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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차 수출 500만대 돌파

    기아차 수출 500만대 돌파

    24일 오전 10시30분 경기도 평택항. 유럽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소형차 모닝(수출명 피칸토)이 이탈리아행 배에 실리는 순간, 경쾌한 축하음악이 허공을 갈랐다. 기아자동차가 수출 500만대를 돌파하는 순간이었다.1975년 5월 픽업트럭(브리사) 10대를 아프리카에 수출한 지 꼭 30년만의 일이다. 다소 긴장된 표정의 정의선(35) 사장도 이 순간만큼은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이 날은 그의 공식 데뷔무대이기도 했다. 그는 그룹 회장(정몽구)의 외아들이기 이전에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서 기념식을 주관했다. 유창한 영어로 통역없이 외빈들을 맞았고, 공식 연설도 처음 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 경영학 석사(MBA) 출신의 젊은 최고경영자(CEO)가 들고나온 데뷔 무기는 ‘100 프로젝트’. 기아차 상징인 빨간 로고에 맞춰 일부러 빨간색 넥타이를 맨 그는 “지난해 수출 400만대를 돌파한 지 불과 1년 3개월만에 100만대를 더 얹은 것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위상을 세계에 다시 한번 확인시킨 쾌거”라면서 “올해부터 연간 100만대,100억달러 상시 수출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한 태스크포스(TF)팀도 구성했다. 기아차는 지난해 70억달불 수출탑을 받았다. 정 사장은 기념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기아차를 주목해달라.”며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취임후의 가장 큰 변화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며 여유있게 받아넘겼다. 아버지의 ‘품질 경영’을 상기시켜 그 만의 키워드를 묻자, 정 사장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면서 “품질은 기본이고 특히 제조원가 등을 더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완공 예정인 슬로바키아 공장과 중국 제2공장도 차질없이 진행하겠다고 했다. 지난 11일 주총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되자마자 맨먼저 달려간 곳도 슬로바키아였다. 기념식에 참석한 이참(독일인에서 귀화한 탤런트) 고문은 정 사장을 가리켜 “경제인으로서, 리더로서의 잠재능력이 무궁한 젊은이”라면서 “언제 봐도 겸손하고 유머감각이 있다.”고 평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영문이름 첫 글자를 딴 ‘ES’로 불린다. 기념식에는 손학규 경기도지사, 파벨 흐르모 주한 슬로바키아 대사 등이 참석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이젠 사람입국이다] 18. 삼성전자의 인재교육(끝)

    [이젠 사람입국이다] 18. 삼성전자의 인재교육(끝)

    “삼성전자의 성공비결은 (1) 실력에 맞는 처우 (2) 국제화 가속을 위한 지역전문가제도 (3) 우수인력 확보 (4)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에의 투자다.” -일본 주간지 ‘동양경제’ 일본의 유력 종합경제 주간지 ‘동양경제’는 최근 ‘약진하는 한류경영의 수수께끼를 풀다’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삼성전자의 성공비결 중 하나로 인재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를 꼽았다. 잡지는 ▲실력에 따라 차별화된 처우 ▲국제화 가속을 위한 삼성 특유의 지역전문가제도 ▲지속적으로 추진되는 우수인력 확보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에의 투자 등을 삼성 성공신화의 원동력으로 주목했다. 삼성은 고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인재제일’을 사훈으로 삼을 정도로 사람을 뽑고 가르치는 일에 힘을 기울여 왔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내는 제조업체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1만명을 먹여 살리는 천재’들이 삼성전자내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삼성, 헛말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연간 인력 양성 비용만 2000억원을 쓴다. 재교육 비용만 800억원이 넘는다. 직급별로 다양한 양성 코스도 마련돼 있다. 삼성전자의 신입사원 교육은 각양각색의 새내기들을 ‘삼성맨’으로 만드는 첫 관문이다. 그룹 공통으로 한달간 합숙훈련을 하는데 새벽 5시50분 기상해 밤 9시까지 빡빡한 일정이 짜여져 ‘논산훈련소’로 불린다. 일과가 끝나도 팀별 회의 등으로 취침 시간은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첫 주에는 삼성인의 예절, 직장생활의 이해, 자기소개 등 기본교육과 교양강좌가 이뤄지고 둘째 주에는 삼성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사사, 창의적 발상법, 그룹 현황, 조직문화 등을 배운다. 자원봉사 및 극기훈련, 테마활동 등으로 구성된 셋째 주 교육과 마지막 주 정리·평가가 끝나면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반응을 보였던 신입사원들의 태도가 상당히 바뀐다. 팀별로 신제품을 구상, 제품모형을 만들고 광고·마케팅까지 진행하는 ‘크리피아드(크리에이티브+올림피아드)’는 입문교육의 ‘백미’로 꼽힌다. 삼성전자의 S사원은 “4주간 교육이 끝나고 나니 묘한 자부심 같은 게 느껴지더라.”고 말했다. 삼성은 해외법인에서 뽑은 현지인 신입사원들도 그룹 입문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삼성전자 오스틴법인 관계자는 “단체교육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았던 외국인 신입사원도 그룹 교육을 받고 나더니 애사심이 굉장히 강해졌다.”며 입문교육의 ‘힘’을 평가했다. 삼성전자 부장급은 ‘SLP(Samsung Business Leader Program)’란 특수교육을 받는다.5개월 동안 변화와 혁신, 재무회계, 마케팅, 리더십, 위기관리능력 등 경영진이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키우게 된다. 교육 대상은 부장급 1500명 중 50명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핵심 인재를 골라 내 특별 교육을 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SLP를 이수했다고 해서 모두 임원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직급별 교육과 별도로 직원들은 평생학습 개념의 사내교육 기회를 온·오프라인을 통해 제공받는다. 영어·일어·중국어 등 거의 모든 외국어와 마케팅·재무·회계·인사 등 경영관리부문, 반도체·정보통신 등 기술부문, 정보기술(IT)은 물론 에티켓, 한자까지 교육 프로그램은 1000개에 달한다. ●맞춤인재 양성소,‘삼성공대’ 지난 89년 사내 기술대학으로 출발,2001년 3월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정규대학 승인을 받은 삼성전자 반도체공과대학은 지난달 졸업식에서 박사과정 3명을 비롯해 석사과정 21명, 전문학사과정 32명 등 총 5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번 졸업식으로 삼성전자 공과대는 정식 인가를 받기 이전인 2002년까지의 졸업생 412명을 포함, 총 582명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 석ㆍ박사 및 전문학사를 배출하게 됐다. 지난 2000년 삼성재단인 성균관대와 산학 협동 운영약정을 체결, 사내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 성대 학위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교육부로부터 4년제 대학과정을 인가받아 올해부터 4년제 학부 체제(6학기)로 확대 개편됐다. 삼성전자 공과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공의 학사 과정(정원 40명)과 디스플레이, 믹스트 시그널(Mixed Signal), 시스템&소프트웨어, 프로세스 개발 등 4개 전공의 석ㆍ박사 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500여명의 사내 박사급 교수진이 학생간 1대1 지도체제를 갖추고 있다.1년간은 본인의 업무를 쉬면서 학업에만 매진할 수 있고 2학년부터는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 ●전 세계에 ‘친(親) 삼성맨’을 만들어라 삼성의 교육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유명한 ‘지역 전문가’ 제도는 기업의 경쟁력은 물론 직원 개인의 경쟁력과 국가 경쟁력까지 끌어 올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외국 주재원의 35%는 이 제도를 통해 양성됐다. 선발된 직원은 현지로 부임하기 전 경기도 용인의 삼성인력개발원에서 12주간의 합숙교육을 받은 뒤 1년 동안 6개월은 언어공부와 현지화를 위한 시간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직무 관련 과제연구를 실시한다. 삼성은 지금까지 2800명의 지역전문가를 배출했다. 초창기 미국, 유럽을 거쳐 요즘은 주로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전략지역’에 포진돼 있는 지역전문가들은 1년간 철저한 현지화 과정에 들어간다. 지역전문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문제지만 해당 국가의 풍물과 제도, 문화를 이해하고 ‘인맥’을 쌓아두는 일도 중요하다. 자유롭게 다니며 그 나라를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에 가족들은 한국에 두고 가야 한다.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파견기간에 친지나 친구를 만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거의 없다. 대기업 근무 경력에 연봉과 별도로 7000만∼1억원이나 지급되는 ‘두둑한’ 활동비로 무장한 지역전문가들은 나이, 지위, 성별, 직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현지인들을 만나 관계를 다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역전문가 한 사람당 30명의 지인을 만들었다면 현재 전세계에 10만명의 삼성 네트워크가 결성돼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법인의 A차장은 지역전문가 시절 맺은 인연으로 현지 고위관료의 딸과 결혼, 인도네시아전자협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현지화에 성공했다. 왕실가문의 딸과 결혼해 현지의 ‘로열패밀리’로 부상한 지역전문가 출신도 있다. 이들이 쌓아둔 인맥은 전 세계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중국 지역전문가 출신의 S차장은 “현지에서 알고 지낼 때는 월급이 15만원에 불과했던 대학교수가 몇년 뒤 어느날 한국을 방문, 하얏트 호텔에 투숙하는 것을 보고 그 어떤 자료보다 중국경제의 성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지역전문가 훈련 마친 金대리 지난해 말 치열한 경쟁을 뚫고 러시아 지역전문가로 선발된 삼성전자 김 대리는 선발의 기쁨도 잠시, 생소하기만 한 러시아어를 어떻게 배울 것인지 막막하기만 했다. 대학 전공(광고홍보)도 한참 거리가 멀고 평소에 단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러시아어는 게다가 가장 배우기 어려운 외국어로도 악명높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체계적인 교육은 불과 두달 반 만에 김 대리의 러시아어 수준을 러시아에서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올려 놓았다. 경기도 용인의 삼성 ‘외국어생활관(외생관)’에 입소,12주간 강도높은 합숙교육을 이수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으로 파견될 지역전문가들은 외생관에서 영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독일어 등 기초 언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외생관의 일과는 매일 아침 6시30분 기상에 취침 시간은 밤 12시를 훌쩍 넘긴다. 수업은 오전 9시30분 시작이지만 8시면 강의실은 꽉 찬다. 어떻게든 10주(전체교육 중 2주는 전문가 강좌 등)안에 해당 언어를 익혀야 하기 때문에 교육생들 가운데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러시아인 강사는 우리말을 거의 모르기 때문에 궁금한 게 있으면 러시아어를 찾아서 손짓 발짓 섞어가며 배워야 한다. 회화와 문법으로 진행되는 정규수업(점심시간 포함 7시간)이 끝나면 곧바로 교육생들끼리 소그룹으로 스터디를 시작한다. 그날 배운 내용을 빠짐없이 머릿속에 집어 넣어야 내일 진도를 따라갈 수 있다. 주5일제가 시행된 뒤 외생관도 매주 금요일 밤이면 외출이 ‘허락’된다. 일요일 밤에 돌아오거나 월요일 아침에 바로 출근해도 되는데 욕심많은 교육생들 가운데는 주말 외출을 ‘반납’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주말을 제외하고 교육생들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다. 수업시간은 물론 자유시간에도 대부분 교육생들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눈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외생관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현지어를 써야 한다. 우리말 사용은 금지된다. 하루 6시간의 정규수업과 10시간 가까운 ‘자율학습’에 매주 월요일 실시되는 강사의 테스트는 점점 교육생들의 눈과 입을 트이게 한다. 10주간의 ‘지옥훈련’을 마치고 최종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한 김 대리는 “밖에서 학원다니며 이 정도 수준에 오르려면 2∼3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국가硏 억대 연봉시대] 대기업 대리급 ‘블루칩 직장’

    ‘이공계 전공자들이여, 국가연구기관의 문을 두드려라.’ 서울신문이 18일 과학기술분야 27개 국가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올해 채용계획을 조사한 결과, 신규채용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계획이 확정된 21개 기관 중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 13개 기관(61.9%)이 올해 신규채용 인력을 늘리기로 했다. 이에따라 올해 국가연구기관의 전체 신규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10% 정도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과학기술평가원 채용 5배 확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채용규모를 지난해 5명에서 올해 25명으로 확대,400%의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원자력의학원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광주과학기술원, 한국과학재단 등도 올해 채용인력을 지난해보다 각각 두배 이상 늘려 잡았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당초 올해 채용규모를 지난해의 절반 수준인 25명으로 잡았다가 심각한 이공계 취업난을 감안, 당초 계획보다 인원을 늘리기로 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지난해의 경우 심각한 취업난을 감안,2003년 18명에 그쳤던 신규채용 인원을 50명으로 확대한 것”이라면서 “올해에도 예정보다 더 뽑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 3개 기관은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사람을 뽑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5개 기관은 채용규모를 줄였다. 채용계획을 확정짓지 않은 6개 기관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신규인력을 뽑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연구비 지원증액과 개발분야 다변화 이렇게 채용인원이 늘어난 것은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증가와 맞물려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통합추세 등에 따른 연구개발 사업의 다변화와 이를 위한 조직규모 확대 등도 중요한 이유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정보기술(IT) 9대 신성장 동력사업을 추진하면서 인력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전년(31명)의 3배 수준인 94명을 선발했으며, 올해에도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의 채용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실력있는 인재들이 어느 때보다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도 채용확대의 이유로 꼽힌다. 올해 채용규모를 작년(21명)보다 축소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채용인원 확대를 고민하고 있다. 연구원 관계자는 “조만간 가스 하이드레이트 전문사업단이 공식출범할 경우 당장 해당분야 연구인력을 추가로 채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임 최고연봉 박사급 5000만원 서울신문 조사결과, 국가연구기관의 초임 최고연봉은 박사급의 경우 5000만원(한국전기연구원)으로 조사됐다. 광주과학기술원이 최고 5200만원으로 가장 높지만, 이는 교수진에게 책정된 급여 수준이다. 대부분의 연구기관이 박사급 3600만∼4500만원, 석사급 3000만∼3500만원, 학사급 2400만∼3000만원 등의 연봉을 주고 있다.30대 기업 연봉과 비교할 경우 박사급은 과장, 석사급은 대리, 학사급은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을 각각 웃도는 수준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경동도시가스 사장 송재호씨

    경동도시가스는 14일 주주총회를 열어 송재호(38) 기획부문 이사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신규선임했다. 이형기 전 사장은 부회장이 됐다. 신임 송 사장은 서강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현대를 삼성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은 현대의 창업 정신을 강조한다. 현대는 남이 일궈놓은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올렸다. 건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으며, 중공업이 그랬다.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이를 평생의 긍지요, 자랑으로 여겼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끌려가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만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내 손으로 말뚝을 박고 길을 닦아 시작하지 않은 공장이 없다.”며 기업 강제 통·폐합에 맞섰을 정도였다. 1947년 5월25일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지 60여년. 삼성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현대는 이내 1위 기업으로 우뚝 섰고,‘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던 2000년까지 그 지위는 차돌만큼이나 단단했다. 이때 현대그룹의 자산규모가 87조여원. 계열사 수만 40개가 넘었다. 비록 그룹이 쪼개지면서 외형상의 규모가 작아지고 재계 서열은 떨어졌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전화위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현대차그룹), 유통(현대백화점), 해운·제조(현대그룹), 조선(현대중공업), 금융(현대해상·현대기업금융) 등 각자 전문그룹의 길로 나서면서 경쟁력은 더 강화되고 동반 부실의 위험은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그룹들이 이제서야 계열분리 등으로 홍역을 앓는 동안 현대의 대표주자들은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KCC, 한라, 성우 등 창업주의 형제들이 이끄는 그룹들도 각자 독자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언뜻 봐도 느껴질 만큼 현대에 뿌리를 대고 있는 기업들은 유난히 굴뚝업종이 많다. 고용된 인원과 딸린 부품·협력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국민경제 기여도로 따지면 현대가 여전히 1위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또 한 가지, 현대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정신’이다. 현대에는 일단 해보자며 덤비는 정신,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때로는 비합리성을 낳기도 하지만 현대맨들은 이를 “맨바닥에서부터 기업을 일군 현대만의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를 “진정한 기업가(起業家) 정신”이라고 불렀다. 제각각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가를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기도 하다. ●담(淡)한 혼맥… 후한 연애결혼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현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하다. 낭만을 즐겼던 고 정 회장이 자식들의 연애에도 너그러웠던 영향이 가장 크다.‘왕 회장’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그 자신,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변중석)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고 동생이 일곱(한명은 어려서 사망)이나 됐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손가락을 꼽는다. 직계가족 중에 굳이 꼽자면 다섯째아들 고 몽헌(MH)씨와 여섯째아들 몽준(MJ)씨를 들 수 있다. 몽헌씨는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 정은씨와, 몽준씨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영명씨와 각각 결혼했다. 오랜 세월 재계를 주름잡았던 현대의 위상에 견줘 혼맥이 조촐한 데는 창업주의 성공과정과도 무관치 않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막노동꾼을 거쳐 대기업 총수에 오른 그는 살아생전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담(淡)한 마음을 갖자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곤 했다. 권력이나 부(富)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지만 굳이 혼사줄까지 대가며 공짜를 탐할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정략결혼의 흔적이 적은 대신에 유난히 많은 손(孫)과 맞닥뜨리는 게 현대라는 집안이다. 이런 현대가 대(代)를 건너뛰면서 LG, 롯데, 한진, 이건, 비비안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과 사돈을 맺은 점은 흥미롭다. 현대가의 2세들이 ‘몽(夢)’자 돌림이라면 3세들은 딸이 ‘이(伊)’, 아들은 ‘선(宣)’자 돌림을 쓴다.4세는 ‘진’자(딸),‘창’자(아들) 돌림이다. ■ 현대의 핵심축 아들들 ●장남 몽필… 쌍용가와 인연 큰아들 몽필씨는 나이 50도 안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영 적자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1982년 4월 어느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때가 마흔아홉살. 수도여대 출신의 부인 이양자씨와 두 딸 은희·유희씨는 망연자실했다. 몽필씨가 떠난 지 한달 뒤, 정주영 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몽필씨의 처남, 즉 이양자씨의 친동생. 졸지에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양자씨마저 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큰딸 은희씨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했다. 둘째딸 유희씨는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결혼해 두 아들(진석·진하)을 두었다. 지용씨는 현재 용평리조트 상무를 맡고 있다. ●2남 몽구… 글로벌 현대차그룹 리더 몽필씨의 죽음으로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한 이는 둘째아들 몽구(MK)씨였다. 유희씨가 결혼할 때 부모 역할을 대신 한 사람도 몽구씨 부부였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낸 그는 기아차마저 인수해 지금의 현대·기아차 그룹을 이끌고 있다.2000년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출범한 지 몇 년도 안돼 그룹을 세계 6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출범 당시 10개였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다. 그룹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85조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소비자 보고서(컨슈머 리포트)’는 최근 현대차의 뉴쏘나타를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했다. 갤로퍼 신화 때부터 MK가 강조해온 ‘품질 경영’의 힘이다. MK는 평범한 집안의 딸 이정화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두었다. 큰딸 성이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이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아들 두훈씨와 결혼했다. 둘째딸 명이씨는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 태영씨와, 셋째딸 윤이씨는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신성재씨와 결혼했다. 둘째사위와 셋째사위는 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각각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아들인 의선씨는 지난 11일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내 직함은 현대·기아차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으로 기아차의 기획, 재무, 수출, 연구·개발(R&D) 등 핵심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정도원 강원산업 부회장의 큰딸 지선씨다. ●3남 몽근… 소리없이 유통명가 키워 셋째아들 몽근씨는 일찌감치 유통을 넘겨받아 현대백화점 그룹을 이끌고 있다.‘빅3’(MK·MH·MJ)에 가려 조명은 덜 받았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으면서 소리없이 유통 명가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현대백화점, 현대H&S(非 백화점 계열), 현대홈쇼핑 등 주력 계열사를 토대로 지난해 5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소신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면서도 거의 매일같이 매장을 둘러봐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위 형 몽구씨와는 고등학교(경복고)-대학교(한양대) 동문인 데다 선굵은 외모까지 비슷하다.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씨의 딸 경숙씨가 부인이다. 두 아들은 각각 부회장,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아들 지선씨는 고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씨와 결혼했다. 둘째아들 교선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큰딸 승원씨와 지난해 말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교선씨의 결혼식에는 큰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해 모처럼 우애를 다지기도 했다. 현대가는 한때 딸만 남기고 떠난 몽필씨의 대를 잇기 위해 지선씨를 양자로 입양하는 방안을 의논했었다. 유교식 법도대로라면 바로 아래 동생인 몽구씨의 아들을 입양해야 했으나 의선씨가 외아들인 탓에 지선씨가 선택된 것.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입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때 의선씨가 ‘종손’ 자격으로 고인의 영정을 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외사위 희영… 천마산스키장 운영, 이건·비비안과 사돈 현대가는 자손이 많은데도 딸은 귀한 편이다. 외동딸 경희씨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 그러나 바깥 활동은 없다. 대신 남편(정희영)이 선진종합㈜ 회장이다. 공교롭게 고 정주영 회장의 여동생 희영씨와 이름이 똑같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입사 동기다. 조선 수주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 창업주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딸 경희씨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 희영씨를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이후 희영씨는 조그만 해운회사(선진해운) 하나를 갖고 독립,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천마산 스키장은 오롯이 그가 독립해 만든 회사다. 외아들 재윤씨가 선진종합㈜ 상무다. 두 딸은 각각 이건그룹과 비비안그룹으로 시집갔다. 큰딸 윤미씨의 남편이 이건창호 박승준 상무, 둘째딸 윤선씨의 남편이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이다. ●4남 몽우… BNG스틸 통해 부활 넷째아들 몽우씨는 숙명여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 이행자씨와 연애결혼했다.40대에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은 그는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유족을 돌보는 일도 사실상의 장남 몽구씨의 몫이었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BNG스틸(전 삼미특수강)에 입사시켰다. 큰조카, 즉 몽우씨의 장남인 일선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일선씨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와 사돈관계를 맺는다. 일선씨의 부인은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다. 구 부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이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씨와 결혼했다. ●5남 몽헌… 못다 이룬 꿈, 현 회장이 힘찬 날갯짓 ‘비운의 황태자’ 몽헌씨는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설립해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끌어냈다.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인 현정은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황망히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사업가 집안의 딸답게 배포와 합리적 리더십으로 1년 만에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대상선, 올해 첫 흑자를 넘보고 있는 현대아산, 주가 1000시대의 수혜주 현대증권 등을 축으로 재계 10위권 진입(현재 19위)을 눈앞에 두고 있다.201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10위권에 진입한다는 ‘2010’ 프로젝트를 가동중이다. 현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이 직접 ‘점지한’ 며느리로도 유명하다. 현 회장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결혼 뒷얘기는 이렇다.“당시 현대상선 회장이던 아버지(현원영)를 따라 선박 명명식차 울산에 내려갔다가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명예회장(정주영)께서 나를 선보러 미리 내려오셨었다. 명예회장께서 중매를 서신 셈이다.” 큰딸 지이씨는 현대상선 재정부 대리로 근무 중이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고3 수험생이었던 외아들 영선씨는 졸업후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다. ●6남 몽준… 세계1위 현대중공업 ‘건조’ 지금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세계 일류 현대중공업의 뒤에는 기업인 몽준씨가 있다. 형제중에 학벌(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이 가장 좋아 ‘신문대학’(소학교만 졸업한 정주영 회장은 신문을 통해 지식의 대부분을 얻었다며 자신을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출신인 왕 회장이 유난히 예뻐했다는 몽준씨는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1988년 금배지를 처음 달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도했다. 경영은 CEO에게 맡기고 자신은 대주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만 내리고 있는 것. 지금도 현대중공업의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공식 직함은 5선의 국회의원이자 축구협회 회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10조원. 웬만한 그룹과 맞먹는다. 부인 김영명씨와는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큰아들 기선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올해 학사장교(ROTC)로 임관했다. 이로써 부자(父子)가 ROTC 선후배가 됐다. 두 딸 남이씨와 선이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월드컵 베이비’로 유명한 늦둥이 아들 예선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우리나라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최종 통과한 것을 기념해 이름을 ‘예선’으로 지었다고 한다. ●7남 몽윤… 현대해상으로 컴백 몽윤씨는 지난해 말 업계 2위의 손해보험회사인 현대해상의 등기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전격 복귀였다. 방카슈랑스(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의 교차판매) 확대 시행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연애결혼해 정이양과 경선군을 두었다. ●8남 몽일… 할부금융으로 내실 막내아들인 몽일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마친 뒤 현대상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현대기업금융을 차려 독립했다. 기업대출 등을 주로 취급하는 회사다.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해 고등학생인 현선(영국 유학중)군과 중학생인 문이양을 두고 있다. ■ 현대의 또 다른 축 형제들 고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은 동생이기 이전에 창업 동지요, 사업 동료였다.6·25전쟁 직후 고령교(대구와 거창을 잇는 교량) 복구 공사를 덜컥 떠맡았다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내남없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내놓은 것도 동생들과 매제였다. 이 때문에 20명이 넘는 대식구가 한 집(돈암동)에 모여 살아야 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옛 영화 꿈꾸는 한라·성우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던 첫째 동생 인영씨는 1953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75년 말 중동 진출 때 신중론을 펴 형과 이견을 빚을 때까지 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당시 독립해 만든 한라그룹은 한라건설·한라시멘트·한라중공업·만도기계 등을 거느리며 재계 서열 12위로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그룹이 부도나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은 둘째 아들 몽원씨가 한라건설 회장을 맡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 큰 아들 몽국씨는 94년 아버지가 동생을 그룹 후계자로 지목하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한때 배달학원 이사장을 맡았으나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부인 이광희씨는 배달학원 계열인 한라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시멘트·성우종합건설·성우리조트·현대종합금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성우그룹은 둘째 동생 순영씨 일가가 이끌고 있다. 순영씨는 명예회장으로 물러앉고 2세 경영을 정착시켰다. 큰아들 몽선씨가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을, 둘째아들 몽석씨가 현대종합금속, 셋째아들 몽훈씨가 성우전자, 넷째아들 몽용씨가 성우오토모티브를 각각 맡고 있다. 몽선씨는 사촌인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과 함께 정몽헌 회장의 부검을 임관하기도 했다. ●‘기계박사’가 일군 한국프랜지 자동차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의 김영주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매제다. 정주영 회장은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두 번째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며 매제를 ‘기계박사’라고 불렀다.1946년 정주영 회장이 미 군정에서 불하받은 토지에 ‘현대’(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상호를 처음 내걸었을 때, 감격적으로 지켜본 이도 영주씨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로부터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기직종이던 운전기사 출신의 영주씨는 황해도 홀동광산에서 역시 운수업을 하던 정주영 회장과 뜻이 맞아 사업을 같이 도모했고, 매제까지 됐다. 부인 정희영씨는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을 때 “대통령 한번 못해보고…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쩔거나.”하며 가장 서글프게 울었던 동생이다. 장남 윤수씨가 회사를 물려받아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으로 있다. 둘째아들 근수씨는 독립해 울산화학·퍼스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윤수씨의 장남 용석씨가 프랜지공업 계열사인 서한산업(자동차부품회사) 대표이사 사장이어서 3세 경영체제를 갖춰 가고 있다. 둘째아들 용범씨는 이름을 용태로 바꿨다. ●‘포니 정’ 부자(父子)의 변신 ‘포니 정’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넷째 동생 세영씨는 외아들 몽규씨와 함께 1999년 3월 현대그룹에서 독립해 건설시장에서 영역을 확실하게 굳혔다. 꼼꼼한 시공과 치밀한 분양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도급순위 4위 업체로 키워놓았다.‘포니 정’이라는 별명은 1976년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1호 ‘포니’를 만들어낸 데서 붙여졌다. 이같은 열정과 헌신을 인정받아 87년 형에게서 현대그룹 회장직을 물려받기도 했다. 분가한 뒤로는 현대산업개발 경영에만 매달렸다. 몇 년 전 폐암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희수연을 치렀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회사 경영은 아들 몽규(회장)씨가 책임지고 있다. 지금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몽규씨가 직접 지었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현대가 맺은 최고위층 사돈도 세영씨 집안에서 나왔다. 큰딸 숙영씨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경수(서울대 교수)씨와 결혼한 것. ●“아… 신영아”-교통사고 아닌 병으로 요절 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고 정주영 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이다.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62년. 처음에 어떤 기자가 교통사고사로 쓰면서 오랜 세월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인은 지병이라고 유족은 본지에 밝혔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일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정주영 회장이 일주일을 손놓았을 만큼 가족의 슬픔은 컸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였던 미망인 제수씨(장정자)에게 현대학원(현대고)을 경영토록 했다. 지금도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정자씨는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남한측 방문단장을 맡았었다. 장홍선 전 극동도시가스 회장의 누나다. 신영씨는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몽혁씨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해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외자유치와 함께 2002년 전문경영인에서 물러나 그 해 건축자재 유통회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해 돌아왔다. 부인 이문희씨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손녀이다.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였던 동원 선생은 평생 모은 문화재 4941점을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블룸버그대학 회계학과 교수인 남편 임광수씨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리틀 정주영’이 이끄는 KCC 막내동생인 상영씨는 ‘불에 타지 않는 바닥재’ 등으로 유명한 자재 전문그룹 KCC를 이끌고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성격 등이 고 정주영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 불린다. 큰형과 나이 차이가 21살이나 나 아버지처럼 따랐다. 장조카 몽구씨와도 2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카인 고 정몽헌 회장이 자금난에 몰렸을 때 200억원을 선뜻 내놓았을 만큼 의리도 강하다. 그러나 조카의 죽음 이후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룹 경영은 두 아들에게 맡긴 상태다. 큰아들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 둘째아들 몽익씨가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셋째아들 몽열씨는 계열사인 금강종합건설 사장을 맡고 있다.KCC는 몽익씨를 통해 롯데·한진그룹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몽익씨의 부인 은정씨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조카(신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이다. 은정씨의 언니 은영씨는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의 부인이다. 몽익씨와 조 회장이 동서지간인 셈이다. ●현대가의 여자들 현대가의 딸이나 며느리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정경희-이양자-현정은-김혜영-정유희 등) 출신에 해외유학(김영명-정지선-황서림-허승원 등)까지 다녀온 재원들이 적지 않지만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외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남편을 따라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유일한 경영자인 현정은씨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였다. 오너 일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한 관계자는 “지금도 명절 때면 청운동 집(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오랫동안 살던 집)에 몇 대에 걸친 며느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직접 장만한다.”면서 “옷차림들도 수수하고 인상이 소박해 언뜻 봐서는 재벌가 며느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유난히 많은 연애결혼’에서 찾는다. ●그룹분리 가속화시킨 ‘경영권 분쟁’ 2000년 ‘형제간 다툼’은 현대가를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핵분열시킨 결정적 계기였다.99년 12월 마지막 날, 고 정몽헌(MH) 회장쪽 인사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전격 발령나면서 시작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은 그룹 후계자로 MH를 지목한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기까지 석달여에 걸쳐 숨막히게 전개됐다. 효심이 남달랐던 MK는 아버지의 육성이 공개되자 깨끗이 승복하고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아픔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지배구조를 선진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21일 왕 회장의 4주기에 모처럼 형제들 모두가 함께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가족화합이 됐음을 안팎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현대가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했다. hyun@seoul.co.kr ■ 정주영 회장의 ‘빈대론’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은 ‘해당화가 찬란하고 눈(雪)이 많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에서 1915년 6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죽어라고 일해도 콩죽을 면할 길이 없는 농군이 진절머리나게 싫고 지겨워”(첫번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열네살 무렵부터 줄기차게 가출을 시도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 보기도 하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도 봤다. 그러기를 네번째. 열아홉살 마지막 가출에 성공해 인천부두 막노동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한 푼이 아까워 몸을 기댔던 곳이 노동자 합숙소. 뼈가 으스러지는 중노동으로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만큼 고단했지만 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들의 공격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밥상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빈대들의 공격이 잠시 뜸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내 밥상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와 온 몸을 물어 뜯었다. 다시 머리를 써야 했다. 무릎을 탁 칠 만한 묘안이 떠올랐다. 밥상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하나씩 담근 뒤 그 위에 올라가 잔 것이다. 빈대를 밥상다리로 유도해 양재기 물에 익사시키자는 계략이었다. 쾌재를 부른 것도 이틀여. 빈대들은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양재기 물을 건넌 것일까.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불을 켜본 젊은 정주영 회장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빈대들이 밥상다리 대신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겨냥해 뚝 떨어져 목적 달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역경에 부딪칠 때마다 정주영 회장은 ‘빈대의 노력’을 떠올렸다.“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는 단골 지청구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울산 염포리)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조선소 투자금액을 유치할 때나,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꼽히던 중동 주베일 공사 입찰전에 뛰어들 때나, 직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도리질칠 때면 “이봐, 해봤어?”라고 불호령을 쳤던 것도 빈대의 집요한 노력을 떠올리면서였다.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정주영 회장은 근검과 노력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자본금” “한강에 기적은 없다. 성실하고 지혜로운 노동이 있을 뿐” “고선지부지설(苦蟬之不知雪;여름철 서늘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없어지는 매미는 한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을 알 수 없다)” ‘아산 정주영 어록’에 실려있는 그의 유명한 말들이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대모’ 변중석 여사 열여섯살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살 연상의 고향총각 정주영에게 시집온 변중석씨는 현대가의 산 증인이다. 올해로 84세. 젊어서 남편이 사준 재봉틀 하나를 자신 소유의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한결같은 근검과 후덕함으로 ‘현대가의 여자’라는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근검을 가르쳤다면, 변씨는 새벽 3시반부터 손아래 동서·며느리들과 아침 준비를 함께 하면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고 일렀다. 가혹하리만치 자식 교육에 엄격했던 정주영 회장이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젊었을 때 콩나물 버스에 시달려봐야 나중에 자가용을 샀을 때의 기쁨을 안다.”며 역정을 내자 “손주녀석들 키우는 문제에까지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거냐.”며 막아준 이도 변씨였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도 아내를 가리켜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을 정도다.“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굳혔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땅에 묻는 참척의 고통과 여자로서의 마음고생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보살’도 탈이 났다. 거동이 불편해 10년 가까이 병원(현대아산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상 맏며느리인 이정화씨 등 며느리들이 틈날 때마다 병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의회]중앙정치 기웃 일부 386 지방정치에 헌신토록

    [의회]중앙정치 기웃 일부 386 지방정치에 헌신토록

    “중앙정치 언저리에서 노니는 386세대는 이제 지방정치에 힘쓰라.” 한 기초의회 의원이 이같이 쓴소리를 해 눈길을 끌고 있다.‘지방의회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카페를 운영 중인 서울 동작구의회 김익수(40·노량진1동)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이러한 요구는 여·야를 막론하고 현재 참된 변화의 물꼬를 트지 못하고 있는 중앙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한 것으로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김 의원은 최근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 ‘웃는 새와 함께하는 지방자치 이야기’(www.cyworld.com/glorykis)에 글을 실었다. 그는 “386세대의 활로를 넓히고, 한국사회를 실질적으로 민주화하며, 건강한 국가체계로 이끌기 위해서는 지방정치에 헌신하는 게 중요한 대안”이라고 밝혔다.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거쳐 같은 학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지방정치는 이제 민주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지금까지 지방의 존재가치가 미미했으며, 중앙정치에 가려져 지방정치 자체가 위상을 찾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창당발기인으로 도서출판 ‘사람과 길’ 대표이기도 한 그는 “따라서 지방의 관점에서 한국정치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하는 온전한 정치의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마지막으로 “아직도 중앙정치 무대에만 관심있는 386세대 인재들과 역사의식을 지닌 386들의 지방정치 도전이 큰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본다.”고 글을 끝맺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이젠 사람입국이다] 16. HP “직원교육이 경쟁력”

    [이젠 사람입국이다] 16. HP “직원교육이 경쟁력”

    정확한 평가를 통한 올바른 인사가 사람중시 기업경영의 핵심이다… 직무능력 평가의 시작은 문화적 충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지도자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팔로알토(미 캘리포니아주) 전경하특파원|휼렛패커드(HP)는 지난 2002년 직원들의 학습기록과 업무평가기록을 통합했다.15만명에 이르는 전 직원이 어떤 교육을 받았고, 직무능력은 어떠했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사내 인터넷의 직원 사진을 클릭하면 된다. 이 작업을 총괄한 데이지 잉 HP 인력개발담당 부사장은 “통합작업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HP가 정보기술(IT) 업체였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밝혔다. 학습평가기록과 업무기록이 통합됨에 따라 적재적소의 인사가 가능해졌다. 잉 부사장은 “정확한 평가를 통한 올바른 인사가 사람중시 기업경영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철저한 평가는 위부터” 직무능력 평가와 관련, 잉 부사장은 “직무능력 평가의 시작은 문화적 충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지도자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P의 경우 5단계로 이뤄진 평가 과정에서 최고경영자(CEO)는 가장 높은 0단계에 해당된다.CEO는 1단계에 속하는 임원 및 부회장이나 사장급을 평가하고 1단계 임원 등은 2단계 임원들을 평가한다. 잉 부사장은 2단계 평가 대상이다.2단계 임원들은 다시 하위직을 평가하게 된다. 지도자의 솔선수범은 교육프로그램에서도 나타난다.CEO는 지도자 교육프로그램의 첫날과 마지막날을 포함해 1년에 6차례에 걸쳐 의무적으로 직원 교육에 참여해야 한다. HP의 교육프로그램은 4단계로 구성된다.1단계에서는 모든 직원들이 참여하며, 직원당 40시간이 투자된다. 전체 직원의 30∼40%가 참여하는 2단계에서는 교육 시작 전과 교육이 끝난 뒤 교육 내용 등을 평가한다. 전 세계 150개 지역에 있는 평가센터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온라인 평가 방식으로 이뤄진다. 3단계는 관리자급,4단계는 미래와 현재의 지도자를 위한 과정이다. 잉 부사장은 “3·4단계는 프로그램의 속성상 개발과 운영에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행동 변화를 다루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는 어렵다.”고 설명했다.4단계 교육을 받는 직원은 전체 직원의 15% 안팎이다. 직원들의 특정 프로그램 학습이 끝나면 인력개발부에서 일괄적으로 직원의 교육기록을 수정하게 된다. HP의 교육담당 직원은 전문가 200여명을 포함해 800명이며, 연간 3억달러가 직원교육에 투자된다. ●세계 150개 센터서 온라인 평가 교육프로그램 개발은 철저한 수요 조사에 의해 이뤄진다. 잉 부사장은 “기존 교육프로그램이 이뤄낸 성과와 앞으로 필요한 교육프로그램 등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좋은 교육 프로그램 개발의 전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우선 프로그램을 개발하기에 앞서 해당분야의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신상품에 대한 특징 및 판매기술 등에 대해 묻는다.HP 직원들은 모두 컴퓨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두번째는 관리자 면접을 통해 필요한 프로그램을 찾아낸다. 세번째는 HP에 충실한 고객들을 만나 그들이 HP로부터 무엇을 더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고객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어떤 직원교육이 필요한가를 평가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개발된 신상품에 대해 7개의 언어로 번역된 360개 문항에 대해 1만 1000명의 판매직원에게 이해 여부를 물었다. 또 고객들에게는 판매직원이 어떤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기를 원하는지를 문의했다. 이를 토대로 각각 8∼10명의 판매원을 책임지는 판매관리자들의 교육프로그램을 작성했다. 프로그램의 큰 틀은 본사에서 정하고 이를 전 세계에 적용한다. 또 컴퓨터를 통한 교육에 100% 의존할 수 없을 때에는 현지의 교육기관과 연계,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본사의 경우 스탠퍼드대학이 주요 파트너다. ●개인의 성장 가능성을 열어줘야 잉 부사장은 “HP의 장점 중 하나는 직원을 교육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재배치를 통해 성장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직원들의 소속감을 불러일으켜 회사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 출신의 잉 부사장도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에서 10년 근무한 뒤 캐나다에서 10년 근무했다. 이어 2년전부터는 미 텍사스주의 휴스턴에 근무하면서 인력개발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여러 나라에서의 근무 경험을 통해 국제감각을 키웠고, 인력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게 되면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고 설명했다. lark3@seoul.co.kr ■ HP의 기업문화 |팔로알토(미 캘리포니아주) 정재삼 이화여대 교수·전경하 특파원|지난 2월 칼리 피오리나 휼렛패커드(HP) 최고경영자(CEO)가 퇴임한 것에 대해 일부 외신은 ‘HP 가치관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지난 2001년 컴팩을 인수한 이후 실적 부진에 허덕이던 HP가 지난해 컴퓨터 판매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하자 피오리나는 최고경영진 3명을 과감하게 해고했다. 전통적으로 인화(人和)를 중시하는 HP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었다. 미국은 고용시장의 유연화로 이직률이 높은 편이다. 특히 정보통신(IT)이 중심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 밸리의 이직률은 유난히 높다. 하지만 HP는 이직률이 낮다. 동종업종인 IBM이나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 비해 경영학석사(MBA)가 많으며 미국 시민들의 높은 존경을 받고 있는 편이다. 이는 HP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된다. ●지도력과 인간존중이 이끈 성장 HP는 1939년 스탠퍼드대 출신의 공학도인 윌리엄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한 주택의 차고에서 523달러로 시작한 회사다.66년이 지난 지금 연매출 810억달러,178개국에 15만명의 직원들이 진출해 있는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의 성장 원동력은 창업자들이 보여준 탁월한 지도력과 인간존중의 기업문화였다. 창업자들은 1940년대에 MBWA(Management By Walking Around)를 도입했다. 상급자가 부하직원을 찾아다니며 고충을 듣고 결재도 하는 내용이다.‘목마른 사람’인 상급자가 부하직원을 찾아다니게 해 여러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도록 했다. 철저한 개방정책을 고수한 것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HP는 자재창고도 개방돼 있다. 이로 인해 물품 낭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개방정책은 종업원들은 물론, 종업원과 경영자 사이에 생기는 오해와 불신을 없애는 효과를 봤다. 문제가 생기면 서로 솔직한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기업문화가 발전했다. 회사의 수익 일부를 사회로 환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IT가 큰 자산 HP의 인적자원개발 기초는 평생학습 지원이다.HP는 모든 구성원이 유연하며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IT같이 빨리 변하는 산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아울러 직원 모두가 자신을 개발시키려고 노력해야만 HP가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HP가 IT업체라는 사실은 평생학습을 실행하는 데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HP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학습 도구를 갖고 있다. 인터넷상에 구현된 가상교실이나 학습자 프로그램 등을 통해 모든 직원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학습할 수 있다. 2004년 한해 동안 57개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인터넷상의 교육시스템을 방문한 건수는 100만건을 웃돌았을 정도다. 교육프로그램 개발에 있어 소비자와의 접촉이 많은 소매업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행해진다. 현재 HP는 소매업자 관리팀에 상담기술과 주요 영업이슈 등에 대한 교육을 진행 중이다.HP는 교육이 끝난 개별 팀이 3년 안에 각각 3배의 이익신장을 이끌어낼 것이라 보고 있다.HP 회사 전체로는 3억 7500만달러에 달한다. HP는 또 모든 직원들에게는 자신의 경력개발 계획을 만들어 상급자와 의논하도록 권유한다. 직원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학습프로그램을 개발하는 ‘Learning on Demand’도 가동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는 지난 2002년 학습관리시스템(LMS)과 업무평가관리시스템(PMS)을 통합한 것이 큰 자산이 됐다. 두 시스템의 통합은 인적자원과 정보기술 부문의 협력을 통해 가능했다. 개인은 학습프로그램을 이용해 직무능력 향상과 연계시킬 수 있다.HP는 이 시스템의 통합으로 모든 정보가 인터넷상으로 공급됨에 따라 2700만달러를 절약했다고 밝혔다. chungjaesam@korea.com
  • 美유학 한인여대생 3명 교통사고 사망

    |뉴욕 연합|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석·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한국인 여학생 3명이 지난 5일 뉴욕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현지 언론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5일 오전 9시30분쯤 펜실베이니아주 덴빌시 인근 I-80 고속도로에서 최정윤(35·여·신문방송학 박사과정)씨가 몰던 승용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차와 충돌, 최씨와 함께 타고 있던 이현화(32·여·교육정책학 박사과정), 김주옥(29·여·회계학 석사과정)씨 등 3명이 숨지고 김모(32·여·신문방송학 박사과정)씨는 부상했다. 현지 언론 매체 등에 따르면 이들은 사고 당일 봄방학과 부상한 김씨의 생일을 맞아 펜실베이니아 현지를 출발, 뉴욕으로 1박2일 여행을 떠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여학생들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이행, 졸업을 앞두고 있다가 사고를 당했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③-신세계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③-신세계그룹

    신세계그룹은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한 기업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2004년 재계 서열 21위(자산 기준)로 한솔그룹(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녀 이인희 고문, 재계 36위), 새한그룹(차남 고 이창희 회장, 워크아웃 중),CJ그룹(장손 이재현 회장, 재계 23위)보다 앞섰다. 창업주의 5녀(막내딸)인 이명희(62) 회장은 1997년 계열 분리 때 백화점과 조선호텔만 갖고 나왔다. 그리고 그룹을 국내 최고의 유통 ‘명가’로 키웠다. 삼성에서 떨어져 나온지 불과 7년만에 백화점과 할인점 이마트를 주축으로 한 유통사업 외에 신세계건설, 신세계푸드시스템, 조선호텔, 신세계인터내셔널 등 13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자신은 여성 캐피털리스트 1위를 고수하던 올케 홍라희(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호암미술관장을 제치고 2001년 이후 국내 최고의 여성 부호가 됐다. 이 회장은 삼성가(家)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는 전형적인 정중동(靜中動) 행보의 오너다. 외부에 나서지는 않지만 소리없이 막후에서 회사의 중심을 잡으면서 방향을 제시하는 스타일이다. ●창업주의 귀여운 막내딸 이명희 회장은 창업주로부터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2세다.8남매(3남5녀) 중 막내딸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삼성그룹 출신 인사들은 “고 이병철 회장은 늘 이 회장을 데리고 다녔다.”고 회고한다. 고 이병철 회장은 회장직을 물러난 뒤 1년에 네차례 정도 일본 도쿄를 방문했는데, 이때 항상 이인희 고문과 이 회장을 동행토록 했다. 큰언니인 이 고문은 이 회장보다 열네살 많다. 이 회장은 부친이 사무실에서 먹는 과일도 먼저 맛을 보고 부친이 좋아하는 정도의 당도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들여보내곤 했다. 그래서 당시 고 이병철 회장 비서실팀 직원들은 사무실옆 간이 주방에서 꼼꼼하게 과일을 챙기는 이 회장을 두고 ‘감독관’이라고 수근댈 정도였다. 이 회장은 1943년생으로 이화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다.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본부 이사로 경영수업을 시작,80년 신세계백화점 상무로 승진한 뒤 97년 부회장에 올랐다. 무려 17년동안이나 상무직함을 유지했다. 그룹 회장이 된 것은 98년 말이다. 이 회장은 1967년 정재은(66) 명예회장과 중매로 만나 결혼, 아들 정용진(37) 신세계 부사장과 딸 정유경(33) 조선호텔 상무를 뒀다. 용진씨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와 동갑내기다. 사촌지간인 두 사람은 경복고 동창으로 서울대에 함께 입학하다 보니 사이가 매우 각별하다. 용진씨는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니다가 유학을 떠나 미국 아이비리그인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1995년 미스코리아 출신 인기 탤런트 고현정씨와 결혼했다가 지난해 이혼해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고씨와의 사이에 아들 해찬(7)군과 딸 해인(5)양을 뒀다. 유경씨는 서울예술고, 이화여대 응용미술학과를 거쳐 미국 로드아일랜드대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유경씨는 2001년 3월 초등학교 동창인 문성욱(33)씨와 결혼, 장녀 서윤(3)양과 차녀 서진(2)양을 두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은 문씨는 SK텔레콤 전략기획실을 거쳐 소프트뱅크 코리아의 자회사인 벤처스코리아에서 투자심사역(차장)을 지낸 뒤 현재는 유학 중이다. 문씨의 부친은 아리랑TV 사업본부장을 지낸 문청씨다. ●부친을 경영스승으로 삼고 있는 오너 재계에서는 ‘신세계가 삼성보다 더 삼성 같다.’는 얘기가 나돈다. 그만큼 기업문화, 경영스타일이 닮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창업주의 형제들 가운데 누구보다 부친을 닮으려고 애쓰는 이 회장의 숨은 뜻이 담겨 있다. 부친의 선견지명과 직관력이 소개된 한 일간지를 복사해 수첩에 항상 갖고 다니며 경영의 시금석으로 삼을 정도로 이 회장은 부친을 가슴 속에 품고 산다. 신세계백화점 본사 회의실과 자신의 아들 정용진 부사장 방에도 부친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부친의 경영철학을 신세계 맨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오는 8월 문을 여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사무실 로비에 부친의 흉상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다.“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내가 있겠느냐.”는 것이 이 회장의 생각이다. 이 회장은 누구보다 평소 부친의 경영 스타일을 빼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우선 ‘疑人勿用 用人勿疑’(믿지 못하면 아예 쓰지를 말고, 일단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는 용인술과 전문 경영인 체제 운영방식이 그렇다. 메모하는 습관과 업무의 중요성을 따져 챙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확실히 구분짓는 스타일도 비슷하다. 이 회장 스스로도 자신의 경영 스승이 선친임을 신세계 2005년 1월호 사보에서 드러낸 바 있다.“선대 회장께서 가장 힘쓴 것이 인재 육성이었다. 선대 회장께서는 성공한 일을 다시 돌아보지 않았고 늘 새로운 것을 찾으셨다.”면서 자신의 메시지를 부친의 육성에 담아 신세계 맨들에게 전했다. 이 회장이 무엇을 강조할 때 나오는 화법이 바로 “선대 회장은 이렇게 하셨는데….”이다. 이 회장은 실제로 젊은 시절 부친이 제일모직 등 일선 현장을 방문할 때 언니인 이인희 고문과 함께 수행하며 경영수업을 쌓았다. 창업주는 국내외 주요 인사들과 회동 때 “명희야, 들어온나.”해서 늘 이 회장을 합석시켜 보고 배우도록 했다. 신현확 전 총리, 민복기 전 법무부장관 등 당시 국내 정·관계의 실세를 만나 식사를 하거나 골프를 할 때도 항상 ‘명희’를 불렀다. 일본 정·관계의 원로와 회동에도 꼭 자리를 함께 하도록 했다. 그러다보니 이 회장은 부친이 교류하는 각계의 주요 인사들을 다 알 정도였다. ●섬세하면서도 ‘통 큰’스타일 이 회장은 한해에 고작 한두차례 회사를 방문, 업무 보고를 받을 뿐 경영에 일일이 간섭하지는 않는다. 부친과 마찬가지로 결재 서류에 사인을 해 본 적이 없다. 주요 사안이나 인사에 대해서도 사후보고를 받을 정도로 전문경영인을 믿고 맡겨 ‘통 큰’ 경영을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인희 고문은 동생의 경영스타일을 두고 “명희는 (전문 경영인에게) 다 맡기는 스타일인데도 회사가 잘된다.”며 부러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다고 해서 이 회장이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는 8월 문을 여는 신세계 본점 재개발 사업, 신규 백화점 진출, 명품 브랜드 유치 등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챙기며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을 문 열 때는 매일 그곳으로 출근하는 열성을 보였다. 특히 백화점의 사각지대로 알려졌던 지하 식품매장을 일일이 다니며 꼼꼼하게 챙겼다. 이 덕분에 위층에서 쇼핑을 하다가 식품매장으로 내려 오는 ‘샤워효과’가 아니라 지하 매장을 방문토록 만든 뒤 위층까지 고객을 끌어들이는 ‘분수효과’를 톡톡히 거두도록 했다는 후문이다. 이 회장을 아는 이들은 그가 여성스러운 섬세함과 대담함을 함께 지녔다고 평가한다. 격식을 싫어해 회사 내에 비서실은 물론 개인 비서도 두지 않고 있다.90년대까지 1년에 한차례 서울 한남동 자택으로 임원들을 초청, 식사를 대접하는 자상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큰 오빠인 맹희씨는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그의 따뜻함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부친으로부터 눈밖에 나서 유랑생활을 하던 맹희씨는 이 책에서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말을 못하고 있으면 늘 지갑을 열고 가지고 있던 돈 전부를 나에게 쥐어준 것도 명희였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명희는 내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었고 늘 따뜻한 마음씨로 나를 감싸주었다.”는 것이 맹희씨의 설명이다. ●신세계 핵심 축 구학서 사장 신세계는 1999년 구학서 사장이 총사령탑에 앉은 이후 계속 상승곡선을 그려 왔다. 구 사장은 명실상부한 전문경영인으로 이 회장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전문 경영인은 무한 책임을 지고 일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그는 회사 부채율을 230%에서 130%대로 낮췄다. 취임 당시 5만원했던 주가를 5년만에 30만원대로 끌어올려 이 회장을 한국 최고의 여성부호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신세계 신화’를 일궈낸 주역이지만 그는 한결같이 겸손한 모습이다. 오히려 신세계를 통해 자신이 성공한 데 대해 감사해한다.“56세에 은퇴하려고 했는데 59세에 사장을 하고 있으니 목표를 초과 달성하지 않았느냐.”며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구 사장은 겉으로는 부드러운 스타일이지만 실제로는 승부욕, 추진력, 결단력을 두루 갖췄다. 매일 새벽 5시면 집 근처 우면산을 오르고, 오전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회사에 출근한다. 일주일에 7∼8권의 책을 읽으며 신세계의 미래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고민한다. 구 사장의 취임 당시 신세계의 위상은 롯데, 현대에 밀려 3위로 내려앉은 초라한 신세였다. 그는 그때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적절히 활용했다. 종합금융을 매각하고 카드사업에서 손을 떼는 등 대대적인 ‘메스’를 가한 것이다.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홀세일을 매각하면서 들어온 1억달러로 전국 알짜의 상권부지들을 헐값에 사들여 이마트 부지로 확보했다. 이때 사들인 부지들이 이마트에 국내 최대의 할인점이라는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산본의 백화점 부지도 이마트로 업종을 변신시키는 등 자산 회전율을 높이며 기업의 수익구조를 끌어 올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삼성그룹에서 재무통으로 커온 경력이 뒷받침됐다. 이런 신세계의 성장을 구 사장은 전문경영인 체제 덕분으로 돌린다. 스스로 “(이 회장이)너무 많은 권한을 주셔서 오히려 책임이 무겁다.”고 말할 정도로 오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소신껏 일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350억원짜리 한국 최대의 매머드 쇼핑몰인 부산 센텀시티 부지 매입 응찰 때도 사후에 이 회장에게 보고할 정도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호랑이 등에 탄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972년 삼성에 공채 12기로 입사했다. 재계의 인재사관학교로 불리는 삼성 비서실, 삼성전자, 제일모직, 삼성물산 등을 거쳐 삼천리그룹으로 갔다가 9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전무로 발탁됐다. 당시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도 구 사장에게 눈독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실력파 임원들로 포진 전문경영인 체제의 기업답게 구 사장을 필두로 쟁쟁한 임원들이 포진하고 있다. 석강 백화점 부문 대표는 점장과 영업본부장을 역임한 정통 영업통. 신세계 백화점이 새롭게 문을 여는 점포마다 점장을 맡을 만큼 치밀한 전략과 강한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임질 수 있다고 판단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자신감과 신념의 소유자다. 신세계백화점의 면모를 일신시킨 서울 강남점을 문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본점 재개발 사업과 죽전 역사 개발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진행하며 ‘제2전성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검소한 생활에 유머감각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경상 이마트 부문 대표는 백화점과 이마트에서 점장과 지원본부장, 경영지원실장 등 요직을 걸쳤다. 인화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덕장형이지만 치밀한 분석력과 경영자로서의 안목을 두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백화점 미아점장 시절 처음으로 점장이 광고모델로 등장,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스타일을 보여줬다. 영등포점장 시절 다른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지하층을 젊은이들만의 공간으로 꾸민 ‘영웨이브’를 탄생시켰다.‘영웨이브’는 백화점 테마형 매장의 효시로 인정받고 있다. 유원형 경영지원실장(부사장)은 삼성그룹 계열사인 중앙개발 출신. 유통전문 건설업체로 급부상한 신세계건설에서 탁월한 관리 업무로 수익창출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00년 신세계로 옮겼다.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섬세한 업무 스타일이 돋보인다. 백화점부문의 팀제 운영 실시 등의 아이디어로 재무 건전성과 인력 효율화에 기여했다. 신세계건설 노태욱 사장은 LG건설 상무 등을 지내다 신세계건설에 합류한 건설 분야 베테랑이다. 건설업계의 투명경영을 선도하기 위해 업계 최초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도입, 지난해 공정거래 자율준수 우수기업으로 공정거래위원장상을 수상했다. 신세계푸드시스템 최병렬 사장은 20년의 서예 경력에 단전호흡의 달인으로 불린다. 또 체력 등 자기관리가 뛰어난 만능스포츠맨이다. 백화점과 이마트 부문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을 쌓았다. 신세계I&C 이상현 사장은 삼성비서실, 삼성카드에서 주로 전략기획 업무를 담당해온 브레인. 삼성카드 재직시절 고객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CRM(고객관계관리)을 도입했다.‘좋은 생각이 좋은 경영을 만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조선호텔 이석구 사장은 호텔 부문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호텔을 경영하는 것은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과 같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객실의 디지털화, 객장의 글로벌화를 강조하고 있다. 공항에서 에스코트를 받은 뒤 프런트 앞에서 기다리지 않고 객실에서 곧바로 체크인할 수 있는 ‘익스프레스 체크인’ 서비스를 국내 처음 도입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장성규 사장은 1주일에 30개 이상의 매장을 꼭 방문하는 현장 중시 스타일이다. 그의 책상 한편에는 800명 이상의 직원 이름과 나이, 특징 등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를 통해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 송주권 사장은 백화점 물류관리 업무를 담당해 온 현장관리 출신이다. 새로운 수익 아이템들을 꾸준히 개발해 적자사업을 흑자로 돌려놓은 그룹 내 물류 전문가다. bori@seoul.co.kr ■ 경영수업 받는 2세 이명희 회장에 이어 신세계를 이끌 후계자는 장남 정용진(37) 부사장이다. 모친 이 회장과 부친 정재은 명예회장에 이어 3대 주주로 자리를 굳혀 이미 경영권 승계 작업의 토대를 마련해 놓았다. 정 부사장은 미국 유학을 끝내고 1994년 삼성물산 경영지원실에 입사,95년 신세계로 자리를 옮긴 뒤 97년까지 신세계백화점 일본 도쿄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이어 신세계백화점 기획조정실 그룹 총괄담당 상무로 진급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삼성의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성격의 경영지원실 소속인 그는 월·수·목요일은 신세계 본사로, 화·금요일은 이마트로 번갈아 출근하며 그룹 전반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점장회의 등 각종 회의에 참석, 업무 보고를 받는다. 조용히 듣기만 하고 거의 발언은 하지 않지만 지나가면서 던지는 질문이 날카롭다고 한다. 사원들과도 격의 없이 어울린다. 소주에 삼겹살도 먹고 이마트 오픈시 지내는 고사에도 참석, 직원들이 건네는 막걸리를 몇잔이고 받아 마신다. 직원들에게도 꼭 두 손으로 술을 따르며 몸을 낮춘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지하 구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도 한다. 식품과 패션분야에 조예가 깊다. 이마트 매장을 둘러 볼 때도 식품의 신선도, 진열방식 등을 꼼꼼히 챙긴다. 즉석 조리상품 코너를 지나치다 “소스가 안 맞는다.”거나 “외국에는 이런 상품도 있는데 한번 도입해 보라.”는 제안도 심심찮게 한다. 특히 초밥 등 신선식품은 꼭 포장지를 뜯어보고 “밥알이 굳었다. 신선도가 좋지 않다.”는 등의 평가를 한다. 명품잡지에 등장하는 모델이 입고 있는 옷들이 어느 제품인지 다 알 정도로 디자인의 흐름을 꿰고 있어 담당자들을 놀라게 한다. 그렇지만 후계자로서 영향력을 발휘하려 들지 않는다.1990년대 후반 벤처 열풍에 인터넷뱅킹사업 등 벤처사업을 무척 하고 싶어 했지만 회사측에서 “유통업체로서 바람직한 사업은 아니다.”고 결론 내리자 조직의 결정을 순순히 따랐다. 당시 재계 2,3세들은 앞다퉈 정보기술(IT) 관련 벤처사업에 뛰어 들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까먹었지만 그는 회사의 결정을 따름으로써 ‘화’를 면했다. 그는 자신이 추진하고 싶은 사업 아이템에 대해서도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는다.“검토해 주십시오.”라는 수준에서 경영진들에게 얘기할 따름이다. 그 때문에 “삼성가의 전통을 이어받아 오너로서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어머니한테 교육을 잘 받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정 부사장의 여동생 유경(33)씨는 조선호텔 프로젝트 실장(상무)이다. 전공을 살려 그동안 객실 리노베이션과 인테리어 작업에 참여, 호텔의 품격을 한단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텔업계에서는 최초로 비주얼 디자이너를 채용토록 하는 등 호텔 소품부터 리노베이션까지 비주얼 디자인업무를 지휘해 왔다. 지난해 초 자신이 리노베이션했던 자연주의풍의 이탈리아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를 돌아다니며 손님들의 반응을 물어보기도 한다. 영국 사라 퍼거슨 전 왕세자비의 결혼 때 부케를 맡아 유명해진 꽃집 ‘제인파커’를 아시아 최초로 조선호텔에 들여오고, 신세계백화점에 입점시키며 꽃집의 명품 브랜드 시대를 열기도 했다. 명품에 관심이 많아 국내 처음으로 수입 멀티숍 바람을 일으켰던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분더샵’ 도입에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차원에서 구입하는 각종 미술품과 캘린더 제작에도 유경씨의 안목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촌지간으로 나이가 비슷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녀 부진(35·신라호텔 상무)씨와 같은 호텔업계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bori@seoul.co.kr ■ 정재은 명예회장은 누구 정재은(66) 신세계 명예회장은 부인 이명희 회장처럼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다만 이 회장과 달리 1년에 한차례 부장급 이상 간부를 조선호텔에 모아 놓고 세계 경제 흐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윤리경영 등에 대해 강연을 한다. 오너 일가의 일원으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삼성 출신 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회사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정 명예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대학원에서 수학한 엘리트다. 결혼 뒤에는 삼성그룹에서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쳤다.1969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20여년간에 걸쳐 삼성전자부품 부회장, 삼성물산 부회장, 삼성항공 부회장, 삼성종합화학 부회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97년 신세계가 삼성에서 공식 분리되자 조선호텔 회장을 맡으면서 삼성을 떠났다. 그는 전자공학, 산업공학 등 자신의 전공을 살려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장인(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는 고 이병철 회장의 특명으로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재일교포 2세 손정의(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씨를 만나기도 했다. 고 이 회장은 그에게 “손씨가 삼성에 필요한 인물인지 한번 만나봐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당시에 그를 만난 정 명예회장은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그 뒤 손 사장의 성공을 보고 선대 회장의 예지력에 감탄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정 명예회장은 1977년 삼성전자 이사 재직시 미국 HP사와 손잡고 HP사업부를 시작한 데 이어 84년 삼성전자 사장 시절에는 자본금 1000만달러를 들여 삼성HP를 설립, 현재의 삼성전자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삼성은 컴퓨터가 전무했던 시기에 컴퓨터, 의료기기, 계측기기 분야에서 HP와 인연을 맺어 기술력을 확보하고 삼성 제품이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기술력이 취약한 삼성이 HP와 같은 기업과 손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독서를 즐기는 학구적 면모를 보여 주위에서 “대학교수를 했으면 잘 했을 것 ”이라는 말을 곧잘 듣곤 했다. 경제잡지는 물론 일본 경제신문 등도 정기 구독한다.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는 책자는 임원들에게 보내고, 기사는 밑줄까지 쳐 읽어 보길 권한다. 화려한 이력과 배경 때문에 엘리트 분위기를 풍기지만 사람들과 격의없이 사귀는 소탈한 면도 있다. 부친 정상희씨는 3,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냈다. 정상희씨는 삼성가(家)와 인연을 맺은 뒤 삼성전자 사장, 삼성물산 사장, 삼성생명 사장 등을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을 역임했다. 정 명예회장(차남)의 맏형인 고 정재덕 전 신세계고문은 경기고, 미국 노스이스트미주리주립대를 졸업하고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 건설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국제상사 사장, 연합철강 사장, 하나실업 회장 등을 지냈다. 고려대 출신인 동생 재환(57)씨는 현재 삼성전기 중국동관사업장 법인장 전무로 일하고 있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이젠 사람입국이다] 15. 캐나다의 평생학습도시

    [이젠 사람입국이다] 15. 캐나다의 평생학습도시

    |에드먼턴(캐나다 앨버타주)·실리콘밸리(미 캘리포니아주) 정재삼 이화여대 교육공학과 교수|21세기는 정보사회, 지식경제사회라고 한다. 이에 따라 평생학습, 학습조직, 학습공동체, 학습도시, 학습타운, 학습마을, 학습지역, 학습국가 등에서처럼 ‘학습’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학습공동체는 지역사회의 네트워크와 발전의 원동력이다. ●지구촌, 학습도시 열풍 평생학습도시란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원하는 학습을 즐길 수 있는 지역학습공동체라고 포괄적으로 설명된다. 학습도시는 1970년대에 캐나다 에드먼턴이 주민의 평생학습기회를 넓히고자 추진한 교육도시 만들기 프로젝트와 일본 가케가와시가 79년 최초로 평생학습도시 선언을 한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확대된다. 특히 학습도시 개념은 1992년 스웨덴 괴텐베르그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에서 공식 채택돼 파급 속도가 더 빨라졌다. 현재 일본에 140여개, 영국에 40여개의 학습도시가 있다. 한국에도 1999년 광명시가 평생학습도시를 선언(2001년 정부 지정)한 뒤 2004년 현재 19개가 학습도시로 지정돼 있다. 학습도시는 선진국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서인도제도의 자메이카도 학습도시를 개발활동의 중심으로 선언했다. 캐나다는 1970년대에 교육개혁을 시작했고, 특히 에드먼턴은 평생학습이 미래 교육발전의 기초라는 생각에서 전략기획팀을 구성했다. 미국에서는 학습도시보다는 능력있는 도시, 이상적인 도시, 활기있는 도시, 안정적인 도시, 청소년 친화도시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컬럼비아대학, 스탠퍼드대학, 에모리대학 등을 중심으로 학습도시에서 대학의 역할에 초점을 두는 프로젝트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세인트앨버타, 도시 전체가 평생학습공동체 캐나다 앨버타 주정부는 ‘미래의 선택’이라는 교육기획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평생학습과 성인교육을 강조해왔다. 에드먼턴평생학습자협회, 에드먼턴공동체성인학습협회 등이 조직돼 캐나다는 물론 유럽의 학습도시와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2003년 에드먼턴에서는 제1회 학습공동체 세계대회가 열렸고 2004년에는 평생학습세계프로그램 국제 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 에드먼턴이 학습도시 선두주자로 나서게 된 데는 정보통신(IT) 기술 활용이 큰 몫을 했다. 에드먼턴의 성공은 인접 도시로까지 번져 도시 하나를 ‘평생학습공동체’(Continuing Learning Community)로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에드먼턴 북쪽에 인접해 있는 세인트앨버타는 인구 5만의 불어권 도시인데, 도시 전체가 평생학습에 투자하고 있다. 세인트앨버타 인구의 대부분은 에드먼턴으로 출근한다.1995년 앨버타 의회에서 공동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 생겼는데, 구성원 대부분이 세인트앨버타에 살았다. 여기에 고무된 이들은 세인트앨버타 평생학습축하모임(Continuous Learning Celebration) 및 도시 전체를 평생학습공동체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평생학습축하모임은 1997년 학습관련 전시를 중심으로 첫 행사를 가졌다. 행사는 성공적이었지만 평생학습 개념은 대중들에게 전파되지 않았다. 평생학습축하모임이 학습공동체를 추구하면서 공동체 주민들의 생각을 담아내지 못한 셈이다. 또 철학적 내용을 중심으로 한 축하모임의 개념을 주민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축하모임은 사업중심으로 행동의 초점을 옮겼다. 또 주민들이 참여하는 수많은 토론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을 통해 도시 전체가 학습공동체 개념을 자각했다. 축하모임은 1998년 유럽에서 열린 학습도시관련 회의에서 사례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평생학습공동체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조정위원회만 있던 축하모임에는 동반자, 번영, 지도자 등 4가지 하위 위원회가 생겨 평생학습을 일상생활화하는 작업을 실행 중이다. 축하모임에서 역점을 두는 사업 중의 하나는 인터넷 보급이다. 도시 전체에 컴퓨터를 무료로 쓸 수 있는 장소를 13곳 선정, 주민들이 웹서핑이나 e메일 체크 등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IT 보급으로 인한 디지털 격차를 해소, 소외계층을 돕기 위한 일환이기도 한다. ●실리콘밸리, 대학과 기업이 만들어낸 학습도시 캐나다 에드먼턴이나 세인트앨버타가 정부나 주민들이 만들어낸 학습도시라면 실리콘밸리의 형성에는 스탠퍼드대학과 기업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실리콘밸리는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군에 속하는 6개 도시(팔로알토, 마운틴뷰, 서니베일, 쿠퍼티노, 산타클라라, 새너제이)를 포함한다. 실리콘밸리라는 명칭은 1971년 반도체산업전문정보지의 편집자가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전체 벤처자금의 3분의1 이상이 이곳에 투자돼 있고 인터넷 정보혁명이 여기서 주도됐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들은 돈을 벌어들이고 대학은 지식을 발견·전달하는 등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즉 대학은 실리콘밸리에서 아이디어를 팔고 대학 내부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이뤄왔다. 한편 기업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는 대학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왔다. 실리콘밸리 활성화의 시작은 스탠퍼드대학이다.19세기 말 금광과 철도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스탠퍼드가 세운 스탠퍼드대학은 1940년대 터먼 교수에 의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했다. 터먼 교수가 실리콘밸리에 뿌린 첫 씨앗은 휼렛패커드(HP)다.HP의 창시자인 휼렛과 패커드를 스탠퍼드대학 공학부로 불러서 석사공부를 시켰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HP는 40년대 초에 상당한 회사로 성장하였다. 터먼 교수는 넓은 스탠퍼드 대학 소유의 땅에 연구단지를 건설,HP 등 70여개 회사를 입주시켰다. 입주사들은 임대료 부담을 덜고 대학과의 기술연계성이 강화되면서 회사발전에 더 힘을 쏟게 됐다. 스탠퍼드대학이 공과대학 건물을 터먼공학관이라 부르는 것도 터먼 교수가 학교와 지역사회에 공헌한 점을 기리기 위해서다. 터먼 교수의 업적으로 많은 회사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된다. 인텔이 대표적이다. 물리학자 쇼클레이는 1952년 상업용 트랜지스터를 만들고 제자들과 함께 쇼클레이반도체회사를 세웠다. 그의 제자들은 페어차일드 반도체회사를 세웠다. 이들은 LSI(대규모집적회로)의 기본이 되는 MOS트랜지스터를 개발, 인텔을 만들기에 이른다.1965년에는 록히드항공의 주력 부문이 들어오고 국방부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와 더불어 미 항공우주국(NASA)의 막대한 자금이 유입됐다. ●적자생존의 벤처생태계 스탠퍼드 대학을 씨앗으로 해 1930∼40년대 태동기를 거친 실리콘밸리는 1950∼70년대 성장기를 맞는다.50년대 벤처창업이 붐이었다면 60년대는 반도체산업,70년대는 컴퓨터 산업이 주를 이룬다.80년대 위기를 무사히 넘기면서 90년대의 재도약에 성공한다.90년대에는 미국 경제의 붐을 일으키는 엔진 역할을 했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실리콘밸리는 이제 경쟁에 의해 죽고 사는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돌아간다. 미국의 다른 지역보다도 높은 실리콘밸리의 이직률과 경쟁체제는 기업의 설립과 도산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물론 21세기 들어 실리콘밸리는 IT 거품 붕괴의 직격탄을 맞았다.2001∼2002년에는 일자리가 10% 이상 줄어들었다.2003∼2004년에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비율이 1.3%로 완화되긴 했으나 2004년에는 실리콘밸리 전체에서 컴퓨터와 반도체 관련 일자리가 5100개가 없어졌다. 대신 의료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4100개 만들어졌다. 다른 지역처럼 실리콘밸리도 직업이 다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미 전역에 걸친 것으로 2001년 3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미국에서는 260만개의 전문적·기술적 일자리가 없어졌다. 최근들어 미 전역에 걸쳐 2001년 경기후퇴 때 없어진 일자리를 회복했다고 노동부는 보고 있다. 그러나 새너제이와 스탠퍼드대학 지역을 포함하는 실리콘밸리의 벤처관련 일자리는 2001년보다는 16% 정도 적은 상태이다. 예를 들어 산타클라라에 있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는 2001년부터 25%의 종업원(3만 2000명)을 줄였다. chungjaesam@korea.com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

    기골이 장대하다.180㎝의 키, 몸무게가 80㎏이 넘는다. 얼핏 운동선수로 여겨진다. 처음에는 글을 쓰는 작가이고 싶었다. 또 철학자가 되려고 데카르트와 칸트에 푹 빠지기도 했다. 대학 2학년 때, 미 국무부 초청으로 방미했다. 이후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 문정인(55) 동북아시대위원장은 대표적 ‘미국통’이자 ‘북한통’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깊은 신뢰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적 인적 네트워크 강점 그래서인지 현 정부들어 개각 때마다 그는 요직 발탁의 하마평에 올랐다. 국정원장, 외교부장관, 통일부장관, 그리고 최근에는 주미대사와 대통령 안보보좌관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가운데 실제로 인사권자가 직접 그에게 몇차례 제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마다 문 위원장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그가 하마평에 오른 이유에 대해 주위에서는 탁월한 친화력과 빠른 분석, 그리고 국제적인 인적 네트워크와 학자답지 않은 추진력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그동안 평양에 수차례 다녀오면서 그곳 수뇌부들과 ‘스킨십’이 많았다. 또 미국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알게 된 많은 지인들이 현재 백악관 안팎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3·1절 낮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문 위원장 자택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곧 대문을 열고 나왔다. 등산용 모자에 검은 티셔츠, 운동화 차림이었다. 평소의 휴일 같으면 연세대학 연구실에서 밀린 ‘숙제’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는 동북아위원장으로 일하면서도 연세대학(국가정보론)과 대학원(동아시아국제관계론)에서 일주일에 두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안 그래도 인터뷰를 끝내면 연구실에 갈 예정”이라며 웃는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강아지 한 마리가 낯설게 짖어댔다. 이 소리에 놀랐는지 7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다. 문 위원장은 “우리 장모님”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0년째 장모를 모시고 있다고 했다. 또 부인이 미국에 가 있어서 장모가 대신 집안일을 봐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잠시 2층의 서재를 둘러봤다. 책상 주변만 하더라도 국제관계 연구서적 등 책 수천권이 쌓여 있어 평소의 연구활동을 짐작케 했다. 마침 점심 때여서 동네 식당(복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하는 아주머니,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 그를 알아보고 “교수님, 오랜만에 오셨네요.”하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식사를 마친 뒤 인근 찻집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시작했다. 문 위원장이 현직에 몸담고 있는지라 현안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북한이 ‘핵보유 선언’을 하게 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지체없이 “북한의 핵보유 선언의 배경에는 (미국과의)대화 용의에 대한 강력한 러브콜이 깔려 있다. 그러나 서방언론은 핵보유 선언만 집중보도해 6자회담의 판이 깨진 것처럼 되고 말았다.”면서 “북한은 언제든 6자회담에 복귀할 생각을 갖고 있으며 또한 평소 미국의 성실한 대화자세를 요구해온 만큼 그 자세 여부에 따라 북한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들맨은 고이즈미 총리가 적임자 이어 리비아의 핵폐기 선언 과정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블레어 영국 총리를 중재자(그는 ‘미들맨’이라고 표현했다.)로 내세워 9개월 동안 비밀리에 협상한 끝에 결국 리비아의 ‘비핵선언’을 이끌어냈다.”면서 “이는 협상과정에서 리비아의 체제 등에 대한 영국과 미국측의 보장 약속, 이에 따른 신뢰감을 리비아측에 심어주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비핵선언을 유도하기 위해 우리도 이같은 방법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자 “미들맨 카드는 살아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경우 평양에 몇차례 다녀와 적임자이기도 하다.(블레어 총리처럼)우리도 못할 일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는 고이즈미 총리가 북핵해법의 한 카드가 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현재 북한이 미국에 원하는 것은 세가지로 압축된다고 했다. 첫째 북한에 대한 적대적 의도가 없어야 하며, 둘째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해주고, 셋째 내정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는 “이 세가지 사항을 미국이 못 들어줄 이유도 없다.”며 미국측의 변화가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 부시정권에는 ‘인권’과 ‘핵’을 앞세운 기능적 북한 전문가들이 확산돼 있다보니 북한이 갖고 있는 특수성이 완전히 무시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은 북한을 잘 아는 기술적 전문가가 (북한측에)접근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남북정상 회담 성사 여부에 대해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은 이미 약속된 것이다. 다만 시기가 문제다.”면서 “우리측은 6자회담이 잘 되든 깨지든 상관없이 북한당국이 원하면 언제든 정상끼리 만난다는 방침”이라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장소로 제주도가 우선 거론되고 있다고 하자 “제주도를 동북아의 제네바로 표방,‘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 채널 가동에 대해 그는 “국정원은 국정원대로, 통일부는 통일부대로 관계당국에서 나름대로 채널을 두고 있지 않겠느냐.”는 말로 대신했다. 이밖에 현재 거론되고 있는 6자간 국방장관 및 외무장관 회담의 성사와 관련,“얼마전 외부강의에서 잠시 언급했다가 해당부처에서 자제요청을 받았다. 자신이 얘기할 사항이 아니다.”며 언급을 피했다. ●동북아 평화공동체 한국 주도로 “동북아시대를 맞아 개성공단은 제조, 인천은 물류, 서울은 금융허브가 될 것입니다. 개성공단의 경우 북핵문제가 해결되면 동북아시대에 큰 역할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려움이 뒤따르겠지요.” 그는 동북아시대위의 추진방향과 관련,“▲하나되는 동북아 ▲네트워크 동북아 ▲열린 동북아 ▲함께 하는 동북아 등 4가지 큰 틀”이라면서 평화번영의 공동체를 한국이 주도해나가자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추진 중인 한·중·일 공동TV채널과 정기적인 프로축구 시합 등도 이를 실현하기 위한 것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제주 출신 고교때 투포환 수준급 문 위원장은 1951년 제주시에서 9대째 가문을 잇는 집에서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격조건과 특유의 문학적 감수성으로 학창시절 운동과 문학활동에 많은 소질을 발휘한다. 씨름과 유도선수로 시합에 자주 나섰고, 특히 투포환 던지기 실력은 도내 최고를 자랑할 정도의 수준급. 또한 도내 백일장에서 시와 수필 등으로 여러차례 장원을 차지한다. 1970년 연세대 철학과에 진학한 그는 칸트와 유교철학을 원전으로 공부하며 철학세계에 푹 빠진다. 이때 ‘역사와 철학’이 접목된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또한 연세대학보 ‘연세춘추’ 기자 및 편집국장으로 활약하면서 몇차례의 시화전을 통해 끼를 발산한다. 그러던 72년 학보 편집국장의 자격으로 미 국무부에서 초청하는 아시아·태평양 10개국 학생지도자대회에 참석해 3개월 동안 미국의 주요한 몇 곳을 견학했다. 귀국 후 3학년 1학기 때 군입대를 했다. 훈련을 마친 뒤 정보사령부에 배치됐다. 이때 이수혁 외교통상부차관보와 사수-조수로 함께 근무했다.75년 군 제대 직후 친한 선배의 권유로 이슬람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 이슬람중앙연합회 국제담당 사무차장으로 일하면서 영어로 된 이슬람 관련서적 10여권을 번역했다.3년 뒤에는 미국으로 메릴랜드대로 건너가 5년만에 정치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94년부터 연세대에 몸담아왔다. 문 위원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햇볕정책을, 현 참여정부에서는 동북아 평화번영 정책을 전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장관급 자문기구여서 한 달에 고작 102만원의 월급을 받지만 조찬 강연 및 각종 간담회 등에도 부지런히 참석하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 그가 걸어온 길 ▲1951년 3월 제주 출생 ▲69년 제주 오현고등학교 졸업 ▲77년 연세대 철학과 졸업 ▲78∼81년 미 메릴랜드대 조교 및 강사 ▲81년 메릴랜드대 정치학 석사 ▲84년 동 대학 정치학 박사 ▲85년 윌리엄스대 정치학과 조교수 ▲87년 켄터키대 정치학과 조교수, 게리하트 상원의원 자문위원 ▲87∼88년 인하대 정외과 조교수 및 학과장 ▲9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태평양국제대학원 초빙교수 ▲94년 한국정치학회 국제위원장 ▲94년 연세대 정외과 교수 ▲98년 국방부 자문위원 ▲99년 청와대국가안정보장회의 자문위원 ▲2002년 미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2004년 6월 대통령 직속 동북아시대추진위원장(장관급) km@seoul.co.kr
  • [내 인생의 등대] 최창식 서울시 도시관리정책보좌관

    [내 인생의 등대] 최창식 서울시 도시관리정책보좌관

    “한 우물을 파면 삶의 보람이 따른다는 사실을 30년 가까이 되는 공직생활이 일깨워 줬습니다.” 2일 시청 태평홀에서 만난 서울시 최창식(53) 도시관리정책보좌관은 “두분의 스승과 공직생활 자체가 삶의 좌표가 됐다.”고 회고했다. 성균관대 은사인 신현묵 교수와 서울대 환경대학원 최상철 교수가 ‘외길’을 걷게 한 주인공이다. “최창식 당신, 학교 나가 봐야 할 것이라곤 공무원 말고는 없어….” 최 보좌관은 “대학교에 다닐 때 신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자주 했는데 결국 ‘씨앗’이 됐다.”고 웃었다. 자신을 그리 활달하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로 보고, 지도해 준 도움말이 됐다. 아무튼 최 보좌관은 졸업을 한 뒤 몇몇 기업체에 들어갈 뻔했다. 하지만 며칠 출근하며 ‘개인보다는 공공을 위해 일하는 게 보람이 클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1977년 해군에서 제대를 하자마자, 그동안 해오던 기술고시 공부에 매달려 이듬해 3월 도시계획국 토지구획정리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5년 3월 도로과로 옮기기까지 이곳에서 8년이나 근무했다. 영등포구 건설국장을 지낸 뒤 1989년 11월 지하철건설본부로 가서는 본부장 등을 지내며 지난해 7월 현직에 부임하기까지 12년간 ‘터줏대감’으로 버텼다. 그는 현재 첫 부임지인 토지구획정리과의 후신이라 할 뉴타운 관련 추진본부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시의 도시계획 전문가다. 그런데 공직생활 만 3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1981년 네덜란드에 정부 장학생으로 유학 갔다가 11개월 만에 돌아와 또 같은 부서로 발령난 것이다. “선생님,3년이 넘었는데 똑같은 업무를 하게 됐습니다. 짜증도 나고, 싫증도 나고 어떡해야 할지 원….” 그러자 당시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과정을 지도했던 최 교수가 “이웃나라인 일본의 경우 7∼8년도 하는데 그러지 말라.”는 따끔한 충고에 더 이상 한눈을 팔지 않았다. 이후 해외출장 때마다 다른 나라 공직자들의 근무자세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얼마 전 중앙인사위원회 통계를 봤는데 평균 근속연수가 과장급 10.8개월, 국장급 11.3개월이더군요. 정부의 경쟁력이 바닥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업무상 긴밀한 협의가 절실한 중앙부처 간부들이 자주 바뀌어 애를 먹었다.”며 전문화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이젠 아내사랑으로 인생2막”

    “만년의 인연으로 천년의 사랑을 위해 내곁에 온 당신은 내게 고향 같은 사람입니다.” 이혼하는 부부가 한 해 15만쌍에 이르는 가운데 어려움을 사랑으로 극복한 부부들의 따뜻한 사연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들의 사연은 제2회 아내의 날인 3일 삼성생명이 공모한 ‘아내사랑 글쓰기’에서 알려졌다. ●3000만원짜리 전셋집에 새 보금자리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사는 화가 김철수(56)씨는 한때 서울역을 전전하던 노숙자였다.1980년 5월 부인(57)을 만나 아들을 낳고 화목하게 살던 김씨는 2003년초 액자공장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처가에 빚을 졌다. 처가와 부인을 볼 면목이 없어 같은해 6월 가출, 노숙자가 됐다. 부부가 운명적으로 다시 만난 것은 같은해 12월. 서울 지하철 4호선 사당역에서 전철을 탄 김씨는 “CD 두장 만원에 드립니다.”라고 외치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목소리였다. 김씨는 고개를 숙이고 다음 역에서 내리려 했지만 김씨를 알아본 부인이 CD가방을 내던지고 달려가 “제발 함께 돌아가자.”며 애절하게 호소했다. 김씨는 “울먹이며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는 아내를 보는 순간 숨어서 자책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오기가 북받치며 새출발을 결심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부부는 3000만원짜리 전셋집에 둥지를 틀었다. 김씨는 다시 그림을 그리고, 부인은 식당 일을 나가며 앞날을 설계하고 있다. ●병 간호 지극정성… 석사과정까지 지원 충북 제천에 사는 김종천(45)씨는 가톨릭 성직자를 꿈꾸던 초등학교 5학년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가세가 기울어 중학교 진학이 좌절되자 거의 매일 친구들과 싸움질을 해대고 술을 마셨다. 급기야 무기력증에 간염까지 앓게 됐다. 하지만 부인 방원순(44)씨를 만나면서 김씨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1981년 결혼한 뒤 방씨는 병마와 싸우는 김씨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방씨가 빨래방을 운영하며 생활비와 병원비를 보탰다. 덕분에 김씨는 병을 이기고 한글을 가르치는 비영리학교 ‘솔뫼학교’를 13년째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천 세명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도 밟고 있다. 김씨는 “방황의 끝까지 묵묵히 기다려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며 웃었다. ●척추 장애인을 금메달리스트 만들어 대구 달서구 도원동에 사는 최경식(39)씨는 하반신이 마비된 1급 척추 장애인이다.1988년 10월 전북 김제의 군 부대에서 미사일을 수송하다 비탈길에서 차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최씨는 시련을 딛고 지난해 그리스에서 열린 장애인올림픽 탁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최씨의 ‘인생 승리’ 역시 부인 김수정(32)씨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최씨는 1996년 교회에서 김씨를 만나 처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2년 뒤 결혼했다. 김씨는 고혈압과 관절염을 앓고 있는 시어머니(71)까지 모시고 있지만,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고 묵묵히 몸이 불편한 최씨를 돕고 있다. 최씨는 “혼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게 없어선 안될 보석같은 존재”라며 미소지었다. 세 부부는 5일 경주에서 ‘아내의 날’기념 특별상을 받는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고시플러스] 서울시 ‘라’급 계약직 2명 모집

    서울시(www.seoul.go.kr)는 ‘라’급 지방계약직 공무원 2명을 모집한다. 정보시스템개발요원, 서버 등 시스템관리운영요원 1명씩이다. 관련 전공 석사학위자 또는 학사학위자로 3년 이상 경력이 있으면 지원할 수 있다. 지원서는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아 7일부터 12일까지 서울시 정보화기획담당관 앞으로 접수한다.(02)3707-9171∼3.
  • 中 교육부 “취업률 낮은 학과 폐쇄하라”

    “취업이 저조한 학과는 문을 닫아라.” 중국 교육부가 베이징(北京)대, 칭화(淸華)대 등 전국 주요대학에 엄명을 내렸다. 졸업생들의 취업이 저조한 전공분야에 대해 모집을 중지하거나 신규 모집을 대폭 줄이라는 다분히 강제성을 띤 지시다. 올 9월 신학기 대학 신입생의 규모는 475만명. 지난해에 비해 정원을 8%나 늘렸지만 경영, 전자, 생명과학, 신소재 등 첨단과학과 인기학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사회적인 수요가 없는 분야는 축소·도태시켜 나가겠다는 것이 교육당국의 입장이라고 관영 신화통신 인터넷판이 1일 전했다. “대학 교육을 단기적인 시장 수요에 종속시키는 우매한 짓”이란 비난 속에서도 시장 수요에 맞춰 학과 및 모집정원에 칼을 대려고 서두르는 것은 고학력 및 청년 실업의 급속한 증가 추세 때문이다. 연평균 9%대의 높은 성장률에서도 지난해 청년 실업은 평균 실업률을 훨씬 웃도는 22%대로 추정된다.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학 및 대학원 석·박사과정의 정원을 배 이상 늘린 탓도 있지만,‘미취업 명문대 졸업자 자살’,‘막노동 2년째의 한 명문대 졸업생 이야기’ 등 고학력 청년실업의 어두운 사연을 다룬 언론 보도가 잇따를 정도로 고학력 청년실업과 취업대란이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대졸자의 취업률은 75∼80%. 그러나 지난해 대졸자 280만여명 중 석사과정 응시자 170만여명을 감안하면 실제 취업률은 훨씬 더 낮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노동사회보장부는 올해 1600만개의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밝힌 바 있다. 당국의 이같은 지시에 베이징대·푸단(復旦)대 등은 구체적인 시행방안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결국 시장수요가 대학교육의 재편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삼겹살·순대 맛에 푹 빠졌어요”

    3년 동안 한국의 고교에서 우리 교과과정을 배웠던 외국 유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했다. 경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서울산업대에 합격한 9명이 그들로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출신이 각각 3명씩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초청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이들은 지난 2002년부터 한국에서 살며 배우고 있다. 이미 지난 98년부터 선배 31명이 한국에서 고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9명 전원이 대학에 진학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최고 18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이들의 한국행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고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기숙사가 제공된다. 경기기계공고 추교수 교사는 “모두 그 나라에서 엘리트로 꼽히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의 이들에게 한국 생활은 낯설고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쇼핑을 하러 갔는데 대부분이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 hina)’라서 한번, 그러면서도 가격이 비싸서 또 한번 놀랐죠.” 중국에서 온 둥밍(董明·20)은 대뜸 이렇게 말한다. 둥밍은 “신문 보도가 자유롭고 드라마나 음악은 물론 영화 같은 문화산업이 발달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학생들에게 한국 생활은 ‘문화적 충격’이라 할 만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아브로르(20)는 “처음엔 학생들이 직접 교실을 청소하고 선생님들이 예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삼겹살, 순대의 맛에 푹 빠져 있다. 중국 출신 류린(劉琳·19)은 “한국 음식 만드는 것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9명중 4명은 한국인 조상을 둔 ‘고려인’이다. 러시아에서 온 양 이고르의 할아버지는 서울 출신으로 구한말 사할린으로 이주했다가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아픈 가족사를 지니고 있다. 늘 할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에서 공부해보고 싶었다는 이고르는 “서울의 친척들을 만나게 돼 정말 기쁘다.”며 웃었다. 고려인 학생들에게도 한국어 익히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려인 3∼4세인 이들은 우리말을 모른 채 한국에 왔다. 한국어학원을 다니고 학교 생활을 3년이나 했지만 아직도 우리말은 서툴다. 2일 대학 입학식을 갖는 이들이 사뭇 기대하고 있는 것은 ‘소개팅’이나 ‘미팅’이다. 하지만 이성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이 공부에 대한 욕심을 앞지르진 못한다.“석사, 박사까지 따 양국 교류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것”이라는 이들에게서 대학 새내기의 풋풋한 꿈이 읽혀진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KCC ‘형제 경영’ 성공할까

    [재계 인사이드] KCC ‘형제 경영’ 성공할까

    범 현대가인 금강고려화학이 ‘쌍두마차 형제경영’ 체제를 구축해 눈길을 끌고 있다. 회사 이름도 케이씨씨(KCC)로 바꿨다. 28일 케이씨씨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25일 정기총회를 열어 정몽익(43)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에 따라 몽익씨는 ‘친형’인 정몽진(45) 현 대표이사 회장, 전문 경영인인 김춘기 현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독립적인’ 대표이사로서 나란히 케이씨씨를 이끌게 됐다. 몽진씨와 몽익씨는 정상영 케이씨씨 명예회장의 첫째, 둘째아들이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내동생으로 현대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은 장남인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차남을 대표이사로 추가 선임한 배경이다. 케이씨씨측은 “대주주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몽익씨의 공식 직함은 대표이사 총괄부사장 겸 관리본부장. 다른 두 명의 부사장(해외본부·생산기술본부) 업무를 총괄하고, 재무·인사·총무 등 회사 안살림을 책임지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몽진씨와 몽익씨가 걸어온 길이 쌍둥이처럼 똑같다는 점이다. 두 살 터울인 두 사람은 나란히 서울 용산고를 나와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미국 조지워싱톤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학위)를 딴 것도 같다. 둘 다 재무쪽에 밝다. 그룹 입사는 몽익씨가 2년 빨랐다.1989년 ㈜금강에 입사했다. 몽진씨는 91년 고려화학㈜으로 들어왔다.2000년 4월 정 명예회장이 순리대로 장남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지분도 일단 몽진씨가 가장 많다. 지난 17일 공시한 케이씨씨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몽진씨가 17.62%, 몽익씨가 8.81%를 갖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10.0%, 정 명예회장의 막내아들인 몽열(금강종합건설 사장)씨는 5.29%를 갖고 있다. 케이씨씨측은 “정몽진 회장이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현 경영구도에는 별 변화가 없을 것”이라면서 “이번 대표이사 추가선임을 통해 형제간의 공조가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대차의 의선(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씨와 현대백화점의 지선·교선(정몽근 회장의 아들)씨 등 집안의 그룹들이 후계구도를 조기 구축하고 있는 것도 이번 인사의 한 자극제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가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깨고, 케이씨씨의 형제 경영이 성공할지는 더 두고볼 일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구정 이삭]

    ●서울역사박물관은 4일(금)까지 영어전문 통역원(전임 다급) 1명의 채용 지원을 받는다. 통·번역 및 국제대학원 석사학위 취득후 3년 이상 경력자, 학사학위 취득후 6년 이상 경력자, 영어권대학 석사학위 취득자 등에 한한다. 계약기간 2년.(02)724-0111.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11일(금)까지 ‘드림파크장학금’ 신청서를 접수한다. 홈페이지(www.slc.or.kr)에서 지원서를 내려받아 공사 사무관리처에 제출하면 된다.(032)560-9410. ●서울 서대문구는 12일(토)까지 도시계획분야 다급 1명, 라급 1명의 채용지원서를 교부한다. 다급은 만 20∼45세, 라급은 만 20∼40세로 학력 및 경력조건을 갖춰야 한다.(02)330-1385∼6. ●서울 강서구는 25일(금)까지 제9회 강서구민상 후보 추천을 받는다. 추천대상은 강서구에 3년 이상 거주한 사람으로 ▲지역사회발전▲구민화합봉사▲환경보호▲문화체육발전▲미풍양속 등에 두각을 나타낸 주민이다. 총상금 600만원.(02)2600-6041. ●서울 노원구는 26일(토)까지 중소기업운용기금 지원 대상자를 모집한다. 노원구 지역에 공장등록이 되어 있는 제조업체나 무등록공장 중 적법 건축물에서 사업자등록을 받은 제조업체다. 연리 3%에 1년거치 3년 분할상환 조건이며 업체당 2억원까지 융자해준다.(02)950-3368. ●한국건강관리협회 인천지부는 5월31일(화)까지 예비부부를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청첩장 등을 가지고 협회 종합건강검진센터에 들르면 된다.(032)884-7131. ●서울 양천구는 매달 1∼2회 실시하는 ‘양천가족 지역탐방’에 참가할 주민을 모집한다. 온수근린공원, 지양산 등을 둘러본다.(02)2650-3410∼3. ●서울 성동구는 ‘생활과학교실’에 참가할 초등학교 4∼6학년을 연중 모집한다.3개월 과정이며 한양대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가 운영한다. 각 동별 20명 선착순 접수.(02)2286-5146∼8. ●서울 금천구는 3월부터 여성복지 상담소를 운영한다. 가정폭력 등 가정문제와 성폭력 등에 대해 상담해준다.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 인터넷(www.geumcheon.go.kr/site/woman)으로도 상담할 수 있다.(02)856-2950,1688-1004.
  • “위안부 피해는 현재진행형”

    “위안부 피해는 현재진행형”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28일 연세대 졸업식에서 ‘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증언의 정치학’이란 논문으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은 사카모토 지즈코(37)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해 온 9년간의 세월을 이렇게 정리했다. 사카모토의 논문은 일본 정부가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전제에서는 여느 위안부 관련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그는 할머니들의 문제를 과거에 국한해,‘피해의 역사와 증언’에만 주목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할머니들의 고통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현재에 대한 관심’을 주장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그는 “한·일간 민족주의 관점에서만 할머니들의 증언을 이용하게 되면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9년간 ‘나눔의 집’서 봉사활동 사카모토는 “할머니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피해를 증언하는 것이 큰 고통이라는 것을 지난해 6월 숨진 김순덕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느끼게 됐다.”고 소개했다. 증언집에는 김 할머니가 1992년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처음 털어놓고서야 40년 남짓 쌓였던 한이 풀려 그동안 못잔 잠을 푹 잤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후 할머니는 이곳저곳 불려다니며 ‘청취자’가 원할 때마다 아픈 과거를 되돌아봐야 했다. 사카모토는 “1998년 김 할머니가 도쿄의 한 추모 모임에서 5분 동안 증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당시 무대에서 내려온 할머니가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것을 봤다.”면서 “기억을 재현하기 위한 에너지 소모 때문이었는데, 요청자는 5분 정도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에게 과연 ‘할머니’가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할머니의 ‘증언’이 필요한 것인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카모토는 논문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피해 보상도 중요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피해자들이 안고 있는 마음의 상처까지 사죄와 배상을 받아야 한다.”면서 “할머니들에게 단지 ‘우리 민족의 어머니’가 되라고만 강요하고, 정작 그들이 과거의 기억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사카모토는 1996년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을 첫 방문한 이후 줄곧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는 “이용수 할머니, 고 김순덕 할머니 등 피해자들의 증언과, 관련 영화를 제작한 영화 기획사 직원, 시민단체 관계자, 피해 할머니의 정신검사를 맡았던 학자 등의 심층 인터뷰를 곁들여 논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94년 호주에서 평화청년단 활동을 하며 평화와 전쟁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며,2000년부터 연세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왔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협회 수장 대거 ‘새얼굴 단장’

    재계의 대표적인 친목단체이자 이익단체인 업종별 협회의 수장들이 대거 ‘새 얼굴’로 바뀌고 있다. 협회 대부분은 회원사 단합을 위해 회장직을 ‘순환제’로 정하고 있지만 일부 협회는 치열한 선거를 통해 뽑았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조선·석유화학·플라스틱·자동차·건설 등 10여개의 업종별 협회가 임기 2∼3년의 신임 회장을 선출했다. 한국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이날 서울 타워호텔에서 총회를 열어 조봉현 대현산업㈜ 대표이사를 회장으로 선임했다. 신임 조 회장은 인하대 공학석사 출신으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편의점협회도 이날 정기총회를 열어 오광열 현 회장을 임기 2년의 제7대 회장으로 재선임했다. 보광훼미리마트 회장이기도 한 오 회장은 협회 회장직만 세번째(2,6,7대)다. 그런가 하면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는 최근 정기총회를 열어 제13대 회장으로 이영일 호남석유화학㈜ 사장을 선임했다. 이 신임 회장은 인하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한국종합화학 호남비료에 입사한 뒤 호남석유화학에서 상무이사 등을 거쳐 98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왔다. 한국조선공업협회도 최길선 현대미포조선 사장에서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으로 ‘바톤’을 넘겼다. 김 신임 회장은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재무팀, 삼성물산 금융팀장, 삼성건설 전략기획실장 등을 거쳤고 2001년부터 삼성중공업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왔다. 김 신임 회장은 “재임기간 세계 1위 조선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구축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첫 외국인 회장’ 배출 여부를 놓고 관심을 끌었던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내부토론 끝에 ‘실리’를 선택,GM대우 이영국 수석부사장을 제12대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 신임 회장은 외국인인 닉 라일리 GM대우차 사장을 대신해 2007년까지 2년간 협회 회장직을 수행하며 정책간담회 등 자동차 관련 대외행사에 자동차업계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게 된다. 한국제약협회도 제60회 정기총회를 열고 허일섭 녹십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임기 2년의 이사장으로 만장일치 추대했다. 허 신임 이사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미국 휴스턴대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KAIT)는 제11대 회장에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을 선임했다. 이 사장은 지난 16일 열린 정보통신산업협회 이사회에서 새 회장으로 추천됐으며 향후 3년간 협회를 이끌어가게 된다. 건설 관련 협회장들도 대거 물갈이됐다. 대한설비건설협회는 2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설비건설회관에서 정기총회를 열어 제6대 회장에 박종학(61) ㈜동산테크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박 회장은 대한설비건설협회 서울시회 회장,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감사 등을 지냈다. 임기는 3년이다. 대한건설협회는 최근 정기총회를 열고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을 제23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치열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권 회장은 당선 소감에서 “협회는 내부 변화와 혁신을 통해 회원사를 위한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며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정책개발과 비합리적인 제도 개선 등 정책브레인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건설협회 회장이 선거를 통해 선출되기는 1999년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와 대한건축사협회도 최근 총회를 열어 장시걸씨와 이철호 ㈜승창엔지니어링 건축사 사무소 대표를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도 최근 김동섭 ㈜컴윈스 대표이사를 신임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한편, 업종을 떠나 중소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28일 정기총회에서 김영수 전 기협중앙회장을 임기 2년의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김 명예회장은 2000년 11월부터 2004년 2월까지 기협 회장을 두차례 지냈다. 위성방송수신기 및 사무자동화기기 전문업체인 ㈜케드콤의 회장이기도 하다. 안미현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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