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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방상훈사장 보석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吳世立)는 6일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方相勳) 피고인이 낸 보석 신청을 받아들여 석방했다.재판부는 “증거인멸 및 도주의우려가 없다고 판단,보증금 3,000만원을 납입하는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이동미기자 eyes@
  • 美 항공안전망 또 구멍

    미국의 항공 안전망이 다시 허점을 드러냈다.테러참사 이후 승객과 화물에 대한 검색이 강화된 상황에서도 칼과 총기류가 아무런 제지없이 공항 X-레이 검색대를 통과, 충격을 주고 있다. 연방수사국(FBI)은 5일 네팔 출신의 수바시 구룽(27·사진)을 기내 무기반입 혐의로 기소했다.구룽은 3일 밤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칼과 폭동진압용 총을 가방에 담고 네브래스카 오마하행 유나이티드 항공 소속 비행기를타려다 체포됐다. 공항 보안요원들은 앞서 금속탐지기를 통해 구룽의 주머니에 있는 2자루의 칼만 압수했을 뿐 X-레이 검색에서는 7자루의 접는 칼과 폭동진압용 총,최루가스통 등은 찾아내지 못했다.구룽은 비행기 탑승지역까지 갔으나 비행기 표를 현금으로 샀거나 특정지역을 자주 여행하는 승객들만대상으로 한 ‘무작위 검색’에서 칼과 총 등이 적발돼 탑승직전에 검거됐다. 시카고 경찰은 주법에 따라 불법무기 소지혐의로 구룽을체포한 뒤 간단한 조사 이후 보석으로 석방했다.그러나 FBI는 4일 밤 화물을 찾으러 공항에 나타난 구룽을 다시연방법 위반으로 체포했다.비행기로 부쳤던 가방에선 칼 2자루가 추가로 발견됐다. FBI는 구룽이 테러와는 관계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무기의반입 동기는 계속 조사중이다. 노만 미네타 교통부장관은“항공사들이 보안검색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며 유나이티드 항공사를 제재하라고 지시했다. 톰 대슐 민주당 상원의원은 ‘믿을 수 없는 사건’이라며우려를 표시했다. 하원의 민주당 의원들은 공항보안을 연방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공화당과 부시 행정부는 보안검색은 지금처럼 항공사 책임아래 민간이 맡는게효율적이라고 맞섰다. 구룽은 이날 열린 예비심리에서 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서두르다 실수로 칼과 총을 가방에 남겼다고 말했다.그는 3년전 학생비자를 통해 미국에 입국했으나 비자기간이만료됐으며 가짜 이민자 고용카드를 갖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유죄가 확정되면 최고 10년형과 25만달러의 벌금을받는다.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보안을 담당한 아르젠브라이트의 직원 가운데 4명은 해고됐고 5명은 정직처분을 받았다.만약 구룽이 테러리스트였고 무작위 검색에서 적발되지않았다면 또다른 참사가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다는 측면에서 미국도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mip@
  • [씨줄날줄] 목요집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가 매주 목요일 열어 온‘목요집회’가 지난 1일 400회를 맞았다. 1993년 9월23일처음 열린 이 집회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번도 거르지않고 보랏빛 두건을 쓴 어머니들이 모여 ‘양심수 석방’과‘보안법 폐지’를 줄기차게 외쳐 왔다. 목요집회는 내일로483회를 맞는 정신대 출신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와 아르헨티나의 ‘5월광장 어머니들’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장기집회로 알려져 있다.‘수요집회’가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씻기지 않는 상흔이라면 ‘목요집회’와 ‘5월광장 어머니들’은 군사독재의 아물지 않는 생채기다.역사는 여성의 수난과 어머니의 눈물을 제물로 바쳐야만 비로소전진하는 것인가. 1993년 당시 문민정부는 “한국에는 더이상 양심수가 없다”고 주장했다.민가협은 문민정부의 그같은 주장의 허구성을 증명하기 위해 이 집회를 조직했다.집회 날짜를 목요일로 정한 것은 1970∼80년대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구속자 가족들’이 당국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가졌던 ‘목요기도회’를 계승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80년대 초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관련 구속자 가족들이 입에 보랏빛 십자가를 붙이고 무언의 시위를벌이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민가협 어머니들의 보랏빛 두건도 그때 그 보랏빛 십자가를 계승한 것.보랏빛은 고난과 희망을 상징한다고 한다.‘고난을 통한 희망’의 변증법에 대한 확신이라고 할 것인가. 400회를 넘긴 목요집회가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그동안 투쟁해온 기록은 우리 사회의 공동 자산이다.세계 최장기수김선명씨를 포함해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석방시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지난해 11월4일부터 ‘의문사 진상규명’을요구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1년 넘게 천막농성을 벌인 끝에 의문사 진상규명 관련법과 ‘의문사진상규명위’ 구성을쟁취해 내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보안법은 요지부동이지만 양심수 문제에서는 일정한 진전이 있는 게 사실이다.그에 따라 목요집회는 최근에는 이주 노동자 문제,여성 문제,장애인 문제 등 갖가지 인권 문제들을 제기하고 해결책을 촉구하고 있다.‘목요집회’가 하루빨리 이 땅에서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민가협 사람들만은 아닐 것이다. 장윤환 논설고문 yhc@
  • 與몰이 ‘동상’ 票몰이 ‘이몽’

    한나라당과 자민련간 선택적 정책공조가 보다 구체화되고있다. 그러나 ‘영역’을 놓고 신경전을 펼치는 등 불협화음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정책공조에서 양당은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의 ‘수의힘’을 과시하고 있다.양당은 5일 소속 의원 전원이 공동서명한 ‘구속 언론사주 석방 건의서’를 서울지법과 해당재판부에 제출한다. 서명 인원이 한나라당 136명,자민련 15명 등 151명으로 국회의원 의석 과반수(137명)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원내총무는 “2야의 힘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양당 공조는 민감한 법안의 심의·처리에서도 ‘위력’을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양당은 남북협력기금을 조성·사용할 때 의무적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남북교류협력법과 남북협력기금법 개정안을 빠르면 금주중 공동 제출,이번 회기 내에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대북 포용정책의 발목을 잡으려는 처사”라며반발하고 있지만 과반수를 넘는 2야의 의석분포상 본회의저지가 쉽지 않다.특히 2야의 ‘여당 옥죄기’는 언론개혁과 대북 포용정책등 현 정권이 주요 성과로 내세우는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2야의 공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충청권의 세력 경쟁이나 향후 정치권의 지각변동 등을 감안하면 2야 공조는 동상이몽(同床異夢)에 그칠 것이라는 견해가 오히려 우세하다.2야의 정책 공조가 한결같이 보수색깔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내 개혁세력의 불만도 양당 공조의 변수로 꼽힌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가 한나라당의 충청권 공략을겨냥, “충무공은 11척의 배로 130여척의 왜군을 무찔렀다”고 경고하자 한나라당 지도부가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는것도 이같은 복잡한 속내를 반영하고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
  • NGO/ 민가협 ‘목요집회’ 400회 발자취

    “내 아들이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아니 모든 양심수들이석방돼 감옥이 텅텅 빌 때까지 우리들의 외침은 계속될 것입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상임의장 林基蘭)의 400회 ‘목요집회’가 열린 지난 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탑골공원.99년 민혁당 사건으로 8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수감중인 하영옥씨(39)의 어머니 권성희씨(69)가 아들이 입던 옷을 매만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첫 집회가 열린 때는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93년 9월 23일. 그 뒤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매주 목요일마다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쳐왔다.민가협은 이날 400회를 이어온 목요집회를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활동을 설계했다. 보랏빛 수건을 쓴 어머니들의 목요집회는 이미 482회를 넘긴 정신대 출신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와 함께 세계에서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장기간의 집회로 자리매김했다. “어머니들이 쓰는 보라색 수건은 고난과 희망을 상징하며,목요일을 택한 이유는 70∼80년대 군사독재 때 구속자 가족들이 숨어서 했던 목요 기도회를계승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9년째 목요집회를 이끌고 있는 민가협 채은아(蔡恩我·37) 간사는 목요집회의 유래를 이렇게 설명했다. 채 간사는 “나중에 안 일이지만,아르헨티나의 ‘5월 광장어머니회’ 회원들도 목요일마다 하얀 수건을 두르고 군부독재 시절 실종된 자식들을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면서 “94년 6월 9일에는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이 서울의 목요집회에 직접 참여했다”고 소개했다. 민가협은 ‘한국에 양심수는 없다’는 문민정부의 주장에맞서 양심수의 현실을 알리고 열악한 수감생활을 고발해 왔으며 장기수 석방운동도 불을 당겼다. 장기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출소자에게 장기수들의 얼굴 생김새를 물어 그림을 그려 전시하기도 했고,구순이 넘은 장기수의 어머니가 집회에 참석하기도했다. 민가협 관계자들은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모두 석방돼 고향으로 보내진 지난해 9월 2일이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왜 빨갱이들을 석방하라고 하느냐”며 항의하던 탑골공원 노인들의 양심수에 대한인식이 많이 변한것도 회원들에게는 보람이다. 이들을 가장 안타까웠던 때도 지난해 9월이었다.노동운동을 하던 부모가 모두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이모 손에서 자라면서 목요집회 때마다 재롱을 떨던 귀염둥이 한솔이(당시 5세)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국민의 정부 이후 국가보안법이나 집시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양심수들은 많이 줄었다. 그러나 민가협에 따르면 10월31일 현재 123명의 학생,노동자,재야 인사들이 감옥에 있다.채 간사는 “학생들의 구속은줄었지만 노동자들의 숫자는 오히려 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민주화가 완전히 정착됐는데 아직도 양심수 문제와 인권을주장하느냐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이들을 부담스럽게 한다.임기란 상임의장은 “비단 양심수 문제뿐 아니라 이주 노동자문제,여성 문제,장애인 문제 등을 볼 때 우리의 인권 토양은 무척이나 척박하다”면서 “목요집회를 그만둬도 될 만큼좋은 사회가 빨리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2野 언론사주 석방 건의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탈세혐의로 구속중인 언론사주의 석방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양당 소속의원 151명 전원 명의로 5일 서울지방법원장에게 제출할 방침이다.건의서는 “언론사주들이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전혀 없는 만큼 구속이 아닌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언론사주들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박찬구기자
  • [대한광장] 정치공방의 허실

    조선시대에는 반좌율(反坐律)이란 형벌이 있었다.거짓 고자질한 사람에게 같은 죄를 과하는 법률을 말하는데,예를들어 어떤 사람을 사형죄로 고발했다가 무고로 밝혀질 경우그가 대신 사형을 당하는 형벌이었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에는 무고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당쟁이 격화하면서 정적 제거를 위한 조직적 무고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선조 때 동인 김성일(金誠一)이 경연에서 “요즈음 벼슬아치들은 방자하게도 탐욕한 짓을 마음대로 자행합니다”라고 논박하자 기다렸다는 듯이같은 당의 허엽(許曄)이 구체적인 이름을 댔다.서인 중진윤두수(尹斗壽)가 진도군수 이수(李殊)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었다.동인 이발(李潑)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윤두수의 동생 근수(根壽)와 그 조카 현(睍)은 간사한 자'라며 그가족까지 공격했고, 서인 김계휘(金繼輝)가 이에 맞서 윤두수의 무고를 주장하며 이발과 허엽을 비난해 이 사건은 당파간 싸움으로 확대되었다. 동인들은 윤두수의 뇌물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진도의 공납(貢納)업자 장세량(張世良)을 자신들이 장악한사헌부로 끌고 와 심하게 형신(刑訊:고문)했다.장세량이 보관하고 있는 쌀은 모두 공물로서 안독(案牘:장부)과 일치했으므로 사실 형신받을 이유가 없었으나 그는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심한 고문을 받았다. 조선은 사죄(死罪)에 해당하지 않는 혐의는 세 번의 형신까지만 허용했는데,장세량은 아무런 물증도 없이 세 번 이상의 심한 형신을 받아 표적수사라는 세간의 비난이 드높았고 장세량은 끝내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자 당황한 동인들은 이수와의 숙원(宿怨)으로 증언을자처한 진도의 한 저리(邸吏:서울에 파견와 있는 지방 아전)의 물증 없는 증언을 토대로 윤두수 형제를 공박했다.그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선조는 당초 동인의 모함으로 판단해장세량을 석방하고 수사를 중지시켰다가 동인 승지 송응개(宋應漑)가 수사 계속을 요구하자 그를 파면시켰다. 그러나 동인들이 장악한 양사(兩司:사헌부와 사간원)에서진도 저리의 공초를 근거로 논박을 계속하자 윤두수,윤근수,윤현을 파직시키는 것으로 타협하고 말았다.그 결과 실체적 진실은 모호한 채 사건은 동인의 정치적 승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사건의 여파는 심각한 것이었다.최소한 사대부의 양식에 기초해 운영되던 조선의 정치체제는 이제 진실여부보다는 어느 당인가가 중요한 가치기준으로 변한 것이다.선조실록이 “이 사건 이후로는 동인에 가담한 자들이날로 늘어났으며……일찍이 서인에게서 소외되었던 자들은모두 동인에 붙어서 요지에 앉아 권세를 부리며 감정을 풀었다”고 적고 있듯이,사대부의 정의보다는 정당의 이익과개인의 이해가 앞서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그 결과 급기야통신사로 일본에 갔다온 동인 대표가 ‘일본이 침략이 없을것'이라고 서인과 달리 보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윤두수가 이수의 뇌물을 받았다'는 식의밑도 끝도 없는 게이트들이 난무하고 있으나 한번도 실체적진실이 밝혀진 적은 없다. 이런 게이트의 결과로 누가 이득을 보았는가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그 진실에 따라 사실이면 사실대로,무고면 무고대로 엄중히처벌하는 일이다. ‘아니면말고'식의 정치폭로가 실체도 없이 국민들의 가치관을 계속 흔들 때 임진왜란을 목전에 두고도 ‘일본의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그 망국적 당쟁이 오늘에 재연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이덕일 역사평론가
  • 사형제도 처리 전망과 법안내용

    30일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 자민련 오장섭(吳長燮) 의원 등이 제출한 ‘사형폐지에 관한특별법’은 “현재 사형을 형벌의 종류로 명기하고 있는형법과 그밖에 모든 법률에서 법정형으로 규정하고 있는사형을 일체 폐지함”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각종 법에서 규정한 형벌에 사형을 없애는 대신 일정기간 감형이나 사면 등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권한을 재판부에 부여했다. 법안의 3조는 “법원이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를 선고할경우 그 범죄의 종류,죄질 등에 따라 판결이 확정되고 복역 개시 후 15년이 지나지 않으면 가석방이나 일반사면,특별사면,감형 등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선고를 함께 할 수있도록 한다”고 규정했다. 형사정책적 차원에서 범죄자의사회복귀를 제한,개선·교화의 시간을 충분히 두겠다는 뜻이다. 법안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토록 했으며 법 시행전에 사형판결이 확정됐으나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사람은 무기징역 판결을 받아 확정된 것으로 간주토록 했다. 국회의원 과반수가 넘는 여야의원 155명이 공동 발의했다는 점에서 본회의에서 표결이 이루어진다면 통과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그렇다고 법안이 일사천리로 처리될 것이라는 기대는 성급해 보인다. 해당 상임위인 법사위 통과가 최대 관건이다.우선 율사출신으로 이뤄진 법사위원 상당수가 사형 폐지에 긍정적이지않다. 국회의 한 전문위원은 “법률적 소신을 중요시하는법사위원들이 사형제 폐지에 호의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더욱이 법안이 사형을 폐지하느냐 마느냐는 2분법적인 문제로 가부간의 결정을 강요하고 있어,상임위 차원의 대안(代案) 마련도 어렵다는 점이 상임위에서의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검찰과 법무부 등 관련 부처가 사형제도 존치의 필요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도 법안 통과 가능성을 낮게하고 있다.얼마전 어렵게 통과된 인권법도 법무부의 반대로 진통을 겪은 적이 있다.여야가 중앙당 차원에서 당론을정하고 밀어붙이는 일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워낙 민감한 문제라 이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까닭에 법안이 상임위에서 장기계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지운기자 jj@. ■폐지땐 인권국가 위상 확고. 사형제 폐지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인류 공통의 가치에 우리 사회도 동참한다는 의미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치,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이어 사형제도까지 폐지되면 대외적으로 ‘인권국가’의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이 ‘사형폐지의 해’로 정한 지난 89년 당시 사형제도가 없는 나라는 79개국에 불과했었지만 12년이 지난 현재 109개국으로 크게 늘었다.해마다 2∼3개국이 사형제를폐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97년 12월 사형수 23명을 사형시킨 뒤 4년여동안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해방 이후 1,634명을 사형시켰고,사형제도도 아직 남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형폐지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에는9명의 사형수를 무기징역으로 감형시켰다. 현재 남아 있는미집행 사형수는 모두 51명이다. 입법 발의로 사형제도 찬반 논쟁이 다시 불붙을 것으로보인다.정부의 공식 입장은 신중론 쪽이다.법무부는 “사형은 흉악 범죄를 억제하는 강력한 기능을 하고 있으며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흉악범을 영구격리해야한다”고 밝혔다. 96년 11월28일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에 대해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당시 일부 재판관들이위헌성을 명확히 밝힌 소수의견을 내 사형폐지 운동에 힘을 보탰다. 99년에는 유재건(柳在乾) 의원 등 여야의원 90여명이 사형제 폐지 입법안을 제출했다. 올 6월에는 6개 종교단체가‘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 연합’을 발족시켜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
  • 11월의 독립운동가 민영환선생

    국가보훈처은 30일 ‘11월의 독립운동가’로 계정(桂庭)민영환(閔泳煥) 선생을 선정했다. 선생은 1884년 이조참의로 벼슬길에 오른 뒤 예조판서·병조판서·한성부윤을 거쳐 1894년 주미 전권대사에 임명됐다.그러나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일제의 만행에 분노,낙향했다.이어 1905년 의사조약이 체결되자 의정대신 조병세와 을사조약에 서명한 이완용 등 5적을 처형하고 조약을파기하라는 상소를 올렸다.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돼수감됐다가 석방된 선생은 1905년 11월 29일 ‘동포형제들은 천만배 더욱 분려하고 지기(志氣)를 굳게 해 학문에 힘쓰며 자주독립을 회복하면 죽어서라도 저 세상에서 기뻐 웃으리라’는 내용의 ‘경고 대한 2천만 동포유서’와 ‘각국 공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순국했다.45세때다.정부는 62년 선생의 뜻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보훈처는 11월 한달동안 독립기념관과 서대문독립공원에 선생의 공적을 기리는 전시회를 연다. 강동형기자
  • 死刑폐지 움직임 가속화

    민주당 정대철(鄭大哲),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자민련 오장섭(吳長燮) 의원 등 국회내 과반수에 해당하는 여야 의원155명은 30일 ‘사형폐지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사형제 폐지를 둘러싸고 사회 각계 각층에서 찬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폐지론자는 ‘국가권력에 의한 살인행위’를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유지론자는 피해자의 인권과 범죄 억지력을 감안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법안에는 민주당 91명,한나라당 61명,자민련과 무소속 의원 3명이 각각 서명했으나 법사위 처리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되며 이번 정기국회 회기내 처리여부는 미지수다. 형법 등 각종 법에서 규정한 형벌 중 사형을 없애는 것을골자로 하는 이 법안은 대신 법원이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를 선고할 경우 그 범죄의 종류,죄질 등에 따라 판결이 확정되고 복역 개시 후 15년이 지나지 않으면 가석방이나 일반사면,특별사면,감형 등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선고를 함께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토록 했고 법 시행전에 사형판결이 확정됐으나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사람은 무기징역 판결을 받아 확정된 것으로 간주토록 했다. 대표발의자인 정대철 의원은 기자회견을 갖고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생명권 등에 비춰 형벌의 이름으로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모순이자 자가당착”이라면서 “특히 사형은 범죄자의 개선이나 교화,사회복귀 가능성을 원천부정하는 것”이라고 입법취지를 설명했다. 이지운기자 jj@
  • [씨줄날줄] 사형 폐지할 때

    여야 의원 154명이 ‘사형폐지 특별법안’을 30일 국회에제출했다.서명 의원들이 국회내 과반수에 해당하는지라 이론상으로는 이 법안은 당연히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그러나 이 법안을 다룰 법사위 소속 의원 15명 가운데 5명만이 이 법안에 서명했기 때문에 법안의 상임위 통과마저 자신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법안 발의자들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가치의 보호라는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라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사형은 범법자의 교화와 사회복귀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주장이다.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있다.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사람 같은사람’에게만 적용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사람이기를포기한 사람’에게는 그런 문명적 가치가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흔히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다.그러나 평균적인 사람치고 자기 가족을 죽인 자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근대 형사정책이 ‘응보형(應報刑)’을 벗어나 ‘교육형(敎育刑)’으로 흐르고 있지만,일반 국민들의 정서 속에는 아직도‘앙갚음’의흔적이 남아 있다.이같은 현실을 감안해서법안 발의자들은 현행 형법상 누가 봐도 사형에 해당되는흉악범에게는 무기징역(금고)을 선고하되,가석방·감형·사면 금지를 아울러 선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사형제도의 폐지에 대해서는 이처럼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필자가 사형제도의 폐지에 찬성하는 것은그 부작용 때문이다.첫째 오판 가능성이다.재판도 사람이하는 일이라 오판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미집행 사형수로 수십년 감옥생활을 하다가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 무죄로 석방되는 일도 있고,사형이 집행된 다음 뒤늦게 오판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있다.무엇보다 사형제도는 후진국에서정적을 제거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만 하더라도 1980년 전두환(全斗煥)신군부에 의해 이른바‘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기형으로 ‘감형’돼 목숨을 건졌다.그 결과 오늘이 있는 게 아닌가. 국제사면위(AI)가 1977년 ‘스톡홀름 선언’을 통해 사형제도의 폐지를 촉구한 이래 1998년 유엔 인권위가 사형제도 완전폐지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사형제도 폐지는 점차대세를 이뤄가고 있다. 우리도 문명사회로 가기 위해서는이제 사형을 폐지할 때가 됐다고 본다. 장윤환 논설고문 yhc@
  • 폭로전은 선거용? 재보선뒤 증거제시 없어

    10·25 재보선 전까지만 하더라도 확전일로로 번져만 가던‘이용호(李容湖) 게이트’ 등 정가의 각종 의혹 ·설들이재보선이 끝난 직후 슬그머니 잦아들고 있다. 그동안 이용호 게이트를 비롯,분당·백궁지역 토지용도 변경 의혹,민주당 김홍일(金弘一)의원의 제주휴가 문건공개등을 잇달아 터뜨리며 폭로정국을 주도했던 한나라당은 지난 28일 “김홍일 의원의 여름휴가에 동행한 박종렬 대검공안부장에 대해 법무부가 아무런 징계조치도 취하지 않기로결정했다”며 비난하는 논평을 낸 것 외에 후속타를 내놓지못하고 있다. ‘벤처기업 자금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 유입설’로 맞불을 지폈던 민주당도 선거가 끝난 뒤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정감사 기간 중 연일 의혹이 제기됐던 국회에서도 마찬가지다.선거 다음날인 26일 열린 국회 행자위에서 여야 간사인 민주당 원유철(元裕哲),한나라당 민봉기(閔鳳基)의원은 정보문건 유출사건과 관련해 각당 1명씩만 질의하기로합의하는 등 바로 전날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이용호 게이트’에 대한국정조사 요구 방침을 재검토하고 언론국정조사에 대해서는구속중인 언론사주의 석방을 계속 촉구하는 선에서 유야무야로 끝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재·보선을 앞두고 구체적 내용 확인없이 마구잡이로 폭로한 게 아니냐는자성론이 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홍원상기자 wshong@
  • [씨줄날줄] 이런 간통죄

    성형외과 의사 A와 그에게 수술받은 B는 ‘금지된 사랑’을 나누다 B의 남편에게 발각됐다.B는 “당했다”면서 A를강간죄로 고소했지만 A가 강력히 부인하는 바람에 무혐의처리됐다.이에 B의 남편은 두사람을 간통 혐의로 고소했는데 그후 사태가 묘하게 진행됐다.A의 강간 사실 자백-B의고소 취하-A에 대한 공소기각 판결을 거쳐 A가 석방된 것이다.그러자 B의 남편은 둘을 간통 혐의로 또다시 고소했다. 마치 스릴러영화를 보는 듯한 이 사건은 실제로 우리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다.A와 B는 두번째 간통사건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지난 5월 열린 2심 재판에서 각각 징역 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처벌 의사가 없으면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 점을 악용,A가 강간사실을 자백하고 B가 즉시 소를 취하함으로써 결국 둘이 공모해 간통 혐의를 면하려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1996년 발생해 5년동안 끌어온 이 사건은 남녀 사이의 애증이란 얼마나 치열한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도덕적으로나현행법상으로나 A와 B는 불륜을 저지른 자로서법의 심판을받아 마땅하다.그러나 인간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공소장에 따르면 두사람은 처음 관계를 맺은 뒤 한달여 동안 170여차례 전화통화를 하다 B의 남편에게 꼬리를 밟혔다.또 간통·강간 고소가 거듭되는데도 끝까지 상대방을 배려한 흔적이 남아 있다. 두사람의 만남이 ‘불장난’보다는 진지한 열정으로 짐작되는 대목들이다. 반면 두사람 또는 적어도 A를 꼭 처벌하려는 B의 남편에게서는,아내와의 사랑을 되살리려는 노력보다 ‘배신’에 대한복수 의지가 두드러져 보인다. 헌법재판소가 최근 간통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려 찬반논란이 상당하다.찬성하는 이들은 간통죄가 혼인의 순결과가정의 행복을 보호하는 장치로서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한다.그러나 현실적으로 간통은 배신한 배우자를 응징하거나,인신구속 해제를 미끼로 이혼 위자료를 더 많이 받아내는수단으로서 대부분 기능할 뿐이다.한쪽이 간통죄 재판을 받은 뒤 부부간에 애정이 복원된 사례는 듣도 보도 못했다.반면 죄값을 치르고 떳떳이 재혼해 행복을 찾은이들은 적지않다.어차피 부부간 사랑이 형벌로써 보장받지 못하는 게인생이다.간통죄는 폐지돼야 한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김병관 前동아회장 석방

    서울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朴龍奎)는 25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동아일보 전 명예회장 김병관(金炳琯) 피고인이 신청한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석방했다. 재판부는 “김 피고인의 건강이 좋지 않은 점등을 감안,구속집행을 중단했다”면서 “주거는 집과 고려대 안암병원으로 제한했으며 집행 중단 기한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동미기자 eyes@
  • 국군포로문제 세미나 발표요지/ “北, 미귀환 국군포로 즉각 송환을”

    중국의 한국전쟁 연구동향 파악과 미귀환 국군포로 문제해결을 위한 한·중 국제학술세미나가 2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국방부 편찬연구소 주관으로 개최됐다.‘한국전쟁 중 중국의 참전전략과 포로문제’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조성훈(趙成勳)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과 이종석(李鐘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중국측에서 리둔추(李敦球)사회과학원 연구원, 양쿠이쑹(楊奎松) 베이징대 교수 등이주제발표를 했다. 조 연구원의 ‘미귀환 국군포로 연구’를 간추려 소개한다.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와 관련,북한은 휴전협상과 정전회담에서 국군포로가 한명도 없다고 주장했다.단 공화국 품으로 온 국군장병과 민간인들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이러한 북의 태도로 우리는 북에 억류된 포로의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탈북 포로의 수가 21명이나 되고 이들을 통해 생존을 확인한 수만도 300여명에 이른다. 북한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해왔다.전후 살상 포로의 총계가 109만여명이라고 했으나 80년대에는 156만여명이라고주장했다.이에 대한 책임있는해명이 있어야 한다.북한은또 51년 6·25 1주년을 맞아 포로가 10만8,257명이라고 밝혔다.중국군 자료에 따르면 1950∼53년 한국군 3만7,532명을 포함한 전체 포로는 4만6,088명이다.이를 근거로 전체포로의 수는 7만∼9만명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그러므로 51년 12월18일 포로명단 교환시 국군포로를 7,000여명이라고 한 것은 사실을 크게 왜곡한 것이다.유엔군에 수용된 포로들 가운데 송환을 거부한 경우가 많았던 것처럼 국군포로중 상당수(약 12%)도 북한군이나 주민으로편입됐을 수 있다.북한은 국군포로가 잡히면 단기교육을통해 ‘해방전사’라는 이름으로 인민군에 배치하거나,주민으로 편입시켰다.거제도에 있던 반공포로들은 5만여명의 남한군인이 인민군에 편입됐다고 주장했었다.포로들중 각종 부상과 질병으로 사망자도 속출했다.북한의 포로수용소나 행군 도중 사망한 수는 국군과 유엔군을 포함,1만4,93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51년 12월18일 포로명단 교환시 북측이 제시한 전체 포로의 수는 국군과 유엔군을 포함,1만1,599명에 불과했다.이중 휴전후 송환된 국군포로는 7,862명에 그쳤다. 북측은 나머지 7만여명으로 추정되는 포로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명할 책임이 있다.북한을 탈출,돌아온 조창호씨는 남으로 송환되지 않고 교화소에 붙잡아 놓은 포로의 수를 3만∼5만명으로 추산했다. 북한은 비전향 장기수들을 북으로 보냈 듯 탈북 국군포로에 의해 생존이 확인된 300여명만에 대해서라도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70∼80대 노인이 전체의 76%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북측이 국군포로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으므로 동서독이추진했던 정치범 석방거래 방식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특히 국군포로 송환에 중국의 역할이 기대된다.휴전협정 당시 북한군으로의 편입,사망 등에 대한 정보를 갖고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이에 대한 책임있는 해명이필요하다.아울러 정부도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한 간접적인확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조성훈 군사편찬硏 연구원
  • 특급호텔 등친 ‘틈새 폭력배’

    고위층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수년간 특급호텔을 등친폭력배가 검찰에 붙잡혔다. 서울지검 강력부(부장 金圭憲)는 24일 지난 95년부터 서울 W호텔의 한·일·중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식대를 지불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5억여원 상당을 갈취한 국모씨(44)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하고 공범 채모씨(40)를 불구속기소했다. 국씨는 W호텔 식당 등에서 무려 1억여원 어치를 무전취식하고 온갖 행패를 부린 것으로 드러났다.또 95년부터 사채업을 하면서 채무자들을 협박해 4억원을 빼앗은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러나 호텔측은 검찰이나 경찰에 한차례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실제로 국씨에게 ‘배경’이 있었던 게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씨는 특급 호텔이 대외적 이미지를 중요시한다는 점을악용,호텔 내에서 흉기를 들고 다니며 행패를 부렸다.호텔인근 80평형 고급 아파트에 살며 외제 승용차까지 굴렸지만 식사는 호텔 내 식당에서 공짜로 해결했다. 호텔 직원들은 그런 국씨를 ‘국거지’라 불렀지만 정작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는 못했다.국씨는 지난 97년 자신과 다투던 채모씨를 칼로 찔러 살해한 심복 김모씨(37)가 1년만에 석방된 뒤부터 자신의 ‘배경’을 과시하고 다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러나 국씨가 국졸인데다폭력전과 7범인 점 등을 감안하면 ‘배경은 허풍’이라는것이 검찰의 판단이다.검찰 관계자는 “국씨는 기존 조직폭력배들이 방치한 지역에서 활개를 친 ‘틈새폭력배’로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스스로도 ‘막가파식’이라고 말할 만큼 대담한 범행을 수년간이나 저질렀는데도 아무런 말썽이 없었다는 점은 석연치 않다. 국씨는 L부장검사 등 검찰 고위간부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다녔다.압수수색에서도 검·경 간부급 인사들의 명함이 나오기도 했다.L부장검사는 “친지에게 국씨를 ‘건실한 사업가’로 소개받아 2∼3차례 만났다”고 말했다. 국씨는 신승남(愼承男) 총장에게 접근을 시도한 G&G그룹회장 이용호(李容湖)씨 구속을 전후한 9월초 구속됐다. 조태성기자 cho1904@
  • ‘실명공개’칼끝대치/ 폭로… 고발… 캄캄한 ‘失明정국’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을 통해 이른바 ‘이용호(李容湖) 게이트’에 민주당 권노갑(權魯甲)전 최고위원, 김홍일(金弘一) 의원 등이 관련돼 있는 것처럼 실명으로 거론,정국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민주당=한나라당의 잇따른 폭로전이 10·25 재·보선 승리와 내년 대통령 선거 등을 앞둔 지지표 결집 전략이라고보고 강경대응하고 있다.한광옥(韓光玉) 대표는 21일 긴급회견을 갖고 야당측에 “무책임한 폭로정치를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전용학(田溶鶴) 대변인도 한나라당 유성근(兪成根) 의원이 지난 19일 공개한 김홍일 의원 제주도 여행 동향보고문건유출 과정과 관련,문건작성 및 유출과정에서의 야당개입 의혹을 제기하고,당국의 수사를 촉구했다. 전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경찰의 단순 정보보고 내용을가공해 마치 우리당 인사가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이 있는것처럼 악용했다”면서 “국가공무원에게 접근하여 문건을빼내 정치공세에 이용한 정치공작 행태는 천인공노할 중대한 범죄”라고 비난했다. 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도“문건의 재작성,유출,국회에서의 선동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마치 각본에 짠 것처럼흐름이 있다”면서 “공작 전문 정당인 한나라당이 개입하고,기획하지 않았다면 일선 형사 혼자서는 결코 할 수없는 일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또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범위 논란에도 불을 지폈다.실명을 거론한 한나라당의 안경률(安炅律)·유성근의원을 당 차원에서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했고,권노갑 전최고위원은 22일 개인차원에서 고소할 예정이다.이상수(李相洙) 총무 등은 본회의장 발언일지라도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에 관련돼 있다면 최소한 민사상 책임추궁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실명공개 이후 연일 여권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지도부는 당 3역회의 직후 실명공개 당사자들의 해명을 비교·분석한 결과를 공개하고,조목조목 의문점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특검제 실시를 촉구했다.여권의 고소·고발전에 맞서 강경대치 국면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속내다. 한나라당이 발표한 ‘해명비교표’는 당사자들이 관계를축소하는데 급급해 하고 있으며,제주 일정을 우연한 만남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서로 해명이 엇갈리고 있다고 주장했다.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더 이상 억지변명은 통하지않는다”며 실명공개 3인과 이용호(李容湖)씨의 커넥션을파헤칠 것을 검찰에 요구했다. 특히 한나라당은 문제의 정보 문건을 작성하고,이를 건네받은 제주시 경찰서 임모 경사와 한나라당 제주도지부 김모 조직부장의 전격 체포와 관련,“우리 당이 조작한 게아니고 실제 경찰 문건임이 드러났다”고 날을 세웠다.이와 관련,권 대변인은 “공당의 당직자를 체포,철야 조사한것은 정당 탄압”이라며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면책특권을 둘러싼 일부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듯 “우리는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며, 언론이나 국민을 통해 제보받은 것을 정확한 자료에 근거해공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김영삼(金泳三) 정권 시절인 97년 2월 현 민주당 인사들이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한보비리와 대선자금 모금의혹을 거론하며 김 전대통령과 아들 현철(賢哲)씨를비난한 속기록도 기자실에돌렸다.“현 여당도 면책특권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것이다. 이춘규 박찬구기자 taein@
  • [씨줄날줄] 張學良

    1936년 12월 12일,장쉐량(張學良)은 홍군(紅軍) 섬멸을 독려하기 위해 산시성 시안(西安)에 온 장제스(張介石) 총통을 연금해 버렸다.새벽 5시,시안에서 10마일 떨어진 온천휴양지에 머물고 있던 장제스는 26세의 쑨(孫銘九) 대위 손에 붙잡혔다.경호원들이 약간의 저항을 하는 사이 탈출한장 총통은 그러나 멀리 가지 못하고 호텔 뒷산 눈덮인 바위틈에서 잠옷 차림으로 발견 됐다. 신문기자 에드가 스노우는 종군기 ‘중국의 붉은 별’에장 총통의 체포 순간을 이렇게 적고 있다.“귀관이 내 동지라면 나를 사살하고 모든 것을 끝내게”“우리는 각하를 쏠생각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각하가 조국을 이끌고 일본에 대항하기를 요청할 뿐입니다.”그리고 쑨 대위는 장 총통을 업고 산을 내려왔다. 장 총통을 연금한 장쉐량은 ‘정치범 석방’‘내전중단과항일투쟁’‘집회자유 보장’‘손문박사 유지 이행’등 8개항의 요구조건을 내 걸었다.장제스가 구금돼 있는 동안 ‘홍군이 소녀들을 납치하고 있으며 여자들은 공동소유가 됐다.’‘장쉐량은 장 총통의 몸값으로 8,000만원을 요구하고있다’는 등 유언비어가 떠돌아 다녔다. 유언비어의 진원지는 주로 중국에서 발행되는 일본어 신문들이었다. 결국 장 총통은 항일 무력투쟁을 위한 8개항에 서명 했다. 2차 국공합작이 성사된 후 장쉐량은 자신의 전용기 편으로남경까지 장제스와 동행 했다.사태 수습후 장쉐량은 곧바로장 총통을 찾아가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을 받기 위해 각하를 따라 왔습니다.그래야만 기율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라며 처벌을 자청 했다.홍군에 가담하면 영웅이 될수도 있었고 장 총통을 죽이고 그가 국민당 정권을 장악할수 도 있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장쉐량은 군법회의에 회부 돼 10년 금고형을 받았다.장쉐량이 장제스를 죽이지 않았던 것처럼 장제스도 장쉐량의 목숨을 뺏지는 않았다.장쉐량은 국민당 정부가 패주할 때 함께 타이페이로 끌려가 연금생활을 하다가 1977년 5월에야하와이에서 노후를 보낼수 있도록 허용됐다.그리고 지난해4월 그의 100세 생일 때는 중국과 타이완 양쪽으로부터 축전을 받았다.12일 그의 부음을 접한 전세계 중국인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與 “언론사주 석방결의안 반대”

    민주당은 15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한나라당이 국회에 제출한 ‘구속 언론사주석방 촉구결의안’에 대해 “3권 분립이라는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며 국회 상정 자체에 반대입장을 밝혔다. 박상천(朴相千)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과거 민주당이 야당일 때도 석방 촉구 결의안을 제출한 적이 있었다”며“하지만 당시 국회의장이 3권 분립정신에 위배되므로 상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해서 상정되지 않은 선례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용학(田溶鶴) 대변인이 전했다. 홍원상기자
  • 가석방 복서 서철 은메달

    소년원에서 가석방된 복서 서철(21·청양군청)이 또 다시 전국체전에서 은메달을 땄다. 지난해 죄수 신분으로 출전해 화제를 모았던 서철은 이번체전에 가석방된 신분으로 충남대표로 출전,96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노장 이승배(경기)와 헤비급 결승에서격돌했으나 판정패,2년 연속 체전 은메달을 차지했다. 고교 시절 폭행사건으로 천안소년원에 수감됐던 서철은 올 3월 정원영 청양군수의 노력으로 가석방돼 임인창 청양군청 감독의 조련을 받고 체전에 출전했다.지난해 아버지를여읜뒤 중풍을 앓고 있는 어머니,고3인 여동생과 함께 생활해 나가며 2004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비지땀을 쏟고 있다.185㎝,92㎏인 서철은 “어머니의 병은 나 때문”이라며 운동에만 전념,제2의 인생을 열어가고 있다. 박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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