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석방
    2026-02-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633
  • 구글 회장 일행 평양 도착… 北억류 미국인 석방 타진할 듯

    빌 리처드슨 전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와 에릭 슈밋 구글 회장 등 미 방북 대표단 9명이 7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빌 리처드슨 전 주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미국 구글회사 대표단이 7일 비행기로 평양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리처드슨 일행을 ‘미국 구글회사 대표단’이라고 표현해 구글 관계자들의 방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지만 그 외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앞서 리처드슨 전 주지사를 단장으로 한 방북단은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국제항공 CA121편을 통해 평양으로 떠났다. 리처드슨 전 주지사의 고문인 한국계 미국인 토니 남궁, 구글의 싱크탱크인 ‘구글 아이디어’의 재러드 코언 소장도 동행했다.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방문은 인도주의 목적의 개인적 방문으로 미 정부와 관련이 없다”고 재차 강조하며 “슈밋 회장이 북한의 경제적 문제, 소셜 미디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한 방북단원의 말을 인용해 슈밋 회장이 북한에서 기부 활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3박 4일간 북한에 머물면서 식량 사정 등 북한의 인도적 상황을 평가하고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의 석방 문제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방북 기간 중에 “북한에 있는 미국인 억류자를 만나 그의 상태를 알아보고 싶다”면서도 “(케네스 배의 석방은)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면담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는 국가 지도자급만 만나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는다”며 “북한의 외교, 국방, 경제 분야 관리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시대를 말하다(상) 고은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시대를 말하다(상) 고은

    “프랑코가 곧 죽을 모양이다. 사르트르가 그자를 ‘라틴의 돼지’라고 부르고 그놈이 어서 죽기만 기다리노라고 말한 것이 통쾌하다. 거리의 사람들. 독재를 견디어내는 이 인내의 일상 체념과 방관의 일상이야말로 독재의 온상이다. 의병의 역사, 봉기의 역사가 있었으나 그것의 분출 자체가 타자 의존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저항보다 순응과 피동의 역사가 더 길다. 혁명, 영구혁명은 관념인가. 창조는 어떤 경우도 혁명적이지 않으면 창조가 아니다.” 1975년 11월 15일 고은(당시 42세)은 청소년기 이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써온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독재를 견디어내는 이 인내의 일상 체념과 방관의 일상이야말로 독재의 온상이다’는 대목에서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1974년 11월 18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로서 ‘문학인 101선언’을 주도했던 침묵을 깨야 한다는 결단이 느껴진다. ‘창조는 어떤 경우도 혁명적이지 않으면 창조가 아니다’에는 문학이 현실과 동떨어지면 안 된다는 철학이 강하게 배어 있다. 함박눈이 쏟아진 지난 연말 경기도 안성 자택에서 만난 고은은 책으로 벽을 쌓아 지은 고분 같은 서재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쪽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서재는 어두운 듯하면서 환했다. 미닫이문을 터서 만든 10평 안팎의 장방형 서재는 시인에게 어머니 자궁 같은 안온함을 준다고 했다. 짙은 감색 셔츠에 같은 색 실크 머플러를 목에 두른 고은은 고요했다. 전설처럼 떠돌던 술에 전 낭만의 시인이나, 열정의 시인, 독재에 저항하는 시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팔순의 성찰하는 고은이 보였다. 어쩌면 이것이 본래의 고은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고흐를 열망한 내 소년기를 부쉈다 ‘한국의 고흐’가 되고 싶었던 17살 예술지상주의자였던 소년의 운명을 맨처음 뒤틀어 놓은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외삼촌 집에서 본 고흐의 화보집을 보며 꿈을 키우던 고은에게 한국전쟁은 감당할 수 없는 참극이었다. “좌익이 점령했을 때는 우익이 죽었고, 우익이 돌아오자 좌익이 죽었죠. 내 고향에서만도 이 죽음의 재앙이 세 번 되풀이됐다. 군인들이 와 시체를 파내서 옮기라고 했는데, 그 작업을 하고 나면 보름 동안 씻고 또 씻어도 시체 냄새가 몸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인간 하면 서로 죽이는 행위, 고향 하면 핏줄끼리도 이데올로기 때문에 싸우는 그런 것만 연상됐다. 죽음에 대해 아무 준비도 없던 10대 어린애가 그것을 만난 것이다. 소년 자체가 부서져버렸다.” 고아의 의식이 투철하다는 고은은 한국전쟁으로 조상과 끈이 끊겼다고 생각했다. 고향도 무섭고, 핏줄도 무서웠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피에 주려 있는가를 본 소년의 정신은 온전해지지 못했다. 정신착란으로 집을 뛰쳐나갔고, 자살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전쟁통에 군산고를 중퇴했는데, 전쟁 중에 그는 모교인 군산북중학교 국어교사를 맡기도 했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혐오들이 밀려오던 터에 1952년 출가를 했다. 1957년에 전등사 주지를 지냈고, 1958년 ‘불교신문’을 창간해 주필을 맡았던 그는 1962년 환속했다. 등단은 1958년, 26살 때다. 시인협회 조지훈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폐결핵’이 실렸다. 현대시인이 100명 정도에 불과하던 시절이라 그는 현대문학 2세대 정도되는데도 1세대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김동리, 오상순, 김수영 등과 어울리며 살았다. 유미주의자였던 그의 예술관과 삶의 방식을 전복시킨 것은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자살이었다. 잊어버린 과거가 된 전태일의 죽음이 술에 절어 나른했던 시인의 삶을 바꿔 놓았다. “지금은 서울 무교동에 현란한 고층건물들이 서 있는데, 당시에는 바라크였다. 낮은 건물뿐이었다. 통행금지 시절이었는데, 술을 마시고 돌아갈 수가 없으니 주모에게 사정하고 아첨해서 술집 탁자 같은 데서 자곤 했다. 그날도 아마 그런 날이었다. 먼동이 틀 무렵인데 신문 쪼가리들이 바람에 굴러다니더라. 묵은 신문이었는데, 사회면과 사설면에 ‘노동자 분신자살!’이라고 써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죽음이 워낙 육친화되어 있다 보니 죽음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떠지더라. 어, 이것 봐라! 일종의 죽음의 비교라고 할까. 그런데 이런 죽음이 있었던 것이다. 풀빵 10개로 점심을 때우고,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우이동 판잣집까지 버스비가 없어 한밤중까지 걸어가고, 그런 인간의 삶이 나오더라.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게 뭔가. 현실을 깨달았다. 거대한 착취와 비인간화,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다락방 지옥의 밀실 같은 곳에서 소녀들이 가혹한 노동을 하고, 폐결핵으로 피를 토하고.” 민주화 전위? 뒤늦게, 엉거주춤 서 있었다 현실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던 그를 두고 사람들이 ‘초개’라고 했는데, 그는 밀물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에 각성이 됐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1970년대 봉제공장의 노동현실을 설명하던 그는 다시 평온한 얼굴로 돌아와 “사람들은 내가 민주화 운동의 전위에 섰다고 하는데, 사실 뒤늦게 뒤꽁댕이를 따라다니면서 한 것이다. 뒤늦게 엉거주춤하게 거기에 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전태일의 죽음에 나만 충격받은 것이 아니다. 서울대 법대생들도 다 깨쳤다. 나중에 감옥에서 만난 조영래, 장기표, 걔네들도 다 깨쳤더라. 나는 지식인이랄 것도 없고 예술인이었는데 전태일의 죽음의 폭풍이 나까지 몰아세웠다. 그래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작가들도 뭔가 해야겠다. 그때 자기 몸을 던지는 행복이 생겼다.” 동료 작가들은 물론 선후배 작가들까지 뭉치도록 앞장서서 나갔다. ‘나를 빼고 몰래 하면 안 된다’는 작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설득하면 다소 보수적인 현대문학 1세대 선배들도 동참했단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회 대표간사가 된 배경이다. 당시 자유실천문인협회의 주장은 5가지였다. 구속자를 석방하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라, 자유민주주의 정신의 절차에 따른 새로운 헌법을 마련하라 등이었다. 당시 세종로에서 시위하고 그와 조해일, 윤흥길, 박태순 등 7명이 연행됐다. 고은의 본격적인 빵살이(감옥살이)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부터 시작됐다. 1977년, 1979년이 자유실천문입협회 건이었다. 1980년에는 김대중내란음모죄에 연루됐다. 죽음이 목젖까지 찾아왔던 때다. 1988년 정부가 월북·납북작가 작품들을 해금하자, 고은은 더 나아가 한국작가회의와 함께 북한의 작가동맹 소속 작가들과 ‘남북작가회담’을 추진한다. 이것이 문제가 돼 1989년 다시 투옥됐다. 국가가 달아준 ’별’이 4개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될 때 그는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1987년)를 맡았다. 국가와의 갈등이 완화된 건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였다. 그의 나이 60세 때다. 1993년 처음으로 여권이 나왔다. 그전까지는 임시여권만 발급됐다. 시인 고은이 ‘세계의 시인 고은’이 된 시점도 그때부터다. 1970년부터 1993년까지 23년간 그는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의 각종 폐해를 해소하고,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거리의 시인’으로 살았다. 한국전쟁으로 상처받은 그는 이제 통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는 독특한 통일 이론이 있다. 다연방 통일제를 주장한다. 북한의 언어는 문화어(표준어)-평양중심의 언어로 통합된다. 남한은 표준어는 서울 종로에 사는 중산층의 언어다. 마포에서 쓰는 언어도 아니다. 그런데 표준이나 통합은 말살이다. 시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투리, 지역어는 다 신성한데 다 말살되고 있다. 이것은 나쁜 단일화다. 그래서 나는 사투리와 지역어가 존중될 수 있도록 제주도, 경상도, 전라도, 함경도 등 20여개 연방으로 만들어서, 수상최고회의를 국가최고의사결정기구로 하는 남북한 통일된 국가를 꿈꾼다. 스위스, 말레이시아, 미합중국, 넓게 보면 중국도 다 연방 아니냐.” 그는 100년 안에 아시아에도 유럽연합(EU)과 같은 국가연합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구상이 한낱 백일몽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올해로 80세인 고은의 삶은 파란만장하다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태어나 식민지와 1945년 해방과 분단, 1948년 대한민국 건국, 1950년 한국전쟁, 1960년 4·19민주화혁명, 1961년 5·16군사쿠데타, 1979년 박정희 정권의 몰락, 1980년 서울의 봄과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화운동, 1997년 외환위기와 극복까지. 롤러코스터보다 더 다이내믹한 인생이다. 침묵할 수 없던 시대, 그것은 선물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대는 조용할 수 없는 시대였지만, 남들보다 더 격렬하게 부딪치며 살아온 측면이 있다. 시대가 나에게 준 것도 있고, 내가 시대에 준 것도 있다. 이것이 맞물려서 심상치 않은, 비일상적인 삶의 연대기를 갖게 됐다”며 허허롭게 웃은 뒤 “사람들은 나를 ‘풍운아’라고도 부르지만, 돌아보면 시대가 나에게 준 선물과 같은 것이 많다”고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고은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고언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역사의 유산을 정리해본 적이 없다. 민족끼리 싸우는 삼국시대, 후삼국시대를 고스란히 복제하고 있다. 그런 바보 같은 땅이 어디 있나. 치유되지 않은 삶을 자손들에게 넘겨줘야 할 판이다. 피의 흔적을 닦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당대의 정당성이 있겠지만, 이대로 가면 역사라고 할 수도 없다. 길들여져 있는 체제에 의해 쉽게 변경될 수 없는 관행, 제도가 있으니 현안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당대에 손가락질당하고, 역적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온한 꿈을 꾸고 확산해야 한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현대重, 나이지리아 납치범에 몸값 2억 지급”

    현대중공업이 나이지리아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됐던 한국 직원 4명과 나이지리아 근로자 등을 석방하는 과정에서 몸값으로 18만 7000달러(약 2억원)를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4일(현지시각) 나이지리아 남부 바엘사주 경찰 대변인 피델루스 오두나는 현대중공업이 인질들의 몸값으로 이 금액을 냈다고 납치범의 발언을 인용해 말했다. 오두나 대변인은 현대 측이 이 같은 몸값을 제공함에 따라 나이지리아에서 다른 외국인 근로자들을 상대로 한 비슷한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현대중공업 한국 직원 4명 등은 지난달 17일 나이지리아 남부의 원유 생산 지대인 바엘사주 건설현장에서 무장괴한에 납치됐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美 “구글 회장 방북 도움 안돼”

    미국 정부는 3일(현지시간) 에릭 슈밋 구글 회장과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가 이르면 이달 중 북한을 방문키로 한 것과 관련, 시점상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그들은 미국 정부 당국자와 동행하지 않는다”면서 “우리(정부)로부터 어떤 메시지도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솔직히 우리는 (방북)시점이 특별히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최근 북한의 행동을 감안했을 때 그렇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한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추가 제재 등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 방북하는 건 북측의 여론전에 말려들 우려가 있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그는 다만 “그들도 우리의 생각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들은 비공식적인 차원에서 여행하는 것이며, 민간인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뉼런드 대변인은 이들의 방북이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배준호(미국명 케네스 배)씨의 석방과 관련 있다는 관측에 대해 “그들은 우리를 대표해서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 시민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북한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글의 북한 내 사업 가능성에 대해서는 “구글도 다른 모든 미국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법이 규정한 제한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구글이 인터넷 사업을 통해 북한의 국제사회 접근에 도움이 된다면 바람직한 일인가라는 질문에도 “우리는 인터넷 자유를 지지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제한에 반대한다”면서도 “북한과 관련해서는 모든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제재 규정을 적용받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4일 오전 CBS 방송에 출연해 “이번 방문은 ‘개인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성격”이라면서 자신과 슈밋 회장은 미 정부 소속이 아니므로 국무부가 이번 방북을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에 억류된 케네스 배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그의 아들과도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또 과거에도 북한에 구금된 미국인의 석방을 위한 협상을 도운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민간인 차원의 방북임을 인정하면서도 케네스 배를 석방하려는 목적은 분명히 밝힌 것이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야스쿠니 신사 방화’ 류창, 中 출국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화염병을 던진 중국인 류창(38)이 4일 고국인 중국으로 출국했다. 류창은 오전 8시 55분 인천공항에서 중국 동방항공편을 타고 상하이 푸둥 공항으로 떠났다. 법무부는 지난 3일 저녁 범죄인 인도법 제32조에 따라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류창을 석방했다.<서울신문 1월 4일 자 1면> 류창은 불법체류자 신분이 됐으나 중국이 곧바로 신병을 인수하겠다는 입장을 전해 와 이날 자진출국 형식으로 한국을 떠났다. 앞서 3일 류창에 대한 범죄인 인도 재판을 해 온 서울고법 형사20부(부장 황한식)는 류창을 정치범으로 판단, 일본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거절하고 그의 신병을 중국으로 인도하기로 결정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슈밋 내주 방북… 北 디지털화 김정은 러브콜?

    슈밋 내주 방북… 北 디지털화 김정은 러브콜?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이 이르면 다음 주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3일 “미 국무부가 슈밋 회장과 빌 리처드슨 전 미 뉴멕시코 주지사 일행이 조만간 방북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외교 소식통은 “슈밋 회장이 이르면 다음 주에 방북할 것”이라며 “원래 더 일찍 방북하려 했으나 북한 로켓 발사로 미뤄졌다”고 했다. AP통신은 “슈밋 회장이 리처드슨 전 주지사가 이끄는 사적, 인도주의적 목적의 방북에 동참할 것”이라며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의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 통제가 엄격한 나라를 방문하는 첫 번째 사례”라고 보도했다. 슈밋 회장 일행이 북한에서 누구를 만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AP통신은 리처드슨 전 주지사가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배준호(미국명 케네스 배)씨의 석방을 위해 북한 관리들과 접촉을 시도할 것이라면서 배씨를 직접 만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슈밋 회장의 방북 소식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미국 대기업 총수의 방북이 처음인 데다 ‘정보 개방’, ‘정보 민주화’의 상징인 구글은 폐쇄사회인 북한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인터넷 정보기술(IT) 관련 업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슈밋 회장의 방북은 북한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적극적 의지 없이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 구글 대변인이 슈밋 회장의 방북을 ‘개인적 차원’이라고 선을 그었음에도 이번 방북에 정치적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우선 김 제1위원장이 구글과의 ‘사업’을 통해 북한의 디지털화를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일 육성 신년사를 통해 “최첨단 돌파전으로 나라의 전반적 과학기술을 하루빨리 세계적 수준에 올려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은 “슈밋 회장의 방북을 북한이 먼저 요구한 것으로 안다”면서 “김 제1위원장이 슈밋 회장을 직접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2011년 구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 슈밋 회장이 최근 들어 전 세계 정부 관계자 등과 만나 구글의 외부관계를 조율하고 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3월 북한 경제 대표단이 캘리포니아주 구글 본사를 방문했던 점을 들어 그때부터 이미 북한과 구글 간에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슈밋 회장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의 ‘민간 특사’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서울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법원 ‘야스쿠니 방화범’ 中인도 결정

    법원이 야스쿠니 신사에 화염병을 던진 중국인 류창(38)을 정치범으로 인정해 그의 신병을 중국으로 인도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이 류창의 신병을 넘겨 달라고 요구했으나 범죄인 인도 청구를 거절해 외교적 파장이 일고 있다. 담당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20부(부장 황한식)는 3일 “일본의 류창 인도 청구를 거절한다”면서 “정치범인 류창을 일본으로 인도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 질서와 헌법 이념, 대다수 문명국가의 보편적 가치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상대적 정치 범죄’로 규정하고 “류창의 범행은 정치적인 대의를 위해 행해진 것으로 범행과 정치적 목적 사이의 유기적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범죄인인도법 제32조에는 법원의 인도 거절이 있는 경우 검사는 지체 없이 구속 중인 범죄인을 석방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류창은 이날 즉시 석방됐으며 본인 의사에 따라 중국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자신의 외할머니가 한국인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밝힌 류창은 지난해 1월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실형을 살았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2011년 12월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른 것도 자신이라고 주장했고 일본 정부는 ‘한·일 범죄인 인도협약’에 따라 류창의 신병을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15년까지 ‘화학 거세’ 가능… 대상자 더 늘 듯

    15년까지 ‘화학 거세’ 가능… 대상자 더 늘 듯

    법원이 3일 미성년자 성폭행범에게 화학적 거세 명령을 내린 것은 치료나 교화가 불가능한 성폭행범은 국가가 나서 강제적으로 성충동을 억제, 다수 선량한 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판결로 성충동 약물치료를 받게 될 성폭행범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중 처벌 등의 논란도 거세다. 2011년 7월 화학적 거세(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가 시행된 이후 검찰은 지난해 8월 처음으로 10대 미성년자 5명을 성폭행한 표모(31)씨에 대해 성충동 약물치료를 청구했고, 법원이 이날 이를 받아들였다. 화학적 거세는 성범죄자 가운데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성도착증 환자로 진단을 받고 재범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현행 법은 19세 이상의 성도착증이 있는 자가 16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약물치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원이 약물치료를 명령하면 성범죄자는 석방 전 두 달 안에 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받고, 석방 뒤에도 법원이 정한 기간 동안 보호관찰관의 집행에 따라 정기적으로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 약물치료 명령은 최장 15년까지 가능하다. 치료에 주로 쓰이는 약물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억제제로 알려진 ‘항남성호르몬제’다. 약물에 따라 1개월, 3개월, 6개월간 남성호르몬 생성이 억제되면서 성충동이나 환상 등이 줄고 발기력도 저하된다. 약물치료 비용은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 검찰은 제도 시행 이후 현재까지 모두 7건의 성범죄자에 대해 약물치료를 청구했고 서울남부지법이 이날 처음으로 청구를 받아들였다. 나머지 6건 중 1건은 서울북부지법에서 기각됐고 대전지법, 광주지법, 부산지법, 서울동부지법, 부천지원 등에서 5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 선고를 시작으로 향후 법원의 약물치료 명령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16세 미만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국한된 화학적 거세가 오는 3월부터 피해자의 연령에 상관없이 전체 성범죄자로 확대·적용되는 개정 법이 시행되는 만큼 검찰의 약물치료 청구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적으로는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8개 주와 독일,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등이 성범죄자에 대한 약물치료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화학적 거세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높다. 천정환 동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치료보다는 처벌 위주로 가자는 것인데, 수감 외 또 다른 제재를 가하는 사실상 이중 처벌”이라며 “왜곡된 성가치관을 바로잡는 교육 등 근본적인 대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대체 도구 등을 이용한 더 가혹하고 잔인한 성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지 화학적 거세가 본인 동의 없이 이뤄진다고 해서 무조건 부당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검찰 관계자는 “‘거세’처럼 성기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상인과 같은 수준으로 조절해 준다는 치료 개념”이라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사설] 인수위, 민생우선 기조 정부의 큰 틀 짜야

    박근혜 당선인이 어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주요 인선 내용을 발표했다. 국민 통합과 전문성의 조화를 꾀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국민 통합에 있어서는 역사의 화해와 지역의 화해를 함께 도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수위원장으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을 선임한 것과 유신의 대표적 피해자 김중태씨를 인수위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에 임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인수위원장은 과거 판사 시절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써 구속된 송요찬 전 육군 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시킨 인물이다. 김 부위원장은 1차 인혁당 사건으로 투옥됐다가 박정희 정권에 의해 미국으로 강제 추방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박 당선인은 이들을 중용함으로써 아버지 박정희와 그 반대세력의 화해를 도모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이자 호남의 정치원로인 한광옥·김경재 두 전 의원을 국민대통합위의 위원장과 부위원장에 선임한 것 역시 역사의 화해, 지역 간 통합을 향한 메시지라고 할 것이다. 박 당선인의 대통합 약속이 첫발을 뗀 셈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인수위가 할 일이다. 과거 우리는 인수위가 점령군처럼 행세하거나, 설익은 정책들을 죄다 쏟아내 결과적으로 국정 전반에 혼선을 일으킨 사례를 적지 않게 보아왔다. 박근혜 인수위에서만큼은 이런 지엽말단에 파묻혀 차기 정부 5년의 청사진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수위의 핵심 역할은 국정 비전을 굳건히 세우고, 민생 우선 정책을 집행할 틀을 제대로 갖추는 일이다. 인수위는 이에 충실해야 하며 과욕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민생정부를 기치로 내세웠다면 그에 걸맞은 분야별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구현할 실천계획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이를 효율적으로 집행할 체제를 갖춰야 한다. 정부 조직체제를 비전과 목표에 맞춰 개편하고, 조직 운용의 틀도 이런 목표 달성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정립해야 한다. 박 당선인은 대선 기간 ‘정부3.0’이라는 전자정부 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 선진 정보기술(IT)을 정부 행정에 접목시키는 것으로, 정부가 서울과 세종시·부산 등으로 분산되는 새 정부 체제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 커졌다고 할 것이다. 효과적인 운용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맞춰 중앙·지방 공무원 재편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 인수위원장·국민대통합위원장 프로필로 본 ‘키워드’

    인수위원장·국민대통합위원장 프로필로 본 ‘키워드’

    김용준(74)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대선 당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박근혜 당선인과 인연을 맺었다. 선거 기간 내내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 조용히 박 당선인을 지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지만 어머니 등에 업혀 등교할 정도로 의지의 학창시절을 보냈다. 서울고 2학년 재학 중 검정고시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 3학년 때인 만 19세에 고등고시(현 사법고시)에 수석 합격하고, 1960년 최연소 판사로 법조생활을 시작했다. 196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썼다가 구속된 송요찬 전 육참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한 소신판결로 유명하다. 헌법재판소 소장 시절 군 제대자 가산점제, 동성동본 혼인금지, 영화 사전검열 등 각종 규제를 철폐했다. 그러나 1996년 5·18 특별법 위헌제청 사건에선 위헌 의견을 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헌재소장 퇴임 이후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헌법재판소 자문위원장, 대검찰청 공안자문위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3월 출범한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충청미래정책포럼 고문을 맡기도 했고, 현재 법무법인 넥서스 고문이다. 이번 대선 이전에는 정치권과 거리가 멀었고,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지 않기로 유명하다. 한광옥(70) 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장은 김대중(DJ)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이지만 박근혜 캠프 대탕평 인사의 상징 인물로 ‘100%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에 기용됐다. 유신시절 민주화 인사, 동교동계 인사들을 새누리당에 합류시키는 역할을 했다. 전북 전주 출신의 4선 의원으로 1998년 초대 노사정위원장을 지내면서 노사정 타협을 이끌어냈다. 입이 무거워 ‘이중 지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진영(62) 인수위 부위원장은 대선공약 추진기구였던 국민행복추진위 부위원장을 맡아 공약 실무를 담당했다. 앞서 지난 5월 당 정책위의장에 선출되면서 총선 공약 입법화를 주도한 서울 출신 3선 의원(용산)이다. 박 당선인이 당 대표였던 2004년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측근으로 부상했다. 합리적 성향에 당내 친박·친이(친이명박)계와 두루 가깝다. 대선후보자 TV토론 총괄팀장으로도 활약했다. 김경재(70)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역시 DJ 직계에서 박 당선인 조력자로 변신한 호남 정치인이다. 1971년 김대중 당시 신민당 대선 후보 선전기획위원으로 인연을 맺은 뒤 1980년대 후반 15·16대 국회의원(전남 순천)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친노 세력과 거리를 둬 왔다. 부위원장에 임명된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 윤주경 매헌기념사업회 이사, 김중태 전 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 회장 역시 대선 캠프의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청년특별위원장인 김상민 의원은 대학생자원봉사단 ‘V원정대’를 이끌다 19대 비례대표 초선으로 정치에 입문, 박 당선인과 2040세대를 잇는 역할을 해 왔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성탄 뒤흔든 총성…또 울어버린 미국

    미국 코네티컷주 초등학교 총기 참사 사건을 계기로 총기 규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운데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잇달아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중범죄 전과자인 윌리엄 스펭글러(62)가 뉴욕주 웹스터에 있는 자신의 집과 자동차에 불을 지른 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에게 총을 발사해 2명이 숨지고 다른 소방관 2명, 행인 1명이 다쳤다. 스펭글러 역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현장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펭글러는 1980년 92세의 조모를 망치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17년간 복역하다 1998년 가석방된 이후 어머니, 누나와 함께 꽤 조용하게 살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그의 어머니는 10년 전 사망했으며 누나 셰릴 스펭글러(67)는 현재 행방불명 상태다. 경찰은 이날 화재로 가옥 7채가 불에 탔으며, 아직 무너진 건물 내부를 확인하지 못해 사상자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무장 차량을 이용해 인근 주민 33명을 대피시킨 경찰은 현장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경찰은 스펭글러가 소방관을 유인하기 위해 “미리 함정을 마련하고 숨어서 기다린 뒤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밝혔으나 아직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찾지 못했다. 제럴드 피커링 웹스터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의 지난 기록을 살펴봤을 때 정신적 건강 문제와 연관돼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16㎞ 떨어진 벨뷰 시내의 한 대형 술집에서도 총격이 발생해 3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다른 1명이 다쳤다. 벨뷰 경찰 대변인은 용의자가 당시 600여명이 모여 있던 술집에서 총 다섯 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술집에 대규모의 인원이 모인 탓에 충돌 가능성을 우려해 술집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범인을 체포하지 못했다. 경찰은 범행 동기와 관련해 “총격이 일어나기 전에 언쟁 같은 것이 있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사건 용의자인 자마리 알렉산더 알란 존스(19)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그의 뒤를 쫓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존스는 2008년 시애틀 거리에서 연주를 하던 53세 남성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나이지리아 피랍 한국인 전원 석방

    나이지리아에서 무장 괴한에게 납치됐던 현대중공업 소속 한국인 근로자 4명이 지난 21일(현지시간) 피랍 나흘 만에 모두 풀려났다. 나이지리아 경찰은 이들을 납치한 용의자 2명을 검거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외교통상부는 22일 “나이지리아에서 지난 17일 무장괴한에게 납치된 현대중공업 직원 채모(59)씨와 김모(49)씨, 또 다른 김모(49), 이모(34)씨 등 4명이 21일 오후 10시(한국시간 22일 오전 6시)쯤 바옐사주(州) 예나고아 인근에서 무사히 풀려났다.”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들은 심신이 다소 지쳐 있지만 모두 건강한 상태”라면서 “납치범들로부터 가혹 행위를 당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채씨 등은 우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고 휴식을 취한 다음 최대한 빨리 귀국할 예정이다. 한국인들과 함께 납치된 현지인 근로자도 무사히 풀려났으며 현지인들로 추정되는 납치범들의 정확한 실체는 계속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조속히 귀국 항공편을 마련해 풀려난 직원들이 가족과 만나게 할 계획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너무 뚱뚱해 죽기 힘들어…” 美사형수 감형 화제

    “너무 뚱뚱해 죽기 힘들어…” 美사형수 감형 화제

    너무 뚱뚱해 독극물 주사로 쉽게 죽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형을 중지시켜 달라던 사형수의 청원이 실제로 받아들여져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주지사 존 카시치는 사형수 로널드 포스트(53)가 지난 9월 제출한 사형 철회 요구를 받아들여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했다. 가석방 심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이루어진 이번 결정에서 논란이 된 것은 바로 몸무게가 감형의 이유가 될 수 있느냐는 것. 포스트는 변호사를 통해 제출한 청원에서 “몸무게 218kg으로 남들보다 뚱뚱해 쉽게 독극물 주사로 죽지못해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가석방 심사위원회가 포스트의 감형을 결정한 주된 이유는 몸무게 때문이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983년 호텔 종업원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포스트는 당시 변호사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이 문제를 현재의 변호사가 강하게 주장했던 것.  한편 포스트는 투옥 후 수차례 무죄를 주장했으며 내년 1월 16일 사형 집행일을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살이 더 찐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뉴스팀   
  • 호주선 13살 아들 친구와 성관계 여성 ‘중형’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20대 교사가 6학년 여제자(12)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드러나 처벌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호주 법원이 10대 아들 친구와 불륜 행각을 벌인 여성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6일(현지시간) 호주 일간 ‘디 에이지’에 따르면 빅토리아주 멜버른에 거주하는 52세 여성이 2002년부터 아들의 친구(당시 13세)와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돼 최근 5년 동안 가석방이 되지 않는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여성은 2002년 초 집에 놀러온 아들 친구를 유혹해 처음 성관계를 가졌다. 이 같은 행각을 지속하기 위해 3년 동안 모두 3만 9000호주달러(약 4400만원)가 넘는 선물을 안기며 환심을 사기도 했다고 빅토리아 지방법원은 밝혔다. 특히 지속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흡입했으며, 환각상태에서 자신을 상대로 ‘방탕한 10대 소녀’라고 최면을 걸기도 했다. 빅토리아 지방법원 캐럴린 더글러스 판사는 “피고인의 행동은 마치 ‘포식동물’과 같았다.”면서 “별다른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다.”고 중형 선고 배경을 밝혔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26개월째 감금… 노벨평화상 여파 고통스러워”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중국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57)의 부인 류샤(劉霞·53)가 26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감금 생활의 고통을 호소해 파문이 일고 있다. 류샤는 6일 극적으로 이뤄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이 미칠 여파에 대응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지만 감금 생활이 2년 넘게 지속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면서 “너무나 터무니없고 고통스럽다.”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홍콩 명보가 7일 보도했다. 베이징 위위안탄난루(玉淵潭南路) 인근 류샤의 아파트 주변에는 10여명의 건장한 남성들이 24시간 진을 치고 감시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는 취재진이 경비들의 교대 시간을 틈타 아파트 내부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면서 이뤄졌다. 류샤는 2010년 10월 19일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사망자에게 노벨상을 바친다.’는 남편의 말을 전한 뒤부터 2년이 넘도록 가택연금 상태로 생활하고 있다. 류샤는 월 1회 남편을 면회하고 매주 장을 보고 부모님을 만나는 것 말고는 인터넷,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못하는 등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남편을 면회할 때도 정치 관련 얘기는 꺼낼 수 없으며 자신이 연금당한 사실도 발설하지 못하게 돼 있다. 다만 남편에게 ‘당신이 겪는 것을 나도 거의 겪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자신이 연금 상태에 있다는 점을 알린 바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다른 언론사들도 류샤 아파트로의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비들에게 붙잡혀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운동가 후자(胡佳), 베이징대 법대 허웨이팡(賀衛方) 교수 등 류샤오보가 몸담았던 ‘독립중문필회’ 소속 국내외 회원 300여명은 시진핑(習近平) 당 총서기에게 공개 서신을 보내 류샤에 대한 감금은 지나치게 가혹하며 하루빨리 류샤오보를 석방할 것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BBC 중문망이 이날 보도했다. 한편 노벨문학상 수상을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에 도착한 모옌(莫言·57)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에 승객들에 대한 보안검색을 해야 하는 것처럼 검열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검열의 필요성을 강조해 논란에 휩싸였다. 류샤오보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정부 “임금 지급 점검” 가족 “후유증도 보상을”

    지난해 4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가 582일 만에 풀려난 제미니호 한국인 선원 4명이 4일(현지시간) 귀국길에 올랐다. ●선박 주인 “요양 원할 경우 지원” 인질들의 몸값을 두고 해적과 선사 간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피랍 최장 기록을 세운 제미니호의 선장 박현열씨와 기관장 김형언(이상 57)씨, 항해사 이건일(63), 기관사 이상훈(58)씨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외교통상부 신속대응팀과 함께 케냐 나이로비발 대한항공 직항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들은 5일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국토해양부는 석방된 제미니호 선원들이 귀국하는 대로 건강 확인과 임금 지급 등을 위해 국내 송출업체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고 4일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싱가포르 선박 소유자가 선원들이 요양을 원할 경우 보상할 뜻을 전해 왔다.”면서 “선원 치료가 잘 이뤄지도록 돕고 피랍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원 가족들은 “선원들이 귀국해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며 “장기간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심했던 만큼 후유증에 대한 치료와 보상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외 취업 선원 재해보상 규정에 따르면 선박 소유자는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선원이 요양을 하는 기간 중 첫 4개월까지는 통상임금의 100%를, 이후에는 임금의 70%를 보상해야 한다. 국토부는 또 선원들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고 건강검진과 치료, 임금 지급이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국토부, 선원대피처 설치 의무화아울러 국토부는 국제해사기구(IMO)에 외국 국적 선박에도 ‘선원대피처’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제안하는 한편 국내 선원이 승선한 외국 국적 선박에 대해 24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할 방침이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
  • “러닝셔츠로 빗물 걸러 마시며 버텼다”

    “러닝셔츠로 빗물 걸러 마시며 버텼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다가 지난 1일 1년 7개월여(582일) 만에 석방된 싱가포르 선적 ‘제미니(MT GEMINI)호’의 한국인 선원 4명이 3일 오전(현지시간) 우리 해군 청해부대 소속 강감찬함을 타고 인근 국가의 안전 지역에 도착한다. 외교통상부는 2일 박현열(57) 선장 등 제미니호 한국인 선원 4명이 소말리아 해적과 싱가포르 선사 ‘글로벌십 매니지먼트’의 합의에 따라 1일 오후 5시 55분(한국시간) 모두 석방됐으며 이들을 청해부대 강감찬함에 태워 공해상으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석방은 싱가포르 선사와 소말리아 해적 간 합의로 이뤄졌다.”면서 “정부는 앞으로도 해적과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 관계자는 “유동적이지만 강감찬함이 내일 새벽에 안전 지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강감찬함이 도착할 인근 국가로는 케냐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에 따르면 이들은 2명씩 나뉘어 우리에서 감금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선장은 선상에서 “그동안 우리에서 짐승처럼 지냈다.”면서 “빗물을 받아 먹으며 실지렁이와 올챙이, 애벌레가 떠다니는 것을 러닝셔츠로 걸러 내면서 생활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선원들이 우리 정부에 감사를 표하고 김치가 가장 먹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선원들을 맞기 위해 몸바사에 도착한 주케냐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강감찬함 의료진이 선원들의 1차 건강 상태를 점검한 만큼 큰 이상이 없는 한 신속하게 귀국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장기간 피랍 생활을 했기 때문에 체중이 10㎏ 정도 줄고 심리적인 압박 현상은 있는 것 같으나 건강상 큰 이상은 없는 것 같다.”면서 “5일까지는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선원들은 몸바사에 도착하는 대로 입국 절차를 밟은 뒤 4일 오전 대한항공으로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석방 배경에 대해 해적들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우리 정부의 원칙에 해적들이 피로감을 느꼈으며 싱가포르 선사 측이 성실히 교섭에 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소말리아 중앙정부 차원의 법치 회복 움직임이 있었고 전 세계적인 소탕 작전으로 이들의 납치 성공률이 점차 떨어지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어봤자 불리해질 것을 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10월 이후 교섭이 급진전됐다.”면서 “석방을 위한 몸값은 통상적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석방 과정에서 선사와 해적들은 협상을 통해 소말리아의 한 해변에서 선원들을 인수인계하기로 했다. 선사 측이 해변에서 다소 떨어진 지역에서 해적들에게 협상금을 주면 해적들이 동시에 선원들을 넘기기로 한 것이다. 애초 선사가 소형 선박에 선원을 실은 뒤 이를 강감찬함에 인계하려 했으나 기상이 악화되면서 해군은 강감찬함의 링스헬기를 소말리아 해변에 투입했다. 정부가 선원 모두의 신변을 확보하는 데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아덴만 해적’ 석방·몸값 요구로 한때 협상 교착

    ‘아덴만 해적’ 석방·몸값 요구로 한때 협상 교착

    싱가포르 선적 화학물질 운반선 ‘제미니(MT GEMINI)호’는 지난해 4월 30일 케냐 해역을 지나던 중 몸바사항 남동쪽 해상에서 납치됐다. 피랍 당시 선박에는 한국인 외 인도네시아인, 미얀마인, 중국인 등 모두 25명이 타고 있었다. 한국인 선원 4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원 21명은 선사 측과 해적 간 협상으로 지난해 11월 30일 선박과 함께 풀려났다. 이번 피랍 사건은 소말리아 해적에 의한 최장기 납치 사태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최장 기록(삼호드림호 217일 만에 석방)의 2.5배(582일)가 넘는다. 이번 사태가 해결됨에 따라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한국인 선원들은 모두 풀려났다. 한국인 선원들은 지난해 11월 30일 풀려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당시 싱가포르 선사는 해적과의 협상을 타결했다. 협상 내용은 제미니호 선박 및 선원 25명과 석방금의 맞교환이었다. 맞교환은 선사가 헬기로 돈을 떨어뜨리면 해적들이 돈을 받고 24시간 이내에 선원을 남겨둔 채 배를 떠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해적들이 약속을 어기고 한국인 선원 4명만 재납치해 끌고 간 뒤 추가 몸값을 요구하면서 석방 협상이 꼬이기 시작했다. 해적들은 한국인 선원들을 소말리아 내륙으로 이동시킨 뒤 선사에 몸값을 재요구했다. 선원들을 나눠서 내륙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니며 살해 협박을 하는가 하면 가족에게 전화를 걸게 해 조속한 석방을 호소하게 했다. 정부가 움직이면 몸값을 더 받을 수 있다고 보고 국내 언론과 접촉하거나 유튜브에 선원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해적들이 어마어마한 석방금을 요구하면서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해적과 선사가 내세운 금액 차이로 인해 장기 교착상태가 이어졌다. 해적들은 아덴만 작전으로 사망한 해적의 몸값과 작전 당시 생포돼 한국으로 이송된 해적의 석방도 한때 요구했다. 그러나 재납치 후 본격화된 협상에서 해적들은 정치적 요구는 사실상 철회한 뒤 요구 액수도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싱가포르 선사도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서면서 최근 협상이 최종 타결됐다. 우리 정부는 ‘해적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선사가 주도적인 협상을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측면 지원을 펼쳐 왔다. 제미니호 선원 4명의 석방으로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한국인 선원들은 전원 풀려나게 됐다. 앞서 삼호드림호, 삼호주얼리호, 금미305호 등 납치 사건이 빈발했지만 협상이나 구출 작전을 통해 모두 해결됐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오빠다” 첫마디에 눈물 왈칵… 따뜻한 밥부터 지어주고파

    “해적들의 위협 속에서 1년 7개월여를 잘 견뎌준 오빠가 매우 고맙고 신께도 감사드립니다.”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가 582일 만에 선원 3명과 함께 풀려난 싱가포르 선적 ‘제미니호’의 선장 박현열(57)씨의 여동생 현애(48)씨는 2일 “어제 석방 소식이 알려지고 40분쯤 뒤 통화를 했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린 ‘오빠, 이제 간다’는 첫마디에 그저 눈물만 쏟아졌다.”며 “오늘도 얘기를 나눴는데 건강한 것 같아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오빠가 한국군의 호위를 받으며 소말리아 해역에서 나와 케냐로 가고 있는데 아직 절차가 남아 바로 들어오지는 못한다고 했다.”면서 “기쁨을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고 집에 오면 따뜻한 밥부터 지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선원들이 돌아오면 얼마나 하실 말씀이 많겠나.”라고 되물으면서 “후유증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피랍자 가족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모두 기쁨을 나누고 있다.”고 귀띔했다. 1등 기관사 이건일(63)씨의 부인 김정숙(60)씨는 “언론의 취재 전화 때문에 딸이 남편과 통화를 했는데 ‘가족을 빨리 보고 싶다’고 전했다.”면서 “오히려 가족들 걱정을 하면서 ‘이틀 정도 후에 수속 절차를 거쳐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갈 예정이니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잘 지내라’고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 해를 넘기지 않아 다행스럽게 여기면서도 그동안 겪은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지금 건강 상태는 어떨까 생각하면 속이 상하고 걱정부터 앞선다.”고 말했다. 김씨는 “솔직히 정부에 서운한 마음도 없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이씨의 며느리 배인희(32)씨는 “처음 피랍 소식을 들었을 땐 큰 충격에 너무 힘들었지만 (시아버지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가족 모두가 버텼다.”면서 “선원 모두가 큰 고통을 받은 만큼 정부가 치료 등 후속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미니호의 선원 송출을 담당한 부산 동구 초량동의 J선박 관계자도 “이제야 큰 짐을 내려놓았다.”면서 “그동안 인내해 온 선원과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어리다고 안봐줘”… 美는 10대 성폭행범에 종신형

    미국 법원이 집단 성폭행 사건의 10대 가해자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당시 가해자가 10대라는 이유로 대부분 풀어준 국내 법원의 판결과 크게 대조된다. 성폭행 사범에 대한 양국 법원의 인식차를 인정한다 해도 10대 성폭행 가해자들을 비교적 관대하게 처벌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9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2년 전 미국 사회를 뒤집어 놓았던 ‘텍사스 소녀 집단 성폭행 사건’의 10대 가해자에게 미 법원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죽을 때까지 감옥에 수감돼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법원은 이 사건의 ‘심각성’과 가해자들의 반성 없는 태도에 주목했다. 사건은 2010년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시골마을에서 발생했다. 11살 소녀가 석 달에 걸쳐 집단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수사 결과 이웃에 살며 서로 알고 지내던 10대 6명을 포함한 20명의 남성이 집단 성폭행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났다. 가해자들은 소녀를 빈집으로 유인해 집단 성폭행했으며 이를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특히 가해자 대부분은 재판 과정에서 “소녀의 유혹에 넘어가 합의하에 관계를 맺었다.”며 무죄를 주장해 미국인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법원이 중형을 선고한 데는 짐승 같은 범죄행위에 어린 나이가 예외일 수 없다는 검사와 판사, 배심원들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휴스턴크로니클에 따르면 전날 텍사스주 리버티카운티 법원에서 진행된 대배심에서 가해자 제러드 크루스(20)의 선고를 앞두고 검찰과 변호인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가해자를 소년으로 봐서는 안 된다. 그는 집 나온 개 떼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면서 배심원들에게 종신형을 내려 달라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거미가 파리를 유혹하듯이 오히려 소녀가 (가해자를) 끌어들였다.”며 소녀가 ‘원인 제공자’라고 반박했다. 변론 직후 배심원들은 머리를 맞댄 지 10분 만에 전원합의로 종신형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제러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연신 눈물을 닦아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 된 상황이었다. 마크 모어필드 판사는 배심원단 의견대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하면서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행 범죄는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한편 이번 사건의 주요 공범 가운데 한 명인 에릭 맥고웬(20)은 이미 지난 9월 징역 99년형을 선고받았고, 성인 가해자 6명은 유죄를 인정하고 검찰에 유리한 증언을 해주는 조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