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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소,대일전쟁 피하려 한인 무장해제/러 가제타지,비밀문서 인용보도

    ◎레닌,“독립군부대 활동 전면중지” 명령/20년이후 항일무장투쟁 결정적 타격 일제시대 무장독립 투쟁사의 큰 획을 그었던 재러시아 한인 독립군부대들이 당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려 했던 레닌정부에 의해 강제로 무장해제된 경위가 처음으로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러시아 일간 로시스카야 가제타지는 21일 레닌비밀문서보관소의 자료를 인용,레닌이 주도한 볼셰비키정권이 처음에는 연해주 한인을 이용,극동에서 세계혁명의 불길을 지피려 했다가 이를 포기하고 오히려 한인 독립군부대들의 활동을 전면 중지시킨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다음은 이 신문 보도의 요약이다. 1차대전 직전 남우수리지방 국경관할 판무관은 보고서를 통해 일본이 한인 밀집지역인 연해주 포시에트(현재의 하산지역)를 추후 여러 구실을 달아 보호령으로 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10월혁명 이후에도 이러한 우려는 계속 남아 있었다.1919년2월 작성된 비밀경찰 체카(KGB전신)의 보고서는 당시 수많은 한인들이 소련국적을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스파이로 취급당해 마구 구속되는 등 엄청난 탄압을 받았음을 지적했다. 이때 체카의장인 크세노폰토프는 모든 산하기관에 긴급지령을 내려 「한인들이 반일투쟁에 동원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모든 구속자를 면밀히 조사해 석방하라」고 지시했다.이와 관련,레닌에게 제출된 한 보고서에는 「1919년 1·4분기중 극동에서의 노동단체 운영비및 선동요원 활동비로 20만루블을 외무부에 배당해야 한다」고 돼있고 이 문서에 레닌이 친필로 「내각에 회부할 것」이라는 메모를 적어 놓았다.당시 외무차관 카라힌은 이 문서에 다시 「외무부는 모스크바 보고슬로프스키가 6번지에 있는 한인민족연합에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이 단체의 신문발행을 지원하고 한국에 선동요원을 밀파하며 1인당 왕복여비조로 1만루블을 주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볼셰비키들은 1920년 들어(한인을 동원해)극동에서 세계혁명을 불붙이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오히려 한인 무장조직을 반일투쟁에 가담하지 않도록 하는 문제를 들고 나왔다. 치체린 외무장관은 1921년 6월10일 공산당중앙위서기 몰로토프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당시 러시아를 근거지로 활동중인 대부분의 한인 독립군부대들의 활동중지를 제의했다.레닌도 찬성했다.레닌정부는 그해 6월12일 결의안을 통과시켰다.이 결의안은 일본이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있는 한 「한인부대들이 극동공화국내에 계속 체류하거나 극동공화국과 소비예트 러시아로부터 한국으로의 이동은 금지된다.부대를 해산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 부대들이 일반의 눈에 띄게 해서도 안되며 특히 공개적인 대일투쟁은 금지된다」고 못박음으로써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등 빛나는 전과를 자랑해 온 한인 독립군부대들이 졸지에 무장해제 당한 것이다.
  • 우익반군,인질 20명 석방/니카라과/좌익반군,기자 9명 추가 억류

    【킬랄리(니카라과) AP 로이터 연합】 좌익 산디니스타계 국회의원과 정치인,군인등 38명을 억류한 채 4일째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니카라과의 우익 콘트라 게릴라들은 22일 이번 일진극에 대한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인절중 20명을 전격 석방했다. 콘트라 게릴라들은 나머지 인질 18명도 몇시간 내에 석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프란시스코아 마오르가 정부 협상대표가 밝혔다. 이들의 인질석방조치에 따라 좌우익 반군간의 유혈 내전 재발위기를 몰고온 이번 인질극이 해결을 위한 중요한 돌파구가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익 콘트라반군게릴라에 맞서 부통령과 다수의 야당정치인을 억류한채 나흘째 인질극을 계속하고 있는 나카라과의 좌익 산디니스타계 게릴라들은 22일 인질극현장을 취재중이던 기자 9명을 인질로 삼아 군경부대와 강경대치하고 있다.
  • 니카라과 인질극 정정 혼미/부통령 등 억류

    ◎정부·야당 무조건 석방 촉구부 【마나과 로이터 AP AFP 연합】 니카라과 정부와 야당은 21일 2개 좌·우익게릴라 단체들이 각각 억류중인 비르질리오 고도이 부통령등 80명에 달하는 정부요인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으나 게릴라단체들은 이들을 억류한 채 인질극을 계속하고 있다. 바올라 차모로 니카라과 대통령은 이날 좌익 산디니스타계와 야당등 2대 정치세력지도자와 긴급회담을 갖고 산디니스타를 추종하는 게릴라단체와 우익 콘트라반군 잔당들에게 억류중인 정부인사들을 무조건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니카라과 정부·야당이 정치현안등을 놓고 이처럼 공동보조를 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차모로 니카라과 대통령은 이날 산디니스타계 지도자등과 긴급회동을 가진 후 기자회견을 통해 인질 석방을 촉구하면서 미주기구(OAS)에 75명의 인질석방을 위해 특사를 파견해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 도박 동남일보 회장 김인태씨 집유 석방

    서울형사지법 7단독 윤우진판사는 19일 해외에 원정,거액의 카지노 도박을 벌인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경남 마산의 동남일보회장 김인태피고인(47)에게 상습도박죄 등을 적용,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함께 구속기소된 (주)유원산업 회장 최민석피고인(44)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제주로얄호텔 대표 심병직피고인(64)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의 행위는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하지만 깊이 반성하고 있고 현재 외국과 합작사업을 벌이고 있는 등 기업인으로서 해야할 일이 많은 점 등을 참작,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 변호사의 과다수임료/오풍연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개업을 하니까 현직에 있을때보다 수입이 1백배 정도는 늘더군요』 고법부장판사로 있다가 몇년전 개업한 한 변호사의 고백이다.그는 『재조에 있을 당시 한달 평균 2백50만∼3백만원의 수입으론 생계유지조차 빠듯했다』면서 『변호사로 개업한뒤에는 한달평균 2억∼3억원에 이르렀다』고 사석에서 기자에게 털어놨다. 물론 이같은 사례를 재야법조계의 보편적 양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법조계 안팎에서 신망이 두터울 뿐 아니라 수임료가 많은 민사소송의 전문가인 이변호사는 예외적인 케이스라는게 주변의 설명이다.최근 변호사가 무더기로 배출되면서 사무실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변호사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변호사의 수임료는 어느정도 되는 것일까.또 현행수임규정이 적정한 것인가. 국가사정을 기획·담당하던 변호사출신의 한「사정실세」가 변호사수임료를 지나치게 많이받은 것으로 드러나 옷을 벗게된 것을 계기로 변호사의 수임료가 화제로 오르내리고 있다. 「변호사보수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형사사건의 경우 착수금과 성공사례비를 각각 5백만원 이하,민사사건은 착수금과 사례비를 합쳐 승소가액의 40%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같은 규정을 지키는 변호사는 「바보」라는게 그들 세계의 상식이다.실제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대마초나 히로뽕 사범과 같은 형사사건의 경우 변호사 수임료는 2천만∼3천만원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이들 사범을 집행유예 등의 가벼운 처벌로 석방시켜주는 대가로 엄청난 「이면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관행이라 할수있다. 변협은 이번에 문제가된 이충범씨에 대한 자체조사를 벌여 과다수임료를 챙긴 것으로 드러나면 징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당연한 일이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번사건을 계기로 재야법조계도 스스로 뼈를 깎는 자정운동을 펴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수임규정이 과연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적정수준인지,규정위반행위에 대한 보다 강력한 제재방안은 필요하지 않은지 변호사 모두 심사숙고하길 원하고 있다. 자신들의 몸가짐에 대한 반성없이 재조법조계를 향해서만 개혁을 부르짖으면과연 공감을 얻을수 있을까.
  • 중국의 지식인들/임대희 경북대교수·역사학(굄돌)

    중국의 대학은 명목상으로 국가에서 등록금을 대 주는것이 기본이다.최근에는 대학에서 등록금을 받는 경우도 있다. 현재 상해나 광주에서는 이렇게 등록금을 내고 있는 학생이 많이 있다고 한다.등록금을 자비부담하면 졸업후에 국가가 정하여 주는 직장에 가지않아도 되고,월급이 더 많은 직장에 자신이 원하는대로 갈수 있게 된다.그렇게 낸 등록금은 대학재정을 위하여 쓰여지게 되므로,대학으로서는 자비부담 학생을 많이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다.그러나 국가에서는 그 인원을 학생정원의 4분의1로 제한하고 있다. 필자가 일본에 처음 유학갔던 1981년에 도쿄에서 만났던 중국교수들 대부분에 대하여 참으로 순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그러나 해가 지나면서 새로이 만나는 중국 교수들은 무언가 처음과 같은 순박한 인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져 감을 느끼게 되었다.아마도 중국사회 자체가 그렇게 바뀌어 갔기 때문일 것이다.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직후,대만에 유학가 있던 한국유학생들이 중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시도를 해 보았더니,결코 싸지않아 실망하였다고 한다.최근에 몇몇 교수분들이 북경대학에 가려고 했더니,시설 이용료등의 명목으로 너무 많은 금액을 요구하더라고 한다.또 북경의 다른대학의 경우에도 숙사비용을 장기체재인데도 하루 30달러정도를 요구하더라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중국에서는 최근에 대학교수들이 자신의 본분과 전혀 다른부업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무역업에 뛰어들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학생연수여행을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해 오기도 한다.또 어떤 대학교수는 명석한 논문을 쓰곤 하여 촉망되었으나,지난번 천안문 사건때 감옥에 들어가기까지 하더니,아시아 게임 직전에 석방되어,지금은 아예 대학교수라는 직함밑에 회사사장이라는 것을 버젓이 찍은 명함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존경하던 어떤 원로교수도 제자들이 새로 만드는 중한어언학교의 교장직을 맡는다면서 한국에서 부교장직을 맡아줄 분을 찾아달라는 연락을 해 오기도 하였다. 대학교수직이 사회적으로 별로 존경받지 못하고 있는 중국에서 이들이 굳이 대학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으려고 하는 것은단지 자신이 보통의 상인과는 다르다는 자기과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야할 것이다.대학교수라는 명함을 갖고 있어도 몇년동안 강단에서 전혀 강의를 않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이들 중국지식인들의 행동에서 자신의 우수성을 사회가 전혀 받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우월열등감의 일면모를 보는듯 하여 아쉬움을 금치 못한다.
  • “95년을 통일 원년으로”/평양방송,8·15 48돌 논평

    【내외】 북한은 15일 95년도 통일을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전체 한 민족이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의 기치아래 대단결을 이룩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북한은 이날 8·15 48주를 맞아 내보낸 「조국통일은 민족의 융성과 번영의 길」 제하의 평양방송 논평에서 『19 95년을 통일의 원년으로 장식하려는 것은 우리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이고 확고한 의지』라고 주장하면서 90년대 통일실현을 위해서는 전체 한민족이 김일성이 제시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의 기치아래 굳게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방송은 이어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는 『외세에 의해서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고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실현하는 성스러운 위업』이라고 지적하고 이를 위해 한국정부가 ▲외국군대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통일애국인사」석방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며 남북합의서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광복절 8백81명 가석방/조직폭력·가정파괴범 제외

    법무부는 12일 광복절 제48주년을 앞두고 행형성적이 우수한 모범수형자 6백91명을 가석방시키고 모범 소년원생 1백26명과 모범감호자 64명을 가퇴원,가출소시키는 등 모두 8백81명을 오는 14일 상오 10시를 기해 특별가석방한다고 발표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 특별가석방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이상 장기복역한 무기수 2명과 10년이상의 장기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장기수 47명외에 일반수형자 6백42명이 포함돼 있다』면서 『그러나 이번에도 조직폭력배,가정파괴사범,인신매매범,마약사범등은 은전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 “광복절 정치적특사 없다”/정부 고위당국자

    정부는 8·15광복절 48주년에 즈음한 정치적 특사조치를 검토하고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0일 『새정부출범 직후 대사면및 특사를 포함해 광범위한 특사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광복절에는 정치적 특사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3월6일 문민정부출범을 계기로 헌정사상 최대규모인 4만1천8백86명을 특별사면·감형·복권및 가석방하는등 대사면을 단행했으며 5월25일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81명에 대한 형실효 특별사면조치를 취한데 이어 지난 5월28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특별가석방을 조치를 취했다.
  • 남자현여사/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 선정/항일단체 결속 앞장선 「독립군의 어머니」/서로군정서가입,일제관리 독살 기도/투옥·부상동지들 정성껏 보살피기도/임종땐 평생 모은돈 「독립축하금」으로 희사 「독립군의 어머니」로 통했던 남자현여사는 1873년 12월7일 경북 안동군 일직면 일직동에서 영남의 석학인 부친 남정한씨의 3남매중 막내딸로 태어났다.19세에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동에 사는 의성김씨 김영주에게 시집을 가 단란한 생활을 꾸렸으나 일제의 만행이 점차 극성을 부리자 남편 김씨는 1896년 여사에게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어찌 집에 홀로 있을 것인가』『지하에서 다시 보자』며 결사보국을 결심하고 의병활동에 나섰으나 곧 총탄에 맞아 전사한다. 남편의 전사소식을 들은 여사는 복수심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3대독자 유복자인 아들과 시모를 봉양하지 않을 수 없어 양잠을 하며 손수 명주를 짜 내다 팔아 가계를 이어 나갔다.여사 나이 46세에 일어난 1919년 3·1운동은 여사에게 남편의 원수 갚기를 결심하도록 만든다.항일 구국하는길만이 원한을 갚는 길임을 깨닫고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요녕성 통화현에 정착하게 된다.여사는 우선 그 곳에서 활동하는 비밀무장단체 서로군정서에 가입,군인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북만주일대의 농촌을 누비며 12개의 교회를 건립한다.여성계몽에도 힘써 10여개의 여자교육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망명생활 6년을 맞은 1925년에는 조선총독을 독살하기 위해 동료 한 명과 함께 국내에 잠입,거사를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망명지로 되돌아 가야 했다.마침 인근 길림주민회장인 이규동과 편강렬·양기탁등이 각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음을 알고 독립운동단체들을 믿아다니며 통합을 독려,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1927년 봄 상해 임시정부 요인인 안창호선생이 길림 조양문 밖에서 나석주의사 추도회 겸 민족장래에 대한 강연회를 독립운동단체 간부·지방유지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하자 일제는 중국 헌병사령관을 협박,안선생등 3백명을 무차별 체포했다. 여사는 안선생뿐아니라 투옥중인 애국지사들이 보석으로 석방될 때까지 옥바라지를 정성껏 했다. 일제는 1931년 9월 소위 만주사변을 일으켜 여사의 망명지 요녕성뿐아니라 길림성에까지 침략의 손길을 뻗자 안선생과 함께 보석으로 풀려난 독립운동단체 핵심간부인 김동삼은 할 수 없이 길림성을 떠나 하얼빈의 한 애국지사 집에 묵고 있다가 일경에게 체포된다.아무도 김동삼과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사는 그의 친척으로 위장,면회를 허가받고 연락책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여사는 김동삼의 지시내용과 정보사항을 동지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그가 국내에 호송될 때 빼돌릴 계획도 세웠으나 시간이 촉박한 바람에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그러나 여사의 슬기롭고 대담무쌍한 기질이 없었다면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계획이었던 것이다.여성다움도 잃지 않았던 여사는 항일운동중 병들고 상처받아 고생하는 애국청년들에게는 항상 고향의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운 손길로 위로·격려했다. 여사는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침략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얼빈에 파견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제의 만행을 조사단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왼쪽 약손가락 두마디를 잘라 흰 천에다 「조선독립원」이라는 혈서를 쓴뒤잘린 손가락마디와 함께 조사단에 전달했다.민족의 강인한 독립정신을 인식시키면서 간악한 일인들에게 속지 말도록 호소하기 위함이었다.여사의 항일정신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성해졌고 남편의 복수심은 꺼질 줄 몰랐다. 여사는 1933년 초 동료들과 소위 만주국 건국일인 3월1일에 주만주국 일본전권대사 부도 노부요시(무등신의)를 독살하기로 하고 그해 2월29일 거지로 변장,폭탄·권총 1정과 탄환등을 몸에 숨기고 하얼빈에서 장춘(당시는 신경)으로 가던 중 일영사관 형사에게 발각돼 붙잡히게 된다.일본군에게 전사당한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편단심으로 14년간 동분서주하던 여사는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영어의 몸이 된다.여사는 잔악한 일경들의 고문을 6개월이나 버텨냈다. 여자의 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이겨냈다. 여사는 그해 8월 마침내 죽기로 결심,옥중에서 15일동안의 단식투쟁을 벌인다.악독한 일경들도 여사의 강인한 저항에 두 손을 들고 여사를 석방했다.그러나 여사는 6개월에 걸친 옥중생활로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없었다.여사는 즉시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져 입원치료를 받고 하얼빈에 있는 여관에서 가료를 받았으나 옥중에서의 고문 후유증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1933년 8월22일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여사는 임종을 맞을때까지도 항일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유복자인 아들을 앞에 앉히고는 보따리를 풀어 중국화폐 2백48원을 내놓은 뒤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면 독립축하금으로 희사하라』고 당부했다.여사는 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독립운동은 정신으로 이루어 진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유족들은 여사의 뜻대로 1946년 3월1일 조국광복후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3·1절 기념식전에서 독립축하금으로 여사가 남긴 돈을 김구·이승만선생에게 전달한다. 정부는 여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밀수 승용차 실은 북 화물선/중국 경비정에 한때 잡혀

    ◎지난달 14일 남중국해서 남중국해 공해상에서 지난 14일 중국 연안경비정의 총격을 받고 강제 예인됐던 북한 화물선 고말산호(2천2백26t)에는 홍콩에서 밀수한 벤츠승용차등 20여대의 중고차량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31일 밝혀졌다. 중국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밀수차량을 적재한 고말산호가 북한기도 게양하지 않은채 지난 14일 새벽 홍콩을 떠나 남포로 가던중 횡관도 동남방 15㎞지점의 공해상에서 밀수선박 단속을 위해 순찰중이던 중국 광동성 공안국 소속 경비정에 적발됐으나 정선명령에 불응,총격을 받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어 『당시 이 화물선에는 북한선원 36명이 타고 있었으며 광동성공안당국은 이 배를 산두항으로 강제예인,검색을 마친뒤 하루뒤인 15일 석방했다』고 덧붙였다.
  • 전범혐의 데미야뉴크 석방땐 우크라로 갈듯

    【예루살렘 AP 연합 특약】 유태인 학살혐의로 5년째 수감중 이스라엘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곧 풀려날 존 데미야뉴크씨(73)는 석방될 경우 그가 태어난 우크라이나로 갈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공화국의 한 관리는 미국이 그의 귀환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데미야뉴크는 수일안에 우크라이나에 은신처를 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 「이」,나치전범 사형수 석방/“증거불충분” 뎀잔주크 국외추방

    이스라엘의 대법원은 29일 2차대전때 유태인 학살을 위한 나치의 트레블린카 가스실에 근무한 혐의로 하급법원서 사형선고를 받고 5년째 수감중이던 이른바 「공포의 이반」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존 뎀잔주크씨(73)에게 만장일치로 무죄를 선고,국외추방 판결을 내렸다. 5인의 재판관은 이날 선고공판에서 미오하이오주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했던 뎀잔주크의 유죄는 「합리적인 의문수준 이상」으로 입증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러나 그가 유태인의 말살 임무를 띤 나치군에 소속돼 있었다는 것은 확신한다고 말했다. 특히 메이르 삼가르 수석재판관은 그가 비록 또다른 나치의 포로수용소에서 SS비밀특공대 보조요원으로 일한 증거가 있다 해도 「의심의 혜택」조항이 그에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또 그가 이스라엘에서 추방될 것이라고 전하면서 그에 대한 추방령이 내려지기까지 수일동안 이스라엘 감옥에서 지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서울대 총장,관악서장에 감사패/경찰의 불신감 해소 노력에 보답

    ◎진압차량 동원 등교생 수송/교내규찰대에 장비 등 지원/입원학생에 수술비 전달도 서울대 김종운총장은 28일 총장실에서 서울대생들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해 준 관악경찰서 이동식서장(55)에게 감사패를 수여,눈길을 끌었다. 서울대측은 이날 『지난해 10월부터 관악경찰서측이 친절봉사의 일환으로 등교에 불편을 겪고있는 서울대생들을 위해 전의경 시위진압출동용 버스 2대를 매일 상오7시30분부터 9시까지 봉천네거리에서 서울대 정문앞까지 운행,학생들의 등교에 큰 도움을 줘 감사패를 주게되었다』고 밝혔다. 서울대측이 경찰서에 감사패를 전달한 것은 처음있는 일로서 학생과 경찰이 문민시대를 맞이하여 「함께」 민주화를 위해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대생들은 지난 91년 9월18일 신림9동 녹두거리에서 경찰에 붙잡혀간 동료학우 2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도중 한국원씨(당시 27·공업화학과 박사과정)가 유탄에 맞아 숨진 사건으로 관악경찰서에 대한 깊은 불신감에 차 있었다.그러나 지난해 7월 이서장이 부임한 이래 관악경찰서는 이러한 불신감 해소를 위해 여러모로 온건적인 학생접근 방법으로 달라진 경찰의 모습을 심어주려 했다. 또 지난해 10월 간경화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중인 유성환군(당시 23·신문학 4년)의 수술비로 4백80만원을 모아 전달했는가 하면 지난4월에는 학내에서 일어나는 성폭행사건등 불미스런 사건방지를 위해 총학생회가 만든 「관악사랑단」이라는 자체 규찰대에 순찰용 전등및 호루라기·곤봉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지난 1년동안 43건의 시위를 벌인 학생들도 화염병등 시위용품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경찰의 노력에 호응했다.
  • 30년넘은 외교문서 10월 첫 공개/정부,「보존 및 공개규칙」제정

    ◎1차로 제네바회담 등 「비화서류」 선봬/외교안보원에 비치… 필요땐 복사 가능 48년 정부수립이후 만들어진 외교문서들이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정부는 27일 작성한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일반에 공개하기로 하는 내용의 「외교문서보존및 공개에 관한 규칙」을 외무부령으로 제정했다. 이에따라 오는10월15일 1차로 정부수립이후 58년사이에 만들어진 외교문서들이 공개될 예정이다. 이어 11월30일에는 59년부터 62년까지의 문서들이 공개되고 63년이후 문서는 내년부터 매년 1월1일 공개된다. 미국과 유럽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외교백서를 통해 30년전의 외교문서를 일반에 공개해 오고 있다.일본도 별도의 법률은 없으나 지난 75년부터 외교문서공개를 관행으로 해오고 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에 따라 우선적으로 지난 51년부터 62년까지 진행된 한일회담때 양측에서 오간 인사명단과 그들이 나눈 대화내용,한일국교수립관계문서가 공개될 예정이다. 이와함께 55년부터 59년까지의 재일한인북송및 한·일 양국억류자 상호석방관계문서,휴전일지,휴전협정문,제네바정치회담(54년),한·미상호방위조약(〃)등 각종 협정문도 공개된다. 비밀로 묶여 온갖 비화로만 전해져왔던 현대사의 편린들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정부는 외무부와 중앙행정기관이 외국및 국제기구를 상대해 만든 외교문서가운데 보존기간이 영구 또는 준영구인 외교문서를 공개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30년이 지났더라도 국가안보등 국익을 침해하거나 개인의 사생활에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외교문서는 일단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다. 그러나 대학·연구소·언론기관등이 학술연구등 공익을 목적으로 요구할 경우에는 비공개문서일지라도 외무부산하에 둘 외교문서공개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열람을 허용키로 했다. 전직 공직자가 회고록을 쓸 때도 본인과 관계된 것이라면 열람을 허용한다는 입장이다. 외교문서가 비치될 열람장소는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으로 현재 마무리공사가 진행중에 있다. 모든 외교문서는 일단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관될 예정.따라서 일반인들은 일반도서관을 이용할 때처럼 이 필름을 검색,열람한뒤 필요할 경우 복사를 요청하면 된다. 정부는 공개되는 외교문서들을 매년 책으로 만들어 일반에 시판,대학등이 연구자료로 활용토록 할 방침이다.
  • “「종전아닌 휴전」 잊지 말아야”/「정전협정」증인 유재흥 전 국방

    ◎북 핵대응 소홀해선 안돼 6·25의 산증인으로서 휴전협정체결 주역가운데 한사람이었던 유재흥옹(72·성우회회장·전 국방부장관)은 휴전 40주년을 맞아 『살아생전에 남북한이 통일을 이룩할 것으로 확신한다』면서도 『40년이 지나도록 통일의 그 날을 앞당기지 못한 책임의 일부를 느낀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해방후 반세기 가까이 남북한 대치상태가 끝나지 않은 것은 물론 북한의 핵개발문제로 남북한의 관계가 더욱 골이 깊어가는 것같아 전쟁당시 피흘린 영령들앞에 부끄러울 뿐입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52년1월부터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군사휴전회담 유엔측대표로 참석했던 유옹은 협정체결 40주년을 하루 앞둔 26일 이같이 자책했다. 유옹은 53년7월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될 당시에는 육군소장으로 회담장인 판문점에 있지는 않았으나 52년부터 열린 휴전회담에 막바지까지 계속 참석,휴전협정을 체결하는데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실무회담에 함께 참석했던 인사로는 미국극동사령관 다나조이제독을 수석대표로 공군의 다나장군,육군의 해리슨소장,해군의 리비소장등 유엔측대표 5명과 북한측은 수석대표 남일과 중공군등 5명. 『북한의 남침이후 유엔군의 지원으로 압록강·두만강까지 북진했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는 공방전 속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전쟁을 끝내려면 만주의 군보급기지를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됐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3차대전의 유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높아 결국 휴전이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절충안이 모아졌다』고 유옹은 휴전의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이승만대통령과 학생들은 휴전에 들어갈 경우 남북통일의 절호의 기회를 놓칠 뿐만 아니라 재남침의 우려가 크다며 휴전을 극구 반대했으나 유엔군측의 대세에 밀렸다. 그는 또 53년6월28일 이대통령이 2만6천여명의 반공포로를 독자적으로 석방,유엔군측과 마찰을 빚고 7월13일부터는 중공군의 막바지 공세가 치열해 협정체결이 더욱 늦어졌다고 말했다. 유옹은 『협정체결 이후 남한은 국가재건에 총력을 기울인 반면 북한은 현재까지도 군사력강화에 힘을 쏟고있어 아직도 종전아닌휴전상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최근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대해 『상대당사자인 우리가 너무 등한시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유옹은 『전후세대들이 당시의 참상과 휴전상태에 머물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북한과의 경쟁에서 이겨 평화통일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열쇠는 젊은이들이 갖고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학자와 학생등이 당시의 전쟁발발상황을 교묘히 해석,남침이냐 북침이냐의 논란을 불러일으킬때면 전쟁에 직접 나서 보고 겪은 사람으로서 놀라움과 함께 분노까지 치솟는다』면서 『6·25는 확실한 남침』이라고 못박았다. 유옹은 『북한의 체제는 김일성사후 3∼5년뒤쯤 자연붕괴할 것』이라면서 『통일에 대비해 마음가짐을 더욱 새로이 다져야할 때』라고 말했다.
  • 하종순씨 보석 허가/미스코리아 부정

    서울형사지법 합의24부(재판장 변동걸 부장판사)는 23일 미스코리아 선발부정사건과 관련,배임증재혐의로 구속·기소된 서울 중구 명동 마샬미용실원장 하종순씨(55·여)가 낸 보석신청을 받아들여 하씨를 석방했다.
  • 현대분규 다시 악화조짐/「강관」노조,협상수정안 투표 부결

    ◎「중공업」 등 6사 오늘 전면파업/「자동차」 오늘 잠정안 투표에 악영향/「정공」(울산)에 공권력투입 준비/75개중대 증파계획 【울산=이용호·강원식·이기철기자】 현대자동차의 잠정합의로 수습국면을 보이던 울산지역 현대계열사 노사분규가 다시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 노조가 23일 잠정합의안을 놓고 조합원 찬반투표를 예정한 가운데 분규중인 중공업·정공등 6개사노조가 계열사별로 23일 하루 또는 이틀간 전면파업키로 22일 결정했다.정공은 이날 밤늦게까지 계속된 노사협상에 따라 전면파업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이날 상오 잠정합의안을 이끌어냈던 강관은 하오에 실시된 조합원 찬반투표결과 당초 기대와 달리 합의안 수용을 부결시켜 현대사태는 예측할 수 없는 혼미상태에 빠지고 있다. 경찰은 불법파업이 계속중인 정공에 공권력 투입을 준비하는가 하면 검찰은 그동안 유보해온 현총련 소속 현대계열사 노조위원장들에대한 사법처리를 강행할 방침을 굳혀 현대 계열사 노조와 공권력의 정면 충돌이 예상된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23일의 잠정합의안에 대한 자동차 조합원의 찬반투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강관노조가 ▲임금 4.73%인상 ▲성과금 1백50%지급 등 자동차 잠정합의안과 비슷한 내용을 찬반투표에서 77.6%(참가자 5백86명중 4백55명)로 부결시키자 자동차 노사는 사태해결을 위해 조합원개별방문 대자보등을 통해 노조원 설득에 나섰다. 중공업노조는 이날 하오 기자회견을 갖고 회사측의 불성실한 협상태도와 그릇된 노사관에 대한 경고로 중전기·강관·미포조선·한국프랜지와 함께 현총련차원에서 전면 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23일 전면파업키로 한 중공업·중전기·목재·미포조선·한국프랜지등 5개사는 이날도 노사협상을 가졌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울산노동사무소는 이날 하오 불법파업중인 정공노조에 『정상조업으로 복귀해 개인적인 희생이 없도록 하라』는 이인제 노동부장관의 경고문을 전달했다.또 이날 급거 울산현지에 내려온 대검찰청 장륜석 공안기획담당관은 기자회견을 갖고 『엄정한 법집행으로 실정법을 위반한분규사태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고 밝혀 정공의 공권력투입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경찰은 분규현장에 공권력 투입에 대비,현재의 60개 8천여명의 경찰력을 오는 24일까지 75개 중대로 추가 배치키로 했다. 【창원】 노조원들의 파업으로 공권력이 투입됐던 현대정공 창원공장은 22일 정상조업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조합원들의 출근율이 낮은데다 출근한 조합원들까지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며 작업을 거부,정상조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조는 이날 하오 부위원장 조동원씨(22)를 위원장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된 노조간부 5명의 영장취소와 연행된 4명의 조합원들이 석방되고 회사에서 경찰이 철수할 경우 23일부터 정상조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 아웅산 수지 석방 촉구(지구촌단신)

    【워싱턴 AFP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20일 미얀마 군정 지도자들에 대해 민주화 운동 지도자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 여사를 조건 없이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 장명국씨 보석 석방

    서울지법 서부지원 형사합의1부(재판장 김주형부장판사)는 19일 지난 14대 대통령 선거때 대통령선거법(사전선거운동 금지)및 노동쟁의조정법(제3자개입 금지)등 위반혐의로 구속·기소된 석탑노동연구원장 장명국씨(46)가 낸 보석신청을 받아들여 장씨를 석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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