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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의 불찰이고 잘못” 홍진영 논문 표절 의혹…조선대 ‘불똥’

    “저의 불찰이고 잘못” 홍진영 논문 표절 의혹…조선대 ‘불똥’

    대학 조만간 입장 발표홍씨 학위 취소될 수도 조선대학교가 가수 홍진영이 학위 논문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시민단체 ‘사법시험 준비생 모임’(사준모)이 교육부에 홍씨의 논문을 포함해 경영대학원 학위 논문에 대한 전수조사를 교육부에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민일보는 홍진영의 석사 논문을 표절 심의 사이트 ‘카피킬러’로 검사한 결과 표절률이 74%로 나왔다고 보도했다. 홍진영의 부친이 조선대 교수로 재직한 것이 학위 취득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논란도 일었다. 홍진영은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10여년을 땀과 눈물을 쏟으며 열심히 살았지만 이런 구설에 오르니 저 또한 속상하다. 이 모든 게 저의 불찰이고 잘못”이라며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홍진영은 2009년 ‘한류를 통한 문화콘텐츠 산업 동향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조선대 무역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 2012년에는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에 조선대 관계자는 9일 “언론에서 홍진영 씨 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고 시민단체도 이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조만간 대학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조선대는 홍진영이 학위 반납 의사를 밝힌 만큼 학내 절차를 거쳐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하고 학위를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부정한 방법으로 학위를 취득한 경우에 총장이 이를 취소할 수 있다. 대학가에 따르면 석사 논문은 통상 심사위원 3명이, 박사 논문은 심사위원 5명이 5차례 걸쳐 논문을 심사해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모든 석·박사 논문은 지도교수 지도를 받게 돼 있다. 따라서 홍진영의 표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해당 지도교수와 심사위원들은 최소한 ‘학문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논문 표절 논란’ 홍진영, 방송서 해명까지 했지만... “논문 반납”

    ‘논문 표절 논란’ 홍진영, 방송서 해명까지 했지만... “논문 반납”

    가수 홍진영이 석사 학위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SNS를 통해 공식 사과하며 석·박사 논문을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홍진영 “석·박사 논문 반납...이유 불문하고 죄송” 지난 6일 홍진영은 “먼저 불미스러운 일로 인사를 올려 죄송합니다. 지난 10여 년을 땀과 눈물을 쏟으며 열심히 살았지만 이런 구설에 오르니 저 또한 속상합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고 말문을 열었다.홍진영은 “저는 2009년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을 취득했습니다. 시간을 쪼개 지도 교수님과 상의하며 최선을 다해 논문을 만들었습니다”면서 “하지만 당시 관례로 여겨졌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 단지 몇%라는 수치로 판가름되니 제가 어떤 말을 해도 변명으로 보일 수밖에 없어 답답하고 속상할 뿐입니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홍진영은 “이 또한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습니다. 과한 욕심을 부린 것 같습니다”라면서 “죄송합니다. 이유 불문하고 이런 논란에 휘말린 제 모습을 보니 한없이 슬픕니다. 그리고 지난 날을 돌아보며 제가 또 다른 욕심을 부린 건 없었나 반성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석사 및 박사 논문을 반납하겠습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거 같습니다”면서 “이 모든 게 다 저의 불찰이고 잘못입니다.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조선대 전 교수 “홍진영 논문, 표절률 99.9%” 앞서 한 매체는 홍진영의 논문 표절 논란을 제기한 이후 홍진영을 가르쳤던 조선대 무역학과 전 교수 A씨와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A씨는 “홍진영과 학부와 석사, 박사까지 모든 과정의 학점을 준 경험에 비춰봤을 때, 해당 논문들은 모두 거짓이라고 증언할 수 있다. 홍진영의 부친이 같은 학교 교수라 입김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또한 A씨는 “홍진영의 석사 논문 표절률이 74%라는 기사는 틀렸다. 74%가 아니라 99.9%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홍진영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석사 논문과 박사 논문 모두 가짜”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5일 홍진영의 조선대 무역학과 석사 논문 ‘한류를 통한 문화콘텐츠 산업 동향에 관한 연구’에 대해 표절 논란이 제기됐다. 표절 심의 사이트 ‘카피킬러’ 검사에 따르면, 홍진영의 논문은 표절률 74%를 기록했다. 카피킬러에 따르면 홍진영 석사 논문은 전체 문장 556개 중 6개 어절이 일치하는 동일 문장이 124개였고, 표절로 의심되는 문장은 365개로 확인됐다. 논란이 제기된 이후 홍진영 소속사 아이엠에이치엔터테인먼트 측은 “홍진영은 자신의 조선대 무역학과 석사 논문 ‘한류를 통한 문화콘텐츠 산업 동향에 관한 연구’ 연구 및 작성 과정에 성실하게 참여했다”면서 그의 논문 심사를 맡았던 교수의 의견을 전달했다. 해당 교수에 따르면, 홍진영이 석사 논문 심사를 받았던 때는 2009년이며 당시 논문 심사에서는 인용 내용과 참고 문헌 등 주석을 많이 다는 것이 추세였다. 이 교수는 많은 인용이 있어야 논문 심사 통과를 할 수 있었던 시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카피킬러 시스템은 2015년부터 대학에서 의무적으로 사용했으며 50퍼센트가 넘는 표절을 걸러내기 위해 시작된 제도다. 해당 시스템이 없었던 2009년 심사된 논문을 검사 시 표절률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라고 해명했다. 홍진영 “그런 걸로 왜 거짓말을 하겠냐”홍진영은 과거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논문에 관한 의혹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홍진영은 아버지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임을 밝힌 홍진영은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돈 주고 박사 땄냐’, ‘아빠가 대신 써준 거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자신을 둘러싼 논문 의혹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하겠냐. 그리고 저는 어차피 가수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강단에 설 생각도 없고 계속 가수 활동을 할 거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거짓말을) 했겠냐”며 논문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승리 눈앞 바이든의 ‘반쪽’, 풀타임 교직 병행하는 첫 퍼스트 레이디 될듯

    승리 눈앞 바이든의 ‘반쪽’, 풀타임 교직 병행하는 첫 퍼스트 레이디 될듯

    조 바이든(78)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6일(현지시간) 프라임타임대 연설을 통해 대선 승리를 선언할지 초미의 관심을 끄는 가운데 핵심 참모들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이렇게 조심스럽고 극도로 신중한 행보를 하는 가운데 그가 당선의 영광을 누린다면 부인 질 바이든(69) 여사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백악관에서의 내조와 풀타임 직장을 병행하는 퍼스트레이디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여성 잡지 마리끌레르가 전했다. 바이든 후보는 7일 오전 8시(한국시간) 현재 조지아(99% 개표), 네바다(92% 개표), 애리조나(94% 개표), 펜실베이니아(96% 개표) 4개주 모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앞서고 있다. 조지아는 표 차가 4182표, 펜실베이니아는 1만 4541표, 네바다는 2만 137표, 애리조나는 3만 9400표다. 여전히 대선 승리에 필요한 270명의 선거인 가운데 253명만 확보한 상태다. 여러 주에서 재검표 요구가 잇따르고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상 불복을 재다짐한 상황이어서 그녀의 남편이 당선인으로 불리는 일은 더욱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사실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은 느슨하게 규정돼 있고 처우도 열악하다. 봉급이라고는 한푼도 없고, 4년이나 8년 동안 내리 공적 임무만 잔뜩 부과된다. 행사 계획을 짜고 만찬 준비를 하는 등 허드렛일만 널려 있다. 역사상 뚜렷한 족적을 남긴 퍼스트 레이디라면 힐러리 클린턴이 남편 빌에 의해 백악관 건강보험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은 것, 로라 부시가 어린이 문맹 퇴치 캠페인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여성들 억압에 대해 의회에 나와 연설한 일, 미셸 오바마가 소아 당뇨병을 퇴치할 캠페인을 벌이고 여성의 교육 기회를 개선하는 것과 군인 가족을 지원한 일이 손에 꼽을 만한데 질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눈길이 간다. 1951년 뉴저지주에서 질 트레이시 제이콥스로 태어난 그녀는 필라델피아 외곽에서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다섯 자매의 맏이로 달리기를 아주 좋아했고, 장난꾸러기로 악명을 떨쳤다. 브랜디와인 주니어 칼리지 대학에서 패션산업을 공부한 뒤 델라웨어 대학으로 편입, 영어를 전공했다. 공립 고교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 읽기를 가르쳤고, 정신병원에서 10대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가르쳤다. 읽기와 영어로 석사 학위를 땄고, 2007년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 과정이던 1970년 빌 스티븐슨과 결혼했으나 4년 뒤 이혼했고 일년 뒤 막 상원의원에 당선된 조를 만났다. 조의 남동생 프랭크가 다리를 놓았다. 질은 2008년 잡지 보그 인터뷰를 통해 “그가 문에 들어섰는데 스포츠 코트에 슬리퍼를 끌고 왔다. 난 속으로 ‘주님, 이런 남자랑은 백만년이 돼도 엮일 것 같지 않아요’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는 나보다 아홉 살 위였다! 하지만 우리는 필라델피아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다. 집에 돌아와 문앞에 섰는데, 70년대 사내들은 문앞에서 추근대곤 했다. 뭐 난 그리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쨌든 그는 악수를 하더니 잘 자라고 인사했다. 난 계단을 올라가 엄마를 불렀는데 새벽 1시가 넘었더라. ‘엄마, 마침내 신사 분을 만났어’라고 말씀드렸다”고 털어놓았다.1977년 6월 17일 뉴욕에서 결혼했는데 다섯 번째 프러포즈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녀가 올바른 선택을 하는지 자신이 없어서 뿐만 아니라 그에겐 (대선 막판까지 아버지를 힘들게 했던) 헌터와 (2015년 악성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보 두 아들이 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 부인은 1972년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언니와 함께 먼저 세상과 작별했다. 질은 보그 인터뷰를 통해 “난 그들에게 또 한번 엄마를 잃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100% 확신했다. 커다란 일보였다”고 돌아봤다. 두 아들과 1981년 6월에야 함께 살게 된 친딸 애슐리를 양육하느라 직장을 잠시 쉰 그녀는 곧바로 교직에 돌아오면서 동시에 학위 공부에 매진했다. 남편 조가 반세기 상원의원으로 일하는 내내 교직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부통령 부인으로 미셀 오바마를 도왔지만 노던 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NOVA)에서 영어 교수 일을 계속했다. 세컨드 레이디가 바깥 일을 병행하며 월급을 받은 것도 그녀가 처음이었다. 미셸도 그녀가 두 일을 병행하는 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털어놓곤 했다. 2016년 한 인터뷰를 통해 “질은 늘 시험지를 채점하고 있었다. 재미있게도 난 까먹다가 ‘아 그렇지, 낮에도 직장을 다니시지!’라고 탄성을 지르곤 했다. 그러면 그녀는 시험지를 덮었다. 그러면 난 ‘보세요! 당신은 직업이 있잖아요! 말해줘요! 그게 어떤 일인지 말해줘요!’라고 말하곤 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질은 커뮤니티 칼리지를 돕거나 미셸을 도와 군인 가족을 응원하는 캠페인을 함께 주도했고, 올해 암 환자들의 고충을 듣는 투어를 남편과 함께 했다. 올해 대선 유세에 적극적으로 합류해 처음으로 교직 일을 여러 차례 휴가를 내 빠졌다. 그녀는 CNN 방송에 “남편이 늘 날 응원했다. 그리고 이번은 알다시피 나도 변화를 원하기 때문에 그를 응원할 결정적 기회다. 난 새로운 대통령을 원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퍼스트 레이디가 된 뒤에도 마찬가지로 여러 일을 병행할 것이라고 했다. CNBC 인터뷰를 통해 “교육이 올바로 서야 한다. 그 다음 군인 가족이다. 난 전국을 돌며 공짜로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좋은 읽기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학교에서의 평등이 요구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 있어서도 미국의 지위가 지금보다 나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유세를 하면서도 온라인 교직 훈련 과정에 참여했다고 일간 워싱턴 포스트가 전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하다. 연초에 CBS 선데이 모닝 인터뷰를 통해 “백악관에 들어가도 난 계속 가르칠 것이다. 난 사람들이 교사를 평가하고 그들의 기여를 알게 하며 그들의 직무를 고무시키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엄마의 강인함 본받고 싶어”… 당당한 순자씨

    “엄마의 강인함 본받고 싶어”… 당당한 순자씨

    한국서 태어나 미군 아버지 따라 이민터코마 시장 9년 간 고교 졸업률 올려김창준·앤디 김 이어 세 번째 한국계“이 나라에 이민자로 온 엄마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그녀의 회복력과 인내력, 강인함을 본받고 싶다.” 미국에서 첫 한국계 여성 연방의원으로 당선된 메릴린 스트릭랜드(58·한국명 순자)는 터코마 시장 시절인 2016년 워싱턴대학 매거진에 이같이 밝혔다. 스트릭랜드는 3일(현지시간) 실시된 선거에서 워싱턴주 제10선거구에 민주당으로 출마해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2위를 하며 본선에 진출한 같은 당의 베스 도글리오 워싱턴주 하원의원을 물리치고 승리했다. 중간 집계 결과 58.3%의 표를 얻어 41.7%에 그친 도글리오 의원을 눌렀다. 이번 승리로 스트릭랜드는 미 연방 하원의 첫 한국계 여성 의원이자 워싱턴주의 첫 흑인 하원의원이 됐다. 또 김창준 전 하원의원, 이번에 재선에 성공한 앤디 김(민주·뉴저지주 제3선거구) 하원의원에 이어 하원의원에 뽑힌 세 번째 한국계 미국인이 됐다.그는 최근 노스웨스트 아시안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절반은 한국인, 절반은 흑인인 여성이라고 규정하며 “교육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잘하는 것은 내 부모가 심어준 가치였다. 나는 운이 좋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엄마는 내가 학업을 증진할 일을 하도록 확실히 가르치려고 했다”면서 “자신이 정규교육을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완료하기를 매우 원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교육에 관심이 높은 스트릭랜드는 터코마 시장을 하면서 55%에 그쳤던 고교 졸업률을 89%로 대폭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는 한국인 어머니 김인민(91)씨와 미군인 흑인 아버지 윌리 스트릭랜드 사이에서 1962년 9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1살 때 아버지가 버지니아주의 포트리 기지로 배치되면서 미국으로 건너온 스트릭랜드는 마운트터코마고교를 졸업한 뒤 워싱턴대에서 경영학을, 클라크애틀랜타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전공했다. 노던 생명보험사, 스타벅스 등을 거쳐 터코마 시의원으로 선출되며 정계에 입문한 스트릭랜드는 2년간의 시의회 경험 뒤 터코마 시장에 당선돼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시장으로 봉사했다. 터코마 시장으로는 첫 동양계였으며, 흑인 여성이 터코마 시장에 당선된 것도 처음이었다. 시장직을 마친 뒤에는 시애틀 메트로폴리탄 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스트릭랜드는 그동안 한국계란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의 선거운동 홈페이지에는 당선될 경우 자신이 “연방정부 차원에서 워싱턴주를 대표하는 첫 흑인 미국인이자 230년의 의회 역사상 첫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될 것”이라고 소개돼 있다. 그는 당선 시 의료와 교육, 청정에너지 일자리가 최우선 순위 의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내 이름은 순자…한국의 딸” 한국계 여성 첫 美연방의원 탄생(종합)

    “내 이름은 순자…한국의 딸” 한국계 여성 첫 美연방의원 탄생(종합)

    워싱턴주 제10선거구 출마해 당선 미국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지고 있는 미국에서 첫 한국계 여성 연방 의원이 탄생했다. AP통신은 4일(현지시간) 한국계 흑인 여성인 메릴린 스트릭랜드(58) 후보가 3일 실시된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고 전했다. 스트리클런드 후보는 워싱턴주 제10선거구에 민주당으로 출마해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2위를 하며 본선에 진출한 같은 당의 베스 도글리오 워싱턴주 하원의원을 꺾고 승리했다. 그는 중간 집계 결과 58.3%의 표를 얻어 41.7%에 그친 도글리오 의원을 17%p 격차로 앞섰다. 그는 자신의 선거운동 홈페이지에 “당선되면 230년 미국 의회 역사상 최초로 한국계 여성 하원의원이 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번 승리로 스트릭랜드 당선인은 미 연방하원의원의 첫 한국계 여성 의원이자, 워싱턴주 첫 흑인 하원의원이 됐다. 한국계로서는 김창준 전 하원의원과 이번에 뉴저지주 제3 선거구에서 재선에 성공한 앤디 김 하원의원에 이어 세번째 하원의원인 셈이다.스트릭랜드 당선인은 지난 1962년 9월 서울에서 한국인 어머니 김인민 씨와 흑인인 미국인 아버지 윌리 스트릭랜드 사이에서 태어났다. 1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온 스트릭랜드 당선인은 마운트타코마 고교를 졸업했으며, 워싱턴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이어 클라크애틀랜타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거쳤다. 노던 생명보험사, 스타벅스 등에서 회사 생활을 하다가 2008년부터 2년 동안 터코마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다 2010년에는 터코마 시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첫 동양계 타코마 시장이었으며, 흑인으로서도 처음이었다. 시장직을 마친 뒤에는 시애틀 메트로폴리탄 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스트릭랜드 당선인은 평소 한국계라는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선거운동 홈페이지에도 “(자신이 당선될 경우) 연방정부 차원에서 워싱턴주를 대표하는 첫 흑인 미국인이자, 230년 의회 역사상 첫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될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지난달 노스웨스트 아시안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1.5세대로 여겨지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교육열 높은 어머니, 대학은 새로운 기회” 그는 현지 언론인 시애틀 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한국이름은 순자. 나는 한국의 딸”이라고 본인을 소개했으며, “어머니는 일제 치하에서 살아남은 한국인으로 엄청난 교육열을 갖고 계셨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는 자신이 정규 교육을 마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내가 그것을 갖기를 매우 원했다”며, “그녀는 대학에 가는 것을 하나의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스트릭랜드 당선인은 지난 2016년 워싱턴대 매거진에서도 “이 나라에 이민자로 온 엄마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며, “나는 그녀의 회복력과 인내력, 강인함을 본받고 싶다”고 밝혔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독립 탄원… 항일투쟁 외교 전선의 선구자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독립 탄원… 항일투쟁 외교 전선의 선구자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1월 윌슨 미국 대통령이 천명한 민족자결주의는 나라를 빼앗긴 약소국들을 독립의 희망에 부풀게 했다. 그런 배경에서 같은 해 8월 중국에서 민족지도자들이 발족한 신한청년당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해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기로 했다. 파리에 대표로 간 인물이 김규식이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김규식은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국제 정세에 밝아 적임자였다. 김규식은 파리로 떠나기 직전 결혼한 김순애와 바로 이별해야 했다. 여운형과 김순애 등은 국내외 각지로 가서 파견 경비를 모으는 한편 한국 대표의 외교활동에 힘을 실어 주려면 대규모 독립운동이 필요하다고 알렸다. 이런 활동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김규식이 파리에 도착한 것은 국내에서 일제의 탄압 속에 만세운동이 계속되던 1919년 3월 13일이었다. 김규식의 임무는 회의석상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고 비망록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전승국인 일본의 방해로 애당초 불가능했다. 이를 예상한 김규식은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먼저 파리 샤토가 38호에 한국공보국을 설치했다. 각국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언론, 정당은 물론 사회주의 조직과도 접촉했다. 그를 통해 일제의 죄악상을 폭로하고 독립의 정당성을 홍보했다.●한국 독립 문제 국제적 부각… 동정 여론 형성 한국공보국은 공보국회보를 발간하고 ‘한국독립에 대한 탄원서’를 회의에 제출했다. 김규식이 만났던 미국 인사는 외교관이자 언론인인 스티븐 본잘이라는 사람이었다. 본잘은 한국에 호의적이기는 했지만 결정권이 없었다. 그의 대답은 “우리가 유럽에서 전범을 응징하면 나중에 국제연맹이 일본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였다. 김규식은 좌절하지 않았다. 조르주 클레망소 강화회의 의장에게 임정 대통령 이승만 명의의 서한을 전달했다. 김규식이 파리에 머물던 4월 11일에는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돼 대표단 지원사업은 임시정부로 이관됐다. 임정은 공보국을 임정 파리위원부로 개칭하고 김규식을 임정 외무총장 겸 파리위원부 위원장으로 임명해 힘을 실어 주었다. 김규식은 4월 26일에는 ‘통신국회보’를 발간해 3·1운동 등 독립운동 소식을 알렸다. 한일합병의 무효화 등을 요구하는 20개 항목을 담은 독립공고서를 비롯한 서한을 강화회의 이사회 위원들과 각국 정부에 여러 차례 보냈다. 달걀로 바위 치기 같았지만 김규식의 다각적인 노력에 침묵을 지키던 유럽 신문들이 움직여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규식의 활동은 열강들의 외면으로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 문제를 국제적으로 부각시키고 동정적 여론을 형성하는 간접적인 성과는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사(尤史) 김규식은 1881년 1월 29일 부산 동래에서 김지성과 경주 이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구한말 선전관을 지낸 부친은 일제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갔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 김규식은 사실상 고아가 됐다. 큰아버지 집에 맡겨졌지만 형편이 어려워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어린 나이에 고난을 겪었다.●16세 美 유학… 박사과정 장학생 접고 귀국길 그를 구한 사람은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였다. 그의 아내 릴리아스는 이런 글을 남겼다. “언더우드는 분유와 약을 들고 가마를 타고 아이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 아이는 너무 굶주려서 먹을 것을 달라고 울부짖으며 벽지를 뜯어내어 삼키려고까지 했다.” 언더우드는 병든 김규식을 극진히 보살피고 입양했다. 5세 때 김규식은 언더우드가 세운 고아학교(경신학교)에 입학했는데 영어를 대단히 빨리 익혀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어 1894년 한성 관립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한 김규식은 독립신문사에 입사하고 독립협회에도 가입했다. 김규식은 16세가 된 1897년 서재필의 권유와 언더우드의 후원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동부 버지니아주 로노크대학에 입학했다. 예과를 2등으로 마치고 본과에서도 전 과목 평균 90점 이상을 받았다. 외국어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전교강연대회에서 2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스스로 학비를 조달해야 했지만 1903년 전체 3등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한 해 가을 그는 프린스턴대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 1년 만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장학생으로도 선발됐지만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귀국을 결심하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김규식은 은인인 언더우드 목사를 돕는 일부터 시작했다. 언더우드의 비서와 주일학교 교장직을 맡으면서 새문안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거기에 안주할 수 없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105인 사건’을 일으켜 독립운동가와 기독교 지도자들을 대거 구속했을 때 투옥은 모면했지만 일제의 감시와 탄압은 심해졌다. 김규식은 해외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참여할 결심을 굳혔다. 일제의 추적을 따돌리고자 호주로 간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상하이로 향했다. 상하이에 도착한 때는 32세 때인 1913년 4월 중순이었다. 신규식, 박은식 등이 창설한 동제사(同濟社)가 프랑스 조계에 설립한 박달학원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중국에서의 첫걸음을 떼었다.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돼 임무를 마친 김규식은 임정 구미위원부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돼 1919년 8월 22일 미국으로 건너갔다. 구미위원부는 대한민국을 대표해 외교 활동을 벌이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사실상 정부 기능을 수행했다. 김규식은 미국 국무부 당국자들에게 독립운동 지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윌슨과 관리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냉대를 받았다. 구미위원부는 한국친우회를 결성하고 대중 연설이나 홍보물 배포, 신문·잡지 기고 등의 간접적 활동을 폈다. 이는 미국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미쳐 1920년 3월 미국 상원에 한국 독립안이 상정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김규식은 1921년 1월 상하이로 돌아가 임정에 합류했다. 그러나 임정의 내부 갈등에 염증을 느껴 구미위원부 위원장과 학무총장을 사임하고 한중호조사(韓中互助社)를 창립해 한중 합작으로 항일운동을 벌였다. 1921년 극동피압박민족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규식은 참가를 결정했다. 고비사막을 횡단하고 러시아 이르쿠츠크를 거쳐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개막된 회의에 참석했다. 50여명이 참가한 한국대표단은 레닌으로부터 지원을 약속받았다. 중국으로 돌아온 김규식은 복단·동방·북양대학 교수로 일하는 한편 삼일중학을 세웠다. ●독립단체 통합 참가, 민족혁명당 국민부 부장에 1925년부터 김규식은 독립운동 계파 통합을 위한 민족유일당운동에 참가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하자 교육에만 열중했다. 1935년 7월에는 난징에서 한국독립당, 의열단 등 5당 통합으로 창당된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과 국민부 부장으로 선임됐다. 1942년에는 좌우익 세력을 대표하는 한국독립당과 광복군, 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가 임정을 중심으로 통합했다. 사천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김규식은 충칭 임시정부로 와서 국무위원과 선전부장으로 선임됐다. 1944년에는 임정 부주석에 취임했다.광복 후에도 그의 통합정신은 이념과 노선을 초월한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으로 이어졌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란하지 않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9월에 납북당했다. 평북 만포진까지 끌려간 김규식은 그해 12월 10일 동상과 천식 등으로 고통받으며 69세를 일기로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다. 정부는 1989년 김규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고모이기도 한 부인 김순애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2016 재현” 벼락치기 트럼프 vs “연패 없다” 집중공략 바이든

    “2016 재현” 벼락치기 트럼프 vs “연패 없다” 집중공략 바이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 마지막 이틀간 무려 10곳을 돌며 ‘막판 벼락치기’ 강행군을 펼친 반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펜실베이니아를 찾아 ‘다지기 유세’에 나섰다. 2016년 대선에서 6개 핵심 경합주를 모두 휩쓴 영광을 재현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은 열세 극복을 위해 되도록 많은 지역을 돌아다녀야 했지만 바이든 후보는 자신의 고향이자 이번 대선의 핵심 승부처인 펜실베이니아 탈환을 목표로 현장을 누볐다.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126명의 선거인단을, 바이든 후보는 217명을 확보한 것으로 추산된다. 경합주 선거인단 195명으로 바이든이 핵심지역의 우세를 이어 가면 4년 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패배를 설욕할 수 있다. 다급한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부터 선거일 전 마지막 이틀간 미시간·아이오와·노스캐롤라이나·조지아·플로리다·위스콘신주 등 6개주 10곳에서 쉬지 않고 현장 유세를 이어 갔다. 이날 마지막 여정인 플로리다주 오파로카에서 오후 11시부터 자정을 넘겨서까지 지지자들을 만나는 등 총력전을 벌였다. 그는 앞서 노스캐롤라이나 히코리 유세에서 “바이든이 끼어들면 경제는 무너지고 미국은 자유낙하에 빠져 불황이 온다”며 “이번 대선에서 승리해 4년 더 백악관에 머물 것”이라고 승리를 자신했다. 트럼프는 이튿날인 2일 4년 전과 마찬가지로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오후 10시 30분 피날레 연설을 하며 22개월간의 대선 레이스를 마무리했다. 트럼프가 하루 동안 3700㎞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바이든은 선거 전 이틀을 펜실베이니아에만 쏟아부었다. 이곳의 선거인단은 20명으로 러스트벨트 3개주 가운데 가장 많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은 이곳에서 불과 0.7% 포인트 차이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눌러 백악관 입성의 기틀을 마련했다. 바이든은 6개 경합주 중 남부 선벨트 3개주인 플로리다(1.4% 포인트), 노스캐롤라이나(0.3% 포인트), 애리조나(1.2% 포인트)에서 초방빅 우세를 보이고 있으며, 북부 러스트벨트 3개주 중 미시간·위스콘신에서 5.1% 포인트, 6.6% 포인트씩 앞서고 있다. 4.3% 포인트로 그나마 여유롭게 앞서고 있는 펜실베이니아까지 잡으면 소위 ‘블루 월’(푸른 벽·민주당 장벽)을 만들어 바이든의 대권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그는 이날 필라델피아 유세에서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불과 4만 4000표로 이곳에서 이겼다. 이제 그가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펜실베이니아는 이번 선거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바이든은 2일 밤 펜실베이니아 탈환에 대한 결의를 다진다는 의미에서 피츠버그에서 마지막 유세를 펼쳤다. 이곳은 그가 2019년 4월 처음 유세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미 언론은 2016년 선거 직전 클린턴 후보가 2%대로 앞섰던 것과 달리 바이든 후보는 7%대의 격차를 유지한다는 점, 당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교외지역 거주자·백인 여성·노인 등 유권자 사이에서 바이든 지지세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대부분 바이든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백신 개발과 같은 “10월의 이변은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 실패도 표심에 영향을 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아이오와 지역 일간지인 디모인 레지스터와 여론조사기관 셀저스의 설문(10월 26~29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48%로 바이든(41%) 후보를 7% 포인트 따돌렸다. 해당 조사는 2016년에도 이 지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격차 큰 승리를 예견한 바 있다. 선거분석사이트인 ‘538’은 “트럼프가 이길 10%의 확률은 제로가 아니다”라고 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는 하나… 대통합의 ‘화엄 도량’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는 하나… 대통합의 ‘화엄 도량’

    석가모니의 깨달음으로 불교가 시작했다. 스스로 해탈하려는 소승에 더해 중생을 구제하려는 대승불교로 확대되었다. 대승의 모든 신앙을 통합한 것이 화엄종이며, 그 방대한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이 화엄경이다. 지리산 화엄사는 이름 그대로 화엄사상을 건축으로 구현한 가람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거대한 화엄경의 내용만큼 복잡하고 중층적이다.●화엄종, 화엄경, 창건 화엄사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처음으로 화엄사상을 들여왔으나 그는 계율학을 신라 불교의 근간으로 삼아 전제 왕권 강화에 이바지했다. 다음 세대인 의상대사는 당나라에 유학해 2대 화엄종주 지엄의 수제자가 됐고, 삼국 통일 직후 귀국해 신라 화엄종을 세웠다. 계율학이 분단시대의 부국강병 수단이었다면 화엄종은 통일시대 통합의 국교였다. 의상의 후예들은 각지에 화엄도량을 열었고, 그중 중요한 사찰들을 묶어 화엄십찰이라 불렀다. 화엄사는 마땅히 그중에서도 핵심이었다. 544년 서역의 승려 연기조사가 창건했다는 설은 전설일 뿐이다. 최근 발굴된 기록에 근거해, 연기조사는 국찰 황룡사에서 화엄경 사경을 주도한 이로 8세기 후반에 화엄사를 실질적으로 창건했다는 설이 합리적이다.현재 화엄사의 모습은 임진왜란 후 재건된 결과이며, 8세기 창건 당시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이 시기의 유적은 각황전의 기단과 초석, 그 앞의 큰 석등, 그리고 동5층석탑이다. 창건 가람은 동향으로 앉았고, 각황전 자리에 장육전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장육전과 동5층석탑 사이, 서5층석탑 자리에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서축을 따라 (동)석탑, 금당, 석등, 장육전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1탑 1금당 형식의 가람이었다.현 각황전은 2층이지만 장육전은 3층이었다. 내부에는 화엄경을 정교하게 새겨 넣은 거대한 석경벽을 세웠다. 화엄석경은 임진왜란 때 불타 파괴돼 1만 9000여 파편으로 남아 있다. 추정하면 600여매의 돌판에 총55만여자를 새긴 대규모 경판이었다. 내부 고주가 서 있는 5칸×3칸 기둥 사이 사방으로 석경벽을 두르고, 이를 순회하며 화엄경 전편을 읽을 수 있는 구조였다. 장육전은 곧 건축으로 쓴 화엄경이었고, 화엄사가 화엄종의 종찰이 되는 종교적 근거였다. 장육전 창건과 동시에 특이한 모습의 석탑과 석등을 뒤편 언덕에 조성했다. 탑은 사자 4마리와 가운데 승려 1명이 탑을 받치고 있는 모습의 4사자3층탑이다. 석등 역시 승려 1명이 꿇어앉아 석등을 받치고 있다. 4사자석탑의 인물은 스승이며, 석등의 승려는 제자인 연기조사로 사제 간의 전법을 묘사한 것 같다. 사자탑의 전통은 꾸준해서 고려시대의 사자빈신사지탑이나 홍천 괘석리탑이, 그리고 화엄사 원통전 앞에도 일부가 남아 있다. 화엄사의 사자탑은 그 효시일 뿐 아니라 가장 완벽한 유산이다. ●거듭된 중창과 가람의 대변화 화엄종은 신라 불교의 대세가 됐다. 종교의 거대화는 분열을 수반한다. 후삼국시대, 신라는 쇄락하고 왕건의 후고구려와 견훤의 후백제가 자웅을 겨루던 때다. 거대 화엄종은 왕건 편에 선 희랑과 견훤 편 관혜의 무리로 분화됐다. 북악파인 희랑은 해인사와 부석사에, 남악파인 관혜는 화엄사에 근거지를 두었다. 결과는 왕건과 희랑의 승리,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다. 화엄사의 종단 내 위상이 크게 추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태조 왕건의 마지막 해, 943년에 고려 왕실은 화엄사를 크게 중창했다. 패자 남악파에 대한 승자의 마지막 배려였을까?기존의 대석단을 연장해서 현재와 같이 ㄱ자로 꺾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새로 조성한 북쪽 석단 위에 새로운 불전을 세웠다. 현재의 대웅전 자리다. 기존의 동5층석탑은 마치 대웅전에 속한 탑같이 되었다. 창건기의 금당을 없애고 서5층석탑을 세워 장육전 앞의 탑으로 삼았다. 두 개의 석탑이 동서로 놓여 마치 쌍탑식 가람 같아 보이지만, ‘장육전+서탑’과 ‘대웅전+동탑’의 1탑식 가람 두 개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것이다. 두 탑은 규모와 형태가 유사하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가 많다. 서탑은 일절 장식이 없다. 반면 동탑은 하층기단에 12지상, 상층기단에 8부신중, 1층 몸돌에 사천왕상을 조각했다. 같은 듯 다른 이 형태적 차이는 적어도 150년 이상의 조성시기 차이 때문이다. 새로운 불전과 불상을 모셨다는 것은 신앙의 대상이 더해졌다는 것, 더 나아가 종파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엄석경이 봉안된 기존의 장육전은 여전히 화엄신앙의 중심이었다. 현 각황전 불단 안에는 신라 때 불상을 세웠던 대석이 남아 있다. 아마도 법신, 보신, 화신의 3신불상을 모셨고, 장육전이니 1장 6척(약 4.8m)의 거대한 입상이었을 것이다. 비로자나불 중심의 3신불은 화엄신앙의 핵심이다. 새로 더해진 불전, 현재의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불을 모신 곳으로 선종 계통의 중심 불전이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화엄사는 줄곧 선종을 대표하는 사찰로 등장한다. 고려 불교의 4대 종파는 교종의 화엄종과 법상종, 선종의 천태종과 조계종이었다. 천태종은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선불교를 융합한 종파였고, 종조 대각국사 의천은 화엄사에 각별히 애착이 많았다. 여러 연유로 화엄사는 고려 초에 교종인 화엄종에서 선종인 천태종으로 종파를 바꾸었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기존 화엄에 더해 선불교를 습합한 것은 확실하다. 임진왜란 때 화엄사는 의승병의 근거지였고 불에 타 파괴된다. 남은 것은 석단과 석탑과 석등 그리고 산산조각 난 화엄석경뿐이었다. 40년 후인 1636년에야 중창 재건을 시작했다. 중창주인 벽암대사는 남한산성을 수축한 공을 세운 팔도총섭이었다. 인조의 신임을 얻어 불사를 벌였으나 대웅전 등 겨우 일부만 가능했다. 열악한 경제 여건으로 대규모 다층건물인 장육전 재건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입구에 일주문을, 그 위로 금강문과 천왕문을 세워 긴 진입로를 만들었다.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산중 가람이 되었다. 장육전은 1702년에야 왕실의 후원을 얻어 겨우 중창한다. 그나마 2층으로 줄이고 이름도 각황전으로 바꾸었다. 중창 대웅전에 이미 비로자나의 3신불을 모셨기에 각황전에는 석가불 중심의 3세불과 보살들을 모셨다. 신앙적 내용으로 본다면 대웅전은 대적광전으로, 각황전은 대웅보전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전쟁 후 순서 없이 재건했기에 벌어진 혼란이다. ●중창으로 이룬 연화장 세계 화엄사에는 두 개의 중심이 병존한다. 각황전은 크고 높고, 대웅전은 상대적으로 작고 낮다. 평범한 가람배치라면 각황전의 위세에 대웅전이 눌릴 지경이다. 두 중심을 동등하게 인식할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일주문에서 시작된 진입 동선을 육중한 보제루 앞에서 동쪽으로 틀어 운고각 쪽으로 오르게 했다. 마당 한 귀퉁이에서 중심 공간을 마주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가까운 대웅전은 실제보다 크게, 멀리 있는 각황전은 작게 보인다. 결과적으로 두 중심은 거의 같은 크기와 높이로 인식된다. 건물의 위치와 규모를 바꿀 수 없으니, 인간이 바라보는 시점을 바꾼다. 입체적이고 감각적인 실감형 배치법이다. 각황전은 후일 영조가 된 연잉군을 위해 그의 생모 숙빈 최씨가 시주한 법당이다. 대시주에 대한 화답으로 원통전으로 세워 연잉군의 원당으로 삼았다. 그후 사이사이에 나한전과 영전을 세웠다. 각황전부터 대웅전에 이르는 5개 건물은 높낮이가 다르다. 운고각 앞에 서면 이 다섯 건물이 ‘강, 약, 중강, 약, 강’의 리듬을 가진 하나의 연속체로 다가온다. 화엄은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가 하나라는 통합의 사상이다. 화엄법계 중 최상은 ‘사사무애법계’로, 부분들이 독자적이어도 전체 질서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세계이다. 화엄의 세계는 온갖 꽃들이 어우러진 무한한 정원인 연화장 세계다. 각황전과 대웅전, 원통전 등 화엄사의 전각들은 독자적인 중심성을 갖지만, 동시에 전체 속에서 조화된다. 화엄 법계를 이루는 동력은 ‘끝없이 펼쳐지는 원인과 결과의 그물’인 무진연기이다. 모든 만물은 변화한다. 1300년 역사 속에서 화엄사의 사상도 가람의 건축도 변화했다. 화엄종이 분열되어 종파가 바뀌고 전쟁의 파괴가 새로운 가람을 만들었다. 그러나 과거의 질서는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질서가 그 위를 덮는 중창의 무진연기 속에서 건축적 연화장 세계를 꽃피우고 있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자녀 관련 따박따박 고소”…조국 “대학원 졸업하면 군대 갈 것”

    “자녀 관련 따박따박 고소”…조국 “대학원 졸업하면 군대 갈 것”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일 자신의 아들이 “대학원을 졸업하면 군입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가 전날 “(조 전 장관 아들의 입대가) 두 달 남았네요”라고 말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 보인다. 앞서 서 교수는 조 전 장관이 ‘아들은 2020년 입대 예정’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두 달 남았다”며 지적했다. 조 전 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난데없이 제 아들 군 입대 여부를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며 “현재 (아들은) 대학원 재학 중이며, 졸업 후 입대한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의 아들은 2018년 연세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조 전 장관의 아들은 지난해 8월 조 전 장관 인사 검증 과정에서 이중국적 논란과 함께 2015년부터 입대를 5차례 연기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조 전 장관은 “(아들이) 내년(2020년)에 입대를 할 예정이다. 학업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신청이 조금 늦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서 교수 “조국 전 장관님 두 달 남았네요” 31일 서 교수는 자신의 SNS에 “조국 전 장관님 두 달 남았네요”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서 교수는 “조 전 장관은 거짓말을 싫어한다. 특히 자녀와 관련한 거짓말은 끔찍이 싫어하셔서 따박따박 고소를 한다”며 “근데 작년에 조국 님이 했던 아들 입대 얘기 말이다. 남은 두 달간 입대를 안 시키면 이게 또 허위사실 유포가 돼버린다”고 꼬집었다. 서 교수는 “거짓말을 질색하는 분인 만큼 남은 기간 어떻게든 군대를 보내든지 아니면 조국 님이 자기 스스로를 고소하는 수밖에 없겠다”며 “김남국 의원님, 좀 도와주시라. 설마 조국 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건 아니지?”라며 비꼬았다. 서 교수, ‘윤석열 화환’으로 김남국 의원과 설전 서 교수는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8일 대검찰청 앞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지지하는 화환이 설치된 것을 두고 한 차례 설전을 벌인 바 있다. 김 의원이 이를 두고 “한 시민이 화환에서 떨어진 나뭇잎을 밟고 미끄러질 뻔했다”며 “시민의 불편과 안전을 생각하면 대검 앞의 화환은 매우 부적절하고 자칫 ‘검찰총장의 정치 행위’로 보인다”며 철거를 요청했다. 그러자 서 교수는 “낙엽이 우후죽순 떨어지는 11월엔 이로 인한 부상자가 상상할 수 없이 나올 것”이라며 “정부는 11월을 낙엽 위험시기로 지정하고 시민들의 외출을 전면 금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비꼬았다. 이에 김 의원은 “연세도 있으시고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시는 만큼 좀 조심하셨으면 좋겠다”고 대응하자, 서 교수는 “연세도 있는데 조심하라는 말은 제 호적 나이보다 두 살이나 많은데도 SNS는 천 배쯤 열심히 하는 조국한테 하시라”며 반박했다. 앞서 서 교수는 지난 27일에도 김 의원을 향해 “오야붕(조국 전 장관)의 똘마니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말하며 김 의원의 SNS 활동을 문제 삼은 바 있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차관급 인사] 박화진 신임 고용부 차관…노사관계 업무에 정통

    [차관급 인사] 박화진 신임 고용부 차관…노사관계 업무에 정통

    1일 임명된 박화진(58) 신임 고용노동부 차관은 고용부 내에서 노사관계 업무 경험이 가장 많은 간부로 꼽힌다. 부산 대동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왔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노사관계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34기로 공직에 발을 내딛은 뒤 노사협력정책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현재까지 노동정책실장을 맡아왔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장과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고, 대통령 비서실 고용노동비서관 행정관으로도 여러 차례 근무했다. 고용·노동 분야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전문성은 물론 업무 추진력을 겸비한 관료라는 평가를 받는다. 직원들에게 좀처럼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인자무적’(仁者無敵) 스타일의 간부다. ▲부산 대동고 ▲서울대 사회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노사관계학 석사 ▲행시 34회 ▲노사협력정책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 ▲기획조정실장 ▲노동정책실장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차관급 인사] 양성일 신임 복지부 1차관…복지분야 행정전문가

    [차관급 인사] 양성일 신임 복지부 1차관…복지분야 행정전문가

    기획·조정, 복지 분야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1차관에 양성일(53) 기획조정실장이 1일 임명됐다. 양 신임 1차관은 행정고시(35회)로 공직에 입문해 사회복지, 인구정책, 국민연금 등 복지 분야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 행정 전문가다. 서울 장충고와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와 미국 인디아나 주립대에서 각각 행정학 석사를 받았다. 인구정책실장, 사회복지정책실장, 연금정책국장 등 복지분야 뿐 아니라 건강정책국장 등 보건분야 주요 보직도 거쳤다. 복지부의 한 공무원은 “서류 더미를 들고 보고하러 가지 않아도 요약해 설명하면 금방 이해하고 지시하는 등 어렵고 복잡한 것을 쉽게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청와대는 이날 양 1차관 발탁 소식을 전하면서 “부처 업무에 두루 정통할 뿐만 아니라 업무추진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빈곤·위기 가구 지원체계 강화, 생애주기별 사회 안전망 확충 등 복지 분야 핵심정책을 차질없이 완수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53)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행정고시(35회) ▲인구정책실장 ▲사회복지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 ▲연금정책국장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차관급 인사] 신열우 신임 소방청장…소방장 경채 출신 최초

    [차관급 인사] 신열우 신임 소방청장…소방장 경채 출신 최초

    1일 임명된 신열우(사진·59) 신임 소방청장은 소방공무원 특별전형인 소방장 경채(장학생) 출신으로는 최초의 소방청장이다. 소방청 차장을 거쳐 지난해 9월부터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을 맡아왔다. 신 청장은 경남 진주 출신으로 진주고와 경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부경대 대학원에서 산업안전공학과 석사와 기계공학과 박사 과정을 밟은 학구파다. 소방 장학생은 대학 재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졸업후 소방장(7급 상당)으로 임용하는 제도로 현재는 시행하지 않고 있다. 중앙과 지방에서 현장 경험이 다양하고 의사결정이 빠르며 직원들과의 소통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1961년생(59) 경남 진주 ▲진주고, 경희대 화학과, 부경대 대학원 박사 ▲경남 밀양소방서장 ▲경북 소방학교장 ▲국무총리실·대통령실 파견 ▲경남 소방본부장 ▲소방방재청 방호조사과장 ▲국민안전처 119구조구급국장 ▲소방청 소방정책국장 ▲소방청 차장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 [차관급 인사] 김정우 신임 조달청장…전례 깨고 의원 출신 임명

    [차관급 인사] 김정우 신임 조달청장…전례 깨고 의원 출신 임명

    관료 출신이 임명되던 전례를 깨고 김정우 전 국회의원이 1일 조달청장에 임명됐다.김 청장은 1968년생으로 강원 신철원종합고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40회로 공직에 거쳐 공직에 입문한 뒤 기획재정부 계약제도과장 등과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제20대 국회의원(경기 군포갑)과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를 거쳤다.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2016년 총선을 앞두고 8번째 외부인사로 영입했다. 당시 김 청장은 “국가재정 특히 공공정책과 국고관리에 탁월한 경험을 가진 인재로 당에 부족한 재정경제 분야와 정책 시스템의 전문성을 보완해줄 인물”로 소개됐다. ▲1968년생(52) ▲강원 신철원종합고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브리스톨대 정책학 박사 ▲행시 40회 ▲기획재정부 계약제도과장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제20대 국회의원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차관급 인사] 박진규 신임 산업부 차관…무역·통상 경험 쌓은 관료

    [차관급 인사] 박진규 신임 산업부 차관…무역·통상 경험 쌓은 관료

    1일 신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으로 임명된 박진규 대통령비서실 신남방·신북방비서관은 무역·통상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전문 관료로 꼽힌다. 충남 부여 출신으로 대전 대신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박 신임 차관은 영국 버밍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34회를 합격해 당시 산업자원부 해외자원과에서 근무를 시작한 박 신임 차관은 지역혁신지원담당관, 구미협력과장, 영국 상무관,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 무역조사실장, 통상정책국장, 무역정책관, 기획조정실장 등 통상 분야 주요 부서를 두루두루 거쳤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2018년 10월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실 통상비서관에 임명됐다가 올해부턴 신남방·신북방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수출시장 개척을 해왔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을 갖췄고,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늘 균형을 중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고위관료 다주택자 논란이 불거지면서 지난 7월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박 신임 차관은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된 과천시 별양동 주공아파트와 본인 명의로 된 세종시 어진동 더샵센트럴시티 아파트 등 2채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1채에 대해선 현재 매각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은 박 신임 차관의 주요 이력. △대전 대신고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버밍엄대 국제경제학 석사·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34회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조정실장 △대통령 비서실 통상비서관 △대통령 비서실 신남방신북방비서관 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차관급 인사] 도규상 신임 금융위 부위원장…금융위 터줏대감

    [차관급 인사] 도규상 신임 금융위 부위원장…금융위 터줏대감

    1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에 내정된 도규상(54) 전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은 금융위 재직 당시 터줏대감으로 불렸다. 부산 배정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 재무학 석사를 취득한 도 내정자는 34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했다. 금융위 금융정책국장과 금융서비스국장, 금융위원장 정책보좌관을 지냈다. 2017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실·국장급 인사교류로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을 맡기도 했다. 청와대는 도 내정자에 대해 “금융시장 안정화, 금융혁신, 건전한 신용질서 확립 등 당면 현안을 성공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도 내정자의 취임으로 금융위를 떠나는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차기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부산 배정고 ▲서울대 경제학과 ▲행정고시 34회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비서관 ▲기획재정부 본부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차관급 인사] 김희겸 신임 재난관리본부장…“추진력·디테일 강해”

    [차관급 인사] 김희겸 신임 재난관리본부장…“추진력·디테일 강해”

    청와대가 1일 신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에 김희겸(56) 경기도 행정1부지사를 임명했다. 김 본부장은 1964년생으로 경기 유신고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행정학 학사, 서울대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버밍엄대 지역개발학 석사, 성균관대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제31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경기도 행정2부지사, 국민안전처 재난관리실장, 행안부 기획조정실장 등을 지냈다. 평소 추진력이 있고 디테일에도 강한 업무 스타일로 알려졌다. 본인이 책임질 부분과 후배들에게 맡길 부분을 명확히 하는 등 합리적인 성품으로 조직 내 인망도 두텁다는 평가다. 행안부 관계자는 “국민안전처 재난관리실장 시절인 2016년 부산과 울산에서 가스냄새와 악취가 발생했을 때는 다른 부처에서 나서기를 꺼리자 안전처 주관으로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조사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 학 력 】 - 경기 유신고 - 성균관대 행정학과 - 서울대 행정학 박사 - 영국 버밍엄대 지역개발학 석사 - 성균관대 행정학 박사 【 경 력 】 - 경기도 행정1부지사(現) - 행정안전부 기획조정실장 - 국민안전처 재난관리실장 - 경기도 행정2부지사 - 행시 31회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차관급 인사] 김강립 신임 식약처장…복지부 1 차관 출신

    [차관급 인사] 김강립 신임 식약처장…복지부 1 차관 출신

    청와대가 1일 신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 김강립(55) 보건복지부 제1차관을 임명했다. 김 처장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연세대 대학원에서 보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33회 행정고시를 합격한 후 복지부 국제협력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2011년 연금정책관, 보건의료정책실 실장,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지난 9월부터 복지부 제1차관을 역임했다. 지난 2016년엔 복지부에서의 업무 공로를 인정 받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청와대 측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보건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와 업무 능력을 갖춘 김강립 차관이 국민건강 안심과 식·의약 안전을 도모하고 조직 쇄신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학 력 】 - 서울 동국대부속고 - 연세대 사회학과 - 미국 시카고대 사회복지학 석사 - 연세대 보건학 박사 【 경 력 】 - 보건복지부 제1차관(現) - 보건복지부 기획조정실장 -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 - 행시 33회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KAIST의 장사 천재들

    KAIST의 장사 천재들

    고피자 임재원·정육각 김재연 대표를 만나다 KAIST를 드라마로 접했던 X세대에게 이 학교는 괴짜 공부벌레들이 모인 곳이었다. 김정주의 넥슨, 이해진의 네이버와 함께 성장한 Y세대에게 KAIST는 천재 창업가를 키운 곳으로 각인됐다. Z세대는 KAIST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을까. KAIST를 나와 피자와 돼지고기를 파는 두 청년을 30일 만났다. 피자집 주방에 들어간 AI싱가포르에서 대학을 마친 뒤 KAIST 경영공학 석사를 받고, 광고회사를 다니던 임재원 대표는 ‘피자 업계 맥도널드’를 꿈꾸며 2016년 고피자를 창업했다. 2018년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해 10월 현재 국내와 인도, 싱가포르, 홍콩 등지에 점포 95곳을 운영한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주방 효율화에 적용한 푸드테크 기업으로 화제를 모으며 프랜차이즈 브랜드 사상 첫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았다. 누적 투자액이 약 80억원이다. 돼지고기와 만난 IT 중학교 조기졸업 뒤 한국과학영재학교, KAIST 수리과학부 학부를 마친 뒤 2015년도 말 미 국무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 준비를 하던 김재연 대표의 정육각은 도축 4일 내 돼지고기, 당일 도계 닭고기, 당일 산란 달걀, 당일 착유 우유, 숙성 소고기, 돈까스 밀키트를 판매한다. 정보기술(IT) 역량을 바탕으로 2시간 내 생산, 주문량 예측과 같은 생산·유통 혁신을 이뤘다. 도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초신선’ 돼지고기와 닭고기의 맛을 전파 중이다. “KAIST 졸업했으니 장사 할래요”… 엄마 반응은?번듯한 회사를 다니던 아들, 유학이 보장됐던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장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임 대표는 “피자 만드는 법을 익히려고 도우 펴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어머니가 측은한 듯 절레절레 하셨지만, 반년 정도 피자를 만드니 존중해 주셨고 푸드트럭을 할 때 약간의 투자도 해주셨다”면서 “지금은 결혼한 당시 여자친구와 가족들의 희생이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유학 전 시간이 남을 때여서 부모님들도 편하게 ‘후회 없이 재밌게 해보라’고 해주셨다”고 했다. 아들은 창업 현장을 익히는데 주변에서는 ‘회사 잘 다니느냐’거나 ‘유학 잘 갔느냐’고 안부를 묻는 상황. 사실은 난감했던 가족들의 속내를 두 대표는 사업이 자리를 잡은 뒤 들을 수 있었다.임 대표의 어머니는 “젊을 때 나가서 한 번 거친 일도 해보고 망해봐야 회사 다니는 감사함도 알고, 다른 생각 안하고 열심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란 마음으로 허락했다고 한다. 김 대표 역시 “식품 유통은 (아들이) 공부했던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빨리 지쳐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어머니 의중을 창업 2~3년차에 들었다.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뭐가? 혁신이!KAIST 졸업자라는 이력은 사업 홍보에 도움이 됐지만, 다른 분야에선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김 대표는 ‘축산업을 모르는 얼치기’ 취급을 받으며 가공, 포장을 배워 나갔다. 임 대표 역시 직장을 그만두고 푸드트럭을 하는 자신을 안타깝게 보는 주변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빚을 졌고, 자금 사정 악화 국면의 끔찍함을 견뎌야 했다. 재정적으로 벼랑 끝이라 생각했던 시점에 다다라서야 응답을 받았다. 피자, 축산업의 ‘외부인’으로 시작했기에 레거시 산업에서는 더 이상 시도하지 않던 ‘혁신’에 도전한 게 투자를 받는 원동력이 됐다. KAIST와 결이 달라 보이는 공간에서 피워낸 ‘혁신’의 비결은 어떤 것일까. 임 대표는 “혁신이 가능한 문제인지 아닌지 거시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그저 ‘왜 피자 만들기는 오래 걸리고, 맥도널드에서 피자를 안 팔지’라는 단순한 문제를 고민하다 당장 내일 실행할 수 있는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거듭했다”고 설명했다.김 대표는 축산업계 외부인인 ‘얼치기’여서 소비자에게 필요한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축산업은 생각보다 ‘카더라’가 많은 산업이었는데, 소비자 관점에서 보니 ‘카더라’ 해결 의지를 가질 수 있었다”면서 “IT는 축산업과 거리가 멀었지만, 축산업의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도구로 손색 없었다”고 돌아봤다.두 대표에게 다음 목표를 물었다.김 대표는 “정육각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부터 주말에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는 분들까지 저희를 통해 소비자들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말씀이 저희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소비자들의 가정 내 식사 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임 대표는 “사실 고피자에서 무슨 기술을 개발하든, 얼만큼의 투자를 받든 고객님들 입장에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게 당연합니다. 결국엔 5000~6000원 지불하고 먹는 피자가 맛있고, 편리하느냐가 가장 중요하죠. 본질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가 개발하는 기술과 투자하고 있는 도우, 화덕 등이 완성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맛있는 피자가 빠르고 균일하게 잘 제공될 것입니다.”라고 약속했다.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2021년도 전기 MBA 석사과정 정시 모집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2021년도 전기 MBA 석사과정 정시 모집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원장 성민제)이 2021학년도 전기 MBA 석사과정 정시 신입생을 모집한다. 아주대 MBA 과정은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평일 야간은 물론 주말까지 강의를 개설해 실습과 토론 수업 등 대면 수업이 꼭 필요한 오프라인 강의를 원하는 시간에 수강할 수 있도록 주중, 주말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국내 MBA 최초로 도입한 온라인 강의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원하는 시간 언제든 PC는 물론 스마트폰, 태블릿 등 모바일에서도 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 대규모 사용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온라인 공개 수업) 방식의 퀄리티 높은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금번 21학년도 전기 MBA 석사과정 정시 모집에서는 회계, 재무, 마케팅, 인사조직, MS/OS 등 경영학의 기본이 되는 분야와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코칭, 협상, IT 비즈니스, 창업벤처, 연구기술경영, 헬스케어 등 사회 관심 분야를 반영해 특화 전공을 개설했으며, 최신 비즈니스 트렌드에 맞춰 빅데이터, 핀테크, 디자인 등의 전공 역시 모집하고 있다. 아주대 MBA는 7천7백여명의 졸업생으로 이루어진 막강한 동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동문, 교수, 교직원, 총동문회를 중심으로 2007년 설립된 아경장학재단을 비롯해 다양한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다. 성적우수 장학, 핵심인재양성 장학, 공무원 장학, 군인 장학 등 재학생의 50% 이상이 1회 이상 장학금 혜택을 받고 있다. 특히 아주대 MBA 학비는 타 경영전문대학원 MBA 등록금의 절반 정도 수준으로 합리적인 등록금으로 석사과정을 밟을 수 있어 효과가 높다는 평이다. 한편 이번 2021학년도 전기 정시모집은 10월 19일부터 11월 23일까지 원서접수를 받고 있으며, 국내외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 이상, 정규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는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보다 자세한 2021학년도 아주대MBA 전기 신입생 입학 전형은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혜경 작가 초대전 ‘비와 당신의 이야기’ 다음달 5일부터

    남혜경 작가 초대전 ‘비와 당신의 이야기’ 다음달 5일부터

    남혜경 작가의 14번째 초대전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다음달 5일부터 17일까지 서울 강남역 카페 아이해브어드림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는 그룹 부활 가수 김재희 씨의 스케치와 함께 30여 점의 연필스케치 및 10여 점의 유화 비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비를 그리는 작가가 인물 스케치 작업을 하면서 만들어낸 이야기를 관객들과 소통한다. 남 작가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백석대학원 기독교미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Wallingford Community Arts Center(PA, USA)’ 정기공모전 이등상,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특선 등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13번째 개인전을 ‘Gallery Artifact 뉴욕’에서 가졌다. 전시 관계자는 “일명 ‘빗방울 작가’라고 불리는 남 작가는 창조주께서 내려준 은혜의 단비를 소재로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을 펼치는 재미 작가”라며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의 터치처럼 하나님의 형상들을 연필로 담아내 생명을 불어넣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비즈 biz@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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