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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곳없는 석·박사들…기업硏들 채용 꺼려

    경제 위기로 기업들의 병역특례자 채용률이 크게 낮아져 석·박사 학위를소지한 상당수 이공계 고급연구인력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채용됐더라도 장기간 무급휴직을 시켜 특례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대기업인 H사 부설연구소에 채용된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 41명은사내 연수가 끝나자마자 1년간 무급휴직 통보를 받았다.무급휴직 기간은 군복무기간으로 산정되지 않아 특례자들로서는 시간만 허비하는 셈이다. S대 공대 석사 출신의 A씨(26)는 “1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다른 회사로 옮길 생각도 했으나 조건이 더 좋은 기업을 찾을 수 없어 1년 동안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회사측은 무급휴직 기간에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지 않으므로 8월초부터시작될 감원을 피하게 하기 위해 무급휴직을 실시했다고 해명했다. S사 부설연구소에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으로 채용됐던 B씨(30·S대 공대박사과정)는 지난해 9월 갑자기 입사가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고 일단 학교연구소에 들어갔다.같은 회사에 취직하기로 돼 있던 C씨(25·H대 석사출신)도 취업이 취소돼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D씨(25·S대 공대 석사졸)는 취업하려 했던 회사에서 지방 공장에 내려가든지 입사를 포기하든지 양자택일(兩者擇一)하라는 통보를 받았다.D씨는 그동안 받은 장학금을 돌려주기도 어렵고 입대 유예기간인 3개월 안에 다른 회사를 찾을 수도 없을 것 같아 할 수 없이 지방으로 내려갔다. 한국산업진흥협회에 따르면 민간기업에서 채용한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의채용률과 채용인원은 IMF체제 이전인 96년과 97년에는 각각 병무청 허가 인원의 83%인 1,687명,84.4%인 1,685명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채용률이 69.2%로 떨어져 1,486명만이 취업했다.97년 7조7,000억원이던 민간기업의 연구개발투자비가 지난해에는 7조2,000억으로 6%나 줄어든 여파라는 협회측의 설명이다. 이 협회 丁海赫씨(35)는 “고급 인력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큰손실”이라면서 “미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 [포커스 투데이]플로레스 엘살바도르 새 대통령

    92년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좌우익의 12년에 걸친 내전으로 7만명이 희생된 ‘피의 땅’ 엘살바도르에 30대 철학자 대통령이 탄생했다. 7일 실시된 선거에서 좌익 정치조직 FMNL의 파쿤도 과르다도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승리한 집권 민족공화동맹(ARENA)의 프란시스코 플로레스(39).오는 6월1일 5년 임기에 공식 취임하는 그는 8일 “거국내각을 구성,범죄·빈곤과 전면전을 벌이겠다”고 국정운영의 포부를 밝혔다. 그는 유세 중 정책제시에 중점을 둔 미디어 선거전으로 국민들을 사로잡았다.선거때마다 서로를 ‘공산주의자’와 ‘착취계급’으로 몰아부치는 이데올로기 싸움에 식상한 엘살바도르인에겐 신선한 바람이었다.이는 새로운 제3세계의 선거양태로도 주목받았다. 미국 앰허스트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플로레스는 80년대 초반 인도에서 힌두교 신비주의자 사이 바바를 사사하고 그 정신적 교훈에 바탕을 두고 설립된 미국 월드대학에서 철학석사를 받았다. 80년 조부가 좌익게릴라에 의해살해당했으며 정부 고위관료이던 장인도 89년 암살 당한뒤 정치판에 뛰어든그는 90년 행정부 관료로 출발,94년 국회의원이 됐고 집권당 원내총무로 있다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매일 20여명이 살해되는 치안부재상태에다 국민의 반수가 절대빈곤상태에 있어 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그가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 ‘문화 공공근로’에 우수인력 수두룩

    문화부문의 정보화 공공 근로사업이 고학력 실업 해소와 숙원사업 해결의일석이조효과를 거두고 있다.IMF사태하에서 피어나는 슬픈 ‘성공이야기’인 셈이다. 일반 공공 사업이 나무가꾸기,하천정비 등 단순 노무형인 것과는 달리 문화체육부의 정보화 공공근로사업은 영화자료 정리,한국 소개자료 정비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들이다.이 때문인지 지원자들의 대부분이 대졸자들이고 해외 유학파,연구원 출신 등 고급 인력도 적지 않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최근 영상관련 시나리오 DB구축,영상 관련 논문 DB구축,LP·CP 음반자료정리,극영화 필름 디지털화 등 종합영상자료 DB구축사업에 참여할 공공근로인력 331명을 선발했다.이들 중에는 프랑스에서 불문학,고미술분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여성 2명과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40대남자를 포함,석사학위 이상 소지자가 30여명에 이른다. 해외문화홍보원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관련 영문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사업에는 240명 모집에 2,225명이 지원했다.지원자 중에는 석사 이상이 82명이나 된다.미국 댈러스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하던 A씨(43),미 해군 미사일연구소 연구원 출신으로 국내 중견 해외방산부문에서 일하던 B씨(46),경영학 석사출신으로 정부 및 대기업 산하 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던 C씨(41) 등 쟁쟁한 경력을 자랑한다.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이들 사업은 문화 인프라 구축차원에서 필요한 사업이었지만 그동안 재원과 인력이 없어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며 “이들의경력을 최대한 활용,숙원사업을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공근로인력들에겐 업무에 따라 2만2,000∼3만2,000원의 일당이 월급여 형태로 지급된다.
  • 문화산업 전문대학원 세운다

    이르면 2000년부터 신기술 육성을 위한 영상 방송 광고 애니메이션 분야의전문대학원이 설립된다.첨단분야의 기술자,석·박사 등 고급·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인력풀제’도 도입된다. 또 앞으로 4년동안 2,000명의 전문어업경영인력이 양성되고 신규 택시운전자를 위한 택시운전양성대학이 설치되는 등 전문교육훈련기관이 다원화된다. 국가차원에서 국민의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중앙단위의 평생교육센터와 지역별 평생교육센터도 운영된다. 정부가 8일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대비해 노동부 교육부 산업자원부 등 관련부처와 협의를 거쳐 마련한 ‘중기 직업교육훈련 기본계획안(1999∼2003년)’에 따르면 고부가가치 창출이 예상되는 영상 애니메이션 등 문화산업분야의 전문대학원을 설립하고,중등단계의 영상고등학교도 설립해 전문인력을 조기에 육성하기로 했다. 전문대학원은 석사 2년·박사 3년의 전문학위,박사 3년의 학술학위 및 단기 비학위과정을 설치하는 형태가 적극 검토되고 있다. 또 직업교육훈련시장 인프라 구축의 일환으로 ‘관광인력센터’를 설립해관광분야의 전문인력 육성프로그램 등의 업무를 맡기기로 했다. 교육훈련의 특성화를 위해서는 실업계고교 및 전문대학,일반대학 등에 산업체가 직접 지원하는 ‘특약학과’가 설치된다.여학생의 공학분야 진출을 넓히고 공고·공대 진학자를 우대하는 등 여성기술인력 개발도 적극 추진된다. 이와함께 공공직업훈련기관을 단계적으로 독립법인화하고,기관운영도 민간전문기관에 위탁하거
  • 대기업→벤처기업 고급두뇌 대이동

    벤처기업에 ‘고급두뇌’들이 몰리고 있다.IMF한파에 따른 구직난으로 대학을 갓 졸업한 우수인력들이 몰리는 것은 물론이고 외국 유수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유학파들도 많다. 대기업 구조조정과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이 추진되면서 대기업을 나와 전도유망한 벤처기업으로 옮기는 ‘스카우트 역류현상’도 두드러진다.창조적이면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우수인력들의 도전정신도 작용했다. 인터넷 마케팅업체로 코스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골드뱅크사의 경우전체 직원 45명 가운데 지난해말 이후 수시로 채용한 인원이 15명이나 된다. 대부분이 ‘일류 직장’인 굴지의 대기업에서 옮긴 이들로,석사만 5명이다. 이 회사 金鎭浩사장은 “구조조정 회오리속에서도 근무하던 회사에서 붙잡으려 했을 만큼 인정을 받았지만 스스로 원해서 나온 이들이 많다”고 소개했다.석사출신으로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다 지난해 11월 입사한 崔모씨(35)는 “대기업 신화가 깨진 것도 이직의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창의적인 일을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방송장비업체 건잠머리도 직원 30명가운데 23명이 석·박사들이다.대부분지난해 이후 신규채용된 인력들이다.현재 사업규모에 맞게 적정인력을 유지하려고 이 정도만 선발했지, 필요하다면 고급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지원자들이 자원을 우수했다는게 회사측 설명이다. 위성인터넷 시스템업체 텔리맨은 지난해 하반기이후 고급인력이 몰리기 시작,29명 가운데 석·박사학위 소지자만 13명이나 된다.이 가운데 미국 콜롬비아·일리노이주립대,일본 게이오대에서 전자·컴퓨터를 전공한 이들도 포함돼 있다.지금도 유학파나 대기업,연구소 등의 고급 엔지니어 10여명이 입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회사 金容萬사장은 “창업초기였던 2년전만해도 뿌리깊은 대기업 선호의식때문에 인재확보에 어려움이 컸다”면서 “정부가 벤처기업 인력지원책으로 내놓았던 병역특례를 통해 고급인력을 충원하려 했던 것도 옛날 일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 소프트웨어 진흥원 許勳과장은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융성할 수 있었던 한 요인이 구조조정에서 빚어진 고급인력의 이동 때문이었다”고 소개하고 “인력이 가장 중요한 자산인 벤처기업의 특성상 지금이 호기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金煥龍 dragonk@
  • 민초의 사랑 받아온 ‘이발소 그림’ 정리

    고등학교 미술교사인 박석우씨가 펴낸 ‘일상속의 미술:이발소 그림’은 근·현대적인 의미로서의 이발소 그림을 대중미술학적인 관점에서 정리한 최초의 시도이다. ‘소녀의 기도’,‘만종’,물레방아 도는 초가집 풍경 등 이발소에서 흔히만났던 그림들은 서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지만 제도권 미술로부터 천대를 받았다. 그러나 조선 민화의 연장인 이발소 그림은 진정한 소통력과 생명력으로 시대의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이발소 그림은 대중의 주변에서 풀뿌리처럼 모질게 자생했다.막걸리처럼 밀주처럼 민초 속에서 만들어져 민초들에게 사랑받았다.그것은 바로 생활 속의 미술,살아 숨쉬는 미술이다”고 저자는 말한다.이발소 그림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발표했던 그는 1990년부터 8년동안 전국을 누비며 수집한 3,000여점의 그림중 155점을 선정,수록했다.동연 1만원.
  • [제2공화국과 張勉] (3) 경제개발 5개년계획(上)

    張勉정부의 ‘국토건설사업’은 단군 이래 첫 종합국토개발계획이었고 5·16쿠데타가 발생하기 전까지 큰 성과를 거두었다.하지만 이 사업은 더욱 큰프로젝트의 서막일 뿐이었다.‘경제 제일주의’를 내건 장면정부의 청사진은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1966년)에 집약돼 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라면 흔히 朴正熙정권의 전유물처럼 여긴다.그 전에는 우리 사회에 경제개발이란 개념조차 없었다거나 있다손치더라도 경제관료들이 이를 구상하고 기획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고들 믿는다.이는 쿠데타세력이 5·16 직후 일관되게 이같은 주장을 편 데다 박정희시대 18년 동안 모든공식적인 문서를 저들 뜻대로 조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개발계획을 박정희 때 처음 만들었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장면정부는 ‘완성된’경제개발5개년계획을 갖고 있었다.다만 발표 직전 쿠데타를 당해 국민에게알릴 기회를 놓쳤을 따름이다. 장면정부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일부 수치만 바뀐 채 골격이 쿠데타 세력에게 넘어갔고,군사정권은 이를 자신의 작품인 양발표한 뒤 그대로 실천했다.따라서 60년대 경제성장의 밑그림은 장면정부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경제개발계획이 처음 등장한 때는 자유당정권 말기였다.李承晩정권의 강압정치에 실망한 미국은 1957년 중반 金顯哲 부흥부장관에게 장기적인 경제개발계획을 내놓아야 원조를 계속하겠다고 통보했다.마침 국내의 일부 젊은 경제관료들도 장기경제개발계획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구미에서 경제·행정 부문 선진이론을 배우고 귀국해 행정부의 실무책임자로서 국가 발전에정열을 불태우던 그룹이다. 劉彰順(미 헤이스팅스대) 李漢彬(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車均禧(미 위스콘신대 경제학박사)丁渽錫(미 밴더빌트대 경제학과) 崔昌洛(〃대학원 경제학과) 鄭韶永(미 워싱턴주립대 경제학박사) 등이 대표적인 이들로 모두 훗날경제부서 장관을 역임한다. 李起鴻(77·전 월간 ‘코리아 비지니스 월드’발행인)은 당시 부흥부 기획과장이었다.미 컬럼비아대 경제학 석사인 그는 세계적인 석학 넉시 교수에게서 경제개발 이론을 배웠다.넉시는 ‘경제개발’ ‘개발도상국’ 같은 개념을 처음 도입한 학자이다. 미국이 장기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요구하자 이기홍은 밤샘을 거듭하며 그 개요를 만든다.그러나 이때의 경제개발안은 이승만대통령에 의해 묵살된다.57년11월 경제 4부 장관들이 함께 경무대로 가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필요성을설명하자 이승만은 “그것은 스탈린 사고방식 같은데….불구대천의 원수인공산주의자 방식을 따르자는 것이냐”며 한마디로 거절한다.(이기홍 회고) 이후 宋仁相이 부흥장관으로 취임하면서 경제개발계획은 은밀하지만 활발하게 추진된다.宋장관은 한국은행 부총재 시절 세계은행 부설 경제개발연구소(EDI)에서 연수를 받은 터라 경제개발계획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회고록에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경제발전 목표를 설정하고,그 달성을 위해 나라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그 당시)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宋장관과 이기홍과장은 미 대외원조처(USOM) 간부들과 협의해 장기경제개발계획을 마련할 조직인 산업개발위원회(EDC)를설립했다.세계적으로 경제개발위원회라고 통용되는 기구지만 국내에서는 ‘경제개발’이란 개념이 생소하다는 이유로 산업개발로 이름붙였다. 산업개발위원회(산개위)는 58년 4월1일 부흥부장관 자문기관으로 출범했다. 초기에는 송장관이 위원장을 겸임했다.위원은 22명이었지만 고문과 보좌요원을 두도록 해 당대의 최고 전문가들을 두루 끌어들였다.비용은 전액 미국에서 제공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났다.예컨대 부흥부의 연간 운영예산이 9,600만환인 데 견줘 산개위는 6,000만환이었다.봉급도 높아 연구원 평균 월급이국무위원(4만2,000환)보다 많은 5만환 정도였다. 산개위는 59년 봄 ‘경제개발 3개년계획’(1960∼1962년)을 국무회의에 내놓는다.그러나 정권 유지에만 급급하던 이승만정부는 1년이 지나도록 심의조차 하지 않다가 60년 4월15일에야 승인한다.마산에서 金朱烈군의 시신이 발견돼 2차시위가 일어난 지 나흘 뒤,4·19혁명이 일어나기 나흘 전이었다.아마 흉흉해진 민심을 가라앉히는 수단으로 내세운 듯하다.자유당정권이 이처럼 경제개발에 늑장을 부린 데 대해 이한빈은 그의 논저에서 “한국 사회를위하여 커다란 불행이었고 한 토막의 역사의 풍자”라고 비판했다. 4·19혁명∼許政과도정부∼장면정부 출범이라는 격변 속에서도 산개위는 장기경제개발계획을 마련하는 본연의 임무를 꿋꿋이 수행했다.장면정부는 출범한 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60년 9월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정부시책으로 채택한다고 공표했다. 이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자유당정권의 ‘3개년계획’을 토대로 하되 근본적인 차이점을 지닌 별개의 것이었다.산개위에서 ‘3개년계획’과 ‘5개년계획’을 작성하는 데 실무자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金立三전경련고문(77)의설명은 다음과 같다. “거시적인 면에서 3개년계획은 산업 각 부문을 고루 발전시킨다는 ‘균형성장이론’에 토대를 둔 반면 5개년계획은 특정 부문에 투자를 집중해 전체적인 성장을 이끌어가는 ‘전략 부문 중점투자’이론을 채택했다.작성 방법도 전혀 달라 5개년계획은 노동력은 풍부하면서 자본이 부족한 나라에 적합한 새 모델을 적용했다.” 자유당정권의 계획과 장면정부의 계획이 이처럼 달라진 이유를 金고문은 “선진이론을 꾸준히 연구해 우리 실정에 맞게끔 다듬어 나간 데다 정부의 의지를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개위가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새로 만드는 동안 장면정부는 경제개발의 성패를 좌우하는 미국의 원조를 얻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60년 9월 장면총리 명의로 크리스천 허터 미국 국무장관에게 보낸 에이드 메모아르(일명 Economic Reform Measures in Korea)는 당시 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제개발 계획 당시 부흥부 기획국장 李起鴻씨 李起鴻씨는 1956년 12월 부흥부 기획과장으로 출발해 장면정부에서는 부흥부 기획국장을 역임했으며 63년 경제기획원 차관보로 공직을 마감했다.그 7년동안 경제개발 계획의 큰 틀을 짜고 방향을 제시하는 주역 노릇을 했다. 61년 5월 기획국장인 그는 李漢彬 재무부 예산국장,金泳祿 재무부 이재국장과 함께 워싱턴에 가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미 정부에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하다가 5·16쿠데타 발생 소식을 들었다. 李전차관보는 “그해7월 張勉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로 돼 있었다”면서 회담에서 지원을 요청하기에 앞서 미국측 의사를 확인해 보려고 실무교섭단으로 미리 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 관리들이 우리가 가져간 제1차 5개년계획 시안을 보고 ‘구매품목 표’라고 놀리듯 말하긴 했지만 상당한 호의를 갖고 격려해 주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5개년계획에 필요한 재원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귀띔을해줘 다시 한번 장면정부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지지를 엿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李전차관보는 “5개년계획이 어떻게 작성되었으며 집행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아직 없다”고 개탄하면서 朴正熙정권의 왜곡사례를 들었다. 60년대 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미 하버드대의 콜 박사와 합작으로 한국경제발전사를 기술했는데 5개년계획의 작성 배경이나 장면정부의 경제시책등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62년 1월 군정이 선포한 5개년계획의 구성과 방향만을 논했다는 것이다. 그 후 80년대에 콜 박사를 자주 만나게 돼 “장면정부의 5개년계획을 포함하지 않고서 어찌 공정하고 객관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고 한다.그러자 콜 박사가 “5개년계획이 장면정부에서 상당히 진척된 것은 알지만 기록이 없으니 어떻게 하느냐”면서 거꾸로 “왜 기록을 남기지 않았느냐”고 공격하더라는 것이다. 李전차관보는 “국가연구기관인 KDI가 집권층인 군 출신들의 눈치를 보지않을 수 없어서 그랬을 테지만 학문적 양심을 저버린 것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그런 한편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5개년계획을 박정희정권 때 시작한 것으로 아는 데는 나처럼 직접 관련된 사람들이 기록을 남기지 않은 탓이크다”는 깨달음도 얻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李전차관보는 경제개발계획,국토건설사업 등 장면정부의 경제정책에 관한 자세한 소개도 곁들인 회고록 원고를 최근 마무리지었다.그 내용은 ‘경제 근대화의 숨은 이야기’(보이스 간)라는 제목으로 이달 안에 출판될 예정이다.李容遠
  • 배구계의 ‘카라얀’ 이희완… 독일여자대표팀 감독됐다

    [프랑크푸르트 남정호 통신원] 독일에서 배구 클럽팀 지도자로 활약중인 재독 한인 이희완씨(44)가 독일 여자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 독일배구협회의 베르니 폰 몰트케 회장은 3일 독일 남자배구 1부리그 소속의 SV 바이에르 부퍼탈팀 감독인 이희완씨를 여자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밝히고 “이감독이 지도자로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며 독일 배구계에서큰 신임을 얻어왔다”고 선임 이유를 설명했다.이감독은 이로써 오는 6월부터 2년 동안 연봉 12만 마르크(8,400만원)를 받으며 독일 여자대표팀을 이끌게 됐다.한국인이 독일 여자 배구대표팀 감독을 맡기는 70년대 박대희씨(63)에 이어 두번째다. 감독 선임 발표가 나온 뒤 독일 언론들은 이감독의 지휘능력을 ‘전설적’이라고 극찬하고 있으며 한 배구잡지는 그를 세계적인 명지휘자 헤르베르트폰 카라얀에 비교,‘배구계의 카라얀’이라고 찬양했다. 대신중고-성균관대-상무-금성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75∼81년 국가대표 세터로 활약한 이감독이 독일에 첫발을 디딘 때는 81년.파더본팀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뒤 레버쿠젠 바이에르팀(현 부퍼탈팀)으로 스카우트돼 선수로 뛰다가 코치를 거쳐 91년 감독으로 승진했다.이감독은 같은해 팀이 연고지를 레버쿠젠에서 부퍼탈로 옮긴 뒤 93시즌 준우승,94시즌 우승을 이끌었고 현재소속팀을 분데스리가 10개팀 중 수위에 올려놓았다.이감독은 지금까지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4번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특히 97년 분데스리가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 도중 소속팀의 패색이 짙어지자 선수(세터)로 나서 역전승을 이끌어냄으로써 독일 배구계의 신화적존재로 떠올랐다. 이감독은 94년 제2회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서울시리즈를 앞두고 독일대표팀 기술담당 코치로 선임돼 독일 여자대표팀과 첫인연을 맺은 뒤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당시에도 이감독은 독일배구협회의 강력한 권유를 받았을정도로 일찍부터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 이감독은 쾰른체육대학에서 스포츠의학과 트레이닝학을 전공했으며 91년 ‘한국과 독일의 배구트레이닝 비교연구’란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학구파이기도 하다. 이감독은 독일로 가기전까지 김호철(이탈리아 클럽팀 감독) 강만수씨(현대자동차 감독) 등과 함께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했다.
  • 서울시립대 총장에 李棟씨

    지난달 26일 실시된 제4대 서울시립대 총장 선출을 위한 교수들의 투표에서 서울시 부시장출신의 李棟 교수(58·도시계획 석사·건축도시조경학부)가압도적 득표를 함으로써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서울시립대에 석사총장 시대가 열리게 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2일 “李교수에 대한 교수들의 압도적 지지가 확인된 이상 다른 선택을 하기는 어렵게 됐다”고 말해 李교수가 사실상 차기 총장에 내정됐음을 밝혔다. 李교수는 선거에서 157표를 얻었으며 이어 成耆澈교수(61·국어국문학과)와尹在豊교수(61·도시행정학과)가 31표와 28표를 얻었다. 曺德鉉 hyoun@
  • 중앙권한 합리적 지방이양 제시

    高在得 성동구청장(53·사진)이 25일 고려대 졸업식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 제목은 ‘중앙권한의 지방이양 촉진 법률안 시행에 따른 사무이양 기준의 모호성 해결방안’.환경부와 서울시의 환경관련 165개 사무를 토대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합리적인 사무배분을 통해 중앙행정권한의 합리적인 지방이양 방안을 제시한 논문이다.특히 설문조사를 통해 서울시와 환경부 직원들간에 권한이양의 기준에 큰 차이점이 있음을 밝혀낸뒤 나름대로해결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高구청장은 논문에서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자체 내부의 행정개혁과 체제정비가 선행돼야 한다”며 지자체의 행정에대한 주민참여 확대와 지방의회의 활성화를 통한 자치능력 제고를 역설했다. 또 “현 경제위기의 중요한 요인은 지나친 중앙집권적 행정체계에 있다”고 진단하고 “지자체의 다양성과 자율성의 신장을 통해 행정의 생산성을 높여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文昌東
  • 서울시립대 총장 선거 열기 후끈

    金鎭炫 총장의 임기가 4월 말에 끝나는 서울시립대는 요즘 후임총장 선거열기로 뜨겁다.지난 12일 마감된 후보등록 결과 전 서울시부시장 출신의 李棟교수(58·건축도시조경학부)와 시립대 대학원장을 지낸 成耆澈교수(61·국어국문학과),부총장을 지낸 尹在豊교수(61·도시행정학과) 등 3명이 출마했다. 시립대 총장은 전체교수 236명이 투표해 상위득표자 2명을 서울시장에게 추천한뒤 지방교육공무원 인사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서울시장이 임명하도록 돼있다.현 3대 총장까지는 대통령이 임명했으나 이번 4대부터는 서울시장이 임명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선거는 26일 치러지며 3월 31일까지 추천을 받아 5월 1일 임용할 예정이다. 李교수는 서울시 시정연구관,종합건설본부장,지하철건설본부장,부시장 등서울시에서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해 시의 행정에 밝은 편이다.李교수가 총장이 되면 석사총장이 탄생하는 셈이다. 成교수는 국제한국어교육학회 회장과 국어정보학회 부회장,대학원 원장 등을 지냈고 尹교수는 한국행정학회 회장,시립대 학생처장,교무처장,도시행정대학원장,부총장 등을 지내 학교 행정에 밝은 것이 강점이다. 현재 교수들 사이에는 학교발전을 위해서는 서울시 행정에 정통한 부시장출신이 총장이 돼야 한다는 주장과 학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어야 한다는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曺德鉉
  • 현직구청장 논문 화제/吳熙重 대전 대덕구청장 석사학위

    吳熙重 대전시 대덕구청장이 경영행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지방자치단체의 경영혁신 전략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한남대 지역개발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吳구청장은 이 논문에서 최소의 투자와 최대의 주민효용을 전제로 하는 성과주의와,고객지향적 기업가형 자치정부로 재창조하는 경영행정의 혁신전략이 오늘날 지방행정에 요구된다고 지적하고 선진국의 성공사례를 제시했다. 논문은 자치행정의 정책입안기능과 집행기능을 분리하고 행정서비스에 경쟁체제를 도입,구민 만족도 조사를 통한 성과 중심의 예산배분 및 인센티브 부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비스 속도를 높이기 위해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대폭적인 권한 위임과행정정보화를 통한 논스톱 체제를 구축하는 일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특히 경영적 측면에서 제3섹터 활용과 사업의 선정 및 지원제도 개선,통제장치의 정비 필요성도 제기됐다. 논문은 행정조직의 경영체제 혁신방안으로 ‘품질관리’ 전략기법을 제시하고 성공적 실현을 위해서는 자치단체장의 강한 의지와 지역경제 육성,재정자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吳구청장은 “지역행정의 무경험·무지식·무노하우 등 3무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96년 대학원에 진학,체계적인 행정철학이 담긴 학위논문을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전┑崔容圭 ykchoi@.
  • 이 사람…李昌華 풍납사회복지관장

    송파구 풍납종합사회복지관장 李昌華씨(42)는 시각장애인이다.지난 97년부터 복지관 운영을 맡아 장애인의 권익보호에 힘써오고 있다. 그는 장애인이 일반인처럼 생활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정신질환자들의 사회복귀훈련.정신질환자들이 일반인과 함께,일반인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다.현재 30명이 참여하고 있고 이가운데 4명은 이미 분식센터를 냈다. 李관장은 지난 96년부터 장애인조기교육실도 운영하는 한편 지난해부터는어린이시설과 양로원이 함께 들어선 풍납마을복지센터까지 관리하고 있다.그가 이같은 일을 하게 된데는 金聖順 송파구청장의 배려가 컸다.서울시 보건사회국장 시절 金구청장은 그와 자주 접하면서 30대때 장애인복지관을 운영한 경험과 능력을 높게 샀다. 어릴 때부터 약시였던 李관장은 일반학교와 맹인학교를 오가며 고교까지 마쳤다.그뒤 책 내용을 녹음,같은 처지의 시각장애인에게 나눠주기도 했고 김치공장 운영과 건축일 등 안해본 일이 별로 없다.실패도 했지만 성공해서 돈도 좀 벌었다.그동안 번 돈 6억원을 털어 ‘자산재단’이란 복지법인도 세웠다.그러나 그는 지금의 일을 자선이 아니라 사업이라고 평가한다. 32살때 강남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석사과정을 마쳤고 요즘은 공주대 특수교육학과에 출강도 한다. 그는 일반컴퓨터에 음성장치를 달아 컴퓨터도 이용한다.PC통신에 ‘전자도서관’을 개설,장애인들끼리 정보도 교환한다.더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도록 전국적인 네트워크망의 ‘전자도서관’을 만들어줄 것을 정부에 요청,4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았으나 국회에서 삭감됐다며 아쉬워했다. 李관장은 “장애인도 정보화사회의 혜택을 받아야 하며 장애인이 정상인들과 함께 생활하려면 정책을 맡은 분들의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 경제프리즘-‘토종’ 전문가를 길러라

    전문가가 우대받아야 할 이유는 간단하다.능력때문이다.사회구조가 세분화하고 다양해짐에 따라 전문영역의 골은 깊게 패이고 다양해지게 마련이다.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던 시대는 지났다.수십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사장이나온 것도 특정분야에서의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요즘 여의도 금융가는 ‘외부 전문가’의 전성시대다.외국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땄거나 변호사 회계사 등의 자격증이 있으면 ‘주가’는 더 올라간다.최소한 ‘외국물’을 먹어야 명함을 내민다.금융감독원이 지난 5일특채한 전문인력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내부’에서 실력을 다진 국산 샐러리맨들은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는다.업무능력은 뒤지지 않지만 학위나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자격심사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외부 전문가들이 각고의 노력끝에 학업을 이루고 각종 자격증을 딴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간판’만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높은 직위에다고액의 연봉까지 제공받아서는 직장내위화감만 조성할 뿐이다. 전문가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전문가가 외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내부에서도 전문가는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 수십억원대의 돈으로 ‘철새’가 될 지 모를 외부 전문가를 초빙하기 보다수억원대로 ‘텃새’가 될 가능성이 높은 내부 전문가를 길러내는 게 낫다.내부인을 위한 교육과 연수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꼭 필요한 곳에는외부 전문가를 적극 ‘수혈’하되 내부인에게도 최소한의 기회는 줘야 한다.외부전문가만이 능사가 아니다.白汶一
  • 약물복용선수 한명 없는 건전대회로 기록

    ▒강원동계아시안게임은 약물복용선수가 전혀 없는 건전한 대회로 마감될 예정이다. 조직위원회가 4일까지 102명의 선수의 도핑테스트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의뢰한 결과 양성반응자가 단 한명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내 2관왕이 된 최재봉은 경기가 끝난 뒤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며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답례.모두 6개조로 나눠 벌어진 이 종목 4번째 조에서 속했던 최재봉은 마지막 6번째조 레이스가 끝나면서 금메달이 확정되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싱글벙글 웃는등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날 춘천국제빙상장에는 700∼800여명의 관중이 모여들었지만 일부 관중들은 선수보호를 위해 설치한 펜스까지 내려오는가 하면 경기장 출입구 계단에서 경기를 관람,통행을 방해하기도.조직위 관계자는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관중들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며 유종의 미를 아쉬워했다.▒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은메달을 딴 제갈성렬(29·삼성화재)이 대학교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현재 단국대 대학원 석사과정 마지막 학기를 남기고 있는 제갈성렬은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선수의 근밀도를 주제로논문을 작성 중인데 논문이 통과되면 박사과정에 등록할 생각.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훌륭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제갈성렬은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얼음판에서 겸비한 실전 경험과 체계적인 이론을 후배 선수들에게 전수할 계획.▒이번 대회 경기장들은 대회 이후 시민체육시설로 활용된다.대회를 앞두고총 1,493억원을 투자해 용평 알파인스키장 등 5곳의 경기장을 건설했던 정부(99억원)와 강원도(304억원),쌍용그룹(1,090억원)은 이들 시설물들을 시민들이 체력을 단련하며 여가를 즐기고 각종 스포츠도 관전할 수 있는 다목적 경기장으로 용도 변경할 예정이다.
  • 서울대 대학원 영어시험

    지난해 말 치러진 99학년도 서울대 대학원 정시모집과 관련,불합격처분 취 소 청구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A씨는 30 일 “영어과목 시험에서 낙제하는 바람에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시험에서 떨 어진 것은 부당하다”면서 서울대를 상대로 대학원 정시모집 불합격처분 취 소 청구소송을 서울 행정법원에 냈다. A씨 외에도 영어시험 과락으로 떨어진 불합격자 10여명이 이번 주에 같은 내 용의 소송을 법원에 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姜忠植 全永祐 chungsik@
  • 육상간판 이진일 은퇴설‘모락모락’

    한국 육상의 간판스타 이진일(26 제주시청)이 트랙을 떠나는가.대한육상연맹은 25일부터 우수선수들을 소집해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에 들어갔으나이진일이 입촌을 하지 않아 은퇴 결심을 굳힌 것이 아니냐는 설이 난무고 있다.연맹측은 이진일의 입촌을 설득하고 있다.이진일은 연맹에 한달 정도 거취에 관해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그러나 “어릴 때부터 꿈이던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학업에 정진하겠다”고 말해 은퇴에 무게가 더 실린다. 이진일은 현재 경희대 대학원에 석사논문을 제출해 놓은 상태.이진일은 800m가 주종목으로 95년 금지약물 양성반응을 보여 자격정지를 당했다가 2년만에 복권된 후 피나는 훈련을 거듭해 자신의 아시아기록(1분44초14)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작년 방콕에서 열린 제14회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회 2연패를이루며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경희대 2년이던 94년 한해에만 2개의 아시아신기록을 잇달아 세워 세계기록에 근접,월드스타 대열에 올랐고 오는 2000년시드니올림픽에서도 메달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 ‘99문화를 여는 사람-국악 소리꾼 김용우씨

    ‘재미없다’‘부르기 힘들다’‘낯설다’‘선택의 폭이 좁다’.국악하면으레 떠올릴 수 있는 지적들이다.그러나 소리꾼 김용우(32)의 우리 노래 소리를 한번만 들어보면 국악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들이 말갛게 사라진다. 듣는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낄수 있도록 편곡했으나 민요의 특징인 시김새(꾸밈음)와 기본가락을 유지,누가 뭐래도 우리 노래다.특히 재즈,클래식,아카펠라와 어우러져 무대에 울려퍼지는 그의 소리를 들으면 우리 노래도 이렇게 재미있게 부를수 있구나하고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또 슬프고 구성진 가락도 그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오면 밝고 힘차게 변한다.이는 김씨가 수천수백년 동안 이어져 온 우리 소리들을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끼고 좋아하게할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나온 열매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야 합니다.전통음악을 하는 사람들 역시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들으면서는 왜 사람들이그 음악을 좋아하는 지를 분석하고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그래야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경쟁할 수는 것이지요.” 김씨의 우리 소리 경력은 국악과의 인연에 비하면 짧다.피리 부르는 것이좋아서 국악고에 진학했고 대학에서도 피리를 전공했다.소리를 시작한 것은대학교 1학년 때로 선비들이 불렀던 가사(歌詞)를 먼저 시작했다.지금은 중요무형문화재 41호 ‘12가사’ 이수자가 됐다.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소리를찾아다닌 것은 91년부터. “민요채집을 하면서 한번 만났던 할아버지 할머니를 다시 만날수 없는 경우가 많았었요.그분들의 삶과 함께 우리 소리들이 사라져간다는 절박함이 소리찾기에 전념하게 한 것 같습니다” 3년여 동안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300여곡의 민요를 채보(採譜)했다.그러면서 오복녀 박병천 조공례씨 등 인간문화재를 찾아다니며 서도소리,진도씻김굿,남도소리를 사사,음악적 기량을 넓혔다.그가 이처럼 다양하게 소리를 할수 있었던 것은 가사를 부르면서 닦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소화할 수있는 목구성(목이 우리가락을 하기에 맞게 단련된 상태를 말함)을 갖게되었기 때문이다.국악실내악단 ‘슬기둥’에서 활동하다 지난 97년 말독립했다. 오는 3월 김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석사과정에 입학,다른 장르와 활발한 교류를 갖고 새로운 음악세계를 모색하는 한편 상반기 중 우리의현실을 담은 앨범을 낼 계획이다. 고여있는 물은 썩는다.젊은 소리꾼 김용우는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姜宣任 sunnyk@
  • 외언내언-소주·양주 통상분쟁

    우리나라의 전통 주(酒)는 곡주로 삼한시대에 누룩을 사용해서 빚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동명성왕의 건국담에도 술 얘기가 나온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1년 편에는 지주(旨酒·맛좋은 술이란 뜻)란 말이 나온다.삼국시대에는 곡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동해석사(東海釋史)와 지봉유설에는당대의 시인 옥계생(玉溪生)이 ‘한잔의 신라주(新羅酒)의 기운이 새벽 바람에 쉽게 사라질까 두렵구나’라는 시를 소개해 놓을 정도로 신라주의 인기가 높았다.일본의 ‘고사기’를 보면 응신천황(서기 270∼312년)때 백제의 수수거리가 새로운 방법으로 좋은 술을 빚어 전하여 후세에 그를 주신으로 모셨다고 한다. 증류해서 만든 소주는 고려 후기에 몽골에서 유입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페르시아를 정복한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알코올 증류법을 배워 고려침략 때(1274년) 가져온 것이다.몽골군이 주둔했던 제주도에서는 소주를 노주(露酒·밑술을 고아서 이슬같이 받아낸 술이란 뜻)라고 불렀다.아랍어에서는 알코올을 ‘아라그’라고 발음하고 해방 전까지 개성에서는 소주를 아락주라고 부른 것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려 때는 사찰이 여행자의 숙박지로 이용됐을뿐만 아니라 술을 판매하는 풍속이 있어 사찰을 중심으로 다양한 술이 개발된 것 같다.고려 현종(1140년)은 술로 인한 폐단이 심하자 사찰에서 술을 빚고 마시는 것을 금했지만 고려 후기에 증류주가 도입되면서 술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증류주의 하나인 양주는 19세기 조선조 말 외국과 교역이 쉬워지면서 도입된다.양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거의 1세기가 지난 지금 소주와 양주를놓고 통상분쟁이 일어 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유럽연합(EU)과 미국은 지난 97년 한국이 소주의 세율은 35%,양주세율은 100%로 정한 것은 잘못이라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WTO는 지난 18일 세율분쟁 상소심에서 한국에 패소판결을 내렸다.이 판결에 따라 한국은 향후 15개월 안에 EU·미국과협의를 갖고 새로운 주세율을 만들어야 한다.당국은 소주세율은 덜 올리고양주세율은 덜 내리는 타협안을 마련,협상을 할 방침이다.지난해 전체 술소비는 9%가 줄었으나 소주는 4.8%가 증가했다.당국은 서민들이 기쁠 때나 슬플 때 찾는 대중주(大衆酒)인 이 소주 값이 너무 많이 오르지 않는 방향으로 협상을 매듭짓기 바란다.
  • 돈을 불려드립니다

    요즘 증권가에서는 사람얼굴 알리기가 한창이다.미래에셋의 ‘박현주펀드’가고객모집에 성공하자 각 투신사나 증권사들은 간판급 펀드매니저들의 얼굴을 내걸고 신문광고까지 하면서 고객모집에 나섰다.▒張東憲(한국투자신탁) 목표수익률 10%를 3일만에 달성해 스폿펀드를 조기상환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치밀한 분석과 강세장이라는 판단이 서면 주식편입비율을 95%까지 늘리기도 하는 공격적 스타일.동국대 무역학과와 미국아이오와주립대에서 MBA를 마쳤다.MBA시절 아이오와주립대 동문회기금을 금융상품에 투자해 큰 이득을 남기기도 했다.▒孫丙(대한투자신탁) 목표수익률 20%를 6일만에 달성해 유명해졌다. 내성적 성격이지만 강세장이라 판단되면 공격적이다.서울대학원 경영학 석사이며 영국의 유명투자그룹인 ‘슈로더’에 근무한 경험이 있어 세계 금융시장 사정에 밝다.‘컴퓨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張寅煥(국민투자신탁증권) 광고에 이름만 등장하지만 익히 알려진 인물.3개 투신사 중 국민투신이 상환율 1위(98년 24개)를 자랑하는데는 그의 힘이컸다.하락장세에서 진가를 발휘한다.지난해 11월에 다른 펀드가 손실을 기록한 가운데서도 ‘스파트펀드’를 조기상환했다.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왔고 연세대학원에서 금융을 전공했다.▒梁裕植(대신투자신탁운용)종목이 정해지면 적극적으로 사들이는 스타일.선물도 과감하게 운용한다.주식편입비율은 최고 70% 정도로 하고 위험회피용으로 국공채를 다룬다.국제금융시장 흐름에 밝다.미국 앨라배마 주립대 회계학 석사.▒崔權昱(서울투자신탁운용) 단기매매보다 장기매매에 강하다.지난해 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업계 2위인 44.7%.보수적 운용으로 위험관리에 치중한다.저평가주식을 거래가 없을 때도 조금씩 사들여 몇개월 뒤 수익을 내는 스타일.서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원 경영학과를 나왔다.3년전 매니저 전성시대를예감하고 국민투자신탁에서 서울투신운용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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