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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분은 ‘메이드인 코리아’… 잊지마세요”

    “한국인의 긍지와 김치의 힘을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세요.” 하반신 마비장애를 딛고 세계 일류병원의 의사로 우뚝 선 ‘슈퍼맨 닥터’ 이승복(40·미국 존스 홉킨스병원 재활의학과 수석의사)씨가 13일 서울 일원동 중동중학교를 찾았다. 편지로만 접했던 어린 팬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바쁜 일과 중에 짬을 냈다. 지난달 말 고국에 금의환향해 이달 초 출국한 지 10여일 만이다. 이씨가 휠체어를 타고 학교 본관 1층 시청각실에 들어서자 학생 100여명은 슈퍼맨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를 흔들며 환호했다. 이씨는 “여러분을 너무 만나고 싶었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해 체조선수에서 장애인으로, 그리고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히 소개했다. 그는 “여러분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확고한 목표를 정해 노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씨는 최근 출간된 자신의 책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에 사인을 담아 학생들에게 주었고, 학생 대표는 감사의 뜻으로 종이학 1000마리를 전달했다. 이씨와 학생들의 만남은 2학년 7반 담임 김미영(40·여) 교사가 올 7월 이씨의 이야기를 다룬 TV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감동한 학생들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의지의 주인공에게 너나할 것 없이 편지를 썼고, 김 교사는 편지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편지를 받은 이씨는 김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 “ 편지에 감동했다. 편지 한장 한장을 넘기며 어머니와 함께 많이 울었다.”는 내용의 e메일도 보냈고 결국 이번 만남이 성사됐다. 학교측은 이씨가 휠체어를 타고 쉽게 다닐 수 있도록 600만원을 들여 계단공사까지 했다. 이씨는 8세 때인 1973년 가족들과 미국 땅을 밟아 한때 유망한 체조선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연습 중 부상으로 사지마비 장애인이 됐다.그러나 정상인들조차 하기 힘든 의대 공부를 이를 악물고 해내 뉴욕대를 거쳐 컬럼비아대에 입학해 공중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다트머스대 의대와 하버드대 의대에 들어가 인턴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곧 존스 홉킨스대의 조교수로 부임할 예정이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창작뮤지컬 ‘불의 검’ 주인공 임태경·이소정

    창작뮤지컬 ‘불의 검’ 주인공 임태경·이소정

    ‘오페라의 유령’‘아이다’ 등 외국 유명 뮤지컬이 잇따라 국내 무대를 장악한 가운데 모처럼 대형 창작뮤지컬 한 편이 야심찬 출정을 준비중이다. 19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하는 ‘불의 검’(김대성 작곡, 이종오 연출)은 창작뮤지컬로는 드물게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작품. 만화가 김혜린의 ‘불의 검’은 1992년부터 숱한 마니아층을 불러모으며 장장 12년간 장기 연재된 인기 만화로, 올해 ‘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코믹어워드’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청동기에서 철기로 이어지는 선사 시대, 기억을 잃어버린 전사 ‘아사’와 그를 위해 ‘불의 검’을 만드는 여인 ‘아라’의 절절한 사랑이 기둥 줄거리.2차원 평면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두 주인공에게 피와 살을 부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진 이들은 크로스오버 테너 임태경(사진 오른쪽·32)과 해외파 뮤지컬 배우 이소정(사진 왼쪽·32)이다.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이후 한동안 쉬고 싶어서 처음엔 좀 망설였어요. 지금은 하길 참 잘했다 싶어요. 소재도 새롭고, 노래도 맘에 들고, 무엇보다 또 한번 내안의 틀을 깨는 작업이란 점에서 매력적이에요.”(이소정) “저야말로 장고에 장고를 거듭했습니다. 뮤지컬은 처음인데다 만화에 그려진 ‘아사’는 남자인 제가 봐도 반할 만큼 멋진 캐릭터라 선뜻 엄두가 안 났거든요. 그런데 극중에 고구려 무예가 등장한다기에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굳혔어요. 평소 무예에 관심이 많았거든요.”(임태경) 이소정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주인공 ‘킴’역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 국내에는 ‘마리아 마리아’로 처음 무대에 섰다.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을 지닌 임태경은 지난해 1집 앨범 ‘센티멘탈 저니’를 발표하면서 크로스오버 음악계의 신성으로 주목받았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여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자아가 뚜렷하고,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린다. 오랫동안 혼자서 외국 생활을 한 경험 덕에 독립심도 강하다. 임태경은 스위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미국에서 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소정은 고등학교 시절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유학 가 음악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과 운동을 좋아했지만 꿈은 과학자였어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공대로 진학했는데 막상 박사과정을 밟으려니 음악이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결국 공부를 포기하고 3년 반 동안 음반 준비에 매달렸지요.”(임태경) 성악가인 이모의 영향으로 4살때부터 노래를 했고, 부전공으로 성악을 배웠지만 정통 성악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뮤지컬이나 영상콘서트처럼 노래와 공연이 합쳐진 장르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모국어로 노래하고 싶은 절실함’때문에 국내로 돌아온 이소정은 이 작품이 끝나면 다시 브로드웨이로 컴백할 계획이다. 뮤지컬 배우보다는 ‘보컬 아티스트’로 불리고 싶다는 그녀는 작사와 동화 창작 등 다재다능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불의 검’의 주인공 ‘아사’와 ‘아라’는 수많은 여성 팬들에게 신화적인 인물이다. 때문에 두 사람이 아무리 잘해도 그들의 환상을 충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 두 사람의 심정이 궁금했다.“만화의 이미지만을 기대한다면 물론 실망하시겠죠. 만화와 뮤지컬의 차이점을 감안하고 뮤지컬이 줄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두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굳이 만화와 비교하신다면…욕 먹을 각오 해야죠.(웃음)”10월23일까지.3만∼12만원.1588-789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MBA 공부하는 中스님

    중국에선 불교도 큰 비즈니스다. 상하이 스님 18명이 절 관리를 더 잘하기 위해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등록했다고 신화통신이 7일 보도했다. 상하이 자오퉁(交通) 대학에서 반년간 진행되는 스님들의 MBA과정은 절 관리, 조직 전략과 종교 물품 마케팅 등으로 이뤄져 있다.스님들은 또한 손자병법의 가르침대로 사업에서 성공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상하이의 100년된 유명한 선종 사찰인 옥불사의 총경리 창춘 스님은 “MBA과정을 통해 속세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배우려 한다.”고 말했다. 고찰로 유명한 허난성 소림사는 참선을 위한 장소는 좁고 찾기 어려운 데 비해 무술 경연장은 넓어 무술 경연을 통한 돈벌이에만 열심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인간시대] 김찬곤 서울시 정책기획관

    [인간시대] 김찬곤 서울시 정책기획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유학 시절에 배운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전자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숙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이론’과 ‘실천’은 닮은 말이면서 반대말이다. 둘 다 현실이라는 같은 곳을 가리키지만 둘을 모두 갖추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학덕이 높으면서도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군자(君子)라 칭한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서울시 김찬곤(49) 정책기획관은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많지 않은 ‘예외’에 속한다. 20여년 동안 서울시에 몸담으면서 실무를 익혔다. 지난달 미국 대학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까지 받아 이론을 겸비했다. 공직에 몸담은 뒤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아는 지천명(知天命)의 단계에 이른 셈이다. 김 기획관은 웃는 얼굴이다. 그의 미소 속에는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넉넉함이 배어 있다. ●4.0만점에 무려 3.97점 따내 김 기획관은 1978년 공직을 시작했다. 행시 22회로 서울시에 발을 들여놨다. 이후 서울시 감사과장,DMC(디지털미디어시티) 추진단장, 시정개혁단장 등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그러면서도 85년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89년 미국 조지아주립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그가 박사 학위를 위해 미국 뉴저지 주립 럿거스대학으로 유학길에 오른 것은 2002년.“편한 길 놔두고 사서 고생하느냐.”면서 다들 말렸다. 그러나 이론과 실무를 함께 갖추고 싶다는 신념이 그를 ‘만학’(晩學)의 길로 이끌었다. 중앙 부처에 비해 서울시에 외국 박사 출신이 드물다는 것도 그를 채찍질했다. “외국 세미나에 가면 우리나라 중앙 부처나 외국 공무원들이 박사일 경우 ‘박사(Doctor)’라는 존칭을 붙이더군요. 그러나 석사인 저한테는 ‘미스터(Mr)’가 끝이지요.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박사를 따자.’라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젊은이들도 죽어라 공부해야 되는 미국 박사 과정은 중년의 그에게는 훨씬 버거웠다. 대입 때보다 책에 더 매달렸다.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스트레스성 피부병까지 얻었다. 아직도 그의 종아리에 병흔이 남아 있다. 넉넉지 않은 휴직 상태라 도시락까지 싸서 다녔다. 그러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4.0 만점에 3.97점이라는 경이적인 학점을 받으면서 미국 대학원생 우등생 클럽에 가입했다. 결국 본토 학생들도 4년 이상 걸리는 박사 학위를 3년 만에 땄다. 럿거스대 행정학 박사과정 사상 최단 기록이었다. 김 기획관은 “정작 자극을 받은 것은 미국 학생들”이라면서 “요즘도 나에게 박사과정을 빨리 끝내는 법을 묻는 메일이 미국에서 올 정도”라고 밝게 웃었다. ●온라인 토론문화 발전·시민 의견 더욱 수용해야 김 기획관의 박사 논문 주제는 ‘한국 공무원의 전자민주주의 제도 수용:정책토론방 이용에 관한 모델’이다. 한국의 상황을 예로 들어 전자민주주의를 어떻게 심화시킬 것인가라는 내용이다. 감사과장 시절인 1999년 서울시 홈페이지에 민원처리 온라인 공개시스템을 처음 개발, 운영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인터넷 이용률 세계 2위인 우리나라의 앞선 온라인 문화를 소개하면서 더 앞선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가 논문에서 분류한 전자민주주의의 발전 단계는 ▲정보 공개 ▲의사 반영 ▲전자 토의 ▲전자 의사결정 등 4단계다. 스코틀랜드나 호주 퀸즐랜드 의회 등은 4단계, 우리나라 정통부나 통일부·서울시 등은 3단계에 해당한다. 그러나 관료주의가 팽배한 미국은 정작 2단계에 그치고 있다. 그는 “온라인 토론 문화가 더 성숙하고, 공무원들이 시민 참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고 생각해야 우리의 전자민주주의가 발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03년 11월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서울시 전자정부 세계 최우수도시’라는 내용의 세계 100대 도시 전자정부 평가도 그의 손을 거쳤다. 유엔과 성균관대의 후원을 받아 지도교수였던 마크 홀저 교수와 함께 주도했다. 서울시의 전자정부 시스템 수출도 그의 손을 거친 셈이다. 그는 정년 퇴직까지는 강단 대신 공직에 머무를 생각이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으로 서울시의 전자민주주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게 먼저다. 김 기획관은 “교수는 이론을 내놓지만 실제로 집행하는 것은 공무원”이라면서 “행정 이론과 실무를 다 했지만 공무원이라는 게 더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공부할 때는 몰랐는데 공직이 공부보다 더 어렵다.”고 밝게 웃었다. 글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김찬곤 서울시 정책기획관 ▲1978년 행정고시 22회 ▲1980년 서울시 산업경제국 전입 ▲1985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행정학 석사) ▲1989년 조지아대 행정학 석사 ▲1994년 강남구청 건설국장 ▲1996년 서울시장 정책비서관 ▲1997년 서울시 감사과장 ▲2000년 서울시 시정개혁단장 ▲2001년 DMC 추진단장 ▲2002년 럿거스대 박사과정 입학 ▲2002∼5년 럿거스대 행정생산성 연구소·전자정부 연구소 부소장 ▲2005년 럿거스대 박사
  • 런던서 심리학 석사과정 등록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스캔들을 일으켰던 모니카 르윈스키(32)가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의 사회심리학 석사과정에 등록했다고 학교측이 7일 밝혔다. 백악관 인턴이던 르윈스키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은 클린턴을 탄핵 위기로까지 몰고 갔었다. 르윈스키가 등록한 1년짜리 석사과정 학비는 유럽연합 국가의 학생이 아닐 경우 1만 2000파운드(2261만원)에 이르지만, 그녀에게는 큰 부담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학기는 10월에 시작한다. 르윈스키는 클린턴과의 추문으로 유명세를 타기 전인 1995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루이스앤드클락 대학을 졸업, 심리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세계유일 철강대학원 포항공대 9일 개원

    포스텍(포항공과대학교)은 9일 세계 유일의 철강 전문 교육 연구기관인 철강대학원 개원식을 갖는다. 포스텍은 이에 따라 올해부터 매년 석사과정 37명, 박사과정 15명(총정원 120명)을 선발한다. 이번 학기에는 석사과정 8명, 박사과정 1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학생 선발은 별도로 정해진 전형기간이 없이 연중 수시 지원과 선발이 가능한 ‘상시 입학 허가제’로 운영된다. 이 대학원의 학비는 전액 무료이며, 석사과정은 연 1200만원, 박사과정은 1800만원의 장학금을 받는다. 또 6∼12개월의 해외연수 기회도 주어진다. 개원식에서는 철강대학원이 영입한 세계적인 철강 석학 재료설계분야 브루노 디쿠먼(Bruno C De Cooman·벨기에) 박사와 청정철강생산분야 앙리 게이(Henri R Gaye·프랑스) 박사 등 2명의 전임교수 및 9명의 겸직교수에 대한 임용식도 열릴 예정이다. 포스텍 관계자는 “내년까지 10여명의 철강분야 세계적 석학들을 초빙, 전임교수로 임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의 (054)279-2411∼2.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잡코리아, 기업 성향분석

    잡코리아, 기업 성향분석

    전국에 16개 지사를 두고 있는 수입판매업체 H사는 사원을 뽑을 때 반드시 지원자의 거주지를 고려한다. 집이 회사에서 가까운 사람을 선호한다. 인사담당 이모씨는 “집이 먼 것이 큰 결점은 아니지만 멀리서 통근하는 직원에게는 야근이나 특근을 시키기가 부담스럽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유명 건설업체인 A사도 최종면접에서 지원자들에게 희망근무지를 묻는다. 사는 곳과 희망근무지가 일치하는 쪽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 결혼·출산 등 인생의 변화가 많은 30세 전후 신입사원들의 경우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이 멀면 쉽게 직장을 떠나기 때문이다. ●신입·경력 선발때 거주지역 고려 크게 늘어 5일 온라인 리크루팅업체 ㈜잡코리아가 올 상반기(1∼6월) 직원채용 공고 18만 7948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24.0%인 4만 5114건이 외국어능력, 회사인근 거주 등 우대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9∼12월(채용공고 16만 8431건)의 우대조건 제시비율 19.4%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청년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지원자가 급증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들이 제시한 우대조건은 ‘외국어능력 우수’가 34.8%로 가장 많았고 ‘인근지역 거주’가 31.4%로 두번째를 차지했다. 하지만 인근지역 거주자에 대한 기업의 선호도는 올 들어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 9∼12월 분석에서는 인근 거주자 우대 비율이 26.3%에 불과했으나 올해에는 5%포인트 가량 늘어났다. 반면 외국어 우수자에 대한 우대는 지난해 39.1%에서 올해에는 4%포인트 남짓 떨어졌다. 이밖에 올해 국가유공자에 대한 우대는 5.5%(지난해 4.6%), 해외연수자 4.0%(4.4%), 군 전역간부 2.1%(3.0%), 학점우수자 2.1%(2.2%)로 각각 지난해와 비슷했다. ●경력직 공채가 신입사원 공채의 4배 신입사원 공채보다 경력사원 공채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경력직 채용공고 수가 전체의 36.5%를 차지한 데 반해 신입직은 8.9%로 경력의 24.4%에 불과했다. 경력과 신입을 상관하지 않는 채용공고는 전체의 54.7%였다. 신입직 채용공고에서는 회사 인근 거주자와 외국어 가능자에 대한 우대가 각각 34.3%와 34.2%로 거의 같았으나 경력직은 외국어 42.6%, 인근거주 28.3%로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 경력 채용공고 중에는 MBA(미국경영학석사) 1.3%(신입 0.3%)나 해외연수 4.5%(3.5%)에 대한 우대가 신입보다 두드러졌다. 영어 가능자 선호 비중이 전체 외국어 우대 2만 5535건의 57.6%(1만 4708건)로 가장 많았고 일어와 중국어도 각각 23.0%와 17.5%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각각 영어 57.5%, 일어 23.4%, 중국어 17.4%로 올해와 비슷했다. 잡코리아 정유민 상무이사는 “이미 검증된 사람을 채용해서 초기 투자비용을 줄이고 실질적인 결과를 빨리 얻기 위해 경력사원을 채용하는 기업이 꾸준히 늘 것”이라면서 “이런 경향은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문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혁신 공기업탐방(21)] 정채융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

    [혁신 공기업탐방(21)] 정채융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

    정채융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공직사회가 굳건히 다질 수 있는 요인으로 연금제도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더이상 공무원들에게 사명감 하나로만 버티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공직사회에 능력과 성과가 중시되고 있어 더욱 그렇다고 강조한다. 정 이사장은 5일 “공무원연금이 부실해져 퇴직 이후의 생활이 불투명해지면 공직사회가 부패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면서 “공직사회가 투명해질 수 있도록 공무원에게 종합보장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 바로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공단혁신의 전제조건은 공무원연금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용, 공단의 고객인 전·현직 공무원들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데 있다고 했다.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정 이사장을 만나 재정운용 현황과 혁신전략을 들어봤다. ▶중장기 경영혁신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략의 방향은 어떤 것인가. -크게 4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소득심사제와 연금과세 도입 등 급변하는 연금환경에서 연금서비스 개선과 연금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연금제도 개선 및 운영시스템 정비 등 연금제도의 안정적 운영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다. 두번째는 금융상품 투자만으로는 수익창출의 한계가 있어 투자상품을 다양화하는 등 기금운용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주5일 근무시행에 따른 공무원복지수요 증가에 맞춰 실질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맞춤형복지서비스와 골프장건설, 장묘사업, 주택공동개발 등 새롭고 다양한 복지사업을 발굴·추진하는 것이다. 끝으로 경영이념과 윤리경영을 확립해 공단 조직의 혁신을 추진하는 것이다. ▶조만간 도입할 실질적 팀제 등이 혁신을 위한 조치인가. -그렇다. 공단을 둘러싼 환경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고객만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무늬만 팀제가 아닌 실질적 팀제 도입을 추진중이다. 팀제는 이달내로 규정개정 등 제도정비를 끝내고 전면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자금운용전문가를 영입하고, 자산배분·성과평가·위험관리업무를 시스템으로 연계하여 업무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금융자산종합관리시스템(AMS)을 구축했다. 특히 조직원들의 객관적이고 공평한 성과평가를 할 수 있는 균형적성과관리제도(BSC)를 도입, 성과 중심의 조직구조를 갖췄다. ▶공무원연금의 자산규모와 연금기금의 운용현황을 설명해 달라.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공무원연금 자산규모는 5조 4831억원에 달한다. 기금증식 사업에 67.6%인 3조 7062억원, 후생복지사업에 22.1%인 1조 2137억원, 매월 지급되는 월연금에 대비한 현금성 자산인 지불준비금 등에 5632억원을 운용하고 있다. ▶연금기금의 안정성과 수익성은 양면성이 있다. 어떻게 운용하나. -기금을 운용할 때는 안정성과 수익성은 물론 공공성까지 고려해 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기금자산 운용과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은 연금제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연금운용위원회, 자산운용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자산운용위원회 및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는 등 투명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특히 기금자산 중 상당한 부문을 차지하는 금융자산운용의 경우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어 금융자산운용 책임자와 주식운용 담당자를 외부 전문가로 공개채용해 운용할 뿐 아니라 각종 위원회에도 외부 전문가를 과반수 이상 참여토록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단이 기금을 운용하다 손실을 봤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과거 일부 언론에서 공단이 전문지식도 없이 주식에 투자해 큰 손실을 봤고, 그로 인해 연금기금에 막대한 영향을 초래한 것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그러나 1999년 이후 최근 6년 동안 3016억원의 주식투자 수익을 올렸다. 수익률이 연평균 16.4%에 달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 다각적인 투자분석을 통해 고수익 상품을 개발함은 물론 체계적인 위험관리와 효율적인 성과분석을 한 결과다. 공단의 금융자산수익률은 유사기관에 비해서도 우수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할 때 공단은 6.3%였고, 국민연금은 6.0%, 사학연금 5.8%였다. ▶연금업무 외에도 현재 추진중인 전·현직 공무원을 위한 복지사업은 어떤 것들이 있나. -대부사업·주택사업·휴양시설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 공단의 주택사업은 전체공무원 중 30% 이상이 선호할 정도로 가장 인기가 높은 복지사업이다. 공단은 지금까지 전국에 임대주택 1만 8187가구와 분양주택 2만 3471가구를 공급했다. 최근에는 충북오송지역과 전주 남악신도시로의 이전 공무원을 위한 아파트지원과 행정중심복합도시 이전 공무원을 위한 주택 및 복지시설 건립을 공단이 전담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밖에도 천안상록리조트 등 대규모 시설사업 중심의 복지사업에서 벗어나 연금기금의 투자가 없는 제휴복지사업·맞춤형복지서비스 등 소프트웨어적인 사업쪽으로 비중을 늘려 공공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100만명에 가까운 전·현직 공무원을 상대하다 보면 민원업무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민원서비스는 어떻게 처리하나. -공단은 ‘제2의 창단’이란 슬로건 아래 고객서비스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인터넷으로 모든 연금실무를 처리할 수 있는 종합정보통신시스템을 개발·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공단은 전국 연금취급기관 7600여명의 연금업무 담당 공무원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실시간으로 연금정보를 공유하며 모든 실무를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또 일선 공무원과 연금수급자에 대한 연금업무의 밀착 서비스를 위해 전국 8개 지방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로써 고객과 공단 연금담당직원의 직접상담이 수월해져 전화민원의 불편이 해소되고, 고객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회봉사활동에도 공단이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공단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공단과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사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공단과 농촌간 자매결연을 해 상생하는 ‘1사1촌 운동’과 주 5일 근무제 시행으로 늘어난 여가시간을 자원봉사활동에 할애하는 부서별 ‘토요봉사단’, 여직원들의 봉사모임인 ‘한마음회’, 바다와 환경을 지키자는 제주사무소의 ‘1사1바다’ 등 여러 개의 봉사단체가 불우이웃돕기부터 자연환경 보호운동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정채융 이사장은 누구 정채융 이사장은 29년 동안 내무부 관리와 시장·구청장 등을 역임한 내무행정 전문가다. 정 이사장은 관직에 있을 때 현장위주의 행정을 중시한 것처럼 공단 이사장으로서도 현장위주의 경영을 강조한다. 그는 “리더가 마음을 열고 조직원에게 다가가 마음을 보듬어 줄 때 그 조직은 비전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공단 경영상의 문제점이 생기면 모든 직원과 자유토론으로 해결한다. 그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에도 앞장서 매월 정기적으로 장애인 시설과 아동센터에도 개인적으로 헌금을 보내고 있다. 정 이사장의 추진력을 말해 주는 일화 한 토막.1990년대 초반 해운대구청장으로 있을 때 모 방송국에서 설치한 해운대 백사장의 야외무대 세트장이 수년 동안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방송국과의 마찰을 우려해 누구도 철거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 이사장은 소신있는 행정력을 발휘, 이를 과감히 철거했다. 이 일로 호된 신고식을 치렀으나 해운대 백사장이 제대로 관리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경남 남해(57) ▲부산대 행정학과·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석사 ▲행정고시 14회 ▲행정자치부 차관보 ▲중앙공무원교육원장 글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실질적 팀제 내용은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전면적인 팀제를 도입한다. 종전 조직을 팀으로만 바꿔 대다수 간부에게 보직을 주는 ‘무늬만 팀제’가 아닌 실질적인 팀제다. 공단측은 행정자치부의 승인을 받는 대로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공단은 종전의 8실·2처·1단의 조직을 2실(경영기획실·감사실)·2센터(정보지원센터·공무원연금연구센터)·1단(자금운용단)으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전면적인 팀제가 도입되면 1급이 맡았던 보직이 11개 자리에서 5개로 줄어들게 된다. 대신 공단은 종전 31개팀을 38개팀으로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팀장은 1∼3급이 맡게 된다. 이에 따라 새로 도입되는 2실·2센터·1단을 맡지 못하는 1급 간부는 119명의 2∼3급 간부와 팀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2∼3급이 팀장을 맡는 곳에 1급이 팀원으로 배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팀장은 공모제로 뽑는다. 희망자가 팀장에 지원하면 해당 임원이 발탁하는 방식이다. 팀장의 직급은 1∼3급으로 다르지만 해당 임원에게서 같은 기준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상사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 다른 공조직 인사평가와 다른 점이다. 팀제로 인해 공단의 계층구조 및 결재단계는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어든다. 의사결정 과정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공단은 이번 팀제 도입에 앞서 지난 2월부터 7개월 동안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간담회와 노사간 대화·협상을 통해 타협점을 이끌어 냈다. 전격적인 팀제 도입에 따른 임직원의 동요를 없애기 위해서다. 정채융 이사장은 “상사라고 과거처럼 결재만 하던 시대는 지났다.”면서 “팀제를 도입한 것은 궁극적으로 고객만족을 극대화하려는데 있고, 이를 위해 능력과 실적에 따른 성과평가시스템이 작동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팀제 시행 결과와 성과평가 결과를 보직 및 승진 심사 자료로 활용하고, 성과연봉과 성과상여금을 연계해 보상시스템을 체계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이사람] ‘절연체에 전류 흐른다’ 첫 규명 ETRI 김현탁 박사

    3월25일은 ‘발견의 날’이다. 누가 정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김현탁(47) 박사팀은 적어도 그렇게 여기고 있다. 올들어 세해째 조촐한 기념행사로 떡을 해서 다른 연구원들과 나눠 먹었다.2003년 이날 ‘모트 금속-절연체 전이(MIT)현상’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고 실험에 성공한 것을 자축하는 자리다. 그도 그럴 것이 1977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영국 이론물리학자 네빌 모트(작고)가 49년 MIT현상을 예견했으나 아무도 56년간 증명하지 못했던 물리학의 난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벨상 감’이란 찬사가 나왔다. ●치열한 국제경쟁 김 박사는 “그날 밤 늦게였는데 실험에 성공하는 순간, 번개를 맞은 듯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며 “세계 최초임을 알리기 위해 가장 먼저 인터넷에 띄웠다.”고 돌이켰다. 논문 출판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에 올린 다음날 물리학분야 인용지수 2위인 영국의 ‘저널(New Journal of Physics)’이 실험 논문을 요청해와 보내줬다. 저널은 10개월간의 심사와 치열한 논쟁을 거쳐 지난해 5월 그의 논문을 게재했다. 또 응용물리학 1위인 미국의 ‘레터(Applied Physics Letter)’는 지난 6월에 실었다. 이 분야는 연구 경쟁이 세계적으로 무척 치열하다. 스웨덴 왕립기술연구소는 지난 1월, 일본 와세다대학은 지난 3월에 각각 MIT현상 규명을 발표했다. 김 박사팀이 실험에 성공하고도 논문발표에 늦었다면 2등으로 처질 뻔했다. 이렇듯 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전기와 디지털이 쓰이는 곳은 다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반도체 부피를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 김 박사의 개가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92년 일본의 국립대학인 쓰쿠바(筑波)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비롯됐다. 이후 논문까지 10년이 걸렸다. 하루 댓시간밖에 자지 않고, 주말을 반납한 덕분이다. 실험을 앞둔 날은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 일찍 잤다. 주위에선 이런 그를 두고 “미쳤다.”고도 했다. ●MIT는 번개와 비슷한 현상 언론 보도로 들뜰 만한 지난 2일 오후 늦게 연구실에서 테스트 중이던 김 박사를 잠깐 만났다. 김 박사의 연구결과는 해외에서는 수차례 논문이 게재됐지만 국제 특허 출원과 설명 자료를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국내 발표는 지난 1일에야 이뤄졌다. 그는 “인터뷰하는 것이 물리학 연구보다 훨씬 어렵다.”며 자리에 앉았다. 쉽게 설명해 달라는 요구에 그는 “MIT 현상은 자연에선 번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하늘에서 번개가 생겨나면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인 대기층을 통과해 전기가 통하는 인간이 맞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엄청나게 작게 축소해서 실험한 것이지요.” 전자공학을 전공한 임주환 ETRI 원장은 “김 박사로부터 10시간 넘게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가난한 광부의 맏아들 김현탁은 58년 강원도 삼척시 도계에서 6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나 여섯살까지 살았다. 광부였던 아버지 김완규(작고)씨의 건강이 나빠져 외가 동네인 경북 포항시로 이사를 왔다. 포항초등학교 2학년 때인 아홉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 안판례(작고)씨가 군밤장사, 떡장사 등의 행상을 하며 6남매를 뒷바라지했다. 어린 그도 어머니를 도왔다. 그는 “차 안에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팔면서도 ‘다음에 커서 장사는 절대로 안 하겠다.’고 다짐했지요.”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이후 포항 동지상고로 진학했다. 가족들은 장남인 그가 그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은행원이 되기를 바랐다. 은행원은 당시 상고생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은행에 취직하기 싫습니다.”라며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이 싸다는 이유로 국립대학을 결정했다. 여기서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72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레온 쿠퍼 교수가 79년 이휘소 박사의 기념강연을 위해 서울대를 방문하자 대학 2학년이던 그는 이를 듣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달려갈 정도로 물리학에 심취해 있었다.“내용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학자에게 흠뻑 빠져 있었든 거죠. 기억나는 말이라곤 ‘슈퍼세미컨덕터(반도체)’뿐입니다.” 자연과학도인 김 박사는 딱딱할 것 같지만 은근히 낭만적인 데도 있다. 대학시절 부인 이은희(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씨를 만났다.“도서관에서 자리잡아주면서 서로 공부를 독려한 캠퍼스 커플이죠.” 서울대 대학원에서 고체물리학 석사를 받았다. 이때 몸이 약해 허파꽈리가 터져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먹고 살기 위해’ 84년 한국타이어 기술연구소와 시스템베이스를 다녔다. 학문에서 떠난 8년간의 외도(外道)였다. ●연구실에서 산 유학시절 직장을 다니던 중에도 그는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열망이 수그러지지 않았다.34세인 92년 일본 유학을 결심, 노벨상 수상자 3명을 배출한 쓰쿠바대로 갔다. 공부에 방해가 될까싶어 부인은 데려가지 않았다.“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른다.”며 그는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연구실에서 살았다. 연구실 최고령 학생인 그는 3년만에 전자재료 및 박막제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그리곤 바로 교수(文部敎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에서 교수로 신분이 바로 바뀌었다.40세인 98년 귀국,ETRI에 책임연구원으로 들어왔다. 이후 그는 국책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도 해마다 한 편의 논문을 썼다. ●그래도 연구에 매진하고파 물리학계의 화두는 68년 발견된 고온초전도현상이다. 이를 규명하려면 MIT현상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도 실험할 때마다 전하(물체의 전기 양)는 1,2처럼 정수인데 1/2,1/3처럼 분수를 띠고 있었다. 몇년째 고민 중이던 2001년 어느날 그는 대전 엑스포공원에서 연구실까지 산책하다가 ‘분수전하’라는 영감을 받았고, 이는 측정 때문이라는 ‘측정효과’라는 개념을 더했다. 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다. 김 박사는 “물리학은 창조적으로 발상하고 생각하는 학문”이라며 “자나깨나 이것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위에선 MIT트랜지스터를 상용화하는 것을 주문하지만 제 꿈은 고온초전도 현상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연구를 계속 고집하는 김 박사, 현재의 ‘돈 안되는 이공계 기피현상’은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대전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ETRI는 어떤 곳 ETRI는 일반 사람들에게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쓰는 휴대전화의 원천기술인 CDMA를 상용화한 연구기관이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66조 36억원으로 이는 CDMA 개발비 2223억원의 297배에 이른다. 국가경제 기여도는 204조 8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76년 설립된 ETRI는 과학기술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 소관이다.1800명의 직원 가운데 석·박사급이 1600명을 차지하는 고급 두뇌집단으로 정보·통신·전기 분야의 최고급 국책 연구기관이다. 그동안 국제특허 3000여건을 비롯해 1만 5000여건의 특허를 냈다.1386건의 기술을 2700여 기업에 이전해 줬다. 우리나라를 IT 강국으로 이끄는 ‘기술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다.ETRI가 요즘 연구중인 것으론 지능형 서비스로봇, 홈네트워크, 텔레매틱스, 차세대 이동통신, 차세대 PC, 디지털TV·방송, 디지털 콘텐츠 등이다. 최근엔 특히 개발된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도 관심이 높다. ■ 그가 걸어온 길 ▲1958년 7월 강원도 삼척 도계 출생 ▲78년 경북 포항 동지상고 졸업 ▲82년 부산대 물리학과 졸업 ▲84년 서울대 물리학과 석사 ▲85년 한국타이어㈜ 연구원 ▲92년 시스템베어스㈜ 개발부장 ▲95년 일본 쓰쿠바대 공학연구과 공학박사 ▲98년 일본 쓰쿠바대 물리공학계 교수 ▲2005년 ETRI 책임연구원(현) ▲한국·미국·일본 물리학회원(현),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미국 마르퀴스 후스후(03∼05년), 미국인명연구소(ABI·02∼05년), 영국국제인명센터(IBC·02∼03) 등에 등재됐으며,IBC 2003년판에는 그의 전기가 기록돼 있다.
  • [피플인포커스] 버슈보 주한美대사 지명자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알렉산더 버슈보(53) 전 주러시아 대사를 주한대사에 지명할 것이라고 백악관이 1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부시 대통령이 미 의회가 다음주 여름 휴가를 마치고 개회하는 대로 버슈보 대사를 공식 지명, 상원에 인준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버슈보 지명자는 상원의 인준을 통과하면 곧바로 미국의 제 20대 주한대사로 부임하게 된다. ●역대 美대사중 가장 거물급 버슈보 지명자는 2001년부터 최근까지 주러대사를 지냈고, 그에 앞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 TO) 대사,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유럽담당 대통령 특별보좌관 겸 선임국장 등을 역임하는 등 국무부 내에서도 최고위급 외교관으로 손꼽힌다. 워싱턴의 외교 전문가들은 버슈보가 역대 주한대사 가운데 가장 거물급이라고 평가했다. 보스턴 출신인 버슈보 지명자는 예일대에서 러시아와 동유럽사를 전공하고 컬럼비아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국무부에 들어가 소련과장을 역임하는 등 러시아와 유럽, 비확산ㆍ군축 분야의 전문가로 평가된다. 때문에 버슈보의 지명에는 부시 대통령보다는 러시아 전문가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시 행정부에 영향력이 있는 한반도 전문가는 버슈보 대사의 역할과 관련,“향후 6자회담의 전개 상황, 그에 따른 한·미관계의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버슈보는 한반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주러대사 시절부터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관심을 보여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주러대사 재직 이후의 보직으로 다른 자리를 희망했으나, 일단 주한대사에 내정된 뒤에는 한국 공부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졌다. ●라이스가 적극 천거 버슈보는 미 외교관 밴드의 드럼 연주자로도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 지난주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인권특사가 임명된 데 이어 버슈보 대사가 지명됨에 따라 미 정부의 한반도 관련 주요 인사는 전열 정비를 마무리하게 됐다. dawn@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20) 특별취재팀 방담

    [일본을 다시본다] (20) 특별취재팀 방담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이 기획한 ‘일본을 다시 본다.’ 시리즈의 마감을 앞두고 도쿄를 비롯, 교토와 나고야, 오사카 등 일본 현지 곳곳을 누볐던 특별취재팀이 지면에 미처 담지 못했던 얘기들을 방담을 통해 정리했다. ●도쿄의 부동산 열풍 -일본 최대의 번화가 긴자(銀座) 거리를 가보니 엷은 회색 포장으로 바꾸었더군요. 도쿄역 앞을 비롯한 도심의 재개발도 한창이었습니다. 도쿄만을 놓고 본다면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그 때문에 부동산 열풍도 심각하다고 합니다. 도쿄와 도쿄 인근 부동산 값이 너무 치솟아 ‘억션’이라는 말이 유행한다더군요.‘맨션(일본의 저층 고급 아파트)’이 웬만해서는 모두 몇억엔을 호가한다고 해서 일본사람들은 맨션 대신 ‘억션’이라고 부른답니다. 하지만 도쿄 인근을 제외한 그 밖의 지방은 부동산 경기가 죽어 있어 양극화 경향이 심각하다더군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았지만 일본에서 가장 활기 있는 곳은 역시 나고야인 것 같았습니다.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유치한 아이치 만국박람회 덕분이지요. 나고야역에서도 심심찮게 외국인을 볼 수 있었고, 나고야 번화가 어느 상점에나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나고야역 근처 한 전자제품매장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자 점원이 급히 인터넷 번역사이트에서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 프린터로 인쇄해 주더군요. 단순 친절을 넘어 외국인을 고려한 철저한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취재하면서 일본 사회 전체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도 여러차례 실감했습니다. 과거에는 일본의 정치인이나 회사, 단체 등에 인터뷰나 면담신청을 하면 통상 1∼2개월 가량 걸렸는데 이번에는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단체들도 홍보 필요성이 있는 곳은 하루 만에 일정이 잡히곤 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 대학의 한 한국인 교수는 “치밀한 일본인들이 속도감까지 갖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이나 사회가 스피드마저 갖추게 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속도가 빨라져도 그 무서운 준비력은 여전했습니다. 취재원들 모두 뒷받침할 통계나 증빙자료가 없으면 아예 말도 꺼내지 않더군요. -일본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먼저 헤어질 시간을 미리 고지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일단 인터뷰를 하다가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할 텐데, 일본은 미리 양해를 구해놓는 차이가 있더군요. 최대한 신중하고 정확하게 말하는 태도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가급적 단정적이고 명확한 대답을 요구하는 기자의 욕심을 좀처럼 충족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물어봐도 저렇게 물어봐도 신중함의 경계선은 무너지지 않았으니까요. ●감시의 나라, 일본 -일본은 ‘감시의 나라’라는 말도 실감했습니다.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를 취재한 뒤 도쿄전력을 찾아갔는데, 노사관계와 관련해 다소 민감한 질문을 던졌더니 “렌고에서 이미 취재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더군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감시하는 체제가 강력히 구축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쿄전력에서 회사측과 노조측 관계자를 교대로 만났는데, 먼저 취재에 응한 회사 관계자가 나중에 면담한 노조 관계자에게 저와 나눈 대화, 질문 내용 등을 알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일본은 지금 패전 60주년이자 러·일전쟁 100주년, 자민당 결성 및 ‘55년 체제’ 50주년을 맞아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가득 찬 상황입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을 바꾸겠다는 상징으로 의회까지 해산하며 우정개혁을 밀어붙이는 최대 강수를 두고 있습니다. 일본에선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을 미국식 경제주의와 일본식 경제주의간의 힘겨루기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식인층과 기득권층은 주로 미국식 경제주의를 도입해야 일본이 살아날수 있다는 논리를 폈고, 렌고 등 노동계와 일부 학계에서는 강한 거부감을 보였거든요. 이들은 고이즈미의 개혁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단정하고, 강행할 경우 결국 피해는 약자에게만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현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하더군요. ●지도층 “패러다임 바꾸자” -제가 만난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지금의 일본은 안된다.”고 말했는데, 일본인 특유의 엄살을 감안해도 시대의 변환기에서 적어도 리더그룹들은 일본을 형성해온 ‘패러다임을 바꾸고 변화를 늦춰서는 안될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전보다 다른 나라를 더 의식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본기자들로부터 ‘취재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본우정공사를 취재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도쿄신문 기자가 우정공사 취재 배경 등에 대해 알고 싶다며 인터뷰 요청을 해와 당황했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현지에 있는 지인들에게 했더니 “일본은 그동안 주변 국가들에 관심이 없었지만, 최근 개혁의 파고속에 주변국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귀띔하더군요. -기업의 육아지원책에 대해 취재하기 위해 NEC를 찾았을 때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간단히 NEC의 출산 및 육아지원제도를 소개하고선 오히려 저에게 한국은 어떤지 묻더군요. 출산휴가는 며칠이나 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어떤지 꼬치꼬치 묻는 통에 좀 당황했습니다. 양육지원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한단계 앞서 있다고 하자 얼굴에 안도감과 자부심이 비치더군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일본의 수준을 가늠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21세기 초 동북아 정세에 관해 들은 재밌는 얘기였습니다. 지난 3월 말 외무성 북한반장직을 박차고 퇴직한 서른 다섯살의 어느 지식인은 동북아의 위기상황에 대해 “북핵문제는 표면으로 드러난 문제일 뿐 사실 속을 들여다 보면 결국 동북아의 부(富)를 둘러싸고 중국, 한국, 미국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군대를 보내는 전쟁이 아닌 ‘세련된 제국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일본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새삼 실감한 한류 열풍 -현지 취재에 나서기 전 가장 궁금한 것들 중 하나가 한류 열풍이었는데요,‘도쿄의 코리아타운’이라 불리는 신오크보에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더군요.2001년 한국어학원을 개원한 한국인 원장을 만나봤는데, 그때 2곳에 불과하던 학원이 이듬해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조금씩 늘어나더니 한류열풍을 타고 지금은 20여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 여성은 팬레터를 쓰고 한국관광을 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는데,MP3 플레이어에 들어 있는 300곡이 모두 한국 노래일 정도로 열성적이었지요. 이 여성은 한국어를 배운 덕에 최근 한국계 기업에 취직까지 했다며 ‘일석이조’ 효과를 얻었다고 기뻐했습니다.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이 1년 안에 사그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현지에 가보니, 그렇진 않았습니다.TV를 보니 배우 장동건이 한국 소주를 선전하는 광고가 나오더군요. 또 아이들 사이에서는 한류 스타의 이름을 끊이지 않고 말하는 일종의 말잇기 놀이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한 여성은 영문 명함을 건넸더니 제게 명함에 한국어로 이름을 써달라고 하더군요.‘뵨사마(탤런트 이병헌)’가 너무 멋져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한국사람이 직접 쓴 한국어 글씨를 기념으로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여성은 한국에서 욘사마(배용준)와 뵨사마 중에 누가 더 인기 있는지, 이들 말고 또 ‘뜨는’ 연예인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일본 -이번 취재는 우리가 너무 일본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욘사마 신드롬’,‘독도문제’,‘교과서문제’ 등은 일본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측면이 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본 국내의 정치적 갈등에 우리가 끼어들어 곤욕을 치르거나, 일부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대응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일본인은 겉(형식)과 속(내면)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 본질을 다각도로 파악해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말하기 쑥스럽지만, 일본은 형식적이면서 실용적인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한 일본인 교수의 고백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에선 지하철이나 전철의 출입구쪽에 주저앉아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는 10대들이 갈수록 늘어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답니다. 전혀 주변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쳐다보지도 않는 어른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고집이 대단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기자가 물어보지 않은 내용인데도, 자기가 할 말은 꼭 하려들어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NEC의 아라이 도시노리 홍보부장은 일본 제조업의 부활을 묻는 첫 질문에 “대답에 앞서 우선 우리 회사 소개부터 하겠다.”면서 캐털로그를 펼쳐놓고 한바탕 ‘강의’를 했습니다. ●5층 빌딩 짓는데 4년 -‘일본의 경주’로 알려진 문화유적의 도시 교토에서는 일본 문화재정책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교토대에 입학, 현재 석사 과정에 있는 유학생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교토대는 그 학생이 신입생으로 입학한 5년 전 총장실 신축 공사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날 현장에서 유물이 발견되면서 무려 2년여 동안 공사가 중단됐고 유물 발굴이 다 끝난 뒤에야 건축 공사를 재개했다고 합니다.1학년 때 시작한 공사가 4학년 때 끝났으니 5층건물 하나 짓는데 4년이 걸린 셈입니다. wisepen@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 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 황장석(정치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나재암 종로구 의장 ‘석사모’ 썼다

    나재암 종로구 의장 ‘석사모’ 썼다

    서울 종로구의회 나재암 의장이 지난달 26일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만학의 결실을 본 나 의장은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지방자치·도시행정을 전공했다. 특히 나 의장이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서울시 종로구의 관광특구화 방안에 관한 연구’는 학위수여식에서 최우수논문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와 함께 나 의장은 공로상도 함께 받았다. 나 의장은 논문을 통해 지방의회 의원으로 경험한 현장체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종로구 지역에 도시형 관광특구화 모형과 종합관광지내 관광특구 모형을 혼합한 새로운 모델로서의 관광특구 지정을 제시했다. 한편 나 의장은 가을학기부터는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대학원에 진학, 학업을 이을 예정이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서울신문 ‘범죄리포트’가 시발점됐죠”

    ‘우리는 국내 최고의 통계분석 전문가’ 바로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농경제사회학부 연구팀이 그 주인공. 이성우(44) 교수팀은 통계청이 주최한 ‘제3회 대학원생 통계논문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휩쓸었다. 통계청은 1일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박사과정을 밟는 조중구(30)씨에게 최우수상을, 석사과정의 윤성도(25)씨와 신혜진(28·여·농산업교육과)씨에게 우수상을 수여했다. 최우수상을 받은 조씨의 논문 ‘범죄 발생의 도시계획적 함의’는 서울을 중심으로 범죄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국내 첫 연구사례로 평가된다. 조씨는 이 논문에서 숙박·유흥업소 수의 증가가 총범죄율의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통계적으로 증명했다. 조씨는 지난해 5월 서울신문이 국내 처음으로 시도한 범죄학적 분석보도인 ‘2004 서울 범죄리포트’의 통계작업에 참여했었다. 그는 “당시 서울신문의 보도와 분석결과에 영감을 얻어 보다 심층적으로 이번 연구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씨는 제1회 대회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은 바 있어 이번 수상으로 ‘통계논문 2관왕’에 오르게 됐다. 우수상을 받은 윤씨는 논문 ‘이산 종속변인의 분석을 위한 공간 계량경제 모형’을 통해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지역들을 동일한 기준으로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통계기법을 제시했다. 윤씨 역시 기초 데이터로 서울신문의 ‘범죄리포트’ 자료를 활용했다. 윤씨는 “고유한 지역적 특성을 지닌 지역들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경우 통계적 오류에 빠지기 쉽다.”면서 “지역적 특성을 상쇄시킬 수 있는 새로운 통계기법들을 비교·제시한 것이 연구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신씨는 대학진학률에 학교별·지역별 특징이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쾌적한 환경과 시설을 갖추고 교사들의 자기계발 노력이 많은 학교일수록 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이 높아진다고 조사됐다. 비평준화 지역을 평준화 지역으로 바꿀 경우 지역전체의 대학진학률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함께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사지마비 장애 딛고 美 최고 병원 의사된 이승복씨

    세계 최고 의료기관으로 꼽히는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슈퍼맨 닥터 리’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인 1.5세인 의사 이승복(40)씨. 이씨는 미국 내 단 두 명뿐인 사지마비 장애인 의사 중 한 명이다. 촉망받던 체조선수였던 그는 불의의 사고로 척추 손상을 입은 뒤, 눈물겨운 재활훈련과 의학공부를 거쳐 존스홉킨스병원에서 재활의학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이미 미국 뉴욕타임스와 볼티모어 선지,AP통신 등에 인간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소개됐던 이씨가 한국을 찾았다. 자신의 스토리를 담은 책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황금나침반) 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것. 29일 휠체어를 타고 기자들 앞에 나타난 이씨는 “자신을 낳아 길러준 부모와 조국을 위해 1등으로 살고 싶었다.”며 “다만 그 방법이 체조선수에서 의사로 바뀐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8살부터 미국에서 자랐음에도 한국과 부모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해 보였다. 한국어를 잊지 않기 위해 가져간 국어교과서를 수없이 반복해 읽고 쓰는 한편, 동생들에겐 집에서 한국말을 쓰도록 하고,‘형’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부모님께 칭찬받는 1등이 되기 위해 시작한 체조에서 그는 곧 두각을 보였고, 고교 3학년 때는 올림픽 예비군단의 최고선수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바로 그해 연습 도중 거꾸로 떨어져 7∼8번 경추 신경이 손상되는 ‘C7∼C8 종결선언’, 즉 사지마비 장애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씨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이 수반되는 재활치료를 병원 스태프들조차 감동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받았다. 그리고 10개월만에 휠체어를 타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다. 이후 이씨는 공부에 매달려 명문대인 뉴욕대, 컬럼비아대 공중보건학 석사, 명문 다트머스 의대, 하버드 의대 인턴과정 등을 거쳐 존스홉킨스병원 재활의학 수석전문의가 되었다. 이씨는 지금의 과정을 모두 끝내면 존스홉킨스의대에 조교수로 임용될 예정이다. 이씨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의사로서, 그리고 장애인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자신은 장애인을 배려하는 미국 의료시스템의 혜택을 받고 오늘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며 “한국이 그와 같은 시스템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희망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대권’따라 춤춘 안방극장 사투리

    ‘대권’따라 춤춘 안방극장 사투리

    TV 드라마에서 사투리 대사가 크게 늘어났고 사투리를 쓰는 인물들은 주로 하류계층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대통령의 출신지 사투리가 드라마 속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이정태씨의 석사논문 ‘TV 드라마 사투리 사용실태의 인식에 관한 연구’에서 밝혀졌다. 이씨는 지난해 5월부터 올 4월까지 1년간의 KBS·MBC·SBS 방송 3사 드라마 중 월 평균 시청률이 한 차례라도 20% 이상을 기록했던 드라마 28편을 선정, 무작위로 각 4회씩 모두 112회를 모니터링했다. 등장인물이 사투리를 쓰는 드라마는 총 18편으로 전체의 64%였다.2001년 방송위원회가 23편을 조사했을 때 30%에 그쳤던 데 비하면 비율면에서 113% 늘었다. 호남 출신인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했던 2001년에는 전라도 사투리가 76%로 압도적이었다. 당시 경상도는 12%였다. 그러나 경남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인 지금은 경상도 사투리가 42%, 전라도 29%, 충청도 19%, 강원도 10% 순이다. 이씨는 “드라마의 배경이나 인물설정은 정치적인 상황과 큰 관련이 있다.”면서 “집권세력의 출신지가 등장인물이 쓰는 말씨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생활수준을 상류·중류·하류로 나눌 때 사투리를 쓰는 사람의 84%는 하류층으로 분류됐다.16%는 중류층이었며 상류층은 한 명도 없었다. 직업별로 무직·단순노무직이 42%로 가장 많았고, 깡패 등 범죄자들이 22%를 차지했다. 또 일반인 149명과 방송 관계자 1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일반인의 44.3%와 방송인의 48.6%가 “드라마에서 표준어는 우월하고 사투리는 열등한 모습으로 묘사된다.”고 응답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2)-동생 김호연 빙그레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2)-동생 김호연 빙그레회장家

    ‘한번 들어서면 뒤를 볼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김호연(50) 회장의 경영 ‘일방 통행론’이 진행된지 횟수로 13년째.1992년 ‘미운오리 새끼’였던 빙그레는 2005년 확실한 ‘백조’가 됐다. 당시 부채 비율 4000%대는 50%대로,230억원대의 시가 총액은 무려 20배 가까이 늘어난 4300억원대로 껑충 뛰었다.10년간 누적적자 100억원은 놀랍게도 2004년에 순이익 350억원으로 바뀌었다. 이같은 변신은 빙그레와 김 회장이 처했던 극한의 조건들이 이뤄낸 절묘한 조화 덕분이다. 그룹 신규 투자에서 항상 ‘찬밥 신세’였던 빙그레는 김 회장이 취임한 이후부터 한화와의 단절을 통해 자력 갱생의 계기를 만들었고, 한때 경영능력에 대한 오해를 뒤집어쓴 김 회장은 처절한 구조조정으로 수익성과 성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특히 빙그레의 뛰어난 경영 성적표는 일방적으로 제기됐던 김 회장의 ‘자질 오해’를 깨끗이 불식시켰다. 내성적이며 말수가 적은 ‘충청도 양반’ 스타일인 김 회장에게 10년 이상의 기나긴 구조조정을 성공케 한 원동력은 뭘까. 불명예를 안고 무너지기엔 너무나 억울해서였을까. 아니면 성공해서 반드시 보여줘야만 했던 오기였을까. ●형제 분가 김승연-호연 형제의 분가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92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될 당시 시작된 형제간의 재산권 분할과 관련된 소송은 여론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건의 발단은 당시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의 사장인 김호연 회장을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명예 퇴진시킨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김 회장으로서는 공격적으로 유통업을 확장시키려는 순간에 경영 감사에서 이런 사실을 통보받자 너무나 어이없어했다고 한다. 한양유통은 인수 시절부터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데다 증자가 없어 한층 악화됐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회사에서 저를 밀어낸 것은 사실상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이 사건 이후 6개월 가량 두문불출했다.‘경영능력이 부족하다.’는 낙인 때문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였다. 이 때문에 그는 2004년 4월에 수상한 ‘한국의 경영자상’에 유독 애착이 간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일련의 사태 이후 재산권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자, 약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3년 6개월의 법정 공방을 거치면서 김 회장은 모친인 강태영(78) 여사를 비롯한 가족과 지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강 여사의 칠순을 맞아 대학 은사인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형제간 화해를 권유하자 김 회장은 이를 받아들여 소송을 취하했다. 강 여사는 당시 “칠순 잔치보다 가족들의 화합이 더 중요하며, 형제들의 잔치 비용을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좀 서먹해진 것도 있지만 과거 형님과의 갈등은 해소됐다.”면서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형제간 모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10년 구조조정 92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될 때 빙그레의 부채 비율은 4183%,10년간 누적적자가 100억원이나 되는 자본잠식 상태였다. 당시 기업 평균 부채비율이 420%대였던 점과 비교하면 무려 10배나 높은 수치였다. 한때 한화그룹의 ‘캐시카우’로서 그룹의 투자 자금을 조달했던 옛 위용은 사라지고,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았다.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다. 시장 점유율 1위는 의미가 없다. 수익성을 개선시킬 여지가 없는 사업은 과감히 잘라야 한다.”는 김 회장의 경영판단 아래 강도높은 사업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김 회장은 우선 가지치기를 시작했다.‘썬메리’ 베이커리 사업을 삼립식품에 매각했으며, 냉동식품과 초코케이크 등 비주력 사업은 시장 철수를 단행했다. 특히 초코케이크 사업 철수로 인해 유휴 상태였던 생산라인을 가동시키기 위해 아이스크림 경쟁사인 롯데제과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도 받는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았다. 빙그레 구조조정의 핵심은 주력 사업인 라면과 스낵사업 부문이었다.80년대 중반 겨울철 비수기 주력 사업으로 시작한 라면과 스낵사업은 매년 30억∼40억원씩의 적자를 기록하는 빙그레의 ‘두통거리’였다. 김 회장은 2003년 3월 라면사업 철수와 스낵사업의 국내 영업권 위탁이라는 고강도 처방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매수자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회장의 이같은 구조조정과 현금 흐름의 개선 노력은 92년 부채비율 4183%에서 외환위기 당시인 98년 360%,2004년에는 53.7%로 줄어든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학구파에서 몽골 인연까지 김 회장은 재계의 학구파로 유명하다. 경기고와 서강대 무역학과를 나온 김 회장은 일본 히도쓰바시(一橋)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 석사 학위도 땄다. 또 지금은 서강대에서 경영학과 박사 학위를 밟고 있다. 그의 독서량은 경영인들 중에서도 다독으로 손꼽힌다. 하루에 한 권 이상을 읽는 편이니 그야말로 ‘독서광’이다. 또 빙그레의 구조조정이 만들어준 김 회장과 몽골의 인연은 각별하다. 서울 압구정동 사옥을 매각하고 남양주시 도농동으로 본사를 옮긴 빙그레는 남양주가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와 자매결연을 맺은 덕분에 자연스럽게 몽골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 등의 잦은 방문이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김 회장은 김구재단을 통해 몽골 유학생들을 지원했고, 몽골 정부는 2001년 김 회장을 명예영사로 임명했다. 김 회장은 또 ‘몽골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후원했으며, 특히 최근에는 차남 동만의 아이디어로 몽골 수흐바토르 테뮤렐 종합학교에 어학실습실 설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여기에 김 회장은 바가반디 몽골 전 대통령의 딸인 바야르마씨와 서강대 동문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2005년 3월 한국과 몽골의 우호 협력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몽골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북극성 훈장은 몽골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러브 레터로 결혼하다.’ 김 회장과 김미(48)씨는 떠들썩한(?) 연애 결혼으로 유명하다.‘끼리 문화’가 지배적인 재벌가에선 이례적이다. 보통 정략 결혼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더러 연애 결혼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 커플은 정말 뜨거운 사이였다. 한화 김종희가(家)의 2세 가운데 유일한 연애 결혼 케이스다. 김 회장과 김미씨의 인연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간다. 서강대를 다니던 김 회장과 이화여대를 다니던 김미씨는 명문가의 자제로서 서로 얼굴은 알고 있었던 사이. 호감을 갖고 데이트를 즐기다가 김 회장의 공군장교 입소 훈련으로 한층 각별해진 사이로 발전했다. 김미씨의 ‘러브 레터’로 김 회장은 당시 연애편지를 가장 많이 받는 훈련생으로 부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편지와 함께 김미씨가 곱게 접어 보낸 종이학은 김 회장의 군 생활 내내 함께 했다고 한다. 이들은 5년 넘게 연애를 했다. 김 회장의 군 생활이 길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형인 김승연(53) 회장의 ‘싱글’도 이들 연애를 길게 했다. 김 회장의 얘기다.“훈련소에서 저의 연애 스토리는 꽤 유명했습니다. 아내에게 답장을 쓰는 것도 중요한 하루 일과였죠. 지금도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나 종이학들은 아내가 추억으로 잘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엔 형님 결혼이 어서 이뤄지기를 기다린 적이 많았습니다.” 김승연 회장이 백두진 전 국회의장의 부인인 허숙자 여사의 중매로 1982년 10월 서영민(44)씨와 결혼식을 올리자, 김 회장도 그 다음해 2월 김미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회장과 김미씨는 장남 동환(22)-장녀 정화(21)-차남 동만(18) 등 2남1녀를 뒀다.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처가는 독립운동가(家) 산실 김 회장의 처가는 국내 독립운동가(家)를 대표할 만한 명문가다. 김미 여사의 조부가 민족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이며, 큰어머니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고 안미생 여사다. 김 여사의 부친은 교통부 장관과 타이완 대사, 공군 참모총장, 국회의원 등을 지낸 김신(83)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이다. 김신 회장은 임윤연(작고) 여사 사이에 김진­김양-김휘-김미 등 3남1녀를 뒀다. 김진(56)씨는 동서통상과 글로볼씨스텍 대표이사를 거쳐 DJ정권 시절인 98년 대한주택공사 감사를 역임했다. 또 참여정부 들어서는 대한주택공사 사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미국 남가주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행정학 석사 학위를 땄다. 차남 김양(52)씨는 최근 주중국 상하이 총영사에 임명됐다. 이로써 그의 집안은 4대째 상하이와 인연을 맺게 됐다. 김구 선생은 1919년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건너갔으며, 이듬해는 선생의 모친인 고 곽낙원 여사와 부인인 최준례 여사가 상하이로 갔다. 김 총영사의 부친 김신 백범 기념사업협회 회장 역시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김 총영사는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고, 외국계 회사 근무와 기업체 운영 등으로 경제 경험이 풍부한 데다 상하이가 갖는 독립운동의 상징성을 감안해 발탁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젖소 사료를 제조·판매하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EBT 네트웍스의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시티뱅크 서울지점 부장과 컴퓨터 코리아 부사장 등을 거쳤다. 3남 김휘(50)씨는 광고인으로 나라기획 이사와 멕켄 에릭슨 상무를 거쳐 지금은 광고대행사 ㈜에이블리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한국관광공사 비상임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원을 나왔다. 김 회장은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라는 인연으로 독립운동가 추모사업에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회장은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이사로 활동하며 서울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기념관 건립에 큰 역할을 했으며, 현재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백범 사상의 학술연구과 관련 출판물 발간도 지원하고 있다. 김 회장은 또 후손 없이 서거한 이봉창 의사의 기념사업회도 후원하고 있다. 그는 이봉창 의사의 업적을 알리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10월9일 ‘광복 60주년 기념 이봉창의사 마라톤 대회’를 연다. 이밖에 김 회장은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김구재단을 통해 매년 150여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천재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커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겠습니까. 좋은 것을 주고 싶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고…. 하지만 저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가장 큰 자산은 균형 잡힌 가치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똑똑한 천재로 키우기보다 평범하지만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김호연 회장) 김 회장과 김 여사는 자식들에게 유난히 사회봉사 활동을 강조한다.‘우리’라는 단어의 참 의미를 깨우쳐주기 위해서다. 독립운동가(家)의 후손다운 자녀 교육법이다. 큰 아들 동환군이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을 보낼 때다. 김 여사가 아들 손을 잡고 찾은 곳은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한 맹인교회. 설거지나 청소 등 맹인들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도우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아들에게 가르쳤다. 모자(母子)는 동환군이 중3이 될 때까지 6년간 매년 여름을 맹인교회에서 봉사하며 지냈다. 또 외환위기가 한창인 98년에는 성공회 ‘푸드뱅크’ 주관의 노숙자 돕기 자원봉사에 김 여사와 3남매가 함께 참가해 서울역 광장에서 석달간 식사 배식과 설거지 등을 하기도 했다. 김 회장도 해비탯(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자녀들을 참여시켜 함께 집을 짓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 김구선생 손녀 김미 여사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사치 안 하고, 겸손하고, 얘들 교육에 관심 많고요. 또 독립운동가 후손답게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는데, 일은 조용히 하려고 해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굉장히 쑥스러워하고 꺼려합니다.” 김호연 회장이 보는 부인 김미 여사의 평이다. 김 여사도 국내 여느 재벌가의 며느리처럼 공식적인 바깥 활동을 거의 안한다. 김 여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봉사 활동도 ‘왼손이 하는 일, 오른 손도 모르게’ 하는 식이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대외 활동을 한다.6년간 맹인교회의 도우미로서 활동했고, 여전히 어린이 교육사업에 앞장서고 있지만 남들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김 여사의 이런 배경에는 국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家)로서 사회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과 조부 백범 김구 선생의 명예에 혹시나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몸가짐을 조신하게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김 회장과 자녀들이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는 것도 김 여사의 영향이 크다. 특히 김 여사의 봉사 활동은 살아있는 자녀 교육이 됐다. 김 여사는 자녀들에게 명문가의 사회적 책임을 가르치며, 균형 잡힌 가치관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여사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지인의 설명이다.“김 여사의 모친인 임윤연 여사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김 여사는 중2 때부터 집안 살림을 챙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상 어린 시절부터 주부 역할을 해오신 거죠. 그래서 그런지 차분하고, 조용할 뿐 아니라 일처리도 깔끔합니다.” 김 여사는 현재 국내·외 아동의 건강과 교육을 비롯해 결손·빈곤 가정 어린이 지원사업 등을 펼치는 국제 어린이 보호재단인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의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한편 백범 김구 선생은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지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1905년 11월부터 1907년 2월까지 황해도 장연에서 대한매일신보 지사장으로 민족신문 보급에 애썼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주한 美대사관 공보관에 한국계 로버트 오그번

    한국계 미국 외교관으로, 대구 미 문화원장을 지낸 로버트 오그번(46)이 주한 미 대사관의 공보관으로 지난 24일 부임했다.서울에서 태어난 뒤 10개월 만에 미국 가정으로 입양된 오그번 공보관의 한국 이름은 우창제. 그는 1988년부터 5년간 주한 미대사관 부(副)문정관을 지냈으며 대구 미 문화원장을 거쳐 서울에서 근무했다. 한국에 복귀하기 전에는 워싱턴 국무부 외신기자센터 브리핑 담당관과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공보원장을 지냈다. 메릴랜드 대학을 졸업한 뒤 존스 홉킨스 대학과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김수정기자crystal@seoul.co.kr
  • 서울시정硏 원장에 강만수 前차관

    서울시 출연기관인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새 원장에 강만수(姜萬洙·60·현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 전 재정경제부 차관이 임명됐다. 시정개발연구원 이사회(이사장 박세일)는 제9대 원장으로 강 전 차관을 선임했다고 24일 밝혔다. 원장 임기는 3년이다. 강 신임원장은 서울대 법학과를 나온 뒤 미국 뉴욕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인삼…삼삼한 축제를 찾아서

    인삼…삼삼한 축제를 찾아서

    도시생활에 지친 몸을 다스리고 싶다면 인삼 향기 그윽한 충남 금산으로 떠나보자. 국내 최대의 인삼장을 둘러보고, 각종 인삼요리를 맛보고, 인삼캐기 체험에 인삼찜질까지 즐기다 보면 도심에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다. 또 시골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멋진 개인 박물관과 레스토랑은 여행의 색다른 멋을 제공한다. 특히 금산에서는 다음달 2일부터 11일까지 지구촌 건강축제인 ‘제25회 금산축제’가 열려 관광객 맞이에 한창이다. 가을에 더 아름다운 금산에서 다가오는 가을을 맞아보자. 서울을 떠난 지 2시간. 금산 인터체인지(IC)를 빠져나와 금산 읍내에 들어서자 차창밖으로 쌉싸름한 인삼과 약초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읍내 한가운데 있는 금산인삼약초거리에 들어서자 한약방에 들어선 듯 인삼과 약초의 냄새가 강렬하다. 매월 끝자리가 2·7일마다 열리는 ‘금산 5일장’이 한창이었다. 전국 인삼 생산량의 80%가 이 곳을 거쳐간다는 인삼장은 이른 아침부터 직접 재배한 인삼과 약초를 팔러 나온 상인들로 북적거린다. 시장안에는 수삼센터와 인삼종합 쇼핑센터 등 대형 유통센터가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어 시골장 분위기는 예전만 못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직접 재배한 약초를 가지고 나온 노점상들의 모습에서 아직도 재래시장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소규모 장사를 하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노상에서 직접 재배한 약초 등을 내놓고 팔고 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인삼은 1채(750g) 단위로 거래되는데 믿을 수 있는 인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1채가 3∼4뿌리로 가장 큰 ‘왕왕대’가 6만∼7만원, 크기가 가장 작은 삼계(50∼60뿌리) 1채가 2만 2000원에 거래되는 등 크기에 따라 다양한 인삼을 구입할 수 있다. 또 묘삼, 건삼, 홍삼, 태극삼, 미삼 등 모든 종류의 인삼을 구입할 수 있다. 금산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인삼 좋고 인심 좋은 인삼 찜질·캐기 시장통에 있는 인삼 찜질방인 ‘금산웰빙 24시 불가마사우나’(041-754-0020)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명소. 인삼탕에 몸을 씻고 인삼 찜질을 즐기면 쌓인 피로가 말끔히 씻긴다. 요금은 찜질을 포함,7000원이다. 시장 상인을 대상으로 40년째 장사를 해온다는 서울식당(041-751-0607)은 시장통 밥집의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식당이다. 이 식당은 5일장이 열리는 날과 전날만 문을 여는데 4000원짜리 백반을 시키면 꽁치와 청국장 등 맛깔스러운 토종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어 읍내를 벗어나면 곳곳에서 검은 천막을 드리운 인삼밭을 만난다. 병풍처럼 둘러싼 짙푸른 녹음 사이로 펼쳐진 인삼밭은 한폭의 풍경화다. 읍내에서 개삼로를 따라 10분쯤 달리면 금산에서 인삼을 처음 재배한 개삼터다. 도로사이로 난 좁은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금산에서 인삼을 키우게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1500년전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병든 모친의 쾌유를 위해 진악산 관음굴에서 기도하던 중 ‘빨간 열매 3개 달린 풀이 있으니 그 뿌리를 달여 드리면 완쾌하리라.’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모친의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금산 여행의 즐거움은 그냥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체험이라는 쏠쏠한 재밋거리가 있다. 남일면 신정리에 있는 홍도인삼마을(www.hongdofarm.co.kr)이 대표적인 곳으로 인삼캐기와 인삼술담그기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인삼캐기 체험은 인근 5년근 인삼밭에서 이뤄지는데 흙밭에 들어가 인삼 향기를 맡으며 갈고리 모양의 호미로 직접 인삼을 캘 수 있다. 인삼의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인삼 뿌리와 10㎝이상 떨어뜨려 널찍하게 캐야 하며, 심어진 순서대로 차례로 캐야 한다.1뿌리를 캐는데 5000원이며, 수확한 인삼은 그냥 가져가거나 마을에 돌아가 인삼술(3만원)을 담가 가져가면 된다. 문의는 도원농원(041-752-6861). 이날 어머니와 함께 인삼캐기 체험을 온 김은주(12·금산초 5년)양은 “어려서부터 인삼밭은 많이 봐왔지만 직접 캐보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우리 지역의 소중한 특산물인 인삼을 새롭게 느껴보는 계기가 됐다.”고 즐거워했다. ● 적벽강 따라 가을은 찾아오고 늦더위를 식히려면 부리면 방우리의 적벽강이 좋다. 층암절벽으로 이뤄진 산아래로 금강이 흐른다고 해서 적벽강으로 불린다. 적벽은 바위산이 붉은 색이란 데서 유래된 것으로 30m가 넘는 장엄한 절벽에는 강물 아래에 굴이 뚫어져 있어 운치를 돋운다. 가을에는 적벽이 불붙는 듯한 단풍이 강물에 얼비쳐 절경을 이룬다. 적벽 아래 흐르는 금강은 마치 호수같이 잔잔하며 감촉이 매끄러운 자갈과 모래사장이 길게 깔려 있어 맨발로 걸으면 좋다. 오염의 때가 묻지 않은 이 곳에는 쉬리와 어름치, 꺽정이 등 1급수에서만 사는 희귀어종들도 손쉽게 만날 수 있으며, 다슬기가 지천으로 깔려 다슬기를 잡으며 동심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적벽강 인근의 종가집(041-752-0229)에서는 금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둥글게 둘러 담은 ‘도리뱅뱅이’를 맛보면 좋다. 이름만 들어도 재미있는 도리뱅뱅이는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으며 아삭하고 담백한 맛을 낸 민물고기 튀김이다.1접시에 1만원. 또 인삼이 들어간 어죽도 일품이다. 금산에서 진안방향으로 10㎞정도 달리면 호젓한 사찰인 보석사를 만난다. 운치가 있다. 얼마전 영화배우 한석규가 찍은 CF 덕분에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일주문에서 마주하는 200m의 전나무길이 장관이다. 보석사 앞에는 천연기념물 은행나무가 1000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을 담고 버티고 서있다. 이밖에 한국의 100대 명산인 서대산과 대둔산 천태산 등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이렇게 멋진 곳이 숨어있었나 금산에는 태영박물관과 레스토랑 말메종이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남이면 하금리 태영박물관(041-754-7942)은 서울에서 은행 지점장을 지낸 이기복(60)씨와 부인 임태영(55)씨가 평생을 모아두었던 향토 토기와 옹기, 민속품 등 120여종을 전시한 개인박물관이다. 대단한 보물을 전시한 박물관은 아니지만 주인 내외의 손때 묻은 옹기들과 토기, 야생화가 가지런히 정리된 아담하고 예쁜 박물관이다. 입장료 1000원. 특히 별채로 지어진 초가집 2채를 민박집으로 대여하는데 옛날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황토방으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온돌방이다.10∼20명이 머무를 수 있는 이곳은 하룻밤에 10만원이다. 퓨전 음식점 말메종(041-754-4442)은 마치 한적한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복수면 구례리 산길을 따라 차로 10분쯤 올라가면 숲 마지막에 그림같이 멋진 집이 나타난다. 모르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다. 전직 잡지사 기자였던 박현숙씨가 만든 레스토랑으로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나폴레옹이 아내 조세핀과 함께 지냈던 성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이 레스토랑은 야외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 음식은 돼지 훈제 바비큐와 목살, 인삼튀김 등이 나오는 푸짐한 한정식이 1인 2만 5000원. 디저트로 나오는 과일이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다. 이 집에는 3개의 객실이 있는데 주인이 직접 꾸민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 여행 메모 금산인삼축제집행위원회(041-750-2391)는 9월2∼11일 금산엑스포광장에서 제25회 금산인삼축제를 개최한다. 디스관광정보연구원(02-3453-5380)은 축제기간 중 매일 오전 8시 서울 강남역에서 출발하는 ‘금산웰빙여행’ 패키지 상품을 내놨다. 경비의 40%를 금산군에서 지원,1인 3만 8000원이다. 승용차로는 대전·통영간고속도로 금산IC에서 나가면 금산 읍내가 나온다. 금산군 문화공보관광과(041-750-2392).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그라운드의 악바리 이영무 감독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그라운드의 악바리 이영무 감독

    온 국민을 웃기고 울리는 축구에서의 골 세리머니는 언제 봐도 환희와 감동의 결정판이다. 느닷없이 속옷을 내보여 주는가 하면 옆으로 드러누워 기발한 동작으로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또 손을 꽉 잡고 기도하는 숙연한 장면을 연출하는 등 이래저래 골 세리머니는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1975년 9월28일 서울 동대문운동장. 제4회 한·일 축구 정기전이 열렸다. 전년도 도쿄 시합에서 4대1로 패한 앙갚음을 하듯 한국 선수들은 경기 초반부터 일본의 골문을 열심히 두들겼다. 이때 유독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다. 왜소한 키에 보잘것없는 체격, 그러나 종횡무진 경기장을 헤집고 다니는 모습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후반 중반 무렵, 승부에 쇄기를 박는 세 번째 골이 터졌다. 바로 그 순간 골문 앞에서 보기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꽉 쥔 두손을 이마에 갖다 대고 무릎을 꿇은 채 한참 동안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 생소했지만 전국민에게 감동과 설욕의 속시원함을 선사했다. 주인공은 바로 ‘그라운드의 악바리’ 이영무(53) 선수였다. 이후 차범근 신연호 박민재 선수 등이 골을 넣은 후 기도 세리머니를 연출하는 바통을 이었다. 이 세리머니는 종교적 논란 등으로 잠시 주춤했으나 2002년 월드컵때 이영표 송종국 최태욱 이천수 등에 의해 다시 살아났고 최근에는 박주영 등 차세대 골잡이들도 자주 애용한다. ●“선착순 달리기 차범근 선수에 딱 한번 져” 앞서 언급한 대로 ‘기도 세리머니’의 원조는 이영무 할렐루야 축구감독이다.75년 한·일 축구 정기전에서 처음 선보인 후 81년 축구 국가대표를 은퇴할 때까지 그의 상징처럼 늘 따라다녔다. 감독생활을 하는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다. 이 감독은 이와 관련해 “처음 기도 세리머니를 할 때에는 스스로 생소했고 비난도 많았다.”면서 몸이 빈약하고 잘 먹지 못해 빈혈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고 또 기술도 뛰어나지 못해 신앙심 하나로 열심히 뛰자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런 각오로 현역때 선착순 달리기를 하면 죽어라 뛰었고 청소년대표 시절 차범근 선수한테 딱 한번 뒤진 것 외에는 단 한번도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오직 살 수 있는 길은 지구력밖에 없으며 하느님한테 힘이 되어 달라고 늘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런 습관으로 골이 터질 때마다 감사의 표현으로 저절로 기도 세리머니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할렐루야 축구단 숙소 인근의 한 식당에서 이 감독을 만났을 때 ‘기도 세리머니’에 대한 질문에 지체없이 나온 대답이다. 이 감독은 최근 할렐루야 축구단을 이끌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순회하며 평화의 축구경기를 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위험지역인 관계로 결코 쉽지 않은 출장이었기에 궁금증이 생겼다. “지난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방문했지요. 이때 팔레스타인 축구대표팀이 처음으로 구성돼 우리와 친선시합을 가졌습니다. 당시 떠나올 때 올해도 방문한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베들레햄을 비롯, 헤브론 라말라 여리고 등 좀처럼 외국인이 드나들 수 없는 곳에서 네차례의 친선경기를 가졌지요. 처음에는 잔뜩 경계했지만 나중에는 외부의 사랑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월드컵 4강의 한국팀이 왔다며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등을 연발, 이 구호가 세계 축구 공용어임을 실감했다며 웃었다. 아울러 방문하는 곳마다 어린이들에게 축구 클리닉 행사를 해주자 총소리를 듣고 자란 사나운 성질은 온데간데없고 ‘코리아 넘버원’을 외치며 환영했단다. 이들이 사용하는 축구공은 아직도 고무공. 미리 갖고 간 가죽공 100개와 장난감 등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지역 방문때 “대~한민국” 연호에 감동 이 감독은 “먼지만 펄펄 나는 헤브론 운동장에서 돌과 자갈을 주워내고 경기 2시간 전부터 물을 뿌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꼈다.”면서 헤어질 때 ‘살렘(평화)’‘살렘’을 외치며 붙잡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높은 담이 무너지고 평화의 문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며 아직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또 “알 자지라와 팔레스타인 방송 등에서 우리 선수들을 집중 인터뷰하는 등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앞서 지난해 7∼8월 르완다 탄자니아 우간다 등 아프리카 내전지역에 축구단을 이끌고 방문하는 등 몇 년째 소외지역을 찾아 선교활동을 펴고 있다. 화제를 돌려 한국 축구의 수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2002년 월드컵 개최로 인해 축구의 저변확대는 물론 과거 70∼80년대보다 괄목할 만한 발전과 성장을 이루었다고 전제했다. 이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를 예로 들면서 “체력이나 전술면에서 국제적 수준으로 따라왔다. 그러나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여전히 문제점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볼 키핑과 패싱, 컨트롤 등의 기본기는 어릴 적부터 다져져야 하는데 한국축구는 그걸 건너뛴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본프레레 국가대표팀 감독이 경질된 한국축구가 내년 독일월드컵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묻자 수비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2년 월드컵 때의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 등으로 이어지는 수비 라인업과 비교했을 때 무게가 떨어지는 편”이라고 했다. 최근 들어 김두현 선수가 많이 좋아졌지만 수비보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런 다음 미드필드에서는 김남일과 유상철 선수처럼 강인함이 있어야 하고 측면 돌파는 이영표와 김동진, 포드에는 박지성 박주영 안정환 등이 포진할 경우 낙관적인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주영 선수에 대해서는 편안함과 부드러움이 있으며, 기초와 발기술이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정신력·체력 보강한다면 독일월드컵 16강 가능” “남은 10개월 동안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보강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가 유럽처럼 정상에 와 있으면 별도의 훈련이 필요없지만 그렇지 않은 실정입니다. 팬들의 눈은 이미 4강 수준을 바라보고 있지요. 지금이라도 총체적 난국임을 인식하고 기술위원회, 축구협회, 각 프로구단 등 모두 같이 호흡하고 함께 가야 합니다. 그래야 독일월드컵에서 16강,8강을 바랄 수 있습니다.” 이 감독은 국가대표 시절을 회고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합을 77년 11월 이란과 가진 월드컵 예선경기를 꼽았다.2대1로 뒤지던 후반에 차범근 선수가 센터링한 볼을 김재한 선수가 아크서클 부근에서 헤딩으로 볼을 떨어뜨리자 달려가면서 슛해 골인시켰다. 그러자 12만 관중이 한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긴 침묵속에 빠졌다. 비기긴 했지만 승점에서 뒤져 월드컵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 감독은 경기 고양에서 4남3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부친은 면서기였고 나중에 면장까지 지냈다. 이 감독은 어릴 적부터 돼지 오줌통으로 마을 뒷산 묘지에서 혼자 드리블하면서 축구를 즐겼다. 능곡 초등학교 5학년때 학교 축구부와 비축구부간의 시합때 감독의 눈에 띄어 발탁됐다. 고1때인 70년 지금의 부인과 만나 8년 교제 끝에 78년 결혼했다. 이 감독은 할렐루야가 전반기 2부리그에서 11개팀 중 5위를 기록했으며 2007년부터는 K-리그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3년 경기 고양 출생 ▲73년 경희고 졸업 ▲74∼81년 축구 국가대표 ▲77년 경희대 졸업 ▲81년 포철, 할렐루야팀 선수 ▲81년 경희대 대학원 체육학 석사 ▲83∼92년 임마뉴엘 선수 겸 코치 ▲87∼90년 합동신학대학원 신학과 석사 ▲92∼98년 이랜드푸마 축구단 감독 ▲92년 목사 안수 ▲94년 올림픽팀 코치 ▲95년 유니버시아드팀 코치 ▲98년 축구협회 기술위원 ▲99년∼현재 할렐루야 축구단 감독 ▲2000년 성결대 겸임교수 ▲2002년 축구협회 기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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