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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신임 정무부시장에 김우영 전 은평구청장 내정

    서울시 신임 정무부시장에 김우영 전 은평구청장 내정

    서울시는 신임 정무부시장에 김우영(51)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략기획위원을 내정했다고 19일 밝혔다. 강릉고와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김 내정자는 2018년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미래전략대학원 경영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0∼2018년에는 민선 5·6기 은평구청장을 역임했다. 2018년 8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대통령 시민사회수석비서관실 제도개혁비서관,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실 자치발전비서관 등을 지냈다. 문미란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임명 6개월여만에 교체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김 내정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신을 가지고 업무를 추진하며 판단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대내외 소통업무와 당·정·청은 물론 시민사회와도 원만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인사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서울시는 또 신임 정무수석으로 최택용(52)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민소통특별위원을 내정했다. 최 내정자는 2018년 제7대 지방선거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지역상생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았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는 부산 기장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회·청와대 등 다양한 분야에 풍부한 정치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중량급 인사를 정무부시장과 정무수석으로 영입한 것은 민선7기 후반을 맞아 대정부, 대국회, 대시의회 이견조율과 민생 현장중심의 생활 시정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내정자와 최 내정자는 신원조사 등 절차를 거쳐 7월 초에 임용될 예정이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가장 오래된 부석사 조사당 벽화, 더 오래 볼 수 있게

    가장 오래된 부석사 조사당 벽화, 더 오래 볼 수 있게

    고려 제작 추정… 일제강점기 해체·분리 균열 보강했지만 표면 오염 등 손상 심각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벽화인 경북 영주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국보 제46호)에 대한 보존처리가 시작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8일 해동 화엄종의 창시자인 의상대상(625~702) 초상을 모신 부석사 조사당(국보 제19호) 안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 6점을 이날 대전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겼다고 밝혔다. 조사당 벽화는 지난해 실시한 국가지정문화재 정기조사에서 보존처리 필요성이 제기됐고, 지난 3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전면 보존처리가 결정됐다. 작업은 2026년까지 진행된다. 목재 골조 위에 흙벽을 만들어 다양한 안료로 채색한 벽화는 조사당이 건립될 당시인 1377년(고려 우왕 3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帝釋天)과 불법을 지키는 사천왕(四天王), 부처님을 모시는 수호신 범천(梵天)이 그려져 고려 시대 대표적인 벽화로 평가받는다. 벽화는 일제강점기인 1916~1918년 조사당에서 해체·분리됐다. 여섯 개 폭이 각각 벽체 뒷면 일부가 제거되고 석고로 보강돼 나무보호틀에 담겼다. 1926년 10월 6일 동아일보에는 ‘쪼각쪼각 썩어버린 부석사 대벽화’란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보장각을 거쳐 지금까지 성보박물관에 보관·전시돼 왔다. 벽체 분리 전부터 가로 방향 균열이 발생해 일제가 이를 석고로 보강했으나 이로 인한 백색오염과 추가 균열·분리가 일어나 구조적인 손상이 진행 중이다. 채색층의 박리, 표면 오염 등이 심각한 상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먼저 벽화의 상태를 정밀진단해 손상 현황과 원인을 조사하고, 벽화를 재처리하기 위한 재료 연구와 보존처리를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고려 후기 벽체의 구조와 벽화 제작기법에 대한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경기도의회 김종배 의원 제8회 우수의정대상 수상

    경기도의회 김종배 의원 제8회 우수의정대상 수상

    경기도의회 경제노동위원회 김종배(민주, 시흥3) 의원이 지난 17일 제8회 우수의정대상을 수상했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은 우수의정대상은 전국 시·도 의회의장협의회에서 주민들에게 지방의회와 지방의원의 역할을 홍보하고 시·도 의원에게는 보람과 자긍심을 부여하기 위해 의정활동 수행이 우수한 지방의원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김종배 의원은 지난 1년간의 노력을 인정받아 수상하게 되었다. 김종배 의원은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경기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로 시흥녹색포럼 대표를 지냈고, 시흥도시재생포럼 대표를 맡으며 지역의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경기도의회에서도 경제노동위원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민주당 더불어나눔봉사단의 일원으로 묵묵히 봉사에 참여해 주변에서 ‘뚝심의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종배 의원은 “도의원은 도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도민의 마음을 헤아려 도민이 행복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묵묵하게 중심을 잡고 의정 활동을 하도록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던 많은 분들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 하루속히 코로나19가 해결되어 모든 이들이 맘 놓고 편하게 일상의 삶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러 마리 물고기의 뇌파를 동시에 측정하는 기술 개발

    여러 마리 물고기의 뇌파를 동시에 측정하는 기술 개발

    DGIST 로봇공학전공 김소희 교수 연구팀이 여러 마리 성체 제브라피쉬의 뇌파를 동시에 측정하는 기술 개발과 이를 활용한 뇌전증 치료약의 효과 검증에 성공했다. 한 마리의 뇌파만을 측정할 수 있던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한 기술로, 향후 뇌신경계 질환 치료에 쓰이는 신약 후보물질 연구의 정확도와 효율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브라피쉬는 척추동물로, 인간과 70% 유사한 유전정보와 생체기관을 갖고 있다. 따라서 신약 개발 단계 중 첫 단계로 세포를 대상으로 한 기초연구단계와 다음 단계인 설치류 대상 비임상시험 단계 사이에 사용될 동물로 주목받고 있다. 김 교수팀은 성체 제브라피쉬 여러 마리를 안정적으로 고정시켜 뇌파를 측정할 수 있는 고정유닛과 약물 주입·교환 유닛이 결합된 장치를 고안해 환경 변화 없이도 약물 교환과 연속적인 뇌파 측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여러 마리에서 장시간의 비침습적 뇌파 측정이 가능하다. 이는 한 번에 제브라피쉬 한 마리만의 뇌파 측정이 가능하던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또한 김 교수팀이 개발한 방식은 유닛을 손쉽게 확장 가능해, 동시 측정 가능 개체 수를 손쉽게 늘릴 수 있고, 뇌파 측정 후 제브라피쉬를 다시 수조로 돌려보내 장기간의 추적 관찰도 가능하다. 김 교수팀이 개발한 기술을 활용한다면 향후 제브라피쉬의 장점을 극대화한 신약 개발·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뇌신경계 질환 치료에 쓰일 수 있는 여러 후보약물들을 여러 마리의 제브라피쉬에 동시에 투입, 그에 따른 뇌파 반응을 연구하는데 있어 정확도와 효율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여러 약물을 시험하는데 소요되는 시간도 크게 단축할 수 있어, 그 중 효과가 나타나는 약물들을 선별하는 초기 스크리닝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소희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뇌전증이나 수면 장애, 자폐증 등 다양한 뇌신경계 질환 치료를 위한 신약 후보물질의 초기 스크리닝 단계에 활용할 수 있다”며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뇌파의 약점을 극복하고, 정확도가 높다는 뇌파의 장점을 바탕으로 약효 관련 연구를 진행할 수 있어 향후 후보물질 초기 스크리닝 단계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본 연구는 DGIST 학부 및 석사과정 졸업생인 로봇공학전공 이유현 연구원이 제1저자로, 김소희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바이오센서 분야 국제학술지인 ’바이오센서스 앤 바이오일렉트로닉스’ 지에 온라인 게재됐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기상캐스터 전소영 결혼...♥ 예비신랑은 대학병원 의사

    기상캐스터 전소영 결혼...♥ 예비신랑은 대학병원 의사

    기상캐스터 전소영의 결혼 소식이 전해져 화제다. 16일 해피메리드컴퍼니 측은 “전소영이 오는 7월 18일 오후 서울의 모 호텔에서 한 살 연상의 대학병원 의사 김 모 씨와 결혼식을 올린다”면서 웨딩화보를 공개했다. 웨딩화보에서 전소영은 청순하면서도 발랄한 예비신부의 드레스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단아하면서 작은 얼굴과 뚜렷한 이목구비, 매끈한 목선, 도드라진 일자 쇄골로 아름다운 미모를 어필했다. 전소영과 예비신랑 김 씨는 3년 전 전소영의 고등학교 후배 소개로 처음 만났다. 진지한 만남을 이어오던 두 사람은 전소영이 석사 과정을 마친 뒤인 지난해 말부터 결혼 준비를 해왔다.1990년생인 전소영은 서강대학교에서 프랑스문화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지난해 석사 졸업 후 현재는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5년 MBN 기상캐스터로 방송계에 입문한 전소영은 이듬해 SBS로 옮겨 기상캐스터로 활동 중이다. 그녀의 친오빠는 기자 출신 MBC PD로 유명한 전준영이다. 전소영의 결혼식은 주례없이 진행되며, 축가는 전준영 PD와 예비 시동생이 각각 부를 예정이다. 사회는 전소영의 지인이 맡는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대학교육 재설계’ 꺼낸 김종인, 기본소득 논의 일단 멈춤?

    ‘대학교육 재설계’ 꺼낸 김종인, 기본소득 논의 일단 멈춤?

    경제혁신위원장에 KDI출신 윤희숙 선임 기본소득 경계 윤위원장 통해 ‘속도 조절’기본소득제 도입 의제를 던지며 ‘판 흔들기’에 성공한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굵직한 후속 의제들을 연달아 내놓고 있지만 정작 기본소득 논의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진보진영 담론인 기본소득에 대해 당내 반발 목소리가 끊이지 않자 1보 후퇴하는 동시에 시선을 분산시키는 모양새다. 통합당은 11일 비대위 산하에 경제혁신위원회를 출범하고 위원장에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출신의 ‘경제통’ 윤희숙(서울 서초갑·초선) 의원을 선임한다고 밝혔다. 김은혜 대변인은 “경제혁신위는 함께하는 경제, 역동적인 경제, 지속 가능한 경제라는 세 가지 카테고리로 혁신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기본소득을 포함한 복지, 교육 패러다임 전환도 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킨 김 위원장의 기본소득 구상이 경제혁신위를 통해 구체화될 예정인 가운데 그간 기본소득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온 윤 의원의 위원장 선임에 눈길이 쏠렸다. 윤 의원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요즘은 현금 뿌리기가 마치 개혁적인 것처럼 포장된다. 우리 당이 감당 못할 기본소득을 이슈로 만든 것은 실수”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김 대변인은 “윤 의원 얘기와 (김 위원장의 기본소득 논의가)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의 빚 늘어나는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두 번째로 빠르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인 재정 확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도 따져야 한다”고 해명했다. 기본소득 의제를 띄웠지만 ‘결과의 평등’을 경계하는 윤 의원에게 키를 쥐게 하면서 속도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이날 비대위회의에서 기본소득 논의 대신 ‘대학교육 재설계’라는 새 의제를 꺼냈다. 그는 “코로나 이후 가장 큰 우려는 교육 불평등 문제”라며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교육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있고, 사교육 시장이 커져서 공교육이 무력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국내 대학 교육과정은 학사 4년·석사 2년·박사 4년인데, 10년 걸친 그 학문이 과연 쓸모가 있느냐. 학문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기 때문에 대학 교육과정도 새롭게 생각해볼 시대가 됐다”고 주장하면서 21대 국회에 고등교육 체계를 새롭게 설계할 가칭 교육혁신특별위원회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서울 동북권 원외 당협위원장들과 오찬을 하며 소통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이 자리에서 “보수 정당이 굳이 ‘보수, 보수’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며 “국민에게 확장성이 없는 부분을 앞세우지 말고 실질적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전날에도 중진의원들과 연석회의, 수도권·강원 지역 의원들과 오찬을 하는 등 당내 스킨십에 공을 들였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김종인 “코로나 시대 이후 가장 큰 우려는 교육 불평등”

    김종인 “코로나 시대 이후 가장 큰 우려는 교육 불평등”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코로나19 이후 가장 큰 우려는 교육 불평등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11일 비대위 회의에서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교육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있고, 사교육 시장이 커져서 공교육이 무력화되고 있지 않느냐”면서 “사회의 계층 이동 사다리가 사라지고, 빈부격차가 대물림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등을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에선 교육 불평등에 대한 언급이 없다. 통합당은 이를 과감히 지적하고 선제적으로 개선 방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또 “국내 대학 교육과정을 보면 학사 4년, 석사 2년, 박사 4년 하는데, 10년 걸친 그 학문이 과연 쓸모가 있느냐”며 “학문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기 때문에 대학 교육과정도 새롭게 생각해볼 시대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코로나 사태가 지나면 산업구조 혁신에도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는데, 4차 산업 관련한 인공지능, 머신러닝, 베타 사이언스 등을 충분히 교육할 교수들을 확보하고 있는지 굉장히 의문시된다”며 교수진과 커리큘럼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그는 “이런 종합적인 문제를 논의해서 새로운 대학교육의 진로를 개척해야 한다”며 여야가 21대 국회에 가칭 교육혁신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고등교육 과정을 심의하자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 애플의 시가총액이 1조5000억달러라고 한다.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 규모가 애플의 시총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대학교육의 근본적 변화가 있지 않고선 이러한 초격차를 해소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허위 난민 신청’ 알선한 방글라데시 출신 유학생 구속

    ‘허위 난민 신청’ 알선한 방글라데시 출신 유학생 구속

    한국에서 취업을 원하는 고국 동포들을 불법으로 입국시키고 허위로 난민 신청을 하도록 알선한 방글라데시 출신 유학생이 구속됐다. 법무부 산하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는 방글라데시인 A씨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9일 밝혔다. 조사대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방글라데시인 12명을 중국 소재 대학에 어학 연수생으로 등록한 뒤 관광차 단기 방문하는 것처럼 비자 서류를 꾸며 국내에 불법 입국시킨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이러한 방법으로 입국한 이들에게 “야당인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 소속으로 여당인 아와미연맹(AL)으로부터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다”는 허위 사유를 꾸며 난민 신청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6년 입국해 국내 모 대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A씨는 불법 입국과 허위 난민 신청을 알선해주는 대가로 1인당 80만 타카(약 1127만원)를 받았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부천시박물관 초대관장에 최윤희 전 학예팀장

    부천시박물관 초대관장에 최윤희 전 학예팀장

    경기 부천시에서 설립하고 부천문화원이 위·수탁 운영 중인 부천시박물관 초대관장에 최윤희 전 학예팀장이 임명됐다. 최윤희 신임 관장은 2001년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취득과 박사과정(근현대사 전공)을 수료했다. 숙명여대박물관과 정영양자수박물관, 숙명문화원 학예연구원을 거쳐 2007~18년 국립조세박물관과 안양문화원 학예연구사, 하남역사박물관 학예조사팀장과 학예실장 등 탄탄한 실무경력을 쌓아왔다. 2019년부터 부천시박물관의 부천펄벅기념관과 부천옹기박물관, 부천향토역사관 학예사 겸 팀장을 맡아 왔다. 2004년 여성생활사 종합박물관인 숙명여대박물관의 신축 이전과 동아시아 최초 자수 전문박물관인 정영양자수박물관 개관을 겸한 그랜드오픈, 2004년 세계박물관대회(ICOM KOREA) 부대행사를 진행했다. 2008년과 2012년 국립조세박물관의 시설 전면개편 등 다양한 국립·공립·대학·사립박물관의 굵직한 경력을 겸비한 최 관장은 오는 9월 부천시립박물관의 통합 이전 개관을 앞둔 시기에 적임자라는 평이다. 하지만 박물관의 일부 직원들은 시박물관을 둘러싼 여러 의혹과 더불어 관장 선출 과정을 문제 삼고 있다. 이에 부천시와 부천문화원은 관장 선출 과정은 어느 때보다 공정했으며 선출 과정에 외부 개입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또 부천시박물관 대다수의 직원들은 관장채용 비리에 맞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며 초대관장의 취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부천시립박물관 측은 “신임 관장의 자질 논란에 대해서는 취임 후 달라지는 부천시박물관 모습을 통해 충분히 검증될 것”이라며, “오랜 박물관의 실무경력과 노련함으로 무리 없이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최윤희 부천시박물관장은 “오는 9월 부천시의 문화 랜드 마크가 될 부천시립박물관이 통합 이전할 예정”이라며, “우선 시립박물관 개관을 성공작으로 마칠 때까지 전 직원과 합심해 총력을 다 할 것이며, 앞으로 부천시립박물관, 부천활박물관, 부천펄벅기념관을 시민들에게 문화·예술·역사를 친근하고 소중한 의미로 전달하는 선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지난 5월 28일 부천시립박물관 일부 직원 4명은 초대 전문 관장 임용에 관한 입장문을 발표하고, 5월 29일 부천시청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신임 문화원장이 관련 업체들에 편의를 봐줬다며 부정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문과는 상반되게 오히려 대다수의 직원은 2019년 1월부터 그들이 자행하고 있는 ▲내부 편 가르기 ▲공익제보를 표방한 근거 없는 비방 ▲허위날조가 난무한 보도자료 배포(2월20일자 익명 제보) ▲수탁기관 및 일부 직원을 겨냥한 특정 감사(5월18~29일) 요구 등으로 원활한 업무수행의 차질 및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시립박물관은 지난주 감사를 받았으며 결과는 한두달 후에 나올 예정이다. 현재 시립박물관은 총 23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박물관 측은 직원 중 15명은 신임관장에 대해 지지입장, 4명은 반대, 3명은 중립적인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한국 수학사 확립 일등공신 김용운 교수 별세

    한국 수학사 확립 일등공신 김용운 교수 별세

    한국 수학사 확립의 일등 공신이자 역사, 문명 비평 등 광범위한 학문 활동을 펼친 김용운 전 한양대 교수가 지난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3세. 192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김 전 교수는 와세다대를 졸업하고 미국 어번대 대학원, 캐나다 앨버타대 대학원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조교수를 거쳐 1969년 한양대 수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1993년까지 후학을 길렀다. 1983년 한국수학사학회를 만들어 국내 수학사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그는 약 150권에 이르는 저서를 남겼다. 1977년 간행된 ‘한국 수학사’는 무수한 판형 변화를 거듭해 현재까지 출간되는 고전으로 꼽힌다. 일본어로 펴낸 책도 20여권이다. ‘중국 수학사’, ‘나라의 힘은 수학 수준에 비례한다’ 등 수학 서적은 물론 1994년 학습지 브랜드 웅진씽크빅의 출발이 된 학습지 ‘웅진용운수학’을 개발하기도 했다. 철학과 역사에 조예가 깊어 세계 문명사를 다룬 ‘역사의 역습’과 ‘천황은 백제어로 말한다’, ‘한국인과 일본인’, ‘풍수화’ 등 한중일 문명 비평서를 여러 권 냈다. 특히 1989년 펴낸 ‘일본의 몰락’은 1990년대 일본 버블 경제의 붕괴를 예측해 큰 파장을 낳았다. 그러나 2015년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에 대한 실리 외교를 주장하며 “위안부 소녀상이 부끄럽다”고 발언해 친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고인은 일본어를 비롯해 5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부터 폐암으로 투병하면서도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를 쓴 그는 지난 25일 나온 마지막 저서를 받아 본 뒤 정신을 잃다시피 했다고 유족이 전했다. 유족으로는 김호중 한양대 의대 명예교수와 김영숙 청주대 명예교수, 일본에 사는 한의사 김희중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일 오전 7시 30분이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2000자 인터뷰 38] 김석현 “넘어진 김에 주 4일·가을 학기제 논의를”

    [2000자 인터뷰 38] 김석현 “넘어진 김에 주 4일·가을 학기제 논의를”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해 자부심을 얻은 것은 작지 않은 성과지요. 그런데 그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엉성하고 허술한 구석이 적지 않았거든요. 다소 안정됐으니 그동안 잘 되지 않았던 것들을 추스르며 사회적 협의를 통해 사회적 담론들을 점검했으면 좋겠는데 주 4일 근무제, 9월 학기제, 재난기본소득 등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굵직한 화두들이 또 그냥 흘려 버려지는 것 같아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한 지 다섯 달이 돼 간다. 현미경으로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생명체가 일으킨 지구촌 전체의 창조적 파괴, 또는 파괴적 창조의 본령이 궁금해졌다. 김석현(54) 인텔리전스코리아 대표를 만나자고 한 것은 감염병 학자나 방역 전문가, 경제학자, 사회학자들과 조금 다른 면모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석사는 수학을, 박사 학위는 미국 노터담 대학에서 경제학, 그것도 산업 발전을 전공한 다채로운 이력 덕분이었다. 2005년 귀국하자마자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과학기술 혁신지표를 연구해 10년 동안 꾸준히 보고서를 썼던 이력도 더해졌다. 그런 그가 신천지발 확산 이후 코로나19 관련 데이터를 누구보다 바지런히 찾아내 요점을 정리해 페이스북에 매일 올려주니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이런 노력을 평가받아 지난달 말 지식공작소가 발빠르게 기획해 펴낸 ‘코로나19 동향과 전망’에 이일영 한신대 교수 등 다른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자신의 보고서를 싣는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의 보고서 가운데 돋보인 대목은 20세기 노르딕 국가의 교량 국가 역할을 한국이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Q. 오랜 시간 국내외 자료를 꾸준히 업데이트했으니 현재의 코로나19 국면을 어떻게 보는지로 인터뷰를 시작하자. A. 나도 이렇게 오랫동안, 석달 가까이나 코로나 데이터를 갖고 씨름할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심각한 감염병 문제인데 전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어서 뭐라고 말하기가 두렵다. 그저 매일 생기는 워낙 많은 숫자와 정보들을 사람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게이트키핑 역할을 한 건데 많은 분들이 숫자 뒤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줘 고맙다는 댓글들을 달아주셨다. 그래서 용기를 내 ‘동향과 전망’에 참여할 수 있었고, 아직 등교를 못하는 초등 2학년 딸을 집에서 돌보며 데이터들을 살펴보고 있다. 감히 지금의 국면을 정리하자면 5월 초 이태원 클럽발 감염이 확산되고 있는데 1차 파고의 여진인지, 두 번째 파고의 시작인지 헷갈렸는데 최근 데이터들을 보면 신천지발 감염증 바이러스와 유형도 다르고 5월 초 연휴 이후 생활방역으로의 전환과 맞물려 있어 두 번째 파고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아직 그 파장이 어떠할지는 지켜봐야할 것 같다. Q. 책을 보면 김 박사는 한국이 코로나19 대응에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메르스 때 비싼 수업료를 치른 덕이며, 자유주의적 조치를 취하면서도 선제적인 대응을 미세하게 해냈다. 절벽 앞에서 가까스로 멈춰섰다고 표현했던데? A. 국가전체의 시스템적 대응은 부족하다. 대신 확진자가 발견되면 연관자를 찾아내는 기동성은 유럽과 미국 어느 나라도 따라오지 못한다. 가령 예를 들어 5월 연휴가 시작되기 전 누구나 연휴와 학교 개학 시기가 겹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는데도 연휴 끝나 2주가 지나기 전 개학한다고 했다가 나중에 위험하다며 일주일 연기한 것이 예가 될 것이다. 뻔한 판단 착오를 하곤 했다. 유럽에서는 시나리오 대응을 한다. 독일은 항체 검사를 전국적으로 실시해 국민들 사이에 얼마나 면역이 진행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봉쇄를 풀면서도 나중에 이런저런 요건이 되면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지방정부와 메르켈 총리가 합의해 나간다. 스웨덴은 8주 간격으로 항체 검사를 한다며 1차 검사를 했다. 스톡홀름은 16% 정도로 면역이 됐다는 것이 나타나 방역을 평가하고 이후 대응에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질본, 지방자치단체, 보건소 등은 정말 헌신적으로 뛰어 이번 사태에 대처했는데 질본 위 정치 시스템의 결정들은 근거도 없고, 외국인 입국 통제도 한 발 늦었고, 사회적 합의와 정치권이 개학이냐 연기냐 하는 커다란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걸 해내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Q. 그래서 많은 이들이 불안해 한다. 머리가 계획하고 팔다리가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아 얻어 걸린 것 같은 이 국면이 많은 이들의 불안감을 키운다고 본다. A. 영화 ‘살인의 추억’ 가운데 송강호의 대사가 떠오른다. 미 연방수사국(FBI) 과학수사 기법 그런 것 모르겠고 한국은 좁으니까 발로 열심히 쫓아다니면 잡힌다는 대사 말이다. 실행 부문에서 잘하고 역량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실행 부문에 너무 의존하는 한계가 있다. 관료를 동원하기 좋은 조직을 갖고 있다. 관료를 민간의 군대라고 비유한다. 관료, 공보의, 군인 등 방역에 최적화된 조직을 갖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후닥닥하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안 좋게 보아왔는데 감염병 대처에서는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방역은 전쟁이란 점을 절감했다. 민간 병원이 강한 공공성을 요구받고 있다. 싱가포르도 비슷하다. 아시아적 특성이 있는 것 같다. 평소에는 갈등의 여지가 있는데 감염병 대처 국면에 효율성을 인정받게 됐다. Q. 그런 연장 선상에서 아시아적 공동체를 앞세우는 것이 서구 개인주의를 물리친 사례라고 보는 시각도 있더라. 권위주의나 독재를 옹호하는 것이란 핀잔을 들을 수 있겠지만. A. 독일이 다른 유럽 국가와 다른 측면이 있더라. 전통적으로 정부의 권위와 역할이 많아서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정부의 조처가 존중받는 면이 있다고 여겨진다. 개인주의에 치우치지 않는 면모들이 이번 방역의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자유주의에 선제적이고 효율적인 리더십이 결합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번 방역에서 그 의의가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는 독일,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대만, 홍콩 같은 나라들이 그 예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보며 많은 나라들이 놀라워하는 것은 자유주의적 접근을 버리지도 않고, 일정하게 개인주의는 양보를 하면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에 최선을 다해 오히려 전면 봉쇄로는 가지 않아 이동과 생업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준 것에 있다. Q. 수축사회란 개념이 흥미롭더라. A. 이자율이 형편없이 낮아져 투자할 곳이 없고, 일자리가 늘어날 여지는 적어 보인다. 온라인 유통에 밀려 어중간한 오프라인 기업은 없어지는, 도심의 상가는 비는 등 연쇄 효과가 일어나고, 우리 경제전망이 낙관적일 수만은 없는 우려를 갖게 된다. Q. 우리는 사회적 합의를 결여한 것이 적잖이 눈에 띈다. A. 메르스 이후 방역에 유리한 쪽으로 법률이 개정됐는데 코로나19가 닥쳐서야 그런 것을 확인하게 됐다. 분명히 있어야 할 사회적 합의를 생략하고 한 것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럽과 미국에서 마스크를 쓰지 말자, 봉쇄를 풀자고 시위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반사회적이네 여기기 쉽지만 한편으로 그 사회는 목소리가 다양한 것이다. 저렇게 격렬한 사회적 토론이 이어지고 합의가 이뤄지면 훨씬 굳건할 것 같다. 우리는 서구의 토론과 합의 문화를 배우고 서구는 우리의 창조적인 대응 방식을 배우고, 이런 것이 코로나 시대의 교훈이라고 생각한다.Q. 지금 우리가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A. 질본에서 항체 검사를 한다고 했다. 이는 5월 말에 실시하는 연간 국민영양건강조사에 포함된다. 스웨덴은 8주 간격으로 샘플링한다. 독일은 이미 항체검사를 시작했다. 중국은 우한 시민 1100만명 전원을 진단검사해 마무리 단계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교사 50만명은 너무 많다고 했다. 10명 검체를 모으면 5만번 실시하는데 우리의 진단검사 키트 능력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가장 위험한 의료진, 양로원, 교사 이런 사람들은 했어야 했다. 이런 기획 능력이 부족하구나. 어두운 상자 안에 손을 집어넣고 더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즉각 대응은 하는데 시나리오를 세워 대응하는 것은 많이 부족하구나 느끼게 된다. Q. 책이 나온 지 한달이 됐는데 ‘아시아발 노르딕 국가‘란 개념이 충실히 채워지고 있나? A. 우리만 잘났다고 해선 안되니 객관적으로 개념을 들여다보려고 유럽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다. 독일과 북구는 영국과 프랑스 모델의 개인주의보다 사회 전체의 복지를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체계를 갖고 있더라. 우리 모델을 권위주의적이라고 폄하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시스템에 대한 장점도 알게 하고 자부심을 갖게 만든 게 코로나가 불러온 뜻밖의 성과 아닌가 한다. 대중들이 무작정 선망하던 미국과 유럽 국가가 막대한 인명 피해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적어도 방역에서는 한국이 나은 면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이런 자부심이 자만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배우는 자세로 이어져야 한다. 이런 격변은 이전에 비용 때문에 과감히 하지 못하는 사회적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홍수가 나면 리모델링하듯 말이다. 뉴질랜드는 주 4일제 근무제를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겠다고 했다. 일자리 공유 차원 만이 아니라 연성화된 사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도 한 번 토론해 볼만한 일인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또 학교 개학과 관련, 이참에 가을 학기제를 해보자는 얘기가 반짝 나오다 말았다. 전 개인적으로 해볼 수 있다고 본다. 재난기본소득도 더 근본적이고 폭넓게 논의해야 하는데 어물쩡 단기적 처방에 머무르고 말았다. 방역 뿐만아니라 사회경제적 시스템에 관한 논의로 넓히자는 것이다. 글 사진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학력·나이 불문 직무 중심 채용…식약처 국가직 93명 문 열었다

    학력·나이 불문 직무 중심 채용…식약처 국가직 93명 문 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품·의약품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할 국가공무원을 대거 채용한다. 식약처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통해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고용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갈수록 커지는 식품·의약품 안전관리 분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전문 인력을 충원하는 경력경쟁채용시험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채용 인원은 93명으로 약무 7급(12명), 식품위생 9급(45명), 운전 9급(1명), 보건연구사(32명), 행정 6급(임기제·1명·본부 대변인실), 행정 6급(임기제·1명·본부 소비자위해예방정책과), 식품위생 6급(임기제·1명·본부 현지실사과) 등이다. 6개 직급별로 1차 서류전형(합격자 발표일 6월 25일), 2차 면접시험(7월 3·4·6일)을 거쳐 7월 24일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원서 접수는 29일까지다.●약무 7급은 약사·한약사 자격증 소지해야 약무 7급에 응시하려면 양약 분야는 약사 자격증을, 한약 분야는 한약사 자격증을 소지해야 한다. 식품위생 9급은 기술사(축산·식품·수산제조·품질관리·포장), 기사(축산·식품·수산제조·품질경영·포장), 산업기사(축산·식품·품질경영·포장), 위생사, 영양사 중 하나 이상의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식품분야 보건연구사 지원자는 보건학·의학·한의학·약학·화학·생물학·식품학·식품가공학·수의학·축산학·낙농학·동물학·위생공학·유전공학·생명정보학·수산가공학·생명공학 또는 식품 계통을 전공한 석사 학위 소지자여야 한다. 또 의약품 분야 보건연구사는 보건학·의학·한의학·약학·화학·생물학·유전공학·생명공학·독성학·생체공학 또는 의약품 계통 학문에서 석사 학위 이상의 학위가 있어야 한다. 서류전형에선 위원이 응시자가 제출한 서류를 검토해 응시자격 요건의 충족 여부를 심사한다. 응시자격 요건을 충족한 응시자는 일단 모두 합격이나, 응시인원이 선발예정인원의 3배수 이상이면 서류전형 합격 인원을 제한한다. 식약처는 철저하게 직무 중심으로 전문인력을 평가하고 선발하고자 출신학교와 나이 등 불필요한 응시자 정보는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외국어(영어)능력 성적, 국어능력시험 성적, 한국사능력시험 성적, 근무 경력 등도 보는데 이는 채용 우대요건일 뿐 반드시 해당 시험 성적증명서가 있거나 경력이 있어야 지원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근무한 것도 경력으로 인정한다. 정부의 취업지원대상자, 의사상자(의사자 유족, 의상자 본인 및 가족),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등급과 2등급 이상은 지원 분야에 따라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자격요건을 다양하게 갖췄더라도 중복 응시는 불가능하다. 중복 응시하면 불합격처리된다. 이번 채용에서는 일반직 공무원과 임기제공무원을 함께 뽑는데, 두 분야에 중복 응시해서도 안 된다.●5분 스피치 직무 관련·사회적 이슈가 주제 2차 면접 시험 전에는 모든 서류전형 합격자를 대상으로 6월 29일까지 온라인 인성검사를 시행한다. 온라인 인성검사가 당락을 좌우하진 않는다. 식약처 관계자는 “전문업체를 통해 온라인 인성검사를 하고 관련 정보는 면접에서 참고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면접 시험에선 서류전형 합격자를 대상으로 직무수행에 필요한 전문성과 적격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면접만 보는 9급과 달리 7급과 보건연구사는 개별면접 외에 ‘5분 스피치 과제 발표’를 별도로 진행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면접장으로 이동하기 전에 별도 장소에서 하나의 주제를 준 다음 20분가량 자신이 발표할 글을 쓰도록 한 뒤 5분간 발표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주제는 직무와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사회적 이슈 관련 주제일 수도 있다. 지원자의 직무분야 전문지식과 응용능력, 의사 표현의 정확성과 논리성 평가에 활용할 계획이다. 경력경쟁채용으로 2016년에 임용된 유상아 식약처 의약품관리과 주무관은 “당시 면접을 봤을 때는 본인 직무와 관련된 내용을 5분 정도 발표하게끔 했다”고 말했다. 2019년에 임용된 심현준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약품연구과 보건연구사는 “서류전형을 통과하고선 토론 면접과 개별 면접을 했는데, 토론 면접에선 어린이 화장품 규제 신설에 대한 찬반 토론을 했고 개별 면접에선 공무원의 자세, 그동안 해 왔던 일, 자신의 강점, 식약처에 와서 무엇을 할 것인지, 인생의 멘토는 누구였는지 등을 물었다”고 말했다. 경력경쟁채용시험을 통해 채용된 공무원은 처음 발령난 곳에서 약 4년간 일하게 된다. 그 이후에는 기관의 인사운영 상황에 따라 다른 기관이나 부서로 전보될 수 있다. 다만 경력채용인만큼 처음 지원한 분야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식약처는 채용공고문에서 “채용 후 인력상황과 신규 채용자의 전문성 등에 따라 해당 직렬(급)에 맞는 다양한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고 밝혔다. 유 주무관은 “경력채용을 통해 약무직으로 들어왔다면 약무 업무를 많이 하고 바이오 의약품, 의료기기, 화장품 업무 등 관련 업무를 하기도 하는데 약무직과 관계없는 식품 위생 쪽 업무를 맡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 사후 관리까지 다양한 업무 경험 경력채용으로 들어온 공무원(임기제 제외)은 공채로 채용된 공무원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정년도 보장된다. 유 주무관은 “공채와 경채를 특별히 구분해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육아휴직을 했다가 복직했는데 여성 공무원이 많아서인지 식약처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복직하고서 원하는 과에 들어가 하고 싶었던 업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주무관은 약대를 졸업하고서 약국에서 근무하다 식약처에 지원했다. 그는 “약국에서 일하면 굉장히 제한된 일을 하게 된다. 처방전대로 약을 조제하고 복약지도를 하는데, 내가 이 일을 60세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일을 하고 싶어 식약처 경력경쟁채용시험에 지원했다고 한다. 유 주무관은 “식약처는 의약품부터 식품까지 모두 담당하고, 의약품 분야만 해도 개발부터 사후관리까지 하다 보니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다”며 “물론 약국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수입은 적지만 사명감과 자부심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기술 지원 기관 심 보건연구사가 일하는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식약처 소속 기관으로, 식품·의약품 등의 위해평가·허가심사·시험분석·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식의약안전관리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과학적 기술지원을 하는 곳이다. 그는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에서 식품·의약품과 관련해 국가 표준이나 국가 기준을 만들면 실제 국내에서 쓰이는 규정이 된다”며 “이 규정에 따라 진행되는 업무가 많아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점도 많지만 성과물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성취감이 있다”면서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최종 합격자는 8월 중순부터 채용 분야별로 충북 오송 식약처 본부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지방 식약청 등에서 일하게 된다. 최종합격자가 임용을 포기하거나 임용결격사유가 있다면 공무원임용시험령에 따라 최종합격자 발표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추가합격자를 결정하게 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 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 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스타일을 보여 주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들을 발굴해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감독 자리에 있지만 그걸 누린다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교 시절부터 은사로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김철용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고교 랭킹 1위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들이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스타일을 보여 주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들을 발굴해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감독 자리에 있지만 그걸 누린다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교 시절부터 은사로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김철용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고교 랭킹 1위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들이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 ― 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 감독님만의 선수 지도 철학이 있는가. “감독인 나의 스타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선수들 각자의 장점을 발굴하려고 노력한다. 선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은 한다. 선수들이 배구를 하면 스트레스에 굉장히 많이 노출되는데 선수들 얘기를 경청하면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려고 도와준다. 배구가 재밌다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다. 선수 시절에 내가 싫었던 건 웬만하면 강요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대로 하기 싫었지만 도움이 됐던 것들은 이해를 시키려고 하는 편이다.” ― 올시즌 유일한 이적생인 고예림 선수가 ‘새 직장’ 현대건설이 다른 점으로 소통을 많이 하는 점을 꼽더라. “선수들이 저하고도 얘기를 많이 하지만 훈련 시간에 선수들끼리 대화하는 시간을 준다. 수비와 세터 간 호흡은 어떤 식으로 맞출 건지, 어느 위치에서 수비할 건지 등을 얘기한다.” ―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 하루 일과를 설명해주시면. “주중에는 오전 8시 30분 스태프 미팅을 마치고 오전 훈련을 하고, 점심먹고 오후 훈련을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내 자신을 돌아본다. 혹시나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선수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선수들이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 운동 외에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나. “훈련 시간 중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책을 많이 보는 편이다. 고전도 많이 읽는다. 최근에는 패스트와 한중록을 읽었다. ―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격언이 있나. “항상 겸손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어느 위치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 감독님을 두고 주변 사람들이 차가워보인다는 얘기를 하더라. “저는 정적인 사람이다. 여행보다는 책 읽기, 돌아다니기보다는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굉장히 단호하다. 과거 일에 끙끙 앓고 미련 두기보다는 앞으로 계속 가는 스타일이다. 정에 이끌리지는 않는다. 꽤 오랫동안 나름대로 주변 사람들 말도 들어보면서 묵묵히 숙고(熟考)한 뒤에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고 그 뒤로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만약에 잘못되면 그건 내가 책임져야하는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차가워 보인다는 얘기를 듣지 않나 싶다.”― 고교시절부터 함께한 김철용 감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두 분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제가 일신여중으로 스카우트 됐는데 김철용 선생님도 제가 고등학교 갈 때 일신여상에 부임하셨다. 고3 언니들이 전국체전이 끝나고 실업팀으로 간 뒤인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반부터 고등학교 체육관에 올라가서 연습을 했는데 그때 선생님을 처음 뵀다.” ― 김철용 감독은 당시 A속공을 가장 잘하는 1학년 이도희를 공격수에서 세터로 전향시켰다고 하던데. “사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세터를 시키려고 했는데 제가 하기 싫다고 했다. 세터들이 워낙 욕을 많이 먹으니까 하기 싫었다. 중학교 때는 신장이 큰 편이라 항의가 받아들여졌는데 고등학교 올라가니 배구 선수 치고는 신장이 170cm로 작은 편이라 안 먹혔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때도 공격수였는데 당시 주전 세터였던 임혜숙 언니가 1학년 중반쯤 국가대표팀에 차출돼서 나가는 바람에 세터 자리가 비었고 그때 김철용 감독님이 세터를 시켰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선생님이 시키면 하는 거였다. 제가 1학년때 고3 언니들이 좋은 경기력을 갖고 있었다. 토스를 초보자가 하는데도 언니들이 받아주고 잘 때려주니까 계속 이겼던 것 같다.” ― 초등학교 1학년때 육상 선수를 하다가 10살 때 배구를 시작하셨다. 배구를 시작한 배경은. “키가 커서? 어렸을 때는 잘 뛰고 그랬나보더라. 몸이 약한 편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말랐는데 부모님이 몸이 약하니까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지 않겠냐고 해서 하게 됐다. 제가 막내라 아버지가 저를 되게 예뻐하셨다. 아버지가 처음에는 운동하는 걸 별로 안좋아하셨는데 학교 선생님이 설득했다. 그뒤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잘 해주셨다.” ― 김철용 감독과 이도희 감독 본인의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고교랭킹 1위로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가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 흥국생명이 이다영을 데려갔다. 이다영이 부진할 때 믿고 기용해 리그 최고 세터 수준으로 키운 걸로 아는데. 현대건설 팬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큰 것 같다. “아쉽지 않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FA는 전적으로 선수 본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존중한다. 거기 가서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애정을 갖고 그 선수를 키웠기 때문에 그 선수가 좋은 선수가 성장하길 바란다. 팬들의 그런 비판은 2018~2019 시즌에 이다영 선수가 힘들어할때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최근 이다영의 대체자인 세터 이나연 영입도 화제였다. “아직까지 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단계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좀 있다. 이 선수가 얼마나 따라올지, 이 선수가 내가 얼만큼 발전 시킬 수 있을지가 문제다. 이 선수랑 같이 훈련해보면서 이 선수가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보이게 하는 게 제 역할이다. 단점은 안 보이게 하면서 장점 부각되게 하는게 제 역할인 거 같아서. 이나연 선수는 자신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 이다영 선수는 당연히 포함 될테니 이다영 선수를 빼고 코치 시절부터 통틀어서 감독님 밑을 거쳐간 세터 중에 기억에 남는 세터를 말해달라. “염혜선 선수는 굉장히 열심히 하는 선수여서 좀 더 잘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효희 도로공사 코치는 선택이 굉장히 좋은 선수여서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사실 흥국생명 이영주 선수가 기억에 남는다. 공격수 였다가 세터로 전향한 선수였다. 프로팀에서 제일 처음 가르쳤던 선수라서 구질도 좋고 그래서. 운동을 좀 더 오래 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김다인 선수가 제 밑에서 올해 3년째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 선수가 잘 성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수원시청에서 뛰던 김주하는 결혼 뒤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감독님과 닮았다. 감독님도 수원시청에서 뛰셨다. “코로나19로 포스트시즌을 치르지 못하면서 리베로 김주하 선수를 선보이지 못하고 끝난게 아쉬웠다. 김연견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대체자가 필요했는데 이영주는 너무 어렸고, 고유민은 리베로 자리를 부담스러워해서 레프트 백업으로 원위치했다. 그래서 김주하 선수에게 부탁을 했고 흔쾌히 허락을 해줬다. 김주하는 우리 팀의 주전 리베로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이다. 수원시청에서 선수생활을 했는데 이번 시즌 개인사로 작년에 그만둔 것 같더라. 몸이 좀 많이 아팠는데 몇개월 쉬고나니까 괜찮아졌다고 하더라. 김주하 선수는 체력이라든지 고질적인 부상이 있다. 충분히 체력 보강을 해야 시즌때 아프지 않고 시즌을 마칠 수 있다고 많이 얘기를 했다.” ―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이 소녀의 눈물은 그 먼 어디서 온 걸까요…어른들의 메마른 가슴 그 어디쯤 아닐까요”

    “이 소녀의 눈물은 그 먼 어디서 온 걸까요…어른들의 메마른 가슴 그 어디쯤 아닐까요”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어떤 피해를 입히고 있었는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면서 저 역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위로도 받았습니다.” 단편영화 ‘퍼디스트 프롬’(Furthest From)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김경석(29) 감독은 서울신문과 진행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영화의 의미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거주하고 있다. ●수질오염의 폐해… 아이들의 이별 통해 담담히 그려 내 호평 ‘퍼디스트 프롬’은 1990년대 말 미국 캘리포니아 수질오염 사태를 배경으로, 트레일러 파크에 사는 8살 아이들의 이별을 그렸다. 영화 프로듀서인 렉스 레이어스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는 최근 53회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은상을, 50회 USA 영화제의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18일(현지시간)까지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독일 오버하우젠 국제단편영화제 어린이·청소년영화 부문 유력 수상 후보로도 올라 있다. 오버하우젠 영화제는 1954년 출범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단편영화제다. 수질오염이 악화하면서 소녀 제시(어맨다 크리스틴 분)의 동네 친구들이 하나둘 떠난다. 거대 기업 PG&E가 주민들에게 이주를 권고하는 편지를 보내 사람들이 떠난다고 생각한 제시는 이웃의 우편함에서 편지를 계속 훔친다. 그런데도 친구들은 계속 떠난다. 영화에서 도드라지는 건 영상미다. 수질오염을 설명하려고 직접적인 대사나 오염 상황을 보여 주지 않는다. 물이 없는 수영장, 폐쇄한 세탁소, 물탱크 트럭을 통한 물 보급 등으로 상황을 암시한다. “제시가 오염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만 애써 외면하는 것처럼, 오염 사태를 간접적으로 보여 줬다”는 감독의 의도다. 물에 비친 제시의 모습이나 황량한 마을의 모습, 주황색 옷 등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썼다. 그에게 주황색은 “밝고 활기 넘치는 면과 우울한 면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는 색깔”이다. 원하는 주황색을 얻기 위해 염색을 해 활용했다. 가장 친하게 지냈던 루커스 가족이 떠나고, 제시 가족마저도 짐을 챙겨 떠난다. 비슷한 두 샷을 연이어 보여 주는 마무리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루커스와의 이별은 제시를 변화하게 합니다. 트레일러 파크에서 이주하는 것도 제시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버릴 거예요. 어른들의 행동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드라마와 코미디 섞인 드라메디 자신… 다양한 장르 실험할 것” 김 감독은 한양대에서 연극영화과 영화연출전공을 하며 6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졸업 후 LA에 있는 영화 명문 AFI(American Film Institute)로 진학했다. 이번 영화는 그의 석사 졸업작품이다. 그는 앞으로 ‘퍼디스트 프롬’을 장편으로 만들 계획이다. 차기작 ‘고스트’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 ‘고스트’는 한국계 미국인 혼혈 여자아이가 귀신이 된 한국인 할머니와 미국인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짝사랑하는 한국 남자아이의 사랑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코믹 성장 드라마다. “떠나가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고 매력을 느낀다. 앞으로의 작업에도 이런 주제를 반영할 것”이라는 그는 “가장 자신 있는 장르는 드라마와 코미디가 섞인 드라메디(Dramedy)지만, 앞으로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번역청을 설립하자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번역청을 설립하자

    기네스북은 세계 최고의 기록들을 모은 책이다. 아일랜드의 기네스 양조회사 창립자 아서 기네스(1725~1803) 백작의 4대손 휴 비버경은 1955년 기네스북을 출간했다. 세계 최초, 최고, 최대 등 대중의 흥미를 끌 만한 기록들을 수록한다. 그러나 역사가들의 관점은 기네스북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최초, 최고, 최대’보다는 ‘사회와 역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에 방점을 찍는다. 우리는 세종이 창제한 한글을 ‘최고’ 문자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이제껏 한글을 어떻게 취급했던가. 조선조 내내 아녀자들이나 사용하는 문자로 취급했다. 백성을 사랑한 다산 정약용마저도 ‘목민심서’를 한글로 쓰지 않았다. 광복 직후인 1946년 통계에 따르면 한글 문맹자가 무려 77%였다. 1960년대 초까지 군대에서 문맹 병사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야 했다. 한글이 한국에서 지식혁명과 정보혁명의 도구로 본격 등장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이제 겨우 반세기다. 출발이 늦다 보니 콘텐츠가 부실한데 위기의식마저 없다. 문제는 번역이다. 일본 교토산업대의 마스카와 도시히데(1940~) 교수는 70평생 외국에 나가 본 적이 없어서 여권도 없었다. 일본어밖에 할 줄 몰랐던 그가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일본어만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적 성취가 가능했음을 뜻한다. ‘번역 왕국’ 일본이기에 가능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한국어만 읽어서는 석사 논문 한 편도 못 쓴다. 학문이 불가능한 ‘반쪽짜리 언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한글을 두고 세계 ‘최고’ 등의 수사를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 그 좋은 문자를 가지고도 후손들이 못나서 반쪽짜리로 전락시킨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1934년 YMCA 교육국이 영어책을 조선어로 번역하려는 계획을 세우자,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 로버트 하디(1865~1949)는 “십 년 후면 조선어는 부엌에서나 쓰일 터인데 조선어로 번역해서 무엇하겠는가”라며 반대했다. 한국은 아직도 미국 선교사의 인식 수준을 극복하지 못한 것 아닐까. 꼭 번역청이 아니라도 좋다. 한국어 콘텐츠를 확 끌어올리기 위한 번역 지원 대책을 세우자. 한국어만 읽고도 노벨상 타는 시대를 만들어 보자. 이거야말로 세종이 간절히 원한 것 아닐까. 우리도 역사를 바꿔 보자. 미래 세대의 도약을 위한 백년대계를 수립하자.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언론에 엠바고로 풀린 정도만 통보받아 주점 3000만원? 50개 업소에 낸 총비용 딸 시카고 학교서 1년간 전액 장학금 UCLA는 남편 배상금… 말 바꾼 적 없다 일부 언론, 딸 車 캐고 다녀… 조국 떠올라 이용수 할머니와 오해 풀기 위해 만날 것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요집회를 이끌었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윤 당선자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딸의 유학비와 관련해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일에 책임지고 비례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선 “사퇴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거부했다. ●부모님·시어머니 재산 다 합쳐서 8억 윤 당선자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방 70주년을 맞아 위안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책임감으로 외교부와 수차례 접촉해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며 “그때마다 외교부 담당 국장은 진전된 내용이 없다고 하다가 돌연 12월 27일 밤 기밀유지 조건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국고 거출 발표가 있을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언론 엠바고였고, 10억엔 위로금 조성 등 구체적인 양국 합의 내용은 28일 아침 알았다는 게 윤 당선자의 주장이다. 그는 또 “외교부가 15차례 위안부 피해자 측과 상의했다는 건 사실과 맞지 않다”며 “그건 우리들이 합의에 대해 요구하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만난 거지 그들이 어떻게 하겠다고 설명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은 30년간 정의기억연대(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일한 윤 당선자가 8억원이 넘는 재산을 신고하고, 딸을 미국 유학까지 보낸 사실을 근거로 거액의 월급을 챙기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현금 지원은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그 얘기까지 해야 하느냐”며 “정대협 간사를 할 때는 1992년 (월급) 30만원을 받았고, 해가 지나면서 2002년에 150만원을 받았다. 활동비가 인상되면서 270만원, 300만원을 받았는데 지난해 이사회가 350만원으로 올려 준다고 하기에 거부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면서 8억 3591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부모님이 평생 사신 아파트, 제 아파트, 승용차, 시어머니가 사시는 방 한 칸짜리 빌라까지 다 포함해서 써낸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 3월 22일까지 상임대표를 맡았던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오해라고 반박했다. 특히 정의연이 2018년 후원의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종로구 주점 옥토버페스트에서 실제론 430만원을 써 놓고, 이 주점 한 곳에서 3339만원을 지출한 것처럼 부풀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3339만원은 2018년 50개 업체에 지급된 총 비용이고 그 중 대표업체 한 곳만 표시한 것”이라면서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정의연 활동가는 8명에 불과하고 이 중 한 명이 모든 회계 처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 보완하면 될 일이지 횡령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말했다.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 있나’ 걱정 미국 UCLA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의 유학 비용에 대해서도 윤 당선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 등은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인 윤 당선자의 남편이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2017년 5월 1억 9000만원)과 손해배상금(2018년 7월 8900만원)을 받기 전인 2016년 그의 딸이 유학을 떠났다며 자금 마련 시기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딸이 2016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비학위 1년 과정을 다닐 때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2018년 9월 UCLA 석사과정에 진학한 뒤 6학기 동안 학비(6만 620달러)와 기숙사비(2만 4412달러) 등 8만 5000달러(약 1억 400만원)를 배상금으로 충당했다”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TV조선 기자가 UCLA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딸의 사는 곳, 무슨 차를 모는지 등을 취재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채널A 기자 3명은 현재 딸이 머무는 서울 집을 찾아와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이 있느냐’며 걱정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는 이날 페이스북에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며 “겁나지 않는다. 여성, 평화, 인권의 가시밭길로 들어선 사람이 겪어야 할 숙명으로 알고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 해결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왜 그러시는지 안다. 수많은 활동가가 곁을 떠날 동안 끝까지 할머니와 함께한 사람이 나”라면서 “그런 제가 국회로 간다고 했을 때 굉장히 신나셨는데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배신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 만남을 시도하겠다”고 했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주선한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가 수요집회 중단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수요시위는 계속해야 한다. 최씨의 발언은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스피커’가 되려고 하는지 가슴 아프다”며 “피해자와 활동가를 분열하려는 언행을 중단하고 함께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의 사퇴 요구에 대해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저를 지지해 주는 세계 각지 동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일본과 일본 정부, 일본 시민사회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언론에 엠바고로 풀린 정도만 통보받아 주점 3000만원? 행사 모든 비용 합친 것 딸 시카고 학교서 1년간 전액 장학금 UCLA는 남편 배상금… 말 바꾼 적 없다 일부 언론, 딸 車 캐고 다녀… 조국 떠올라 이용수 할머니와 오해 풀기 위해 만날 것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요집회를 이끌었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윤 당선자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딸의 유학비와 관련해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일에 책임지고 비례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선 “사퇴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거부했다. ●부모님·시어머니 재산 다 합쳐서 8억 윤 당선자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방 70주년을 맞아 위안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책임감으로 외교부와 수차례 접촉해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며 “그때마다 외교부 담당 국장은 진전된 내용이 없다고 하다가 돌연 12월 27일 밤 기밀유지 조건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국고 거출 발표가 있을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언론 엠바고였고, 10억엔 위로금 조성 등 구체적인 양국 합의 내용은 28일 아침 알았다는 게 윤 당선자의 주장이다. 그는 또 “외교부가 15차례 위안부 피해자 측과 상의했다는 건 사실과 맞지 않다”며 “그건 우리들이 합의에 대해 요구하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만난 거지 그들이 어떻게 하겠다고 설명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은 30년간 정의기억연대(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일한 윤 당선자가 8억원이 넘는 재산을 신고하고, 딸을 미국 유학까지 보낸 사실을 근거로 거액의 월급을 챙기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현금 지원은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그 얘기까지 해야 하느냐”며 “정대협 간사를 할 때는 1992년 (월급) 30만원을 받았고, 해가 지나면서 2002년에 150만원을 받았다. 활동비가 인상되면서 270만원, 300만원을 받았는데 지난해 이사회가 350만원으로 올려 준다고 하기에 거부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면서 8억 3591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부모님이 평생 사신 아파트, 제 아파트, 승용차, 시어머니가 사시는 방 한 칸짜리 빌라까지 다 포함해서 써낸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 3월 22일까지 상임대표를 맡았던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오해라고 반박했다. 특히 정의연이 2018년 후원의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종로구 주점 옥토버페스트에서 실제론 430만원을 써 놓고, 이 주점 한 곳에서 3339만원을 지출한 것처럼 부풀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3339만원은 감사패, 현수막 등 행사 준비 비용을 모두 합한 금액”이라며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정의연 활동가는 8명에 불과하고 이 중 한 명이 모든 회계 처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 보완하면 될 일이지 횡령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말했다.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 있나’ 걱정 미국 UCLA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의 유학 비용에 대해서도 윤 당선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 등은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인 윤 당선자의 남편이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2017년 5월 1억 9000만원)과 손해배상금(2018년 7월 8900만원)을 받기 전인 2016년 그의 딸이 유학을 떠났다며 자금 마련 시기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딸이 2016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비학위 1년 과정을 다닐 때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2018년 9월 UCLA 석사과정에 진학한 뒤 6학기 동안 학비(6만 620달러)와 기숙사비(2만 4412달러) 등 8만 5000달러(약 1억 400만원)를 배상금으로 충당했다”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TV조선 기자가 UCLA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딸의 사는 곳, 무슨 차를 모는지 등을 취재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채널A 기자 3명은 현재 딸이 머무는 서울 집을 찾아와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이 있느냐’며 걱정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는 이날 페이스북에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며 “겁나지 않는다. 여성, 평화, 인권의 가시밭길로 들어선 사람이 겪어야 할 숙명으로 알고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 해결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왜 그러시는지 안다. 수많은 활동가가 곁을 떠날 동안 끝까지 할머니와 함께한 사람이 나”라면서 “그런 제가 국회로 간다고 했을 때 굉장히 신나셨는데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배신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 만남을 시도하겠다”고 했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주선한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가 수요집회 중단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수요시위는 계속해야 한다. 최씨의 발언은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스피커’가 되려고 하는지 가슴 아프다”며 “피해자와 활동가를 분열하려는 언행을 중단하고 함께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의 사퇴 요구에 대해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저를 지지해 주는 세계 각지 동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일본과 일본 정부, 일본 시민사회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언론에 엠바고로 풀린 정도만 통보받아 주점 3000만원? 행사 모든 비용 합친 것 딸 시카고 학교서 1년간 전액 장학금 UCLA는 남편 배상금… 말 바꾼 적 없다 일부 언론, 딸 車 캐고 다녀… 조국 떠올라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요집회를 이끌었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윤 당선자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딸의 유학비와 관련해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일에 책임지고 비례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 “사퇴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거부했다. 윤 당선자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방 70주년을 맞은 해라 위안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고 외교부와 수차례 접촉해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며 “그때마다 외교부 담당 국장은 일본 정부의 진전된 태도가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12월 27일 밤 기밀유지 조건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국고 거출 발표가 있을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언론에도 엠바고 상태로 공유된 내용이었고, 10억엔 위로금 조성 등 구체적인 양국 합의 내용은 28일 아침 알았다는 게 윤 당선자의 주장이다. 보수 진영은 30년간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일한 윤 당선자가 8억원이 넘는 재산을 신고하고, 딸을 미국 유학까지 보낸 사실을 근거로 거액의 월급을 챙기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현금 지원은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그 얘기까지 해야 하나”라며 “정대협 간사할 때는 1992년 (월급) 30만원을 받았고, 해가 지나면서 2002년에 150만원을 받았다. 활동비가 인상되면서 270만원, 300만원을 받았는데 지난해 이사회가 350만원으로 올려 준다고 하기에 거부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면서 8억 3591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부모님이 평생 사신 아파트, 제 아파트, 승용차, 시어머니가 사시는 방 한 칸짜리 빌라까지 다 포함해서 써낸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 3월 22일까지 상임대표를 맡았던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오해이며 횡령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일부 언론은 정의연이 2018년 후원의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종로구 주점 옥토버페스트에서 430만원을 썼는데, 마치 해당 주점 한 곳에서 3339만원을 지출한 것처럼 부풀렸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윤 당선자는 “감사패, 현수막 등 행사 준비 비용을 모두 합한 금액”이라면서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정의연 활동가는 8명에 불과하고 이 중 한 명이 모든 회계 처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 보완하면 될 일이지 횡령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말했다. 미국 UCLA에서 피아노 전공을 공부하는 딸의 유학 비용에 대해서도 윤 당선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 등은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인 윤 당선자의 남편이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2017년 5월 1억 9000만원)과 손해배상금(2018년 7월 8900만원)을 받기 전인 2016년 그의 딸이 유학을 떠났다며 자금 마련 시기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딸이 2016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비학위 1년 과정을 다닐 때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2018년 9월 UCLA 석사과정에 진학한 뒤 6학기 동안 학비(6만 620달러)와 기숙사비(2만 4412달러) 등 8만 5000달러(약 1억 400만원)를 배상금으로 충당했다”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TV조선 기자가 UCLA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딸의 사는 곳, 무슨 차를 모는지 등을 취재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채널A 기자 3명은 현재 딸이 머무는 서울 집을 찾아와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이 있느냐’며 걱정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는 이날 페이스북에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며 “겁나지 않는다. 여성, 평화, 인권의 가시밭길로 들어선 사람이 겪어야 할 숙명으로 알고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왜 그러시는지 안다. 수많은 활동가가 곁을 떠날 동안 끝까지 할머니와 함께한 사람이 나”라면서 “그런 제가 국회로 간다고 했을 때 굉장히 신나셨는데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배신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 만남을 시도하겠다”고 했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주선한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가 수요집회 중단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수요시위는 계속해야 한다. 최씨의 발언은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스피커’가 되려고 하는지 가슴 아프다”며 “피해자와 활동가를 분열하려는 언행을 중단하고 함께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의 사퇴 요구에 대해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저를 지지해 주는 세계 각지 동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일본과 일본 정부, 일본 시민사회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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