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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인생의 등대] 최창식 서울시 도시관리정책보좌관

    [내 인생의 등대] 최창식 서울시 도시관리정책보좌관

    “한 우물을 파면 삶의 보람이 따른다는 사실을 30년 가까이 되는 공직생활이 일깨워 줬습니다.” 2일 시청 태평홀에서 만난 서울시 최창식(53) 도시관리정책보좌관은 “두분의 스승과 공직생활 자체가 삶의 좌표가 됐다.”고 회고했다. 성균관대 은사인 신현묵 교수와 서울대 환경대학원 최상철 교수가 ‘외길’을 걷게 한 주인공이다. “최창식 당신, 학교 나가 봐야 할 것이라곤 공무원 말고는 없어….” 최 보좌관은 “대학교에 다닐 때 신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자주 했는데 결국 ‘씨앗’이 됐다.”고 웃었다. 자신을 그리 활달하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로 보고, 지도해 준 도움말이 됐다. 아무튼 최 보좌관은 졸업을 한 뒤 몇몇 기업체에 들어갈 뻔했다. 하지만 며칠 출근하며 ‘개인보다는 공공을 위해 일하는 게 보람이 클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1977년 해군에서 제대를 하자마자, 그동안 해오던 기술고시 공부에 매달려 이듬해 3월 도시계획국 토지구획정리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5년 3월 도로과로 옮기기까지 이곳에서 8년이나 근무했다. 영등포구 건설국장을 지낸 뒤 1989년 11월 지하철건설본부로 가서는 본부장 등을 지내며 지난해 7월 현직에 부임하기까지 12년간 ‘터줏대감’으로 버텼다. 그는 현재 첫 부임지인 토지구획정리과의 후신이라 할 뉴타운 관련 추진본부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시의 도시계획 전문가다. 그런데 공직생활 만 3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1981년 네덜란드에 정부 장학생으로 유학 갔다가 11개월 만에 돌아와 또 같은 부서로 발령난 것이다. “선생님,3년이 넘었는데 똑같은 업무를 하게 됐습니다. 짜증도 나고, 싫증도 나고 어떡해야 할지 원….” 그러자 당시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과정을 지도했던 최 교수가 “이웃나라인 일본의 경우 7∼8년도 하는데 그러지 말라.”는 따끔한 충고에 더 이상 한눈을 팔지 않았다. 이후 해외출장 때마다 다른 나라 공직자들의 근무자세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얼마 전 중앙인사위원회 통계를 봤는데 평균 근속연수가 과장급 10.8개월, 국장급 11.3개월이더군요. 정부의 경쟁력이 바닥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업무상 긴밀한 협의가 절실한 중앙부처 간부들이 자주 바뀌어 애를 먹었다.”며 전문화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고시플러스] 서울시 ‘라’급 계약직 2명 모집

    서울시(www.seoul.go.kr)는 ‘라’급 지방계약직 공무원 2명을 모집한다. 정보시스템개발요원, 서버 등 시스템관리운영요원 1명씩이다. 관련 전공 석사학위자 또는 학사학위자로 3년 이상 경력이 있으면 지원할 수 있다. 지원서는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아 7일부터 12일까지 서울시 정보화기획담당관 앞으로 접수한다.(02)3707-9171∼3.
  • 中 교육부 “취업률 낮은 학과 폐쇄하라”

    “취업이 저조한 학과는 문을 닫아라.” 중국 교육부가 베이징(北京)대, 칭화(淸華)대 등 전국 주요대학에 엄명을 내렸다. 졸업생들의 취업이 저조한 전공분야에 대해 모집을 중지하거나 신규 모집을 대폭 줄이라는 다분히 강제성을 띤 지시다. 올 9월 신학기 대학 신입생의 규모는 475만명. 지난해에 비해 정원을 8%나 늘렸지만 경영, 전자, 생명과학, 신소재 등 첨단과학과 인기학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사회적인 수요가 없는 분야는 축소·도태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교육당국의 입장이라고 관영 신화통신 인터넷판이 1일 전했다. “대학 교육을 단기적인 시장 수요에 종속시키는 우매한 짓”이란 비난 속에서도 시장 수요에 맞춰 학과 및 모집정원에 칼을 대려고 서두르는 것은 고학력 및 청년 실업의 급속한 증가 추세 때문이다. 연평균 9%대의 높은 성장률에서도 지난해 청년 실업은 평균 실업률을 훨씬 웃도는 22%대로 추정된다.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학 및 대학원 석·박사과정의 정원을 배 이상 늘린 탓도 있지만,‘미취업 명문대 졸업자 자살’,‘막노동 2년째의 한 명문대 졸업생 이야기’ 등 고학력 청년실업의 어두운 사연을 다룬 언론 보도가 잇따를 정도로 고학력 청년실업과 취업대란이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대졸자의 취업률은 75∼80%. 그러나 지난해 대졸자 280만여명 중 석사과정 응시자 170만여명을 감안하면 실제 취업률은 훨씬 더 낮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노동사회보장부는 올해 1600만개의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밝힌 바 있다. 당국의 이같은 지시에 베이징대·푸단(復旦)대 등은 구체적인 시행방안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결국 시장수요가 대학교육의 재편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삼겹살·순대 맛에 푹 빠졌어요”

    3년 동안 한국의 고교에서 우리 교과과정을 배웠던 외국 유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했다. 경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서울산업대에 합격한 9명이 그들로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출신이 각각 3명씩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초청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이들은 지난 2002년부터 한국에서 살며 배우고 있다. 이미 지난 98년부터 선배 31명이 한국에서 고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9명 전원이 대학에 진학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최고 18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이들의 한국행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고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기숙사가 제공된다. 경기기계공고 추교수 교사는 “모두 그 나라에서 엘리트로 꼽히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의 이들에게 한국 생활은 낯설고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쇼핑을 하러 갔는데 대부분이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 hina)’라서 한번, 그러면서도 가격이 비싸서 또 한번 놀랐죠.” 중국에서 온 둥밍(董明·20)은 대뜸 이렇게 말한다. 둥밍은 “신문 보도가 자유롭고 드라마나 음악은 물론 영화 같은 문화산업이 발달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학생들에게 한국 생활은 ‘문화적 충격’이라 할 만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아브로르(20)는 “처음엔 학생들이 직접 교실을 청소하고 선생님들이 예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삼겹살, 순대의 맛에 푹 빠져 있다. 중국 출신 류린(劉琳·19)은 “한국 음식 만드는 것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9명중 4명은 한국인 조상을 둔 ‘고려인’이다. 러시아에서 온 양 이고르의 할아버지는 서울 출신으로 구한말 사할린으로 이주했다가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아픈 가족사를 지니고 있다. 늘 할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에서 공부해보고 싶었다는 이고르는 “서울의 친척들을 만나게 돼 정말 기쁘다.”며 웃었다. 고려인 학생들에게도 한국어 익히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려인 3∼4세인 이들은 우리말을 모른 채 한국에 왔다. 한국어학원을 다니고 학교 생활을 3년이나 했지만 아직도 우리말은 서툴다. 2일 대학 입학식을 갖는 이들이 사뭇 기대하고 있는 것은 ‘소개팅’이나 ‘미팅’이다. 하지만 이성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이 공부에 대한 욕심을 앞지르진 못한다.“석사, 박사까지 따 양국 교류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것”이라는 이들에게서 대학 새내기의 풋풋한 꿈이 읽혀진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구정 이삭]

    ●서울역사박물관은 4일(금)까지 영어전문 통역원(전임 다급) 1명의 채용 지원을 받는다. 통·번역 및 국제대학원 석사학위 취득후 3년 이상 경력자, 학사학위 취득후 6년 이상 경력자, 영어권대학 석사학위 취득자 등에 한한다. 계약기간 2년.(02)724-0111.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11일(금)까지 ‘드림파크장학금’ 신청서를 접수한다. 홈페이지(www.slc.or.kr)에서 지원서를 내려받아 공사 사무관리처에 제출하면 된다.(032)560-9410. ●서울 서대문구는 12일(토)까지 도시계획분야 다급 1명, 라급 1명의 채용지원서를 교부한다. 다급은 만 20∼45세, 라급은 만 20∼40세로 학력 및 경력조건을 갖춰야 한다.(02)330-1385∼6. ●서울 강서구는 25일(금)까지 제9회 강서구민상 후보 추천을 받는다. 추천대상은 강서구에 3년 이상 거주한 사람으로 ▲지역사회발전▲구민화합봉사▲환경보호▲문화체육발전▲미풍양속 등에 두각을 나타낸 주민이다. 총상금 600만원.(02)2600-6041. ●서울 노원구는 26일(토)까지 중소기업운용기금 지원 대상자를 모집한다. 노원구 지역에 공장등록이 되어 있는 제조업체나 무등록공장 중 적법 건축물에서 사업자등록을 받은 제조업체다. 연리 3%에 1년거치 3년 분할상환 조건이며 업체당 2억원까지 융자해준다.(02)950-3368. ●한국건강관리협회 인천지부는 5월31일(화)까지 예비부부를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청첩장 등을 가지고 협회 종합건강검진센터에 들르면 된다.(032)884-7131. ●서울 양천구는 매달 1∼2회 실시하는 ‘양천가족 지역탐방’에 참가할 주민을 모집한다. 온수근린공원, 지양산 등을 둘러본다.(02)2650-3410∼3. ●서울 성동구는 ‘생활과학교실’에 참가할 초등학교 4∼6학년을 연중 모집한다.3개월 과정이며 한양대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가 운영한다. 각 동별 20명 선착순 접수.(02)2286-5146∼8. ●서울 금천구는 3월부터 여성복지 상담소를 운영한다. 가정폭력 등 가정문제와 성폭력 등에 대해 상담해준다.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 인터넷(www.geumcheon.go.kr/site/woman)으로도 상담할 수 있다.(02)856-2950,1688-1004.
  • [재계 인사이드] KCC ‘형제 경영’ 성공할까

    [재계 인사이드] KCC ‘형제 경영’ 성공할까

    범 현대가인 금강고려화학이 ‘쌍두마차 형제경영’ 체제를 구축해 눈길을 끌고 있다. 회사 이름도 케이씨씨(KCC)로 바꿨다. 28일 케이씨씨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25일 정기총회를 열어 정몽익(43)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에 따라 몽익씨는 ‘친형’인 정몽진(45) 현 대표이사 회장, 전문 경영인인 김춘기 현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독립적인’ 대표이사로서 나란히 케이씨씨를 이끌게 됐다. 몽진씨와 몽익씨는 정상영 케이씨씨 명예회장의 첫째, 둘째아들이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내동생으로 현대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은 장남인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차남을 대표이사로 추가 선임한 배경이다. 케이씨씨측은 “대주주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몽익씨의 공식 직함은 대표이사 총괄부사장 겸 관리본부장. 다른 두 명의 부사장(해외본부·생산기술본부) 업무를 총괄하고, 재무·인사·총무 등 회사 안살림을 책임지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몽진씨와 몽익씨가 걸어온 길이 쌍둥이처럼 똑같다는 점이다. 두 살 터울인 두 사람은 나란히 서울 용산고를 나와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미국 조지워싱톤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학위)를 딴 것도 같다. 둘 다 재무쪽에 밝다. 그룹 입사는 몽익씨가 2년 빨랐다.1989년 ㈜금강에 입사했다. 몽진씨는 91년 고려화학㈜으로 들어왔다.2000년 4월 정 명예회장이 순리대로 장남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지분도 일단 몽진씨가 가장 많다. 지난 17일 공시한 케이씨씨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몽진씨가 17.62%, 몽익씨가 8.81%를 갖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10.0%, 정 명예회장의 막내아들인 몽열(금강종합건설 사장)씨는 5.29%를 갖고 있다. 케이씨씨측은 “정몽진 회장이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현 경영구도에는 별 변화가 없을 것”이라면서 “이번 대표이사 추가선임을 통해 형제간의 공조가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대차의 의선(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씨와 현대백화점의 지선·교선(정몽근 회장의 아들)씨 등 집안의 그룹들이 후계구도를 조기 구축하고 있는 것도 이번 인사의 한 자극제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가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깨고, 케이씨씨의 형제 경영이 성공할지는 더 두고볼 일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위안부 피해는 현재진행형”

    “위안부 피해는 현재진행형”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28일 연세대 졸업식에서 ‘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증언의 정치학’이란 논문으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은 사카모토 지즈코(37)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해 온 9년간의 세월을 이렇게 정리했다. 사카모토의 논문은 일본 정부가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전제에서는 여느 위안부 관련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그는 할머니들의 문제를 과거에 국한해,‘피해의 역사와 증언’에만 주목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할머니들의 고통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현재에 대한 관심’을 주장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그는 “한·일간 민족주의 관점에서만 할머니들의 증언을 이용하게 되면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9년간 ‘나눔의 집’서 봉사활동 사카모토는 “할머니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피해를 증언하는 것이 큰 고통이라는 것을 지난해 6월 숨진 김순덕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느끼게 됐다.”고 소개했다. 증언집에는 김 할머니가 1992년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처음 털어놓고서야 40년 남짓 쌓였던 한이 풀려 그동안 못잔 잠을 푹 잤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후 할머니는 이곳저곳 불려다니며 ‘청취자’가 원할 때마다 아픈 과거를 되돌아봐야 했다. 사카모토는 “1998년 김 할머니가 도쿄의 한 추모 모임에서 5분 동안 증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당시 무대에서 내려온 할머니가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것을 봤다.”면서 “기억을 재현하기 위한 에너지 소모 때문이었는데, 요청자는 5분 정도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에게 과연 ‘할머니’가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할머니의 ‘증언’이 필요한 것인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카모토는 논문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피해 보상도 중요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피해자들이 안고 있는 마음의 상처까지 사죄와 배상을 받아야 한다.”면서 “할머니들에게 단지 ‘우리 민족의 어머니’가 되라고만 강요하고, 정작 그들이 과거의 기억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사카모토는 1996년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을 첫 방문한 이후 줄곧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는 “이용수 할머니, 고 김순덕 할머니 등 피해자들의 증언과, 관련 영화를 제작한 영화 기획사 직원, 시민단체 관계자, 피해 할머니의 정신검사를 맡았던 학자 등의 심층 인터뷰를 곁들여 논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94년 호주에서 평화청년단 활동을 하며 평화와 전쟁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며,2000년부터 연세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왔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협회 수장 대거 ‘새얼굴 단장’

    재계의 대표적인 친목단체이자 이익단체인 업종별 협회의 수장들이 대거 ‘새 얼굴’로 바뀌고 있다. 협회 대부분은 회원사 단합을 위해 회장직을 ‘순환제’로 정하고 있지만 일부 협회는 치열한 선거를 통해 뽑았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조선·석유화학·플라스틱·자동차·건설 등 10여개의 업종별 협회가 임기 2∼3년의 신임 회장을 선출했다. 한국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이날 서울 타워호텔에서 총회를 열어 조봉현 대현산업㈜ 대표이사를 회장으로 선임했다. 신임 조 회장은 인하대 공학석사 출신으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편의점협회도 이날 정기총회를 열어 오광열 현 회장을 임기 2년의 제7대 회장으로 재선임했다. 보광훼미리마트 회장이기도 한 오 회장은 협회 회장직만 세번째(2,6,7대)다. 그런가 하면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는 최근 정기총회를 열어 제13대 회장으로 이영일 호남석유화학㈜ 사장을 선임했다. 이 신임 회장은 인하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한국종합화학 호남비료에 입사한 뒤 호남석유화학에서 상무이사 등을 거쳐 98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왔다. 한국조선공업협회도 최길선 현대미포조선 사장에서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으로 ‘바톤’을 넘겼다. 김 신임 회장은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재무팀, 삼성물산 금융팀장, 삼성건설 전략기획실장 등을 거쳤고 2001년부터 삼성중공업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왔다. 김 신임 회장은 “재임기간 세계 1위 조선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구축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첫 외국인 회장’ 배출 여부를 놓고 관심을 끌었던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내부토론 끝에 ‘실리’를 선택,GM대우 이영국 수석부사장을 제12대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 신임 회장은 외국인인 닉 라일리 GM대우차 사장을 대신해 2007년까지 2년간 협회 회장직을 수행하며 정책간담회 등 자동차 관련 대외행사에 자동차업계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게 된다. 한국제약협회도 제60회 정기총회를 열고 허일섭 녹십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임기 2년의 이사장으로 만장일치 추대했다. 허 신임 이사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미국 휴스턴대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KAIT)는 제11대 회장에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을 선임했다. 이 사장은 지난 16일 열린 정보통신산업협회 이사회에서 새 회장으로 추천됐으며 향후 3년간 협회를 이끌어가게 된다. 건설 관련 협회장들도 대거 물갈이됐다. 대한설비건설협회는 2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설비건설회관에서 정기총회를 열어 제6대 회장에 박종학(61) ㈜동산테크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박 회장은 대한설비건설협회 서울시회 회장,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감사 등을 지냈다. 임기는 3년이다. 대한건설협회는 최근 정기총회를 열고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을 제23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치열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권 회장은 당선 소감에서 “협회는 내부 변화와 혁신을 통해 회원사를 위한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며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정책개발과 비합리적인 제도 개선 등 정책브레인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건설협회 회장이 선거를 통해 선출되기는 1999년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와 대한건축사협회도 최근 총회를 열어 장시걸씨와 이철호 ㈜승창엔지니어링 건축사 사무소 대표를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도 최근 김동섭 ㈜컴윈스 대표이사를 신임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한편, 업종을 떠나 중소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28일 정기총회에서 김영수 전 기협중앙회장을 임기 2년의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김 명예회장은 2000년 11월부터 2004년 2월까지 기협 회장을 두차례 지냈다. 위성방송수신기 및 사무자동화기기 전문업체인 ㈜케드콤의 회장이기도 하다. 안미현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소액 다수” “다액 소수” 서울대 장학금 갈등

    ”소액 다수” “다액 소수” 서울대 장학금 갈등

    ‘소액 다수’냐,‘다액 소수’냐. 서울대가 장학금 논쟁에 휩싸였다. 새 학기부터 장학금 제도가 ‘소액 다수’에서 ‘다액 소수’ 위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학교측은 “그동안 장학금 정책이 수혜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정되다 보니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등록금을 깎아주는 개념으로 운영됐다.”며 개편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수업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의대와 수의대 등 일부 단과대와 석사 과정 학생들은 수혜 폭이 줄면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됐다고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장학금 2.7배 늘었으나, 수혜자는 3분의2로 줄어 서울대가 올해 새로 도입한 ‘강의·연구 지원 장학금 제도’는 학기마다 장학금 대상자로 정해진 박사과정 학생이 등록금을 전액 면제받을 뿐 아니라 한 달에 60만원씩 연구비도 지원받도록 했다. 교수 한 사람이 한 명씩 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다. 대신 지난해까지 학비의 50∼70%를 보조하던 부분 장학금 제도는 아예 없어졌다. 대학원의 올해 장학금 예산은 지난해 92억여원에서 2.7배가 넘는 249억여원으로 늘었다. 재원은 대부분 발전기금 모금으로 마련됐다. 하지만 대학원 정원 대비 수혜율은 지난해 1만 716명,52%에서 올해는 7100여명,35%로 떨어졌다. 근로봉사 장학금 확대 등 소외계층 지원을 늘린 학부 장학금도 지원 금액은 늘었으나 대상자는 다소 줄었다. ●“연구 풍토 개선” vs “눈치보기 우려” 장학금 제도를 바꾼 데 따른 반응은 엇갈린다. 인문대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모(27)씨는 “지난해까지 조교직을 맡은 석사과정 학생은 한 학기 30만∼40만원에 이르는 수업료를 면제받고,5개월 동안 60만원의 장학금 혜택을 받았다.”면서 “장학 재원이 박사과정에 집중되면서 이같은 혜택이 없어져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자연과학대의 한 재학생은 “교수에게 장학생 한 명의 선정권이 있다 보니 박사과정생이 많은 교수 쪽으로는 학생들이 가지 않으려 하는 등 은근히 눈치를 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반면 이번 학기 장학금 대상자로 선정된 수의대 박사과정 정모(27)씨는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면서 “다른 외부 장학금과 비교해도 지원 규모가 적지 않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측은 성적과 연구실적 등으로 엄선한 대상자에게 장학금을 집중 지급하면 경쟁이 치열해지고 연구 풍토도 향상될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들을 설득하고 있다. 이미나 학생처장은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장학금의 실효성을 높인다는 기본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장기적으로 박사 과정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고시플러스] 홍보분야 등 전임계약직 3명 선발

    ●전북 전주시(www.jeonju.go.kr) 전임계약직 3명을 뽑는다. 홍보분야 ‘다’급 1명과 ‘라’급의 법제분야 1명, 통계분야 1명 등이다. 홍보분야의 경우 관련 전공 석사로 3년 이상 경력이 있거나,6년 이상 경력을 갖춘 학사 출신은 지원할 수 있다. 법제와 통계 분야는 석사학위자 또는 학사취득 후 3년 이상 경력이 있으면 응시할 수 있다. 응시연령은 공통적으로 20세 이상 50세 미만이다. 지원서는 다음달 3일부터 5일까지 시청 행정관리과로 본인이 직접 방문접수한다.(063)281-2155.
  • [결혼이야기]한민(30·고려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장수현(23·고려대 일문과 석사과정)

    [결혼이야기]한민(30·고려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장수현(23·고려대 일문과 석사과정)

    그녀와 결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아니 우리가 사귀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는 ‘도둑놈’이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그녀를 만나게 된 동아리 친구들로부터 웨딩업체 직원까지 정말이지 수도 없이. 제가 험한 소리를 듣는 결정적 이유는 나이 차이가 일곱 살이나 난다는 것이었지요. 뭐 사랑에 나이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사람들이 어디 그렇습니까. 그게 다 부러움과 질투의 표현이겠지요.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봄이었습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에 나름대로 사회적응 프로그램을 적용시키고 있었지요. 복학생들이 다 그렇듯, 저도 입대전 열심히 활동했던 풍물패에 드나들면서 복학생의 향기(?)를 퍼뜨리고 있었답니다. 그 날은 동아리의 공개 강습회 날이었고 저는 동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첫눈에 그녀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 순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녀는 새내기인데다 그것도 1년 일찍 입학한 82년생이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스스로도 너무나 ‘도둑놈’ 같아서였던 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1년 남짓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녀도 바쁜 1학년인지라 동아리보다는 다른 데 마음이 있는 것 같았고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녀는 다시 동아리에 열성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그녀와 저는 연인이 되었습니다. 처음 고백했을 때 그녀는 당장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 기다린다고 했고, 한두달 뒤 어느 찻집에서 그녀는 제 옆에 앉아 주었습니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저를 잘 이해해 주었고 저도 그녀의 모든 것이 그냥 사랑스러웠습니다.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이야기도 잘 통했고, 무엇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을 만큼 특별한 교감이 있었습니다. 한 쪽이 없는 서로를 생각할 수 없을 무렵, 저는 청혼을 했고 그녀는 웃음으로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가진 것 없는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그녀와 함께 저는 어디든 웃으며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혁재의 별난 과거·현재·미래

    혁재의 별난 과거·현재·미래

    지난해 연말 KBS 연예대상 시상식. 대상을 수상한 뒤 산적 같은 ‘터프’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울먹였던 개그맨 이혁재(32)의 모습을 보고 웃기다고 생각했다면 그의 진심을 모르는 거다.“KBS에 결초보은하겠다.”는 수상소감도 ‘아부’성 발언은 아니었다.“제가 가장 어려울 때 받아줬거든요. 경력으로봐도 아직 상을 받을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도(正道)를 걸은 결과인 것 같습니다.” 지난 1999년 MBC 공채로 출발한 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KBS2 ‘스펀지’를 통해 개그맨 MC의 최고 위치에 오른 이혁재.“방송도 상도덕이 필요하다. 큰 상을 받았으니까 앞으로 1년간 KBS에서만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말하는 모습엔 거짓없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실제로 그는 앞 뒤 재며 작은 이익을 좇거나 남 눈치를 보기보단, 자신만의 큰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스타일이다. 직설적인 화법 탓에 안티팬도 많고, 연예대상 수상 직후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그런 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그저 “내가 초반에 세워놓은 방송관만을 좇는다.”는 그는 “막 웃고 본 뒤 인터넷에 들어가면 도덕군자가 되는, 이중적인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는 악역을 담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당당함을 뒷받침하는 건 피나는 노력이다.‘스펀지’의 대본을 늦어도 방송 이틀 전에 받는다는 그는, 검증이 되지 않은 ‘설’에 대해서는 네티즌의 생각들을 모두 숙지하고 과학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모교(인하대 기계공학과)에 물어본다. 심지어 스스로 오류를 잡아내는 경우도 있다고 자랑했다. 그 노력은 한 프로그램을 넘어 오랜시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온 ‘개그맨 MC’의 자질을 높이는데도 쏟고있다. 그는 지난해 서울정보통신대학 IT 경영학 석사과정으로 입학했다.“디지털 방송 시대가 왔는데 이를 진행하는 사람이 그게 뭔지도 모르면 안되잖아요.” 앞으로 TV채널이 무한히 증가하고 이를 소화해낼 진행자의 수요가 급증할 때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치지 않는 열정에 걸맞게 먼 미래의 꿈도 크다. 쉰 넘어가면 인천시장에 도전해보고 싶단다.“아니 한 남자의 원대한 꿈을 왜 색안경을 끼고 보는지 모르겠다.”며 ‘진담’임을 거듭 강조했다.“물론 정치를 하게되면 다 그만두고 10년 정도 공부를 하고 좋은 일도 할 거예요.” 자신의 지역을 위해 일할 그 때를 위해 지금도 인천에서 서울까지 출퇴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방송 진행에만 전념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드라마 ‘야인시대’등 연기자로 외도도 했지만 “제작진이 ‘이 역은 이혁재 아니면 안된다.’며 삼고초려한 것만 골랐다.”고 설명했다. 정말 하고 싶은 건 “팬들과 같이 늙어가며” 자신의 나이에서 세 살 위아래 또래가 공감할 수 있는 토크다. 이를 위해 ‘이혁재만의 진행 스타일’을 여전히 찾아나가고 있다. ‘스펀지’외에도 ‘스타 골든벨’‘즐거운 일요일 해피선데이’등 오락프로그램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이지만 “타고난 외적 조건 때문에” 현재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은 MTV의 토크쇼 ‘파티왕’뿐이란다. 남은 길을 향해 결코 깨지지 않을 꿈을 힘차게 굴리며 걸어가는 남자, 그가 바로 이혁재였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소신선택으로 빛낸 ‘만점 학업’

    소신선택으로 빛낸 ‘만점 학업’

    ‘명예’나 ‘출세’보다는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해 졸업평점 만점을 기록한 이색 졸업생들의 사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오는 25일 학위를 받는 전남대 졸업생 가운데 개교 이래 처음으로 평균 평점 4.5점 만점을 받은 학생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농업생명과학대학 산림자원 조경학부 정일신(23·여)씨. 그의 만점 학점 취득은 신념에 따라 ‘나의 길’을 선택해 얻은 결과이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황칠 연구가로서 10여년 전 귀농한 전남 해남 ‘아침재 산막’ 정순태씨의 1남1녀중 외딸. 전남과학고를 졸업한 그는 동창생들이 당연한 듯 지원하는 서울대나 카이스트, 의·치대를 마다하고 ‘임학과’를 선택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지적 엘리트 중 일부가 의사, 판검사, 과학자로서 세상을 고치기 위해 노력할 때 그 누군가는 무너져가는 땅과 삶의 근원을 보수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며 ‘임학과’를 당당히 선택한 이유를 내비쳤다.“아버지의 외길 인생처럼 농업과 환경의 룰이 적용되는 ‘사회생태학’ 분야로 공부의 영역을 넓혀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학부 졸업 후에는 전남대 대학원 임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할 계획이다. 한편 23일 조선이공대학 전기과를 졸업하는 조준현(30)씨는 지난 99년 연세대 생명과학과를 졸업한 뒤 2003년 2년제인 이 대학으로 U턴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2년 내내 한번의 결석도 없이 열성적인 제2의 학창시절을 보내며 졸업평점 만점(4.5점)으로 과수석을 차지했다. 지난 한해 동안 전기공사기사·전기산업기사 등 전기 관련 자격증을 5개나 따냈다. “하고 싶은 분야의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학창시절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며 “엔지니어로서 아버지가 운영하는 전기 관련 사업을 키워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교시절 상위권을 유지했던 그는 부모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연세대에 입학했다. 당시 학력고사 점수로는 지방대 의학계열 진학도 가능했지만 ‘명문대’를 바라는 부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의과대 복수전공이 가능한 생명과학과를 지원한 것도 그의 뜻이 아니었다. 하지만 “해부학 시간에 ‘피’를 보는 것이 제일 싫었다.”는 그는 의학계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졸업 후 ‘부모가 바랐던 길’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이 대학 전기과에 다시 입학해 열성적으로 공부했다. 조씨는 “이제 부모님도 저의 뜻을 이해하게 됐다.”며 “앞으로는 ‘나의 길’을 소신껏 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19세 대학원생

    ‘초등학교 월반,2년만에 중·고교 과정 이수,15세 대학 입학,19세 대학원생….’최연소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영재가 최연소 박사에 도전한다. 지난 19일 원격대학인 한국디지털대(www.kdu.edu) 학위수여식에서 학사모를 쓴 김현규(19)군. 그는 대학 4년 동안 디지털미디어 디자인학과 디지털정보학을 복수전공, 이날 미술학사와 공학사모를 동시에 썼다. 이미 한양대 정보통신대학원에 합격, 새 학기부터 석사과정을 밟을 예정인 김군은 지난달부터 대학원내 디지털 미디어연구실에 소속돼 교수, 석·박사 과정 연구원들과 함께 영상압축 기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김군이 고교 과정을 마친 것은 지난 2000년, 만 14살 때였다. 초등학교 이전인 만 3살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내 영재연구소에 다니며 창의력 교육을 받은 그는 초등학교 때 4학년에서 6학년으로 월반,1년 빨리 초등학교를 마쳤다. 이후 중학교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학원에 다니며 혼자 공부했다.‘규격화된 지식을 강요하는’ 학교생활이 내키지 않았던 데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어서였다. 97년 초등학교 졸업 이후 5개월 만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데 이어 9개월이 지난 1999년 5월에는 고졸 검정고시에 전국 최연소로 합격했다. 중학교 2학년 나이인 14살 때 대학 입학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한 해를 쉬었다. 진로를 고민하고 팬터지 소설을 쓰면서 한 해를 보낸 그는 2001년 원격대학인 사이버대학이 처음 도입되자 오프라인 대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사이버대를 선택했다.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인터넷을 통해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①-CJ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①-CJ그룹

    CJ그룹에는 삼성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53년 설탕회사로 출범, 제일모직·삼성전자·삼성생명 등 현재 삼성그룹의 기업적 ‘젖줄’이 된 곳이 바로 CJ(옛 제일제당)다. 또 삼성의 인재를 길러낸 ‘인재사관 학교’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90년대 중반까지 CJ하면 떠오르는 것은 설탕·밀가루 등을 만드는 식품회사 정도였다. 그 이후 점차 생명공학, 홈쇼핑, 엔터테인먼트 등 신세대 사업으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식품회사의 틀과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졌다.1995년 그룹 분리 당시 1조 50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8조원, 영업이익은 97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자산 기준 재계 서열 23위의 기업으로 도약했다. 끊임없이 모험과 변신을 꿈꾸는 벤처기업처럼 역동적으로 사업을 발굴, 추진해 온 덕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삼성가(家)의 장손이 우뚝 서있다. ●부친 ‘공백’ 메우는 직계 장손 CJ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손인 이재현(46) 회장이 이끌고 있다. 그의 부친은 고 이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76) 전 제일비료 회장. 부친이 할아버지 눈밖에 나는 바람에 이 회장은 일찌감치 부친을 대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며 삼성과 제일제당에서 경영 수업을 쌓았다. 한솔그룹(창업주의 장녀 이인희 고문), 신세계(4녀 이명희 회장), 새한미디어(차남 고 이창희 회장)에 이어 가장 늦게 삼성에서 떨어져 나왔다.1993년 시작된 CJ의 계열 분리 작업은 지난 97년 법적으로 완전히 정리됐다. 이 회장이 36세때의 일이다. 그룹을 혼자 경영하기에는 나이나 경험이 모두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CJ는 자연히 이 회장과 외삼촌인 손경식(66) 회장이 함께 경영하는 ‘쌍두마차’ 체제로 유지됐다. 손 회장은 대외업무, 이 회장은 내부경영 등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는 것이 CJ측의 공식적 설명이지만 이들의 역할을 뚜렷하게 구분짓기 어려웠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만큼 이 회장의 비중이 컸다는 얘기가 된다. 이 회장의 ‘등극’은 삼성가의 3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3남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등 사촌들과 함께 삼성가의 3세 경영시대를 여는 주역으로 떠올랐다. 서울 남대문로 본관 사옥에 있는 그의 할아버지 흉상은 그가 삼성가의 직계 장손임을 상징해 주고 있다. ●평범한 혼인, 드러나지 않은 내조 고 이 회장의 장남 맹희씨는 부인 손복남(71)씨와의 사이에서 2남1녀를 뒀다. 자녀 모두 평범한 집안과 혼인해 이렇다 할 화려한 혼맥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맹희씨가 코흘리개인 네살 때 이미 “아이들이 자라면 혼인을 시키자.”는 양가 어른의 언약이 인연이 돼 손씨와 결혼했다. 이화여대 교육학과 출신인 손씨는 부친이 경기도 지사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낸 손영기씨다. 손복남씨가 부친을 모시고 병원에 가는 것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난 뒤 맹희씨는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손씨는 삼성가의 맏며느리로서 겉으로는 화려해도 남편이 풍상을 겪자 말 못할 마음의 고통을 삭이며 살아왔다. 서울 장충동 집에서 시부모를 모시며 3남매를 키웠다.CJ가(家)의 명실상부한 ‘안주인’ 역할을 묵묵히 해오고 있는 것이다.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으나 제일제당의 최대주주로 있다가 주식 증여를 통해 경영권을 장남 재현씨에게 넘겼다. 재현씨는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각별한 사랑과 함께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체격 등 외모, 사고나 행동방식까지 조부와 비슷해 ‘리틀 이병철’이라고도 불린다. 결혼 후 “나가서 신혼살림을 하라.”는 부모님의 얘기에도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며 고집을 피워 2001년 1월 할머니 박두을씨가 별세할 때까지 서울 장충동 집에서 모셨다. 지금도 모친 손여사와 함께 장충동 집에서 산다. 경복고, 고려대 법대 출신인 재현씨는 “누구 덕을 본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다.”며 1983년 씨티은행에 취직,‘탈 삼성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조부인 고 이병철 회장이 “재현이에게 왜 남의 집살이를 시키냐.”는 불호령을 내려 결국 85년 삼성의 주력 계열사였던 제일제당 경리부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88년 경리부 차장,89년 기획관리부장으로 승진했다.92년부터 1년 정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대우로 일하기도 했다.93년 제일제당 이사로 친정에 복귀해 97년 부사장,99년 부회장을 거쳐 2002년 회장에 올랐다. 부산 출신으로 이화여대 미대 장식미술학과를 졸업한 부인 김희재(46)씨와는 대학시절 미팅을 통해 결혼, 딸 경후(21)씨와 아들 선호(16)군을 뒀다. 두 자녀는 현재 해외 유학 중이다. 90년대 중반 이 회장은 회식을 끝내고 밤늦게 직원들을 집으로 데려와 2차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부인 희재씨는 한번도 짜증을 내지 않고 뒷바라지해 직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또 이 회장과 함께 노인무료급식소 등에서 김장을 하고 노인들의 가정에 도배도 하는 등 사회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이 회장의 장모인 김만조씨는 ‘김치박사’로 유명하다.CJ의 김치개발에도 참여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씨는 연세대, 서울여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홈쇼핑·영화등 사업다각화… 재계 23위 ‘껑충’ 이 회장의 누나 미경(48)씨는 부친이 유학 중이던 미국에서 동생 재현씨와 함께 태어났다. 어릴 때 ‘미키’라고 불린 것을 계기로 지금도 ‘미키 리’라는 이름으로 해외 활동을 한다. 중학교때 대통령배 영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영어외에 불어, 중국어에도 능통하다. 경기여고, 서울대 가정학과,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연구로 석사학위를,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1995년 제일제당 멀티미디어 사업부 이사 시절 스필버그 등이 설립한 세계 최대의 영상소프트회사인 ‘드림웍스’와 제일제당의 합작을 성공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당시 이건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은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스필버그와 협상을 벌일 만큼 드림웍스 설립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으나 결국 그는 삼촌 대신 동생 재현씨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말 CJ엔터테인먼트 사업의 글로벌 부문을 맡아 사업의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씨-삼성 경영서 물러난 뒤 유랑생활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이자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맹희(76)씨는 요즘 몽골에 머물고 있다. 과거 유목민의 후예들이 사는 그 곳이 그에게는 오히려 편안함을 준다고 했다. ‘비운의 황태자’‘양녕대군’은 맹희씨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다. 그는 삼성을 이끌 ‘운명’을 타고 났지만 오히려 바람처럼 떠도는 처지가 그의 ‘운명’이 된 ‘풍운아’다. 동생 이건희 회장으로 후계구도가 정해진 후 그는 형제들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과도 떨어져 세속을 등진 채 살아왔다. 그의 ‘유랑생활’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친이 기업을 일구는 것을 보며 컸다.1938년 삼성의 설립으로 기록되는 삼성상회 간판 아래 부친이 대구에서 국수공장을 운영할 당시 공장 귀퉁이 방안에서 부친이 새우잠을 자며 일하는 것을 보며 자라난 삼성 성장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경북고 32회 출신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고 김윤환 의원, 정호용 전 의원 등 TK출신 정치인들과는 친구사이다. 그는 일본, 미국 유학을 거쳐 안국화재 업무부장을 시작으로 중앙일보, 삼성전자 부사장 등 직함이 무려 17개에 이를 정도로 강도 높은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 때만 해도 그의 호칭은 삼성의 ‘젊은 부총수’였고, 아무도 그가 삼성의 경영 대권 주자로 낙점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비료공장을 만들려 했던 선친이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1966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는 실질적으로 그룹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선친의 눈밖에 나면서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했다. 그때가 1971년이었다. 그는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자신이 삼성에서 일한 기간은 7년이고, 물러난 것은 기업이 혼란에 빠져서가 아니라 몇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다.”라며 부친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부친이 동생 이건희 회장으로의 대권이양 선언시를 회고할 때는 “아버지와의 사이에 상당한 틈새가 있었지만 언젠가는 나에게 삼성의 대권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며 당시의 ‘충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bori@seoul.co.kr ■ 차세대 사업의 양날개 ‘左-미경, 右-재환’ 차남 재환(44)씨는 배재고, 타이완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현재 경영기획실 중국담당 상무로 베이징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때 제일제당 일본지사 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재환씨는 일본과 중국쪽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7·8·9대 국회의원을 지낸 민기식 전 의원의 딸 재원(38)씨와 결혼, 딸 소혜(15)양과 아들 호준(7)군을 뒀다. 재원씨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오너보다 CEO로 평가받겠다.” CJ맨들이 보는 이 회장은 ‘꿈과 비전·열정이 큰 사람’으로 요약된다. 회사의 실적을 보고 받으면 “최소한 얼마는 돼야 하는데, 회사가 좀 더 커야 한다.”며 항상 아쉬움을 토로한다. 사원들과의 대화를 ‘정말’ 즐긴다. 좀처럼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책상에 걸터 앉아 얘기를 하고, 직원들과 남산에 올라 자유토론도 한다. 회사의 경영 방침과 경영 철학을 직접 설파,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식이다. CJ 관계자는 그런 그의 행보를 두고 “오너라기보다는 유능한 최고경영자(CEO)로 평가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사석에서 “이 회장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서 “10년 뒤 살아 남을 사람(오너)은 이 회장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만큼 오너 2,3세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경영인이란 방증이다. 재벌가의 후손들이면 보통 가는 해외유학 코스도 밟지 않은 ‘토종파’인데도 그의 기업 문화론은 어느 기업보다 앞서간다. 오래된 보수적인 회사로 짧은 시간에 젊고 활기찬 기업으로 변모시킨 것은 바로 ‘이재현 식’ 기업 문화에서 비롯됐다. 국내 최초로 복장 자율화,‘∼님’으로 호칭 통일, 플렉서블 타임제(자율 출퇴근시간), 층마다 비치된 간이 도서관 등은 다 그의 작품이다. CJ의 역사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삼성과의 결별을 앞둔 94년 10월 삼성측이 제일제당에 이학수 당시 삼성화재 부사장(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을 파견, 삼촌 이건희 회장과 조카 이 회장의 신경전은 제일제당이 삼성본관에서 95년 4월 현재의 사옥으로 이사오기까지 6개월간 계속됐다. 제일제당이 보유한 부동산, 삼성생명주식 평가방법을 놓고 양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야 제일제당은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다. 삼성그룹에서 분리될 당시의 제일제당은 삼성의 전자 및 중공업 위주의 우선 투자전략에서 밀려 성장한계를 보인 상황이었다. 식품회사라는 고정된 이미지도 그룹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나 1995년 독자경영을 시작한 이후 이 회장 주도로 식품 등 기존의 사업을 다지면서 미디어·영상·물류·유선방송·홈쇼핑 사업 등 다각화된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짰다. 식품·정보통신·화장품, 음료사업 등 매년 수십억에서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비주력 사업은 과감히 매각했다. 이 가운데 인터넷사업인 드림라인은 이 회장이 주도한 사업 중의 하나였으나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미련’을 갖지 않고 구조조정을 무난하게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의 식품, 식품서비스, 바이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신유통 등 4개 분야를 CJ의 핵심 사업으로 확정했다.“설탕이나 파는 식의 마인드로 살아 남을 수 없다.”면서 이 회장은 당시 직원들의 신발끈을 조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실있는 임원 김주형(58) ㈜CJ 대표이사 사장은 1972년 제일제당에 들어온 이후 최고 경영자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 곡물구매 전문가로 자기 색깔을 내지 않으며 두루 회사를 아우르는 ‘덕장’형이다. 각양 각색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칫 불협화음이 나올 수 있는 갈등 사안들을 절묘하게 중재·조정하는 ‘조율사’로서 탁월한 역할을 해낸다는 평이다. 특유의 친화력과 유연성 덕분이다. 그는 아랫사람에게도 존대하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권위의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포근한 느낌을 준다. CJ개발 문성기(56)사장은 1974년 제일제당에 입사, 신사업 본부장 등을 거쳐 99년부터 CJ개발 대표를 맡았다. 우리나라 골프장 최초로 미국 LPGA 대회를 유치해 2002년 부터 3년 연속 성공적으로 개최,CJ의 골프장 ‘클럽 나인브릿지’를 세계 100대 회원제 골프장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CJ그룹을 해외에 알린 주역이다. 조용하면서도 강한 리더십이 강점이다. 이태호(57) CJ푸드시스템 대표(부사장)는 1973년 삼성그룹으로 입사, 사료본부장 등을 거쳐 2003년 말부터 CJ푸드시스템을 맡았다. 사료본부장 시절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으로 일찌감치 사업을 확장한 주역이다. 부하직원들로부터 냉철한 판단력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리더로 평가받는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사업의 비전 제시력이 강하다는 평이다. 소탈한 성격으로 격식에 얽매이지 않아 평이 좋다. 박동호(49) CJ엔터테인먼트 대표(부사장)는 ‘비즈니스맨의 모범’으로 불린다. 국내 최초로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 극장체인인 CGV를 도입, 업계 1위로 성장시켜 사업역량을 인정 받으면서 한국 영화판을 좌지우지하는 ‘충무로 파워맨’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지난해 게임업체인 플래너스를 전격 인수하는 수완도 발휘했다.‘튀는’ 사람들과 일하는 분야에서 내부를 꼼꼼하게 추스르고 챙기는 관리자의 역할에 꼭 맞는 인물이다. 김진수(54) CJ홈쇼핑 대표(부사장)는 제일제당 마케팅 실장 등을 거쳐 다국적기업 한국 존슨의 사장으로 잠시 외도했다가 친정으로 복귀한 케이스. 마케팅실장때 대상(옛 미원)과의 조미료 전쟁에서 ‘다시다’로 역전을 이뤘고, 식품본부장 시절에는 ‘햇반’ 등 신상품을 시장에 안착시켰다. 중국 홈쇼핑시장에 진출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해외통이자 마케팅 전문가로 평가 받는 그는 분단위로 스케줄을 관리할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박대용(53) CJ GLS 대표(부사장)는 업계에서 손꼽히는 물류 전문가다.1977년 제일제당에 입사,89년 물류개선팀장으로 발탁된 이후 16년간 물류관련 업무에만 종사해 왔다. 지난 99년 택배사업에 진출,3년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CJ GLS를 택배업게 ‘빅 4’에 합류시켰다. 권위보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부하직원들을 대하는 ‘온화한 리더십’의 소유자다. 정진구(60) CJ푸드빌 대표(부사장)는 패밀리 레스토랑인 스카이락·빕스·한쿡과 베이커리 뚜레쥬르 등 외식사업을 총괄한다. 아이스크림전문점 배스킨 라빈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최고 브랜드로 성장했다. 국내 외식 업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직관력과 현장 감각이 뛰어나 한국에 진출하려는 외국기업들의 영입대상 1순위로 알려져 있다.2003년 말 CJ그룹에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김홍창(51) CJ투자증권 대표(부사장)는 1981년 당시 제일제당에 입사, 제일투자증권 상무, 제일선물 대표 등을 거친 대표적인 관리·금융통. 제일선물 대표 당시 업계 8∼9위에 불과했던 회사를 1년여 만에 업계 2위로 끌어올려 놓기도 했다. 이재현 회장의 입사 초기 수년간 경리·관리 부서에서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직원들과 스스럼 없이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 격의없는 성격이며 조직 밀착 경영에 강하다는 평이다. 지난 1월 정기인사에서 전격 발탁된 CJ미디어 강석희 대표(상무)는 자타가 인정하는 제약마케팅의 귀재다. 마케팅에서 보여준 실력이 미디어라는 복합다기한 사업분야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관심사다. bori@seoul.co.kr ■ 손경식 회장은 누구 손경식(66) 회장은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면서 CJ그룹을 이끄는 또 다른 한 축이다. 이 회장에게 할아버지 고 이병철 회장이 정신적 지주라면 외삼촌 손 회장은 ‘경영 스승’인 셈이다. 이 회장이 회사 중대 사안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상대다. 경기고 2학년때 검정고시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할 정도여서 ‘천재’라는 얘기를 들었다. 손 회장은 누나이자 이재현 회장의 모친인 손복남 고문이 삼성가로 시집가면서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1968년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공부를 하려던 그를 고 이병철 회장이 비서실로 불러들였던 것. 아무리 가까운 혈연이라도 능력이 없으면 발탁하지 않는 삼성가에서 그는 77년 38세의 나이에 안국화재(현 삼성화재)사장으로 발탁돼 삼성을 이끌 리더로 자리잡았다. 안국화재는 자신의 부친인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가 사장을 맡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1993년 6월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되면서 조카 이 회장의 ‘후견인’ 역할이 요구됐다. 당시 경영 수업을 받던 재현씨를 어떻게든지 잘 보호해 제일제당의 ‘주인’으로 ‘옹립’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 그는 주저하지 않고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조카 재현씨와 함께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후 삼성과의 분리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등 제일제당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구원 투수’로 활약했다. 96년 5월 “삼성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제일제당 그룹으로 새롭게 출발한다.”며 삼성그룹과의 결별을 공식 선언한 것도 그였다. 거대 그룹의 우산 아래서 떨어져 나온 제일제당이 큰 위기를 겪지 않고 오늘의 CJ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손 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화려한 학맥으로 그는 정·관·재계의 인맥 네트워크가 강하다. 재작년에는 경기고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부인 김교숙(59)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靑 “건강한 언론관계 전환”

    靑 “건강한 언론관계 전환”

    올해부터 언론과의 건강한 협력관계로 전환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17일 새 청와대 홍보수석에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를 임명함에 따라 청와대의 언론정책 변화 방향이 주목된다. ●현실참여형 정치학자 조 수석은 정치개혁과 언론개혁운동을 펴온 현실참여형 정치학자다. 조 수석은 동아·중앙일보 등에 기고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고, 조선일보를 ‘왜곡·편파보도의 대명사’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었다. 조 수석은 “내가 열린우리당 총선 선대위 대변인을 맡으니까 족벌언론에서 위로부터 조기숙을 죽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총선 직전인 4월11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정당개혁단장을 맡았으며 50일 만인 5월31일 탈당했다. 탈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의 첫번째 개혁목표로 언론을 꼽으면서 “특정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이 언론개혁의 시작” 이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과는 2000년 한 모임에서 현실정치를 놓고 논란을 벌였으며, 노 대통령의 취임사 준비위원으로 활동했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는 노 후보의 지지도가 추락하자 “죽는 게 사는 것”이라는 판단으로 후보직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병완 전 수석이 후임으로 강력하게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다. 뚜렷한 언론개혁관을 갖고 있는 조 수석이 임명되면서 일부 언론과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선 나오고 있다. ●“새로운 국정홍보시스템 구축” 하지만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언론과의 상호 독립적인 협력관계에 대한)노 대통령의 생각이 확고하기 때문에 (수석의)개인적인 생각이 언론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한다. 일부에서 언론과의 협력관계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언론계 인사를 홍보수석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건의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언론계 인사보다는 학계에서 홍보수석을 발탁한 것은 새로운 홍보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조 수석을 임명하면서 건강한 협력관계의 범위를 분명히 한 것같다. 즉 협력관계로 전환하더라도 과거식의 공생관계로 회귀하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靑, 고위공직자 인선 여론검증 시도 한편 청와대는 검토과정에서 명단을 공개해 언론검증을 거치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청와대는 2주일전쯤 조 수석 내정사실 엠바고(발표시까지 보도자제)를 요청했다. 청와대는 17일 인사추천회의에서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후보를 2배수로 압축해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종민 대변인은 “인사밀행주의에서 벗어나 주요 인선과정을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국민여론을 정부 인사에 반영하고 정부 인사의 적정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조기숙 홍보수석 프로필 정치·언론 개혁에 애착이 강한 현실참여형 학자.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 후보편에 섰고, 총선 때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실용주의 전환을 시도하는 참여정부 3년차 기류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인디애나대 동창인 양형진(48)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와의 사이에 2남.▲경기 안양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미국 아이오와대 석사, 인디애나대 박사 ▲이화여대 부교수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
  • “고국 관련된 비즈니스 하고 싶어”

    “앞으로는 고국과 연결된 국제 비즈니스를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인 크리스티나 한(31·한국명 한영희). 그는 하버드·듀크·존스 홉킨스(대학원) 등 미국의 3개 명문대학을 졸업한 뒤 2003년 2월 국제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화제가 됐다. 17일 잠시 귀국한 그는 “2년만에 고국을 찾았다.”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국제변호사 일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초등학생 때인 지난 1982년부터 전국대회에 출전하는 등 수영선수로 활약했다.14세 때인 지난 88년에는 태극마크를 달고 당당히 서울올림픽에 출전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3년동안 상비군에서 활약했다. 주종목은 자유형·배영·접영 등. 92년 하버드대학에서 정치학과 동양사를 전공한 뒤 96년부터 2년동안 JP모건에서 투자분석가로 일하던 중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여기에서 낮에는 자전거로 퀵서비스 일을 했고, 밤에는 식당 웨이트리스 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평소 여행과 낯선 경험을 좋아하는 성미가 발동됐기 때문. 이후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 99년 듀크대학 법대에 입학했으며, 동시에 존스 홉킨스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끼는 운동에서도 맘껏 발휘된다. 보스턴·뉴욕·시카고 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완주한 것. 특히 철인3종 경기까지 거뜬히 소화해냈을 정도다. 이에 대해 그는 “호기심이 많아 한가지 일에 몰두하는 성격이 못된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스펜인·프랑스어에도 능통한 그는 강인한 체력 덕에 국제 변호사계의 ‘철녀’로 통한다. 아직 미혼이어서 요즘에는 부모한테 “시집가라.”는 성화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마음에 그리는 신랑감을 묻자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한국 남자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국내기업 “해외인재 잡자”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인재 사냥’이 본격화됐다. ‘인재욕심’이 부쩍 많아진 LG는 LG전자가 17일부터 북미 순회 채용설명회에 나서는 것을 시작으로 필립스LCD·화학·CNS 등이 올해 북미, 유럽,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등에서 30회 이상의 현지 채용투어를 실시해 600여명의 해외인재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전자는 R&D 책임자급 연구원과 인사담당자 등 20여명으로 구성된 ‘해외 우수인력 유치단’이 10일간 스탠퍼드ㆍ버클리·캘리포니아공대 등 미국 13개 대학을 순회하면서 디스플레이, 디지털TV, 차세대 이동단말, 홈네트워크 등 핵심사업분야 연구인력과 MBA 전공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채용설명회를 개최한다. LG전자는 앞으로 북미에서만 3월과 9월 두 차례 채용설명회와 세 차례의 현지면접을 실시하고 일본 2회, 유럽·인도·러시아 1회 등 해외 채용투어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CEO와 사장단들이 해외출장시 유학생 간담회나 세미나 등을 통해 인재 유치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LG화학은 노기호 사장과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여종기 사장이 직접 나서 3월 북미지역을 시작으로 분기별로 한 차례 이상 해외인재 채용투어를 정례화하기로 했다.LG필립스LCD와 LG CNS도 북미, 유럽, 일본 등에서 각각 4차례 채용설명회를 갖는다. 국내에서는 기존 캠퍼스 리크루팅 이외에 산학협력, 임직원 인재추천제, 주문형 석사제 등을 통해 맞춤형 인재 확보를 강화한다. 삼성전자는 오는 4월과 10월 미국에서 2차례 ‘채용 로드쇼’를 갖는다. 채용담당과 반도체, 휴대전화,LCD 등 핵심 연구인력들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미국을 동서남북으로 훑다시피 하며 고급두뇌를 탐색한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매년 1차례 로드쇼가 열리고 중국은 중국 본사가 지난해 말 중국내 30개 명문대를 순회하며 인재를 확보했다. 삼성전자는 이와 별도로 CEO들이 해외출장이나 강연 때마다 핵심인재를 섭외, 직접 면접을 보는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인재를 끌어모으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회사측의 ‘노력’ 없이도 매년 1000명이 넘는 MBA 출신들이 입사원서를 내는 등 인재가 스스로 몰려들기도 한다. 이 가운데 채용이 되는 사람은 100명도 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도 4∼5월 미국 상위 50위권 대학 가운데 국내 유학생이 많거나 자동차 관련 분야로 특화된 13∼15개 대학을 대상으로 채용 설명회를 갖는다. 현대차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해외인재 채용 로드쇼를 중단했다가 2002년 재개,100여명을 뽑았고 2003년 50여명의 해외인재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디자인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80여명을 채용했다. 공개 로드쇼 외에 석·박사 과정에 있는 우리나라 유학생을 대상으로 개별 접촉도 진행한다. 안미현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4년간 82편 발표 ‘논문왕’ 장미현씨 경희대 졸업

    석·박사과정 4년 동안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에 80여편의 논문을 게재한 ‘논문왕’이 16일 경희대를 졸업한다. 의학계열 박사학위를 받는 장미현(28·여)씨는 생리학교실에서 연구하며 석사과정에서 37편, 박사과정에서 31편의 논문을 공인된 외국 학술지에 발표했다. 국내에서 발표한 14편까지 합치면 4년 동안 82편의 논문을 발표한 셈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가 연평균 4편의 논문을 SCI에 등재하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재학기간 평점도 4.3점 만점을 기록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한국회계연구원장 이효익씨

    한국회계연구원장 겸 기업회계기준위원장에 이효익(54) 성균관대 경영학부 교수가 선출됐다. 이 원장은 광주일고, 성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각각 경영학과 회계학 석사를, 서울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원장은 증권감독원 회계제도 자문위원, 금융감독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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