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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비 수억원을 쌈짓돈처럼 쓰다 쇠고랑 찬 사립대 교수

    지도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대학원생들의 인건비를 부풀려 신고하고 그 돈을 갈취한 한 사립대 교수가 결국 쇠고랑을 차게 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한양대 교수 한모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는 2015년 5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정부와 기업 연구과제 29개를 수행하면서 대학원생 연구원의 월급을 일부 빼돌리는 방식 등으로 모두 6억 4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또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을 허위 기재해 산학협력단에 인건비를 청구하기도 했다. 한씨는 자신이 지도하는 석·박사 과정의 대학원생들에게 같은 비밀번호의 통장을 개설하게 한 뒤 이 통장을 선임 연구원이 모아 관리하도록 했다. 이후 산학협력단에 연구원 인건비로 학생당 석사 과정 월 180만원, 박사과정 월 250만원을 청구하고 실제로는 석사과정 학생에게 월 30만~70만원, 박사과정에게는 월 90만~100만원만 지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씨는 연구비 카드로 물건을 사는 것처럼 꾸며 결제한 뒤 현금 등을 돌려받는 일명 ‘카드깡’으로 약 2800만원을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한씨는 2014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연구비 카드로 문구점에서 잉크토너 등을 구매하면서 물건값보다 과도한 금액을 결제했다. 해당 문구점 사장은 실제 금액보다 더 결제된 차액으로 한씨가 원하는 신발, 골프의류 등을 대신 구입해 전달했다. 경찰은 범행에 가담한 문구점 사장도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겼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김도연 “옆에서 응원해주지 않아도 제 갈 길 갈래요, 마라톤처럼”

    김도연 “옆에서 응원해주지 않아도 제 갈 길 갈래요, 마라톤처럼”

    13개월 동안 5000m·하프·풀코스 한국新 5월 1만m 신기록 땐 중장거리 ‘그랜드슬램’ 현실 가능한 목표 잡고 시합 때 긴장 안해 亞게임 출전권 확보… 곧 태극마크 달아 영광은 반짝… 계속 노력하는 선수될 것“요즘 제가 많이 늘었어요. 당연히 (다음 목표는) 그랜드슬램이죠.” 봄기운이 완연히 내려앉은 23일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 K워터(한국수자원공사) 본사 마당. 말간 햇살에 살짝 눈을 가늘게 뜬 여자 육상 중장거리 기린아 김도연(25)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온 말이다. 그는 지난 18일 제89회 동아국제마라톤에서 2시간25분41초에 결승선을 통과해 1997년 권은주가 작성한 2시간26분12초의 종전 한국기록을 무려 21년 만에 31초나 경신한 달뜸 같은 걸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라톤 풀코스 도전 세 번째 만에 이룬 쾌거인데도 그랬다. “원래 뭐든 무덤덤한 편이라” 그렇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는 2016년 같은 대회에서 풀코스 ‘머리를 얹었’는데 2시간37분대를 기록하고 지난해 중앙마라톤에서 31분대 기록을 작성한 데 이번에 25분대를 기록했으니 뛸 때마다 6분씩 당기고 있다. 이뿐 아니다. 김도연은 한국기록을 셋이나 동시에 보유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고 있다. 지난달 일본 가가와현 마루가메에서 개최된 제72회 국제하프마라톤에서 1시간11분00초를 기록, 2009년 임경희가 작성한 1시간11분14초를 14초 앞당겼다. 또 지난해 7월에는 15분34초17의 기록으로 2010년 염고은의 5000m 한국기록를 경신했다. 이 모두를 유니폼을 K워터로 바꿔 입은 지 13개월 만에 일군 것도 놀라운 일이다. 이렇듯 혼자서 짧은 기간 주위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 것은 그만큼 한국육상 저변이 얇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떠보자 앞의 도발적인 발언에 이어 “워낙 오래 묵힌 기록들이었다. 5000m 기록을 깨면서부터 기량이 향상됐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강도 높은 훈련을 잘 소화해 내고 시합 때도 기록이 많이 단축됐다”고 밝게 웃었다. 예서 그만둘 김도연이 아니다. 5월에는 이은정이 2005년에 작성한 한국 여자 1만m 기록을 경신해 중장거리 그랜드슬램을 이루는 게 1차 목표다. “충분히 깰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스스로 돌아본 뒤 “마라톤을 뛴 뒤라 빨리 회복하고 1만m 준비에 매달려 기록을 내겠다는 각오를 비쳐 보였다. 이 모든 것을 고교를 마친 뒤 곧바로 몸담은 강원도청 팀이 재계약 의사를 내비치는데도 뿌리쳤을 때부터 작정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기 위해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 필요했고, 그렇게 손잡은 것이 김영근(53) 감독이었다.감독이 먼저 손짓을 했는지, 김도연이 먼저 손을 내밀었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했다. “새 팀에 와서 뭘 하려느냐”는 타진에 곧장 “해묵은 한국기록 넷을 경신하기 위해서”란 답을 돌려줬고 “감독님은 뭘 하려는가”는 질문에 “더 잘 뛰게 해주겠다. 체계적인 훈련을 시켜주겠다”는 답이 돌아와 의기투합했단다. 김 감독은 부산 동아대 졸업 후 대한육상경기연맹에서도 근무했고 코오롱 코치를 거쳐 일본 준텐도 대학 석사과정에서 운동생리학을 공부했으며 2년 더 연구원 생활을 했다. 김도연에게 이렇게 짧은 기간에 기록을 낸 비결이 뭐냐고 묻자 자신의 노력과 김 감독의 체계적인 지도가 반반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모범 답안 같다고 떠보자 “전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감독은 “도연이는 확실한 목표를 세운 터라 지도하기 쉽다. 남들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느끼는데 우리는 꾸준히 준비했다. 겨울에도 두 차례 일본 훈련을 통해 마라톤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김도연은 대범한 것 같다’는 지적에 “시합 때 긴장하지 않고 터무니없는 목표를 잡지 않고 가능한 목표를 잡아 하는 편이니까, 라이벌 같은 것도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려 한다”고 대꾸했다. 일본 가고시마에서 열흘, 도쿠노시마 섬에 40일간 머무르며 오르막길 훈련 등 단점 보완에 매달린 게 알찬 열매로 돌아왔다고 했다. 사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비로소 육상에 입문했다. 1학년 체력장 때 소질을 발견한 체육교사가 권유해 다음해 서울체중으로 전학가면서부터였다. “유난히 성장 속도가 빨랐다”고 했다. 운동이란 길이 어렵고 힘들며 전망도 흐릿해 보일 때가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느냐고 묻자 “그냥 내가 정한 목표이니까. ‘자신을 이기자, 내 목표 당기자’ 생각하고 순간순간 집중하며 이겨냈던 것 같다”며 웃었다. 마라톤 대회 출전 자체가 세 차례밖에 안 됐으니 동호인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저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뛰는가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농으로 레이스 도중 빼어난 외모 때문에 함께 뛰는 이들이 깜짝 놀라곤 하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육상 선수라면 으레 어떤 이미지를 갖고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며 또 배시시 웃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빠와는 늘 덤덤하게 지낸다. 보통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처럼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벌써 꽤 큰돈을 모았다고 했다. 라이벌은 없지만 롤모델은 있다. “김성은(삼성전자) 언니가 동아마라톤도 여러 해 연속 우승하고, 한국기록에 계속 도전해 언니가 이루길 진심으로 바랐던 적이 있었다. 꾸준히 자신의 목표에 도전하는 정신을 배우고 싶었다. 성실하게 운동만 하는 선수였다”고 돌아봤다. 지난해 5000m 신기록을 세울 때 2초 뒤져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같은 팀 후배 정다은(21)도 있다. 김도연은 “함께 훈련하며 놀라곤 한다. 마스터스 분들에게도 배울 게 있고, 조언해 드리고 싶을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동아마라톤 국내부 우승으로 8월 자카르타-팔렘방(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확보해 곧 태극마크를 단다. 우선 목표는 메달과 자신의 한국기록 경신이다. 그다음 2020년 도쿄올림픽 메달을, 30세 무렵까지는 선수 생활을 이어갈 작정이어서 2024년 올림픽까진 모르겠지만 여하튼 목표를 하나씩 세워 이루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헤어지며 손을 맞잡는데 아귀힘이 가냘프기만 하다. 그런데도 마지막 말은 울림이 크다.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영광과 관심이 반짝으로 그친다는 걸 잘 알죠. 그래도 제가 잘하면 다시 관심을 모으겠죠. 옆에서 응원해주지 않아도 제 갈 길을 갈래요. 전 그런 선수랍니다.” 대전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김도연 선수 프로필 1993년 9월 2일 서울 출생. 신림초-신관중(1년)-서울체중·고. 강원도청-K워터(한국수자원공사). 한국기록 셋 동시 보유(여자 5000m 15분34초17. 여자 하프마라톤 1시간11분00초. 여자 마라톤 2시간25분41초). 다음 목표 : 여자 1만m 기록 경신과 아시안게임 메달. 그다음 목표 : 2020년 도쿄올림픽 메달, 시간 나면 영화 보기. 최근 재밌게 본 영화 : ‘지금 만나러 갑니다’. 좋아하는 가수 : 아이유.
  •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인천글로벌캠퍼스서 2018학년도 졸업식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인천글로벌캠퍼스서 2018학년도 졸업식

    유타대학교 아시아캠퍼스는 지난 3월 16일, 인천글로벌캠퍼스 대강당에서 2018학년도 졸업식을 진행했다. 이번 2018학년도 유타대학교 졸업식은 유타대학교 아시아캠퍼스에서 열리는 첫 번째 졸업식으로, David W. Pershing 유타대학교 솔트레이크시티 총장과 Keith Grover 유타주 상원의원, 각 학과장 및 이사진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유타대학교 아시아캠퍼스는 유타대학교의 확장 캠퍼스로, 졸업식도 본교와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진행 됐다. 2014년 첫 신입생 13명으로 시작하여 현재 100여 명의 신입생들이 유타대학교 아시아캠퍼스에서 2018년 봄학기를 맞이했다. 유타대학교 아시아캠퍼스는 학교 생활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곳이며 실제로 졸업식을 앞두고있는 학생들은 교수와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 심도깊은 수업, 한국에서 미국의 커리큘럼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 여러가지 면에서 높은 만족을 드러냈다. 온라인으로 생중계 된 이번 졸업식에는 총 30명이 학위를 받았다. 특히 이번 졸업생들은 평균 GPA 점수를 3.87점(4.0 만점)을 받는 등 뛰어난 성과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번 졸업식과 관련하여 David W. Pershing 유타대학교 총장은 “유타대학교 아시아캠퍼스의 첫 번째 졸업생들의 졸업을 축하한다”며 “졸업식은 학문적 여정의 마무리이자 또 다른 시작이다. 앞으로도 성공과 평생의 학습,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위해 전진하길 바란다”고 축하를 전했다. 이어 퍼싱 총장은 Ed Catmull 디즈니 애니메이션 CEO와 NASA 여성 최고관리자 출신이자 다양한 국가기관과 사기관의 경영진을 맡고 있는 그레첸 맥클레인, 후배들의 꿈을 지원하기 위해 유타대학교 내 Lassonde Entrepreneur Institute를 창립한 피에르 라슨드 등 기졸업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용기를 가지고 미래를 직면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크리스 아일랜드 아시아캠퍼스 대표는 “이번 졸업생 모두는 각자 전공에서 지적인 호기심, 전문성, 창의성을 바탕으로 두각을 드러냈다”며 “2018학년도 졸업생 모두 유타대학교 졸업생이라는 자부심을 갖길 바란다”고 졸업을 축하했다. 실제로 졸업생들은 전공을 살려 한국 국회와 방송국, 미국 적십자, 유타주 범죄 피해자 사무실(UOVC),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OBS BTP(올림픽 방송 서비스, 방송 훈련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턴십을 진행했다. 또한 이러한 경험은 졸업생들은 대학원 진학 및 유학, 관련 분야 취업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2014년 9월 인천 송도에 개교한 유타대학교 아시아캠퍼스는 한국에 설립된 해외 대학으로 분교가 아닌 미국 솔트레이트시티 캠퍼스의 확장형 캠퍼스다. 교수진, 교육 커리큘럼은 물론 입학 및 졸업, 학위수여 등 모든 학사 운영을 본교에서 직접 관리한다. 유타대학교 아시아캠퍼스는 ▲커뮤니케이션학 ▲심리학 ▲영화영상학 ▲도시계획학 등 4개의 학부 과정과 ▲공중보건학 ▲생명의료정보학 등 총 2개의 석사 과정을 운영 중이다. 입학 및 교육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유타대학교 아시아캠퍼스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7년 공부 마친 의대생, TV시청 후 제빵사로 전향

    7년 공부 마친 의대생, TV시청 후 제빵사로 전향

    중국에서 의학을 공부하는데 수년을 바친 한 남성이 영국TV 프로그램을 본 후, 제빵사의 길로 전향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22일(현지시간)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황샤오빈은 중국에서 가장 권위있고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인 저장대학교에서 7년 동안 의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2015년 석사학위도 받았다. 황씨는 의사가 되거나 추가로 의학 공부를 더 할 계획이었으나 영국 BBC TV의 ‘폴 할리우드의 브레드'(Paul Hollywood’s Bread) 시리즈물을 시청한 후 인생의 경로가 완전히 달라졌다. 프로그램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열정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는 “7년 간 공부했지만 점차 의학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 반면 빵을 만드는 것은 정말 흥미롭다. 효모 및 세포 조직을 이해하는데 화학과 생물학이 필요하다”며 “제과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나만의 왕국을 가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황씨의 부모는 제과점을 열겠다는 아들의 결정을 당연히 반대했다. 황씨의 어머니는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누구라도 빵집을 열 수 있다. 하지만 내 아들은 이미 석사 학위 보유자”라며 아쉬워했고, 친구들은 “그의 7년이 허비되었다”며 어리둥절해했다.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에도 황씨는 자신의 사업을 운영할 수 있어 행복하다. 황씨의 가게는 아직 높은 수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단념하지 않았다. 그는 “삶의 어떤 단계에서든 관계 없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는 낭비도 동정받을 일도 아니다”라며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사진=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인터뷰 플러스] “감사 나눔으로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그게 진정한 사회변혁”

    [인터뷰 플러스] “감사 나눔으로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그게 진정한 사회변혁”

    2010년부터 전국의 기업, 병원, 학교, 부대, 지자체 등을 돌면서 900회 이상 감사 강연과 워크숍을 진행해온 남자가 있다, 그는 2013년부터 짧지만 강렬한 감사 메시지를 작성해 출근 시간에 SNS로 세상 사람들과 공유했다. 이 감사 메시지가 아들의 군 입대를 계기로 2015년부터 60만 장병이 보는 국방일보에도 연재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고령자 어르신들의 짤막한 자서전을 지역신문에 게재하고 후손들이 감사편지로 화답하는 ‘은빛자서전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정지환 감사경영연구소 소장(53)이 ‘감사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정 소장은 10년 전만 해도 언론계에서 ‘싸움꾼 기자’의 1세대로 불리며 필명을 날렸던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 월간 말, 오마이뉴스 등에서 활동하며 우리 사회에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논쟁적 기사를 남겼다. 1998년부터 조선일보 사주일가의 비리 의혹을 추적하며 ‘안티조선 전문기자’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2004년에는 ‘한국판 롤콜’을 표방하며 국회·입법전문지 여의도통신 창간을 주도해 정치권과 언론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저널리스트로서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정 소장이 감사에 주목한 계기는 사회적 좌절 때문이었다. 너무 앞서나간 선택이었는지 2009년 여의도통신은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좌절은 이 싸움꾼 기자로 하여금 ‘감사’라는 새로운 희망에 눈뜨게 해주었다. 2009년 12월 당시 손욱 농심 회장과 김용환 감사나눔신문 대표를 만나면서 사단법인 행복나눔125(1주1선행, 1월2독서, 1일5감사) 창립과 감사나눔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했다. 그때부터 정 소장은 스스로 감사를 실천하기로 마음먹고 감사일기와 함께 감사 메시지를 써왔다. 감사 나눔을 통해 공동체가 행복해질 수 있고 그것이 진정한 사회변혁이라고 말하는 그는 현재 감사경영연구소 소장과 경희대학교 객원교수로 일하고 있다.→‘싸움꾼 기자’가 ‘감사 아이콘’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젊은 시절 시사지 기자로 일하면서 논쟁적인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그때 붙었던 별명이 ‘싸움꾼 기자’였지요. 당시 나름대로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정작 내면의 풍요와 가족의 행복은 돌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아들이 당시 저를 ‘잠만 자고 가는 하숙생’ 같다고 했을까요. 준비 기간을 포함해 10년 동안 열정을 불태웠던 여의도통신의 폐간이 저에게 안겨준 정신적 충격도 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가족마저 제게 냉랭하게 대했지요. 그런 절망의 벼랑 끝에서 만난 것이 바로 ‘감사’였습니다. →감사와 만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감사일기를 쓰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자로 20년 가까이 살아오다 보니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것마저 못 하면 아예 그만두자’는 심정으로 마지막 도전에 나섰지요. 우선 작은 노트를 마련하고 100일 동안 무조건 하루 100번씩 “감사합니다”라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감사’ 두 글자만 대충 쓰는 등 요령을 피웠지만 나중에는 “감사합니다”라고 다섯 글자를 또박또박 온전하게 썼습니다. 며칠 후부터는 그 밑에다 ‘그 날의 감사한 일’ 세 가지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세 가지가 나중에는 다섯 가지로 자연스럽게 늘어났지요. 이 훈련은 작은 노트 세 권을 채우고서야 100일 만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100일 동안 중요한 변화를 체험했습니다.→어떤 변화였습니까? -23일째 어머니에게 문자메시지로 문안인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51일째 중학교 3학년 아들에게 잠언을 읽어주기 시작했고, 64일째 평생 금연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84일째 되던 날 저만 보면 복수 하고 싶다던 아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채소 샐러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98일째 되던 날에는 저를 피하기만 하던 아들에게서 “행복해요”라는 고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변화가 참 신기했습니다. 그저 노트에 두 글자, 다섯 글자, 세 가지 감사, 다섯 가지 감사를 적었을 뿐인데, 제2의 인생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들이 모두 이 기간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감사일기 쓰기를 일상적 습관으로 만드는 일에 성공하면서 제 삶은 완전히 뒤집어졌지요. 저의 심경 변화는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대하는 태도마저 변하게 했습니다. →SERICEO 동영상 강연 ‘아빠의 감사가 아들의 얼굴을 바꾼다’를 계기로 유명 강사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인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켈트너와 하커 교수는 밀스여대의 1960년도 졸업생 141명을 대상으로 독특한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졸업 앨범에서 환한 미소를 지은 사람을 가려낸 다음 30년 동안 이들의 결혼이나 생활 만족도를 추적 조사한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졸업사진에서 환한 미소를 지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건강하고, 더 성공하고, 더 행복한 인생을 살았던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 연구 결과를 보고 저는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신청한 아들의 졸업앨범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숙생 아빠’였던 시절 아들은 중학교 앨범에서 ‘우수에 젖은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지만 제가 감사생활을 시작하고 3년이 흐른 뒤에 찍은 고교 앨범에선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대조적인 두 장의 사진을 목격한 순간, 저는 감격 또 감격했습니다. 매일 아침 머리맡에서 잠언을 읽어주고 잠들기 전에 감사일기 쓰는 뒷모습을 보여줬을 뿐인데 엄청난 선물을 받은 셈이었죠. 이 사연이 SERICEO를 통해 알려진 후 여기저기서 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감사 나눔은 결국 가정의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봐야겠군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감사 나눔을 조직문화로 도입한 기업의 직원들과 만날 때마다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밥상이 달라졌어요.” “닭살 부부가 됐어요.” “결혼 16년 차 아내와 손잡고 거리를 다녀요.” “아이가 현관까지 나와서 인사를 해요.” “아이가 먼저 공부하고 싶다며 독서실 티켓을 끊어달라고 하네요.” 이런 말도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출근할 때 콧노래가 절로 나와요.” “일터에서 반원들과 사이가 좋아졌고 갈등이 해소되었어요.” 실제로 감사 나눔은 가족에게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가정에서 감사 나눔으로 충전된 행복 에너지가 기업의 소통과 성과 창출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가정의 변화가 회사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면, 사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군요? -실제로 회식문화에도 신선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포스코ICT의 한 직원은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추진하던 발주업체, 하도급업체 직원들과 함께 하는 회식 자리에서 건배 제의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먹고 죽자!’ ‘위하여!’ 그동안 회식 자리에서 흔히 해왔던 건배사였죠. 회사에서 감사경영을 실행하던 분위기에 힘입어 그 직원은 용기를 냈습니다. “한 사람씩 일어나 나머지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을 선정해 그에게 감사한 일 3가지 이상 말하고 앉는 것은 어떨까요?” 처음에는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졌지요. 하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이 먼저 한 사람에게 감사와 칭찬을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쭈뼛거리며 일어나 감사와 칭찬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과 사뭇 다른 회식 분위기에 사람들은 어색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다음 날 아침 다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이 다른 때와 전혀 달랐습니다. 서로에게 커피를 권하며 다시 감사를 표시했던 겁니다. 물론 당시 함께 추진하던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충북의 옥천신문과 손잡고 추진하는 ‘은빛자서전 프로젝트’의 취지는 무엇입니까? -한 사람의 일생은 그 자체가 역사이고 작은 박물관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80세 이상 어르신들의 구술(口述)을 풀어낸 자서전을 신문에 게재하고, 자녀와 손주 등 후손들이 감사편지로 화답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콘텐츠는 해당 어르신이 별세하면 ‘조문보(弔問報)’로 변신해 장례식장에 비치할 예정입니다. ‘풀뿌리 언론개혁의 성지’로 불렸던 옥천에서 ‘감사가 넘치는 건강한 장례문화 조성’이라는 또 하나의 작은 실험이 시작됐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7명을 인터뷰했는데, 인생스토리 하나하나가 다큐영화 ‘워낭소리’를 연상케 했습니다. 후손들이 감사편지를 빠짐없이 보내와 삶의 지혜를 전수하는 세대 간 대화로서의 감사나눔운동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날 선 비난과 냉소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저변에선 감사와 사랑의 마음도 용암처럼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더 꿈꾸고 있는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조성되면 지역 내 어르신은 물론이고 출향한 자녀까지 참여하는 ‘자서전 글쓰기 교실’과 ‘부모님께 감사편지 쓰기운동’도 추진할 구상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의 청소년들과 함께 어르신을 찾아뵙는 ´구술 생애사´ 동아리를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겁니다. 기업사회공헌(CSR) 예산이나 독지가의 기부가 이런 곳에 쓰인다면 참 좋겠습니다. 인구 5만의 옥천에서 이 실험이 성공하면 5천만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 250여개 지자체로도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정지환 감사경영연구소 소장은 1965년 경기 여주 출생 현 감사경영연구소 소장 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및 동대학원 국문학과 석사과정 졸업 / 1987년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 전대협(1기) 의장권한대행 / 1994년 월간 말 기자(2000년 한국잡지협회 ‘올해의 기자상’ 수상), 오마이뉴스 기자 / 2003년 시민의신문 취재부장, 여의도통신 편집국장 / 2010년 감사나눔신문 편집국장, 사단법인 행복나눔125 홍보실장 / 기업, 병원, 학교, 부대, 지자체 등에서 900회 이상 감사 강연, 워크숍 진행 /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 동영상 강연 5회 출연(‘아빠의 감사’편 주간베스트 1위) / 한전인재개발원, 새마을금고연수원,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사외강사 / 시사인 ‘싸움꾼 기자, 감사와 나눔의 마력에 빠지다’ 보도 / 월간 아버지 ‘감사를 말하다 삶이 바뀐 가족 이야기’ 보도 / CBS 변상욱의 이야기쇼 ‘이 사람이 사는 법’ 출연 / 국방TV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자랑입니다’ 출연 / 2015년 7월 1일부터 국방일보에 미니칼럼 ‘30초 감사’ 연재 / 인간개발연구원 편집위원, 허임기념사업회 이사,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 / ‘내 인생을 바꾸는 감사 레시피’, ‘30초 감사’, ‘감사 365’ 등 저서 10권
  • [이사람 e향기] “문화가 4차 산업혁명의 미래… 사람 중심의 문화 IT 이끌 것”

    [이사람 e향기] “문화가 4차 산업혁명의 미래… 사람 중심의 문화 IT 이끌 것”

    “국민이 행복해지는 문화, 국민들의 문화행복감에 기여하는 것. 한국문화정보원의 역할이고 비전입니다.” 이현웅 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국정 방향으로 제시한 ‘사람이 있는 문화’를 설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원장은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대한민국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권리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계층·지역 차별 없이 국민 모두가 문화를 누리는 생활 문화 시대’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국민주권시대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이 추구하는 문화 민주주의는 중앙정부, 서울과 수도권, 공급자 중심의 문화가 아닌 분권적이고, 다양하고, 수요자 중심의 문화여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분권화에 발맞춰 국민 개개인들의 필요와 수요에 맞는 문화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이로써 “문화와 정보가 부가가치를 높이는 비즈니스가 되고, 정부와 지자체는 이를 이용하는 기업과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과정을 통해 문화정보를 활용한 균형된 신산업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라는 것이 이 원장의 구상이다. 문화정보란 정보기술을 활용해 문화 전반을 문화예술, 문화콘텐츠, 문화미디어, 관광, 체육, 홍보 영역으로 분류해 정보화·지식화하여 이를 관리·보존하는 총체적인 과정을 말한다. “문화정보화를 통한 4차 산업혁명, 창의적 일자리 창출, 사회적 경제를 확장할 수 있는 최적화된 기관이 한국문화정보원”이라고 말하는 이 원장. 본지는 이 원장을 만나 문화와 정보가 결합된 새롭고 창의적인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취임한 지 이제 막 두어 달을 넘겼을 뿐이지만, 사회·기술의 급속한 변화와 IT(정보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응한 미래지향적 문화ICT 정책수립과 주요과제 추진 등에 속도가 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향후 비전 등을 어떻게 구상하고 계신지요. -한국문화정보원(이하 정보원)은 문화 분야의 사이버지킴이이며, 문화정보가 오가는 플랫폼이며, 문화ICT산업의 개척자이어야 합니다. 기존에 하드웨어 중심으로 기술적 인프라를 구축해왔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이며 국민주권시대인 앞으로는 사람(국민) 중심, 소프트 인프라(가치, 스토리 등) 중심으로 문화ICT의 틀을 바로잡아 나가고자 합니다. 지난 2017년 문화 관련 빅데이터 분석 결과는 생활문화, 지역기반, 생애주기, 위치기반 등 맞춤형 문화정보에 대하여 국민의 요구가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먼저, 피부에 와 닿는 국민 맞춤형 문화ICT 중장기 비전을 상반기에 수립하고자 합니다. 올 하반기부터는 전국적 문화예술단체와 문화예술가를 특정된 고객으로 한 (스마트)문화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그 거버넌스 조직과 함께 문화ICT 정책을 협의하고 집행하고 평가하는 협치적 체계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나의 앞으로 3년간의 성과지표는 협치 체계구축이 될 것 같습니다. →향후 역할에서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은 지구촌을 향해 대한민국의 ICT 강국 면모는 물론 문화적 역량 과시 등 많은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원장님은 ICT분야 전문가인 동시에 문화정보를 다루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문재인 대통령님과 도종환 문체부 장관님의 슬기로운 리더십으로 역대 어느 올림픽보다 성공적인 평화올림픽을 치렀습니다. 우리 기관은 평창에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많은 국민들을 위해 평창에 ‘문화PD’를 파견하여 평창의 분위기를 알리는 일을 했습니다. 올림픽 기간 전후로 ‘올림픽 경기장 밖 생생소식’이라는 내용의 영상과 블로그 콘텐츠를 제작해 국민들에게 제공했습니다. 평창 현지의 숨은 이야기는 물론, 해외 주요 도시에서 느껴지는 평창올림픽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문체부 사이버지킴이로서 수많은 해킹으로부터 문체부와 산하기관의 홈페이지를 지키기 위해 24시간 비상체계를 운영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드론 쇼, 디지털 문화콘텐츠와 사이버안전, 이 모든 것이 성공적인 올림픽의 요소이며, 선진적인 ICT기술입니다. 문화와 ICT의 융합이 한국의 미래고, 경쟁력이 생각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선 ‘드론 쇼’도 화제였지만 4차 산업시대의 특징인 1인 미디어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신기술들이 국민 문화생활에 널리 활용되도록 한국문화정보원의 문화정보화도 한 단계 높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누구나 영상작가이고 기자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글로벌 콘텐츠 포탈(YouTube, Facebook, Instagram 등)은 모두 미국의 상업적 포탈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다채롭고 가치 있는 문화예술의 양질의 콘텐츠를 경박하지 않게 공급 소비되는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올해 전국의 모든 정부조직과 공공기관의 문화콘텐츠를 묶어서 서비스하는 ‘다부처 문화정보 연계서비스 플랫폼 구축사업’을 착수합니다. 기존의 단방향 문화정보서비스를 양방향 서비스로 개선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며, 지능화, 실감화, 융합화를 구현할 것입니다. 여기서 실감화란 다양한 문화유산, 그러니까 박물관 등 공공문화시설의 문화유물 등을 3D데이터로 구축해 국민에 제공하면 박물관에 오지 않아도 실제 온 것처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를 ‘실감 서비스’라고 합니다. →문화영역 방대한 데이터 플랫폼 구축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정보원은 2011년도부터 공공문화정보 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현재 138개 기관의 7300만 건의 문화 분야 메타데이터를 수집해 왔습니다. 올해 공공부문의 1600여개 사이트의 문화데이터를 묶는 ‘다부처 연계 플랫폼’을 만들고 많은 국민들이 이용하게 되다면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계에 대한 정책 수요와 불만을 실시간으로 분석해서 대응하는 스마트 국정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장에 큰 성과를 보기 어렵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구축해야만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각계각층에 많은 분과 토론하고 이해를 넓혀 나가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디지털 전환의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 3.0’이 국정과제였는데요, 앞으로 정부 3.0을 넘어선 개념이 가칭하여 ‘정부 4.0’이라고 한다면 그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단편적으로 설명하면,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개하는 단계를 1단계이고,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국민과 소통되는 단계가 2.0이고, 국민의 이야기가 정책에 체계화된 형태로 반영되는 단계가 3.0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정부3.0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죠.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가 말한 ‘창조적 파괴와 융합’이 정책을 공급하는 조직들과 서비스들에도 나타날 것입니다. 그 기술적 형태는 국민 1인 모두에게 각각의 맞춤형 정책서비스가 될 것이고, 그 성과평가 지표는 ‘행복’이 돼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4.0의 단계가 있다면 기술적, 양적 정책 공급이 아니라 ‘국민 행복도를 높이는 질적인 서비스’가 평가되는 시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4차 산업혁명 시대 국민 문화향유는 벌써부터 안내 로봇이 등장하는 등 ‘내 손안의 문화비서’라 할 수 있는 AI 모바일 챗봇(Chatbot) 출현도 예고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몇 가지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인공지능의 딥러닝 기술, 박물관 및 미술관의 문화데이터, 로봇기술을 융복합해 서비스하는 인공지능 기반 문화 큐레이팅봇 사업을 기획 중입니다. 이 사업의 성과는 큐레이팅과 도슨트 관련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일 겁니다. 도슨트 AI 로봇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의 문화IT 가능성을 테스트해보고 싶습니다. 조만간 국민들에게 자세히 설명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관련해 ICT와 문화가 접목되어 창출되는 콘텐츠 시장이 향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서의 성장잠재력이 폭발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여러 기술이 문화자원과 결합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죠. 전문용어로 낯설어할 수 있지만, 다양한 워킹 VR, 인터렉션, AR 콘텐츠, 360도 문화체험 VR 콘텐츠 등 가상증강현실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문화자원의 본질에 가치를 더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창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혜택을 제공할 수 있죠. 민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의 문화재, 천연기념물, 유적과 산림 등 자연유산, 대형 문화공간, 유물 등에 대한 원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개방하는 것입니다. 이때 ‘개방’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활용’입니다. 실제 문화의 가치가 산업화의 가치로 활용될 때, 국민들이 체감하는 문화는 더욱 클 것이고 생활 속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국민이 행복해지는 ‘스마트 문화 거버넌스’라 생각합니다. →평창동계올림픽 피날레 무대는 K-POP 공연장 같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K-Culture´ 또한 확대 조명되고 있는 점과 관련, 이를 지속해 나가는 것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평창동계올림픽 피날레 무대를 보면서 K-POP이 단순히 유행이 아니라 세계 속의 문화의 한 축으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 K-POP뿐만 아니라 K-뷰티, K-드라마, K-콘텐츠 등 한국의 모든 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정보원은 재외한국문화원에 해외문화PD를 직접 파견, 현지에서 진행되는 한류 관련 행사와 소식들을 영상으로 제작해 문화포털과 유튜브로 전 세계인에게 제공하고 있고요. 한국문화는 물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세종학당재단과 함께 외국인 대상 영상을 제작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인면조처럼 생소하지만 세계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궁한 소스가 대한민국의 역사와 삶 속에 있습니다. 그 가치가 사장되지 않도록 더욱 발로 찾아다니면서 발굴하고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일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중소규모의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하는 사업도 새롭게 시작을 했던데요. 올해 첫 오픈한 ‘문화N티켓’에 대한 중소규모 및 영세 문화예술 공연단체들의 호응도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문화N티켓’은 지역에서 이뤄지는 행사의 입장권 예매·발권 시스템을 이용하기 어려운 문화예술공연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수수료 없는 티켓판매 플랫폼으로 지난 1월 8일 오픈했습니다. 온라인 예매지원뿐만 아니라 공연현장(오프라인)에서도 티켓을 발권할 수 있는 무인발권시스템(키오스크)를 작년 말에 시범적으로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화N티켓의 키오스크는 현재 서울의 홍대지역 5개의 문화예술공연장(산울림 소극장, KT&G 상상마당, 윤형빈소극장, 웨스트브릿지)에 가시면 직접 체험해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는 균형 잡인 문화예술 향유를 위하여 서울,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역문화재단·예술단체 및 중소규모의 문화예술단체(시설)을 우선으로 70대를 확대 지원할 계획입니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과학기술과 문화와 융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 일자리를 늘리고 시장을 성장시키는 선순환 경제기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합니다. 이 같은 방향성에 대해 평소 생각하는 견해나 철학은 무엇인가요. -지금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선진국과의 기술격차, 후진국과의 가격경쟁력 약화로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 동력을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특히,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확충이 절실합니다. 저는 청년들에게 취업지원과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문화에 기반을 둔 기술개발과 서비스 모델 발굴을 통한 스타트업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올해 한국의 문화콘텐츠를 이용한 사업화 지원을 범아시아로 확대하고자 합니다. 한류로 형성된 한국 문화 콘텐츠(한글, 전통문양, 지역축제 등)에 대한 글로벌 수요를 청년들의 성공적인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주요 프로필 1996 충북대학교 도시공학과 졸업(공학사) 1991 충북대학교 총학생회장 겸 충북지역 대학생협의회 의장(전대협5기) 1999 서울시립대 대학원 도시행정과 졸업(행정학석사) 2000~2010 KDI(한국개발연구원) 세계및도시정책연구소 부소장, 국가리더십센터 부소장 지식협력센터 실장, 대외협력팀 팀장 2012 서울시립대 대학원 도시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2010~2015 KAIST 공공혁신전자정부연구센터 연구위원 2014~2015 ㈜공공혁신플랫폼 이사장 2016~2017 서울시 성북구청 기획예산과 정책소통팀장 2017~현재 한국지방정부학회 학술정보위원회 이사 2018~현재 한국기업교육학회 부회장 2018~현재 한국문화정보원 원장
  • 비자카드 새 사장 패트릭 윤 선임

    비자카드 새 사장 패트릭 윤 선임

    비자카드는 신임 사장으로 패트릭 윤 SC제일은행 부행장을 선임했다고 14일 밝혔다. 윤 신임 사장은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싱가포르, 대만, 영국 지사에서 전략, 비즈니스 개발, 인수·합병(M&A) 등의 업무를 맡았으며 최근 4년간은 SC제일은행 리테일 금융본부를 총괄했다. 컬럼비아비즈니스스쿨 및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인생사진 찍은 날… 기쁜 우리 젊은 날

    인생사진 찍은 날… 기쁜 우리 젊은 날

    여행지를 보는 시각은 저마다 다르다. 예컨대 젊은이가 즐겨 찾는 곳은 일반적인 여행의 패턴과 꽤 다를 수 있다. 청년들은 어떤 곳을 선호할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청년강원사용설명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말 그대로 ‘청년을 위한 지역사용설명서’가 콘셉트다. 강원 지역 청년들이 자신의 활동 공간을 타지의 젊은 여행자들에게 소개해 보자는 게 이벤트의 취지다. 지역 설정에는 패럴림픽이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쉽게 말해 패럴림픽도 보고, 인근 지역도 여행해 보자는 거다. 프로그램 기획에는 지역 출신 청년들이 참여했다. 각 지역의 이색 숙소와 체험거리, ‘인생사진’ 촬영 장소 등 알짜배기 여행 정보를 공유했다. 이 가운데 패럴림픽 경기장 주변의 도시들을 골라 이번 여정을 꾸렸다. ‘머스트 시’(must see) 목록에 올린 곳은 물론 각 지역 청년들이 추천한 장소들이다.초봄이라 해도 강원 지역의 날씨는 도회지와 다르다. 기온이 급강하하거나 폭설이 내리는 경우가 잦다. 혹시 평창으로 발걸음하는 길에 폭설 소식을 접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월정사부터 가야 한다. 명성이 자자한 전나무 숲길의 설경을 눈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인들이 월정사 전나무 숲길의 설경과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제아무리 폭설을 뒤집어썼다 해도 눈 그치고 반나절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그러니 ‘불력’(佛力)의 도움이 없는 한 먼 거리의 여행자들이 소담한 설경과 마주하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전나무 숲길은 일주문에서 금강문까지 이어진다. 수령이 얼추 400년을 헤아리는 노거수부터 80년 안팎의 ‘젊은’ 나무까지 조화롭게 어울렸다. 조만간 전나무 숲 여기저기서 복수초가 얼굴을 내밀 것이다. 노란 꽃봉오리와 어우러진 전나무 숲길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즐겁다.평창의 여행지를 추천한 이는 최지훈 작가다. ‘베짱이농부’란 이름으로 집필과 블로그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월정사도 그가 추천한 여행지 중 하나다. 그는 평창 읍내를 꼼꼼하게 돌아보길 권했다. 예컨대 터미널 인근의 올림픽시장에선 메밀전병과 감자전 등 토속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끝자리 5와 0인 날엔 5일장도 열린다. 시장 뒷골목엔 브레드 메밀 빵집이 있다. 청년 남매가 운영하는 집이다. 메밀과 지역 특산물로 만든 빵을 내면서 갤러리도 겸하고 있다. 평창읍 외곽의 감자꽃 스튜디오는 폐교를 활용한 문화 공간이다. 주민과 작가들이 너나없이 드나들며 작업을 하는 열린 스튜디오다. 평소엔 청년들이 모여 다양한 문화행사를 벌인다. 예컨대 주방에선 글쓴이가 직접 키운 농산물을 가져와 음식을 만들어 파티를 연다. 갤러리와 강당에선 전시회와 공연이 열린다. 현재는 문화올림픽 프로그램의 하나로 지난가을 평창에 머물며 작업한 16개국 청년 예술가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공방과 카페를 겸한 ‘이화에월백하고’도 추천 코스다. 이런 곳에 뭐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산속에 자리를 잡았다. 낡은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커피와 차를 즐기다 보면 분주했던 시간들도 금세 잊게 된다. 부부가 만든 목공 소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진부 오대천변의 ‘평창 라이브사이트’도 가볼 만하다. 평창동계올림픽 경기 중계를 위해 만든 공간이다. 경기 외에 다양한 공연과 전시, 체험 행사 등이 열린다. 최 작가는 아울러 이효석 문학관, 오대산국립공원, 용평리조트, 평창바위공원, 상원사, 백룡동굴 등도 명소로 꼽았다.평창에서 대관령을 넘으면 강릉이다. 이 지역을 알릴 청년은 고기은 작가다. 여행작가와 독립출판사 대표를 겸하고 있다. 그는 오죽헌 대신 강릉대도호부관아를, 바다 대신 호수를 돌아보라고 했다. 커피 대신 차를 마셔 보라고도 했다. 그가 권한 강릉 여정의 시작은 강릉대도호부관아다. 조선 말까지 강릉부의 지방행정을 관장하던 중심지다. 그는 “부석사 무량수전과 쌍벽을 이루는 국보 목조건축물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했다. 그게 임영관 삼문(국보 제51호)이다. 강원도에 단 하나뿐인 국보 목조건축물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배흘림 기둥이 멋스럽다. 패럴림픽 기간에는 관아에서 전통놀이, 먹거리 체험 등이 열린다. 관아 옆은 칠사당이다. 일곱 가지 사무를 보던 조선시대 수령의 집무처다. 고풍스러운 건물 뒤란엔 매화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가지 끝에 매달린 몇 송이 매화가 옛 건물과 기막히게 어울렸다.경포호는 “마음이 쉬어 가는 곳”이다. 고 작가는 “호수 주변을 거닐며 만나는 풍경이 복잡한 마음을 다독여 준다”며 “고단한 마음을 달래고 싶은 친구에게 그 풍경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경포호는 겨울 철새도래지다. 큰고니와 기러기 등 철새들과 만날 수 있다.강릉은 커피의 도시 이전에 유서 깊은 차의 고장이었다. 한송정 등에 신라 화랑들이 심신을 수련하며 차를 마셨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초희 전통차 체험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동계올림픽홍보체험관 뒤 허난설헌 기념공원 안에 체험관이 있다. 초희는 허난설헌의 어린 시절 이름이다. 찻값은 1000원이다. 차 판매수익금은 연말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쓰인다. 강릉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동해시로 내려온다. 이 지역의 청년 안내자는 유현우 프로젝트미터 대표다. 다양한 분야의 문화 콘텐츠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첫손 꼽은 곳은 묵호동 논골담길이다. 쇠락한 포구 마을에서 한순간에 유명 벽화마을로 발돋움한 곳이다. 그는 논골담길을 “청춘의 여행이 고요한 순례가 된 요즘, 홀로 떠나는 젊은 여행자가 떠나온 길과 가야 할 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또 하나의 순례길”이라고 표현했다. “온전히 걷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등대를 만나게 되는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 바라보는 등대 불빛은 왠지 모를 위안을 주고 작은 희열을 느끼게 한다”고도 했다. 마을엔 특색 있는 카페가 많다. 그중 하나가 ‘앨리스의 외출’이다. 저렴한 찻값에 다양한 정보를 얻고 주인 내외와 소통할 수 있는 카페로 알려져 있다. 흑백사진 스튜디오 겸 카페인 ‘모모의 하루’도 인상적이다. 논골담길에서 한 블록 너머에 동쪽바다 중앙시장이 있다. 북평시장과 쌍벽을 이루는 전통시장이다. 묵호를 추억하는 이들이 생업을 이어 가는 공간이다. 화려한 옛날을 꿈꾸는 변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야시장을 열어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대진해수욕장은 서핑 명소다. 수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가구 수가 적어 광해가 거의 없다. 유 대표는 “동해는 일출 순간도 좋지만 밤의 여행지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훌륭한 곳”이라고 말했다. 찬물내기 공원엔 복수초 군락지가 있다. 겨울을 이겨 낸 봄꽃들의 화사한 군무를 볼 수 있다. 글 사진 평창·강릉·동해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맛집:평창의 추천 식당은 납작식당(335-5477)이다. 고추장 양념에 재운 오징어와 삼겹살을 불판에 구워 먹는다. 횡계에 있다. 부침개 등 토속 음식을 맛보려면 평창 읍내의 올림픽시장을 찾아야 한다. 공방 카페인 이화에월백하고(334-8642)는 감자꽃스튜디오에서 지동리 방향으로 한참 들어가야 한다. 브레드 메밀(333-0497)은 올림픽시장 주변에 있다. 강릉에서는 주문진시장 내 오징어순대, 동화가든(652-9885)의 짬뽕순두부, 원조초당순두부(652-2660)의 순두부 백반 등이 추천됐다. 동해에서는 홍대포(535-7646)의 해신탕, 대우칼국수(531-3417), 묵호항 뒤편의 구이전문점, 오부자횟집(533-2676)과 부흥횟집(531-5209)의 물회 등이 추천됐다. 구이전문점의 경우 건물 한 동 전체가 생선구이 가게들로 가득 찼다. 이 가운데 바다에(533-6060)가 비교적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편이다. 이 밖에도 묵호항 뒤편의 ‘동쪽바다 중앙시장’ 주변에 맛집들이 많다. 청년몰, 야시장(금·토요일 개장) 등 독특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밀집돼 있다. →숙소:평창의 700빌리지(334-5600)는 펜션이다. 다양한 레저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뇌운산장 게스트하우스는 펜션형 게스트하우스다. 도미토리(방을 여럿이 나눠 쓰는 것) 방식으로 운영된다. 강릉은 후아유 게스트하우스와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는 왕산한옥마을(648-7179) 등이 추천됐다. 동해 논골담길에 있는 103LAB(010-7313-4679), 솔 게스트하우스(010-2214-2273) 등도 도미토리 방식으로 운영된다.
  • 공장직원·화학도·공무원… 하루키처럼 ‘불현듯’ 작가 됐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소설집으로 출판계를 뒤흔든 무명작가가 있다. 소설집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이상 요다)를 쓴 김동식(33)씨다. 지저세계, 외계인 침공, 말하는 목각 인형, 손가락이 열두 개인 신인류 등 만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의 서늘한 이면을 짚어낸 짧은 글들을 모았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회색인간’은 약 두 달 반 만에 6쇄, 2만 2000부가 팔려나갔다. 유명 작가의 소설이 1만부를 찍기도 어려운 요즘 이례적인 흥행 성적이다.●‘누구나’ 소설가 될 수 있어김씨가 글쓰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래서 놀랍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2006년 서울에 올라왔다. 외삼촌의 권유로 서울 성수동의 한 주물공장에서 금형에 뜨거운 쇳물을 부어 단추, 지퍼, 액세서리 등을 찍어내는 일을 2016년 말까지 10년간 했다. 김씨는 2016년 5월 특별한 목적 없이 자주 들르던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오유) 공포게시판에 첫 번째 글 ‘이미지 메이킹’을 올렸다. 김씨의 말을 빌리자면 “엉망진창”인 소설이었지만 ‘다른 글도 보고 싶다’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평소 책을 거의 보지 않았던 김씨를 가르친 건 온라인 독자들의 댓글과 포털사이트였다. 김씨는 사람들이 오유 게시판에 올린 창작글을 통해 기승전결과 반전의 서사를 배우고, 인터넷에서 ‘글 쓰는 법’을 검색하며 작법을 익혔다. 김씨는 “공장에서 내가 만든 수만 개의 물건은 누가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올린 글을 본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 때문에 창작의 중독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2016년 5월 첫 작품을 올린 이후 김씨는 지금까지 360여편에 달하는 단편을 완성했다. “최소 3일에 1편씩은 쓴다”는 개인적인 원칙을 고수한 결과다.이 소설집을 기획한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는 “어느 시대든 소설이라는 것은 그 시대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김 작가의 등장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규정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최근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나고, 작가들이 (등단과 관련한) 물리적인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글쓰기에 대한 도전 자체가 무한대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작품의 질과 순정성 등 기본적인 것만 뒷받침되면 누구나 스타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설명했다.포항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지난 2월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김초엽(25)씨는 최근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각각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습작을 한 지 2년 만에 거둔 성과다. 이번에 다른 수상작과 함께 책으로 엮어 나온 ‘관내분실’(허블)은 죽은 사람들의 기억을 보관하는 도서관에서 분실된 엄마의 기록을 찾아나서는 딸의 이야기다. 과학적 공간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의 깊은 곳을 들여다본 이 작품은 “문장과 구성, 아이디어, 장르적 이해, 과학적 정밀함 모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김씨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것에 익숙했다. 글쓰기는 그의 생활방식이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고. 주로 에세이를 많이 쓰던 그는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과학책을 접하면서 새로운 글쓰기에 눈뜨게 됐다. 김씨는 “과학적인 소재를 이용해 인간 삶의 바깥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좀더 다양한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과학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소설 쓰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김씨는 작법서를 보면서 시험공부 하듯이 소설을 배웠다. 그는 “경험상 스스로 배우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소설”이라면서 “단순히 어떤 기술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늘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도전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누구나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업의 공무원이 소설이라는 모험에 도전장을 내민 경우도 있다. 현재 국회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에서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이수(52·본명 김종규)씨. 평탄한 생활에도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소설을 택한 그는 2009년 문화센터에 등록해 소설 작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과 주말을 글쓰기에 할애했고 노력 끝에 2013년 단편 ‘위대한 유산’으로 김유정신인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럼에도 무명의 작가가 글을 실을 수 있는 지면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될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소설 공모전에 꾸준히 작품을 투고했다. 세계문학상 본선에 오르면서 편집자의 눈에 띄었던 장편 ‘가토의 검’과 ‘갈때기 포트’(이상 나무옆의자)는 각각 2015년과 올해 세상 빛을 보게 됐다. 그는 “글을 쓰면 아무래도 나 자신의 과거를 끌어들이게 되기 때문에 예전에 겪었던 아픔이 떠오르지만 글은 끝끝내 내 삶에 위로를 건넸다”면서 “은퇴 후에는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고 소설 쓰기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회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와 추리를 접목한 소설을 집필하는 것이 목표다.●“침체된 문단 활력소로”비등단 작가·겸업 작가의 탄생은 침체된 문단에도 활력소가 될 만하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주류 문학 체계를 벗어나 동호회 등을 통해 자생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불현듯’ 작가가 됐다. 서른 살을 앞둔 1978년 도쿄 신주쿠 진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던 그는 문득 “재능이나 능력이 있든 없든, 아무튼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날부터 재즈 카페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한밤중에 부엌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79년 문예지 ‘군조’ 신인문학상을 받은 그의 첫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가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밝혔듯 이처럼 소설은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매우 폭이 넓은 표현 형태”다. 거칠게 말하면 ‘아무나’ 작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아무나 작가’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기성 문단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일을 하다가 혹은 공부를 하다가 하루키처럼 ‘불현듯’ 도전한 소설 쓰기가 어느덧 자신의 삶이 됐다는, 최근 주목받는 작가들을 소개한다.
  • 공장직원·화학도·공무원… 하루키처럼 ‘불현듯’ 작가 됐다

    공장직원·화학도·공무원… 하루키처럼 ‘불현듯’ 작가 됐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불현듯’ 작가가 됐다. 서른 살을 앞둔 1978년 도쿄 신주쿠 진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던 그는 문득 “재능이나 능력이 있든 없든, 아무튼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날부터 재즈 카페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한밤중에 부엌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79년 문예지 ‘군조’ 신인문학상을 받은 그의 첫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가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밝혔듯 이처럼 소설은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매우 폭이 넓은 표현 형태”다. 거칠게 말하면 ‘아무나’ 작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아무나 작가’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기성 문단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일을 하다가 혹은 공부를 하다가 하루키처럼 ‘불현듯’ 도전한 소설 쓰기가 어느덧 자신의 삶이 됐다는, 최근 주목받는 작가들을 소개한다.지난해 12월 발표한 소설집으로 출판계를 뒤흔든 무명작가가 있다. 소설집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이상 요다)를 쓴 김동식(33)씨다. 지저세계, 외계인 침공, 말하는 목각 인형, 손가락이 열두 개인 신인류 등 만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의 서늘한 이면을 짚어낸 짧은 글들을 모았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회색인간’은 약 두 달 반 만에 6쇄, 2만 2000부가 팔려나갔다. 유명 작가의 소설이 1만부를 찍기도 어려운 요즘 이례적인 흥행 성적이다.●‘누구나’ 소설가 될 수 있어 김씨가 글쓰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래서 놀랍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2006년 서울에 올라왔다. 외삼촌의 권유로 서울 성수동의 한 주물공장에서 금형에 뜨거운 쇳물을 부어 단추, 지퍼, 액세서리 등을 찍어내는 일을 2016년 말까지 10년간 했다. 김씨는 2016년 5월 특별한 목적 없이 자주 들르던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오유) 공포게시판에 첫 번째 글 ‘이미지 메이킹’을 올렸다. 김씨의 말을 빌리자면 “엉망진창”인 소설이었지만 ‘다른 글도 보고 싶다’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평소 책을 거의 보지 않았던 김씨를 가르친 건 온라인 독자들의 댓글과 포털사이트였다. 김씨는 사람들이 오유 게시판에 올린 창작글을 통해 기승전결과 반전의 서사를 배우고, 인터넷에서 ‘글 쓰는 법’을 검색하며 작법을 익혔다. 김씨는 “공장에서 내가 만든 수만 개의 물건은 누가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올린 글을 본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 때문에 창작의 중독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2016년 5월 첫 작품을 올린 이후 김씨는 지금까지 360여편에 달하는 단편을 완성했다. “최소 3일에 1편씩은 쓴다”는 개인적인 원칙을 고수한 결과다. 이 소설집을 기획한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는 “어느 시대든 소설이라는 것은 그 시대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김 작가의 등장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규정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최근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나고, 작가들이 (등단과 관련한) 물리적인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글쓰기에 대한 도전 자체가 무한대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작품의 질과 순정성 등 기본적인 것만 뒷받침되면 누구나 스타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설명했다.포항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지난 2월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김초엽(25)씨는 최근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각각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습작을 한 지 2년 만에 거둔 성과다. 이번에 다른 수상작과 함께 책으로 엮어 나온 ‘관내분실’(허블)은 죽은 사람들의 기억을 보관하는 도서관에서 분실된 엄마의 기록을 찾아나서는 딸의 이야기다. 과학적 공간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의 깊은 곳을 들여다본 이 작품은 “문장과 구성, 아이디어, 장르적 이해, 과학적 정밀함 모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씨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것에 익숙했다. 글쓰기는 그의 생활방식이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고. 주로 에세이를 많이 쓰던 그는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과학책을 접하면서 새로운 글쓰기에 눈뜨게 됐다. 김씨는 “과학적인 소재를 이용해 인간 삶의 바깥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좀더 다양한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과학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소설 쓰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김씨는 작법서를 보면서 시험공부 하듯이 소설을 배웠다. 그는 “경험상 스스로 배우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소설”이라면서 “단순히 어떤 기술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늘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도전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누구나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업의 공무원이 소설이라는 모험에 도전장을 내민 경우도 있다. 현재 국회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에서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이수(52·본명 김종규)씨. 평탄한 생활에도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소설을 택한 그는 2009년 문화센터에 등록해 소설 작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과 주말을 글쓰기에 할애했고 노력 끝에 2013년 단편 ‘위대한 유산’으로 김유정신인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한 첫발을 내디뎠다.그럼에도 무명의 작가가 글을 실을 수 있는 지면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될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소설 공모전에 꾸준히 작품을 투고했다. 세계문학상 본선에 오르면서 편집자의 눈에 띄었던 장편 ‘가토의 검’과 ‘깔때기 포트’(이상 나무옆의자)는 각각 2015년과 올해 세상 빛을 보게 됐다. 그는 “글을 쓰면 아무래도 나 자신의 과거를 끌어들이게 되기 때문에 예전에 겪었던 아픔이 떠오르지만 글은 끝끝내 내 삶에 위로를 건넸다”면서 “은퇴 후에는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고 소설 쓰기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회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와 추리를 접목한 소설을 집필하는 것이 목표다. ●“침체된 문단 활력소로” 비등단 작가·겸업 작가의 탄생은 침체된 문단에도 활력소가 될 만하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주류 문학 체계를 벗어나 동호회 등을 통해 자생적으로 글을 써 온 아마추어들이 생산한 작품은 문학성과 규범성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기존 작품이 채우지 못한 부분을 채우며 한국 문학의 저변을 넓혀 왔다”고 설명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김정은, 비핵화 의지 천명 ‘말이 아닌 행동’으로 검증해야”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김정은, 비핵화 의지 천명 ‘말이 아닌 행동’으로 검증해야”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정의용·서훈 대북 특사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면담에서 거둔 결과에 대해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는 것은 환영하지만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이 많기 때문에 행동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향후 비핵화 전망에 대해서는 “북한과 미국의 대화는 시작되겠지만 미국이 바라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프로그램의 포기(CVID)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순간 한반도는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김정은이 4월 말 남북 정상회담의 판문점 우리 쪽 지역 개최, 비핵화 의지 천명 등 파격적 결심을 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고립무원의 상태를 타개해 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북한이 타깃이 될 수 있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제재를 벗어나려고 정치적 제스처를 보이기 시작했다. 북측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는 등 전향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거짓된 평화 공세’와 ‘시간벌기용 대화’가 아닌지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검증해야 할 단계에 왔다. →공은 문재인 대통령에서 김정은으로,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 넘어갔다. 대화를 시사하는 트럼프 발언도 있었다. 향후 북·미 대화, 한반도 비핵 프로세스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북한의 진정성이 관건이다. 핵보유 포기는 군사적 위협 해소와 북한 체제 보장이라는 조건부이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도 ‘대화가 지속되는 한’이라는 조건부다. 미국도 탐색적 대화를 시작하겠지만 단계적일지라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가 가능한 것인지가 협상의 향방을 좌우할 것이다. 한국은 북·미 관계 정상화를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북한과의 신뢰할 수 있는 평화가 확립될 때까지 주한미군, 한·미 동맹을 협상의 테이블에 올리는 데 매우 신중해야 한다. →특사 방북 결과를 환영하는 중국과 달리 일본은 뜨악한 표정이다. 대화 국면에서 자신만 빠지는 ‘재팬 패싱’을 우려하는 것 같다. 비핵 프로세스에서 일본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반도 비핵화가 본격화될 수 있다면 일본은 북한에 대한 지원을 포함하여 긍정적 역할의 여지가 크다. 다만 일본은 그 이전까지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 제재의 수위를 유지하면서 북한이 위장 평화공세나 거짓 협상에 나서지 않도록 압박을 가할 것이다. →지난해 내내 ‘한반도 위기론’이 지배했다. 올해는 평화 무드가 올 것으로 보는가. -북한의 대화 공세에는 핵무기 개발이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우세적 대화’를 하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미국,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유엔 결의에 기초해 강화하고 있는 대북 제재와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수세적 대화’도 필수적이다. 북한의 대화 공세는 이런 점에서 양면적이다. 북한의 대화 공세, 도발 중단, 북·미 협상이 이루어지면서 상반기에 평화 무드가 조성되겠지만,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 긴장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 만약 북한의 대화 공세가 시간벌기용 위장 평화공세였다고 판단된다면 남북, 북·미 간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일 관계로 화제를 돌려 보겠다. 문 대통령의 3·1절 경축사에서 독도 언급은 의외였는데.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 민족주의적 정서나 국내 정치용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일본이 현재 독도 문제로 네거티브 캠페인이나 선전 공세를 강화한다면 모를까 어느 정도 경계수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도 언급은 좋은 전략만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이 경축사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면서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범죄 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떻게 봤는가. -위안부 문제는 절대로 끝낼 수 없는 문제라고 프레임을 완전히 바꿨다. 한·일 양자의 이슈이자 과거사 현안을 합의를 통해 끝낸 것을 재협상, 파기도 아닌 형태로 프레임을 바꾸어 국제인권의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끝날 수가 없고 일본이 사죄하고 반성을 계속 해야 한다며 싸움을 장기화시켰다. 일본은 “약속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도 2013년부터 유엔에서 전시여성 폭력 문제 해결에 대해 주도권을 쥐고 공헌하겠다고 얘기를 해 왔다. 위안부 문제는 전시여성 폭력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아베 내각이 너무 반발하면 자기모순에 빠진다. 하지만 우리가 위안부 문제를 반인륜적인 국제 인권침해 문제라고 한 것은 양날의 칼이다. 일본을 공격하는 측면도 있지만 합의로 끝낸다고 해 놓고 게임을 연장시킨 격이다. →한·일의 신뢰회복은 가능한가. -상호 신뢰가 약해진 한·일 관계는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정쩡한 타협의 연속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갈등은 하면서도 북한의 위협 및 중국에 대한 대응, 동맹국인 미국과의 조율 때문에 파국을 맞지는 않을 것이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올봄 일본에서 열릴 가능성이 있다. 그전이라도 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가 있다. -대통령이 일본을 단독 방문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우선 한·중·일 3국 정상이 만나는 자리를 통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이라는 공통의 목표에 대해 메시지를 보낸 뒤 한·일 셔틀외교의 복원이라는 의미에서 다시 일본을 방문해도 늦지 않다. →지금 일본에서는 어느 때보다 한국을 보는 시선이 싸늘하다. 그 원인과 처방은. -일본에서는 한국이 약속을 지키는 국제 국가인지 의심을 한다. 그리고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전 정권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아주 중시하기 때문이다. 정부 간 소통 채널의 복원과 강화가 필요하다. 민간 전문가 등을 동원한 맞춤형 대외 공공외교를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갈등의 근저에는 상호 이해의 부족과 오해의 축적이 있다. →아베 총리가 개헌에 아주 의욕적이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안에, 늦어도 내년 초 헌법개정안을 국회에 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일본의 개헌 시계를 어떻게 예상하는가. -일본은 2020년 이전에 개헌을 단행할 공산이 크다고 본다. 자민당 내부의 의견 조율, 연립여당인 공명당과의 타협점 마련, 그리고 여타 야당들과의 합의 도출이라는 과제가 있지만, 아베 정권의 인기를 감안할 때 2019년 후반이나 2020년 초반에는 개헌이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고 본다. 다만 개헌의 내용은 한국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절제적이고 타협적일 가능성이 크다. marry04@seoul.co.kr ■ 박철희 교수는 현대日학회장 지낸 ‘일본통’아베 총리와도 각별한 사이 1963년생.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 겸 교수로 서울대 정치학과, 같은 대학원 정치학석사를 거쳐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현대 일본 정치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국립 정책연구대학원대학, 외교안보연구원 조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지내고 있다. 2012년부터 4년간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지난해 현대일본학회 회장을 지낸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일본통 중 하나로 꼽힌다. 일본 정계에 발이 넓어 정치인 150여명을 인터뷰했으며, 이 가운데 나카소네 야스히로(99) 전 총리, 아베 신조 총리와 각별한 사이다. ‘일본 국회의원이 만들어지는 법’, ‘자민당 정권과 전후체제의 변용’ 등의 저서가 있다.
  • 연구자는 연구만… ‘잡무 부담 끝’

    비리·고의外 개인손배 청구금지 R&D 규제혁파 방안 연내 도입 대학원 석사과정에 있는 김상진(27)씨는 재료과학 분야 최고 전문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진학했지만 요즘은 자신이 연구인력인지 행정보조인력인지 헷갈려 하고 있다. 연구보다는 각종 연구비 관련 영수증 처리, 전산시스템 입력, 연구재료 주문 등 행정업무에 시간을 더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연구자가 행정업무에 신경쓰지 않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8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제3차 규제혁파를 위한 현장 대화’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국가 연구개발(R&D) 분야 규제혁파 방안’을 올해 안에 도입키로 했다. 연구 이외에 연구비 관리와 정산, 연구물품 구매 등 행정부담이 지나쳐 개선이 필요하다는 현장 연구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부는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을 배치할 방침이다. 또 연구 시작 단계에서부터 물량, 단가 중심의 상세한 소요명세서 제출을 폐지하고 인건비, 연구비 세부항목별 총액만 제출하도록 하는 등 연구비 관리시스템도 단순화된다. ‘과학기술 발전에 있어서 실패를 용인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R&D 과정에서 발생한 금전적 손실이 비리나 고의적인 중과실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에는 연구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국방과학연구소가 정찰용 무인기를 개발하던 도중 추락사고가 발생하자, 방위사업청이 연구원 5명에게 67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임대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이번 현장 대화에서 건의된 내용은 물론 추가적인 의견 수렴을 통해 올해 상반기 중 가칭 ‘국가연구개발특별법’의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내가 걷는 길이 여성 용접사들에게 희망의 빛 되길”

    “내가 걷는 길이 여성 용접사들에게 희망의 빛 되길”

    “여자라서 안 된다는 편견에 맞서 ‘여자니까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세로 도전을 계속 해 왔어요. 처음 용접에 입문했을 땐 제게 소금을 뿌렸던 분들도 계셨을 만큼 여성 용접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기만 했지요. 그럴 때마다 내가 걷는 길이 후배 여성 용접사들에게는 희망의 빛이 되어 줄 거라 믿었어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전을 망설이고 있다면 주저 말고 도전하시길 바랍니다.”우리나라 최초 여성 용접기능장 박은혜(45)씨에게는 ‘1호’라는 수식이 많이 붙는다. ‘용접’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개척했기에 이후 가는 길마다 1호가 됐다. 상고 출신인 박씨는 배움의 길을 멈추지 않고 2년제 학위부터 공학사, 석사뿐만 아니라 배관기능장도 땄다. 육아를 위해 일을 포기했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력단절여성이었지만, 박씨는 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모든 위대한 성과가 그렇듯 그 시작은 사소하고 평범했다는 것을 박씨는 이력으로 말하는 듯했다.딸만 넷인 딸 부잣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박씨는 공부보단 몸으로 하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 그래서 1989년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에 1991년 도시가스 시공업체에 경리 보조로 입사했다. 그러나 체질상 경리 일이 몸에 맞지 않았다. 현장이 좋았던 박씨는 시공업체 사장에게 졸랐고, 이를 당돌하게 여겼던 사장은 박씨를 견적부에 보냈다. 이후 설계부, 자재부 등을 거치며 기술을 익혔다. 스물네 살이 되던 해에 드디어 현장에 나갈 수 있었다. 용접을 처음 접하게 된 것도 이때다. 현장에 대기하던 일이 많았는데, 용접을 할 줄 아는 ‘아저씨’들을 졸라서 용접을 배웠다. 박씨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아저씨들과 막걸리도 마시며 그렇게 녹아들었다. 상황이 달라진 건 1998년이다. 박씨가 그해 결혼하고 그다음 해 첫째 딸을 낳으면서 더이상 일하기가 어려워졌다. 박씨는 둘째가 태어날 때까지 약 5년간 육아와 집안일에 전념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남편과 조그마한 식당을 꾸려 생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씨는 ‘현장 체질’이었다. 박씨는 2004년 한국폴리텍대에 입학해 같은 해 9월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1호 용접기능장이 됐다. 그가 도전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 명쾌하다. “여태껏 여성 용접기능장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박씨는 2006년 폴리텍 인천캠퍼스 산업설비과에 입학해 후학 양성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고 2009년엔 폴리텍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이후 현장·강의 경력을 인정받은 박씨는 2015년 여성 최초 재료 분야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가 됐다. 이 제도는 10년 이상 현장에서 일한 전문 기술자가 보유한 숙련기술을 학교와 중소기업에 전수하기 위해 2012년 도입된 제도다. 아울러 2017년에는 우수숙련기술자(준명장)로 선정됐다. 박씨는 현재 한양이엔지에서 근무하며 산업현장교수로서 맹활약 중이다. 박씨는 자신의 최종 목표는 기능인의 꿈인 ‘대한민국 명장’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박씨는 “이 자리까지 와 보니 여자 후배, 동료가 거의 없다. 함께 도우며 같이 갈 기술 동료를 기다리고 있다”며 “여성 최초 용접 분야 명장이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이소연 “정권 바뀌었다고… 우주정거장서 새 정부 로고 다느라 진땀”

    이소연 “정권 바뀌었다고… 우주정거장서 새 정부 로고 다느라 진땀”

    정부 물건 넣느라 개인 공간 없어 미리 보낸 고산씨 겉옷 챙겨 입어 “귀환 후 실험 제안 정부가 묵살 과학 모르는 사람들이 사업 기획”“우리 정부는 우주인 배출 후속 사업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나는 상품이었을 뿐입니다.” 한국 첫 우주인인 이소연(41)씨가 우주 비행을 한 지 10년 만에 작심하고 과거 정부의 우주 프로젝트에 대해 비판했다. 이씨는 최근 출간한 과학비평잡지 ‘에피’(이음) 3호 인터뷰에서 우주에 가기 전과 우주에서의 10일, 그리고 귀환 뒤의 상황 및 공개되지 않은 일화 등을 소개했다.이씨는 2007년 9월 예비 우주인으로 선정됐다. 당시 고산씨가 비행 우주인이었지만 출발 한 달 전인 2008년 3월 보안규정 위반으로 이씨가 급하게 우주선에 올랐다. 이씨는 같은 해 4월 8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우주선 소유스호를 타고 출발해 4월 10일 우주정거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9박 10일 동안 열여덟 개의 우주과학 실험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했다. 이씨는 인터뷰에서 당시 곤혹스러운 상황도 설명했다. “우주선에 개인 물품을 예상하고 짐의 양을 계산해야 하는데, 정부와 항공우주연구원이 공식적인 물건을 보내는데 모두 써버려 개인 물건을 가져갈 공간이 거의 없었죠. 그래서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뒤 겉옷은 미리 보낸 고씨의 옷을 입어야 했어요.” 그는 “미국 우주비행사인 페기 윗슨이 보다 못해 자신의 빨간 티셔츠를 입으라고 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씨에 따르면 우주선이 앞서 화물을 쏘아 올렸을 때 정부 부처명은 ‘과학기술부’였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해당 부처명도 ‘교육과학기술부’로 교체돼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씨는 ‘과학기술부의 로고와 패치를 다 바꾸라’는 명령을 받고 결국 우주정거장에서 비행복 패치를 칼로 뜯어내고 새 패치로 바꾸는 작업을 틈만 나면 해야 했다. 가지고 간 실험 도구들의 스티커도 모두 떼고 죄다 바꿨다. 이씨는 “지구와의 교신에서도 ‘그거 다 뗐느냐? 확실히 다 붙였느냐?’라는 내용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동승했던 다른 나라 우주비행사들이 “뭐하는 짓이냐?”고 물으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고 전했다. 지구에 귀환한 후에도 곤혹스러운 상황은 이어졌다. 이씨가 교육과학기술부 담당자에게 “우주에서의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그는 이와 관련, “정부가 우주인을 보낸다고 대국민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우주인 배출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과학실험에 대해 본질적으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탈했다”며 “나는 우주인 배출 사업이 만들어낸 상품”이라고 토로했다. 이씨가 2012년 미국으로 건너가 UC 버클리대 경영전문석사(MBA) 과정을 듣고 이듬해 재미교포와 결혼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이씨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지만 이씨는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이씨가 우주에 다녀온 뒤 4년 동안 진행한 우주인 관련 연구과제가 4건에 불과하고, 외부 강연만 200여건에 이른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이와 관련해 “우주인 후속 사업이 없는 게 저의 문제인 것처럼 보도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이걸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욱한 것 반, 먼 미래를 계획한 것 반의 이유로 한국을 떠나게 됐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씨는 현재 미국 워싱턴대 공대 자문위원 자격으로 연구 및 교수 활동을 하고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여성 최초 감사위원 나왔다

    여성 최초 감사위원 나왔다

    작년 4차 산업혁명위원 위촉 손창동 제2사무처장도 내정 최재형 감사원장은 5일 신임 감사위원으로 강민아(오른쪽·53)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와 손창동(왼쪽·53) 감사원 제2사무처장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1963년 감사원 설립 후 여성 감사위원이 제청된 건 처음이다.강 내정자는 서울 출신으로 대전여고와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정책학 석사와 의료정책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한국정책학회 국제협력위원장 등 전문 학술 활동뿐 아니라 여성가족부 자문위원, 외교부 혁신 태스크포스(TF) 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또 이화여대 경력개발센터 원장을 지내면서 재학생들의 진로 모색을 지원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엔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바 있다. 감사원은 “역량 있는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강 교수를 감사원 최초의 여성 감사위원으로 제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손 내정자는 경북 구미 출신으로 대구 대건고와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대 행정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35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뒤 1993년부터 감사원에서 다양한 보직을 거쳐 특별조사국장과 산업금융감사국장, 재정경제감사국장, 감사교육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8월 제2사무처장에 보임됐다. 손 내정자는 적극 행정 면책제도와 감사권익보호관 제도를 도입하는 등 감사원 혁신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지난해 ‘감사원 직원들이 닮고 싶은 관리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감사원은 “풍부한 감사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국가재정 건전화와 공직기강 확립에 기여할 인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감사위원은 감사원장을 포함해 총 7명이다. 감사위원 중 최재해·유진희 전 위원이 지난 1월 4년 임기를 마치면서 그동안 두 자리가 공석이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교육부, 연예인 특혜 경희대에 “입학 취소”

    교육부, 연예인 특혜 경희대에 “입학 취소”

    경희대 대학원 입학과 학위취득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불거진 연예인들이 입학 및 학위취소 처분을 받게 됐다. 특혜를 준 교수들도 징계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교육부는 5일 지난달 9∼13일 경희대 대학원 학사운영 현황 조사에서 고등교육법과 학칙 위반 사례를 적발했으며, 씨엔블루 정용화(왼쪽)와 작곡가 조규만(오른쪽), 사업가 김모씨 등 학생 3명의 입학 취소와 2AM 조권(가운데)의 학위 취소를 학교 측에 요구할 계획이라고 5일 밝혔다.교육부에 따르면 정용화·조규만 등 3명은 2017학년도 경희대(국제캠퍼스) 전기 일반대학원 응용예술학과와 포스트모던음악학과 수시전형 모집에서 면접을 보지 않고도 합격했다. 이들은 대학원 학과장이자 면접심사위원장이었던 이모 교수의 주도로 허위 면접 점수를 부여받아 부정합격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용화와 조규만은 해외체류 기간 중에도 강의 출석을 인정받은 특혜도 받았다. 교육부는 이 교수 외에 면접 심사를 했던 교수 3명에 대해 징계 처분을 학교 측에 요구할 예정이다.조권은 이 대학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에서 졸업논문 격인 졸업작품전을 열지 않고도 석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대학원은 학칙에 따라 논문 대신 졸업작품전을 열어야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데 조권은 실제 작품전을 열지 않고 공연 유인물(팸플릿) 제출만으로 심사에 통과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조권 측에서 제출했다고 주장한 공연 영상물 역시 학교 측의 요청으로 학위를 받은 뒤 8개월 만인 지난달 뒤늦게 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정용화는 이날 강원 화천 육군 제15 보병사단 승리부대 신병교육대로 입소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조권 졸업취소, 5일 전 올린 심경 보니 “겸허히 받아드리겠다”

    조권 졸업취소, 5일 전 올린 심경 보니 “겸허히 받아드리겠다”

    가수 정용화, 조권 등 경희대 대학원 입학·졸업과정에서 특혜의혹이 제기된 연예인들이 무더기로 입학 또는 졸업취소 처분을 받는다.5일 교육부는 지난달 9∼13일 경희대 대학원 학사운영 현황 조사에서 고등교육법과 학칙 위반 사례를 적발했으며, 학생 3명의 입학취소와 1명의 졸업취소를 학교 측에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들에게 특혜를 준 이모 교수 등 교수 7명에 대한 징계도 요구할 방침이다. 입학취소 대상인 3명은 대학원 박사과정에 합격했던 씨엔블루 정용화와 사업가 김모 씨, 석사과정에 합격한 가수 겸 작곡가 조규만 등이다. 졸업취소 대상은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한 2AM의 조권이다. 조사 결과 정용화·조규만 등 3명은 2017학년도 전기 일반대학원 응용예술학과와 포스트모던음악학과 수시전형 모집에서 면접을 보지 않고도 합격했다. 교육부는 당시 학과장이자 면접심사위원장이었던 이 교수가 주도해 이들에게 면접 점수를 허위로 준 것으로 보고 있다. 가수 조권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심사를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졸업한 사실이 적발됐다.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은 내규에 따라 논문심사 외에도 공연 등 졸업작품전을 통해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지만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관행에 따라 학생이 제출한 유인물(팸플릿)과 영상물로 졸업을 심사했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특히 조권은 2017학년도 1학기 석사학위 심사과정에서 공연을 열지 않고도 팸플릿 제출만으로 심사를 통과했다. 당초 조 씨가 학교에 낸 것으로 알려진 공연 영상물은 지난달 학교의 요청으로 제출한 것이었다. 교육부는 입학 비리에 개입한 이 교수가 강의일에 해외에 체류하고도 휴·결강 신청과 보강결과를 보고하지 않은 점, 정용화·조규만이 해외체류로 수업에 참석할 수 없는 날짜에도 출석을 인정받은 점을 적발하고 학점 취소와 관련 교수에 대한 경고도 요구할 예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경찰 수사결과를 검토하고 교육부 처분심의회 등을 거쳐 관련자에 대한 중징계 요구 등 구체적인 처분 수위를 확정할 것”이라며 “대학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학생 모집정지 등 행정제재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조권은 앞서 2월 28일 “2월의 마지막 날 그동안 깊게 생각하고, 다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관련된 제가 해야 할 부분은 성실히 임하였습니다”라며 “진실과 진심이 다 전하여질 순 없어도, 스스로 제 잘못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뉘우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떠한 결과든 겸허히 받아드리고,더 낮은 자세로 겸손하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심경을 전한 바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장애인에게는 선배의 조언이 한줄기 빛”

    “장애인에게는 선배의 조언이 한줄기 빛”

    “장애인에게는 장애인 선배의 조언이 한줄기 빛입니다.”‘시각장애 1급’인 류청한(47) 경기 부천 예슬아동가족상담센터 원장 4일 “어느날 갑자기 장애 판정을 받게 된다면 의사도, 그 어떤 전문가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해줄 수 없다. 그래서 장애인에겐 동료상담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류 원장은 지난달 성공회대에서 ‘장애인 동료상담 구성요소와 상호작용 연구’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활학을 공부한 류 원장은 2001년 병원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하던 중 갑자기 눈에 생긴 염증으로 시각 장애를 얻었다. 그때 그의 나이 30세였다. 류 원장은 “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장애를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장애인이 되니 ‘현실’로 받아들이게 됐다”면서 “선천적인 장애가 아니라 중도 실명을 한 터라 점자를 쓰는 게 참 어려웠다”고 했다. 류 원장은 장애를 얻기 전 작업치료사로서 많은 장애인을 만났던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 극복에 나섰다. 그는 일을 그만둔 뒤 언어치료사인 아내와 함께 아동 언어치료·놀이치료 전문 센터를 차렸다. 이어 장애아를 둔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해 ‘가족상담’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정용화 입학 위해 미리 석차 정해놔”

    “정용화 입학 위해 미리 석차 정해놔”

    대학원 부정 입학 혐의와 관련 가수 정용화(29)와 조규만(49)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일 경희대 대학원 부정 입학 사건에 연루된 정용화와 조규만, 이들의 입학을 도운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학과 학과장 이모(49) 교수 등에게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정용화의 매니저 A씨, 브로커 역할을 한 경희대 대외협력처 부처장 B씨도 같은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사업가 김모(53)씨도 부정 입학 혐의로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용화와 김씨는 2017학년도 박사과정 정시전형에 지원했지만 면접에 불참해 불합격했다. 이들은 이후 수시전형에 다시 지원했고 마찬가지로 면접을 보지 않았지만 높은 면접 점수를 받아 1, 2등으로 합격했다. 당시 면접심사위원장이었던 이 교수는 미리 석차를 정해 둔 면접평가표를 다른 면접위원들 두 명에게 건네며 결시생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도록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면접위원들은 교수 승진과 재임용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교수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 정시전형에서 면접 결시생에게 0점을 준 교수는 수시전형 면접위원에서 배제됐다. 정용화는 경찰 조사에서 교수와 개별 면접을 봐 입학 과정에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이후 면접을 보지 않은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용화는 입영 예정일을 두 달 앞둔 2016년 7월 매니저와 함께 이 교수를 만났고 8월에 대학원 진학을 사유로 입대를 연기했다. 경찰은 정용화 측이 입영 연기를 위해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지만 입증이 쉽지 않아 병역법 위반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정용화 측은 경찰 조사에서 “음악 관련 학위를 취득하려 했을 뿐”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규만도 2017학년도 석사과정 수시전형에서 B씨를 통해 입시 청탁을 한 뒤 면접을 보지 않고 합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경찰은 이 교수가 이들을 합격시켜 주는 대가로 금품 등을 받은 구체적인 정황은 확인하지 못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연임…40년 만에 한은 연임 총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연임…40년 만에 한은 연임 총재

    이주열 현 한국은행 총재의 연임이 결정됐다.문재인 대통령이 2일 이주열 총재의 연임을 결정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한국은행 총재 연임은 김성환(1970~1978년) 전 총재 이후 40년 만에 처음이다. 이주열 총재는 강원 원주 출신으로 대성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주열 총재는 1977년 한국은행에 입사해 한국은행 조사국장과 정책기획국장, 부총재 등을 역임하고 지난 2014년 총재로 임명됐다. 이주열 총재의 임기는 이달 말까지였다. 한국은행법에 따르면 한국은행 총재는 국무회의 심의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4년으로 하되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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