈과 함께 보낸 것이 닷새 전. 아무리 천천히 가고 온다 하더라도 닷새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인 것이다. 그런데도 여직 아전으로부터는 소식조차 없다. 그렇다면. 두향은 불길한 예감으로 몸을 떨었다. 그새 나으리께서 연세하신 것일까. 아니다. 두향은 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나으리께서 그렇게 덧없이 돌아가실 리가 없을 것이다. 한바탕 흥건하게 울어 눈가가 젖었으므로 두향은 무심코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나으리와 헤어진 것이 벌써 20여 년 전. 그동안 두향은 한번도 분단장을 해본 적이 없었다. 반고가 쓴 한서(漢書)에도 나와 있지 아니한가.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분단장을 한다.’고. 옛말 그대로 사랑하는 남자와 생이별을 하여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고 이미 죽은 목숨처럼 종신수절하고 있는 두향으로서는 뺨에 붉은 단지를 바르고 얼굴에 분칠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간혹 짓궂은 남정네들이 바람으로 떠도는 소문을 전해 듣고 일부러 강선대를 찾아와 유람하며 두향의 모습을 엿보기도 하였다. 두향은 집에서 나설 때면 반드시 전모를 쓰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전모는 우산처럼 살을 만들고 기름먹인 종이를 위에 바른 쓰개로 이 전모는 자지갑사(紫地甲紗) 끈으로 턱 밑에 단단히 매었다. 원래 기생들이 쓰던 쓰개였는데, 두향은 퇴계가 단양을 떠난 직후 사또께 청원하여 기적에서 벗어나 상민이 된 순간 기생일 때 입었던 온갖 화려한 비단옷들과 비녀와 뒤꽂이를 비롯한 패물과 노리개 등을 모두 팔아 버렸으나 단 하나 전모만은 그대로 간직하고 이를 소중히 쓰고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전모를 쓰면 자신의 얼굴을 완전히 가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호기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두향은 거울조차 제대로 보지 않았다. 두향은 세월 따라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에도 무신경하였다. 그러나 석양빛이 반사된 거울 속에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는 오랜만에 본 자신의 얼굴은 이미 청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몽리청춘(夢裡靑春). ‘한바탕 꿈속의 청춘’이란 말처럼 그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얼굴은 덧없이 사라지고 거울 속에는 잔주름이 무성하고 듬성듬성 흰 머리칼이 나 있는 중년 여인의 얼굴이 마치 유령처럼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 제주박물관 별~난게 다 있수다

    제주박물관 별~난게 다 있수다

    눈으로만 보는 낡고 고리타분한 박물관은 저리 가라. 이젠 만지고, 느끼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사물을 거꾸로 보는 재미난 놀이터 같은 박물관이 우릴 유혹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깨비, 거미, 허브 등 새롭고 다양한 주제로 예쁘게 꾸민 박물관에서 이색체험을 해보자. 볼수록 아름답고 신비로운 섬 제주도는 끊임없이 변신하고 있다. 여기저기 눈부신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기본이고 섬 전체를 박물관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도깨비, 아프리카, 녹차뿐 아니라 심지어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성(性)’을 주제로 만든 박물관까지 다른 나라의 문화와 생활을 느낄 수 있는 전시물들이 가득하다. 제주도에 갔다가 이같은 재미난 박물관 한번 들러보면 어떨까.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귀엽고 재미있는 도깨비나라 아이들에게 ‘도깨비’를 만나러 가자고 하면 대부분이 ‘무섭다’며 고개를 흔든다. 하지만 북제주군 조천읍 선흘리 도깨비 공원에 있는 도깨비들은 좀 다르다. 너무나 예쁘고 귀엽다. 공원 기획부터 시공까지 제주대 산업디자인과 이기후 교수와 학생들 9명이 만들어서인지 기발하고 재미난 도깨비들이 가득하다. 빨간 머리와 예쁜 장화를 신은 녀석, 아인슈타인을 닮은 깨슈타인, 마징가 Z를 연상시키는 정가숑타워 등 2300여 개의 재미난 도깨비들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이뽀디자인체험관에서 디자인 전공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도깨비를 직접 만든다. 도깨비탈도 만들고, 나만의 도깨비 액자도 만들어 가질 수 있다. 체험은 무료. 또한 영상관에서는 도깨비를 소재로 한 다양한 영상물이 상영돼 아이들에게 인기다. 어른 6000원, 어린이 4000원.(064)783-3013,www.dokkebipark.com # 지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곳 삶이 우릴 지치고 힘들게 할 때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편안하게 쉴 만한 곳은 의외로 별로 없다. 이런 사람을 위한 공간이 제주 표선 허브동산이다. 180여 종의 허브와 우리 산하의 야생화로 채워진 각양각색의 정원들과 작은 동산들, 그리고 2000평의 체험 감귤농장 등 다양한 형태의 테마공원으로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시원해진다. 자유롭게 허브 잎을 만져 보고 냄새를 맡아 볼 수 있으며 꽃의 향기가 좋아서인지 나비도 지천이다. 아이들과 함께 허브도 공부하고 나비를 쫓다 보면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공원에 하나 둘 가로등이 들어오면 더욱 환상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또 허브 비누와 과자를 직접 만들 수 있는 체험도 가능하다.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누구나 편하게 하루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허브 정원과 체험 시설뿐 아니라 허브 관련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가게, 허브를 이용한 다양한 퓨전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카페 등이 있어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꼭 한번 들러보아야 하는 곳이다. 어른 4000원, 학생 2000원.(064)787-7362,www.herbdongsan.com # 예술과 외설의 차이 ‘성(性)’에 대한 어둡고 음흉한 생각을 밝고 재밌게 바꾸어 놓은 곳이 제주 연동의 러브랜드다. 인간의 성(性)을 소재로 문을 연 국내 유일의 성 테마 야외 전시장이다. 성만큼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도 없다. 그렇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이런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왠지 쑥스럽고 금기시 되어왔다. 하지만 발칙한(?) 상상력으로 이런 외설을 예술로, 부끄러움이 아니라 웃음으로 완전히 바꾸어 버린 곳이 ‘제주 러브랜드’다. 공원의 분수와 폭포들은 잘 살펴보면 남녀 성기를 묘사한 작품, 다 드러내 놓고 오줌 누는 남자 모습, 여성의 하반신을 묘사한 조각. 또 중년부부의 성을 다룬 고개 숙인 남성 시리즈 조각은 ‘부실한 남성’들의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뚱뚱하지만 그것을 밝히는 아내와 사랑 행위를 무서워 도망가는 남편 등의 조각은 볼수록 재미나다. 정안수 부산 교육대 교수와 홍익대 미대 조소과 출신 작가 20명이 2년여 동안 구슬땀을 흘려 만든 이곳의 작품들은 ‘예술’이다. 부부나 연인끼리라면 ‘강추’. 밤에는 환상적인 조명이 어우러져 더욱 멋지다. 입장료는 7000원. 미성년자는 보호자가 동행해야 입장 가능하다.(064)712-6988,www.jejuloveland.com #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엄마 저게 인형이야, 꼭 살아 있는 것 같아.” 제주 월드컵 경기장에 있는 닥종이인형박물관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재미난 박물관이다. 가는 눈매, 발그레한 볼에 활짝 웃는 표정의 인형을 바라보면서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아이에게는 부모님들의 어린 시절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가족, 겨울이야기, 꽃 시리즈, 옛날 옛적에, 학교풍경 등 1950∼70년대 우리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느껴진다. 제주의 재래식 화장실에서 돼지를 쫓으며 볼 일을 보는 아이, 수박껍질을 뒤집어쓰고 마루에 앉아 웃고 있는 개구쟁이, 성적표를 들고 우쭐거리는 소년 등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추억 속에 잠겨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밖에 박물관에서는 대한뉴스와 CF, 대학가요제 등 1950∼80년대의 동영상들을 볼 수 있다. 덤으로 제주 월드컵경기장도 둘러볼 수 있다. 어른 6000원, 아이 4000원.(064)739-3905,www.storium.co.kr # 가까운 아프리카로 사자와 기린 등이 뛰어 노는 신비의 땅인 아프리카는 우리들에게 꿈의 나라이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제주도에 옮겨 놓은 곳이 제주 중문관광단지 내에 있는 아프리카박물관이다. 건물 모양새부터 이색적이다. 온통 황토빛으로 칠해져 있으며 첨탑을 잇따라 붙인 듯한 건물 모습에 ‘어디서 보았지’하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바로 세계문화유산 중에 하나인 서아프리카 말리 공화국의 젠네 대사원(이슬람 사원)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1층에는 사진작가 김중만씨가 아프리카를 여행하면 찍었던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포효하는 사자,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코끼리 무리, 해맑은 미소의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밀림의 한복판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2층에는 아프리카 전통 가면, 조각, 집 등이 있으며 매일 3차례 아프리카 전통 민속 공연이 열린다. 또한 아이들을 위해 아프리카 전통 문양 페이스페인팅, 찰흙 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참가비 8000원) 입장료는 어른 6000원, 아이 3000원.(064)738-6565,www.africamuseum.org # 이곳도 꼭 잊지마세요 ‘녹차’하면 떠오르는 곳이 보성과 하동이지만 제주도도 녹차가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남제주군 안덕면 서광리 서광다원에 있는 오설록녹차박물관(064-794-5312,www.osulloc.co.kr)은 아늑한 전시장, 예쁜 정원, 가슴속까지 맑아지게 하는 차밭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2층 전망대에 서면 16만평의 파란 차밭 구릉 넘어 또렷이 보이는 한라산 모습은 가히 예술이다. 전시장에는 다양한 차와 찻잔이 가득하고 차와 관련된 서적까지 볼 수 있다. 특히 이 박물관의 녹차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는 정말 맛있다. 북제주군 한경면 평화박물관(064-772-2500,www.peacemuseum.co.kr)은 제주도가 아닌 곳에서는 있을 수 없는 독특한 박물관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이 제주도를 어떻게 점령하고 파괴했는지를 보여주고 곳이다. 일본군이 파놓은 미로 같은 진지동굴이 복원돼 있으며 전시관에는 진지동굴을 만들 때 사용했던 일본군의 각종 도구와 자료가 기다린다. ■ 박제된 박물관은 가라 # 별난 물건 박물관(funique.com) ‘맘껏 체험’이라는 슬로건 아래 전 세계의 엉뚱한 물건과 신기한 과학완구들을 다섯가지 주제로 나눠 전시해 놓았다. 매달 전시물이 새롭게 바뀐다. 매주 월요일 휴관(공휴일은 제외). 요금은 초등학생 이상 8000원.(02)792-8500. 부산관 (051)740-4858.(사진2·3) # 기타 이색 박물관 ●로봇박물관 종로구 동숭동 (02)741-8861. ●작은차박물관 종로구 소격동 (02)737-5988. ●옹기민속박물관 도봉구 쌍문동 (02)900-0900. ●부엉이박물관 종로구 삼청동(02)3210-2902.(사진5) ●쇳대박물관 종로구 동숭동(02)766-6494. # 거미박물관(arachnopia.com) 4000여종에 달하는 거미 표본이 전시돼 있다. 사육장에 있는 거미들을 직접 만져볼 수도 있다. 어린이들에겐 늑대거미 ‘타란튤라’가 특히 인기. 야생화와 곤충 등이 전시된 생태수목원도 함께 있어 볼거리를 더해준다. 어른 5000원, 중·고생 4000원, 초등학생 3000원. 매월 1·3주 월요일은 휴관.(031)576-7908. # 기타 이색박물관 ●항공우주박물관 고양시 화전동 (02)300-0466∼7. ●삼성교통박물관 용인시 포곡읍(031)320-9900.(사진1·4) ●지도박물관 수원시 영통구 (031)210-2167.(사진6)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인천 송현동 (032)770-6131.(사진7) # 참소리 박물관(www.edison.or.kr) 세계최대, 국내유일의 오디오 전문박물관이다.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틴 호일(TIN FOIL)을 비롯해 세계 60여개국에서 만든 1500여점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미국 워싱턴의 에디슨 박물관보다 에디슨이 만든 진품 축음기가 더 많아 찾는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어른 4500원, 어린이 2000원.(033)652-2500. # 화진포해양박물관 아름다운 화진포호수를 끼고 있어 자연을 즐기면서 관람하기 좋은 곳이다. 국내 해안에 서식하는 조개류와 전세계에 서식하는 패류, 바다 이야기, 그리고 멸종어족 등을 전시하고 있다.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연중무휴.(033)682-7300. # 공주 민속극박물관(kfdm.net) 한국의 다양한 민속예능을 체험할 수 있는 전문박물관이다. 민속학자인 심우성씨가 수집한 1000여점의 민속극 관련 각종 탈과 인형, 민속악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서 벌이고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향토축제 등도 참가해 볼 만하다. 어른 1500원, 어린이 1000원. 월요일은 휴관.(041)855-4933. # 목포 자연사박물관(museum.mokpo.go.kr) 세계에서 단 2점만 발굴된 프레노케랍토스와 콘코랩터 등의 공룡화석, 희귀한 해양파충류 표본 등을 전시하고 있다. 지구 46억년의 자연사를 담고 있는 자연사관과 지역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문예역사관 등에는 총 3만 6000여점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9시∼오후 6시, 공휴일은 오후 7시까지 개관한다. 월요일은 휴관. 어른 3000원, 어린이 500원.(061)270-8367. # 경보 화석박물관(hwasuk.com) 고생대 삼엽충류, 중생대 암모나이트류, 신생대 매머드 이빨 등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진귀한 화석들을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식물화석들도 전시되어 있다. 관람료는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 연중무휴.(054)732-8655. # 포항 등대박물관(lighthouse-museum.or.kr) 국내 유일의 등대 전문박물관이다. 새천년 한민족해맞이축전 개최장소인 포항시 호미곶에 위치하고 있다. 푸른바다와 일출을 함께 볼 수 있는 것이 장점. 어른 700원, 어린이 500원. 매주 월요일은 휴관.(054)284-4857.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도심하천 생명과 희망이

    도심하천 생명과 희망이

    안양천에서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습니다.60대 중반의 이 할아버지는 개천물을 양손에 담아 냄새를 맡아 보시더니 빙긋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친구들과 멱 감고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는 할아버지는 “악취를 풍기고 구정물이 흐르던 이곳이 점차 제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이곳에 오면 그 옛날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합니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떠밀려 방치됐던 서울의 하천들이 속속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36곳에 이르는 서울의 하천들이 복원사업을 통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생태 하천으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청계천과 양재천, 안양천, 중랑천, 탄천, 불광천, 성내천, 홍제천 등은 이미 안락한 주민쉼터로 탈바꿈했습니다. 둔치에는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 인라인스케이트장, 축구장, 농구장, 피크닉장 등 멋진 운동시설들이 생겨나고, 개천에는 물이 맑아지면서 각종 동·식물들도 돌아오고 있습니다. 주말에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가까운 하천을 찾아 가족과 함께 건강을 챙기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kdaily.com ■ 202개 시설 ‘레포츠 만물상’ 일요일인 지난 21일 오후 3시 서남권 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는 안양천을 찾았다. 오랜만에 찾은 안양천은 ‘상전벽해’를 실감할 만큼 크게 달라졌다. 안양천 좌우 양측을 따라 깔끔하게 정돈된 자전거도로가 길게 나 있고, 둔치에는 인라인스케이트장과 축구장, 야구장, 농구장, 배드민턴장 등 스포츠시설과 함께 그늘막과 피크닉장 등 주민 쉼터가 마련돼 시민들을 반겼다. ●자연이 살아있는 도심 속 쉼터 목동교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안양천 탐방에 나섰다. 가슴이 시원하다. 아파트 촌을 벗어나 시원스레 흐르는 물길을 보자 답답함이 사라진다. 도심 속에 복원된 청계천과 비교해 이곳에는 무엇보다 자연미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한강으로 흘러가는 물길 사이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왜가리 한 마리가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고, 가족단위 나들이객들도 물가에 나와 한층 여유있는 모습으로 휴일을 즐겼다. 자연 그대로의 잡풀이 오히려 단정한 도심의 꽃길보다 정겹게 다가온다. 토끼풀(클로버) 잎 사이로 둥그렇고 하얀 꽃이 활짝 피어 둔치에 하얀 융단이 깔린 듯했다.‘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네잎 클로버를 찾느라 분주한 아이의 모습도 정겹다. 꽃 반지를 만들기에 안성맞춤인 토끼풀 꽃 향기는 라일락 향기를 닮았다. 목동교와 양평교 사이에 있는 인라인스케이트장에는 인라이너들이 코스를 돌고, 코스 가운데에는 가족끼리 배드민턴을 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이어 자전거도로에는 멋스러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다리 밑에는 때아닌 무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누워 담소를 나누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도 많았다. 개천 너머 뚝방길 역시 나들이객들로 북적였다. 이어 목동교와 오목교 사이에 있는 궁도장과 양궁장이 눈길을 끈다. 인근 그늘막에는 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오목교를 지나자 넓은 축구장과 농구장, 피크닉 광장이 나타났다. 신정교와 오금교 사이에도 인라인 스케이트장, 축구장, 그늘막, 족구장 등의 풍경이 펼쳐졌다. 하이킹을 즐기던 김은성(41·회사원·금천구 시흥동)씨는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안양천 변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고 나면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풀린다.”고 즐거워했다. ●금천·구로·영등포·양천구 주민들 주로 이용 안양천은 삼성산과 백운산 등에서 흘러 나온 물이 안양시 석수동에서 만나 북쪽으로 흐르는 개천이다. 물길은 광명시와 서울 금천구, 구로구, 영등포구, 양천구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든다. 삼성산의 안양사에서 발원했다고 해서 ‘안양천’으로 불린다. 조선시대에는 대천·기탄이라 불렸다. 길이가 34.8㎞에 이르는 국가하천이다. 안양천 둔치에는 각 자치구에서 마련한 체육공원과 쉼터가 많아 휴일이면 많은 주민들이 이용한다. 안양천에는 야구장과 축구장 15곳, 농구장 29곳, 인라인광장 30곳, 배드민턴장 50곳, 게이트볼장 22곳, 자연학습장·초지 5곳, 휴식공간 51곳 등 모두 202곳에 휴식공간 및 운동시설이 마련돼 있다. 서남권 최대의 휴식처인 셈이다. 특히 둔치에는 국제규격 인라인스케이트장이 설치돼 인라이너들의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안양천 좌우 양측에 58㎞가량의 자전거도로가 나 있어 주말이면 하이킹이나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 크게 붐빈다. 안양천에는 540여종의 식물과 18종의 어류,94종의 텃새와 철새, 족제비와 두더쥐 등 12종의 포유류가 살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꽃물결·자전거길·철새 ‘삼합’ 노란 물결이 중랑천을 뒤덮었다.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자전거와 인라인을 타며 늦봄을 만끽하고 있다. 장평교∼월릉교 사이 5.15㎞구간에는 노란 유채꽃이 절경을 이뤄 황금 물결을 이루고 있다. 중랑천은 한강, 안양천과 함께 서울의 3대 하천으로 꼽힌다. 길이 20㎞, 강폭은 최대 150m. 경기도 양주에서 시작해 의정부시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든다. 이곳은 자전거도로가 일품이다. 노원교에서 용비교까지 전 구간에서 동부간선도로와 나란히 이어진다. 적갈색 아스팔트에서 자동차와 경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탄천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구간이 없어 초보자가 타기도 편하다. 서울 한강의 지류 가운데 가장 긴 하천인 중랑천은 모두 8개구를 감싸고 흐른다. 도봉·노원·성북·동대문·중랑·광진·성동구 등이다. 덕분에 체육·휴게시설과 꽃길이 경쟁적으로 조성돼 볼거리가 많다. ●개나리꽃 제방길 중랑천의 시작점은 노원교 부근. 생활체육 공간이 마련돼 가족끼리 느긋하게 나들이하기 좋다. 윗몸일으키기, 허리돌리기, 오금펴기 등 간단한 체육시설이 갖춰져 있다. 소나무 그늘 아래 놓인 정자에서 한가롭게 낮잠을 즐겨보자. 도봉산 아래 석양이 드리워진 중랑천을 바라보는 것도 일품이다. 왜가리, 오리, 갈매기 등 철새를 만날 수도 있다. 자전거도로 옆에 조, 수수, 메밀 등 곡식류와 코스모스, 영산홍, 봉숭아, 황아 등 화초가 심어져 자연학습장으로 이용된다.4월에는 노란 개나리꽃을 물리도록 감상할 수 있다. ●유채꽃 물결이 넘실넘실 장평교∼월릉교 구간에선 유채꽃이 장관을 이룬다. 강바람을 시원하게 가르며 꽃향기에 취한다. 자전거에서 잠시 내려 연인과 다정히 꽃길을 걸어보자. 가을에는 갈대와 코스모스가 유채꽃을 대신한다. 직장인 박승미(27)씨는 “꽃내음을 맡으며 자전거길을 달리니까 일주일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크고 작은 공원이 곳곳에 자리해 쉬어가기 편하다. 중랑교 부근엔 면목체육공원이, 이화교 부근엔 중화체육공원이 있다. 동대문구 쪽에도 공원 5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초봄에는 중랑교∼군자교 구간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여의도만큼이나 아름다운 벚꽃터널을 만든다. 낚시꾼이 자주 눈에 띈다. 악취를 풍기던 물이 3급수로 바뀌면서 이화·중랑·장안교 주변에서 붕어, 잉어, 밀어가 잡히고 있다. 살곶이다리 주변에선 청둥오리, 백로, 논병아리가 노닌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도모(35)씨는 “청계천과 이어지는 중랑천 초입에 가로등이 없어 밤에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자전거 대여료는 1시간당 2000원. ●중랑천 가는 길 유채꽃이 만발한 중랑천을 둘러보려면 면목동이나 중화동, 묵동으로 진입하면 편리하다. 주변 주차장이 대부분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 면목5동 까르푸 맞은편(동이로) 중간집하장 통로로 차량통행이 가능하다. 장안교와 면목 2동 한신아파트 뒤편 면목체육공원, 중화동 이화철교 남단을 통해서도 들어갈 수 있다. 묵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옆 중화체육공원에 중랑천을 잇는 보도 육교가 놓여 있고, 월릉교 부근 제방 계단으로도 진입할 수 있다. 최근 동대문구 이문3동 이화교와 휘경1동 중랑교, 장안2동 장평교 부근에도 진입육교가 생겨 중랑천 이용이 한결 편리해졌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송사리 벗삼아… ‘물놀이 천국’ 양재천에 가면 시골에 온 느낌을 받는다. 지난 21일 잉어떼가 출현해 화제를 모은 양재천을 찾았다. 양재천에 발을 처음 디딘 순간 첫 느낌은 도심 속의 전원이라는 것이었다. 이날 방문한 ‘영동 6교∼대치교’. 주위 5∼10분 거리에 미도와 은마, 대치 등 고층아파트가 있다. 낮 기온 28.3도. 올해 들어 최고 기온을 기록한 이날 양재천에 오는 동안 속옷에 땀이 배었다. 하지만 계단에 진입해 양재천에 내려온 순간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아들과 함께 찾은 양순선(37)씨는 “아∼시원하다.”를 연발했다. 아들 이민수(6)군은 “엄마 나 물에 빠뜨려줘.”라고 하자, 양씨가 민수를 안고 물가에 다가갔다. 민수군이 “싫어∼싫어∼”라고 외치며 활짝 웃었다. ●몇 분만 발담그면 전신이 시원 이날 오후 영동대교 다리 아래. 가족과 연인, 나홀로 산책나온 사람이 70여명이나 됐다. 한 남자는 여자친구의 무릎에 머리를 괴고 누워 있다. 징검다리 위엔 5∼6살 정도 된 아이들이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이들은 ‘가위 바위 보’를 해 이긴 사람이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는 게임을 했다. 징검다리에서 신을 벗고 직접 물 속에 들어간다. 먼저 물 속에 들어간 김지희(15)양은 “여름이 다가오는 느낌이에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냇물이 종아리까지 차 오르는 순간 속옷에 젖었던 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모래를 밟고 서니 폭신폭신한 느낌이 전해져 ‘해수욕장에 온 건 아닐까.’하는 착각이 일어났다. 다시 징검다리에 올라 ‘가위 바위 보’를 하는 꼬마들을 보는 사이 5분도 안돼 물기가 말랐다. 선선한 바람 덕택이다. 함께 발을 말렸던 김형선(40)씨는 “쉬는 날 여기 오면 삶이 재충전되고, 누구보다 아들 수민이가 즐거워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잉어떼를 볼 수 있는 학여울로 가자.”면서 일어섰다. 학여울로 가는 길에 갈대와 억새 군락이 펼쳐졌다. 드문드문 물 속에 종이컵을 담아 송사리와 올챙이를 잡는 아이들이 보였다. 문득 유치원 여름방학 때 시골 외할머니댁 냇가에서 개구리 잡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변은 아파트 촌이지만 폭이 20m쯤 되는 양재천변은 그야말로 시골이다. 가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일정에 막혀 시골에 못 가는 회사원 친구가 있다. 다음엔 그 친구와 함께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잉어떼를 볼 수 있다는 학여울에 이르렀다. 다리 밑에 잉어 새끼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다. 꼬마들이 숨을 죽인 채 잉어떼를 내려다보았다. 잉어 등에는 옅은 황금빛이 감돌았다. 저 멀리엔 팔뚝만한 잉어떼가 돌아다녔고 오리 떼와 고니도 보였다. 학여울엔 잉어 외에도 두꺼비 산란장소인 저습지도 있다. 비가 내린 22일 저습지에서 두꺼비 수만 마리가 뛰쳐나와 주변 숲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수질 정화시설등 자연학습장 즐비 학여울 외에 양재천엔 여기저기 볼 거리가 많다.‘영동2교∼영동3교’엔 하천 수질을 정화하는 수질정화시설과 아이들 놀이천국인 물놀이장이,‘영동3교∼영동4교’엔 원두막이,‘영동4교∼영동5교’엔 계류시설과 벼농사학습장이,‘영동5교∼영동6교’엔 곤충과 어류가 사는 생태관찰원 등이 있어 그야말로 자연학습장이다. 해당 구청인 강남구청은 양재천에 이어 양재천과 이어지는 탄천도 지난해 10월 복원 작업을 시작, 올 8월까지 마칠 예정이다. 또 하나의 자연하천인 탄천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악취 가셔내고 자연을 되살린다 서울시 하천들이 복원 및 공원화 사업을 통해 생태하천으로 거듭나고 있다. 악취가 풍기던 하천들이 지역주민들의 휴식처와 레포츠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탄천 옥황상제의 사자가 동방삭을 잡기 위해 숯을 물에다 씻었다는 전설이 숨어 있는 탄천이 오는 8월 복원돼 시민의 곁으로 돌아온다. 양재천 복원에 성공한 강남구가 106억원의 예산을 들여 수서동 광평교에서 한강 합류부에 이르는 5.4㎞를 생태하천으로 바꾸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서 시작하는 탄천의 총연장 35.2㎞ 중 하류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상류에 고도하수처리시설을 가동해 5등급인 수질등급도 2등급까지 만들 계획이다. 잡목이 무성했던 제방로에는 산책로 및 자전거 길을 만들고, 양 옆에는 ‘벚꽃 십리길’을 만들 예정이다. ●불광천 최근 마포구 월드컵 경기장 부근 불광천에 잉어떼가 나타나면서 주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불광천이 2002년 오수 방지시설 설치와 수초 조성 등 정비사업을 통해 자연하천으로 탈바꿈하면서 길이 40㎝가량의 잉어 10여마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불광천에는 현재 8곳의 체력단련시설과 2곳의 전망 관찰대, 분수대 1곳이 설치돼 있다. 아울러 은평구는 현재 하루 1만t 정도의 지하수가 흐르는 불광천에 추가로 2만t의 유수량 확보를 위해 신흥상가교 상류에 라바댐 설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원이 설치되면 사시사철 물이 흐르게 된다. 천변에는 추가로 프로그램분수와 저협수로, 저수호안 자연석 쌓기, 관람석계단, 수생식물식재 등을 만들어 구민의 휴식공간과 여가공간의 창출 등 친수하천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성내천 청량산에서 시작해 송파구 마천동과 오금동, 풍남동을 지나 한강으로 흐르는 총 연장 8.82㎞의 성내천은 지난해 6월 준공됐다. 성내천은 축구장 2곳, 테니스장 2곳, 물놀이장 1곳, 휴게광장 2곳, 분수대 4곳, 화장실 2곳, 편의시설 2곳 등의 시설을 갖춘 종합 레저시설로 거듭났다. 하천에는 수생식물을 심고, 어도와 여울을 만들어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장 역할을 하게 했고, 하천 길을 따라 한강까지 이어지는 자전거도로, 우레탄 조깅로 조성과 항아리 풀장, 불빛 분수 등을 설치했다. 성내 4교 주변 ‘벽천분수대’와 지하수를 활용한 어린이용 ‘항아리 풀장’은 구민들의 인기시설로 자리잡았다. ●홍제천 내부순환로 설치로 건천화가 심화되고 있는 홍제천 복원공사가 지난 3월 시작됐다. 공사는 한강 합류부부터 홍지문까지 8.52㎞구간으로 2007년 12월까지 자연 생태하천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현재 3㎞가량의 송수관로가 부설됐다. 홍제천에는 자연 초지와 함께 보행동선, 체육시설, 휴게시설, 수경시설 등 주민이용시설을 신설·보완하며, 제방은 전망휴게시설과 진입로가 만들어진다. 사천교∼연가교 구간은 수변휴게데크, 휴게광장, 다목적운동장, 연가교∼홍남교 구간은 하천분수, 보도, 전망데크, 물놀이장, 얼음 썰매장이, 홍연교∼백련교 구간은 안산의 기암절벽과 하천의 굴곡부가 만나는 절경구간으로 인공폭포, 특화벽면, 카페테라스, 친수데크, 야간 경관조명이 설치된다. 상류구간인 포방교∼옥천2교 구간은 제방에 녹지대가 조성되고, 하천 내에는 자전거 도로와 자연석 식생호안을 조성한다. 현재 홍제천에는 농구장 5곳과 배드민턴장 5곳, 체력단련시설 6곳이 마련돼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36개 ‘실핏줄’… 모두 잇대면 230㎞ 서울시내에 36개의 하천이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상당수의 하천이 일부 또는 전부 복개돼 주차장이나 도로 등으로 쓰여 사실상 이름만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과 함께 시내 하천들이 시와 자치구들의 하천 복원사업을 통해 속속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상당수가 이름뿐인 하천 서울에는 한강과 중랑천, 안양천 등 3개의 국가하천을 포함해 ‘법정하천’만 36개나 된다. 길이로 따지면 모두 230㎞에 이른다. 그러나 이 가운데 60% 이상 복개된 13개 하천을 포함해 24개의 하천이 복개돼 있다. 대부분 이름뿐인 하천이다. 서울 동북지역 하천으로는 중랑천이 큰 내를 이루며 지천으로 우이천과 방학천, 도봉천, 수락천, 당현천이 있다. 청계천과 만나는 하천으로는 정릉천과 월곡천, 성북천 등이 있다. 또 월곡천 위로는 대동천과 가오천, 화계천 등이 흐른다. 서북지역에는 홍제천과 봉원천 등이 있다. 동남지역에는 고덕천과 성내천, 탄천, 세곡천, 여의천, 양재천 등이 있고, 서남쪽에는 안양천을 중심으로 도림천과 삼성천, 오류천, 목감천 등이 흐른다. 이 가운데 전농천과 면목천, 월곡천 등 11곳은 완전 복개돼 있고, 우이천과 방학천, 도봉천 등 13곳은 부분적으로 복개돼 있는 상태다. ●2012년까지 매년 800억원 하천 복원에 투자 서울시는 올해 362억원을 자연친화적인 하천 정비 사업에 예산을 배정하는 등 2012년까지 매년 800억원 이상을 하천 복원에 예산을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2004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에 복개하천 복원타당성조사 연구용역을 마쳤다. 내년까지 성북천과 정릉천, 홍제천 등은 부분적으로 나마 복원돼 시민의 품에 안긴다. 도림천의 경우 내년 6월까지 실시설계를 끝낸 뒤 2008년 하천이 복원된다. 녹번·불광·봉원천은 차로 축소시 주변 도로 등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세부교통영향 평가 등을 분석하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儒林 (607)-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43)

    儒林 (607)-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43)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43) 별시해를 보기 직전인 그해 가을, 산림거사인 지정과 술을 마시며 ‘국화를 술잔에 띄우고’란 즉흥시를 지은 율곡은 자신을 ‘서리맞은 국화(霜中菊)’로 비유함으로써 자신의 심정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한 초나라의 불우한 정치가이자 비극시인이었던 굴원이 쓴 초사(楚辭)의 ‘아침엔 목란의 추로(墜露)를 마시고 저녁엔 가을국화의 떨어진 꽃(落英)을 씹는다.’라는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굴원처럼 불우하고 비극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율곡은 강릉에 낙향하여 본의 아니게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비유하고 있음인 것이다. 그리하여 시 속에 도연명의 음주시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일찍이 귀거래사를 읊고 고향으로 돌아와 청빈을 달게 여기고 전원에서 밭을 갈며 고풍청절하게 지내던 전원시인 도연명은 어느 날 다음과 같은 시를 짓는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한다. 그러나 마차나 방울소리는 없다/그럴 수가 있냐고 물을 것이다. 마음이 떨어져 있으면 땅도 자연히 멀다. 동쪽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자르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 산공기가 석양에 맑다. 날던 새들은 떼 지어 제 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에 진정한 의미가 있으니/말하려 하다 이미 그 말을 잊었노라.(피천득 번역)” 율곡은 도연명의 ‘동쪽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자른다(採菊東籬下)’란 한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이 무렵 ‘서리맞은 국화’와 같은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자조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별시에는 율곡으로서는 배수의 진을 치고 치른 과거시험이었다. 율곡이 성균관에 도착하자 반수당 안은 이미 결과를 보려는 수많은 과유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부분의 유생들은 심부름하는 종자들까지 데려오고 또한 이들을 상대로 한 술 파는 장사치들까지 판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반수당 안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다. 그들 중에는 전번에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부문을 통과하려 하였을 때 율곡의 앞을 막아세웠던 세도가의 모습도 보였으므로 율곡은 한 곁에 멀찌감치 물러서서 방방(放榜)을 기다리고 있었다. 율곡은 이번 별시의 결과에 은근히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지난봄의 과거와는 달리 이번 별시의 책제는 ‘천도책’이란 철학 시험문제로 난해하고 까다로운 것이었으나 율곡에게는 오히려 족집게처럼 집어낸 예상문제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율곡은 지난 일년 동안 스승 퇴계로부터 점지받은 거경궁리의 화두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율곡은 자연 한대 유학에서 제기되고 있었던 ‘사람의 마음은 천지의 마음(人者天地之心也)’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바르게 되고 ‘사람의 기가 순하면 천지의 기도 역시 순하게 된다(人之氣順則天地之氣亦順矣).’는 ‘천인상감설’에 대해서 이미 깊은 궁리를 끝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길섶에서] 해로의 이유/임태순 논설위원

    대학 자취시절 싫었던 것이 자취방에서 저녁먹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어 밖에서 해결하지만 공치는 날도 발생한다. 부엌에서 없는 찬을 꺼내 밥을 먹으면 궁상맞기 짝이 없다. 여기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석양이 자취방을 비추면 더욱 서글프고 초라해진다. ‘식사말벗’이란 신종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주머니가 있단다. 어느날 돈이 많은 할아버지로부터 점심과 저녁을 차려주고 식사하는 동안 말동무가 돼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마침 사업실패로 살림도 어려워 남편과 상의끝에 식사수발에 나섰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도 결혼해 모두 해외로 나가 혼자 살고 있었다. 식사수발 일은 할아버지와 아주머니 모두에게 도움이 됐다. 할아버지는 혼자 밥먹는 적적함을 덜었고, 아주머니는 적지 않은 수입으로 가계에 보탬이 됐다. 아내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평소에 잘하라고 은근히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돈이 없으면 해로(偕老)라도 해야 늘그막에 혼자 밥먹는 궁상을 면할 것 같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김유해 궁·능 관람 도우미 씨가 들려주는 ‘선정릉 이야기’

    김유해 궁·능 관람 도우미 씨가 들려주는 ‘선정릉 이야기’

    “가까운 궁·능에 들러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세요. 궁·능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만 알고 보면 우리 문화유산을 즐기는 감흥이 달라집니다. 물론 건강에도 좋지요.” 오랜만에 서울 강남구 삼성동 도심 속에 파묻힌 선정릉(사적 제199호)을 찾았다. 문화재청이 지난달 70세 이상을 대상으로 선발한 ‘궁·능 관람안내 지도위원’ 10명 중 이달 초 선정릉에 배치된 김유해(72)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서다.‘관람 도우미’로 일한지 한 달이 된 그의 점퍼에는 안내 마이크가 달려 있었다.2시간 동안 능을 함께 거닐며 나눈 그의 삶과 선정릉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한평생 우리 역사와 문화를 사랑한 할아버지의 연륜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교사에서 관람 도우미 ‘제2의 인생´ 1998년 덕성여고 역사교사를 끝으로 40년간 몸담은 교단을 떠난 그는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퇴직 후 시민대학, 사회교육원 등을 통해 고적답사를 다니며 이론이 아닌 현장 속의 역사를 체험하게 됐다. 내친 김에 문화재청 지도위원에 응시,10대1의 높은 경쟁률을 뚫었다.“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주로 가르쳤지만 이제는 현장에서 살아있는 역사와 문화를 가르칠 수 있게 돼 보람이 큽니다.” 지난해 말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 자원봉사팀에 참여,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물 설명도 하고 있다. 그는 건강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매일 아침 선정릉에 일찍 나와 능을 2∼3바퀴 정도 돌며 쓰레기를 줍는 등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 건강관리의 비법이라고 귀띔했다. ●성종·정현왕후·중종 묻힌 선정릉 동네 주민들과 근처 사무실 직원들이 주로 찾는 선정릉은 도심 속 작은 공원이다. 그러나 여기에 조선 제9대 성종(선릉)과 제2계비 정현왕후 윤씨(정현왕후릉), 성종의 둘째 아들인 제11대 중종(정릉)이 함께 묻혀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김 지도위원은 “능의 주인공과 그들의 관계, 능과 기와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조금만 알게 된다면 돌 하나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선정릉 입구인 홍살문에 섰다. 재미있는 선정릉 이야기가 펼쳐진다.“오른쪽에 놓인 돌은 ‘배위’라고 하는데 무덤에 절하는 자리이지요. 홍살문에서 뻗은 길이 왜 2개일까요? 신이 지나가는 길(신도)과 왕이 지나가는 길(어도)로 나뉜답니다. ”나도 모르게 신이 지나가는 길을 택했다. 왕의 길은 조심스럽게 걷기 위해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졌기 때문. 걷다 보니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이 나왔다. 정자각을 오르는 계단도 역시 2개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은 1개. 신은 정자각에 모셔지고 왕만 내려오기 때문이다. 정자각 뒤편의 능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길을 타다가 아래를 내려보니 정자각과 수복방, 신도비각 등 기와건축물에 달린 용이 보인다. 김 지도위원은 “용은 물과 가까워 화재 예방의 의미를 갖고 있어 기와마다 용 머리를 달았다.”고 말했다. 또 정자각 기와에 놓인 손오공·저팔계·삼장법사 등 서유기 주인공들은 잡신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조선왕릉 특징 모두 갖춘 모범적 무덤 마침 선릉이 개방되는 시간이 됐다. 선정릉측은 지난해 7월부터 관람객이 능을 가까이 볼 수 있도록 선릉에 한해 하루 3차례 개방하고 있다. 능까지 올라가는 길은 산책길로도 손색이 없었다. 선릉 앞 곡장의 문을 열고 능 앞에 서자 석양·석호·석마·문관석인·장명등 등 다양한 석조물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우람한 선릉을 받치고 있는 병풍석과 지대석, 난간석은 선릉의 역사를 말해주듯 일부 닳았거나 색깔이 바랬다. 병풍석에는 12개 각 면마다 연꽃과 십이지신이 새겨져 있다.“연꽃은 능 앞에 놓인 장명등과 함께 조선시대에도 불교적 요소가 이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머리가 아닌 엉덩이를 능쪽으로 향한 석양과 석호는 괘씸죄가 아니던가. 그러나 “머리를 밖으로 용맹스럽게 향하고 있어야 능을 수호할 수 있다.”는 김 지도위원의 말에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선릉은 조선 왕릉의 특징을 모두 갖춘 모범적인 무덤으로 손색이 없다는 설명이다. 중국 무덤들과 비교할 때 규모는 작지만, 조선 왕실의 검소함이 묻어난다고. 무덤 내 석실이 없어 도굴의 위험은 없지만 임진왜란 때 훼손되는 수모도 겪었다. 선릉에서 아래를 내려보니 층이 진 잔디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잔디를 넘어 홍살문까지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우리 조상의 기개와 숭배정신이 느껴지는 가장 좋은 자리인 것 같았다. 글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배지환의 DICA FREE oh~ 주제가 있는 사진 #4] 남해 쪽빛 바다

    [배지환의 DICA FREE oh~ 주제가 있는 사진 #4] 남해 쪽빛 바다

    1년에 한번, 혹은 그 이상으로 조용한 바다가 보고 싶을 때 경남 남해로 떠나곤 합니다. 몇 년전 우연찮게 발견한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 크기로 따지면 거제도 못지 않은 섬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사람들에게 촬영하기 좋은 곳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죠. 그래서인지 더 고즈넉한 분위기를 내는 이 섬은 저녁 8시가 되면 마치 모든 섬의 사람들이 잠이 든 것처럼 어두워지고 조용해집니다. 동해안이 강한 인상을 준다면 남해안의 바다들은 웅대하고 조용한 느낌을 준다고 할까요. 마을 하나하나가 동화속에 나올 법한 예쁜 풍경들로 이뤄진 남해는 사실 보물섬으로도 불리는 섬이라 합니다. 그만큼 귀한 풍경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 해서 얻어진 별명이겠지요. 섬 전체를 다 돌아보려면 며칠의 인내를 가져야 하지만 그 만큼의 시간투자는 결코 아깝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깨끗한 바다와 넓게 펼쳐진 상주해수욕장, 비경을 자랑하는 금산,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물 다랭이논이 있는 가천다랭이 마을, 독일인 마을로 이루어진 이국적인 풍경 등. 사진을 하면서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보지만 누군가 국내여행지 중 좋은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남해섬을 추천해 줄 것입니다. 몇 년전 대진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서울에서도 4시간안에 도달할 수 있는 남해는 섬 자체가 육지와 다리로 이어져 있어 삼천포-창선대교, 남해대교 같은 멋진 또 다른 풍경들을 만날 수 도 있으니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 연인들과 함께 여행할 기회가 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 들러 남해군만의 매력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섬으로 이뤄진 곳인 만큼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으며, 사진을 담으려 한다면 그 시간과 장소에 따른 태양의 위치를 잘 감안해 역광이나 순광의 위치 파악을 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꼭 드립니다. 위 사진들은 해가 지는 남해의 바다 풍경과 계단식 논인 다랭이 논이 바다를 배경으로 멋지게 펼쳐져 있는 풍경들로 제각기 서로 다른 느낌들을 연출하고 있으며, 넓은 풍경들을 담기 위해 주로 광각렌즈를 이용한 사진입니다. (www.pewpew.com) 야외 풍경촬영 이렇게 상큼한 꽃냄새가 느껴지는 봄이 성큼 다가왔다. 꽃샘 추위가 간간히 기승을 부리기는 하지만 움츠러진 어깨를 활짝 펴고 사진 찍기에 더 없이 좋은 시기이다. 이번에는 야외에서 풍경 촬영시 유용하게 쓰이는 장면모드에 대해 알아본다. # 풍경 모드:주변 밝기에 따라 적절한 조리개 값이 설정되며 자연스러운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 플래시가 터지지 않는다. 초점은 무한대 자동 초점으로 설정돼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까지의 풍경을 선명하게 해준다. # 역광 모드:실외에서 촬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태양의 위치를 고려하는 것. 햇빛이 인물 정면으로 비치는 순광 촬영이라면 반사되는 빛의 양이 풍부하기 때문에 인물을 밝게 촬영할 수 있지만 햇빛이 인물의 뒤쪽에서 비치는 역광이라면 빛의 그림자로 인해 인물이 어둡게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는 역광 모드를 사용한다. 태양을 마주보고 촬영할 때 역광 모드를 사용하면 플래시가 강제로 발광돼 인물이 어둡게 나오는 것을 방지한다. # 일몰 모드:석양의 노을을 촬영할 때는 일몰 모드로 맞추고 촬영하면 적황색을 강조한다. 분위기 있는 사진 연출을 위해 화이트밸런스는 일광 모드로 설정된다. 일몰 모드에서는 자연스러운 석양의 표현을 위해 플래시가 터지지 않고 노출 시간이 길어지므로 디카를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 해변 모드:밝은 해변에서 사진을 촬영한다면 해변 모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백사장의 반사광에 의해 전체적으로 밝다고 판단한 카메라는 노출을 실제 노출보다 낮게 잡아 사진이 다소 어두워진다. 해변 모드로 설정하면 노출이 +1로 적용돼 반사광에 의해 어둡게 표현되는 사진을 방지하고 백사장이 반짝이는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 도움말 한국코닥 디지털영상사업부
  • 儒林(554)-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44)

    儒林(554)-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44)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44) 그중 마지막으로 서신이 교환된 것은 퇴계가 70세의 나이로 별세하던 1570년이었다. 이때 율곡의 나이는 35세. 만약 퇴계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아마도 율곡은 더 많은 편지를 통해 스승으로부터 학문에 대한 편달(鞭撻)을 받았을 것이다. 율곡이 강릉에 머무르고 있을 무렵 퇴계가 사람을 시켜 서찰과 시를 보내오자 율곡은 계상에서 작별인사를 나누고 읍성을 빠져나올 때 마상에서 읊은 시를 스승에게 바쳐 올린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부에 그 누가 의심이 없으리오. 병의 뿌리는 바로 아집을 벗어나지 못함에 있네. 필경 한계(寒溪)의 물을 마시고 심간(心肝)을 밝히면 스스로 알리로다. 젊어서는 양식을 찧노라 사방을 달리시고 인마 주리고 여윈 뒤에야 빛을 돌이키셨네. 비낀 해는 본래 서산 위에 있나니 고향 길 먼 걸 어찌 근심하리까.” 시의 중간은 스승께서 찬물을 마시며 마음을 청량쇄락(淸灑落)하게 하였으므로 스스로 알게 된 경지에 이른 것을 찬양하였고, 스승도 초년에 방황하시다 그것을 깨달아 반조(返照)하심으로써 자아를 되찾았음을 칭송하고 있다. 끝에서는 ‘나이가 많고 적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석양은 본래 서산에 없는 것인데 나그네의 인생이 세상에 나온 지 오래되어 고향이 멀어진 것만을 어찌 근심하리까.’하는 스승에 대한 후학으로서의 존경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초반의 내용은 ‘공부에 그 누가 의심이 없겠는가. 다만 자신의 병근(病根)은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함에 있네.(學道何人到不疑 病根嗟我未全離)’를 크게 깨닫고 이러한 사실을 후회하며 가르쳐 준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하고 있음인 것이다. 말이 읍성을 벗어난 것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정오 무렵이었다. 퇴계가 살고 있는 예안은 안동이 거느리고 있는 8개의 현(縣) 중의 하나로서 안동은 예부터 ‘대도호부(大都護府)’라고 불릴 정도로 큰 읍성이었다. 세조 때에는 진을 두고 부사로서 병마절도사를 겸임하게 할 만큼 웅번(雄藩)이기도 하였다. 율곡은 읍성을 벗어나자마자 문득 퇴계로부터 받은 물건을 떠올렸다. 퇴계는 헤어질 무렵 율곡에게 물건을 내어주며 ‘반드시 동구 밖을 벗어난 후에야 이것을 펼쳐 보시게나.’하고 이르지 않았던가. 약속을 지켜 마침 도읍의 읍성을 벗어났으므로 율곡은 행랑에서 그 물건을 꺼내들고 말 위에서 내렸다. 스승이 주신 물건이었으므로 불경하게 말 위에서 그것을 펼쳐 볼 수 없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율곡은 조심스레 그 물건을 들여다보았다. 종이였다. 종이는 네 겹으로 반듯하게 접혀 있었다. 농선지(籠扇紙)라고 불리는 고급종이였다. 이른바 사고지(四古紙)라고 불리던 옥판선지(玉板宣紙) 중의 하나였다.
  • [이슬람 문명과 도시](3)알함브라 궁전을 지닌 스페인 그라나다

    [이슬람 문명과 도시](3)알함브라 궁전을 지닌 스페인 그라나다

    그라나다를 찾아가는 길은 알함브라 궁전을 떠올리면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건축예술. 스페인 땅에 남아 있는 마지막 이슬람 유산. 지상에 마련한 실존의 파라다이스. 어떤 찬사로도 모자라는 알함브라는 그라나다에 있다. 무어(Moor)라 불리는 북아프리카 아랍인들이 800년간이나 이곳에 화려한 이슬람 문화를 남겨 놓았다. 바로 안달루시아 문화다. 기독교와 이슬람 두 문화가 공존할 때, 얼마나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인류 역사의 산 교육장이다. 물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픈 역사가 도시의 언저리마다 웅크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안달루시아 문화의 중심도시가 바로 그라나다다. “그라다나라는 에메랄드에 알함브라라는 빛나는 오리엔트산 진주가 박힌 인류 최고의 보석” 15세기 한 아랍 시인의 표현이다.1492년 1월.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새해, 알함브라 궁전은 조용히 숨을 거둔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궁전의 새 주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결혼에 의해 아르곤과 카스티야 왕국은 통합을 이루고, 이베리아 반도에 이슬람의 지배를 청산하는 거룩한 사명을 천명했다. 그라나다의 마지막 아랍 왕 보아브딜은 자신의 가련한 시민들을 보호해 준다는 조건으로 금화 3만냥과 궁전을 바치고 항복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라나다의 주민들은 무참한 학살과 추방을 당해야 했다. 예술을 사랑하고 유난히 눈물이 많았던 보아브딜은 약자의 비애를 처절하게 되뇌며 정든 알함브라 궁전을 떠나갔다. 겉으로 언뜻 보면 투박함이 어느 아랍 궁성이나 성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언덕을 오르고 첫 번째 문을 들어서는 순간, 비감함과 퇴폐적인 아름다움이 아련하게 전해져 온다. 왕궁이 있던 팔라치오 레알 안으로 들어선다. 분수가 있는 전형적인 아랍식 실내 정원과 천국에서의 휴식을 설계한 시원한 공간 구조, 아라베스크 벽면 장식과 조각 예술의 극치에 나는 한참 동안 적당한 묘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과연 알함브라구나. 네 이름만으로도 이제 충분하구나. 아랍건축의 특징은 외관의 투박함과 내부의 화려함이다. 그리고 많은 문들을 통해 실내로 연결되는데, 문 하나를 지나갈 때마다 화려함과 정교함은 점점 도를 더해간다. 속세와 천국을 건축에 표현하려는 아랍인들의 삶의 철학이 느껴진다. 왕궁 입구로 들어서면 두 벽 사이로 기다란 아라야네스의 안뜰이 이방인을 맞는다. 하얀 대리석 바닥과 벽면의 초록색 모자이크가 기가 막힌 대조를 이루고, 아치를 이루는 조각 기둥이 떠받치는 지붕에는 붉은 아도베 기와를 얹었다. 작은 연못 물위에 비친 맞은편 건물의 아치와 기둥 장식이 수중 도시처럼 느껴진다. 술탄이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대사의 방에서는 뚫려 있는 아치 사이로 맞은 편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라나다의 정신과 영혼을 담고 있는 알바이신 이슬람 마을이다. 역사와 가슴 아픈 사연이 깔려 있는 마을이다. 이슬람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는 그때, 스페인 병사들은 소수 민족의 문화와 종교를 보호해 주겠다는 항복 조건을 내팽개치고 마을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잔혹한 살육을 저질렀다. 이교도를 소탕하고 신성한 하느님의 땅을 새로 세운다는 그들의 종교적 사명 앞에 한 문명은 무참히 무릎을 꿇었다. 무슬림들은 끝까지 저항했다. 이교도의 지배를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그들은 죽어가면서 처참한 역사를 후세에 남기고자 그들의 피를 곳곳에 뿌렸다. 그래서 하얀 집과 벽에는 당시의 학살로 붉게 물든 핏자국이 오랫동안 남아있었다고 한다. 지금 그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30여개에 달하던 모스크는 지금 성당이 되어 버렸다. 다만 좁은 골목과 서로의 목소리로 이웃과 통하는 가옥 구조가 전형적인 아랍 마을을 닮아 있다는 것뿐이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옹기종기 모인 하얀 집들 사이로 성당의 종소리가 석양을 이고 나직이 깔린다. 가슴 아픈 역사를 잠시 떠올리다가 ‘사자의 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내 정원과 마주하고 섰다.12마리의 사자가 떠받치는 중앙 분수와 사자의 입에서는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물은 파놓은 홈을 따라 정원 구석구석을 흐른다. 야릇한 향내를 머금은 앞뜰의 정원수가 작은 그늘을 이루고,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역동적인 종유석 조각을 담은 아치 아래에는 커다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황량한 사막을 뚫고 온 아랍인들이 이곳에 오아시스의 정서를 그대로 옮겨 담은 것 같다. 아니면 코란에서 묘사하는 천국을 설계한 것일까? 사자의 정원을 나오니 아름다운 분수가 바라다 보이는 계단에 한 맹인이 앉아 구걸을 하고 있다. 그 옆에는 스페인어로 팻말을 세워놓았다.“아름다운 여인이여! 자선하세요. 그라나다에서 맹인이 되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인생이 또 있을까요.” 스페인 시인 프란시스코 데 이카자의 시구다. 아! 동전 한 닢을 놓으면서도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에서 만난 맹인의 말없는 절규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이슬람의 궁성이 함락되던 1492년 그 해, 이사벨라 여왕을 후원자로 모신 제노아의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다. 무적 함대를 자랑하는 스페인의 전성 시대가 막을 연 것이다. 한편 이슬람의 술탄 보아브딜은 다시 스페인에서 쫓겨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로 건너갔다.800년 전인 711년, 그의 선조 타리크 이븐 지야드 장군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할 때 의기양양하게 건넜던 바로 그 길이다. 모로코의 이슬람 도시 페스에 정착한 뒤에도 보아브딜은 꿈에도 알함브라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63세를 끝으로 눈을 감았던 그의 초라한 페스 궁전은 너무나도 알함브라 궁전을 닮아 있다. 지금 대성당이 있는 알카이세리아 주변지역은 전형적인 아랍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아랍인들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한번 이슬람화 된 세계의 모든 지역이 끝까지 이슬람을 지켰지만,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만은 예외였다. 다시 가톨릭이 점령한 이 땅에서 이교도인 무슬림들과 유태인들이 가혹한 추방과 학살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한 때 문화용광로로서 유럽 르네상스를 일으키게 했던 최고 수준의 지적 산실이었던 안달루시아는 문명과 학문이 소멸되면서 역사의 뒤안으로 잊혀졌다. 그리고 지금은 관광객들이 이슬람 유산을 보기 위해 다시 안달루시아로 몰려들고 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儒林(536)-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6)

    儒林(536)-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6)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6) 1년 반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도중에 상운정에서 자신의 소회(所懷)를 털어놓은 율곡의 시는 다음과 같다. “가을바람에 풍악(금강산)을 떠나,/ 석양 무렵 상운정에 당도하니, 모래 위에는 바위들 늘어섰고,/소나무 사이에는 길이 하나 나 있구나. 파도소리 우르르 바다를 몰아가고,/기러기 떼 듬성듬성 전자모양 형성했네. 말 죽 먹여 급히 길 떠나니,/앞산에 벌써 저녁 안개 어둑어둑(秋風別楓岳 斜日到祥雲 沙上千巖列 松間一路分 殷雷波捲海 疎篆雁成 馬催程發 前山晩霧昏)” 이 무렵 율곡의 고향 임영에는 외할머니 이씨가 눈이 빠져라 율곡을 기다리고 있었다. 율곡의 생애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외할머니 이씨. 흔히 율곡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을 율곡의 어머니였던 신사임당 한 사람으로 압축하고 있으나 오히려 율곡의 천재성을 처음으로 꿰뚫어 본 사람은 외할머니 이씨였다. 이러한 사실은 세살에 불과한 율곡에게 이씨가 석류를 들어 보이며 ‘이것이 무엇과 같으냐.’고 묻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때 율곡은 옛 고시를 인용하여 ‘석류껍질이 부서진 붉은 구슬을 감싸고 있네(紅皮囊裏 碎紅珠)’라고 대답함으로써 주위사람을 탄복시켰는데, 어쨌든 이 ‘석류시’가 율곡이 지은 최초의 절구이고 보면 율곡의 천재성을 제일 먼저 알아본 사람은 외할머니 이씨였던 것이다. 이 무렵 외할머니 이씨는 76세의 노인이었고, 특히 4년 전에 사랑하는 딸 신사임당을 여의고 시름에 잠겨있었으므로 간다온다 일체의 흔적도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살아 돌아오는 율곡을 본 순간 미친 듯이 맨발로 뛰어가 율곡을 맞아들였을 것이다. 율곡은 이곳 강릉에서 한겨울을 지낸다. 이듬해 봄 또다시 강릉을 떠나 한성시에서 장원으로 뽑혔으니, 비록 한겨울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금강산에서 있었던 불자로서 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은 암중모색(暗中摸索)의 의미 깊은 전환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겨울 동안 율곡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할 목표를 곰곰이 생각한 후 그가 평생 동안 좌우명으로 삼아온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자신을 경책하는 지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경계하는 글’이라는 뜻의 자경문은 불교와의 결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글이며, 또한 다시 청산을 버리고 세속으로 환속하여 복귀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방어의 아폴로기(apology)였던 것이다. 한겨울 동안 율곡은 치열하게 외갓집에서 입산하기 전부터 계속해왔던 과거시험공부를 계속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듬해 봄 한성부에서 주관하는 한성시에 응모하기 위해서 율곡은 서둘러 한양으로 귀향하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장원에 급제하여 화려하게 입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儒林(531)-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1)

    儒林(531)-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1)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1) 즉 부처는 자신의 마음을 문자나 경전의 가르침과 같은 글자를 통하지 아니하고 오직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 오묘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는데, 만약 노승께서 진리의 본체를 색이니, 공이니, 진여니 하고 여러 가지 말이나 문자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불립문자(不立文字)의 범주에서 벗어나 문자 안에 있다는 모순을 범하게 되는 것이며,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오묘한 진리가 아니라 경전 속에 들어있는 문구를 인용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겠느냐는 통렬한 반격이었던 것이다. 율곡은 자신의 말에 대한 노승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노승은 깜짝 놀라 나의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당신은 세속 선비가 아니로군요.’” 율곡이 쓴 시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율곡은 노승의 변론을 시험해 봄으로써 자신이 노승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세속 선비가 아닌 출중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화자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기야 이 시를 쓸 무렵의 율곡은 19살의 청년이었으므로 객기(客氣)를 부릴 만큼 패기만만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풍악산 작은 암자에서 솔잎을 먹으며 생식하고 있는 노승쯤은 얼마든지 한 방망이 후려쳐서 쓰러트릴 수 있다는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율곡의 나르시시즘은 이 시에서 하이라이트로 장식된다. 즉 노승이 율곡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하였다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선비는 나를 위해 시를 지어서 솔개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물속에서 뛰노는 그 글귀의 뜻을 해석해주시오.” 노승의 부탁에 율곡은 흔쾌히 이를 수락한다. 노승이 지필묵을 준비하자 율곡은 붓에 먹을 듬뿍 묻혀 종이 위에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일필휘지하기 시작하였다. 율곡이 노승을 위해 지은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물고기가 뛰놀고 솔개 나는 것은 위아래가 한가지라.(魚躍鳶飛上下同) 이것은 색도 아니고 공 또한 아니라네.(這般非色亦非空) 무심결에 한번 웃고 내 몸을 돌아보니,(等閒一笑看身世) 석양의 나무 숲 속에 홀로 서 있네.(獨立斜陽萬木中)” 율곡이 써준 시를 읽어본 노승은 이 시를 접어서 자신의 소매 속에 집어넣는다. 그러고는 벽을 향해 돌아앉아 면벽을 하였다. 더 이상 율곡과 대화를 하지 않고 침묵 속으로 들어가 수행하겠다는 자신의 뜻을 내보인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율곡은 그 암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장면을 율곡은 시 속에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나는 그 골짜기를 나오며 노승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사흘이나 지난 뒤에 다시 그 골짜기로 가서 본즉 조그마한 암자는 그대로 있는데, 노승은 이미 떠나버려 암자는 텅 비어있을 뿐이었다.”
  • [지금 통영에선] 한려해상공원 당일치기 관광시대 ‘활짝’

    [지금 통영에선] 한려해상공원 당일치기 관광시대 ‘활짝’

    “통영이 가까워졌어요.”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해양관광휴양도시 통영이 새해들어 뜨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개통된 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도시인 통영으로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개통으로 통영과 대전 사이 차량 통행 시간이 크게 줄어 들었다. 대전·충청지역은 물론 서울·경기지역에서도 당일치기 통영 관광을 할 수 있게 됐다. 남해안 중심에 위치한 유명한 해양관광도시임에도 교통여건 탓에 휴가철이 아니면 비교적 조용했던 통영이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뚫린데 힘입어 사계절 활기찬 관광도시로 바뀌고 있다. ●통영서 동창회를… 대전∼통영고속도로는 총 연장 208.9㎞. 지난 1992년 3월 착공,2001년 대전∼진주구간이 먼저 개통된데 이어 지난해 12월12일 나머지 진주∼통영 구간이 개통됐다. 고속도로 개통 뒤 통영시내 도로는 주말마다 대전·충청·경기·서울 등지에서 온 승용차로 붐빈다. 활어를 파는 중앙활어시장과 서호시장, 그리고 근처 식당가도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김모(45)씨 가족 5명은 올해 초 새해 첫 나들이로 통영을 택했다. 통영에 둥지를 튼 대학동창도 만나고 통영 관광도 겸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에서 아침 6시에 출발, 휴게소도 들르면서 여유있게 운전했지만 11시가 채 안돼 통영에 도착했다. 서울 시내 구간을 감안하면 4시간도 걸리지 않은 셈이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개통됐기 때문이다. 통영시에서 친구를 만나 싱싱한 회와 매운탕으로 점심을 같이 하며 회포를 푼 후 오후 통영 관광에 나섰다. 산양관광도로를 이용해 1시간 여에 걸쳐 미륵도 해안을 한바퀴 돌며 한려수도의 절경을 눈과 마음에 담았다. 해저터널과 청마문학관 등 시내 주요관광지도 둘러 봤다. 중앙시장에서는 펄쩍펄쩍 뛰는 생선 등 수산물도 샀다. 해가 저물어 저녁까지 먹고 귀경길에 먹을 생각으로 충무김밥을 샀지만 길이 잘 뚫려 먹을 기회조차 없었다. 비록 밤늦게 집에 도착하긴 했지만 만끽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김씨는 “올봄에는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동창 모임을 통영에서 갖기로 했다.”면서 “1박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통영이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눈·발길 머무는 곳마다 볼거리 중앙시장 인근에서 10년 넘게 횟집을 하고 있는 박모(63)씨는 “고속도로가 개통된 뒤 전국 팔도에서 모임이나 관광을 하러 통영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통영시는 고속도도가 개통된 뒤 관광객이 평균 20%쯤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한국도로공사 고성지사는 대전∼통영고속도로가 개통된 뒤 23일까지 통영톨게이트를 이용한 차량은 하루 평균 1662대, 토·일요일에는 2200대로 집계됐다고 말했다. 통영은 충무공의 한산대첩으로 잘 알려져 있는 한산도를 비롯해 크고작은 151개의 유·무인도가 널려 있다. 한산도는 여객선을 타고 30여분쯤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섬. 제승당을 비롯한 충무공의 유적지와 섬 일주 관광을 하는데는 2시간쯤 걸려 다른 시·도에서 온 관광객들도 당일치기 구경이 가능하다. 천혜 절경의 정기를 이어 받아서인지 통영에서는 걸출한 문화·예술인이 많이 배출됐다. 음악가 윤이상, 시인 유치환·김춘수, 시조시인 김상옥, 극작가 유치진, 소설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이들 유명 문화인물들이 태어난 생가나 문학·작품전시관, 남방산 국제조각공원 등을 돌아보면 문화·예술의 도시 통영의 향기를 흠뻑 느낄 수 있다. 통영시는 세계적인 작곡가인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조명해 도천동 일대에 세계악기박물관·야외공연장 등의 시설을 갖춘 음악타운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업비 700여억원을 들여 윤이상 국제음악당 건립사업도 추진 중이다. 한려수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미륵산 정상을 잇는 케이블카 설치사업은 올해 안에 완공될 예정이다. 도남동 일대 100여만평에 요트·숙박시설, 골프장 등을 갖춘 종합레저타운 조성을 민자유치사업으로 추진한다. ●절경 중의 절경 ‘통영8경’ 통영앞 섬과 바다는 어디서 보든지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는 통영8경이 꼽힌다.461m의 미륵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한려수도 및 통영시가지 전경과 통영대교 아치에 설치된 조명이 바닷물에 반사돼 연출하는 아름다운 야경이 1·2경으로 꼽힌다. 썰물때가 되면 두 섬이 연결돼 건너다닐 수 있는 소매물도와 등대섬도 걸작품. 산양관광도로 중간 쯤에 있는 달아공원에서 바라보는 석양과 올망졸망한 섬도 장관이다. 충무공의 충절이 깃들어 있는 제승당 앞바다와 남망산 공원에서 바라보는 한산섬 앞 바다도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환상의 섬 사량도에 있는 해발 398m 지리산에서 보는 남해바다의 경치도 빼놓을 수 없다. 통영항에서 24㎞ 떨어져 있으며 불교계의 순례지로 연화사가 있는 연화도의 용머리 모양도 절경의 백미라고 말한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진의장 통영시장 “통영의 미래는 섬과 바다에 달려 있습니다.” 진의장 통영시장은 “섬과 바다가 아름다운 통영을 세계적인 해양관광도시로 가꾸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진 시장은 “대전∼통영 고속도로 개통으로 통영은 전국 어느 곳에서도 쉽게 다녀갈 수 있게 됐다.”며 “멀리서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주차공간 확보와 연계도로 등 부족한 관광인프라를 빨리 확충하겠다.”고 덧붙였다. 통영시는 풍부한 역사·문화·자연 등 잠재적인 관광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해 관광객들이 계속 찾을 수 있는 경쟁력있는 관광지 도시를 조성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통제영을 비롯한 역사유적지 복원사업과 관광섬 개발, 무형문화재 예능전수회관 건립, 밤이 아름다운 도시경관 조성사업 등 관광기반 시설을 단계적으로 확충한다. 진 시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남해안 관광벨트 중심도시로 건설하는 것이 통영관광개발의 기본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통영개발 청사진 ‘섬에서 하룻밤을….’ 통영시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전국 어느 곳에서도 접근이 수월해짐에 따라 당일관광뿐만 아니라 머무는 관광상품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151개의 유·무인도를 형태와 자연환경 특성에 따라 분류해 특색있는 관광섬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해수욕장·낙시터·자생꽃섬, 등산로, 유명영화인섬, 명상의 섬, 건강의 섬 등으로 테마형 관광상품화해 관광객들이 1∼2일 머물며 섬과 바다의 풍광과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려수도 내의 섬들은 뛰어난 풍광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머물기보다는 유람선 관광객용 ‘단순 볼거리 관광’이 대부분이었다. 또 섬에 내리더라도 당일치기에 그치고, 숙박형은 거의 없었다. 우선 시는 올해부터 2010년까지 공공자금 378억원과 민자 784억원 등 모두 1162억 여원을 들여 연화도, 추도, 비진도, 추봉도, 오비도 등 5개 섬을 관광섬으로 개발한다. 불교도량 연화사가 있는 욕지면 연화도에는 민자 38억원 등 모두 138억원을 들여 불교조각공원과 방생장 등의 시설을 갖춘 불교테마공원과 녹차밭, 특산물판매장, 펜션단지를 조성한다. 산양읍 추도에는 71억여원을 투입해 가족단위 체험휴양지를 조성하고 폐교를 활용해 청소년 휴양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한산면 비진도에는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38억여원을 들여 야영장, 바람개비동산, 바다낚시 체험장, 수목원을 조성한다. 문화관광부 지원사업인 남해안 관광벨트 사업에 포함된 산양읍 오비도는 숙박시설과 레저타운 등 해상위락지구 개발이 추진되고 몽돌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한산면 추봉도는 26억원을 들여 휴양지로 개발한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7)茶室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7)茶室

    붉디붉은 동백꽃이 벙그러져 하늘을 향해 얼굴을 내민다. 퍼득이는 새의 날갯짓에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붉은 동백의 무리들은 마치 절망 속에서 자신의 삶을 내던져 버리는 중생들의 아픈 추락비행 같다.‘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속에 깃든 의미는 아마 희망이었던 것 같다. 추락과 날개는 상반된 감각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추락이 절망이요 포기라면 날개는 곧 다시 비상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로지 한 곳을 향해 집중하고 인내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넉넉한 삶의 여유다. 신년 들어 일지암에서 중생의 평안과 차인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다회를 열었다. 멀리 서울과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초의차문화연구원들이 참석했다. 신년다회는 일지암 초당에서 열렸다. 까실까실하고 상큼해 보이는 새 볏짚으로 엮어올린 지붕을 가진 일지암 초당에는 3평 남짓한 차실이 있다.3방향으로 문을 해닫고 한쪽에는 차를 덖을 수 있는 부엌으로 만들어 놓은 일지암 초당 옆으로는 그 유명한 유천이 흐른다. 초당의 문을 열면 두륜산의 광활한 산맥이 울퉁불퉁 튀어오르는 것이 보이고, 늦은 오후 맑은 석양에는 서해바다의 잔잔한 물소리가 바람과 풍경소리를 타고 월담을 한다. 아름다운 풍광을 다탁으로 한 일지암 초당의 다실은 그야말로 담백하다고 말할 뿐이다. 갈아 붙인 회벽에 몇겹으로 이어 붙인 회백색 벽지와 3명 정도가 마실 수 있는 작은 차 도구가 전부다.2∼3명의 찻자리는 늘 고요하다. 오직 바람소리와 유천의 물소리를 벗삼아 자신의 마음을 흘려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지암의 차실을 두고 ‘무애의 차’ 자리라고 하는 것이다. 차인들에게 차실은 차, 차도구와 함께 매우 중요한 것중 하나다. 차를 하면 할수록 자신만의 차실을 하나쯤 가꾸는 염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부쩍 자신의 차실을 소유하는 차인들이 늘고 있다. 작게는 3∼4평, 크게는 10여평의 차실을 근사하게 가꾼 후 가까운 차인들을 초대해 차회를 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도심의 아파트에서도, 먼 산골의 초막에서도 차실을 꾸며 차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차실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일본의 차실이다. 일본의 차실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고도의 문명을 향유한 일본문명의 상징처럼 일본의 차실은 세계적인 눈길을 끌었다.100여년이 넘는 대숲속의 차실들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눈에도 동양문명의 핵심으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이른바 초암으로 불리는 일본의 다실들은 실로 담백하기 짝이 없다. 허리를 굽혀야 하고 몇 사람이 옹기종기 몰려 앉아 무릎을 맞대고 먹어야 하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차실이 바로 이 시대의 차인들과 서양인들의 마음과 눈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초암의 백미는 텅 비어 있고 작다는 데 있다. 초암에 대해 조선시대 이형상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내 집은 초려삼간/세상일이라곤 전혀 없네/차 달이는 돌 탕관과 고기 잡는 낚싯대 하나/뒷산에 절로 난 고사리 그것이 분수인가 하노라.”라며 소유하지 않는 자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초암의 핵심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적이라는 점에 있다. 그리고 작지만 위대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한적한 대숲이나 정원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초암은 흙과 볏짚을 혼합해 바른 벽이나, 대나무와 흙으로 엮어 만든 벽이 대부분이다. 방바닥 역시 마찬가지다. 대나무 자리를 깔거나, 갈대를 엮어 만든 것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암 차실은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의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가집 같은 것이다. 이른바 건축의 기본을 도외시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쉽게도 일본 초암차의 원류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우리의 옛 초가집의 소박한 멋이 원형인 것 같다. 최근 몇몇 연구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일본 초암다실의 원형은 우리나라라는 것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센리휴에 의해 완성된 초암차실은 당시 강대했던 무사계급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꺾으려는 정치적 목적도 가미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비록 자결은 했지만 도요토미의 왕사역할을 했던 센리휴는 차의 근본정신 회복을 통해 일본 지배계급의 야만성을 희석시키려 했던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굽어보게 하는 소박한 다실인 초암은 우리나라의 초가집들과 매우 닮았다. 초암다실이 세계적인 다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사성과 함께한 정신성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근원적 투쟁심을 탈각시켜 버린 무소유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물신주의의 총아인 자본주의는 불가사리처럼 무엇이든 거대화시키고 조작해낼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다. 그러나 초암은 그런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역설의 미학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곧게 수직으로 뻗어내린 직선의 미학에 휘어지고 굽어진 곡선의 미학으로 맞서고 있다. 화학화시키고 인위적으로 조작한 재료 대신 흙과 집 그리고 대나무 등 천연재료를 사용,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데 그 위대함이 있는 것이다. 작고 어두운 초암은 폐쇄적인 공간이 결코 아니다. 사방을 개방해 누구라도 들고 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 열린공간은 신분의 차별을 초월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초암은 우리나라에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했다. 깊은 산중에서 수행을 하기 위해 손가는 대로 지어낸 띠집인 초암, 가난한 선비들이 호연지기를 기르고 청빈함과 검소함을 자랑하기 위해 만들었던 모사(茅舍), 초려(草廬), 초정(草亭), 또한 왕이나 왕세자 등이 제를 지내기 위해, 잠시 머물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은 모옥(茅屋), 초옥(草屋) 등이 존재했다. 먼저 초암은 원래 스님들이 살던 암자의 명칭이기도 하다. 대중수행을 피해 홀로 수행을 하기 위해 깊은 산중에 아무렇게나 지은 작은 암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초암은 천연재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검소하고 청빈한 삶의 원형을 그대로 담아내게 된 것이다. 설잠 스님의 ‘모암’이란 시는 이같은 상징성들을 그대로 드러낸다. “푸른 산 깊은 곳에 귀틀집 한 채 얽었는데/집 아래로는 맑고 맑은 만길 깊은 못이로세/가는 곳 되는대로 구름따라 함께 가고/머물 때엔 한가로이 달 아래 절방에 함께 있네.” 선비들이 독서나 차를 마시는 데 이용했던 초정이나 누실도 마찬가지다.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며 호연지기와 청빈함을 자랑했던 초정이나 누실 역시 작고 소박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초암의 원형들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런 점에서 초암은 자연주의의 원형이랄 수 있다. 그같은 것은 차가 지닌 자연성과 우주성을 일체화한 독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초암은 또 차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물론 역사성과 현실성에서 시작된 것이겠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현대에 와서 초암은 문명의 역설성을 상징하고 차의 본연성을 담아낸 천연의 기제로 자리매김될 만하다. 차의 정신은 궁극적으로 하심(下心)에 있다. 넓고 큰 집, 넓고 화려한 광채가 나는 차실은 바로 현대인들의 욕망을 상징하는 또 다른 기제다. 그러나 초암으로 대별되는 차의 정신은 내 욕망을 내려놓은 하심을 구조적으로 추구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좁고 작아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문들, 도대체 막힘이 없는 사방으로 열린 공간들, 울퉁불퉁 튀어나온 소나무의 서까래 등 순수한 자연의 미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경계를 풀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초암에서 소박한 미의식을 본다. 소박한 미의식이란 작고 볼품없는 공간속에서 채워낼 수 있는 정신적 충만감을 의미한다. 일지암 초당의 신년차회는 바로 이같은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바싹 마른 장작을 구들에 넣고 사방으로 환히 열어젖힌 초당의 문들, 바로 앞의 작은 연못과 붉게 핀 매화 향, 그리고 손에 잡힐 듯 툭툭 꽃봉오리를 벙그러올리는 동백꽃이 바로 또 다른 차의 세계를 구현한 것이다. 그들은 그 찻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스님 참으로 부끄럽고 초라합니다. 이렇게 위대한 자연의 경이 앞에서, 꾸미지 않은 자연의 소박함 앞에서 내가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한 잔의 차를 마시며 그들은 자연을 품에 안았고, 현대사회 속에서 일그러져 있는 자신의 작고 초라한 모습을 관조할 수 있었다. 찻자리가 소중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차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자연을 나누고 결국은 우주를 나눌 수 있다. 한발짝 더 나아가 차를 통해 자신을 개벽시킬 수 있는 단초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술은 사람을 들뜨게 하고 육신을 망치지만 차는 사람을 가라앉히고 육신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신묘로운 작용을 한다는 말이있다. 차 한잔은 이렇게 인간의 삶의 양식을 바꿀 수 있기도 하다. 일지암 암주 ■ 현대인의 차실은… 차실은 차인의 품격과 인격을 나타내는 척도다. 요즘 찻자리에 초대되어 가보면 이른바 명품으로 치장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것은 누구의 작품이며 이것은 얼마나 값어치가 나간다고 자랑을 한다. 그럴 때 그 찻자리에는 은근히 질시와 불편함이 싹튼다. 이른바 차회가 아니라 과시회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차가 자신의 신분과 인격을 상승시켜주는 인격체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경우를 보며 씁쓸해한다. 흔히들 차를 격식의 문화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갖추어진 다실에서 갖추어진 다구와 차를 준비한후 예법에 따라 마시는 것이 바로 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른바 그것은 바로 차가 격식화되어 있는 것이다. 차는 격식의 문화가 아니다. 물론 의식을 통해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차는 당연히 격식의 차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차는 자연스러움과 소박함 그리고 편안함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 우선 차는 특정인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차를 마실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갖추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공유하는 나눔의 마당이 되어야 한다. 거실이나 방에서 행다를 해도 된다. 차실은 가급적 비린내가 나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은 곳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깨끗하고 아담한 분위기 연출을 위한 곳이면 더욱 좋다. 먼저 다실을 꾸밀 공간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이다. 다실의 크기는 3∼4평 정도가 제격이다. 다실의 크기가 너무 넓으면 주위가 산만하고 어지럽기 때문에 오히려 차실로서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실은 손님을 접대할 몇 가지 가구와 다구, 요란하지 않은 화분이나 서화로 간단하게 장식되어 있으면 더욱 좋다. 다실에 놓여진 난과 꽃은 차실의 분위기를 한층 품격있게 만들기도 하다. 다만 너무 요란스럽게 꾸며진 장식물들은 오히려 차실의 분위기를 해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실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차선책으로 응접실이나 서재를 이용해도 된다. 우선 차를 마실 수 있는 차도구를 위한 상시적인 공간을 마련한다. 그곳의 넓이는 0.5평 정도면 된다. 가능하다면 창문을 통해 밖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좋으며 조촐하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소나무 화분이나 꽃 등을 준비해 놓아두면 더욱 좋다. 마지막으로 응접실이나 서재도 없는 단칸방에서도 차는 가능하다. 평상시에 차를 마실 수 있는 도구를 사람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놓아둔 다음 차를 마실 때 자리를 마련해 마시는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행다란 다실의 유무에 있지 않고 그것을 소박하고 검소하게 즐길 수 있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儒林(523)-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3)

    儒林(523)-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3)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3) 그 연유야 어떻든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서든, 마음의 영혼불멸성을 깨닫기 위해서든, 가정의 불화에서 초연하기 위해서든, 죽은 어머니의 천도를 위해서든, 율곡은 마침내 19세 되던 해 3월, 그 누구에게도 다 알리지 않고 홀연히 금강산으로 출가를 단행한다. 이때 지은 출가시 하나가 오늘날 남아 전하고 있다.‘동문을 나서면서(出東門)’라는 제목의 이 출가시에서 율곡은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하늘과 땅은 누가 열었으며, 해와 달은 또 누가 갈고 씻었는가. 산과 냇물은 이미 무르녹아 어우러져 있고 추위와 더위는 다시 서로 또 엇갈리는구나. 우리 인간은 만물 가운데 있어 지식이 제일 많도다. 어찌 조롱박 같은 신세가 되어 쓸쓸히 한 곳에만 매어 있겠는가. 온 나라와 지방 사이에 어디가 막혀 마음껏 놀지 못할까. 봄빛 무르익은 삼천리 밖으로 지팡이 짚고 나 장차 떠나려 한다. 나를 따를 자 누구일까. 저녁나절을 부질없이 서서 기다리네.” 시 속에 나오는 ‘어찌 조롱박과 같은 신세가 되어 쓸쓸히 한곳에만 매어 있겠는가.(胡爲類匏瓜 戚戚迷處所)’란 구절은 바로 공자가 말하였던 ‘내 어찌 조롱박인가. 한 곳에만 매어있어 먹히지 아니하는 그러한 식물과 같을 수 있겠는가.’라는 구절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 포과, 즉 조롱박은 별로 쓸모없는 물건이므로 율곡 자신은 쓸쓸히 한 곳에만 매어달린 포과처럼 쓸모없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암시하고 있음인 것이다. 율곡이 1년 반 동안의 금강산 운수행각 중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기록은 오늘날 그 어디에도 남아 전하지 않고 있다. 율곡이 훗날 이때의 기록을 부끄럽게 여겨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으므로 자연 공백기간으로 남아있을 뿐인데, 다행히 이때 율곡이 지은 시들이 20여 편 정도 남아 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대충 율곡의 ‘산중일기(山中日記)’를 미뤄 짐작할 수 있음인 것이다.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에도 율곡은 또 다른 시를 한 수 더 짓는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밥 짓는 연기 나고 한낮의 닭은 우는데,/유인이 지팡이 짚고 시냇물에 다다랐다. 산 집이라 사월에도 봄이 다 가지 않아/울타리 둘러싼 나물꽃이 한창 푸르고 붉다. 사이 길엔 뽕 따는 여인 때로 있고,/남쪽 들엔 들밥 나오는 걸 자주 보겠네. 석양의 부슬비에 외진 마을 찾아들자,/목동 피리 나무꾼 노래가 장단 맞춰 일어나네. 사립문 두드려 주인을 불러내니,/늙은이 나를 보다 반갑게 맞이하는 듯, 소나무 평상 대자리가 너무나 말끔해서,/비단 따위 인간 사치 알 바 아니었네.” 시에 나오는 ‘유인(幽人)’이란 말은 세상과 인연을 끊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는 바로 율곡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인 것이다.
  • [배지환의 DICA FREE oh~] 일출·일몰 촬영하는 법

    [배지환의 DICA FREE oh~] 일출·일몰 촬영하는 법

    누구나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머릿속의 기억이 아닌 사진으로서의 추억으로 기록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우리 마음일 것이다. 오늘은 흔한 사진이지만 누구나 촬영할 수 없는 일출·일몰 사진에 대해 말하려 한다. 우선 일출·일몰 사진을 얻기 위한 준비물을 간단히 알아보면, 첫번째는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카메라가 있어야 하겠고 두번째는 어두운 주변환경에서 촬영해야 하는 조건이므로 사진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삼각대가 있어야겠다. 세번째는 지난번 설명한 사진의 기본원리인 노출의 개념과 추운 날씨나 더운 날씨에서도 담고자 하는 풍경을 촬영하기 위한 인내심이라 할 수 있다. 일출·일몰 사진 촬영시 주의해야 할 사항은 반드시 기상예보를 미리 확인하고 촬영에 임해야 하며, 해가 뜨거나 해가 지기 30분 전에 촬영장소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미리 촬영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감도(iso)설정은 어둡다고 해서 400 이상으로 높여 촬영하지 말고 가급적이면 삼각대를 이용하여 100으로 설정해놓고 가장 문제가 되는 노출의 경우 조리개를 f8이상으로 조여놓고 조리개우선(AV)이나 셔터스피드우선(TV)이 아닌 완전 수동모드(M)로 설정한 후 적정노출을 계산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일출시에는 빠른 속도로 해가 떠오르기 때문에 노출의 변화도 시시각각 변하게 된다. 이럴 경우 초보자들은 당황하기 마련인데, 절대 당황하지 말고 조리개값은 변함없이 그대로 고정, 그 후엔 셔터스피드를 3단계로 나누어 브라케팅(Bracketing) 촬영을 하도록 한다. 예를 들자면 처음 촬영이 조리개 f8에 셔터스피드 1/4초가 적정 노출이었다면 나머지 한장은 그보다 더 느린 1/2초, 그리고 또 다른 나머지 한 장은 1/8초로 처음 촬영한 1/4초보다 조금더 빠르게 주는 것이다. 즉 1/4초가 중심이 되고 그보다 한 단계 느리게, 또 그보다 한 단계 빠르게 설정하여 총 3장의 사진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브라케팅 촬영기법은 요즘 출시되는 디지털 카메라에는 기본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들이니 카메라 설명서를 잘 살펴보며 본인의 카메라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위 사진의 경우 본인이 새벽배를 타고 경남 소매몰도를 가는 도중 떠오르는 해를 촬영한 일출 사진이며 셔터스피드 1/10, 조리개 f22, 감도는 100으로 촬영했다. www.cyworld.com/pewpew ■ Q&A-디카 동영상 기능 궁금해요 최근 디카의 동영상 기능이 강화되면서 이젠 더 이상 캠코더가 필요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디카는 스틸 사진(정지된 영상)뿐만 아니라 깨끗한 화질의 동영상을 담는 복합적인 기록 도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불과 4∼5년전만 해도 디카의 동영상 기능은 화질도 좋지 못할 뿐만 아니라 촬영 시간에 제한이 있었고, 줌기능이 없어 활용 빈도가 낮았다. 하지만 근래에 출시하는 디카는 메모리가 가득찰 때까지 촬영이 가능하고 촬영 중 줌기능, 손떨림 보정기능 등 캠코더급의 기능들이 장착되어 있어 디카 사용의 재미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켜준다. 일반적인 디카의 동영상 모드는 640×480 30플레임,640×480 15플레임,320×240 15플레임 등이 있다.640×480이라는 것은 가로×세로의 해상도를 나타내며 30플레임은 초당 30프레임으로 동영상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만큼 동영상의 용량도 커지기 때문에 동영상 촬영을 생각한다면 512M 이상의 대용량 메모리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만약, 메모리가 충분치 않다면 상황에 따라 모드를 변경하여 촬영하는 것이 좋다.TV에서 감상하고 싶다거나 아이들이나 동물과 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를 동영상으로 촬영한다면 고해상도와 높은 프레임으로 촬영하는 것이 좋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640×480 15프레임으로 촬영해도 된다. 촬영한 영상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고 싶다면 3MB이하로 촬영해야 쉽게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최저 해상도와 최저 프레임인 320×240 15프레임으로 5초 정도로 짧게 잘라서 촬영해야 한다. 도움말:한국코닥 디지털영상사업부 ■ 디카리뷰-카시오 EX-S600 일본의 유명 가전 회사인 카시오에서 EX-S600이란 기종을 선보이며 콤팩트 디카가 지난해 말부터 한국 시장에 등장했다. 가장 얇고 슬림한 디자인, 예쁘고 다양한 색상 그러면서도 600만 화소대의 화질 등을 무기로 특히 여성 유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가격은 옵션에 따라 45만원부터 80만원대까지 형성돼 있다. ●얇고 예쁜 디자인과 첨단 성능 일단 S600이 눈길을 끄는 것은 슬림형 디카 중에서도 가장 얇고 빨강, 파랑, 은색 등 다양하고 예쁜 색상이다. 여성의 작은 핸드백 속에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작고 얇은 디자인은 여성 유저들이 좋아할 만하다. 또한 600만 화소에 비구면 렌즈 등을 사용해서인지 사진의 화질이 생각보다 좋았다. 집에서 가족 사진 등을 찍는데 전혀 무리가 없을듯 하다. 또한 콤팩트 디카의 가장 큰 단점인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한 도 꽤 쓸 만했다. 셔터 스피드 1/10초에서 찍은 사진을 8배 확대해 봐도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카메라 기동 시간과 사진 저장 속도도 빠른 편이며 인물 촬영, 꽃 촬영, 석양 등 다양한 장면 모드가 있어 초보자들이 좀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배려도 눈에 띈다.S600의 또 다른 특징은 배터리 스테미나. 설명에는 한번 충전으로 300장을 찍어도 된다고 나와 있지만 고화질로 100여장을 찍었는데도 배터리가 한 칸도 떨어지지 않는 등 획기적으로 개선된 배터리가 마음에 든다.2박3일 여행이라도 배터리를 한번 충전하면 충분할 것 같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젭센코리아로 AS라인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직영 체제가 아니라 아직도 무엇인가 미비한 점이 있고 전용 크레들을 사용해야만 충전이나 컴퓨터와 연결이 되는 불편함도 있다. 또 카메라에 부착된 버튼이 간단해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려면 모두 메뉴로 들어가 조절을 해야 하고 가방에 넣고 다닐 때 쓸수 있는 가죽 케이스도 없는 등 사용자의 편의성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마흔 넘어 세상을 산다는 건…

    ‘나이 마흔 넘어 세상을 산다는 건/석양빛 붉은 울음을 제 뼛속마다 고이/개켜 넣은 거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악머구리 끓듯 소란스럽지 않게/저만큼 서로 한 뼘씩 거리를 둔 채/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상처의 불꽃들/밤새 안녕하였다는 눈인사를/저 스스로에게 묵묵히 건네며/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미스터L의 회상’중) ‘58년 개띠생’인 시인 이승철(48)이 세번째 시집 ‘당산철교 위에서’(솔)를 발표했다.‘총알 택시안에서의 명상’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시집의 주된 정서는 인용한 시구에서 드러나듯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40대 후반 중년 남성의 자화상이다. ‘스무살 적 광주, 나 역시 한때 노숙자로 떠돌던 때가 있었다. 얇은 비닐조각을 이불처럼 덮어쓰며 광주학생회관 계단 밑에서 별꽃을 헤아리다가 새벽이슬 속에 문득 잠 깨어나곤 했었다.’(‘종삼에서 운주사 와불을 보다’중) 호남대 행정학과에 다니던 평범한 ‘문청’의 인생 항로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항쟁과 더불어 급격한 굴절을 겪는다. 대학을 중퇴하고,1983년 시 전문 무크 ‘민의’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출판계에 입문했다.나남, 인동, 산하, 황토 등의 출판사에서 5월 시선집 ‘누가 그대 큰 이름 지우랴’‘광주민중항쟁증언록’, 김남주 시인의 옥중시집 ‘나의 칼 나의 피’등을 기획했다. 세월의 힘에 떠밀려 어느덧 세속적 삶에 물든 자신을 탓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엄중하다.표제작 ‘당산철교 위에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2만5천 볼트의 전류를 기운차게 뿜어내며/2호선 전동차가 바람을 헤치며 돌진한다./당산철교 밑으로 푸르딩딩한 강물이 떠가고’에서 기억과 현실의 첨예한 대비에 괴로워하던 시인은, 이내 ‘나는 지금 한 마리 낙타로/인생이라는 신기루를/무사히, 잘, 건너가고, 있는가?/옛사랑이 다만 흐릿하게라도 남아있는 한/세상을 사는 존재의 형식을 되묻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추스른다. 시집에는 시인 자신의 삶의 변화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김남주, 채광석, 고정희, 기형도 등 요절한 문인들을 기리는 추억도 실려있다. 시인은 “자기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는 것, 그럼으로써 자기 영혼에 메스를 가한다는 것, 그리하여 미욱한 이 세상을 향해 일갈하고 싶다는 것, 이것이 최근 나의 시작 태도”라며 “청춘의 한 시절이 허위단심 떠나갔고, 저만치서 불혹의 아침이더니 이제 나는 인생의 후반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시집 앞머리에 적었다. 시인은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시 전문지 ‘시경’편집위원, 도서출판 화남의 편집주간으로 활동 중이다.65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모리코네 내한무산 아쉬웠다면…

    지난해 가을 국내 음악 팬으로서는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망신스러웠던 일이 있었다.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 연주회가 국내에 예정돼 있었다. 월드 투어의 하나였다. 당시 한국 나이로 77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모리코네의 처음이자 마지막 내한 공연이 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90명에 달하는 로마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100여명 등이 동반한다고 대대적인 홍보가 펼쳐졌다. 덩달아 그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그런데 공연 이틀을 앞두고 돌연 무산됐다. 개런티가 미리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5년에는 이외에도 ‘일단 일정을 잡고 보자는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던 여러 연주회가 연달아 취소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국내에서는 섭섭함과 함께 세계적인 망신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해 모리코네 공연 무산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다. EBS가 7일 오후 6시20분부터 1시간 동안 ‘EBS 버라이어티’ 시간을 통해 모리코네의 독일 공연 실황을 내보낸다. 지난 2004년 10월20일 독일 뮌헨에서 열렸던 공연이다. 모리코네가 뮌헨 라디오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잡았고, 스웨덴 출신 소프라노 수산나 리가시와 뮌헨 라디오 합창단이 함께 음악의 향연으로 이끌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영화음악가 1위를 독차지하고 있는 모리코네는 61년 영화음악 작곡가로 데뷔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콤비를 이룬 ‘황야의 무법자’(1964) 등 마카로니웨스턴을 통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려 360여 편의 작품에 음악을 담으며 영화 팬의 심금을 울려왔다. 최근에도 작곡에 대한 정열이 식지 않고 있으며, 예전에 만들었던 명곡들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2003) 등 최신 영화에 다시 실리며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고 있다. 이날 전파를 타는 공연에서는 ‘석양의 무법자’(1965·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완전 범죄’(1970·엘리오 페트리),‘석양의 갱들’(1971·세르지오 레오네),‘사코와 반제티’(1971·줄리아노 몬탈도),‘타타르 사막’(1976·바렐리 즈를리이니),‘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세르지오 레오네),‘미션’(1986·롤랑 조페),‘언터쳐블’(1987·브라이언 드 팔마),‘시네마 천국’(1989·주세페 토르나토레),‘피아니스트의 전설’(1998·〃) 등이 연주된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儒林(506)-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8)

    儒林(506)-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8)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 (28) 성주를 출발한 율곡은 날이 저물자 상주에서 하룻밤을 머문다. 율곡이 머물렀던 곳은 우정(郵亭). 관리들이 머무는 객관 중의 하나였다. 상주는 ‘동국여지승람’에 안축(安軸)이 ‘상주는 팔방으로 통한 거리에 있어서 역마를 타고 사명을 받든 자가 빈 날이 없다.’ 라고 기문을 쓴 만큼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 객관에서 하룻밤을 머물면서 율곡은 저물어 가는 석양을 보며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짓는다. “객지에서 봄도 꽤 지났는데 우정에는 오늘 해도 지려 하네. 가는 당나귀 먹일 곳이 어디냐. 연기나는 저 밖에 인가가 있겠네. (客路春將年 郵亭日欲斜 征驢何處 煙外有人家)” 이 시 속에는 쓸쓸한 객지에서 노을을 바라보면서 자기가 찾아갈 곳의 미래를 정하지 못한 23살의 청년 율곡의 고뇌와 번민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시속에 나오는 ‘가는 당나귀 먹일 곳이 어디냐’라는 구절을 면밀히 살펴보면 자신의 처지를 ‘당나귀’로 의인화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 당나귀(驢). 말과의 짐승이나 말은 아니어서 노새와 더불어서 미천하고 어리석은 짐승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동물. 문장에 뛰어났던 청년 율곡이 정처없이 길 떠나는 자신의 처지를 ‘연기나는 저 밖의 인가’를 찾아 떠나는 고달픈 당나귀로 비유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어지럽고 과거를 보아 급제는 하였어도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였으며, 사랑하는 어머니는 죽고, 결혼은 하였으나 아내는 병약하고, 집안은 불화가 끊이지 않아 실로 사면초가의 갈 곳 없는 당나귀 신세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자신의 신세를 ‘마전여후(馬前驢後)’, 즉 말의 뒤를 따르는 나귀와 같이 시속을 따라 이리저리 굴종해서 독자적인 견식이 없는 노예처럼 따라가는 어리석으며 자신의 문장 역시 ‘여명구폐(驪鳴狗吠)’즉 ‘당나귀가 울고 개가 짖는다’ 는 뜻처럼 ‘전혀 들을 가치가 없이 졸렬한 문장’임을 비유하여 스스로 한탄하는 자조적인 시였던 것이다. 율곡은 객관에 누워 3년 전에 지은 ‘자경문’을 곰곰이 되새기면서 스스로를 반성해 보았다. 율곡은 자경문의 첫머리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지 않았던가. “제1조 입지(立志). 먼저 그 뜻을 크게 가져야 한다. 성인을 본보기로 삼아서 조금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끝난 것이 아니다.(先須大其志 以聖人爲準則 一毫不及聖人 則吾事未了)”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객창으로 스며드는 달빛은 베개를 베고 누운 율곡의 얼굴을 선연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성인을 본보기로 삼아서 부지런히 정진하고 있음인가.‘터럭만큼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호기를 부렸지만 나는 과연 터럭만큼이라도 성인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인가.
  • 이별이 머무는 곳 안면도

    이별이 머무는 곳 안면도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이맘때면 사람들은 아름다운 석양을 찾아 떠난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고 풍요로운 새해를 맞이하고픈 소망 때문이다. 일몰은 새해맞이에 앞서 이뤄지는 마무리 의식과도 같은 것. 연말이면 으레 떠오르는 여행 테마이기도 하다. 묵은 것들을 떠나보낸다고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할 것은 없다. 우리의 삶은 다가오는 새해가 있어 여전히 가슴 벅차다. 서해안 일대에 내리는 하얀 눈을 맞으며 충남 태안군 안면도를 찾았다. 글 사진 안면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개펄 위의 황토빛 장관 하얀 눈꽃이 날리던 날. 검붉은 겨울 바다 위로 떨어지는 황홀한 낙조를 보기 위해 안면도로 향했다. 일대에 내린 폭설로 가는 길이 온통 새하얗다. 서해안 고속도로 홍성 IC를 빠져나와 안면도로 가는 서산 A·B방조제 길은 하얀 눈길. 조금 미끄럽지만 가슴을 활짝 열어준다. 겨울 철새가 쉬었다 가는 천수만을 지나 A방조제를 넘어서자 저 멀리 간월암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과는 달리 흰눈에 덮인 간월암은 고즈넉한 모습이다.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됐다가 물이 차면 섬이 되는 간월암은 속세의 번뇌를 떨치고 그렇게 고요히 서 있다. 77번 국도에 접어들어 10여분쯤 더 달리자 안면대교를 건너 안면도로 접어들었다. 안면도에는 초입의 백사장 해수욕장에서 바람아래 해수욕장까지 모두 12개의 해수욕장을 가진 아름다운 섬. 여름철 해수욕 인파로 북적이던 해수욕장은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오후 4시. 서둘러 방포항과 꽃지 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꽃다리로 향했다. 안면도를 대표하는 낙조인 할미·할아비 바위의 낙조를 보기 위해서다. 매년 12월 31일 태안반도 청년연합회 주최로 열리는 ‘저녁놀 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황홀한 붉은 노을을 볼 수 있다. 올해는 오후 3∼7시 풍물놀이와 소원기원 소지 쓰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일찌감치 할미·할아비 바위가 한눈에 굽어보이는 꽃다리에 자리를 잡았다. 꽃다리는 일몰 무렵이면 사진 작가와 사진 애호가 등이 다리 난간을 빼곡히 채울 정도로 최고의 낙조 포인트다. 해가 수평선으로 기울어 갈수록 붉은 빛이 할미·할아비 바위를 진홍빛으로 물들인다. 넓게 펼쳐진 개펄 사이로 난 조그만 물길 사이에는 붉은 빛으로 커다란 불기둥이 생겨 그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한 느낌을 준다. ‘와∼.’탄성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아름다운 낙조의 모습에 주위가 술렁인다. 다리 위에서는 연신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이어진다. 그것도 잠시, 붉은 노을의 장관을 연출하던 해는 진한 여운을 남기며 곧바로 서해 바다속으로 떨어진다. 60대 중반의 한 아마추어 사진작가는 “연말이 되면 할미바위와 할아비 바위 중간으로 떨어지는 낙조가 일품”이라면서 “구름이 낀 날은 구름이 낀 대로,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아름다움이 있다.”며 여운을 떨치지 못했다. 안면도 최고의 일몰 포인트로는 꽃지 해수욕장을 꼽지만 한적한 일몰을 감상하고 싶다면 방포해수욕장이나 두여·삼봉·안면·샛별·장삼·바람아래 해수욕장 등도 좋다. 꽃지에 비해 사람이 북적거리지 않는다. 노천탕에 몸을 담근채 낭만적인 일몰을 즐기고 싶다면 오션캐슬(041-671-7060)의 노천 선셋스파를 찾으면 된다. 꽃지 바다에 떨어지는 일몰을 감상하며 온천욕을 즐길수 있다. 유황해수 바데풀과 지압탕, 홍송탕, 폭포탕, 녹차탕 등이 마련돼 있어 피로를 풀기에 적합하다. 이 곳의 사우나는 지하 420m 암반에서 솟아난 온천수를 이용하는데 다른 온천수와 달리 바닷가라서 소금기가 있어 짭짤하다. 사우나는 어른 8000원, 어린이 5000원이며 사우나와 노천 선셋스파는 4시간에 어른 2만원, 어린이 1만 4000원이다. 대표적인 먹을거리는 싱싱한 해산물로 해수욕장 주변에 횟집들이 즐비하다. 방포해수욕장에 있는 바닷가회타운(041-673-9907)에서는 일몰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눈덮인 숲속마을에서의 하룻밤 안면도 겨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안면도 자연휴양림(www.anmyonhuyang.go.kr·041-674-5019). 아침 일찍 눈꽃이 아름답게 핀 자연휴양림을 찾았다. 주차료는 승용차 3000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눈꽃 속에 폭 파묻혀 예쁘게 빛나는 빨간 ‘피라칸사스’가 반겼다. 그 위에는 이 지역 출신 시인인 채광석(1948∼1987)의 시비 ‘기다림’이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이름모를 산새들이 떼지어 날고/계곡의 물소리 감미롭게 적셔오는/여기 이 외진 산골에서/맺힌 사연들을 새기고/구겨진 뜻을 다리면서/기다림을 익히리라…” 휴양림 속으로 들어섰다. 솔가지마다 눈꽃을 담고 서 있는 소나무 숲은 지난 2001년 제 2회 아름다운 숲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됐을 만큼 아름답다. ‘숲속의 집’으로 불리는 휴양림은 5∼19평형 통나무 집과 15∼18평형 한옥집 등 17동이 있어 한적한 겨울 휴가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가격은 통나무 집 5평형(3명)이 2만원,19평형(10명)이 7만원, 한옥(8∼9명) 7만원이다. 연인이나 가족단위 여행객들이라면 한적한 휴양림에서의 겨울 밤도 좋은 추억거리로 남을 듯싶다. 휴양림에는 15∼60분 정도 걸리는 5개의 산책로가 있으며, 휴양림 맞은 편에는 예쁜 수목원이 반긴다. 수목원에는 금강초롱과 관목, 교목 등 1012종이 전시돼 있다. 입구에서 전망대까지 산책로는 2.1㎞로 40분 정도 걸린다. 안면도 닷컴(www.anmyondo.com)에는 교통, 숙박, 음식, 주변관광 등에 대한 정보가 망라돼 있다.(041)673-4052. ■ 일몰 일출 여기서 한번쯤… ‘해는 지고, 해는 뜨고’ 을유년(2005년) 일몰은 31일 오후 5시25분 강화도를 시작으로 충청 당진(5시26분)을 거쳐 전남 해남 땅끝마을(5시33분)에서 끝을 맺는다. 개의 해인 병술년(2006년)의 일출은 1일 오전 7시26분 우리나라 최동단 독도를 시작으로 부산 태종대(7시31분)와 포항 호미곶(7시32분), 강릉 정동진(7시39분), 제주 성산 일출봉(7시36분)을 서서히 밝힌 뒤 우리나라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에서 막을 내린다. ●일몰은 여기에서 서해안에서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의 작은 포구인 왜목마을. 석문산(79m)에 오르면 해넘이와 해돋이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또 충남 서천군 마량리 마량포구에서도 31일 일몰 감상과 달집태우기행사에 이어 새해 1일에는 화려한 불꽃쇼와 함께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은 강화도. 화도면 장화리에서 동막리에 이르는 해안도로가 포인트다. 마니산(470m)에 올라 일몰을 보는 것도 좋다. 남해에서는 완도의 화흥포항에서의 일몰을 볼 수 있다. 다도해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일출은 여기에서 동해안 등 일출명소에서는 가족, 연인, 친구 등을 위한 다양한 해맞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해가 먼저 떠오른다는 포항의 호미곶에서는 새해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전야제로 화려한 불꽃놀이와 콘서트가 열린다. 강원도 강릉시의 정동진에서는 12월31일 밤부터 1월1일 아침까지 해돋이 축제가 열린다. 모래시계 회전식과 신년 카운트다운, 불꽃놀이 등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군의 통일전망대 해맞이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면서 금강산 관광 길목에 있어 통일을 기원하는 실향민들의 단골 해맞이 명소로 통일기원 범종 타종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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