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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洪씨 납치’ 北韓人7명 체포키로

    ┑방콕연합┑북한은 태국이 홍순경 태국 주재 북한대사관 전 과학기술참사관의 가족 모두를 평양으로 송환하는 조건으로 그의 아들 원명군의 석방을 제의해 왔다고 태국 외무부 소식통들이 16일 밝혔다. 그러나 수쿰판 파리바트라 외무차관은 15일 북한측의 이같은 조건부 제의를 일축하고 원명군은 조건 없이 석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북한측 제의는 경찰이 홍씨 일가 납치 관련 북한인 7명을 체포하기 위해 내무부에 승인을 요청한 가운데 나왔다. 프라차 프롬녹 경찰청장은 7명의 북한인은 일부가 면책특권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포하기로 고위관리들간에 합의됐다고 말하고 면책특권이 없는 북한인 체포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소식통들은 비록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제의를 했으나 이를 통해 원명군의 소재를 간접 확인해준 셈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태국 외무부에 보내온 14일자 각서에서 납치사건에 “유감을표명한다”는 표현을 쓴 것과 관련,공식사과로는 충분치 않지만 진일보한 반응이라면서 원명군석방을 위해 북한대사관측과 접촉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 韓赤, 국제 비정부기구에 납북자·국군포로 송환 지원 요청

    대한적십자사는 15일 국제적십자위원회,국제적십자사연맹,국제사면위원회등 인권 관련 국제 비정부기구에 서한을 보내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鄭元植 한적 총재는 이날 각 국제기구에 보내는 서한에서 “1953년 휴전 이후 납북된 3,756명 가운데 아직 454명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며 귀환하지못한 국군포로도 231명 생존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이들이 하루속히 자유의사에 따라 송환될 수 있도록 각 기관의 특별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한적은 “우리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적십자회는 물론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통해 이들의 송환을 줄기차게 요청해왔다”면서 “북한은 이를모두 외면해왔을 뿐 아니라 근자에는 북한내에 국군포로가 없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적은 또 “국제사면위원회는 1990년 한국인 납북자 일부가 평양근교 ‘승호리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고 발표했으며,금년 1월 한국정부도 이재환씨 등 납북자 및 월북자 22명이 정치범수용소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며북한당국에 이들의 석방과 송환을 간접 촉구했다. 具本永 kby7@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27) 崔麟

    1949년 3월 20일 서울지방법원(구 대법원 건물)대법정.법정안은 발디딜 틈도 없이 초만원이었다.오후 1시 정각 검찰관과 재판관이 입장하자 재판이 시작되었다.재판관의 뒤로 법정 정면에는 중앙에 태극기를 두고 한 쪽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인 위창 오세창(吳世昌)이 쓴 ‘민족정기(民族正氣)’라는 휘호가 걸려 있고 다른 한 쪽에는 ‘3·1독립선언서’가 걸려 있었다. 피고인석에는 백발에 수척한 모습의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그의 나이 71세,이름은 최린(崔麟)이었다.‘3·1의거’ 당시 오세창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으로 활동했던 바로 그 최린이었다.그는 반민특위가 활동을 개시한지 5일만인 49년 1월 13일 명륜동 자택에서 체포돼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33인중의 한 사람으로,청장년 시절 항일운동에 몸바쳤던 그가 해방된 조국의 법정에서 민족반역자로 지목돼 심판을 받는 것은 민족의비극이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서성달(徐成達) 검찰관이 그의 죄상을 읽어내려갔다.‘▒죄명:반민법 제4조 2항(중추원 참의),3항(칙임관이상의 고관),10항(친일단체의 수뇌간부)위반.▒범죄사실:피고인 최린은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일본 명치대학 법과를 졸업하여 보성중학교장 및 보성전문 강사를 역임하고,기미독립운동시 33인의 1인으로서 천도교회의 대표로 기독교,기타 종교단체와 연합하여 독립운동을 추진하였음으로 인하여 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하고,그 후 천도교 중앙종리원 등 장로로 있었던 자인 바, 1)1934년 이른 봄부터 1937년까지의 약 2년여,1939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시까지의 약 5년여에 도합 7년여간 조선총독부의 유일한 자문기관인 중추원 칙임 참의로서 조선총독의 자문에 의하여 총독정치에 기여하고, 2)…’.이어서 검찰관이 기소장 낭독을 마치자 사실심리에 들어갔다. 서순영(徐淳永) 재판장이 경력을 물은 뒤에 “기미독립선언을 주도한 피고가 왜 일제에 협력하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그는 “기미년 당시 일제에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들은 그 후 나를 주목하고 위협하고 또 유혹하여 끝내 민족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오직 죄스럽고 부끄러울뿐이다”며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최린(1878∼?,창씨명 佳山麟)은 함경남도 함흥 태생이다.그의 집안은 중인출신으로 상당한 재산이 있었다고 한다.후에 그가 출세와 신분 상승을 위해권력에 집착한 것은 그의 출신 성분이 한 원인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같은중인 출신인 육당 최남선(崔南善)의 변절에 대해서도 이같은 논리를 펴는 견해도 있다. 청년시절 그가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자임은 사실이나 그 무렵그의 민족의식에 대해서는 회의론을 펴는 견해도 만만찮다.1909년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천도교 인사들과 교류하고 있던 그는 1차대전 종결후 ‘민족자결주의’ 물결과 1919년 2월 도쿄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선포하자 이에 고무돼 ‘3·1독립선언’에 가담하였다. ‘3·1의거’ 당시 그의 민족의식이 투철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그가 이 일로 체포돼 재판정에서 행한 발언을 보면 추측할 수 있다.그는 “조선이 병합된 것은 러일전쟁의 당연한 결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또 당시 조선의 정치는 지독한 악정이어서도저히 조선의 안녕·행복을 유지·증진하기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병합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피치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1919.7.17 예심조서)고 진술하였다. 또 독립선언서 선포와 관련,“…본래의 의사는 극히 온건한 수단에 의하여선언서를 발표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인민을 선동하는 것 같은 문귀 등은피한 것이므로 우리들의 선언서를 본 사람은 그러한 폭동에 가담할 리 없으리라고 생각한다”(일자 미상)고 진술하였다. 첫번째 진술은 일제의 ‘한일합병’ 논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두번째 진술내용은 자신들이 주도한 ‘3·1의거’를 ‘폭동’ 운운하고 있는 그가 과연 ‘민족대표’였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또 재판장이 ‘현재의 조선인의 지모와 실력으로 독립국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대해 그는 “일본정부의 도움을 얻으면 독립국으로 설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결국 그가 말한 ‘독립국’은 일제의 통치를 사실상 인정한 범위 내에서의 ‘자치국’ 정도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이는 그가 나중에‘자치운동’에 나서는 것과 무관치 않다. ‘3·1의거’로 의거 당일 일경에 체포된 그는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1921년 12월 22일 일제당국의 ‘배려’로 가출옥하였다.‘3·1의거’ 이후 새로 부임한 사이토(齋藤實)총독은 그가 표방한 ‘문화정치’의 전위대로 최린을 이용할 작정이었다.그의 가출옥 배경에는 사이토의 정치참모인 아베(阿部充家,‘京城日報’사장 역임)의 공작이 있었다. 그가 가출옥한 직후 아베가 사이토에게 보낸 편지에 ‘…오늘날의 형세로보아 민원식·선우순 따위의 운동으로는 도저히 일대 세력을 이룩하기는 어렵고,간접사격으로…일을 꾸미자면…여기에는 이번에 가출옥한 위인들 중 최린이 안성맞춤의 친구입니다…’(1921년 12월 29일자)라는 귀절이 보인다.‘기미독립선언서’ 작성자로 최린보다 앞서 가출옥(1921.10.19)한 육당 최남선이 아베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런 내용이 들어있다.‘…이번에 최린군을비롯하여 제군의 출감을 보면서 백열(柏悅)의 정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특히 당사자들도 선생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고있습니다… ’(1921년 12월 25일자,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서 입수) 1926년 9월 그는 일제의 경비지원으로 구미 각처로 여행을 떠났다.당시 파리에 체류중이던 여류화가 나혜석(羅蕙錫)과의 염문이 떠돌던 시기가 바로이 무렵이었다.그 해 10월말 일본에 도착한 그는 다시 아베를 만나 “오늘날 조선의 독립이 불가능하다는데 확신을 하고 있으며 조선의회 설치가 조선민심의 안정을 꾀하는데 가장 긴요하고,나도 민중의 신임만 얻으면 조선의회의 한 사람이 되기를 사양치 않겠다”며 ‘조선자치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처음으로 ‘친일’을 표방하고 나선 것은 1933년말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를 내걸고 일선융합(日鮮融合)을 외치면서 부터다.이듬해 4월 그는 중추원 칙임참의가 되더니 8월에는 ‘시중회(時中會)’라는 친일단체를 만들어 ‘동아(東亞) 제(諸)민족은 일본을 맹주로 하여 매진할 것,특히 조선은 일선융합(日鮮融合)·공존공영이 민족갱생의 길’이라고 외쳤다. 37년 다시 그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이 해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전쟁보도를 적극 독려하였다.이 무렵 그는 총독부의 전시 최고심의기구인 조선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원회,후방지원기구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등에 참여하면서 전쟁지원에 협조하기도 했다. 또 1941년 8월에 결성된 임전대책협의회 위원을 거쳐 10월 이 단체가 윤치호(尹致昊)계열의 흥아보국단과 통합,조선임전보국단으로 재탄생하자 단장에 취임하였다.징병제 선전과 학병권유에 앞선 것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일제 패망직전인 45년 6월에는 조선언론보국회라는 친일언론단체를 조직,회장으로 활동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짧은 ‘항일’에 비하면 그의 ‘친일’은 길고 열렬했다.해방후 천도교측은 그의 죄를 물어 은퇴를 권고하였으나 그는 거부하다가 결국은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였다.반민특위에 구속돼 민족반역자로 심판대에 올랐던 그는 49년4월 20일 3회 공판 끝에 병보석으로 석방됐다.재판과정에서 그는 다른 피고인에 비해 비교적 솔직한 참회로 재판부와 방청객들로부터 동정을 샀다.심지어 그는 “민족앞에 죄지은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라”고 사죄해 법정안을 온통 울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6·25전쟁 와중에 납북된 이후 그의 행적은 알 길이 없다.반민특위 재판과정에서 그는 친일한 동기를 ‘늙은 노모에게 불효를 할 수 없어 망명도,자살도 하지 못하고 일본 군문(軍門)에 항복했다’고 털어놓았다.결국 그는 부모에 대한 효(孝) 위에 나라에 대한 효,즉 충(忠)이 있음을 몰랐던 셈이다. 정운현
  • [김삼웅칼럼]화해와 용서의 미학

    어느날 자공(子貢)이 “종평생(終平生)할 수 있는 준칙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떤 말이 있습니까?”묻자 공자는‘기여호(其如乎)하라’고 가르쳤다. “용서하라”는 말이다.기독교의 정신도 ‘사랑과 용서’다. 불교를 비롯해모든 종교의 정신이 표현의 차이일 뿐 ‘사랑과 용서’를 본질로 한다. 3월1일 5·18민중항쟁 부상자와 유족 220여명이 광주항쟁 당시 진압부대인제3공수특전여단을 방문해 ‘화해의 만남’ 행사를 가졌다.이 부대는 광주항쟁때 도청 최종진압을 맡았던 부대다.그때 얼마나 많은 광주시민이 학살됐는지는 잠시 접어두자. 같은 날 전남·경북대생 220명이 상대편 대학에서 1년간 공부하기 위해 입교했다.이번 교류 학생들은 1년간 동일한 학칙을 적용받게 되고 기숙사 무료제공과 등록금 전액 면제혜택을 받게 된다.두 대학 학생들은 “영호남 화합디딤돌 될래요”라고 합창했다. 얼만전 영호남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모여 화합과 친선의 자매결연을 하고 언론사에 TK·PK·MK 등 지역갈등을 조장하는용어를 삼갈 것을 요청했다. 지난달 25일金大中대통령 취임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신안군 하의도 생가를 방문한 대구와 충북·강원지역 노인복지대학 노인들이 金대통령의 생가를 복원할 수 있도록 성금모금의 뜻을 밝혔다.노인들은 “하의도를 방문했으나 金대통령의 생가가 복원되지 않아 볼거리가 전혀 없어 실망스러웠다”며 관광객들이 섬을 찾았을 때 생가라도 보고 갈 수 있도록 복원을 위한 작은 정성을 모으기로 했다고 한다. 오는 6월에는 임진왜란 당시 한·일 양국 장군들의 후손 20여명이 서울에서 ‘화해의 만남’을 갖는다.이 행사에는 우리측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5대 후손과 서애(西涯) 유성룡의 14대 후손,일본측에서는 왜군 총지휘관이었던 우키다 히데이어(宇喜多秀家)의 15대 후손과 경남 사천성 전투의 왜장 시마쓰 요시히로(島津修久)의 14대손 등이 참석한다.일본은 지난해 10월8일 金大中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처음으로 문서를 통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金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통해 포용론과 화해정책을 펴고 있다.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고 판문점으로 ‘소떼’가 올라갔다.17명의 장기수도석방됐다.玄勝鍾전국무총리가 “나는 일본군 장교였다”는 부끄러운 과거를고백하면서 용서를 빌었다.李會昌한나라당 총재는 ‘상생(相生)의 정치’를제창했다. 화해와 공존의 정치를 의미한다. 한국 근현대사는 국가적으로나 국민에게 겪기 어려운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었다.망국과 분단과 전쟁과 독재와 민주화과정에서 숱한 죽임과 억압,대결과 갈등을 빚었다.이념싸움과 노선투쟁·지역대결과 내부갈등이 그치지 않았다.이런 와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찢기고 갈라지면서 원(怨)과 한(恨)을 남겼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친일파 문제를 비롯해 독재청산,의문사와 각종 의혹사건 등 청산하고 밝히고 정리해야 할 ‘역사의 빚’이산적해 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원수는 잊기 어렵지만은혜는 쉽게 잊는다는 말이겠다. 원도 많고 한도 많은 민족이기에 최제우 선생은 일찍이 ‘해원상생(解寃相生)’을 제창했던 것이다.20세기 원한의 매듭을 모두 풀고 새 천년을 맞았으면 한다.더구나 지금은민족의 대시련기다.민족적 시련과 대결을 화해와 용서로 풀고 남북과 동서가 공생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햇볕정책을 통해 북을 포용하고 지역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동서가 화합하면서 국난을 극복하고 새 세기,새 천년의 세계무대에 당당하게 나갔으면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해자들,기득권자들이 참회할 것은 참회하고 용서받을 일은 용서받아야 한다.또한 정치인들이 적대의식과 지역감정에서 해방돼 화해와 용서의 선도자가 돼야 한다.“국민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네루)라고 하지 않던가.전직 위정자들을 포함,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에게 위해를 가한 인사들은 이 기회에 참회하면서 국난극복에 동참했으면한다. 물론 인간적 동정이나 용서와 역사적·사회적 평가를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또 원칙없는 온정주의로 쉽게 잊고 용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그렇지만 화해와 용서는 인간의 환치할 수 없는 불변의 가치이고 삶의 미학이 아닐까. 주필 kimsu@
  • 해외언론 金대통령 포용정책 “지지”

    해외언론들이 연일 金大中대통령의 지난 1년을 긍정 평가하자 청와대가 모처럼 고무된 표정이다.성심껏 일해놓고서도 실업문제와 정책혼선 등의 지적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터에 ‘가뭄끝 단비’를 만난 듯한 모습이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영자일간지 홍콩 스탠더드지는 4일자 신문에서 이 신문의 모(母)기업그룹인 싱 타오 인터내셔널사의 알란 카스트로 논설위원이 쓴장문의 기고문을 실었다.제목은 ‘金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제의는 전세계가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최상의 것일 수도 있다’로,金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했다.특히 미국의 입장이나 서구언론의 관점에서 일별하지 말고,공정히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카스트로위원은 먼저 미국의 코소보문제 해결노력과 金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을 비교하면서 “해외언론들이 폭력적인 코소보사태만 보도하고金대통령의 끈질긴 노력에 대해선 겉치레식 일별태도를 보이는 것은 평화에대한 서구의 가식을 노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또 “金대통령이 지난해 이룩한업적은 미국이 해온 수많은 허튼 짓보다 한반도 긴장완화에 더욱 기여했다”고 평가하면서 “그러나 金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아시아적 방법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은 서구언론이 그의 노력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金대통령의 냉철하고 정중하며 조용한 주장은 지난 40년동안 한국을 마치 위성국가인양 믿는데 익숙해진 미국의 일부 지도자들에게 그리 반가운게 아니었다”면서 “이는 金대통령이 全·盧 두 전직대통령을 사면, 자문자 명단에 올리고,우용각씨 등 미전향장기수를 석방한 데서 명백히 드러났다”고 강조했다.이어 “사면 이후 남북관계 개선 속도는 느리지만,분명히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고 “남북간 상호 방문과 교역이 이뤄지면 한반도내미국의 영향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했다.끝으로 “金대통령 생전에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첫걸음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도 최근 金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맞아 지난달 23,25,27일 세차례에 걸쳐 한국 특집을 잇따라 게재했다.특히 27일보도에서는 ‘金大中정권의 북한정책’이라는 제목으로 金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과 일괄타결안을 소개했으며,25일자에선 金대통령의 취임 1주년 내외신 공동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했다. 23일자는 지난 1년간 金대통령의 국정개혁 조치 및 성과와 160만명이 넘는실업자문제를 다뤘다.
  • [대한광장]對北 포용정책의 인도주의

    최근 미전향장기수의 북송문제가 국내외의 지대한 주목을 받고 있다.정부는 준법서약을 하지 않고 있는 미전향장기수를 본인이 원하고 북한이 국군포로,납북자 등의 송환과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전향적 대응조치를 취할 경우 이들을 북한에 보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북한도 적십자회 명의로 석방되었던 미전향 장기수 17명과 이미 석방된 장기수 3명의 북한송환을 대한적십자사에 요구하였다. 한반도에는 이데올로기 대립에 따른 냉전체제 형성,한국전쟁에 따른 민족상잔의 뼈아픈 경험 등으로 인해 민족분단의 장벽은 높아만 갔다. 여기에다 대북 포위봉쇄정책을 고수해왔던 남한의 대북정책과 대남혁명과대남 분리 차단정책 사이를 오가는 북한의 대남정책은 체제갈등을 부추겨 민족분단의 희생자를 양산해냈다.해방후 혼란기와 한국전쟁기간중 발생한 남·북한의 수많은 이산가족,남쪽의 미전향장기수,북쪽의 국군포로 및 납북자 등이 바로 인간적인 삶을 희생당한 민족분단의 직접적인 당사자들이다. 한반도 평화·화해·협력을 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의 인도주의적 정신에 따라 반인간적인 분단의 벽을 낮추고 분단고통을 가능한 한 감소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정책을 통해 이데올로기 대립에 의한 인권 훼손은 방지할 수있으며,더 나아가 화해·협력 기조가 형성될 경우 남북한간 인적·물적교류가 활성화되어 사실상의 통일인 민족통일의 장을 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단고통의 감소라는 정책목표에도 불구하고 그 실현에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우선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체제 유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견지에서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적극적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98년 6월24일 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통해 국군포로 및 납북자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등 전후처리 이행문제 및 북한의 국제법 위반에대한 국제여론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따라서 우리 정부가 미전향 장기수와국군포로 및 납북자 연계송환을 제안하고 북한이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경우우리 정부는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만일 북한의 호응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미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 및 납북자 연계송환을 추진한다면 내용적으로는 연계송환을 추진하되,형식적으로는 이산가족 합류 형태를 지니는 것이 바람직하다.이산가족 합류 형태를 통해 연계송환이 이루어진다면 북한은 납북자 및 국군포로 남한송환을 체제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대응해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방안에 대해 북한이 커다란 호응을 보이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우리 정부는 미전향 장기수를 북한에 인도함과 동시에,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북한에 식량 지원 및 농업지원 등의 물질적 지원을 제공할 수도 있을것이다. 민족분단이 초래한 희생자들의 고통감소를 위해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미전향 장기수 송환문제,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문제 등은 물론 북한동포들의 굶주림을 덜어주기 위한 식량·비료지원,농업부문 지원 등의 제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회담 개최를 조속히 제안해야 한다. 남북간의 인도주의적 사안을 다루기 위한 회담이열릴 경우 상호주의원칙은 신축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인도주의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회담이 성공적으로 타결된다면 ‘국민의 정부’ 햇볕정책은 한반도 평화정착은 물론평화통일의 초석을 놓는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황병덕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해외언론이 본 金대통령 집권 1년

    지난주 외국 언론들은 전례없는 경제위기 속에서 출범한 金大中대통령 정부의 1년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IMF를 극복한 아시아의 모범사례’로 평가했다.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균형발전이라는 철학을 바탕에 둔 경제개혁에 후한 점수를 매기는 한편,대북 햇볕정책을 남북통일을 앞당기는 지적(知的)혁명으로 평가했다.고실업과 지역대립,정국불안 등 극복해야 할 과제를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미국 워싱턴포스트와 영국의 더 타임스, 중국의 인민일보,일본의 아사히,프랑스 르 몽드 등 세계 유력언론이 사설과 특집,기고문 등을 통해 평가한 金大中 대통령 집권 1년을 소개한다. ▒워싱턴 포스트 최근 한국 정부가 단행한 17명의 장기복역 정치범(미전향장기수) 석방조치는 준법 서약서 서명을 조건으로 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이다. 한국은 북한의 끊임없는 남침위협 때문에 보수적 성향을 유지해온 국가다.이번 조치는 金대통령의 균형감각을 보여준 예이며 앞으로도 보수와 진보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金大中대통령의 대북 온건 입장은 한반도에서 잠재적인 위기 발생 가능성에 대한 미국의 점증하는 우려와는 매우 다른 것이다. 최근 북한이 한국 정부에 남북 고위급 정치회담을 제의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르 몽드 1년전에 집권한 金大中 대통령은 한국의 ‘넬슨 만델라’로 불렸지만 이제는 오히려 ‘마거릿 대처’에 비유되고 있다. 金대통령은 ‘철의 여인’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경제변화를 시도했으며 1년만에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위기를 탈출하는 나라로 만들었다.金대통령의 단호함은 한국의 경제회복에 적지않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앞으로 위기속에 감추어져 있는 사회적 긴장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의 국가 보안법은 여전히 존재한다.그러나 이번 법무부의 석방조치는한국의 구금관행의 완화를 보여주는 것이다.한국정부가 국가보안법 사범에대한 준법 서약서 요구 등 과거 관행을 폐기한 것은 金大中정부가 사상적 ‘일탈’을 사상표현의 자유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르 피가로 한국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경제위기를 가장잘 헤쳐나가고 있다.주요 경제지표가 호전됐고 외국 투자가들도 다시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계속 감소하고 있는 수출과 되살아나지 않는 소비,특히 증가하는 실업률은 커다란 숙제이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金大中 대통령의 경제개혁은 성공했고다른 경제위기 국가들과 비교할때 한국의 회복은 눈부실 정도다.한국정부는이미 IMF에 28억 달러를 상환했으며 金대통령은 금년도에 80억 달러를 추가로 상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외교정책에 있어서도 전임자들과는 다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미국과는 신뢰를 증진시켰고 일본과는 지난해 가을 대통령이 직접 일본을 방문,재치있는 외교로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정치범의 석방은 비록 뒤늦기는 했으나 일관성 있는 진전이다.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아직 200∼450명의 양심수가 투옥돼 있다며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다.金鍾泌 총재가 명예총재로 있는 자민련은 金大中 대통령에게 내각제 개헌약속을 지키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한데르블라트 金大中 대통령은 행동력과 의지를 겸비한 국민통합의 상징인 것같다.경제위기로 크게 흔들린 한국민들은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오는길을 제시해 줄 강력한 인물을 필요로 하는데 최근 급증하는 실업에도 불구하고 金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82%나 된다.한국민들은 난국타개의 유일한인물이 金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한국은 경제붕괴 1년만에 회복의 뚜렷한 조짐을 보이고있으며 98년은 성공적으로 경제위기를 관리한 한 해임이 입증됐다.그러나 분석가들은 경제회복세의 지속을 위해서는 위기의 원인이 됐던 부패한 기업문화를 완전히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이것은 훨씬 힘든 과제가 될 것이다. ▒더 타임스 엘리자베스 여왕의 4월 방한은 한국이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매우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을 인정받는 계기로 기대되고 있다.金大中 대통령의 지난 1년간 개혁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그러나 그의 임기 2년차엔도전이 시작될 것이다.야당은 경제위기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일부 국민들의 분노를 이용하고 있다.게다가 金鍾泌 총리와의 연대는 획기적인 정치개혁의연기를 둘러싼 문제로 위태로워 보인다.야당과 재벌의 도전은 대통령을 궁지로 모는 골치아픈 문제들이다. ▒마이니치 한국은 IMF의 조건을 준수하면서 경제의 체질개선과 개혁에 힘쓰고 있다.이것이 성공할 경우 세계적인 경제국가로서 재부상할 것이 확실하다.金大中대통령이 경제시스템 전환에 과감하게 나선 자세는 높이 평가해야한다.특히 외교 성과는 두드러진다.金泳三 전대통령의 외교가 미국 일본과마찰을 일으키는 경향으로 흘렀던 것과 대조적으로 지난해 6월 미국,10월 일본 방문을 기회로 두 나라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개선했다. 세계가 金大中 정부에 기대하는 것은 세계수준의 민주주의 정치를 확립하는것이다.金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아시아적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지도자이다. ▒닛케이 한국은 실물경제에서도 회복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그러나 실업자는 증가하고 있고 현안인 재벌개혁도 기대처럼 진전되지는 않고 있다.경제가 회복궤도에 오를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향후 정치적인 측면에서 金大中 정부는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초점인의원내각제 개헌문제로 여권내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는데다 여야의 줄다리기로 지역대립이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 金大中 정부는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대기업 구조개혁에 착수했다.“시장 원리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강력하게 추진해 왔지만 실업자 급증이라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전국 최고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는 부산지역의 반정부감정이 높아지고 있다. 金鍾泌 총리는 金대통령의 내각제 개헌에 소극적인 듯한 발언에 불쾌감을 시사하기도 했다.정부가 추진하는 햇볕정책의 성과를 단기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쉽지않지만 금강산 관광 등 인적 교류면에서 변화가 보이고 있다.그러나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북한의 반응여하에 달려 있는 만큼 속단은 금물이다. ▒요미우리 대외 신용도도 회복되고 있으며 금융위기 극복에 성공했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과 언론의 평가다.그러나 개혁의 부작용으로 발생한 심각한 실업문제의 극복이 커다란 과제로 남았다. 金大中 정부 출범 1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사면 조치와 관련,북한이 환영반응을 보임으로써 장기수 송환문제가 남북대화를 촉진하는 카드가 될 가능성이있다. 정치면에서는 자민련과 의원내각제 개헌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차이가 생기고 있고 전통적인 지역대립도 여전하다. 취임 1년차는 균형감각과 지도력으로 극복해왔지만 2년차는 진정한 고비가될 것으로 보인다. ▒산케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金大中 정부 1년의 성과로 경제안정과 함께 대북 정책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金大中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한반도의 냉전구조해체를 위한 ‘대북 일괄 타결구상’을 설명했다.문제는‘선의의 포용정책’에 김정일 정권이 응해줄 것인가이다.북한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성급한 대응은 위험한 것이다. 대외관계에서도 “일본과의 과거사는 청산되었다”고 선언하는 등 강력한지도력이 돋보였다.한자병용 추진 방침을 실용적인 국제화 차원에서 문화관광부에 맡겨 여론을 살피는 부분도 훌륭했다. ▒저팬 타임스 金大中 대통령은 의심과 불신이라는 냉전시대의 사고방식에젖어있던 동북아 외교무대에 전혀 새로운 방식을 도입,‘협력전략’을 채택했다.이러한 새로운 외교스타일에서 위대한 희망을 보게된다.金대통령은 동북아 국가들에게 왜 ‘비협력적인 자세’를 버려야 하는지에 대해 역사적인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도쿄신문 지난해 6월 미국,10월 일본,11월 중국 등 주요국을 방문했다.미국에서는 정·재계의 대환영을 받았고 경제개혁과 북한정책에 대해 지지와지원을 얻었다.방일에서도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등 대성공을 거뒀다. ▒인민일보 金大中대통령은 정상외교와 경제외교를 통해 경제난 극복을 위한 외자유치및 관련국가와의 경제협력 강화에 노력해왔다.특히 金대통령이지난해 말 중국을 방문,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갖고 양국간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것은 양국의 우호협력뿐만 아니라 동북아 안정과 발전에 이로운 일이었다.
  • 金대통령 3·1절 기념식 치사

    金大中대통령은 1일“한반도 분단에 책임 있는 강대국들이 한반도 평화에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제80주년 3·1절 기념식에서“우리는 이제 미·일 등과 긴밀하게 협의하고,협력하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켜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는 광복회원과 3부 요인,시민대표 등 4,000여명이 참석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남산 장충공원에서 열린‘3·1독립운동 기념탑’제막식에 참석,“무엇보다 의식개혁과 국정 전반의 총체적인 개혁을 통해 과거의 적폐와 악습을 말끔히 청산해야 된다”며 강력한 과거 적폐척결 의지를 표명했다. 한편 이날 3·1운동기념사업회가 서울 탑골공원에서,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도 같은 장소에서‘범종교 3·1절 기념식’을,‘민중의 기본권보장과 양심수석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서울역광장에서‘3·1절 반외세 민족자주정신 계승대회’를 갖는 등 3·1정신을 추모 계승하기 위한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 재일교포 인권운동가 徐勝씨“모국방문중 사면·복권돼 기뻐”

    ‘비전향정치범’으로 19년동안 형을 살다 지난 90년 석방됐던 재일교포 국제인권운동가 徐勝씨(54·일본 리츠메이칸대학 법학과교수)가 최근 한국을찾았다.서씨는 지난 71년 동생 俊植씨(인권운동사랑방 대표)와 함께 이른바‘재일교포 학원침투간첩단사건’의 주범으로 체포돼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비전향정치범’으로서는 최초로 석방됐다. 그에게 씌워졌던 혐의는 서울대 안에 지하조직을 만들어 군사훈련 반대와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 반대를 배후 조종했다는 것. 조사과정에서 견디기 어려운 고문을 받던 중 ‘살아서는 도저히 고문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고문기술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난로의 석유를온몸에 뿌리고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기도했다.몇 차례의 수술끝에 겨우 ‘사람모습’을 되찾았지만 “원자탄으로 타들어간 들판처럼 타 문드러진 나의 얼굴”이라는 서씨의 표현처럼 그의 얼굴은 아직도 흉한 모습이다. 이번 그의 방한은 지난 94년 일본에서 나온 옥중기의 한국어 번역판 ‘서승의 옥중 19년’(김경자 옮김,역사비평사)출간이 계기가 됐다.출국 전날인 지난달 27일 서울대 호암관에서 그를 만났다. ▒방한 목적과 소감은. 옥중기 출간을 기념하고 서울대학과 ‘한·일간의 법과 정치제도 비교연구’라는 공동프로젝트를 협의하기 위해 왔다.28일은 내가 출소한 지 꼭 9년째 되는 날인데 한국 체류기간중 3.1절 특사로 나의 사면·복권이 이뤄져 더욱 기쁘다. ▒비전향정치범 출신으로서 이번 비전향장기수 17명의 추가석방을 어떻게 보나. 옥중에서 만났던 ‘선배’들의 석방소식을 듣고 반가워 봉천동 ‘만남의 집’을 찾아가서 만나봤다.이제 늙고 병든 그들에게 남북한 당국의 선처가 있기를 바란다. ▒‘옥중기’는 언제,어떻게 집필했으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94년 일본에서 수술을 받으면서 친구의 권유로 병실에서 오른쪽 손가락 하나로 컴퓨터에 담기 시작했다.옥중에 있을 때 집에 보낸 편지,가족의 면회기록 등을 참고해 옥중생활을 재구성한 것인데 더러 희미한 부분은 출소자들을 인터뷰해서 보충했다. ▒94년 일본에서 ‘옥중기’를 냈을 때의 반응은. 그동안 약 5만부(5쇄)가 판매됐다.독자의 편지만을 모아 다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석방된 후 뭘 하고 지냈나. 석방직후 일본에서 타이완(臺灣) 정치범 출신 모씨를 만나면서 동아시아의억압받는 민중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97년 타이완에서 개최한 ‘동아시아 냉전과 국가테러리즘’심포지엄과 이듬해 제주도에서 개최한 ‘제주4·3’ 심포지엄은 모두 이같은 취지에서 조직한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남북의 분단,중국과 타이완의 분단,일본과 아시아 국가간의 갈등 등 ‘분단문제’를 집중 연구할 계획이다.금년에는 오키나와에서 주한미군범죄를 주제로 제3회 국제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 서씨는 출소 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하기도 했으며 지난해부터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에 재직중이다.
  • 어제 전국 교도소·구치소서…특별사면 1,508명 일제 석방

    金大中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특별사면 석방대상자 1,508명이 25일 오전 10시 서울구치소를 비롯,전국 13개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일제히 풀려났다. 지난 58년 간첩 혐의로 체포돼 41년동안 수감됐던 禹用珏씨(71)를 비롯,미전향 장기수 17명은 대전·대구·광주·전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이들 가운데 남한에 연고가 없는 禹씨 등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운영하는 ‘만남의 집’에서,安영기씨(71) 등은 친지와 함께 생활할 예정이다. 高永復 전 서울대 교수(71),재일조총련 간첩단 사건의 趙相綠씨(53),연세대 사태 관련자 17명 등 시국·공안사범 24명도 석방됐다. 히로뽕 투약혐의로 네번째 구속돼 치료감호중이던 朴正熙 전 대통령의 아들 志晩씨(41)는 공주치료감호소에서 퇴원했다.
  • 우용각씨 북송 인도적 차원서 해결을/2.25 특별사면 이모저모

    25일 오전 10시 형집행정지 등으로 사면돼 교도소를 나온 禹用珏씨(71) 등미전향 장기수 17명의 표정은 비교적 밝고 건강해 보였다. ▒41년동안 복역한 禹씨는 검정색 바지와 점퍼차림에 뿔테안경을 쓰고 대전교도소를 나왔다.교도소 정문에는 오전 8시쯤부터 민가협 회원과 대학생 100여명이 나와 禹씨 등의 출소를 반겼다. 禹씨는 감정이 벅차오른 듯 눈물을 비치기도 했으며 “북송문제는 개인적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이어 “변화한 사회환경에 적응해나가며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며 생활하고 싶다.미력하나마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78년 재일 조총련 간첩단사건으로 21년동안 복역한 趙相綠씨(53)도경북 안동교도소를 나와 가족의 품에 안겼다.趙씨는 남파간첩 이외의 최장기 복역수였다. 구미유학생 간첩단사건의 姜용주씨(37)의 어머니(74)는 “준법서약서를 거부하는 아들을 말릴 수 없어 늘 가슴을 졸인 채 지켜만 봤다”며 눈시울을붉혔다.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난 高永復 전 서울대교수(71)는 “독방의 고독과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 기쁘다.건강이 허락하는 한 학계에 끼친 피해를 회복하는데 힘을 쏟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입소 7개월만에 공주치료감호소를 나온 朴正熙 전 대통령의 아들 志晩씨(41)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2시간 빠른 오전 8시 치료감호소를 퇴원했다.李世宗감호소장(55)은 퇴원전 志晩씨가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志晩씨는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삼양산업 직원이 몰고 온 회색 BMW 승용차를 타고 감호소를 빠져나갔다. 志晩씨의 누나인 朴槿惠 한나라당 부총재(47)는 24일 오후 4시30분쯤 志晩씨를 30분동안 면회했다고 감호소 관계자가 전했다. ▒대전교소소 출소자 중에는 92년 3월 경기도 성남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용의자로 체포돼 93년 3월 사형선고를 받은 파키스탄인 무하마드 아자르씨(38)와 아미르 자밀씨(31)가 포함됐다. 천주교인권위원회의 끈질긴 석방 노력으로 특사에 포함된 아자르씨와 자밀씨는 출소 직후 金壽煥 추기경과 金大中 대통령을 연호하며 사면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마중나온 천주교인권위 吳昌翼사무국장(34)은 “살인사건의 범인이 따로 있다고 판단한 인권위는 두 사람의 석방 탄원을 계속,오늘과 같은 기적을 이뤘다”며 “이들은 오늘 저녁 8시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고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金대통령 취임1주년 기자회견

    金大中대통령은 24일 “북한이 석방된 남파간첩 17명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데 대해 이해하지만 우리 역시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나 납북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면서 “북한과 우리 사이에 서로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공정한 대화가 있기를 바란다”고 미전향 장기수 북송과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문제를 함께 논의할 것을 북측에 제의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취임 1주년 내외신기자회견을 갖고 “지금까지 북한과 공개·비공개 접촉은 없었지만 남북한 양측의 의견이 맞아가고 있는 과정이어서 북한과 정부 레벨의 대화가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 “북한에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고 싶으며,이는 적십자사를 통해 인도적으로 하는 방법도 있다”고 전제하고 “상호주의 원칙을 버리지 않지만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개각여부에 대해 “지금 당장 개각을 서두를 생각은 갖지 않고 있다”고 전하고 “그러나 청와대 비서실의 사회복지분야는 둘로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노동복지수석 신설을 분명히 했다. 金대통령은 “지역감정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에 생긴 것으로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며 국민통합에 자신감을 피력했으며 “금년에는 반드시 정치를 안정시키고 국회,선거,정당조직 등의 개혁을 실현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정국정상화에 대해서는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고,의원도 빼내오는 일이 없을 것이므로 야당도 책임있는 야당으로서 모든 것을 원내에서 다뤄나가도록 하고,지역감정 조장행위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문제에 대한 질문에 金대통령은 “정당명부식이냐,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역정당화를 막는 길이 중요하다”면서 “모든 정당이 전국정당으로 나갈 수 있는 제안을 한다면 정당명부제가 아니더라도 토론할 수 있다”고 야당의 동참을 촉구했다. 金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도 언급,“대통령과 법무부가 관여하지 않는 자유로운 민간기구로 구성하는 방향으로 정리돼 가고 있으며,인권위원으로 명망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을 선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보안법 개정에 대해 金대통령은 “정부와 공동여당 내에서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 있으며,멀지않아 태도를 밝힐 것”이라고 말해 개정작업이 진행중임을 시사했다.
  • [사설]특별사면의 특별한 의미

    정부는 새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특별사면을 단행키로 하고 사면·복권대상자 8,812명의 명단을 발표했다.이번 특사로 전국 교도소에서 모두 1,508명이 형집행정지·가석방 등으로 25일 풀려나게 된다.이번 특별사면·복권은 온 국민의 참여 속에 경제회생과 국민대화합을 다짐하고 대북(對北) 자신감을 대내외에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본의 아니게 범죄자가 된 중소기업인 1,840명이 형선고 실효 및 복권조치로 경제활동의 제약에서 풀려나고 벌금형을 받고도 실직 등으로 벌금을 완납하지 못한 2,600여명이 미납분을 면제받게 된다.이들은 적어도 신체적 자유를 회복한 가운데 개인적 경제활동을 재개하면서 국가경제회생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본인들은 물론 가족들을 위해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정부는 인도주의와 국민대화합의 차원에서 미전향 장기수들과 공안·노동관련 사범에 대해서도 대규모 은전을 베풀었다.이로써 96년 연세대 한청련사건 관련자 17명,노동운동가 24명이 석방됐다.또한 黃晳暎 徐敬元 林秀卿씨 등 밀입북 관련자와 박노해 白泰雄씨 등 사노맹사건 관련자들이 잔형면제와 함께 복권됐다.이들에 대한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이로써 우리 사회의 자산이기도 한 이들은 국가를 위해 나름대로 봉사할 수있게 됐다.이같은 사실은 우리 사회내부에 있을 수도 있는 이념적 혼란을 정부가 능히 수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혀진다.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것은 26년에서 40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미전향 장기수 17명을 ‘준법서약서’를 받지 않고 석방한 사실이다.정부는 이들 미전향 장기수들이 준법서약서를 거부하는 것은 북쪽에 남아있는 가족들의안위를 우려한 것이기 때문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들을 석방한다고 밝혔다.이념과 관련해서 세계 최장기수를 갖고 있다는 불명예를 씻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이다.그동안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준법서약서를 두고 ‘사상전향서’의 변형이라고 비판해왔던 게 사실이다.정부가 국내 우익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같은 결단을 내린 것은대북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북 포용정책을 굳건히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로 평가된다.정부는 석방된 미전향 장기수들을 북한에 억류중인 국군포로나 납북자들과 교환하는 방안을 내비쳤다.이 문제와 관련,93년 이인모 노인을 일방적으로 북송했다가 낭패를 본 사례가 참고가 됐으면 한다. 사면·복권을 받은 사람들은 이번 특별사면의 큰 뜻에 걸맞게 경제회복과국민화합에 적극 동참하기 바란다.
  • 北,석방 장기수 송환 요구

    정부는 북한이 23일 미전향장기수의 북송을 요구해 옴에 따라 이를 당국간또는 적십자사간 남북대화의 계기로 삼기 위한 다각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는 특히 북측 요구와 관련,유관부처 협의를 거쳐 우리측 납북자 및 이산가족 문제 및 대북 지원문제를 함께 다루기 위한 적십자 회담 등을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청와대,통일부 등을 비롯한 유관부처 협의를 갖고 빠르면 24일 중정부입장을 결정할 예정이다. 북한 적십자회는 23일 오전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중앙위원회 장재언위원장 명의의 편지를 鄭元植 대한적십자사총재 앞으로 보내왔다. 북한은 편지에서 “지난 1월 30일 귀측 법무부는 3·1절 특별사면시에 41년째 감옥살이를 해온 우용각을 포함하여 29년 이상된 비(非)전향장기수 17명을 모두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며“귀측이 비전향장기수들을 모두 무죄석방함과 동시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면 얼어붙은 북남관계를 풀고 폭넓은 대화와 접촉의 문을 열어나가는데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具本永 kby7@
  • 대한매일을 읽고-보호감찰과 보호관찰 혼용 말아야

    지난 8일자 19면에 실린 기사중 타이슨이 ‘보호감찰’ 2년을 선고 받았다고 한 것은 ‘보호관찰’의 잘못된 번역이다. 미국에서는 집행유예,선고유예에 부과되는 Probation,가석방에 부과되는 Parole로 구분하는데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모두 ‘보호관찰’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법무부 소속 보호관찰소를 ‘Probation Office’라고 영역하고 있다. 보호관찰은 형의 선고 또는 집행을 유예하거나 가석방해 범죄자를 교도소등에 구금하지 않고 사회 내에서 지도 감독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97년부터 전면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흔히 언론에서 보호관찰을 ‘보호감찰’로 오역해서 보도하는 사례가 많은데 정확한 명칭을 사용해 독자들의 보호관찰 제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왔으면 좋겠다. 김용운[부산시 사하구 괴정1동]
  • [대한포럼] 미전향 장기수 사면과 후속과제/장청수 논설위원

    정부는 金大中대통령 취임1주년을 기해 3·1절 특별사면·복권대상자 8,812명의 명단을 발표했다.이번 사면대상자 가운데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지난 58년부터 41년째 복역중인 우용각(71)씨 등 미전향 장기수 20명 중 17명도 포함돼 있다.이들에 대해서는 준법서약서 제출과 상관없이 잔형면제로 석방되며 본인의 의사에 따라 북한으로 돌려보내지는 특단의 방안도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정부의 이번 미전향 장기수 사면은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간 대결구도로 형성됐던 냉전적 이데올로기 청산을 위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획기적 조치로 평가된다.프랑스 르몽드지(紙)가 미전향 장기수 석방은 한국에서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게 된이것라며 파격적 의미를 부여할 정도로 전향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그동안 한국인권문제의 사각(死角)으로 비유됐던 현안쟁점의 해소라는 상징성도 크다.그러나 정부의 이번 미전향 장기수 사면 의미는 무엇보다 남북한의 신뢰와 화해·협력을 위한 인도적 측면의 선결조치라는 점에서 당위성과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다.민족공동체 회복을 통한 한반도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의 실천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북한이 그동안‘남한 미전향 장기수 구원대책기구’를 설치하고 이들의 송환을 요구해 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면조치는 남북관계 개선의 긍정적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미전향 장기수 사면이 갖는 이같은 역사성에 비추어 볼 때 정부의 효율적인 후속조처가 요청된다.첫째,미전향 장기수사후처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이다.朴相千법무장관의 북송검토 표명이후 국민적 여론은 긍정과 우려로 나뉘는 느낌이다.일부에서는 정부의 조치가 인도적 측면에서 선택된 만큼 조건없이 보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일방적인 북송은 이인모씨의 경우처럼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국군포로나 납북어부 석방 등의 상응조치를 받아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같은 의견에는 나름대로 명분과 이유가 분명하다.미전향 장기수의 경우대부분 고령인데다 국내에 아무런 연고자나 생계수단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이들을 북송하는 인도적 조치도 바람직하다.그러나 북한이 이들을 통일영웅으로 미화 선전하고 폐쇄사회의 통제성을 강화하는 정치수단으로 이용할 경우 심대한 부작용이 초래될 것이 자명하다. 이같은 결과를 감안해서 정부는 상호주의원칙에 의거,인도적 차원의 명분과 남북관계개선의 실리도 함께 추구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둘째,미전향 장기수 문제도 인도적 측면에서 이산가족문제와 연계하는 방안이효과적이라는 점이다.미전향 장기수 북송문제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산가족문제 해결차원에서 전향적으로 검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 대북포용정책의 일차적 목표가 이산가족문제에 귀결되는 만큼 북한이요구해온 미전향 장기수 석방을 이산가족문제 해결과 연계시켜 추진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이산가족 뿐만 아니라 6·25 이후 강제 납북된 429명 인사들의 귀환문제도 인도적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미전향 장기수 북송과 이산가족문제를 연계시키는 것은 북한의 태도가 중대한 변수가 되는 만큼 정부는 일관성 있는대북포용정책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바람직하다.이와 함께 이번 미전향 장기수 사면은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대화분위기를 한층 성숙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csj@)
  • 朴相千 법무부장관 일문일답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22일 특별사면 및 복권 기자회견에서 ‘미전향 장기수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朴장관과의 일문일답. ‘특단의 조치’의 구체적인 내용은.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경우에 따라 17명 이외에 나머지 3명까지 확대될 수 있는 조치다. ‘특단의 조치’ 중에는 이들을 북한으로 송환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나. 현재 다각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석방된 미전향 장기수 17명 중에 법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은. 북쪽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름을 밝힐 수없다. 현재 남아있는 양심수는. 학원사범 61명뿐이다.노동사범 18명을 포함한 120명은 재판에 계류중이다. 이들도 재판이 끝나면 사면되나. 그것은 그때 가서 결정할 문제다.이번 사면은 대상자에 대한 세밀한 조사등을 거쳐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해 온 것이다. 경제사범 가운데 申光湜 전 제일은행장 등이 제외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나. 은행장 등 유명 경제인의 배임수재 혐의는 뇌물죄에 준한 범죄로 판단했다. 특히제일은행이 한보의 주거래은행이라는 점을 고려해 이번 사면에서 제외했다. 金載千
  • 미전향장기수 북송 검토…정부,생계형·시국사범등 8,812명 사면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22일 준법서약을 거부하고 있는 미전향 장기수들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특단의 조치에는 이들의 북송 또는국군포로 및 납북자와의 맞교환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朴장관은 이날 金大中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미전향 장기수를 포함,시국·공안사범,생계형 범죄·부정수표·노동 사범 등 모두 8,812명에 대한 특별사면 및 복권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朴장관은 “사면으로 풀려나는 禹용각씨(71) 등 미전향 장기수 17명은 서울 ‘만남의 집’이나 대전 ‘사랑의 집’ 등에서 기거하게 되며 보안관찰을받게 될 것”이라면서 “특단의 조치에 포함되는 대상자도 이번에 사면된 17명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禹씨 등 미전향 장기수17명을 포함,잔형집행 면제 및 가석방 혜택을 받는 1,508명은 오는 25일 전국 교도소에서 일제히 석방된다. 사면대상은 ◆잔형 면제 및 복권 170명 ◆형선고 실효 및 복권 3,331명◆잔형 면제 2,702명 ◆형집행 정지 49명 ◆가석방·가출소 1,455명 등이다. 또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받은 뒤 벌금을 못내 노역장에 유치됐다풀려난 2,693명은 벌금 잔액을 면제받는다. 시국 및 공안사범은 高永復 전서울대 교수(71)와 薛曾澔씨(27) 등 연세대 사태 관련자 17명,재일 조총련간첩단 사건의 趙相綠씨(53) 등 24명이 석방된다. 이미 풀려난 시인 朴노해씨(40)를 비롯,전 서울대 총학생회장 白泰雄씨(36),밀입북 사건의 林秀卿씨(30),徐敬元 전 국회의원(61),소설가 黃晳暎씨(54)등 2,733명이 복권된다. 히로뽕 투약혐의로 치료감호중인 朴正熙 전 대통령의 아들 志晩씨(41)는 형선고 실효 혜택과 함께 퇴원조치된다.
  • 정부“인권보호”확고한 의지/미전향 장기수 2.25특면 배경

    22일 새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단행한 특별사면 및 복권의 핵심내용은 미전향 장기수 17명에 대한 조건없는 석방과 향후 특단의 조치 검토를 꼽을 수 있다. 미전향 장기수의 조건없는 석방은 새정부의 인권 보호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함께 대북 관계에서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39년째 복역중인 남파간첩 禹용각씨(71)를 비롯,형집행정지로 풀려나게 될미전향 장기수 17명은 지금까지 국제 인권단체 등에서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거론해 왔다. 법무부는 이날 “고령으로 더이상 대한민국의 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이 때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의 안위를 위해 禹씨 등에게 공안사범에게 요구하는 준법서약서를 강요하지 않았다.준법서약서는 북의 가족에 대한 위협인 만큼 비인도적·반인간적행위라는 고려에 근거한 것이다. 물론 일부 장기수는 검사들과의 개별면담을 통해 공개적인 준법서약은 곤란하지만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고가 없는 장기수들을 위해 서울 ‘만남의 집’,대전 ‘사랑의 집’ 등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생계대책까지 마련했다.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이날 특별사면 및 복권 기자회견에서 이들 미전향 장기수에 대한 특단의 조치와 관련,“지금 그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했으나 ‘북송’ 등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관계당국에서는 이미 각종 대화채널을 통해 북한당국과 이들의 처리문제를 놓고 어느 정도 논의가 이뤄졌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李인모 노인 북한송환 때처럼 아무런 대가없는 일방적인 ‘시혜’조치로 끝나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의지인 것 같다. 따라서 앞으로 남·북간 협상에 따라 지난 87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여행중납북된 유학생 李在煥씨(37)나 같은해 납북된 동진27호 선장 崔宗錫씨(51)와의 맞교환이나,6·25참전 국군포로와의 맞교환 등도 실현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朴弘基 hkpark@
  • 사면·복권 주요인물

    22일 발표된 특별사면 대상에는 39년째 복역중인 미전향 장기수 禹용각씨(71)를 포함,많은 공안·시국 사범들이 포함돼 있다. ◆禹용각씨=평북 영변출신으로 지난 58년 동해안으로 침투하던 중 울릉도 서북 해상에서 검거됐다.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9세의 나이에 수감돼 지금까지 대전교도소 특별사동 독방에서 보냈다.뉴욕타임스는지난해 3월 ‘40년 동안 단 한번의 면회도 없이 독방에 수감돼 있는 양심수’라고 禹씨를 소개,석방을 촉구하기도 했다. ◆高永復 전 서울대 명예교수(71)=이화여대 강사로 재직하던 지난 61년 9월북한에 있는 삼촌의 소식을 전하며 접근한 북한공작원에게 포섭됐다.96년까지 ‘부부간첩 최정남·강연정’ 등 북한공작원 6명과 수차례 접촉,은신처를 제공하는 한편 국내정세를 보고해온 혐의로 97년 11월 구속돼 징역 2년을선고받았다.1년3개월 복역했다. ◆趙相綠씨(53)=재일 조총련 간첩단 사건으로 지난 78년 2월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20년 동안 교도소에서 보냈다.남파간첩이 아닌 공안사범 가운데 최장기수다.76년 일본 명치대로 유학간 뒤,조총련계 친지들로부터 북한의 주체사상 등을 교육받고 귀국,가족에게 북한식 통일론 등을 가르친 혐의를받았다. ◆任鍾晳씨(32)=지난 89년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에 선출돼학생운동을 주도했다.林秀卿씨 밀입북과 관련,같은해 12월 체포돼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고 3년5개월 동안의 수감끝에 92년 12월 가석방됐다.현재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으로 시민단체와 연대해 활발한 사회운동을펼치고 있다. ◆林秀卿씨(30)=한국외국어대 4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89년 7월 북한에 밀입북,평양에서 열린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이로 인해 구속돼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은 뒤 수감생활을 하다 92년 12월 석방됐다. 현재 미국에 유학중이다. ◆徐敬元 전 국회의원(61)=평민당 국회의원 시절인 88년 8월 북한에 3일 동안 밀입북한 혐의로 구속돼 8년6개월 동안 복역했다.지난해 3월 가석방으로풀려났다.徐 전 의원은 이번에 잔형면제 및 복권 조치됐다. ◆黃秀英씨(54·필명 黃晳暎)=지난89년 밀입북한 뒤 미국과 독일 등 해외에서 도피생활을 하다 밀입북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3월 가석방됐다. ◆崔虎敬씨(41)=지난 92년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崔씨는 지난해 8월 8·15특사에서 준법서약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면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사면에서 징역 20년으로 감형됐다. ◆朴志晩씨(40)=고 朴正熙 대통령의 외아들이다.지난 89년 코카인 흡입 혐의로 처음 입건된 이래 10년 동안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적발돼적발-선처-재적발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면서 4차례나 구속됐다.지난해 4월 히로뽕 흡입 혐의로 4번째로 구속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현재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치료감호를 받고 있다. ◆朴基平씨(40·필명 박노해)=‘노동자 시인 박노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 91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사건과 관련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8·15사면 때 준법서약서를 쓰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지난해11월 노동부 공무원을상대로 특강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白泰雄씨(36)=사노맹 상임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 92년 4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8·15사면 때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金載千 pa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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