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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료계 요구안 내용·전망

    의료계가 31일 발표한 대정부 요구안은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온내용이다.그러면서도 구속자 석방,수배자 해제 등 전제조건을 내세워협상 전망은 불투명하다. 특히 의료계는 정부가 들어줄 수 없는 사항을 요구하고 나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는 의약분업과 관련,▲약국에서 판매하는 포장단위를 용법기준으로 7일 이상으로 하고 ▲국민들의 자가치료의 안전과 남용 및 습관성 위험이 없는 의약품은 슈퍼마켓과 편의점에서 팔도록 하며 ▲낱알 판매 유예조치를 없앨 것 등을 요구했다.여기에 대체조제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의사의 사전동의가 있는 경우 ▲생물학적 약효동등성이 인정된 의약품은 예외를 인정키로 했다.아울러 대체조제시 환자의 사전동의를 받고 24시간내에 의사에게 문서로 통보하며 약사가조제 및 판매 기록부를 작성,5년간 보관토록 했다. 이밖에 상용처방약 선정,의료보험수가 및 의료보험재정 안정책,대통령 직속의 의료발전특위 상설기구화 등을 요구했다.의과대학의 정원도 현행 70% 수준으로 감축하고 주치의 제도 실시 보류 등 다양한 협상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의 고위관계자는 “의료계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핵심 쟁점은 10개 내외로 분석된다”며 “그러나 사태해결의 관건은 의료계가 타결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말했다. 유상덕기자 youni@
  • 서울시의사회 韓光秀회장 보석

    서울지법 형사2단독 김철현(金哲炫) 판사는 31일 의료계 재폐업을주도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서울시 의사회 회장 한광수(韓光秀) 피고인(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직무대행)과 의쟁투위원장 직무대리 최덕종(崔德種) 피고인이 낸 보석신청을 받아들여 각각 보증금 2,000만원을내는 조건으로 석방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해외항일전적지를찾아서](7)丹東 臨政 교통국과 쇼우의‘이륭양행’

    일제하 항일투쟁 대열에 섰던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국내외에 거주하던 외국인들도 적지 않았다.구한말 항일 필봉을 드날린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사람은 영국인 베델(한국명 裵說·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이었고,영국인 스코필드(한국명 石虎弼·68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박사는 3·1의거와 일제의 ‘제암리만행’을 전세계에 폭로했다. 또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한국명 訖法·50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박사는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을 지원한 주인공이다.베델과 헐버트 박사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스코필드 박사는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 있다.헐버트 박사 묘비에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는 박사의 유언이 적혀 있다. 한편 한국독립을 도운 외국인 가운데 G.L 쇼우(1880∼1943·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라는 인물이 있다.그가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이유는 해방 전에 사망한데다 그의 후손도 한국과 왕래가별로 없었으며,또 그동안 그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부족했던 탓으로생각된다.그가 활동했던 1920년대초 당시 국내 일간신문을 펼치면 그의 행적이 곳곳에 남아있다.그러나 국내에선 그의 ‘흔적’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그를 만나려면 지금은 중국땅이 된 남만주로 찾아가야 한다. 백두산에서 발원해 중국과 국경을 이루며 황해로 흐르는 압록강 하류의 신의주땅 건너편에는 단동(丹東,옛 지명은 安東)이라는 도시가있다.심양(沈陽)에서 아침 7시45분발 기차를 타면 점심때인 낮 12시10분에 도착하는 거리다.취재팀은 일행의 안내차 역으로 마중을 나오신 박문호(朴文鎬·65)선생과 먼저 점심식사를 한 뒤 답사에 나서기로 했다.취재팀이 첫 답사대상으로 삼은 곳은 ‘이륭양행(怡隆洋行)’건물이었다.이 건물은 쇼우가 경영하던 무역회사 겸 중국의 태고선복공사(太古船輻公司) 대리점이었다.70년 세월이 지났건만 놀랍게도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채 취재팀을 반겼다. 단동시내 육도구(六道口) 흥륭가(興隆街)25번지에 위치한 이 건물은 현재 단동시 건강교육소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세월의 풍상을 겪은낡은 모습이었다.겉에서 보면 2층 건물처럼 보이나 실지로는 3층 건물로,현재 이 건물은 1층만 건축 당시 그대로이며 나머지는 신축됐다고 한다.주민들에 따르면,인근에 헌 건물들이 많아서 이 건물도 곧헐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건물의 주인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이방인 쇼우는 어떤 인물인가? 영국인들의 생몰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영국의 ‘제너럴 레지스터 오피스’에 보관된 자료에 따르면,쇼우는 1880년 1월 25일 파고다 아일랜드에서 해양조사원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1908년 부친사망 당시 그는 중국 남동부의 항구도시 복주(福州)에 살고 있었다. 1912년 당시 상업에 종사하고 있던 그는 단동에서 일본여인 후미 사이토(당시 28세)와 결혼하였는데 이듬해 장남이 태어날 당시 그는 일본 고베에 머물고 있었다.그가 한국의 독립을 돕기로 결심한 것은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쇼우가 한국의 독립운동을 돕기로 한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첫째는 그의 출신과 가족구성.그는 영국 식민지인 아일랜드태생으로 자신의 고국이 식민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처지나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입장을 잘이해하고 있었다.특히 모친과 부인이 모두 일본인이라 일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더욱이 그의 사무실(이륭양행)은 안동(현 단동)구시가지에 위치해 있어서 일본영사관의 영향이 미치지 않아 한국인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바로 이곳 2층에 상해 임시정부 교통부 산하 ‘안동(安東)교통국사무국’이 들어있었다.교통국은 임정초기 정보수집과 재정모금,인물소개 등을 담당하였는데 국경지역에 위치한 이곳은 교통부 산하 7개 교통국 가운데서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그는 단순히 장소만 제공해준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을 숨겨주기도 하고,상해를 오가는 독립운동가들에게 배를 제공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편의를 제공해주었다. 1920년 그가 소위 ‘이륭양행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었을 때 일본 외무성에서 작성한 그의 행적자료에 의하면,그는 봉천(奉天) 주재영국 총영사가 일본당국의 요청으로 수차례 주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대동단사건 지원 ▲독립군 무기수송 ▲독립운동 근거지 제공 ▲임정 비밀문서 전달 등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1920년 7월 오학수(吳學洙) 등이 국내로 무기를 들여오기 위해 그가 소유한 계림환(桂林丸)에 숨겨두었다가 발각되자 그도 이들과 함께일경에 구속되었다.1924년 단동을 떠나는 조건으로 영국 측의 도움을 받아 석방된 그는 복주(福州)로 거주를 옮겼는데,그해 11월30일 63세로 타계하였다.그의 사후 57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그에게 건국훈장 추서한 것이 전부일 뿐 그의 묘소에 꽃 한송이 바치지 못했다. 항일투쟁 끝에 단동에서 최후를 마쳤으나 일반인들에게는 쇼우처럼거의 무명(無名)에 가까운 독립투사 한 분이 있다.바로 편강렬(片康烈·1892∼1929) 의사다.17세때인 1907년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이듬해 13도창의군의 ‘서울진공작전’에 참가한 편 의사는 이후 1911년 ‘105인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여,1919년‘구월산주비단사건’으로 해주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하였다.출옥후만주로 건너가 양기탁(梁起鐸) 등과 의성단(義成團)을 결성,단장에취임한 편 의사는 이듬해 3월 장춘 일본영사관을 습격하였으며,다시1개월 뒤에는 봉천(현 심양)에서 일경과 백주에 시가전을 벌여 적 다수를 사살하였다. 1924년 길림과 하얼빈에서 각 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다가 일경에 체포된 편 의사는 국내로 압송돼 7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척추염이 발병,안동 적십자병원에서 순국하였다.불과 37세였다.구한말 의병전쟁에서 부터 독립군 투쟁에 이르기까지 청춘을 항일투쟁에 몸바쳤으나 이름을 아는 이가 적음은 물론 그의 묘소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생전에 편 의사는 ‘나라가 광복되기 전에는 내 유체를 고국에 이장하지 말라’고 유언했다.지금도 단동 진강산(鎭江山) 기슭 공동묘지 어디엔가 누워있을 편 의사를 생각하면 후손된 자로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단동은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압록강이 마지막 모습을 감추는 곳이자 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땅과 마주하고 있어 우리 민족에겐 ‘비원의 땅’이라고 할수 있다.또애국선열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조국광복을 위해 몸을 의탁하던 곳이자,살 길을 찾아 만주땅으로 향하던 유민들의 한숨이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강산(錦江山)공원(구 진강산공원) 옆에 있는 안동주재 일본영사관 건물은 아직도 그 화려한 건축미를 간직한 채 지금은 단동 경비사령부 건물로 사용되고 있었다.압록강을 가로지르는 두 철교 가운데 6·25때 끊어진 철교를 중국의 모 회사가 매입,관광용으로 꾸밀 계획이라고 한다.단동은 우리 근·현대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중국의 경제개방 열풍속에서 나날이 변모하고 있었다. 정운현기자 jwh59@
  • 재미교포 불법 정치헌금 파문

    지난해 대한생명 인수를 시도했던 재미교포 사업가 데이비드 장(56)씨의 불법 선거자금 모금사건으로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 정가가술렁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8일 2개면에 걸친 장문의 기사를 통해 장씨의 행적을낱낱이 소개하면서 장씨 사건이 빌 클린턴 대통령이나 클린턴의 선거자금 모금책 테리 맥콜리프,민주당 로버트 토리첼리 상원의원(뉴저지주) 등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타임스는 장씨가 석유탐사·통신사업 등 거창한 사업을 구상했지만모두 시작도 되기 전에 무산됐다면서 이런 장씨가 워싱턴 정가에서는 국빈만찬에 초대되고 대통령을 비공식적으로 방문했던 것은 장씨의정치자금 제공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타임스는 장씨의 자금출처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장씨는 그간 100여차례에 걸쳐 32만5,000달러에 달하는 정치자금을 제공하고빌 클린턴 대통령에게는 아칸소주 리틀록에 건립될 예정인 기념도서관에 100만달러 이상을 제공하기로 약속을 했다.문제는 이같은 규모의 정치자금이 장씨의 지불능력을 벗어난다는 것.실제로 장씨는 1996∼98년 수입을 18만3,000달러로 신고할 만큼 자금동원력이 많지 않다.하지만 이 기간동안 정치자금은 27만달러나 제공했다.장씨가 소유한 뉴욕 인근의 ‘포트리 힐튼’ 호텔 매입자금도상당부분 외국에서 송금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그가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자금을 끌어들이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장씨는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거나 미 정치인들을 동원,지난해 대한생명 인수를 시도하기도 했다.이에 앞서 장씨는 1994년1억1,100만달러 어치의 곡물 56만t을 북한측에 제공했으나 북측이 곡물 대금 7,100만달러를 갚지 않았다며 북한 정부를 제소하기도 했지만 그가 설명하는 대북사업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2개의 여권과 3개의 생년월일을 갖고 있는 등 행적도 미심쩍다. 또자신이 설립한 ‘닛코 엔터프라이즈’가 일본의 닛코사로부터 지원을받는다고 했다가 닛코사의 반발로 회사명을 ‘브라이트 앤 브라이트’로 바꾸기도 했다. 토리첼리 의원에게 5만3,000달러의 불법 선거자금을 제공한 혐의로재판을 받던 장씨가 지난 6월 자신의 혐의를 인정,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재미교포 사회는 장씨 사건으로 인해 재미교포 전체의이미지가 훼손될까 걱정하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데이비드 장 행적 일지. ■95∼96년 로버트 G 토리첼리의 상원 선거자금 모금위원회 활동■98년 6월9일 김대중 대통령을 위한 백악관 국빈만찬 참석■98년 7월14일 백악관 ‘영화의 밤’ 행사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영화 감상■98년 11월 서울 하얏트 호텔 클린턴 대통령 숙소에서 환담■98년 12월 19일 백악관 공휴일 만찬 참석■99년 3월29일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농구경기 시청■99년 7월 대한생명 인수시도 관련,토리첼리 상원의원 등으로부터지원 서한 접수■99년 10∼11월 대북 곡물수출 대금 회수 목적으로 의원들 지원 서한 접수■99년 12월 연방수사국(FBI)에 체포■2000년초 보석금 50만달러 내고 석방■2000년 6월2일 토리첼리 의원에 불법선거자금제공 시인
  • [네티즌 칼럼] 국가는 사형 할 권리가 없다

    사형은 차별 중에서도 가장 전체주의적인 것이다.사형 집행은 국가의 판결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며 국가는 단지 하나의 범죄에 대한처벌뿐만 아니라 하나의 생명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파괴할 권력과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선언이다. 이런 가공할 선언을 실천으로 옮겨온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도 폭력과 공포에 의한 지배를 한 사람들이 열성적으로 사형을 시연해왔다.정치적인 자유가 있는 사회와 사형이 폐지된 사회 간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대목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다른 인간의 폭력을 그저 더 많은 폭력으로 상대하기보다 두려움과 증오,자신의 분노와 편견을 뛰어넘어 문제해결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확실히 가능하다.한 사람,한 사람이 사형폐지운동에 참여하고 있고,세계의 여러 문명권의 나라들이 사형을줄이거나 제한하거나 폐지시키고 있다.다른 모든 폭력과 사회문제들에도 불구하고,이것은 분명히 우리 세계와 인류가 움직이고 있는 방향이다.1976년 이래 매년 평균 2개 국가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되었으며 89년 이후 21개 국가에서 사형제도가 사라졌다.현재 세계의 절반이상인 108개 국가가 법적 또는 실제에 있어 사형제도를 폐지하였으며 87개 국가에서 사형이 존치되고 있다.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거나 정신질환자 또는지진아이거나 소수민족일 경우이고,사형집행을 당한 사람들은 종종위에서 열거한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미국에서 모든 사형의 80%는 흑인들에게 폭력으로 즉결처형하는 오랜 역사적 전통을 자랑하는 텍사스주에서 집행되어 왔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모든이에게 인식의 폭을 제공하고 있다.결국 아직도 사형제도가 남아있는 국가에서는 사형이라는 형벌제도가 매우 불평등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종종 사형제도는 범죄의성격을 배제하고,범죄자의 경제적 지위,피부색,또는 자신들이 죽인사람의 피부색 또는 경제적 지위 때문에 남발되거나 제한되는 등 이미 보편타당한 법제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정치적 법률이다. 특히 사형은 한국에서 명백히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기 위해 자주사용돼 왔다.1958년의 이른바 ‘진보당 사건’,1967년의 동백림 사건,1974년의 인혁당 사건,1980년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현대사에서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사형집행과 선고가 있었다.이 경우 일방적으로 불합리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 사형을 선고받음으로써 사형제도자체의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기도 했다. 사형제도는 극단적으로 가혹하고 비인도적이며 모욕적인 형벌이다. 사형은 명백하게 가혹한 처사일 뿐 아니라 사형을 기다리는 과정 자체도 잔혹한 고통이다.그 과정는 종종 살아 있는 죽음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여러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가장 공포스러운 고문기법은 사형의 위협이라고 한다.종신형은 재심의 가능성이 보장되며 조건이 충족된다면 가석방을 고려하는 나라들도 많다.또한 범죄자의 교화와 갱생은 오랫동안 형사정책의 기본목표인데 다른 형벌과는달리 사형은 갱생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하는 형벌이다.국가는 죄인을 사형시킬 권리를 결코 가질 수 없다.국가가 법의 이름을 빌려고의적이고도 용의주도하게 한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은 결국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줄어들게 만든다.또한 사형은 불공정한 법의 집행을 밝혀낼 수 있는 노력을 막아버리기 때문에,실제로 사형을당한 무고한 사람들의 숫자는 이것보다 훨씬 많다. 현재 한국에서는 60여명이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다.이들의 생명을뺏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것이며,역사는 현재 우리가 행하고 있는 보복적 행위를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인간의 미개성을 표출하고있는 가장 명백한 증거가 바로 사형이다.국가는 사형을 멈춰야 한다. 오완호 국제사면위 한국지부 사무국장 amnesty@amnesty.or.kr
  • [김삼웅 칼럼] 분단사의 한 매듭 비전향장기수

    고난의 한국현대사는 남의 나라에서는 쓰이지 않는(생기지 않는) 용어가 다수 사용된다.‘비전향장기수’도 그중의 하나이다.이 용어의‘비전향’에는 강고한 이데올로기의 갑골(甲骨)이,‘장기수’에는반인권·비인도주의의 야만성이 배인다. “지면에 옥(獄)을 그려놓아도 사람은 그것을 피하고 나무를 깎아형리(刑吏)를 만들어도 사람은 그것과 면대하기를 싫어한다”고 사마천은 ‘임안(任安)에게 드리는 글’에서 말했다.감옥을 말하는 ‘옥(獄)’자는, 사나운 개 두마리가 사람의 입(言)을 지키는 모양을 하고있다. 자유를 구속하는 형상인 것이다.감옥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속박하고 자유를 박탈하기 때문에 누구나 이를 기피한다. 며칠후(9월2일)면 ‘비전향장기수’63명이 북한으로 간다.70세 이상이 대부분으로 평균 32년6개월씩을 0.75평의 감방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사람들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이들은 남한체제를 부정하고 전복하려던 간첩과 빨치산출신이고,에돌아 보면 분단시대의 희생양이다.어찌됐건 그들의 개인이나 가족사는 통한의아픔이고 민족사적으로는 ‘콩깍지로콩 삶는’ 비극이다.무엇보다 짧게는 15년,길게는 45년을 복역한 이들의 짓밟힌 삶은 누가,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이데올로기? 신념?분단시대? 이들을 보내면서 지금이 과연 2000년대의 문명사회인가,문명은 이데올로기의 상위개념인가,하위체계인가를 묻게 한다.그리고 여전히 병들고 늙어서 폐인이 되다시피한 노인들을 이념과 거래의 장삿속으로만 인식하려는 색맹(色盲)의 군상을 지켜본다. 중세의 혼돈을 즐기는 군상은 근세의 여명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랜 독점지배로 굳혀진 기득권의 철옹성에서 밝아오는 여명도 마녀의 눈빛으로 보이고,지구는 여전히 평면일 뿐이었다.“지구가 돌다니,마녀다! 화형에 처해라”던 중세의 도그마가 이 땅의 논리로 대변된다. “을지훈련을 축소한 것은 북쪽 주장을 추종한 것이다” “경의선이 복원되면 주한미군의 철수론에 악용될 수 있다” “정상회담 합의(제2항)는 헌법위반이다” 따위의 시대착오적,뒤틀린 도그마는 오늘을 중세와 21세기의 시공(時空)을 착각하게 만든다.언제까지 분단의 철옹성에서 이념의 색안경을 쓰고 동족끼리 광란의 칼춤을 추자는 것인가.탈냉전시대에도 ‘민족’이라는 노적가리에 불지르고 싸라기 주워먹자는 것인가. 비전향장기수들의 북송을 지켜보면서 진심으로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납북자’와 ‘국군포로’를 둔 가족이다.이들의 서운함(정부에)과 원망(북쪽에)은 당연하다.남북 당국은 대화를 통해 시급히풀어야 한다.이 문제가 비전향장기수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분단의아픔이고 반인도주의적이기는 마찬가지다.또한 틈새만 보이면 화해협력을 적대관계로 되돌리려는 냉전세력에게 빌미를 주게 된다. 사실 ‘납북자’와는 별개로 ‘국군포로’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문제다.말하기 쉽게 ‘비전향장기수와 맞교환’ ‘상호주의 원칙’이제기되지만 정서적인 호소력은 지닐지 몰라도 문제의 해법은 아니다. 휴전협정에 따른 남북한 포로교환으로 국제법상 종결된 사안인데다가남쪽에서 파견한 북파요원문제, 휴전협정 직전 이승만 정부가 석방한2만5,000명의 반공포로문제 등과 연계시키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꼬이면 지금의 작은 가능성마저 물거품이 되고 남북은다시 양쪽의 극우·극좌세력의 뜻대로 대결과 적대관계로 되돌아간다.그러한 ‘닫힘’보다 작은 ‘열림’을 확대하면서 순차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보다 빠르고 쉬운 길이다. 이쯤에서 함께 주의해야 할 것은 돌출행동을 자제하는 일이다.50년이상 순치된 국민의 냉전의식이 하루아침에 씻기기는 쉽지 않다.북송비전향장기수들을 ‘애국투사’로 치켜세우거나 지나친 환송식 등은국민의 정서와는 걸맞지 않는다. 당사자들도 조신해야 한다.“조국이 나를 42년 동안 옥살이를 시켰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분단된 조국의 비극일 뿐이지요”(이종환)란자세를 북한에 가서도 지켜주길 바란다.그래야 화해협력이 지속되고통일의 길이 열린다. 김삼웅 주필 kimsu@
  • 검은 대륙 휘감는 ‘희망과 피’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나이지리아 방문에나선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26일 나이지리아의 민주적 실험이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이는 나이지리아 뿐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희망의 싹이라고 칭송했다.그러나 시에라리온과 수단에서는 국내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먹구름이 뒤덮혀 있다. ■나이지리아 98년 군부의 장기독재와 부패를 이유로 아프리카 순방국에서 나이지리아를 제외했던 클린턴 미 대통령이 나이지리아를 방문했다.지난해 출범한 올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 정부의 민주적 실험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을 더욱 격려하기 위해서라고 미국측은 밝히고 있다. 클린턴은 나이지리아에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이것이 다른 아프리카국들로 확산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실제로 미국은나이지리아의 민주제도 정착을 위해 4,300만달러,나이지리아의 교통여건 개선을 위한 450만달러 지원 등 많은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클린턴은 한편 나이지리아가 내달 열릴 예정인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상회담에서 석유증산에 합의,유가가 인하되도록 힘써줄 것을 조건으로 나이지리아의 부채를 경감시켜주는데 동의할 것으로 점쳐진다. 아직 완결되기까지는 먼 길을 남겨놓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민주주의실험은 아프리카에 희망의 싹이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인지 여부를 가리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샌디 버거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말하고있다. ■시에라리온 지난 5월 500여명의 유엔 평화유지군을 인질로 잡아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시에라리온에서 25일 영국군 11명이또 시에라리온 반군들에게 인질로 붙잡혔다.영국은 인질로 잡힌 영국군의 조기석방과 시에라리온에 배치된 영국군의 안전을 위해 무력사용까지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시에라리온 사태의 본질이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둘러싼 다툼이라는 점에서 정부군과 반군간의 타협은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이는 인질사태가 얼마든 되풀이될 수 있음을시사하고 나아가 영국을 포함한 외세의 개입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수단 17년에 걸친 장기내전이 국제전으로 비화할 움직임을 보이고있다.영국의 선데이 텔리그래프지는 27일 수단에 중국군 수만명이 이미 배치됐으며 70만 병력이 추가배치를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조니 가랑 대령이 이끄는 수단인민해방군(SPLA)이 나일강 상류 유전지대로부터 16㎞ 지점까지 접근하자 중국국영석유공사가 대주주로 있는유전 보호를 위해 수단에 파견된 중국군이 개입할 태세를 보이는 것.수단 정부도 유전지대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과 함께 비상계획을마련하고 있어 수단내전이 국제전으로 확산될 위험을 부채질하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
  • 고시공부 이젠 과학이다

    ‘고시공부는 과학입니다.’ 절에 파묻혀서 공부하거나 고시촌에서 무작정 학원 강의 듣고 모의고사 치르는 시대는 갔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자신의 취약점과성적의 향상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고시 학원가에 도입돼 학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춘추관법정연구회는 지난해 6월부터 ‘시스템식 목표학습 프로그램’을 도입,고시수험생의 성적 추이와 분야별 장·단점을 과학적으로분석해 데이터 베이스(DB)화하는 프로그램을 학원 수강생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현재까지 DB자료로 모아진 것만 벌써 3만8,000여건이고 체계적 관리되는 수험생은 1만여명에 달한다. ‘시스템식 목표학습 프로그램’이란 단순히 수험생들의 모의고사성적 추이만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난이도,정답과 오답의가중치를 나눠가며 분석한다.이에 따라 설령 수험생들이 어떤 문제를 똑같이 오답을 냈을지라도 몇 번을 찍어서 틀렸는지,무엇 때문에 그 문제를 정답이라고 판단했는지,무엇을 보완해야 할지 알려준다.즉취약한 부분이 어디인지 스스로 알게해 제 실력의 현주소를 정확히짚어줄 수 있다고 이 프로그램을 접한 수험생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강사들도 이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천편일률의 강의가 아닌,수험생개개인의 장단점에 맞게 강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방식으로 모의 시험을 몇 차례 치른 사시 수험생 김형남(金亨男·26)씨는 “일단 문제 분석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어디인지 여실히 드러난다”면서 “특히 처음 공부를 시작한 사람으로서 체계를 잡기에 편하다”고 말했다. 김민수(金民洙)부원장은 “주먹구구식으로 고시공부하는 시대는 이미 갔다”면서 “자신의 취약점을 명확히 알고 준비하는 사람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고시공부를 강조했다.아직 서울 신림동 일대 학원 전체에서 모두 시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태학관과 한림법학원 등도 이와 비슷한 방식의 과학적인 실력 분석방식 프로그램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수험생의 시험 대비는 더욱 과학적으로 변화될 조짐이다. 박록삼기자
  • 롯데호텔 노조위원장등 保釋

    서울지법 형사합의 23부(부장 金大彙)는 25일 롯데호텔 노조파업과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지난 달 구속기소된 노조위원장 정주억(37),쟁의부장 권순영(37),체육부장 조길성(43) 피고인 등 3명이 낸 보석신청을 받아들여 석방했다. 이상록기자
  • 린다 김 보석신청 기각

    서울지법 형사6부(부장 李吉洙)는 24일 백두사업 로비의혹과 관련,군사기밀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재미교포 로비스트 린다김(47·여·한국명 김귀옥) 피고인이 낸 보석신청을 “피고인이 빼낸 군사기밀이 국가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을 석방할 경우 미국으로 도주할 우려도 있다”며 기각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자이모모나스 염기서열 해독

    생명공학 벤처기업인 마크로젠(대표 徐廷宣 서울의대 교수)은 알콜발효균주인 자이모모나스(학명 Zymomonas Mobilis)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세계 최초로 해독하는데 성공했다고 24일 밝혔다. 마크로젠은 인체 게놈을 해독한 미국 셀레라사의 ‘랜덤샷건’ 방식과 미 국립보건원의 포스미드 방식을 결합한 분석방법을 통해 자이모모나스 전체 염기서열 중 98.9%의 분석을 완료했으며,총 2,068개의유전자 및 그 위치를 밝혀냈다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브라질 등에 이어 세계에서 여덟번째로 생명체 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한 국가가 됐다. 서 교수는 “이번에 밝혀낸 2,068개의 유전자는 약 1,700개 정도의유전자로 구성됐을 것이라는 당초 학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라며 “연구결과를 곧 바로 미국 국립보건원이 운영하는 데이터베이스에 공식 등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마크로젠은 연내 100% 해독을 위한 마무리 작업과 자이모모나스 칩개발,기능이 밝혀지지 않은 유전자 742개에 대한 특허작업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자이모모나스는 포도당·과당·서당을 에너지원으로 살아가는 혐기성 세균이다.대체에너지산업분야에서 다각적으로 연구가 진행돼 온에탄올 발효균주로 발효조건에 따라 다양한 부산물을 생성시킬 수 있어 혈장 대용제,면역제 등 의약품 생산분야 등에 응용될 수 있는 미생물이다. 함혜리기자 lotus@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6) 孫貞道목사 활동지 吉林

    중국 길림성의 성도(省都) 장춘(長春)에서 ‘장길(長吉)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45분쯤 달리면 길림(吉林)에 도착한다.길림은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도시 가운데 하나로 만주국 시절일본인들은 길림을 일본의 고도 경도(京都)에 빗대 ‘소경도(小京都)’라고 불렀다.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길림 도심을 ‘S자’로 휘감아 도는 송화강(松花江)은 엄동설한에도 얼지 않는다.이는 근처에풍만(豊滿)발전소가 있기 때문이다.겨울철 송화강에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찬공기와 어우러져 강 주변의 나무에 은백색의 얼음꽃을 피우는데 이는 길림의 대표적인 겨울 풍물로 꼽힌다. 길림은 일제강점기 우리 항일투사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곳이기도 하다.특히 정의부 계통의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고참의부나 신민부의 거두들도 이곳에서 활약했다.독립운동가들이 길림에 운집하게 된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당시 길림은 북만주 일대에서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곳이었다.일제의 탄압을 피해 고국땅을 떠나 만주행에 오른 동포들은 대개 길림선을 통해 만주오지로 들어갔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길림에 주저앉았다. 또 하나는 길림이 심양,장춘,연길 등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면서도 남만주철도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외부의 영향이 덜미치는,소위 ‘소왕국’과 같은 곳이었다.길림이 한 때‘비적(匪賊)의 소굴’로 불린 것은 이 때문이다.게다가 이 지역의 중국 군벌들은일제에 항거하는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에게 호의를 갖고 있어서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천혜의 요지’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1924년 11월 만주 길림성 유하현(柳河縣)에서 조직된 정의부의 간부 가운데 상당수는 이곳 길림에서 활동하였다.집행위원회 위원장 현익철(일명 현묵관)을 비롯해 지방부 위원장 김리대,군사부 위원장 이웅,그리고 별동대 대장 이동훈,경무과장 김구(金球)등이 모두 길림에서활동하였다. 길림은 또 1919년 11월 창립된 의열단(단장 金元鳳)의 창립지이자고려혁명당 역시 1926년 4월 이곳 길림에서 창립됐다.의열단의 창립지인 길림성 파호문(把虎門)밖 중국인 농부 반(潘)씨집은 이미 헐린상태며,고려혁명당 창립지인 길림성성(城) 영남반점은 현재 길림시북경로 179번지 길림시건축설계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김이삼(金利三) 기자가 피살된 동아여관은 현재 정춘집단공사 길림시 분공사(分公司,길림시 회덕가 90호 소재)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길림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해석 손정도(孫貞道·1872∼1931) 목사를 들 수 있다.평남 강서출신인손 목사는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10년 선교사로 만주에파견된 이후 1931년 길림에서 병사할 때까지 일생을 오점없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애국자다.1912년 선교활동을 벌이던 하얼빈에서 일제가조작한 ‘가쓰라(桂太郞)공작 암살모의사건’에 연루돼 전남 강진에서 ‘거주제한 1년’의 유배형을 산 손 목사는 1919년 3·1의거에 참여하였다가 상해로 망명하였다.그 해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구성되자 이동녕 초대 의장에 이어 의장에 선출되었으며,21년에는 임시정부 임시국무원 교통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임시정부가 여러 파벌로 나뉘어 세력다툼이 치열해지자 이듬해 임정을 박차고 나와 북만주 길림으로 향하였다. 길림시내 우마항(牛馬巷) 서광(曙光)골목에 예배당을 건립한 손 목사는교회를 거점으로 선교사업과 함께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당시 손목사는 길림지역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그의 예배당·자택은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아지트나 마찬가지였다.취재팀이 손 목사의 집터와 예배당을 찾았을 때 이들은 모두 헐린 뒤였으며, 일대는 아파트단지 공사가 한창이었다.(예배당은 인근에 새로 건립돼 있음)현재의주소로는 길림시 선영구(船營區) 청도가(靑島街) 춘광호동(春光胡洞)일대로 동네이름마저 서광호동에서 춘광호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 주민에 따르면,“2년전 서광호동 골목이 헐리면서 동네이름도바뀌었다”고 했다. 손 목사의 길림 시절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북한의 김일성(본명 김성주) 주석이다.당시 손 목사는 ‘소년김성주’의 후견인이자 그를 항일운동의 길로 안내한 정신적 스승이었다고 할 수 있다.1926년평양의 창덕학교(소학교)를 졸업한 김성주 소년은 민족주의 단체인 정의부가 화전(樺甸)에서 설립한 화성의숙(華成義塾)에 입학했다.당시 숙장(塾長)은 천도교도이자 항일운동가인 최동오(崔東旿)선생이었는데 최 선생은 86년 월북한 최덕신(崔德新) 전외무장관의 부친이다.(금년 8·15 이산가족 상봉때 북측 단장을맡은 류미영씨는 최 전장관의 부인이다.)그러나 그해 6월 부친의 갑작스런 별세의 충격으로 학업을 중단한 그는 이듬해 길림으로 건너와 육문(毓文)중학에 입학했는데 그는 당시 부친의 친구인 손 목사의지도와 후원을 받으며 생활하였다. 특히 공산주의 성향의 독서회를 이끌던 그가 중국 군벌에 체포되자손 목사는 감옥으로 사식과 침구를 제공하는 한편 군벌에게 뇌물을주면서까지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였다.그 덕에 그는 감옥에 들어간지 7개월만인 30년 5월초에 출감했다.김 주석은 생전에 남긴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첫머리의 ‘손정도 목사’편에서 “손 목사의 도움으로 제 때에 감옥에서 석방되지 않았더라면 10년쯤 감옥생활을 더 했을 것”이라며 “손 목사는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회고했다. 길림시내 송화강변에 위치한 육문중학에는 그가 다닌 옛 육문중학의 구지(舊址)가 신관 뒷편에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길림시는 92년 이곳을 ‘중점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관리하고 있다.350평 규모의 ‘구지’에는 당시의 교사(校舍)·온실 등이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다. 마당 한가운데는 92년에 건립한 김 주석의 동상이 서 있다.동상 뒷편에 위치한 교사에는 당시 김 주석이 공부하던 교실이 ‘김일성동지독서기념실’로 꾸며져 있다.‘구지’ 관리자인 왕쑹린(王松林·52)주임은 “김일성 동지는 1927∼30년 이곳에서 공부를 했으며 당시 키가 작았던 탓인지 자리가 제일 앞줄이었다”고 말했다.왕 주임은 취재팀에게 “중국에 파견나온 북한 공직자들이 더러 방문하는 예는 있지만 남한 국적자가 방문하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한편 손 목사의 후손들은 해방후 김 주석과는 ‘서로 다른 길’을걸었다.장남 원일씨(元一·작고)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냈으며,3녀인실씨(仁實·작고)는 YWCA 회장,통일원 고문,한국적십자사 부총재 등을 지냈다.길림시절 김 주석과 형제처럼 지낸 차남 원태씨(元泰·86)는 의대 교수출신으로 현재 미국 네브래스카주오마하에 거주하고 있는데,그는 지난 91년 방북해 김 주석과 60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바 있다. 길림(중국) 정운현기자 jwh59@
  • 치대병원 전공의도 내일부터 파업

    전국 치과대학병원 전공의협의회는 21일 정부의 의약분업과 관련,대학병원별로 찬반투표를 실시해 오는 23일∼27일까지 시한부 파업에들어가기로 했다. 협의회는 이날 오후 11시 현재 부산대를 제외한 전국 10개 치대병원전공의 800여명 가운데 599명이 투표에 참가, 438명이 파업에 찬성하고 161명이 반대입장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의료사태에 대한 사과 및 정책입안자 처벌▲약사법 전면 개정 ▲구속자 석방 및 수배자 해제 등을 요구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노신영 전 국무총리 증언 “金대통령 석방은 全전대통령 작품”

    직업외교관 출신으로 재상(宰相)까지 지낸 노신영(盧信永·70) 전국무총리가 자신의 32년간 공직생활을 되돌아 본 회고록을 출간했다. 노 전총리는 자서전 형식의 회고록에서 주제네바대표부 대사 시절 5공 시절 외무부장관으로 발탁돼 안기부장,총리를 지내게 된 과정과주요 공직에 몸담으면서 겪었던 외교 및 정치 비화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담담하고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지난 80년 8월 고시출신 외교관으로는 처음 외무장관에 오르는기록을 세우게 된다. 당시 노 장관에게 떨어진 첫번째 과제는 정통성 시비에 휩싸인 신군부와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관계정상화였고,이 과정에서 사형선고를받고 복역 중이던 김대중(金大中·DJ)씨의 처리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노씨는 “나는 당시 전두환(全斗換) 대통령의 미국방문을 성사시키고 향후 한미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DJ문제가 재고돼야 하겠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DJ의 석방과 미국행은 전 전 대통령의 ‘작품’이라고 증언하고 있다.전 전 대통령은 지난 82년 8·15특사 때 김대중씨의 석방을고려했으나 주위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그해 12월에 “김대중씨를 석방시킨 후 미국에 갈 수 있도록 미국측과 협의하라”고 극비리에 지시했다는 것. 평남 강서 태생으로 실향민인 노 전총리는 북녘에서 세상을 떠난 부모에게 생전에 들려드리지 못한 얘기를 담아 영전에 바치는 ‘인생보고서’라고 회고록의 의미를 정리했다. ‘노신영 회고록’ 출판기념회는 내달 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룸에서 열린다. 주현진기자 jhj@
  • 개원醫 오늘·내일 휴폐업

    대한의사협회는 20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의사회관에서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중앙위 회의와 전국 시·군·구 의사대표자대회를 잇달아열고 “잘못된 의약분업안을 폐기하고 새로운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신상진(申相珍·44) 의쟁투위원장,배창환(裴昌煥·38) 의쟁투 운영위원을 비롯,구속자 전원 석방과 의약분업을 입안한 정책책임자 처벌 등의 요구 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협은 “현재 폐업률이 10% 대로 떨어진 개원의들이 오는 21일,22일 이틀간 100% 폐업 동참을 통해 의료계의 단합된 의지를 보여 주고,23일부터는 오전에는 휴진하고 오후에는 환자 본인부담금을 면제해주는 무료진료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하지만 재정을 이유로 폐업철회에 나선 병의원들이 얼마나 동참 할 지는 미지수다. 의쟁투 관계자는 이와 관련,“일단 발표를 유보한 대정부 협상 단일안을 이번주초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혀 대정부 협상에도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정부·의사협회 대화 재개할듯

    의료계 집단폐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김재정(金在正·62)대한의사협회 회장이 18일 오후 4시 법원의 보석결정으로 풀려났다. 의료계가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김씨가 석방되고 의료계투쟁을 배후에서 조종해온 신상진(申相珍·44) 의권쟁취투쟁위원장이 17일 검거됨에 따라 조만간 정부와의 대화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강경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전공의 비상대책위원회와 의권쟁취투쟁위원회가 이날 신씨의 검거에 반발,“대정부 전면투쟁에 나서겠다”는 성명을 발표함에 따라 의료계 재폐업사태가 완전 해결되기까지에는 적잖은 진통이 이어질 전망이다.한편 부산 인제 백병원,서울 백병원,서울 상계 백병원,국립서울정신병원에 이어 국립의료원이17일 전공의에 대해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으며,서울대병원,고려대 구로병원·안암병원,경희대병원,이화여대 목동병원,서울적십자병원도곧 업무복귀명령을 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상덕 박홍환 이상록기자 stinger@
  • [사설] 의사들, 진료에 복귀하라

    최선정(崔善政)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밝힌 ‘의료계 집단 폐·파업 장기화 관련 대책’에 우리는 인식을 같이한다.그같은 정부 방침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지난 1일 의약분업을 본격 시행한 뒤 잇따라 전개된 일련의 사태를 되돌아 보면,이제 국민과 정부가 의료계에 더이상 끌려다닐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인정할수밖에 없다. 아울러 진료가운을 벗어던진 의사들에게는 즉시 의료현장으로 돌아올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구속자 석방’ 등 우리 사회의 법질서를무시하는 ‘전제조건’을 고집하며 국민과 정부를 상대로 정면대결을 벌이는 것이 얼마나 국민을 능멸하는 짓인가를 조속히 깨닫기 바란다. 정부의 ‘폐·파업 장기 대책’에는 △의약분업 예외지역 인정 △대형병원에 군의관·공중보건의 투입 △‘지역거점병원’‘보건소 분소 형태의 비상진료기관’운영 △‘개방형병원제’실시 △군(軍)병원개방 등 국민의 의료 피해를 최소로 줄이는 갖가지 방안들이 포함돼있다.지난 10여일 동안 누적된 국민의 고통과 불편을 감안하면,의료공백을 어느정도 메꿔주는 이같은 시책을 정부가 왜 진작 시행하지않았나 하는 노여움마저 든다. 진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수련기간 불인정’ 등의 조치를 단계적으로 취한다는 방침도 당연한 것이다.전공의라면,비록 수련과정에 있다 하더라도 어엿한 사회인이다.업무에 따르는 사회적 책무를 지는 것은 마땅한 도리다.그 책무란 두 말할 나위 없이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지금처럼 의도적으로 책무를 방기한 채 집단의 힘을 빌어 제 욕심만 채우려 든다면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의료대란’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대화를 통한상호 설득과 합의’임을 여전히 믿고 있다.정부도 대책 발표 첫머리에서 “끝까지 대화와 설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이제는 상대 당사자인 의료계의 대답만이 남았다.마침 지난 14일 의료계 원로들이 진료 복귀를 호소하고 나선 일도 있다.“주장을 충분히 펼친 만큼 이제 진료를 하면서 개선 노력을 하라”는 원로들의 충언을 파업 참여 의사들은 진지하게 되새기길 권한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의료대란’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세력에게는 엄중한 경고를 보낸다.오랜 논의 끝에 ‘여야 합의’형식으로 확정한 약사법을 다시 걸고 넘어가려는 행위나 ‘의료대란’의 원인이 의료계가 아니라 정부에 있는 듯이 본질을 호도하는 행위 등은 사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이제 의사들이 대답할 차례다.의사들은 국민과 정부를 볼모로 하는무모한 싸움을 중단하고 즉각 의료현장에 복귀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
  • 남북이산상봉/ 새달 北송환 앞두고 급부상

    북한이 비전향장기수들의 9월 송환 때 남한의 가족을 데려와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그러나 실현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정부에서 신중하지만,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기때문이다.그러나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활발한 의견조율이 진행될것으로 전망된다. ●북측 입장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은 광복절인 15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 인터뷰에서 “일부 비전향장기수들이 가능하면 가족을 데리고 북한에 갈 것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오든,혼자서 오든 다 뜨겁게 맞이할 것”이라고말했다고 평양방송이 전했다.북한이 비전향장기수의 가족까지 수용할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대변인은 이어 “인생의 거의 전부를 감옥에서 보낸 고령의 비전향장기수들이 가족과 함께 여생이나마 행복하게 보내려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소망이자 온 겨레의 환영을 받을 만한 일”이라면서 “과거가 어떻든 관계없이 공화국으로 올 것을 희망하는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을 다 받을 것이며 진심으로 열렬히 환영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평양방송은 대변인의 말을 인용,“비전향장기수들이 가족과 함께 북한에 가겠다는 뜻을 표시한 것은 부모 처자를 가진 인간의 초보적인예의 도덕으로 너무도 응당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부 입장 부정도 긍정도 아니지만 아직은 부정쪽에 가깝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금강산에서 열린 적십자 회담에서 비전향 장기수의 9월초 북송을 약속한 만큼 약속은 지키겠다”면서도 “그밖의 문제(비전향 장기수 가족 북송 등)는 다시 협상을 할 문제”라고 원론적인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비전향 장기수 가족의 북송문제를 이산가족문제의 범주에서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북송 비전향장기수 가족들의 재결합문제가 추진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지는 않았다.더구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이산가족문제 해법이궁극적으로 모든 이산가족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재결합하는 방향이어서 시기가 문제이지 비전향장기수 가족들의 북송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남북간에 이산가족 재결합문제가 추진될 경우 우선적으로 비전향장기수 가족들의 북송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비전향장기수 북송추진위원회(공동대표 권오헌)에 따르면 북한으로 가기를 희망하고 있는 비전향 장기수는 60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이들 가운데 가족과 함께 북송을 원하는 사람은 신인영씨(72)와이경구씨(71) 등 모두 1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형기자 yunbin@. *9월초 北송환 金東起씨. “북에 가면 이산가족들의 한을 알리고 이를 치유하는데 조금이나마보탬이 되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9월초 북으로 송환될 비전향 장기수 김동기(金東起·68)씨는 요즘TV를 통해 방영되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애써 외면하고있다. 20여일 후면 자신도 똑같이 겪어야 할 일이기에 가슴이 저며오고 그만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얼핏얼핏 비춰지는 상봉장면을 보면 깊은 회한에 휩싸인다고 한다.“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아들이 만나는 것을 보고 슬픔을 억누를 수 없었다”는 그는 “혈육을 갈라놓은 채 50여년동안남남으로살게 한 정치인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만남 그 자체에는 ‘통일’‘민족화합’등의 어휘가 구차하게 느껴질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요즘 며칠후면 그리운 가족품으로 돌아간다는 희망과 함께 그동안 정들었던 남쪽 사람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느라 하루해가 짧기만하다. 옥중생활 등을 담은 ‘새는 앉는 곳마다 깃을 남긴다’는 제목의 수필집을 펴내 유명인사가 된 그에게 이산가족들이 북한 가족들에게 전해달라며 편지와 전화안부를 보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거주하는 광주시 북구 두암동 ‘통일의 집’에는 최근 하루 3∼4통의 편지가답지하고 전화벨이 쉴새없이 울린다. 여류시인 서영숙씨(58)는 자신의 시집을 6·25때 월북한 아버지에게 전달해 달라며 보내왔고,인천에 사는 권영숙씨(78·여)의 딸은 ‘암투병중인 어머니가 북에 있는 오빠를 너무나 보고 싶어한다’는 편지를 오빠에게 전해달라며 보내오기도 했다. 김씨는 “제2의 고향인 광주에서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기도 가슴아픈데 이들의 한맺힌 사연을 접할 때마다 인간적인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보내온 편지들을 일일이 챙기고 전화로 전해오는 이산가족의 사연을 낱낱이 메모해 북한의 가족들에게 이를 꼭 전하겠다고다짐했다. 김씨는 66년 대남공작 요원으로 남파돼 검거된 뒤 33년동안 옥중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2월 석방됐으며,현재 다른 비전향 장기수 3명과함께 통일의 집에 살고 있다. 가족으로는 108살 동갑의 부모와 부인(64),돌을 갓 지난 뒤 헤어졌던 아들(36),누나 3명 등이 있으며 현재 평양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2)낯선 땅에서

    *농군집서 맛본 해남 별미 보리.매생이국엔 흙내음이. 해남은 공기는 물론 햇빛과 바람부터가 달랐다.아무리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도 볼에 닿으면 살랑대며 어루만져 주는 듯했고 햇빛은 마치석양이 그렇듯이 약간 비껴서 내리 쪼이는 것 같았는데 풀과 나무와꽃이며 땅이 제 색깔을 제대로 내는 것처럼 보였다. 비 온 뒤의 풍광은 더욱 투명해서 느끼한 유화가 아니라 묽게 채색된수채화로 아슴프레하게 그린 듯했다. 밤이면 댓잎이 서걱대고 댓가지가 서로 부딪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려왔고 비가 오나 하여 내다보면대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그렇게 들렸다. 미리 작정하고 찾아 내려간 터이라 나는 슬슬 농민들과 접촉을 시작했는데 이들이 힘을 얻으려면 읍내 중간층들의 두터운 후원이 있어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읍내에서 내가 사귈 사람은 일단 관리들과나이 든 사람은 빼고 학교 선생이나 의사 약사 아니면 대학을 나와도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낙향하여 자영업을 하는 삼십대의 사람들을 정하였다.촌에서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언제나 술 한 잔이 매개였는데 그래서 벼라별 것을 다 먹어 보았다. 농민들과의 접촉은 주로 장날에 이루어졌다.읍내에 장이 서면 주위의면과 리에서 농민들이 장을 보러 나오고 그들은 우리 집을 방문해서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책도 빌려 보곤 했다. 나중에 시인 김남주나 전국 농민회 의장을 지내게 된 정광훈 형이며 동화작가 윤기현이 내 서재를 사랑방 농민학교로 만들어 장날마다 학습도 하고 토론도 하게 되었다.처음에는 집에서 대충 점심을 나누어 때우곤 하였는데 점점 많아지는 회원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방문자는 먹을 거리를 가져오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정이 돈독해졌다. 내가 기현이를 알게된 것은 우연히 우슬재 넘어 어느 개척교회를 방문했을 때였다.어느 젊은 농민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처음에는 뒷전에서 무심코 듣고 앉았다가 나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자리가 끝난 뒤에 그에게 어디서 그런 동화를 읽었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되물었다.‘동화가 뭣이다요?’ 하여튼그가 책에서 읽은 건 아니고 그냥 농사짓는 틈틈이 ‘아그들에게보탬이 되는 이야그를 머릿속으로 생각해’ 냈다는 것이다.나는 그에게 그런 얘기를 글로 써보라고 일렀고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았다는그에게 맞춤법이며 원고지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얼마 안가서 그는 어느 잡지의 동화 현상공모에 당선 되었다.그의 첫 번째 동화 ‘개똥이’는 나중에 노래쟁이 김민기가 노래극으로 재구성해서 유명해졌지만.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전혀 낯설지만 대단히 맛갈스러운 것을 먹게되었다.서울에서 반도의 서쪽 끝자락인 전라도까지 천릿길이라 난생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보리국이다.보리국이라면 무슨 보리 곡식으로 국을 끓이는가 할테지만,천만의 말씀이다.보리는 다 알다시피 전 해 가을에 벼를 베고 추수를하고나서 다시 갈아 엎은 뒤에 씨를 뿌리는데 겨우내 추위와 눈보라에 시달리며 싹을 틔운다.그래서 시골 사람들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올 보리 농사 풍년 들것네!’하고 얘기한다. 새 봄이 되어 햇볕이 포근해지고 밭두렁에는 아직 잔설이 덜 녹아서희끗희끗할 무렵이면 눈밭 사이로 파란 보리싹이 고개를 봉긋 내민다.바로 이 때에 보리를 잘라다가 국을 끓이는 것이다.먼저 쌀뜨물을받아 두고 다시를 내든지 아니면 홍어 ‘애’라고 부르는 홍어의 내장을 넣어 국물의 맛을 깊게 한다.보리는 된장에 무쳐서 맛이 배게두었다가 넣고 끓인다.아마도 봄의 생명력이 싱싱하게 들어있을 보리와 구수한 된장과 홍어애의 콤콤한 맛이 어우러져 전라도의 땅내음이배인 것 같았다. 국거리를 따진다면야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이들 모두가 해장감으로도맞춤한데 그중에 매생이국이 있다. 매생이는 아주 여리고 부드러운해초다.톳이나 파래는 나물로 무쳐 먹고 그보다 가늘고 부드러운 감태는 장을 만들고 김도 장을 만든다.이들 모두가 해초인데 거의 김처럼 여린 매생이는 향기와 감칠 맛이 그만이다.조금이라도 더럽혀진바다에서는 자랄 수가 없으니 매생이는 남해의 맑은 연안에서 조금씩나온단다. 매생이국은 다시물을 내어 마늘과 무를 넣고 푹 끓여서 밭여내어 맑은 국에다 매생이를 넣고 살짝 끓여 낸다.너무 끓이면 아예녹아서 연약한 매생이가 물처럼 되어버린다고 한다. 거의 죽처럼 부드럽게 된 것이 제대로 된 것인데 입안에 호물딱 넣으면 저절로 녹아국이 되는 느낌이다. 장날에 읍내의 시장 모퉁이로 나가면 아주머니들이 이른바 ‘세발낙자’를 함지에 산채로 담아 팔고 있다.세발낙자라고 하여 무슨 다리가 셋이 달린 낙지인 줄 알기가 십상인데 발이 가늘고 몸통이 작은어린 낙지를 말한다.어리고 작기는 하여도 방금 갯벌에서 꼬챙이에패어져 나온 것들이라 흡판의 힘 세기가 보통이 아니다.여기 사람들은 다른 고장 사람들에게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전에 언제나 잘못먹으면 죽는다는 엄포를 잊지 않는다. 심지어는 ‘요 얼마 전에’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이 ‘숨이 막혀서’ 죽는 광경을 목격했노라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세발낙자를 먹을 때에는 우선 대가리를 잡고 한 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로 낙지의 발가락들을 죽죽 훑어내린다.그러고나서 사정없이 대가리를 우적 깨물면서 두 손으로는 연신 낙지 발을 훑어내리면서 씹어먹는다.씹는 동안에도 흡판들이 간지럽게 볼따구니 안쪽과 혀에 간질간질 들러붙는다.도회지에서야 칼로 잘게 썰어놓은 산낙지 회를 먹는것만도 무용담꺼리가 되지만 세발낙자 먹기는 그야말로 엽기적으로보인다. 올림픽 때던가 국제 펜 클럽 모임 때에 수감된 문인들 석방시켜 보려고 해외 문인들과 몇 차례 자리를 같이 했었는데 누군가 짖궂게도 어찌하나 보려고 산낙지 회를 시켰다.그들이 소스라치던 얼굴이 생각나서 지금도 웃음이 난다.미국 회장이던 수잔 손탁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호기심 때문에 먹어 보고는 연신 맛있다고 했다.수년 뒤에 뉴욕에서 만났을 때에도 다시 그때의 낙지 얘기를 꺼낼 정도로 기억에 선명했던 모양이다. 이 세발낙자를 국으로 끓인 것이 목포의 저 유명한 연포탕이다.연포탕은 무와 양파와 마늘을 넣고 푹 끓이다가 맑은 국물에 어린 낙지를넣고 살짝 끓여 낸다. 파를 쳐서 먹는데 시원한 국물 맛이며 발갛게익은 어린 낙지의 살이 오돌오돌 씹히는 것이 술국으로도 그만이다. 낙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와 쌍벽이라고 할 수 있는 홍어를 빼놓을수가 없다.아니,홍어는 전라도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으뜸의 먹을 거리이다.경조사에서 홍어는 고기붙이 보다도 더욱 중요한품목이 된다.누군가 잔치에라도 갔다가 상에 홍어가 보이지 않으면그 집 잔치 먹을 것 없다고 투덜대고 홍어가 빠지지 않았으면 ‘잔치가 걸다고’ 만족해 한다.전라도 속담에 ‘만만하기는 홍어 거시기’라는 말이 있다.남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욱박지름을 당하면 항의조로나오는 게 이 말이다. 황석영.
  • 의료계 폐업 강경대응 배경·전망

    정부가 16일 폐·파업중인 의료계 가운데서도 전공의들을 겨냥해 강경대응 방침을 내놓은 것은 대화로 문제를 풀기에는 이들의 요구수준이 지나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주말 의료계가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산하에 비상공동대표 소위원회를 설치,정부와의 대화창구를 일원화하고 단일안을 만드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자 내심 기대감을 가졌던 것도사실이다. 그러나 강경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전공의들이 ‘정부 사과,구석자석방’ 등 전제조건을 내세우며 대화재개에 찬물을 끼얹자 폐·파업사태를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는 속셈으로 보고,이를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강공책으로 대응한 것으로 이해된다. 업무복귀 거부시 해임과 징집 등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가 전공의에집중된 것도 이 때문이다. 최선정(崔善政) 복지부장관이 이날 대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의료수가 현실화,의료발전대책 발표 등 정부로서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으나 의료계는 대화자체를 거부한 채 수용하기 어려운 전제조건만 고집하고 있다”면서 “국민의 불편이 날로 가중되는 사태를 더이상 인내할 수 없다”고 밝힌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 개원의들에 대해서는 ‘자극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개원들의 폐업률이 30%대로 뚝 떨어진 사실을 감안한 듯하다. 최장관은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와 대화 노력은 계속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의료계의 요구에 밀려서 의약분업을 연기하거나 임의분업 등으로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의료계는 즉각 ‘거꾸로 가는 의료대책’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타깃이 된 전공의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구속자 석방과 수배해제,폭력 진압에 대한 사과 없이는 어떤 대화도 있을 수 없다”는종래의 입장을 재확인했다.또 전공의 가운데 1명이라도 피해를 입게된다면 원상복귀될 때까지 투쟁할 것을 단언하는 등 결전의 의지를강력히 피력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이처럼 정면 충돌양상으로 치달음에 따라 의료계가 경직된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전공의들이 대량으로 해임되거나징집되는 불행한 사태로 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유상덕기자 youni@. *개방형 병원제란. 개방형 병원제(Attending System)란 병원의 입원실,수술실 등 의료시설과 간호사 등 인력을 동네의원에 개방,개원의가 자기 환자를 이곳으로 데려와 입원,수술 등 진료를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지난 1월 관련법이 공포됐으나 아직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개원의가 병원시설을 이용할 경우 시설·장소·보조인력사용료,전기료 등 병원에 지급해야 할 비용 부담비율과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때문이다. 복지부는 이번 기회에 건강보험급여비 분담지침을 마련할 방침이다. 개방형 병원제가 활성화되면 개원의들은 MRI(자기공명 촬영),CT(컴퓨터 단층촬영) 등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지 않고도 싼 가격에 이용할수 있어 투자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유상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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