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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李昌華 풍납사회복지관장

    송파구 풍납종합사회복지관장 李昌華씨(42)는 시각장애인이다.지난 97년부터 복지관 운영을 맡아 장애인의 권익보호에 힘써오고 있다. 그는 장애인이 일반인처럼 생활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정신질환자들의 사회복귀훈련.정신질환자들이 일반인과 함께,일반인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다.현재 30명이 참여하고 있고 이가운데 4명은 이미 분식센터를 냈다. 李관장은 지난 96년부터 장애인조기교육실도 운영하는 한편 지난해부터는어린이시설과 양로원이 함께 들어선 풍납마을복지센터까지 관리하고 있다.그가 이같은 일을 하게 된데는 金聖順 송파구청장의 배려가 컸다.서울시 보건사회국장 시절 金구청장은 그와 자주 접하면서 30대때 장애인복지관을 운영한 경험과 능력을 높게 샀다. 어릴 때부터 약시였던 李관장은 일반학교와 맹인학교를 오가며 고교까지 마쳤다.그뒤 책 내용을 녹음,같은 처지의 시각장애인에게 나눠주기도 했고 김치공장 운영과 건축일 등 안해본 일이 별로 없다.실패도 했지만 성공해서 돈도 좀 벌었다.그동안 번 돈 6억원을 털어 ‘자산재단’이란 복지법인도 세웠다.그러나 그는 지금의 일을 자선이 아니라 사업이라고 평가한다. 32살때 강남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석사과정을 마쳤고 요즘은 공주대 특수교육학과에 출강도 한다. 그는 일반컴퓨터에 음성장치를 달아 컴퓨터도 이용한다.PC통신에 ‘전자도서관’을 개설,장애인들끼리 정보도 교환한다.더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도록 전국적인 네트워크망의 ‘전자도서관’을 만들어줄 것을 정부에 요청,4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았으나 국회에서 삭감됐다며 아쉬워했다. 李관장은 “장애인도 정보화사회의 혜택을 받아야 하며 장애인이 정상인들과 함께 생활하려면 정책을 맡은 분들의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 경제프리즘-‘토종’ 전문가를 길러라

    전문가가 우대받아야 할 이유는 간단하다.능력때문이다.사회구조가 세분화하고 다양해짐에 따라 전문영역의 골은 깊게 패이고 다양해지게 마련이다.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던 시대는 지났다.수십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사장이나온 것도 특정분야에서의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요즘 여의도 금융가는 ‘외부 전문가’의 전성시대다.외국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땄거나 변호사 회계사 등의 자격증이 있으면 ‘주가’는 더 올라간다.최소한 ‘외국물’을 먹어야 명함을 내민다.금융감독원이 지난 5일특채한 전문인력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내부’에서 실력을 다진 국산 샐러리맨들은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는다.업무능력은 뒤지지 않지만 학위나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자격심사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외부 전문가들이 각고의 노력끝에 학업을 이루고 각종 자격증을 딴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간판’만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높은 직위에다고액의 연봉까지 제공받아서는 직장내위화감만 조성할 뿐이다. 전문가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전문가가 외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내부에서도 전문가는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 수십억원대의 돈으로 ‘철새’가 될 지 모를 외부 전문가를 초빙하기 보다수억원대로 ‘텃새’가 될 가능성이 높은 내부 전문가를 길러내는 게 낫다.내부인을 위한 교육과 연수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꼭 필요한 곳에는외부 전문가를 적극 ‘수혈’하되 내부인에게도 최소한의 기회는 줘야 한다.외부전문가만이 능사가 아니다.白汶一
  • 약물복용선수 한명 없는 건전대회로 기록

    ▒강원동계아시안게임은 약물복용선수가 전혀 없는 건전한 대회로 마감될 예정이다. 조직위원회가 4일까지 102명의 선수의 도핑테스트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의뢰한 결과 양성반응자가 단 한명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내 2관왕이 된 최재봉은 경기가 끝난 뒤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며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답례.모두 6개조로 나눠 벌어진 이 종목 4번째 조에서 속했던 최재봉은 마지막 6번째조 레이스가 끝나면서 금메달이 확정되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싱글벙글 웃는등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날 춘천국제빙상장에는 700∼800여명의 관중이 모여들었지만 일부 관중들은 선수보호를 위해 설치한 펜스까지 내려오는가 하면 경기장 출입구 계단에서 경기를 관람,통행을 방해하기도.조직위 관계자는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관중들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며 유종의 미를 아쉬워했다.▒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은메달을 딴 제갈성렬(29·삼성화재)이 대학교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현재 단국대 대학원 석사과정 마지막 학기를 남기고 있는 제갈성렬은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선수의 근밀도를 주제로논문을 작성 중인데 논문이 통과되면 박사과정에 등록할 생각.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훌륭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제갈성렬은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얼음판에서 겸비한 실전 경험과 체계적인 이론을 후배 선수들에게 전수할 계획.▒이번 대회 경기장들은 대회 이후 시민체육시설로 활용된다.대회를 앞두고총 1,493억원을 투자해 용평 알파인스키장 등 5곳의 경기장을 건설했던 정부(99억원)와 강원도(304억원),쌍용그룹(1,090억원)은 이들 시설물들을 시민들이 체력을 단련하며 여가를 즐기고 각종 스포츠도 관전할 수 있는 다목적 경기장으로 용도 변경할 예정이다.
  • 서울대 대학원 영어시험

    지난해 말 치러진 99학년도 서울대 대학원 정시모집과 관련,불합격처분 취 소 청구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A씨는 30 일 “영어과목 시험에서 낙제하는 바람에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시험에서 떨 어진 것은 부당하다”면서 서울대를 상대로 대학원 정시모집 불합격처분 취 소 청구소송을 서울 행정법원에 냈다. A씨 외에도 영어시험 과락으로 떨어진 불합격자 10여명이 이번 주에 같은 내 용의 소송을 법원에 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姜忠植 全永祐 chungsik@
  • 육상간판 이진일 은퇴설‘모락모락’

    한국 육상의 간판스타 이진일(26 제주시청)이 트랙을 떠나는가.대한육상연맹은 25일부터 우수선수들을 소집해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에 들어갔으나이진일이 입촌을 하지 않아 은퇴 결심을 굳힌 것이 아니냐는 설이 난무고 있다.연맹측은 이진일의 입촌을 설득하고 있다.이진일은 연맹에 한달 정도 거취에 관해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그러나 “어릴 때부터 꿈이던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학업에 정진하겠다”고 말해 은퇴에 무게가 더 실린다. 이진일은 현재 경희대 대학원에 석사논문을 제출해 놓은 상태.이진일은 800m가 주종목으로 95년 금지약물 양성반응을 보여 자격정지를 당했다가 2년만에 복권된 후 피나는 훈련을 거듭해 자신의 아시아기록(1분44초14)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작년 방콕에서 열린 제14회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회 2연패를이루며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경희대 2년이던 94년 한해에만 2개의 아시아신기록을 잇달아 세워 세계기록에 근접,월드스타 대열에 올랐고 오는 2000년시드니올림픽에서도 메달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 외언내언-소주·양주 통상분쟁

    우리나라의 전통 주(酒)는 곡주로 삼한시대에 누룩을 사용해서 빚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동명성왕의 건국담에도 술 얘기가 나온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1년 편에는 지주(旨酒·맛좋은 술이란 뜻)란 말이 나온다.삼국시대에는 곡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동해석사(東海釋史)와 지봉유설에는당대의 시인 옥계생(玉溪生)이 ‘한잔의 신라주(新羅酒)의 기운이 새벽 바람에 쉽게 사라질까 두렵구나’라는 시를 소개해 놓을 정도로 신라주의 인기가 높았다.일본의 ‘고사기’를 보면 응신천황(서기 270∼312년)때 백제의 수수거리가 새로운 방법으로 좋은 술을 빚어 전하여 후세에 그를 주신으로 모셨다고 한다. 증류해서 만든 소주는 고려 후기에 몽골에서 유입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페르시아를 정복한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알코올 증류법을 배워 고려침략 때(1274년) 가져온 것이다.몽골군이 주둔했던 제주도에서는 소주를 노주(露酒·밑술을 고아서 이슬같이 받아낸 술이란 뜻)라고 불렀다.아랍어에서는 알코올을 ‘아라그’라고 발음하고 해방 전까지 개성에서는 소주를 아락주라고 부른 것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려 때는 사찰이 여행자의 숙박지로 이용됐을뿐만 아니라 술을 판매하는 풍속이 있어 사찰을 중심으로 다양한 술이 개발된 것 같다.고려 현종(1140년)은 술로 인한 폐단이 심하자 사찰에서 술을 빚고 마시는 것을 금했지만 고려 후기에 증류주가 도입되면서 술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증류주의 하나인 양주는 19세기 조선조 말 외국과 교역이 쉬워지면서 도입된다.양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거의 1세기가 지난 지금 소주와 양주를놓고 통상분쟁이 일어 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유럽연합(EU)과 미국은 지난 97년 한국이 소주의 세율은 35%,양주세율은 100%로 정한 것은 잘못이라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WTO는 지난 18일 세율분쟁 상소심에서 한국에 패소판결을 내렸다.이 판결에 따라 한국은 향후 15개월 안에 EU·미국과협의를 갖고 새로운 주세율을 만들어야 한다.당국은 소주세율은 덜 올리고양주세율은 덜 내리는 타협안을 마련,협상을 할 방침이다.지난해 전체 술소비는 9%가 줄었으나 소주는 4.8%가 증가했다.당국은 서민들이 기쁠 때나 슬플 때 찾는 대중주(大衆酒)인 이 소주 값이 너무 많이 오르지 않는 방향으로 협상을 매듭짓기 바란다.
  • ‘99문화를 여는 사람-국악 소리꾼 김용우씨

    ‘재미없다’‘부르기 힘들다’‘낯설다’‘선택의 폭이 좁다’.국악하면으레 떠올릴 수 있는 지적들이다.그러나 소리꾼 김용우(32)의 우리 노래 소리를 한번만 들어보면 국악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들이 말갛게 사라진다. 듣는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낄수 있도록 편곡했으나 민요의 특징인 시김새(꾸밈음)와 기본가락을 유지,누가 뭐래도 우리 노래다.특히 재즈,클래식,아카펠라와 어우러져 무대에 울려퍼지는 그의 소리를 들으면 우리 노래도 이렇게 재미있게 부를수 있구나하고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또 슬프고 구성진 가락도 그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오면 밝고 힘차게 변한다.이는 김씨가 수천수백년 동안 이어져 온 우리 소리들을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끼고 좋아하게할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나온 열매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야 합니다.전통음악을 하는 사람들 역시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들으면서는 왜 사람들이그 음악을 좋아하는 지를 분석하고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그래야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경쟁할 수는 것이지요.” 김씨의 우리 소리 경력은 국악과의 인연에 비하면 짧다.피리 부르는 것이좋아서 국악고에 진학했고 대학에서도 피리를 전공했다.소리를 시작한 것은대학교 1학년 때로 선비들이 불렀던 가사(歌詞)를 먼저 시작했다.지금은 중요무형문화재 41호 ‘12가사’ 이수자가 됐다.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소리를찾아다닌 것은 91년부터. “민요채집을 하면서 한번 만났던 할아버지 할머니를 다시 만날수 없는 경우가 많았었요.그분들의 삶과 함께 우리 소리들이 사라져간다는 절박함이 소리찾기에 전념하게 한 것 같습니다” 3년여 동안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300여곡의 민요를 채보(採譜)했다.그러면서 오복녀 박병천 조공례씨 등 인간문화재를 찾아다니며 서도소리,진도씻김굿,남도소리를 사사,음악적 기량을 넓혔다.그가 이처럼 다양하게 소리를 할수 있었던 것은 가사를 부르면서 닦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소화할 수있는 목구성(목이 우리가락을 하기에 맞게 단련된 상태를 말함)을 갖게되었기 때문이다.국악실내악단 ‘슬기둥’에서 활동하다 지난 97년 말독립했다. 오는 3월 김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석사과정에 입학,다른 장르와 활발한 교류를 갖고 새로운 음악세계를 모색하는 한편 상반기 중 우리의현실을 담은 앨범을 낼 계획이다. 고여있는 물은 썩는다.젊은 소리꾼 김용우는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姜宣任 sunnyk@
  • 돈을 불려드립니다

    요즘 증권가에서는 사람얼굴 알리기가 한창이다.미래에셋의 ‘박현주펀드’가고객모집에 성공하자 각 투신사나 증권사들은 간판급 펀드매니저들의 얼굴을 내걸고 신문광고까지 하면서 고객모집에 나섰다.▒張東憲(한국투자신탁) 목표수익률 10%를 3일만에 달성해 스폿펀드를 조기상환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치밀한 분석과 강세장이라는 판단이 서면 주식편입비율을 95%까지 늘리기도 하는 공격적 스타일.동국대 무역학과와 미국아이오와주립대에서 MBA를 마쳤다.MBA시절 아이오와주립대 동문회기금을 금융상품에 투자해 큰 이득을 남기기도 했다.▒孫丙(대한투자신탁) 목표수익률 20%를 6일만에 달성해 유명해졌다. 내성적 성격이지만 강세장이라 판단되면 공격적이다.서울대학원 경영학 석사이며 영국의 유명투자그룹인 ‘슈로더’에 근무한 경험이 있어 세계 금융시장 사정에 밝다.‘컴퓨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張寅煥(국민투자신탁증권) 광고에 이름만 등장하지만 익히 알려진 인물.3개 투신사 중 국민투신이 상환율 1위(98년 24개)를 자랑하는데는 그의 힘이컸다.하락장세에서 진가를 발휘한다.지난해 11월에 다른 펀드가 손실을 기록한 가운데서도 ‘스파트펀드’를 조기상환했다.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왔고 연세대학원에서 금융을 전공했다.▒梁裕植(대신투자신탁운용)종목이 정해지면 적극적으로 사들이는 스타일.선물도 과감하게 운용한다.주식편입비율은 최고 70% 정도로 하고 위험회피용으로 국공채를 다룬다.국제금융시장 흐름에 밝다.미국 앨라배마 주립대 회계학 석사.▒崔權昱(서울투자신탁운용) 단기매매보다 장기매매에 강하다.지난해 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업계 2위인 44.7%.보수적 운용으로 위험관리에 치중한다.저평가주식을 거래가 없을 때도 조금씩 사들여 몇개월 뒤 수익을 내는 스타일.서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원 경영학과를 나왔다.3년전 매니저 전성시대를예감하고 국민투자신탁에서 서울투신운용으로 옮겼다.
  • 체육계 새해설계-조동만 KLPGA회장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는 새해 초부터 의욕에 넘쳐 있다.지난해 박세리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몰아닥친 IMF로 터널을 헤매던 때와는 사뭇다른 분위기다. KLPGA가 활기를 되찾게 된 첫번째 이유는 조동만 신임 회장(46)의 취임이다.선장의 중도하차로 표류하던 KLPGA는 새 회장의 취임 자체만으로 활력소가된다.여기에 조 회장은 이전 회장들과는 달리 협회 운영이나 대회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어 더욱 의욕을 돋워 주고 있다.또한 지난 15일 제5대 회장에 취임한 조 회장은 한솔PCS 부회장으로 오크밸리와 클럽700 등 2곳의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어 여자프로 골퍼들에겐 더 없는보탬이 된다.조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올해부터 새로 출범하는 KLPGA 투어에 선진 마케팅 기법을 도입,한국 여자골프를 국제적인 경쟁력과 고부가가치를 지닌 스포츠산업으로 발전시키고 골프 꿈나무 육성을 비롯한 골프 저변확대와 회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조 회장이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마케팅.지난해 입증된 한국 여자골프의 경쟁력에 80년대 초 시카고 국립제일은행(First National Bank of Chicago) 본사 근무,시카고 노스웨스턴대학원 경영학 석사 과정 등을 통해 쌓은자신의 국제적인 인맥을 가미하면 충분히 국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이를 위해 그는 우선 대회 숫자부터 늘릴 생각이다. “지난 해에는 6개 대회 밖에 못 치렀다고 들었습니다.그러나 효과적인 마케팅을 위해서는 최소한 10개 이상은 돼야 합니다.따라서 올해 처음으로 KLPGA투어를 출범시키면서 12개 정도의 대회를 치를 계획입니다” 선수 육성도 그가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그는 한국골프의 수준 향상과 저변 확대를 위해 가장 근본적인 것이 주니어골퍼 육성이라고 믿고있다. “재능있는 선수들을 발굴해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우수한 골퍼들이 많이 나와 서로 경쟁하고 해외무대에도 진출해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여성 프로골프의 발전은 물론 골프의 대중화에도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물론 형평성이나 예산 차원에서 모든 선수육성을 협회 차원에서 할 수는없을 것으로 내다보는 그는 자신이 부회장으로 있는 한솔PCS측에서 별도로유망선수를 관리하는 방안도 모색중이다. 체육 관련 단체와는 처음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아직 조금은 생소하다며 초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 조회장은 “무엇보다 회원들이 잘 돼야 할 것”이라며 “지난해 박세리의 활약 등을 통해 중흥기를 맞은 한국 여자프로골프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 실·국장 책임경영 이렇게-申東雨 산업경제국장

    申東雨 산업경제국장(46)은 IMF의 경제적 타격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 9월 현 직책을 맡았다.이후 21세기에 적합한 서울형 신산업의 틀을 짜는데 골몰해왔고 그 과정에서 위기의 국가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중심인 서울의 산업이 재건돼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6월 말에 시 산업정책위원회가 산업정책의 기본틀을 마련,제시하도록 돼있습니다.이 틀을 토대로 지식산업을 중심으로 한 도시산업 인프라 구축에본격 착수할 계획입니다” 申국장은 그동안 서울에는 이렇다할 산업정책이 없었다고 지적했다.그래서산업정책위가 마련중인 기본틀에 대한 그의 기대는 크다.기본틀이 나와야 벤처기업 등 미래의 서울형 신산업을 육성할 구체적인 작업을 시작할 수 있기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공공근로사업과 중소기업 지원사업이 주요 목표로 고학력 전문실업자들에 대한 일자리 제공과 중소기업 자금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도시정보화 사업을 통해 134만명의 전문직 실직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서울신용보증조합을 설립,기술력은 있으나 자금여력이 없는 중소업체에 대출보증을 서줄 계획이다. “이제는 산업도 지역여건에 맞도록 특화해야 합니다.서울이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기술 및 지식이 집약된 산업입니다.그래서 벤처기업 애니메이션 패션 소프트웨어 등의 산업을 집중 지원,미래형 신산업을 육성할 생각입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외국인투자 유치는 산업경제국의 핵심 목표다.이를 위해 중국을 시작으로 올해는 해외 무역상담회를 활발히 펼칠 계획이다.申국장은 “베이징 서울관장으로 있던 3년여동안 중국 시장을 나름대로 많이 연구했다”며 “상담회를 계기로 투자 유치와 함께 서울의 중소업체들이 진출할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78년 행시로 시에 들어와 공보관,베이징 서울관장,시장 비서실장 등을 맡았다.학부(서울대)때는 언어학을 전공했지만 행정대학원을 거쳐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鄭基洪
  • 18년 晝耕夜讀 6급공무원 교수 꿈이뤄

    서울시 교육청의 6급 교육행정주사가 대학교수가 됐다. 고교 졸업 후 지난 80년 시교육청에서 9급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朴喆鎬씨(38)는 18년간의 주경야독 끝에 지난해 8월 경기대에서 관광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최근 안양대 관광경영학과 교수에 임용됐다.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교수가 된 朴씨는 “여행업을 일관성있게 연구,정리한 석·박사 논문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朴씨는 지난 81년 고향선배의 권유로 관광경영학을 공부하기 시작해 경기대에서 88년 학사,91년 석사를 받았고 지난해 8월 ‘국외여행자의 불평행동에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학업과 업무를 병행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호텔 정보시스템’,‘서비스 실무실습’,‘관광통역안내원 자격시험’ 등 관광 전문서적을 펴냈다. 오는 3월부터 공무원에서 교수로 직업을 바꾸게 될 朴씨는 “20년간의 실무경력을 바탕으로 행정서비스에 대해 더 깊은 연구를 하고 싶다”고 포부를밝혔다.金煥龍 dragonk@
  • 평화봉사단 ‘제2의 전성기’

    │워싱턴 외신종합│미국의 평화봉사단(Peace Corps)이 다시 옛 전성기를 되 찾게 됐다. ‘미국 문화와 가치의 전도사’로 불리는 평화봉사단은 4일 올해 4,000명의 단원을 모집한다고 발표했다.74년 이후 25년만에 가장 많은 인원이다. 현재 80개국에서 활동중인 6,000명 단원중 절반이 올해로 2년간의 임기를 마치게 된 데 따른 것으로 계획대로라면 연말에는 7,100여명이 된다. 이같은 대폭 증원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98년 연두교서에서 평화봉사단원 1 만명 모집계획을 밝히고 의회에 20% 예산증액을 요청한 데 따른 것으로 이미 2억4,000만달러가 확보됐다. 평화봉사단의 마크 기어런 단장은 단원의 97%가 대졸자이고 15%는 석사 이 상 학위 소지자라고 밝혔다.단원들도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분교,위스콘신, 하버드 등 명문대 출신이 대부분이다.평균 연령은 28세.올해는 50세가 넘는 단원도 전체 모집인원의 8%가량인 320여명을 선발한다. 평화봉사단은 61년 정부 산하기구로 창설,38년 동안 120개국에 15만명이 파 견돼 의료봉사,영어교육,영농지원을 벌이며미국 문화와 가치를 전파하고 친 미 성향을 심어왔다. 90년대 들어 평화봉사단원들은 환경보호,중소기업 개발지원,자연재해 대비 활동 등도 벌이고 있으며 활동무대를 동구권으로 확대하고 있다. 60년대 대원이 1만명이 넘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가 80년대 제3세계의 반미 감정 고조로 움츠러들었던 평화봉사단이 21세기를 앞두고 다시 활발한 활동 을 준비하고 있다.
  • 새 美 하원의장 내정 헤스터트(뉴스의 인물)

    ◎건강관리 제도 개선팀 참여 유일한 공화의원/작년 워싱턴의 100대 정책결정자에 뽑혀 차기 하원의장으로 내정됐으나 혼외정사 폭로로 19일 하원 본회의 탄핵안 최종토론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한 밥 리빙스턴 의원 후임으로 내정된 데니스 헤스터스 의원(56)은 16년간 일리노이주 고교 미국사 교사로 지내다 주의회 의원을 거쳐 연방정치무대 지도자로 성장한 전천후 노력파. 연방의회 상무위원회 소속으로 식품 의약 환경 마약 에너지 통신 방송 에너지 무역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활발한 입법활동을 전개,지난해 ‘워싱턴의 100대 정책결정자’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 93년 힐러리 여사가 만든 건강관리제도개선 전담팀에 공화당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참여한 소신파로서 96년에는 클린턴 대통령의 건강관리혜택 확대법안에 적극 동조했고 환자보호법을 주도적으로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의료보건통이다. 지금까지 하원 정부개혁감독위의 국무부·국방부·법무부 업무를 관장하는 국가안보·국제문제·형사문제 소위의 의장을 지냈으며 올해는지난해에 이어 공화당 수석 부총무보를 맡고 있다. 42년생으로 64년 일리노이주 휘튼대학을 졸업하고 67년 노든 일리노이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인 진 여사와의 사이에 조수아와 에탄 두 아들을 뒀다.
  • 서울대 교수 105명 박사학위 없다

    ◎14명중 1명꼴… 실기 위주 예·체능 분야에 많아 서울대 교수 14명 가운데 1명은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17일 서울대가 펴낸 ‘대학백서 1996∼1997’에 따르면 97년 4월 현재 교수 1,442명 가운데 7.3%인 105명은 석사나 학사학위만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교수 896명 중 77명이 박사학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가운데 학사학위를 소지한 교수는 12명이었다.또 부교수 280명 중 12명,조교수 234명 중 12명,전임강사 32명 중 4명이 박사학위 미소지자로 나타났다. 대학측은 백서에서 “이론보다 실기가 중요한 예·체능분야 등 특정 학문분야의 경우 박사학위가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교수들은 일주일에 평균 8.9시간을 강의하며 교수직급별로 정교수 4,717만여원,부교수 3,844만여원,조교수 3,163만여원,전임강사 2,862만여원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백서는 서울대 교수 연봉은 우수 사립대 교수 연봉의 70%선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 수능시험 만점 ‘탄생’/한성과학고 吳承恩양… 대입 사상 처음

    ◎“책 많이 읽고 스스로 공부”/아버지도 行試수석 출신 “즐거운 마음으로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 방법이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99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에서 400점 만점을 받은 吳承恩양(18·한성과학고3)은 15일 소식을 듣고 “가채점을 해본 뒤 만점을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옆에서 도움을 준 부모님,학교 선생님과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며 환하게 웃었다.예비·학력고사와 수능시험 등 국가가 시행하는 대입시험에서 만점이 나온 것은 사상 처음이다. 吳양의 공부 스타일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독서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교과서 밖의 지식까지 폭넓게 가르치는 과학고의 수업방식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초·중학교에서는 반에서 3등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과학고에 진학하면서 공부에 더 재미를 느껴 줄곧 전교 1등을 차지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잠은 하루 5시간 정도만 잤다.부족한 잠은 주말에 집에 와서 보충했다.특별히 과외를 받지는 않았고 주말에 취약한 언어와 사회탐구 두 영역을 보완하기 위해 학원을 다녔을 정도. 소립자 물리학을 전공하는 과학자가 되는 게 吳양의 꿈.서울대 자연과학대 기초과학부에 교장 추천으로 이미 합격했다.취미는 클래식 음악감상으로 바흐를 좋아한다. 아버지 吳馨煥씨(51·행정자치부 지방행정연수원장)와 어머니 李愚仁씨(52·방산중 교사)의 1남1녀중 막내.한양대 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아버지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8회 행정고시에서 수석을 차지했었다.
  • 관광공사 신입사원 공채 4명 모집에 1,810명 지원

    4명을 선발하는 한국관광공사 내년도 신입사원 공채시험에 1,810명이 지원,최근의 극심한 취업난을 실감케 했다. 부문별로는 1명 모집인 영어에 1,389명이 지원,무려 1,389대 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역시 1명을 뽑는 중국어에는 230명이 응시했다.2명을 선발하는 일본어에는 191명이 원서를 냈다. 오는 15일 토익 등 언어권별 어학시험 결과를 토대로 10배수 범위에서 1차합격자를 추려낸 뒤 20일 상식 및 논술시험과 21일 면접을 거쳐 30일 최종합격자를 발표한다. 관광공사 洪宙閔 인사부장은 “지원자 중에는 토익시험 만점자를 포함 900점 이상자가 수두룩하며 석사학위 소지자는 물론 외국에서 대학을 마친 학생도 많다”며 “우수한 자원이 많은데도 구조조정의 범위에서 사원을 선발할 수 밖에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 金勳 중위 사망의혹 파문­金 중사에 농락당한 중대장

    ◎‘北 물품 습득 신고땐 포상휴가’ 악용/金 중사,北서 얻어온 담배 등 나눠줘/특별휴가 선심쓰며 부대원 입막음 부대원들의 근무기강을 세우려던 판문점 경비대대 중대장의 의욕이 무모한 하사관의 탈선으로 농락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金勳 중위 사망 당시 중대장이었던 金益賢 대위(32·육사45기·육사 영어강사)는 11일 “金榮勳 중사가 북한을 넘나들며 가져온 담배 맥주 등을 부하들이 습득한 것으로 속여 특별휴가를 갔을 가능성을 부인키 어렵다”면서 “金중사가 북한을 넘나들었다는 사실조차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金대위가 경비대대 중대장으로 부임한 것은 지난해 2월. 중위 때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리대에서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3사단 중대장을 막 끝낸 때였다. 부임하자마자 金대위는 군사분계선상에서 북한군이 우리측을 향해 담배꽁초 등을 던지는 등 군기문란행위가 벌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대남심리전의 일환이라고 판단하고는 경비병들에게 각별한 정신무장을 강조했다. 또 북한군이 접촉을 시도하거나 물건등을 던질 때는 카메라로 찍어두라며 이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비서장회의에서 항의하겠다고 주지시켰다. 그는 부대원들의 근무기강 확립을 위해 북한군이 던지는 각종 물건을 습득해 신고하는 사병들은 특별휴가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더러 부대원들 사이에 북한군이 던진 물건들을 몰래 갖고 있는 사례가 빈번하게 적발되는 터이기도 했다. 金대위의 지시로 북한물품이 상당량 습득됐으며 이 덕분에 40∼50명의 부대원들이 특별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기무사 등 군 당국의 조사결과,특별휴가는 金대위가 아닌 金중사의 어처구니없는 ‘작전’으로 둔갑돼 악용되고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金중사는 金대위의 특별휴가를 자신의 북한군 접촉 은폐수단으로 삼았다. 金중사는 부대원들의 입을 막기 위해 자신이 북한군으로부터 얻어온 담배 맥주 등을 부대원들에게 돌아가며 나눠준 뒤 습득물로 신고해 특별휴가를 보내는 선심을 썼던 것이다.
  • 日 노무라증권 주무른 30代 큰손(뉴스 인사이드)

    ◎부동산증권 개발 4년간 10억弗 수익/금융위기로 가치 급락… 몽땅 날려/퇴직금 432억원만 챙기고 ‘딴살림’ 【도쿄 黃性淇 특파원】 일본 노무라(野村)증권 미국 현지법인의 이산 페너(37).흔해 빠진 경영학 석사학위(MBA)도 없이 벼락출세,수십억달러를 주무르다 노무라증권에 10억달러의 손해를 입히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일본의 주간 아에라 최신호는 노무라증권이 이 겁없는 풍운아 덕분에 웃다가 울게 된 기막힌 사연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뉴욕대학 출신인 무명의 페너가 노무라증권 미국 현지법인에 입사한 것은 93년 4월.입사하자마자 부동산담보증권(CMBS)이라는 신 상품을 개발,4년간 노무라증권에 10억달러의 이익을 안겨줬다. CMBS가 히트를 한 것은 미국 부동산경기가 회복되는 시점과 맞물리면서.부동산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자금을 조성한 뒤 운용자금에 목말라하던 부동산업자에게 고금리로 빌려주는 사업은 크게 성공했다.불티나게 CMBS는 팔려나갔고 페너는 435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지난 8월 러시아 금융위기는 페너의 운명을 바꿔놨다.CMBS의 가치가 급락,노무라 미국현지법인은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CMBS에 치중한 게 화근이었다.후발 증권사가 CMBS에 3억달러 가량밖에 투자하지 않은 데 비해 페너는 ‘위험분산의 원칙’을 무시하고 무려 70억달러까지 사업규모를 늘렸다. 노무라증권은 지난달 미국 현지법인 등의 손실로 국내외 직원 2,000명을 정리해고한다고 발표했다. 풍비박산의 와중에 페너는 슬그머니 회사를 그만두고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열어 ‘재기’를 꿈꾸고 있다.무려 3,600만달러(약 432억원)의 퇴직금을 챙긴 채.
  • 석·박사 논문 대필 “불황 몰라요”

    ◎서울 대학가 일대에 10여개 업체 성업/1건에 300만원… 내년까지 예약 ‘끝’/엉터리 논문 양상… 학력인플레 부추겨 ‘논문을 대신 써 드립니다’ 석·박사 학위 논문을 대신 써 주는 불법 ‘논문대행업’이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 소기업 형태의 대행 조직은 돈을 받고 원하는 논문을 ‘주문생산’한다. 주제만 얘기하면 알아서 다 써준다. 서울에만 10여개의 업체가 성업중이다. 전공별로 논문 전체나 일부를 써주고 돈을 받는다. 주고객은 특수대학원을 다니는 직장인이나 사업가들. 학위가 필요해 대학원에 등록했지만 정작 논문을 쓸 실력은 안되기 때문이다. ‘논문대행업체’는 이들이 원할 경우,‘연구원’이라는 전문가들이나 자체 관리하는 수백명의 명문대 대학원생들과 ‘거래’를 연결시켜준다. 대행료는 전공마다 다르지만 보통 석·박사학위 논문 한편을 다 써주고 받는 돈은 250만∼300만원. 신촌 일대에서는 일부 인쇄소가 ‘논문 전문가’와 의뢰인을 연결시켜 준다. 논문의 타자 입력이나 출력,제본 등을 해당 인쇄소에 맡기는 조건이다.인쇄소는 인쇄비외에 소개비조로 40만∼50만원 정도를 챙긴다. 연세대 정문 앞 Y사와 거래하는 전문가는 경영학박사이지만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어 행정학이나 정치학 등 사회과학 분야는 다 쓸 수 있다고 한다. Y사 근처의 J사는 설문지 통계가 포함된 석사논문은 250만원,그렇지 않은 것은 200만원을 받는다. 부분별로 주문할 때는 15만∼수십만원까지 받는다. 논문대행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미 내년까지 10건 정도 석·박사논문을 풀서비스하기로 예약돼 있다”고 말했다. 논문대행업이 성공하는 이유는 능력이 없으면서도 학위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엉터리 논문이 양산되면 학력인플레를 부추길 뿐아니라 그 자체가 명백한 불법이다. 대법원은 96년 석사 논문 대행 작성에 대해 유죄판결(업무방해)을 내렸었다.
  • 친일의 군상/前 이화여대 총장 金活蘭(정직한 역사 되찾기)

    “아세아 10억 민중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결전이 바야흐로 최고조에 달한 이 때 어찌 여성인들 잠잣코 구경만 할 수가 잇겟습니까.이 날을 위한 마음의 준비는 이미 벌서부터 되여 잇섯습니다.내지(일본)학도들과 함께 전문대학 법문계(문과) 반도(조선)학도들은 우렁찬 진군을 이르키어 특별지원병으로서 오는 1월20일에는 영예의 입영을 하게 되엿습니다.이번 반도학도들에게 열려진 군문으로 향한 광명의 길은 응당 우리 이화전문학교 생도들도 함께 거러가야될 길이지만 오직 여성이라는 한가지 리유 때문에 참렬을 못하는 것입니다.…아프로는 결전하의 국가목적에 쪼차 한사람이라도 더만히 우수한 지도원을 양성하기에 전력을 다할 각오가 잇슬 뿐입니다.” 金活蘭(1899∼1970)이 1943년 12월25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每日新報)’에 기고한 ‘男子에게 지지안케­皇國女性으로서의 使命을 完遂’라는 제목의 기고문 중 한 대목이다. ◎이대 키운 공 크지만 ‘여성계 상징’으론 논란 여지/3·1운동 당시 한때 지하 독립운동 조직과 연계/1936년 이화학당 부교장 시절부터 변절 첫 걸음/동포청년 전쟁에 내몰고도 사과 한마디 없어/“비상시국에 있어 기독교 여자청년들도 내선일체의 깃발 아래로 모여 시국을 재인식하는 동시에 황국신민으로서 앞날을…” 일제하 지식인이 신문에 쓴 친일성향의 글 한 두편을 통해 그의 삶 전체를 평가받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거대한 감옥’또는 ‘노예선’으로 불리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쓴 글이라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조건이 있다.우선 생명에 위협이 있었느냐,그리고 나중에 자신의 행적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성했느냐 하는 점 등이다. 모든 지식인들에게 지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몇몇 의사·열사가 이에 속할 뿐이다.그러나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그러나 거의 모든 친일 지식인들은 자신의 친일행위를 반성하지 않았다.친일 지식인들이 더 비난받는 이유중의 하나는 이 때문이다. 일제시대 여성 지식인이었으며 최근 그의 이름을 딴 상(賞)제정 문제로논란이 되고 있는 김활란은 역사 앞에서 용서받을 수 있을까?답은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이유는 그가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그의 이름을 딴 상 제정은 지식인 사회에서 여러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흔히 김활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수식어 가운데 하나는 ‘여성박사 제1호’다.그는 학사·석사·박사를 따기까지 세 차례에 걸쳐 5년간 미국유학을 했다.귀국해서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절러(당시 이화여전 교장)의 뒤를 이어 1939년 이화여전 교장에 취임했다.굳이 나눈다면 그는 친미(親美)인사로 분류되는 사람이다.그런 그가 ‘대동아전쟁’이 터지자 친일,반미(反美)인사로 돌변하였다. ○전쟁 터지자 반미로 돌변 “저 흑노(黑奴)해방의 싸움을 성전(聖戰)이라 했고 십자군의 싸움도 성전이라고 했다.…제일선 장병과 보조를 같이 하여 도의를 무시한 물질제일주의의 서양문명을 박차버리고 동아(東亞)의 천지로부터 미영(美英)을 격퇴하여 버리자”.김활란은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결전부인대회’결성식(1941.12.27,부민관 대강당)에서 ‘여성의 무장’이란 주제로 미영 타도를 외쳤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일제하 대부분의 친미·기독교계 인사들(白樂濬·申興雨 등)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다시 친미인사로 변신했다.그는 미군정 시절 초대 이화여대 총장에 취임했고 이승만정권 하에서 한미(韓美)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3·1만세의거 당시 김활란은 이화학당 대학과를 마치고 모교의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그 무렵 지하독립운동 조직과 연결돼 활동하고 있었다.‘7인의 전도대(傳道隊)’를 만들어 기독교 포교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단순한 전도활동 수준을 넘는,일종의 민족운동이었다.20년대 후반 좌우 민족진영의 통합으로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자 뒤이어 27년 4월 여성계 민족단체로 근우회(槿友會)가 결성되었다.그는 근우회 창립멤버로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이듬해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유학을 떠났다. 31년말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농촌교육 관련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 귀국했다.귀국후 문맹퇴치·봉건잔재 타파 등을 내걸고농촌운동에 주력하였는데 이는 미국유학을 한 인텔리 여성의 소박한 조국에 대한 헌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일제 침략전쟁 미화·선전 그의 친일행보는 36년 이화학당 부교장으로 있던 시절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해 말 총독부 사회교육과 주최 ‘가정의 개선과 부인교화운동의 촉진’을 위한 사회교화간담회에 참석하였다.37년 1월 그는 총독부 학무국의 알선으로 ‘조선부인문제연구회’를 결성하였고 7월 들어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애국금채회(愛國金釵會)’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이 단체는 한일병합후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들의 부인들이 주동이 돼 전쟁물자로 바칠 금비녀·가락지를 모으기 위해 결성한 친일 여성단체였다.이후 여러 친일단체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방송선전협의회,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임전대책협의회,조선교화단체연합회,조선임전보국단,조선언론보국회 등등. 그의 활동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기독교 활동이다.38년 6월 조선YWCA의 회장으로 있던 그는 “비상시국에 있어 기독교 여자청년들도 내선일체의 깃발아래로 모여 시국을 재인식하는 동시에 황국신민으로서 앞날을 자기(自期)하는 의미에서…”(매일신보,38년 6월9일)라며 일본YWCA에 가맹을 발표하였다.당시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가 학교가 폐교를 당하고 구속자·순교자가 잇따르던 때였다. 39년 4월 이화여전 교장에 취임한 이후 그의 친일행각은 본격화되었다.물론 그 배경에는 학교를 지키기 위한 목적도 없지는 않았다.그러나 김해 김씨인 그의 문중이 본관을 따라 ‘김해(金海)’로 창씨를 한 것과는 달리 그는 독자적으로 ‘천성활란(天城活蘭·아마기 가쓰란)’으로 창씨개명하였다.‘어차피 창씨를 해야한다면 정말 (일본식으로)창씨를 해서 자신의 독립된 일가를 세울 생각’이었다.(金貞玉의 저서 ‘이모님 金活蘭’중에서) ○순풍에 돛단 배처럼 살아 ‘대동아전쟁’ 개전(41.12.8) 이후부터는 강연·방송은 물론 가두로 나서서 일제의 침략정책을 미화,선전하였다.특히 여성들을 대상으로 ‘어머니나 딸·동생으로서’ 징병·징용·학병 등 인력동원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촉구했다. 43년8월1일 조선인에 대한 ‘징병제’가 실시되자 그는 “황국신민의 무쌍(無雙)한 영광인 징병제는 드디어 우리에게도 실시되었다.…일시동인(一視同仁)의 황공하옵신 성지(聖旨)에 다시금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위하여 불덩이 같이 끓는 피와 몸을 통털어 바쳐 성은(聖恩)에 보답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렸으며 반도 남아의 의기를 뵈일 기회는 드디어 왔다.이 얼마나 기쁜 일이며 수 천년 역사 이래 모처럼 보는 거룩한 감격…”(‘매일신보’1943년 8월7일)이라고 썼다. 그는 해방직전 심한 눈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자신을 문병차 찾아온 조카(金貞玉 전 이대교수)에게 “남의 소중한 아들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라고 연설을 하고다닌 죄값”이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김정옥의 앞의 책 중에서) 당시 여기자 崔銀喜는 그를 두고 ‘모질고 악착한 역경을 맛보지 않고 순풍에 돛단 배처럼 산 행운아’라고 평했다.식민지 시대와 격동기를 산 지식인의 일생이 대체로 고뇌와 아픔으로 점철됐겠지만 그는 상류층의 한 층을 이루는 생애로 일관하였다. 그가 60년 가까이 이화인(梨花人)으로 살면서 일제하와 건국기에 학교를 지키고 가꾼 공로는 인정할만 하다.그러나 그를 여성교육계,나아가 한국여성계의 상징으로 내세우기에는 그의 일생 가운데 ‘흠결’은 큰 편이다.이대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보기에는 그의 친일활동이 적극적이었다.이대측의 ‘김활란상’ 제정 추진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보다는 그의 떳떳하지 못한 삶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또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김활란 연보 1899년 인천 출생 1914년 이화학당 대학과 졸업 1918년 이화여전 교수·부교장 1928년 ‘근우회’ 발기인으로 참여 1931년 미국 컴럼비아대 철학박사(‘여성박사 1호’) 1937년∼45년 애국금차회·임전대책협의회·조선언론보국회 등 친일 단체 간부로 활동 1939년∼70년 이화여전 교장·이화여대 총장·이화학당 이사장 1948년∼65년 한국대표로 유엔총회 6회 참석 1950년 공보처장 1952년 ‘코리아타임스’ 사장 1954년∼61년 국제기독교선교위원회 부위 원장 1955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1959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1963년 대한민국장·막사이사이상·다락방상 수상 1965년 대한민국 순회대사 1970년 별세,망우리 금란동산에 묻힘.대한민국 1등수교훈 장추서 1996년 추모문집 발간,그의 친일 논쟁을 계기로 ‘인터넷 반민특위’이 등장 1998년 이대측의 ‘김활란상’ 제정 계획 발표로 찬반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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