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석사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의사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복수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인상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치료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108
  • 공무원 영어선생님

    “노가다(막노동) 하다 워낙 품삯을 많이 떼여 월급 꼬박꼬박 받고 싶어 공무원이 됐습니다.” ‘국가와 민족에 봉사하기 위해 공무원이 됐다.’는 입에 발린 소리를 늘어놓는 여느 공무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괴짜 공무원은 공부가 싫어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독학으로 석사 학위까지 받았으며, 지금은 남을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제자’는 내로라하는 부처들의 공무원들이다. 주인공은 법제처 법제정보협력담당관실 박병태(50) 서기관이다.●공부 싫어서 초등학교만 졸업 박 서기관은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부가 싫어 무작정 대구로 갔다.”면서 “철공소에서 쇠 깎는 일이 오히려 적성에 맞았다.”며 미소지었다. 그는 1976년과 1977년에 각각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잇따라 합격했다.‘공부에 한이 맺혔던 게 아니냐.’는 물음에 손사래부터 쳤다. 그는 “주변에서 사관학교는 학비가 없으니 시험이라도 보라고 권유해 검정고시를 준비한 것일 뿐”이라며 멋쩍어했다. 1977∼1979년 병역 의무를 마치고 고향을 찾았다. 하지만 공부는 여전히 관심 밖이었다. 두번째 선택한 직업은 막노동이었다. 그러다가 방향을 틀었다.1990년 7급 공채시험에 합격, 늦깎이 공무원이 됐다.“1985년에 결혼까지 했는데, 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너무 많아 공무원시험을 보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했다. 1997년에는 독학으로 학사(법학) 학위도 받았다. 그는 “아내가 ‘공무원은 국비 유학도 많이 가는데, 당신은 뭐냐.’는 핀잔을 한 게 계기”라면서 “유학을 가려면 학사 학위가 있어야 된다고 해서 취득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2000년 유학길에 올라 2년 뒤 미국 시라큐스대학 맥스웰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제도권 교육으로 다시 돌아오는 데 40여년이 걸린 셈이다. 유학 생활은 그의 삶을 바꿔놨다. 미국 현지에서 한국인에게는 영어를, 미국인에게는 한국어를 지도했다. 귀국해서는 2003년과 2004년에 각각 ‘영어회화학습법, 진단과 처방’,‘8시간 6일이면 영어회화 정복한다’ 등 영어 관련 책까지 펴냈다.●영어책 발간… 토익·텝스 강의 지난해부터는 법제처·교육인적자원부·행정자치부·국회사무처 소속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토익·토플·텝스 등 영어시험 특강도 하고 있다. 정작 본인은 유학에 앞서 토플시험만 한 번 봤을 뿐, 토익이나 텝스는 응시조차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영어의 기본체계를 이해하기 위해 해부학까지 공부했다.”면서 “해부학적 관점에서는 영어교육을 어릴 때부터 장기간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어와 영어처럼 언어체계가 다를 때는 모국어를 익힌 후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영어에 대한 열정은 업무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교육부가 추진한 ‘글로벌시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영어교육 혁신방안’이라는 연구용역에도 참여했다. 현재 입법 추진 중인 ‘영어교육진흥법’ 작성을 주도한 이도 바로 박 서기관이다. 법안에는 ▲균형 있는 말하기·듣기·쓰기·읽기 교육 ▲토익·토플을 대체할 자체 영어인증시험 개발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세계에 우리 민화 알리고 싶어”

    “어렵게 공부한 만큼 끝까지 공부해 민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30년 전 8남매의 종갓집으로 시집 온 맏며느리가 전통예술 학사학위를 받았다. 주인공은 26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회 학점은행제 학위수여식’에서 특별상을 받은 서민자(53)씨. 그는 “어릴 때부터 품어온 미술에 대한 꿈을 펼치게 돼 정말 기쁘다.”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서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5남매의 맏이로 동생들을 위해 공부를 포기해야 했다.23살에 결혼했지만 남편은 8남매의 맏이, 그것도 종갓집이었다. 남편은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시누이와 시동생 뒷바라지에 자녀교육이 더 급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그의 열정은 마음 한 편에서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었다.1995년 서울 도봉구민회관에서 민화 강좌를 들은 것을 계기로 민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 국내외 전시회를 여는가 하면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회원, 한국 민화작가회 감사, 전통미술대전과 한국미술제 추천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명지대 사회교육원 전통공예학과에서 3년 반 만에 학위를 받기까지는 어려움도 많았다.10년째 골다공증으로 고생하는 시어머니 병 수발 틈틈이 한복에 그림을 그리는 아르바이트 수입을 아이들의 학비에 보탰다. 지금은 집 옥상에 15평 크기의 화실을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서씨의 향학열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올해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불교예술문화재과 석사과정에 등록했고, 민화로 박사학위까지 받겠다는 각오다. 다음달부터 성신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민화 강의도 맡는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인터넷 중독이 자살 부른다

    인터넷 중독이 청소년들의 자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학위 논문에서 확인됐다. 고려대 보건대학원 전은령씨가 25일 발표한 석사 논문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과 우울 및 자살 생각과의 연관성’에서다. 조사 결과, 인터넷 중독이 자살, 우울 등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지난 22일 인터넷 게임을 하지 말라는 부모의 꾸중을 들은 고교생이 자살하는 등 최근 청소년 자살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인터넷 중독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내 4개 학교 중·고등학생 52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하루 3시간 이상 인터넷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3시간 미만을 사용하는 학생들보다 통계적으로 자살과의 상관 관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컴퓨터 사용 시간의 경우 3시간 이상 사용한다는 응답자가 전체 15.1%인 79명에 달했다.1∼2시간이 35.4%(186명),2∼3시간 19.2%(101명) 등이었다.1시간 이내는 30.3%(159명)였다. 컴퓨터 사용 시작 시기는 초등학교 4∼6학년이 53.3%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초등학교 1∼3학년 35.4%, 중학생 6.9%, 취학전 4.4%의 순이었다. 이용 목적은 오락·게임이 56.2%로 가장 많았고, 정보검색·학업 30.5%, 친구 만들기 3.6% 등이었다. 인터넷 중독 가능성이 가장 큰 ‘고위험 사용자군’은 응답자의 2.3%(12명)였고,‘잠재적 위험 사용자군’도 12.2%(6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험 사용자군의 경우 83.3%가 3시간 이상 컴퓨터를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위험군과 잠재위험군 중 남학생은 49명, 여학생은 27명으로 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해 인터넷 중독 가능성이 두배가량 높았다.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 달에 1번 이상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응답자가 무려 28.0%(137명)에 달했다.‘전혀 없다.’는 응답자는 48.2%(253명)이었다. 구체적으로 한 달에 1번은 10.7%(56명), 한 달에 2∼3번 7.8%(41명), 일주일에 1번 3.8%(20명), 일주일에 2∼3번 2.7%(14명), 거의 매일은 3.0%(16명)였다. 전씨는 “인터넷 중독이 심한 군일수록 우울 점수와 스트레스 점수, 자살생각 점수가 높았다.”면서 “스트레스는 인터넷 중독과 우울에, 인터넷 중독은 우울에, 우울은 자살 생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스트레스는 우울과 자살 생각에, 인터넷 중독은 자살 생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中 두뇌’ 고국 등진다

    ‘中 두뇌’ 고국 등진다

    최근 중국의 사회과학원은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두뇌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80년대 이후 해외로 나간 인력의 3분의 2가 귀국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2002년 이후 매년 10만명이 유학을 떠나지만 귀국자는 2만∼3만명에 불과하다. 중국은 해외 인력 유치를 위한 지원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하지만 ‘타향의 삶’을 택한 유학파들이 쏟아놓는 고국에 대한 ‘소회’는, 현재 중국의 상황에서 인력 유출 흐름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영국 BBC는 21일(현지시간) 해외체류를 택한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초강대국 부상을 앞둔 중국에 던지는 화두를 짚었다. ●“마오이즘 대체한 황금 만능주의…견딜 수 없었다.” 80년대 초반 유학 1세대로 싱가포르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딴 뒤 여러차례 고국행을 꿈꿨던 밍왕.2001년 자신의 ‘사업 보따리’를 들고 귀국했다. 엄청난 경제발전에 감동했지만, 좌절만 안은 채 싱가포르로 돌아왔다. 그는 “마오이즘은 황금만능주의로 대체됐고, 나도 함께 부패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중국인의 도덕성은 파괴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사회의 부정에 대해 무감했다고 했다.13살 때인 2000년 산시성에서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온 대학생 멩지는 2004년 중국을 잠시 방문한 경험이 해외 체류의 삶을 택하게 된 계기였다고 전한다. 부모들이 조국을 떠나기 전 진저리친 관료주의와 부패상을 그대로 다시 목도했다는 것. 중국의 교수 월급이 2000위안(약 258달러)에 불과한 지식인 사회의 경제 현실도 꼬집었다. 그는 “친구들(중국인 대학생) 중 귀국하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이 고급 두뇌들의 귀국을 원한다면 “‘국민들을 억압에 견딜 수 있도록 고안된 기계’로 취급하는 대신, 비판적인 사고와 기업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결국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한 것일 뿐이다” 영국에 유학온 펭리는 해외체류파에 대해 비판적이다. 상하이 인근 지역 출신으로 2004년 영국에 온 그는 석사학위를 수료한 뒤 지방의회의 정책 담당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펭리는 “80·90년대 해외체류를 선택한 이들은 중국의 가난 때문이었다.”면서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라이프 스타일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체류파들은 귀국후 실패에 대한 두려움, 성취물에 대한 집착 등 인간본성에 충실한 것일 뿐”이라고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17년의 해외생활 끝에 2년 전 귀국한 왕리는 현실론을 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그는 “중국이 해외유학파들에게 환상적인 기회를 줄 수 없는 개발도상국임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해외체류 인재들은 장기적으로는 중국을 위한 해외의 창(窓), 투자 유입세력, 새로운 아이디어의 제공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불붙는 선진국의 교육개혁] “일본교육 빈부 양극화 심각 여유교육 실패 결론은 무리”

    |도쿄 이춘규특파원|6년반동안 일본의 교육을 현장에서 지켜본 주일 한국대사관 이진석 교육관은 “일본 교육은 우리의 교육과 유사한 점들이 많아 교육정책 현안도 유사하다.”고 전제하면서 일본 공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정부차원의 학력증진 노력을 소개했다. 이 교육관은 나고야대학에서 비교교육학 석사 과정도 마친 일본 교육분야의 전문가다. ▶아베 정권의 교육개혁방안은. -크게 제도적 개혁과 교육내용 개혁 등 두가지로 나뉜다. 제도개혁은 무능교원 퇴출이 핵심내용인 교원평가와 학교평가, 그리고 학생평가라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학교평가는 우수학교 모델을 확산하고, 처진 학교는 재정지원을 늘리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여유있는(유도리) 교육으로 인해 학력이 떨어졌다며 교육내용을 밀도있게 하자는 개혁도 추진하고 있다. 과거 회귀라는 비판도 있어 결말이 주목된다. ▶인격이나 정서적인 교육 문제는. -이지메(집단학대)나 문제아동의 적절한 조치는 가정, 학교, 지역사회가 3위일체가 돼야 해결할 수 있다며 3자간 커뮤니케이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지메가 줄지 않고 있다. ▶현장서 느낀 일본 공교육 문제는.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심하다. 교육도 양극화를 통해 사회적 차별화가 고착화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이를 체념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우리 국민의 상승욕구가 강한 것과 대비된다.(그러나 요센사가 출판한 ‘교육격차 절망사회’라는 책은 교육격차가 절망을 부르고, 절망은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주5일제 수업 폐지론이 나오는데. -주5일제 수업이 도입될 때 구호는 ‘가정의 교육력 회복’ 이었다. 당시 부모들의 직장은 5일제가 먼저 이뤄져 쉬는 부모에게 아이들을 돌려줌으로써 여행, 공부 등을 통해 가정의 교육력을 회복시키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교육력 제고는 되지 않았다. 인성교육도 이지메가 는 것을 보면 실패한 것 같다. 그래도 주 6일제로 돌아가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유도리 교육은 실패인가. -결론짓기 어렵다. 학력이 저하됐다는 것은 문부성 판단이다. 인성교육의 가시적 성과도 안 나타나고 있다. 두마리 토끼를 놓친 격이다. 이에 아베 정부는 지난해 10월 총리 직속의 교육재생회의를 설치, 교육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taein@seoul.co.kr
  • 어머니는 박사… 아들은 석사

    한날 같은 대학에서 박사와 석사학위를 나란히 취득하는 모자(母子)가 있어 화제다. 19일 조선대학교에 따르면 정옥란(62·여), 이성민(29) 모자는 오는 23일 열리는 학위수여식에서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나란히 받는다. 공부에 있어 ‘경쟁자’이자 ‘동반자’인 이들 모자 가운데 앞서간 쪽은 ‘남북한의 어휘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 어머니 정씨. 정씨는 고교를 졸업하고 5년간 체신공무원으로 일하다가 1970년 조선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잠깐 교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불붙은 향학열을 식히지 못해 1997년 서강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이어 조선대 국어국문학과 석사·박사과정도 차례로 거쳤다. 특히 정씨는 남편인 이강옥 조선대 경영학부 교수와 함께 중국 베이징대에서 침술사 자격증까지 땄다. 정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절로 힘이 나는 것 같았다.”면서 “박사논문을 쓰면서 ‘내가 왜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정씨에게는 아들 이씨의 석사학위 논문이 더 값지다. 이씨는 조선대 문예창작학과를 거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김종삼 시인의 기독교적 상상력’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는다. 다음 학기에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정씨는 “열심히 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자극제가 됐다.”면서 “훌륭한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어린이책꽂이]

    ●최초의 인간은 누구였을까(박용기 지음, 길벗어린이 펴냄) 인류의 조상과 고인류학자(일명 화석사냥꾼)들의 이야기. 인류는 최소한 500만년 전부터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그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등 진화를 거듭하며 오늘날 우리가 된 것.500만년을 살아온 인류는 앞으로도 지구를 지배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류가 살아온 과거에서 답의 실마리를 찾는다.8500원. ●붉은 땅의 기억(장안거 지음, 홍연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 1966년 시작돼 1976년 막을 내리기까지 10년 동안 중국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문화대혁명을 다룬 그림책. 마오쩌둥은 ‘흑오류(문화대혁명 시기 청산 대상이었던 지주계급·부농·반혁명분자·범죄자·우파분자)’를 비판하며 새로운 사상은 ‘홍오류(빈농, 노동자, 혁명간부, 군인, 혁명유가족)’에 있다고 강조했다.1만 1000원. ●십이야(브루스 코빌 지음, 임후성 옮김, 미래M&B 펴냄) 셰익스피어의 희극 중에서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읽고 공연하는 ‘십이야’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다시 썼다. 오시노 공작, 올리비아, 바이올라를 중심으로 한 사랑이야기와 술주정뱅이 토비경, 소심한 겁쟁이 앤드루경, 영악한 시녀 마리아, 똑똑한 척하지만 실제론 어리석은 말볼리오 집사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희극적인 이야기로 구성됐다. 십이야는 크리스마스 날로부터 세어 12일째가 되는 1월6일 밤이다.1만 2000원. ●늘 푸른 역사가 신채호(김남일 지음, 창비 펴냄)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단재 신채호는 다층적인 인간이다. 단재는 중국사와 왕조사에 매몰된 사관을 폐기하고 한국사·민중사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또한 웅혼한 필치의 명문을 쏟아낸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이 책은 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춰 때론 단재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나약하고 흔들리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망명지의 단칸방에서 쓰린 속을 부여잡고 막막해하는 모습 등을 소개한다.1만 2000원. ●인현왕후전(한상남 지음, 어린이작가정신 펴냄) ‘한중록’‘계축일기’와 함께 조선 3대 궁중문학으로 꼽히는 ‘인현왕후전’을 알기 쉬운 현대어로 고쳐 썼다. 사대부 집안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왕후로서의 덕을 갖춘 인현왕후 민씨는 15세에 숙종의 두 번째 왕비로 궁에 들어온다. 그러나 여러해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한데다 희빈 장씨의 갖은 모략으로 중전의 자리를 위협받고 결국 폐위되고 만다.8500원.
  • 배꼽티 입으면 허리 굵어진다

    배꼽티 입으면 허리 굵어진다

    허리가 노출된 ‘배꼽티’를 입으면 허리가 굵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14일 서울대 의류학과 염정하씨의 석사논문에 따르면 선선한 날씨에 허리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성은 불감증설량(일정시간에 몸에서 증발되는 수분량)이 증가해 체중은 감소하는 반면 허리의 피하 지방층이 두꺼워져 허리 둘레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염씨는 여대생 6명을 섭씨 19도의 서늘한 환경에서 팔 노출(민소매)ㆍ다리 노출(짧은 바지)ㆍ허리 노출(배꼽티) 등 3가지 의복 형태에 따라 2명씩 나눠 실험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실험은 식습관과 수면량 등을 통제한 상태에서 부위별 피부 온도ㆍ에너지 대사량ㆍ불감증설량ㆍ심박수ㆍ피하지방층 등 10가지 항목에 대한 측정으로 이뤄졌다. 불감증설량은 4주 동안 1주 3차례씩 총 12차례, 다른 항목은 실험 초기와 말기에 각각 2차례씩 측정됐다. 다리를 노출한 여성들의 불감증설량은 실험 초기 단위면적(㎡)당 17.3g에서 15.3g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비해 허리를 노출한 여성은 17.1g에서 17.7g으로 늘어나 배꼽티를 입은 여성들의 체중이 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다리를 노출한 여성은 허리 피하 지방층이 8.4㎜에서 8.1㎜로 약간 얇아졌으나, 배꼽티를 착용해 허리를 노출시킨 여성은 허리의 피하지방층이 7.1㎜에서 7.7㎜로 두꺼워진 것으로 조사됐다. 혈압 역시 배꼽티를 입은 여성들은 실험 초기에 73.1∼108.0㎜Hg이었지만 실험 말기에는 74.7∼109.5㎜Hg으로 높아져 불리한 생리적 반응이 일어났다. 염씨는 “피하지방이 발달한 여성은 특정 신체 부위가 서늘한 날씨에 정기적으로 노출되면 피하 지방층이 두꺼워진다.”면서 “배꼽티를 입어 허리 부위가 노출된 여성은 허리둘레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금연 3년 지나면 사망위험 40%감소”

    “금연 3년 지나면 사망위험 40%감소”

    흡연자는 최소 3년 이상 담배를 끊어야 사망률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설을 앞두고 금연을 결심한 흡연자들은 긴 안목에서 금연을 실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13일 인하대병원 가정의학과 김경우 교수는 서울대 의학과 석사학위논문 ‘금연에 의한 총 사망률 감소 효과’에서 “금연 기간이 2년 이하인 남성은 흡연을 지속하는 사람과 사망률에서 거의 차이가 없었지만 금연 기간이 3년이 넘으면 사망 위험도가 40%나 줄었다.”고 밝혔다. 그는 1995년 5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한 대학병원 건강증진센터를 방문한 남성 1만 8890명과 여성 1만 7556명을 평균 5년 동안 관찰했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남성 49.6세, 여성 50.4세였고 흡연율은 남성 47.5%, 여성 5.3%였다. 관찰 기간 동안 남성 285명, 여성 189명이 사망했다. 논문에 따르면 사망 요인 가운데 연령, 성별, 체중, 운동, 음주의 영향은 제외하고 분석한 결과, 하루 1갑 이상씩 15년 넘게 담배를 피운 남성은 비흡연자에 비해 사망 위험도가 1.60배, 여성은 2.83배에 달했다. 하루 1갑 이하씩 15년 이하 흡연한 남성도 비흡연자에 비하면 사망 위험도가 1.49배, 여성은 1.65배 높았다. 조사 대상 가운데 계속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끊은 사람들의 사망률을 비교했을 때 금연을 시작한 지 3∼9년이 지난 남성은 사망 위험도가 0.60배로 40%나 떨어졌고 담배를 끊은 지 10년 이상 지난 경우 0.58배로 더 떨어졌다. 그러나 금연 경과 기관이 2년 이하인 남성은 흡연자에 비해 사망 위험도가 5%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우 금연 경과 기간이 각각 2년 이하,3∼9년,10년 이상이었을 때 흡연자에 비해 사망 위험도가 각각 1.87배,0.69배,0.89배였다. 여성 흡연자는 전체 조사 대상자의 5%에 불과해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금연 기간에 따른 사망률 차이가 의미있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망 위험은 남성보다 높았다. 김 교수는 “금연한 지 2년 이하 사람들의 사망 위험도가 흡연자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질병이 생겨서 뒤늦게 금연을 한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금연 기간이 2년 이하라도 질병 발병률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정희성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정희성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문단의 어른으로서 뜻하지 않게 후배들의 반발에 밀려 중요한 결정을 미루는 상황을 맞게 된다. 오직 한길로 35년을 봉직하던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한다.’이런 상황이라면 시인이 아니라도 섭섭하거나 아쉽거나, 혹은 착잡해지거나 감회에 젖어 많은 말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정희성(62)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이사장은 그러지 않았다. 작가회의 명칭 변경이 무산된 데나, 평생을 지켜온 일터를 떠나게 된 데 대해서 시인은 의외로 평화롭고 담담했다. 맑은 얼굴에 자분자분한 말투. 서울 아현동, 난방도 잘 되지 않는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난 정 이사장은 과작(寡作) 시인답게 말수도 적었다. ▶정관 개정이 무산됐는데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무산이 아니라 찬반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걸려 결정을 못한 것이지요.24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명칭개정 소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거쳐 결론을 내겠습니다. ▶작년 1월 이사장에 취임했을 때는 ‘민족문학’이란 용어를 떼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셨는데 그 사이 생각이 변한 겁니까.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분단 상황에 있기 때문에 민족문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 측면에서 보자면 오랫동안 남북작가회담을 추진해 온 결과, 작년 10월 금강산에서 남북한과 해외문학인들을 포괄하는 ‘6·15 민족문학인협회’가 결성됐습니다. 민족문학에 분명한 전기가 마련된 셈이지요. 그래서 민족문학은 이 틀에서 다루게 두고, 우리는 명실공히 한국문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단체인 만큼 포용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침 젊은 작가들도 그런 생각을 해왔던 모양입니다. ▶‘민족문학’이란 이름으로는 전체를 포용할 수 없을까요. -작가회의는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발했고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확대 개편된 지 2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해 온 이미지 때문에 국내에서는 ‘강성’‘좌파’로 몰리는 반면,‘세계작가와의 대화’ 등 국제교류를 할 때는 ‘내셔널’이란 명칭 때문에 극우 민족주의단체로 오해받아요. 또한 요즘 젊은 작가들은 ‘민족문학’개념으론 포섭될 수 없는, 너무도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을 수용해야 합니다. 총회 석상에서는 ‘문학은 포기해도 민족은 포기 못한다.’는 발언이 나왔지만, 문학이 민족문제만 다뤄야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또 문학을 버리고 어떻게 민족문제를 얘기할 수 있을까요. ‘민족문학론’을 주창했던 백낙청 상임고문이 명칭개정에 찬동하고 있는 이때, 일부 후세대 작가들이 이에 집착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백 교수는 군사독재 시절 민족적 위기의식의 소산으로서 ‘민족문학론’을 전개했다. 민주주의 쟁취와 민족통일을 양대과제로 내세운 한시적 개념이었다. 백 교수는 이제 진영개념으로서 민족문학론은 내실을 잃었다고 보고 새롭게 ‘한국문학론’을 제시한다. 민주화는 완수됐고,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으로 분단체제도 극복단계에 접어들었으므로 진정한 국민문학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잠시 귀국했던 작가 황석영은 작가회의에 대해 “조직이든 집이든 사람이 만든 것은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 친목회 정도의 기능만 남았다면 ‘해소’하는 것도 하나의 역사적 과업”이라고 일갈하고,“분단체제는 남북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라는 확장된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작가는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고 절차상의 문제도 있었던 만큼 심도있는 논의와 우편투표 등의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 가겠다고 했다. ▶정든 교직을 떠나시는데 감회가 어떠신지요. -교직 35년, 문단 37년이니 두 경력이 비슷합니다. 그동안 제자 1만명, 시집 4권에 결혼하여 아이 둘을 길렀으니 행복했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엄혹한 시기에 용의주도하게 살았다고도 생각됩니다.70∼80년대 주목받던 저항시인으로 1979년 세계시인대회 시위,1980년 지식인선언 등에 참여하거나 잡혀갔는데도 자신은 훈방되거나 해직되지 않았다. 아마 대학교수가 아니라 고교교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자신이 쓴 시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고무돼 시위에 나서고, 한 여고교사는 시 ‘아버님 말씀’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가 선동죄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괴로움이었다. 용의주도하게 살았다는 말은 이런 책임의식 때문인 듯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도 고교교사로 남겠다며 학위논문을 내지 않았다면서요. -대학교수가 희망이기는 했어요. 그러나 1972년 논문만을 남기고 상아탑에서 나왔을 때는 가파른 유신시절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직장에서 쫓겨났고,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문학적 관심이 걷잡을 수 없이 달라졌고, 이런 관심에 대한 해답이 아닌 다른 논문은 쓰고 싶지 않아 포기한 거지, 그렇게 깊은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이후 문예창작과가 많이 생기면서 기회가 또 있었지만 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후회되지 않느냐니까 “대학교수가 되면 시가 안 좋아지더라.”는 말로 대신했다. ▶이사장의 시에는 그 시대의 현실과 급소가 생생하게 표출됩니다. 그런데 요즘의 시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무뎌지신 건가요, 생각이 달라지신 건가요. -가파른 시대에는 쓰지 못했던 사랑에 관한 시들이 많아졌습니다.2000년대 9·11테러 이후에는 평화에 대한 염원을 많이 담고 있지요. 무뎌진 점도 있겠지만 관심의 확장으로 봐 주기 바랍니다. 독자들도 옛날 독재정치에 항거할 때처럼 주먹 쥐고 하는 얘기들은 못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또한 현실 문제는 그 시대의 가장 젊은 문인들에 의해 잘 포착될 것입니다. 퇴임식 때 다섯번째 시집을 내 동료교사들에게 선물하고 싶었지만 결국 편수를 못메워 싱거운 기념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백령도를 다녀와 40행이나 되는 시 ‘몽유백령도’를 썼다. 짧아지던 시가 예전의 호흡을 다시 회복해가는 듯한 느낌이라 기쁘다. 문학은 인간다운 삶을 살자는 데에 그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 이사장이 저항의 시를 썼던 것도, 이제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것도, 작가회의가 명칭 변경을 논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히 진행되는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정희성 그는… 1945년 경남 창원 출생(만 62세). 공무원인 부친을 따라 충남, 대전, 이리, 여수를 다니며 살았다. 용산중고등학교와 서울대 국문과를 나왔다.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탁목조’가 당선돼 등단했다.1972년 서울 숭문고 국어교사로 부임해 35년간 재직하고 그제 정년퇴임했다. 글을 쓸 생각이면서 국문과에 입학한 것은 고전문학을 공부해 전통의 바탕에서 창작을 하리라는 계획에서였다. 첫 시집 ‘답청’(1974)’은 그의 생각대로 ‘고전적인 전아함’을 갖춘 시들로 꾸몄다. 그러나 1972년 유신체제에 접어들고 친구들의 해직과 투옥을 접하면서 완전히 다른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나온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에는 칼칼한 저항의 목소리가 담겼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로 시작되는 시 ‘저문강에 삽을 씻고’는 어두운 현실을 처절한 서정에 담아 형상화한 대표작이다.“증오에 대해서/나도 알 만큼은 안다/이곳에 살기 위해/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싸우다 죽은 내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가….”란 시구처럼 ‘공격적이고 거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자신은 시대가 현실주의자를 만들었지 본질적으로는 천진한 낭만주의자라는 생각이다. 네번째 시집 ‘시를 찾아서’(2001년)는 이런 면모를 엿보게 한다. 김수영문학상, 시와시학상 수상.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시절부터 반독재 문학단체에 몸담아 2006년 1월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되었다. yshin@seoul.co.kr
  • 대학원생 SCI논문 1년 15편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한 해 동안 과학기술논문색인(SCI)에 등재된 국제 학술지에 15편의 논문을 게재해 눈길을 끌고 있다.6일 서울대 농생대에 따르면 산림과학부에서 환경재료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수민(32)씨가 지난해 SCI급 학술지에 논문 15편(제1저자 논문 10편)을 게재한 데 이어 현재 7편의 추가 게재가 확정됐다.서울대 이공계 교수의 1인당 연간 SCI급 논문 게재(2005년 기준) 수는 3.47편이었다. 양질의 SCI급 논문을 쏟아낼 수 있었던 비결로 김씨는 풍부한 현장 경험을 꼽았다. 특히 2001년 서울대 임산공학과(환경재료학과 전신) 석사 과정 입학 당시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박사과정 진학을 앞두고 관련 업계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김씨는 “회사 생활 때문에 마음대로 연구를 할 수 없었지만 현장에서 느낀 다양한 아이디어는 풍부한 논문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는 14일 박사 과정 수료를 앞두고 있으며, 미국 미시간주립대 ‘박사 후 과정’(Post Doctor)에서 새집증후군 저감 내장재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우리말 지킴이’ 방송인 정재환씨 한글연구로 석사학위

    ‘우리말 지킴이’로 널리 알려진 방송인 정재환(46)씨가 4년 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오는 26일 성균관대 사학과 대학원에서 한글 역사와 관련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는다. 6일 성균관대에 따르면 정씨가 쓴 ‘이승만 정권 시기 한글 간소화 파동 연구’라는 석사논문은 1953년부터 2년 동안 이어진 한글간소화 파동을 주제로 삼았다.53년 10월 이승만 정권은 이미 널리 보급된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 대신 소리나는 대로 글을 표기하는 옛 철자법을 사용하라고 국무총리 명의의 ‘한글 간소화’ 공포를 했다. 개화기 성경 표기법을 근간으로 한 옛 철자법을 따르면 ‘갔다’는 ‘갓다’로,‘꽃밭’은 ‘꼿밧’이,‘받침대’는 ‘밧침대’가 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학계와 국민의 저항이 심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1955년 9월19일 간소화 철회 담화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정씨는 논문에서 “한글학회 표기법이 정해진 33년 이후 해외에서 오랜 생활을 한 이승만 대통령이 표의주의에 입각한 변화된 철자법을 이해하지 못한 데 간소화 파동의 배경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위해 정씨는 당시 신문에 실린 수년치 기사와 관련 문헌을 뒤져보는 것은 물론 미공개 상태에 있던 51년 10월부터 56년 5월까지의 한글학회 이사회 회의록을 발굴해 기초 자료로 삼는 등 온갖 노력을 했다. 정씨는 “말 문제는 역사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주제”라면서 “박사 과정에서 공부를 계속해 우리말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어린이책꽂이]

    ●네모의 이집트 여행(니콜 바샤랑 등 지음, 이수련 옮김, 사계절 펴냄) 이집트는 그리스, 베트남, 중국, 한국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약탈 문화재가 많은 국가군에 속한다. 세계 20여개 나라에 10만여점 이상의 국보급 문화재가 떠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이집트의 문화유산이 서구 열강에 약탈당하고 파괴된 역사를 이야기하며 약탈의 상징인 ‘박물관 제국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여행을 통한 자아 정체성 찾기와 성장’이라는 컨셉트의 청소년 교양소설.1만 2000원. ●위대한 사람들73(페데리카 마그린 지음, 음경훈 옮김, 을파소 펴냄) 아프리카에 있는 세나라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사이에는 빅토리아 호수라는 거대한 저수지가 있고, 잠베지 강에는 빅토리아 폭포가 있다. 이 이름은 불가사의한 인물인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아프리카를 항해하면서 붙인 것이다.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은 1876년에는 ‘인도의 황제’라는 칭호도 얻었다. 이 책에는 최초의 여성 파라오는 누구일까,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작품 ‘피에타’는 몇개가 있을까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실렸다.2만 2000원. ●박물관에서 놀자(윤소영 지음, 거인 펴냄) 지옥에 떨어져 아귀가 된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제사상을 차린 목련존자의 이야기가 담긴 ‘보석사 감로탱화’, 화성릉 행차길에 어머니에게 직접 음식을 갖다 드리는 정조대왕의 효성을 엿볼 수 있는 ‘시흥환어행렬도’등 그림을 통해 생생한 지식을 전해준다. 옛 유물들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원본 도판 안에 여러가지 숨은 그림을 배치해 눈길을 끈다.1만 1000원.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구비문학(김문태 지음, 산하 펴냄) 일반적으로 구비문학은 설화, 민요, 판소리, 무가, 가면극 등으로 구분된다. 확인될 수 없는 이야기를 사실처럼 전해주는 설화는 신화·전설·민담으로 나뉘는 옛날이야기이고, 민요는 노동요·의식요·유희요로 나뉘는 옛노래다. 판소리는 광대가 고수의 북장단 소리에 맞춰 이야기를 소리와 아나리로 엮고 발림을 곁들여 전하는 민속악. 저자(상명대 연구교수)가 직접 채록했거나 구수한 입말로 재구성한 이야기를 통해 현장감을 느끼도록 했다.1만 2000원. ●아멜리아에서 조라까지(신시아 친 리 지음, 안기순 옮김, 소담주니어 펴냄) 비행사 아멜리아 이어하트, 컴퓨터 분야의 개척자 그레이스 호퍼, 천문학자 시실리아 페이네가 포슈킨, 전미 농업노동조합을 설립한 돌로레스 후에타, 체로키 국가의 추장 윌마 펄 맨킬러, 소설가 조라 닐 허스튼 등 26명의 여성 위인들의 삶을 소개.9800원.
  • “세상만사가 공부처럼 뿌린대로 거뒀으면”

    “세상만사가 공부처럼 뿌린 만큼 거뒀으면 좋겠습니다.” 2일 오전 서울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5회독학사 학위수여식’. 경영학 독학사 학위 증서를 받아든 연도흠(42)씨는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17년 만이었다. 직업군인인 연씨가 독학사에 도전하게 된 것은 25살때인 1990년이었다. 노력하면 누구나 학사학위를 딸 수 있다는 소식에 주저하지 않고 도전장을 내밀었다.4단계에 거쳐 23과목을 통과해야 하는 힘든 여정의 시작이었다.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년 만에 잡은 책은 낯설기만 했다. 바쁜 업무 때문에 책을 놓을 때도 많았지만, 학위를 딸 수 있다는 믿음과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만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단계별 시험에 도전했다 실패하고, 또다시 도전하기를 17년. 홍안의 청년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 있었다. 연씨는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고, 힘이 부칠 때는 쉬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내 페이스대로 걸어와서 오늘의 결실을 이뤘다.”면서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딸보다 먼저 학위를 받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힘겨운 과정을 마쳤지만 그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경영대학원 MBA(경영전문석사) 과정에 입학하는 것이다. 군에서 통신분야 준위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전역한 뒤 통신 관련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그는 “독학사 공부를 하면서 뿌리는 만큼 거둘 수 있다는데 매력을 느꼈다.”면서 “안 하는 것보다는 늦더라도 하는 것이 좋고, 거저 얻으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은 다 속일 수 있어도 나 자신은 속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쌓아간다면 독학사 학위만큼 값진 것은 없을 것”이라며 후배들을 위한 당부도 전했다. 우리나라 패션 일러스트의 선구자로 알려진 김경상(64·가정학)씨는 이날 최고령자로 특별상의 영예를 안았다.‘김상’이라는 예명으로 대학 강단에서 20년 이상 강의해온 그가 늦깎이 학사학위에 도전한 것은 순전히 자신의 능력을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30여년 동안 4년제 정규 대학 졸업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최고’가 됐지만 능력을 점검해 보고 싶었다. 도전한 지 1년 만에 학위를 딴 그는 “공부를 통해 기대했던 것보다 몇 배나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독학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11개 전공에서 모두 708명. 이로써 지금까지 배출된 독학사는 9907명으로 늘어났다. 최정식(32·컴퓨터과학)씨가 교육부장관이 수여하는 최우수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윤승규(46·국문학)씨 등 9명이 우수상을, 김경상씨 등 3명이 특별상을 받았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15) 내리막길 대학교육

    [프렌치 리포트] (15) 내리막길 대학교육

    매년 가을 영국일간 더타임스의 대학·고등교육 분야 주간지인 ‘타임스하이어에듀케이션 서플먼트’는 세계 대학 랭킹을 발표한다.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프랑스의 교육 당국은 같은 반응을 보인다. 분개와 경악이다. 분개하는 이유는 선정 기준이 영·미의 대학시스템에 맞춰져 있어 프랑스의 독특한 학제를 전혀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고등교육은 그랑제콜을 중심으로 하는 엘리트 교육과 일반적인 지식인 양성과 학문 연구를 위한 대학교육으로 이분화돼 있다. 아무리 제도가 다르다해도 ‘세계 200대 대학’의 상위군에 속한 프랑스 대학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심 경악한다. 영어권 대학은 물론 중국 싱가포르 일본 등 아시아권 대학에도 밀리는 형편이다. ●세계 상위권 대학 한곳도 없어 지난해 10월 발표된 ‘타임스 하이어에듀케이션 서플먼트’의 랭킹에 따르면 1∼10위의 대학은 모두 미국과 영국의 대학들이 차지했다. 프랑스의 경우 최고의 수재들이 들어가는 에콜노르말(ENS)이 18위, 이공계 최고명문 에콜폴리테크니크가 37위, 정치대학(시앙스폴리티크)은 52위였다. 모두 그랑제콜이다. 대학가운데 가장 높게 랭크된 곳이 약학·의학·자연과학으로 유명한 파리 6대학인데 93위에 그쳤다. 이는 2005년도 순위에 비해 다섯계단 하락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프랑스의 대학을 거론할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소르본 대학의 순위가 궁금해진다. 파리대학이 재편된 이후 파리 4대학이 된 소르본 대학은 1215년 신학자들에 의해 설립돼 프랑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중세 시대부터 학사 과정에서 문법·수사학·논리학의 3학과 수학·기하학·천문학·음악의 4과를 가르쳐 유럽 전역에서 영재들이 몰려 들었다고 한다. 여전히 문학과 철학에서는 권위를 자랑하지만 더타임스의 ‘세계 200대 대학’순위에서는 200위에 랭크되는데 그쳤다. 참고로 1위는 미국의 하버드대,2위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대,3위는 영국의 옥스퍼드대가 차지했고 서울대는 63위에 랭크됐다. ●쓸모없는 대학 졸업장 프랑스의 교육제도는 1789년의 프랑스혁명 정신에 기초를 두고 있다. 교육은 공교육체제로 국가가 주도하며 모든 국민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무상교육과 의무(6∼16세)교육을 실시한다. 바칼로레아(대학수학자격시험)를 통과해야 진학할 수 있는 고등교육 과정의 특징은 교육기관과 수준이 다양하게 세분화돼 있다는 것이다. 수재들을 선발해 실무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집중 교육하는 그랑제콜, 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일반 대학, 기능인력을 양성하는 단기 기술대학으로 나뉘어 각자 능력에 따라 진학한다. 고등학교 졸업생 가운데 상위 4%의 학생들이 2년 과정의 준비학교를 거쳐 진학하는 그랑제콜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엘리트 교육시스템이다. 입학하기는 매우 힘들지만 전문 분야 지식은 물론 리더십과 외국어까지 치밀하게 가르치며 고위 공무원이나 관리자급 엔지니어, 전문 경영인들을 배출한다. 기술계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들이 주로 진학하는 단기 기술대학에서는 세분화된 특정 기능을 2년 동안 집중적으로 교육해 2,3차 산업 종사자들을 양성한다. 문제는 가운데에 낀 일반 대학이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05∼2006 학년도에 고등교육기관에 등록한 학생은 모두 227만 5000명이다. 이 가운데 82개에 이르는 일반 국립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은 130만 9000명이다. 의학, 약학, 법학의 경우 입학이 어렵지만 나머지 학과는 바칼로레아만 합격하면 별도의 전형없이 입학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문학, 언어학,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등 인문과학을 선택한다. 석사·박사로 자신의 연구를 심화시킨다면 좋겠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학사과정 후 취업을 원한다. 그러나 인문학은 취업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년층 실업률이 25%에 달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불안할수 밖에 없다. 지난해 봄 정부의 최초고용계약(CPE)제 도입계획에 대학생들이 대대적인 반대시위를 벌인 이유다. ●대학들 학생출석에 무관심 프랑스 대학교육이 오늘날 제 기능을 못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공교육 이념에 따른 무상교육이 대학생을 양산하는 토양을 제공했다.‘교육 평등과 기회의 확대’를 내세워 68혁명 이후부터 70년대 초까지 이뤄진 국립대학의 평준화는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를 가속화시켰다. 여기에 30년전 30%였던 바칼로레아 합격률이 평균 76%로 높아지면서 학생수는 25년 만에 2배로 늘어났다. 반면 정부의 재정지원은 나아진 게 없으니 교육 여건이 뒷걸음질치는 것은 당연하다. 결과는 오늘날 목격되는 ‘하향 평준화’다. 프랑스 대학은 캠퍼스라는 것이 없다. 파리의 대학들도 5,6구를 중심으로 곳곳에 단과대학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양상이다. 소르본대학 본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학교 건물들이 60년대에 콘크리트로 급조된 것이다. 관리도 허술해 형편없이 낡았다. 수업은 앙피테아트르라고 하는 강당에서 수백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는데 들릴듯 말듯한 교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필기를 해도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교수와 토론하면서 학문을 연마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석사나 박사과정이라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이나 영국 대학이 학비가 비싸기는 하지만 비싼 만큼 확실하게 가르친다. 프랑스는 정반대다.‘싼 게 비지떡’이 바로 여기에 적용되는 말이다. 아무리 공짜라지만 너무하다. 학교에선 학생이 출석을 하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다. 그런데도 대학 당국은 “대학은 전문가들을 훈련시키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이런 환경에서 교육이 제대로 될리 없고,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고 어려운데 자질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기업들이 받아들일리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입학생의 46%가 중도 탈락하는데 이는 학업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졸업해봐야 별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평균 나이 47.2세… 여성은 6명뿐

    평균 나이 47.2세… 여성은 6명뿐

    서울신문이 지난해 말과 올해 1월 이뤄진 삼성그룹을 비롯한 30대그룹의 신임임원 인사를 분석한 것에 따르면 이공계 우대는 뚜렷했다. 고등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사회문제가 될 정도이지만 대기업에서 이공계 출신들은 대우받고 있는 셈이다. 또 대기업 신임임원은 공직에 비하면 비교적 학벌에는 치우치지 않았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30대그룹의 신임임원 621명중 대학을 졸업한 611명 가운데 이공계 출신은 60.2%(368명)였다. 인문·사회계 출신(243명)중에는 상경계열 출신이 138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대학교 졸업장이 승진의 필요조건은 아니었다.8개그룹에서 고등학교 졸업 학력으로도 임원이 된 사람은 10명이었다. 이공계 출신이 평균을 웃돈 그룹은 삼성(64.6%),LG(67.7%), 현대중공업(72.5%), 두산·LS(66.7%), 대림(62.5%),GM대우(100%), 대우조선(81.3%),STX(72.2%)그룹이었다. 기술개발과 현장을 중시하는 그룹의 경우 특히 이공계 출신비율이 높은 셈이다. 반면 백화점·식음료·항공 등 소비자들과 직접 접촉하는 쪽이 상대적으로 많은 그룹에서는 인문·사회계 출신이 임원으로 많이 승진했다. 한진·신세계·CJ·현대백화점그룹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신임임원의 평균 나이는 47.2세였다. CJ그룹은 신임 임원 평균 나이가 44.5세로 가장 젊었다.GM대우와 동국제강 신규임원들의 평균연령은 53세로 가장 많았다. 아무래도 현장을 중시하는 업종의 특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림산업과 현대중공업도 신임 임원 평균 나이는 50세를 넘었다. ●공대 강한 한양대 출신 등 상대적 많아 이공계 출신이 강세를 보이면서 공대가 상대적으로 강한 한양대 출신 신임임원은 두번째로 많았다. 역시 이공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인하대 출신은 8위였다. 신임임원중 서울대를 비롯해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은 65%, 부산대를 비롯한 지방대학 출신 비율은 35%였다. 소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대학 출신은 176명(28%)이었다. 이번 인사에서도 기업마다 주력사업과 지역기반 등에 따라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인 대학들도 눈에 띈다. 경북대 출신은 전체 신임임원 수에서는 6위였지만 삼성그룹에서는 서울대에 이어 2위였다. 전통적으로 삼성그룹에서 경북대 출신은 강세를 보여왔다. 삼성그룹 신임임원중 부산대 출신은 14명이었다. 한진그룹의 신임임원 23명중에는 인하대 출신이 5명으로 가장 많았다. 한진그룹은 인하대 재단을 맡고있다.62명이 새롭게 승진한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는 전남·전북·조선·군산대 등 호남지역 소재 대학 출신이 15명으로 다른 그룹에 비해서는 호남에 있는 대학출신이 많은 편이었다. 울산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신임 임원 40명 가운데에는 부산대 출신이 9명으로 가장 많았다. 영남대 출신은 5명이었다. ●여성 임원은 하늘의 별 따기 대기업에서 별(임원)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특히 여성들에게 임원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쉽지않았다.30대그룹의 신임임원 621명중 별을 단 여성은 모두 6명. 삼성그룹에서는 삼성카드 이인재(44) 부장이 유일하게 상무보대우로 승진했다. 동덕여고와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나왔다.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 경영학석사(MBA) 출신의 실력파다. 현재 삼성카드 정보기획팀장을 맡고 있다. LG그룹에서는 유일하게 LG화학 조혜성(43) 공정연구소 부장이 ‘별’을 달았다. 그는 LG그룹 내에서는 연구개발(R&D) 현장에서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기록을 만들었다.LG그룹내 현직 여성임원으로는 12번째다.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한진그룹에서는 서성희(45) 객실훈련원장이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상무대우로 승진했다. 스튜어디스 출신으로 순천여고와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신세계그룹에서는 여성 임원이 두명 나왔다. 신세계 경영지원실 패션연구소 손영선(55) 부소장과 이마트 패션디자인실장 권오향(42)씨가 주인공. 손 부소장은 그동안 신세계의 패션부문을 이끌어왔다. 금란여고를 마쳤다. 이마트 패션부문을 총괄하는 권 실장은 지난해 8월 남성복·여성복 디자이너 각 1명으로 자체 의류 브랜드 ‘#902(샵 나인오투)’를 내놓아 한달에 1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코오롱 이수영(39) 전략사업팀장도 별을 달았다. 최용규 이기철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멸종한 공룡의 이데아는 존재할까

    ‘죽은 철학자들의 카페(김선희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펴냄)’는 세계적인 철학자 비토리오 회슬레 교수와 11살 소녀 노라K가 나눈 편지를 엮은 책이다. ‘2500년간 서양 철학사에 드물게 나오는 천재’라고 유럽 최고의 지성 가다머로부터 극찬받으며, 현재 독일 노터데임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비토리오 회슬레는 어느날 한통의 편지를 받는다. 회슬레 교수는 1977년 한국 여성 김지은씨와 결혼해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다. “플라톤은 이데아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공룡은 지상에서 멸종했잖아요. 그럼, 공룡의 이데아는 어떻게 되는 거죠?” 편지의 주인공은 ‘소피의 세계’를 읽고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했던 소녀 노라. 어머니의 소개로 회슬레 교수에게 편지를 보낸 노라의 엉뚱 발랄한 질문에 교수는 흔쾌히 답장을 쓰면서,2년 동안 54통의 편지를 실제로 주고받게 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죽은 철학자들의 카페’는 회슬레 교수가 노라를 철학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 창조한 흥미로운 장치다. 회슬레 교수는 가상의 카페에서 매일 수다를 떠는 철학자들의 예를 들며 노라의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준다. “꿈과 현실은 어떻게 다른가요?”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나요?” “악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등등. 노라의 궁금증은 세대를 떠나 인간이라면 한번쯤 고민했을 법한 것이고, 천재 교수는 때론 우스꽝스럽고 때론 진지하게 죽은 철학자들을 등장시키며 노라의 철학적 궁금증을 풀어준다. 1982년생인 노라가 실제 소녀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그녀는 이제 어엿한 숙녀로 성장해 옥스퍼드대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하고 런던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박사논문을 준비중이다. 공룡의 이데아가 공룡의 멸종과 왜 무관한지 설명하면서 똑똑한 소녀에게 ‘공룡 노라’란 별명과 공룡모양 과자를 선물한 친절한 철학 교수의 재미있는 철학 서적이다.1만 2000원.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과학 한국’의 희망-국가석학에 듣는다] (3) 나노기술의 대가 국양 서울대 교수

    [‘과학 한국’의 희망-국가석학에 듣는다] (3) 나노기술의 대가 국양 서울대 교수

    발길 닿지 않는 곳에 길을 내며 가는 것 만큼 외롭고 힘겨운 일은 없다. 하지만 자유롭게 선택하고 도전할 수 있기에 나만의 소중한 길이 되는 법이다. 국양(54) 서울대 연구처장(물리학부 교수)은 우리나라 나노 과학계의 ‘길’ 같은 존재다. 미개척 영역이었던 나노기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으며 세계 나노 과학을 선도하는 연구자로 인정 받는다. 나노기술은 나노미터(1m를 10억개로 나눈 길이) 수준에서 물체들을 만들고 조작하는 기술, 물질의 크기가 작아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보 저장 및 처리의 극대화를 이용하는 기술이다. 지난달에는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선정한 ‘2006 국가석학(Star Faculty)’ 10명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됐다. ●눈으로 원자 볼 수 있는 현미경 개발 지금의 국 교수를 있게 한 결정적 연구 성과는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의 개발이다. 그동안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실리콘이나 철ㆍ구리 등 금속의 원자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줘 나노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 쾌거로 평가받는다.STM은 손의 역할을 하는 특수한 침을 이용해 원자의 표면을 읽어낸다. 그가 STM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벨연구소 연구원 시절인 1982년. 국 교수는 이미 STM 개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IBM연구소의 물리학자 하인리히 로러를 만났고, 그가 같은 아이디어를 공개하자 ‘이거다.’라는 생각을 굳혔다. 84년 국 교수는 STM을 개발,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의 표면을 눈으로 확인해 세상을 놀라게 한다. 세계에서 네 번째 쾌거였다. 이후 그는 나노 연구 분야에 매진하며 속속 업적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나노튜브’ 속에 풀러린 분자(fullerene:탄소원자 82개가 축구공처럼 결합된 분자)를 삽입하면 반도체 소자로 기능할 수 있음을 밝힌 논문이 ‘네이처’에 게재됐다. ●완전히 새로운 저장·처리 개념 연구할 것 국 교수는 앞으로의 나노기술은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현재의 반도체 메모리 저장 논리는 ‘평면’에서 이뤄지죠. 모두 평면 소자예요. 메모리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텐데 더 이상 평면에 집착해서는 집적도를 향상시킬 수 없죠.” 특히 그는 반도체의 정보처리 방식도 완전히 새로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인간의 뇌를 보세요. 뇌의 기억 방식은 평면상에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메모리와 처리장치 모두 나노 수준에서 이뤄지는데, 반도체 등 현행 IT 기술의 기억·처리 방법과는 달리 다차원적이에요.” 국 교수는 20∼30년 뒤엔 모든 정보의 저장과 처리가 나노수준에서 생체의 그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견했다. 원자의 전기적 특성을 이용한 나노기술이 지금의 한계를 극복해 줄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의 향후 연구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국 교수는 “생체의 기억 논리, 에너지 전환 방식과 현재 IT기술 방식과의 간극을 좁히면 새로운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구체적으로는 초전도체의 기본원리 파악 문제, 빛 또는 전자로 분자에 에너지를 주었을 때 분자에서 일어나는 상전이 문제, 전도체의 전도 현상 중 전자의 회전 문제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계획이다. ●“나노 기술의 발전 위해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인터뷰 도중 그는 갑자기 왕(Wang)이라는 중국인 얘기를 꺼냈다.80년 그가 컴퓨터 회사를 차렸지만 시대를 앞서가는 바람에 이내 망했다는 것.“왕이란 사람이 ‘모든 서류나 문서를 이미지 형태로 저장하는 종이없는 사무실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죠. 당시엔 모두 비웃었지만,20여년 뒤 현실이 됐습니다.” 국 교수는 나노기술도 마찬가지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나노 기술은 너무도 중요한데 그것을 너무 앞서서 열매를 보려고 기대하고, 사회가 강제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어요. 조급하게 열매를 기다리면 꽃을 피우기 전에 죽고 말죠.” ●조급한 성과 위주 지원은 선진 과학국 진입 걸림돌 국 교수는 특히 정부와 기업의 성급한 기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기술의 연장선상에 있음에도 새로운 나노라고 세일즈하며 성과주의에 매몰돼 있다.”면서 “7살 어린아이들에게 빨리 애 낳으라고 독촉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단추에서 지퍼로의 획기적 발명을 예로 들며 “진짜 새로운 과학적 성과는 한 발짝이 아닌 열 발짝 이상 나아가는 것”이라면서 “정부도 긴 안목을 갖고 단순 업적보다 미래 기술을 선도할 상상력과 창의력 위주로 평가,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 교수는 학생들이 진지한 학문적 자세를 잃는 세태도 아쉬워했다.“학문을 출세와 돈벌이를 위한 ‘사다리’로 여기는 것이죠. 세상을 목적 지향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싫어요. 학문 자체를 즐거워하면 새로운 것이 나오고 그릇도 커지는 걸 왜 모를까요.” ■ 국양 교수는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71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7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81년 박사 학위를 받았고,91년까지 10년간 AT&T 벨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91년 “하고 싶은 연구를 통해 세상을 깜짝 놀랄 역작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나노 기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글 이영표 사진 류재림기자 tomcat@seoul.co.kr
  • 이필상 총장 논문 3편 추가 표절 의혹

    고려대 이필상 총장이 기존에 표절 의혹을 받던 2편 외에 추가로 3편의 논문을 표절 및 이중 게재했다는 교수의회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내용이 알려져 거취가 주목된다. 24일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추가 의혹이 제기된 논문은 ‘통화신용정책이 증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1994년·경영학연구)’와 ‘주가지수선물시장 도입의 경제적 효과분석,‘조건부 이분산이 존재할 경우 유동성 효과에 대한 실증연구(이상 96년·경영연구)’ 등이다. 진상조사위는 지난주 재단과 이 총장에게 중간조사 결과를 전달했다. 이와 관련, 이 총장측은 이날 교내 백주년기념관에서 학교 관계자 및 표절 논문과 관련된 제자 4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해명에 나섰다. 정석우 기획예산처장은 “비밀유지가 필요한 사안인데 공식 결과가 나오기 전 진상조사위가 언론에 흘린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또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도 총장은 소명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지금 공식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총장은 앞으로도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표절 대상으로 거론된 석사 논문을 쓴 주모(43)씨는 “총장님이 연구 주제로 제시해준 것을 확대, 발전시켜 논문을 작성했다.(총장님이) 우리에게 도움을 줬을 뿐인데 오히려 표절 의혹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수의회의 모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처음 표절 의혹이 제기됐을 때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총장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을지는 일반인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한 것 아니겠는가.”라면서 “처음 거론된 두 편의 표절로도 일반 교수였다면 징계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표절 여부는 전적으로 진상조사위의 판단을 따를 것이며, 교수의회 차원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 의견이 갈린다면 표결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37명의 교수로 구성된 교수의회는 26일 전원회의를 열어 조사위 결과를 검토한 뒤 총장 거취와 관련해 구체적인 의견을 내놓을 방침이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이순신표 거북선 곧 복원·공개”

    “이순신표 거북선 곧 복원·공개”

    415년 전에 제작된 거북선(귀선·龜船)에서의 화룡점정은 무엇일까. 십중팔구는 용머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거북머리가 아닌 용머리를 달았을까.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이 임금에게 올린 장계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 1592년 6월14일)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신이 일찍이 섬 오랑캐의 변란을 염려하여 전선과는 다른 거북배를 만들었습니다. 이물에는 용의 머리를 달고, 그 아구리로는 대포를 쏘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거북이가 천년을 살면 용, 즉 ‘신귀’가 된다는 이야기(龜變化神龜)가 있다. 아울러 조자용씨가 소장한 ‘귀선도’에 보면 “신귀는 사신(四神)과 사령(四靈)에서 한자리를 차지해 벽사와 길상의 상징이 되어 용왕의 사자로서도 큰 임무를 맡았다.”라고 돼 있다. 따라서 거북선에 용머리를 단 것은 신귀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통 한선(韓船)기능 전승자로 국내 유일한 고대선박 연구가 이원식(73) 원인고대선박연구소 소장. 백제 사신선, 통일신라 교관선, 고려 완도선 등 지난 42년동안 36건의 고대선박을 연구·복원제작해 이 방면에 거의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거북선박사 1호’라는 공식명함을 하나 더 추가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새로운 영역을 쌓았다. 지난 달 실시된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심사에서 그가 제출한 논문 ‘1592년 귀선의 주요 치수 추정에 관한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 것. 학위수여식은 오는 2월21일. 여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그가 발표한 연구논문의 내용이다.2006년말 현재 역사 서적이나 교과서 등에 게재돼 있는 귀선도(龜船圖)나 정부 기관에 전시된 모형선은 ‘1795년식 거북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1592년 이순신 수군절도사가 창제한 거북선이 아니라 203년이 지난 1795년(정조19년) 규장각에서 편찬한 ‘이충무공 전서’의 ‘귀선지제’에 근거해 만들어졌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따라서 1592년에 일본군의 침략전쟁때 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1592년식 거북선’에 대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아 연구과제로 남아 있었다. 이 소장이 연구한 대목이 바로 이 ‘1592년식 거북선’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왕성한 연구의욕으로 400여년 전의 베일을 어느정도 벗겨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에 위치한 그의 자택을 찾았다. 강아지 세마리가 먼저 나와 꼬리치며 낯선 방문자를 맞이한다. 현관 입구에는 ‘한선 기능 전승자’‘원인고대선박연구소’라는 문패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때마침 그는 1592년식 거북선의 복원작업을 위한 설계도, 즉 선체 선도(線圖)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우선 1592년식 거북선이 1795년식 거북선과 다른 점을 비교해달라고 요청했다. 첫번째는 크기나 규모면에서 1795년식에 비해 전체적으로 30%정도 작은 것이 특징. 따라서 선체 전장의 길이가 1795년식(34.05m)보다 7m가량 작은 26.27m이고, 선체 선폭은 1795년식(9.15m)보다 1.9m 좁은 7.06m라는 것. 배 밑창에서 갑판까지의 깊이 또한 1795년식의 2.34m보다 다소 낮은 1.92m라고 설명했다. 두번째로는 대포의 포혈.1592년식의 경우 좌우측 각각 6개씩의 포혈이 있는 반면 1795식은 이보다 더 많은 10개씩이다. 또한 1592년식에는 없는 소구경포혈이 1795년식 거북잔등 부분에 설치돼 있다. 특히 용머리의 경우 1592년식은 대포를 발사했으나 1795년식은 유황염초를 피웠다고 했다. 아울러 1795년의 용머리 배치가 90도로 꺾인 반면 1592년식은 이보다 완만한 30∼40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이밖에 1592년식에는 거북잔등에 창을 꽂아 적이 오르지 못하도록 했으나 1795년식은 거북그림을 그려넣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라고 이 소장은 밝혔다. 이같은 연구결과의 근거에 대해서는 “1592년 당시 이순신 수군절도사의 일기와 장계,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등 관련 전적(典籍)에 기록된 거북선의 주요수치와 기타 선박 관련자료 등을 참고했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그동안 대한조선학회지 등에 발표한 거북선 관련 선행 연구논문을 활용했다. 특히 전통한선의 제1번 기본치수가 되는 ‘1592년식 거북선의 저판치수자료’ 7건을 발굴했으며 이것이 1592년 거북선 주요치수 연구의 계기가 됐다. 그렇다면 1592년식 거북선은 언제 복원될까. 이 소장은 현재 현대중공업 조선해양연구소에서 ‘한국 전통선박 복원 조사연구’ 프로젝트(책임연구원 민계식 부회장)의 사외연구원으로 몸담고 있다. 이 연구소는 자체적으로 전통 고대선박 복원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1795년식 거북선과 조선통신사선 등 정밀모형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 소장이 현재 1592년식 거북선의 선도 및 공작설계도 작업을 마무리 중이서 이르면 올 봄 실험용 모형정도는 언론에 공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거북선연구에 대한 논의는 1958년 숭실대 최영희 교수의 ‘귀선고(龜船考)에서 처음 대두되었으며 1964년을 전후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소장 역시 이 무렵 한강유역과 서해안 및 남해안의 전통 한선의 조선기법을 채록하면서 고대선박 연구에 뛰어들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공고 4학년때 6·25가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입대했다가 공군사관학교 조종간부후보1기로 군복무를 마쳤다. 제대후 제약회사인 ‘한국화이자’에 기계담당 공무직으로 1963년 입사했지만 고대선박 연구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1965년에 ‘국방사학회’에 가입한 뒤 그해 첫 논문인 ‘귀선의 과학적 연구’를 발표했다. 내친 김에 ‘원인(元仁)고대선박연구소’라는 민간연구소를 설립했다. 1969년에는 은사로 모시는 김재근 서울대 조선공학과 교수(작고)와 함께 아산 현충사에서 최초의 거북선 복원작업에 들어갔다.1971년에는 인천대림조선소에서 처음으로 원형의 2분의1 1795년식 거북선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이 거북선은 극영화 ‘이순신’(김진규 감독)에 등장했다. 이후 거북선 복원에만 10여차례, 신라시대 전선(戰船), 장보고 무역선, 백제 사신선, 완도 고려선, 조선통신사선 등 30여 척의 고대선박을 복원, 박물관 등에 전시했다. 아울러 ‘한국의 배’‘고대선박 발달사’ 등 4권의 저서를 냈고 논문은 수십편을 발표했다. 그는 뒤늦게나마 정식 학위를 취득하려고 검정고시와 독학사 과정을 거친 뒤 2002년 해양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집념을 보였다.2004년 석사 학위 논문이 통과되자 곧바로 박사과정을 밟았고 일주일에 2∼3일씩 부산과 용인을 오가며 노력한 끝에 이번에 그 결실을 보았다. “앞으로는 기존의 1795년식 거북선은 1592년식으로 대체되어야 하며 하고 이에 따른 후속 작업은 매우도 중요합니다. 아울러 잘못 알려진 우리의 전통 한선에 대한 수정작업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해요.” 주말마다 찾아오는 손자손녀들을 만날 때마다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4년 서울 출생 ▲50년 경기공고 4년 재학때 학도병 입대 ▲65년 원인고대선박연구소 설립 ▲69년 문화공보부 현충사 귀선 고증위원 ▲85년 한국과학사학회 정회원 ▲92∼96년 해군사관학교 해저유물발굴단 자문연구위원 ▲98년 대한조선학회 정회원 ▲2001년 독학사 검정고시 합격, 한국해양대학 장보고연구소 연구원 ▲04년 해양대 공학석사 ▲06년 공학박사 # 주요 상훈 전통한선기능 전승자(노동부장관 지정), 대통령 표창(01년, 한선기능전승 유공) 등 # 주요 작품실적 현충사 거북선(69년), 중앙정보부·해군사관학교 거북선(71년), 미국EXPO 거북선(84년) 등 수십여 작품. 그외 장보고 전선, 조선통신사선, 완도 고려선, 신라 교역선, 백제사신선, 통나무쪽배 등 30여 작품제작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