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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구속기간 만료에 ‘석방’ 꺼낸 한국당 “인권침해”

    박근혜 구속기간 만료에 ‘석방’ 꺼낸 한국당 “인권침해”

    자유한국당이 16일 자정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또 다시 ‘석방’을 촉구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기소 돼 상고심 재판을 받는 박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이 이날 자정 만료되지만, 이미 공천개입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돼 석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적 결단을 촉구한 것이다. 한국당은 지난달 이명박 전 대통령 보석 허가 이후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심지어 친박계로 분류되는 홍문종 의원은 박 전 대통령 수감을 “인권침해”라고 표현했다.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이 이날로 만료되는 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통합적 차원에서 조속한 시일 내에 결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민경욱 대변인은 논평에서 “지금 두 전직 대통령이 재판을 받거나 수감돼 있는데, 정치적 배경을 떠나 이러한 상황 자체가 국가적 불행”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민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은 여성의 몸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 건강까지 나빠지고 있다”며 “계속되는 수감 생활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여론이 있다”고 강조했다. 홍 의원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통해 “고령의 여성인 박 전 대통령은 장기간의 구속 수감과 유례없는 재판 진행으로 건강 상태가 우려되는 수준”이라며 “즉각 석방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인권침해를 멈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3차 구속 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에서 공직선거법을 엮어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이어가려 하니 그 치졸한 처신이 놀랍기만 하다”며 “‘형집행정지’와 같은 합리적 조치를 통해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당은 당파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유불리를 뛰어넘는 의지를 보여줄 때”라며 “박 전 대통령의 무죄 석방을 외치는 간절한 국민의 절규에 한 목소리로 동참해달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공천개입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된 만큼 미결수에서 기결수로 신분이 전환된다. 뇌물수수 등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5년과 벌금 200억원 등을 선고받은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대법원에 상고심이 접수된 이후 10월과 11월, 올해 2월 각각 구속기간이 연장됐다. 심급별 재판마다 구속기간 연장이 최대 3번만 가능하기 때문에, 3차 구속기간 연장이 완료되는 16일에는 원칙적으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기간이 종료된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11월 옛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형이 확정된 상태라 구속기간이 만료되더라도 석방되지 않는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형을 확정받지도 않은 박 전 대통령 사면 요구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탄핵 2주년 논평을 통해 “형 선고도 받지 않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형이 확정된 경우에만 가능한 사면’을 거론하고 있다는 것은 촛불혁명의 주역인 대한민국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정의당도 “박근혜 사면은 최고 헌법기관의 판결과 촛불혁명에 대한 불복이자 거부”라며 “헌법 질서와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친박 제일주의’를 드러낸 것으로 사실상 ‘도로 친박당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국정농단’ 박근혜, 오늘밤 구속 기간 만료…기결수로 전환

    ‘국정농단’ 박근혜, 오늘밤 구속 기간 만료…기결수로 전환

    대법원 상고심 선고를 앞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이 오늘(16일) 자정 만료된다. 박 전 대통령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5년과 벌금 200억원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대법원에 상고심이 접수된 후 10월과 11월, 지난 2월 세 번 구속 기간이 연장됐다. 구속 연장은 세 번까지만 가능하므로 더는 구속 상태로 재판받지 않는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이 이미 확정된 상태다. 따라서 구속 기간이 만료되더라도 석방되지 않고, 미결수에서 기결수로 신분만 전환된다. 통상 기결수는 교도소에 구금되나 박 전 대통령은 대법원 재판까지 서울구치소에 계속 남을 가능성이 크다. 노역에 투입되는 것 역시 상고심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에 제외될 수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형이 확정된 수형자는 나이와 형기,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노역을 부과한다”면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적절한 처우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상고심을 심리 중이다. 지난달 21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비공개 변론을 진행한 바 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사설] 세월호 5주기, 안전사회 구축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5주기다. 5년 전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세월호에는 수학여행을 가는 단원고 고등학생 등 탑승자 476명이 타고 있었는데, 배가 침몰하면서 이 중 304명이 사망·실종된 대형 참사였다. 배가 가라앉는데도 선내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되풀이됐고 약속한 구조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화물 과적, 무리한 선체 증축, 조타수 운전미숙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안전 관련 규제완화와 사고 발생 후 초동 대처 단계에서 정부의 무능 등으로 빚어진 인재였다. “이게 나라냐”며 국가 개조론이 제기된 배경이다. 5년 세월이 지났으나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얼마나 바뀌었나. 정부는 해양수산부 관리들이 퇴직 후 관련 기관에 취업해 정부를 상대로 로비하는 ‘해피아’를 척결하겠다며 공직자의 재취업 규제를 강화하고 안전 예산도 늘렸다. 해체했던 해경을 문재인 정부에서 3년 만에 부활시킨 것도 안전 강화에 부응하기위해서였다. 4월 16일을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했다. 하지만 근본적 변화가 없다는 평가다. 정부의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발생해서는 안 될 안전사고가 여전히 터지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 인재로 밝혀진 경북 포항 지진, 제천과 밀양의 화재, KTX 강릉선 탈선 사고 등도 인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사고들이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하반기에 조사한 국민안전 체감도는 5점 만점에 2.74점으로, 1년 전인 2017년 하반기(2.77점)보다 낮았다. 진상 규명 작업이 5주기에도 결론을 내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다. 1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와 선체조사위원회에 이어 세 번째 조사기구인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해 해군과 해경의 CCTV 조작 의혹 등 증거 조작·은폐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강제 수사권이 없어 난항을 겪고 있다. 세월호 특별수사단 설치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12만여명이 동의했다. 도심 곳곳에서 세월호 추모 행사와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가 열리는 등 사회적 갈등도 여전하다. 세월호 참사가 주는 교훈은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은 최근 ‘강원 산불’에서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는 대응력을 보여 준 것이다. 정부는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언제든 재난이 발생한다면 체계적으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정치권도 진상규명에 협조해 더 이상 사회적 갈등을 방치해선 안 될 것이다.
  • 30년 독재자 몰아낸 수단, 아직 갈 길 먼 ‘민주화 봄’

    30년 독재자 몰아낸 수단, 아직 갈 길 먼 ‘민주화 봄’

    군부 “2년 안에 문민정부에 권력이양” 시위대, 과도군정 시사에 “후퇴 없다” 군부 자녀도 시위 동참… 진압 어려워30년 독재자를 끌어내린 수단 민중의 뜨거운 민주화 열망에 군부마저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수단 군부가 오마르 알바시르 전 수단 대통령을 축출한 지 이틀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압델 팟타 알부르한 과도군사위원회 위원장(육군 중장)은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2년 만에 문민정부가 수립될 수 있다”면서 야간 통행금지 해제, 체포된 반정부 시위 관련자 석방을 지시했다고 알자지라 등이 보도했다. 알부르한 위원장은 지난 12일 군부 지도자가 됐다. 일각에서는 군부가 시위대를 의식해 알부르한을 선택했다고 분석한다. 가디언에 따르면 알부르한은 알바시르 정부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연루되지 않은 베테랑 군인으로 시위대에 친화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군부가 문민정부 수립을 공언하면서도 2년의 과도 군정을 고집하고 있는 만큼 갈등의 씨앗은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다. 시위대는 군부의 양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즉각적인 문민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이날에도 시민 수천명이 수도 하르툼의 국방부 청사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주도한 단체 수단전문직업협회(SPA)는 국방부 청사에서 7일간 연좌시위를 하기로 했다. 수단교수협회는 “권력을 문민정부에 이양해야 한다는 국민의 합법적 요구가 이뤄지도록 후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알부르한 위원장의 연설은 민주화 세력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시민들은 알바시르 정권을 재창조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알자지라도 “알바시르 정권에 충성한 세력이 군부에 너무 많아 시위대는 군부가 권력을 쥐는 것을 경계한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2011년 아랍·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에 빗대기도 한다. 이와 관련, 미 시사지 애틀랜틱은 “아랍의 봄 참가자는 주로 젊은 활동가, 대학생 위주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의사, 기술자 등 좀더 다양한 분야의 조직, 단체가 시위에 참여했다”며 수단 시위가 폭발력이 큰 이유를 설명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4개월간 수만명이 참여한 수단 반정부 시위에 대해 “중산층은 물론 군부 인사의 자녀까지 시위에 동참해 군부가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나경원 의원실 점거농성’ 진보단체 회원 1명 구속영장 기각

    ‘나경원 의원실 점거농성’ 진보단체 회원 1명 구속영장 기각

    법원 “증거 은닉·도주 우려 인정 어려워”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을 기습 점거해 농성을 벌인 진보단체 소속 대학생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은 공동주거침입 혐의를 받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 A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 측은 “A씨가 증거를 인멸하고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기 어렵다”고 이유를 밝혔다. A씨 등 이 단체 회원 22명은 지난 12일 오전 10시쯤 국회의원회관 4층에 있는 나 원내대표의 의원실을 점거하고 “황교안은 사퇴하라”, “나경원은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김학의 사건’을 은폐했다”며 “나경원 원내대표는 논란이 됐던 ‘반민특위 발언’에 대해서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반민특위 망언 나경원은 사퇴하라’, ‘김학의 성 접대 사건 은폐 황교안은 사퇴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농성을 벌이다 국회 방호과 직원들이 제지하자 바닥에 누워 스크럼을 짜기도 했다. 이들은 국회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약 50분 만에 의원회관 밖으로 끌려나갔고, 이후에도 의원회관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이어가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A씨를 제외한 나머지 21명은 앞서 모두 석방됐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나경원 의원실 점거농성’ 학생단체 회원 1명 구속영장 청구

    ‘나경원 의원실 점거농성’ 학생단체 회원 1명 구속영장 청구

    지난 12일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나 원내대표 의원실에서 점거 농성을 벌인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 1명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청구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공동주거침입 혐의로 지난 13일 신청한 이 단체 회원 A씨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청구됐다고 14일 밝혔다. 앞서 A씨를 포함한 이 단체 회원 20명은 지난 12일 오전 10시쯤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나 원내대표 의원실을 기습 점거해 “김학의 성접대 은폐 황교안은 사퇴하라”, “반민특위 발언 나경원은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약 50분 동안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날 의원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전자파학회 세미나에 참석한다며 들어온 뒤 기습적으로 의원실을 점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점거 후 구호를 외치던 학생들은 국회 방호팀에 의해 끌려나갔다. 이들은 경찰 버스 안에서도 구호를 외치고 몸부림을 치는 등 거세게 저항했다.이 단체 소속 대학생들은 지난달 20일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나 원내대표의 지역구 사무실을 항의 방문해 면담을 요청한 바 있다. 당시 이들은 ‘아베 수석대변인 나경원은 사퇴하라’, ‘적폐청산 반대하는 나경원 면담 요청’이라고 적힌 간이 현수막을 들고 “면담 요청 거부하는 나경원은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다. 한편 구속영장이 청구된 A씨를 제외한 나머지 21명은 모두 석방됐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세월호 참사 5주기…“전면 재수사·책임자 처벌” 외친 촛불

    세월호 참사 5주기…“전면 재수사·책임자 처벌” 외친 촛불

    오는 16일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지난 13일 유족들과 시민들이 서울 도심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유족들과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세월호 참사 재수사 및 책임자 처벌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4·16 연대와 서울시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기억, 오늘에 내일을 묻다’라는 이름의 세월호 참사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의 장훈 운영위원장은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었을 때, 해양경찰이 선원들만 구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전부 살아 있었다. 누가 우리 아이들을 죽였느냐”면서 “국가는 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구조를 방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유족들은) 단 한가지를 요구한다. 우리 아이들, 304명의 국민을 죽인 살인자를 처벌해 달라는 것”이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두 번이나 세월호 참사 재수사를 천명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켜달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참을 호소했다. 박래군 4·16 연대 공동대표도 “우리는 5년 전의 참사를 보며 ‘4월 16일 이후는 그 전과 달라야 한다’고 다짐했다”면서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을 꼭 처벌해 보다 안전한 사회,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문화제는 낮부터 ‘국민참여 기억무대’로 시작됐다. 이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플래시몹, ‘세월호 참사 5주기 대회’ 등이 이어졌다.특히 이날 오후 4시 16분쯤 열린 ‘잊지 않을게’ 대학생 대회에서는 참여자들이 노란 우산을 들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뜻의 대형 리본 모양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 이날 광화문광장에서는 각종 부스가 설치돼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가방고리 만들기 체험, 세월호 기억물품 나눔행사 등이 열렸다. 아울러 시민사회단체들은 서울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과 5·18 역사왜곡 등 적폐청산을 촉구하는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개혁 역행 저지, 사회 대개혁 시국회의’ 집회를 열었다. 4·16 연대 회원인 서지연씨는 무대에 올라 “참사 때 배가 가라앉는 것을 TV로 보면서도 ‘다 구조했다’는 말에 속아 안도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두려움에 떨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린다”면서 “(참사 당시) 위험하니까 탈출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끝까지 진실을 밝혀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친박 단체가 이날 오후부터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105개 중대를 배치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으나 우려했던 충돌은 없었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김정남 암살 연루 인물 모두 ‘자유’…베트남 여성도 곧 석방

    김정남 암살 연루 인물 모두 ‘자유’…베트남 여성도 곧 석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던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31)이 석방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김정남 암살에 연루됐던 인물들은 전원 자유의 몸이 됐다. 13일 AFP 통신에 따르면 흐엉의 변호인은 이날 기자들에 “5월 3일 석방될 것이라고 교도소 당국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흐엉은 아주 쾌활하게 지내고 있으며 석방 즉시 베트남 하노이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진범은 범행 후 국외로 도주한 네 명의 북한인이다. 흐엉은 자유를 얻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흐엉은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7·여)와 함께 2017년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아왔다. 흐엉은 리얼리티 TV용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는 북한인들의 말에 속아 살해 도구로 이용됐을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말레이시아는 북한인 용의자 4명을 ‘암살자’로 규정하면서도 북한 정권을 사건의 배후로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시티 아이샤를 석방한 상황에서도 지난달 14일 공판에서 흐엉에 대한 공소를 취소하지 않고 재판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베트남의 반발에 이달 1일 흐엉에 대해 살인 혐의 대신 위험한 무기 등을 이용한 상해 혐의로 공소를 변경했다. 흐엉이 상해 혐의를 인정하자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3년 4개월을 선고했다. 흐엉의 석방은 흐엉이 지난 2년간 구속돼 재판을 받으며 형기를 상당 부분 채운 상황에서 모범수로 인정돼 감형이 이뤄졌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댓글 공작’ 지휘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 보석으로 석방

    ‘댓글 공작’ 지휘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 보석으로 석방

    경찰의 댓글 여론 공작을 지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법원에 보석을 청구해 풀려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강성수 부장판사)는 어제(11일) 조 전 청장의 보석 청구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조 전 청장은 이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조 전 청장은 지난 2010년 1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서울지방경찰청장과 경찰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보안·정보·홍보 등 휘하 조직을 동원해 이명박 정부에 우호적인 글을 게시하게 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구속기소 됐다. 당시 이 같은 방식으로 작성한 글은 약 3만 7000건에 이른다. 해당 글들은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구제역, 김정일 사망, 유성기업 노동조합 파업, 반값 등록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제주 강정마을 사태, 정치인 수사 등 전방위를 다뤘다. 그러나 조 전 청장은 “정치공작, 댓글 공작으로 몰아가는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질서 유지를 위한 댓글 활동은 경찰 본연의 임무”라고 주장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교황 남수단 지도자들 앞 ‘무릎’, 수단 군부-알바시르 축출 시위대 충돌할 수

    교황 남수단 지도자들 앞 ‘무릎’, 수단 군부-알바시르 축출 시위대 충돌할 수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혹한 내전을 겪은 남수단 정부와 반군 지도자들의 발에 입을 맞췄다. 교황은 11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의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이틀 동안 진행된 피정을 마치는 강론을 한 뒤 평소 아픈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이들의 발에 입을 맞추는 유례없이 낮은 모습을 보여줬다. 교황은 “내전으로 돌아가지 말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평화를 위해 나아가라”면서 “여러분 사이에 갈등과 의견 충돌이 있겠지만, 이를 여러분 사이에서만, 즉 사무실 안에만 가둬두고 사람들 앞에서는 손을 잡으라. 그러면 여러분들은 남수단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발언을 마친 뒤 갑자기 남수단 지도자들의 앞으로 가더니, 수행원의 부축을 받아 무릎을 꿇고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인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 키르 대통령을 보좌하는 부통령 세 명의 발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이날 남수단과 국경을 맞댄 수단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가뜩이나 불안한 남수단 평화협정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염려가 이런 행동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도가 1200만명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수단은 2011년 이슬람 국가인 수단에서 독립해 한국인에게는 고(故) 이태석 신부가 헌신적으로 봉사한 곳으로 친숙하다. 이 신부는 2001년 내전과 빈곤에 시달리던 남수단의 오지 톤즈 마을에 정착한 뒤 움막 진료실을 만들어 밤낮으로 환자들을 돌보다가 2008년 대장암 선고를 받고, 2010년 선종했다. 남수단은 2013년 말 키르 대통령 지지자와 마차르 전 부통령의 추종자 사이에 교전이 벌어진 이래 5년 동안 40만명이 숨지고, 수백만명이 터전을 잃는 내전의 수렁에 빠졌다.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 전 부통령은 지난해 9월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다음달까지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한편 수단을 30년 통치해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독재자로 꼽혀온 오마르 알바시르(75) 수단 대통령은 군부 쿠데타에 의해 축출돼 구금 중이다. 4개월 가까이 농성을 벌인 수단 시위대는 또 다시 군부가 통치하는 데 대해 반발하고 있어 정국이 안정될지는 의문이다. 수단 부통령이자 국방장관인 아와드 이븐 아우프는 이날 국영TV를 통해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정권을 전복했다”고 선언하며 바시르 대통령을 안전한 곳에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AFP통신 등이 전했다. 이븐 아우프 장관은 이어 군사위원회가 앞으로 2년 동안 국가를 통치하고 과도기 말에 공정한 선거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3개월 동안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헌법의 효력을 정지한다고도 발표했다. 아울러 영공을 24시간 동안 폐쇄하고 국경 통행로를 추가 발표가 있을 때까지 폐쇄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수단 정보·보안당국은 이날 전국에서 모든 정치범을 석방한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바시르가 삼엄한 경비 속에 대통령 관저에 있다고 전했다. 또 수단 야당 지도자인 사디크 알마흐디의 아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알바시르와 많은 무슬림형제단 지도자들이 가택 연금 상태”라고 말했다. 군부 쿠데타 과정에서 정확한 인명 피해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하르툼 거리에서 탱크와 장갑차들이 목격됐으며 국방부 건물 주변에는 군인들이 대거 배치됐다.외신은 군인들이 알바시르 대통령의 집권 여당 ‘이슬람운동’ 본부를 급습했다고 전했다. 군부가 알바시르 대통령의 축출을 발표했지만, 시위대는 민간정부를 요구하며 농성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위 단체들의 연합인 ‘자유와 변화를 위한 연합’은 이날 국방장관의 발표가 나온 뒤 성명을 내고 “정권이 같은 얼굴들을 떠올리게 하는 군사 쿠데타를 했다”며 “우리는 쿠데타 성명의 모든 내용을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들에게 군 본부 앞과 모든 지역, 거리에서 농성을 계속할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19일 정부의 빵값 인상 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작한 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로 번졌다. 특히 지난 6일 시위대 수천명이 국방부 건물 주변에서 텐트 농성에 나섰고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 20여명이 숨졌다. 시위를 방관하던 군부가 정권에 등을 돌리면서 알바시르는 권좌에서 밀려났다. 직업군인 출신인 알바시르 대통령은 1989년 6월 민선 정부를 무너뜨리고 국가비상령을 선포한 뒤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30년 동안 집권하며 이슬람 국가로 전환하고 기독교 세력을 소외시켰다. 다르푸르 내전은 2003년 다르푸르 지역 자치권을 요구하는, 기독교계를 주축으로 한 반군과 정부 간 무력 충돌에서 시작해 사망자 30만명과 난민 200만명이 발생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009년과 2010년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알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30년 독재’ 수단 대통령 쿠데타로 축출

    거센 퇴진 압박을 받아 온 아프리카 수단의 오마르 알바시르(75)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다. 아와드 이븐 아우프 수단 국방장관은 11일 국영TV를 통해 “정권은 전복됐으며 알바시르 대통령은 안전한 곳에서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 아우프 장관은 이어 군사위원회가 앞으로 2년의 정권이양 기간에 국가를 통치할 계획이며, 3개월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전했다. 앞으로 24시간 동안 수단 영공이 폐쇄되고 국경 통행로도 추가 발표 때까지 폐쇄된다. 수단 정보보안당국은 전국에서 모든 정치범을 석방한다고 발표했다. 수도 하르툼에서는 30년간 철권통치를 자행한 독재자 대통령의 사임 소식에 시민 수십만명이 거리로 나와 환호했다. 수단에서는 지난해 12월 19일 정부의 빵값 인상에 항의하는 집회가 처음 일어난 뒤 대통령 퇴진운동이 지속됐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실종 소녀, 교황청에 묻혔다

    실종 소녀, 교황청에 묻혔다

    “실종 소녀는 교황청에 암매장됐다?” 교황청이 36년 전 아무런 단서없이 감쪽같이 실종된 에마누엘라 오를란디(당시 15세)가 교황청 내부에 매장돼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밝히기 위해 조사에 착수했다. ANSA통신 등에 따르면 오를란디 가족 변호인인 라우라 스그로는 10일(현지시간) “교황청이 의혹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기로 승인했다”며 “그들이 본분을 다해 36년 전 벌어진 일의 진실을 밝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코리에레델라세라 등 이탈리아 언론은 지난 달 오를란디 가족이 오를란디가 바티칸 시국에 위치한 테우토니코 묘지에 묻혀 있음을 암시하는 익명의 편지를 지난해 여름 받은 뒤 교황청에 이 서한을 전달하고 이 묘소를 열어볼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교황청은 이같은 보도가 나온 뒤 해당 요청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 지척에 자리한 테우토니코 묘소는 로마에 거주하는 독일어와 플랑드르어 사용자들이 주로 묻히는 곳이다. 오를란디는 1983년 로마 시내 한복판에서 음악 레슨을 받은 직후 종적을 감췄다. 교황청 직원 딸인 오를란디의 실종은 갖가지 의혹을 낳았고, 이탈리아 최악의 미제 사건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암살을 시도했다가 투옥된 터키 출신 용의자 석방을 이끌어내기 위한 세력에 의해 납치됐다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오를란디가 교황청 내부의 성범죄자에 의해 희생됐다거나, 그의 실종이 교황청과 마피아 사이의 검은 거래와 연관됐다는 각종 미확인 소문도 돌았다. 2012년에는 바티칸 경찰의 난교 파티를 은폐하기 위해 마피아를 사주해 저지른 일이라는 주장이 나왔고, 바티칸 은행의 거액 투자 실패와 관련, 관련 내막을 알고 있는 오를란디의 아버지를 협박하기 위해 그를 납치했다가 죽이게 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로마 시내 중심가에 있는 주이탈리아 교황청 대사관 건물에서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하던 중 여성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발견돼 이 뼈가 오를란디일 수도 있다는 추정이 제기됐다. 하지만 DNA 분석 결과 오를란디와 무관한 남성의 유골로 드러났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리우올림픽 마라톤 X자 시위 페이사 이제야 조국의 따듯한 격려

    리우올림픽 마라톤 X자 시위 페이사 이제야 조국의 따듯한 격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마라톤 결승선을 두 번째로 통과하면서 조국의 민주화를 외치며 두 팔을 교차시키는 오로모 시위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페이사 릴레사가 3년 만에 조국 에티오피아 정부로부터 따듯한 격려를 받았다. 1년 전 취임해 많은 민주화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 아흐메드 아비이 총리 정부는 지난해 10월 릴레사에게 조국으로 돌아올 것을 설득했고 최근 에티오피아의 새로운 자유를 위해 희생을 치렀다는 평가와 함께 1만 7000 달러(약 19435만원)을 포상금으로 지급했다고 영국 BBC가 10일(현지시간) 전했다. 에티오피아 최대 종족인 오로모 공동체는 팔을 머리 뒤로 들어올리며 교차시키는 시위로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는데 이 시위는 최대 종족이면서 재산을 빼앗기고 경제적으로 소외되면서 2015년 11월부터 시위를 시작해결국 지난해 2월 전임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총리를 퇴진시켰고 그 뒤를 아비이 총리가 잇고 있다. 2년 동안 망명 생활을 견뎌온 페이사는 이날 사힐레워크 제우드 대통령, 아비이 총리 등과 어울려 이제 그의 두 팔은 자유로워졌다는 동작을 취한 뒤 “상금을 받아서 기쁜 것이 아니라 내 싸움이 우리 나라에서 성과를 거뒀다는 점을 목격하게 돼 기쁘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시위가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자 에티오피아 정부는 그가 조국에 돌아와도 환영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친척들이 감옥에 있으며 민주적인 권리를 얘기하는 순간 곧바로 살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페이사는 2000년 이후 올림픽 남자 마라톤 2위 안에 든 첫 에티오피아 선수로 기록되는데 에티오피아로 귀국한 뒤 대회 출전을 전혀 하지 못해 조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았다. 역시 오로미아 출신인 아비이 총리는 취임 몇달 만에 비상계엄령을 해제하고 수천명의 정치범을 석방하고, 반체제 인사들의 귀국을 허용하고 수백개의 웹사이트와 TV 채널을 허용하는 등 과감한 민주화 조치를 밟고 있다. 여기에다 에리트레아와 영토 분쟁을 벌였던 지역을 과감히 포기함으로써 전쟁을 끝내고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해 국교를 정상화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마약 혐의 로버트 할리 영장 기각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60)씨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수원지방법원은 10일 하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했으나 “피의 사실에 대한 증거 자료가 대부분 수집돼 있고 잘못을 깊이 뉘우치면서 영장 기재 범죄를 모두 인정,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법원은 또 “하씨의 주거가 일정한 점, 종전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에서 하씨를 구속해야 할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씨는 곧바로 석방됐으며 불구속 상태에서 추가 수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경찰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하씨는 이날 오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수원지원에 도착해 취재진에게 “함께한 가족과 동료들에게 죄송하고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인 뒤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하씨는 이달 초 서울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중순 하씨가 마약을 구매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서 지난 8일 하씨를 체포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예심제도’ 만들어 거짓 조서 용인… 판결은 통과의례 불과했다

    ‘예심제도’ 만들어 거짓 조서 용인… 판결은 통과의례 불과했다

    100년 전 봄, 빼앗긴 나라를 되찾자는 염원을 담아 태극기를 든 조선인들을 일제는 무참히 탄압했다. 일제의 헌병과 경찰은 만세를 외치는 조선인들을 향해 총검을 겨눴고, 생존자들은 체포한 뒤 수사를 빌미로 가혹하게 고문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산하에 있던 사법부는 이들을 그저 치안을 어지럽히고 혼란을 일으킨 범죄자로 규정했다. 일제의 혹독한 핍박은 판결문에서 철저히 가려졌다. 10일 국사편찬위원회 3·1운동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919년 3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일어난 만세운동은 전국 각지와 만주·연해주 등 해외 99건을 포함해 총 1692건, 참가자들은 103만 73명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드러난 것만 100만여명으로 실제 참가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육군성이 발간한 ‘조선 소요사건 관계서류’에는 1919년 3월 1일부터 5월 10일까지 전국에서 3·1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된 조선인이 2만 6812명이라고 기록됐다. 이 가운데 1만 1846명이 검사에게 송치돼 3695명은 훈계방면 조치를 받았고 9436명은 태형(8697명)과 구류(511명), 과료(228명) 등으로 즉결 처분됐다.일제는 1912년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조선태형령을 제정해 즉결 심판 대상이 되는 행위를 한 조선인들에게 태형을 실시하도록 했다. 특히 3·1운동 참가자들이 너무 많아 일제는 이들을 신속하게 처벌하기 위해 1919년 4월 15일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제령7호)’도 제정했다. 이들을 수용할 공간과 비용이 턱없이 부족해지자 비교적 혐의가 가볍다고 판단된 독립운동 참가자들은 태형으로 처벌했다. 주로 동네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참가할 것을 독려(판결문엔 ‘협박·선동’으로 표기)한 경우 태형 90대의 처벌을 받았다. 일제 사법부는 법에 정해진대로 재판을 진행했다. 3·1운동을 주도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대표 33인은 1920년 8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의 관할권 문제로 ‘공소불수리’ 결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인들에게만 적용한 여러 특례조항을 둬 독립운동가들을 옥죄었다. 대표적으로 예심제도가 꼽힌다. 1912년부터 조선에서 전면 실시된 예심제도는 검사의 신청으로 예심판사가 사건을 먼저 심리한 뒤 객관적으로 범죄 성립에 확신이 있을 때만 재판을 시작하도록 한 제도다. 혐의가 불분명한데도 검사가 함부로 기소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인권보호 차원의 제도였으나 일제는 이를 조선인들을 핍박하는 수단으로 변질시켰다. 예심 단계에서 검사나 사법경찰은 피의자를 무기한 붙잡아 둘 수 있었고, 이들이 작성한 조서가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로 쓰였다. 인권을 보호하려고 만든 제도를 자백을 할 때까지 가둬놓고 갖은 고문을 가해 거짓조서를 만들어 낸 도구로 활용한 셈이다. 그러면서 사법경찰권은 강화시켰고 공판 절차를 간소화해 예심제도는 더욱더 독립운동가들의 숨통을 조였다. 도면회 대전대 교수는 ‘근대 사법제도와 일제강점기 형사재판’에서 “일본 형사소송법에서는 현행범만 제한적으로 검사가 범죄 현장에서 예심 판사에게 속하는 강제처분을 하도록 했으나 조선형사령에서는 현행범의 경우 검사뿐 아니라 사법경찰도 예심 판사에 속하는 처벌을 할 수 있었고, 비현행범도 검사나 사법경찰이 ‘수사의 결과 급속한 처분을 요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 공소 제기 전에 영장을 발부해 각종 검증 및 수색, 신문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919년 9월 남대문역 인근에서 새로운 총독으로 부임할 사이토 마코토의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진 강우규(60) 의사의 1920년 2월 25일 경성지방법원 판결문에서 강 의사의 공소사실을 인정한 근거는 대부분 예심 신문조서였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강 의사는 법정에서 폭탄을 갖게 된 경위 등을 자백한 것으로 판결문에 드러나 있을 뿐 그 외에는 강 의사의 폭탄을 옮겨주다가 공범으로 지목된 피고인 2명을 비롯해 거사 현장에 있던 증인 13명의 예심 신문조서로 유죄를 인정했다. 항소·상고 모두 기각돼 강 의사는 그해 11월 사형에 처해졌다. 청년외교단과 애국부인회 주도자들의 1920년 6월 29일 대구지방법원 판결문에는 당사자들의 법정 진술을 인용한 내용이 아예 없다. 2심인 그해 12월 27일 대구복심법원 판결문에서는 김마리아를 비롯한 피고인 3명의 공판정 진술만 인용됐을 뿐 여전히 1심과 같이 조서들이 핵심 근거로 쓰였다. 조서로만 판단하고 재판을 서둘러 끝낸 것으로 보인다. 수사와 예심 단계에서 작성되는 신문조서에 독립운동가들의 자백을 담기 위해 일제는 모진 고문과 가혹행위를 가했다. 김마리아 열사는 너무 심한 고문을 당해 1심 판결 선고 전인 1920년 5월 22일 병보석으로 석방되기까지 했다. 유관순 열사는 병원 치료조차 허용되지 않아 끝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마약 혐의’ 로버트 할리 석방…구속영장 기각배경은

    ‘마약 혐의’ 로버트 할리 석방…구속영장 기각배경은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방송인 로버트 할리(한국명 하일·61)가 10일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체포된 지 이틀 만에 석방됐다. 할리는 법원이 구속 영장을 기각한 직후인 이날 오후 7시 55분쯤 구금돼 있던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에서 나왔다. 그는 체포됐을 당시와 같은 복장에 검은색 모자, 하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할리는 심경과 혐의를 인정하는지 취재진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거듭 “죄송합니다”고 말한 뒤 승용차로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이날 할리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수원지법 박정제 판사는 “피의사실에 대한 증거자료가 대부분 수집돼 있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면서 영장 기재 범죄를 모두 인정하고 있어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앞서 할리는 이달 초 자신의 서울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지난 8일 오후 4시 10분쯤 서울 강서구의 한 주차장에서 체포됐다. 체포 이후 진행된 할리의 소변에 대한 마약 반응 간이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왔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전날 할리에 대한 구속 영장을 신청했지만 이번 기각 결정으로 인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이어가게 됐다. 경찰은 할리가 마약 판매책의 계좌에 수십만원을 송금한 사실을 확인하고 판매책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출신인 할리는 1986년부터 국제변호사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해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등에서 특유의 구수한 부산 사투리와 입담을 선보이며 방송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1997년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했다. 부산에서 거주하면서 ‘영도 하씨’로 본관과 성을 직접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할리는 코레일, 서울시 강남구를 비롯해 전북도, 우체국 국제특송 EMS, 광주비엔날레, 공룡세계엑스포 등 다양한 분야와 지역에서 홍보대사 및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발하게 활동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강용석 석방 후 김부선 페이스북 “가족 비밀 듣고 소름돋아 헤어져”

    강용석 석방 후 김부선 페이스북 “가족 비밀 듣고 소름돋아 헤어져”

    “하늘이 아신다. 내 몸이 증거다. 법정에서 보자”‘사문서 위조’ 혐의로 지난해 10월 구속됐던 강용석 변호사가 최근 2심에서 무죄로 석방된 가운데 배우 김부선씨가 다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향해 날선 공세에 나섰다. 강씨는 구속되기 직전까지 김씨의 변호인으로서 김씨와 이 지사 간 공직선거법 위반,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수행했다. 김씨는 9일 자신의 SNS를 통해 “하늘이 아신다. 내가 증거다. 법정에서 보자”라고 한데 이어 다시 “경찰서에서 이재명과 헤어진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다. 아무도 모르는 가족의 비밀을 듣고 소름돋아 헤어졌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김씨 “형사고소 취하해 줬더니 이재명 지지자들이 나를 고발했다”고 했다. 이는 이모씨 등 2019명으로 구성된 이 지사의 지지자 모임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시민들로 모인 공익고발단’은 올 1월9일 김씨와 공지영 작가, 바른미래당 경기지사 후보였던 김영환 전 의원, 시인 이창윤씨 등 4명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한 것을 말한다. 김씨와 김영환 전 의원에게는 무고, 명예훼손,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직접 고소한 적이 없는 공지영 작가와 이창윤씨와 관련해서는 명예훼손,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만 포함했다. 김씨는 이와 관련해 “(이 지사에 대해) 민사는 취하 안 했습니다. 다 취하하면 이 지사가 또 공격할 수도 있다고 강 변호사가 알려줬다”고 했다. 김씨는 이날 앞선 글에서 “하늘이 아신다. 내가 증거다. 법정에서 보자”라며, 관련 재판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어 “이재명은 옆풀떼기들 시키지 말고 날 직접 고소하기를 바란다”며 “이런 자가 고위 공직자 도지사라니 절망이다”고 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트럼프 별장 침입 중국여성, 몰카 탐지장치 소지

    트럼프 별장 침입 중국여성, 몰카 탐지장치 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별장이 있는 마러라고에 지난달 30일 침입했다가 체포된 중국 여성 장위징(32)이 거액의 현금과 여러 개의 휴대전화 심카드, 심지어 몰래카메라를 탐지할 수 있는 장치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로이터통신은 8일(현지시간) 미 검찰이 재판에서 장을 체포한 후 그의 호텔 방을 수색한 결과 수상스런 물건들이 다량으로 발견됐다며 그를 보석으로 석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장의 구속기간을 일주일 더 연장했다. 장은 체포됐을 당시 2개의 중국 여권 및 USB, 하드드라이브, 노트북, 4대의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었다. USB에는 악성 소프트웨어가 설치돼 있었다. 마러라고 리조트 인근 콜로니호텔 내에 있던 장의 숙소를 경찰이 수색한 결과 몰래카메라를 찾아내기 위한 전파추적기, 또다른 휴대전화 1대, 9개의 USB드라이브, 5개의 휴대전화 심카드, 8000달러(약 916만원)가 넘는 현금 등이 나왔다. 장은 지난 3월 28일 중국 상하이발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입국한 후 플로리다주에 있는 마러라고로 이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측은 “장이 여러 차례 수사관에게 거짓말을 했으며 미국과 전혀 관계가 없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어 “현재 장위징에 대한 혐의는 스파이나 첩보 등은 아니지만 규명돼야할 의혹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 연방수사국(FBI)은 장위징 사건을 중국 첩보활동의 일환으로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다음주 중 장을 정식으로 기소할 계획이다. 장은 재판에 수갑을 찬 채로 임했으며 재판 과정을 이해하고 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예스”라고만 답한 것 이외에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를 치고 있던 중에 침입한 중국 여성에 대해 ‘우연한 성공’이라며 신경쓰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겨울 백악관’으로 불리는 마러라고 리조트의 보안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전쟁 중에도 정쟁 올인 이승만… 산불도 정치에 활용하는 보수 야당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전쟁 중에도 정쟁 올인 이승만… 산불도 정치에 활용하는 보수 야당

    전쟁엔 관심 없다, 정쟁에 ‘올인’할 뿐. 1951년 7월 초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시작됐다. 교착된 전선에서는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고지전이 전개됐다. 지난 1년 전면전 때보다 더 많은 군인이 희생당하는 처절한 전투였다. 전선에서 500여킬로미터 떨어진 임시수도 부산. 이승만 대통령은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산혈해의 전선에는 관심이 없었다. 국민을 현혹한 ‘북진통일’, ‘휴전협상 반대’는 당시 한국군으로는 이룰 수 없는 허황한 구호였다. 당시 그에게 절박한 것은 야당이 압도하는 2대 국회를 전복시키거나 장악하는 일이었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2대 총선에서 이승만 세력은 궤멸했다. 전체 210석 가운데 57석만 차지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제헌의회의원 선거에 불참했던 지사들이 대거 출마해 당선됐다. 과반이 훨씬 넘는 126석이 무소속이었다. 당시는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했다. 이승만의 재선은 불가능했다.총선 결과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국민은 제주4·3과 여순 사건 학살의 배후, 백범 김구와 몽양 여운형 등 민족지도자의 잇따른 암살의 배후에 이승만이 있다고 믿었다. 동족의 고혈을 일제에 바친 자들을 처단하기 위한 반민족행위자처벌특별위원회(반민특위)를 강제로 해산시킨 것도 이승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심은 이승만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는 2대 총선을 미루려 했다. 그는 이미 지방의회의원 선거도 무산시킨 터였다. 제헌의회가 1949년 7월 지방자치법을 제정해 8월 15일 이후 지방의회를 구성하도록 했지만, 이승만은 제주4·3, 여순 사건 등을 핑계로 미뤘다. 12월에는 아예 지방의회 구성을 무기한 유보하도록 지방자치법을 개정해버렸다. 미국 정부가 눈치 챘다. 한반도에서 소련과 각축하고 있던 미국은 국제여론에 민감했다. 제주4·3 문제로 소련에 된통 당한 터였다. 딘 구더햄 애치슨 국무장관이 나서서 이승만에게 경고했다. 총선을 연기한다면 대한군사경제지원을 철회하겠다! 앞서 1월 태평양 미국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빼버린 애치슨이었다. 미국이 경제지원까지 중단한다면 이승만은 끝장이었다. 이승만은 꼬리를 내렸다. ‘미국의 등쌀에 밀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실시한 총선이었다.이후에도 악재가 잇따랐다. 6·25전쟁이 터졌고, 27일 새벽 몰래 서울을 버렸고, 대전에서 ‘국군이 북진 중’이라고 거짓 방송을 했다. 1951년 1월엔 간부들이 식량과 피복을 빼먹고 뜯어먹어 장정 1000여명이 얼어 죽고 굶어 죽고, 수만명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던 국민방위군 사건이 터졌다. 간부들은 이승만의 사조직 대한청년단 단원들이었다. 2월엔 국군이 어린이 359명을 포함해 민간인 719명을 학살한 거창양민학살 사건이 터졌다. 그렇다고 포기할 이승만이 아니었다. 1951년 7월 휴전협상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본격적인 정치공작에 나섰다. 2대 대통령 선거를 8개월여 앞둔 1951년 11월 말 개헌 추진을 선언했다. 29일 공비 소탕을 명분으로 지리산 주변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도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날 국무회의는 대통령직선제를 뼈대로 한 개헌안도 의결했다. 30일 국회에 개헌안을 제출했다. 대통령을 국민 직접선거로 뽑자는 것이었다. 군사, 경찰, 행정권이 압도하는 전시체제였으니 직접선거로 한다면 승산은 충분했다. 북의 남침처럼 그야말로 전격전이었다. 11월 당시 교착된 160여마일 전선에서는 근접전이 격렬해지고 있었다. 11월 19일 국군은 동부전선의 요충지 월비산을 적에게 내줬다. 11월 30일엔 양구 북방 어은산과 백석산 사이의 바위 하나(크리스마스고지)를 두고 유엔과 중공군 사이에 격전이 벌어졌다. 대규모 전투의 전초전이었다. 펀치볼,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백석산, 백마고지, 화살머리고지, 교암산, 지형능선, 벙커고지, 삼각고지 등은 차라리 병사의 거대한 무덤이었다. 1952년 1월 18일, 국회는 정부 개헌안을 부결시켰다. 찬성은 14표에 불과했고, 반대는 개헌선을 넘는 143표였다. 야당은 이승만이 도발하지 못하도록 내각제 개헌안을 제출했다. 대통령 직선제 도발로 벌어진 정쟁은 전면전으로 발전했다. 그날도 유엔군의 대대적인 북폭이 있었고, 고지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승만은 ‘플랜2’를 꺼냈다. 여순 사건을 핑계로 미뤘던 지방의회의원 선거를 전쟁 중에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방의회를 앞세워 국회를 압박하려는 것이었다. 경찰, 행정권은 물론 군까지 동원할 수 있는 전시체제에서 여당의 지방의회 장악은 여반장이었다. 1952년 4월 25일과 5월 10일 시읍면, 도 의회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예상대로 이승만계가 싹쓸이했다. 관제 선거로 들썩이던 4월 23일 중부전선에선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유엔군이 연천을 내줬다. 평강과 금성에선 대규모 근접전이 벌어졌다. 5월 8일 중공군은 모든 전선에서 공세를 펼쳤다. 연천 탈환을 위한 교전이 7일째 계속됐다. 유엔군은 평양, 사리원, 희천, 정주, 청진, 수안 등 후방의 병참기지 철교 등을 폭격했다. 5월 이승만의 국회 침공이 본격화했다. 지방의원들이 피란지 부산의 국회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민족자결단, 백골단, 땃벌떼 등 정체불명의 폭력배들이 가세해 국회를 무력화시켰다. 이들의 요구는 하나, 국회 해산이었다. 경찰은 수수방관했다. 5월 25일 이승만은 부산·경남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공비 소탕과 병참기지 방어가 명분이었다. 그러나 공비 소탕은 1951년 11월 25일 창설된 백야전투사령부가 4단계 작전을 통해 1952년 3월 14일 종료를 공식 선언한 터였다. 계엄군은 25일 새벽부터 소탕에 나섰다. 공비가 아니라 야당 의원이었다. 26일 아침엔 국회의원 통근버스를 크레인으로 끌고 헌병대로 연행했다. 이어 국제공산당 프락치 사건을 발표했다. 국회의원 10명이 구속됐다. 국회 기능은 마비됐다. 6월 4일 이승만은 대통령 직선제에 내각제 요소를 짬뽕한 발췌개헌안을 발의했다. 6월 11일 지방의원들이 다시 국회로 몰려와 직선제 통과 시위를 벌였다. 미국 대사관 난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전선에서는 6월 14일 중공군이 중부전선 철의 삼각지에 무려 7000여발의 포탄을 유엔군 진지에 퍼부었다. 5일 동안 중공군 1000여명이 사망했고, 그로부터 3개월간 아군 971명이 전사하고 3120명이 부상했다. 철의 삼각지대는 말 그대로 주검이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룬 ‘시산혈해’였다. 6월 20일 김성수 이시영 김창숙 등 원로들의 반독재호헌구국선언대회가 폭력배들에 의해 피로 얼룩졌다. 국회에서는 발췌개헌안이 상정됐지만, 정족수 미달로 의결할 수 없었다. 이승만은 구속 의원들을 석방했다. 국회 표결에 참여하라는 것이었다. 30여개 고지전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7월 초부터 중공군은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을 장악하기 위해 대대 규모의 공격을 해왔고, 7일엔 탱크 14대를 앞세우고 유엔군 진지를 공격했다. 유엔군은 판문점 동쪽 북한군 3개 진지를 공격했다. 수도고지 공방은 8월 초 사단 규모의 대규모 전투로 발전했고, 하룻밤에 주인이 다섯 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미국은 7월 9일 한국전 희생자가 전년도(1951년)보다 552명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임시수도 부산에선 7월 초부터 미군이 군정을 다시 실시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신익희 의장, 조봉암 부의장 등이 도피 중인 의원들에게 국회 등원을 설득했다. 7월 4일 헌병이 국회의사당과 회의장을 포위한 가운데 발췌개헌안에 대한 표결이 이루어졌다. 185명 출석 166명 찬성, 기권 3명, 반대 0명으로 통과됐다. 미국의 간섭이 주효했다. 미국은 휴전협상에 반대하는 이승만과 타협을 하고, 직선제를 지지했다. 이승만은 전쟁과 재난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권력 장악을 위한 정쟁 승리에 ‘올인’했다. 지난주 강원도 시민과 소방관들은 산불과 사투를 벌였다. 그 와중에 자유한국당 안팎에선 ‘북한과 협의? 빨갱이 정부!’라고 색깔론을 제기하거나 ‘촛불 정부? 산불 정부!’라고 이죽거렸다. 원내에서는 재난 컨트롤타워인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국회에 잡아뒀다. 재난은 외면하고 정쟁에 몰두하는 것이 이승만의 후계 집단답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브라질서 15년 옥살이 40대 살인범, 국내서도 15년 징역형

    19년전 브라질에서 한인 채권자를 살해한 혐의로 15년을 복역한 뒤 강제추방된 40대 사업가가 국내에서도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형사11부(이창열 부장판사)는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A(49) 씨와 B(46) 씨에 대해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반인륜적 범죄는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되거나 용납할 수 없다”며 “피해자는 극심한 고통 속에 생을 마감했고, 유족은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A 씨는 한국에서 원단업체를 운영하던 중 사업에 실패하고 채권자들로부터 빚 독촉을 받자 1999년 브라질로 출국, 이듬해인 2000년 초순쯤 현지에서 원단업체를 차려 운영했다. 그는 업체 운영을 위해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던 한인 환전업자 C(당시 47) 씨를 포함해 지인으로부터 사업자금을 빌렸다가 반환 독촉을 받고 자금압박에 시달리게 되자 C 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A 씨는 현지에서 만나 알게 돼 직원으로 데리고 있던 B 씨에게 범행을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이후 두 사람은 C 씨 살해는 물론 돈까지 빼앗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A 씨는 2000년 8월 15일 오전 C 씨에게 전화를 걸어 “미화 3만 달러를 환전하려는 사람이 있으니 돈을 준비하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어 같은 날 오후 사무실에서 B 씨와 함께 C 씨를 목 졸라 살해하고, 현금 미화 1만 달러를 강탈했다. 당시 A 씨는 브라질 경찰에 붙잡혔으며, B 씨는 과거 자신이 이민했던 나라인 파라과이로 달아났다. 현지에서 재판에 넘겨진 A 씨는 징역 30년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23년 4월로 감형됐고, 거의 15년을 복역한 2016년 6월 가석방돼 결국 한국으로 강제추방됐다. 검찰은 국내로 입국한 A 씨를 검거한 뒤 우리 형법에 따라 처벌하기 위해 수사에 착수했다. 아울러 파라과이로 도주했다가 2010년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확인된 B 씨에 대한 수사에도 속도를 냈다. 검찰은 2017년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해 지난해 5월 브라질 수사당국으로부터 사건 관련 자료를 건네받아 수사한 끝에 지난해 말 이들 두 사람을 재판에 넘겼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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