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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길의원 「혼인빙자간음」 피소(조약돌)

    ○…국민당의 김동길 대표최고위원(64)이 13일 영국 옥스퍼드대학 석사출신인 이모씨(30)에 의해 혼인빙자간음혐의로 피소돼 눈길. 이씨는 이날 서울 강남경찰서에 제출한 고소장에서 『지난 91년5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할때 현지의 한 교수로부터 당시 연세대교수였던 김의원을 소개받아 교제해왔다』면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김의원집에서 92년7월부터 5개월간 동거하다 김의원이 14대선이 끝나면 결혼식을 올릴테니 나가 달라고 요구해 집을 나왔으나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지않고 있다』고 주장. 김의원측은 이에 대해 『이씨가 김교수의 강연을 듣기위해 몇번 찾아온 적은 있으나 동거나 혼인빙자간음등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박한상 전 의원을 변호사로 선임,『이씨를 명예훼손 및 무고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 이병호 안기부2차장(얼굴)

    ◎정보기관 23년 근무한 미국통 안기부에서 잔뼈가 굵은 정보 베테랑.말수가 적고 행동이 신중하지만 합리적이고 인화를 중시,주변에 따르는 후배가 많다. 주한미군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핵문제에 관한 브리핑을 전담할 정도로 식견이 깊다. 70년부터 23년간 안기부에서 근무하는 동안 해외정보업무만 전담해온 미국통. 교통고등학교 출신으로 중령으로 예편했으며 특정 인맥에 포함되지 않고 업무에 충실했다는 평. ▲서울 53세 ▲육사 19기 ▲미 조지타운대 안보학석사 ▲주미대사관 참사관 ▲안기부 국제국장 ▲주미공사
  • 소설가 이제하씨(이세기의 인물탐구:27)

    ◎“글을 그림처럼”… 절제된 언어의 마술사/「환상 리얼리즘」기법 구축,무의식세계 조파/사회 선입감·통념 거부… 쓰고싶은 글만 고집/「나그네는…」 이상문학상 수상… 시인·화가로서도 경지에 꾸부정하게 걷는 비뚤어진 걸음걸이,구겨진 청회색 점퍼에 벙거지를 눌러쓴 이제하의 모습은 카뮈의 뫼르소나 사르트르의 로캉뎅 일수도 있다.그가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무심한듯 생각에 잠긴 묵연은 그대로가 시적 회화적 분위기를 연출시킨다. 만사에 서툴고 세련된 티를 보이지 않는것도 이 예술가의 독특한 특징일 것이다.그러나 말 하기가 싫어 억지로 하는처럼 어눌하게 굴다가도 자신의 의지와 소신을 펼때는 드물게 치열함을 드러낸다.메마른듯한 그의 가슴에 정열과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때 뿐일것 같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는 단순한 소설가만은 아니다.시인이자 화가이며 화가이자 소설가다.그리고 타고난 다방면의 재능을 한 수준으로 고루 이끌어 자연스러운 자신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1회 학원문학상수상 그가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세때인 57년 여름,정식 데뷔보다도 훨씬 이전의 일이다.52년 마산동중시절 이미 「학원」지에 투고하여 그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서정시는 전국의 문학소년소녀들에게 널리 애송되고 있었다.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보라빛 노을을 가슴에/안았다고 해도 좋다/…아아 밀물처럼 온몸에 스며 흐르는/노곤한 그리움이여/로 전개되는 「청솔 그늘에 앉아」는 박목월 조지훈씨의 심사로 제1회 학원문학상 수상과 함께 60년대까지 중3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의 지난 시절의 이야기에서 또하나 빼놓을수 없는 것은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선생님께 내 이름을 불렸을때의 그 가슴의 고동을 잊지 못한다』는 감격과 홍대 조각과에 진학하여 『대학 2학년이 될때까지 학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을 들수 있다. 너무나 순진한 나머지 그는 대학이란 강의시간이나 학점에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는 장소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그의 단순함은 문학쪽에서도 언뜻언뜻 엿보인다. 「현대문학」지의 시추천 완료후 그는 다시 신문의 신춘문예와 월간지를 통해 소설데뷔 관문을 거쳤고 당시 발표한 「유원지의 거울」「흰제비의 여름」또 속물과 진정한 예술가의 대립을 그린 「유자략전」등으로 「표현수법에 있어 속도감을 느끼게 하는 뛰어난 압축미」「소설로 쓰여진 한편의 예술사회학」이란 호평속에서 문단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무한한 무의식을 자극하기 위한 그의 「초현실」이나 「잠재의식」등의 기법상의 탐구는 「쉬르계열의 그림을 느끼게하는 난해성」으로 지적되자 그는 자신의 작품을 「환상리얼리즘」으로 표현,이를 설명하기도 전에 한 평자가 작품과는 상관없는 지연(지연),학연을 거론하면서 「환상과 현실이라는 두 대칭이 어떻게 한 이름으로 공존할수 있는가」란 의문을 제기하여 그는 한순간 환멸감과 모멸에 빠지는듯 했다. 그는 후에 「신뢰할수 없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없는 리더의식과 옹졸한 콤플렉스로 지연·학연·인정주의 따위로 섹트를 조성하고 60년대식,70년대식으로 작가를 구분하려 든다」고 통탄해 마지 않았다.「환상리얼리즘」이란 한낱 조어가 아닌 기왕에 있어온 미술상의 한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를 잠시 소설에 차용한 것이지만 그는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소설은 외형적 사회의식보다 개인의 무의식세계,그들의 꿈과 악몽을 다루기 위해선 초현실주의 기법을 취할수 밖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자기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옳지않은 것,속된것,뻔뻔스러움과 적당주의는 그와는 맞지 않음을 명료하게 구분짓는다. 74년 채식주의를 테마로한 「초식」발표와 함께 현대문학상이 주어졌을 때도 그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여 문단에 파문과 충격을 던졌다.모든 문학상이 일반적으로 너무 무난히 주어지며 과열된 문협선거에 얽힌 문단정치에 혐오감을 느꼈다는게 수상거부의 이유였다. 작가의 시대적 책임이니 사명이니 하는 명제란 무엇인가. 그는 「작가가 가장 경계해야 할것은 당대가 직접 간접으로 요구하는 유형무형의 온갖 윤리감각」이라고 말한다.예의 「모든 사람들이 물을 원할때는 불을 이야기함으로써 물에 대한 감각을 없애주는 것이○수상 거부로 큰 파문 작가의 사명이며 책임일 뿐」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고해서 작가마저 부화뢰동하고 나서면 작가 본래의 본성이 와해되고 작품은 몰개성화로 타락한다는 것이다. 과연 『쓰고싶은 것을 써서 생존이 가능한 작가는 몇사람이나 되겠는가?』를 자문하고 『작가는 자신의 고독을 이야기로 팔아 연명하는 하릴없는 날품팔이』라는것과 이에따른 자책지심을 문단에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자세는 문단초기인 신촌시절에서 동숭동 팔판동 지금의 평창동에 이르기까지 시종여일 변함없는 소신을 지키는듯 하다. 신촌시절에는 그의 부인(고행자씨)이 삐에로 의상실을 경영,화곡동에 집을 산적도 있으나 부인의 사업실패로 난생처음 가져본 집을 빚잔치로 없앴고 이 때의 고생을 바탕삼아 장편 「광화사」와 중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때도 여전히 『물리적인 힘에 물리적인 힘으로맞서는 것은 문학이라고 생각지 않으며 문학은 대결로서 당장 결판을 보는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견디고 스며들고 녹이는 작업』임을 상기시킨 저 유명한 수상연설을 남기고 있다. 『문학에서의 가장 큰 고함소리는 침묵입니다.좋은 작품을 읽고 났을때의 그 멍청히 강요당하는 침묵­』 그리고 그의 소설은 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림에서의 구성 색채 주제의 형상화 과정이 그 형식만 다르게 나타날 뿐 글쓰기와 많이 닮아있음을 강조했다.이는 일찍이 시인 김춘수씨가 그의 소설 「황색강아지」를 보고 「영화적 기법을 사용한 소설」이라는 지적과도 상통한다. 군제대후 조각과를 4학년 1학기에서 그만두고 서양화과 3학년에 편입,그는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델보를 비롯,뭉크와 스텡 프란시스 베이컨에 빠져있었고 영화에 대해서는 한때 소형영화클럽을 만들만큼 영화광,요즘도 시간이 날때마다 청계천에 들러 레이저디스크를 복사해온다.비디오테이프만 8백여개.좋아하는 작품은 소련의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를 꼽고 있다.그는 한때 까마귀를 비둘기처럼 뱃심좋게 훈련시켜 돈심부름을 시켜봤으면 바란적도 있고 팔판동에 살때는 밤 10시가 넘어 총리공관이 있는 행길까지 내려가 장난감 비행기를 날리며 딸아이와 뛰어놀기도 했다. 한번은 딸아이(슬·고2)가 좋아하는 빵을 사기위해 호텔 지하에 위치한 제과점에 가려다가 호텔 직원에게 제지당한 적이 있었다.꺼부정한,초라한 행색이 사뭇 못마땅한듯 한참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그의 가방을 가리키며 「그 안에 뭐가 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그 사람의 두눈을 똑바로 마주한채 「총」이라고 대답하여 혼비백산시킨적도 있다.이 사회의 선입감,오래묵은 관념에 대한 특유의 냉소가 또하나 이제하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시나리오 작업이후 일간신문을 비롯,월간지등에 「이제하 영화칼럼」을 쓰고 있다.좋아하는 영화를 마음껏 보고 마음껏 평을 쓴다.물론 본격적인 평이라기 보다 객석에서의 느낌을 좀더 심층있고 사려깊게 쓰는 식이다. ○노래엔 기품 가득 그리고 때때로 젊은 시인 가수들과 어울려 그가 작사·작곡한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평소 대화때는 꺼들꺼들 쇠된 목소리를 내지만 노래할 때의 음성은 청량한 기품이 일품이다. 그는 이제 우리문단의 중진의 위치다.그의 말대로 그가 책임질 수 있는 예술을 성취해 가고 싶어한다.그래서인지 그에게선 느슨한 기는 찾아볼 수 없다.긴장을 푼듯 방심하고 무심한 속에서 오히려 감수성의 현을 전보다 더한층 팽팽하게 당기는 자세다. 그런중에도 친구들과 다양하게 교분을 트고 있고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간혹 그가 괴벽이나 기인기질을 지닌 것이나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반듯하다.선배나 후배들에게도 따뜻하고 정중하다.어느날 갑자기 그의 달라진 환경과 연륜과 함께 갑자기 표현하는듯한 속된 구석은 근원적으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그가 지닌 예술성과 인간미는 이 시대에선 몇사람 되지않는 「비범임에는 틀림없다.그래서 그의 예술추구는 정련되지 않은 생금에도 비유된다. 그 옛날 그가 시추천을 받을 무렵 미당이그의 시를 향해 「신시쩍 나무」라고 한것처럼 도무지 「가뭄」을 타지않을 뿐만 아니라 「정신도 「정」,「우리의 공명선에 잘 직통하는 그의 특수어법」은 바로 그림으로 그려진 소설,소설로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연보 ▲1937년 5월20일(음)경남 밀양출생.이해동씨와 김일선여사의 3남매중 독자 ▲1946년 마산으로 이주 ▲1953년 마산 고1 시「청솔그늘에 앉아」로 제1회 학원문학상 ▲1956년 마산고졸「새벗」잡지에 동화「수정구슬」당선 홍대조각과 입학 ▲1957년 「현대문학」에 시「노을」「설야」「바다」서정주추천 신태양사 「황색강아지」당선 ▲1958년 「소설계」중편 「나팔산조」 준당선 ▲1961년 군제대후 홍대조각과 4년에서 서양화가 3년으로 편입,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손(수)」입선 ▲1964년 육십년대 사화집동인(성찬경·박재삼·박회진등) ▲1966년 연작동화 「노래하는 돌」(신아일보연재) ▲1969년 동화 「느림보의 다섯가지 수수께끼」(대한일보연재) ▲〃 문제작 「유자략전」발표로 화제 ▲1973년 첫 창작집「초식」(민음사간) ▲1974년 「초식」으로 현대문학상 수상했으나 수상거부 ▲1977년 꽁트 스케치집「새」(수문서관간)「소설문예」 창간 편집위원 ▲1978년 창작집 「기차,기선,바다,하늘」(홍성사간)월간「수상」(월간 에세이 전신)주간 ▲1979년 화랑협회 계간지「미술춘추」주간 ▲1982년 첫 개인전,개전기념시집「저어둠속 등빛들이 느끼듯이」(청하간) ▲1983년 일러스트집「사라의 눈물」(우석사간) ▲1984년 서양화 10인 소품전·문학선집 「밤의 수첩」(나남간) ▲1985년 중편「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발표(이장호감독으로 영화화) ▲1986년 동화집「노래하는 돌」(샘터간)장편「광화사」(한국일보연재) ▲1987년 장편「광화사」1·2부(문학사상간)「소녀유자」(문학사상 연재) ▲1988년 장편「소녀유자」(고려원간)장편「시습의 아내」(경남매일연재)수필집「길떠나는 사람에게」(동아간)이상문학상수상전집「임금님의 귀」(문학사상간) ▲1990년 장편「진눈깨비의 결혼」(청맥간)문학선집「포말위의 식사」(강천간) ▲91­현재 창작집 「기차 기선 바다 하늘」외 창작들 재간.영화칼럼집「시네마천국」(우리문학사간) 이상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 수상.
  • 신임 주한미군사령관 럭 대장(얼굴)

    ◎ROTC수석 임관… 한국근무했던 지한파 주한미군사령관겸 유엔군사령관으로 임명된 게리 E 럭 대장은 지난 85년8월부터 86년12월까지 미보병제2사단장으로 한국에서 근무한 바 있는 「지한파」. 금년 56세의 럭 대장은 미시간주 알마태생으로 1960년 캔사스주 주립대학(토목공학학사)에서 ROTC 수석졸업생으로 임관,군문에 발을 디딘 후 플로리다주립대에서 경영학석사,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박사학위를 취득한 학구파 장성이기도 하다. 중대장으로 월남전에도 참전한 바 있는 그는 주한미군사령관으로 보임되기 전까지 지난 90년 6월부터 노스캐롤라이나 소재 제18공수군단장을 맡아왔다. 부인 디애나 프렌치여사와의 사이에 2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 예술학교의 대학승격 논쟁/황진선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종합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특별법제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올초 음악원을 개원한 예술학교측이 「학교」보다는 「대학교」라는 명칭이 더 걸맞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더욱이 앞으로 연극원 미술원 무용원 영상원 전통예술원이 개원되면 그 내용상으로도 종합대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학교」라는 이름으로는 우리사회에서 그 위상을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학부모들과 학생은 물론 학교관계자들까지 「학교」라는 이름은 무슨 직업학교처럼 들릴수 있고,예술학교의 대표도 「총장」이 아닌 「교장」이라는 점을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반면 한국음악회측은 최근 이에대해 예술학교가 종합대학으로 바뀌는 것은 전문 예술인과 영재를 양성한다는 본래의 설립취지를 포기하고 예술대학 하나를 더 증설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대학으로의 명칭변경은 예컨대 올초에 설립된 음악원을 기존의 음악대학과 동일한 교육기관으로 만들게 될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예술학교의 설립취지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되새기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아무리 학부모등의 의견이 그렇다 하더라도 예술학교의 설립취지가 일반예술대학과 차별성을 유지하는데 있었다고 본다면 역시 「대학」보다는 「학교」가 더 온당할듯 싶다.이 학교는 현재 전문 음악인을 양성한다는 취지아래 내신성적 10%,실기 90%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이는 「이론가」가 아닌 「장인」을 양성한다는 설립취지에 따른 것이다. 더욱이 4년의 과정을 거친 졸업생에게는 학사,석사학위와 같은 대우를 받는 예술사와 예술전문사 자격증을 주기때문에 대학이나 대학원졸업생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지 않을수 있다. 물론 예술학교가 일반 대학과 같이 취급되고 있는 점은 개선되어야 한다.예컨대 예술학교는 강의실이 아니라 레슨실이나 실험실습실이 시설기준이 되어야 한다.교수채용에 있어서도 교육경력이 아닌 연주경력이 우선시되는 것이 당연하다.예술학교측은 이같은 점을 들어 교육법상의 학교나 대학이 아닌 특별법상의 대학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명칭을바꾸는 것은 신중을 요한다.또 설혹 명칭을 바꾸더라도 최소한 공청회등을 열어 의견수렴을 통한 검증을 거쳐야 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예술학교측은 대학이라 해도 그이름만 바꾸는 것이지 설립취지까지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하지만 형식이 그 내용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주장도 크게 설득력은 갖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 기업 부설연 1500개 돌파/전기­전자분야 39%·기계 24%순

    기업체부설 연구소가 1천5백개를 돌파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 81년말 53개소에 불과하던 기업부설연구소는 설립인정 업무를 시작한지 만 12년4개월만인 지난 19일 현재 1천5백개를 기록했다. 이 협회로부터 1천5백번째로 인정을 받은 연구소는 대유통신(주)부설연구소. 전체 연구소를 분야별로 살펴보면 전기·전자 분야가 5백88개(39.2%)로 으뜸을 차지하고 있고 기계,금속업 3백60개(24%),화학공업 3백46개(23.1%)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이 9백54개(63.6%),대기업 5백46개(34.4%)로 나타났고 소재지별로는 서울지역 4백66개,경기지역 4백67개,인천지역 1백6개등 전체 연구소의 69.3%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또 1천5백개 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연구원은 모두 3만9천6백96명이고 이 가운데 박사가 1천4백48명(3.7%),석사가 1만1천10명(27.7%),학사가 2만7천2백38명(68.6%)이었다. 4만명을 육박하는 연구원 수는 연구소설립 초기인 81년의 2천86명에 비해 19배,10년전인 83년의 5천54명에 비해7.8배나 늘어난 것이다. 기업 규모별 연구원 현황에 있어서는 전체의 45.3%인 6백80개 연구소가 10인 미만의 연구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의 경우 9백54개 연구소중 70.5%인 6백73개가 연구원 10인 미만으로 나타났다. 특히 3백인 이상의 연구원을 확보한 선진국 수준의 연구소는 전체의 1%인 15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 토지거래허가지역 대폭 축소/새달부터/농진지역 등 15억평 제외

    ◎땅값 급등 6천만평 신규 지정 정부는 토지거래 허가제 실시지역을 대폭 축소,농업진흥지역 및 투기우려가 적은 지역 5천17㎦(약 15억1천8백만평)를 내달부터 허가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21일 건설부에 따르면 그동안 지가가 상승할 때마다 토지거래 허가구역의 지정이 남발돼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이 저해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와 땅값하락으로 투기 가능성이 적은 지역 등은 허가대상에서 풀어주기로 했다.토지거래 허가구역은 3년마다 지정여부를 다시 결정토록 돼 있다. 이번에 허가대상에서 제외되는 지역은 ▲농업진흥지역 내의 농지가 1천6백1㎦ ▲허가구역에서 신고구역으로 변경되는 곳이 강원도 횡성 등 2개시,7개군 3천4백16㎦ 등이다. 건설부는 그러나 기존의 허가구역 가운데 아직까지 투기우려가 남아있는 경기도 수원 등 55개시,43개군의 8천9백30㎦는 허가구역으로 재지정키로 했으며,최근 땅값이 급등한 1백88㎦는 새로 허가구역으로 지정키로 했다.이에 따라 전국의 토지거래 허가구역은 현 4만6천1백7㎦에서 4만1천2백71㎦로 종전보다 10.5%가 줄어들며 전 국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4%에서 41.6%로 4.8%포인트가 낮아진다. 정부는 땅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지난 85년 대덕연구단지 건설을 계기로 토지거래 허가제를 처음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허가구역을 확대해왔으며 허가구역을 대폭적으로 해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건설부는 『해제지역에 대해서는 앞으로 지가동향을 감시,지가상승등 문제가 생길 때는 다시 허가구역으로 재지정 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5월부터 토지거래 허가제가 해제 또는 신고구역으로 변경되거나 허가구역으로 신규 지정되는 곳은 다음과 같다. ▷해제◁ 군지역의 모든 농업진흥지역 신고구역변경 ▲강원 춘천시 석사·후평·교동 ▲강릉시 운정·학·입암·두산동(이상 녹지지역 제외) ▲홍천군 전역(남면 제외) ▲횡성군 전역 ▲명주군 구정·강동·사천·연곡면 ▲충남 태안군 안면읍 남면 ▲경북 금릉군 구성면 ▲청송군 청송읍,진보면(녹지지역 제외) ▲경남 통영군 산양면 ▷신규지정◁ ▲충북 괴산군 도안면 화성·노암리 ▲충남 공주군 사곡·신풍면 ▲전북 익산군 왕궁면 온수·쌍제리 ▲경남 함안군 여항면·함안면 강명리
  • 고속도 트레일러서 핫코일 추락/버스 승객 16명 사상/광양

    【광양】 16일 하오3시40분쯤 전남 광양군 봉강면 석사리 남해고속도로 하행선(회덕기점 2백59·5㎞)에서 (주)동방트레일러 소속 광주 9아 6023호 트레일러(운전사 유주양·29)에서 26t짜리 핫코일이 떨어지면서 광주고속 소속 광주 6바1200호 고속버스(운전사 김귀태·40)를 덮쳤다. 이 사고로 고속버스 운전사 김씨와 승객 엄인용씨(30·광주고속 주암 주재 사원),50세가량의 여자 1명등 3명이 숨지고 김우종씨(43·부산시 북구 삼락동)등 승객 13명이 중경상을 입고 순천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한라일보 사장 횡령혐의 조사

    【제주=김영주기자】 제주지검 부정부패사범특별수사부(명동성부장검사)는 8일 한라일보 강영석사장(55)을 직권남용 및 업무상횡령·배임등 혐의로 연행,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또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제주상공회의소의 예산집행관련장부와 강사장이 회장으로 있는 전기공사업체 청암기업의 공사수주내역이 담긴 장부일체를 압수했다. 강사장은 지난 88년 12월13일부터 제주상공회의소회장으로 있으면서 연간 6억원가량의 상의운영경비 가운데 일부를 외부인사 접대비등 개인용도로 사용하고도 이를 결산과정에서 변칙처리한 혐의를 받고있다.
  • 도예가 황종례씨(이세기의 인물탐구:23)

    ◎예술혼 담긴 「귀얄문양」 대가/탁월한 기품·여성스런 섬세함 한획으로 표출/망망대해·일렁이는 갈대숲 등 깊은맛 일품/32세 “늦깎이” 입문… 남을 의식않고 제작에만 몰두 벽제의 하늘은 아름답다.청자의 비색처럼 영롱하다.산자락에 걸친 구름은 분청사기의 문양인듯 엇비슷 비껴있다.이곳이 바로 현대도예에서의 일인자 위치를 지키는 도예가 황종례씨의 작업실이다.절간같은 고요,사람의 기척이라곤 별로 없이 작가 혼자서 흙으로 성형하고 소성한 도예에 그림을 그릴 뿐이다. 그가 벽제에 온것은 72년 초봄이다.그때까지만 해도 진흙구덩이가 푹푹 패이는 삭막한 황무지였으나 도심에서는 가마를 가질수가 없어 일찌감치 이곳 정착을 서둘렀다. 그리고 드넓은 터에 장작을 때는 흙가마와 기름을 때는 현대식 가마를 갖추었다.그로서는 가마를 갖게된 이상 더 바랄 것이 없었다.그동안 축적한 것을 이뤄나가면 그만이다. 새벽 6시면 그는 벌써 작업실로 내려온다.직접 흙을 반죽하고 까다로운 여러 공정을 거쳐 유약칠과 채식에 들어가 한 획으로 문양을 넣기 시작한다.물론 널리 알려지다시피 그의 도예에서의 특징은 귀얄문양이다.그는 이 과정에서는 거의 몰아의 경지다.느긋하고 너그러워 호들갑스러운 데가 전혀 없으나 이때만은 비호처럼 날쌘,귀신같은 솜씨를 발휘한다.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그 순간을 포착하기 힘들다.그때도 그의 얼굴표정에는 온화한 여유가 만만하다. 처음에는 힘없는 붓이 자꾸 흙에 달라붙어 기면의 흡수에 비해 둔한 붓놀림이 따르지 못하자 유화붓을 쓰거나 강도가 센 페인트 붓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귀얄만으로 능란하게 그림을 구사하게 되었다. 귀얄문의 특징은 그릇의 표면이나 내면에 속도감있게 붓자국을 내며 돌리지않으면 습기있는 기면이 당장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단숨에 그릴 수 있는 기량과 기술이 필요하다.그릇의 한면을 한동안 응시하다가 미리 구상해두었던 그림을 일순간에 성립하는 식이다. ○분청사기에서 힌트 옥색하늘이 아득히 푸르르고 망양한 바다와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숲,희미한 새벽 서광과 붉게 타는 낙조등 도예기가 보여주는 회화세계는 화선지에서와는 다른 그나름대로의 참신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다.안료의 농도에 따라 얼마든지 절묘한 표현을 자유자재롭게 만들어 나갈수 있는 것도 한 장점이다. 물론 이런 필력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그는 60년대 초부터 청전 이상범에게 붓놀림과 먹의 농담이용법,옥산 김옥진에게 사군자,오당 안동숙에게 풀 나무 산과 바위를 사사하면서 수년간 자기표현을 위한 기초적 탐색을 감행해 왔다. 그의 귀얄무늬는 물론 분청사기에서 쓴 귀얄문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고려상감(상감)같은 상감을 이용한 화장법을 거쳐 분청사기의 귀얄무늬를 추상적 회화로 모색해 나갔다. 그 시절의 그런 그릇에 왜 귀얄 붓자국을 썼는가,시간틈틈이 골동품가게나 박물관을 기웃거리며 관계서적과 도록을 빌려다가 밤을 지새워 연구하기도 했다. 발이나 호·기에다 투각수법의 무늬로 부분장식을 표현하거나 단일색인 소문백자의 경우엔 부드럽게 흐르는 몸체에서 무한한 품위가 배어나왔다. 더구나 화사기에서 쓰이던 회청·회회청의 코발트색깔은 지금도 창조하기 힘든 기발한 색조임에 스스로 탄복해 마지 않았다.꽃잎흩날리는 비화문이며 풀잎 나뭇잎 얼킨 초엽문의 활달한 율동감,살얼음이 깨어진 듯한 빙렬등은 현대도예에서도 시도해 봄직한 분방한 방법임에 틀림 없었다. 황종례의 그릇의 형태는 비교적 큼직하고 대담한 편이다.쑥쑥 뻗은듯 휘어진 곡선을 지니면서 탁발한 기품과 여성적인 섬세함을 담고 있다.너무 작아 조잡하거나 너무 우람하여 넘치지 않는다.야무진 티나 인위적인 기교는 없다.꾸미지않은 순결함속에 오랜 전통을 바탕에 둔 든든한 경륜의 실력이 이를 보는 사람들에게 안심과 환희를 안겨준다. 도예의 기물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들을 파악하자 이번엔 좀더 새로운 세계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시도에 앞장 섰다.무한한 가능성에 비해 시간이 짧기만 했다. 몇사람 되지않는 창작도예에서 「독자성」을 두루 인정받고 있으면서도 그는 『도예의 길은 멀고 그리고 어렵다』고 말한다. ○성취가 일생 과제로 고전하여 어렵게 이룬것만큼 높이 평가되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도무지 그런 울결(울결)과 방종에서 벗어나 흔연한 자세다. 남에게 관심을 갖거나 남을 의식하지도 않는다.그런 자자분한 세상사에 눈돌릴 겨를이 없다.예술가의 자세란 작품에 밀착하여 새 세계에 도전하는 일,그리고 성취만이 평생의 과제이며 목적이다. 그는 인건비등으로 다투는등 사람들에게 시달리기도 싫어 인부들과 손을 끊고 몇년전부터는 흙만드는 일을 직접하고 있다. 12번째 개인전을 연후 수많은 해외전시에 참가,틈틈이 86년 13번째의 개인전을 앞두고 준비해온 1천여점의 작품을 하루 아침에 망친 사건이 있었다. 어느때보다 실험작품이 많아 스스로 기대에 부풀었던 그는 눈앞이 캄캄했으나 「허허!」 한바탕 웃는 것으로 이를 단념해 버렸다.이미 끝난것에 집착하는 것은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았다. 원인은 간단하다.필요한 양을 정확하게 혼합하는 과정에서 인부들이 물과 흙의 분량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이를 지켜보지못한 자신의 불찰로 돌렸다.광주나 이천에 나가면 만들어진 흙을 얼마든지 사다 쓸수 있는것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직접만들어 쓰려다가 생긴 이 낭패가 그로서는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 그후론 아직 결혼전인 차남(영학씨·조각·상명여대 출강)이 어머니를 돕고 있다.엎친데 덮친격으로 같은 시기에 그의 도예일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주던 부군 이진우박사(전 영동피부과 제일의원)가 몸져 눕는 바람에 한동안 간호에 매달리느라 이럭저럭 작업을 미룰수 밖에 없었다. 황종례씨는 고려청자의 재현이라는 전통도예를 가업으로 가진 황인춘씨를 부친으로 역시 원로 도예가인 황종구씨(전 이대교수)가 그의 오빠다. 어릴때 영등포 대방동에 있던 그의집 과수원속에 부친의 가마가 있었고 그는 그릇을 빚고 건조시키고 조각하고 백토칠에다 다시 이를 벗겨내고 유약등 까다로운 작업을 지켜보는 유년시절에도 하나의 사기나 파와(파와) 한쪽을 어루만지면서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옛 고려왕조·이조왕조의 생활이 따뜻하게 전해졌다고 기억한다. 그후 국민학교 1학년때 조선총독부에 의해 가족이 강제로 개성에 이주,일인들이 선죽교부근에 마련해준 연구소에 살면서 호수돈여고에 다녔다. 미대진학을 꿈꾸며 그림을 그리던 그에게 스승이던 유달영선생의 가르침은 「버려진 제것에 대해 눈뜨라」는 것이었고 특히 졸업을 앞두고 「청년이어 일어나라」는 교훈은 그에게 「나도 무엇인가 나의 일을 하겠다」는 의욕을 심어주었다. 집안형편이 극도로 어려웠으나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에 있는 이대미술학부에 진학,어릴때 손바닥 감촉으로 느꼈던 사기의 온기를 못잊어 대학졸업 9년만인 32살때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도예를 전공했다.그때도 부군이 그의 협력자가 되어주었다. 대학원 졸업전인 61년에 첫 개인전,청자의 태토에 백토로 분장하고 그곳에 단숨에 귀얄문을 그려내는데 매력을 느낀것은 68년 6번째 개인전때부터다. ○“독보적 존재” 평가 「청·백자의 선이 아무리 탁발하다 해도 이를 단순히 재현하는데 그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조작적이고 기교적이 아닌,이른바 이조자기에서 볼수 있는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멋』을 담아 새롭게 선보였다. 실내장식품에 지나지 않던 도예를 널리 일상생활에 참여시킨일종의 도예의 활성화 시도였다. 『몇 안되는 창작도예를 만드는 도예가중에서 독자적인 색유사용으로 새 경지를 개척해 왔다는 점에서 황종례는 현대도예에서 단연 독보적 존재』라는게 미술평론가 박래경씨의 평이다.1천여점 작품실패로 9년간 미뤘던 13번째 개인전은 오는 13일 신세계 미술관에서 열리게 된다. 흰색으로 시작됐던 그의 귀얄문은 더욱 다양한 아름다운 색깔로 변모되었고 매끄러운 표면은 입체감과 함께 품위있는 추상회화로 조형효과를 이뤄내고 있다. 청자빛 하늘과 파도치는 바람,흩날리는 꽃잎등 조선시대의 사람의 감정과 미의식을 담은 그의 현대적도예 세계는 그의 성격처럼 온유하고 따뜻하여 번거로움과 무질서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인정과 사색,그리고 은은한 기쁨을 넉넉하게 뿌려주는 안식의 경지다. □연보 ▲1927.12.9 서울출생 개성호수돈녀고 26회 졸업 ▲1945.∼1950.5 이화여자대학교 예림원 미술학부 서양화과(학사) ▲1959.9∼1962.2 이화녀자대학교 대학원(도예전공·석사) ▲1963∼19 81 이화녀자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출강 ▲1965.3∼1966.2 상명녀자사범대학 미술교육과 조교수 ▲1975.3∼현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예미술학과 교수 ▲1961.12 도예개인전(서울중앙공보관) ▲1963.10 도예개인전(〃) ▲1964.11 도예개인전(신문회관) ▲1966.5 도예개인전(신문회관) ▲1967.8 도예개인전(미팔군전시장) ▲1968.8 도예개인전(일본,경도 조화랑) ▲1971.9 도예개인전(신세계백화점 전시장) ▲1975.4 도예개인전(신세계미술관) ▲1978.9 도예개인전(신세계미술관) ▲1981.1.20 도예개인전(미국 뉴욕) ▲1982.1.29 도예개인전(미국 로스앤젤레스) ▲1984.4.24∼4.29 도예개인전(신세계미술관) ▲1961∼1983 대한민국 미술전 출품 ▲1968.7∼1981 대한산업디자인전 초대작가(디자인 포장센터)심사위원 ▲1973 한국현대도예작가전 초대전(신세계미술관) ▲1975 전국공예가 초대전(미술회관)문예진흥원 주최 ▲1976 여유도예전 초대전(신세계미술관) ▲1977 역대 국전수상작품전(국립현대미술관) ▲1979 한·중·일 국제도예전 초대출품(일본명고옥) ▲1979 한국도예가회 창립전(신세계 미술관) ▲1979 한국미술전람회(뉴질랜드) ▲1980.9.27 한국도예가전 회원전 2회(신세계미술관) ▲1980 국전 초대출품(국립현대미술관) ▲1980.7.10∼7.16 도예2인전 일본 매일신문사 주최(일본 동경도 대환백화점) ▲1981 한국도예가회 회원전 3회(신세계미술관) ▲1982.3.6 도예2인전(일본 구주 복강시) ▲1983 도예2인전(일본 대판시) ▲1984.3.15∼3.20 도림전 출품 ▲1981 서울신문사 도예공모전 초대출품 ▲1981∼1990 현대도예전 일본 순회전(10연간) ▲1982 제1회 대한민국미술제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82 서울신문사도예공모전 초대출품·심사위원,한미수교 100주년 기념출품(미국) ▲1982 한국현대도예가 회원전 9회(신세계미술관) ▲1983 한독수교 100주년기념출품(독일) ▲1983 서울신문사 도예공모전 초대출품 ▲1968.8 국제미술교수협회 주최 도예세미나(일본,경도) ▲1975.5 한국도예특강 초대(일본 요업시험소) ▲1980.2 자유중국 교육시찰 ▲1983.8.2∼8.20 한일교류전 출품및참가(일본 구주) 대한산업미술가협회 주최 ▲1983.12 MBC초대전 출품(MBC별관 전시관) ▲1986.9 한국현대도예가회 일본 전시 ▲1987.6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출품 ▲1987.8 대한산업미술가협회 출품및 참가(일본 구주) ▲1987.9 서울신문사주최 도예공모전 심사및 초대출품 ▲1989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및 운영위원장 ▲1988 대한산업미술가 협회 이사장 역임 ▲1990 서울현대도예비엔날례 초대출품 ▲1991 대한민국 미술협회 부이사장 ▲1992 서울 공예대전 출품 ▲1993 벨기에 앤트워프 박물관 주최 ▲1993.3.26 한국도예문화 특별전 출품 ▷작 품 집◁ 황종례 도예작품집(미진사간) ▷수상◁ 국무총리상·국전 초대작가상·대한민국 문화예술상 ▷현재◁ 경희대 수원캠퍼스 출강·대한미술산업가협회 회원·한국도자기문화진흥협회이사
  • 앞으로 124일(93대전엑스포 소식)

    ◎국제로봇경연대회 10월5일부터/엑스포기간 일 관광객 30만명 예상/백14명 참가… 기술전문가회의 열려 ○권리·의무 등 협의 ◎…조직위는 지난달 30∼31일 대전박람회장 국제회의장에서 59개 참가신청국과 5개 국제기구관계자등 1백14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전엑스포 제2차 참가국 기술전문가회의를 개최했다. 덴마크에서 올리 필립슨,벨기에에서 롤랜드 길렛,일본에서 히로시 쓰야마씨등이 각각 정부대표로 참석해 엑스포 참가국들의 전시물 설치에 관한 사항을 비롯,조직위와 참가국간의 권리·의무등에 관한 절차를 협의했다. 현재까지 대전엑스포에 참가를 통보해온 나라는 미국·영국·러시아등 1백13개국이며 국제기구는 유엔과 유엔산하단체등 23개 이다. ○미·일 등 12팀 겨뤄 ◎…엑스포 93 국제마이크로 로봇 경연대회가 미국·일본등 12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오는 10월 5일부터 7일까지 박람회장에서 열린다. 이번 로봇 경연대회는 서울대가 지난 83년부터 해마다 개최해온 국내대회를 엑스포에 맞춰 국제대회로 격상시켜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외국팀과 국내팀들이 자웅을 겨루게 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88년 미국 뉴올리언스와 LA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학생부문 1위,전체 3위를 차지한 것이 가장 좋은 성적이다. ○설명회 순회 개최 ◎…조직위는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6일까지 한일 항공편이 개설된 일본 구마모토·히로시마·나고야등 6개도시를 순회하며 여행업계와 언론계를 대상으로 엑스포 93 관광설명회를 개최중이다. 조직위가 예상하고 있는 50만명의 해외관광객중 일본인 관광객은 25만∼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지난해 10월에는 도쿄·오사카·후쿠오카등 일본의 주요도시에서 같은 취지의 설명회를 열었었다. ○컴퓨터게임 선정 ◎…조직위는 제2차 엑스포 컴퓨터게임 최우수작으로 이선우씨(23·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 석사과정)의 「EXPO TOWN」을 선정했다. 총 64개 작품이 응모한 이번 게임에서 우수상은 정찬일씨(26·고려대 전산학과 3년)의 「꿈돌이 화이팅」,장려상은 박찬용씨(23·광운대 컴퓨터공학과 4년)의 「엑스포에서 생긴일」·주경민군(19·한남대 수학과2년)의 「꿈돌이 모험」이 각각 뽑혔다.
  • 주병덕 경찰위 상임위원(차관급 4명의 얼굴)

    ◎순경서 도백까지 올라 지난 60년 순경으로 경찰에 투신해 경찰대학장과 충북도지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경찰투신후 야간대학을 다니며 석사학위를 받은 학구파. 지난 90년9월 단양·매포 수해시 농성 주민들이 순시하던 주지사를 감금,「인재에 의한 수몰」임을 각서로 쓰라고 요구하자 이를 즉각 써주는등 곧은 면을 보인 일화로 유명. 부인 김종군씨(53)와의 사이에 2남1녀.
  • 작년 기업순익 4% 줄었다/대우경제연,4백여 상장사 주총결산

    ◎제조업 매출증가율 11%로 둔화/석유정제·고무·은행 “짭짤한 재미” 지난해 기업들은 수출과 내수부진으로 실적이 91년보다도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순이익은 91년보다도 줄어드는 뒷걸음을 했으며,제조업과 중소기업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대우경제연구소가 13일 5백34개 12월결산 상장사중 주총을 끝내거나 실적이 확인된 4백7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것을 발표한 것에 따르면 지난해의 매출액은 91년보다 15.2%가 늘어난 1백63조4천2백17억원이었다.91년의 매출액증가율은 22·6%였다.제조업의 매출액증가율은 11.5%로 91년의 16.9%보다 5.4%포인트,비제조업은 지난해의 매출액증가율이 19.2%로 91년의 29.1%보다 9.9%포인트나 낮아졌다. 제조업중 대기업의 매출액증가율은 12%로 91년보다 5.4%포인트가 낮아졌으며,중소기업은 9.1%로 91년보다 5.7%포인트 떨어졌다. 지난해 기업의 순이익은 91년보다도 4.4%가 줄어든 3조1천7백20억원이었다.제조업은 순이익이 17%나 줄어드는 부진을 보였으며 비제조업은 2.7%가 늘었으나 91년의 순이익증가율인 28.7%보다는 무려 26%포인트나 줄었다.지난해 제조업중 대기업의 순이익증가율은 18.2%에 이르렀으나 중소기업은 오히려 13.8%가 줄어 중소기업들이 지난해 수출과 내수부진 금융비용부담등으로 특히 어려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된 것은 국내외의 경기부진이 계속되어 수출과 내수가 위축된데다 정부의 총수요관리를 통한 경제안정화대책,건설경기의 진정책때문으로 풀이됐다.또 금융기관을 제외한 기업들의 금융비용부담률이 지난해 5.4%로 91년보다 0.5%포인트가 높아진 것도 기업들의 수지가 악화된 중요한 원인이었다.지난해 하반기부터 금리의 하향안정세가 이루어졌지만 기업들에게는 효과가 아직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공인회계사들이 부실감사에 대한 책임에 따라 예년보다 감사를 다소 까다롭게 한 것도 기업들의 실적이 좋지 않게 나오게 된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업종별로는 석유정제업이 유가인상에 따라 매출액이 25.8%가 늘어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으며 조립금속 고무 플라스틱도 20%가넘는 매출액증가율을 올렸다.순이익증가율은 사무기기 의복 고무 플라스틱이 좋은 편이었다. 지난해 기업들의 매출액순위는 삼성물산이 12조5백57억원으로 8년째 1위를 지켰으며 현대종합상사와 대우도 각각 91년과 같은 2,3위였다.한국전력과 포항종합제철은 서로 자리가 바뀌어 각각 4,5위였으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도 각각 순위가 뒤바뀌었다. 순이익은 한국전력이 7천6백36억원으로 지난 89년 상장된후 4년째 1위를 독주했으며 포항종합제철은 91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일반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과는 달리 은행들은 여젼히 가장 짭짤한 돈장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제일은행이 순이익 3위를 한 것을 비롯,6개 은행이 순이익 10대 기업에 들어갔다. 계열사로부터 석회석사업부문을 인수한 대성탄좌개발이 매출액증가율이 2백69%로 매출액증가율 부문 1위였으며 동방아그로는 대전에 있던 공장을 처분하고 부여로 옮기면서 부동산매각에 따른 이익이 생겨 순이익증가율이 1천58%에 이르러 순이익증가율 1위에 올랐다.
  • 한국야금(앞서가는 기업)

    ◎산학협동으로 기술개발에 전력/총매출액의 6%이상 개발비에 투입/초경합금 각종 주요공구 속속 국산화/매출 연 17% 신장… 보상제도 시행으로 생산성도 크게 향상 기업은 소비자가 있어야 존재한다.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해서 최신의 제품,최고의 품질,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존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궁극적 목표인 이윤추구도 가능하다. 초경합금으로 공구를 만드는 한국야금(대표 임상진·41)은 이를 위해 일찍이 기술개발에 승부를 걸었다.이 분야는 기술개발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다양해 중소기업이 세계 일류 메이커들과 경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반면 우리나라 시장의 50%는 외국산이 잠식하고 있어 기술개발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신제품 개발 및 품질향상을 위해 이 회사는 지난 87년 「한국야금 생산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일본 및 구미 선진국에 비해 30∼40년 가량 기술이 뒤져 모방의 단계를 크게 벗어날 수 없는 시점에서 출발했지만 전 직원이 똘똘 뭉쳐 기술자립도를 크게 높여 나갔다. 제품개발실과 소재개발실로 나뉜 연구소는 충북 청주시 송정동 공장에 함께 있다.연구인력은 석사 5명과 학사 15명등 모두 52명이다.전체 종업원 3백80명의 14%가 연구원인 셈이다.지난해에는 총매출액 1백74억원의 6.8%인 12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썼고 올해에는 예상매출액 2백17억원의 6.2%인 14억원을 쓸 계획이다.총매출액의 5%를 밑도는 대기업보다 더 많은 연구비를 쓰는 셈이다. 초창기에는 우수인력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바람에 어려움이 많았다.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산학 공동연구였다.경기중·고와 서울대 응용물리학과를 나온 임사장이 이를 진두지휘했다. 서울대 신소재공동연구소에 실험장비를 기증하고 회사 직원들을 상주시켜 기초연구부터 다지기 시작했다.초경 합금공구의 개발은 크게 소재와 제품으로 나눌 수 있는데 특히 신소재의 개발이 우수한 제품의 관건으로 보고 대학의 기초기술을 활용했다. 연구실적이 우수한 사원은 대학원에 진학시켜 자질을 높였고 개인에게는 별도의 인센티브도 주고 있다.지금도 석사과정을 밟는 4명의 종업원에게 등록금을 전액 대주고 있다. 공을들인 보람이 있어 연구소는 주요 제품의 국산화에 속속 성공했다.88년 절삭용 코팅공구 개발을 시발로 모두 15개의 중요 제품을 개발했다.91년에는 피복 경질합금 절삭공구를 비롯한 4가지 개발품의 특허출원을 마쳤다.전체 매출액 가운데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개발품의 비율이 70%나 된다.한국야금의 제품은 이제 선진국 제품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술개발과 더불어 생산성 향상에도 각별한 신경을 쓴다.PIC로 불리는 보상제도는 생산성 향상분에 대한 성과를 종업원들에게 나눠줘 의욕을 북돋우는 방식이다.부문별 집단 포상제도라 할 수 있는 이 제도는 매달 한차례씩 전 부서를 대상으로 실시한다. 납기·불량률·생산성등의 요소를 평가의 중요기준으로 삼아 각 부서의 생산성을 평가한다.1위에서 5위까지의 부서에 대해 1인당 5천∼1만5천원의 포상금을 준다.처음에는 자기 부서만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에 다소의 부작용도 있었으나 지금은 회사 전체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자세를 지니게 돼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연구소설립과 함께 이 제도를 도입한 뒤 회사도 부쩍 성장했다.그동안 연 평균 매출신장률은 17%를 넘어섰다.1인당 생산성 역시 14.6%나 높아졌는데 특히 시간당 생산성은 18.3%가 상승했다.산업재해도 89년 1.7%에서 지난해에는 0.3%로 감소했고 불량률 또한 1.4%에서 1.1%로 줄어들었다. 우수 업체로 선정돼 각종 굵직굵직한 상도 받았다.지난 90년 생산성향상 기업에 주어지는 가장 권위있는 상인 「생산성대상」을 비롯,생산성향상 우수기업,보람의 일터 우수상등 무려 13개나 받았다. 올해로 27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야금에 지난 75년 과장으로 입사,81년 아버지로부터 경영책임을 물려받은 임사장은 『앞으로 자동화와 무인화등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가속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김동진 신임 육참총장(얼굴)

    ◎육사 수석졸업 민주적 덕장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윤성민장관의 비서실장과 이상훈장관때 국방부정책실장을 역임한 국방정책 입안자.뛰어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미조지타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한미연례안보회의(SCM)때마다 두각을 나타냈다. 매사를 합리적으로 처리하면서 참모들의 의견과 판단을 존중하는 민주적 덕장이며 미국방부와 육군 주한미군관계자들과 유대가 깊다.부인 정순열씨와의 사이에 1남2녀. ▲서울출신 55세 ▲경복고 ▲육사17기 ▲사단장 ▲군단장 ▲국방부정책실장 ▲연합사 부사령관종
  • 석·박사과정 과기원확정/“시대에 맞는 과기정책 절실”

    ◎설문응답자 90%가 “추진정책과 현실상황 차이”/입안전문가·예산 부족이 큰 원인/정부별평가선 “4공때 가장 활발”/“새 정부는 연구투자 지속적 강화해야” 의견 높아 우리나라 과학교육의 메카로 일컬어지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 석·박사 과정 학생들의 36.4%가 새정부가 역점을 두어야 할 과학기술정책을 묻는 질문에 「연구에 대한 투자의 지속적 강화」를 꼽았고 이공계 대학의 질 향상(21.2%),산학연 협조체제의 강화(14.7%),정부출연 연구소의 활성화(13.0%)등의 순으로 지적하고 있다. 또 현재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가 갖고 있는 어려움들 가운데 특히 심각하게 생각되는 것을 골라 달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열악한 교육및 연구환경」이 24.3%로 가장 많았고 「빈약한 기초과학」(20.3%),「선진국에의 종속」(15.6%),「비정상적인 산학협력체제」(14.1%),「편중된 투자」(10.1%)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사실은 과기원 학보인 과기원신문이 창간5주년을 맞아 이 학교 기계공학부와 자연과학부,전기및 전자 전산학부의 석·박사 과정 학생 92명을 표본집단으로 삼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밝혀졌다. 이 설문조사는 과기원이 세워진 이후 역대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묻는것으로 이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은 「현재까지의 과학기술 관련 정책들이 시대적 상황에 맞는 것이었나」라는 질문에 90.2%인 83명이 「아니오」라고 답했고 8명(8.7%)이 「잘 모르겠음」이라고 애매한 입장을 보였으며 1명만이 「예」라고 답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를 이끌어 나갈 과기원생들 대부분이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과학기술정책의 실패 원인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정책 입안자의 부족」이 20.9%로 가장 많았고 「과학기술 예산의 부족」과 「정책의 일관성 결여」가 각각 18.5%,「단기간의 성과에만 집착」이 18.1%,「관료적인 제약들」이 10.5%,「과학기술의 상대적 경시」와 「외국에의 의존」이 5.8%와 5.4%를 차지했으며 기타가 2.9%로 나타났다. 또 역대 정부 가운데 과학기술에 적극적이고 많은 관심을 보인 정부를 꼽아 달라는 물음에는 「제4공화국(10월유신­박정희대통령 서거)」이 76.1%로 수위를 차지한 반면 「제5공화국」은 8.7%,「제6공화국」은 7.6%로 나타나 5·6공화국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깊은 불신을 보였다. 또 4,5,6공화국을 과학기술에 적극적이었던 순서대로 적어달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62.4%가 4공화국­5공화국­6공화국 순으로 답해 시간이 갈수록 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의지가 약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과기원신문은 이번 설문조사에 응답한 학생들의 표본 분포는 석사과정 1년차및 2년차 각각 19명(41.3%)과 박사과정 1년차에서 5년차까지 54명(58.7%)으로 박사과정에 비중을 두었다고 밝혔다.
  • 「심마니의 허튼소리」펴낸 교육부 교원연수과장 장관주씨(화제의인물)

    ◎고교졸업 30여년만에 석사학위/면서기때부터 발자취 진솔하게 엮어/방송고 등선 졸업생들에 선물로 나눠줘 『가슴에 묻어두고 싶었던 이야기가 시련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붇돋워 주었다니 고맙기만 합니다』 방송통신고교나 일부 실업계 고교에서 올 졸업생들에게 앞다투어 졸업선물로 나누어 준 자서전적 수상집 「심마니의 허튼소리」를 펴낸 교육부 교직국 장관주 교원연수과장(54)은 『「지천명」의 나이라는 50을 넘기며 살아온 삶의 모습들을 되새김질 해보기 위해 서툰솜씨로 써본 책인데…』며 말끝을 흐렸다. 「심마니의 허튼 소리」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김과장이 갖가지 어려움을 딛고 중앙부처 서기관으로 승진하고 행정학 석사 학위를 따낸 학자로 탈바꿈하기 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적어논 수상집이다. 그래선지 가정형편이 어려워 제때 정규 고교과정을 밟지못했다가 뒤늦게 통신교육을 통해 고교과정을 이수하고 올해 졸업생을 배출한 일부 방송통신고교와 실업계 고교에서 졸업 선물로 각광을 받았다. 『할아버지로부터 농사일을 배우며 땅의 가르침을 배웠다』는 김과장은 「출세한 촌놈」이면서도 녹조 근정훈장을 비롯,국무총리·장관상을 두루두루 수상할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공무원이기도 하다. 『땅이 정직과 성실이라는 삶의 마음가짐을 가르쳐 주었다면 무한히 뻗어있는 길은 소망을 갖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성실과 정직으로 일관돼온 김과장의 삶의 자세는 면서기로 시작한 공직생활에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충남 교육청(당시 도 교육위원회)을 거쳐 교육부(당시 문교부)에 간부직원으로 김과장을 변신시켜 갔다. 『30리 길을 걸으며 다짐했던 향학열만을 나이가 들어도 잠재워지지 않았습니다.야간대학에라도 진학해볼까 생각했는데 혹시라도 직장생활이 소홀해질까봐 생각끝에 방송통신대학을 택했습니다』 고교를 졸업한이후 32년만인 83년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한 김과장은 입학한지 7년만에 꿈에도 그리던 학사모를 썼고 대학원에 진학해 92년엔 행정학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대학시절은 물론 대학원 공부에서도 김과장의 「정직과성실」이라는 생활철학에는 한치 어긋남이 없어 그의 석사학위 논문은 건국대학교 그해 대학원 졸업논문가운데 최우수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요즘세상에도 2남1녀의 가족들은 물론 며느리까지 꿰맨 양말을 신고 다닐만큼 아버지를 이해해주는 가족들이 고맙다』는 김과장은 『시련에 처한 청소년들에게 「그래도 세상은 살만 곳이다」라는 얘기를 들려 주고 싶다』며 말을 맺었다.
  • 서울대 졸업식/5천9백7명 배출

    서울대는 26일 하오2시 교내 대운동장에서 김종운총장과 졸업생,학부모 등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47회 졸업식을 가졌다.이날 졸업식에서 학사 3천7백65명,석사 1천7백36명,박사 4백6명 등 모두 5천9백7명이 학위를 받았다. 김총장은 이날 졸업식사에서 『졸업생들은 편견과 오만을 가지지 않은 진정한 자유인,확고한 신념을 가진 도덕인이 돼 줄것』을 당부했다.
  • 허신행 농림수산/UR대응 논리 정연… 취미 테니스

    서울대와 미 일리노이대(석사)미네소타대(박사)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하고 줄곧 농업관련 연구소에서만 일해왔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이며 평소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우리 농업의 발전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소신을 펴왔다. 취미는 테니스.부인 유현자씨(48)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 신임 원자력안전기술원장 임용규씨(인터뷰)

    ◎“원자력시설 안전유지에 최선”/방사능재해 예방·국민신뢰 얻는데 주력 『국민을 대신해 원자력발전소나 방사성물질 취급시설등 원자력에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감시와 감독등을 통해 안전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제2대총장으로 취임한 임용규원장(60)은 『올해를 원자력안정문화를 창조하고 증진시키는 원년이 되도록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은 지난90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따른 방사선 재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정과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설립됐다. 즉 원자력발전소등의 시설등의 설계,건설,운영에 대한 안전심사및 검사뿐만아니라 원자력 시설주변을 비롯,전국토의 환경방사능을 측정,분석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현재 원자력발전소를 빼고도 방사선동위원소등을 사용하는 병원,산업체,제약회사등 8백여곳이 안전검사대상이지요.물론 이곳에 종사하는 3만여명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기술원의 박사63명,석사1백60명등 2백50여명의 인력으로는 아직 원자력시설이외의 곳에는제대로 손을 대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다. 『원자력은 사회성을 띠기때문에 국민들의 원자력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요.따라서 기술원은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시키기 위해 안전규제기술개발과 연구원들이 전문지식과 경험을 쌓게 하고 있습니다』 이와함께 미국,일본,중국등 여러나라와 원자력안전에 대한 협력관계를 맺는 한편 세계원자력기구(IAEA) 안전문화평가단의 세미나와 심포지엄등을 개최해 원자력안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일 계획이다. 기술원은 지금까지 가동중인 월성원자력발전소1호기등 9기의 안전심사를 실시했으며 영광3,4호와 월성2호기에 대한 건설을 허가했다. 임원장는 서울대를 졸업,지난 71년서울대에서 원자력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뒤 국립과학관장,과기처 진흥국장,한국과학기술원 교수등을 거쳤으며 현재 대한방사선방어학회장직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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