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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청장 현장인터뷰] 신동우 강동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신동우 강동구청장

    지난 2일 오후 7시 서울 강동구 천호동 강동구민회관. 장미꽃을 한아름 안은 연인과 정답게 팔짱을 낀 중년부부,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매달 한번씩 열리는 ‘강동 목요예술무대’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신동우(53) 강동구청장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는 지난해 2월 목요예술무대가 시작된 뒤 꼬박꼬박 구민회관에 온다. 공연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직원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팍팍’ 주기 위해서다. 매번 인터넷 예매분이 일찌감치 동날 정도로 목요예술무대가 ‘동네 명물’로 자리잡았다. “문화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밥’과도 같습니다. 인구 1000만명의 서울에서 인구 47만명의 강동구까지 문화가 ‘세포’처럼 뻗어나게 하려면 목요예술무대가 꼭 있어야 합니다.” ●목요예술무대 ‘동네 명물´로 자리매김 그래서인지 목요예술무대의 관람료는 어린이 2000원, 성인 4000원으로 수만원대를 웃도는 일반공연에 비해 저렴하다. 컴퓨터를 못하는 사람들도 공연을 보러 올 수 있도록 좌석의 절반은 현장에서 판매한다. 이날 공연은 경문대 뮤지컬학과 학생 50여명이 ‘지킬과 하이드’ ‘오페라의 유령’ ‘토요일밤의 열기’ 등 유명 뮤지컬에 나오는 음악을 간추려 내놓은 ‘뮤지컬 하이라이트’. 공연장에 들어서니 출연진들이 막바지 리허설(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신 구청장이 무대에 올라가 인사를 건넸다. 리허설을 마친 강웅곤(20·경문대 2)양이 “출연료를 많이 달라.”며 ‘애교섞인’ 주문을 하자 신 구청장은 얼마전 관람한 ‘노트르담 드 파리’를 언급하면서 “문화 분야는 성장 가능성이 큰 만큼 새싹인 여러분이 열심히 하면 우리도 외국 못지않게 문화 분야를 일으킬 수 있다.”고 다독였다. “25년 꼬박 서울시 공무원을 하다가 구청장이 되니까 장단점이 있더군요. 조직의 장으로서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때 보람을 느끼지만, 예산이 부족할 때에는 힘에 부쳐요.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 부문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밥(문화)을 굶을 수 있나요.” ●“돈 없다고 문화 굶을 수 없어” 불이 꺼지고 막이 올랐다.1970년대 유행했던 팝송이 잇따르는 ‘토요일 밤의 열기’가 나오자 신 구청장은 몸을 들썩거렸다. 그는 “학창시절 하루 4시간 꼬박 라디오를 들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다.”면서 어느덧 뮤지컬에 빠져들었다. 공연중 “구민회관이 지어진 지 오래돼 음향이 다소 울린다.”고 지적하자 “그래서 2008년까지 상일동에 강동문화예술회관을 새로 지으면 나아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1시간30분 동안의 공연이 열기 속에서 마무리되고 불이 켜졌다.“다음 공연은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입니다. 가사가 외국어라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줄거리를 미리 보고 오시는 게 좋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주민들이 저마다 뮤지컬의 추억을 한아름 안고 자리를 뜨는 모습을 보며 강동구의 풍요로운 앞날이 떠올랐다. ■ 그가 걸어온길 ▲출생 1953년 서울 ▲학력 경복고·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수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 졸업(경영학 석사) ▲약력 21회 행정고시 합격,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서울시 공보관·비서실장·산업경제국장·행정관리국장·환경관리실장·상수도사업본부장·북경 주재 서울문화무역관장 ▲가족 아내 이건수씨와 1남 ▲종교 기독교 ▲기호음식 청국장 ▲애창곡 내사랑 내곁에(김현식)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이사람]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 “새로운 천년 ‘섬김의 리더십’ 산실로”

    [이사람]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 “새로운 천년 ‘섬김의 리더십’ 산실로”

    1960년 경기여고 교장실. 숙대 가정대 학장으로 있던 표경조 경기여고 총동문회장이 박은혜 교장에게 말한다.“미래 대학총장으로 키울 테니 똑똑한 후배를 우리 학교로 보내주세요.” 그는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 대학 입학도, 졸업도 수석이었다.4년간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4학년 땐 총학생회장도 맡았다. 학창시절 그의 꿈은 학자였다. 정치학계의 대모가 꿈이었다.5·16 군사혁명, 북한 무장간첩 31명의 서울 침입 등으로 혼란스러운 격동의 60년대와 70년대 중반까지 책과 씨름하며 보낸다. 이 무렵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도 받는다. 여성 정치학 박사 3호다. 국회의원 생활도 4년간 한다. 정치이론과 실무경험까지 두루 거친 그는 모교 정법대 학장과 기획처장을 거쳐 94년부터 2008년 8월까지 총장으로 모교발전을 도모하게된다. ●재임기간 캠퍼스 6000평에서 1만8000평으로 바로 숙대 이경숙(63)총장 얘기다. 이 총장은 바빴다. 올해로 개학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국내 첫 4선 총장취임 인터뷰도 몇몇 언론사가 함께 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의 총장 재임 동안 숙대는 몰라보게 변해왔다. 캠퍼스는 1995년 6000여평에서 1만 8000여평 규모로 커졌다. 각종 단과대 건물과 박물관, 연주홀 등 17개동의 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최근 6년간 교육개혁추진 우수대학 선정, 모바일 캠퍼스 구축, 국가고객만족도(NCSI) 3년 연속 1위 등 양과 질에 있어 눈부신 성장을 보이고 있다. 비결을 묻자 “공감할 만한 비전을 제시하고 개인보다는 학교를 먼저 생각하며 일해 온 덕분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의 숙명 사랑은 총장 자리에 오르면서부터 구체화된다.94년 13대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2006년까지 대학발전기금 1000억원을 조성, 세계 최고의 여자대학으로 변신시키겠다고 선언한다. 이전에 모인 기금 규모는 2억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몸으로 실천해 나갔다. 동창생들을 찾아다니며 150만원에 이르는 ‘등록금 한번 더 내기 운동’도 벌였다. 프랑스 요리학교 르코드동블루로부터 120만달러도 유치했다. 국내 대학이 외자를 끌어들인 첫 사례로 기록된다. 이같은 노력으로 현재 숙대 발전기금은 927억원으로 불어났다. 학생수가 1만여명선인 여자대학임을 감안하면 목표를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섬김의 철학은 그의 인재양성관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21세기 인재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 합의를 본게 섬기는 지도자상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섬기고, 세계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그리고 남을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죠, 링컨 대통령의 리더십도 섬김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습니다.”그가 4선 총장이 된 것도 이러한 섬김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춤추는 총장님 “제2탄 기대하세요” 섬김의 리더십은 청파 은혜제 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학생·학부모들 앞에서 남자 교무위원들과 함께 미니스커트에 선 글라스를 끼고 춤을 추는 60대 할머니가 바로 그다. 그는 2000년부터 해마다 5월에 만20세 성년이 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깜짝 이벤트를 선보인다. 지금까지 테크노 댄스, 난타공연 등 다양한 춤실력을 선보였다, 올해 5월에 예정된 청파은혜제 때에도 마찬가지다. “매주 한번씩 갖는 교무위원 회의를 마치고 1∼2시간씩 학생들로부터 춤 지도를 받죠. 처음엔 다들 머쓱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명나게 놀죠.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물론 공연 때 실수라도 하면 웃음이 곳곳에서 터져나오죠. 이런게 대학 구성원을 한 곳으로 뭉치게 하는 비결이 아닌가 합니다.”이 총장이 밝히는 섬김의 철학은 이렇게 몸에 배어 있었다. ●숙대생 건배는 ‘진달래´로 시작 ‘개나리´로 마무리 술 실력은 어떨까?기독교 신자로 술을 전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는 노력은 대단하다. 그가 참석하는 자리는 예외없이 나오는 구호가 있다.‘진달래’로 시작해서 ‘개나리’로 끝나는 숙대 건배사다.‘진하고 달콤한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를 줄인 ‘진달래’를 그가 외치면, 나머지 참석자들은 ‘개인과 나라의 이상을 위하여’라는 의미인 ‘개나리’로 화답하며 술잔을 부딛친다. 숙대를 잊지 말고 오래오래 가슴속에 품어달라며 그가 만든 숙명 사랑의 결실이다. “남녀공학 대학과 달리 여대는 졸업해도 선·후배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는 등 연결고리가 약한 편이죠. 그래서 정서적 공감대를 키우려고 고민한 끝에 여성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그리고 들어서 기분좋은 표현을 생각했죠.”이 총장의 부연 설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도 그의 숙대 사랑이 듬뿍담긴 이 건배사를 들었다.“얼마전 21세기 인재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어요. 청와대에서 수상자들을 위한 오찬자리를 마련했는데 대통령이 건배를 제의해 진달래, 개나리를 외쳤죠.”라고 말한다. 이 총장은 ‘교수 가족’이다. 지난해 은퇴한 최영상 전 고려대 부총장(화학과 교수)은 그의 남편이다. 이숙자 전 성신여대 총장은 그의 여동생이다.99년에 동생이 성신여대 총장이 됐을 때 “행정이나 인간관계는 잘 하고 있지만 교수님들을 특히 잘 섬겨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12개나 되는 대학원 원장을 모두 맡고 있는 한정신 원장은 대학, 학과 동기다. 4선 총장답게 웬만한 국내 대학 총장은 다 안다. 김병량 한대총장, 어윤대 고대총장, 신인령 이대총장, 정운찬 서울대총장, 정정길 울산대 총장 등과 친분이 두텁다. 서울대 출신인 정 총장과는 학창시절 총학생회장 신분으로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숙대는 건학 100주년을 맞아 이달 중순부터 리더십을 주제로 한 전국 대학총장 특강을 준비중이다.2020년까지 한국지도자의 10%를 길러 내겠다는 숙대의 꿈이 실현될 그날이 주목된다. ■ 이경숙 총장은 ▲1943년 3월 서울 출생 ▲1961년 경기여고 졸업 ▲1965년 숙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67년 숙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1971년 미국 캔자스대 대학원 석사 ▲1975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대학원 박사학위(국제정치학 및 비교정치) ▲1976년 숙대 교수 ▲1981∼85년 제11대 국회의원(민정당) ▲1985∼89년 숙대 정법대학 학장 ▲1990∼94년 숙대 기획처장 ▲1994년 3월∼ 현재 숙대 총장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정보화 부문) ▲2002년 한국능률협회 제34회 한국의 경영자상 수상 ▲기타: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부회장,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골퍼 출신 KPGA·KLPGA 새 전무 류형환·김미회 씨

    [스포츠 라운지] 골퍼 출신 KPGA·KLPGA 새 전무 류형환·김미회 씨

    한국 남녀 골프계가 올시즌 개막을 앞두고 나란히 경기인 출신 40대 전무를 선임, 안팎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지난달 초 류형환(사진왼쪽·46)씨를 전무로 선임한 데 이어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도 22일 김미회(47)씨를 전무이사로 뽑았다.KPGA 홍보이사를 지낸 류전무나,KLPGA 감사·이사·상벌위원장을 지내며 최근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몇 안되는 최고참인 김전무나 모두 사무국과 경기인들 사이의 의견을 조율하는 데 최적임자라는 평이다. 류 전무가 국내 프로골퍼 최초의 학사 및 석사 출신으로 서일대 겸임교수, 명지대 골프부 감독인 학구파라면 1990년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한 김 전무는 부산에서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 열정파다. 비슷한 시기에 중책을 맡은 것 외에 프로 데뷔연도(1988년)와 나이도 같다. 여기에 고민도 비슷하다.“사무국과 경기인들의 가교로서 의견을 조율하는 게 쉽지 않다.”며 이구동성이다. 물론 이들을 행정책임자로 선임한 배경도 이같은 문제점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일 것이다. 투어 활성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이들 앞에 놓인 공통적인 문제.“골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상금 규모나 대회 수도 늘어나는 추세지만 아직은 회원들이 대회 출전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투어대회의 규모가 더 커져야 한다는 말이고, 이는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고민도 있다. 김 전무의 고민이 더 절박하다.“정상급 선수 대부분 미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다 보니 실제 국내 투어는 별 관심을 받지 못할 상황이 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는 것. 실제로 1997년 박세리 이후 KLPGA 상금 랭킹 1위를 차지한 대부분의 선수는 지금 미여자프로골프(LPGA)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해외에서 전해오는 승전보에 기뻐하다가도 국내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단다. “그동안은 나가는 선수나 보내는 우리 협회나 공동체라는 생각이 엷었다.”는 김전무는 “이제부터는 한 가족이라는 의식을 심어줄 방법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에서 활약중인 선수들에게는 필요한 지원을 해주고 국내 선수들에겐 프로 입문 이후 일정기간이 지나야 해외 진출을 허용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 이에 비해 류 전무의 걱정거리는 신예 스타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지난해만 해도 2승을 거둔 최광수 프로 등 40대 선수들이 상금 상위를 휩쓸 만큼 신인들의 활약이 미약했다. 우리 나이에도 정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쁘기는 하나 골프가 발전하려면 신인들의 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게 류 전무의 시각. 올 시즌 전망에 대한 얘기로 돌아오자 두 사람 모두 다시 표정이 밝아진다. KPGA는 올해 지난해보다 2개 늘어난 18개의 대회를 치를 예정이다. 상금 규모도 80억원이 넘는다. 박삼구 회장이 취임하기 전인 2004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액수. 더불어 미프로골프(PGA)와 유러피언투어(EPGA) 등 일부투어에만 주는 세계랭킹 포인트를 국내 투어에도 적용토록 하기 위해 세계투어연맹 가입도 서두를 예정이다. 그렇게만 되면 자연히 국내 투어도 질적으로 향상될 것이란다. KLPGA도 오는 5월 단일대회 최대 규모 상금으로 치러질 태영배 한국여자오픈(총상금 4억원)을 비롯,10여개의 정규대회와 2부투어, 시니어투어 등 어느때보다 활성화된 한 해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정규대회만 14개를 개최하고 총 상금액은 54억원 정도”라는 김 전무는 “올해는 대회 기간 선수들을 위한 맞춤형 문자 서비스 제공 등 새롭게 시도할 것도 많다.”고 밝혔다. 곽영완기자 kwyoung@seoul.co.kr
  • [부동산플러스] BHP코리아 홍대서 부동산 강의

    부동산 컨설팅사인 BHP코리아(대표 이호규)는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과 부동산컨설팅 실무 지식 탐구 및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산학협동 협약을 맺고 이번 학기부터 부동산개발전공 석사과정에서 부동산컨설팅론을 강의하기로 했다. 강의 내용은 부동산개발 기술·재무·법적 타당성 분석·사례 연구·자금조달 등 선진국형 개발 노하우다. 강사진은 BHP코리아 임원들이 맡는다.
  • [구청장 현장인터뷰] 문병권 중랑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문병권 중랑구청장

    쌀쌀하면서도 화창했던 지난 23일 오후. 서울 중랑구청 뒤 봉화산 근린공원에는 다음달 개장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구슬 땀이 맺혀 있다. 문병권 중랑구청장은 이날 공원 공사현장을 찾았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모습은 눈에 많이 띄었다. 문 구청장과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구청장입니다. 공원에 자주 오세요?” 구청장의 인사에 주민들은 밝은 미소로 답한다. 재작년까지 이 공원에는 천막집과 판잣집 40여가구가 있었다. 문 구청장은 “비가 오면 산의 계곡물이 넘쳐 수해가 날까 늘 걱정했다.”면서 “공기가 좋고 인근 주민 30여만명이 쉬려면 바로 올 수 있는 이 곳을 공원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관내 5개 공원 조성사업 진행중 현재 이 공원을 포함, 관내에는 모두 5개의 공원 조성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망우산 일대에는 피크닉장과 체력단련시설 등을 갖춘 8만여평에 달하는 공원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 4월엔 면목동에 사가정 공원이 생겼다. 그에게 공원을 만드는 이유를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그동안 ‘중랑구’하면 사람들은 망우리 공동묘지나 수해 지역 등 안 좋은 이미지를 떠올렸다.”면서 “중랑구를 다른 구민들이 부러워하는 지역으로 바꾸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년 전 캐나다와 유럽에 출장 갔을 때 공원에서 함께 노는 가족과 동물들을 본 기억이 눈에 선하다.”면서 “구 면적의 43%인 녹지공간을 선진국처럼 공원으로 바꾸면 다른 구민들이 부러워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휴식 공간이 많아야 웰빙 도시가 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공원조성은 욕심처럼 쉽지 않았다. 중랑구 재정자립도는 25개 자치구 가운데 뒤에서 수위를 다툰다. 공원을 조성할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문 구청장은 예산확보를 위해 시청을 자주 찾았다.“예산 관련 과장과 사무관 등을 만나면서 예산 좀 달라고 직접 설득했습니다. 처음에는 중랑구만 잘해 줄 수 없다고 했지만 여러 번 부탁하니 태도가 변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사가정 공원 개장이 가장 보람” 지난해 중랑구에 투입된 시 예산은 1119억원. 취임 전인 2001년 550여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한 간부는 “예산 문제로 직접 시에 가는 구청장은 거의 없다.”면서 “문 구청장은 필요하면 직접 발로 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문 구청장은 재임 기간 동안 가장 보람된 일 가운데 하나로 사가정 공원 개장을 들었다.“개장식 때 한 할머니한테 ‘할아버지랑 산책할 곳이 생겨 좋다.’는 말을 듣고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공원화 사업을 멈추지 않을 뜻을 보였다.“망우리 묘지공원을 꼭 역사테마공원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공동묘지’란 이미지를 없애고 구민 휴식공간을 늘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자체 조경 평가를 하는 한 교수로부터 공원 조성으로 중랑구의 경관이 아름다워지고 있어 올가을 학생들과 함께 방문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며 ‘자랑’을 숨기지 않았다.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50년 경남 합천 ▲학력 육군사관학교 29기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행정학 석사) ▲약력 국무총리실 근무, 서울시청 내무국, 국민운동지원과장, 서울시청 재무국 회계과장, 중랑구 시민국장, 중랑구 부구청장, 영등포구 부구청장, 영등포구 구청장 권한대행, 민선3기 중랑구청장 ▲가족 배정숙씨와 2남 ▲종교 기독교 ▲기호음식 보리밥과 된장찌개 ▲주량 술을 못 마심 ▲좌우명 모든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자 ▲애창곡 사랑의 이름표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남양유업 홍두영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남양유업 홍두영 명예회장家

    기업설명회에 전혀 관심이 없는 회사, 돌다리를 몇 번씩 두들겨보고도 건너지않는 보수적 경영, 창업주 얼굴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회사…. 남양유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자사의 우유와 유제품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기업과 창업주에 대해 더 많이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이 회사의 창업주는 ‘크렘린’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다. 남양유업을 창업한 홍두영(87) 명예회장은 한국 낙농업의 대부로 통한다. 홍 명예회장은 40여년간 한국 낙농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좋은 유제품을 만들기 위한 외길을 걸어왔다. 홍 명예회장은 지난달 2일 타계한 김복용 매일유업 회장과 곧잘 비교된다. 두 기업 창업주는 나이가 비슷하고 이북 출신이라는 점 등 공통점이 많다.‘짠돌이’ 경영도 닮았다. 우유·조제분유·발효유·치즈·음료 등의 제품군도 상당히 겹치면서 ‘모방과 카피’ 논란도 많다. 연 매출액도 8000억원대로 엇비슷하다. 여러면에서 두 회사는 ‘물고 물리는’ 숙명적인 관계다. 남양유업의 대표이사 3명 가운데 한 명인 창업주 홍 명예회장은 국내 최고령 최고경영자(CEO)이다.1919년 1월7일생이다. 남양유업이 창립된 1964년 이후 43년째 대표이사와 사장, 회장, 명예회장 직위를 줄곧 지키고 있다. ●영변 지주의 장남 홍두영 명예회장은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면 서부동에서 홍재영씨와 최점숙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영변에서 손꼽히던 지주여서 어린시절을 유복하게 보냈다. 홍 명예회장은 일제시대인 1944년 일본 와세다 제1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와세다대에 진학, 불어불문학과를 마쳤다. 홍 명예회장은 자신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어릴적 행적이 거의 알려진 게 없다. 일본에서 귀국한 27세의 청년 홍두영은 어수선하던 광복 정국에서 고향 영변의 숭덕여자중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교사 생활을 하던 1947년 5월 같은 영변 출신의 열살 아래인 지송죽(77)씨와 결혼,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김일성 정권이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 엘리트 가정을 내버려 둘 리 없었다. 홍 명예회장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때 가족과 홍선태(작고) 전 남양산업 대표 등 동생을 데리고 월남했다. ●배고픈 아이들 때문에 유업에 손대 홍 명예회장의 첫 사업은 경험 부족 등으로 실패했다. 종전 이듬해인 1954년 부산에서 비료를 수입하는 ‘남양상사’를 일으켰다. 회사가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는 듯했지만 62년에 화폐개혁이란 뜻밖의 복병을 만나 8년만에 모든 재산을 날려버렸다. 일각에서는 당시의 충격이 너무 심해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는’ 소심증과 같은 마음의 병이 생겼다는 말도 한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홍 명예회장은 신문이나 TV를 통해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꺼린다.”며 “경기단체 회장직 제의도 많았지만 다 물리쳤다.”고 말했다. 첫 사업 실패 이후 홍 명예회장의 보수적 경영이 시작됐으며, 큰 아들 홍원식(56) 회장에 대한 경영수업이 다른 기업보다 일찍 시작됐다. 홍 명예회장이 사업 재기를 꾀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분유였다. 비료 수입업에 종사하던 그는 1963년 선진 외국 출장길에서 분유사업을 눈여겨 봐뒀던 것. 분유를 마음껏 먹고 있던 외국 아기의 모습을 본 그에게 한국전쟁 직후 먹을 게 없던 고국의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국으로 돌아온 홍 명예회장은 64년 3월 13일 남양유업을 설립했다. 당시 정부는 ‘보릿고개’를 해결하고 농민들의 소득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낙농사업에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홍 명예회장은 영변의 지주 아들이어서 낙농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였다.1965년 11월 충남 천안에 제1공장을 짓고 자가생산 체제에 들어갔다. ●한 때는 아들, 부인까지 경영에 관여 충남 천안 공장부지가 금광터였기 때문이었을까. 지난 67년 1월10일 출시된 유아용 제조 분유인 남양분유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어 77년에는 유산균 발효유인 남양 요구르트를 개발, 히트 브랜드 대열에 합류시켰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출연료 1억원을 주고 축구선수 차범근을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78년 유업계 최초로 기업을 공개하고 주식을 상장했다. 회사가 커지면서 가족 모두 팔을 걷어붙였다. 장남 홍원식 회장이 회사일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중이던 73년부터 종종 회사에 나와 가업을 도왔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회사에 달려와 입출금 전표를 끊는 등 경리업무를 봤다.74년 기획실 부장을 시작으로 경영수업에 들어갔다.77년 이사,79년 상무,80년 전무,88년 부사장을 거쳐 지난 90년 4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가 2003년 회장으로 물러났다. 그는 90년대에는 불가리스, 아인슈타인우유, 아기사랑秀,E-5, 위풍당당 동충하초 등을 내놓으며 남양유업이 성장가도를 달리게 했다. 회사가 성장 엔진을 필요로 하던 80년 9월 둘째 아들 홍우식(53) 서울광고기획 사장도 남양유업에 합류했다.85년 8월까지 남양유업 과장을 지냈다. 남양유업이 성장가도를 달릴 80년대 초반 큰아들 홍원식 회장과 둘째 아들 홍우식 사장이 모두 힘을 합쳤다. 홍 명예회장의 부인 지송죽씨도 한때 남양유업의 감사로 근무했다. 남양유업이 최근 곧잘 내세우는 ‘친인척 경영 참여 금지’는 그 당시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창업주 홍 명예회장은 당시 90년 4월 회사 최고경영자 자리를 홍원식 회장에게 물려주면서 회사 운영에 관해 두 가지 금기사항을 가르쳤다.‘기업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하지 말 것’과 ‘부동산 투기를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고 전한다. 홍 회장뿐만 아니라 기업인이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사항이다.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홍 회장은 30년 가까이 남양유업에서 근무한 덕분에 누구보다 회사 사정에 밝았다. 홍 회장은 지난 99년 10월 덴마크 왕실로부터 ‘영예로운 메달’을 받았고,2001년 7월 무차입 경영과 축산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제25회 전국경영생산성촉진대회에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43년째 남의 건물을 사옥으로 지난 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위기 당시 대기업마저 자금난에 휘청거릴 때 남양유업은 오히려 20% 이상의 성장을 이뤘다. 대표적인 소매업종으로 불황을 잘 타지 않는 데다 기업 규모보다도 ‘브랜드 파워’가 강한 까닭이다. 게다가 98년 11월 그동안 상업·조흥·신한은행에 남아 있었던 180억원의 은행차입금을 모두 갚았다. 부채 비율을 167%에서 0%로 떨어뜨렸다. 회사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무차입(無借入) 경영의 원조’라고 공식 선언했다. 현재는 4700억여원을 확보,1만%의 사내유보율을 자랑한다. 이로 인해 상당한 금융소득도 올리고 있다. 이같은 남양유업의 성공은 창업주 홍 명예회장의 독특한 철학인 ‘4무(無)’경영에 바탕을 두고 있다.4무는 돈을 빌려쓰지 않고(무차입), 노사분규가 없으며(무분규), 친인척이 개입하지 않으며(무파벌), 자기 사옥이 없는(무사옥) 경영을 말한다. 인사에서의 투명성도 줄곧 강조된다. 오너의 친인척은 회사에 발붙이지 못하며, 파벌 형성 또한 용납되지 않는다. 홍보와 마케팅을 총괄하는 성장경 상무는 “남양유업에는 자연스럽게 인사청탁을 하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사옥도 없다.43년째 남의 건물에 세들어 살고 있다. 현재는 서울 중구 남대문 대일빌딩을 빌려쓰고 있다.1000억원이 넘는 시설투자를 하고 종업원이 3000명이 넘는 기업이지만 임원은 단 9명에 불과하다.43년간 단 한차례도 노사분규가 발생하지 않았다. 남양유업은 목장주들에게는 지독할 정도로 품질검사가 깐깐한 회사다. 그러나 원유값 만큼은 현금으로 결제하고, 결제기일도 정확하게 지키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목장주들이 거래하기를 가장 선호하는 회사로 통한다. 제품의 다양화는 추진하지만 사업의 다각화는 철저하게 배격하고 있다. 우유 캔을 만드는 회사나 낙농가를 위한 사료공장 등을 세우자는 내부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전공을 벗어나는 사업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게 지금까지의 방침이다. 식품 분야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는 절대로 한 눈 팔지 않겠다는 창업주 홍 회장의 경영 철학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홍 회장은 지난 2003년 11월 대표이사 사장에서 물러나고 최대주주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홍 명예회장은 박건호 대표이사 부사장, 김승수 대표이사 전무 ‘3두마차’ 경영체제를 확립해 오고 있다. 홍 회장은 그러나 경영에 무관심하지는 않다. 회사에 사무실을 두고 거의 매일 출근을 하면서 중요 사항을 직접 결정할 만큼 경영에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명예회장도 가끔씩 회사에 들르곤 한다. 남양유업과 거래하는 회사의 한 관계자는 “남양유업이 1억원 이상의 경비를 지출할 때는 오너가 반드시 결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에 따라 남양유업의 의사 결정이 경쟁 기업에 비해 많이 늦다.”고 말했다. 홍 명예회장은 부인 지송죽씨와의 사이에서 3남2녀를 두고 있다. 하지만 회사 직제상 경영에 참여하는 이는 창업주 홍 명예회장 자신뿐이다. 큰아들 홍원식 회장은 최대 주주로 남아있다. 자본금 44억 3300여만원인 남양유업의 지난해의 정확한 매출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2004년의 매출은 7729억 8400만원에 당기순익은 427억 9400만원에 이른다. 홍원식 회장은 19.44%(13만 9964주)의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다. 홍 명예회장은 7.63%(5만 4907주)를, 홍원식 회장의 부인 이운경(54)씨는 0.89%(6400주)를 보유하고 있다. 둘째 아들 홍우식 사장이 0.63%(4568주), 셋째 아들 홍명식(46) 사까나야 사장은 0.4%(2908주)씩 갖고 있다. 홍두영 명예회장의 처남댁 김정선씨가 이색적으로 0.16%(1168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막내딸 홍영혜(44)씨는 지난해 초 장내에서 2612주를 매도, 지분율이 0.45%(3208주)에서 0.08%(587주)로 낮아진 것이 눈에 띈다. 특히 미국 투자회사 안홀드 앤드 에스 블라이흐뢰더가 15.90%(11만 4448주)를 보유하는 등 외국인들이 눈독을 들이는 회사다.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은 23.74%에 이른다. 남양유업의 주식 거래가 극히 부진해 한때 상장폐지 위기까지 내몰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소액주주를 무시하며 경영권 방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내년도 매출 목표는 1조원으로 잡고 있다. ●평범한 집안과 결혼 창업주 홍 명예회장의 자녀 혼맥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큰 아들 홍원식 회장은 지난 76년 고려해운 창업주 이학철(작고) 회장의 장녀 이운경(54)씨와 화촉을 밝혔던 것이 눈에 띌 정도다. 홍 회장은 이동찬(84) 코오롱그룹 회장 가문과도 연결된다. 이동찬 회장의 셋째딸 이혜숙(54)씨가 고려해운 이 회장의 장남인 이동혁(59) 고려해운 회장과 결혼한 까닭이다. 홍원식 회장은 부인 이운경씨와의 사이에서 진석(30), 범석(27)씨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이씨는 사회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통한 남양유업의 3세 승계가 어떻게 이어질지도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004년 말 홍 회장은 어머니 지송죽 전 감사로부터 주식 2만 108주(2.79%)를 모두 물려받았다. 이를 두고 형제간에 사이가 소원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았다. 둘째 아들 홍우식씨는 남양유업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광고회사 서울광고기획 사장을 맡고 있다. 홍 사장은 지난 71년 서울고교와 76년 연세대를 거쳐 83년 미국 산타클라라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해군 중위 출신인 홍 사장은 지난 79년 8월 한국IBM을 거쳐 지난 80년 9월부터 85년 8월까지 남양유업 과장을 지냈다. 남양유업내에 있던 광고 부문을 들고나와 부친의 우산에서 독립했다. 홍 사장은 지난 85년 8월 서울광고기획의 상무,88년 전무,90년 부사장을 거쳐 93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지난 1980년 설립된 서울광고기획은 2004년 총 취급고가 626억원으로 업계 17위였다. 주요 광고주로는 남양유업을 비롯해 태영·보령제약·보령메디앙스·BYC, 씨엠에스 천재교육·하선정종합식품 등이 있다.2005년도의 매출 목표는 900억원이지만 정확한 매출은 알려지지 않았다. 홍 사장은 지난 81년 5월 최수진(4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연년생인 자녀 인석(24), 서현(23)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지난 72년 이름을 춘애에서 수진으로 바꾼 최씨 역시 별다른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녀 영서(52)씨는 이교현(57)씨와 결혼, 수경·수영(25) 쌍둥이와 정호(18)군을 두고 있다. 홍 명예회장의 큰사위 이교현씨 가족은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셋째 아들 홍명식(46) 사까나야 사장은 연봉이 1억원을 웃도는 외환 딜러직을 떠나 음식점 8개를 운영하고 있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그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 2층에 회전초밥 전문점 사까나야 등 6개의 지점을 두고 있으며, 한정식집 돈후이 등을 운영하는 외식업 사장이다. 홍 사장의 이력은 다채롭다. 용산고와 연세대를 거쳐 지난 87년 미시간대에서 MBA를 땄다.1987년부터 JP모건체이스 은행 등에서 12년동안 근무한 금융통.99년 인터넷서점 ‘예스24’를 공동 창업해 한세실업에 매각되기 전인 2003년 5월까지 부사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6개 사까나야와 돈후이 등의 전체 매출액이 100억원대에 이르는 등 외식재벌 반열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외식업종으로 변경한 홍 사장은 지난해 초 인터넷 의류 쇼핑몰인 블루피치를 운영하는 김현정(40)씨와 결혼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김씨는 고려대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사장은 전처에게서 효정·희정(19) 등 일란성 쌍둥이 자녀를 두고 있다. 홍 사장은 쌍둥이 자녀 외에도 동근(13)군을 두고 있다. 이들은 모두 싱가포르에서 공부하고 있다. 막내딸 홍영혜씨(44)는 지난 90년 영국 웨일스개발청의 황재필(44) 한국사무소장과 결혼, 하나(17)양과 승현(11)군을 두고 있다. 영혜씨는 경희대 작곡과를 졸업한 재원. 서울 양정고를 마치고 연세대를 다니다가 미국 조지아주립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황씨는 지난 86년 주한 영국대사관 부상무관을 거쳐 89년부터 영국 웨일스개발청 한국사무소장을 맡고 있다. 황씨의 부친은 헌병차감을 지냈던 황태섭(작고)씨다. 황씨는 86년 연세대 어학당에서 홍씨와 얼굴을 익혔다. 이들은 홍씨의 올케 소개로 사귀다가 이듬해 결혼에 골인했다. chuli@seoul.co.kr ■ 우량아 선발대회 아시나요 남양의 대표적인 성장 엔진으로는 1971년 시작된 ‘전국우량아 선발대회’를 들 수 있다. 자라나는 2세의 건강과 체격 향상을 일깨워주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사회 공헌 행사였다. 첫 대회에는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참가했고 아기와 엄마 등 수상자를 청와대에 초청, 오찬을 할 정도로 관심이 깊었다. 변변한 행사나 이벤트가 없던 당시로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큰 행사였으며,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당시 행사를 기억하고 있다. 우량아 선발대회는 창업주 홍두영 명예회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아기 엄마라면 누구나 자기 아기를 우량아로 키우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전국에서 토실토실한 아기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들었다.24개월 미만의 아기들이 지방 예선을 거쳐 결선을 겨뤘다. 제1회 전국 최우량아는 춘천에 사는 한영만 아기(69년 11월생)로 발육상황은 키 85㎝, 몸무게 13㎏, 머리둘레 50㎝, 생후 11개월부터 걷기 시작했으며 모유와 우유를 함께 먹였고 과일즙, 달걀 노른자 반숙 등을 간식으로 먹였다고 한다. 튼튼하고 건강한 아기의 대명사인 우량아 선발대회는 84년 제13회 대회까지 계속됐다. 이후 92년부터 임신육아교실로 바꿔 진행되고 있다.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 새내기 주부들에게 올바른 출산 정보 전달에 힘쓰고 있다. 연간 1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전국에서 250회 이상 연다. 특히 산부인과·소아과·피부과·한방 분야의 권위있는 전문의들이 나와 임산부들에게 이해하기 쉽고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숙제를 풀기 위한 남양의 또 다른 사회 공헌활동이다.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성균관대서 박사학위 받아

    김교식(54) 재정경제부 홍보관리관이 24일 성균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재정학회장을 지낸 김준영 성균관대 교수의 지도를 받아 ‘공적자금의 거시경제적 성과분석과 상환 대책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서다. 김 홍보관리관은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금융기관 등에 지원한 공적자금에 관심을 가졌으며,1999년 9월 성균관대 대학원에 입학한 뒤 논문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적자금 159조원 가운데 회수 불가능한 69조원은 정부가 재정에서 49조원, 금융기관이 20조원을 각각 부담토록 했다.”면서 “하지만 외환위기의 원인을 제공하고 공적자금의 수혜를 받은 금융기관이 더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에 논문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상환능력이 큰 금융기관이 매년 영업이익의 0.5%를 적립, 회수 불가능한 공적자금의 상환에 써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김 홍보관리관은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벨기에에 있는 미 보스턴대학원 분교에서 각각 석사 학위를 받았다.행시 23회로 80년 5월 옛 재무부에 발을 디딘 뒤 재경부 관세제도과장과 기획예산담당관,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등을 지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그림과 시가 있는 아침] 부석사 봄밤/고두현

    [그림과 시가 있는 아침] 부석사 봄밤/고두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가만히 손 대고 눈 감다가 일천이백 년 전 석등이 저 혼자 타오르는 모습 보았습니다 하필 여기까지 와서 실낱같은 빛 한줄기 약간 비켜선 채 제 몸 사르는 것이 그토록 오래 불씨 보듬고 바위 속 비추던 석등 잎 다 떨구고 대궁만 남은 당신의 자세였다니요.
  • 아주대 12대 총장 서문호씨

    아주대는 24일 교학부총장인 서문호 교수를 12대 총장으로 선임했다. 서 총장선임자는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76년부터 아주대 교수로 재직했다. 임기는 4년.
  • [의정 뉴스]

    ●이재창 의장 행정학 석사 학위 받아 주경야독을 통해 입지를 닦은 이재창(57) 강남구의회 의장이 지난 17일 동국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의장은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농촌 출신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졸업했다. 기능을 바탕으로 태양트레이주식회사를 창업하는 등 기업인으로서도 입지를 다졌다.●지방분권 강화 결의대회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회장 이재창)은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COEX 1층 그랜드볼룸에서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 234명이 모여 지방분권강화결의대회와 2006년 정기총회를 열었다. 협의회는 이날 정부가 확정 발표한 지방분권 아젠다가 로드맵대로 추진될 것을 요구하고 공직선거법 개정 및 행정체재 개편을 반대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행사에 앞서 오전에는 박응격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장이 연사로 나와 ‘국가 생존 전략으로서의 지방자치’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 기억을 둘러 싼 투쟁으로서의 역사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E.H. 카)는 역사에게 너무 태평스런 정의일 지 모른다. 홀로코스트를 부인했다는 혐의로 역사학자를 처벌한 유럽이 정작 마호메트 풍자는 표현의 자유라 부른다. 멀리 갈 것 없이 중국은 동북공정에, 일본은 역사왜곡에 힘쏟더니 한국에는 뉴라이트 바람이 분다. 그래서 ‘대화’보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으로서의 역사가 더 설득력있을 법하다. 봄을 앞두고 출간되는 학술지들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다.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가 낸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는 ‘해방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라는, 다소 포괄적인 기획을 내놨다. 식민지배와 해방, 냉전, 분단, 전쟁을 겪은 남북이 지난 60년간 어떤 길을 걸어왔고, 또 형편이 낫다는 남이 어떻게 북을 껴안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살핀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권두논문을 비롯, 진보성향 학자가 쓴 20편의 논문이 실렸다. 계간지 ‘황해문화’ 역시 ‘대한민국의 상처와 희망’을 주제로 한국인 원폭피해, 친일파 문제, 군 의문사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동성애와 황우석사태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고 이기백 서울대 교수가 실증주의 사학을 내걸고 창간한 반년간지 ‘한국사시민강좌’는 반대편에 서 있다.8편의 관련 논문을 실은 38집의 특집주제는 ‘대한민국 건국사의 새로운 이해’.‘건국자’로서의 이승만을 조명해보겠다는, 뉴라이트적인 설정이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영어 공부가 제일 어려웠어요”

    희수(喜壽)의 만학도가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인공은 22일 건국대 대학원 벤처전문기술학과를 졸업하고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는 김진태(77)씨. 김씨는 1964년 영남대 행정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경찰에 입문해 79년 경기도 이천경찰서장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직했다. 이후 대구 평화시장에서 점포 임대 및 경영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이 분야의 이론 공부를 체계적으로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김씨는 2003년 건국대 박사과정 문을 두드렸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 저하와 익숙지 않은 영어 때문에 박사과정을 밟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석사 시절부터 꾸준히 공부한다고 했지만 제일 어려운 것이 영어였어요. 손자뻘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교수님 덕분에 나이와 체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김씨는 뼈를 깎는 노력 끝에 3년 만에 ‘경영구조의 리모델링을 통한 중소규모 마켓의 활성화 방안 연구’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할 수 있었다. 김씨는 논문을 통해 “당국은 현실 여건에 부합하도록 중소규모 마켓 육성 종합대책과 계획을 수립해 시설환경의 현대화, 선진 경영기법의 도입 유도, 특성화한 시장 개발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숙명의 새 천년을 위해 헌신할 것”

    국내 대학 역사상 첫 4선 총장이 나왔다. 학교법인 숙명학원(이사장 이용태)은 20일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을 제 16대 총장으로 다시 선출했다.1994년 13대 총장 취임 이후 선거를 통해 네 차례 연임하는 국내 첫 총장이다. 이 총장은 오는 3월19일부터 제16대 총장으로 일하게 된다. 임기는 4년이나 정년퇴직 시한인 2008년 8월31일까지 일하게 된다. 앞서 전체 교수회의는 지난 8일 교수 직선투표로 이 총장을 포함한 2명의 총장 후보를 선출했다. 이 총장 취임 이후 숙대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지난 10여년간 캠퍼스 부지는 2배, 교사 연면적은 3배 가까이 늘었다. 재학생수도 1만 2750명(95년 당시 7917명), 전임 교원수는 523명(95년 당시 211명)으로 증가했다. 발전기금 모금액도 927억원에 이르는 등 100년의 역사 중 가장 급속한 발전을 이뤄냈고 다음 세기를 위한 든든한 초석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총장은 “창학 100주년을 맞는 중요한 시기에 다시 한번 총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은 교직원과 재학생, 동문의 신뢰와 지원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숙명의 새 천년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총장 선출 방식이 ‘교황식 선출’로 3년 이상 재직한 교수는 모두 선출 대상인데다 사전 선거 운동이 불가능해 연임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임기간 중 가장 달라진 변화에 대해 “숙대 하면 모두 조용하고 정숙한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글로벌 리더십 육성을 특성화하면서 학생들이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고 교풍이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분위기로 변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1965년 숙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캔자스 대학과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아 1976년부터 숙대 교수로 재직해왔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與 사무총장 염동연 대변인 우상호 의장비서실장 박명광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20일 당 사무총장에 염동연 의원을, 대변인에 우상호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의장 비서실장에는 박명광 의원을 임명했다. 정 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에서 이같은 당직 인선안을 보고했다고 우 대변인이 전했다. ●염동연 사무총장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를 총지휘했던 ‘금강캠프’ 사무총장 출신의 초선 의원.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해 17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지난해 4·2전대에서 상임중앙위원에 선출됐지만 4·30재·보선 패배 후 사퇴했다. 부인 김희선씨와 1남1녀. ▲전남 보성(60) ▲미 퍼시픽 웨스턴대 석사 ▲수자원공사 감사 ▲노무현 후보 정무특보 ▲우리당 상임중앙위원 ●우상호 대변인 19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끈 초선의원. 연대 총학생회장이던 1987년 6월 항쟁 시위에서 숨진 이한열씨를 위한 장례식 집행위원장을 맡았다.16대 총선 때 서울 서대문갑에서 고배를 마신 뒤 17대에 당선됐다. 정세균·유재건 전 임시의장의 비서실장을 역임. 부인 이현주(39)씨와 2남1녀. ▲강원도 철원(44) ▲연세대 국문과 ▲이한열추모사업회 사무국장 ▲국회 문화관광위 열린우리당 간사 ●박명광 비서실장 2·18전당대회에서 정동영 의장 당선에 앞장섰던 초선 의원. 정 의장의 ‘싱크탱크’인 나라비전연구소 이사장. 학계 출신으로 초대 열린정책연구원 원장을 역임. 폭넓은 인간관계에다 친화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인 현창란(61)씨와 1녀. ▲충남 홍성(61) ▲경희대 ▲산토토마스대학원 경제학박사 ▲경희대 부총장 ▲경실련 국제연대운영위원장 ▲우리당 상임고문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아이들 공부친구 해주다 박사됐네요”

    자녀들의 공부 친구를 해주다 대학에 들어가 박사 학위까지 따낸 주부가 화제를 낳고 있다. 주인공은 14일 인하대학교에서 ‘저고리 변천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태옥(55·여)씨. 이씨는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1981년 교사인 남편(62)과 당시 일곱살, 다섯살이던 두 아들과 함께 서울 강서구 개화동으로 이사하면서 이씨의 공부가 시작됐다. 주변에 변변한 학원조차 없는 시골에 가까운 교육환경 때문에 아이들의 학교 공부 보충을 위해서 가정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이 옆에서 가계부를 쓰는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게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막상 공부를 해보니 재미도 있고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가 직접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한번 마음먹자 숨어 있던 이씨의 향학열이 불타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방송통신대 가정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졸업한 뒤엔 외가 쪽에서 물려받은 재능을 살려 대학원(건국대 의류학과)에 들어가 한국 전통 복식(服飾)을 공부했다.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한복집을 열었다. 침선(針線) 장인을 찾아 다니며 공부한 뒤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등에서 13차례나 수상했고 한복침선 관련 특허도 6개나 냈다. 배움을 향한 이씨의 열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손재주 못지않게 깊이 있는 지식에 목 말랐기 때문이다. 인하대 박사 과정에 들어간 지 4년만에 결국 ‘조선왕조 말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우리나라 저고리에 대한 실증적 변천’이란 논문으로 꿈에 그리던 박사학위를 받았다.연합뉴스
  • 국내 여승무원 첫 관광학박사 탄생

    현직 여승무원이 주경야독 10년만에 관광학 박사가 됐다. 지난 14일 경희대 호텔관광학과에서 여승무원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 선임 사무장(차장급) 이향정(36)씨. 이씨는 회사 내에서 알아주는 ‘또순이’다.1989년 인하공전 항공운항과를 나와 대한항공에 입사한 뒤 객실승무원으로 일해 온 이씨는 남보다 승진도 빨라 현재 국제선 팀장을 맡고 있다. 그가 다시 손에 책을 든 것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도전의식 때문이었다. 고교시절 몸이 안좋아 치료를 받느라 학교 공부에 소홀했던 것도 늘 마음 속에 빚으로 남아 있었다. “승무원이 돼 전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니 관광이라는 학문을 공부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노력하지 않으면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막상 공부를 다시 시작한 뒤에는 고난의 연속이었다.“10시간 이상 장거리 비행을 다녀와서 유니폼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곧바로 학교로 달려가 수업을 듣는 일도 많았지요.” 이씨는 휴가를 수업에 맞춰 석·박사 과정 수업에 90% 이상 출석했다.2004년 박사과정 2학기 때는 하루에 수업을 몰아 신청해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2시간 꼬박 수업을 듣기도 했다. 스스로 ‘독종’ 기질이 있다고 밝힌 이씨는 석사 때 성적우수 장학금을 2차례 받았고 최우등으로 석사를 마쳤다. 박사과정 때도 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다.이씨는 미혼이다.“승무원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연애는 꿈도 못 꾸었어요. 집에서는 결혼도 안하고 무슨 공부냐고 성화가 심했지만 그만큼 공부가 좋았어요. 이제는 연애도 하고 싶어요.”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산그룹-류진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산그룹-류진 회장家

    ‘풍산’하면 어떤 회사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소비재를 만들지 않는 회사인 까닭이다. 하지만 풍산은 이미 생활속에 깊이 스며있다. 누구나 사용하는 동전에 무늬를 넣기 이전 상태인 소전(素錢)을 생산한다. 그래서 ‘돈을 만드는 회사’라고 하면 ‘들어봤다.’는 사람이 많다. 군대 갔다온 남자들은 ‘총알 만드는 회사’로 알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방위산업체라고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이런 것으로 풍산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반도체 칩에 전기를 공급하고 이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리드프레임 등 기초소재를 생산하는 등 첨단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이 모든 것을 꿰뚫는 것은 구리 합금기술이다. ●한 손엔 돈, 다른 손에 총알을 2세 경영인 류진(48) 회장이 이끄는 풍산은 ‘동전의 왕국’으로 불린다. 지난 1970년 4월부터 한국조폐공사로부터 소전 생산업체로 지정된 풍산의 기술력은 세계적이다. 오는 2008년까지 호주에 1억달러어치의 소전을 공급하기로 최근 계약을 맺었다. 유럽연합(EU) 동전의 소전도 공급하고 있다. 풍산의 소전은 세계 시장의 5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73년 타이완 수출을 시작으로 세계 60여개국에서 30억여명이 풍산의 소전으로 만든 동전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생산했던 소전을 이어면 지구를 40바퀴 돌 수 있는 분량이다. 소전은 구리를 기본으로 한다. 기원전 6000년경부터 사용해왔던 케케묵은 소재다. 하지만 동에 니켈 등을 적당히 합금만 하면 되는 그렇고 그런 굴뚝산업이 아니다. 까다로운 제조기술이 요구되는 첨단산업이다.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 73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방위산업에 진출했다. 소구경 총탄뿐만 아니라 포탄까지 국군이 쓰는 탄약 국산화를 시작했다. 이후 모든 탄약을 국산화했다. 수입대체 효과를 매우 높였다. 지능화와 정밀화 등을 통한 첨단 탄약 개발에도 적극적인 국내 대표적인 방위산업체로 성장했다. 창업자 류찬우(1923∼1999) 회장이 ‘방위산업의 대부’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풍산의 출발은 미미했다. 눈에 띄지도 않았다. 풍산은 지난 1968년 10월 창업주 류 회장이 일본에서 번 1000만달러로 출발한 신동(伸銅·구리가공산업)업체다. 창업주 류회장은 기업을 일으키지만 돈을 벌기보다도 당시 허약했던 국가 산업발전에 힘을 쏟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비철금속소재 가운데서도 구리를 골랐다. 현대문명에서 구리가 들어가지 않는 제품은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창업 다음해인 1969년 부평공장 준공과 함께 정부의 5대 핵심업체로 지정되면서 사업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73년 경북 안강공장을 준공하면서 방위산업을 통한 자주국방의 의지를 실현했다. 방위산업 진출에는 조선시대의 명재상인 그의 조상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징비록(懲毖錄·국보 제132호)을 읽고 유비무한 정신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에는 온산신동공장을 세워 한국을 세계적인 신동산업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아울러 92년부터 미국 현지공장,2000년 12월 태국 현지법인을 가동하면서 풍산은 연산 46만 5000t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다국적 신동기업인 KM유로파 메탈에 이어 세계2위이다. 쉽게 설명하면 비철금속에서 풍산의 위상은 철강에서 포스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첨단업종으로 변신중 구리가공산업이란 한 우물을 파던 풍산은 지난 79년 서울 퇴계로 극동빌딩에 세들어 사무실을 마련한 뒤 지금까지 본사로 사용하고 있다. 방위산업체인 까닭에 군관련 인맥 네트워크가 해외까지 탄탄하다. 풍산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지난 97년부터 2세 류진 회장 체제가 구축되면서 풍산은 기업변신을 꾀하고 있다. 류 회장은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는가 하면 첨단 통신사업 등에도 조금씩 발을 담그고 있다. 이문원 풍산 사장은 “정보기술(IT)과 자동차·가전 등 전기가 통하는 곳은 어디나 동 압연재가 필요하다.”며 주력인 신동산업을 통한 사업 다각화 가능성을 강조했다. 현재 풍산그룹의 계열사는 핵심기업인 ㈜풍산을 중심으로, 풍산마크로텍, 풍산산업 등 16개(해외법인 포함)에 이르고 있다. 특히 류 회장이 경영을 맡은 이후 일본, 미국, 상하이 등지에 법인을 설립했다. 풍산이 안고 있는 과제 중 하나는 점차 줄어드는 방위산업을 첨단산업에 어떻게 접목시켜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이런 고민의 중심에 선 류 회장은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타개하는 것과 신사업 진출을 통해 기업변신을 꾀하는 두 가지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핵심사업인 동, 스테인리스, 티타늄 분야에서 신기술, 신제품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 새로운 첨단소재산업 분야로 진출할 도모하고 있다. 또 방위산업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밀 지능탄 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의 탄약 전문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이와 함께 항공기와 유도무기에 필수적인 가속도계, 속도 및 고도측정센서 등 정밀 센서류와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등 정밀산업분야에서도 영역을 확대하는 등 첨단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류 창업주의 4남매 가운데 막내인 류 회장은 82년에 풍산에 입사한 지 15년 만인 97년 풍산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지난 2000년 4월 회장에 올랐다. 일본에서 아메리칸 고교를 거쳐 서울대 영문학과를 마쳤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수료한 류 회장의 영어 구사력은 재계의 누구 못지않게 훌륭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동전의 제왕’ 류 회장은 미국통 류 회장은 ‘미국통’이다. 김대중 정권 이후 대통령의 방미에 단골로 수행하는 경제인 가운데 한사람이다. 특히 지난 2003년 초 출범한 노무현 정부의 대미외교와 관련해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는 그해 4월 W 부시 대통령의 부친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국내에 초청하는 일을 맡았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은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의 전초전 성격이 강했기에 큰 관심을 모았다. 공식적으로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은 전경련 초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경련 부회장인 류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회장은 7월28일 전경련 주최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환송 만찬의 사회를 보는 등 단순히 경제인 차원을 넘어서 민간외교 분야에서 큰 활약을 보였다. 앞서 지난 2002년 12월 국내에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고로 인해 촛불시위가 연일 이어질 당시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과 전화를 한 것도 류 회장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후문도 있다. 이런데서 보듯 류 회장은 부시 공화당 행정부 인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지난 92년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풍산의 미국법인 PMX인더스트리의 공장 준공식에서 바버라 부시 여사가 기념 테이프를 자르면서 직접적인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풍산이 방위산업체라 일찍부터 대미관계에 공을 들였고, 미국의 거대 방위산업체 인맥은 물론 정계 인맥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류 회장은 일년 중 반 이상은 미국 등 해외에 머물며 사업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활약에도 국내에는 풍산이나 류 회장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류 회장이 매우 겸소한 성품이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것. 유교적 가풍이 심한 집안에서 차남으로 가업을 이어받은 부담도 한 몫하고 있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족보상 명문가의 후손인 풍산의 류진가는 재계의 혼맥에서도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풍산 류씨 서애종파의 류 회장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13세손이다. 바로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류씨 가문의 후예다. 류 창업주는 회사 이름을 풍산 류씨인 자신의 본관을 따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류 창업주는 병산교육재단을 세워 고향인 풍산에 풍산중·고등학교를 세웠다. 이 재단에 서애가 후학을 양성했던 병산서원과 그 일대 땅을 기증하기도 했다. 류 회장이 지난 99년 11월 숙환으로 별세한 뒤 풍산그룹의 경영권은 차남 류진 회장으로 이어졌다. 류 회장은 풍산그룹 계열의 ㈜풍산과 풍산마이크로텍 등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풍산의 공익법인인 병산교육재단과 93년 설립된 학록장학재단(학록은 류 창업자의 호)와 서애기념사업회의 이사장으로 명실상부하게 풍산가의 대표자 역할을 하고있다. ●대통령가에 닿았던 화려한 혼맥 류 창업주는 부인 배준영(79) 여사와의 사이에서 2남2녀를 두었다. 배씨는 한국여자테니스연맹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1969년 풍산의 첫 공장인 부평공장을 지을 당시 배 여사는 동대문시장에서 장을 봐 부평 공장의 종업원들의 음식 뒷바라지를 할 정도로 창업고생이 많았던 것으로 전한다. 이문원 사장은 “모든 직원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정도로 온화한 성품”이라고 치켜세웠다. 장남이자 류 회장의 형 류청(57)씨는 풍산의 미국 현지법인 PMX인더스트리 사장을 지냈다. 지난 198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인 박근령(53·당시 이름 박서영)육영재단 이사장과 결혼해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대통령 딸과의 결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1년도 못돼 파경을 맞아 더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류청씨는 미국을 오가며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배 여사는 여전히 박씨를 “큰 며느리”로 부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 회장의 큰 누이인 류지(54)씨는 서울 강남에서, 작은 누이 류미(52)씨는 미국 LA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진 회장은 노신영(77·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전 국무총리의 딸과 혼인했다. 류 회장의 부인인 노혜경(47)씨는 노 전 총리의 딸이다. 노씨는 미국 스탠포퍼드 법대 출신에 두 개의 석사학위와 한 개의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들 부부는 성왜(17)양과 성곤(14)군을 두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풍산의 류진가는 노 전 총리와의 통혼을 통해서 재계 혼맥의 중심부에 진입하게 됐다. 노 전 총리의 장남 노경수(53)서울대 교수는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작고)의 딸 숙영(47)씨와 결혼했다. 노 교수는 정몽규(44)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매형이 된다. 류 회장은 노신영가를 통해 현대가와 순환혼맥을 이룬다. 노 전 총리의 둘째아들 노철수(51)씨는 P.Wian&Associate 대표이사 사장. 그의 부인은 홍진기 전 내무장관의 막내 딸인 홍라영(46)씨로 삼성그룹 비서실을 거쳐 레오버넷 코리아 사장을 지내고 삼성리움미술관 부관장이다. 이건희 삼성회장의 부인 홍라희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로써 풍산의 류진가는 이건희 삼성 회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과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노 전 총리 셋째아들 노동수(48)는 고려서적 사장을 맡고 있다. chuli@seoul.co.kr ■ ’동전 왕국’ 일군 숨은 일꾼들 신동(구리가공산업)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오늘의 풍산은 창업주 류찬우 회장이나 2세 경영인 류진 회장 못지않게 숨은 공로자들이 많다. 풍산은 대표적으로 정훈보(68) 전 사장, 류민하(78) 전 부사장, 이진우(72) 전 부사장, 김사철(70) 전 감사, 류인한(79) 전 부사장 등을 꼽고 있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농협 중앙회 금융계획과장을 지냈던 정 전사장은 지난 78년 풍산의 전신인 풍산금속공업에 이사로 입사했다. 타고난 기획통으로 사세 확장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지난 80년대 초 중동건설 붐이 일어났을 당시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플랜트를 수출할 때 백동관을 자체 기술로 개발, 공급함으로써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97년 풍산 부회장을 거쳐 99년 한국철도차량 사장을 지냈다.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거쳐 농협중앙회 자금부장을 지낸 류민하 전 부사장은 지난 73년 풍산금속공업의 상무로 입사, 류 창업주와 함께 초창기의 회사 기틀을 다졌다. 회사가 해마다 2배씩 성장을 거듭할 70∼80년대 자금과 인사 등 회사의 안살림을 두루 맡았다.80년 부사장을 거쳐 90년 감사를 지냈다. 풍산의 후배들은 학자풍인 그를 ‘선비형 매니저’로 기억하고 있다. 역시 고려대를 거쳐 농협 중앙회 출신인 이진우 전 부사장은 지난 75년 회사에 합류했다. 그는 80년대 초 회사의 경영정보관리시스템(MIS)을 도입, 당시로서는 국내의 어느 회사보다 빨리 선진적인 경영관리시스템을 받아들였다. 특히 90년 노사대립이 한창일 때 헌신적인 대화를 통해 노사관계 증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후 정부로부터 노사협력우수기업으로 인정도 받았다. 지난 97년 중앙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서울대 상대 출신의 김사철 전 감사의 경우 뛰어난 분석력과 판단력을 가진 타고난 최고재무관리자(CFO)이다. 세무사·공인회계사·공인감정사 자격을 갖춘 그는 재무부·국세청·총무처 등 정부의 여러 부처를 거쳐 76년 풍산금속에 이사로 들어왔다. 재무업무의 기본 프로세스를 조성했으며 시설·자재·감사 등에서 회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정부로부터 녹조근정훈장도 수상했다. 한양대 공대 출신의 류인한 부사장은 세계 최상급의 품질과 능력을 자랑하는 동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계설비와 생산프로세스의 토대를 구축한 산증인으로 전통적인 엔지니어 출신의 임원이다. 지난 73년 부평공장 공무부장으로 입사, 동제품 생산기술과 공정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78년 온산공장 건설본부장으로 온산공장 건설의 총책임을 맡았으며 온산공장장을 지냈다. 풍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토대가 됐다. 88년 온산공장 제2공장을 준공해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연간 25만t 생산능력의 신동공장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온산공장 건설경험을 바탕으로 90년대 이후 풍산의 세계화 전략에 따라 건설한 미국 현지법인 PMX사와 태국 공장건설에도 공헌했다. chuli@seoul.co.kr ■ “선조에 누 되는 일 하지 마라” 풍산의 창업주 류찬우 회장은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임진왜란을 넘긴 서애 류성룡의 12세손이다.“선조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게 류 창업주의 확고한 인생관이다. 이런 정신이 2세 경영인 류진 회장에게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지난 68년 순수민족자본에 의해 창업, 세계적인 신동기업으로 발전한 풍산은 전통 문화의 계승에 남다르다. 풍산이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이라는 방위산업에 참여하게 된 동기이다. 서애의 가르침이자 영향이다. 풍산의 기틀이 잡힌 지난 76년 12월 류 창업주를 중심으로 서애의 후손들과 학자들이 ‘서애선생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서애가 징비록에서 남긴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의 뜻을 계승하고 역사왜곡을 바로 잡는다는 뜻에서 기념사업회를 세웠다. 또 류 창업자는 지난 80년 4월 사재를 출연, 육군사관학교에 서애관이라는 체육관을 기증했다. 지난 일을 되살려 앞날을 대비하자는 서애의 가르침을 호국 간성에게 일깨우고자 건립된 상무의 도장이다. 지난 91년 5월 서애의 정치·경제사상과 애국애민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서애전서 전4권을 출간했다. 일본 도쿄대 종합도서관,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소, 러시아 과학대 동방연구소, 중국 베이징대 등 30여개국 50여개 대학과 연구소 등에 흩어져 있었다. 약 10년 동안의 편찬사업 끝에 서애의 저술과 관계자료를 수집, 망라한 것으로 그동안 흩어져 있던 자료를 규합해 완성한데 의미가 깊다. 이로부터 10년 뒤인 2001년 7월 서애전서 국역본을 발행, 일반인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새롭게 했다. 특히 지난 2003년 임진왜란의 극복 경험과 교훈을 적은 ‘징비록(The Book of Corrections)’ 영역본을 출간, 세계화시켰다. 호남대 최병현 교수가 6년에 걸쳐 번역한 것으로,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출간됐다. 기념사업회는 특히 내년 서애 서거 4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 범유림기념사업회에서 당파를 초월해 서애 서거 400주년 기념행사를 계획중이다.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이혼남녀 돈 최고 고민

    이혼 뒤 남성은 사회적인 관계로, 여성은 가족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손정연씨가 17일 발표한 석사학위논문 ‘결혼의 질, 이혼장애 요인, 일상생활 스트레스와 이혼 후 적응’에서 서울, 경기도에 사는 최근 5년 이내 이혼한 남녀 각각 147명과 208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남성은 이혼 뒤 사회적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 지수가 2.63으로 여성(2.43)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 정도는 1∼4점 척도로 측정됐으며,4점에 가까울수록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여성은 가족문제로 인한 스트레스 지수가 2.89로 남성의 2.62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남녀 모두 이혼 뒤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으로 경제 관련 문제를 꼽았으나 남성은 2.88, 여성은 3.14의 수치를 보여 여성의 경제적 스트레스가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 제안에 있어서도 남녀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커리어 우먼] 권숙교 우리금융지주 IT기획 상무

    [커리어 우먼] 권숙교 우리금융지주 IT기획 상무

    “일은 즐겁게, 자신의 프라이드(자부심)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우리금융지주의 권숙교(49) 정보기술(IT)기획담당 상무가 말하는 ‘직업관’은 명쾌하다. 좋아서 일하고, 또 기왕에 하는 일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것. 금융계에서도 손꼽히는 여성 IT전문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은 의외로 단순했다. 권 상무의 직업관은 한 가지 더 있다.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 여성이라는 걸 내세워 ‘혜택’만 챙기려 든다면 큰 오산이라고 선을 긋는다.“일을 할 때는 여성, 남성이라는 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당당하게 업무 능력만으로 경쟁을 해야죠. 저는 개인적으로 ‘여성할당제’라는 말을 제일 싫어합니다.”권 상무는 금융계 진출을 꿈꾸는 후배 여성들에게는 ‘제2의 전문분야’를 꼭 가지라고 충고한다.“요즘은 하나만 잘해서는 통하지 않습니다.IT를 전공했다면 보험이나 리스크관리, 회계 등 평소 관심이 있던 하나 정도를 더 공부해서 양쪽을 서로 접목시켜야 진정한 ‘프로’로 대접받을 수 있습니다.” ●“여성이 성공하려면 3배 노력해야” 권 상무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원래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지만, 당시는 전산학과가 있는 대학이 드물었다. 그래서 커리큘럼에 전산과정이 들어있는 이화여대(76학번)를 택했다. 컴퓨터 관련 분야가 여성이 안정적인 직업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프로그래머로 삼립식품, 삼환기업 등 기업체의 전산실에서 일했다.“당시에는 프로그래머도 드물었지만, 여성 프로그래머는 더 찾아보기 힘들었죠. 다른 일을 하는 여성 직원들의 시샘도 많이 받았고…. 같은 일을 하는 남성들과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죠. 남성보다 적어도 2∼3배는 노력해야 ‘여자도 잘하네’라는 정도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씨티은행에서 17년 20대때 씨티은행으로 직장을 옮긴 권 상무는 이후 17년을 그곳에서 보냈다.IT담당 부지점장, 기업금융부문 기업정보책임자(CIO)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권 상무가 하는 일은 쉽게 말해 금융비즈니스와 IT를 연계시키는 것이다. 응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현금자동화기기 같은 것도 초보적인 접목 사례다. 대출을 해줄 때 전산작업을 통해 신용도 등을 평가하고 금리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금리모형을 만들어 내는 일도 모두 금융IT 분야다. IT를 전공했지만, 원래 금융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따로 공부를 했다. 씨티은행에 있을 때 서강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금융IT와 관련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씨티은행에서 IT헤드 등을 맡으며 인사나 경영철학 등 경영전반에 걸친 경험과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을 가장 큰 자산으로 꼽고 있다. 여성금융인 중 맏언니격인 이성남(59) 금융통화위원도 여기서 만났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진정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이 위원과는 지금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외국계, 국내 은행 모두 경험 2002년 한국선물거래소 사외이사로 잠시 숨고르기를 한 뒤 권 상무는 우리금융으로 다시 직장을 옮겼다. 현재 직책은 우리금융지주 IT기획팀장(상무)겸 우리금융정보시스템 상무다. 우리금융그룹의 IT전략 및 기획을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외국계은행과 생동감이 넘치는 로컬은행(국내 은행)을 모두 접한 것은 행운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는 우리금융으로 옮긴 뒤 외국계은행과는 문화가 많이 달라 처음에는 다소 낯설었다고 털어놓는다.“옮기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경영협의회를 하는데 모두 자기 업무 외에는 얘기를 안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제 업무 외의 분야에 대해 말을 꺼냈더니 적잖이 놀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준비돼 있어야 기회를 잡는다.” 그녀는 좌우명을 묻자,“특별한 것은 없다.”면서도 삶의 철학이라고 할 만한 일단을 보여준다.“무엇이든 열심히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 게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항상 공부를 하고 준비가 돼 있어야겠죠.”가끔 주말에 등산을 갔지만 그것마저 시들해져 요즘은 특별히 꼽을 만한 취미도 없다.170㎝가 넘는 훤칠한 키의 권 상무는 ‘싱글’이다. 일이 좋아서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세월이 훌쩍 지나갔을 뿐, 특별히 ‘독신’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란다. 글 김성수 사진 안주영기자 sskim@seoul.co.kr ●권숙교 우리금융지주 IT기획담당 상무 ▲1976 이화여고 졸업 ▲ 80 이화여대 수학과 졸업 ▲ 80∼82 삼립식품, 삼환기업 근무 ▲ 85 이화여대 대학원 수학과(전산전공) 졸업 ▲ 85∼2002 씨티은행 IT담당 부지점장 기업금융 부문 CIO ▲ 92 서강대 경영대학원 졸업 ▲2002∼03 한국선물거래소 사외이사 ▲ 02 이대 과학기술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02∼현재 우리금융정보시스템 SI사업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우리금융정보시스템 상무 우리금융지주 IT기획 담당 상무
  • 한국공무원 ‘수준 미달’

    “한국 공무원은 의사소통도 안 되고 문서작성도 제대로 못 한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많이 보내는지 모르겠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 공무원의 자질 등에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면서 국제적 망신을 산 것으로 16일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외교통상부는 1997년부터 통상전문인력 양성 등을 내세우며 프랑스 파리에 있는 OECD 사무국에 중앙부처 공무원을 파견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현재 18개 부처에서 내보낸 22명의 공무원이 현지 한국대표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에게 해마다 60억원의 예산을 쓰고 있다. OECD 사무국이 한국 파견 공무원의 문제점을 지적한 항의 공문을 우리 정부에 보내온 것은 지난해 6월.OECD 사무국은 “한국 공무원들의 전문성은 현저히 떨어진다.”면서 “그럼에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은 공무원들을 파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추천하다 보니 우리의 선택권이 없다. 한국 공무원은 직급도 높고,3년 임기를 채우지도 않고 귀국하는 탓에 불만이 많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OECD 사무국은 부이사관(3급)인 A씨 사례를 구체적으로 거론했다.A씨는 미국 명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지만 업무능력이 떨어지고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 결국 임기 연장이 거부된 A씨는 현재 국내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각 부처가 공무원 해외파견제도를 능력이나 자질을 따지기보다 인사적체 해소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외교통상부가 각 부처가 추천한 공무원을 별도의 검증작업 없이 그대로 내보내는 것도 문제다.OECD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른 국제기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교통상부와 중앙인사위원회는 후보자 공개모집 등 공무원 해외파견제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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