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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플러스] 최재원 부회장 SK가스 공동대표에

    최태원 SK㈜ 회장의 친동생인 최재원 SKE&S(옛 SK엔론) 대표이사 부회장이 SK가스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됐다.SK가스는 최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돼 김세광 대표와 함께 공동 대표를 맡게 됐다고 24일 공시했다. 최 대표는 미국 브라운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재료공학 석사,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 한은총재 이성태씨 내정…‘독립성’ 목소리 커질듯

    한은총재 이성태씨 내정…‘독립성’ 목소리 커질듯

    노무현 대통령은 23일 새 한국은행 총재에 이성태 한국은행 부총재를 내정했다고 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이 발표했다. 이 내정자는 부산상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았다. 또 지난 68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뒤 홍보부장, 기획부장, 조사국장, 부총재보, 부총재 및 금융통화위원 등을 거쳤다. 이 내정자는 오는 2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이 이뤄지면 다음달 1일부터 4년 동안의 임기에 들어간다. 이 내정자는 1951년 12월 부총재에서 총재가 된 김유택(2대 총재)씨에 이어 55년 만에 다시 부총재에서 총재로 곧바로 승진하게 됐다.‘대학 수석입학, 수석졸업’이라는 경력에 걸맞게 “순전히 자기 노력과 실력만으로 부총재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내부의 평가를 받는다. 청렴한 성격의 원칙주의자로 인사청탁 등은 일절 받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간 부총재로서 금융통화위원을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도 적절한 인사라는 평가다. 내부승진을 기대했던 한은 직원들도 “될 사람이 됐다.”며 이 부총재의 승진 기용을 반기는 분위기다. 더구나 이 내정자가 한은 내부에서 승진한 인물이라 상대적으로 한은 독립성에 관한 목소리는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90년대 초 자금부 부부장 시절 투신사에 대한 한은특융이 불합리하다며 끝내 서명을 하지 않은 일화로도 유명하다.2003년 한은법 개정을 위한 국회 소위에서는 정부가 금통위원들에게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사례가 있다고 폭로할 정도로 소신이 강하다는 평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 혹여 학맥이 결정적인 기준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일부 시각은 여전히 부담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2년 선배다. 현 정권 들어 부산상고 출신이 지나치게 약진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는 지적이다. 이 내정자가 평생 한은 외의 기관에서는 근무해본 적이 없는 점을 들어 대외 교섭력이 약해 고액권 발행 등 난제를 잘 풀어갈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박홍기 김성수기자 hkpark@seoul.co.kr
  • ‘국내MBA 시대’ 대학별 가이드

    ‘국내MBA 시대’ 대학별 가이드

    오는 9월부터 국내에도 본격적인 경영전문대학원(MBA)시대가 도래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15일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6개 대학에 경영전문대학원 예비 인가를 내줘 국제적인 수준의 한국형 경영전문가들을 키울 토대를 마련했다. 인하대에는 물류분야 전문대학원을 인가했다. 교육부는 오는 6월까지 이행실적을 확인한 뒤, 최종 인가여부를 결정한다.MBA에 관심있는 직장인 등을 위해 경영전문대학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서울대는 경영학 세부전공과 산업별 전공을 결합해 특화한다. 수요에 맞춰 일반경영 전공에서 점차 문화콘텐츠와 디자인 등 산업별 전공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교수진은 현 경영대학 교수를 비롯해 기업체 임원, 외국인 초빙교수 등으로 채워진다. 입학 자격은 4년제 대졸자로 직장 경력이 3년 이상, 영어 성적은 텝스 664점이나 토플(CBT) 22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서류와 면접으로 뽑으며 필기고사는 없다. 학업계획서와 실무경력, 자기소개서, 추천서, 대학 성적 등을 반영한다. 서류전형에서 정원의 두배수를 선발한 뒤 최종에서는 서류와 면접을 6대 4의 비율로 반영한다. 면접관은 3명이다. 수업료는 전과정 4500만∼5000만원으로 책정됐다. 원서접수는 일반 대학원 일정에 맞춰 5월초 시작된다. 서울대 관계자는 “관련법이 개정되면 1년과정으로 단축하며 8주를 한 학기로 편성해 4∼5학기체제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세대는 일반MBA와 글로벌MBA, 산학협동MBA, 야간MBA 등 4개 과정으로 나뉜다. 야간MBA를 빼면 모두 주간 과정이다. 글로벌MBA는 100% 영어로 진행되며 일반·산학 MBA도 필수 2과목과 선택 3과목 이상을 영어 강의로 이수해야 한다. 주간은 겨울·여름 방학을 정규학기로 편성해 4학기제로 운영한다. 입학 자격은 기존 야간 경영대학원과 다르지 않아 학사 학위 소지자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직장 경력과 영어성적이 없어도 입학할 수 있다. 대학 성적과 학업계획서 등으로 입학을 결정한다. 서류전형에서 정원의 2∼3배를 선발한 뒤 구술전형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최종 합격자는 1·2차 점수를 합산한다.5월부터 모집 공고가 붙으며 수업료는 연간 3000만원선이다. #고려대는 2008년까지 외국인 교수 10명을 포함해 경영대학·경영전문대학원 전임교수를 100명까지 확보할 계획이다.100% 영어강의로 이뤄지는 금융 MBA를 특화하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등 전 과정에 걸쳐 해외 명문 3개 대학과 공동학위제를 추진하고 있다. 일반 과정도 60%가 영어 강의로 채워진다. 현재 경영대학이 상호 협정을 맺은 해외 50개 대학 등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해 전체 정원에서 15∼20%를 외국 학생에 할당할 계획이다. 5월부터 학생 모집이 진행되며 전과정 학비는 2500만∼3000만원선이다. 지원자격은 최소 3년 이상의 직장경력을 갖춘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로 서류 전형과 면접 등을 통해 뽑는다. 서류전형에는 대학 성적, 추천서, 공인 영어성적 등이 요구된다. 고려대 장하성 경영대학원장은 “전체 수업 가운데 3분의1을 해외 자매대학에서 수강하며 강의 가운데 절반은 외국대학 교수들이 가르치도록 했다.”면서 “유능한 국내외 교수를 확충해 해외 명문 MBA스쿨에 못지않게 만들겠다.”고 했다. #서강대의 MBA과정은 금융과 경영일반 과정으로 나뉜다. 금융은 재무가 중심이며 경영일반은 회계학과 재무관리를 비롯해 11개 세부 전공분야가 있다. 특별과 일반전형으로 절반씩 뽑으며 특별전형은 경력 5년 이상의 직장인, 일반전형은 대졸·대졸예정자 등이 대상이다. 특별전형은 서류심사와 구술면접으로 선발하며 일반전형은 서류와 필기시험으로 뽑는다. 일반전형에서 필기시험은 영어 100점, 통계학 100점, 구술면접 등이다.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자격증 소지자는 우대된다. 특별전형 모집은 5월, 일반전형은 6월부터 진행되며 수업료는 학기당 주간 750만원, 야간 550만원, 주말반 900만원 정도이다. #이화여대는 지도교수가 산업체 지도교수와 멘토 교수팀을 이뤄 학생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진단과 조언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종 학기에서는 인턴십에 참가해 해당 산업체에서 실무경험을 쌓아야 한다. 경영학 기초 학점을 이미 취득했거나 실무경력을 지닌 학생들은 교육과정을 일부 바꾸도록 배려한다. 5월부터 모집하며 2∼3년의 직장경력이 필요하나 우수한 학생들은 직장경력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다. 경영학 석사 학위 취득 비용은 2400만∼3000만원이다. 이화여대 서윤석 경영대학원장은 “9월에는 전체 강의에서 10% 정도만 영어 수업이 배정되지만 7년 뒤에는 영어 강의가 50% 이상 이뤄진다.”면서 “여성 리더십 관련 과목을 특화했으며 점차 예술경영과 보건복지경영, 디자인경영 등을 개설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양대는 금융과 정보통신, 경영 등 3가지 과정으로 구성됐다. 금융 과정은 금융기관과 기업재무팀 직원 가운데 실무경력이 3∼10년인 중간관리자를 수요층으로 하고 있다. 정보통신은 정보통신분야 직원 가운데 사내 경쟁을 통해 선발된 과장급 직원이 대상이다. 경영 과정은 야간과 주말과정이다. 입시일정은 5월초∼6월초, 학생 선발에는 동기부여를 가장 중요하게 다룬다. 면접과 학업계획서, 대학 점수, 추천서, 자기소개서, 영어 성적 등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전형 과정에서 서류(사내경쟁)와 면접의 비율은 7대 3이다. 수업료는 한 학기에 650만원 정도이다. 한양대 조지호 경영대학원장은 “전체 강의에서 50% 이상이 영어 강의로 채워지며 빼어난 장사꾼 근성과 실무 적응능력을 중시한다.”면서 “국내외 유명 기업체에서 몇 달 동안 인턴십을 거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하대는 물류를 특화시킨 경영학 석사 과정이다. 해외 8개 대학과 연계해 물류MBA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할 계획이다.100% 영어 강의를 원칙으로 한다. 모집 일정은 6월초, 한 학기 수업료는 800만원 정도이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국내·해외 MBA 장단점 비교 국내 MBA과정은 해외 명문 대학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다.9월 문을 여는 국내 MBA과정은 3000만∼4800만원 수준이다. 미국 상위권 MBA과정과 비교하면 30∼40%에 불과하다. 게다가 서울대와 고려대 등은 관련법이 개정되면 현재 1년 6개월 과정을 연 4∼5학기제로 개편해 1년 만에 졸업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해외 유학을 하려면 준비과정에서 이미 상당한 시간과 경비가 투입되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신 해외 MBA는 영어 실력과 국제적인 감각을 갖출 수 있는 강점이 있다. 국내 경영대학원도 영어 강의를 추진해 교환학생과 인턴십 등으로 보완했지만 해외 대학 수준에 미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또 해외 대학원은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쌓은 반면 국내 대학은 아직까지 초기 단계이다.1996년 국내 최초 전일제 MBA과정을 개설한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도 세계 100대 MBA과정에 끼지 못했다. 대신 국내 MBA과정은 학교 명성을 쌓기 위해 제공하는 초기 프리미엄을 누릴 가능성은 있다. 국제대학원이 처음 도입됐을 당시에도 초창기 졸업생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지에서 진로를 선택했다. 기업체도 토종 출신이 한국적 기업에 더 맞는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경영전문대학원은 재취업 등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학위증을 남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대학 관계자는 “외국의 유명 MBA과정을 마친 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넘치는 현실에서 국내 MBA가 빠른 시간내에 유용한 인재를 배출할지 의문”이라면서 “고도의 경영학 지식과 외국어 구사 능력을 고루 갖춘 교수진을 확충하는 등 튼실한 프로그램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국내MBA 졸업장’ 가치는 지난 2월 국내 MBA의 ‘선구자’인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을 졸업한 90명 가운데 97%가 취업했다. 제조업분야에 36명, 금융 분야 28명, 컨설팅업체 14명, 기타 12명이었다. 제조업은 삼성 계열, 금융은 신한·기업·우리은행 등에 들어갔다. 카이스트 대학원 내부 자료에 따르면 졸업생들의 연봉 평균 상승률은 37∼38%에 달한다. 연봉 5000만원의 샐러리맨은 연 소득 7000만원의 직장인으로 신분 상승하는 셈이다. 이런 매력 때문인지 카이스트 대학원 입학생들은 2년 이상의 실무 경력을 갖춘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직급으로 보면 대리∼차장급 사원들이다. 주간 풀타임제여서 퇴직하고 입학하거나 회사에서 파견, 추천 등의 형태로 다니고 있다. 하지만 취업 시장에서의 ‘몸값’은 MBA 취득 자체보단 어떤 실력을 갖췄느냐가 관건이다. 현대자동차 인사담당자는 “국내외 학위 모두 학위기간만큼 경력으로 인정한다.”면서 “MBA 학위를 땄다고 보장되는 것은 없으며 인재 선호도는 개인과 채용 조건에 따라 다르다.”고 밝혔다. 또 학위취득기간도 취업현장에서는 큰 변수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대·고려대 등 일부 경영전문대학원들은 학위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일 예정이다. 이 경우,1년제와 2년제 학위가 병행하는 셈이다. 교육부에서 기업체 상대로 MBA 수요를 조사한 결과, 많은 곳에서 1년 정도는 직원 재교육을 위해 휴직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연세대 김준석 경영대학원장은 “여름·겨울 방학을 없애 학위취득기한이 줄어도 수업 시간에는 변화가 없다.”면서 “해외유명 경영전문대학원들도 1년짜리 MBA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나 인재를 채용하는 기업체들은 학위 기간이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배웠느냐에 주로 관심을 가질 뿐”이라고 전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20&30] 30대 교수 4인의 강의생활·포부

    [20&30] 30대 교수 4인의 강의생활·포부

    남들은 대학 다닐 나이에 벌써 교수의 반열에 오른 2030들이 있다. 그들에게 희끗한 머리와 근엄한 자태는 없지만, 비슷한 연배의 2030 제자들과 통(通)한다는 장점만큼은 확실하다.2030 교수들은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데 대해 하나같이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했다. 그들의 눈빛은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빛났고, 가슴은 제자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했다. 우리 주변의 형·오빠, 언니·누나 같은 젊은 교수들의 학교생활 이야기를 들어본다. ■ 이철한 조교수(33) “일찍 교수가 됐다고 군 면제라고 의심하지 마세요. 군 복무 성실히 한 예비역 육군 중위입니다.” 동국대의 최연소 이철한(33·광고홍보학과) 조교수는 지난해 임용됐다.1996년 연세대를 졸업한 뒤 미국 시러큐스대와 미주리 주립대 등에서 석·박사 공부를 했다. 적은 나이에 일찍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의 전공인 광고홍보학이 비교적 역사가 짧기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 교수는 젊은 교수의 가장 큰 장점으로 학생들과 잘 통한다는 점을 꼽았다. 교수도 학생들의 생각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학생들도 교수가 어떤 의도로 수업을 진행해 나가는지 서로 이해가 빠르다는 것이다. 단점으로는 경험 부족을 들었다. 실제로 ‘우리 교수가 경험이 부족해 수업을 잘 못하지 않을까.’우려하는 학생들이 없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수업준비를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된다. 그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강조한다.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교수의 권위만 강조하다 보면 자칫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로서 권위에는 많은 신경을 쓴다.‘부드러운 리더십’은 교수로서의 권위를 지키면서도 ‘권위적’이 되지는 않겠다는 의지다. 그는 머릿속에 2년 후 자기 모습을 그리며 꿈을 키워왔다. 교수에 임용되기 2년 전에도 ‘2년 후의 나’는 교수였다. 이 교수가 그리는 2년 후가 궁금하다.“2년 뒤 저보다 더 젊은 교수들과 함께 지금보다 더 활기찬 동국대를 만들고 있겠지요.”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고원건 조교수(32) “남들이 복학생인 줄 알아요.” 연세대 화학공학과 고원건(32) 조교수는 최연소 교수로서 외모 때문에 겪는 당혹스러운 경험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인기가 많다는 얘기와 같은 맥락에 있다. 지난해 9월 모교에 임용된 고 교수는 “복학생이나 대학원생처럼 보이는 외모 때문에 가끔 해프닝이 벌어진다. 하지만 “예상치 않게 ‘오빠’나 ‘형’으로 불려도 그리 나쁘지 않다.”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고 교수가 지금까지 학교생활 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해프닝은 역시 호칭에 관한 것이다. 얼마 전 신입생 환영회 때 한 어린 여학생이 교수인 줄 모르고 친해지기 위해 “오빠!”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다. 교수가 된 뒤 처음 겪은 일이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수업시간에 질문을 받고 있는데 뒤에서 고등학교 후배가 오랜만에 만난 선배를 보고 “원건이 형”이라고 불러 강의실에 웃음보가 터지기도 했다. 고 교수는 “나이가 어린 만큼 권위적이지 않고 편안한 교수가 되려고 한다. 그래서 강의 5분 전에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자주 접촉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세대에서 석사까지 마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한국에 바이오생명공학(BT) 열풍이 불면서 남보다 일찍 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빨리 교수가 된 데 대해 “운이 좋았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앞으로 바이오센서와 조직공학쪽으로 계속 연구하고 인공 각막을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힘을 쏟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김애화 조교수(31) 단국대 특수교육과 김애화(31·여) 조교수는 2003년 6월 모교 교수가 됐다. 만 28세로 93학번. 워낙 젊은 나이에 교수가 돼 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학내 최연소 교수다. 학부 졸업후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모교로 왔다. 김 교수는 젊은 교수의 장점으로 적극성과 집중력을 꼽는다. 스스로 “목표를 세우면 집중해서 적극적으로 임한다.”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주변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단점으로는 필요 이상으로 솔직하다는 것을 들었다.“살아가다 보면 솔직하지 않을 때도 필요한데 아직 인생 경험이 적어서인지 그런 게 참 어렵네요.” ‘어린 여교수’라 에피소드도 많다. 얼마 전 대학원 신입생 환영회 때 신입생과 교수들이 둘러앉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대학원 대표가 김 교수를 학생으로 착각해 “교수님들께 자기소개하세요.”라고 말하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한다. 학부에서는 첫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조교가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오늘 교수님 안 오시나봐.”라고 수군거리기도 한다. 사실 이런 해프닝들이 크게 싫지는 않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건전한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후배들, 특히 여학생들에게 제가 하나의 모델이 됐으면 해요. 저를 보면서 좀 더 큰 꿈을 꾸고 더 큰 목표를 설정할 수 있었으면 하는 거죠.” 김 교수는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국내 절이란 절은 다 찾아 다녔다. 산사(山寺)여행을 끝낸 뒤에는 미국을 시작으로 터키·캄보디아·태국 등을 돌기도 했다. 다음 목표는 아프리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정주원 전임강사(31) 정주원(31·여·해부학) 전임강사는 삼일절인 지난 1일 2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경희대 의대 교수로서 고국 땅에 돌아왔다. 부산대 분자생물학과 93학번으로 모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4년 6월 미국 하버드대 의대 매클린병원의 포스트닥터로 일하다가 임용됐다. 적은 나이에 의대 교수로 임용된 비결에 대해 “학부를 4년 만에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는 동안 쉬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애쓴 것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교수 임용 이후 첫 학기라서 아직 학생들을 많이 접할 기회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아직은 약간 서먹서먹하다. 해부학 실습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말을 잘 걸지도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어떤 교수로 다가갈까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학생들이 공부하는 분야에 대해 열정적이란 인상을 받았어요. 저처럼 나이가 젊은 교수가 다가간다면 일단 학생들과의 인식차이는 적을 것 같아요.” 정 교수는 학생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어떤 분야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잘 커갈 수 있도록 다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교수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실험과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저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연배 비슷한 제자들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정 교수는 “어떤 교수로 이름을 남기기보다는 나의 연구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직 미혼이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부모·외삼촌·사촌오빠도 과학자

    최근 ‘연인의 잔’을 발명해 세계인의 시선을 모은 정혜민(여·26·미국 MIT공대)씨 가족의 과학열정이 화제를 낳고 있다. 혜민씨의 모친은 지난해 말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여성기관장인 정광화 표준연구원장이며, 부친은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국방과학연구소의 정규수 박사.평생을 과학자의 길을 걸어온 부모의 과학열정이 오늘의 정씨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법하다. 현재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인 정씨는 대덕고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으며 정보통신대학에서 1년간 연구원으로 활약하다 MIT 미디어랩에 유학 중이다. 혜민씨의 가계는 과학명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005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한 신중훈(36·과학기술원) 교수가 사촌오빠이고 미국 댈러스 삼성전자연구소의 정용우(53) 소장과 충북대 화학과 정용석(49) 교수는 외삼촌이다.정광화 원장은 “딸의 소식을 듣고 저녁내내 남편과 함께 인터넷에 나온 기사를 검색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엄마가 필요할 때 옆에서 보살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했는데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정 원장은 “음료수 한잔을 마실 때도 ‘기포가 움직이는 모습을 살펴볼까.’라며 딸의 지적 호기심을 유도한 것이 자라면서 과학 마인드로 연결된 것 같다.”고 밝혔다. 혜민씨가 발명한 ’연인의 잔‘은 한쪽에서 잔을 집어들면 다른쪽 잔에도 부드러운 붉은 빛이 나고, 한 사람이 잔에 입을 대면 다른 사람의 잔에 밝은 흰빛이 나도록 돼 있어 상대방과 동시에 와인을 마시며 사랑을 확인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그는 유학 중인 세계 각국의 동료 학생들이 고국에 두고 온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들이 어떻게 하면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 할 수 있게 해줄까.” 고민한 끝에 동료인 타이완 출신의 재키 리(27)와 함께 `연인의 잔´ 을 개발했다. 이 연구 성과는 뉴사이언티스트 최신호를 통해 알려진 뒤 전세계로부터 자료를 부탁하거나 인터뷰를 신청하는 전화가 쇄도하는 등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SK·대성·한진… 재벌2세 잇단 결혼

    재벌 2세들의 잇단 결혼소식이 화제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최신원 SKC 회장의 장녀인 유진(28)씨가 ‘5월의 신부’가 된다. 유진씨는 미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지난해 귀국해 신부 수업을 받고 있다.새 신랑은 미국에서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는 구본철(32)씨. 본철씨는 LG 구씨가(家)의 ‘본자’ 돌림과 같은 항렬이다. 부친은 구자동씨로 중견기업 부사장직을 맡고 있다. 유진-본철 커플은 오는 5월 말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결혼한다. 한진그룹 조씨가(家)도 오는 5월에 ‘새 사람’을 맞는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외아들인 원태(30)씨가 5월21일 하얏트리젠시 인천 호텔에서 김태호 충북대 정보통계학과 교수의 외동딸인 미연(27)씨와 결혼한다. 원태씨는 2004년 대한항공 경영기획팀 차장으로 입사한 뒤 올해 초 부장으로 승진했다. 김 교수는 3대 중앙정보부장과 8,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재춘 5·16민족회 이사장의 장남이며, 신부 미연씨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서울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성그룹 김영대 회장의 3남 김신한(31) 대성산업가스 이사도 오는 6월 새 신랑이 된다. 신부는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미국 유학 중에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예비 신부는 상중인 대성가(家)를 수시로 찾아 이미 며느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신한씨는 미국 미시간대 컴퓨터공학 석사 출신으로 이달 초 대성산업가스 이사로 선임돼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LG 구씨가(家)도 곧 경사가 있을 전망이다. 구본무 회장의 장녀 연경(28)씨가 조만간 결혼 날짜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와 미국 유학을 마친 연경씨는 지난해 12월 윤관(31) 블루런벤처스 사장과 약혼식을 치렀다. 윤 사장은 알프스리조트 전 소유주였던 윤태수 회장의 아들이다. 두 사람은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루런벤처스를 이끄는 윤 사장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2000년 입사해 지난해 블루런벤처스의 공동 파트너 자리에 올랐다. 블루런벤처스는 노키아가 최대주주(30%)로 운용자금이 1조원을 넘는 다국적 벤처캐피털업체이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차관급 프로필

    ●이종서 교육부차관 실무에 밝지만 지나치게 신중해 결단력은 조금 부족하다는 평이다. 학연과 지연 등을 별로 따지지 않는다. 김진경 대통령 교육문화수석과 대전고, 서울사대 동문이다. 부인 김유강(47)씨 사이에 1남1녀가 있다.▲51세 ▲행시 21회 ▲영국 버밍엄대 교육대학원 ▲성균관대 교육학박사 ▲교육부 대학학무과장·교육정책기획관·고등교육지원국장·감사관 ▲교원소청심사위원장 ●유영환 정통부차관 참여정부의 정보기술(IT) 정책인 ‘IT 839’ 전략을 입안했다.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지난 96년 정통부로 자리를 옮겨 정보화제도과장, 기획총괄과장, 공보관, 정보통신정책국장을 지냈다. 선이 굵고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 노준형 정통부 장관 내정자와 참여정부의 IT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이다. 부인 손지원(42)씨와 1남1녀.▲49세 ▲서울 한성고 ▲고려대 무역학과 ▲동원증권 전략담당 부사장 ▲한국투자금융지주 부사장 ●이현재 중기청장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6급 특채’로 국무총리실에서 공직에 첫 발을 내디뎠다. 업무처리가 꼼꼼하고 기획력이 좋다는 평이다. 두 차례에 걸친 청와대 비서실 근무, 민주당 수석전문위원, 대통령직 인수위 수석전문위원 등 당·정·청을 두루 거쳤다. 부인 김태숙(53)씨와 1남 2녀.▲57세 ▲청주고, 연세대 전자공학과 ▲미 USC 행정학 석사 ▲통상산업부 공보관·전력심의관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기획관리실장(국가균형발전지원단장 겸임)
  • 국정원 글로벌인재 찾아나선다

    몇 명을 채용하는지와 경쟁률 등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국가정보원의 인재 선발양식이 공세적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국정원의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신문에 광고를 내는 정도에 그쳤던 채용계획을 취업전문 사이트에 올리면서 공개적으로 전환한 것이다. 석사 이상 학위 소유자를 대상으로 한 시스템분석컨설팅 분야와 프로그래머 분야의 선발 계획이 인쿠르트(www.incruit.com) 등 사이트에 올려져 있다. 이달 말까지 선발한다. 우수한 인력을 뽑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조용한 선발방식에서 벗어나 찾아가서 모셔와야 한다고 판단한 듯하다.국정원은 몇 년 동안 중단해온 취업설명회를 재개할 계획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달 말부터 6월 초까지 전국 주요대학을 순회하며 국정원을 소개하고 시험준비요령 등을 안내하는 취업설명회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7급 신입직원 선발계획을 오는 6월 말에 정식 공고한 뒤 7월 말 원서접수를 할 예정이다. 전문 경력직의 경우 특수 외국어·테러·국방분야 등의 전문인력을 수시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모집할 예정이어서 국정원 홈페이지 등을 수시로 살펴봐야 한다. 국정원 관계자는 “국가간 무한경쟁이 치열해지고 테러·사이버 범죄·산업보안 등 새로운 안보위협이 점증하는 상황에서 투철한 국가관에다 어학능력 등의 국제감각,IT 마인드를 가진 ‘글로벌 인재’를 선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김승규 원장 취임을 전후해 국내 분야보다 해외경제 정보 수집 등에 역점을 둔다는 내부적 개혁방향 설정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에 비유되면서 직장으로서 국정원의 인기도 상한가다. 최근 5년 사이의 경쟁률은 100대1을 웃돌고 있으며 특정분야에서는 200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국정원 준비하는 모임’ 등 국정원에 들어가려는 취업준비생들의 입사준비 카페가 10여개에 이른다. 고시학원에서는 ‘국정원반’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을 정도인 것으로 전해진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국방부 정책홍보본부장 권안도

    국방부는 20일 정책홍보본부장(1급상당)에 권안도(육사27기) 전 합참차장을 임용했다고 밝혔다. 권 신임 본부장은 2004년 5월부터 7월까지 합참 전략기획본부장과 국방부 정책실장을 겸직하면서 미래 한미동맹정책구상(FOTA)회의 우리측 수석대표를 맡아 용산기지 이전 협상을 마무리한 바 있다. 광주 제일고를 졸업하고 미국 센트럴 미시간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연합사 작전참모부 차장과 5군단장 등을 지냈다.
  • 학위 검증 여전히 ‘구멍’

    러시아 음대의 국내 분교로 위장한 음악원에서 연간 10일 정도 수업을 받고, 현지를 관광한 것만으로 학위를 받은 가짜 석·박사 120여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학위 수여식에는 러시아 유명 음대 총장이 직접 나섰고, 가짜 석·박사들은 국내에서 정기모임을 갖고 동문음악회까지 열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이영렬)는 19일 국내 음대 졸업생과 교수 등 120여명을 모집해 각각 수천만원씩, 총 25억여원을 받고 러시아 V음대 등의 학위증을 발급해 준 혐의로 서울 강남의 R음악원 겸 유학알선업체 대표 도모(51·여)씨를 구속기소했다. 피아니스트 출신인 도씨는 1998년 R음악원을 설립하고, 영국 쪽 대학을 사칭해 가짜 학위를 발급할 계획을 세웠다. 최종적으로는 상대적으로 학사관리가 허술한 러시아로 눈길을 돌리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박사 학위 발급에 적극 가담한 V음대 Z총장은 러시아 법무부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할 방침이다.Z총장은 교수 1∼3명과 함께 한국을 찾아 강의를 하거나 학위수여식을 주도했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정상적인 수업료의 두배를 받은 뒤 도씨와 절반씩 나눠 비자금을 조성했다. 대학 당국은 이들이 낸 등록금을 기부금으로 회계처리했다. 가짜 박사 학위를 이용해 교수로 임용된 박모씨 등 2명을 비롯해 5명은 불구속 기소됐고, 박사 학위를 받은 나머지 16명은 벌금 700만∼10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검찰은 도씨의 학원에서 러시아 H음대의 가짜 석사학위증을 취득한 100여명에 대해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가짜 석사들은 학기당 400만원씩, 가짜 박사들은 학기당 500만원씩 수강료를 내고 R음악원에서 연간 10일 정도 수업을 받았다. 가짜 석·박사들은 평소 낮은 학력으로 석사나 박사 과정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부담을 느껴 가짜 학위취득의 유혹에 빠졌다고 검찰에서 털어놓았다. 이 외사부장은 “가짜 박사학위가 그대로 등록될 수 있었던 것은 별다른 확인절차가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학위등록을 할 때 외국대학에서 수학한 증명원이나 출입국 기록 등을 제출토록 하는 등 검증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한때 18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30대 재벌그룹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외환위기(IMF)와 함께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인희, 동양물산 등 5개만 남은 미니그룹으로 축소된 게 오늘날의 벽산이다. 출자전환된 채권단의 주식을 되사들여 창업주 가문이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벽산의 주력사는 벽산건설이다. 전체 매출 가운데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때문에 벽산 사람들은 그룹이라는 표현 대신 건설 전문업체라는 표현을 쓴다.3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GS가문·박정희 대통령 등과 혼맥 형성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 2녀중 장남 김희철(69) 벽산건설 회장은 경기고 3학년이던 16세 때 미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15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한 달에 2∼3통씩 집으로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인 고 김인득 창업주는 틀린 한자를 교정해 보내주는 등 자식 교육에 애착을 보였다. 김희철 회장도 기대에 부응해 미국 퍼듀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경영학 석사·MIT대와 퍼듀대에서 각각 원자력공학 석·박사학위를 땄다. 이어 미주리주 롤라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1969년 정부의 해외우수인재 유치 계획에 따라 과학기술처 1급 연구관으로 초빙돼 귀국했다. 김희철 회장은 1965년 김인득 창업주의 3남이자 김 회장의 동생인 김희근(60)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과 김 명예회장의 경기고 동창인 허광수(60)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제의로 삼양통상 고 허정구 회장의 장녀 허영자(66)씨를 만났다. 허광수씨의 누나인 영자씨는 이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미 노스웨스턴대 불문학과 석사 과정을 밟다 다음해 시카고에서 김 회장과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은 1971년 건축자재 생산업체였던 ㈜벽산의 전신인 제일스레트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벽산 경영에 참여했고,1982년 그룹 부회장으로 오르면서 사실상 경영을 도맡았다. 하지만 김인득 창업주가 세상을 뜬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IMF 위기를 맞아 선친이 키운 기업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불운을 맞기도 했다. 벽산은 3세 경영 체제에 안착했다. 김희철 회장의 장남인 김성식(39) ㈜벽산 대표이사 사장은 ㈜벽산페인트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다. 오하이오주립대 마케팅 학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이후 보스턴 컨설팅에서 일하다 2001년 1월 ㈜벽산 전무로 입사했다. 지금은 부도로 쓰러졌지만 80년대 말 주택사업을 활발히 펼쳤던 ㈜동신 박승훈 회장의 장녀 박성희(36)씨를 학교 선배의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의 차남 김찬식(37)씨는 주력사인 ㈜벽산건설에서 경영수업을 받는 중이다. 경영지원실장(전무)으로 내부 살림을 챙기고 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에서 MBA를 땄다. 한 살 아래인 장현주(36)씨를 대학(이대 동양학과)시절 소개팅으로 만나 연애 결혼했다. 장씨의 아버지 장경환(74)씨는 포항제철 전무이사, 삼성중공업 사장 등을 거쳐 포항제철(현 포스코) 경영연구소 회장을 지냈다. 장녀 김은식(35)씨는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나온 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77) 전 재불 한국문화원장의 차남인 첼리스트 양성원(39·연세대 기악과 조교수)씨와 결혼, 음악가 집안을 꾸렸다. 이들의 결혼은 양가 어머니들의 오랜 친분으로 맺어졌다. 김인득 창업주의 차남인 김희용(64) 동양물산 회장은 미 인디애나주립대 출신으로 1987년부터 그룹의 모태이자 농기계전문업체인 동양물산 사장으로 취임,2001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인 고 박상희씨의 딸 설자(61)씨와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설자씨는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처제이기도 하다. 이로써 벽산가 혼맥은 경제계 뿐 아니라 고위 정치권과 닿는 계기가 됐다. 장남 김희철 회장가와 차남 김희용 회장은 2004년 주식 교환을 통해 사실상 독립경영 체제를 갖췄다. 김희철 회장 집안이 벽산건설과 ㈜벽산 등을, 김희용 회장 집안이 동양물산 지분을 갖는 것으로 구도를 정리했다. 김희용 회장의 장남 김태식(33)씨는 동양물산 이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딸 김소원(28)씨도 동양물산에 몸을 담고 있다. 셋째 아들인 김희근(60) 회장은 지금은 정리된 벽산건설의 해외부문을 담당하는 등 줄곧 건설을 책임지며 벽산건설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미 마이애미대 출신으로 IMF 위기를 맞아 건설에서 손을 뗐고 지금은 계열분리된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 직함만 갖고 있다. 벽산건설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한 사기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기소된 상태다. 미 LA에 살고 있지만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귀국해 수사를 받고 있다. 김희근 명예회장측은 당시 대출은 만기연장이 대부분이어서 사기 혐의는 터무니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 이윤우 전 그린파크 회장의 4녀인 이소형(58)씨와 결혼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녀인 김숙희(66)씨는 피혁전문 무역업체인 천마를 운영하는 정영현(72) 회장과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막내 딸 김연숙(57)씨는 원영종(59) 화인계기주식회사 대표이사와 사이에 치성(28)·치열(26) 두 형제를 두고 있다. ●고 김인득 창업주…소문난 근검절약가 고 김인득 창업주는 경남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농사를 지었지만 계절에 따라 포목상 일을 겸해 형편은 어렵지 않았다. 고향에서 보통학교(칠서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3수 끝에 열 네살이 되던 해에 마산상고에 입학했다. 성적이 좋아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농구·탁구·축구 선수로 활약하는 등 운동도 잘했다. 남선주산대회에서 1등을 했고 서화전시회에 출품하면 항상 상을 받는 모범생이었다. 첫 직장은 1934년 봄 입사한 마산금융조합. 예금 권유부터 연체 독촉까지 항상 1등이란 팻말이 따라다녔다.‘남과 같이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철학은 이때부터 생겼다. 당시 월급 28원을 받던 그는 10년동안 1만원(현재 1억원)을 벌겠다는 목표를 세워 9년간 8900원을 모았다. 이 돈을 모으기 위해 숙직을 자청, 숙직비를 모았고 출장 갈 때면 새벽에 일어나 목적지까지 걸어가면서 출장비를 아꼈다. 투철한 절약정신만큼 가족 사랑도 깊었다.“1932년 1월11일 양가 부모와 일가친척의 축복 속에서 17세 신랑과 18세 신부는 결혼을 했어요. 신랑이 장남이라 결혼시켜 어린 5남매와 큰 살림을 맡기실 작정을 하신 모양이었어요.17세 신랑은 키도 크고 헌칠했어요. 결혼후 남편은 3년을 학생 신랑으로 지내고 저는 신랑 없는 시집살이를 했어요.” 고 김인득 창업주의 부인 고 윤현의 여사는 김 창업주의 첫 인상을 ‘벽산 김인득 선생 회갑 기념-남보다 앞서는 사람이 되리라’란 책을 통해 이같이 회고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동생인 고 김재동씨도 같은 책에서 창업주를 두고 애처가 중의 애처가라고 평했다. 평상시에도 “부인이 무슨 낙이 있겠어. 내가 아내의 종이 돼야지…”라고 말하며 부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 김인득 창업주는 일제 치하였던 만큼 기술자나 사업가가 아니면 한국인은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1943년 진주상공회의소로 자리를 옮긴다.1949년 무역업을 하기 위해 상경했는데, 당시 외국 무역이나 한다는 사람들은 으레 호텔에 머물며 식사도 고급으로 하는 등 허세를 부리기 일쑤였지만 김인득 창업주는 삼류여관에 머물며 국밥 외엔 다른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택시는 타지 않았고 걷거나 전차·버스를 이용했다. 모두가 멋쟁이 양복을 빼고 다녔지만 농구화나 군화를 신고 다녔으며 그나마 구두 뒷굽이 빨리 닳는다며 바닥에 말발굽 ‘징’을 박아 신고 다녔다. 호주머니에 쓸데없이 돈을 넣고 다니지 않았으며 필요한 돈만 명함꽂이에 넣어 다닐 만큼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극장의 제왕’서 건자재·건설업으로 비약 부산 동아극장 지배인으로 일하다 6·25가 발발한 1950년 피란갔던 부산에서 오늘날 벽산의 효시인 동양흥산(현 동양물산주식회사)을 창업한다. 외국영화를 수입해 전국 영화관에 공급하는 일과 수입·무역업이 주종이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당시 오락시설로는 극장이 전부인 시절이었고 동양물산은 외화의 60%를 수입했다. 중앙극장, 단성사 등 서울 주요 극장을 비롯해 부산 대전 대구 진주 등 전국에 100여개에 달하는 극장 체인을 형성, 극장 재벌로 부상하며 50년대 말 흥행업 왕좌에 올랐다. 산업의 본질은 생산업이라 여긴 김인득 창업주는 60년대 들어 ‘사업보국’을 내걸며 흥행업에서 점차 손을 떼고 제조업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단성사와 반도극장(현 피카디리) 등을 판 돈으로 1962년 9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현재 ㈜벽산)를 인수한 것은 제2의 도약기를 맞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 회사는 일제 당시 일본 아사노 스레트의 서울 공장으로 1929년 출범했지만 당시 부실화되어 개점 휴업상태인 회사였다. 인수 직전 9개월까지 실적이 3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주인이 바뀐 뒤 3개월간 6000만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어 60∼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시작된 전국적인 농어촌개량작업으로 슬레이트 사업은 번창일로를 맞는다. 이후 건자재 생산업체인 오늘날의 ㈜벽산으로 자라났다. 1964년 1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에 건설사업부를 발족하면서 건설업을 본격화했다.1968년 시공능력 33위에서 1971년에는 11위에 오를 정도로 덩치가 커지면서 같은 해 1월 한국건업주식회사로 떨어져 나와 지금의 벽산건설로 성장했다. 그룹의 모태인 동양물산은 고구마 절단기 등 농기계 생산업체인 ‘한국이기공업주식회사’(1964년)와 한국경금속(1968년)을 인수하면서 새 전기를 맞는다. 동양물산은 지금도 경운기 등 농기계와 스푼 등 양식기를 만들면서 과거 명맥을 잇고 있다. 1973년 스레트공업사 내 페인트공장을 신규 착공하면서 시작한 페인트 사업도 그대로 있다.1999년 구조조정과 함께 벽산화학㈜에 합병됐다 2001년 벽산페인트로 거듭났다. 이로써 벽산그룹은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 동양물산,㈜인희 등 5개사를 거느리고 있다. ●IMF때 대대적인 구조조정 그룹명 벽산은 고 김인득 창업주의 아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60년대말부터 회사를 끊임없이 인수·합병하는 등 사세를 키워카며 통일성을 위해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유통 금융 방송 지하자원개발 등 전체 18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IMF이후 구조조정을 겪으며 현재 5개로 줄었다. 1976년 설립한 건축내외장제 제조사 벽산산업개발㈜은 1998년 그룹 경영합리화 계획에 따라 ㈜인희에 합병됐다.㈜인희는 영화산업에 애착을 가졌던 김인득 창업주가 1952년 중앙극장을 세우면서 설립했던 회사. 영상산업회사로 키우기 위해 비서실내에 신규 영상 사업팀까지 두고 챙겼었지만 지금은 발코니 확장과 일부 건자재만 만들며 ㈜벽산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1985년 벽산쇼핑㈜을 통해 유통업에 진출했지만 1999년 3월 구조조정계획에 따라 매각했고,1989년 인수한 정우개발㈜,㈜동부해양도시가스 등 정우 계열사들 역시 1999년 정리했다.1991년 유신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금융업도 본격화했지만 1998년 대출금 마련을 위해 팔았고,㈜한국케이블TV 전남동부방송을 설립해 종합유선방송(SO)사업도 손을 댔지만 199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했다. 대부분의 그룹 사옥도 처분했다. 그룹 40주년 출범과 함께 서울역 앞에 지었던 시가 1100억원 연건평 900평 규모의 그룹 사옥인 ‘벽산 125빌딩’을 포함해 퇴계로 ‘인희빌딩’ 등이 모두 넘어갔다. 벽산 125빌딩은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씨의 마지막 작픔으로 유명하다. 전주 백화점, 안양 벽산쇼핑, 부산 남포동 복합상가빌딩 등 유통 사업 관련 부동산도 함께 정리했다. ●3대를 잇는 기독교 사랑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2녀중 막내딸 가족을 제외하면 지금도 매주 일요일 오전 고 김인득 창업주 때부터 다니던 인사동 승동교회에 나가 예배를 들이며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김인득 창업주가 6·25때부터 승동교회에 나갔고 장남 김희철 회장도 같은 교회 장로를 지낸 바 있다.3세인 김성식 ㈜벽산 대표이사 사장도 술·담배를 일절하지 않고, 매사 성경이 판단의 기준이 될 만큼 신앙이 깊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벽산의 기독교 사랑은 가족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무식은 물론 창립기념식 등 모든 공식행사가 예배로 시작되는 ‘기독교문화’ 회사다. 국내 처음으로 직장예배를 도입한 기업으로 창립 초창기인 1956년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첫 직장예배 이후 매주 금요일 아침 8시30분(일부 계열사는 다름)부터 1시간은 본사와 각 공장, 지점, 현장별로 직장예배를 보고 있다. 기독교를 통해 임직원을 통합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평이다. 벽산건설이 19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가 무분규로 일관, 회사 살리기에 힘을 합했던 것도 기독교 문화가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jhj@seoul.co.kr ■ 오뚝이 정신으로 일군 ‘벽산 56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장33절)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손자인 김성식 사장이 맡고 있는 ㈜벽산은 최근 수년간 이 회사 주식을 사들이며 끊임없이 M&A 위협을 해온 창투사 아이베스트와 ‘적과의 동침’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 아이베스트가 구주 매출을 통해 벽산 주식 100만주를 주당 1만 5000원에에 팔고 나간 뒤 주가가 1만 1000원대까지 빠지면서 아이베스트는 시세 차익을 얻은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손해를 입어 벽산에 대한 개미들의 원성이 높았다. 특히 벽산은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아이베스트 보유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는 등 양측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대립해왔다. 이처럼 수년간 벽산을 괴롭혀온 아이베스트가 최근 대주주의 우호 지분을 자청하면서 두 회사간 구원(仇怨)관계가 일단 봉합된 상태다. 벽산그룹은 56년을 헤쳐오면서 고난도 많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내실을 다져온 기업이다. 1998년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간 분규없이 한마음으로 대처했던 혼연일체는 지금도 업계의 귀감으로 회자된다. 벽산건설의 경우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과 맺은 목표보다 50%가량 많은 244명이 명퇴했다. 자진해 나간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남은 직원들은 상여를 전액 반납해 떠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대주주도 4대1 감자를 단행하는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덕택에 2000년 회사가 흑자로 전환됐고 2002년 말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은 풋백옵션을 행사, 출자전환된 채권단 주식을 2004년 되사면서 회사를 되찾았다. 이에 앞선 지난 1992년 7월. 당시 재계 25위이던 벽산건설은 자사가 시공한 신행주대교가 준공 4개월을 앞두고 붕괴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규명되면서 대대적인 이미지 실추와 함께 영업정지, 단자사 여신 동결 등 악재가 뒤따랐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인명 사고가 없어 복구공사비 200여억원 등을 전액 부담, 재공사를 맡아 결자해지로 매듭지었다. 여전히 우환은 끊이지 않는다. 벽산건설 임원 2명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각각 회사돈 수십억원을 빼돌려 부동산 구입과 주식투자 등에 쓴 혐의로 조사를 받는 등 집안 단속 문제가 붉어져 조사 중이다. 벽산건설 관계자는 “주택 사업 이외에 토목공사 등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면서 “무엇보다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위축됐던 직원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게 가장 큰 과제다.”고 말했다. 벽산그룹 5개 계열사의 2005년 기준 총 매출은 1조 2500억원이며, 이중 벽산건설의 매출이 전체의 61%를 차지한다. jhj@seoul.co.kr ■ 벽산을 만든 전문 경영인들 벽산그룹은 올해로 56년을 헤쳐오면서 가장 훌륭한 전문경영인으로 이 회사 부회장을 지낸 정종득(65) 목포 시장을 꼽고 있다. 워크아웃 조기졸업의 일등 공신으로 지목되는 정 사장은 서울대, 산업은행, 쌍용을 거쳐 1983년 벽산건설에 이사로 입사 1994년 사장이 되면서 워크아웃의 시작과 끝을 지키는 등 벽산과 고락을 함께해온 인물. 특유의 인화력과 결단력으로 조직을 이끌며 대주주인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과 호흡을 맞췄다는 평이다.2005년 5월 시장 출마를 위해 부회장으로 위촉된 뒤 당선과 함께 회사를 떠나 지금은 공직자로 일하고 있다. 김재우(62) 아주그룹 부회장은 1997년 2월 워크아웃에 들어가기에 앞서 ㈜벽산 사장에 취임해 3년 만에 경영을 정상화시킨 능력을 인정받아 아주그룹에 스카웃된 인물. 삼성물산 출신으로 2005년까지 ㈜벽산 부회장 등을 지내며 ‘누가 우리회사 망한다고!!’‘거봐!안 망한다고 했지!!’ 등 벽산 구조조정 성공사례들을 책으로 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광주고·건국대 출신의 신광웅(63) 신동아건설 사장도 벽산건설 출신이다. 한신공영을 거쳐 지난 1995년부터 2004년 6월까지 벽산에 적을 둔 바 있다. 벽산건설 부사장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한편 지난 2004년 뇌물수수죄 재판중 또다시 뇌물수수 의혹을 받아 감옥에서 자살했던 고 안상영 전 부산시장도 벽산건설에서 부회장직을 수행한 바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열린세상] 친목회 천국,이대로 좋은가/강지원 변호사

    이나라는 각종 친목회의 천국이다. 무슨 친목회가 그리 많은지 동창회·향우회 등 음식점의 예약 명단을 보면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나는 몇년 전부터 각종 동창회·동문회·동기회 등에 발걸음을 끊었다. 그런 동문회가 어디 한 둘인가. 초·중·고교 반창회·동기회에서 시작하여 대학 학과·석사·박사 과정에 각 동기회가 있고, 또 그 각각에 총동창회가 있다. 각종 고시 동기회를 비롯한 시험동기회, 각종 연수·최고위과정 등의 동기회와 또 그곳마다 총동창회가 있다. 도대체 나 자신도 미처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각종 동문회 등에 소속돼 있는 것이다. 향우회 같은 지역친목회도 대단하다. 나 같은 경우 부모가 태어난 곳, 원적지, 내가 태어난 곳, 성장한 곳, 본적지가 모두 달라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지내지만 향우회라면 꺼뻑 죽는 이들이 또한 적지 아니하다. 한 직장, 같은 지역에서 근무했다는 등의 인연으로 결성된 ○○회,○○모임도 수없이 많다. 출신학교와 지역을 위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돼 학연·지연 등 연고주의로 나가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 고질적 병폐가 개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분야에까지 막심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그런데도 지금껏 그 고리를 끊으려는 특단의 사회적 노력은 크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부터 이를 끊기로 했다. 각종 친목회로부터 꼭 참여하라는 성화를 뿌리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마지 못해 얼굴을 내미는 경우도 있고 지금껏 무슨 감투 같은 것을 쓰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욕을 먹었다면 엄청 먹었을 것이다.‘저 사람, 너무 유명해서 보기 힘들다.’라는 말들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자식을 둘씩이나 결혼시켰는데도 두번 다 안 보여서 섭섭했다고 말씀하신 이도 있다.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난들, 어찌 그 정든 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을까. 그리고 나 역시 젊었을 적에 각종 회장·총무 등을 도맡아 해본 경험이 적지 아니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각종 친목회라는 것이 무슨 세상을 위한 공통의 관심사나 봉사를 위한 일을 한다거나, 하다 못해 자기계발을 위해 무슨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면 의미 있는 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모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그저 만났다 하면 농담따먹기나 신변잡사로 시간을 보내고, 앉았다 하면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치며 이기적인 연줄과 연고를 다짐한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말도 적합한 때 써야 한다. 학연·지연으로 뭉친 사람들이 그런 따위의 구호를 외친다면 이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죄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유의 친목 현상은 경조사를 알리는 청첩장이나 부고장으로도 나타난다. 세상에 이런 통지문들이 이렇게 난무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국가청렴위원회가 정부 각 부처를 포함한 공공기관 내 동문회와 향우회 등 연고성 모임을 억제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고 한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부처 안에 근무하면서 무슨 고교 출신, 어느 지역 출신 모여라 하는 꼴들은 부패뿐 아니라 이 나라의 패거리 작당문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나는 각종 동문회 등에 나가지 않는 대신 각종 청소년문제·여성문제 등등을 위한, 일을 위한 모임에는 열심히 나간다. 각종 동창회비 등의 납부를 끊어버린 대신 보탬이 되어야 할 대상이나 단체에 기부금을 보낸다.2001년 7월 아름다운 혼상례를 위한 사회지도층 100인 선언에 참가한 뒤로는 각종 경조사에도 불참하고 내 가족의 경조사도 알리지 않는다. 개인적 연고에 따라 인맥을 만들기보다 공익적 모임이나 취미를 위한 동호회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강지원 변호사
  • 춘천 ‘물의 도시’ 명성 먹칠

    ‘물의 도시’인 강원도 춘천시가 수돗물 수난(水難)시대를 맞고 있다. 17일 춘천시민들에 따르면 풍부한 수자원을 지니고 있는 춘천시가 지난해 수돗물 악취와 녹물소동을 겪은데 이어 최근에는 정수장으로 연결되는 취수관 파열로 이틀동안 물 공급이 끊기며 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다.●수도관 파열로 악취 고통 춘천시는 소양호와 춘천호, 의암호 등 호수에 둘러싸여 전국 최고의 청정 수자원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지난 15일 새벽 춘천시 동면 지내리 가산초등학교 인근 지하에서 소양취수장에서 소양정수장으로 연결되는 1350㎜의 상수도 취수관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파열돼 수돗물 공급이 전면 중단됐다. 수돗물 공급을 받지 못한 퇴계동, 석사동 등 춘천시내 일부지역 주민들은 이틀동안 큰 불편을 겪었다. 애막골 일대 식당가에서는 영업을 하지 못했다며 춘천시의 주먹구구식 수도행정을 성토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16일 급식을 준비할 수 있는 급수지원이 안돼 결국 학생들은 2시간 단축수업을 하고 귀가해야 했다. 춘천에서는 지난해 9월에도 무려 보름이 넘도록 수돗물에서 악취가 이어졌지만 시는 별다른 대책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했다.●문제해결 위해 집중투자 절실 춘천시 물관리 행정에 여러 허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에 대처를 할 수 있는 여유관로를 갖추지 못하고, 수돗물의 중간 보급창고 역할을 하는 배수시설도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생산한 수돗물을 일반가정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압력을 높이거나 일정량을 저장하는 배수지도 턱없이 부족해 퇴계동·석사동 등 신흥주택가는 사고가 난지 몇시간 만에 물이 끊기는 일이 발생했다. 더구나 현재 춘천시 상수도 정수시설은 1일 평균 10만㎥를 정수하는 소양정수장과 5만 3000㎥를 담당하는 용산정수장 등 2곳에 불과하다. 오는 2014년이 되면 춘천시의 물 수요량은 15만 4700여㎥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정수장 추가 증설이 시급한 실정이다. 시민들은 “깨끗한 수자원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번번이 수돗물 관리에 허점을 보이고 있다.”면서 “최소한 물관리 행정만이라도 집중투자를 통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구청장 현장인터뷰] 최선길 도봉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최선길 도봉구청장

    16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 도봉산자락에 위치한 ‘도봉실버센터’. 지난해초부터 치매·중풍 등 만성질환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인을 위해 도봉구가 운영하는 요양시설이다. 전문 의료진이 매일 노인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수지침, 발마사지, 물리치료, 그림그리기, 텃밭가꾸기 등 노인들의 재활·안정을 돕는다. 최선길(67) 도봉구청장은 이날 구슬을 꿰어 장식품을 만드는 ‘알공예’를 하는 수업장을 찾았다. 최 구청장이 노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면서 연세를 확인했다.98세 어르신도 있었다. 최 구청장도 이 곳에서는 ‘청년’축에 속했다. “고령화 시대로 들어가면서 노인이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도봉실버센터에서만큼은 스웨덴 같은 복지 선진국에서 운영되는 노인요양시설처럼 저렴한 가격에 집처럼 편안하게 머물도록 하자는 게 목적이지요.” 그래서인지 노인들은 일상복을 입는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다른 요양시설과는 다르다. 또 곳곳에 푹신한 소파와 노인들의 모습이 담긴 아기자기한 액자들이 놓여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도봉실버센터에 들어오려는 대기자만 300명이 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주민들 마음 돌려… 대기자만 300명 그러나 최 구청장의 ‘뚝심’이 아니었다면 도봉실버센터 설립은 어려울 뻔했다.“처음에 주민들이 도봉실버센터를 혐오시설이라고 해서 얼마나 반대를 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만약 잘못되는 일이 있다면 구청장직을 내놓겠다.’면서 주민을 수십차례 만나면서 설득했지요. 물론 노인복지에 대한 필요성도 얘기를 하고요.” 결국 주민들은 이같은 최 구청장의 열정을 이해하게 됐고, 지금은 일부 주민들이 도봉실버센터에서 일자리를 얻어 고맙다는 말까지 건넨다. 또 도봉실버센터에 주기적으로 오는 자원봉사자만 800여명에 이를 정도다. 다른 자치구가 실버센터를 지으려 예산까지 확보했지만 주민의 반대로 무산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생태도시 조성… 낙후 이미지 탈피 최 구청장은 ‘직업 구청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관선 동대문구·노원구·도봉구청장, 초대 민선 노원구청장에 이어 구청장만 이번이 5번째다. 일선 구청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구민들이 필요한 것을 제대로 선정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봉구가 그동안 못 사는 곳, 낙후한 곳으로 인식돼 왔지만 수려한 생태환경만큼은 서울시내에서 가장 뛰어나지요. 도봉구는 환경을 이용한 행정으로 구민들이 가장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도봉실버센터, 열린극장 창동, 창동문화체육센터, 창동문화마당 등을 만들었지만 최 구청장에게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앞으로 도봉산역 주변에 5만여평 규모의 생태숲을 만드는 등 도봉구를 생태 관광도시로 조성하는 게 40년 가까이 공직에 몸담은 ‘직업 구청장’의 꿈이다. 김유영기자 ca5rilips@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39년 경북 달성 ▲학력 서울대 수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석사) ▲약력 행정고시합격(4회), 재무부 사무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심의관, 종로·중구 부구청장, 동대문구청장, 노원구청장, 도봉구청장, 광동제약(주)사장, 초대 민선 노원구청장 ▲가족 아내 김명자씨와 2남 1녀 ▲기호식품 된장찌개 ▲좌우명 진실과 정의는 리더십을 보장한다 ▲주량 소주1병 ▲애창곡 선구자 ▲취미 등산
  • [이사람] ‘인간중심 도시’ 설계사 원제무 녹색교통운동 공동대표

    [이사람] ‘인간중심 도시’ 설계사 원제무 녹색교통운동 공동대표

    서울 광화문 10평 남짓한 한양대 도시공학과 원제무(57) 교수의 사무실. 사무실 벽에는 한강과 중랑천, 그리고 서울과 관련된 온갖 지도가 붙어 있었다. 그 위로는 메모지가 덕지덕지 도배돼 있었다. 도시계획 전문가의 방이었다. 유심히 사무실을 감상하는 데 불쑥 얘기를 건넨다.“앞으로는 중랑천이 서울시 환경정책의 화두가 될 것입니다. 청계천과 함께 ‘인간다운 도시’ 서울을 이끌 쌍두마차죠.” 원 교수는 청계천 복원사업 초기부터 참여한 청계천의 산증인이자 사람이 중심되는 ‘푸른 서울’을 꿈꾸는 도시공학가이기도 하다. ●서울을 사람중심으로 가꿔야 지난달 24일 원 교수는 교통 관련 시민단체인 녹색교통운동 공동대표에 취임했다. 녹색교통운동은 사람과 환경을 위한 교통문화를 지향하는 시민단체다. 원 교수는 앞으로 2년 동안 공동 대표로 녹색교통운동을 이끌게 된다. 도시계획·교통 전문가답게 서울의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짜내다 보니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내부순환 도로 등이 건설되면서 자동차를 통한 시내 접근성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서울이 자동차 위주로 교통체계가 이뤄져 원천적으로 교통체증과 매연이라는 부산물까지 떠 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원 교수는 “현재 서울 지하철 총 연장이 220㎞나 되지만 수송 분담률은 30%에 그치고 있다.”면서 “분담률이 60%에 달하는 도쿄 지하철과 비교한다면 투자대비 효과가 엄청나게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정작 지하철은 건설만 해 놓고 시민들을 끌어모을 고민은 부족했다는 것이다.“한 번 갈아타려면 10분 가까이 걸어야 하는 지하철을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보행권 문제도 또 다른 숙제다. 최근 고가육교가 철거되고 횡단보도가 설치되는 추세지만 여전히 사람 위주의 교통 정책은 멀기만 하다는 것. 원 교수가 꿈꾸는 서울은 ‘인간 중심도시’다. 그는 “자동차가 점령한 서울을 사람에게 돌려주고, 대중교통 체계의 효율화로 인간적인 서울을 만들어야 한다.”며 “보행자와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에 대한 정책수립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공직자들과 시민들의 의지만이 잿빛 아스팔트 도시인 서울을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청계천복원 패러다임 변화 불러 그에게 청계천은 ‘집 앞 개울’이나 마찬가지다.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고교 시절에는 당시 집이었던 신당동에서 계동 중앙고등학교까지 등·하굣길에 청계천을 끼고 다녔다. “60년대의 청계천은 ‘서울의 하수구’였죠. 천변에 통나무를 기둥삼아 서 있던 수많은 판잣집에서 온갖 오물이 청계천으로 쏟아졌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아이들은 청계천에서 미역을 감곤 했죠. 당시 유명한 윤락가인 ‘종삼’도 청계천변에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친구들과 일부러 그쪽으로 가 학교 모자를 던지는 장난도 쳤죠.” 이처럼 청계천과 학창 시절을 함께 한 그였기에 청계천 복원을 위한 청계천시민위원회에 참여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전공을 살려 교통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청계천 복개불가론’의 가장 중요한 요지도 교통문제였다. 서울 동서축의 주요 도로인 청계고가가 사라지면 도로 정체로 인한 ‘교통 대란’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은 서울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왔다. 도심을 통행하는 자동차의 숫자가 복원 전 30%로 줄어들었다. 대신 바람길과 물길은 도심으로 흘러들었다. 슬럼화됐던 청계천변으로 밤 늦게까지 인적이 끊이지 않게 됐다. 모범적인 도심재개발의 증거인 도심회귀(gentrification)가 이뤄진 셈이다. 원 교수는 “역사성 복원의 과제가 남아 있지만 청계천을 볼 때마다 마치 늦둥이를 얻은 것마냥 흐뭇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모습 화폭에 담기도 도시계획은 ‘선의 학문’이라고 한다. 지도에 선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도시정책의 틀이 한 순간에 바뀐다. 기술 행정분야 ‘꽃’으로 꼽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원 교수가 한양대 도시공학과에 입학한 것은 67년.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도시공학을 선택한 것은 인천시장 등을 거친 선친 원병의씨의 영향이 컸다. 그때는 울산중화학공업단지가 조성되던 시절. 마침 원 교수의 선친은 울산시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선친은 울산 개발현장을 찾은 미국의 도시계획 학자들의 ‘계획적인 국토개발을 위해서는 신학문인 도시계획 학자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듣고 원 교수에게 도시공학을 권유했다. 그의 또 다른 직업은 화가다. 지난해 초에 광화문에서 ‘서울의 영감, 풍경의 매혹’전이라는 이름의 작품 전시회까지 열었다. 이때 생태도시, 환경도시를 테마로 40여점의 유화를 선였다.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2년 동안 틈틈이 그린 결실이었다. 붓을 본격적으로 잡은 것은 1996년. 미술사가인 한양대 이정순 교수를 사사했다. 아울러 그는 훌륭한 문필가이기도 하다. 전시회 이름과 같은 ‘서울의 영감 풍경의 매혹’과 ‘수채화 세계도시 기행’이라는 두 권의 책을 펴냈다. 두 책에는 본인이 직접 그린 수채화도 담겨 있다. 지난해 11월 펴낸 ‘수채화’는 베를린, 바르셀로나, 워싱턴, 뉴욕 등 세계 19개 도시를 답사한 감상을 풀어냈다. 그는 향후 서울의 이상적인 변화 모델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이다.“스톡홀름은 자동차 보급률이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대중교통이 잘 발달된 도시”라며 “인구가 300만이 넘는 대도시면서도 쾌적한 생태환경을 유지하고 있어 모범사례로 꼽을 만하다.”고 말했다. 원 교수는 “낙관적인 전망과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더욱 살기 좋은 서울과 우리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밝게 웃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원제무 녹색교통운동 공동대표 ▲경기도 용인 출생(1949년) ▲서울 중앙고등학교, 한양대 도시공학과 졸업(1974년) ▲서울대 도시 및 지역계획 석사(1976년) ▲미국 UCLA 교통계획 석사(1979년) ▲미국 MIT 교통공학 박사(1983년) ▲경실련 교통정책위원회 위원장(1993년∼1994년)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2002년∼2004년) ▲청계천시민위원회 교통분과위원장(2002년∼2005년) ▲현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
  • 토종 MBA과정 5월부터 모집

    토종 MBA과정 5월부터 모집

    오는 9월부터 국내서도 국제수준의 평가인증을 받은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이 운영된다. 그동안 해외 MBA를 따기 위해 해외로 나가던 유학수요를 얼마나 흡수할지 주목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15일 경영(물류) 전문대학원 설치를 신청한 16개 대학의 자격요건을 심사해 경영 분야에 고려대·서강대·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한양대 등 6곳, 물류분야에는 인하대 1곳에 전문대학원 설치를 인가했다고 밝혔다. 학생은 5월부터 모집한다. 학교별 정원은 고려대 412명, 서강대 292명, 서울대 100명, 연세대 257명, 이화여대 140명, 한양대 260명 등이다. 고려대는 올해 야간 전문석사과정 155명을 시작으로 내년 3월 주간 전문석사과정 120명(수업연한 1년6개월), 주말 석사과정 40명을 모집한다. 서울대는 1년6개월 과정의 주간 전문석사과정 100명을 모집하고 연세대는 2년 과정의 주간 전문석사과정 100명과 2년 과정의 야간 전문석사과정 157명(내년 3월)을 뽑는다. 이 대학원들의 등록금은 연간 600만∼1200만원 정도가 될 전망이다. 교육부는 특히 현재 수업연한을 1년까지 단축할 수 있도록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작업을 진행 중이다. 따라서 법 개정 이후 원하는 대학은 1년짜리 MBA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대는 법령개정이 되면 9월부터 1년제 MBA과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부고] 김용배 前육군참모총장

    제17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용배 예비역 대장이 13일 오전 9시4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1946년 임관한 김 전 총장은 7사단장과 5군단장, 육군사관학교장,2군사령관 등을 거쳐 1965년 4월부터 1966년 9월까지 참모총장을 역임했다. 예편한 뒤 대한중석사장, 선주협회 이사장, 재향군인회 고문 등도 지냈다. 태극무공훈장과 1등보국훈장, 자유중국 보정훈장, 미국 공로훈장, 태국 1등왕관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김종한씨와 무원, 문옥 두 딸이 있다. 영결식은 15일 오전 9시30분 국군수도병원에서 육군장으로 치러지며,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 장군 묘역에 안장된다.(031)725-6061∼2.
  • 제주해상 어선전복 선원7명 사망·실종

    제주도 남쪽 해상에서 조업중이던 어선이 전복돼 선원 7명이 사망·실종됐다. 13일 제주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오전 9시20분쯤 남제주군 대정읍 마라도 남쪽 133㎞ 해상에서 통신이 두절됐던 전남 여수선적 601황금호가 전복돼 있는 것을 발견한 데 이어 오후 5시35분쯤 전복된 황금호 주변에서 4구의 시체를 발견, 인양했다. 제주해경은 이날 오전 5시20분쯤 황금호와의 통신이 두절됐다는 선단선 동성호의 신고를 접수한 뒤 경비함 4척과 헬기, 본청 광역초계기를 현장에 급파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높은 파도 때문에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승선원 명단 선장 박철호(47·전남 여수시 신기동) 박봉루(45·여수시 광무동) 이경원(35·여수시 군자동) 김성태(33·전남 광양시 진월면 오사리) 윤재섭(40·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장용준(30·강원 춘천시 석사동) 안병수(39·경기 파주시 문산읍)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구청장 현장인터뷰] 김충용 종로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김충용 종로구청장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D동 상가의 시설현대화사업 준공식이 열렸다. 지난 4개월동안 낡은 시설들을 깨끗하게 바꾸고 새단장을 했다. 구청장이 시장 안을 돌며 “시장 시설, 주변이 깨끗해졌느냐.”고 묻자, 직물을 파는 김현애(45)씨는 “시장 안이 환해졌다.”면서 “이제 손님들 기분도 상쾌해질 것”이라면서 미소로 답했다. 김 구청장이 구 의원과 상인 회장 등 관계자들과 재개장을 알리는 테이프를 자르자 상인들은 큰 박수와 환호로 답했다. 이날 김충용 종로구청장의 표정이 밝았다. 따뜻한 봄 날, 새 마음으로 시작하는 상인들도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이날 준공식을 한 동대문종합시장 D동 상가는 1971년에 문을 열었다. 줄곧 직물과 원단, 침구류 등을 파는 도·소매시장으로 의류자재 공급의 선도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유통 구조와 소비자의 구매 행태가 바뀌면서 손님이 줄었다. 김 구청장은 “구청장 출마 전 관내 재래시장에 왔을 때 파리가 날리고 상인들은 졸고 있고 손님들마저 표정이 어두웠다.”면서 “48년 전 처음 왔을 때 발 디딜 공간이 없을 정도로 북적북적했던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30년 넘게 종로에 산 토박이로 내 고장에 대한 애정이 크다.”면서 “출마하면서 평소 소신대로 재래시장을 살려 종로구 상권을 살리겠다는 공약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구청장은 취임 뒤 재래시장 환경개선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경쟁력 있는 시장들부터 개선하기 시작했다.”면서 “오는 4월 통인시장 환경개선까지 이뤄내면 관내 재래시장의 50%쯤은 환경개선이 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광장골목시장과 광장시장 등 6곳 재래시장의 환경개선작업이 이뤄졌다. 광장골목시장은 2002년 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세 차례에 걸쳐 조형물 설치 및 진입로 정비가 이뤄졌고 광장시장은 2003년 11월부터 작년 3월까지 건물이 리모델링되고 시장 내 만남의 광장이 조성됐다. 광장시장과 광장골목시장은 1905년에 개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이어서 더욱 살려야 했다고 한다. 그가 이런 사업에 애정을 두는 건 어려운 이웃을 진심으로 돕고 싶기 때문이다. 김 구청장은 어머니를 다섯 살에 여의고 아버지가 새 장가를 간 뒤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대학 시절엔 아버지가 사업으로 돈을 잃어 생활비를 못 주자 탄광에서 일하다 죽을 뻔한 적도 있고 기차에서 껌, 볼펜 등을 팔기도 했다. 그는 “어린시절 어렵게 살아서인지 힘든 이웃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구청장은 “환경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시장 활성화를 위해 관광특구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시장이 청계천 바로 옆에 있어 관광객이 음식과 쇼핑 등을 저렴하게 즐기기 좋은 장소”라고 설명했다. 실제 광장시장 먹을거리 노점들은 환경개선사업과 청계천이 복원된 뒤 매출이 3배나 늘었다고 한다. 그는 전보다 재래시장에 오는 손님들이 늘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날 김 구청장은 상인들에게 ‘시장을 쾌적하고 경쟁력 있게 해 줘 상인 모두가 감사한다.’는 감사패를 받았다. 그는 “구청장 출마 때 약속을 지킨 것뿐”이라면서 “잘 협조해 준 상인들이 오히려 더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관내 재래시장에 대한 관광특구 지정도 꼭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39년 강원도 영월 ▲학력 충북 제천고, 경희대 약학과 졸, 고려대 정책대학원 최고위과정 수료,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석사학위), 경남대 북한대학원 민족공동체지도자과정 수료, 국민대 정치대학원 재학중 ▲약력 종로구 약사회장, 대한약사회 이사(현), 옥광약국 경영(현), 종로신문사 발행인 겸 편집인,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 부회장(현), 밝은 사회 중앙클럽 회장, 경남대 북한대학원 민족공동체지도자과정 총동창회장(현) ▲가족 아내 최복연씨와 1남 3녀 ▲기호음식 된장찌개 ▲좌우명 바르게 살자, 웃어른을 공경하자 ▲주량 소주 한 병 ▲애창곡 아빠의 청춘 ▲취미 국선도 단전호흡
  • 영문판 ‘한국의 산수화’ 펴내

    한국학 중앙연구원 명예 교수이자 한승주 전 주미대사의 부인인 이성미(67)씨가 우리 나라 산수화(山水畵)의 역사와 변천 과정을 소개한 영문책자를 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권인혁)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한 한국 문화 소개시리즈의 일환으로 제목은 ‘한국의 산수화’(Korean Landscape Painting;Continuity and Innovation through the Ages·한림출판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동양미술사 석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한승주 대사의 미국 근무시절인 지난 2004년엔 ‘내가 본 세계의 건축’개정판을 내기도 했다. 총 221쪽 분량의 이 책자에서 이 교수는 묘지석이나 벽돌에 산수그림을 그려넣던 삼국시대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한국 산수화의 발달사를 통사적(通史的)으로 기술했다. 또 한국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회화사의 변천을 중심으로 산수화의 변화를 집중 조명, 그 의미를 되새겼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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