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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영길 민노총의장 즉각 석방 촉구/독 금속노련 의장

    【프랑크푸르트 AFP 연합 특약】 독일 금속노련(IG메탈)의 클라우스 츠비켈의장은 8일 한국정부가 권영길 민주노총의장을 구속시킨 것을 비난하고 한국정부는 즉각 권의장을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 「12·12」 관련 검찰소환 4인의 행적

    ◎유학성씨 최 대통령에 정 총장 연행 재가 요구/조홍씨 수도권 핵심지휘관들 격리·체포/노재현씨 정 육참총장 연행 사후재가 중개/성환옥씨 총장공관서 총격… 총장연행 실행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가 지난 4·5일 잇따라 소환한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과 조홍 수경사 헌병단장,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와 성환옥 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 등의 사건 당시 행적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핵심 관련자인 유씨는 당시 국방부 군수차관보(중장)로 수경사 30경비단 「경복궁 모임」에 적극 가담,12·12를 주도한 인물중의 한명이다.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승화 육참총장 연행에 대해 요청한 재가를 최규하 대통령이 사실상 거부하자 황영시 1군단장 등과 함께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집단으로 몰려가 최대통령에게 재가를 요청했다.육참총장 석방을 요구하는 장태완 수경사령관에게 신군부측에 가담하도록 회유하기도 했다. 3군사령관을 거쳐 대장으로 예편,전두환씨의 후임으로 중앙정보부장에 올랐다.85년 12대 총선 때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원내에 진출,13·14대 총선 때 경북 예천에서 여당 공천을 받아 내리 당선됐다.문민정부 출범후 공직자 재산 공개 때 축재사실이 드러나 의원직을 사퇴했다. 조홍 수경사헌병단장(대령)은 5·6공 시절 주요 직책을 맡지는 못했지만 당시엔 중요한 두가지 역할을 했다.전 보안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신군부 핵심이 30경비단에 모이는 시각에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장태완 수경사령관,김진기 헌병감 등 수도권 핵심지휘관들을 격리하는 역할을 맡았다.『전보안사령관이 초대했다』며 하오 6시 30분쯤 장수경사령관 등이 연희동 요정에 모이자 『합수부장이 대통령보고 때문에 총리공관으로 갔는데 하오 8시까지 오기로 했다』며 거짓말을 하며 하오 7시35분까지 1시간 남짓 붙잡아 둔다. 이어 윤성민 육군 참모차장 등의 체포에도 핵심 역할을 맡는다. 육본 헌병감을 거쳐 82년 준장으로 예편,재향군인회 사업국장,도로교통안전협회 감사,손보협회 회장을 지냈다. 참고인으로 소환된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은 신군부측이 정승화총장의 연행과 관련,최대통령으로부터 사후재가를 받는데 중개자 역할을 했다. 정전총장이 연행된 12일 하오 7시10분쯤 총장공관쪽에서 총성이 나자 인근 단국대 체육관으로 가족들과 함께 피신한뒤 여의도에 있는 이경률 당시 합참 작전국장의 집에 가족들을 데려다 놓고 하오 9시30분쯤 육본 B2벙커로 돌아온다.1공수여단의 국방부진입 소식을 듣고 국방부 건물 지하실 계단밑에 피신한다.13일 상오 3시50분쯤 보안사 요원들에게 발견된 뒤 연행돼 신군부측의 강압에 못이겨 정총장의 연행을 사후 결재했다.5시15분쯤엔 총리공관에서 최대통령을 만나 신현확 국무총리,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배석한 가운데 『사태가 더 확대되지 않도록 결재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최대통령의 사후재가를 받도록 했다. 그 뒤부터 지금까지 특별한 대외활동을 하지 않았다. 성환옥씨는 허삼수·우경윤 대령 등과 보안사 수사관 및 수경사 33헌병대 1개중대 등 60여명으로 하오 7시10분쯤 육참총장 공관에 도착,이재천 총장수행부관과 경호장교에게 총격을 가한뒤 정총장 연행에 성공했다. 85년 준장으로 예편한뒤 86년대통령경호실 차장,90년 감사원 사무총장을 지냈다.
  • 국회 본회의 통과법안 요지

    ◎「컴퓨터 사기」 형사처벌­형법/체포 영장제·체포 적부심제 도입­주택자금 상환 이자 30% 세공제­세감법 국회는 2일 본회의를 열고 형법개정안 등 12개 법안을 처리했다. 다음은 주요 통과법안 요지다. ▲형법(개정)=현행 비밀침해죄는 편지 문서 등을 개봉할 때만 성립했으나 편지 등을 개봉하지 않고 기술적 수당에 의해 그 내용을 알아낸 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함.종전의 편지 문서 도서 이외에 녹음테이프 녹화필름 컴퓨터디스크 등에 수록된 비밀에 대해서도 보호의 객체가 될 수 있도록 함.컴퓨터등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나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여 정보처리를 하게 함으로써 재산상의 이득을 취한 경우에는 컴퓨터 사기죄를 적용하도록 함.복사기나 팩스에 의해 복사한 문서 또는 사본도 문서 또는 도서로 보아 형법으로 보호함.부정한 방법으로 자동판매기 공중전화 등 유료자동설비를 이용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득을 취한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함.가스 전기 방사선 등을 유출해 생명 등에 위험을 초래한 경우 1년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가스·전기등 방류죄를 신설함.사람을 체포 감금 유인한후에 인질로 삼아 체포를 면하려고 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그 인질을 살해할 경우는 더욱 엄하게 처벌함.현행 40만원 이하부터 3백만원 이하인 벌금형을 2백만원 이하부터 3천만원 이하까지 상향 조정함. ▲형사소송법(개정)=검·경 등 수사기관의 인권침해를 막기위해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때에는 법관이 발부한 체포영장에 의해 신병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체포영장제도를 도입함.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한 이후 4시간이내에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으면 즉시 석방됨.불법한 체포의 사후 구제책으로 현재의 구속적부심사외에 체포적부심사제를 도입함.수사기관이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때 판사가 직접 피의자를 심문한후 구속여부를 결정할수 있도록 함.체포·구인 또는 긴급체포된 기간을 구속기간에 포함시킴.기소전이라도 구속된 피의자에 대하여 법원이 보증금 납입을 조건으로 석방할 수 있게함.형사사범이 해외로 도피할 경우 국외에 거주하는 기간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함. ▲주세법(개정)=93년 한·EU 주류협상에 따라 위스키 브랜디의 세율을 현행 1백20%에서 1백%로 인하함.맥주세율을 현행 1백50%에서 1백30%로 인하함.원료용 주류에는 주세를 부과하지 않고 완제품 출고단계에서 주세를 징수토록 함. ▲부가가치세법(개정)=부가가치세 과세특례면세점을 연간 매출액 1천2백만원에서 2천4백만원으로 확대함.한계세액공제제도 및 사업자 등록검열제도를 폐지함.산매·음식점에 대한 신용카드 발행금액의 1천분의5를 납부세액에서 공제하던 것을 1천분의10으로 상향 조정함. ▲특별소비세법(개정)=휘발유와 경유에 부과되는 교통세가 종량세로 전환됨에 따라 등유 석유가스 등에 대한 특별소비세도 종량세로 전환함.세율 인하시 종전에는 환급을 받기 위해 과세물품을 제조장까지 환입해야 하던 것을 하치장까지 환입한 경우에도 환급을 받을수 있게 함. ▲조세감면규제법(개정)=법인 전환시 양도소득세의 50%를 감면하는 대상에 부가통신업 엔지니어링사업 연구개발업 종합유선방송업 및 물류사업을 추가함.5년 이상 사업을 계속한 중소사업자가 제조업 이외에 유통 물류사업이나 지식산업으로 전환하는 경우에도 양도소득세의 50%를 감면하도록 함.미분양 주택을 구입하여 5년이상 보유·임대한 후 양도시 양도소득세의 20%특례세율과 종합소득세율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함.주택구입자금 대출금상환이자에 대하여 30%의 세액공제를 하고 토지개발공사 비축용토지의 양도시에도 양도소득세의 50%를 감면하도록 함. ▲교육세법(개정)=담배에 대한 교육세 기본세율을 담배 소비세액의 40%로 함.유류에 부과되고 있는 교통세액및 특별소비세액의 15%수준을 교육세로 신규 부과함.경주 마권세에 대한 교육세의 세율을 현행 20%에서 50%로 상향 조정함. ▲소득세법(개정)=만 6세이하의 자녀를 둔 취업여성근로자 또는 남성 독신 근로자에 대해 자녀 1인당 연 50만원의 자녀양육비 공제가 신설되고 대학생 교육비는 연간 2백30만원,유치원생 자녀의 교육비는 연간 7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게 함.채권등을 만기전에 법인에게 중도 매각하는 경우 보유기간별 이자상당액을 이자소득세에서 원천징수한 후 종합과세함.
  • 경미한 행정사범 생활불편 해소/일반사면 내용을 알아보면

    ◎95년8월10일전 「행정법령」 위반 대상/운전면호 취소자 즉시 시험응시 대상 2일부터 발효되는 「광복 50주년 기념 일반사면 등 은전 조치」는 국민생활과 직결된 경미한 행정법령 위반죄와 공무원의 가벼운 비위를 사면함으로써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국민 대화합을 이루자는 데 취지가 있다.국민 생활과 관련이 있는 사면령의 내용을 소개한다. ▷일반사면◁ ◇대상=95년 8월10일 이전에 법정형 5년 이하의 경미한 35개 「행정법령 위반의 죄」를 범한 사람이다.그러나 국가보안법 등 국가적 법익에 관한 사범,공권력 도전 사범,선거사범,조직폭력 등 민생침해사범,부정부패사범,악의적 재산이득사범,환경·국민보건 위해사범,지적 소유권 침해사범,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대형사고 관련 법률 위반사범,국민화합을 저해하는 사범은 제외됐다. ◇효과=구속중이거나 형집행중인 사람과 벌금을 내지 않아 형을 살고 있는 사람은 석방된다.현재 수사를 받거나 재판중인 사람은 공소권 없음 처분 또는 공소취소나 면소 판결을 받는다.기소중지된 사람은 수배해제되며 벌금·과료·범칙금 미납자,구류 미집행자는 집행 면제를 받는다.집행이 완료된 사람은 기왕의 형이 실효된다.그러나 35개 법령의 죄 이외의 다른 죄도 함께 범한 경합범은 사면에서 제외된다. ▷징계사면◁ ◇대상=문민정부가 출범한 93년 2월24일 이전에 징계 사유에 해당하는 비위를 저지르거나 그 비위로 징계처분을 받은 전·현직 공무원이다.정부는 물론 국회,대법원,헌법재판소,선거관리위원회,정부투자기관 및 산하단체 임직원도 포함된다.다만 파면·해임처분을 받거나 금품 및 향응 수수,공금 횡령·유용의 비위를 범한 사람은 제외된다. ◇효과=징계처분의 효력은 물론 징계 요구권도 사라진다.인사기록카드상의 징계처분 기록이 말소되고 승진·호봉승급 제한,상훈상의 불이익도 해제된다.호봉이 승급되지 않은 사람은 새롭게 호봉을 산정받는다. ▷도로교통법상의 벌점 삭제 등◁ ◇벌점삭제=지난 8월10일 전의 도로교통법 위반 행위에 대해 행정처분의 자료로 관리하고 있는 벌점이 삭제된다.음주 운전으로 받은 벌점도 삭제된다.다만 개인택시,녹색면허 등 무사고 관련 각종 제도의 운영을 위해 필요한 벌점은 전산 관리한다. 운전면허 정지기간중인 사람은 잔여 정지기간이 면제돼 운전면허증을 교부받고 운전면허 정지 또는 취소처분 대상자는 처분을 면제받는다.무면허운전,운전면허취소로 일정 기간 면허응시기회가 제한된 사람들은 즉각 응시가 가능하다.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정지 또는 취소된 사람도 잔여기간을 면제받고 즉각 면허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그러나 허위·부정면허,차량이용범죄,뺑소니,정신질환 등으로 응시 기회가 제한된 사람들은 제외된다. ▷사면대상 법률◁ ▲가정의례법 ▲개항질서법 ▲건축법 제80조 제1호 ▲경범죄처벌법 ▲계량및 측정법 ▲공연법 ▲공유수면관리법 ▲공유수면매립법 ▲군복및 군용장구 단속법 ▲내수면 어업개발촉진법 ▲도로교통법 ▲동물보호법 ▲매장및 묘지등법 ▲민방위기본법 ▲소방법 제116조와 제117조 ▲수산업법(제94조,95조 제1호,96조 제6호 제외) ▲수산자원보호령(제30조 제4호 제외) ▲어선법 ▲에너지이용합리화법 ▲옥외광고물등 관리법 ▲인장업법 ▲자동차관리법(제70조,71조 제외) ▲자동차운수사업법 ▲자전거이용활성화법 ▲전당포 영업법 ▲주민등록법 ▲지방공기업법 ▲체육시설 설치·이용법 ▲초지법 ▲축산물 위생처리법(제21조 제외) ▲축산법 ▲출판사 및 인쇄소등록법 ▲측량법 ▲학원설립·운영법 ▲향토예비군 설치법
  • 「반인류 범죄」 처벌에 시효없다/과거청산 외국선 어떻게 했나

    ◎유럽/나치전범 86년까지 6,479명 단죄­독일/2차대전 유태인 학살 투비에 종신형­프랑스 집단학살등의 반인류 범죄를 처벌하는데는 시한이 없다.특히 2차대전당시 인류를 학살하고 괴롭힌 전범들에 대해서는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세계 곳곳에서 단죄를 받고 있다. 반인류범 처벌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법정.미·영·불·소 등 4개국이 2차대전 전범자들을 처벌할 목적으로 지난 45년 11월20일 개설한 이 특별법정은 지난 20일로 개설 50주년을 맞았다. 뉘른베르크법정이 열리자 히틀러의 측근인 헤스를 비롯해 24명의 나치 지도급인사를 처벌됐으며 46년 10월1일까지 1년 가까이 4백8명의 전범들이 법정에 서야만 했다. 독일은 특히 56년부터 루드스비히에 나치전범연구소를 세워 전쟁자료를 추적,구체적 죄목을 입증해 전범을 꾸준히 처벌해왔다.이에따라 86년까지 모두 6천4백79명이 날카로운 법의 심판을 받았고 이중 12명이 사형이 선고됐고 1백60명은 종신형,나머지 6천1백9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7천5백명 정도의 나치전범이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 등지에 불안에 떨면서 숨어지내고 있다.그러나 이들을 찾아내 처벌하려는 노력은 세계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어 시한이 걸리기는 해도 법의 심판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유엔은 반인류범을 집단학살은 물론이고 정치·종교·인종적인 이유에서 학대하거나 약탈행위·암살·포로나 인질을 괴롭히는 등의 행위로 규정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도 이같은 반인류범을 시한없이 끝까지 추적하고 있다.프랑스는 64년12월 반인류범죄에 대해서는 시효를 적용치 않는다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지난해엔 형법을 개정해 집단학살범에 대해서는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프랑스에서 전범으로 처벌받은 대표적인 인물은 폴 투비에.투비에는 리옹 등지에서 나치 비밀경찰에 협조해 유태인 추방과 학살등에 관여한 혐의로 45년9월 열린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잠적해 버렸다.사면을 받는 등 우역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결국 89년 붙잡혀 지난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또 유태인 어린이50여명을 학살한 클라우스 바르비도 반인류적인 행위자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리옹지역의 게슈타포 지휘자였던 바르비는 52년 궐석재판을 받았다가 지난 83년 붙잡혀 4년뒤 종신형을 받았다. 스페인도 15년 동안의 작업 끝에 최근 인권 학대 등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뉘른베르크 특별법정 이후에도 반인류범을 처벌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유엔은 93년 결의안 808조에 따라 유고내전에 대한 특별법정을 헤이그에 설치,전쟁을 일으킨 주범들을 처벌하고 있다.또 르완다내전에 대한 국제법정이 지난해 탄자니아의 아루샤에 설치돼 집단학살의 책임자들에 단죄를 가하고 있다. 이런 법정들은 특정사안을 다루는 특별법정이지만 항구적인 법정도 있다.유엔 사법재판소는 45년 헤이그에 설치된 항구법정이고 유럽연합(EU)은 51년 룩셈부르크에 사법재판소를 두고 있다.EU는 이것도 모자라 59년 스트라스부르에 인권법정을 마련해 반인류범에 대한 강한 처벌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의회,67년 군부행위 쿠데타 규정 특별재판서 주모자들 무죄징역 그리스의 쿠데타주모자 처벌은 비교적 순조롭고 철저하게 이루어졌다.2차대전 종전과 함께 부활된 왕정을 무너뜨리고 군부가 실권을 장악한 것은 67년.쿠데타 주역은 예오리오스 파파도풀로스 대령이 이끄는 영관급장교 24명.이들은 콘스탄틴 2세를 폐위시킨 뒤 68년 독재헌법을 마련,7년간의 군사정권이 계속됐다. 74년 키프로스사태가 군사정권 몰락에 크게 작용했다.키프로스공화국내 터키계 주민과 그리스계 주민 사이에 주도권 쟁탈을 놓고 벌어진 유혈사태에 그리스군을 파병하기 위해 군정실권자들이 총동원령을 내리자 그동안의 독재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일부 군장성과 민간정치인들도 합세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명목상 군정대통령을 맡고 있던 기지키스 장군이 7월22일 야당지도자들과 민선 이양에 합의했다.당황한 군정측은 군대를 동원,아테네시를 포위하는 무력위협에 나섰고 시내 의사당 앞에 군정에 반대하는 수십만 시민이 모여 일촉즉발의 대치상태를 연출했다.결국 대세에 굴복한 군정측이 3일만에 손을 들었고 7월24일 파리에 망명했던 야당지도자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가 금의환양했다. 그해 11월 총리직에 오른 카라만리스는 곧바로 67년 쿠데타주역들을 재판에 회부했다.75년초 의회는 67년 군부행위를 쿠데타로 규정하는 결의안 채택과 함께 특별법을 제정했다.군정기간중 60여명이 독재에 항거하다 숨졌고 수천명이 부상당했음이 재판을 통해 밝혀졌다.같은해 8월 끝난 특별재판에서 쿠데타주모자인 파파도풀로스와 마카레조스에게는 사형이 선고됐고 여타 주모자들에게 최고 사형에서 최하 25년의 중형이 선고됐다.이후 사형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쿠데타주역들은 지금도 복역중이다. ◎남미/쿠데타 집권 전대통령 등 법정에­아르헨/인권탄압자 사면조건 범죄고백 받아­칠레 ▷아르헨티나◁ 76년4월 이자벨리타 페론 대통령을 내쫓고 정권을 잡은 군부는 라울 알폰신 민선대통령이 취임하는 83년12월에 이르기까지 최소 1만3천여명의 동족을 좌파타도의 슬로건 아래 납치·살해(실종 9천여명 포함)했다.알폰신 대통령은 취임 즉시 군 최고지도층 절반을 은퇴시키는 군개혁을 실시한 뒤 군부가 민정이양 4개월전 제정한 과거 10년간 군·경의 정치범죄에 대한 소급 사면법을 폐기,쿠데타주도의 혁명평의회 장군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쿠데타 장군들의 재판은 85년4월 시작돼 12월 혁명후 첫대통령 비델라 장군과 마세라 제독(종신형) 등 5명이 형을 받았고 4명은 석방됐다.포클랜드전쟁(82년) 당시의 갈티에리 대통령 등 3인혁명위원에 대한 재판은 따로 열려 갈티에리는 12년형을 받았다.그러나 알폰신정부는 87년 부분사면법을 통과시켜 인권침해 혐의로 기소된 3백70명의 군·경중 40명의 고위직을 제외한 나머지를 석방했다. 89년7월 취임한 카를로스 메넴 새 대통령은 이전 페론당으로서 군부에게 학대를 받기도 했지만 군부집권시의 좌파대상 「추악한 전쟁」이나 민정 이후 쿠데타기도에 연루된 2백10명의 장교·하사관들을 89년10월 사면했다.그리고 90년12월 2차 대통령사면령을 통해 군부정권 1,2번째 대통령인 비델라,비올라 장군및 마세라제독 등 군부지도자들을 「국민화합」을 이유로 석방했다. 당시 「추악한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 두명이 올 2월과 4월에 약물에 마취된 좌파인사들을 비행기에서 바다로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고 최초로 고백하기도 했으나 1만여 동포살해의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칠레◁ 세계최초의 민선 사회주의자 대통령인 아옌데를 살해하고 73년9월 정권을 잡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은 국민투표 신임미달(43%)로 90년3월 파트리시오 아일윈 민선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했으나 자신이 오는 97년까지 육군참모총장에 재직할 수 있도록 했다.앞서 군부는 80년 헌법개정을 통해 자신들의 73∼78년 좌파대상 정치범죄를 일괄사면시켰으며 민정이양하면서 상원의 5분의1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졌다. 지난 17년간의 군부독재 아래서 자행된 인권탄압 범죄를 법적으로 처리할 힘이 부족한 민선정부는 90년4월 「진실과 화해 전국위원회」를 구성,가해자에게 사면을 조건으로 범죄고백을 받고,모든 피해를 확인·적시하는 문서작성에 들어갔다.91년3월 아일윈대통령은 2천2백79명의 정치박해 사망자에 관한 1천쪽 분량의 보고서 완성을 TV방송을 통해 발표하면서 「국민화합」을 강조했다.여기서 피해자는 인적사항을 명확히 기록했으나 가해자는 이름 대신 소속기관을 거명하는데 그쳤다.칠레의 이같은 과거청산 방식은 동유럽,남미,남아공 등 14개국이 모방하는 세계적 모델로 예시되곤 한다. 한편 76년 미 워싱턴에서 전외무장관을 살해한 범죄는 군부의 사면법에서도 제외되었는데 92년11월 장기조사 결과 군부의 정치탄압 실행기관인 국가정보국 소행으로 밝혀졌고 당시 국장인 콘트레라스 퇴임장군과 참모장 에스피노사 현준장은 각각 7,6년형을 선고받았다.이 선고는 올 5월 최고법원에서 확정되었지만 피노체트 장군과 장교들은 콘트레라스 장군을 해군병원으로 피신시켜 에스피노사 준장만 현재 수감중이다. ◎남아공/「진실 및 화합을 위한 위원회」 창설/과거 인종차별 범죄행위 조사키로 지난 7월20일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은 「진실및 화합을 위한 위원회」를 창설한다는 법안에 서명했다.만델라는 이 위원회가 흑백 인종차별 정책 아래 저질러진 숱한 인권탄압 등 국가의 주도 아래 벌어진 범죄들을 조사·단죄하기 위해 창설되며 창설 후 18개월간의 한시적 활동을 통해 인종차별 정책 아래 저질러진 모든 범죄행위들을 철저히 조사,남아공의 어두운 과거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아공국민들은 대부분 이 위원회의 활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인종차별정책에 따른 피해가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현재 남아공의 연정을 이루고 있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나 국민당도 모두 겉으로는 이 위원회의 취지에 찬성하고 지지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실제로 이들 정치인들이 이 위원회의 활동을 전폭 지지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과거의 범죄행위들이 정말로 철저히 파헤쳐지면 과거의 백인 소수정부를 이끌었던 데 클레르크 부통령의 국민당측은 물론 만델라 대통령의 ANC측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일부 관측통들은과거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가져올 정치적 대가가 도덕적인 사기 앙양에 비해 훨씬 클 것이라며 과거의 범죄행위가 어디까지 파헤쳐질 수 있을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범죄가 밝혀지더라도 처벌에 있어 어떤 예외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만델라 대통령은 『진실만이 과거를 잠재울 수 있다』며 과거의 범죄행위를 밝혀내는데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 통일안보 정상외교(박화진 칼럼)

    우리가 부러워하는 89년의 독일통일이 20년전인 69년10월 시작된 브란트 당시 서독총리의 동방정책(OST POLITIK)에서 비롯된 것임은 세상이 다아는 일이다.독소불가침조약체결,할슈타인 원칙포기,폴란드와의 수교,유엔동시가입,오데르나이제강 국경선 인정 등 주로 옛소련과 동유럽에 대한 서독식 통일외교였다.내각책임제였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외교 하나만은 마지막 통일의 순간까지 일관되게 은근과 끈기로,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이어졌다. 독일은 2차대전을 일으킨 당사국으로서 분단의 많은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할수있는 나라였다.서독의 통일외교는 그런 자각과 인식의 전제아래 전개되었다.전승국인 미영불 특히 옛소련을 상대로 하는 사죄와 반성 그리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의 회유외교라 할수있는 것이었다.특히 옛소련 동유럽에 대한 대규모적이고 지속적인 경제지원도 병행되었다.통일을 전후한 옛소련지원만도 약2백50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알려지고있다.독일통일반대를 무마한 회유비용이었다. 독일과는 달리 우리의 분단은 김영삼 대통령도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지적했듯이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패배한 일제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에 근원적인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할수있다.말하자면 책임을 지고 분단의 고통을 겪었어야할 당사자는 일본이었던 것이다.그것을 일본 아닌 우리가 지게된 것이며 미·소 이데올로기대립이라는 직접적인 분단원인의 소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분단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있다. 한반도분단의 주된 원인 및 책임은 이처럼 대부분이 일본과 미국·러시아등에 있다고 할수있다.우리의 통일외교는 이같은 역사인식을 기초로 해야한다.미·일·중·러등 이른바 한반도주변 4강을 상대로 그러한 인식을 공유시키며 한반도분단의 부당성·비도덕성 그리고 시대변화에 따른 무의미성을 강조하고 통일의 당연한 권리를 기회있을때마다 주장·설득하며 한국주도통일에 협조하고 방해하지 않도록 유도해나가야 할것이다. 동시에 한반도통일이 그들 모두에게 해보다는 득이 될것임을 강조하는 현실적노력도 중요하다.지리적으로 멀리떨어진 미국·러시아와는 달리 인접중국과 일본은 우리의 통일,말하자면 「인구 7천만에 자유민주체제의 선진개도국 한국의 출현」이라는 주변현상의 변화에 민감할수밖에 없다.통일한국이 일본과 중국에 결코 적대적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일찍이 안중근의사가 「동양평화론」에서 역설했듯이 강력한 한국이 동북아평화와 안정의 기본임을 설득해나갈 필요가 있다.일본과 중국의 가교요 완충지대로서 그리고 21세기아시아태평양시대의 번영을 주도할 통일한국 출현의 필요성을 납득시켜야 할것이다. 노태우 전대통령 사건의 와중에 제대로 주목받지못한 아쉬움을 남긴 김영삼 대통령의 지난 1주간에 걸친 중·일 상대 정상외교와 일·중 정상들의 한반도정책다짐 및 약속은 우리 통일안보외교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성과로 평가되는 것이었다.강택민 중국주석방한은 그것만으로도 우리통일안보외교의 의미 심장한 승리라 할수있는 것이지만 정전체제와 한반도문제 당사자해결원칙에 대한 강주석의 지지표명 또한 중요성과로 평가할수있다.망언파동에도 불구한 무라야마일본총리의 대북수교3원칙(수교전경제지원않고,남북관계진전을 고려하며,한·일관계에 손상없게한다)보장도 대통령의 통일정상외교가 거둔 큰 성과라 하지 않을수없다. 우리통일외교도 서독 이상의 인내와 지속성을 갖고 꾸준히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전개해나가야할 것이다.
  • 보스니아 평화회담의 주역들

    ◎내전사주 핵심인물… 최근 협상 적극 추진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 대통령=「대세르비아건설」을 목표로 대리인들을 통해 보스니아 내전을 사주해 온 인물로 지목돼 왔으나 최근 신유고연방에 대한 유엔제재 해제를 위해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의 과격한 입장에 반대하면서 크로아티아를 승인하는 등 평화를 적극 추진해 왔다.41년생.변호사 출신으로 옛 유고연방 붕괴 후 92년 세르비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91년 정계복귀… 전쟁통해 세계 굴복시켜 ▲프란요 투즈만 크로아티아 대통령=지난달 크로아티아 총선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강력한 국내지지를 업고 이번 데이턴 평화협상에 임했다.22년 자그레브 태생.2차대전에 유격대로 참전한 뒤 반공산주의자로 변신,축출됐다가 90년 「크로아티아민주동맹당」이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정계에 복귀,세르비아와의 영토회복 전쟁을 통해 세르비아에 압박을 가해 평화협상에 임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91년 세계에 납치됐다 유엔중재로 석방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 대통령=독실한 회교도로 반공산주의 운동을 하다 두차례 투옥된 적이 있으며 지난 4년간의 내전에서 어려운 여건에도 보스니아를 이끌어 왔다.25년생.89년 회교계 정당을 창당,90년 총선에서 승리했다.91년 유고연방 붕괴가 시작될 당시 세르비아계에 납치됐다 유엔중재로 석방된 적도 있다. ◎세계 최강경파… 현재 전범재판소에 기소 ▲라도반 카라지치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지도자=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가 독립을 선언한 92년 이후 강경한 입장을 고수,유엔과 국제사회에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데이턴평화협상이 끝나갈 무렵 대세르비아 건설 희망이 사라졌음을 시인.45년 몬테네그로 사브니크 태생.정신과의사 출신으로 현재 전범으로 유엔재판소에 기소돼 있다. ◎탁월한 회교력으로 내전종식 중재 역할 ▲리처드 홀브룩 미국 국무차관보=강력하고 적극적인 외교로 보스니아 내전 세력들 사이에서 평화협정을 이끌어 낸 중재자.2개월간 보스니아·크로아티아·세르비아를 직접 방문하고 지난 3주일 동안 데이턴에서 내전세력 지도자들을 달래고 위협하면서 협상을 주도.41년생.68∼69년 베트남전 평화협상 때도 미국대표로 활약했고 지난해 국무부 유럽·캐나다담당 차관보로 임명됐다.
  • 경미한 행정사범 생활불편 해소/사상최대 일반사면 의미

    ◎공무원 비위도 포함… 사기 진작/국가적 법익·공권력 도전 사범 모두 제외 정부가 21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한 일반사면령안은 정부수립이후 단행된 사면중 최대 규모로 경미한 행정범죄로 인한 국민의 생활불편을 해소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특히 이번 일반사면안에는 문민정부 출범이후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비위를 저지른 전·현직 공무원에 대한 징계사면도 포함돼 있어 공직사회의 사기진작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48년 정부수립후 7번째로 단행되는 이번 일반사면령안은 크게 범죄의 종류를 지정,해당 범죄사범에 대한 형의 선고효력을 상실시키는 일반사면에 공무원에 대한 징계처분효력을 없애는 징계사면이 포함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정부는 『국민 일상생활과 직결되고 사면이 단행될 경우 가능한한 많은 국민이 고루 혜택을 볼수 있는 범죄유형을 엄선했다』고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면대상 범죄의 발생시점은 지난8월 10일 이전으로 제한돼 있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단행된 8·15 특별대사면이발표된 시점인 지난 8월 11일 정부측이 이미 일반사면 단행방침을 공표했기 때문이다. 또 일반사면 조치방침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뒤 저질러진 범죄행위에 대해 사면을 단행할 경우 법의 권위와 법집행의 안정성에 큰 지장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일부 우려를 배제하기 위한 정부측의 결정이라 볼 수 있다. 사면대상자들이 직접 느낄수 있는 혜택은 무엇보다 형의 선고효력이 실효됨으로써 「전과자의 탈」을 벗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형을 확정 선고를 받은 대상자는 선고의 효력이 사라지고 소추중인 사람은 공소권이 소멸돼 범죄행위 자체가 「아예 없었던 일」이 되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형집행이 종료된 사람은 형이 실효되고 구속중 또는 형집행중인 사람은 모두 석방된다. 또한 수사중인 사람은 공소권없음 결정이 내려지고 재판중인 사람은 공소취소 또는 법원의 면소판결을 자동적으로 받게 되며 기소중지자는 수배 해제후 수사 종결되게 된다. 벌금,범칙금 미납자와 구류 미집행자는 집행 자체가 면제된다. 이와함께 징계사면의 경우 문민정부출범 당시인 93년 2월 24일 이전에 징계를 받은 전·현직 공무원에 대한 징계처분 효력이 완전 상실되고 징계소추권도 소멸된다. 하지만 이번 사면에서는 국가적 법익과 공권력에 도전하는 법률위반사범등 일반 국민생활과는 동떨어진 범죄사범은 사면대상에서 모두 제외됐다. 선거사범및 조직폭력등 민생침해사범,부정부패사범,악의적 재산취득사범,환경·국민보건침해 사범,지적소유권 침해사범,집시법위반사범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 간첩 접촉혐의 구속 우상호씨 석방

    서울지법 형사 항소3부(재판장 이우근 부장판사)는 11일 남파간첩과 접촉한 뒤 이 사실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국가보안법상의 불고지혐의로 구속된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 우상호(33·전 연세대총학생회장)씨가 신청한 구속적부심을 받아들여 석방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전대협 동우회」회장 이인영(31·전고려대 총학생회장)·함운경(32)씨가 낸 구속적부심은 기각했다. 우씨 등은 지난달초 서울시내 다방 등에서 충남 부여군에서 군·경과 총격전을 벌이다 생포된 간첩 김동식(33)을 만나 북한의 실태 등에 관해 얘기를 나눴으나 이를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지난 6일 구속됐다.
  • 쿠바 정치범 석방 합의/미선 금수 강화않기로/클린턴­카스트로

    【워싱턴 로이터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피델 카스트로 쿠바대통령에게 정치범들을 석방하면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를 강화하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내용의 제안을 했으며 카스트로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워싱턴 타임스지가 1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익명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전하면서 쿠바의 일부 정치범들이 크리스마스 이전에 석방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식통은 카스트로가 지난달 유엔 창설 50주년 특별정상회의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을 때 미국정부로부터 이러한 제안이 전달됐다고 밝혔다. 쿠바의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현재 쿠바 내에는 카스트로에 대한 비방과 불법적 결사,외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한 혐의로 1천∼1천5백명의 정치범들이 수감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민노총 탄압말라” 9개 시민단체 촉구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등 9개 시민단체는 10일 상오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는 11일 출범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 총연맹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는 노동자의 자율적인 결사체인 민노총의 존재를 인정,진지한 노사관계정립에 앞장서야 한다』며 『조합활동과 관련된 인사의 수배를 즉각 해제하고 구속자를 석방하라』고 주장했다.
  • 김 대통령 뉴욕 특파원 간담회 문답

    ◎“유엔무대서 달라진 한국 위상 실감했다”/“북 우성호 석방 약속 지켜야 쌀지원 진전” 김영삼 대통령은 25일 아침 유엔방문을 끝낸뒤 미태평양사령부 방문차 하와이 호놀룰루로 향하기에 앞서 뉴욕주재 특파원들과 조찬을 겸한 간담회를 갖고 유엔방문 성과와 소감 등을 피력했다.다음은 김대통령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유엔창설 50주년 특별정상회의 참석 성과를 평가해 달라. ▲이번 유엔방문은 시간은 짧았지만 많은 성과가 있었다.각국 정상들이 유엔의 개혁 및 지구촌 현안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한 것은 나름대로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나라가 앞으로 96­97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될 것이 확실한데 이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상임,비상임이사국 15개국의 한 나라가 돼 주요현안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한국의 위상변화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유엔을 전망하면. ▲전쟁,기아,민족 및 종교분쟁이 났을 경우 유엔 이외의 다른 기구에서는 이를 조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유엔은 방만한 경영 등 문제점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지난 50년동안 적지않은 성과를 거뒀다.앞으로 50년의 변화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겠지만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이 변화를 어떻게 슬기롭게 조화시키는가가 중요할 것으로 본다. ­각국 정상들이 한국의 경제에 관한 중요성을 많이 이야기 했다는데. ▲각국 정상들과 이야기 할때 나와 이야기를 하려는 정상들이 많아 곤란할 때도 있었다.많은 정상들과 회담요구를 취소하고 대신 공로명외무장관이 만나기도 했다.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다.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각국 정상들이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있다.우리와 경제적 측면에서 상당히 보완관계에 있는 캐나다만 하더라도 우리 경제가 잘 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최근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지난 2년동안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굉장한 위기상황도 있었다.이를 극복하는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그러나 우리는 이를 극복하고 마침내 북한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한국형 경수로인 울진 3,4형으로 결정나기까지는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 많았다.북한은 우성호 선원 석방과 대남 비방중지약속 등 우리와 한 약속을 저버리면서 쌀을 더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약속도 안지키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북한은 해외 교민사회에 침투하려는 전략을 강화시키고 있는데 이에 대한 복안은. ▲지구상에서 이제 공산주의체제를 지지할 방향으로 나가는 나라는 없을 것으로 본다.변화의 힘을 막을 수 없다.과거의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 미­중 정상회담 정례화 합의/클린턴­강택민

    ◎양국 사이에 심각한 이견 없어 【뉴욕·로이터 로이터 AP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과 중국의 강택민 국가주석은 24일 두시간에 걸쳐 정상회담을 갖고 앞으로 정례회담을 통해 양국 현안을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윈스턴 로드 미국무부 차관보는 회담이 끝난 후 기자들에게 양국 정상이 앞으로 각종 의제 협의를 위한 정례회담 개최와 양국 교류문제에 합의했으며 인권문제와 관련해서도 『상당한 논의를 가졌다』고 말하고 『두 정상 모두 현재 양국 사이에 더 이상 심각한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회담에서 어떤 현안이라도 해결했는가』라는 질문에 『두 정상이 정례회담 재개및 양국 교류문제에 합의한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면서 『앞으로 이를 통해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대만문제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한 이견이 조정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현안 해결보다 「만남」에 비중/공동회견 등 의례적 외교절차 생략/클린턴­강택민 회동 의미 24일 뉴욕 맨해튼의 링컨센터에서 열린 클린턴 미대통령과 강택민 중국주석과의 미·중정상회담은 산적한 현안 타개보다는 예상대로 「만남」 자체에 의미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두시간 동안의 회담이 끝난후 양국 정상은 공동기자회견과 같은 의례적 절차도 생략한채 헤어졌으며 매커리 백악관대변인은 『매우 바람직하고 건설적인 회담이었으며 두 정상이 그동안 가졌던 세차례의 회담중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라는 외교적 수사만 나열된 회담결과를 발표했다. 매커리 대변인은 또 『두 정상이 양국간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기로 합의한 사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오는 11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담에서도 양국정상간의 대화가 계속될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양국 정상의 만남은 몇차례의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것이어서 시작전부터 「체면치레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당초 중국측은 백악관으로의 「국빈방문」을 타진했으나 클린턴대통령이 인권탄압 독재지도자와의 만찬 기피로 「실무방문」을 제의해오자 워싱턴행을 거부하고 뉴욕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그러나 뉴욕회담에 있어서도 회담장소로 정해진 5번가의 뉴욕공립도서관이 로비에 천안문사태 관련 사진이 걸려있다는 중국 사전답사팀의 반발로 부랴부랴 링컨센터로 옮기는등 준비과정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순탄치 못했다. 지난 6월 이등휘 대만총통의 방미 이후 극도로 악화된 양국관계는 지난 8월 중국이 미국 시민권자인 인권운동가 해리 우의 석방으로 다소 개선의 기미를 보이고는 있으나 「하나의 중국」정책을 내세우면서도 줄곧 대만과의 「비공식적 관계」를 유지,강화시키는 미국의 모호한 태도와 또 인권탄압문제를 미국의 내정간섭으로 보는등 중국측의 불만이 커왔다. 이같이 양국 정상이 관계정상화의 필요성을 실감하면서도 정상회담에서 조차도 선뜻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이들이 미·중관계를 국내정치에서 자신의 위상에 연계,강공 일변도로 나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즉 재선 캠페인에 들어선 클린턴 대통령으로서는 인권문제에 대한 양보는 야당에게 좋은 공격구실을 준다는 판단에서 강경입장을 고수하고있다는 것이다.또한 등소평 사후의 지도력 장악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강택민으로서도 대미협상에 있어서의 강공은 불가피 하다는 것이다.
  • 최장기수 김선명씨 어제 환영집회 무산/경찰 원천봉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등 재야단체와 한총련 소속 대학생 3천여명은 21일 하오 5시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지난 8·15 특별사면때 석방된 미전향 최장기수 김선명(71)씨에 대한 대규모 환영집회를 열려고 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됐다. 경찰은 이날 57개 중대 6천8백여명의 경찰력을 경희대 주변에 배치,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경찰은 이에앞서 20일 하오부터 서울 관악구 봉천6동 김씨의 집 주위에 전경 3개중대 3백60명을 배치해 김씨의 외출을 막았다. 이에 대해 주최측인 「민가협」측은 『이번 집회는 순수한 문화행사로 기획된만큼 집회신고를 하지 않았다』면서 『경찰의 원천봉쇄 방침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 북 “우성호 송환 않겠다”/노동신문/“영해침범 대가치러야” 주장

    【내외】 북한은 21일 지난 5월 납북된 제86우성호 선원을 송환하지 않을 것이며 우성호 문제를 북한의 해당 법률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이 86우성호 선원들에 대한 석방같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신성한 영해를 한치라도 불법침입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하며 86우성호의 범죄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어 우성호의 영해침범이 우리측 해군함정과 해경의 무선지휘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주장하면서 『사태의 진상이 이같은데도 불구하고 남조선 당국이 석방을 거론하는 것은 북에 대한 공연한 생트집이며 도발』이라고 주장했다.
  • 밀입북 박용길 장로 구속집행정지 석방

    서울지법 형사4단독 조승곤 판사는 20일 김일성 1주기 추도행사에 참석하러 지난 6월28일 밀입북,김일성동상에 헌화하는 등 친북활동을 하고 판문점을 통해 귀환,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76)씨가 이덕우 변호사를 통해 낸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박씨를 석방했다.
  • 19일 본회의 정치분야(의정중계)

    ◎국민 자발참여속 상식따라 개혁­이총리/펀중인사 시정할 「천문회」 도입 용의는/동화은행 비리 철저수사뒤 엄정처리 ▷질문◁ ◇최형우 의원(민자)=1인 중심의 보스정치,가부장적인 낡은 정치문화속에서 정치의 생산성을 기대할 수 없다.각 지역의 행정권과 의회를 특정정파가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특정정파의 압력으로부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을 밝혀라.이제 개혁의 대상은 국민의 삶의 현장으로 옮겨져야 한다.행정부가 계획하는 개혁의 구체적 방향은 무엇인가. ◇김상현 의원(국민회의)=국민을 위한 생산적 정치로 변화를 가져다 주는 유일한 해결책은 영수회담을 정례화하는 것이다.증거인멸과 도피우려가 없는 최락도·박은태 의원에 대해 불구속 수사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된다고 생각한다.지역갈등 해소와 인사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고위직·군장성·공영방송 사장등에 대해 「인사청문회」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이부영 의원(민주)=이 나라를 주도하는 세사람의 정치지도자는 국민이 마치 대통령만을 뽑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시민정치시대 개막을 위해 3김정치시대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양순직 의원(자민련)=정실인사를 막기 위해 인사청문회제도를 도입해야 한다.잇단 대북정책 실패로 국가위신이 여지 없이 추락됐는데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 것인가.분권화 다원화돼 가는 사회질서를 올바로 담아내는 민주제도인 내각제 개헌문제를 공론에 부칠 것을 주장한다. ◇이상재 의원(민자)=개혁을 제대로 실천할 자세가 안된 구태의연한 내각이라면 한시 바삐 물러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개혁이 진행됨에 따라 국민의 지지도가 하락하는 기이한 현상을 총리와 국무위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김길홍 의원(민자)=정부안에 관계장관등으로 구성된 정부대책회의를 신설하거나 운영할 용의는.개혁이 표적사정과 정치보복이었다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에 대한 총리의 견해는. ◇정상용 의원(국민회의)=5·18이 민주화운동이라면 학살자들의 훈·포장은 박탈·회수돼야 한다.폭도로,용공으로,내란혐의로 규정돼 있는 광주시민을재심을 통해 무죄선고를 해서 명예회복을 시켜주어야 한다고 보는데 총리의 견해는. ◇박계동 의원(민주)=12·12와 5·18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할 용의는.현정부 집권 2년반동안 구속된 양심수 1천1백명과 수배자 1백49명을 전원 석방 또는 수배해제할 의사는. ◇박희부 의원(민자)=군사정부의 민족자존 부재정책이 일본총리 망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한일협정체결에 참여했던 책임자의 납득할 만한 해명이 있어야 하며 협정과 관련한 미공개자료를 공개할 용의는. ▷답변◁ ◇이홍구 국무총리=여야 지도자들이 대화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그러나 총리가 영수회담을 건의하는 것 보다는 국회에서 협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정부는 앞으로도 개혁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다.다만 개혁추진과정에서 일부 계층의 불만이 곧바로 표출되는 데 반해 개혁작업의 성과는 시간을 두고 나타나게 마련이다.향후 개혁방안은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면서 상식과 순리에 따라 추진하게 될 것이다. 세대교체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은 원론적인 얘기이며 특정인사를 배제하는 인위적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다만 어느 시대에나 시간이 가면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급격한 전환기에는 그에 맞는 논리에 맞춰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안우만 법무부장관=검찰은 동화은행 비리를 철저하게 수사한뒤 혐의 유무를 밝혔고,혐의가 인정되는 사례는 엄정하게 처리했다.5·18과 관련해 유죄판결을 재심제도를 통해 명예회복을 시키는 문제와 관련해 재심제도는 극히 제한적인 비상구제제도이고 법원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 ◇김용태 내무부장관=국가경찰제와 자치경찰제는 장단점이 있다.우리나라처럼 범죄가 지능화,기동·광역화하고 남북이 대치한 안보상황,지방자치체의 재정형편등을 감안할 때 국가경찰제의 유지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 「이·로버트슨 회담문서」를 보고/김광운 국사편찬위 연구원

    ◎한·미 줄다리기 외교 상세히 밝혀/미,휴전동의 얻으려 설득·협박 병행 서울신문이 워싱턴에서 발굴한 이승만·로버트슨 회담문서는 1953년 6월 25일부터 7월 11일까지 계속된 전쟁상태의 종결이 아닌 휴전을 위한 한국과 미국 사이의 협상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당시 로버트슨의 방한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미간 계속된 협상의 배경을 알아야만 한다.그것은 휴전회담을 둘러싸고 악화된 양국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동시에 조속한 휴전협정 체결을 위한 것이었다.아이젠하워 행정부는 휴전협정의 시급한 체결을 위해 이승만 대통령의 협조를 지속적으로 구하였지만,이승만 대동령은 미국의 전쟁정책에 계속 도전하였다.그는 휴전협상을 방해하려는 적극적인 조치로써 1953년 6월 17∼18일 밤에 또 다시 약2만4천여명의 「반공포로」를 석방하였다. 워싱턴 정가는 이승만의 조치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였다.휴전의 지연으로 당시 2주간에만 유엔군사령부는 약1만7천명의 전투손실을 입었으며,그중 3천3백33명이 전사하였기 때문이었다.미국은 이승만을 직접 설득하기 위하여 로버트슨 차관보를 서울에 파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자료에 의하면 로버트슨의 끈질긴 설득과 일종의 협박은 결과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굳세었던 휴전 반대 의지를 꺾었다. 로버트슨이 회담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간 것은 7월12일이다.이날 서울과 워싱턴에서는 동시에 이승만·로버트슨회담을 통해 한국의 휴전,포로의 처리및 장차의 제휴를 위한 문제의 해결에 있어 합의에 도달하였음을 강조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같은 시간에 미 국무부는 별도의 성명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전쟁의 휴전에 동의하였다고 분명하게 성명하였다.이것은 판문점에서 공산군과의 협상까지 휴회한 채 진행된 이승만·로버트슨회담이 얼마나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료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내기 위한 이승만 대통령의 의도가 역력히 드러나 있다.로버트슨이 7월4일 방위조약 초안을 전달한 이후 이대통령이 지극히 우호적으로 나왔다는 내용이 그것이다.이대통령은 휴전 이전에 미 상원의 방위조약 승인을 요구했지만 휴전 이후에 실현되었다.
  • 한국 전쟁의 평가(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40)

    ◎승자·패자 없는 싸움… 이념 대립속 갈등 심화/“삶의 공동체 파괴시킨 반민족적 사건” 규정 새로쓰는 한국현대사 한국전쟁은 3년하고도 32일을 더 끌었다.단일지역의 국지전 치고는 길고도 지루한 전쟁이었다.제2차세계대전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의 전쟁이었지만 전비는 엄청났다.미국은 2차대전 당시 유럽에 투하한 분량보다 더 많은 폭탄을 좁은 한국땅에 쏟아부었다.그래서 한국전쟁은 1·2차세계대전 다음가는 전쟁으로 기록된다.끔찍한 전쟁이 분명했다. ○5백여만명 사상 그러나 전쟁은 휴전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성급하게 미봉되었다.이는 1953년7월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한 말에 잘 나타나 있다.이제 전쟁은 끝나고 내 아들은 돌아오게 되었다는 그의 말은 세상인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휴전은 영원한 평화를 위해 끝난 전쟁과는 거리가 멀었다.어떻든 휴전협정에 따라 한반도의 허리를 다시 가른 비무장지대가 설정되었다.제2분단기를 맞은 것이다. 한국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그 이상한 전쟁은양극화한 이데올로기 대립속에 골 깊은 갈등만을 표출했을 뿐이다.실리 없는 싸움으로 끝난 이 전쟁에서 2백10만∼2백50만명의 전투요원이 숨지거나 부상했다.이 가운데 공산군의 인적 피해가 1백42만명으로 유엔군에 비해 더 컸다.몰론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유엔군사령부의 유엔보고서,「군사정전위원회편람」 및 「조선전사」 등이 제시한 통계와는 차이가 있다.그러나 공산군 피해가 더 컸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설득력을 갖는다. 한국전쟁의 비극성은 실제 전쟁을 치르는 전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이념적 갈등이 빚어낸 더 크나 큰 비극은 전투와 직접 연관성이 없는 비전투지역에서 일어났다.그것은 남북 민간인의 희생이다.전쟁중에 3백1만∼3백67만명의 민간인이 피해를 보았다.이는 당시 전체인구의 10%정도에 버금하는 숫자다.전쟁의 장외에서 한국인의 희생이 얼마만큼 처절했는가를 다시 일깨우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민간인의 희생은 남북한이 상대방 지역을 점령 내지 장악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민간인의 희생유형은 사망·학살·부상·행방불명 등으로 되어 있다.이 가운데 학살은 전쟁으로 비롯된 비인도적 만행이었다.북한의 실상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남한에서는 12만8천9백여명이 학살되었다.행방불명자로 구분한 민간인 30만3천여명의 일부를 학살로 본다면 숫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그리고 남한에서 8만4천5백여명이 납치되어 북한으로 끌려갔다. 한국전쟁은 직접적인 인명피해 말고도 수많은 이산가족을 만들어냈다.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피난민은 45만∼1백만명으로 어림된다.우리 민족이 혈연공동체를 중심으로 정서적 유대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의 월남은 삶의 공동체를 무너뜨린 요인으로 작용했다.그러니까 한국전쟁은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면서 삶의 공동체까지 파괴시킨 반민족적 사건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산업시설도 예외가 아니어서 1950년6월25일 이후 약 10개월간에 걸쳐 42%가 파괴되었다.그 피해액은 1953년7월 기준 4천1백12억환에 달했다.특히 경인지구와 삼척지역의 공업시설은 개전 3개월만에 회복불능상태의 피해를 입었다.여기에 5백72억환에 이르는 교통·전력시설의 파괴가 맞물려 돌아갔다. 전선은 전선대로 오래 버티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요요전쟁」이라 부를 만큼 오락가락을 거듭했다.전선이 이동할 때마다 한국민의 고향을 짓밟아버렸다.이에 따라 농업기반도 황폐화했다.휴전이 성립될 무렵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가 전체인구의 25%를 차지했다.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전쟁기간은 물론 전후에도 꽤나 오랜 기간을 비참한 생활고에 시달렸다.1인당 국민소득이 전쟁직전 90달러에서 60달러로 떨어졌으니 경제는 말이 아니었다. ○북측 소득 30%선 하락 북한의 피해 역시 심각했다.자업자득인 것이었지만 북한의 경제가 입은 피해액은 1949년도 국민소득의 6배에 이르렀다.이로 인해 북한의 경제발전은 5∼6년이 지연되었다.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3년의 전쟁을 치르면서 국민소득을 30%까지 떨어뜨려놓았다.이외에 5천개의 학교,1천1백68개의 병원과 휴양소,6백75개의 과학연구기관과 도서관이 파괴되었다.특히 전쟁말기에는 공산측을 휴전협상테이블로적극 끌어들이기 위한 유엔군의 집중폭격을 받았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에 의한 내전으로 시작되어 국제전으로 발전했다.그리고 한반도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총력전성격으로 전쟁이 수행되어 많은 인적 희생과 물질적 손실을 가져왔다.그 원인은 북한이 선제공격을 통해 무력으로 남한 흡수를 시도한 데 있다.그러나 북한의 의도가 일단 수포로 돌아가면서 두 정치세력은 민족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잔인한 전쟁으로 치달은 까닭도 여기 있다. 그러니까 전쟁은 남북간에 고도의 적대감을 안겨주었을 뿐이다.전쟁을 통해 형성된 적대감은 이념대립을 보다 부추겨 정치·경제·군사·외교분야에서 비타협의 갈등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그 갈등은 타민족 국가간의 대결양상을 뛰어넘는 심각한 것이었다.그래서 평화공존의 틀을 마련하기는커녕 이산가족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교류협력마저 실현을 보지 못했다. ○남북간 적대감 고조 남북 정치상황 역시 전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남한에서 지지기반이 취약하던 이승만대통령은자신의 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그는 적극적인 휴전반대운동을 주도하고 반공포로를 과감히 석방함으로써 이미지를 개선해나갔다.이는 장기집권의 기반이 되었다.특히 북한은 전쟁 중반기에 부수상 겸 외상 박헌영등 남로당계열 숙청에 나서 휴전이후 이를 실현했다.이와 더불어 연안파와 소련한인파를 숙청,일인독재체제를 갖추고 이른바 주체사상에 의한 우상화의 길을 재촉했다.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전쟁을 통해 새롭게 정립한 한·미관계다.물론 전쟁 내내 한·미간의 불협화음이 따라다니긴 했다.휴전회담이 막바지에 접어든 1953년6월17일 이승만대통령이 북한 출신 반공포로 2만6천명을 석방한 사건이 그 대표적 케이스다.이는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어 미국은 이승만을 구금,한국을 미국 군사정부 아래 두고 휴전에 동의토록 한다는 작전까지 추진했다.이승만대통령의 모험은 그해 봄부터 요구해온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은 한국으로 하여금 미국을 핵으로 한 친서방화와 친국제연합화를 추구하는 길을 열어주었다.따라서 국내 정치와 경제에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 역시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제1의 군사대국자리를 굳혔다.또 미국을 정점으로 서방진영의 군사동맹을 강화시켜 냉전시대를 마감하는 데도 공헌했다.그럼에도 전쟁의 무대 한반도는 동서냉전의 유산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아직도 분단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승만­로버트슨 회담 문서/이 대통령,한·미 방위조약 체결 강력 요구/미측선 「유엔군이 한국군 관할」 동의얻어 한국과 미국은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회담을 미끼로 심각한 줄다리기외교을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발굴한 국무성문서에 따르면 휴전회담을 놓고 한·미간에 상대방을 서로 윽박지를 만큼 팽팽히 맞섰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는 19 53년7월27일 휴전회담이 성사되기 이전인 6월25일 한국을 방문한 미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개인사절 월터 S 로버트슨과 이승만대통령과의 회담문서.당시 국무장관 덜레스의 서신을 휴대한 미 국무성 차관보 로버트슨은 이를 이승만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회담은 로버트슨 도착 당일부터 시작했으나 아무 진전이 없었다.이때에 일부 미군 고위지휘관이 한국군에 대한 보급지연과 같은 압력수단을 제시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그런데 7월1일 로버트슨이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메모 한쪽을 받는 것으로 회담은 활로를 찾았다.이승만의 메모는 미국과 어떻게든 합의를 보겠다는 것이었지만 전제조건은 물론 배수진까지 치고 있다. 메모에는 이승만대통령의 요구사항을 담았다.정치회담이 실패할 경우 미국은 한국과 함께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싸울 것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이같은 보장이 없다면 휴전이후 전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미국을 협박하면서 자신은 휴전을 결사반대하는 국민을 설득할 길이 없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미국은 이 회담에서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휴전을 거부하지 않고 한국군을 유엔군 산하에 두겠다는 동의를 얻어냈다.한국은 3월4일 로버트슨으로부터 한·미상호방위조약 초안을 받았고 휴전 이후에 이를 성사시켰다.
  • 박은태 의원 체포 동의안/오늘 본회의서 표결처리

    국회는 16일 본회의를 열어 새해 예산안과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이홍구 국무총리의 시정연설을 들은 뒤,정부가 제출한 국민회의측 박은태 의원 체포동의안을 처리한다. 또 17일과 18일 4당 대표연설을 들은 뒤 19일부터 25일까지 대정부질문에 들어간다. 무기명 비밀투표로 실시되는 박의원 체포동의안은 국민회의 최락도의원에 대한 석방결의안과는 달리 야당의 공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가결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본회의에 앞서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박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입장과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국민회의는 회기중 도주와 증거 인멸의 위험이 없는 현역 의원에 대한 체포에 반대하고 있고 자민련 또한 동조하고 있으나 민주당은 소속 의원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긴다는 방침이다. 한편 여야는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끝남에 따라 이번 주 안에 상견례를 겸한 4당 사무총장회담을 갖고 정기국회 운영을 비롯한 정국 전반에 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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