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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수감사절 최고의 선물” 언론 대서특필/헌지커 석방 미 반응

    ◎소강상태 미­북 관계에 돌파구 마련 기대 3천2백만 미국인들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있는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둔 27일,지구상 가장 고립된 국가인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시민 에번 헌지커의 석방 및 가족과의 극적인 재회는 「미국의 승리」이자 올해 추수감사절 최고의 선물로 미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미국의 주요 매스컴들은 이날 하루종일 헌지커의 일본 도착과 이어 시애틀 도착 모습을 머리기사로 반복 보도했고 이같은 헌지커 가족의 3개월만의 재결합은 가족상봉의 설레임에 들뜬 미국인 모두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미 국무부의 니컬러스 번스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헌지커 석방과 관련,지금까지 빌 리처드슨 의원(민주·뉴멕시코)의 인도적이고 개인적 차원의 여행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그의 방북은 이달 중순 북한측으로부터 헌지커 석방의사를 전달받고 미국무부와 백악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이뤄졌다』고 강조함으로써 미 행정부 차원에서 이룬 개가임을 과시했다. 이같은 분위기로 볼때 이번 사건은 잠수함사건 이후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미·북 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실제로 리처드슨 의원은 미군유해송환을 위한 미 대표단의 내달 방북 합의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번스 대변인은 『이번 사건의 해결이 미·북간 다른 현안들의 자동적인 해결로 진전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현재 한반도 4자회담,경수로 공급 등 많은 현안들의 진전을 위해 북한이 한국에 대한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북한의 제스처 요구는 여전히 유효함을 재확인했다.
  • 북­미 합의문 이행 등 리처드슨과 현안 논의/북 평양방송 보도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빌 리처드슨 미 하원의원은 에번 헌지커씨 석방문제 뿐만 아니라 미·북 기본합의서 이행문제 등 양국 현안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공동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북한방송들이 27일 보도했다.
  • 헌지커 석방이후 한­미­북 관계 전망

    ◎미­북 4자회담 설명회 참가땐 관계개선 시사/한­어떤 형태든 사과 요구… 미와 의견조율 과제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24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잠수함 침투사건 이후 틀어막힌 남·북,미·북 관계가 매우 속도감 있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남북한간의 대화채널은 완전히 막혀있는 상태이기 때문에,어쩔 수 없이 변화의 진행은 미국과 북한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헌지커 송환이라는 「인도적」 이유를 내세우며 평양에 들어갔던 빌 리처드슨 미국 하원의원은 27일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예상했던대로 『미·북간 현안을 폭넓게 협의했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이에앞서 26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마닐라 방문을 수행했던 윈스턴 로드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수주내에 경수로 사업등에 진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미북 유화기류를 확인하듯 미국 국무부도 27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다음주 뉴욕에서 미·북간의 접촉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은 잠수함 사건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되 4자회담과 경수로사업은 계속 추진한다는 한·미 정상의 합의에 따라,그동안 지속해왔던 북한과의 「냉각기」를 해제하려는 것 같다. 미국이 일단 그같은 판단을 했다면 북한과의 관계개선 순서는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없다.미국과 북한은 지난 9월 잠수함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이미 북한의 4자회담 설명회 참가를 전제로 일련의 관계개선 조치를 마련해둔 것으로 알려진다.카길등 미국회사의 대북 곡물수출을 허가하고,유해송환·미사일 협상을 재개하고,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간의 경수로 부지 및 서비스 의정서 서명,한전의 경수로 건설 계략산출비용(ROM) 확정과 한·미·일간 분담비율 협상시작등 일련의 조치가 미국측의 주도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미국은 특히 북한이 일단 4자회담 설명회에 참석하면,미·북 고위급 혹은 준고위급 회담을 열어 향후의 4자회담 일정과 미국의 대북관계 개선 조치 등을 포괄적으로 협의할 것으로 알려져왔다. 정부는 잠수함 사건이후 남북한 관계를 동결하고,미국에도 대북관계 동결을 요청했다가 일단 이달들어 헌지커 석방이라는 인도적인 이유로 리처드슨의 북한방문만 양해한 바 있다.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역시 인도적인 차원에서 미군유해송환협상을,그리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차원에서 미사일협상의 재개를 양해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는 그러나 북한이 잠수함 사건에 대해 아무런 사과나 재발방지 약속이 없는 상태에서 더이상의 미·북관계 진전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정부는 미·북간의 고위급 회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4자회담 설명회보다는,북한이 참여를 약속하는 가운데 4자회담을 곧바로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한·미간의 의견조율결과가 주목된다.
  • “북 곧 한국에 모종조치”/미·북 내주 뉴욕서 회담

    ◎WP지/잠수함 파문서 벗어날 대책 모색 미국과 북한은 다음주 뉴욕에서 회담을 재개할 것이라고 미 국무부가 27일 발표했다.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내주 뉴욕에서 북한과의 회담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히고,그러나 이 회담과 에번 헌지커의 석방은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은 에반 헌지커씨의 석방에 이어 잠수함사건에 대책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최근 방북했던 빌 리처드슨 미 하원의원의 말을 인용,미 워싱턴포스트지가 2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평양에서 고위관리들과 회담과 리처드슨 의원이 북한은 잠수함 사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몇몇 구체적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고 그러나 북한이 취할 다음 단계의 조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 북 헌지커 석방/일 거쳐 미 도착

    간첩혐의로 북한당국에 구속됐던 에번 헌지커(27)가 27일 낮 12시 30분께 빌 리처드슨 미국하원의원과 함께 미군기편으로 도쿄 근처 요코타(횡전) 미군기지에 도착했다.〈관련기사 7면〉 헌지커는 기지 도착직후 기자회견 없이 막 바로 건강진단 등을 위해 군병원으로 직행했으며 이날밤 민간항공기로 도쿄를 출발,미국으로 귀국했다.
  • 헌지커 석방대가 벌금 안냈다/리처드슨 미 의원 기자회견 내용

    ◎두달은 호텔서 한달은 수용소 생활/「잠수함 침투사건」 긍정적 역할 기대 다음은 빌 리처드슨 미 하원의원의 기자회견요지다. ­헌지커 석방경위는. ▲헌지커는 오늘(27일) 상오10시 인계됐다.일본 도착이 하루 늦어진 것은 헌지커를 북한 북부수용소에서 평양으로 데려오는 조치가 필요한 데다 협상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번 방북에는 에릭 존 국무부 북한담당자,밴 플레밍 국방부 관리,미군 관계자 1명 등이 동행했다. ­석방대가는. ▲헌지커에 대한 구체적인 석방조건은 밝힐 수 없으나 북한 법률상의 불법입국에 대한 벌금은 내지 않았다. 헌지커는 첫 두달동안은 호텔에서,나머지 한달은 북부의 수용소에서 생활했는데 미국측이 지불한 5천달러는 두달동안의 호텔숙식료이며 구체적인 액수는 밝힐 수 없다. ­불법입국한 경위등은. ▲관광객으로서 잘못해 강을 건넜으며 스파이는 아니다. ­북한내 활동은. ▲석방협상은 강석주 부부장을 팀장으로 한 북한 외교부관리와 몇차례에 걸쳐 가졌다.이번 석방에 북한 외교부가 적극적이었으며 여기에다 군과 수사당국 등의 협조가 잘 이루어진 결과로 본다. ­헌지커 석방의 의미는. ▲이번 석방은 잠수함침입사건 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북한은 헌지커 석방에 따른 국제적인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생각한다.나는 북한당국에 잠수함침입사건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 ­북·미 현안에 대해서는. ▲북한당국은 나에게 미군 유해조사를 위해 2차 합동발굴조사단의 입국을 연내에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북한은 자신들이 제네바합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 뭘 내놓고 헌지커 데려왔나/나윤도 워싱턴 특파원(특파원코너)

    27일 북한의 한국계 미국인 에반 헌지커씨에 대한 석방조치는 미국무부의 표현대로라면 현재 미·북간 현안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인도적 조치로 이뤄진 것이고 또 그를 데리고 나오기 위한 빌 리처드슨 미 하원의원(민주·뉴멕시코)의 평양방문은 개인적인 활동에 불과한 것이다. 북한의 사과없이는 미·북 접촉도 반대라는 한국정부의 강경입장도 리처드슨 의원의 방북은 개인적이고 인도적인 차원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지 않는다는 양해 입장으로 나타났다. 이날 클린턴 대통령의 APEC정상회담 수행을 마치고 마닐라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윈스턴 로드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북한의 헌지커씨 석방을 「긍정적 움직임」(positive move)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이를 미국이 북한에 대해 요구해오던 미·북 관계의 재개를 위한 일종의 「제스처」로 간주하고 있음을 나타냈다.이를 계기로 미·북 핵합의에 따른 북한지원은 물론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완화 및 식량원조 등 후속조치로 미·북관계가 활기를 띠게 될 전망이다.한 국회의원의 개인적인 활동이 난국타개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8선의 민주당 중진인 리처드슨 의원은 클린턴 대통령의 측근으로 그의 탁월한 협상능력은 클린턴 대통령 2기행정부에서 상무장관으로 유력시되고 있다는 하마평을 낳게 하고 있다.따라서 이같은 입장의 리처드슨 의원이 평양당국자들과 만나 산적한 미·북간의 현안들을 제쳐두고 순수하게 헌지커씨 석방얘기만 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그는 실제로 북한측과 실종미군 유해 발굴 등 현안들도 협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 한국정부가 미 국무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듣고 리처드슨 의원의 방북을 양해했으리라고 믿는 사람도 없다. 북한은 헌지커씨를 「한국사람」으로 잡았다가 「미국사람」으로 풀어줬다.미 국무부는 부인하지만 인도적인 문제까지도 철저하게 현금화하는 재주를 보여온 북한당국이 이 과정에서 「무료봉사」를 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정직은 가장 좋은 외교정책』이라는 비스마르크의 말과 『외교를 잘하는 것은 거짓말을 잘하는 것』이라는 버나드 쇼의 말이 한·미 관계에서 의미하는 것은무엇일까 생각해본다.
  • 헌지커 오늘 송환/일 도착일 하루 늦춰

    【도쿄 연합】 간첩혐의로 북한에 구속된 한국계 미국인 에번 헌지커(26)씨 석방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빌 리처드슨 의원 일행의 일본 도착일이 26일에서 27일로 돌연 연기됐다. 주일 미 대사관측은 리처드슨 의원 일행이 26일 저녁 미군기편으로 평양에서 도쿄 요코다(횡전)기지로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연기됐다고 밝혔다. 대사관측은 연기 이유에 대해 『갑자기 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고만 말했다.
  • 북,헌지커 오늘 석방/미군기로 도쿄 도착

    【도쿄 로이터 연합】 북한은 간첩혐의로 구속중인 한국계 미국인 에반 헌지커(26)를 석방할 것이라고 주일 미 대사관이 25일 발표했다. 미 대사관은 성명서를 통해 『(이날 북한을 향해 떠난)빌 리처드슨(뉴멕시코주·민주당) 의원이 26일 헌지커와 함께 미군용기를 이용해 북한을 떠나 도쿄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미 대사관의 한 관리는 헌지커가 26일 저녁 미공군기지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리처드슨 의원은 이날 하오4시 요코다(횡전)기지에서 미군용기를 타고 떠났다.
  • 장학로씨 형집행정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지병이 악화돼 서울대병원에 입원치료중인 전청와대 제1부속실장 장학로씨(46·구속)에게 형집행정지결정이 내려졌다. 서울지검 특수1부(박주선 부장검사)는 25일 『진행성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질병을 앓고 있는 장씨가 수감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서울구치소에 석방지시를 내렸다』며 『장씨의 주거지는 서울대병원으로 제한했으며,건강이 호전되면 다시 주거지제한문제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 헌지커 석방대가 5천달러 합의설

    【도쿄 연합】 간첩 및 불법입국 혐의로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에반 헌지커(26)의 가족들은 그의 석방 대가로 북한에 5천달러를 주기로 합의했다고 북­미관계에 정통한 소식통들이 24일 밝혔다. 소식통들은 미국의 비공식 외교사절로 북한 방문에 나선 빌 리처드슨 미 하원의원(민주·뉴멕시코)이 헌지커 석방을 위한 사례금 지불을 주선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워싱턴주에 거주하고 있는 헌지커의 부친 에드윈은 이날 교도통신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석방대가를 지불할 것이라는 얘기는 처음 듣는 것이라고 부인하면서 그저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 헌지커 이번주 석방 가능성/리처드슨 의원 평양 향발

    【워싱턴 연합】 빌 리처드슨 미 하원의원이 간첩혐의로 북한에서 체포된 미국인 에반 헌지커(26)씨의 석방을 주선하고 한반도와 미­북한관계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24일 평양으로 떠났다. 리처드슨 하원의원의 북한 방문은 헌지커씨의 석방과 관련해 북한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으로 금주중에 헌지커씨가 석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슨 하원의원은 오는 27일 미국 최대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에 헌지커씨와 함께 귀국,헌지커씨가 가족들과 함께 추수감사절을 보내도록 주선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미 워싱턴주 타코마 출신으로 한국계 혼혈 미국인인 헌지커씨는 지난 8월 중국에서 압록강을 넘어 북한에 들어갔다가 북한당국에 체포,간첩혐의와 불법입국혐의로 구금중이다.
  • 피랍 에티오피아기 추락사고 이모저모

    ◎기체 두동강… 전해 해변까지 밀려와/생존자 “폭탄2개 설치”… 불군 수색나서/파도높고 연료 새나와 구조에 어려움 ○…영국 BBC방송은 23일 납치돼 바다에 추락한 에티오피아 항공 여객기의 한 생존자의 말을 인용,『납치범으로부터 여객기내 2개의 폭탄이 설치됐다는 말을 들었다』며 『프랑스군이 이 폭탄을 찾기 위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보도.이 방송은 또 한 목격자의 말을 인용,이번 사고로 적어도 30명의 생존자를 구조했다고 전언.여객기 추락 인근 시 프론트호텔 매니저는 『우리는 30명의 생존자가 구조돼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는 것을 봤다』며 사체 100구도 인양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여객기 추락지점의 부근 호텔의 한 직원은 『모든 사람들이 구조작업에 참가,사체 2구와 16명의 생존자를 구조했다』며 『인근 병원에서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하는 한편 헌혈해주도록 방송을 통해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니코시아에서 수신된 이스라엘 라디오방송은 바다에서 발견된 여객기 기체가 두동강 났으며정확한 희생자수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보도. ○…코모로섬 소재 갈라와호텔의 한 전화교환원도 여객기 잔해가 해변가에 떠있으며 부상자 16명이 구조됐다고 말했다.그는 또 여객기에서 연료가 새어나오는 데다 파도가 거세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부연.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스살람 주재 에티오피아 항공관리들은 『우리는 하오 3시까지 사고 여객기와 교신을 했다』며 『관제탑에서 5분여동안 교신을 하던중 갑자기 교신이 끊겼다』고 말했다. □여객기 피랍일지 ▲31년=페루에서 최초 항공기납치사건 발생 ▲48년=마카오발 홍콩행 캐세이 퍼시픽기가 중국인 4명에게 피랍,25명 사망.첫 희생자 발생. ▲70년9월=팔레스타인 게릴라가 여객기 3대를 요르단으로 납치. ▲74년9월=다낭에서 에어 베트남 여객기 납치.승객 70명 전원 사망. ▲76년7월=팔레스타인 2명을 포함한 4명의 납치범이 유럽인 승객 244명과 승무원 12명이 탄 에어 프랑스기를 납치해 우간다 엔테베에 착륙.유대인을 제외한 153명이 석방된 뒤 이스라엘군의 장거리 특공작전으로 인질 전격 구출. ▲85년11월=팔레스타인 몰타에서 이집트 여객기 납치.이집트 특공대 기습실패로 59명 희생. ▲86년9월=팔레스타인 4명 카라치에서 팬암기 납치.파키스탄 보안군이 기습했으나 승객 400명중 22명 사망. ▲90년10월=중국 하문에서 중국항공기 납치.미국 캔턴공항에 착륙 도중 사고로 승객등 128명 사망. ▲94년10월=러시아 항공기 타게스탄에서 아제르바이잔인 1명에게 피랍.경찰 특공대 기습으로 범인 자폭. ▲94년12월=프랑스 여객기 알제리 무장회교그룹 4명에 피랍.프랑스 특공대 기습 납치범 사살.기장 등 승무원 6명 사망.
  • 신은경의 경우(외언내언)

    『유명 탤런트라 특혜 준 것 아니냐』는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요란하다.서울지방법원에 「기록적」으로 많은 항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는 얘기다.무면허 음주운전에 접촉사고후 뺑소니까지 친,운전자로서는 가장 죄질이 나쁜 세가지 잘못을 한꺼번에 저지른 탤런트 신은경이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난데 대한 형평성 문제 제기다. 마침 대법원이 불구속재판 원칙을 살리기 위해 내년부터 죄의 경중보다 도주와 증거인멸 가능성을 기준으로 법관이 구속영장을 실질심사토록 형사소송규칙을 개정한 직후라 구속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담당재판관의 변.얼굴이 널리 알려진 탤런트여서 도주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적고 『열심히 살았다』는 정상도 참작됐다는 것이다.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피의자는 무죄로 상정되며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원칙은 인권보호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다.우리나라는 인구비례로 볼때 구속기소가 일본의 4배,독일의 6배나 된다는 통계다.구속이 남용된다는 얘기다. 범죄 혐의가 있으면 우선 구속,사법부의 재판에 앞서 검찰이 실질적 처벌을 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재판결과 무죄판결이 나든 벌금형으로 풀려나든 그것은 차후의 일이다.그래서 구속이되면 일단 큰 죄인이 되고 마는 것이 현실이며 대법원이 이를 시정,사법절차를 선진화하려 나선 것이다. 구속에 신중을 기하고 가벼운 죄를 지은 피의자들을 불구속으로 재판 받게 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있겠는가.또 신양이 석방됐다고 처벌이 면제된 것도 아니다.불구속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게 된다.그러나 문제는 앞으로 같은 잘못을 범하는 보통사람,비슷한 죄질의 피의자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다.신양 만큼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 해서 꼭 도주나 증거인멸 가능성이 큰 것도 아닐 것이다.구속하면 억울하다 할 것이고 모두 불구속 기소로 하자니 사회기강이 문제다.영장담당 판사는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줄타기 하느라 고민이 많을 것이다.
  • 여·야 공직자 부패방지대책 골몰(정가 초점)

    ◎신한국당­처벌조항 강화 등 관련법 보완방침/국민회의­비리조사처 신설… 입법시안 마련 여야는 최근 잇따른 고위공직자들의 독직 등 부정비리 사건을 계기로 부패방지를 위한 제도보완책 마련에 한창이다.신한국당은 22일 현행 공직자윤리법 등 관련법안의 개정작업에 착수했고 야권은 공동으로 부패방지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신한국당 이상득 정책위의장은 이날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새로운 법을 따로 만들지 않고 공직자윤리법 등 관련법을 손질,더욱 엄격하게 보완하는 방향으로 원칙을 정했다』고 보고했다. 이의장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조만간 세미나와 공청회를 통해 학계·시민단체·언론계 등 각계각층의 객관적인 의견을 수렴,구체적인 개정내용을 신중하게 결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기본적으로는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차단하기 위한 선언적 규정과 제도적 장치를 담는 것은 물론 처벌조항을 대폭 강화하고 강제규정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현재 당내에서 거론되고 있는 방안들은 주요 공직자 임명때 도덕성과 청렴성을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과 비리의 온상인 음성적 로비를 양성화하기 위한 로비스트제 도입,비리개입 소지가 큰 각종 이권사업에 대한 상시 조사체계 강화 등이다. ○…국민회의는 부정부패 방지입법 및 대책위원회(위원장 유재건)에서 정기국회 회기내 제출을 목표로 부정부패방지법 시안을 마련했다. 시안은 우선 대통령 직속으로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를 설치하고 그 활동결과는 국회에 반드시 보고토록 하고있다.형사소송법상의 재정신청제도 확대와 탄핵 명문화도 주요 골자다. 또 공직자 범죄의 경우 직무에 위배해 뇌물을 수수한 자에게는 가중처벌토록 했다.공무원 범죄에 대한 내부 고발자 보호조항도 명문화했다.부패방지법을 위반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가석방 규정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도 포함되어 있다.부정범죄로 취득한 재산은 물론 몰수토록 했다.공직자에게 뇌물을 준 사람도 뇌물을 받은 사람과 똑같은 형량으로 처벌케 했다. 이와 함께 현행 공직자윤리법의 재산등록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몇가지 장치도 마련했다.국세청·관세청 등 민원부서의 등록대상을 6급 이상으로 확대하고 배우자와 직계존속 재산도 등록토록 했다.공직자윤리위에는 감사원 조사요청권과 고발권을 부여했다. 이밖에 독립적인 공직자 중앙인사위를 설치토록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감사원에 금융계좌 추적권을 부여한 감사원법 개정안도 제출키로 했다.
  • 대한국제법학회 세미나… 주제발표

    ◎“북한은 생존 국군포로 송환해야”/북한주민 대거 탈북 대비,관련법 정비를 대한적십자사(총재 강영훈)와 대한국제법학회(회장 홍성화)는 22일 하오 서울 남산동 적십자사 본사에서 국제인도법세미나를 개최했다.다음은 육군사관학교 민경길 교수와 한림대 박기갑 교수의 주제발표 요지이다. ◇미송환 국군포로의 송환(민경길 육군사관학교교수)=한국전쟁 초기 북한군측이 밝힌 우리측 포로수가 7만5천명(한국군 6만5천명,유엔군 1만명)이고,유엔군측이 집계한 실종자수는 9만9천5백명(한국군 8만8천명,유엔군 1만1천5백명)이다.북한측은 1만2천785명만 송환했다.포로의 일부는 현재 북한의 어느곳에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우리측이 미귀환 국군포로 송환을 북측에 요구할 경우 북한측은 민간인 억류자로 분류,석방한 3만7천명과 반공포로로 석방한 2만7천명 문제를 다시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전쟁법규 미준수 등으로 포로의 자격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한국전쟁 참가전투원과 간첩이라도 억류국의 법령에 따라 형기를 종료한 경우에는 포로로서 모든 권리를 회복하게 되며 송환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특히 형기를 종료한 이후 자의에 의해 전향해 현지 국적을 취득한 경우나 원소속지로의 복귀를 희망하는 경우에는 전시법규뿐만 아니라 인권의 국제적 보호에 대한 국제법규가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미귀환 국군포로 송환문제는 전시국제법 기본원칙인 인도주의와 상호주의원칙에 의해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생존자확인 및 자유의사에 따른 거주지 선택」에 중점을 두고 접근해 나가야 한다. ◇북한 탈출주민의 법적지위(박기갑 한림대교수)=북한 탈출주민은 대한민국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여러 사회문제를 야기시킨다.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연구보고서에 다르면 면접자의 43%가 현지생활 적응에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따라서 이들의 법적지위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내법적 내지 정책적인 보완조치가 필요하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북한탈출주민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의 특징은 북한탈출주민의 사회적 신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또 이 법안은 탈출자가 한국사회에 적응가능하도록 최소한의 직업교육을 강화시키고 있다.그렇지만 이 법령 역시 대규모 탈출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는 보여지지 않는다.따라서 있을 수도 있는 예외적 대량유입사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입법정비가 필요하다.아울러 개별 탈출주민을 대우함에 있어서 대한민국국민으로서 저소득층에 머물고 있는 일종의 빈민계층과의 형평성 고려가 요구된다. 북한탈출주민은 더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며 우리 입장에서 볼때는 일상생활화 될 정도이다.북한탈출주민의 법적지위 및 보호는 현행법률을 계속 정비하고 통일정책에 대한 확고한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 신은경 석방 항의 빗발/담당판사 상대 소송도(조약돌)

    ○…법원이 무면허 음주운전사고로 구속된 인기 탤런트 신은경씨(23·여)를 구속 이틀만에 석방하자 21일과 22일 서울지법 당직실과 담당판사실 등에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 법원직원들은 『탤런트라고 특혜를 줄 수 있느냐』라는 시민들의 항의에 일일이 해명하느라 진땀. 대전에 사는 40대 남자는 21일 하오 당직실에 전화를 걸어 『음주운전 사고로 구속된 적이 있는데 돈이 없어 변호인도 선임하지 못했다』며 『돈많은 연예인이라고 이렇게 빨리 풀어줘도 되느냐』며 항의. 경기 안양시에 사는 김규봉씨는 22일 담당재판장인 서울지법 형사 항소7부 정덕흥 부장판사를 상대로 5천원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제기. 김씨는 소장에서 『신씨와 같은 범법자를 유명인이란 이유로 이틀만에 석방한 것은 국민의 법의식을 해치고 법적용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로,의무와 권리를 다하는 국민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주장.
  • 음주운전 신은경씨 석방/판사에 눈물로 선처 호소(조약돌)

    ○…지난 19일 무면허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달아난 혐의로 구속된 인기 탤런트 신은경씨(23·여)가 21일 상오 10시50분쯤 구속적부심 직후 법정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는 등 소동. 서울지법 형사 항소7부(재판장 정덕흥 부장판사)심리로 열린 구속적부심에서 신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한번만 용서해주면 공인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며 선처를 호소한 뒤 재판부가 퇴정하자 갑자기 실신. 재판부는 『사고가 경미하고 도주 거리가 54m로 비교적 짧으며,탤런트로서 열심히 살아온 점이 인정된다』며 신양에 대해 석방을 결정. 한편 신씨의 BMW승용차에 동승했다 사고직후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진 남자는 신씨가 출연예정인 「깊은 슬픔」의 제작사인 동양미디어 전무이사 최모씨(30)와 PD 안모씨(32) 등 2명으로 확인.
  • “신문 변혁” 주도… 언론사 새 장 열다(서울신문 51년)

    한장의 사진 속에는 지나간 역사의 한 순간이 시간이 정지된듯 그대로 살아 있다.올해로 51돌을 맞은 서울신문도 그 무르익은 연륜만큼이나 뜻깊은 사진을 많이 남기고 있다.낡은 한장의 사진에는 서울신문 변화의 발자취뿐만 아니라 격동과 부침을 겪으며 발전해온 우리 역사가 숨쉰다.서울신문이 우리 사회와 창조적으로 교감,그 발전을 이끌어온 사실이 무엇보다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서울신문과 우리사회를 씨줄·날줄 삼아 짜인 사진들을 통해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서울신문의 기념비적 순간들을 돌이켜본다. ▷서울신문 1호◁ 1945년 11월23일자 서울신문 첫호 1면.서울신문이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이어받아 창간했음을 전하는 기사가 한가운데 보인다.지령을 제13738호로 한 것은 1904년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로부터의 계승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 ▷언론메카 기공식◁ 1982년 4월6일 서울신문사는 태평로 옛사옥을 헐고 현재의 서울신문사·프레스센터 건물인 새사옥 신축에 들어갔다.지난 39년 건축돼 해방,정부수립,6·25,5·16 등 파란많은 한국현대사를 고스란히 지켜보며 서울신문과 영욕을 같이한 구사옥은 이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신사옥 기공식에서 힘차게 삽질하는 인사는 맨 왼쪽에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한사람 건너 문태갑 당시 서울신문사장,그 곁에 이광표 당시 문공부장관 등이다.새사옥은 84년말 완공됐다. ▷을지로 사옥 시절◁ 1982년 12월16일 서울 을지로5가 서울신문 임시사옥 게시판에서 「김대중 석방」을 알리는 속보를 보는 시민들.새사옥을 짓는 3년간 서울신문은 농협 건물에서 셋방살이를 해야했지만 서울신문 가족은 최신식 건물에서 더 크게 도약할 미래를 꿈꾸며 어느때보다 부지런히 뛰어 「중공기납치범」사진 특종,「아웅산 폭발사건」일보 등 잇따른 특종을 엮어냈다. ▷국내 첫 CTS 도입◁ 서울신문이 1985년 1월1일자부터 언론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컴퓨터편집조판시스템(CTS).태평로 새 사옥으로 돌아온 때에 맞춰 서울신문은 기존의 납활자 제작방식에서 탈피,최신기술의 결정체인 CTS로 신문을 찍어내며 전자신문시대의 새 장을 열었다.이후 모든언론사가 앞다퉈 CTS 대열에 참여했고 제작시간 단축,지면개선 등 신문제작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대구 분공장 준공◁ 1992년 7월1일 서울신문은 대구인쇄본부 건물을 준공,신문의 지방화시대를 열었다.준공식에 참석한 김영삼 당시 민자당대표 등 축하방문객들은 시설들을 둘러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구로공장에 이어 건립된 대구인쇄본부는 신문의 전국 동시인쇄를 가능케 해 「정보의 지방공유시대」를 앞당겼다.대구인쇄본부는 현재 하루 30만부 정도를 찍어내면서 서울판과 똑같은 따끈따끈한 뉴스를 지방독자들에게 전해준다. ▷인터넷 신문시대 개막◁ 1995년 11월22일 창간 50주년을 기해 서울신문은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서비스하는 「뉴스넷」을 도입했다.이로써 네티즌들은 서울신문을 비롯해 자매지인 스포츠서울·뉴스피플·TV가이드 등에 실린 모든 기사를 인터넷상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됐다.신속하고 세밀한 정보제공으로 「뉴스넷」은 개통 열달 만에 「하루 접속 1백만건 돌파」라는 기적을 일궈냈다.그러나 정보화의 혁명적 물결에 대비하고 더 나아가 이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서울신문의 정보화노력은 이제부터가 시작단계라 할 수 있다.
  • 공익정론 외길 초일류 고급지로(서울신문 51년)

    □45년∼84년 ·항일지 「대한매일신보」 뿌리로 ·54년 소설 「자유부인」장안 선풍 ·56년 언론사상 첫 한글판 제작 □85년∼현재 ·CTS 첫 도입 등 언론사에 큰 획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개통 ·96년 10월 전면가로쓰기 단행 서울신문은 해방공간의 어지러운 상황이 한창 전개되던 1945년 11월22일 태어났다. 서울신문 탄생은 당시 언론계는 물론 정치·사회·문화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은 하나의 사건이었다.일제 총독부 기관지 역할을 한 매일신보의 인쇄시설과 건물 등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신문발행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춘데다 이제야 비로소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담아낼만한 권위있고 책임있는 언론기관이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서울신문은 이와 함께 창간호를 1호가 아닌 제13738호로 시작했다.이는 새 시대를 맞은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을 자임하는 동시에 1904년에서 한일합방까지 지령 1461호를 기록한 대한매일신보와 이후 1945년 11월10일자(13737호)를 끝으로 미군정청으로부터 정간처분을 받은 매일신보의 전통을잇는다는 정통성의 표현이었다. 창간 이래 3년 가까운 기간 중립지 노선을 고수해온 서울신문은 그러나 국토가 분단되고 공산화 위협이 거세지자 반공지로 변신한다.직접적인 계기는 1949년 5월3일 공보처가 내린 발행정지 처분이었다.이유는 반정부기사를 많이 싣는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이후에도 각종 현안이나 이승만정부에 대한 건설적 비판논조는 계속 이어갔으며 미군철수안·여순반란사건·국가보안법 문제 등에서 비교적 온건하고 균형있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국전 발발은 서울신문에도 큰 시련이었다.기자 1명을 포함한 사원 8명이 목숨을 잃었고 시설 일부가 두차례나 파괴·해체당했으며,고단한 부산 피난시절을 감당해야 했다.그러나 서울신문은 멈추지 않았다.51년 4월6일에는 서울수복후 첫 진중신문을 발행,「우리는 돌아왔다」는 사설을 게재함으로써 서울시민들을 감격에 젖게 했다. 6·25전란은 한편으로 서울신문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다.이는 자유당 발족을 전후해 통치기반의 공고화를 꾀했던 이승만정부의 구상에 의한 것이었다.하지만 이같은 상황에서도 서울신문은 정치부문에선 친정부적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도 기타 문제에 있어서는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가리는 절묘한 균형을 취했다. 한편 50년대초 반공포로 석방·휴전협정 조인·한일회담 결렬 등 역사적 사건들이 쉼없이 전개되는 속에서도 서울신문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사상초유의 인기와 시비를 몰고 왔던 소설 「자유부인」의 연재가 그것이다.54년 1월1일부터 그해 8월6일까지 모두 215회에 걸쳐 연재된 「자유부인」은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6·25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때 전후의 퇴폐적 분위기에 휩쓸려 허영과 향락으로 치닫는 여성을 묘사한 이 소설은 장안에 숱한 화제를 낳으며 소설의 윤리성과 창작의 자유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1960년 4·19혁명은 서울신문에게 시련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4·19 그날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이 불타는 수난을 당한 반면,곧이어 출범한 제2공화국 하에서 서울신문은 「불편부당과 엄정중립」을 다시 표방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다.그러나 새출발의 기쁨도 잠깐,극심한 경영난으로 서울신문은 61년 5월9일부터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5·16 쿠데타는 서울신문에게 재기의 길을 열어주었다.7개월째 발행되지 못하던 서울신문이 집권층의 후원과 재벌들의 호의적 반응으로 그해 12월21일 속간된 것이다.이때부터 서울신문은 비약적인 사세신장을 이루었으나 한편으로는 5·16 군사정부와 뒤이은 제3·제4공화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길을 걷게 된다.특히 72년 10월 유신으로 빚어진 전환기에서 서울신문은 친정부적 성격을 굳히게 된다.서울신문의 성격상 당시로선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창간 30주년인 75년을 기점으로 사세중흥기를 맞게 된다.고속 오프셋 윤전기의 가동으로 신문발행의 전환기를 마련했고 ▲지령 1만호 기념 만호장학금 신설 ▲의료보험제 도입 ▲급여인상 등 사원복지를 크게 향상시켰다. 5공 출범한 81년은 서울신문으로선 새롭게 내실을 다지는 원년이 됐다.대중문화에 대한 욕구를 해소할 길이 없던 청소년층을 위해 「TV가이드」를 창간,대중문화를 선도했는가 하면 「예술과 비평」을 선보여 고급문화를 추구하는 독자들을 만족시켰다.바야흐로 종합언론사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신문은 이와 함께 국내 최고 종합일간지다운 면모를 다지고자 새 사옥 마련에 나섰다.82년 1월1일 태평로를 떠나 을지로 임시사옥으로 이사한 뒤 3년여에 걸친 대역사끝에 새 사옥을 마련한 것. 85년 1월1일 준공된 서울신문·프레스센터 사옥은 한국언론 제2세기의 개막을 알리는 전조였다.이때부터 서울신문은 쾌적한 환경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한국언론의 메카」로 자리잡았다.특히 이 시기에 도입된 CTS 제작시설은 신문발행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국내 신문사로는 최초로 CTS를 도입한 서울신문은 다른 신문사들의 부러움을 한껏 즐기며 신문제작 역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남겼다. 서울신문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사건은 또 있었다.그해 6월23일 「스포츠서울」의 탄생이 그것이다.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보다많은 스포츠 정보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자 창간한 「스포츠서울」은 30분만에 창간호 가판이 완전매진되는 등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면서 지금까지 정상의 스포츠·연예·오락 전문지로 군림하고 있다. 스포츠·연예·오락전문지 「스포츠서울」,시사주간지 「뉴스피플」,대중문화 전문주간지 「TV가이드」,여성월간지 「퀸」등을 자매지로 둔 서울신문은 이제 또한번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증자를 통한 5세대 CTS와 최첨단 윤전기의 도입을 마무리한데 이어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이 1일 접속횟수 1백만을 돌파함으로써 전자신문계의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다.21세기에 진정한 정론지로서 독자들을 찾아갈 서울신문의 밝은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약사 1945년 △11.22 서울신문 창간 1946년 △3.1 제1회 「3·1기념 서울·인천간 왕복마라톤 경기대회」개최(77년 32회까지 존속) 1948년 △10.18 시사지 「주간 서울」 창간 1951년 △3.8 전란으로 휴간 △6.9 피란지 부산에서 서울 복귀 1953년 △8.16 첫 견습기자 공채 실시 △9.1 어린이신문 「주간소년서울」 창간 1954년 △1.1∼8.6 소설 「자유부인」연재 1956년 △10.18 언론사상 첫 한글판 제작 1958년 △10.1 신문사상 처음으로 조석간 발행 1960년 △4.19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 전소 △4.26 휴간 △6.27 속간 1961년 △5.9 경영난으로 휴간 △12.21 속간 1962년 △8.13 석간으로 전환 1966년 △2.9 한국 최초로 1백만원 고료 장편소설 당선작 시상 1968년 △9.22 대중 주간지 「선데이 서울」 창간 △11.22 전 지면에 걸쳐 한글전용 단행 1975년 △3.30 「주간 스포츠」 창간 △11·2 「주간 소년서울」 폐간 1978년 △10.5 보관자료 마이크로필름화 1981년 △7.18 청소년 주간지 「TV가이드」창간 1982년 △1.1 을지로 임시사옥으로 이전 1985년 △1.1 언론사상 처음으로 CTS 도입,태평로 신사옥 입주 △6.23 스포츠 전문지 일간 「스포츠 서울」 창간호 발행 1989년 △9.23∼10.18 파업 1990년 △6.23 여성월간지 「퀸」창간 1991년 △7.31 구로공장 준공 △12.31 「선데이 서울」폐간 1992년 △1.5 자매지 주간 「피플」창간 △7.3 대구인쇄본부 준공 △12.25 「피플」,「뉴스피플」로 제호 변경 1994년 △2.18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본부」발족 1995년 △11.22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개통 1996년 △1.29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국내 첫 동화상 속보체제 시작 △10.1 전면 가로쓰기 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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