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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이야기’ 의혹 확산] 에이원비즈, 北지원 단체에 5000만원 후원금

    성인용 오락게임 ‘바다이야기’를 개발한 에이원비즈가 여권 인사가 몸담고 있는 대북지원 민간단체에 후원금 5000만원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의장으로 있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상임부의장 이재정)에서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별도로 출범시킨 사단법인 ‘남북나눔공동체’ 사무국장인 안약천(66)씨는 2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1월 남북농업발전협력민간연대에서 북한에 저온저장고 등을 지원할 때 에이원비즈가 5000만원의 후원금을 냈다.”고 밝혔다.안씨는 “(바다이야기 판매사인) ‘지코프라임’도 후원금을 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얼마를 냈는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안씨는 이 단체 사무총장으로 있다 지난 6월30일 그만뒀다. 이 단체는 지난 1월말 모두 8명의 단체나 개인으로부터 3억 6000만원의 후원금을 걷어 북한에 저온저장고와 원종장 관련시설을 구입, 평양의 씨감자 조직배양공장에 전달했다. 안씨는 “농발협 산하에 14개 시민단체가 있는데 이곳 후배들로부터 에이원비즈를 소개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후원금을 걱정하니까 후배들이 “에이원비즈가 돈을 낸다고 한다.”고 해 “어떤 회사냐.”고 물었다고 했다. 후배들이 “대전에 있는 전자회사다.”고 해 후원금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씨는 북한에 저온저장고를 보낼 때 후원금을 낸 이들을 초청, 인천항에서 에이원비즈 사람을 만났으나 명함을 찾지 못해 회사의 대표(차용관·구속)였는지 다른 이였는지는 모른다고 답했다.안씨는 사업을 하다가 1995년 서울 강서구의회 의원에 당선, 전반기 의장을 지냈으며 이후 ‘로버트김석방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당적은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을 거쳐 지금은 열린우리당 일반당원이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Book Review] 신영복 함께 읽기/ 돌베개 펴냄

    우리 시대의 지성 아니 스승으로 통하는 신영복(65). 감옥에서 20년 20일의 세월을 보냈다면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결딴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정반대다. 그의 사유는 더욱 투명하고 명징해졌으며, 고아한 풍채는 그야말로 선풍도골(仙風道骨)이다.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최근 출간된 ‘신영복 함께 읽기’(돌베개 펴냄)라는 책을 통해 ‘인간 신영복’에 다가가 보자.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직 정년퇴임(25일)을 기념하는 책이다. 정년퇴임을 기념한다면 한정된 지인이나 학계를 대상으로 의례적인 정년기념 논문집 같은 걸 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상식을 배반한다. 신 교수의 저서를 감명깊게 읽고 그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신영복 독해’를 시도하는 새로운 형식의 정년기념 문집이다. 그를 아끼는 동료 교수, 친구, 제자 등 60여명이 저자로 참여했다. 교수는 잘 알려져 있듯이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여년간 복역한 뒤 1988년 가석방돼 이듬해부터 성공회대 교수로 일해 왔다.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해온 그는 창백한 관념성을 극복, 현실과 민중 속에서 자신의 의식과 삶을 재구성한 글로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줬다. 저자 가운데 한 명인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신영복의 화두는 늘 사람과 사랑이었다.”며 그를 ‘사람을 거울로 삼는 구도자’로 평한다. 이어 이렇게 말한다.“신영복은 바위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늘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다.…그는 오래전에 ‘투쟁 패러다임’을 내버렸기에 자신의 메시지를 투쟁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독(誤讀)이 많아졌다. 신영복을 탓할 수는 없다. 그는 실천 없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신영복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해 출소 후 8년 만에 낸 사색의 글모음 ‘나무야 나무야’, 해외 여행기 ‘더불어 숲’, 동양고전 읽기를 통해 ‘관계론의 철학’을 펼친 ‘강의’등 그의 대표적 저작들에 대한 성찰도 담겼다. 책은 신 교수의 삶과 사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핀 1부와 그와 인연을 맺은 지인들의 사적 기록을 담은 2부로 이뤄졌다. 각자 나무로 살다가 선생을 만나 ‘더불어 숲’을 이룬 이들의 이야기. 그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에게 ‘처음처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진실남」구했더니 「사기남」에 걸려

    「진실남」구했더니 「사기남」에 걸려

    공군중령, FBI(미연방수사국)의 한국주재원, 미국인 2세, 청와대 「헬리콥터」 조종사, 기억상실, 성불구, 본처 자살 등을 자작자연(自作自演)-미끼로 삼아 한 여인을 울리고 300여만원을 사기해 먹은 놈팡이가 경찰에 잡혔다. 잡고보니 전과 4범의 「맹렬사기꾼」인데다가 10여개의 얼굴과 이름을 가진 사나이. 광고 보고 전화로 불러내 처음엔 공군 중령 이라고 서울 종로 경찰서는 12월8일 낮 사기전과 4범(전과는 더 있다고 보고 수사 중임) 이재우(李在雨·40·주거부정)을 사기 및 혼인 빙자에 의한 간음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이 사기한의 색(色)과 욕(慾)의 사기행각을 피해자의 입을 통해 듣고 그 빈틈없는 술수에 혀를 내저었다. 조서에 나타난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그 사기극을 다시 한번 꾸며보자. ▲공군중령 진병용=지난 6월1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S다방에서 「코피」를 마시는 중년신사가 있었다. 큰 키(1백75㎝)에 아랫배가 적당히 나오고 이마가 벗겨진 사장 「타이프」. 그는 거드름을 피우면서 「레지」가 갖다주는 신문을 읽어 가다가 「펜·팰」 광고란에 눈길을 멈췄다. 『진실한 남성과 친하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광고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사장 「타이프」는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전화선 저쪽편에는 20대 여인의 달콤한 목소리. 이편은 바로 이재우(李在雨). 고독한 여인을 노려 사기극의 제1막을 올린 순간이다. 李의 혀끝에 말려든 광고주 박순자(朴順子·28·가명·서울 마포구 서교동)여인은 얼마 뒤에 총총 걸음으로 다방문을 열고 나타났다. 朴여인으로 서는 상대방의 「진실성」을 캐는 탐색전 쯤으로 그 뒤부터 李를 만나기로 약속했으리라. 그러나 朴여인은 숲에 들어가서 나무를 보지 못하게 됐다. 李는 「진병용 공군중령」이라고 자기 소개. 4년 전 일본에서 비행기 사고로 24시간동안 의식을 잃어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혼이 났다느니 이것을 보고 아내가 자살을 해버렸다느니 상대방이 혹할만한 소리를 늘어 놓았다. 대통령 모시고 있다더니 실은 FBI 요원 이라고 ▲청와대 「헬리콥터」 조종사=李는 朴여인을 극장으로 다방으로 끌고 다녔다. 며칠 뒤 『사실은 공개하기를 금재돼 있지만』이라고 큰 비밀하나 털어 놓듯 자기의 현직을 밝혔다. 대통령이 고속도로의 건설현황 등을 시찰할 때 타는 그 청와대 「헬리콥터」의 조종사라고 했다. ▲성불구=李는 朴여인을 정복까지 위해 고차원적인 농간을 부렸다. 6월20일께(사귄지 13일만에) 李는 朴여인을 서울 중구 후암동 서강여관의 2층 특실로 유인하는데 별로 힘들이지 않았다. 朴여인은 李의 말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李는 전에 말한 비행기 사고로 성불구가 되었다고 말한 일이 있는 것이다. 그는 전후 두차례나 여관에 朴여인을 유인했어도 손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당신은 나의 구세주=그러나 세번째로 여관에 갔을 때는 달랐다. 李의 성불구는 기적적으로 나았다. 李는 朴여인을 붙들고 당신은 나의 구세주라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사실 아내가 자살한 것도 자기의 성불구 때문이었다는 양념까지 곁들였다. 죽은 아내가 불쌍하다고 또 울먹였다. ▲FBI 한국 주재원=李는 朴여인의 형부 李병호(가명·36)씨를 알게 됐다. 李씨는 자기의 이름과 직함을 다시 바꿔댔다. 李씨가 李에게 이름이 왜 여러가지냐고 묻자 사실은 자기가 미국연방수사국 한국주재원이고 이 사실은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비밀로 되어 있다고 둘러댔다. 집과 땅 넘겨 주겠다고 3백여만원 뜯어 ▲미국인 2세=李는 자기가 또 미국인 2세라고 까지 속였다. 그래서 자기 소유인 서울 중구 충현동 84의9등 네곳에 있는 대지 8천여평과 가옥 4동을 朴여인 앞으로 이전해야겠다고 말했다. 李씨는 미국인 2세의 순정에 탄복했다. 부자 동서를 맞게된 기쁨에 그만 마음에 틈새가 생겼다. 처제의 행복을 비는 형부의 마음도 크게 작용했다. 李씨는 이전등기에 필요하다는 비용 1백51만원을 7차에 걸쳐 두말 없이 내주었다. 李는 다시 朴여인을 통해서 알게된 김모(44·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여인에게 김여인의 아들 신모(21)씨를 파월시켜 준다고 속여 30여만원을 우려 내었다. 또 지난 9월24일 朴여인의 큰 형부 朴일성(44·가명·부산시 중구 충무로)씨가 서울에 왔을때 부산 항만사령부의 부지매몰공사를 청부맡아 주겠다고 속여 항만국장과 건설부의 朴비서에게 줘야한다고 돈 60여만원을 뜯어 내었다. 더욱이 李씨는 서울자 2-866호 「시보레」를 한 달 5만원으로 전세내어 주로 현직 공군 영관급을 사칭했고 朴여인을 자가용의 사모님으로 「출세」(?)를 시켜주었다. 사취한 돈 유흥에 물쓰듯 정체 알았을땐 이미 늦어 李의 숙소는 지금까지 서울 중구 을지로 3가의 D여관 1호실. 李는 사취한 돈으로 朴여인을 데리고 해운대 「워커힐」등 고급유흥지를 돌아 다니며 물쓰듯 뿌렸다. 수사결과 李에게는 지난 66년 4월16일에 결혼한 본처 김효자(金孝子·30·가명)여인이 있고 지난 59년 3월 대구에서 공군상사(군번98245)로 제대, 문관으로 근무하다가 66년 2월20일에 직장에서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의 사기행각은 62년 공문서위조 및 동행사혐의로, 또 64년 사기혐의로 징역 각각 1년씩을 살았고, 68년 8월 다시 사기죄로 1년 복역중 6개월만인 69년 2월에 가석방된 몸. 朴여인을 등친 것은 가석방 중의 일이다. 朴여인의 형부 李씨는 경찰에서 끝내는 그가 사기꾼임을 알아차렸지만 처제의 장래를 위해 만서를 덮어 두려다가 다른 희생자가 더 나오지 않기를 비는 마음에서 경찰에 고소했다고 말했다. <張錫英 기자>[선데이서울 69년 12/14 제2권 50호 통권 제 64호]
  • 총성 멎은 레바논 ‘불안한 평화’

    현지 시간으로 14일 오전 8시(한국시간 오후 2시)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휴전이 발효됐다.AP통신과 CNN 등 외신들은 휴전 직전까지도 교전이 치열했던 레바논 남부지역에서 드디어 ‘총성’이 멎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 인터넷판도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가 군에 자위를 제외하고 휴전을 지시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이 지역에 주둔한 이스라엘군 3만여명 중 일부가 철수를 시작했다. 나머지 병력은 평화유지군이 파견될 때까지 주둔할 계획이다. 치피 리브니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지난달 12일 헤즈볼라에 납치된 자국 병사 2명의 석방을 위해 헤즈볼라와 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CNN이 불확실성의 날들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전하는 등 현지 언론이 바라보는 평화의 징조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벌써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이행이 삐걱거리고 있다.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 무장 해제 문제를 둘러싼 내부 이견으로 13일 소집키로 했던 각의는 무기한 연기됐다. 레바논군의 남부 지역 파견도 지연되고 있다. 크고 작은 국지전이 지속될 가능성도 존재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양측이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은 평화유지군 파견까지 레바논 주둔을,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이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공격을 계속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논의 중인 1만 5000명의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기까지는 최소한 한달 정도가 필요해 전운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쟁 개시 한달여 만에 휴전이 발효됐지만 민간인 희생이 커 후유증도 만만찮다. 레바논 고위구호위원회는 사망자가 모두 1130명으로, 그 중 1000명이 민간인이며 3분의1이 12세 이하 어린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병사 109명과 민간인 39명 등 모두 148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반민족 행위로 취득한 재산 60일간 이의신청 거쳐 환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의 본격 가동은 소위 반민특위 해산으로 중단됐던 ‘친일 단죄’가 57년 만에 실현된다는 민족사적 의의가 있다. 조사위는 특정한 재산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돼 친일파 후손이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지를 파악, 해당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역할을 맡는다. 친일파가 명백하거나 친일·반민족 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400여명의 재산을 직권조사 대상으로 정했다. 이 가운데 ‘을사오적’ 이완용의 후손이 소유권을 인정받은 재산 2건과 이재극·민영휘의 후손이 획득한 재산 2건 등 4건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조사 결과 반민족 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 맞고 그 후손이 보유하고 있을 경우,9명의 위원 과반수 출석에 다수결로 ‘국고귀속’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해당 토지가 친일파 재산이 아니었거나 친일파 재산이 맞더라도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한 점 등이 밝혀지면 환수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고귀속이 결정된 토지에 대해서는 60일간의 이의신청 기간 뒤 재경부에 통보하고, 소유권을 국가로 이전하는 등 환수 절차를 밟는다. 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조사위는 30일 내에 다시 판단하며 이마저도 불복하는 당사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조사위는 행정소송의 빈발 가능성에 대비, 검사 3명과 공채 변호사들로 구성된 법무담당관실을 설치했다. 친일파 재산 환수는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해산으로 57년간 중단됐었다. 반민특위는 친일파 221명을 기소했지만 신체형을 받은 친일행위자는 10여명에 그쳤고 이들 역시 대부분 곧 석방됐다. 친일파들이 매국 활동의 대가로 받은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지 못한 채 후손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됐다. 후손들의 ‘땅찾기 소송’도 잇따랐다. 제2의 반민특위로 불리는 ‘친일재산조사위’가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40년만에 햇빛 본 독립투사 김두화선생

    한 대학교수의 노력으로 잊혀졌던 독립투사의 항일운동이 40여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새롭게 조명된 애국지사는 일제 시절 신민회 구국운동에 참여하고 ‘105인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해암(海庵) 김두화(金斗和) 선생으로 작고한 지 40년 만인 지난해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평안남도 평양 출신인 김 선생은 1908년 숭실중학교 대학과를 졸업한 뒤 도산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평양 대성학교를 설립, 교사로 활동했으며 항일구국단체인 신민회에도 반장(班長)으로 참여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1911년 9월에 발생한 ‘105인 사건’으로 투옥돼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1년여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는데, 김 선생은 이때 고문을 받아 오른팔이 심하게 골절돼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 석방된 김 선생은 만주로 망명해 이시영 등과 대종교 활동에 참여하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많은 항일독립투사들처럼 그 역시 정치권 등에 편입하지 못한 채 대전의 평안도 실향민 집성촌 등에 기거하며 명멸해갔다. 한때 충남대 명예교수인 충남 연기군 남면의 성주탁 교수의 집에서 살면서 학생 계몽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나 이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김 선생은 1957년 상경해 서울 영락교회 경로원에서 말년을 보내다 1967년 쓸쓸히 작고해 영락교회 공원묘지에 묻혔다. 김 선생의 항일독립운동이 새롭게 빛을 보게 된 것은 충남대 국사학과 김상기 교수의 남다른 노력 덕분이다. 지난 2002년 4월 성 명예교수로부터 김두화 선생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을 접하게 된 김 교수가 김 선생이 졸업한 숭실중학교 대학과의 후신인 숭실대와 영락교회 등을 직접 방문해 증언을 확보하는 등 1년이 넘도록 사료추적 작업을 벌인 것. 김 교수는 모은 사료를 토대로 2003년 국가에 독립유공자 지정 신청을 냈다. 결국 2년여 만인 지난해 8월, 김 선생은 어렵사리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했다. 남한에 유가족이 없는 김 선생의 묘소는 다음달 21일 대전 국립묘지 현충원으로 옮겨지게 됐다. 김 교수는 “김 선생의 사진이 남한 내에는 수십년전 숭실대 대학신문에 실린 흑백사진이 전부일 정도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한 분”이라면서 “이 같은 분이 더 이상 없도록 국가와 사회가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儒林속 한자이야기] (134) 反骨(반골)

    儒林(658)에는 ‘反骨’(뒤집을 반/뼈 골)이 나오는데,‘어떤 권력이나 권위에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氣骨(기골)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反’은 ‘오르다’가 본뜻이었으나 ‘반대로’‘거꾸로’ 같은 의미로 쓰이는 예가 많아지자, 본래의 뜻은 ‘攀’(반)자로 대신하였다.用例(용례)에는 ‘反對(반대:두 사물이 모양, 위치, 방향, 순서 따위에서 등지거나 서로 맞섬),如反掌(여반장:손바닥을 뒤집는 것 같다는 뜻으로, 일이 매우 쉬움을 이르는 말)’ 등이 있다. ‘骨’은 점칠 때 쓰이던 ‘소의 어깨뼈’를 본 뜬 글자인데, 원래 ‘月’(=肉)이 없었다.‘鷄卵有骨(계란유골:운수가 나쁜 사람은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나도 역시 일이 잘 안됨을 이르는 말),骨肉相爭(골육상쟁:가까운 혈족끼리 서로 싸움)’ 등에 쓰인다. 蜀(촉)나라의 위연(魏然)은 용감하고 智略(지략)이 뛰어났으나 자신을 過信(과신)하고 남을 깔보는 短點(단점)이 있었다. 유비(劉備)는 그를 장수로서의 능력을 인정하여 한중(漢中)의 太守(태수)로 임명하였다. 제갈량(諸葛亮)은 그의 목덜미에 거꾸로 솟아 있는 뼈를 보고 장차 謀叛(모반)을 꾀할 위험인물로 여겨 警戒(경계)하였다. 어느 날 위연은 머리에 뿔 2개가 거꾸로 솟아 있는 꿈을 꾸었다. 그는 이 꿈이 吉夢(길몽)이라는 조직(趙直)의 말을 근거로 모반을 꾀했으나 제갈량에 의해 鎭壓(진압)되고 말았다. 오늘날 ‘反骨’이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근성’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쓰이는 것은 진수(陳壽)가 위연을 촉을 배신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인물로 평가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 광무제 때 낙양(洛陽) 縣令(현령) 동선(董宣)은 성품이 剛直(강직)하였다. 광무제의 누이인 호양공주의 종이 대낮에 사람을 죽이고 공주의 집에 숨었으나 逮捕(체포)할 수 없었다. 공주는 외출할 때면 그 종을 수레에 태우고 다녔다. 동선은 하문정을 지나던 공주의 수레를 멈추게 하였다. 조목조목 공주의 過誤(과오)를 열거하고 종을 꾸짖어 수레에서 끌어내어 현장에서 打殺(타살)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광무제는 震怒(진노)하여 동선을 잡아들여 채찍으로 쳐서 죽이려 하였다. 잡혀온 동선은 자신의 과오를 認定(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광무제의 穩當(온당)치 못한 處事(처사)를 꼬집었다. 그는 自殺(자살)을 허락해 달라며 강하게 머리를 기둥에 부딪쳤다. 광무제는 다시 공주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謝罪(사죄)토록 하였으나 끝내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공주는 더욱 화를 내며 즉각 處斷(처단)을 요구했다. 광무제는 오히려 그의 氣槪(기개)를 칭찬하며 30만전을 下賜(하사)하고 釋放(석방)하였다.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선생이 일본시찰단원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逸話(일화)이다. 시장 주최 晩餐(만찬)에서 시찰 所感(소감)을 묻자,“오늘 東洋(동양)에서 제일 큰 도쿄 병기창을 보니 과연 일본이 동양의 강국임을 확인하였소. 그런데 聖經(성경)말씀에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였으니, 그것이 걱정이외다.”라고 말했다. 당연히 同席(동석)했던 일본인들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오늘 8·15 특사 발표…안희정·서청원 포함

    8·15광복절을 맞아 특별사면과 가석방이 11일 단행될 예정이다. 10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8·15광복절을 맞아 정치인과 경제인, 민생사범과 시위 가담자 등 140여명을 사면 또는 복권하고 800여명을 가석방하기로 결정,11일 국무회의를 거쳐 발표된다. 이번 특사에는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된 안희정씨가 복권되고 열린우리당 신계륜 전 의원, 여택수씨가 사면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집행유예 중인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원길 전 의원도 사면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악몽 떠올리기 싫어… 국민께 감사”

    “악몽 떠올리기 싫어… 국민께 감사”

    “그때 악몽은 더 이상 떠올리기 싫습니다. 염려해준 국민들께 감사하고 죽는 날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넉달여만에 석방된 동원수산 소속 원양어선 제628호 동원호 선원 7명이 9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동원호 최성식(39) 선장 등 한국인 선원 8명 가운데 황상기(43) 기관장을 제외한 7명은 8일 오전(현지시간) 케냐 몸바사를 떠나 나이로비와 두바이를 거쳐 아랍에미리트항공(EK) 322편으로 이날 오후 4시4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최 선장은 “회사와 국민들의 배려로 조금 늦었지만 건강하고 안전하게 돌아왔다. 선원들은 몸바사에서 건강 검진을 받은 결과 이상이 없었다.”고 말했다. 선원들은 장기간의 억류생활과 26시간의 비행으로 대부분 검게 그을리고 초췌해 보였다. 최 선장은 “(MBC)김영미 PD의 용기 때문에 취재에 응했을 뿐 그때 이미 협상은 마무리 단계였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입국장 앞에서 갑판장 위신환(39)씨의 큰형 보환(49)씨 등 가족 5명은 위씨를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보환씨는 “TV에 나왔을 때보다 얼굴이 좋아보인다.”며 기뻐했다. 실기사 강동현(27)씨도 제주도 서귀포에서 올라온 아버지와 만났고 1등 항해사 김진국(39)씨는 형들과 감격적으로 상봉했다. 동원수산 송장식 사장 등 회사 관계자들도 꽃다발을 들고 격려했다. 가족이 공항으로 마중나온 3명을 제외한 선원 4명은 이날 밤 9시10분 김해공항에 도착해 부산에 있는 가족들과 상봉했다. 이날 입국하지 않은 황 기관장은 새 기관장에게 선박을 인계하고 이틀 뒤쯤 따로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영종도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포항건설노조·경찰 충돌 40명 부상

    민주노총 산하 노조원 1만여명이 9일 포항건설노조원 하중근(44)씨 사망 사건과 관련 대규모 집회를 갖고 포스코 본사까지 거리행진을 하려다 경찰과 충돌했다.노조원들은 이날 오후 3시부터 포항시 북구 죽도2동 동국대병원 앞에서 하씨 사망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포스코 손해배상소송 철회,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하는 규탄집회를 가진 뒤 오후 6시쯤 포스코 본사까지 거리행진을 시도했다. 경찰은 83개중대 9000여명을 동원해 형산로터리와 1㎞가량 떨어진 섬안큰다리 등 2개소에서 물대포를 쏘며 저지선을 뚫으려는 노조원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노조원 등 40여명이 다쳤으며 경찰차량 3대가 파손됐다.이날 집회로 동국대병원 앞 도로가 2시간가량 통제된 데 이어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형산로터리 일대 차량통행도 전면 중단돼 주변도로와 시내 주요도로 등이 극심한 정체현상을 빚었다. 경찰은 집회에 참가한 노조원 3명을 연행하고 트레일러 등 노조원들의 시위용품을 압수했다. 포항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포항건설 노조원 사망시위 민노총-경찰 또 충돌

    경북 포항에서 포항건설노조원 하중근(44)씨 사망과 관련해 규탄시위를 벌이던 민주노총 노조원과 경찰이 충돌해 150여명이 다쳤다. 포항건설노조와 울산플랜트 노조 등 민주노총 산하조직 노조원 5000여명은 4일 오후 경북 포항 동국대병원 앞에서 대규모 규탄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집회에서 경찰의 폭력진압 규탄, 책임자 처벌, 손배가압류 철회, 포스코 사태 구속자 석방, 건설노조 공안탄압 중단 등을 요구했다. 집회가 끝난 뒤 노조원들은 포스코 본사까지 거리 행진을 하려 했지만 형산교차로에서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64개 중대 7000여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살수차를 동원, 물대포를 쏘며 노조원들을 저지했고, 노조원들은 경찰의 방어선 돌파를 시도했다. 이날 집회로 동국대병원 앞 도로와 형산교차로 일대 등에서는 차량 통행이 통제돼 주변 도로가 심각한 혼잡을 빚었다. 민주노총은 오는 9일 2차 노동자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포항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김은성씨 형집행정지 석방

    서울남부지검은 3일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과 관련, 실형을 선고받고 영등포교도소에 수감중이던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이 낸 형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석방됐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수감생활을 오래하고, 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면서 “가족들이 1일 다시 형집행정지를 신청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김씨의 주거지는 병원으로 제한됐다. 김씨는 뇌혈관 질환과 갑상선 질환, 피부 백반증, 부정맥 등을 앓고 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변호사 1만명시대] ‘그늘’ …넘지 말아야 할 선 넘은 변호사들

    [변호사 1만명시대] ‘그늘’ …넘지 말아야 할 선 넘은 변호사들

    경쟁과 불황이라는 이중고 때문인지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는 변호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변호사들의 비리는 브로커 고용 등이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변호사 스스로 사기, 횡령 등 일반 형사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사업가 김모씨는 최근 A변호사를 사기죄로 처벌해달라고 검찰에 고소했다.A변호사가 구권화폐 교환을 미끼로 수십억원을 받아가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것. 김씨는 “유명 변호사가 ‘40% 이윤을 보장하겠다.’고 유혹하는데 안 넘어갈 도리가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변호사들이 넘는 ‘불법 능선’은 다양하다. 경매브로커에게 변호사 명의를 빌려주고 대여료를 받거나,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의뢰인을 석방시켜 주겠다며 법원 로비명목으로 1000여만원을 건네받은 변호사도 있다. 심지어 B변호사는 의뢰인이 채무금을 변제하려고 법원에 공탁금으로 맡긴 6900여만원을 빼돌리기도 했다. 검찰은 최근 이들을 모두 불구속기소했다. 구속수감된 이용호 G&G그룹 회장에게 주식 시세조회 단말기와 휴대전화를 갖다 주는 등 ‘옥중경영’을 돕는 대가로 2억원을 받은 이른바 ‘집사 변호사’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범죄뿐 아니라 변론의 질적 저하도 변호사 1만명 시대의 그늘이다. 지난해 사건을 수임하고도 소송서류를 제출하지 않거나 항소기간이 지난 줄도 몰라 패소한 사례도 20건이나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징계 건수는 벌써 23건에 이른다.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107건,130명의 변호사가 징계를 받았다.2002년 15명,2004년 42명, 지난해 56명 등으로 징계를 받는 변호사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변협은 법무부에 비리 변호사 9명의 업무를 정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동안 변호사의 비리에 대한 징계는 ‘솜방망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변협의 징계는 수백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몇 개월의 정직을 내리는 것으로 끝이다. 수임비리 등으로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이 넘는 수익을 얻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직이나 과태료를 받더라도 남는 장사일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김효섭 박경호기자 newworld@seoul.co.kr
  • 포스코시위 노조원 숨져

    경북 포항 건설노조의 포스코 점거농성 사태와 관련, 집회 도중에 머리를 다쳐 뇌사상태에 빠졌던 건설 노조원이 끝내 숨졌다. 이에 따라 사인을 둘러싸고 경찰측과의 갈등은 물론 노동계의 투쟁강도가 더욱 높아져 파업사태의 새로운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일 포항 동국대병원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달 16일 포항 형산강로터리에서 열린 ‘노동탄압 규탄대회’에서 경찰과의 충돌로 머리를 다친 건설노조 조합원 하중근(44)씨가 이날 오전 2시40분쯤 숨졌다. 하씨의 빈소가 마련된 동국대병원에는 유족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으며, 소식을 듣고 달려온 건설노조원 수백명이 영안실 주변을 지키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와 관련, 성명을 내고 경찰청장과 지휘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자체 진상조사 결과 하씨는 경찰의 방패로 머리 우측 뒷부분을 다쳐 뇌출혈로 숨진 것”이라며 “지난해 말 전용철씨 등 농민 2명이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숨진 이후에도 경찰의 무리한 폭력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포스코 점거농성으로 구속된 건설 노동자의 석방과 노조에 대한 탄압 중단을 촉구했다.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동원호 117일만에 풀려났다

    동원호 117일만에 풀려났다

    지난 4월4일 소말리아 주변 해역에서 해적에게 납치됐던 동원수산 소속 원양어선 ‘동원호’ 선원들이 30일 무사히 풀려났다. 납치된 지 117일 만이다. 외교통상부와 동원수산측은 “납치단체들과 29일 석방에 합의한 데 따라 30일 밤 10시30분(한국시간) 선박(동원호)과 선원들이 소말리아 영해에서 석방됐으며,11시50분 공해(公海)상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밝혔다. 정부는 “한국인 8명을 포함한 선원 25명 모두가 무사하다.”고 덧붙였다. 동원호는 억류돼 있던 소말리아의 오비아항 부근 해상의 기상상태가 좋지 않아 납치범들이 동원호에서 철수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협상타결 후 하루가 지난 뒤에야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해상에 도착한 동원호는 우리 정부의 요청을 받고 대기중이던 미국 해군 5함대 소속 군함의 호위 아래 인근 케냐의 몸바사항으로 향했다. 몸바사항 도착까지는 4일이 걸리며, 그곳에서 선원들은 건강검진을 받고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항공편으로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날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북쪽으로 300㎞가량 떨어진 하라데레 지역 원로인 압디 일미는 AFP와의 전화통화에서 “소말리아 영해에 불법적으로 진입한 선원들이 80만달러를 지급한 뒤 모두 풀려났다.”고 말했다. 원호는 지난 4월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 현지 무장단체에 납치됐으며, 최성식 선장 등 한국인 8명, 인도네시아인 9명, 베트남인 5명, 중국인 3명 등 선원 25명이 3개월 넘게 억류돼 왔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강경파 터무니없는 ‘몸값’ 요구 피말린 협상끝 80만弗 극적타결

    원양어선 동원호와 선원 25명이 납치 117일 만에 무사히 석방되기까지는 속타는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동원호는 한국시간으로 4월4일 오후 3시40분 소말리아 인근 공해상에서 참치잡이 조업 중 보트 2척에 나눠 탄 채 총기를 난사하며 접근한 8명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피랍 3일 만인 4월7일 납치세력이 ‘소말리아 머린’이라는 군벌휘하 무장단체로 파악되면서 동원수산이 납치세력과 협상에 나섰다. 정부도 가능한 외교채널을 총동원, 소말리아 과도정부에 영향력 행사를 부탁하고 4월7일 정달호 외교부 재외국민 영사대사를 시작으로 협상지원 대표들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잇달아 파견, 동원수산의 협상을 측면지원했다. 동원수산측의 협상을 지원하던 정부는 5월9일 납치 단체 내부의 이견 때문에 협상이 잘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언론에 토로했다. 이 말은 납치 세력 안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몸값을 받아내려는 소수의 ‘강경파’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실제 동원수산 송장식 사장은 30일 “해적들이 통일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자꾸만 말이 바뀌어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해적들이 속한 씨족 대표들은 우리한테 ‘절대 돈을 많이 주면 안 된다.’고 했으나, 해적들은 그들의 말도 듣지 않았다.”고 뒷얘기를 털어놨다. 납치세력이 요구한 몸값은 80만달러라고 외신들이 전했다. 당초에는 100만달러를 요구했으나 협상과정에서 조율된 결과로 보인다. 그러던 중 프리랜서 PD 김영미씨가 6월15∼17일 동원호를 직접 찾아가 선원들의 참담한 피랍생활을 담은 영상물을 제작했고, 이를 MBC ‘PD수첩’이 7월25일 방영하면서 납치 사건은 정부에 대한 책임론으로 비화됐다. PD수첩측은 외교통상부가 납치단체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소말리아 과도정부에 매달리면서 협상에 진척을 보지 못했고 현지에 가서 직접 협상하지 않고 안전한 두바이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등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해적들을 상대로 직접 대면 협상에 나서는 정부는 없으며 두바이는 송금상 편의를 위해 해적들이 요구한 협상장소라고 반박했다. 또 해적들이 국내 언론을 이용해 자기들이 유리한 협상고지를 차지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증폭되는 가운데 동원수산과 정부는 협상의 고삐를 죈 결과 29일 납치단체와 석방조건에 극적으로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선원들은 모두 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송장식 사장은 “평소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117일 동안 밥만 먹고 있으니까 오히려 살이 쪄서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다더라.”고 선원들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PD수첩에 야윈 얼굴로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동남아 선원들로 원래 얼굴형이 그렇다.”고 덧붙였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애간장 탔지만 살아오니 천만다행”

    “꿈 같은 현실에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애간장이 탔는데 살아 돌아온다니 천만다행입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던 동원수산 소속 원양어선 제628호 동원호 선원들이 117일 만에 석방된 소식이 30일 밤늦게 전해지자 선원 가족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남모르게 협상에 전력을 다해온 외교통상부와 동원수산 관계자들도 안도하며 이들이 무사하게 귀환하도록 남은 절차에 만전을 기했다. 이날 밤 동원호가 공해상으로 출발했다는 소식에 선원 김진국(40·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씨의 형 진화(48)씨는 “무사히 풀려나서 다행”이라며 “동생이 한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원양어선을 탄 뒤 조카에게 용돈도 보내주고 1년에 한두 번 집을 찾을 땐 가족의 선물을 잊지 않은 착한 동생이었다.”며 무사귀환을 빌었다.이어 “오늘 오전에 회사측으로부터 석방협상이 타결됐지만 일정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연락을 받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는데 이제 안심”이라며 “동생의 얼굴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들의 무사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던 조리사 이기만(40)씨의 어머니 김도순(66·전남 순천시)씨는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해줘 고맙다.”며 “아들을 빨리 보고 싶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동원호 선원 25명이 석방되자 동원호가 향하게 될 케냐의 한국대사관측은 만반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이틀째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주케냐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선원들이 도착하는 대로 동원수산측의 협조요청이 있을 경우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가장 빠른 시일내에 한국으로 귀국하는 항공편을 잡는 데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시간)오후 10시30분쯤 인질범들이 짐을 꾸려 모두 내린 뒤 공해상에 밤 12시쯤 도착했다.”면서 “케냐 몸바사항 도착까지는 4일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몸바사항에 도착하면 한국인 선원 8명에게 휴식을 취하도록 한 뒤 모두 비행기에 태워 귀국시킬 계획이라고 전했다. 부산시 사하구 신평동 동원수산 부산지사는 밤늦게 석방소식이 전해지자 환호성을 올리며 자정쯤 선원 가족과 언론 등에 이를 공식적으로 알리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선장 최성식씨 가족과 1기사 김두익씨 가족 등은 이날 오후 부산의 집을 비운 채 연락이 되지 않았으나 최선장의 이웃인 이모씨는 “최씨 아내 조미선씨가 매일 불공을 드리러 절에 다니며 정성을 다했는데 다행”이라고 기쁨을 대신했다.부산 김정한·김상연기자 jhkim@seoul.co.kr
  • ‘베트남 반체제인사’ 인도 불허 결정

    “민주주의 국가로서 현명한 결정을 내려준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27일 송환불허 결정으로 ‘자유의 몸’이 된 베트남 반체제 인사 응우옌 후 창(56)은 하마터면 베트남에 강제로 송환될 뻔했다는 생각 때문인 듯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구욱서)는 “피청구인은 범죄인인도조약의 절대적 인도 거절사유인 정치범으로 인정된다.”며 베트남측의 송환 청구를 불허했다. 우리나라는 25개국과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 범죄인의 신병을 처리해왔지만 법원이 정치범임을 인정해 송환을 거절한 것은 처음이다. 형사소송법상 고법 결정에 대해서는 항고할 수 없기 때문에 이날 석방된 응우옌은 원하는 국가로 출국할 수 있게 됐다. 베트남 정부는 응우옌이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범죄자이자 폭탄테러범이라며 인도를 요청했지만 법원은 해외 망명정부의 ‘민주투사’로 판단해 국제법의 ‘정치범 불인도 원칙’에 따라 인도를 거절했다. 이 결정에는 테러와 관련한 국제조약, 유엔 안보리 결의에 관한 국제법적 효력과 관련한 판단도 작용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도 국제 인권국가 대열에 명실상부하게 합류했다는 의미를 띤다. 재판부는 “베트남이 ‘폭탄테러 행위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에 가입하지 않았고 ‘안보리의 2001.9.28자 결의’는 구체적인 범죄인 인도의무를 부과하는 국제협정이 아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범죄인인도법에 따르면 다수인의 생명과 신체를 침해·위협하면 정치범이라도 강제 송환해야 하지만 테러가 미수에 그친 점, 법보다 앞서는 우리와 베트남 사이의 인도조약에는 관련 조항이 없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덧붙였다. 응우옌은 “언론과 이동의 자유가 없는 공산정권에 반대한다.”면서 “한국에 좀 더 머문 뒤 미국과 유럽, 호주 등을 다니며 자신에게 보내준 지지와 성원에 감사 인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응우옌은 누구 1981년 미국에 망명, 영주권을 얻고 1995년 미국에서 ‘자유베트남 정부’를 만들어 망명정부를 자칭하며 베트남 정부에 대한 저항활동을 시작했다. 베트남 정부는 그를 2001년 6월 태국 주재 베트남 대사관 폭탄테러 미수 사건 등의 배후조종자로 지목하고 수배했다. 응우옌은 지난 4월 사업차 우리나라에 입국했다가 체포됐다.
  • [사설] 피랍 동원호 선원, 우리 국민 아닌가

    지난 4월4일 아프리카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다 해적들에게 납치된 동원호 선원들의 처참한 생활상이 엊그제 알려졌다. 현지에 가 선원과 해적들을 직접 취재한 한 프리랜서 PD가 전한 바에 의하면, 선원들은 뼈만 보일 정도로 야윈 데다 장기간의 인질 상태에 따른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해적들은 총 들고 협박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이같은 상황에서 몇몇 선원은 바다에 뛰어들거나 해적들과 사생결단을 하려 할 만큼 자포자기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 8명과 세 나라 외국인 선원 17명이 탄 동원호가 나포된 지 100일이 지났으나 그들이 석방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와 동원수산 측이 그동안 해적들과의 교섭에 전력을 다해왔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피랍 선원들에게서, 정부나 회사 관계자가 현지를 방문하기는커녕 해적 두목과 통화로만 협상을 시도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이 그 한 예이다. 또 해적들이 제시한 몸값이 100만달러라는 프리랜서 PD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과연 정부·회사는 25명의 생명을 놓고 얼마나 더 ‘흥정’을 해야 하는지 의아심도 생긴다. 우리는 정부·회사에 무조건 양보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인을 포함한 선원 25명이 지금처럼 기약 없이 억류된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히 지적한다. 협상을 최대한 순리대로 진행하되 너무 늦기 전에 그들을 구출해야 한다. 대한민국 외교부가 ‘재외 한국인 보호’에 실패한 전례가 적지 않기에 하는 말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 셋째딸 결혼 한달만에 자살 김은성 前국정원차장 일시귀휴

    불법 도청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의 딸이 친정집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19일 오전 8시40분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김 전 차장의 아파트에서 셋째딸(25)이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출근한 파출부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21일 뒤늦게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구속 수감된 아버지가 참석지 못한 가운데 한달 전 결혼식을 올린 김 전 차장의 딸은 자살 전날 밤 서울 양천구 집에서 분당 친정집에 왔다. 이 집에는 김 전 차장의 부인과 둘째딸이 살고 있었지만 이들은 이날 밤 다른 곳에서 숙박하는 바람에 셋째딸 혼자 집에 남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영등포구치소는 김 전 차장을 21일부터 25일까지 일시 석방, 귀휴 토록 했다.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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