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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수봉 낙석사고로 1명 숨지고 3명 부상

    인수봉 낙석사고로 1명 숨지고 3명 부상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로 1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13일 오전 9시 55분쯤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 인수봉 암벽 등반 코스인 취나드B에서 약 5t 무게의 낙석이 등산객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등산객 윤모(56·여)씨가 숨지고 이모(52)씨 등 50대 남성 3명이 골절 등 부상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윤씨는 장 파열로 사망했고, 부상자 3명은 왼발과 오른팔 골절, 타박상 등의 부상을 각각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당국과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에 따르면 경기도 모 산악회 소속 30여명이 이날 인수봉 암벽 등반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들 중 10여명이 먼저 암벽을 오르기 시작해 지상에서 10여m 지점에 있는 5t 규모의 바위에서 동시에 기다리다가 하중을 견디지 못한 바위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사고가 났다. 아래에서 대기하던 20여명은 대부분 피했지만 사상자 4명은 미처 피하지 못해 변을 당했다. 바위를 밟고 있었던 10여명은 로프 등 안전장치를 하고 있었고, 바위가 흔들리자 재빨리 피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당시 거점근무 중이던 공단 직원과 경찰산악구조대는 낙석 소리를 듣고 15분여 만인 10시10분쯤 현장에 도착해 응급조치했고, 그로부터 5분 뒤 헬기가 도착해 구조작업을 했다. 소방 관계자는 “인수봉 상층부에 고정돼 있던 바위가 풍화 작용에 의해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원인은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자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인수봉 암벽등반 코스 전 구간을 통제하고 설악산 등 전국 6개 국립공원의 45개 암벽등반 지역에 대한 일제 점검에 나섰다. 공단 측은 올 들어 인수봉 낙석제거 작업을 5회 실시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이달 2일 취나드B 코스의 낙석제거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이곳은 2007년 11월부터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해당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2인 이상에 한해 출입을 허용하는 출입제한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공단은 이날 사고를 당한 산악회의 출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공단은 오는 21일까지 일제 점검을 마친 뒤 통제 해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수봉 낙석사고로 1명 숨지고 3명 부상…5t 바위 덮쳐

    인수봉 낙석사고로 1명 숨지고 3명 부상…5t 바위 덮쳐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로 1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13일 오전 9시 55분쯤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 인수봉 암벽 등반 코스인 취나드B에서 약 5t 무게의 낙석이 등산객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등산객 윤모(56·여)씨가 숨지고 이모(52)씨 등 50대 남성 3명이 골절 등 부상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윤씨는 장 파열로 사망했고, 부상자 3명은 왼발과 오른팔 골절, 타박상 등의 부상을 각각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당국과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에 따르면 경기도 모 산악회 소속 30여명이 이날 인수봉 암벽 등반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들 중 10여명이 먼저 암벽을 오르기 시작해 지상에서 10여m 지점에 있는 5t 규모의 바위에서 동시에 기다리다가 하중을 견디지 못한 바위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사고가 났다. 아래에서 대기하던 20여명은 대부분 피했지만 사상자 4명은 미처 피하지 못해 변을 당했다. 바위를 밟고 있었던 10여명은 로프 등 안전장치를 하고 있었고, 바위가 흔들리자 재빨리 피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당시 거점근무 중이던 공단 직원과 경찰산악구조대는 낙석 소리를 듣고 15분여 만인 10시10분쯤 현장에 도착해 응급조치했고, 그로부터 5분 뒤 헬기가 도착해 구조작업을 했다. 소방 관계자는 “인수봉 상층부에 고정돼 있던 바위가 풍화 작용에 의해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원인은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자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인수봉 암벽등반 코스 전 구간을 통제하고 설악산 등 전국 6개 국립공원의 45개 암벽등반 지역에 대한 일제 점검에 나섰다. 공단 측은 올 들어 인수봉 낙석제거 작업을 5회 실시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이달 2일 취나드B 코스의 낙석제거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이곳은 2007년 11월부터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해당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2인 이상에 한해 출입을 허용하는 출입제한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공단은 이날 사고를 당한 산악회의 출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공단은 오는 21일까지 일제 점검을 마친 뒤 통제 해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 ‘1명 사망’ 고정돼 있던 바위가..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 ‘1명 사망’ 고정돼 있던 바위가..

    13일 오전 9시 51분쯤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 인수봉에서 약 5t 무게의 낙석이 등산객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등산객 윤모(55·여)씨가 숨지고 이모(55)씨 등 3명이 골절 등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고 당시 인수봉 인근에서 암벽등반을 위해 대기하던 산악회 회원 30여명에게 갑자기 낙석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 관계자는 “인수봉 상층부에 고정돼 있던 바위가 풍화 작용에 의해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원인은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 발생해 1명 사망, 3명 부상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 발생해 1명 사망, 3명 부상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로 1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13일 오전 9시 55분쯤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 인수봉 암벽 등반 코스인 취나드B에서 약 5t 무게의 낙석이 등산객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등산객 윤모(56·여)씨가 숨지고 이모(52)씨 등 50대 남성 3명이 골절 등 부상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윤씨는 장 파열로 사망했고, 부상자 3명은 왼발과 오른팔 골절, 타박상 등의 부상을 각각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당국과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에 따르면 경기도 모 산악회 소속 30여명이 이날 인수봉 암벽 등반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들 중 10여명이 먼저 암벽을 오르기 시작해 지상에서 10여m 지점에 있는 5t 규모의 바위에서 동시에 기다리다가 하중을 견디지 못한 바위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사고가 났다. 아래에서 대기하던 20여명은 대부분 피했지만 사상자 4명은 미처 피하지 못해 변을 당했다. 바위를 밟고 있었던 10여명은 로프 등 안전장치를 하고 있었고, 바위가 흔들리자 재빨리 피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당시 거점근무 중이던 공단 직원과 경찰산악구조대는 낙석 소리를 듣고 15분여 만인 10시10분쯤 현장에 도착해 응급조치했고, 그로부터 5분 뒤 헬기가 도착해 구조작업을 했다. 소방 관계자는 “인수봉 상층부에 고정돼 있던 바위가 풍화 작용에 의해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원인은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자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인수봉 암벽등반 코스 전 구간을 통제하고 설악산 등 전국 6개 국립공원의 45개 암벽등반 지역에 대한 일제 점검에 나섰다. 공단 측은 올 들어 인수봉 낙석제거 작업을 5회 실시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이달 2일 취나드B 코스의 낙석제거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이곳은 2007년 11월부터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해당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2인 이상에 한해 출입을 허용하는 출입제한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공단은 이날 사고를 당한 산악회의 출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공단은 오는 21일까지 일제 점검을 마친 뒤 통제 해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 ‘1명 사망’ 암벽등반 대기중에… 아찔한 사고상황 보니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 ‘1명 사망’ 암벽등반 대기중에… 아찔한 사고상황 보니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 ‘1명 사망’ 암벽등반 대기중에… 아찔한 사고상황 보니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 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 13일 오전 9시 51분쯤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 인수봉에서 약 5t 무게의 낙석이 등산객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등산객 윤모(55·여)씨가 숨지고 이모(55)씨 등 3명이 골절 등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고 당시 인수봉 인근에서 암벽등반을 위해 대기하던 산악회 회원 30여명에게 갑자기 낙석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 관계자는 “인수봉 상층부에 고정돼 있던 바위가 풍화 작용에 의해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원인은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헬기 등 장비를 동원해 사고를 수습하는 한편,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사진=서울신문DB(북한산 인수봉서 낙석사고)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하림그룹] 병아리 10마리로 ‘부농 꿈’… 삼장 통합경영으로 매출5조 신화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하림그룹] 병아리 10마리로 ‘부농 꿈’… 삼장 통합경영으로 매출5조 신화

    “외할머니가 병아리를 사업의 밑천으로 삼으라고 주신 것도 아니었고 나 역시 그 병아리로 오늘날의 하림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을 리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 운명처럼 만난 병아리 10마리가 지금의 하림그룹을 만들었다.” 1968년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외할머니로부터 병아리 10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미꾸라지와 개구리를 잡아 삶고 몰래 쌀독의 쌀까지 퍼냈다. 정성을 쏟으니 병아리들이 무럭무럭 자랐다. 토실하게 자란 닭을 닭장수들이 욕심냈다. 250원이었던 시세보다 값을 더 쳐 3000원 정도를 받았다. 매출 총액 5조원 신화의 주인공 김홍국(58) 하림 회장이 난생 처음 만든 사업 자금 얘기다. 10마리로 시작된 병아리는 200마리가 됐다. 고학년이 돼서는 돼지와 염소도 키웠다. 중학교 때는 전북 익산 망성면 집에서 10리쯤 떨어진 강경읍내까지 나가 돼지에게 먹일 음식 찌꺼기를 구하는 일이 하루 첫 일과였다. 김 회장은 아버지 김주환(88)씨와 어머니 이완경(87)씨 슬하의 4남 2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북대 농대 교수를 지냈고 어머니는 공주 사범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교편을 잡던 아버지가 갑자기 사업에 뛰어들어 실패하자 모든 게 바뀌었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옷을 떼 와 보따리 옷장사로 자녀를 길렀다.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자녀를 엄격하게 교육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가축에 푹 빠진 김 회장은 골칫덩어리였다. 하지만 김 회장의 열정과 고집을 꺾기란 어려웠다. 중학교 3학년 때 ‘네 마음대로 하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김 회장은 주저 없이 이리농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승승장구했다. 김 회장은 전국영농학생전진대회에 출전해 원예와 축산에 대한 논문 발표로 상을 받기도 했고 양계장을 직접 설계, 시공해 1000여 마리가 넘는 닭을 키웠다. 돼지도 30여 마리로 늘리고 볏짚을 납품했다. 당시 월 수익이 300만원이 넘었다. 본격적인 양계 사업에 욕심이 났다. 18세 되던 해 김 회장은 자본금 4000만원으로 황등농장을 설립했다. 잘나가기만 할 것 같았던 그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1982년 닭값 폭락 사태로 빚쟁이에게 쫓겨 돼지 막사에서 날을 지새우던 그는 사업을 접어야 했다. 한 식품회사의 영업 사원으로 취직한 그는 와신상담했다. 닥치는 대로 경영과 관련한 논문을 읽었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자신감은 통합경영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그는 “1차 농축산물에 부가가치를 만들어 2차 가공식품으로 만들고 이를 시장에 내다 파는 ‘삼장’(농장-공장-시장) 통합경영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닭이나 돼지에 먹이는 사료도 직접 조달하면 사료값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산 원가는 물론 물류구조의 개선, 유통마진의 확대 등에 대한 생각들이 나를 마구 흥분시켰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86년 다니던 식품회사에 사표를 냈다. 2년 동안 열심히 모은 월급으로 양계장을 인수한 그는 업계 최초로 병아리 위탁 사육 시스템을 도입했다. 회사는 부지 매입과 인건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대신 계약 농가에 시설재, 사료 및 모든 관련 부재료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위탁 사육을 실시했다. 사업은 다시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운도 좋았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일명 ‘양념치킨 체인점’이 들어서 하림의 사업도 급성장했다. 주문이 너무 밀려 당시 설비로는 주문량을 소화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하림은 갖은 위기를 겪으며 체질 강화에 힘써 왔다. 2003년 5월 연건평 1만평이 넘는 본사 공장이 송두리째 불타 버린 대화재를 겪었을 때도, 2003년 말 당시 조류독감이라 불리던 AI(조류인플루엔자)로 닭고기 소비가 30% 이상 줄었을 때도 하림은 묵묵히 ‘상식과 도덕, 기본에 충실한 경영’을 해 왔다. 김 회장은 대학교 4학년이던 아내 오수정(52)씨를 만나 열애 끝에 1986년 결혼해 슬하에 1남 3녀를 뒀다. 부인 오씨는 연애하던 시절 사고 현장에서 망설임 없이 부상자들을 싣고 병원 응급실로 차를 모는 김 회장의 ‘용감한 모습에 홀딱 반했다’고 한다. 장녀(27)는 미국 에머리비즈니스스쿨을 나와 현재 IBM에 근무하고 있다. 장남 김준영(23)씨 역시 에머리비즈니스스쿨에 입학했다. 지금은 군 복무 중이다. 김 회장은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한다는 철학으로 유명하다. 장남 준영씨에게 물려준 계열사인 닭고기 가공업체 올품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김 회장의 자녀가 경영 수업에 참여한 적은 없다. 김 회장은 “자식들이 가업을 이어 줬으면 한다”면서도 “다만 그건 능력과 적성이 있을 때”라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올품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그는 “100억원 이상 증여세를 모두 내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아들에게 증여한 것”이라면서 “일부에서 불법 승계가 아니냐는 말들이 있어 공정거래조사도 여러 번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1994년 호원대 경영학도로 늦깎이 대학 생활을 했고 2000년 전북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매주 토요일 익산으로 가 이리신광교회에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에 참석한다. 가장 즐겨 읽는 책으로 주저 없이 성경을 꼽는다. 취미는 승마다. 2011년 골프 대신 시작했다. 김 회장의 큰형은 김기만(67) 전 백석예술대 총장이다. 김 전 총장은 한남대와 중앙대 교육대학원, 원광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백석대 교육대학원장, 평생교육원장, 백석문화대 행정부학장과 학장 등을 지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김민준의 연인 안현모, 누구? “대원외고에 서울대 졸업” 대박

    김민준의 연인 안현모, 누구? “대원외고에 서울대 졸업” 대박

    김민준의 연인 안현모, 누구? “대원외고에 서울대 졸업” 대박 ‘김민준 안현모’ 배우 김민준이 연인 안현모를 언급해 화제다. 지난 9일 김민준은 KBS2 ‘우리동네 예체능-사이클 편’에 출연해 안현모를 언급했다. 이에 현재 SBS 기자로 활동 중인 안현모에게 네티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 SBS CNBC에서 앵커로 활약한 안현모는 대원외고와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국제회의통역 석사 과정을 밟는 등 화려한 스펙을 자랑한다. 한편, 안현모는 2013년 12월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념해 페이스북에 산타 의상을 입고 찍은 화보를 공개해 빼어난 미모와 몸매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민준의 연인 안현모, 누구? “대원외고에 서울대 졸업” 대박

    김민준의 연인 안현모, 누구? “대원외고에 서울대 졸업” 대박

    김민준의 연인 안현모, 누구? “대원외고에 서울대 졸업” 대박 ‘김민준 안현모’ 배우 김민준이 연인 안현모를 언급해 화제다. 지난 9일 김민준은 KBS2 ‘우리동네 예체능-사이클 편’에 출연해 안현모를 언급했다. 이에 현재 SBS 기자로 활동 중인 안현모에게 네티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 SBS CNBC에서 앵커로 활약한 안현모는 대원외고와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국제회의통역 석사 과정을 밟는 등 화려한 스펙을 자랑한다. 한편, 안현모는 2013년 12월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념해 페이스북에 산타 의상을 입고 찍은 화보를 공개해 빼어난 미모와 몸매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심수용(서울신문 시설안전관리국 비상계획관)씨 모친상 8일 수원 아주대병원, 발인 10일 오전 6시 30분 (031)219-6654 ●남해붕(대신증권 상임고문)해성(충남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해광(광주지법 판사)민숙(즐거운치과 원장)민정(동신대 간호학과 석사과정)씨 부친상 김동구(법무법인 금성 변호사)한신구(광주MBC 기자)씨 장인상 김순영(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전승희(KT 광주지사 과장)씨 시부상 8일 광주 금호장례식장, 발인 10일 오전 8시 (062)227-4382 ●양맹준(전 부산시립박물관장)범준(동부환경 대표)씨 모친상 8일 부산 좋은강안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51)610-9671 ●김동현(전 전남일보 편집부국장)석현(장흥농협 감사)재석(자영업)씨 부친상 최재실(광양제철 근무)씨 장인상 8일 전남 장흥 중앙장례식장, 발인 10일 (061)363-5013 ●강상모(문화일보 광고국 차장)씨 부친상 7일 부산 좋은강안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51)610-9677 ●권병태(현대해상화재보험 상무)씨 모친상 8일 일산 백병원, 발인 10일 오전 5시 30분 (031)910-7444 ●윤덕진(연세대 의과대학 소아과학교실 명예교수)씨 별세 도광(구리보건소 진료의사)용광(내과 의사)주광(미국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 경영학과 교수)씨 부친상 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2227-7550 ●최정희(전 평택고 교감)씨 별세 송홍섭(파르나스호텔 대표이사)씨 모친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30분 (02)3010-2263 ●최내정(전 심텍 부사장)씨 별세 남경인(독일 RBI GMBH 팀장)씨 장인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3010-2232 ●이윤자(전 국회의원·소비자교육중앙회 명예회장)씨 별세 강용미(미국 Cogno Sante CEO)씨 모친상 김원정(미국 럿거스대 의과대학 교수)씨 장모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10시 (02)3010-2295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세아그룹] 안정적 형제경영→사촌경영 보폭 확대… 3세들 전면에 나서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세아그룹] 안정적 형제경영→사촌경영 보폭 확대… 3세들 전면에 나서

    세아그룹의 경영은 1960년 창업주인 고(故) 이종덕 명예회장이 부산철관공업(현 세아제강)을 창업한 이래 이 명예회장의 장남 고 이운형 회장에서 현재 그룹을 이끌고 있는 차남 이순형 회장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운형 회장과 현재 회장인 이순형 회장의 형제 경영은 재계에서도 유명하다. 1980년 이운형 사장 취임과 함께 창업주인 이 명예회장에 이은 2기 경영체제로 들어간 세아는 본격적인 그룹 출범을 알린 1995년부터 이운형 회장-이순형 부회장 체제로 들어섰다. 1995년을 그룹화 원년으로 선포한 세아그룹은 이운형 사장을 회장으로, 해덕강업 사장을 맡고 있던 이순형 사장을 부회장으로 선임했다. 그룹의 경영은 형인 이운형 회장이 전면에 나서 대외적 활동을 하며 그룹의 얼굴 역할을 했다면, 이순형 부회장은 그룹의 내부 조직력을 강화하고 내실을 다지는 데 힘써 왔다. 이 같은 형제 경영체제 덕에 2013년 이운형 회장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별세했을 때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당시 이운형 회장이 활발한 경영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갑작스러운 유고에 외부에서는 경영 공백에 따른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그동안 부회장으로서 그룹의 경영을 함께 책임져 왔던 이순형 부회장이 최고경영인 공백을 자연스럽게 메움으로써 그룹이 안정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같은 가족 중심 경영을 ‘은둔 경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기업들을 상대로 하는 B2B(기업 간 거래)가 중심이다 보니 대외적 소통보다는 기존 사업군을 지키기 위한 보수적 경영에 안주해 왔다는 것이다. 강관사업과 특수강사업 부문에서 국내에 별다른 경쟁 업체가 없었던 점 때문에 세아그룹이 보수적 성향의 경영을 이어 왔다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 2014년 이운형 회장의 장남인 이태성(37) 세아홀딩스·세아베스틸 전무와 이순형 회장의 장남인 이주성(37) 세아제강 전무가 그룹 계열사 지분을 늘렸을 당시 오너 가족 간 지분 경쟁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 것도 그동안 외부 소통이 부족했던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2013년 회장에 취임한 이순형 부회장에 이어 2014년 이운형 회장의 부인인 박의숙 세아네트웍스 사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세아그룹은 본격적으로 안정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세아그룹은 이순형 회장 체제 아래 적극적으로 사업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순형 회장은 취임 이후 ‘절대 우위의 경쟁력’을 강조하며 100년 기업을 향한 세아의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적극적으로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면서 그룹의 사업 영역 확장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세아그룹은 이순형 회장 취임 후 지난해 이태리 강관업체인 ‘이녹스텍’(Inox Tech)을 인수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포스코특수강(현 세아창원특수강)을 인수하며 세계 최대 수준의 특수강 제조업체로 올라섰다. 창업주 3세들도 최근 점차 경영 전면에 나서며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다. 특히 동갑내기인 이운형·순형 회장의 장남들이 모두 나란히 경영에 참여하며 형제 경영에 이어 사촌 경영으로 경영의 폭을 넓혔다. 이운형 회장의 장남인 이태성 세아홀딩스·세아베스틸 전무는 미국 미시간대를 졸업한 이후 2009년 세아홀딩스에 입사하기 전까지 중국 칭화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수료하고 포스코차이나 마케팅실에서 근무하는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이 전무는 2013년 장영신 애경그룹의 회장의 큰손녀인 채문선씨와 결혼해 세아그룹과 애경그룹이 사돈을 맺었다. 이순형 회장의 장남인 이주성 세아제강 전무도 역시 활발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와 컬럼비아대학 MBA를 마친 이후 2008년 세아홀딩스에 들어오기 전까지 액센추어와 메릴린치증권 등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아울러 창업주의 장녀인 이복형 여사의 남편 이병준씨는 세아제강 미국 법인인 SSA 회장, 장남 이휘령씨는 세아제강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또 창업주의 차녀 이미형 여사의 남편 김연상씨는 세아E&T 고문직을 맡은 바 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사우디, 증시 ‘타다울’ 개방 등 경제구조 다변화 몸부림

    [글로벌 인사이트] 사우디, 증시 ‘타다울’ 개방 등 경제구조 다변화 몸부림

    저유가 시대를 맞아 사우디 경제가 체질 개선에 나섰다. 석유는 재정수입의 80%, 국내총생산(GDP)의 45%, 수출의 90%를 담당하며 사우디에 풍요를 가져다줬지만 선진 경제로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기도 했다. 대내외 불가피한 상황으로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경제 구조 개혁은 민간 부문을 활성화하는 한편 다양한 일자리 창출로 실업률을 줄이는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 신호탄은 오는 15일 예정된 사우디 주식시장 ‘타다울’ 개방이다. 시가총액 5900억 달러로 중동 최대 규모의 시장이 열리면서 세계 금융권이 들썩이고 있다. 주식시장을 통한 신규 투자 유입은 저유가로 인한 경제 타격을 상쇄할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 라티파 알와란은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유학생들에게 미국 대학 학위는 일종의 명예훈장으로 여겨진다. 4년을 그럭저럭 보내고 귀국하면 정부 기관의 편안한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2011년 8만여명에 달하는 사우디 유학생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가는 길은 동료와 달랐다. 워싱턴대가 있는 워싱턴주 시애틀은 미국 커피의 본고장. 그녀가 그곳에서 목격한 커피 문화는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진한 에스프레소부터 거품이 풍성한 라테까지 각종 커피가 하나의 기계에서 수분 만에 뽑혀 나오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뒤 일생의 진로를 바꿨다. 사우디도 커피 사랑이 유별나지만, 전통 방식으로 커피를 끓이는 과정은 복잡했고 30분 넘게 걸렸다. 고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안정이 보장된 일자리를 찾는 대신 사우디식 전통 커피를 수분 만에 끓여 낼 수 있는 전기 포트를 개발했다. ‘야툭’이라는 이 제품은 출시 이틀 만에 2000대가 팔려 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사우디 전역의 상점을 장악한 야툭은 쿠웨이트 등 이웃 중동 국가까지 진출했다. 7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알와란은 내쳐 인스턴트 커피 제품까지 출시하며 사우디를 넘어 중동 커피 시장을 흔들고 있다. 사우디 경제에서 알와란과 같은 존재는 이제 석유만큼 중요해졌다. 그동안 재정수입의 80%, 국내총생산(GDP)의 45%, 수출의 90%를 담당하며 사우디 경제를 견인해 온 석유지만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더이상 미래를 걸 수 없게 됐다. 오는 5일 열리는 회담에서도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기존의 산유량을 유지할 전망이다. 사우디는 하루 평균 100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한다. 국제유가 결정권이 미국 셰일가스 업체에 넘어간 터라 감산 결정은 아무런 약발도 없다는 인식이 크다. 석유를 더 퍼내 가격을 떨어뜨려 고비용의 경쟁자들을 고사시킬 요량이었지만 미국 셰일가스 업계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1월 즉위한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은 사우디가 명실상부한 ‘중동의 맹주’가 되길 원한다. 미국과의 핵협상 타결로 이란이 꿈틀대면서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역내 균형에 균열이 생길까 우려하고 있다. 산유량을 늘리지 않는 이유도 이란을 의식해서다. 유가를 올리는 건 석유시장 재진입을 앞둔 이란을 돕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외교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걷어 내고 홀로 서기를 모색하는 한편 경제에선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체질 개선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석유는 풍요를 가져다줬지만 사우디가 선진 경제로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기도 했다. 저유가로 석유 의존도 탈피는 대내외적으로 불가피한 상황이다. 석유 수입 감소로 당장 사우디 경제에 타격을 주지만 장기적으로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씨티그룹은 저유가 시대에 맞춰 재정지출을 줄이지 않는다면 적자가 130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사우디는 경제구조 다변화를 위해 무던히 애써 왔으나 고유가가 지속되는 한 별무 소용이었다. 비석유 산업은 활성화되지 못했고, 국민 또한 일할 동기를 찾지 못하며 민간 경제는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외국에서 좋은 스펙을 쌓은 젊은이들은 고용 안정과 고소득이 보장되는 정부 기관으로만 몰렸다. 공무원 월 최저 임금은 2000달러로 민간 부문의 2배다. 1월 현재 사우디인의 75%가 정부 기관에서 일한다. 민간 경제가 GDP(약 8000억 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1%다. 석유 수입 감소는 곧 국가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사우디 국민은 이제 보조금을 받을 게 아니라 세금을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둑한 정부 보조금 덕에 사우디인들은 일할 필요가 없었다. 공장, 호텔, 레스토랑, 병원 등을 채운 인력은 요르단, 이집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등지에서 수입해 왔다. 외국인 노동 인구는 약 900만명에 달하는데 민간부문 근로자의 80%나 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11년부터 각종 노동 현장에서 현지인을 고용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노동 인구의 ‘사우디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 노동부에 따르면 2014년까지 3년간 민간 영역에서 사우디인 고용은 30% 증가하고, 노동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9%에서 15.2%까지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실업률은 10.5%로, 정부 목표치의 두 배다. 경제 다변화로 다양한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 이유다. 그 신호탄은 오는 15일 예정된 사우디 주식시장 개방이다. 서방에 주식거래를 허용한 것이다. ‘타다울’로 불리는 사우디 증시는 지금까지 걸프 지역 6개 산유국 모임인 걸프협력이사회(GCC) 회원국에서만 참여할 수 있었다. 시가총액 5900억 달러로 중동 최대 규모의 시장이 열리면서 세계 금융권은 들썩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중국 증시 ‘후강퉁’에 이어 사우디 증시는 마지막 남은 거대 국제 자본시장으로, 투자가들에게 마지막 남은 엘도라도와 같은 곳”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유가 급락으로 걸프 산유국 증시가 고전하고 있지만 올 들어 타다울의 성적표는 준수하다. 올 초 외국인 참여 확대가 발표된 이래 사우디 증시는 20%가량 올랐다. 주식시장을 통한 신규 투자 유입은 저유가로 인한 경제 타격을 상쇄할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 증시 개방은 에너지를 제외한 다른 사업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다. 원유 고갈에 대비해 다른 분야도 미리 개발하기로 하고 그 재원을 해외에서 조달하자는 취지다. 사우디 증시에 유입될 외국 자금은 500억 달러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회의적인 시각이 있지만 최근 사우디는 화석연료시대 종말에 대비해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CNBC는 “경제 다변화와 이를 통한 일자리 다양화는 사우디 왕가의 장기 전략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증시를 떠받들고 내수산업 증진을 위해 살만 국왕은 이른바 ‘화이트 랜드’로 불리는 미개발 토지에 대한 세금 부과를 추진했다. 사우디에는 오일 달러에 길들어 개발 동기를 찾지 못하고 노는 땅이 수두룩하다. 수도 리야드에만 미개발 토지가 40%에 이를 정도다. 정부 계획이 발표되면서 세금을 두려워한 토지들이 대거 처분됐으며, 여기서 나온 자금이 증시로 유입돼 지수를 떠받들기도 했다. 체질 개선은 젊은 층을 위해서도 시급하다. 사우디 인구는 60% 이상이 30세 이하로 매우 젊다. 소비층과 노동 인력이 젊다는 것은 사우디 투자를 고려하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호재다. 문제는 30세 이하의 실업률이 30%대를 선회한다는 점이다. 사우디 정부로선 이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것만이 석유 없이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여는 길이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김혜영 결혼, 이달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과… “조심스러워” 김태섭 회장은 누구?

    김혜영 결혼, 이달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과… “조심스러워” 김태섭 회장은 누구?

    김혜영 결혼, 이달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과… “조심스러워” 김태섭 회장은 누구? 김혜영 김태섭 결혼, 김혜영, 김태섭 귀순가수 김혜영이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과 결혼할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바른전자 측은 1일 “가수 겸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김혜영 씨와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이 결혼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정확한 결혼 날짜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이달 중 제주에서 결혼식을 치를 것으로 알려졌다. 김혜영은 이번이 세 번째 결혼인 만큼 결혼 소식을 알리는 데 매우 조심스러워 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태섭 회장은 한양대학교 경영정보학,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한 뒤 코리아맨파워 대표이사, 케이디씨 회장 등을 지냈다. 30여년간 IT 업계에 종사하는 베테랑이다. 지난 2010년부터 바른전자 대표를 맡고 있다. 김혜영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지난 1998년 8월 가족들과 함께 귀순해 가수 및 연기자로 활동해왔다. 2005년과 2012년 두 차례 이혼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혜영,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과 재혼… “세번째 결혼 소식 조심스러워”

    김혜영,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과 재혼… “세번째 결혼 소식 조심스러워”

    김혜영,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과 재혼… “세번째 결혼 소식 조심스러워” 김혜영 김태섭 결혼, 김혜영, 김태섭 귀순가수 김혜영이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과 결혼할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바른전자 측은 1일 “가수 겸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김혜영 씨와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이 결혼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정확한 결혼 날짜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이달 중 제주에서 결혼식을 치를 것으로 알려졌다. 김혜영은 이번이 세 번째 결혼인 만큼 결혼 소식을 알리는 데 매우 조심스러워 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태섭 회장은 한양대학교 경영정보학,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한 뒤 코리아맨파워 대표이사, 케이디씨 회장 등을 지냈다. 30여년간 IT 업계에 종사하는 베테랑이다. 지난 2010년부터 바른전자 대표를 맡고 있다. 김혜영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지난 1998년 8월 가족들과 함께 귀순해 가수 및 연기자로 활동해왔다. 2005년과 2012년 두 차례 이혼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크라운·해태제과그룹] 윤영달 회장, 새출발 10년 ‘아트경영’으로 제과업계 정상 도전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크라운·해태제과그룹] 윤영달 회장, 새출발 10년 ‘아트경영’으로 제과업계 정상 도전

    올해는 해태제과가 해방둥이 기업으로 창립 70주년을 맞는 해이지만 2005년 크라운제과와 해태제과가 합쳐져 새 출발을 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인수 당시 크라운제과의 매출액은 2800여억원으로 제과업계 4위, 해태제과의 매출액은 6100여억원으로 제과업계 2위였다. 다윗이 골리앗을 집어삼키는 꼴이었다. ‘과자’를 만든다는 공통의 업(業)이 있다 하더라도 각자가 역사가 깊은 회사이기 때문에 조직이 쉽게 융화되기 어려웠다. 같은 듯 다른 두 조직을 하나로 합칠 수 있었던 데는 윤영달(70) 크라운·해태제과그룹 회장의 리더십이 있었다. 윤 회장은 2004년 말부터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남산에 있는 타워호텔(현 반얀트리호텔)에 크라운제과와 해태제과 두 회사의 간부급을 모두 부른 뒤 외부 강사의 강의를 듣게 했다. 테이블마다 크라운제과 간부와 해태제과 간부를 섞어 앉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했고 이런 모닝아카데미는 250회 이상 이어지고 있다. 간부급이 융화됐다면 이번엔 직원이었다. 윤 회장은 두 회사의 직원들을 조를 짜 매주 주말마다 북한산에 오르게 했다. 윤 회장도 함께 산에 올랐다. 힘들게 산에 오르는 과정을 서로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윤 회장의 등산경영은 좋은 성과를 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두 회사가 합쳐지면서 최근 시너지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해태제과 인수 직후 크라운제과의 2005년 그룹 매출은 9436억원에서 지난해 1조 841억원으로 상승했고 업계 2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크라운산도’로 성장하고 ‘해태제과’의 인수로 한 단계 더 도약한 크라운·해태제과는 윤 회장의 ‘아트(Art)경영’으로 제과업계 정상에 도전하고 있다. 윤 회장은 지난해 1월 출간한 ‘AQ 예술지능’이라는 책에서 “나는 우리 크라운해태를 단순한 기업이 아닌, 프로페셔널 예술가 집단으로 만들려 한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AQ는 ‘예술지능’(Artistic Quotient)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기업의 경영진과 직원들이 스스로 예술가가 돼 창의력을 발휘해야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남아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아트경영이 나온 배경에 대해 “성숙기에 이른 국내 제과 시장에서 성장을 위한 돌파구로 예술이 있다”고 설명한다. 국내 제과업계의 품질이나 마케팅은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고객들의 과자 제품 선택은 계획적인 구매가 아닌 매장에서 보이는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매우 크다. 따라서 고객들에게 제품의 우수한 품질에 예술의 감성을 더한 제품으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 바로 아트경영이라는 얘기다. 윤 회장의 아트경영은 실제 제품으로도 이어져 좋은 성과를 냈다. 2007년 ‘오예스’ 포장에 심명보 작가의 ‘백만송이 장미’를 그려넣어 연 매출이 30% 이상 증가했다. 이어 밋밋한 과자였던 비스킷 ‘쿠크다스’에 초콜릿으로 물결 모양의 움직임을 넣었더니 매출이 두 배 이상 신장했다. 물론 겉만 신경 쓰는 것은 아니다. 윤 회장은 품질 그 자체인 맛도 꾸준히 챙기고 있다. 자사의 신제품은 물론 다른 회사의 과자를 늘 맛보고 평가하고 있다. 윤 회장이 과자를 먹을 때는 철칙이 있다. 반드시 식사를 다 하고 과자를 먹고 한 입만 먹고 버리는 게 아니라 한 봉지를 다 먹는다는 철칙이다. 이는 배고플 때 과자를 먹으면 뭐든 다 맛있게 느껴지기 때문에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봉지를 다 먹을 때 맛이 꾸준히 느껴져야 좋은 제품이라는 생각에서다. 포스트 윤 회장에는 윤 회장의 장남 윤석빈(44) 크라운제과 대표이사가 꼽힌다. 그룹 측은 윤 회장의 후계를 말하기에는 윤 회장이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 이르다는 평이다. 하지만 윤 회장이 26세의 나이에 이사 직함으로 경영에 참여했고 아들과 사위가 모두 대표이사 직함을 달며 책임경영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후계구도가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윤 대표이사는 미국 뉴욕의 미술대학인 플랫 인스티튜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홍익대 국제디자인대학교대학원(IDAS)에서 디자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크라운제과 이사, 상무 등을 거쳐 2010년 7월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윤 대표이사는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크라운제과의 지분은 없다. 크라운제과는 윤 회장이 최대 지분(27.38%)을 보유하고 있고, 그다음이 연양갱을 만드는 두라푸드(지분 20.06%)다. 이 두라푸드는 윤 대표이사가 59.60%의 최대 지분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윤 회장에 이어 그가 모기업인 크라운제과를 물려받을 것임을 엿볼 수 있다. 최근 허니버터칩의 대성공을 주도한 윤 회장의 사위 신정훈(45) 해태제과 대표이사는 재계의 손꼽히는 능력 있는 사위로 불린다.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수료한 뒤 삼일회계법인과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업체인 베인앤컴퍼니에서 근무했다. 신 대표이사는 크라운제과의 해태제과 인수를 주도했다. 그는 2008년 해태제가 멜라민 파동으로 휘청될 때 문제를 수습한 1등 공신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는 회사 내 지분이 전혀 없다. 차남 윤성민(41) 두라푸드 이사는 두라푸드 지분 6.32%를 보유 중이다. 그는 두라푸드 외에도 제빵에 관심을 보이며 현재 서울시내 한 베이커리 지점을 맡고 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김혜영,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과 재혼… “결혼 소식 조심스러워”

    김혜영,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과 재혼… “결혼 소식 조심스러워”

    김혜영,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과 재혼… “결혼 소식 조심스러워” 김혜영 김태섭 결혼, 김혜영, 김태섭 귀순가수 김혜영이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과 결혼할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바른전자 측은 1일 “가수 겸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김혜영 씨와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이 결혼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정확한 결혼 날짜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이달 중 제주에서 결혼식을 치를 것으로 알려졌다. 김혜영은 이번이 세 번째 결혼인 만큼 결혼 소식을 알리는 데 매우 조심스러워 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태섭 회장은 한양대학교 경영정보학,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한 뒤 코리아맨파워 대표이사, 케이디씨 회장 등을 지냈다. 30여년간 IT 업계에 종사하는 베테랑이다. 지난 2010년부터 바른전자 대표를 맡고 있다. 김혜영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지난 1998년 8월 가족들과 함께 귀순해 가수 및 연기자로 활동해왔다. 2005년과 2012년 두 차례 이혼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직원 수 600배 늘린 소프트웨어업계 ‘큰손’

    직원 수 600배 늘린 소프트웨어업계 ‘큰손’

    한국계 여성 기업인 타이 리(56)가 미국 최대의 여성 소유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인물에 선정됐다. 28일(현지시간) 미국 경제매거진 포브스에 따르면 타이 리는 비상장회사 SHI의 최고경영자(CEO)이다. 소프트웨어 판매·서비스 회사인 SHI의 시장가치를 18억 달러(약 1조 9951억원)로 산정, 60%의 지분을 가진 그녀의 재산을 11억 달러로 매겨 ‘2015년 자수성가형 여성 부자’ 50인 가운데 14번째로 평가했다. SHI의 지난해 매출액은 2013년보다 15% 늘어난 60억 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에서 여성이 소유한 기업으로는 최대 규모이다. 1989년 100만 달러에 인수했을 당시 직원이 5명이었던 SHI가 현재 3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급성장한 데는 그녀의 남다른 경영 스타일이 큰 역할을 했다. 최첨단 기술과 거래 노하우보다 고객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 덕분에 SHI의 고객 보유율 및 재방문율은 99%에 이른다. 거래업체가 자주 바뀌는 IT업계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수치이다. 태국 방콕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암허스트칼리지를 졸업한 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한국인 첫 유엔 직원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귀국해 1차 경제개발계획 수립을 주도하는 등 한국 근대화를 이끈 이기홍 전 경제기획원 차관보로 알려졌다. 남동생은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이장석 구단주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스타뷰] ‘종합격투기 1세대’ 윤동식의 무한도전

    [스타뷰] ‘종합격투기 1세대’ 윤동식의 무한도전

    지난 3월 2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국내 종합격투기 대회 로드FC 경기 중 제4경기가 돌연 취소됐다. 윤동식(43)과 다카세 다이주(37·일본)의 대결이었다. 1990년대 유도 레전드이자 종합격투기 1세대 ‘암바왕’ 윤동식의 1년 반 만의 국내 복귀전으로 관심이 쏠렸지만 다카세가 기준 체중(-88㎏)을 맞추지 못했다. 두 달 남짓 뒤인 29일 노원구의 한 체육관. 윤동식은 7월 일본에서 열릴 로드FC 대회 준비에 한창이었다. 건물 지하에 딸려 있는 격투기 도장은 링도 없이 샌드백만 10여개 매달려 있는 10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유도 금메달리스트, 국제대회 47연승 신화의 주인공, 일본 프라이드와 K-1, 히어로즈1을 두루 거친 ‘스타’의 훈련장치고는 조금 누추해 보였다. “일본에서 함께 격투기했던 후배가 하는 곳입니다. 같이 훈련하는 선수들이 제 아들뻘 되는 1993~1995년생이에요. 제가 나이가 있다 보니 연습할 때 어린 후배들이 타격을 잘 못해요. 마음껏 때려 줘야 진짜 연습이 되는데….” ●비운의 유도천재, 올림픽·세계선수권과 인연 없어 세월이 많이 흘렀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20년간 입었던 유도복을 벗고 일본 격투기 프라이드 진출 선언을 한 때가 벌써 10년 전이다. 윤동식은 2005년 최고 대우를 받고 변신했다. “지금 UFC에서 활약 중인 (김)동현이보다 파이트머니를 더 받았습니다.” 당시 일본 유도 영웅 요시다 히데히코가 프라이드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일본 격투기계는 요시다를 꺾은 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전기영(42)에게 상대 전적에서 앞서는 윤동식을 기억했다. “그라운드 기술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 유도선수들도 다 이겨 봤는데 못할 게 뭐 있냐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첫 경기에서 그는 상대 선수 사쿠라바 가즈시에게 38초 만에 패했다. “무조건 메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시합에 나간 것이 패인이었습니다.” 이후 윤동식은 일본 내 도장에 다니며 타격부터 새로 익혔다. 하지만 유도와 달리 연습을 시합처럼 할 수 없었다. 실전처럼 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대한 시합에 많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4번 정도 싸우고 나니 격투기가 뭔지 감이 생기더군요.” 5번째 경기가 그에게 ‘암바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준 멜빈 맨호프(39·네덜란드)전이다. “1라운드에서 왼쪽 훅을 맞았는데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후 그라운드로 상대를 넘기면서 이번엔 이기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비운의 유도천재’ 윤동식은 그렇게 격투기에서 첫 승리를 거뒀다. 많은 사람이 눈시울을 붉혔다. ●20년 유도인의 길 떠나 격투기 ‘암바왕’으로 변신 윤동식은 올림픽에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다. 세계선수권 시상대에도 서 보지 못했다. 기량이 절정이던 1995년 한양대 재학 시절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당시 대표팀 감독은 다리 부상이 있던 그에게 대회를 포기하고 이듬해 애틀랜타올림픽을 준비하자고 했다. “국제대회 47연승을 하고 있을 때라 세계챔피언을 눈앞에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부상을 참고 세계선수권을 강행했지만 시합 도중 팔이 빠지는 바람에 기권했다. 이후 올림픽대표 선발전에서 그는 쇠로 된 다리 보호대를 차고 시합에 나갔지만 조인철(39·용인대 교수)에게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판정 시비가 일었지만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올림픽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는 쉽게 유도를 그만둘 수 없었다. 동시대 라이벌인 전기영, 조인철이 은퇴 후 지도자로 활동했던 2003년 무렵에도 한국마사회에서 ‘플레잉 코치’로 남아 훈련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일본 프라이드에서 제안이 왔다. 최고급 숙박, 음식, 차량을 제공받으며 사이타마 돔경기장에 갔다. 관중 5만명이 링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습니다. 유도를 하면 가족밖에 안 오거든요.” 격투기 경기를 처음 본 그는 당시 심정을 “죽을 것 같더라”고 표현했다. 윤동식은 그렇게 유도계를 떠났다. 하지만 미련은 남았다. 일본 K-1에서 활동하던 2007년 무렵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K-1 사장에게 저 올림픽 좀 뛰고 오겠다고 말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더군요. 이후 강원랜드와 단기 계약까지 추진했지만 무산됐어요. 용인대 출신이 97%인 유도계가 껄끄러워했던 것 같아요.” 이후 그는 올림픽에 대한 꿈을 접었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타이슨? 격투기에선 다리기술로 내가 1분이면 이겨” 윤동식은 자신의 강점으로 ‘다리기술’을 꼽는다. “흔히 유도선수 출신들이 타격만 갖추면 격투기에 유리하다고 하는데, 안다리걸기나 모두걸기처럼 다리기술이 좋아야 잘할 수 있어요. 엎어치기가 특기인 유도선수들은 격투기와는 맞지 않습니다.” 격투기에서 엎어치기로 상대를 메치면 자신도 함께 돌아가지만 안다리걸기로 상대를 눕히면 자신이 위에 올라타 때리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이크)타이슨이 타격을 아무리 잘해도 다리를 잡아 버리면 끝납니다. 1분이면 이길 수 있어요.” 종합격투기 1세대인 그는 요즘 선수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김동현은 정말 잘하더라고요. 타격, 그라운딩 모두 수준 이상입니다. 개인적으로 김동현처럼 밑바닥부터 올라가는 친구들이 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메달리스트나 스타 선수 출신들만 격투기에서 돈을 번다면, 누가 격투기로 성공하려고 하겠습니까.“ ●“스스로 인정할 멋진 경기한 뒤 은퇴… 추성훈과 한판 붙고 싶어” 올해 만으로 마흔셋인 그에게 은퇴 계획을 물었더니 예상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체력이 아직 좋습니다. 저는 제 몸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거든요.” 아침이면 닭가슴살에 꿀, 바나나를 갈아 마시고 시합 50일 전부터는 금주에 들어간다는 윤동식에게 ‘끝물’의 게으름은 느낄 수 없었다.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멋지게 이기는 경기를 한 뒤 은퇴 선언을 하고 싶어요. 당장은 오는 7, 9월에 있을 일본 로드FC 경기를 이긴 후 11월 28일 한국에서 열리는 UFC 무대에 서는 것이 목표입니다. 원하는 상대요? 당연히 추성훈이죠. 그 친구 다리기술 하나는 끝내주거든요.”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윤동식은 1972년 8월 24일생, 183㎝ 91㎏ 한양대학교 대학원 석사 2009년 K-1 어워드 우수선수상 2005년 일본 프라이드 진출 선언 2001년 체육훈장 거상장 1997년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 금메달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 1993~1995년 국제대회 47경기 연승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풍산그룹] 부시·오바마 측근과 돈독한 ‘미국통’…인맥 구축의 힘은 유창한 영어 실력

    류진 회장은 국내 재계의 미국통으로 불린다. 방위산업이라는 사업 특성상 미국 정부와 접촉할 기회가 많아 고 류찬우 창업주 시절부터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일가는 물론 버락 오바마 대통령 측근 등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류 회장은 지난 2003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방한을 실질적으로 성사시키는 등 부시 전 대통령 부자의 한국 방문을 수차례 주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시 전 대통령에게 ‘대디(아빠)’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것으로 전해진다. 풍산의 미국 현지법인인 PMX 준공식 때는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의 부인인 바버라 부시 여사가 참석해 테이프를 끊기도 했다. 민주당 인맥도 탄탄하다. 류 회장은 오바마 대통령 당선 초기 앨 고어 전 부통령의 방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화당 출신이지만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도 막역한 사이로, 1997년 그의 자서전 ‘나의 미국 여행’ 한국어판을 번역해 출간했다. 지난 1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안동 방문도 그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공화당 유력 대권주자로 언급되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류 회장의 초청으로 몇 차례 방한했다. 앞서 지난 2007년 한국펄벅재단 간담회 등에 참석했으며, 2013년에는 안동 하회마을을 둘러보고 류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풍산고등학교에서 강연도 했다.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 리온 파네타 전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등도 류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미국 정계 인사로 전해진다. 창업주 시절부터 이어진 인연뿐 아니라 유창한 그의 영어 실력도 해외 인맥을 구축한 힘으로 꼽힌다. 류 회장은 일본에서 아메리칸고를 졸업해 일본어는 물론 영어에도 능통하다.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미국 다트머스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류 회장은 대미 외교뿐 아니라 스포츠계에서도 탄탄한 해외 인맥을 자랑한다. 그는 골프계의 월드컵으로 통하는 2015년 프레지던츠컵을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 한국이 유치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대회 개최지를 결정하는 팀 핀첨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총재와의 인연이 바탕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류 회장은 2015년 프레지던츠컵 조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풍산 측은 “대형 골프 행사의 경우 주력인 신동(伸銅) 부문의 해외 고객들을 초청해 네트워킹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도 확보할 수 있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류 회장은 이 밖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산업자문위원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국제 사회에서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역할로도 주목받았다. 2010년 국제동산업협의회(IWCC) 회장 선임,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 수상, APEC 기업인 자문위원회(ABAC) 한국위원 등을 역임했다. 2012년에는 세계 한인의 날을 맞아 한국과 한국민의 위상 제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주승용·정청래 빠진 채… 野 최고위 내홍 수습 안간힘

    27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는 ‘공갈 막말 논란’의 당사자인 주승용·정청래 최고위원이 빠진 가운데 진행됐다. 주 최고위원에 대한 ‘공갈 발언’으로 정 최고위원이 전날 ‘당직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받음에 따라 새정치연합은 2·8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 1, 2위 당선자가 모두 공석인 상태가 됐다. 정 최고위원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재심 청구 등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 최고위원 측은 “전날 징계와 관련해 입장을 내놓을 상황이 아니다”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8일 이후 20일째 당무에 복귀하지 않고 있는 주 최고위원 자리에는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앉았다. 주 최고위원은 정 최고위원의 징계 소식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복귀할 뜻이 없음을 재차 확인했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한번 사퇴하면 그대로 사퇴한 것”이라며 “(복귀 여부에 대해) ‘아직은’이 아니라 복귀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당 혁신위원회에 대해 “좋은 혁신안이 만들어질 것을 기대한다”면서도 “문제는 혁신안이 나올 때마다 실천이 중요한데 한번도 실천이 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 내홍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든 가운데 새정치연합은 4·29 재·보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묻고 당 쇄신 작업을 위한 당직개편 구상에 착수했다. 우선 양승조 사무총장과 강기정 정책위의장, 김영록 수석대변인, 김현미 비서실장, 윤호중 디지털소통본부장, 김경협 수석사무부총장, 김관영 조직사무부총장, 유은혜 대변인, 진성준 전략기획위원장 등 정무직 당직자 9명은 이날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33회 교정대상 수상자] │대상│ 장선숙 의정부교도소 교위

    “현장에 있는 모든 교정공무원들이 받을 상을 제가 대신 받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33회 교정대상’에서 대상의 영광을 차지한 장선숙(45) 경기 의정부교도소 교위는 “출소자 한 사람이 재범을 하지 않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교정 행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남 신안 비금도에서 태어난 장 교위는 걸음마를 뗀 지 얼마 안 돼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짓고, 뭍을 오가며 생필품을 떼어다 팔았다. 장 교위는 어머니를 도우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까지는 장학금으로 다녔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은 쉽지 않았다. 평생 은사가 된 가정 선생님이 학비 걱정은 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합격증을 받아들고도 취업을 택해야 했다. 선생님은 진로를 고민하던 그에게 “제복이 잘 어울릴 것 같다”면서 교정공무원을 추천했고, 이듬해인 1990년 장 교위는 교정공무원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선생님은 ‘너는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사람이고 수용자들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다. 너 혼자서 교화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조언하셨죠. 하지만 어린 마음에 나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큰소리를 쳤어요.” 자신감 하나로 교정공무원이 되긴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낮밤이 바뀌는 근무 환경, 직원·수용자들과의 관계 등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한겨울 싸늘한 교도소 복도에서 근무할 때면 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는 수용자들이 부럽기까지 했다고 한다. 24년 전 사형수를 처음으로 대했다. 큰 죄를 지은 사람이었지만 안쓰러운 마음에 면회도 가고 편지도 주고받았다. 하지만 몇 개월 되지 않아 사형이 집행됐다. 장 교위는 그 일을 계기로 수용자들에게 한발 더 다가서게 됐다. 이제 수용자들은 나이를 떠나 장 교위를 ‘엄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남성들을 주로 상대해 온 그는 여성 교도관들에게 버겁다고 여겨지는 ‘취업 담당’을 자청해 3년간 일하기도 했다. 안정된 일자리를 얻도록 하는 게 출소 후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선 말렸지만 직업학을 전공으로 택해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했고, 그 경력을 앞세워 결국 취업 담당을 맡았다. 직접 발로 뛰며 업체를 찾아다닌 결과 장 교위는 다른 교도소보다 높은 취업률을 달성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직업학 분야로 박사 학위까지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자기 계발을 하며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전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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