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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S칼텍스 ‘3세경영’ 시동

    GS칼텍스 허동수 회장의 장남인 세홍(37)씨가 외국계 회사를 그만두고 경영에 합류했다. 허세홍씨는 13일 이 회사의 싱가포르 현지법인 부법인장(상무)을 맡았다. 후계 체제 구축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보인다.GS칼텍스는 이날 ‘현장 기능직 출신 첫 임원’을 배출하는 등 임원인사를 단행했다.신임 허 상무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땄다. 일본 전기회사와 미국 IBM 등을 거쳐 2003년부터 GS칼텍스 합작사업 파트너인 미국 셰브론사에서 일해왔다. GS칼텍스측은 “허 상무가 셰브론의 미주법인과 싱가포르법인에서 원유 트레이딩을 맡는 등 글로벌 실무 경험이 풍부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허 상무는 GS칼텍스의 지주회사인 GS홀딩스 주식을 약간(0.85%,79만 3654주) 갖고 있다. 허 회장의 차남 자홍씨는 국내에서 별도의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관련인사 29면
  • 우주인 후보 6명으로 압축… “다른 사람 꿈도 대신 이루어야죠”

    “이젠 다른 이들의 꿈을 위해 달려나갈 겁니다.”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에 탑승할 한국 첫 우주인이 6명으로 추려졌다. 과학기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11일 러시아 가가린 우주인훈련센터에서 가진 우주적성평가를 통해 8명의 후보 중 6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관문을 통과한 최연소인 박지영(23·여·한국과학기술원 석사과정)씨는 “러시아 현지 훈련은 우려했던 것보다 크게 힘들지 않은 훈련이었다.”고 의연해하면서도 “무엇보다 그동안 동고동락한 정든 동료 2명이 탈락해 헤어지게 된 것이 속상하다.”고 말했다.러시아 우주적성평가는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러시아 가가린우주인훈련센터에서 진행됐다. 후보들은 무중력 항공기 탑승, 수중임무 테스트를 통해 무중력 환경 적응도를 평가받았다. 6명의 후보는 고산, 박지영, 윤석오(29·한양대 교직원), 이소연(28·여·한국과학기술원 박사과정), 이진영(36·공군소령 편대장), 장준성(25·부천남부경찰서 경위) 등이다. 이들은 25일 발표되는 최종 후보 두 자리를 놓고 마지막 경합을 벌인다. 최종 후보로 선발된 2명은 내년 초 러시아 가가린훈련센터에서 우주적응·우주과학실험 수행을 위한 임무훈련 등을 받게 되며, 이 중 최종적으로 선발된 한 명이 2008년 4월 러시아 소유스호에 탑승한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서적 수집 25년 외길 박대헌 영월책박물관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서적 수집 25년 외길 박대헌 영월책박물관장

    고서(古書)가 헌책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기록이요, 그 진실의 두께를 켜켜이 담아낸 정의로운 보물이다. 또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냈던 선조들의 온갖 지혜가 녹녹하게 발라져 있어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고서 속에는 만가지 봉록(俸祿)이 다 들어있다. 다만 그것은 아는 자만의 것이다.’라고. 이밖에도 금과옥조 같은 여러가지 표현으로 고서의 소중한 가치를 깊이 새기게 한다. 박대헌(54) 영월책박물관장.‘백수’로 지내던 20대의 젊은 나이 때부터 25년 가까이 고서적만을 옹골지게 수집해온 특별한 삶의 밭을 일구고 있다. 흙속의 진주 캐기라고나 할까. ●영월의 폐교에 책박물관 열다 1998년, 그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강원도 산골의 한 폐교에 ‘책박물관’을 떡 하니 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사람, 자연, 책이 함께 어우러지는 그런 ‘그림 같은 문화마을’에 대한 평소의 동경과 신념이 작용했다. 이와 함께 1983년부터 서울에서 운영해 오던 고서점 ‘호산방’ 또한 아예 두메산골로 옮겼다. 그는 여기에서 300∼400년 전의 조선시대 희귀본 등 수백권의 고서를 찾아내 빛을 보게 했고 박물관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게는 문화적으로 여러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주었다. 영월지역을 다녀온 이들은 한결같이 “정말, 대단한 분이다.”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영월에 있던 ‘호산방’을 서울 도심 한복판인 태평로1가의 한국프레스센터 지하로 옮겼다. 고서점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다소 의아해지는 대목이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주 ‘호산방’에서 박 관장을 만났다. 입구에는 ‘호산방은 30년 후를 생각합니다.’는 글귀가 인상깊게 걸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200년 전의 ‘의방활투’를 비롯,‘추사문집’ 초판본, 조선후기의 ‘우병치방법’ 등 세월의 때가 잔뜩 묻은 희귀 고서 500여권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우병치방법’은 소가 병들었을 때 치료하는 요령이 상세히 담겨 있어 당시 우리 선조들이 소를 어떻게 대했는지 짐작하게 했다. ●프레스센터 지하에 고서점 열어 특히 한쪽에 진열된 1960∼1970년대의 국민학교 교과서들은 당시의 추억 어린 향수를 떠올리게 했다. 아울러 월북 시인 임화의 ‘현해탄’, 박두진의 ‘해’, 그리고 소월의 스승 안서 김억의 육필원고 등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박씨가 10년 전 펴낸 필생의 역작 ‘서양인이 본 조선’도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17∼20세기에 걸쳐 조선에 다녀간 서양인들이 조선에 관해 쓴 책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 새롭게 정리했다. 이를 위해 그가 모은 원본만 모두 287권. 세계 각국의 고서점을 구석구석 뒤지고 다닌 발품의 결과물이기에 학계에서도 소중한 사료가치로 인정한다. 그가 ‘서지(書誌)학자’로 불리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시내 중심가에 둥지를 새롭게 마련한 지 두달 됐다는 그는 “영월에 있는 책박물관 운영이 어려워져 이곳에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하기야 산골에서 박물관을 운영하기란 그리 쉽지는 않았을 터. “영월의 책박물관도 살리고 또 수도 서울 한복판에 고서문화의 한 중심축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지금은 약간 어렵겠지만 내년에는 정상궤도에 오를 것으로 희망합니다.” ●고서, 작은 마을의 희망이 되는 물건 ‘30년 후를 생각합니다.’라는 글귀의 뜻을 물었더니 “고서를 통해 이전과 현세대, 그리고 미래 세대를 연결시키는 공간을 의미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30년 후를 생각해 보면 주위에 남을 만한 책들이 얼마나 될지 걱정도 된다.”고 부연했다. 이어 “대형마트에서 팔지 않는 물건, 작은 마을의 희망이 되는 물건, 그게 바로 고서의 가치”라고 거듭 강조한다. 웬만한 강원도 여행객치고 박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책사랑은 소문이 나 있다. 그가 서울에서 영월로 향했을 때만 해도 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마을에 서점과 음악·연극 공연장, 문화 예술인의 작업실, 화랑, 카페가 있는 마을을 구상했다. 그래서 ‘영월 책축제’만 7회나 여는 등 나름대로 온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책과 문화에 대한 주변 사람들과의 시각차이를 좁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박물관을 잠시 폐관했다가 얼마전 다시 재개관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생긴 책마을은 영국의 ‘헤이 온 와이’입니다. 웨일스의 작은 마을이지요. 폐광 등으로 1960년 초만 해도 쇠락해가는 마을이었는데 어느날 리처드 부스라는 한 젊은이의 노력으로 지금은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는 유명한 책마을로 변모했습니다.” 평소 박씨의 철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영월책박물관은 옛 학교터(여촌분교)와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 학교는 1962년 개교해 1998년 문 닫기까지 36회에 걸쳐 400여명이 졸업했다. 현재 박물관에는 3만∼4만여점이 소장돼 있다. 박씨의 책사랑은 고교 때부터 시작됐다. 어느날 은사에게 옛 책의 소중함을 듣고 용돈을 아껴 시간날 때마다 청계천 등지에서 한두 권씩 책을 사모았다. 원래의 꿈은 도예가. 그래서 홍익공업고등전문학교에서 요업을 전공했다. 고교과정 3년과 대학 2년과정을 합친 5년제 학교였다. 군 제대후에는 도예학원을 운영했으나 아무런 성과를 이룰 수가 없었다. 백수생활로 접어들면서 방황이 시작됐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서관, 그리고 서울의 여러 고서점을 들르는 일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 많은 유물을 눈감고도 줄줄 꿸 정도였다. 덕분에 도자기뿐만 아니라 고미술 전반에 대한 안목이 높아졌다. 고서적도 마찬가지. 결국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서울 장안평 고미술상가에 고서점 호산방(壺山房)을 열었다. 이때가 1983년 서른 살의 나이였다. 호산방이라고 한 것은 조선 말기 서화가 우봉 조희룡의 호 호산(壺山)에서 비롯됐다. 고서점을 연 후에는 주로 필사본과 간찰, 또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때의 역사와 문학 관련 양장본들에 관심을 쏟았다. ●수집에 미쳐 가족엔 ‘미안한 아빠´ 1992년 장안평 고서점을 광화문 인근으로 옮겼다. 이때 인사동의 한 고서점 주인은 “인사동에서도 안 되는 고서점이 광화문에서 되겠어? 1년도 못버틸 걸.” 하고 말렸다. 하지만 꽤 유명세를 탔고 번창해 나갔다. 그 사이 방송통신대학을 9년만에 졸업했고 동국대 정보산업대학원에서 출판잡지를 전공,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이때가 1998년 나이 마흔 여섯이었다. 박씨네 가족이 현재 거주하는 곳은 책박물관 한쪽에 있는 허름한 관사. 말이 관사이지 한겨울에 연탄난로를 두 개씩 피워도 거실의 물이 얼고 수도관이 터지기 일쑤. 그러다 보니 박씨는 무능한 가장으로 전락했다.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이던 두 아들은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에서도 학원 한번 보내지 못하고 시골에 데려왔지만 큰아들은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4학년에 재학중이고, 둘째는 내년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누가 그러더군요.‘고서수집을 하는 것은 독립운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이 말은 그동안 산골마을에서 외롭게 문화독립운동을 해온 박씨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그는 고서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해 “고서는 열번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한번 잘못 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내년 초 그동안의 고서수집 노하우와 에피소드를 담은 ‘서창야화-어느 고서점 주인의 잠꼬대(가제)’라는 책을 발간한다. km@seoul.co.kr
  • [OUR STORY] 눈내리는 플롯폼에 서보셨나요

    [OUR STORY] 눈내리는 플롯폼에 서보셨나요

    7년 동안 330여 차례나 기차여행을 한 사람이 있다.1주일에 최소한 한번 이상은 기차를 타야만 가능한 숫자다. 거리로는 22만 2000여㎞. 지구를 다섯바퀴 돌고도 남는 거리를 국내선 기차로만 여행한 셈이다.1999년 이후 모아온 기차표가 1200여장에 달하고, 기차역 주변 음식점 명함만 600여장이다. 가슴에 KTX 1호 승객이란 ‘훈장’도 달고 있다. 이만하면 우리나라에서 기차여행 좀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든다면 이런 건 어떨까. 의자 하나만 달랑 놓인 간이역을 비롯해, 경전선과 영동선 일부를 제외한 국내의 모든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 보기도 했다. 폐선이 된 기차역을 찾아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축구를 워낙 좋아해 전북 현대의 경기가 열리는 곳이라면 불원천리, 기차를 타고 찾아 간다. 홈구장인 전주까지는 461호 첫 열차부터 마지막 열차인 489호까지 시간대별로 모두 타보았다. 직업상(그의 현재 직업은 기차여행 가이드다) 다녀온 것을 제외하더라도, 강원도 정동진역에 내린 것만 무려 80여회에 달한다. 32세의 청년 박준규. 우리나라 기차여행의 대표선수다. 그와 함께 강원도 북부의 고원도시 태백시를 다녀왔다. 글 사진 태백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박준규씨와 떠난 기차여행 아침 8시. 배낭하나 멘 단출한 차림의 박준규씨와 함께 청량리에서 강원도 강릉까지 가는 무궁화 열차에 올랐다. 갑자기 추워진 바깥 날씨와는 달리 열차 안은 포근하고 안락했다. “기차를 처음 탄 것은 유치원 때였어요. 지금은 레일 바이크로 유명한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외가에 가기 위해서였죠. 초등학교 시절에는 혼자서 문경까지 다녀오곤 했어요.” 당시 기차는 그에게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가 오롯이 기차여행을 한 것은 중학교 2학년때. 진주행 통일호 열차를 타고 구례구역에서 내려 5박6일 동안 지리산 종주를 한 것이 그의 첫번째 기차여행이었다. 이후 기차는 그에게 따로 뗄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는다. 왜 그렇게 기차여행이 좋은지 궁금했다.“내 집은 기차라고 할 만큼 기차여행이 편하고 즐겁기 때문이죠. 기차여행은 세상사의 축소판인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과 일들을 만나고 경험하게 되죠. 어떤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될지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도 있고요. 의자를 돌려 모르는 사람들과 마주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산과 들, 강 등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참 좋아요.” 양평역에서 단체관광에 나선 촌로 10여명을 태운 기차는 다시 강원도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노인들이 열차에 오르면서 조용하던 객실 분위기가 한순간 왁자지껄해졌다.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들뜬 모습이다. 승객이 별로 없어, 맞은편 의자에 다리를 뻗은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학교 1학년 때인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차여행을 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취미가 직업이 될 만큼 빠지게 될 줄은 몰랐어요. 대학 3학년때는 기차로만 4박5일 동안 여행한 적도 있어요. 거리로는 5000㎞ 정도 됐고요. 군대를 제대한 다음 그야말로 기차여행에 굶주렸던 때였죠.‘한붓 그리기’처럼 청량리에서 출발해 강릉, 부산, 목포를 돌아 대전, 천안까지 간 다음 다시 장항, 군산을 거쳐 서울로 오는 코스였어요. 중앙선과 태백선, 경전선, 동해남부선, 호남선, 장항선 등 거의 전 노선을 한번에 돌았던 거죠.” 원주를 지난 기차는 어느덧 태백준령을 향하고 있다. 금교 신호장과 치악역 중간에 있는 ‘금대 2터널´은 루프식 터널. 일명 ‘또아리 굴´로 불린다. 경사가 급해 직선으로는 오르지 못하고, 용수철처럼 빙글빙글 돌아서 가야 한다.‘유령굴’로도 불리는 치악터널을 지날 때는 괴기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왠지모를 한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태백-영동선. 청량리역까지 오는 1640호 열차의 경우, 강릉역 등 이 구간에 있는 모든 역에서 출발해 보기도 했다.“우리나라의 원초적인 지형을 지나는 코스예요. 평균속도가 60㎞ 이하여서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할 수 있죠. 이 코스의 백미는 흥전에서 나한정 구간이에요. 경사가 급하고 고도차가 400m에 달해 열차가 스위치 백으로 운행해야 하죠. 내년 하반기에는 루프식 터널로 바뀐다고 하니, 아쉽네요. 영동선은 정동진역 다음부터가 정말 좋아요. 열차가 바다와 나란히 달리죠. 안인역의 해돋이도 좋고요.” 두번째로 좋아하는 코스는 정선선.“‘느림의 미학’을 한껏 맛볼 수 있는 구간이죠. 구불구불한 조양강을 따라 증산에서 아우라지까지 1시간 정도 가는데, 역마다 펼쳐지는 시골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어요. 자그마한 간이역과 북한강의 경치가 이어지는 중앙선도 둘째가라면 서럽죠. 특히 경북 의성역에서는 반드시 자장면을 먹어봐야 해요. 맛이 정말 일품이에요. 기차에서 어떻게 자장면을 시켜 먹냐고요? 제 홈페이지(www.traintrip.wo.to)에 오시면 알려 드릴게요.” 기차가 가뿐 숨을 내쉬며 강원도 영월땅으로 접어 들었다. 옛날 큰 물난리 때 삼척에서 떠내려 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삼척산과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등 수려한 풍광이 차창 밖으로 잇달아 펼쳐졌다. 서강에서는 큰고니 4∼5마리가 물위에 뜬 채 한가로이 유영하고 있다. “기차를 타고 가다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만나기도 했어요. 지금은 없지만요. 여자친구보다 기차가 훨씬 좋아요. 수학공식으로 표현하자면 ‘여친 기차’죠. 축구와 비교하자면 ‘여친 축구’쯤 될까요.”이렇게 얘기했던 그도 기차가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였던 함백을 지나자 아련한 눈망울로 ‘새비재’오르는 길을 바라보았다. 새비재는 ‘그녀’와 견우가 타임캡슐을 묻은 소나무가 있는 곳. 그는 정말로 여자친구보다 기차가 좋은 걸까. ● 기차여행 고수되기 첫째: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라. 열차나 버스 등의 출발정보가 담긴 ‘월간 시각표’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팸플릿 등을 반드시 챙길 것. 둘째:각종 할인혜택을 꼼꼼히 챙겨라. 철도회원에 가입해 일정 포인트를 적립하면 무료여행도 가능하다.KTX의 경우 비즈니스 카드 할인(주중 30%, 주말 15%), 역방향 할인(5%), 자동발매기 할인(1%) 등을 합치면 최대 36%까지 싸게 여행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사전예매 할인, 철도회원 카드 할인, 얼리 버드(early bird)할인 등 다양한 할인혜택이 있다. 셋째:장시간 여행에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챙겨라. 물 등 간단한 먹거리와 디지털 카메라, 각종 충전기 등을 가져갈 것. 밤열차는 춥기 때문에 작은 담요 등도 가져가면 좋다. 충분한 수면을 위해선 안대가 필수다. ■ ‘문화재급’ 추억의 간이역 10곳 간이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굵직한 사건들로 점철된 20세기의 역사이자, 그 시기를 살아간 세대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번듯하지는 않지만, 허술한 겉모습에서 외려 푸근함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간이역의 사전적 의미는 역무원이 없고 정차만 하는 역. 철도법에서는 역원배치 간이역과 무배치 간이역 이하 등급의 철도역사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국 650여개의 기차역 중 400여곳이 간이역이다. 다음은 박준규씨가 추천한 가볼 만한 간이역들이다.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언론보도를 통해 익히 알려진 곳은 제외하고, 아직 소개가 덜 된 ‘문화재급’ 간이역으로만 선정했다. 1. 구 전라선 서도역 한 문학가의 작품이 역사(驛舍)를 살려낸 특이한 경우에 해당된다. 고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주요 배경지. 혼불문학관이 인근에 위치하면서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1930년대 지어진 목조역사를 최근 대대적으로 보수해 예전모습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주변 풍경이 수려하고, 현 서도역에서 도보로 5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어서 접근하기도 수월하다. ▲가는 길 용산이나 영등포역→여수행 열차→남원역→75번 버스→서도역. 무궁화가 하루 10회, 새마을호는 3회 운행하고 있다. 현재 서도역에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2. 구 전라선 오수역 붉은 벽돌로 지어진 1950년대 중반의 전형적인 간이역. 지금은 기차가 새로 지은 오수역으로 다니고 있다. 주인을 구한 개 이야기로 유명한 이곳은 지역이름 또한 오수(獒樹·개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개의 무덤에 꽂아 놓은 지팡이에서 싹이나 커다란 나무가 되자, 이 나무를 오수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영화 ‘광복절특사’에서 주인공들이 탈출하기 위해 이용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가는 길 용산, 영등포역→여수행 열차→오수역. 무궁화호가 하루 9회 운행. 오수역에서 구오수역까지는 도보로 이동해도 될 만큼 가깝다. 3. 중앙선 문수역 1941년 7월1일 현재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작은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과 철길이 어우러진 풍경이 좋다.65년 된 역사도 아름답지만, 역사 옆에 있는 보선반 건물도 비슷한 세월의 깊이를 간직한 옛 건물이다.30년 전 폐역된 승문역까지 철길을 따라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는 트레킹하기에도 좋다. 경북 영주시에서 가까워, 부석사 등 관광후 들러볼 만하다. ▲가는 길 청량리역→안동행 열차→문수역. 무궁화호가 하루 1회 운행. 4. 영동선 하고사리역 강원도 삼척시 골짜기에 위치한 곳으로, 하루 단 한번 열차가 선다. 상상속으로만 그리던 그림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두평 남짓한 맞이방(대합실)과 무인 간이역, 그리고 역사앞에 가지를 내린 채 서있는 수양버들이 하고사리역의 전부지만, 철도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성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어쩌면 철거될지도 모르는 곳이어서 더욱 더 아쉬운 곳이다. ▲가는 길 청량리역→안동행 열차→영주역→강릉행 열차로 환승→하고사리역. 무궁화열차가 하루 1회 운행. 영주발 강릉행 열차는 아침 6시5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영주에서 1박을 해야 한다. 영주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5. 구 수인선 송도역 10년 전 운행을 중단한 협궤철도 수인선의 종착역. 어천역과 소래역 등과 함께 아직까지 남아 있는 수인선의 3대 역사 중 한 곳이다. 현재는 일반기업체의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다. 인천 도심에 있어 경관이나 운치는 다른 간이역에 비해 덜하지만, 과거 수원과 인천을 오가던 협궤 꼬마열차의 추억이 어려있는 곳이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동인천역→6-1번,46번 버스→송도역 삼거리. 6. 정선선 나전역 꼬마열차로 유명한 정선선의 4대 간이역 중 한 곳. 과거 석탄을 나르던 정선선이 이제는 관광객을 나르는 철길로 바뀌었고, 그 중심에 나전역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목조역사인데다, 성신여대 미대 학생들이 그린 도깨비그림이 인상적이어서 철도마니아뿐 아니라, 아이들도 무척 좋아하는 곳이다. ▲가는 길 청량리역→강릉행 열차→증산역 →아우라지행 통근열차로 환승→나전역. 증산과 아우라지를 오가는 통근열차는 하루 2회 운행. 청량리역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면 증산역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하는 통근열차와 연결된다. 7. 경원선 서빙고역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서울시내에 남은 역사 중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다.1958년에 지어졌다. 전철 서빙고역과 맞붙어 있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서빙고역 하차. 8. 동해남부선 거제역 1940년대에 지어진 일제시대 간이역. 철도역사가 플랫폼 위에 서있는 몇 안되는 역사 중 한 곳이다. 부산광역시 거제동에 섬처럼 자리잡고 있다. 동해남부선 이설 및 광역 복선전철화 작업과 함께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동해남부선 철길과 맞닿은 벽화도 볼거리다. 철도에 관한 시와 귀여운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가는 길 서울역, 영등포역→포항, 울산행 열차 →경주역 하차→거제역. 무궁화 열차가 하루 3회 운행. 9. 중앙선 우보역 중앙선에는 유난히 1940년대 초반에 지어진 역사가 많이 남아 있다. 그중 경북 군위군에 위치한 우보역과 화본역이 추천할 만하다. 두 곳 모두 시골 한적한 마을을 감싸안은 모양으로, 하루 4∼5회 열차가 선다. 기차가 아니면 접근이 쉽지 않은 깊은 산 속 간이역이다. 아담한 간이역사 외에도 오래 된 화물홈의 모습과 역장의 친절함이 인상적인 곳. ▲가는 길 청량리역→안동행 열차→안동역 하차→부전행 열차→우보역. 무궁화 열차가 하루 1회 운행. 10. 구 문경선 진남역 석탄산업이 한창이던 1960년대 문경선과 가은선의 분기점이자 신호장역으로 개업한 곳이다.60년대 지어진 곳으로는 보기 드물게 목조역사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레일바이크 매표소로 쓰이고 있다. 문경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해서는 가은선 가은역 앞 가은농공단지, 또는 문경선 진남역을 이용하면 된다. 진남교반과 그 아래를 흐르는 영강의 경치가 일품인 곳. 여행과 레저를 겸할 수 있는 멋진 간이역이다. ▲가는 길 서울역→김천역 하차→영주행 열차(하루 3회 운행)→점촌역→가은, 문경행 시내버스→진남휴게소.
  • 특허청 차장 이태용씨

    정부는 4일 특허청 차장에 이태용(51) 산업자원부 기간제조산업본부장을 승진 임명했다. 이 신임 차장은 행정고시 22회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와 행정대학원, 미 버클리대학원(에너지자원석사)을 졸업한 산자부 자본재산업총괄과장과 주 제네바 대표부 참사, 자본재산업국장 등을 거쳤다.
  • [서울신문 제16회 교통봉사상-장려상] 2400개 업체 최고경영자 연수

    ●조시영(45)안전부문·교통안전공단 광주전남지사 교수 국내 최초로 2400개 업체에 최고경영자 연수를 실시했다.2003년부터 운수업체 교통안전진단을 실시해 교통사고 감소에 기여했다. 교통사고분석사 민간자격제도, 우수업체 인증제도를 도입했고,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업체에 대해 특별점검도 실시했다. 교통 약자를 위한 사업도 추진했다.
  • 소비자정책 ‘우먼파워’

    공정거래위원회에 첫 여성 본부장이 탄생했다. 공정위는 30일 소비자본부장에 윤정혜(52) 인하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를 임명했다. 공정위에서 과장급 이상으로도 여성은 처음이다. 이로써 소비자정책의 ‘3대 축’인 공정위 소비자본부장과 재경부 소비자정책과장, 한국소비자보호원장 등을 모두 여성이 맡아 ‘소비자정책 여성 3인방’이 탄생했다. 서울대 가정관리학과 선·후배인데다 모두 한국소비자학회 회원이기도 하다. 공정위는 개방형 직위인 소비자본부장에 공모를 거쳐 소비자정책 전문가인 윤 교수를 1일자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서울대 가정관리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하대에서 24년간 소비자의 주권확립과 권익증진 방안을 연구했다. 인하대 생활과학대 학장과 한국소비자학회 회장, 인천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앞서 이승신(51) 소비자보호원장은 지난해 공모로 첫 여성 원장이 됐다. 서울대 가정관리학과를 나왔으며 서울 선정여중 교사와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 한국소비자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원으로도 일했다. 민현선(40) 재경부 소비자정책과장도 재경부 내 첫 여성 과장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2004년 개방형 직위에 공모로 선발됐다. 서울대 가정관리학과를 나와 삼성전자를 거쳐 서울대 등에서 강의를 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칼데론 멕시코대통령 혼란속 취임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 당선자의 새 정부가 1일 출범한다. 그러나 선거결과에 불복한 야당의 ‘저항정부’ 구성과 전국적인 소요 사태로 인해 출범도 하기 전에 역풍을 맞고 있다. 대선에서 맞붙은 좌파진영의 로페스 오브라도르 민주혁명당(PRD) 후보는 지난 20일 ‘합법 대통령’을 자처하며 저항정부를 구성했다.빈민층을 위한 제도개혁과 부패척결을 밀어붙이면서 현직 대통령 조기퇴진 및 조기대선을 성사시키겠다고 공언하는 PRD 인사들도 있다. 이에 대해 칼데론은 측근들로 내각 인선을 마치고 야당의 대중시위나 ‘정권 불복종운동’에 대해 정면돌파를 준비하고 있다고 LA타임스,AP 등이 30일 보도했다. 좌파 야당의 주장을 수용하는 ‘유화정책’보다 친미적인 외교정책과 시장 및 성장에 무게를 둔 중산층 위주의 정책을 밀고 나가며 역풍에 맞서겠다는 자세다. 칼데론이 최근 “가난과 불평등에 맞설 가장 효과적인 노선은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기업 등 보수세력을 대표해 왔다는 평을 받아왔다. 미국 하버드대 석사출신의 변호사이며 북부자본가 세력을 기반으로 두 차례의 연방의원과 국민행동당(PAN) 사무총장·총재, 국가개발은행 총재 등을 지낸 그의 경력도 향후 정책방향을 예상케 한다. 그의 이같은 성향으로 미뤄볼 때 미국에서 교육받은 친기업 성향의 경제·기술관료들이 새 정부를 주도해나갈 전망이다. 외신들은 각료 내정자 가운데 칼데론과 같은 PAN 소속인 현 비센테 폭스 대통령 정부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던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칼데론은 폭스정부에서 에너지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제도권 정치를 외면하는 PRD 등 좌파 정치권과의 화합이 과제로 남아 있다.야당 의원들이 대통령 취임식을 막기 위해 의사당 점거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화와 국민통합을 이뤄낼지가 관건이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어려운 법률용어 쉽게 바뀐다

    어려운 법률용어 쉽게 바뀐다

    28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관련 법률은 모두 63건이다. 건축법, 고용보험법 등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법안들이다. 그동안 우리 법률 문구는 전문가들에게도 어렵다는 평을 들었다. 법제처가 수요자인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고,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법령을 만들겠다며 사업을 추진한 이유다. 올해부터 2010년까지 추진되는 이 사업은 이번에 정비된 법률을 포함, 매년 250여건씩 모두 1100여건을 정비할 계획이다. 첫해인 올해는 3억 77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이번에 손질된 법령들에서는 어려운 한자어, 일본어 투의 용어나 표현, 복잡한 문장이 간결하고 바르게 다듬어졌다. 특별히 대안이 없거나 혼동을 줄 우려가 있는 한자는 한글과 같이 쓰도록 해 이해를 돕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행정자치부, 문화관광부, 농림부등 9개 소관부처는 물론 법무부, 국립국어원 등 관련 전문기관의 의견을 수렴했다.‘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위원회’를 운영, 일본어 전문가, 한문전문가 등 민간전문가들의 자문도 받았다. 특히 법제처는 이번에 박사급 1명과 석사급 1명 등 국어전문가 2명을 특별 채용해 전문성을 높였다. 김선욱 법제처장은 “법률 내용에는 손대지 않고 쉽게 풀어쓰는 데 초점을 맞춘 만큼 상임위 통과도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한국 우주인 후보 10명으로 압축

    과학기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4일 한국 우주인 후보 2차 선발자 30명 가운데 3차 선발 평가를 거쳐 10명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선발자들은 20대와 30대가 절반씩이었고, 기혼자는 2명이었다. 여성이 3명으로 2차 선발자 중 최연소였던 KAIST 화학 석사과정의 박지영(23)씨가 포함됐다.2차 선발자 중 최고령자인 조성욱(49) 중앙대 교수는 탈락해 이진영(36·공군 소령)씨가 최연장자로 선발됐다. 직업별로는 이공계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연구원이 4명, 대학원 석사과정 2명, 공군 전투비행단 편대장, 경찰관 등 다양했다. 과기부와 항공우주연구원은 이들 10명을 대상으로 러시아 우주인 훈련센터 평가 등으로 진행되는 4차 평가를 거쳐 다음달 25일 최종 후보 2명을 뽑는다.2명은 내년 3월부터 러시아 가가린 훈련센터에서 훈련을 받은 뒤 최종 1명이 2008년 4월쯤 러시아 소유즈호에 탑승하게 된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한인 여성 샐리 최 LA 부시장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시 공무원 은퇴위원회의 샐리 최 부위원장이 로스앤젤레스 부시장으로 선임됐다.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LA 시장은 20일(현지시간) 샐리 최 부위원장을 조세감독국 부시장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조세감독국 부시장은 시 산하 기관이 사용하는 연간 67억달러의 예산이 적법하게 사용되는지를 감독하는 직책이다.1992년부터 LA시에서 근무한 샐리 최 부시장은 남가주대(USC)에서 공공행정학을 전공했고 UCLA 앤더슨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한편 LA시에서는 한인 모리스 서가 국토안보부 부시장으로 활약하다 지난달 사임했다.로스앤젤레스 연합뉴스
  • [커리어 우먼] 박남희 한국MS 상무

    [커리어 우먼] 박남희 한국MS 상무

    지난 5월 세계적 소프트웨어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스티브 발머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해 발표한 계획들 중 가장 관심을 끈 건 ‘한국 소프트웨어 생태계 프로젝트’였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와 개발인력 지원에 3년간 3000만달러(282억원)를 투자하는 내용이다. 이 계획 입안자가 바로 한국MS의 박남희(45) 개발자 및 플랫폼 전도사업부 상무이다. 박 상무는 2004년부터 플랫폼 전도사업을 맡으면서 협력업체와 관련 학자들을 가능한 한 많이 만나 애로사항을 들었다. 이들은 한국MS가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소프트웨어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공계 기피현상 등으로 인력 부족에 시달릴 엔지니어 분야에서도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MS에 기반한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고 쓰이도록 소프트웨어 업체와 개발자를 독려하는 업무를 맡은 그녀로서는 놓칠 수 없는 충고이자 기회였다. 본사와 1년 가까이 밀고당기는 협의 끝에 생태계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런 노력들이 더해져 지난달 한국MS의 첫번째 여자 상무로 승진했다. 막상 프로젝트는 시작했지만 본사의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100% 확신하지는 못했다. 한국MS가 MS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불과하고, 다른 해외 MS 현지법인들도 본사의 지원을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확신이 들면 도전해보자.” 박 상무는 “성공할 확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머지는 그동안의 경험이 메워주기 때문에 해볼 만하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그녀는 “대부분의 경우 남자는 50%가 안 되는 확신만 들어도 일을 시작하지만 여자는 100% 가까운 확신이 있어야만 일을 시작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작은 도전이라도 자꾸 해 경험이 쌓여야만 나중에 큰 도전이 닥쳤을 때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일이 잘못돼 실패한다 해도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며, 실패에서도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그녀는 한국휴렛패커드에 근무하던 1995년 삼성그룹의 사내정보망인 싱글(SINGLE)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으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박 상무는 “당시 20만명인 삼성그룹 전 직원이 출근 직후 메일 확인을 위해 싱글에 동시 접속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회고했다.3∼4달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외국에 있는 엔지니어들과 통화하면서 문제들을 해결해냈다. 힘들었던 만큼 보람도 컸고, 이 시기를 묵묵히 지켜봐준 가족들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진다. 엔지니어인 그녀는 한국MS로 옮기면서 마케팅 업무를 처음 접했다. 고객 하나하나에 맞춘 판매, 시장규모에 대한 예측 등 기술지식과는 다소 다른 지식들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지만 전문기술 지식을 토대로 협력업체들을 하나씩 공부해가면서 난관을 넘었다. 이런 노력들이 쌓여 2000년에는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디지털네트워크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벤처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1년만에 한국MS에 재입사했다.“떠날 당시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서를 만들어 놓고 가라는 상사의 지시를 받고 일을 완성하기 위해 한달 이상 늦게 떠난 것이 좋은 점수를 받은 모양”이라고 추측한다. 박 상무는 “회사를 옮겨도 전에 다니던 회사 사람들은 어디서든 다시 만날 사람들”이라면서 “떠나는 시기에도 다니던 회사에 최선을 다하라.”고 충고한다. ■ 박남희 상무는 ▲1985년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졸업, 과학기술부 산하 시스템공학연구소 ▲1990년 아이오와 주립대 컴퓨터공학 석사, 한국휴렛패커드 입사 ▲1997년 한국MS 비즈니스 솔루션 사업부 차장 ▲2000년 디지털네트워크그룹 마케팅 이사 ▲2001년 한국MS 부장 ▲2004년 한국MS 이사 ▲2006년 한국MS 상무 글 전경하 사진 도준석기자 lark3@seoul.co.kr
  • [주말탐방] 집값만큼 몸값뛰는 부동산 PB들

    [주말탐방] 집값만큼 몸값뛰는 부동산 PB들

    “무주택자는 하루빨리 내집을 갖고 싶다. 집이 있다면 계속 넓혀가고 싶다. 잘 사고 잘 팔고 싶다. 개발을 제대로 하는 등 관리도 잘하고 싶다.” 최근 집값이 상식을 넘는 수준으로 급등하면서 전국에 부동산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잘만 하면 ‘큰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부동산 재테크. 속시원하게 부동산 문제를 상담해주는 시중은행 PB사업부내 부동산 재테크 팀장들이 ‘부동산 전문가’ 그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은행에 부동산 전문가를 두기 시작한 것은 2001년말부터.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 셈이다.11월 현재 국내 주요 시중은행에서 은행 PB고객을 상대로 부동산 재테크 담당 전문가들은 20명에 불과하다. 요즘 스타로 떠오른 대표적인 은행의 부동산 전문가들. 그들을 만나봤다. ■ 팬카페· 대학·백화점 등 멀티로 활동 8·31 부동산대책이 나온 직후인 지난 2005년 9월 초. 고준석(42) 신한은행 부동산 팀장은 서울 정릉에 사는 62세 할머니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3억원을 쥐고 있는데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고 팀장은 “강남구 청담동 17평짜리 S아파트를 사라.”고 찍어줬다.1000만원 보증금에 매달 80만원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임대사업이다. 당시 2억 8000만원에 산 아파트는 지금 5억 6000만원이 됐다. 비전을 고려한 투자는 성공했고 할머니는 이 은행의 VIP 고객이 됐다. “○○재건축은 더 오릅니다. 팔지마세요”,“□□은 장기적으로 좋지만 최근 급등을 감안해 조정을 거친 뒤인 11월 하순 이후 알아보세요.”,“실거주용 5억∼6억원대 아파트를 원한다면 송파구 오금동, 가락동, 풍납동을 찾아보세요.” 이처럼 시원하고 명쾌한 답변은 고 팀장의 매력이다. 무료 상담을 해주는 그의 팬카페인 아이러브 고준석(http://cafe.daum.net/gsm888)이 개설 1년만에 회원 9400명을 확보한 것도 이런 이유다. 신문 기고는 물론 대학 강의, 백화점 문화센터 강사, 방송 패널 등 섭외 요청도 쇄도한다. 동국대에서 본인 이름으로 분기마다 하고 있는 무료 부동산 특강도 인산인해(人山人海)다. 그의 전문성도 역시 현장에서 길러졌다.1994년 봄. 담보 부동산을 경매에 부쳐 대출금을 회수하는 여신관리부에 발령받으면서 부동산에 눈을 떴다.5년간 취급한 경매물건만 2000건이 넘는다. 낮에는 지번을 찾아 전국 현장을 누볐다. 밤에는 동국대 부동산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2001년 11월 행내 PB사업부내 부동산 재테크 팀장을 맡으면서 이 은행 1호 부동산 컨설턴트가 됐다.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몸값이 치솟는 만큼 유혹도 많다. 연봉의 5배를 부르는 스카우트 제의부터 그의 상담력을 빌리려는 부동산 업자들까지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다. 그는 “사심(私心)을 갖는 순간부터 부동산 컨설턴트는 생명이 끝난다.”면서 “개인 팬 카페상의 무료 상담 서비스를 하는 것도 회사 배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 만큼 신한은행 부동산 전문가로서 모든 무주택자들이 내집마련하는 그날까지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 9년 기자생활 접고 재출발한 4년차 “시장 예측을 잘해서 돈을 벌어주는 일도 기쁘지만 투자 손실을 막아주는 일이 더욱 보람찹니다.” 안명숙(37) 우리은행 부동산 팀장의 얘기다.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버는 사람보다 돈을 잃은 사람이 사실 더 많다고 그녀는 말한다. 컨설턴트란 고상하게 단순한 투자 상담만 해줄 뿐 아니라 때로는 온몸으로 부딪치는 고생도 감수해야 한다. 최근 남편과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지인의 소개로 기획부동산에 덜컥 1억원을 투자했다 낭패를 볼 뻔했던 김모(52) 주부의 돈을 찾아준 일이 그런 경우다. 안 팀장이 계약서를 검토한 결과 명의도 넘어오지 않은 사기 계약이었다. 명의 이전을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이익이 날 수 있는 땅도 아니어서 무조건 돌려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계약 당사자를 찾아가 계약서 내용을 조목조목 따지고 온갖 협박과 회유(?) 끝에 1억원을 간신히 받아냈다. 은행이란 조직이 크다 보니 상대방이 지레 겁을 먹고 돈을 돌려준 것 같다고 스스로를 낮췄다. 안 팀장은 처음부터 부동산 컨설턴트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부동산 전문기자 출신인 그녀는 9년여의 취재기자 생활 끝에 연세대에서 도시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지난 2003년부터 R2코리아 등 부동산 투자자문회사를 거치며 컨설턴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능력을 인정받아 우리은행 PB센터 부동산팀장으로 스카우트되면서 지금은 이 은행 TV 광고에도 얼굴을 내밀 만큼 유명인사가 됐다. 그녀가 하루에 상대하는 고객만 전화 상담을 포함해 40명에 이른다. 우리은행은 3000만원 이상을 예금한 고객들에게는 모두 무료 부동산 컨설팅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상열기만큼 부동산 전문가를 꿈꾸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이와 관련, 안 팀장은 “부동산을 공부하는 사람도 계속 많아지는 추세인 만큼 부동산 전문가가 되려면 부단한 자기계발은 필수”라고 지적한다. 그녀는 “금융·세제·법률 등 부동산 연관 분야는 모두 섭렵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부동산 이외의 다른 투자 대안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 “팔리지 않는 부동산 자산을 다른 상품으로 유동화시킬 수 있는 능력까지 요구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 15년 경험…사내 1호 컨설던트 부동산 컨설팅을 받는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너무 잘 알아서 결정을 끝낸 뒤 옳은 판단인지를 확인받으러 오는 확신형. 투자를 전적으로 일임하는 위임형. 부동산에 관심은 있어 상담은 받지만 투자는 하지 않는 갈등형이다. 갈등형 부류의 고객들이 “그때 얘기를 들었어야 하는데…”하며 돌아와 투자를 위임할 때 박합수(40) 국민은행 부동산 팀장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물론 갈등형이 투자에 나서기까지는 두 번 이상의 “아차!”를 반복한 이후다. 컨설팅의 기본은 신뢰관계 구축이다 보니 보수적이고 의심많은 이들에겐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박 팀장은 사람들이 부동산 투자에서 가장 많이 범하는 우(愚)가 바로 시기에 대한 판단을 놓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사거나 팔거나 개발해야 할 때를 헷갈리고 적절한 증여 시기를 놓치는 경우다. 컨설턴트란 이런 사람들을 위해 부동산 정책부터 시장 흐름까지 맥을 짚고 포인트를 잡아주는 일이다. 자동차 기름값부터 세계 정세까지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박 팀장은 1986년 일반 행원으로 입사했다. 은행에서 직접 점포를 지어 설계·입찰·건물관리를 하는 건물 신축 담당일을 시작하면서 부동산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이어 일반 대출 감정평가, 낙찰 물건에 대한 담보 재평가 등 감정평가 업무를 집중적으로 맡으며 구두 뒤축이 닳도록 수도권 곳곳을 누비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부동산 관련 업무만 15년째다. 2003년 9월 PB사업부에서 일할 부동산 전문가를 뽑을 때 응시해 국민은행 부동산 컨설턴트 1호가 됐다. 공인중개사 자격증부터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석사학위까지 가지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좋지만 요즘처럼 온 국민이 정상적인 경제활동 대신 부동산 열기에 휩쓸리는 풍경은 안타깝다는 게 박 팀장의 얘기다. 그는 “부동산을 배운 사람들은 부자가 됐기 때문에 내집을 마련할 때까지 부동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세상인 것은 틀림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에서도 지역이나 종목별, 그리고 부동산 이외의 다른 포트폴리오도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4∼5년 뒤에는 올 것 같다.”고 전망했다. 글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그래픽 김선영기자 ksy@seoul.co.kr
  • 통화주의·자유시장 경제학 거두 美 프리드먼 교수 별세

    통화주의의 거두이며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자로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 교수가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심장병으로 타계했다.94세. 1912년 헝가리 유대계 이민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프리드먼 교수는 30년대 대공황 이후 세계 경제학계를 지배해온 ‘케인스 학파’의 유효수요 이론을 거부하고 통화주의 경제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뉴저지주 럿거스대를 졸업한 프리드먼 교수는 시카고대에서 석사,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하면서 ‘시카고학파’를 이끌었다. 그의 통화주의 이론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은 화폐의 과다공급이 원인이며 일정한 기준에 의해 통화량을 결정해야 물가안정과 경제성장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K%룰’이다. 그의 이론은 70년대 석유파동을 계기로 경제학계의 주류로 자리잡았으며, 케인스 경제학이 과도한 인플레이션에 의한 세계 경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대안으로 부상했다. 그의 이론은 볼커 미연방준비은행 총재의 금리정책에 반영돼 미국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막는 데도 일조했다. 프리드먼 교수는 케인스 학파가 통화정책을 비판하고 재정정책의 효과를 주장한데 대해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라는 명제로 통화주의 이론을 방어했다. 한편으로는 시장의 효율성을 위해 정부나 중앙은행의 시장개입을 반대했다. 그는 슈바르츠와 공저한 ‘미국의 역사´ 출판으로 권위를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으며, 레이건 행정부 경제자문, 뉴스위크 고정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명저로 꼽히는 ‘자본주의와 자유’는 부인인 로즈 프리드먼과 공동저술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정부 5급이상 11.8%가 박사

    정부 5급이상 11.8%가 박사

    정부부처에 근무하는 5급 이상 공무원 10명 가운데 1명꼴로 ‘박사님’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10명 중 4명은 석사학위 이상 고학력자로 집계됐다. 특히 농촌진흥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청, 특허청 등 이공계 출신 비율이 높은 청(廳)단위 전문기관이 이른바 ‘가방 끈이 긴’ 고학력자가 많은 ‘빅(BIG) 3’ 기관으로 꼽혔다. 중앙부처 5급 이상 관리직 공무원의 학력을 일제조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6일 중앙인사위원회가 분석한 ‘52개 중앙행정기관 5급 이상 학력·전공별 현황자료’에 따르면 전체 5급 이상 국가공무원 2만 4024명 가운데 박사학위 소지자는 11.8%인 2832명이다. 이중 행정학 박사는 5.5%인 157명, 법학 박사는 4.1%인 116명, 정치학 박사는 2.9%인 81명 등으로 부처 특성에 따라 전공이 다양하게 분포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석사학위 소지자는 28.5%인 6856명, 학사학위 소지자는 43.7%인 1만 506명으로 각각 나타났다. 전문대 졸업 이하의 학력 소지자도 14.6%인 3506명이다. 박사 학위자 비율이 가장 높은 기관은 농촌진흥청으로 전체 581명 가운데 68.2%인 396명이다. 이어 ▲식약청 54.4% ▲특허청 32.0% ▲기상청 23.6% ▲보건복지부 23.2% ▲환경부 22.3% 등의 순이다. 이들 기관에 고학력자가 많은 것은 업무 성격상 전문성이 필요해 박사나 석사 학위자들이 공직 초기에 많이 진입한 데다, 참여정부 들어 이공계 강화 차원에서 박사학위 소지자들을 대거 특채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사를 포함한 석사학위 이상자 비율도 농촌진흥청이 87.0%로 가장 높았다. 여전히 식약청과 특허청이 각각 77.7%와 62.5%로 2,3위를 기록했다. 이밖에 환경부 60.5% ▲대통령비서실 55.2% ▲복지부 54.5% ▲기상청 53.5% ▲과기부 53.4% ▲인권위 53.1% 등 15개 기관에서 석사학위 이상자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법제처와 금융감독위원회, 비상기획위원회 등 3개 기관은 5급 이상 공무원 가운데 전문대 졸업 이하자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전반적인 학력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인사위 김명식 인사정책국장은 “국민들이 원하는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임용 후 재교육 과정을 거쳐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공무원이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정부의 역할이 법치행정에 있는 만큼 행정학·법학·정치학 등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각 부처에 골고루 투입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사설] 사범대 6년제 전환 필요한가

    국·공립 사범대학장 협의회가 엊그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범대 수학 연한을 현행 4년에서 6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원의 절반은 신입생으로 뽑고, 나머지 절반은 4년제 대학 졸업생을 5학년으로 충당하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중·고교 교사가 되려면 앞으로는 최소한 대학에서 6년을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는 석사 학위이상 소지자만이 중·고교 교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중·고교 교사를 하는 데 꼭 6년이라는 대학교육 기간이 필요한가 하는 점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현행 대학교육 과정에서 6년 수학을 기본으로 하는 학과는 의예과·한의예과 등 몇몇에 불과하다. 나머지 학과는 4년만 공부하고도 사회에 진출해 활동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이다. 국·공립 사범대학장 협의회는 6년제로의 전환이 전문성과 전인적 인격을 갖춘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4년 공부한 사람보다는 6년 공부한 사람을 대상으로 교사를 선발하는 게 바람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교사 선발은 일종의 자격시험이다. 특정한 자격을 따는 데 2년을 더 공부하도록 한다면 그에 따라 사회적 비용이 더 드는 것은 당연하다. 아울러 자격을 딴 사람에 대한 사회적 대우도 그 전과는 달라져야 한다. 현재 사범대 졸업생들이 중·고교 교사로 취업하는 비율은 30%선이다. 취업을 확실히 보장하지도 못하면서 자격요건만 강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학교교육의 수요자인 학부모·학생 층에서 교사의 학력에 관해 이의를 제기한 바가 없다. 그런데도 무리하게 6년제 전환을 추진하는 건 직역(職域) 이기주의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국·공립 사범대학장 협의회는 다시금 숙고하기 바란다.
  • 국립사범대 “6년제 전환 추진”

    현행 4년제인 사범대학 교육과정을 6년제로 바꾸자는 안이 국립 사범대 학장협의회에서 제시됐다. 교육인적자원부가 2004년 10월 밝힌 교원양성체제개편 방안에 따르면 현행 4년제 교원양성체제를 5년제 학·석사 통합형이나 6년제 교원전문대학원제로 도입할지 여부를 2010년까지 확정하게 된다.서울대 사범대는 14일 이 같은 사범대 6년제 개방·혼합형 모델을 발표했다. 지난 9월 전국 국립 사범대 학장단 회의에서 합의된 방안이다. 전국 국립대 사대 학장단은 향후 이 방안의 도입을 위해 필요한 고등교육법 개정을 정부에 건의한다. 이 방안에 따르면 사범대의 수학 연한은 현행 4년에서 6년으로 연장된다. 정원의 50%는 대학 1학년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50%는 4년제 대졸자를 대상으로 5학년으로 선발한다. 서울대 사범대 조영달 학장은 “현재 정원의 50% 해당하는 인원을 비사범대 학생들에게 개방함으로써 혼합형, 통합형 사고를 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할 수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면서 “새 제도를 통해 배출되는 교사들이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사대 졸업생들의 중등교원 임용률은 30% 선이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안익태 선생 ‘리스트 음대’ 유학기록 첫 발견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애국가의 작곡가 고(故) 안익태(사진 아래·1906∼1965) 선생이 1938∼1941년 헝가리 유학 당시 코다이 졸탄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로부터 지도받았음을 보여 주는 학적기록(사진 위)이 공개됐다. 특히 1938년 10월16일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1938∼1939년 학적기록에서 안익태 선생은 친필로 자신이 태어난 곳을 ‘조선’이라고 분명히 밝혀 주목된다. 부다페스트 리스트 페렌츠 음악예술대학(리스트 음대)은 12일(현지시간) 주 헝가리 한국대사관의 요청으로 수개월간 대학 문서보관소를 뒤진 끝에 최근 안익태 선생에 대한 학적부와 기숙사 명부, 콘서트 기록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안익태 선생의 유학시절 학적기록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타 안드라시 리스트 음대 총장은 “기록상으로 안익태 선생은 이 곳에서 첼리스트로도 활동했으며, 당대 최고의 기량을 갖춘 음악가로 대접받았음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 사사 학적기록표에는 선생이 작곡은 코다이 졸탄, 바이올린-첼로는 쉬페르 아돌프, 실내악은 바이너 레오, 합창 지휘는 웅게르 에르뇌로부터 지도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헝가리 민속 음악을 집대성, 헝가리 민요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코다이와 안익태 선생과의 관계는 선생이 코다이로부터 사사했다는 얘기가 전해졌을 뿐 구체적인 물증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었다. 쉬페르는 당대 최고의 첼로 연주자 중 한 명이었고, 실내악을 가르친 바이너 역시 헝가리 최고의 실내악 전문가 및 작곡가였다. 또 코다이와 함께 헝가리 민속음악을 집대성한 바르토크 벨라의 수제자이자 당시 최고의 피아노 연주자 중 한명인 코샤 죄르지의 반주로 부다페스트에서 첼로 공연을 했던 콘서트 프로그램도 발견됐다. 콘서트에서 안익태 선생은 자작곡인 ‘백합’과 ‘목가곡’을 비롯해 헨델과 바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곡을 연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안익태 선생은 1938∼1939년 친필로 작성한 학적부에서 국적과 모국어란에 일본과 일본어라고 적었다. 그러나 주소란에는 당시 일본 주소 위에 ‘조선’(Chosen)을, 괄호안에 ‘코리아’(Korea)를 써넣었으며, 출생지란에도 ‘재팬’(Japan) 앞에 ‘평양, 조선’(Pyeng Yang,Chosen), 괄호 안에 역시 코리아로 기록해 자신이 한국인임을 밝히고 있다. 생년월일은 1911년 12월5일로 기록돼 있는데, 이는 선생이 1906년생이지만 당시 나이가 많을 경우 입교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이렇게 표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국인 장학생으로 3년 머물러 관련 경력란에는 1930년 도쿄 아카데미뮤직 음악 학사,1936년 필라델피아 음악학교 음악 석사라고 표기돼 있으며, 헝가리내 주소는 부다페스트 6구역에 있는 ‘외트뵈시’(Eotvos) 학생 기숙사라고 적혀 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외국인 장학생 자격으로 헝가리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3년간 머물렀다. 서울에 있는 안익태 기념재단의 박정미 사무국장은 “헝가리 유학생활을 상세히 알 수 있는 학적부가 발견된 점, 외국인 교환학생으로 장학금을 받은 점 등은 선생의 활동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학적부에 평양과 조선, 코리아를 기재한 점에 상당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함혜리기자 lotus@seoul.co.kr
  • [세계의 싱크탱크] (13) 미국 워싱턴 브루킹스 연구소

    [세계의 싱크탱크] (13) 미국 워싱턴 브루킹스 연구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싱크탱크들 가운데 브루킹스가 차지하는 위치는 대학들 내에서 하버드가 차지하는 위치와 비슷하다. 브루킹스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연구소 가운데 하나이고, 연구 결과가 가장 많이 인용되며, 이에 따라 영향력이 가장 큰 싱크탱크로 손꼽힌다. 학문적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중도좌파적인 성향을 가진 것으로 분류된다. 브루킹스의 역사는 1916년 개혁주의자들에 의해 세워진 정부연구소(Institute for Government Research)로부터 시작한다. 이 연구소의 탄생을 지원했던 세인트루이스 출신의 사업가 로버트 브루킹스는 1922년과 1924년에 경제연구소(Institute of Economics)와 브루킹스대학원을 추가로 설립한 뒤 1927년 세 기관을 모두 합쳐 브루킹스연구소로 재탄생시켰다. 브루킹스는 특정 분야를 심층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대내외 정책의 전반을 연구하는 종합 연구소이다. 그 가운데서도 연구가 가장 활발한 분야는 미국의 대외정책, 경제, 정부와 통치, 국제경제와 개발, 메트로폴리탄 정책이다. 브루킹스는 연구소 내에 교육 정책, 아동과 가정, 동북아정책연구, 사회 및 경제 변동, 미국과 유럽, 중동정책을 연구하는 별도의 연구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와 함께 보수적 성향의 미국기업연구소(AEI)와 공동으로 각종 행정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시하기 위한 연구도 수행 중이며, 어번연구소와는 세금 정책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국제경제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싱크탱크의 영향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구 결과가 가장 많이 언론에 인용된 연구소는 브루킹스였다.2000년과 2002년에 이뤄졌던 비슷한 조사에서도 브루킹스는 1위를 차지했었다. 브루킹스의 국내외적인 영향력은 다양한 부류의 거액 기부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50만달러(약 5억원) 이상 기부자 가운데는 뉴욕의 카네기 사와 영국의 국제개발부, 카타르 대사관, 미 상공회의소가 포함돼 있고 25만달러 이상 기부자에는 보스턴 칼리지와 포드 재단, 도쿄 클럽 재단,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부가 들어 있다. dawn@seoul.co.kr ■ “독립된 정책적 시각·목소리 그대로 반영” “특정 정치인 도울땐 떠나야… 복귀땐 환영”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브루킹스의 론 네센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소장과 한반도 전문가인 리처드 부시 선임연구원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연구소의 경쟁력 유지 방안과 연구 수행 방식 등을 설명했다. ▶브루킹스의 차별화된 경쟁력은 무엇인가. 네센= 오랜 역사와 통찰력 있는 연구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최근 들어서는 초당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워싱턴은 양극화된 이념의 싸움장이다. 그런 곳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평가를 받는다고 본다. 워싱턴에는 다양한 종류의 싱크탱크가 존재한다. 어떤 싱크탱크는 특정한 ‘어젠다’를 옹호하기 위해 결과를 정해놓고 연구를 시작한다. 브루킹스는 다르다. 순수하게 연구를 통해 결과를 도출한다. ▶보수측에서는 브루킹스가 ‘리버럴’하다는 평가를 한다. 부시= 우리 연구소에 특정한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브루킹스에는 중도좌파적인 연구원과 중도우파적인 연구원이 공존한다. 연구원마다 각자의 주관이 있다. 헤리티지처럼 연구원들이 연구소의 ‘지침’에 따라 연구를 수행하는 곳도 있지만 우리는 다르다. 예를 들어 북한 문제의 경우 어떤 연구원은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다른 연구원은 보다 유연한 정책을 지지한다. ▶정부나, 기업이나 최근에는 ‘같은 모습, 같은 목소리(One Look,One Voice)’라는 통합되고 일관된 메시지를 중요시한다. 연구소의 연구결과도 그런 점이 필요한 것 아닌가. 부시= 그것은 기구의 철학과 관련된 것이다. 브루킹스는 연구원들의 독립된 정책적 시각을 존중해온 전통을 갖고 있다. 네센= 우리 연구소의 분위기는 대학과 비슷하다. 브루킹스는 국내 정책이나 대외 문제에 대해 연구소 차원의 견해를 밝히지 않는다. 연구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그대로 살려준다. ▶다양한 목소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시= 예를 들어 북한 문제에 대해 토론회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우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면 토론이 활성화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토론을 보고 있는 일반인들이 문제의 여러 측면을 알게되고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연구소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에게 특정한 독트린을 주입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 연구소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를 제시해준다. ▶선거 때 특정한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는가. 부시= 만일 브루킹스의 연구원이 특정한 정치인을 돕고 싶다면, 개인 시간에 할 수가 있다. 만일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연구소를 떠나야 한다.2004년에 동료 연구원 2명이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외교 정책 공약을 돕기 위해 몇 달간 휴가를 냈다. 그리고 선거에서 케리가 패배하자 동료들은 연구소로 돌아왔다. ▶그들이 연구소로 돌아오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나. 네센=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돌아와 기뻤다. 브루킹스는 학문적 연구를 바탕으로 직접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인사들을 선호한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연구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면 연구의 질과 객관성은 어떻게 유지하나. 부시= 검증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연구원이 정책 보고서 초안을 완성하면 이를 소장에게 제출할 때 그 분야의 전문가 6명의 이름도 함께 줘야 한다. 소장은 그 가운데 3명에게 초안을 보여주고 의견을 듣는다. ▶브루킹스 같은 연구소를 갖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부시= 미국의 경우 정부가 각종 재단이나 기구에 대한 기부금을 세금에서 공제해준 것이 싱크탱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것이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연구기관을 만드는 토대가 됐다. dawn@seoul.co.kr ■ 브루킹스와 한국관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브루킹스의 대표적인 한국 전문가는 리처드 부시 선임연구원이다. 부시 연구원은 중국과 타이완 문제 전문가였으나 한반도까지 연구의 폭을 넓혔다. 부시 연구원은 스스로를 대북 강경론자라고 말하지만 보수적인 싱크탱크의 한반도 전문가들에 비해 중도적이고 온건한 정책 제안들을 제시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은 부시 연구원은 미 국가정보위원회에서 아시아 정책을 분석·조정하는 업무를 담당했으며,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다. 부시 연구원은 브루킹스 동북아정책연구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다. 이 센터에는 한국과 일본, 중국, 타이완, 홍콩 등에서 선발된 정부 관리나 연구원, 언론인 등이 관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박형중 통일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방문연구원으로 파견돼 동북아 정세 속에서의 한국 외교 정책 방향을 연구 중이다. 박 연구위원 직전에 파견됐던 임원혁 한국개발원(KDI) 연구원은 워싱턴에서 열린 각종 한반도 토론회에서 ‘외롭게’ 대북 포용정책의 불가피성을 설파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브루킹스의 마이클 오핸런 선임연구원도 안보분야에서 손꼽히는 한반도 전문가다. 프린스턴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모두 받은 오핸런 연구원은 군사전략과 군사기술, 군축 분야 등에 일가견을 갖고 있어 이라크전 등 주요한 안보 현안이 터질 때마다 미국 미디어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오핸런 연구원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행정부로 옮겨 대외정책을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오핸런 연구원의 현재 연구 과제 가운데는 이라크와 북한 정책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의회에서 그의 정책 보고서가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잭 프리처드 전 대북협상 특사는 최근까지 브루킹스에서 한반도 현안을 다루다 한국경제연구소(KEI)의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브루킹스는 지난 5월에는 세종연구소와 함께 ‘서울-워싱턴 포럼’을 출범시켰다. 두 연구소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매년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한반도 관련 현안들에 대해 토론하는 모임이다. dawn@seoul.co.kr
  • [HAPPY KOREA] 만추의 길 걸으며 가족추억 ‘새록’

    [HAPPY KOREA] 만추의 길 걸으며 가족추억 ‘새록’

    ‘제1회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걷기대회’가 11일 오후 ‘꽃과 나비의 고장’ 전남 함평 자연생태공원 일원에서 열렸다. 행정자치부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서울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이용섭 행자부 장관과 박준영 전남 도지사, 박종선 서울신문 부사장, 주민 등 모두 1만 5000여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앞서 이날 오전에는 광주 상무시민공원 일대 4.0㎞ 구간에서도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박광태 광주시장, 강박원 광주시의회 의장, 일반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한마음 걷기대회’가 열렸다. 걷기대회에서는 휴일을 맞아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단위 참가객들이 눈에 띄었다. 함평 대회장과 이웃한 마량·금구·가덕마을 주민들은 참가자들에게 손수 만든 떡과 전 등 음식을 나눠주는 넉넉한 인심을 베풀었다. 또 공원 일대 5.5㎞ 구간에서 펼쳐진 본 행사 외에도 상무대 의장대 시범과 풍물패 공연, 제1회 지역자원경연대회 사진전 등의 볼거리와 무료혈당·혈압측정, 즉석사진촬영, 소망쪽지걸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걷기대회가 끝난 뒤에도 현지에서 열리고 있는 국화대전을 감상하며 늦가을 정취를 즐겼다. 이용섭 장관은 대회사에서 “이번 걷기대회는 우수한 지역자원을 발굴·홍보함으로써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에 국민들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준영 지사는 환영사에서 “도시 과밀화와 농촌 인구 감소라는 문제를 해소하고 삶의 질이 보장된 지역을 만드는 것은 시대적 과제”라면서 “독창성과 다양성이 있는 지역을 만들 수 있도록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종선 부사장은 “걷기대회는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의 의지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걷기대회는 내년부터 해마다 두 차례씩 전국의 아름다운 거리를 선정해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함평 행사에는 이진 지방의제21 전국협의회 상임회장과 이석형 함평군수를 비롯한 전국 24개 지방자치단체장 및 부단체장도 자리했다. 함평 출신인 김원기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장윤창 전 국가대표 배구선수, 정재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도 참석했다. 글 함평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사진 광주·함평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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