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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두 가지 색으로 만나볼까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두 가지 색으로 만나볼까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로 꼽히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5월 마지막 주말 수도권 주요 무대에 오른다. 성남문화재단은 2015년 개관 10주년작으로 선보였던 자체 제작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25~26일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국립오페라단 ‘라 보엠’, ‘돈 조반니’, 독일 칼스루에 극장 ‘라 트라비아타’ 등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소프라노 홍주영이 ‘비올레타’로, 유럽 주요 극장에서 활약하는 테너 정호윤이 ‘알프레도’로 무대에 올라 입을 맞춘다. 정호윤은 2015년 때도 성남 무대에 선 바 있다. 이번 공연의 지휘봉은 이병욱(43) 인천시향 예술감독이 잡는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서 지휘과 석사과정을 수석졸업한 이병욱은 현대음악 등에 강점이 있는 젊은 지휘자로 평가받는다. 올해 교향악축제 데뷔 무대에서는 협연곡과 교향곡 프로그램에서 모두 고른 호평을 받기도 했다. ‘라 트라비아타’가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라는 것은 그만큼 할 얘기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베르디 최초의 현대극으로 초연 당시 실패한 일화, 한국에서 공연된 최초의 오페라라는 사실, 막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음색을 선보여야 하는 ‘비올레타’ 배역의 특성 등 배경 지식이 많을수록 작품이 더 쉽게 다가온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선보이는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는 이 같은 해설이 곁들여진 콘서트오페라로 꾸며진다. 대중적으로 친숙한 지휘자 금난새(71)가 지휘와 해설을 맡아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오페라와 뮤지컬을 넘나들며 팬층을 확보한 소프라노 김순영과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 전속가수를 역임한 테너 김성현이 비올레타와 알프레도를 맡고,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바리톤 유동직이 맡아 이들의 사랑에 훼방을 놓는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정책 제안·예산 수립·합의 도출까지 시민의 힘으로… ‘시민특별시’

    정책 제안·예산 수립·합의 도출까지 시민의 힘으로… ‘시민특별시’

    춘천시가 전국 처음으로 주민주권시대를 열었다. 시민이 직접 나서 행정에 참여하도록 해 시정 구호도 ‘시민이 주인입니다’로 삼았다. 30년 가까이 시행하고 있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지방분권시대 실행에 나서면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이재수 시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된 ‘시민의 정부’는 시범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본격 실천되고 있다. 관련 조례도 만들고, 시민주권담당부서도 꾸렸다. 기존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직접민주주의 실천기구가 될 수 있도록 주민자치회로 바꿔 기능을 구체화했다. 주민들이 제도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정책박람회와 자치아카데미도 연중 실시한다. 시민 의견을 하나하나 존중해 들으며 시정을 펼치겠다는 취지다. 인구 30만명인 춘천시가 시작하는 ‘시민의 정부’가 어떻게 추진되는지 짚어 본다.“지방분권시대, 시민들이 직접 나서 행정을 이끄는 시대를 열겠습니다.” 이 시장이 가장 공을 들여 추진하는 게 시민주권을 곧추세우는 일이다. 도시재생과 관광·문화·교통 등 처리해야 할 업무가 쌓였지만 가장 앞세운다. ‘시민이 주인입니다’를 시정구호로 정하고 시민 주체로, 시민이 주도하는 시정으로 지방분권 직접민주주의의 변화를 이끈다. 시민이 주인인 ‘시민의 정부’를 표방하며, 시민이 직접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의사결정까지 하는 시스템을 하루빨리 정착시키겠다는 복안이다. 행정관청에서 만들어 놓은 틀에 시민 의견을 추가로 받는 게 아니라 첫 단계부터 직접 시민이 주도해 의견을 모으고 합의를 이끌어 가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춘천시 명칭을 ‘춘천시정부’로 한 것도 중앙부처를 중앙정부라 하고, 대의기관인 시의회를 지방의회라고 부르듯 자치단체 자체가 지방정부이기 때문이다. 춘천시정부는 지난 1년 가까이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변화의 시작과 끝은 시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시민이 시정운영의 중심이고 주체이고 기준이 되게 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시민이 주도하는 절차와 방식을 시정에 적극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조직개편을 통해 ‘시민주권담당관’이라는 부서를 만들었다. 1담당관 3개 담당(계)으로 조직을 꾸려, 공무원 등 9명의 직원이 시민주권 업무를 맡았다. 시민의 정부에 걸맞은 다양한 조례도 내놨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다. 지난해 시민주권 활성화를 위한 기본 조례와 마을공동체 지원 조례를 만든 데 이어 올해에는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와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를 차례로 만들었다.올 1월에는 시민주권 활성화 정책 수립과 시행에 관한 사항을 심의 조정하는 시민주권위원회 구성도 마쳤다. 시의원과 시민들로 구성된 위원 23명으로 공론화위원회, 참여위원회, 제도개선위원회 등 실무분과도 설치했다. 시민 의견이 곧바로 표출되어 공론으로 모아질 수 있도록 온라인 소통 플랫폼도 구축했다. ‘봄의 대화’라는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춘천시민이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지 손쉽게 정책 제안을 할 수 있게 했다. 제안 창구 확대를 위해 이미 국비 1억 5000만원도 확보했다. 시민들이 다양한 의제를 편하고 즐겁게 제안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아 시민의 일상이 곧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이 실제 행정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시민참여예산제를 크게 확대했다. 주민이 직접 사업을 제안하고 예산도 수립하는 춘천시형 주민참여예산제다. 일반위원 40명, 전문가위원 10명 등 50명을 모집해 운영한다. 이는 시정참여형과 마을자치형으로 나눠 운영하고 주민참여 예산학교도 운영한다. 현재 조성되어 있는 읍면동의 주민자치위원회는 마을별로 민원을 모으는 창구와 직접민주주의의 실천기구가 될 수 있도록 주민자치회로 전환시켜 운영된다. 김상희 시민주권담당관실 참여기획담당은 “주민자치회는 마을의 문제를 의논하고 해결 방안을 직접 찾아 실행하는 주민자치회 역할을 한다”며 “지난해부터 근화동, 퇴계동을 시범지역으로 정해 시행해 왔지만 올해부터 신북읍, 후평1동, 후평2동, 석사동, 강남동, 신사우동으로 확대해 실시하고, 시민들의 이해와 참여를 돕기 위해 마을자치지원센터를 두고 밀착 지원할 예정이다”고 밝혔다.시민이 지역문제에 대한 정책개발의 주체가 되는 시민주도형 정책박람회와 정책토론회도 개최한다. 지난 5월 10일, 11일에 걸쳐 처음 개최된 ‘통(通)하는 행복주권 정책박람회’는 해마다 봄, 가을 두 차례씩 열 계획이다. 정책포럼과 정책마켓, 토크콘서트, 시민발언대, 정책부스 등이 마련돼 시민들의 참여와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박람회를 통해 시민들이 만들어 가는 오픈형 정책축제로 자리잡도록 이끌 예정이다. ‘통(通)하는 행복주권 정책토론회’는 사안(의제)이 있을 때마다 수시 토론회로 열고 있다. 지금까지 6차례 열렸다. 춘천시립어린이집 운영 개선을 놓고 두 차례 열린 데 이어 남산도서관 특성화 방향 설정을 위한 토론, 정비구역 해제 기준과 절차에 대한 토론, 주민자치 활성화 방안 정책 토론, 공동주택 공동체 활성화와 공동주택 활동주민 역량강화 교육을 의제로 삼았다. 올 3월부터 시민이 정책 결정의 주체로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시민주권 교육도 연중 열고 있다. 교육은 주민자치 아카데미 등 11개 과정으로 일반시민, 시민주권위원회 위원, 마을활동가,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한다. 읍·면·동 마을별로 하는 주민자치 아카데미, 시민의 예산참여 확대를 위한 주민참여예산학교, 마을공동체 활성화 등이다. 또 복지·문화·도시재생 등 분야별 당사자 맞춤형 주권교육과정, 찾아가는 주권이해 교육과정, 주민리더 양성과정 등을 운영한다. 아울러 다양한 대상과의 소통과 시민중심의 정책설계 역량을 키우는 공무원 주권교육과정도 진행된다. 시민주권교육 활성화를 위해 시민이 교육과정을 실시간 열람하고 분야별 전문 강사가 등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시 홈페이지에 마련할 예정이다. 시민들이 주도해 갈 ‘공론회 장’도 만들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듣고 지혜를 모아 나갈 예정이다. 문화예술 분야는 물론이고 청년, 노인, 장애인 등 어느분야에서든 직접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을 공론화시킬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그만큼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시정으로 모아 실천하겠다는 의지다. 이 같은 토론과 공론의 장은 규모와 양적 확대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서로 공생하며 지속 가능한 도시로 만드는 것에 우선할 방침이다.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춘천시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쪽으로 행정을 펴고, 결국 시정의 나침반으로 삼을 계획이다. 이 시장은 “현 정부의 주요 정책 가운데 하나가 지방분권화 시대를 여는 것인 만큼 시민들이 주인 의식을 갖고 시정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참여가 필요하다”며 “그런 참여를 바탕으로 ‘나 춘천 살아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시민들을 이끌겠다”고 시민주권 시대 실천의 자심감을 보였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두가지 색으로 만나볼까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두가지 색으로 만나볼까

    25~26일 성남문화재단 자체 제작 무대로26일 국립오페라단 공연은 금난새 지휘로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로 꼽히는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가 5월 마지막 주말 수도권 주요 무대에 오른다. 성남문화재단은 2015년 개관 10주년작으로 선보였던 자체 제작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사진)를 25~26일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국립오페라단 ‘라 보엠’, ‘돈 조반니’, 독일 칼스루에 극장 ‘라 트라비아타’ 등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소프라노 홍주영이 ‘비올레타’로, 유럽 주요 극장에서 활약하는 테너 정호윤이 ‘알프레도’로 무대에 올라 입을 맞춘다. 정호윤은 2015년 때도 성남 무대에 선 바 있다. 이번 공연의 지휘봉은 이병욱(43) 인천시향 예술감독이 잡는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서 지휘과 석사과정을 수석졸업한 이병욱은 현대음악 등에 강점이 있는 젊은 지휘자로 평가받는다. 올해 교향악축제 데뷔 무대에서는 협연곡과 교향곡 프로그램에서 모두 고른 호평을 받기도 했다. ‘라 트라비아타’가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라는 것은 그만큼 할 얘기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베르디 최초의 현대극으로, 초연 당시 실패한 일화, 한국에서 공연된 최초의 오페라라는 사실, 막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음색을 선보여야 하는 ‘비올레타’ 배역의 특성 등 배경 지식이 많을수록 작품이 더 쉽게 다가온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선보이는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는 이같은 해설이 곁들어진 콘서트오페라로 꾸며진다. 대중적으로 친숙한 지휘자 금난새(71)가 지휘와 해설을 맡아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오페라와 뮤지컬을 넘나들며 팬층을 확보한 소프라노 김순영과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 전속가수를 역임한 테너 김성현이 비올레타와 알프레도를 맡고,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바리톤 유동직이 맡아 이들의 사랑에 훼방을 놓는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안현모, 라이머에 “나 닮은 애 낳으려는 건 이기적인 생각”

    안현모, 라이머에 “나 닮은 애 낳으려는 건 이기적인 생각”

    ‘동상이몽2’ 안현모 라이머 부부가 2세를 두고 의견 대립에 부딪혔다. 20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서는 오랜만에 방문한 조카들을 돌보게된 안현모와 라이머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두 사람은 조카들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라이머가 “나중에 우리도 아이 생기면 걔도 이런 것 같이 먹을 거다”고 말하자 조카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냐”고 물었다. 당황한 두 사람은 “바빠서 못 낳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2세를 두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라이머는 “휴일엔 아이들과 놀 수 있지만 평일에는 조금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들은 안현모는 라이머에 “특별한 날에만 놀아주는 건 의미가 없다. 일상 속에서 꾸준히 아이를 보고 살림도 하고 그래야한다. 그게 개인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안현모는 “요즘 딩크족이 많다. 저녁에 평온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살면 좋지 않냐. 아이를 왜 낳으려는 것이냐”고 물었다. 라이머는 “나를 닮은 아이가 있다면 귀찮게 굴어도 함께 있고 싶을 것 같다”며 “보통의 아빠처럼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가 생기면 잘 할거다. 나는 책임감이 있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안현모를 지켜보던 MC들이 이와 관련해 묻자 안현모는 “내가 육아를 위해 일을 놓을 수는 있다. 그치만 요즘 세상이 너무 흉흉하다. 나 닮은 애 보고 싶어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다”고 밝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육아 선배 소이현은 안현모의 말에 공감하며 육아 이후 경력 단절로 인한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했다. 다만 “그럼에도 환산할 수 없는 양육의 행복이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안현모는 대원외고,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국제회의통역 석사 과정을 밟은 재원이다. SBS CNBC와 SBS에서 기자 및 앵커로 활약하다가 2016년 말 퇴사한 후 프리랜서 및 통역사 겸 MC로 활동 중이다. 2017년 9월 가수 겸 음악 프로듀서 라이머와 결혼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종합] 서정희 딸 서동주, 어렵다는 변호사 시험 합격 소감

    [종합] 서정희 딸 서동주, 어렵다는 변호사 시험 합격 소감

    서동주가 미국 변호사 시험(Bar exam)에 합격했다. 서세원, 서정희 딸 서동주가 21일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로스쿨을 졸업 후 지난해 7월 변호사 자격시험을 치른 서동주는 세계적인 법률 회사인 ‘퍼킨스 코이(PERKINS COIE)’에서 인턴 생활을 마치고 정직원으로 취직해 변호사 시험을 준비해왔다. 그는 TV 조선 ‘꿈꾸는 사람들이 떠난 도시-라라랜드’를 통해 현지 로펌 생활을 공개하기도 했다. 서동주가 합격한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전역을 통틀어 변호사 시험 난이도 상위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그의 법률 전문분야는 상표등록과 저작권(Trademark & Copyright)으로 주로 대기업 사내 변호사로 진출한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끈기있게 도전하는 일이 더욱 즐거운 것 같다. 거의 마흔에도 도전하는 저를 보고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한편 서동주는 지난 2015년 합의 이혼한 서세원과 서정희의 장녀로 2018년 TV조선 ‘꿈꾸는 사람들이 떠난 도시-라라랜드’에 출연한 바 있다. 다음은 서동주 변호사 합격 소감 전문 Grit...뭐든지 두번, 안되면 세번, 그리고 또 한번. 나는 뭐든 한번에 얻은 적이 없다. 대학 입학 때도 원하는 학교를 다 떨어져서 웰슬리 대학을 갔다가 나중에 MIT로 편입을 하였다. 편입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가을 학기에 편입 원서를 냈는데 떨어져서 봄 학기에 다시 원서를 냈었다. 학교 규정상 봄 학기에는 아예 외국인 학생의 원서 자체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일단 원서를 내놓고 학교 입학 관리 본부에 찾아가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원서 내는 것만 허락해달라고 빌었다. 당시 나는 웰슬리 대학 순수미술 전공이었는데 모든 수학과 과학 과목들은 자매학교인 MIT에서 듣고 있었다. 잠도 안자고 놀지도 않고 공부만 한 덕에 모든 수업에서 A학점을 받았고 미술 전공인 내가 공대생인 MIT 학생들을 제치고 수업에서 늘 1등을 하였다. 당신들 학교 학생들보다 수학도 과학도 잘하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를 뽑아주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 학교 규정인지 한 번 더 생각해달라고 편지도 여러번 썼다. 결국 MIT는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봄학기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편입을 허락했다. 편입이 결정된 날, 입학 관리 본부에서 직접 나에게 전화를 주었다. [대니엘, 너 정말 집요하다. 붙었으니까 이제 찾아오지도 말고 편지도 쓰지마!] 이젠 좀 쉽게 가나 했건만, 졸업 후에 여러 대학원에 원서를 내었는데 또 다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나는 졸업 후 1년라는 시간동안 알고 지내던 교수님 밑에서 적은 월급을 받으며 연구에 몰두해야만 했다. 되는 일이 없어 우울한 마음을 가다듬으며 그 교수님의 적극 추천으로 다시 원서를 내었을 때는 다행히 두 세군데가 되어 그 중 마케팅 박사 과정으로 가장 좋다는 와튼 스쿨에 입학하게 되었다. 와튼 스쿨에 가서 좀 인생이 풀리려나 했는데 그 곳의 연구나 환경이 잘 맞지 않아 줄을 제대로 타지 못해 왕따처럼 1년을 눈칫밥 제대로 먹으며 고생하다 석사만 받고 졸업을 하였다. 마침 그 때 선을 본 사람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하게 되었기에 이제는 좀 순탄해지나 싶었다. 그런데 나는 후에 이혼이란 것을 하게 되어 또 한번의 큰 실패를 겪어야만 했다. 법대를 다니면서 인턴쉽을 구할때도 기본으로 60군데는 지원해야지만 겨우 손 꼽을 만큼의 회사들에서 연락이 왔다. 불합격 소식을 듣는 일이 얼마나 흔했는지 나중엔 상처조차 되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 입사한 지금의 로펌에서도 내가 직장 상사와 자서 붙었다는 이상한 소문이 도는 바람에 실력을 증명하려고 기 한번 못피고 쭈그리처럼 일만 해야했다. 하다 못해 정식으로 변호사가 되려면 통과해야하는 캘리포니아 바 시험도 처음엔 떨어져서 다시 봐야했다. 오피스에 1년차 변호사들이 총 6명인데 그 중 나와 다른 한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첫 시도에 이미 통과를 했기에 나는 몇 개월이나 눈치보며 기죽은 채로 일을 다녀야했다. 아무리 내가 하는 일의 성과가 좋아도 아직 바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기에 은근히 무시하는 눈길이 느껴졌다. 거기에 내 자격지심이 더해져 자신감이 말라붙어 매일 괴로웠다. 두번째 바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를 하는 과정도 참 힘이 들었다. 대학교 때는 머리가 슝슝 돌아가니 뭐든 한 두번만 봐도 다 외워지고 이해가 되었었는데 이제는 10번을 보고 20번을 봐도 자꾸 까먹으니 혼자 영화 메멘토라도 찍는 기분이 들었다. 농담이 아니고 그 영화 주인공처럼 온 몸에 문신을 한다 한들 기억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일 끝나고 집에와서 공부만하고 주말에도 매일 12시간 이상 공부만 하니 우울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미칠 것 같아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도 불안한 마음에 한 시간 이상 밖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간의 고군분투를 한 끝에 시험을 보러갔는데 타이머를 잘못 맞추는 바람에 남은 시간을 잘못 계산하게 되어 시험을 보다가 인생 최악의 패닉이 왔다. 심장이 뛰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 헉헉거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는 새 눈물로 두 볼이 흠뻑 젖어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 석고상처럼 뻗뻗하게 굳은 채 30분이나 되는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말았다. 내가 고생한게 몇 개월인데 이렇게 무너지나 싶었다. 시험을 끝내봤자 떨어질게 뻔한 듯 보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래도 마무리는 짓자. 질 것 같아서 포기하는 치사한 사람만은 되지 말자.] 첫 날 시험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와 세 시간동안 갓난 아이처럼 통곡하며 울었다. 정말 서러워도 서러워도 이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세 시간을 울고나니 조금은 진정이 되어 다음 날을 준비하였다. 다음 날은 그나마 패닉없이 마무리 지었지만 첫 날의 실수가 치명적이라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옥 같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기도해보니 느낌이 어때? 하나님이 이번엔 나 붙여주실 것 같아?]하고 하도 매일 물어보니 엄마가 황당해했다. [기도를 니가 해야지 엄마만 시키면 어떡하니?] [난 날라리 교인이니까 열심히 믿는 엄마가 해야 소용이 있지...] 희망고문과 절망고문을 동시에 당하는 기분으로 몇 개월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전의 날이 왔을 때엔 술을 마시고 확인을 해야하나 고민이 될 정도로 멘탈이 약해져 있었지만 그래도 맨정신으로 결과를 확인하였다. [합격!!!] 해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시험을 망쳤음에도 꾸역꾸역 마무리 짓고 나온 그 날의 내가 좋았다. 남들이 다 안될거라고 비웃을 때에도 쉽지 않은 길을 포기하지 않은 나란 사람이 꽤 마음에 들었다. 법대 선배이자 나의 멘토인 살 토레스가 늘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을 기억한다. [대니엘, 사람이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grit (그릿)이야. 그릿이 있는 사람은 뭘 해도 어딜 갖다놔도 성공하지만 그릿이 없으면 그 사람은 결국엔 실패하게 되어있단다. 난 네가 그릿을 가진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릿은 미국 심리학자인 Angela Lee Duckworth (앤젤라 리 더크워스) 교수가 개념화한 용어로서 성장 (Growth), 회복력 (Resilience), 내재적 동기 (Intrinsic Motivation), 끈기 (Tenacity)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이다. 더크워스 교수는 단순히 열정만 가지고 날뛰는 것은 성취를 끌어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열정은 끈기와 투지 또는 용기로 밑받침 되어야하고 실패한 뒤에 낙담이 되어도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회복력과 근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일에 몇년간 지속적으로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은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나만 뒤처져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지만, 오늘도 그릿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려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뭐라든 나는 그저 나의 길을 가보려 한다. 그러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와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나경원 “풍계리 폭파쇼로 한국 무장해제”…민주 “대북지원은 일석사조 효과”

    나경원 “풍계리 폭파쇼로 한국 무장해제”…민주 “대북지원은 일석사조 효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내 핵시설이 5곳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비핵화 의지가 확실하다고 했는데 (북한이) 풍계리 폭파쇼를 명분으로 대한민국의 무장해제를 추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미국은 이미 면밀히 파악한 북한 핵시설 정황을 우리 정부만 손 놓고 모르고 있었다면 사실상 비핵화를 압박할 의지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또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유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설명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미국으로부터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결렬 이유를 듣지 못했다면 그 자체로 한미 동맹의 위기이자 정권의 무책임”이라면서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알고 있었으며, 북한이 일부만 폐기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문 대통령이 직접 설명해 달라”고 촉구했다. 한국당은 이런 상황에서 대북식량지원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그동안 피력해왔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대북식량지원이 ‘일석사조’의 효과를 낼 것이라며 반박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의 대북식량지원 계획에 대해 “일석사조 효과가 있다”면서 “식량난에 처한 동포를 돕고, 관리비용을 절감하며,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인도주의적 의무를 다하고, 대화의 동력을 이어갈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조 정책위의장은 “올해 3월 기준 우리 정부의 양곡 비축 물량은 131만t에 달했다. 북한 주민에 대한 지원 여력이 충분하다”면서 보관 중인 양곡들에 대한 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보관창고에 비축 중인 양곡 관리비용이 1년 동안 1만t당 37억원이 소요돼 총 관리비용이 1년간 4800억원에 달한다”면서 “29만 5000t을 지원하면 약 1100억원이 관리비용이 절감된다”고 부연했다. 조 정책위의장은 한국당을 비롯한 대북식량지원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해 “일부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퍼주기’라 주장하는데 근거 없는 악의적인 주장”이라면서 “인도적 지원은 남북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침 정부가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방북 신청을 승인했다”면서 “남북·북미 간 신뢰증진과 대화 재개로 연결되기를 기대한다.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도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강남순의 낮꿈꾸기] 탈가족주의와 새로운 가족들의 탄생

    [강남순의 낮꿈꾸기] 탈가족주의와 새로운 가족들의 탄생

    내가 일하는 대학교의 한 교수 연구실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몇몇 지인이 입회한 가운데 치러진 결혼식이다. 동료 교수가 주례를 했고, 결혼하는 두 사람이 각자가 쓴 시를 낭독하는 것으로 결혼식은 조용하게 치러졌다. 그런데 그 조촐하고 조용한 결혼식이 이제까지 내가 평생 본 결혼식 중에서 가장 감동을 주는 결혼식이었다. 이미 15년 동안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의 요청에 의해서, 호텔도 아니고 종교 건물도 아닌 교수 연구실에서 결혼식이 이루어졌다. 한 사람은 내 학교에서 석사과정을 하고 지금은 박사과정 중에 있으면서 주중에는 주로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변호사 일을 하고, 주말에는 설교 목사로 교회에서 일한다. 70세가 넘은 변호사·목사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작가로 일해 온 사람이다. 15년 동안 두 사람이 함께 살아왔는데 결혼식을 뒤늦게 하는 이유는, 나이가 들면서 수술할 때 등 법적으로 서로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 점점 많이 생겼기 때문이란다. 그 결혼식이 내게 참으로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그들이 결혼식 내내 서로에게 보여 주었던 깊은 사랑의 몸짓들이다. 그 사랑의 몸짓은 일부러 연기할 수도, 연습할 수도 없는 고유한 내음을 풍기듯 지순한 사랑을 담아 내고 있었다. 서로를 향한 시를 써서, 그 시를 서로에게 읽어 주면서 자신들의 사랑을 표현하는 글의 언어, 말의 언어, 또한 몸의 언어들이 주는 깊은 감동은 다른 곳에서 쉽사리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말, 글, 그리고 몸이라는 이 세 가지 언어로 서로를 향한 사랑을 주고받는 장면은, 지극히 상업화하고 규격화한 통상적인 결혼식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나를 포함해 채 열 명도 안 되는 하객들 모두 그 감동적인 결혼식의 증인이 된 셈이다. 서로를 향한 지순한 사랑을 그곳에 있던 모두가 느낄 수 있었던 그 특별한 결혼식이 통상 생각하는 결혼식과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 결혼하는 두 사람의 젠더가 같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상 가족’인가 아니면 ‘비정상 가족’인가. 모든 가족이 초대된 어떤 모임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모임에서 ‘기이한’ 풍경을 보았다. 그 모임에 온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는데 아이들 4명의 인종이 모두 다른 것이었다. 미국에서 살면서 아이의 인종이 부모와 다른 경우는 종종 봐 왔지만 자녀 4명의 인종이 모두 다른 부모를 본 적은 없었기에 내심 놀라움을 금하기 어려웠다. 4명의 아이 중 흑인 아이는 한쪽 눈이 매몰돼 살로 덮여서 남은 한눈으로만 사물을 보아야 하는 장애가 있었다. 또한 그 4명 중에는 한국 아이도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하게 돼 그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됐다. 4명 중 백인 아이만이 자신이 낳은 아이이며 다른 3명의 아이는 모두 입양을 했다. 흑인 아이, 한국 아이, 그리고 갈색 피부의 히스패닉 아이를 입양한 것이다. 각기 다른 피부색을 지니고 몸의 장애까지 있는 아이를 포함한 그 4명의 아이는 참으로 밝은 표정으로 함께 음식을 먹고, 모임이 열린 공간에서 즐겁게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피가 섞이지 않았을뿐더러 피부색까지 확연하게 다른 아이들을 입양하면서 한 가정을 구성하는 가족이다. 그들 각자가 지닌 다른 피부색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한가족이라는 끈끈한 연대를 구성하고 있다. 그들이 연신 나누는 농담과 미소들, 그리고 시선들에서 그들이 한 ‘가족’이란 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정상 가족’인가 아니면 ‘비정상 가족’인가. 지인 중에 동성 결혼을 하고 아이를 입양한 가족도 있다. 한국어 ‘부모’(父母)는 나의 지인과 같은 동성애 가족에서 부모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적절하게 담고 있지 못하다. ‘아버지’(남자)와 ‘어머니’(여자)라는 이성애적 결혼 관계만을 전제로 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부모’라고 번역되는 영어 ‘패어런츠’(parents)는 한 명일 때는 단수로, 두 명일 때는 복수로 쓰면 될 뿐이다. 부모가 동성이든 이성이든, 또는 한 부모이든 두 부모이든 상관없다. 사소한 것 같은 이 단어, ‘부모’는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인 ‘정상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한부모 가정이나 동성애 가정 등을 근원적으로 배제하는 단어이다. 부친의 혈통을 물려받아야 진정한 자녀로 간주하는 부계 혈통 중심주의 그리고 이성애 중심주의적 가족주의는 다양한 모습의 가족들을 모두 비정상 가족으로 몰아내고 있다. 무자녀 가정, 동성애 가정, 한부모 가정, 트랜스젠더 가정, 부모나 아이의 피부색이 다른 다(多)인종 가족, 또는 부모가 이혼한 후 재혼해 각기 다른 부모가 있는 다부모 가정 등은 우리 주변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가정의 달이 되면 ‘가족’에 대한 낭만화는 증폭된다. 가정은 ‘안식처’라고 하는 낭만화된 이미지는 가족 간에 벌어지는 다층적 폭력 현실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낭만화된 가족 이해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않는 것이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부부 폭력의 비율은 41.5%가 된다. 이 폭력에는 신체적 폭력, 정서적 폭력, 경제적 폭력, 성학대, 방임 등 다양한 폭력이 들어가 있다. 또한 가정폭력의 70%가 남편이 아내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또한 청소년 중에 가정에서 심한 매를 맞아 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96.4%이며 아동학대의 25%를 차지하는 성적 학대의 주 희생자는 여자아이이다. 노인 학대를 경험한 사람 중 66.7%가 여성노인이다. 결국 ‘안식처’라는 전통적인 가족주의 속에서 부부간, 부모 자식 간, 노년층의 주요 희생자들은 여성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꾸준히 세계 고아수출국 상위 5위 안에 드는 이유는 바로 부계 혈통 중심주의적 가족 이해에 근거한다. ‘어쨌든’ 피가 섞여야 ‘진짜 자식’이라는 폐쇄적 가족 이해는, 정 많다고 하는 한국인들이 여전히 입양을 거부하는 주요 이유가 된다. 여전히 드라마의 단골 주제가 되곤 하는 소위 ‘출생의 비밀’은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드라마들의 단골 메뉴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어는 친족 관계에서도 다층적 문제점을 지닌다. 아버지 쪽인가 어머니 쪽인가에 따라 호칭이 달라진다. 친할머니·친할아버지·삼촌·고모는 아버지 쪽 친족이며 외할머니·외할아버지·외삼촌·이모 등은 어머니 쪽 친척이다. 이 두 종류의 친척 분류에서 여전히 우선성을 지니는 것은 “친”이라는 표지가 붙은 아버지 쪽 가족이다. ‘진짜 친척’은 아버지 쪽 가족이며 “외”가 붙은 어머니 쪽 가족은 ‘부차적 친척’이다.드라마에서 남편은 부인에게 반말을, 부인은 남편에게 존댓말을 한다. 언어 구조에 존댓말이나 반말이 없는 외국영화라도 한국어로 번역이 될 때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부부간 위계구조를 드러내면서 남편은 반말을, 부인은 존댓말을 하는 위계적 부부관계로 탈바꿈해 더빙된다. ‘어른 사람’과 ‘아이 사람’ 사이의 관계도 아이 사람의 인간됨을 존중하는 소통이 어렵다. 어른 사람은 반말, 아이 사람은 존댓말로 소통해야 하는데, 이미 그 소통 방식 자체가 위계주의적으로 설정이 돼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언어 구조는 그 사회의 가치관을 담고 있기에, 그 가치관이 배타적이 아닌 포용적인 언어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사회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5월 ‘가정의 달’에 가족관계에 대한 이러한 어두운 측면을 언급하는가. 내가 바라는 진정한 ‘가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복합화하고 보다 민주적인 평등한 가정을 향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오히려 진정한 가정을 구성하고 가꾸어 나가는 데 방해가 되고 해롭기 때문이다. 이 시대 전통적 가족주의를 넘어서서 새롭게 구성되는 가족은 첫째, 남성 중심적인 위계주의를 넘어서서 모든 가족 구성원 간의 평등이 전제되는 ‘평등주의 가족’이다. 둘째, 어른이든 아이이든 모든 가족 구성원의 의견과 생각이 존중되는 ‘민주주의 가족’이다. 셋째, 이성애 가족만이 아니라 동성애 가족, 한부모 가족, 무자녀 가족, 트랜스젠더 가족, 다부모 가족, 입양된 자녀를 둔 입양가족, 다인종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모두 ‘정상 가족’으로 간주하는 ‘포괄적 가족’이다. 이러한 새로운 가족주의의 탄생을 촉구하고 확산하는 것, 5월 가정의 달을 맞은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사회적 과제이다. 글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학자금 다 갚아주겠다” 美억만장자 통 큰 기부

    “학자금 다 갚아주겠다” 美억만장자 통 큰 기부

    졸업생 396명 대출규모 477억원 달해아프리카계 미국인 억만장자 사업가인 로버트 F 스미스(53)가 19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 모어하우스 대학 졸업식에서 축사 도중 졸업생 396명의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아 주겠다고 깜짝 선언해 화제가 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날 모어하우스 대학 졸업식 연사로 나선 스미스는 졸업생을 향해 “우리 가족은 여러분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장학금을 만들 것이다. 위대한 모어하우스인들은 오직 자신의 신념과 창의력의 한계에만 얽매여 있다”고 밝히자 행사장은 환호와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가 약속한 금액은 약 4000만 달러(약 477억 6800만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모어하우스는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졸업한 유서 깊은 흑인 대학이다. 코넬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스미스는 이 학교와 직접적 연관은 없으나 연초 150만 달러를 기부한 바 있다. 스미스는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하다 2000년 사모펀드 ‘비스타 에쿼티 파트너스’를 설립해 부를 쌓았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그의 재산 규모는 44억 달러로 추정되며 2015년에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를 제치고 흑인 최고 부호에 올랐다. 스미스는 국립 스미스소니언 재단이 2016년 문 연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 박물관 건립에 2000만 달러를 쾌척하는 등 독지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 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동영상] “졸업생 400명 학자금 빚 내가 다 갚아준다”에 눈이 휘둥그레

    [동영상] “졸업생 400명 학자금 빚 내가 다 갚아준다”에 눈이 휘둥그레

    눈동자 휘둥그레지는 것 보셨나요? 미국의 한 흑인 억만장자가 흑인 남자대학 졸업생 400명의 학자금 빚을 모두 갚아주겠다고 깜짝 발표한 순간 졸업생의 반응이다. 사모펀드 최고경영자인 로버트 프레드릭 스미스(56)는 19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모어하우스 대학에서 열린 졸업식 연사로 참석해 “우리 가족은 여러분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지원금을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그가 약속한 금액이 대략 4000만 달러(약 477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이 대학은 미국을 대표하는 흑인 남자 대학으로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 배우 새뮤얼 L 잭슨 등이 선배 졸업생이다. 스미스의 깜짝 약속에 졸업생 400명이 모인 행사장은 환호와 환성, 흥분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학생들은 “MVP”를 외치며 열광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일라이자 도머스는 9만 달러(약 1억원)의 학자금 융자를 갚아야 했다며 “할 수만 있다면 백텀블링을 하고 싶다”며 기뻐했다. 오전 6시부터 식장에 나와 있었다는 제이슨 앨런 그랜트는 스미스의 연설이 시작할 때 매우 피곤했지만, 대출금을 갚아준다는 말에 졸음이 싹 달아났다며 “우리 아버지는 (너무 좋아서) 돌아가실 뻔했다”고 말했다.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에 다니는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10년 더 일할 예정이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스미스는 학생들의 학위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며 앞으로 부와 성공, 재능을 주위에 나눠달라고 당부했다.그는 통 큰 기부를 결심한 배경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WP는 그가 연설 앞 대목에 학위 취득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하고 인상적인 성취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했다. 교육학 박사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흑인 중산층이 사는 덴버에서 자란 그는 졸업식에서 백인 학생이 대부분인 카슨 초등학교를 5년 동안 다녔던 일을 얘기했다. 그는 “선생님들은 내가 비판적 사고를 하고 모든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독려했다”며 “난 어릴 적부터 흑인이나 백인이나, 유대인이나 아시아계나 모든 어린이가 동등하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강조했다. 스미스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꺼려 알려진 바가 적지만 2000년 설립한 사모펀드 ‘비스타 에쿼티 파트너스’의 자산 규모는 460억 달러(약 54조 8000억원)에 이른다고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소프트웨어 관련 기업을 사고파는 비스타에 대한 정확한 발표 자료는 없지만, NYT는 설립 이후 연간 수익률이 20%로 미국에서 가장 성과가 좋은 사모펀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스미스는 음악에 대한 열정도 커 2016년 카네기홀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됐으며, 덴버 외곽의 리조트 ‘링컨 힐스’를 사들여 흑인 재즈 음악가들의 무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잡지 플레이보이의 전직 모델과 결혼한 그는 두 아들의 이름을 세계적인 록 기타리스트와 리듬앤블루스 가수의 이름을 따서 각각 헨드릭스와 레전드로 지었다. 그는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 박물관과 다른 문화 기관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가 졸업한 코넬 대학은 화학 및 생체분자 공학 대학의 명칭을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코넬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딴 뒤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했다.사실 고교 때 과학 연구소인 벨 랩에 인턴 직원을 자원했는데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 당하자 다섯 달 동안 매주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자신을 채용해달라고 주장한 일화가 전해진다. 그의 재산은 44억 달러(약 5조 2000억원)로 추정되며, 2015년에는 유명 흑인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를 제치고 포브스가 선정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고의 부자에 오르기도 했다. 연초에 모어하우스 대학에 150만 달러(약 17억 9000만원) 기부를 발표하기도 한 스미스는 이날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한국은 2030 성소수자만 드러나…살아갈 날 짧은 노인들 빨리 행복해지길”

    “한국은 2030 성소수자만 드러나…살아갈 날 짧은 노인들 빨리 행복해지길”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는 게 삶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해야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데,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중요할까요?”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인선(69)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동행(이하 동행)’ 설립자는 ‘호스피스의 대모’로 알려져 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처럼 독일 내 외국인들이 편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는 봉사단체 동행을 만들고 10여년간 이주민 곁을 지켰다. 그 공로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감사패를 포함해 한국과 독일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그가 이번에는 성소수자로 한국에 ‘소환’됐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독일에서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 달라”며 초청했다. 그는 “처음 강연 요청을 받았을 때는 사실 혼동이 왔다”고 했다. 독일에서 성소수자의 삶은 흥밋거리나 특별한 주제가 전혀 아닌데 한국에서는 논쟁이라고 하니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김씨는 1972년 이주 이후 47년째 독일에서 살고 있다. 34살 때 선을 봐 파독 광부와 결혼했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았다. 남편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원하던 신학 공부도 했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던 마흔의 어느 날, 교회에서 만난 현재의 파트너가 꽃 한 송이를 건넸다. 그날부터 삶은 바뀌었다. 이대로 결혼생활을 이어 갈 수 없을 것 같아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자 남편은 “신학 공부하는 여자가 여자를 알아 이혼한다”며 교회에 소문을 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삶을 찾아 이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나는 누구일까. 목사의 꿈은 이룰 수 있을까. 신학대학 교수를 찾아갔다. 교수의 대답은 반전이었다. “동성애자라서 목사가 될 수 없다고요? 당신이 당신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네요.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는데 누가 당신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당신이 누구든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선택을 존중합니다.” 용기를 얻은 김씨는 공부를 이어 가 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평생 교회의 틀 안에서 살아 온 그는 한국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독일에서는 여성 목사 커플이나 남성 목사 커플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한다. 종교청도 동성애를 인정한다”면서 “왜 동성애 혐오에 하나님을 집어넣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신학이 동성애를 금지하는 것도 아닌데, 성서를 편한 대로 활용하는 것 같다”며 “종교 지도자라면 성소수자들의 결정을 인정하고 존중해야지 비난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독일에 돌아가면 파트너와 함께 교회에서 정식으로 결혼할 계획이다. 그는 요즘 ‘30년차 성소수자 선배’로 매일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다. 스스로를 받아들인 뒤 당당해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한국 성소수자 모임에 가면 모두 20~30대뿐이어서 의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도 한국에서 50년 살았다면 나를 드러내는 게 어려웠을 것 같다”며 “한국 사회도 성소수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는 분위기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숨어 있는 노인 성소수자들에게도 세월과 함께 얻은 용기의 힘이 전파되길 바랐다. 그는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은 노인들이 하루라도 더 행복했으면 한다”며 “노인이든 청년이든 성소수자들에게 위로를 주고 삶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활동을 해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논문 공저자로 고교생 아들 올린 이병천 교수…서울대 “연구부적절”

    논문 공저자로 고교생 아들 올린 이병천 교수…서울대 “연구부적절”

    고등학생 아들을 자신이 발표한 논문의 공동저자로 올린 서울대 이병천 교수의 연구에 대해 학교 당국이 “연구부적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17일 서울대에 따르면, 이 대학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이 교수가 2012년 일본의 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 아들을 제2저자로 올린 것을 연구부적절 행위로 판정했다. 이 교수의 아들이 해당 논문 작성에 정당한 기여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앞서 교육부는 1월 교수 자녀가 참여한 논문 127건에 대해 연구윤리 위반 여부를 조사하라고 대학에 지시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이를 검증했고, 연구부적절 결론을 교육부에 보고했다. 이 교수의 아들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2013년과 2015년에도 아버지의 개 복제 관련 논문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도 알려졌다. 올해 초 이 교수의 아들은 서울대 수의과대학 석사과정에 입학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실험 중 폐사한 복제견 ‘메이’에 대한 동물보호법 위반 의혹도 받고 있다. 서울대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산하 조사위원회는 지난 9일 “동물실험계획서에 포함되지 않은 실험이 이뤄졌고, 해당 복제견 실험 반입은 동물실험윤리위원회에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울대 관계자는 “연구진실성위원회의 결론에 대한 이의제기 신청 기간이 남아 있다”며 “징계위가 열리게 된다면 여러 의혹이 함께 다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문 대통령, 법무비서관에 김영식 등 비서관급 5명 인사 단행

    문 대통령, 법무비서관에 김영식 등 비서관급 5명 인사 단행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청와대 신임 법무비서관에 김영식(52)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중소벤처비서관에 석종훈(57) 중소벤처기업부 창업벤처혁신실 실장, 농해수비서관에 박영범(54) 지역농업네트워크 협동조합 연합회 회장을 각각 임명했다. 여성가족비서관에는 홍승아(58)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운영위원을,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사퇴한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의 후임에는 권향엽(51) 더불어민주당 여성국장을 각각 발탁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이 이같은 인사를 단행했다고 발표했다. 법무비서관에 임명된 김영식 변호사는 송원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해 40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서울행정법원 판사와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지냈다. 대성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석종훈 신임 중소벤처비서관은 다음 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나무온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박영범 신임 농해수비서관은 성수고와 서울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농림축산식품부 농정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홍승아 신임 여성가족비서관은 부산 혜화여고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평등사회연구실 실장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운영위원을 지냈다. 순천여고와 부산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권향엽 신임 균형인사비서관은 이화여대에서 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같은 대학에서 정치외교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 민주아카데미실 실장과 민주당 디지털미디어국 국장을 역임했다. 이번 인선은 문 대통령 취임 3년 차에 접어든 이후 첫 청와대 비서관 인사다. 청와대는 조만간 유민영 홍보기획비서관, 서호 통일비서관, 김봉준 인사비서관, 김혜애 기후환경비서관 등에 대한 교체 인사도 순차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 대변인은 “출범 3년차를 맞아 현장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분들을 인선했다”고 설명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만든 이오 밍 페이 102세 나이로 사망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만든 이오 밍 페이 102세 나이로 사망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의 설계자로 알려진 건축가 이오 밍 페이(I.M.페이)가 세상을 떠났다. 102세.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건축가 중 한 명인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페이가 숨을 거뒀다고 그의 아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는 돌과 콘크리트, 유리, 강철 등을 이용해 추상적인 형태의 건축을 즐겨 만드는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1917년 4월 중국 광저우에서 유명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페이는 1935년 미국으로 건너가 MIT와 하버드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1948년 뉴욕의 부동산업자 윌리엄 제켄도르프에게 고용돼 빌딩 설계의 감리를 맡았다. 1954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그는 이듬해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1960년대 들어 뉴욕 킵스 베이 플라자(1963), 필라델피아 소사이어티 힐 타워(1964), 뉴욕 실버 타워(1967) 등의 설계를 맡으며 1983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를 비롯해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동관, 클리블랜드 로큰롤 명예의 전당, 홍콩 중국은행 타워 등은 지역의 랜드마크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페이는 건축에 있어 “시간의 시험에 맞서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그가 남긴 빌딩은 어느 것도 “촌스럽다”거나 “전통적이다”는 평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생전 그는 대한제국 황실과도 인연을 맺을 것으로 전해진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아들 이구는 1953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 MIT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페이의 회사에 취직했다. 이구는 이곳에서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 리를 만나 결혼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사진들] 루브르 피라미드 설계한 이오 밍 페이 타계, 대한제국과도 인연

    [사진들] 루브르 피라미드 설계한 이오 밍 페이 타계, 대한제국과도 인연

    프랑스 파리의 자랑인 루브르 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중국 출신 건축가 이오 밍 페이(貝聿銘)가 10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미국 일간 USA투데이는 16일(현지시간)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건축가 가운데 한 명인 고인이 간밤에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NYT)에 건축 비평을 기고하는 폴 골드버거가 고인 아들 리 청 페이에게 문의했고, 리 청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확인했다고 고인의 회사 공보 담당이 USA투데이에게 밝혔다. 영면한 장소와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대한제국 황실과의 인연이 눈길을 끈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아들 이구 씨가 1953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 MIT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페이의 회사에 취직한 것이다. 이구 씨가 배우자인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 리를 만나 결혼한 것도 페이의 회사에서였다. 대학 동문들은 이구 씨와 페이를 헷갈려 했고 이구 씨가 대한제국 황손이라고 말했을 때 농담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으며 처음에는 줄리아도 페이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페이는 이구 씨가 정말로 황손이란 사실을 확인하고 정말 깜짝 놀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본명보다 이니셜이 들어간 ‘I M 페이’로 더 잘 알려진 그는 1917년 중국 광저우에서 유명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1935년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와 하버드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 정부의 연구자로 활동했다. 1948년 뉴욕 부동산업자 윌리엄 제켄도르프에게 고용돼 빌딩 설계의 감리를 맡았다. 1955년 자신의 회사를 차린 페이는 1960년대 들어 뉴욕 킵스 베이 플라자, 필라델피아 소사이어티 힐 타워, 뉴욕 실버 타워 등의 설계를 맡으며 이름을 드날렸다. 1983년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도 받았다. 심사 평은 “가장 아름다운 내부 공간과 외부 형태를 금세기에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설계한 대표적인 건축물이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와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동관, 클리블랜드 로큰롤 명예의 전당, 홍콩 중국은행 타워, 미국 댈러스 시청, 일본 미호 뮤지엄 등이다. 말년에도 최고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카타르 도하의 이슬람 뮤지엄을 설계했는데 그는 특히 이슬람 건축 양식을 매우 좋아했고 아이디어의 원천으로 삼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모더니즘 최후의 건축가‘로 불리는 페이는 자신이 설계한 박물관, 호텔, 학교 등에서 ‘빛에 대한 경외’를 바탕으로 정밀한 기하학적 구조와 추상미를 보여줬다고 로이터 통신은 평가했다. 그는 생전에 “건축은 실용적인 예술이라고 믿는다. 예술이 되려면 필요성에 근거해 지어져야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만들어 일인당 10만 달러씩 나눠주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자산관리 한번에 ‘싹’ 신한…원하는 금융만 ‘쏙’ KB

    자산관리 한번에 ‘싹’ 신한…원하는 금융만 ‘쏙’ KB

    ■ 신한은행 신한은행 6개 모바일뱅킹 앱 통합… 인증서 없이 이체 ‘쏠패스’ 계열사 경계 허무는 ‘신한플러스’ 대출 신청·주식 주문 원스톱 직장인 A씨는 신한은행의 애플리케이션(앱) ‘쏠’(SOL) 하나로 간편송금과 금융자산 관리는 물론 주식거래, 포인트 사용까지 한다. 부동산 매물이나 부동산 재산세 조회도 가능하다. A씨는 “전에는 여러 가지 앱에 나뉘어 있던 기능이 하나로 통합되고 새로운 기능도 생겼다”면서 “여러 가지 금융회사의 자산을 한 번에 관리할 수 있어 간편하다”고 말했다.●고객 혼란 최소화… 은행 앱 평가 1위 신한은행은 지난해 2월 써니뱅크, 신한S뱅크, 스마트실명확인, 온라인등기, S통장지갑, 써니계산기 등 6개 모바일뱅킹 앱을 ‘신한 쏠(SOL)’로 통합했다. 이어 자산관리 앱 ‘엠폴리오’는 쏠의 ‘쏠리치 자산관리’로, 부동산 앱 쏠랜드는 ‘신한은 부동산이다’와 ‘생활금융플랫폼’ 등으로 추가했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테마를 골라 자주 쓰는 기능을 메인 화면에 배치할 수 있어 편의성을 높였다. 중장년층에게는 글자 크기가 큰 ‘시니어’ 테마가 호응이 높다. 인증 방식도 간편해지고 있다. 쏠에서 간편이체를 가입하면 공인인증서 없이 하루 100만원까지 계좌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송금할 수 있다. 쏠의 ‘쏠패스’로 인터넷뱅킹에 로그인도 된다. 앱에서 계열사 간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신한 계열사의 앱이라면 ‘신한플러스’가 탑재돼 있다. 이곳에서 여러 금융사의 계좌 이체나 대출 신청은 물론 주식 거래도 가능하다. 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의 앱에서 주식을 주문하든 신한플러스에서 주식을 주문하든 체결 속도는 같다. 조영서 신한금융지주 디지털전략팀 본부장은 “고객들은 모바일에서 극단적인 심플함과 편의성을 원한다”면서 “은행 앱이 여러 개일 때는 고객들이 혼란을 느꼈지만 이용 속도를 유지하면서 앱을 통합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국갤럽과 자체적으로 진행한 앱 경쟁력 평가에서 “시중은행 1위는 쏠, 카드사 1위는 신한카드였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말 기준 쏠의 가입자는 888만명이다. 신한플러스는 1050만명, 카드사 중심의 ‘페이판(FAN)’은 1072만명이 가입했다. 신한금융은 69개 업체와 제휴를 맺고 생활에 밀착한 금융플랫폼으로 외연도 넓히고 있다. 부동산정보유통업체인 한국거래소시스템즈(KMS)의 매물 정보를 받아 쏠에서 부동산 매매와 대출 신청이 가능하다. 주소만으로 주택의 공시지가와 예상 재산세도 계산할 수 있다. 조 본부장은 “상품을 검색하다가 대출 등 금융으로 넘어갈 수 있듯이 금융 플랫폼에서도 상품까지 제공하는 것이 고객 중심적인 금융”이라면서 “다양한 데이터를 가진 회사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핀테크 투자·스타트업과 협업 활발 디지털 혁신을 위해 핀테크 스타트업과의 협업도 활발하다. 직접 투자와 투자자 연결은 물론 신한금융의 서비스에도 핀테크 기술을 접목했다. 신한금융의 핀테크 지원 프로그램인 ‘신한퓨처스랩’에서 발굴한 블로코와 그룹 통합인증서비스를 개발했고 빅밸류와 연립·다세대주택 시세 산정 시스템을 개발했다. 2015년 베트남에 퓨처스랩을 세운 데 이어 올해 인도네시아, 2020~2021년 인도와 일본에도 설립할 예정이다. 신한금융은 디지털 인재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 지난 1월 자회사 신한AI의 법인등록을 마쳤다. 자회사로 만들어 업계 최고 대우와 자유로운 연구개발 분위기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신한은행은 디지털·정보통신기술(ICT) 채용을 수시 채용으로 바꿨다. 고려대에 디지털금융공학 석사 과정을 개설하는 등 산학협력도 진행 중이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KB국민은행 국민은행 앱별 기능 특화… 메뉴 찾기 쉽고 사용방법 단순 강점 송금 ‘리브’·부동산 ‘리브온’·멤버십 ‘리브 메이트’·AI ‘리브 똑똑’ 직장인 B씨는 소액을 송금하거나 환전을 할 때면 KB국민은행의 애플리케이션(앱) ‘리브’를 쓰고, 펀드 등 금융상품에 가입하거나 공과금을 낼 때는 앱 ‘KB스타뱅킹’을 연다. 입출금 알림은 ‘KB스타알림’으로 받는다. B씨는 “간단한 거래를 하는 앱과 복잡한 금융 거래 기능까지 포함된 앱이 나뉘어 있어 그때그때 선택한다”면서 “앱별로 기능을 나누다 보니 메뉴도 덜 복잡해 부모님께 설명하기도 쉽다”고 전했다.●KB스타뱅킹 월간 실사용자 1000만명 1위 KB국민은행은 기능별로 은행 앱을 나눠 고객이 필요에 따라 고를 수 있게 했다. 소액결제나 송금은 ‘리브’를, 부동산 정보를 원하면 ‘KB부동산 리브온’을 이용하면 된다. 멤버십의 포인트는 KB카드가 운영하는 ‘리브 메이트’를 쓰는 식이다. ‘리브 똑똑(Talk Talk)’은 인공지능(AI) 금융비서 역할을 맡고, 중고차 거래는 ‘KB차차차’에서 가능하다. 작은 화면 안에 은행 지점의 여러 기능을 담으면 직원들도 헤맬 경우가 있지만 KB국민은행은 앱을 특징별로 나눴기 때문에 원하는 메뉴를 찾기가 편한 편이다. 개인고객층이 넓고 탄탄한 KB국민은행이 다양한 고객층의 수요를 맞추기 위한 전략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KB국민은행의 개인고객은 3130만명으로 시중은행 중 가장 많다. 이 중 60대 이상이 20%(620만명)다. KB스타뱅킹은 은행 앱 가운데 유일하게 월간 실사용자(MAU)가 1000만명이 넘는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 7개 언어를 설정할 수도 있다. 박형주 KB금융지주 디지털전략부장은 “편의점에 갈 때 차려입지 않듯 리브가 편의점이라면 KB스타뱅킹은 백화점”이라면서 “하나로 통합하면 무거운 앱을 수시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휴대전화의 배터리 소모가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부장은 “과거 은행 지점에서 고객 휴대전화에 3~4가지 앱을 한 번에 설치해서 불만이 나왔다”면서 “점포를 평가하는 핵심성과지수(KPI)에서 앱 관련 지수를 빼 고객이 원하는 앱을 택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KB이노베이션 허브로 핀테크 스타트업 지원 KB금융그룹의 앱이 다른 핀테크(금융+기술) 업체의 앱과 차별화된 지점은 신뢰감이다. 박 부장은 “핀테크 서비스 가입자가 늘어도 자산관리는 전문성을 고려해 금융회사를 찾는다”면서 “리브똑똑에서 금융 거래 관련 대화를 나누지만 대화 내용은 암호화해 해외 서버에 보관한다”고 밝혔다. KB스타뱅킹은 착오 송금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미리 등록한 계좌에 한해서 100만원 이상 간편이체를 열어뒀다. 핀테크 스타트업이나 정보기술(IT) 기업의 장점을 받아들이기 위한 협력도 활발하다. 2015년 시작된 지원 프로그램 ‘KB이노베이션 허브’는 지원 기간이나 기업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협업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플라이하이와 제휴해 KB손해보험 등 계열사의 인증 절차를 간소화했고 코인플러그와는 블록체인 기반 인증서를 만들었다.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 ‘클레온’을 도입해 스타트업도 KB금융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활용해 안전하게 앱을 만들 수 있게 했다. ‘페이코 플레이스’ 등과 손잡고 생활서비스 콘텐츠도 확대할 계획이다. LG그룹과는 냉장고나 세탁기 등 가전에서 결제 기능을 연구 중이다. KB금융은 오는 9월쯤 알뜰폰 사업도 시작한다. 기존 알뜰폰은 오프라인센터가 없고 상담센터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KB금융은 은행 점포를 활용할 수 있다. 적금 등 금융상품과 결합해 가격을 낮춘 요금제도 구상 중이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자산관리 한번에 ‘싹’ 신한… 원하는 금융만 ‘쏙’ KB

    자산관리 한번에 ‘싹’ 신한… 원하는 금융만 ‘쏙’ KB

    ■ 신한은행 직장인 A씨는 신한은행의 애플리케이션(앱) ‘쏠’(SOL) 하나로 간편송금과 금융자산 관리는 물론 주식거래, 포인트 사용까지 한다. 부동산 매물이나 부동산 재산세 조회도 가능하다. A씨는 “전에는 여러 가지 앱에 나뉘어 있던 기능이 하나로 통합되고 새로운 기능도 생겼다”면서 “여러 가지 금융회사의 자산을 한 번에 관리할 수 있어 간편하다”고 말했다.●고객 혼란 최소화… 은행 앱 평가 1위 신한은행은 지난해 2월 써니뱅크, 신한S뱅크, 스마트실명확인, 온라인등기, S통장지갑, 써니계산기 등 6개 모바일뱅킹 앱을 ‘신한 쏠(SOL)’로 통합했다. 이어 자산관리 앱 ‘엠폴리오’는 쏠의 ‘쏠리치 자산관리’로, 부동산 앱 쏠랜드는 ‘신한은 부동산이다’와 ‘생활금융플랫폼’ 등으로 추가했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테마를 골라 자주 쓰는 기능을 메인 화면에 배치할 수 있어 편의성을 높였다. 중장년층에게는 글자 크기가 큰 ‘시니어’ 테마가 호응이 높다. 인증 방식도 간편해지고 있다. 쏠에서 간편이체를 가입하면 공인인증서 없이 하루 100만원까지 계좌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송금할 수 있다. 쏠의 ‘쏠패스’로 인터넷뱅킹에 로그인도 된다. 앱에서 계열사 간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신한 계열사의 앱이라면 ‘신한플러스’가 탑재돼 있다. 이곳에서 여러 금융사의 계좌 이체나 대출 신청은 물론 주식 거래도 가능하다. 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의 앱에서 주식을 주문하든 신한플러스에서 주식을 주문하든 체결 속도는 같다. 조영서 신한금융지주 디지털전략팀 본부장은 “고객들은 모바일에서 극단적인 심플함과 편의성을 원한다”면서 “은행 앱이 여러 개일 때는 고객들이 혼란을 느꼈지만 이용 속도를 유지하면서 앱을 통합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국갤럽과 자체적으로 진행한 앱 경쟁력 평가에서 “시중은행 1위는 쏠, 카드사 1위는 신한카드였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말 기준 쏠의 가입자는 888만명이다. 신한플러스는 1050만명, 카드사 중심의 ‘페이판(FAN)’은 1072만명이 가입했다. 신한금융은 69개 업체와 제휴를 맺고 생활에 밀착한 금융플랫폼으로 외연도 넓히고 있다. 부동산정보유통업체인 한국거래소시스템즈(KMS)의 매물 정보를 받아 쏠에서 부동산 매매와 대출 신청이 가능하다. 주소만으로 주택의 공시지가와 예상 재산세도 계산할 수 있다. 조 본부장은 “상품을 검색하다가 대출 등 금융으로 넘어갈 수 있듯이 금융 플랫폼에서도 상품까지 제공하는 것이 고객 중심적인 금융”이라면서 “다양한 데이터를 가진 회사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핀테크 투자·스타트업과 협업 활발 디지털 혁신을 위해 핀테크 스타트업과의 협업도 활발하다. 직접 투자와 투자자 연결은 물론 신한금융의 서비스에도 핀테크 기술을 접목했다. 신한금융의 핀테크 지원 프로그램인 ‘신한퓨처스랩’에서 발굴한 블로코와 그룹 통합인증서비스를 개발했고 빅밸류와 연립·다세대주택 시세 산정 시스템을 개발했다. 2015년 베트남에 퓨처스랩을 세운 데 이어 올해 인도네시아, 2020~2021년 인도와 일본에도 설립할 예정이다. 신한금융은 디지털 인재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 지난 1월 자회사 신한AI의 법인등록을 마쳤다. 자회사로 만들어 업계 최고 대우와 자유로운 연구개발 분위기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신한은행은 디지털·정보통신기술(ICT) 채용을 수시 채용으로 바꿨다. 고려대에 디지털금융공학 석사 과정을 개설하는 등 산학협력도 진행 중이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KB국민은행 직장인 B씨는 소액을 송금하거나 환전을 할 때면 KB국민은행의 애플리케이션(앱) ‘리브’를 쓰고, 펀드 등 금융상품에 가입하거나 공과금을 낼 때는 앱 ‘KB스타뱅킹’을 연다. 입출금 알림은 ‘KB스타알림’으로 받는다. B씨는 “간단한 거래를 하는 앱과 복잡한 금융 거래 기능까지 포함된 앱이 나뉘어 있어 그때그때 선택한다”면서 “앱별로 기능을 나누다 보니 메뉴도 덜 복잡해 부모님께 설명하기도 쉽다”고 전했다. ●KB스타뱅킹 월간 실사용자 1000만명 1위 KB국민은행은 기능별로 은행 앱을 나눠 고객이 필요에 따라 고를 수 있게 했다. 소액결제나 송금은 ‘리브’를, 부동산 정보를 원하면 ‘KB부동산 리브온’을 이용하면 된다. 멤버십의 포인트는 KB카드가 운영하는 ‘리브 메이트’를 쓰는 식이다. ‘리브 똑똑(Talk Talk)’은 인공지능(AI) 금융비서 역할을 맡고, 중고차 거래는 ‘KB차차차’에서 가능하다.작은 화면 안에 은행 지점의 여러 기능을 담으면 직원들도 헤맬 경우가 있지만 KB국민은행은 앱을 특징별로 나눴기 때문에 원하는 메뉴를 찾기가 편한 편이다. 개인고객층이 넓고 탄탄한 KB국민은행이 다양한 고객층의 수요를 맞추기 위한 전략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KB국민은행의 개인고객은 3130만명으로 시중은행 중 가장 많다. 이 중 60대 이상이 20%(620만명)다. KB스타뱅킹은 은행 앱 가운데 유일하게 월간 실사용자(MAU)가 1000만명이 넘는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 7개 언어를 설정할 수도 있다. 박형주 KB금융지주 디지털전략부장은 “편의점에 갈 때 차려입지 않듯 리브가 편의점이라면 KB스타뱅킹은 백화점”이라면서 “하나로 통합하면 무거운 앱을 수시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휴대전화의 배터리 소모가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부장은 “과거 은행 지점에서 고객 휴대전화에 3~4가지 앱을 한 번에 설치해서 불만이 나왔다”면서 “점포를 평가하는 핵심성과지수(KPI)에서 앱 관련 지수를 빼 고객이 원하는 앱을 택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KB이노베이션 허브로 핀테크 스타트업 지원 KB금융그룹의 앱이 다른 핀테크(금융+기술) 업체의 앱과 차별화된 지점은 신뢰감이다. 박 부장은 “핀테크 서비스 가입자가 늘어도 자산관리는 전문성을 고려해 금융회사를 찾는다”면서 “리브똑똑에서 금융 거래 관련 대화를 나누지만 대화 내용은 암호화해 해외 서버에 보관한다”고 밝혔다. KB스타뱅킹은 착오 송금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미리 등록한 계좌에 한해서 100만원 이상 간편이체를 열어뒀다. 핀테크 스타트업이나 정보기술(IT) 기업의 장점을 받아들이기 위한 협력도 활발하다. 2015년 시작된 지원 프로그램 ‘KB이노베이션 허브’는 지원 기간이나 기업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협업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플라이하이와 제휴해 KB손해보험 등 계열사의 인증 절차를 간소화했고 코인플러그와는 블록체인 기반 인증서를 만들었다.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 ‘클레온’을 도입해 스타트업도 KB금융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활용해 안전하게 앱을 만들 수 있게 했다. ‘페이코 플레이스’ 등과 손잡고 생활서비스 콘텐츠도 확대할 계획이다. LG그룹과는 냉장고나 세탁기 등 가전에서 결제 기능을 연구 중이다. KB금융은 오는 9월쯤 알뜰폰 사업도 시작한다. 기존 알뜰폰은 오프라인센터가 없고 상담센터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KB금융은 은행 점포를 활용할 수 있다. 적금 등 금융상품과 결합해 가격을 낮춘 요금제도 구상 중이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3000여개 봉제공장, 그 골목길엔 과거·현재가 살아 숨쉬다

    3000여개 봉제공장, 그 골목길엔 과거·현재가 살아 숨쉬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회 창신동의 재발견’ 편이 지난 11일 창신 1·2·3동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동대문역 7번 출구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생활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한울타리의 삶’ 한울삶에서 투어를 시작했다.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창신동 봉제거리 박물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 뒤 이움피움 봉제역사관에서 ‘봉제의 모든 것’을 관람했다. 가수 김광석이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살았던 집에는 부친 김수영씨의 국가유공자 명패와 김광석의 창신동 시절을 기리는 바닥 동판이 붙어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 ‘요화’ 배정자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비석이 남아 있는 대한불교 원효종 총본산 안양암~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1956년에 지어진 석조 고딕양식의 전형 동신교회~순댓국집으로 변한 화가 박수근의 화실 겸 집터~한때 ‘연예인아파트’로 주가를 올렸던 동대문아파트를 2시간 30분 동안 돌았다. 어린 시절을 창신동에서 보낸 고교 역사교사 출신 엄태호 해설사가 창신동 설화를 깊고 차분하게 들려줬다.동대문이 곧 창신동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대문은 동대문 안쪽 마을이 아니라 동대문 밖 마을을 일컫는다. 길 이름도 동대문 안은 종로고, 문밖은 왕산로다. 조선시대 동대문 밖은 길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서울에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와 새문안(서대문)에서 동대문까지 이어지는 운종가(종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종로의 시전, 서소문 밖 칠패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인 배오개(이현)시장과 이 전통을 이은 광장시장도 성 안에 있었다. 현재의 동대문시장은 동대문 바깥 창신동을 주 무대로 한 신흥 시장이다. 본래 동대문 밖 10리(성저십리)는 서울을 지키는 훈련도감 소속 하급 군인과 가족의 거주지였기에 이들이 재배하는 야채류가 상거래의 중심 물품이었다. 1905년 설립된 광장시장이 최고의 포목상가로 발돋움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창신동 지역의 공간과 취급품목의 변화를 가져왔다.창신동은 도성의 동쪽에서 도성 안으로 진입하는 문밖 동네였다. 성저(城底)란 성 밖 10리에 이르는 지역이지만 경기도가 아니라 서울의 행정구역 안에 포함되는 특수한 행정구역을 이른다. 서울의 좌청룡(左靑龍) 낙산을 따라 형성된 유서 깊은 동네다. 도성~강원도~함경도를 오가는 길목이어서 고려시대 서울이 남경(南京)일 때부터 번성했다. 창신동은 조선시대 인창방의 ‘창’자와 숭신방의 ‘신’자를 따 1914년 일제강점기 때 급조된 지명이다. 이웃 숭인동 또한 숭신방의 ‘숭’자와 인창방의 ‘인’자를 따서 만들었다. 창신동은 인창방이고, 숭인동은 숭신방인데 교묘하게 순서만 바꿔치기했을 뿐이다. 민족정기를 훼손시키려고 장난질을 했지만 지명의 원상회복은 요원하다. 행정구역상 동대문구 창신동이었다가 1975년 종로구에 편입됐다. 낙산 아래에는 종로구 이화동과 동숭동, 성북구 보문동과 삼선동, 동대문구 신설동 등 3개 구청 관할지역이 맞물려 있다.창신동은 예로부터 ‘돌산’ 낙산의 기운과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려 찾아든 권세가의 별서가 들어선 한가로운 지역이었다. 창신초등학교 남쪽 창신1동 82번지쯤에는 동지(東池)라고 불린 사대문 밖 4개 연못 중 하나가 있어서 정자동이라고 불렸다. 사색붕당이 각축하던 시절 동지의 연꽃이 많이 피면 동인이 득세하고, 천연동 서지 연꽃이 많이 피면 서인이 득세한다고 해 양당이 서로 연꽃을 뭉개거나 연못을 메우던 시절도 있었다. 창신1동 128 창신초등학교는 불교계가 도심포교를 위해 지은 원흥사의 옛 터다. 조계사로 옮겨가기 전까지 조선불교의 총본산이었다. 지하철 6호선 창신역 부근에 있던 청룡정은 한량들의 활터였다. 창신동 202번지에는 실학자 이수광이 ‘비를 피하면서 청렴하게 살고자’한 비우당이 있다. 창신3동 7번지에는 단종비 정순왕후의 일화가 깃든 자지동천 우물이 있어서 이웃 숭인동의 동망봉, 정업사지, 여인시장과 어울려 순애보를 이루고 있다. 창신2동 옛 궁골 어림은 봉숭아와 앵두 등 붉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많아서 홍숫골 또는 홍수동(紅樹洞)이라고 불렸다.낙산 전체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여서 무속신앙의 대상이 됐다. 창신3동 서일국제경영고등학교 근방 당고개(당현) 바로 위 큰 바위에는 마을의 수호신 낙산신령을 모시는 도당(都堂)이 있었다. 조선 말 점술가 200여호가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나 총독부건물 신축용 돌을 떼어가는 바람에 미아리고개로 옮겨 갔다고 한다. 창신동은 2개 사립대학교와 최초의 민간 여학교 창립의 터이기도 했다. 창신초등학교가 있는 원흥사지에는 동국대의 전신 명진학교가 처음 자리잡았고, 1932년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한 중앙대 설립자 임영신이 창신동에서 학교를 키웠다. 이후 1938년 흑석동에 교사를 신축해 중앙대로 발전시켰다. 창신1동 225번지 현재의 종로구민회관 일대는 1933년 설립된 최초의 민간 설립 여학교 동덕여중고가 방배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교사였다. 1898년 개설된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 간 전차가 창신동을 지나가면서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이 틈입했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 귀국동포, 사대문 안 철거민까지 몰리면서 도심 인접 달동네로 변모했다. 일제강점기 성벽 아래 토막촌이 해방 이후 판잣집과 도시형 한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1916년부터 8년 동안 낙산 돌산에서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서울시청) 신축용 석재 채취가 본격화되면서 창신동은 피폐해졌다. 채석장 낙석사고가 빈번했고, 강도와 살인 사건은 물론 화재가 자주 발생해 치안위험지대의 오명을 뒤집어썼다.어쩌다가 창신동에 ‘봉제 DNA’가 깃들게 됐을까. 1958년부터 청계천 상류가 복개되면서 1961년 평화시장이 설립된 게 결정타였다. 동대문의류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주거지대화한 것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평화시장 일대 의류생산 공장들이 대거 창신동으로 이전하면서 동대문 의류산업의 배후지대가 형성됐다. 공장과 주거지, 소비시장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특이한 공간이 자리잡은 것이다. 무허가 판잣집이 도시형 한옥으로 바뀌고, 채석장 자리에 창신시영아파트 3동이 세워졌다. 1964년부터 1969년 사이에 동대문스케이트장과 동대문아파트, 동대문상가아파트, 낙산시민아파트가 차례로 건립되면서 면모를 일신했다. 1971년 동대문종합시장, 동화시장이 설립되고 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봉제노동력이 주거지로 쏟아지고, 주거지 내 봉제공장이 확산됐으며 창신동에 봉제인력시장이 생긴 것도 역할을 했다. 이처럼 창신동은 1960~70년대 서울의 도시산업화 과정에서 봉제공장 지대화했다. 동양 최대 규모의 패션산업이 동대문 일대에 불야성을 이루고 있지만 배후지대인 창신동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동대문을 밝히는 보석은 골목골목에 숨어 있다. 동대문시장의 원단이 오토바이에 실려 창신동에 도착하면 옷의 본을 만드는 패턴작업장에서 재단·재봉을 거쳐 안감·주머니·단추를 다는 ‘마도메’, 다림질·포장 등 완성과정의 ‘시아게’를 마치면 옷이 완성된다. 3000여개의 작은 공장들이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인 양 움직인다. 의류의 기획과 생산, 유통과 판매가 원스톱으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최신 유행의 옷 한 벌이 하루 안에 뚝딱 탄생하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이다. 완제품은 오토바이를 타고 의류쇼핑의 메카 동대문시장으로 옮겨져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이 옷에는 ‘메이드 인 창신동’이라는 상표가 붙어 있지 않다. 우리는 이 옷의 고향이 창신동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필립모리스, 내과전문의 김대영 박사 과학 총괄 임원 영입

    한국필립모리스는 과학 총괄 임원(상무)으로 혈액종양내과 전문의 김대영 박사를 영입했다고 15일 밝혔다. 김 상무는 서울의대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내과학 석사, 울산대 대학원에서 내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병원 레지던트를 거쳐 서울아산병원 혈액 내과 부교수, 울산대 의과대학 의학과 부교수로 재직하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셰이크 칼리파 전문병원 최고 의학 부책임자로 근무했다. 한국필립모리스는 “김 상무는 백혈병·혈액종양내과 전문의로 다수의 관련 논문을 저명한 학술지에 싣는 등 최근까지도 연구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며 “과학 총괄 임원 선임을 계기로 과학적 이해도와 지식수준을 끌어올리고, 마케팅에서도 과학에 토대를 둔 메시지의 전문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 [글로벌 In&Out] 1946년 김일성의 소련 첫 방문/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1946년 김일성의 소련 첫 방문/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지난 4월 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러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러시아 매체는 김 위원장 재선 후 첫 방문 국가로 러시아를 선택했다고 강조하면서 그의 방문을 높이 평가했다. 정상회담은 일대일 회담 2시간을 포함해 무려 3시간 30분 정도 진행됐다. 공식 문서 서명식은 없었지만 북러 지도부 간에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 초대 지도자 김일성의 첫 소련 방문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김일성의 첫 소련 방문은 1946년 6월 말~7월 초로 알려져 있다. 1945년 8월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와 북한에 주둔한 일본군을 격파했다. 북한 점령을 맡은 소련군 사령부는 북한 각지에 위수사령부를 설치했으며 평양시 위수사령관 부책임자로 김일성을 임명했다. 김일성은 북한에 도착하자 정치적 활동을 전개했으며 1945년 10월에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책임비서로 선출됐다. 1946년 초 모스크바 결정에 대해 결사반대를 표시한 조만식이 인민위원회의 위원장에서 축출당한 후 김일성은 1946년 2월에 새로 조직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선출됐으며 사실상 북한의 지도자가 됐다. 1946년 6월 말 조선 대표단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 내각수상을 만났다. 소련의 문서보관소가 개방됐지만 이 회담 관련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그 회담이 실제했고 참가자 중에 김일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밝혀 주는 자료가 있다. 3년 후인 1949년 김일성과 박헌영이 모스크바를 재방문해 스탈린을 만났을 때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루어졌다. 스탈린: 지난번에 (북한서) 모스크바에 두 명이 왔는데 (박헌영을 향해) 당신이 그중 한 명인가? 박헌영: 그렇다. 스탈린: 김일성과 박헌영 둘 다 살쪄서 이제는 알아보기가 어렵다.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이렇게 확인된다. 하지만 1946년 스탈린과의 회담내용을 밝혀 주는 신뢰도가 높은 문서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면서 많은 관계자가 사료 가치가 비교적 낮은 회고록과 인터뷰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 주재 소련 총영사관에서 근무했던 파냐 샤브시나가 1992년에 쓴 ‘식민지 조선에서’라는 회고록에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 ‘1946년 7월 쉬띄꼬프가 남편을 갑자기 평양으로 호출했다. 그는 북한 지도자들과 함께 스딸린을 만나기 위해 평양에서 모스크바로 왔다. (중략) 대담은 많은 것에 대해 진행되었다. 가까운 미래와 앞으로의 과제에 관해, 모든 공장들을 북한에 인민들의 재산으로 남겨두겠다고 공고한 것이 합목적적인가, 남한에서는 이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였다. 스딸린은 병합 전에 조선이 어떻게 불렸는가, 인민들은 또다시 그들에게 왕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가 하는 등등으로 물었다. 조선인들은 공화국은 원한다고 조선인 동지들이 대답했다. (중략) 스딸린에 의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공산당이 사회민주당이나 또는 노동당이라고 자신을 공개할 수는 없는가, 그리고 당 앞에 가까운 장래의 과제를 세울 수는 없는가. 그런 문제의 논의를 준비하지 않았던 듯싶은 북한 지도자들이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것이 가능하긴 하나 인민들과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자 스딸린은 이렇게 내뱉었다. “인민이 뭐야, 인민은 농사를 짓고 결정은 우리가 하는 것이지.”’ 물론 예전의 소련과 오늘의 러시아가 북한에 미치는 영향력에 큰 차이가 있지만, 김정은의 방러에서 러시아가 북한 지도부에 여전히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점은 확인된 것 같다.
  • 베니스에 초대받은 최비오, 세계인들에 한국미술 뽐내

    베니스에 초대받은 최비오, 세계인들에 한국미술 뽐내

    2년에 한번씩 열리는 세계최고의 국제미술전시회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전에 초대된 최비오(Vio Choe)작가의 전시가 지난 11일 시작했다.개막 첫날부터 지구촌 최고 미술축제답게 수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이는 이곳은 ‘퍼스널스트럭처(Personal Structure)’라고 명명한 특별전이 열리는 전시장 팔라조 벰보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100년 이상 역사를 자랑하는데 여기에는 쟈르디니 중앙관, 아르세날, 특별전 등으로 구분되며 올해 여기 특별전 전시장인 팔라조 벰보 에는 한국의 서양화가 최비오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등장한 최비오 작가의 작품을 본 관람객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미술 회화작품으로 이런 감흥과 느낌을 느끼기는 처음”이라는 칭찬과 “평생 그림을 봐 왔으나 이런 스타일의 그림은 처음 경험한다”같은 감동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베니스 현장의 뜨거운 반응과 관심 덕분인지 최비오의 전시관은 개막 첫날부터 수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이고 있는데 이 모습은 한국미술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떨치는 것이며 동시에 같은 한국인에게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최비오(Vio Choe) 작가가 참가하는 특별전인 ‘Personal Structure’전은 비엔날레 측이 공인하는 전시로 네덜란드 비영리재단인 글로벌 아트페어재단(GAAF)과 유럽피안 컬쳐센터(European Cultural Centre)의 주관아래 전세계의 유망 작가들을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정하며, 이곳에서 지금까지 회화부분으로 특별전에 참여한 한국 작가는 이우환 등 3명 정도이다. 자신만의 체계적인 우주관을 구축하고 있는 최비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인간과 우주의 연결성을 주제로 하는 “Universe in my mind”, “Super String” 그리고 “Blue note of creator”라는 타이틀을 가진 회화작품 3점을 전시하고있다. 한국에서 공대를 졸업하고 1993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서 대학원 석사과정(MFA)을 취득한 이후 뉴욕 맨하튼에서 수년간 활동하였는데 이때 그는 다수의 미디어 회사와 아트분야에서 활약하며 자신만의 세계관 및 독특한 조형언어를 발전시켰다. 그는 자신의 작가노트를 통해 “언어는 우리의 생각을 3차원적 시간의 공간 안에서 생각하도록 제한한다. 나는 언어로 생각하기 이전에 원천적으로 내 안에 내재되어있는 잠재의식을 통해 나를 표현하기에 내 그림을 언어나 말로 설명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 이유는 보는 이들마다 전부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라고 밝히고 있다 세계에서 50만명 이상 관람이 예상되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특별관 전시에 초대된 최비오 작가의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는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아르눌프 라이너(Arnulf Rainer), 로렌스 와이너(Lawrence Weiner) 등 현대미술의 거장들도 이곳 특별전에 초대 되에서 전시해 세계적인 작가로 활동하는 발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5월 11일부터 11월 24일까지 6개월 동안 베니스의 명소인 리알토 다리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15세기 베니스의 명문귀족인 벰보 가문에 의해 지어진 팔라조벰보( Palazzo Bembo) 전시장에서 전시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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