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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럭 짐칸에 악어새끼 득실득실…불법거래 적발

    트럭 짐칸에 악어새끼 득실득실…불법거래 적발

    남미에서 대규모 동물불법거래가 적발됐다. 악어새끼 5000마리를 운반하던 트럭 2대가 볼리비아에서 단속에 걸렸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문제의 트럭은 볼리비아 동부 산타크루스로 악어를 운반하다 불심 단속에 걸렸다. 볼리비아 당국은 발견된 새끼악어들을 모두 방사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트럭에 실려 있던 도마뱀가죽 500장도 발견해 압수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범죄만 있었지 범인은 없었다. 볼리비아 당국은 트럭을 몰던 기사 등을 모두 방면했다. 이에 대해 사회적 비난이 비등하자 경찰은 “직업을 증명하라는 조건으로 일단 석방한 것”이라면서 “직업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볼리비아는 야생동물을 불법으로 거래할 경우 징역 1-3년, 압수된 동물 거래가의 100%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볼리비아에서는 야생동물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노엘캠프 관계자는 “암암리에 거래가 되고 있어 정확한 통계는 낼 수 없지만 야생동물의 불법거래가 심각한 수준이 이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볼리비아 10가정 중 1가정은 불법으로 잡은 야생동물을 기르고 있다는 비공식 통계가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자료사진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화학적 거세’ 국내 첫 확정 판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화학적 거세’ 명령이 확정됐다. 19일 광주고법과 광주지검에 따르면 광주고법 형사 1부(부장 김대웅)는 지난 11일 남자 어린이를 추행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강모(21)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3년 4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강씨에게 화학적 거세라 불리는 성충동 약물치료 1년과 함께 신상정보 공개·고지 5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6년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강씨가 지적장애와 성도착증이 있지만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있다며 원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강씨와 검찰 모두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강씨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화학적 거세 명령을 받았지만 형 확정으로는 첫 사례로 남게 됐다. 1심 법원에서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사상 처음으로 화학적 거세 명령을 선고받은 피고인 표모(31)씨는 서울고법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판결 확정에 따라 강씨는 석방 전 2개월 안에 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하고 석방 후에도 1년간 주기적으로 약물치료에 응해야 한다. 강씨는 2009년 8월 15일과 지난해 8월 25일, 현재 12살인 남자 어린이를 협박해 옷을 벗기고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광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사기 혐의’ 젝키 강성훈, 공탁금 3000만원·보석 신청

    사기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인기 아이돌그룹 출신 강성훈(33)씨가 3000만원의 공탁금과 함께 법원에 보석을 신청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 12일 서울북부지법에 보석 신청서를 제출했다. 강씨는 보석을 허가받기 위해 3000만원을 공탁금으로 내겠다고 밝혔다. 공탁이란 채무자가 법원을 통해 채권자에게 돈을 일부 갚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공탁금을 내면 채권자와 아직 합의를 보지 못했더라도 돈을 갚을 의사가 있다는 것을 법원에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그 동안 자신을 둘러싼 몇몇 고소 건을 해결하기 위해 공탁금을 내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석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강씨는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황모씨 등 3명에게 약 9억원의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는 1심 재판이 진행중이던 지난해 9월 직접 작성한 출석 서약서를 제출하고 보석으로 풀려났었다. 석방 직후 강씨는 “돈을 편취할 목적이 없었다”면서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서울북부지법 형사7단독(강영훈 재판장) 심리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강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강씨측은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백기완(80)은 거리에 있었다. 1973년 유신헌법 개정 투쟁 때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도 그는 늘 대오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지금도 거리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철거할 때도 백발의 백기완은 새벽같이 나와 천막을 지켰다.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는 곳이 나의 삶터”라고 말하는 백기완.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에 호통치고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는 그는 여전히 젊다. 백기완의 삶과 예술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백기완을 거리로 이끈 것은 가난과 분단이었다. 1933년 황해도 은율 산자락에서 태어났다. 땅 한 뼘 갖지 못한 아버지는 돈이 없었다. 배가 고팠다. “돼지기름 덩어리 한 조박(조각의 황해도 사투리)을 날로 먹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다. 일제의 잔학한 수탈이 계속되던 때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왜놈들이 집에 와서 놋그릇을 뺏어갔어요. 쌀도 뺏고 밥그릇도 뺏고,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그런데 엄마가 그만 울래요. ‘사내 새끼가 자꾸 울면 키가 안 큰다. 어서 커서 엄마 원수를 꼭 갚아 달라’고. 그때부터 민족의식이 싹 텄던 것 같아요.” 1946년 백기완은 아버지를 따라 맨발로 서울에 왔다. 도시는 냉정했다. 설렁탕 집에서 일을 하다가 “식은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그에게 서울은 “주먹으로도 안 되고 참아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곳”이었다. 가진 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저항심리가 그에게 민중 의식을 심어줬다고 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학교는 꿈도 못 꿨다. 충무로 책방에서 주인 몰래 영어 사전을 외우다 쫓겨나기를 거듭했다. 그의 할아버지(백태주)에게서 항일투쟁 때 도움을 받았던 백범 김구(1876~1949)와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을 지낸 조소앙(1887~1958) 선생이 학교에 보내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마다했다. 아버지는 “백범에게 밥을 얻어먹으면 백범 같은 사람밖에 안 된다. 깡패가 되든 거지가 되든 혁명가가 되든 혼자서 크라”고 했다. 1950년 전쟁으로 나라가 찢어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은율에 있었다. 남쪽에서 참전한 작은형은 “북쪽에 계시는 어머니를 겨냥해서는 단 한 방도 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에 대고만 빵빵 쏜다”는 편지를 남기고 전장에서 숨졌다. 형의 유해를 찾으러 강원도에 갔다가 사격을 당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뛰면서 다짐했다. 언젠가 나라의 허리를 내 손으로 잇겠다고. 전쟁이 끝났다. 국토는 폐허였다. 백기완은 ‘나라가 온통 퇴폐와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고 여겼다. “우리 생명을 심자”며 젊은 날을 나무심기와 농민운동에 바치기로 했다. 1953년부터 꼬박 7년. 그때는 불덩어리 같았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주머니를 털어 1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뜨거운 청춘이 되살아나는 듯 백기완은 인터뷰를 멈추고 거친 목소리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렀다. “바라보라 붉은 산 햇빛에 탄다/ 저 산을 푸르게 마음도 푸르게/ 저 산을 푸르게 조국도 푸르게/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우리는 선봉이다 자진녹화대” 100만 그루의 나무는 이 땅에 생명이 되었을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승만 독재가 강화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은 반 세기 넘게 이어졌다. 그는 ‘가대기 형(兄)’ 이야기를 했다. “가대기 형은 서울역에서 막일하던 지게꾼이었어요.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그냥 가대기 형이라고 불렀어요. 싸움을 잘했지만 주먹쟁이는 아니었어요. 내가 가난한 친구들이랑 주먹다짐을 하고 나면 이렇게 얘기했죠. ‘싸움은 있는 놈, 나쁜 놈들이랑 하는 거야. 없는 놈들끼리 싸워봤자 서로 코만 터져’ 그 말이 내 인생의 길라잡이가 됐어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백기완에게 ‘나라를 반으로 가른 미국의 앞잡이’였다. 정권을 바꿔가며 30년 넘게 이어진 독재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새 길을 내자”며 4·19 혁명에 참여했다.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 반란이 터졌다. 그가 “독재자의 야욕과 자본주의의 폭악이 결합된 극악한 체제”라고 부르는 ‘박정희 18년’의 시작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이 나왔다. 1974년 1월에는 긴급조치 1호가 나왔다.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던 백기완과 고 장준하(1918~1975) 선생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 풀려났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그때를 꼽았다. 유신은 그에게 ‘반통일, 반평화, 반균등, 반자유, 반문화, 반예술, 반역사, 반진보’였다. “유신 타파 운동을 하다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어요. 탕탕탕, 누가 현관문을 부수고 구둣발로 들어와 이불을 확 베끼더라고. ‘너희 집 안방에 강도가 구두를 신고 들어와서 이불을 벗기면 좋겠어. 빗자루로 쓸어 이 새끼야’ 그랬더니 나를 짓이기며 질질 끌고 가요. 기가 막혔습니다. 내 생각대로 목숨을 걸고 떳떳하게 살았는데 그렇게 끌고 가면 되겠어요. 온몸이 노여움으로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 아내에게 “여보, 나 기다리지 마. 훗날 내 무덤에 이름 모를 꽃이 피면 그게 해방 통일의 꽃일 거야”라고 외쳤다. “지금 들으면 어쭙잖은 얘기처럼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때는 죽기 살기로 싸울 때였으니 진지했어요. 거의 반 죽어서 감옥에 있는데 아내에게 편지가 왔어요. 새벽녘 추위가 더 매서운 법이니 견디어 내시라고.” 그러나 1975년 기다리던 아침이 오는 대신 믿고 따르던 장준하가 죽었다. 장준하는 그에게 “모든 통일은 좋다.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틀을 뒤집는 첫 걸음이 통일이다”고 알려준 스승이었다. 그는 “야비한 학살”이라고 했다. 여섯 달을 내리 울었다. 지난달 26일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 공동위원회가 “머리에 둔기를 맞고 숨졌다”는 사인을 발표할 때 백기완은 다시 울었다. 1979년 유신 체제가 끝난 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또 다른 군사 정권이었다. ‘반동분자’ 백기완은 다시 끌려갔다. 모질게 맞았다. 손톱이 뽑혔다. 정신을 잃으면 물바가지가 날아왔다. 독재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기 살기로 시를 쓰며 버텼다. 그때 쓴 ‘묏비나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작곡돼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됐다. 맨 첫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중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백기완은 민중후보로 대통령 후보에 추대됐다. 야권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백기완이 단일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민주화는 눈앞의 신기루였다. 백기완이 선거 이틀 전 단일화를 외치며 후보를 포기했지만 ‘양김’은 끝내 각자의 길을 갔다.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민중을 위해 싸운 100여년을 승리로 매듭지을 기회를 날렸다. 피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1992년 말 다시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문민’(文民)의 간판을 내걸고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총칼을 앞세운 독재는 사라졌지만 백기완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사이 독재의 폭력은 신자유주의로 횡포로 바뀌고 있었다. 노동 현장을 찾아다녔다. 자본의 낯은 겉으로만 번지르르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가장 극악하게 노동을 탄압한 정권”이라고 했다. 정도는 달랐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돈으로 환산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신자유주의에서 민중이 해방되는 것이 역사적 과제”라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비바람과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여름 한때 없이 떨어지는 가랑잎을 ‘개죽’이라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뜨릴 생각은 않고 그 속에서 출세, 돈벌이, 명예, 행복만 좇다가 개죽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여, 개죽이 되지는 마시오. 개죽으로 사느니 마음껏 자라다가 거름이라도 되는 게 나아요.” 그가 이번 정부에 가장 우선해 요구하는 것이 노동 문제다. “지난해 한진중공업 노조에서 최강서라는 젊은이가 서른넷에 목숨을 끊었어요. 유서에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5년을 더 기다릴 수 없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고 적었어요. 사실상 학살이나 다름없었어요. 장례식에 갔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들이 ‘아빠 왜 안 오냐’면서 사탕을 먹고 있어요. 울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데 앞이 안 보입디다. 하지만 나는 앞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지는 않아요. 그대로 주저앉는 건 자본주의에 져서 인간성을 포기하는 겁니다.” 백기완은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유신 잔재’라는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유신에 대한 거부와 비판이 한마디도 없다”고도 했다. 그는 다시 ‘장산곶매’ 이야기를 했다. “장산곶매는 일찍이 애미 애비를 잃고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올빼미와 까마귀를 찾아가 밥 한 술을 빌다가 부리와 발톱을 빼앗겼죠. 땅 속으로 가면 쥐들이 쫓아오고, 바깥으로 가면 사람들이 보약이라며 달려들고. 그렇게 벼랑까지 쫓기다 보니 앞에는 끝도 없는 바다, 뒤에는 사람과 쥐새끼예요. 장산곶매는 벼랑 끝에서 넓은 바다와 하늘을 보며 깨친 바가 있어 힘이 약한 짐승은 잡아먹지 않고 일년에 두 번 나쁜 놈 하고만 싸우기로 합니다. 장산곶매가 싸움을 떠나는 날 밤이면 숲에서 ‘딱, 딱’ 하는 소리가 나요. 부리질로 제 둥지를 ‘딱, 딱’ 까부수는 소리. 집에 집착하면 온몸으로 싸울 수가 없어요. 싸움을 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 돼요.” 2009년 백기완은 “한평생 하는 일들이 죄다 실패였다. 다시 실패의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뛰어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어둠 속에 뛰어드는 그는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 백기완은 둥지가 없다. 백기완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하편에 계속).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백기완은 ▲1933년 황해도 은율 출생 ▲1953년 농민운동 시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징역형,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 출마 뒤 단일화 주장하며 사퇴 ▲1988년 통일문제연구소 개소 ▲1992년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 출마, 낙선 ▲1999년 계간 ‘노나메기’ 창간 ▲2002년 대한축구협회 요청으로 월드컵대표팀에게 강연, 히딩크 감독과 인연 ■주요 저서 항일 민족론(1986) 장산곶매 이야기(1994)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2009) 시집 이제 때는 왔다(1985), 젊은 날(1990) 극본 대륙(1998)
  • [DB를 열다] 1963년 전무후무한 군인들의 데모

    [DB를 열다] 1963년 전무후무한 군인들의 데모

    전무후무한 군인들의 데모 현장을 담은 사진이다. 1963년 3월 15일 낮 12시 10분 국가재건최고회의 건물 앞마당에 권총을 찬 현역 군인 6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계엄령을 선포하라, 군정을 연장하라, 박정희 의장은 민정에 참여하라, 구태의연한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즉시 중지시켜라 등의 6개 항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지프 위에 오른 소령이 건의문을 외치자 다른 군인들이 복창했다. 사병 30여명이 이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박정희 의장은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군인들을 철수시키라고 지시했고 이에 사령관이 직접 현장으로 나갔지만, 이들은 본 척도 하지 않고 시위를 계속했다. 시위에 가담한 군인 49명은 당일 체포되어 구속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석방되었다. 박정희는 5·16으로 권력을 장악한 뒤 정치에 참여하지 말고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았다. 결국, 1963년 2월 박정희는 민정에 참여하지 않고 군은 중립을 지키겠다는 선언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지못해 한 것이었다. 그리고 보름 남짓 지나 군인들이 데모를 벌이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박정희는 겉으로는 데모를 한 군인들을 엄중히 다스리라고 지시했지만 속으로는 좋아했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군인 데모가 있은 바로 다음 날 군정 연장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며 중립 선언 약속을 파기하고 말았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하)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하)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

    인생의 큰 변화는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외교관을 꿈꾸던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 군인의 길로 들어선 것이 첫 터닝 포인트였다면,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지내면서 태권도와 인연을 맺은 것이 두 번째 변화의 계기였다. 김 전 부위원장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체력은 국력이라고 했지만 체육회 1년 예산은 문교부에서 나온 1억원이 전부였다. 돈이 없는 경기단체의 장에 정치적 실력자를 배정하다피시 했다. 사격은 박종규(대통령 경호실장), 복싱은 김택수(국회의원), 축구는 장덕진(농수산부 장관) 하는 식이었다. 나는 정치적으로 들어간 건 아닌데 좌우간 (경호실 차장으로) 힘이 있을 때니까 호주머니 털어서 (선수들을) 여관에 합숙시키곤 했다”고 돌아봤다. 태권도와 어떤 접점도 없었던 그가 이런 행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비전 때문이었다. ‘체력은 국력’이란 강령 아래에선 국위 선양할 것이 태권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에만 사범이 10명 있을 정도로 해외에 사범들이 많았지만 국내에는 중앙 도장도 없고 세계연맹도 없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태였다.” 1971년 1월 대한태권도협회장으로 취임할 때만 해도 협회에 체계라곤 없었다. 30개 파로 나뉘어 제각각 단증을 발급하는가 하면 사범 교육 제도도 전무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어수선하던 태권도계에 국기화, 세계화, 국위 선양의 기수, 호국의 기수란 네 가지 비전을 제시하고 기틀을 잡아 나갔다.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70년대를 관통한 불도저식 개발은 태권도계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협회장 취임 일성으로 중앙 도장인 국기원 건립을 내세운 그는 막강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인다. 청와대 경호실 차장이란 직함이 그 추진력에 연료를 제공했을 터. “호주머니 털고 친구에게 용돈 뜯어다가 지었다. 땅은 양택식 서울시장에게 빌렸는데 그것도 옥신각신했고. 돈이 없으니까 여기저기서 기부도 받았다. 이병철 삼성 회장 300만원, 정인영 현대건설 부사장 200만원 등등…. 청와대 경호관 월급이 2만원일 땐데, 그때 그 돈이면 굉장한 거다. 철근은 인천제철에서, 지붕은 벽산에서 슬레이트를 갖다 놨다. 동창들 찾아가서 (사정해서) 지었다. 시멘트 한 포가 270원, 철근 1t이 2만원 할 때다.” 72년 중동 오일쇼크가 덮쳤지만 국기원은 그해 11월 3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취임한 지 1년 10개월 만의 일이다. 다음 목표인 세계화를 위해 73년 5월 국기원에서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대회 직후 국기원에 20개국 대표가 모여 세계태권도연맹이 만들어진다. 이로써 태권도의 국내 보급을 맡은 대한태권도협회, 세계 각국에 태권도를 전파하고 외국 협회를 관리하는 세계태권도연맹, 태권도란 무도의 본산으로서 두 단체를 지휘하는 국기원이란 지금의 체계가 비로소 갖춰졌다. 태권도의 기반을 닦은 주인공이기에 지난 2월 태권도의 올림픽 핵심 종목 잔류 결정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법했다. 그는 “스위스 로잔 집행위원회 전에 (주변에) 전화로 물어보니 ‘레슬링은 총회에 가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태권도는 그런 염려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를 듣고 안심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태권도가 (1994년 파리 IOC 총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들어갔을 때 찬성 85표, 반대 0표로 들어갔지 않았나. 최근에는 찬성표만큼 반대표가 나온다고 그러는데 그래도 (그때의 힘이) 아직은 남아 있다. 현재 IOC 부위원장인 세르 미앙 능(싱가포르), 토마스 바흐(독일), 크레이그 리디(영국)와 존 코츠(호주) 집행위원은 그때 모두 태권도를 도와준 사람들이다. 그런데 레슬링은 힘이 하나도 없다. 겉으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이런 일은) 힘을 갖고 하는 것”이라고 은근히 자신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태권도가 계속 살아남으려면 복싱에서 헤드기어를 따온 것, 펜싱을 보고 전자호구를 도입한 것처럼 앞으로도 끊임없는 개혁을 해야 한다. 마케팅과 국제적 감각이 아직은 부족하다. 국기원과 대한태권도협회가 세계태권도연맹을 도와줘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태권도에서 외연을 넓힌 그는 74년 2월 대한체육회 부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으로 취임, 스포츠 외교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그는 영화 제목을 본뜬 ‘동방불패’(東方不敗)란 말을 들을 정도로 굵직굵직한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한편 국제 스포츠 무대의 요직을 차지한다. 83년 암으로 사망한 김택수 IOC 위원에 이어 2년 뒤 박종규씨마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뜨자 그는 86년 10월 17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91차 IOC 총회에서 위원으로 선출된다. 일주일 뒤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회장으로 선출된 이후 그는 88년 IOC 집행위원, 92년 IOC 부위원장으로 뽑혔고 97년 무주·전주 유니버시아드, 99년 용평 동계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를 유치하느라 숨 가쁘게 세계를 누볐다. 그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 이어 2000년 시드니 대회를 통해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진입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것으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이것을 최고의 업적으로 손꼽는다. 시드니 대회에서는 남북 동시 입장이라는 정치적 이벤트까지 성사시키며 99년에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캔들(개최지 선정을 둘러싸고 IOC 위원 매수와 금전 살포가 있었음이 밝혀져 위원들이 대거 제명되고 개혁안이 통과)로 인한 타격을 만회하는 노련미를 발휘한다. 그러나 자신의 지지기반이 상당히 떨어져 나간 이 스캔들 때문에 김 전 부위원장이 30년 동안 쌓아 온 명성과 입지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2001년 IOC 위원장에 도전했다가 자크 로게 현 위원장에게 밀려 쓴잔을 마시고, 이듬해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 실격 사건’에도 불구하고 대회 조직위원회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구설에 올랐다. 여기에 더해 2003년 프라하 IOC 총회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일은 조금씩 그의 쇠락을 부채질한다. 결정타는 2003년 12월에 시작된 검찰 수사였다. 그는 세계태권도연맹 등의 공금 38억원을 2000년쯤부터 빼돌렸고 각종 청탁과 함께 8억여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2004년 6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7억 8800여만원이 선고된 뒤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원심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치소에서 그는 “정치적 누명을 쓴 것”이라며 IOC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구명 노력을 했지만 IOC는 2005년 2월 그를 제명하는 권고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해 7월 총회에서 제명될 움직임이 보이자 그는 두 달 전에 부위원장직을 자진 사퇴한다. 6월 30일 가석방으로 풀려난 그는 지금도 자신을 몰락시킨 검찰 수사를 “평창 유치 실패의 책임을 돌리기 위한 정치세력의 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IOC 위원들 얼굴만 보면 ‘태권도’, 또 보면 ‘평창’, 이러고 다녔다. 체육회장을 하면서 ‘한국이 스포츠 강국이 되려면 동계올림픽도 유치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한국의 성적은 형편없었다. 쇼트트랙밖에 없었다. 평창(을 위한) 테스트로 시작한 게 99년 용평 동계아시안게임이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밴쿠버와 평창의 시설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김진선 당시 강원도지사나 따라온 국회의원들은 나만 믿고 되는 줄 알았는데 (실패하니) 내용도 모르고 내가 부위원장 (재선)하려고 (유치에) 방해를 놓았다고 했다. 나는 평생 태권도, 올림픽 하면서 한국 체육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사람인데 방해를 놓았다고 하니 말이 안 된다고 했지만 정치세력 힘이라는 게 사람을 잡더라.” 세간의 시선과 그의 입장에는 이렇게나 큰 간극이 있다. 정치권에 대한 커다란 피해 의식을 감추지 못했다. “평창이 2007년 과테말라 총회에서 세 번째로 도전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지철씨와 변양균씨를 시켜 (현장에) 오지는 말고 팩스와 전화로 도와달라고, 그러면 사면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사면을) 안 해 주고 나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특별사면)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다.” 한국 스포츠와 함께 격동의 40여년을 보낸 뒤 그는 활동하던 단체들의 고문직을 맡으며 2선으로 물러난다. 최근에는 집필과 특강에 전념하고 있다. 1년에 절반은 집을 떠나 세계를 떠돌던 현역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노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다”고 농을 던졌다. “이제는 명예회복도 많이 되고 (사람들이) 업적도 많이 알게 되고…. 편하다. 일본과 한국의 여러 대학에 특강도 나가고 가만히 있어도 석좌교수 해 달라는 데(명지대·조선대)도 있다.” 소년 시절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그는 좋아하는 피아노 덮개도 다시 열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 시절 독주도 많이 했는데…. 쇼팽을 가장 좋아한다. 집사람도 (이화여대) 피아노과를 나왔고 우리 딸(차녀 혜정씨)도 피아노를 전공했다.” 겉으로 보면 세계 무대를 향한 열정의 파랑(波浪)은 잦아든 듯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IOC 무대와 한국 스포츠 외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자신의 뒤를 이을 스포츠 외교 전문가가 없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나간 뒤 스포츠 외교를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해야 한다며 체육인재육성재단(2007년 설립)이라는 게 생겼던데 그게 잘 되겠나? 인재가 저절로 키워지나? 현장에서 커야지. 인품도 있어야 하고 교양도 있어야 한다. 상대방 문화도 알고 우리 문화와의 차이를 초월해 마음을 끌고 와야 하는 게 스포츠 외교다. 나는 누가 키웠나? 태권도 세계화를 위해 뛰고 IOC에서 올림픽 치르면서 사람 사귀면서 커진 거지 누가 돈 대줘서 키운 게 아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개성공단 최대 위기] 2009년에도 3차례 육로 차단·직원 억류

    [개성공단 최대 위기] 2009년에도 3차례 육로 차단·직원 억류

    개성공단에 대한 북한의 위협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3일 개성공단 출입을 차단한 것 처럼 2008년과 2009년에도 북한은 개성공단을 볼모로 잡아 폐쇄직전까지 몰고가며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이 핵무기를 공개적으로 개발·생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며 실제 핵위협 단계에 들어선 직후라는 점에서 상황이 더 엄중하다. 2008년 찾아온 개성공단의 첫 위기는 김하중 당시 통일부 장관의 ‘북핵문제와 개성공단 연계’ 언급이 발단이 됐다. 북한은 이를 문제 삼아 3월 24일 개성공단 우리측 당국 인원 전원 철수를 요구한 데 이어 12월 1일 개성공단 상주 체류인원을 880명으로 제한하고 남북 통행 시간대 및 통행허용 인원을 축소하는 ‘12·1조치’를 시행했다. 2009년 당시에도 키 리졸브 한·미합동군사연습에 반발해 연습 첫날인 3월 9일부터 남북 간 군 통신선을 임의로 끊고 20일까지 3차례에 걸쳐 육로통행을 차단했다. 또 개성공단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를 ‘탈북책동 및 체제비난’ 혐의로 같은 달 30일부터 억류해 137일 만인 8월 13일 석방했다. 5월 15일에는 개성공단 관련 토지임대료, 토지사용료, 임금, 세금 등 기존의 각종 법규정들과 계약 무효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개성공단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자 6월 17일 개성공단 입주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의류업체 1곳이 폐업신고서를 제출하고 완전 철수하기도 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제한한 개성공단 육로통행 횟수는 9월 1일이 돼서야 정상화됐다. 그러나 이듬해 개성공단은 천안함 사건으로 세번째 위기를 맞게 된다. 우리 정부가 5·24대북조치를 통해 개성공단 체류인원을 절반가량 축소하고 신규 투자를 불허하자 북한은 남북교류협력 관련 군사적 보장조치 전면 철회로 맞섰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범죄자 뇌 스캔하면 재범 가능성 예측 가능

    뇌스캔으로 ‘재범 가능성’ 알 수 있다 범죄자의 뇌를 스캔하면 다시 범죄를 저지를지 아닐지를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미국 뉴멕시코주(州)에 본사를 둔 ‘마인드 리서치 네트워크’가 의사결정과 행동에 관여하는 뇌 영역의 활동이 둔할수록 재범 가능성이 커진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켄트 키엘 박사가 이끈 연구진은 석방 직전의 남성 수감자 96명을 대상으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수행하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억제하게 하는 등의 실험을 수반하면서 그들의 뇌를 스캔했다. 이 과정은 의사결정과 행동을 담당한다고 알려진 전두대상피질(ACC)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이라는 장치를 사용해 분석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또한 연구진은 이후 석방된 수감자들의 행동을 4년간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전두대상피질의 활동 순위가 절반 이하였던 대상자의 재범 확률이 전체 대상자보다 2.6배 높았으며, 폭력과 관련이 없는 지능 범죄자만 보면 재범률은 4.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키엘 박사는 “전두대상피질의 활동 둔화는 카페인이나 혈관 질환 등에 따라 나타날 수도 있어 전적으로 범죄 성향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인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국군포로 현물 주고 송환 추진

    국군포로 현물 주고 송환 추진

    박근혜 정부가 핵심 대북 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북한 비핵화를 연계하지 않는 새로운 남북관계 로드맵을 추진하기로 했다. 남북 간 신뢰 회복을 우선 순위에 두고 북한 비핵화를 진전시키는 한반도 안보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하는 셈이다. 또 국군 포로 및 납북자 송환 방식으로 북한에 현물을 제공해 맞교환하는 이른바 ‘프라이카우프’ 방식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과거 서독이 동독에 현물을 대가로 지급하고 억류된 반체제 인사를 송환받은 방식으로, 이명박 정부에서도 검토된 바 있다. 정부는 현재 국군 포로 500여명과 납북자 517명이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가진 합동 업무보고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비핵화의 선순환 구현을 위한 남북 및 외교 로드맵을 보고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남북한이 기존 합의를 존중하며 실천 가능한 합의부터 이행하는 게 신뢰 구축의 출발점이며 북한의 변화를 마냥 기다리거나 변화하지 않는다고 실망할 게 아니라 북한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3단계로 확정됐다. 1단계에서는 남북 간 기존 합의 준수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며, 2단계에서는 낮은 수준의 사회·경제적 협력 교류를 확대한다는 방안이다. 북한에 대한 사회간접자본(SOC) 등 대규모 경제 지원은 3단계로, 이 단계부터 북핵 폐기로 나아가는 비핵화 수순과 연계된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북핵 불용 기조에는 변화가 없으며, 북한이 잘못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박 대통령 임기 초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 제안과 남북 고위급 대화를 추진하고, 외교부는 한·미 전략동맹과 한·중 동반자 발전 등을 지렛대로 남북관계의 국면 변화를 이끈다는 복안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용어 클릭] ■프라이카우프 독일 분단 당시 서독이 동독에 억류된 정치범의 석방 및 송환을 위해 진행한 프로젝트로, ‘자유를 산다’는 뜻의 독일어다. 1963년 시작된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까지 진행됐다. 서독은 3만 3755명을 송환한 대가로 총 34억 6400만 마르크 상당의 현물을 동독에 지급했다.
  • 中阿共, 반군에 수도 함락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반군이 24일(현지시간) 정부군과의 교전에서 승리해 수도 방기를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수아 보지제 대통령은 이웃국가인 콩고민주공화국으로 탈출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3개 무장집단의 연합체로 알려진 셀레카 반군 수백명은 23일 수도 방기에 진입해 정부군과 교전한 데 이어 24일 시가전을 통해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대변인은 “반군이 수도를 함락했다”며 “반군 측의 보복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언론에 밝혔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보지제 대통령의 한 고문은 “대통령이 오늘 오전 콩고로 건너갔다”고 전했다. 셀레카 반군은 보지제 정부에 불만을 품고 지난해 말 무장봉기를 일으켰으나 지난 1월 국제사회의 중재로 반군과 야당 인사가 참여하는 거국 내각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치범 석방을 비롯한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곧바로 연정을 거부, 정정 불안이 지속돼 왔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긴급 회의 소집을 요청하고, 자국민에게 바깥 출입을 삼가도록 했다고 로맹 나달 대통령실 대변인이 밝혔다.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 계속된 쿠데타와 군 반란에 시달려 온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분류된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겸임국으로 하는 주카메룬 한국 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은 23명으로,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유치장에 꽃 핀 ‘힐링벽화’

    유치장에 꽃 핀 ‘힐링벽화’

    미대생들이 유치장에 갇혀 불안에 떠는 사람들의 안정을 돕기 위해 지역 경찰서 유치장에 ‘힐링 벽화’를 선물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24일 추계예술대 미술학부 학생들이 그린 유치장 힐링 벽화 10점을 공개했다. 벽화는 추계예대 ‘벽화 동아리’ 회원 등 학생 7명이 재능 기부 차원으로 일주일간 작업해 지난달 완성됐다. 학생들은 여성전용방, 경미범 수용방, 출입문 등 유치장 시설의 기능과 수감되는 피의자 유형 등을 고려해 벽화를 그렸다. 여성전용방 한쪽 벽에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여인의 모습을 그렸고 맞은편 벽에는 ‘세상을 믿으면 언젠가 나도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시 ‘인생거울’과 시화를 채웠다. 경범죄자를 수용하거나 석방 직전 피의자가 잠시 머무는 경미범 방에는 잔잔한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씨 벽화를 그려 심리적인 동요를 막을 수 있도록 했다. 또 남성이 수감되는 유치장 벽에는 넓은 들판에 서 있는 나무와 그 위를 나는 새를 그려 넣어 폐쇄감과 고립감을 최소화했다. 박동근(23) 추계예대 총학생회장은 “서대문경찰서로부터 ‘재능을 살려 벽화를 그려 달라’는 요청을 받고 흥쾌히 응했다”면서 “수감자들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화려하지 않은 색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캠퍼스가 있는 이 대학 학생들은 음악, 미술, 영상 등 전공별 전문성을 살려 지역 사회에 재능 기부를 꾸준히 해 왔다. 인근 아현역에 벽화를 그려 삭막했던 역사의 풍경을 바꿨고 매년 9~10월에는 지역민들을 위한 오페라 공연도 하고 있다. 또 지역 내 아동복지시설 등을 돌며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모습을 동영상에 담아 추억을 선물하기도 한다. 박 회장은 “축제 때 소음이 발생하는데 지역민들이 양해를 해주시는 등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학생들도 시민을 위해 재능을 내놓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동양화 전공인 배혜진(21·여)씨는 “봉사활동을 통해 우리도 자연스럽게 공연할 기회를 얻어 좋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예술인의 책무인 만큼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서대문서의 한 관계자는 “유치장에 갇히는 사람들은 아직 죄가 확정되지 않은 사람들이라 피의자와 이들을 지키는 경찰관 모두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면서 “힐링 벽화는 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고자 기획한 것”이라고 밝혔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곽노현 29일 가석방 확정

    교육감 후보 단일화의 대가로 금품을 건넸다가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실형이 선고돼 여주교도소에서 복역해 온 곽노현(59) 전 서울시교육감이 오는 29일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법무부는 18일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열고 이렇게 결정했다. 곽 전 교육감은 형기의 80% 이상을 마친 상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모든 성폭행범 ‘화학적 거세’ 가능

    앞으로는 피해자의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성폭력 범죄자를 대상으로 성충동 약물 치료인 이른바 ‘화학적 거세’를 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피해자가 16세 미만의 아동, 청소년일 때만 화학적 거세를 청구할 수 있었다. 법무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 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19일부터 시행한다고 17일 밝혔다. 개정법은 19일 이후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성범죄자에게도 소급 적용된다. 화학적 거세는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항(抗)남성호르몬제 등의 약물 투여와 심리 치료를 병행해 성 기능을 약화시키는 조치다. 성범죄자 중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과 감정을 거쳐 재범 위험성이 있는 19세 이상의 성도착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검사가 이들에 대해 화학적 거세를 청구하면 법원은 검토 뒤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 약물 치료가 결정된 성범죄자는 석방 전 두 달 안에 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받고 석방 뒤에도 법원이 정한 기간 동안 보호관찰관의 집행에 따라 정기적으로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약물 치료 명령은 최장 15년까지 가능하다. 치료를 받지 않고 도망치거나 다른 약물을 투약해 치료 효과를 없애면 7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약물 치료 175만원, 호르몬 수치 및 부작용 검사 65만원, 심리 치료 260만원 등 1인당 연간 약 500만원의 치료 비용은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 다만 대상자가 가석방 요건을 갖추고 치료에 동의할 경우 본인이 비용을 부담한다. 2011년 7월 제도 시행 이후 현재까지 34건이 감정 의뢰됐으며 이 중 11건에 대해 약물 치료가 청구됐고 4건에 대해 치료 명령 결정이 내려졌다. 세계적으로는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8개 주와 독일,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등이 성범죄자에 대한 약물 치료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1명에게만 실시돼 아직 재범 방지 효과를 평가하기 어렵다”면서도 “미국 오리건주가 2000∼2004년 가석방된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약물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 재범률은 18%인 반면 치료를 받은 경우는 0%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이통3사에 53억원 부과 방통위, 솜방망이 처벌 “보조금경쟁 규제 효과 의문”

    영업정지 기간에도 휴대전화 보조금 지급 경쟁을 한 이동통신사가 과징금만 물게 되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불법 보조금 지급 사실이 확인된 이통 3사에 총 53억 1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과징금 부과의 시장 조사 기간은 영업정지가 시작되기 직전(2012년 12월 25일~2013년 1월 7일)까지이며 영업정지 기간 동안의 조사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방통위는 ‘시장 과열 주도 사업자’로 지목된 SK텔레콤과 KT에 각각 31억 4000만원과 16억 1000만원을, 그렇지 않은 LG유플러스는 5억 6000만원의 과징금을 물게 했다. 하지만 이통 3사의 마케팅 비용이 한 해 수조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과징금 규모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해 이통 3사가 쓴 마케팅 비용은 7조 7950억원에 달한다. 방통위가 지난해 12월 영업정지와 함께 부과한 과징금 액수는 118억 9000만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과징금을 맞는 것보다 보조금을 써서 가입자를 유치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통사들은 여전히 ‘치고 빠지기식’ 보조금 경쟁을 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지난 13일 직접 나서 보조금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방통위의 고강도 제재가 예상됐었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과징금 부과 기준을 2배 이상 높였지만 조사 기간이 14일로 짧았기 때문에 전체 과징금 액수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 대상과 시기, 분석방법 등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방송통신 시장조사를 선진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영업정지 기간 보조금 경쟁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며 적절한 시점에 사실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통 3사의 평균 위반율은 48%였고 업체별로는 SK텔레콤이 49.2%, KT 48.1%, LG유플러스가 45.3%였다. 시장 과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번호이동 위반율은 평균 54.8%에 이른다. SK텔레콤이 60.4%로 가장 높으며 KT 56.4%, LG유플러스 43.3% 등이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알카에다 대변인 활동 빈라덴 사위, 美법정에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라덴의 사위이자 알카에다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술레이만 아부 가이스(47)가 체포돼 미국 법정에 선다. 7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아부 가이스가 미국인을 대상으로 테러공격을 모의한 혐의로 기소돼 8일 오전 뉴욕 연방법원에 출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당국은 지난주 요르단에서 비밀작전을 펼쳐 아부 가이스를 체포한 뒤 압송했다. 쿠웨이트 출신의 아부 가이스는 수주 전 터키 앙카라의 한 호텔에 머물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제보로 터키 당국에 검거됐다. 미국은 터키 정부에 아부 가이스를 넘기라고 요청했지만 터키 법원은 그가 자국 내에서 범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석방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터키 정부는 요르단을 통해 쿠웨이트로 추방하기로 결정했고, 아부 가이스는 요르단을 지나던 중 CIA에 붙잡혔다고 터키 언론은 전했다. 고교 교사 출신인 아부 가이스는 2001년 9·11 테러 직후 알카에다 측이 공개한 비디오에 나와 전 세계 무슬림에게 반미 항전을 촉구했으며, 또 다른 비디오에서는 빈라덴과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유죄가 확정될 경우 아부 가이스는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구치소 어떻길래… “과밀수용 위헌” 첫 헌법소원

    구치소 어떻길래… “과밀수용 위헌” 첫 헌법소원

    천주교 인권위원회(인권위)는 7일 서울구치소가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많은 미결수를 수용해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구치소 과밀수용에 관한 헌법소원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번 헌법소원은 인권활동가인 강성준씨가 구치소에 갇혀서 실제로 측정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강씨가 수용된 방 표지판에는 ‘거실 면적 8.96㎡, 정원 6명’이라고 기재돼 있었지만 실측 결과 거실 면적은 싱크대와 보관대를 포함해 7.419㎡로 나타났다. 당시 6명이 수감된 것을 감안하면 1인당 1.24㎡(0.375평) 넓이로 성인 남성이 팔을 펴거나 발을 뻗기도 어려울 만큼 좁은 공간이다. 강씨는 “구치소가 턱없이 좁다고 생각해 실 면적을 측정하기로 마음먹었고, 줄자가 제공되지 않아 편지지로 측정해 석방된 뒤 자로 편지지 길이를 재는 방법으로 실 면적을 산출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교정·교화와 사회복귀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수용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적합하고 자긍심과 자존감을 침해받지 않는 수준의 생활조건이 필요하다”면서 “마치 최저임금 기준을 정하는 것처럼 국가는 구금시설 수용자들에게 제공할 생활 조건의 기준을 정할 의무가 있다”면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에 앞서 부산지방변호사회는 교정시설 수형자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부산교도소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공익소송으로 제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시리아 반군, 유엔 평화유지군 21명 억류

    시리아 반군이 내전 2년 만에 주요 도시 한 곳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시리아 사태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반군은 또 정부군과 내전을 벌인 골란고원 일대에서 활동하는 유엔 평화유지군을 억류하는 등 사태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시리아 반군이 정부군과의 교전 끝에 6일(현지시간) 중북부 라카주의 주도 라카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밝혔다. SOHR 측은 “라카의 정부군 정보부대가 이틀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반군에 항복했다”며 “반군은 군사령부와 치안관서를 장악하고 수감자들을 석방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내전이 시작된 2011년 3월 이후 반군이 주요 도시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된 첫 사례가 됐다. 이런 가운데 반군 30여명은 이날 남서부 골란고원 일대에서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 휴전감시 임무를 맡고 있는 필리핀 출신 유엔 평화유지군 21명을 억류했다. 반군들은 정부군이 골란고원 인근 알잠라에서 24시간 내 철수하지 않으면 이들을 ‘전쟁 포로’로 다루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평화유지군이 시리아 사태에 휘말린 것은 처음이다. 한편 내전이 24개월째 이어지면서 경제가 파탄 직전에 처했고 사망자가 7만명을 넘어섰으며 2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비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내전에 따른 경제 손실이 이라크 전쟁 다음으로 많은 2200억 달러(약 23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가 50% 가까이 치솟으면서 주민과 경제 모두 고사 직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獨·스위스, 재범 위험 판단 땐 무제한 격리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은 안정적으로 보호수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형 집행 후 ‘재범 위험성이 있는 자’에 한해 보호수용을 별도로 실시하고 있다. 독일은 일반적인 경우 대상범죄의 제한을 두지 않고 ‘보안감호’를 실시하고 있다. 1년 이상의 자유형을 2회 선고받고, 2년 이상의 자유형을 집행 받았거나 자유박탈적 보안처분이 집행 중인 자 중, 재범 위험성이 있는 사람이 그 대상이다. 보호감호 기간은 원칙적으로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법원은 10년 경과 후 보안감호 종료 또는 계속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스위스는 생명에 위험을 야기하거나 5년 이상의 형에 처해질 경우 ‘일반적 감호’를, 강간·살인 등 중대 범죄를 저지르거나 국제법적 무장충돌을 야기한 경우 ‘무기감호’ 처분을 하고 있다. 재범의 위험성이 크고 입원치료적 보안처분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보호수용을 한다. 마찬가지로 기간에는 제한이 없으며, 다만 관할 관청의 신청이나 법원 직권에 의해 처음에는 2년 경과 후, 이후부터는 1년에 한 번씩 가석방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김대중 살려주면 전두환 美 국빈방문 허용 ‘韓·美 정상회담’ 거래 있었다”

    미국이 1981년 2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직전까지 전 전 대통령을 ‘살인자’에 비유하며 정상회담을 완강히 거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회담 교섭의 실무를 맡았던 손장래 전 주미공사는 4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당시 비공개 접촉을 회고하며 “미국 측은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어떻게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인, 손에서 피가 흐르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겠느냐’며 정상회담을 거부했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그는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명 문제를 에둘러 언급했고 당시 앨런 보좌관이 이를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귀띔해 비공개 접촉 한 달 만에 정상회담이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김 전 대통령은 감형을 받고 1982년 석방됐다. 김 전 대통령 구명 작업에 깊숙이 개입했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는 “김대중을 살려 주면 전두환이 미국을 국빈방문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석방되면 레이건이 답방하겠다는 거래가 있었다”며 “당시 미국은 가급적 전두환의 방미 사실이 자국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美 예산자동삭감 발동… 영향은

    미국 연방정부 예산 자동 삭감(시퀘스터) 발동으로 국방 부문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미 정부는 앞으로 7개월간 850억 달러(약 91조 8000억원)의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절반 이상인 460억 달러를 국방 부문에서 삭감해야 한다. 이에 따라 주당 1500~2000명으로 추산되는 국방부의 민간 고용이 동결되고 일시 해고 대상만 4만 6000여명에 달한다. 전국에 산재한 국방부 관련 시설의 개축 및 보수 예산 가운데 100억 달러 이상이 감축되는 것은 물론 전투기 비행 시간이 줄어들고 무기 개발 프로그램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국방예산 삭감은 (군의) 훈련과 대비 태세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회 안전망에도 타격이 우려된다. 연방항공청(FAA) 직원 4만 7000여명이 무급 휴가에 내몰리고 세관을 비롯해 국경경비대, 연방교통안전청(TSA) 직원들도 같은 처지에 놓인다. 무급 휴가자에게는 최소 1개월 전에 통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공항 등에서의 운영 차질은 4월부터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농무부는 육류 검사 직원 8400명이 무급 휴가를 가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혀 육류 공급과 식품 안전 검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밖에 연방수사국(FBI)과 연방검찰 검사, 사회보장국 직원, 국세청(IRS), 식품의약국(FDA),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연방재난관리청(FEMA), 국립공원관리청 등도 마찬가지여서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교정 행정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미 시퀘스터에 대비해 구금 상태에서 풀어준 불법 이민자 수가 2000명을 넘었고 이달 말까지 3000명이 추가로 석방된다. 반면 메디케어(노인 의료보장)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장) 등은 삭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안보가 타격을 입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에서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캐서린 윌킨슨 미 국방부 공보관은 “동맹국, 우방국들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관심과 안보 공약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아시아·태평양 우선 정책도 변함없을 것”이라면서 “미 국방부는 훈련과 장비 면에서 최정예 병력을 아·태 지역에 계속 배치하면서 모든 긴급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미국의 소리’(VOA)가 보도했다. 실제 유사시 한국 방어를 위한 작전 연습인 ‘한·미 키리졸브’ 훈련은 예정대로 오는 10일부터 2주간 실시된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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