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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선사시대/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3)

    ◎서포항 신석기유적서 「고래뼈 노」 출토/울주반구대 암각화엔 4척의 배그림 우리나라에서는 이집트와 같이 오래된 배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그러나 중국 은나라때의 갑골문자에 배를 의미하는 문자가 있고,일본에서도 조몬시대의 통나무배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우리나라에도 아주 오랜 선사시대부터 배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실제로 함경북도 서포항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고래뼈로 된 노가 출토되었는데 그 시기는 기원전 2000년 이전이다.그 노는 길쭉한 불삽 모양으로 길이가 31㎝,끝의 폭이 13㎝인데 이것을 장대끝에 단단히 매어 노로 사용했을 것이다.노의 발견은 당시 이미 배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신석기시대의 돌도끼는 여러 용도가 있었겠지만 그런 배를 만들기 위한 나무를 찍어내고 또한 속을 파내는데 이용되었을 것이다.한편 함경북도 무산 범의구석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는 주거지 바닥에 널판자가 깔려 있었다.이것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목재가공 수준을 보여주며 시야를 넓혀보면,판자를이어붙여 만드는 구조선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을 뜻한다.그리고 경상남도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에 있는 반구대의 암각화는 신석기시대로부터 청동기시대까지의 조각으로 추정되는데,여기에는 수많은 고래와 함께 4척의 배가 그려져 있다.배에는 각각 18명,11명,8명,4명의 사람이 타고 있는데 8명이상이 타고 있는 배들은 모두 반달모양으로 선체중앙부분과 비슷한 길이로 선수·선미가 올라와 있는,비교적 잘 만든배의 형태이다.이와는 달리 4명이 탄배는 선체 중앙부분이 길고 선수미가 조금 올라온 배로 시대적으로 앞서는 약간 원시적인 배의 모습이다.그런데 이들 배에는 특이하게도 노가 일체 보이지 않을뿐 아니라 돛도 없다.물론 조각자가 일부터 빠뜨렸거나 아니면 얕은 물에서 삿대만으로 움직이는 배로 볼 수도 있겠으나,선체구조로 보았을때 노로서 움직였던 배임이 분명하다.
  • 인류의 미래 옥죄는 열대림 파괴/리우회담 계기로 본 아마존의 현황

    ◎8초마다 축구장크기 밀림 “증발”/금광업자들,수은버려 강도 오염/기형아 출산원주민 급증… 대책 호소 「지구의 허파」로 불릴만큼 인류의 자원보고인 아마존강 열대림은 진정 사라지고 말것인가. 그동안 세계각국이 경제논리만 앞세워 내팽개치다시피한 환경문제가 오존층 구멍이 계속 커지는등 인류의 존립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져감에 따라 지난 3일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시에서 지구정상회담(유엔환경개발회의)이 열리는등 마지막 남은 원시림보호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리우환경정상회담에서 나온 유엔의 한보고서는 지난 10년동안 열대삼림지역의 훼손이 50%나 증가했으며 매년 1천6백90만㏊가 파괴되고 있어 나무를 다시 심는 양을 초과하고 있다고 밝힌다. 총면적 5백31만8천㎦로 한반도 면적의 25배인 아마존강 밀림은 세계 산림면적의 25%를 차지,지구가족들 산소량의 25%를 대기로 뿜어내고 있다. 그러나 아마존밀림은 브라질이 지난80년대초부터 이곳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유역 곳곳에 개발정착촌을 조성하면서 황폐화의 길로 치달았다.85년이후 더욱 가속화된 파괴로 92년 현재 전체밀림의 약11%가 불태워지거나 벌목꾼등에 의해 잘려나간 상태다.게다가 금채굴업자들이 마구 버린 수은폐기물로 인해 강이 갈수로 오염되고 있어 문제의 심각함을 더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울창한 우림을 자랑하던 북서쪽의 「콘피안가」지역에 있는 국영농장주변은 농장주들의 방화로 요즈음도 불타고 있다.농지와 초지를 개간하기위해 정글에 마구 불을 질러대기 때문이다.과학자들은 『매8초마다 축구장정도의 밀림이 파괴되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한다.이러한 방화로 인해 방출된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등이 태양의 복사열을 가두어 결국에는 지구온난화를 초래함은 물론이다.또한 새로운 의약제의 원료가 될 수백만종의 곤충,식물및 동물군들도 밀림의 황폐화로 멸종될 위기에 놓여있다. 지난해는 황폐화정도가 3년전인 88년에 비해 반 정도로 줄었다.그러나 수천 에이커에 달하는 재배림이 파괴된것 말고도 처녀림 1만1천4백㎦가 파괴돼 여전히 엄청난 규모로 지적되고 있다. 개발에 따른 아마존의 황폐화는 밀림에 살고있던 24만여명의 원시 인디오들의 목숨을 았아가는 비극을 낳았다.말라리아·결핵·인플루엔자등 질병에 대부분 목숨을 잃은 것이다.지금은 2만2천여명으로 추산되는 석기시대 부족인 「야노마미주」만이 남아있다.그런데 이들도 지난80년대에 붐을 이룬 금과 다이아몬드등을 채굴하려는 금광업자들의 출현으로 먼저간 원시인들처럼 비극의 전철을 밟을 위기에 놓여있다. 한편 이들 금채굴업자들이 김분리에 사용한뒤 강에 버린 수은 폐기물로 인한 수은오염문제도 심각하다.대표적인 수은오염지대는 브라질의 론도니아주 마데이라강상류에 자리잡은 포르투벨로지역.아마존강 유역가운데 가장 오지인 이 지역은 금채굴업자가 아무데나 버린 수은때문에 지난83년에 주민수가 30만명이상이었으나 현재 24만명으로 준 상태다. 이곳에서 열대병구급병원의 의사로 있는 레이날도 소우자씨(40)는 수은에 오염된 임산부들이 사산을 수십번이나 했으며 뇌에 이상이 있는 기형아의 출산도 흔하다고 말한다.국립아마존연구소(INPA)가 이지역 어민 65명을 상대로 한 최근의 머리카락 샘플조사결과 50여명이 세계보건기구(WHO)의 허용기준치보다 수은농도가 높게 나타나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줬다. 세계최대의 녹색지대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개발의 탐험」대신 「보호를 위한 탐험」에 나서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구석기때 뗏목·통나무배 첫 등장(배:1)

    ◎5만∼6만년전 인류최초 뜰것 사용/신석기때 배 출현… 시대따라 발전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이다.국토가 좁은 우리는 21세기 우리의 미래를 해양에 걸고 바다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바다에 관심을 키울 새 기획­배이야기를 마련,매주 수요일 과학면에 싣는다.인류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배의 발달 역사, 중요한 해전에서 빛난 전함, 과학기술의 정수를 동원한 새로운 배의 탄생등…을 40여회에 걸쳐 다루게 된다.이 기획은 해군사관학교 김주식박사(서양사),장학근박사(한국사),해군사관학교박물관 정▦술 학예실장등이 집필을 맡는다. 인류는 언제부터 배를 이용하기 시작했을까? 학자들의 연구로 보면 대략 구석기시대부터로 보고 있다.인류문명에서 배의 출현은 연장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약 1백80만년전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남방원인)가 석기를 쓰기 시작한 이래 인류는 연장을 꾸준히 발전시켜왔다.그리하여 영국에서는 30만년전의 나무로 만든 창이 발견된 바도 있다.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만년전에 구석기시대가 끝날때까지 배에 관한 실물 자료는 아직 발견된 바가 없다.다만 고고학의 연구 성과로 5만∼6만년전에 인류는 이미 배를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구석기시대에 지구상에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여러차례 있었는데,그때마다 바닷물의 높이가 낮아지거나 높아졌다. 그리하여 1만8천년전의 마지막 빙하기에는 해수면(해수면)이 지금보다 무려 1백20m가량 낮아지기도 하여 황해바다는 육지가 되고,한국과 일본은 서로 연결되었으며,인도네시아와 같은 섬나라는 동남아시아 대륙과 연결되었다.그런데 이러한 빙하기 동안에도 오스트레일리아는 동남아시아 대륙과 약100㎞폭의 바다로서 격리되어 있었다.한편,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은 5만∼6만년전에 동남아시아 대륙으로부터 건너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다시말해서 그 당시에 인류는 제주해협 정도의 바다를 건널수 있었고,그 수단은 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 당시 인류가 이용한 배의 형태가 어떠한 것인지는 알수 없다.그러나 뗏목배(벌선)아니면 통나무배(독목주)였을것이란 것은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근래에도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이 사용하고 있는 맹그로우브 뗏목배(mangroveraft)와 같은 이런 배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무런 추진장치­예를 들면 노나 삿대,돛도 전혀 없이,오직 바람과 조류,그리고 자신의 손발만으로서 뗏목을 조종하는 모습은 너무도 원시적이라 할 수 있다.그렇더라도 이 당시의 배라는 것은 다만 뜰 것에 지나지 않아 먼 바다를 항해할 수는 없었음을 알수 있다.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배다운 배는 신석기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출현한다. 인류문명에 있어서 배의 등장은 수레와 같은 도구의 발명과 더불어 인류의 삶을 보다 더 풍요롭게 해준 중요한 사건이다.
  • 전통민가 책으로 복원/명지대 김홍식교수 「한국의 민가」 출간

    ◎“건축문화연구에 도움” 학계서 높이 평가 사라져가는 우리나라의 다양한 민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재현시킨 책이 한 건축학 전공 교수의 20여년에 걸친 노력으로 출간됐다. 명지대 김홍식교수가 펴낸 「한국의 민가」(전2권·한길사 펴냄)가 그것.2백자 원고지 5천장 분량에 1천3백여장의 사진과 4백여장의 그림과 도표가 어우러져 제작기간만 5년이 걸린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건축학계로부터 민족건축문화의 획기적인 업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은 민가의 간잡이(설계),공간이용,구조기법,설비 등 전통민가의 전체상은 물론,건축의례와 풍속 그리고 마을과 성읍의 환경계획 등을 상세하게 밝혀내고 있다. 이 책은 민가를 유형별,계층별로 분류하고 각 마을마다 독특한 가옥유형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오막살이집,전퇴집,겹집,양통집,곱은자집 그리고 근세형 주택의 간잡이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또 손님맞이 가사노동,교육과 육아,식생활 등 민가의 공간이용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민가의 구조방식과 구조기법,뼈대방식 등을 분석하고 있다.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원시가옥의 짜임새를 분석·평가하고 구체적으로 암사동 움집의 짜임새를 복원하여 보여준다.또 마을의 터와 집터 잡기,마을과 성읍의 환경계획을 소개하고 구체적으로 정의고을,낙안고을,남도고을 등 몇몇 마을을 선택하여 각 마을에 대한 풍수지리상의 해석,공간의 배치와 축,안길의 구성과 율동,마을 시설물의 이용 등을 살펴본다. 이밖에 민가의 설비와 시설물을 소개하고 있다.곧 헛간,광 등의 경영시설과 부뚜막,상하수 시설,식품저장 등의 수장시설,땔감,등잔 등의 난방과 조명설비 등을 설명하고 집의 꾸밈으로 건축장식,정원시설 등을 다룬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단순히 민가의 건축학적 구조만을 밝혀낸데 그치지 않고 민중들의 주생활에 대해 충실히 소개한 특징을 갖고 있다. 김교수는 『처음에는 전국의 모든 마을을 둘러보고 그 가운데 몇 채씩을 골라 조사한 다음 전국 민가의 간잡이 분포도를 그려보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나 표본 마을을 집중 조사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수밖에없어 아쉬웠다』고 말했다.왜냐하면 우리나라는 기대했던 것보다 문화적으로 너무 넓어 모든 마을을 답사한다는 것이 무리이며 나아가 각 마을의 특수한 몇 채만을 관찰함으로써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결점을 지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중석기 돌화살촉 2백여점을 발견/북제주 고산리서

    【제주=김영주기자】 BC5천년∼BC3천년 것으로 추정되는 중석기시대 돌화살촉 2백여점이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 「자구내」부근 해안에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주대박물관(관장 이청규교수)유물조사팀이 최근 발견한 이 돌화살촉들은 주로 흑요석으로 만들어졌으며,길이 1∼3㎝에 삼각모양과 물고기모양을 하고 있다. 제주대박물관측에 따르면 이같은 돌화살촉은 우리나라에서 경남 통영과 연대도에서 일부가 발견됐을 뿐이고 일정 장소에서 대량 출토되기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 「남북총리회담」이모저모/“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실천강조

    ◎정 총리,평양교예단 대전박람회 참가 권유 ▷주석궁 방문◁ 정 총리 일행이 상오11시5분 주석궁에 도착,엘리베이터를 타고 영접실에 들어서자 곧이어 김주석이 오른쪽 회담장소에서 걸어나와 정총리와 악수하며 『반갑습니다.잘 오셨습니다』라고 환영. 김주석과 남북대표는 이 자리에서 간단히 사진촬영을 한뒤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정총리가 『저희들이 서울을 떠나올때 노태우대통령께서 특별하신 안부를 전하라는 분부의 말씀 계셨습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네자 김주석은 『노대통령은 건강하십니까.서울로 돌아가시면 나의 인사를 전해 주십시오』라고 답례. 김주석은 남북 양총리와 약5분간 공개 면담하며 합의서가 발효돼 기쁘다는 말을 주고받고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 이어 김주석은 정총리와 약10분간 단독 면담후 회의장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우리대표들과 악수를 나누고 영접실 중앙무대로 나가 금강산 그림을 배경으로 남북대표단 일행과 사진촬영. ▷2차회의◁ 평양에서 계속된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 이틀째 회의는 당초 예정보다 한시간 앞당긴 상오9시부터 시작. 시간을 앞당긴 이유는 회담을 일찍 끝내고 우리측 대표단이 금수산의사당(일명 주석궁)으로 김일성주석을 예방,오찬을 함께 하는 일정이 잡혀있기 때문. 정원식총리를 비롯,우리측 대표는 8시46분 회담장인 인민문화궁전에 도착,대표 대기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뒤 회담시작 1분전 회담장에 입장. 정총리는 북측대표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뒤 기조발언에 앞서 지난밤 영화관람과 집단체제를 화제삼아 환담했는데 정총리는 특히 평양교예단(서커스)의 대전박람회 참가를 권유.이날 회의는 기조발언까지 공개로 한뒤 그 이후는 비공개로 진행. 이어 정총리는 전날 평양체육관에서 관람한 집단체조를 화제로 삼으며 『내년 8·9월 대전박람회가 열려 세계 70여개국이 참가,전시와 공연을 갖게 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북측의 평양교예단이 대전박람회에 참여하는 방안을 연구해 보시지요』라고 참가를 권유. ○…연총리는 30여분 기조발언을 통해 7·4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하나하나씩 거론하면서 이를 「합의서 해석의 기준」이라고 강조하고 방북구속인사의 석방을 요구. 연총리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훌륭한 합의도 이행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빈 종잇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합의서의 원만한 실천을 촉구. ▷역사박물관 참관◁ 우리측 기자단은 20일 상오 이틀째 회담이 끝난뒤 평양시내 중심부 김일성광장옆에 있는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을 참관. 구석기시대부터 1919년 3·1운동때까지의 각종 역사유물 10만여점이 소장된 이박물관에는 4만년전의 「신인」(현대인) 머리뼈 화석,뚜껑돌의 직경이 4.4m나 되는 고인돌,광개토대왕비등이 전시돼 눈길. 안내원 리한옥양(34)은 『고려야말로 우리나라의 첫 통일국가이므로 수령님이 그이름을 따서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을 제시하신 것』이라고 설명했으며 몇몇 전시실에는 「수령님이 친히 보아주신 방」이라는 현판이 눈에 띄었다. ▷만찬◁ 이날 저녁에 있은 북한의 양형섭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의장 주최 만찬에는 북한의 인민배우 홍영희 김경화 서경섭 김용민등이 참석해 눈길.이들중 김경화씨는 미8군에 들어간 북한여성첩보원을 다룬 20부작 영화 「이름없는 영웅」의 주인공으로,홍영희씨는 「꽃파는 처녀」,서씨는 「이세상 끝까지」,김용민씨는 역시 「이름없는 영웅」의 주인공으로 각각 등장한 배우들. 이와함께 이날 만찬에는 여연구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김태희 전남북적십자회담 북측대표단장도 참석해 성황. ▷평양산원·교예관람◁ 정 총리등 우리측 대표단은 20일 하오 평양산원을 방문,병원측이 제공한 흰가운을 입고 입원실 검사실 신생아실등 북한이 자랑하는 최신의료시설을 관람. 대표단은 하오 4시30분 광복거리의 교예극장을 방문,기다리고 있던 연 총리의 영접을 받고 공연장으로 가기위해 승강기를 탔으나 승강기가 고장나 가벼운 차질이 빚어지기도. 두 총리는 약3분간 고장난 승강기안에 갇혀 있다가 나와 계단을 이용해 걸어서 공연장에 입장
  • 한반도 최고 인골 발국/부산 범방 패총서/BC 5천년 추정

    【부산=김세기기자】 부산시 강서구 녹산동 범방마을 패총에서 신석기시대 전기에 살았던 한반도 최고의 인골(인골)1구가 출토됐다. 이 인골은 조개껍데기가 50∼80㎝의 층을 이루고 있는 패각층의 아랫부분 돋을무늬토기가 출토되고 있는 토광묘에서 발굴됐다.부산시립박물관 학술조사단(단장 윤병용)에 의해 5일하오 발굴된 이 인골은 지난해 12월 통영군 산양면 인대도에서 출토된 것보다 1천년이나 앞서는 기원전 5천년의 인골로 지금까지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인골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다.
  • 김 주석의 마지막 외출?(이정연칼럼)

    북의 김주석은 지금 80노구에 각별히 반기는 동지도 없고 별로 즐겁지도 않은 39번째의 중국여행에 올라 9일엔 산동성의 공자묘(사당)를 찾아 공자에게 제사 지내는 전통의식을 주의 깊게 관람했다고 북경방송은 전했다. 그 미덥던 지난날의 크렘린 동지들은 그 막대한 핵,장비,병력을 정치수단으로 한번 써보지도 못한채,공산주의의 조종을 스스로 치고 자기가 그렇게 매도해 마지않는 한국에 손벌려 30억달러를 얻어가는 처지요,비록 한반도가 이미 열강의 이념의 대결장을 벗어나긴 했으나 그래도 의리있던 자금성의 주인공들마저 자기가 아직 중국지방을 여행중에 있음에도 「중국과 북한이 한국전쟁을 통해 우정이 맺어지긴 했으나 북한은 이제 중국에게 있어 동맹국이 아니다」고 말하는 이 차가운 현실속에서 그는 중국이 권하는대로 10일 강소성의 경제특구라는 곳을 둘러봐야 했다.그 경제특구란 바로 한국에서 모방해간 유사자본주의 방식들로서 중국 또한 손내밀고 배워가는 곳이 한국의 자본주의 방식들이고 보면 그의 심사는 미뤄 짐작할만 하다. 배고픈 군사강국은 싫다는 소련,우리도 좀 먹고 살아야겠다는 중국,배를 곪면서도 「우리는 행복합니다」는 저 북의 2천만 인민을 언제까지 환상적인 구호속에 묶어 둘수는 없는 현실,그의 딜레마는 거기에 있다. 김정일은 「외부의 잡음」에 개의치 말라고 당원들에게 교시를 내리고 있으나 그 「잡음」이 소련 동구는 물론 중국에서도 「희망의 복음」으로 여기고 그 길에 빨리 적응 못해 안달인데 김부자만은 아직도 「오판」「맹판」을 계속 일삼고 있으니 그들을 「맹신」하는 인민들만 불쌍한 처지다. 루마니아나 동독에서 배우기가 두렵거든 중국쯤에서라도 배우고,그보다는 「남」에서 직접 배우고 협력을 구하는것이 지름길임을 알것이나 스스로 쳐놓은 장벽을 거둘때 생길 불상사가 두려워 저 모양이니 또한 딱하다. 그가 이번 방중에서 새삼 확인한 것은 이제 별쓸모 없는 「이념적 유대는 재확인」해주면서도 경제적 지원이나 북의 핵사찰거부에는 뜻을 같이 할 수 없음을 나타낸 사실이다. 김주석은 핵으로 버텨보려 하나 중국도 이미 더 이상 핵무기개발을 추진할 여력이 없어 개발 초기단계에서 그대로 주춤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북의 무모한 핵개발에 찬동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북의 연간 원유 소비량은 1백47만t으로 이는 한국의 25일분의 소비량에 불과하다.그나마 연간 80만t의 원유를 국제시세보다 싼 바터 무역방식으로 팔아 주던 소련이 이제는 국제시장 가격에다 현금결제방식 요구로 수입량은 반으로 줄어든 처지요,기껏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약 3천명의 특권계급만이 소유하고 있는 북한에서 핵개발이란 당치 않다는 것이 중국이 북한에 대한 기본인식이고 보면 김주석의 이번 여행은 대단히 불편한 행차가 될 수 밖에 없다. 소련 공산당은 가장 극적으로 끝장이 난 처지로 모스크바와 평양관계를 보면 소련은 북한에 경제 군사원조를 삭감하고 민주화 개혁을 보다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김부자는 시베리아로부터 불어오는 때아닌 훈풍에 불안한 마음이고 보면 김주석의 초조한 마음은 북경보다는 공자묘에서 오히려 편안했을 수도 있을것 같다. 어쩌면 김주석은 이제야말로 자력경생과 내식대로의 길밖엔 없을 듯 싶으나 이미 이념적 사명감을 상실한 내부적 부패,석기시대의 사고를 가진 김에 맹종하는 사람으로 이뤄진 비전없는 무모한 모험주의로는 어떤 해결책도 기대되지 않고 있다. 김주석이 들으면 심히 불쾌할 것이나 일본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김일성정권이 쓰러지고 ▲한국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북한주민들이 알게되고 ▲수백만의 난민이 38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오고 ▲사실상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소멸하고 ▲북조선 지역이 대한민국 관할하에 들어 온다는 시나리오의 실현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우리는 결코 동의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 또한 이해해 주기 바란다. 김주석은 이제 해를 넘기면 80이요,중국의 장정세대가 아직 일부 남아있긴 하나 이념의 시대가 이미 끝나고 경제적 이해가 앞서는 냉혹한 현실주의 토대위에서 그를 접대한 지도층을 본 이상 다시 중국땅을 밟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보면 이번이 그의 마지막 외출일 수도 있을 것같다. 그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새로운 현실에 눈을 가리지 말고 엄청난 변혁에 대처,난파선의선장다운 자세를 크렘린과 자금성의 지도자들의 경험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길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밖에 또 하나의 유일한 길은 남북이 진지하게 마주앉아 민족의 장래를 서로 도와가며 협의해 나가는 길이다. 남과 북의 교역은 벌써 1억달러를 넘어섰다.이제 뒷구멍 말고 대문을 열고 떳떳이 나서는 길밖에 없다.한국에 먹힐까봐 겁낼 것도 없고 지금 어버이 수령을 따르는 북의 동포들이 공자묘에 제사를 지내듯 위대한 수령으로 사후에도 모셔주기를 바라는 허망한 꿈도 하루 빨리 버려야 한다.그것은 스탈린·모택동·차우셰스쿠를 보면 금방 알 것을 공연히 되지도 않을 희망사항에 매달려 꿈자리만 괴롭힐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아는 이 명명백백한 사실을 역사상 어느 독재자도 스스로 깨닫고 택한 일이 없다는 사실이 비극일 수밖에 없다.비민주적 방법으로 출범한 정부가 민주적 통치를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역사에 기록돼 있는 사실이고.
  • 평양특별시:3(새로 쓰는 북녘지리지:3)

    ◎시내 곳곳에 닭·돼지공장등 가금업 기지/대동강 남쪽선 「만경대 신벗」·「대동 대추」 생산/사동 금탄리 유적서 신석기 유물 많이 출토 ▷산업·경제◁ 평양직할시는 기계공업을 핵심으로 하는 중공업과 경공업의 중심지.기계공업은 운수·전기·건설·공작·정밀·방직기계 제조분야가 활기를 띠고 있다.주요 제품은 전기기관차 내연기관차 객차 화차 전차류를 비롯한 윤전기재,불도저 권양기 탑식기중기 승강기등 건설기계와 설비.또한 각종 공작기계와 베어링,전선류와 측정계기및 기구를 비롯한 자동화조작기구,방직기계와 설비,탄광설비도 생산한다. 연료동력공업은 석탄생산과 화력에 의한 전력생산이 기본.삼신 강동 흑령등 대규모 탄광과 여러 작은 탄광들을 시외곽에 거느리고 있다.삼신탄광은 1900년대 초에 개발된 탄광.석탄은 삼신 삼석 강동 승호 일대에서 주로 생산된다. ○TV등 보급률 저조 평양시에는 대규모 화력발전소의 하나인 평양화력발전연합기업소를 비롯한 중·소규모 수력·화력발전소들이 있으며 도시건설과 산업건설에 필요한 건재공업기지도 있다.이곳에서는 시멘트 콘크리트부재 석재 요업건재 화학건재 건구 등이 생산되고 있다.시멘트는 승호,벽돌및 건설자기를 비롯한 요업건재는 강남에서 주로 생산된다. 강철 압연강재 등을 생산하는 강철생산기지도 있으며 대중의약품 예방의약품 보약등 각종 의약품과 렌트겐을 비롯한 여러 의료기구도 생산된다. 평양시의 경공업은 방직 편직 일용품 신발 식료등이 대표적인 것들.그 가운데 주도적인 공업은 방직이다.비단천 면천 혼방천 공업용천등이 생산되는데 비날론스프 아닐론 따위의 화학섬유 비중이 높다. 일용품공업은 TV수상기 냉동기 세탁기등 가전제품(북한에서는 문화용품으로 분류)으로부터 일용잡화생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보급률이 지극히 낮은 문화용품을 비롯하여 전기일용품 목제일용품 화장품 학용품 공예품 유리 도자기 악기 운동기구 완구류 등등…. 식료공업은 빵 국수 장류와 기름 고기및 남새(채소)가공품 유아식품 당과류 청량음료등을 생산한다.북한에서 가장 큰 담배공장도 평양에 있다. 평양시의 농업은 도시근로자를 위한 부식,특히 남새(채소)의 출하에 비중을 두고 있다.남새는 사동 락장 력포 형제산 삼석 대성 만경대 강남 등 변두리구역과 군에서 주로 공급된다.주요 남새는 배추 무 결구배추 오이 호박 가지 시금치 고추 파 마늘 쑥갓등 변두리로 가면서 고추 마늘을 많이 심는다. ○변두리엔 과일 단지 평양시에는 닭공장(사육시설을 공장이라 한다)오리공장 메추리공장을 비롯한 가금업기지와 큰 규모의 돼지공장을 비롯,소기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여러 공장과 목장이 있다.만경대 닭공장,평양 돼지공장이 대표적. 평양시의 변두리 구역과 군 곳곳에는 과일생산기지가 조성되었다.력포구역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 남쪽에 펼쳐진 준평원지대가 그곳.주요 과일은 사과 배 복숭아 포도 오얏 살구 양벗 밤 대추 딸기등.「평양바마」「덕동대추」「만경대신벗」은 예부터 평양 명산물로 이름나 있다. 알곡(곡식)도 적지 않게 생산된다.벼 강냉이 콩이 주종.벼는 강남 락랑 사동 력포 만경대 형제산 일대에서 생산되며 강냉이는 상원 강동등 남부에서 주로 생산된다.팥녹두 완두도 심는다.두단 보통강 평천 중화등지의 국영 양어장에서는 잉어 붕어 숭어 뱀장어 초어 화련어등을 기른다. ▷명승·유적유물◁ 시 한가운데 흐르는 대동강을 비롯,보통강 합당강 순화강과 그 주변에 솟은 산자락,곳곳에 펼쳐진 녹지들이 한데 어우러져 평양특별시의 경관은 상당히 아름답다.특히 대동강 기슭에 가파른 절벽을 이루면서 솟은 만경봉 모란봉 대성산 룡악산 릉라도는 절경으로 이름나 있다. 또 평양시에는 유물과 유적지도 상당히 많다.그 가운데서도 구석기시대 전기동굴유적인 상원군의 검은모루유적과 같은 시대의 중기유적인 력포구역의 대현동유적은 최고(최고)의 유적.사람의 뼈화석과 뼈로 만든 각종 도구들이 출토된바 있다. ○안학궁 궁터만 남아 사동 구역 금탄리유적을 비롯한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공구 농기구 어구 질그릇등은 상당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것으로 평가된다. 평양시에는 고구려시대의 유적이 특히 많은데 그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안학궁 대성산성 평양성,력포구역 무진리에 있는 동명왕무덤등이다.안학궁은 중궁을 비롯한 5개의 건축군으로 이뤄진 굉장히 큰 왕궁이었는데 지금은 궁터만 남아있다. 대성산성은 고구려가 서기 552년부터 586년 사이에 쌓은 것으로 지금은 모란봉에 성의 일부가,평천구역에 성터의 일부가 남아 있다. 평양시 일원에는 또 6세기 중엽때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대동문(평양성의 서문)칠성문(평양성 내성의 북문)등의 성문과 을밀대 최승대 연광정 등의 정각들이 산재,이곳이 우리민족의 힘찬기상이 대륙으로 뻗어나가던 고구려의 도읍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 쌀·개방압력·생존권의 삼각함수/황규호 특집부장(데스크 시각)

    서울로 들어온 한 외신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정부당국자가 쌀시장 개방을 암시했다는 이 외신은 그 진위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국내 매스컴을 연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시장개방의 온갖 외풍이 불어닥치는 때라서인지 그 충격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을 무색케 했다. ○국제사회 냉정함 실감 우리는 쌀문제로 하여 늘상 시달리고 있다. 쌀이 없다는 것이 곧 가난을 의미한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배를 곯기가 일쑤였다. 그 기근의 시대를 살았던 소년들은 추운 겨울날 눈이라도 내리면 그 눈송이가 떡가루이길 골무 만한 가슴으로 갈구했다. 참으로 헐벗고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밥술이나 먹게 된 요즘와서는 쌀이 남아 돈다고 야단들이다. 쌀이 지천인데 또 다른 한쪽 강대국에서는 자기들의 쌀을 사주지 않는다고 우리를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다. 기묘한 국제질서 속에서 진퇴양난의 경지를 맞고 있는 우리의 처지가 딱할 뿐이다. 허기진 이에게 밥 한 술은 적선일 수 있으나 포식 후의 밥한 술,그것도 돈을 내고 먹으라는 것은 비정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은 지난해의 경우 4천95만8천섬에 이른 것으로 집계되었다. 전년도에 이월된 1천91만5천섬을 합하면 자그마치 5천1백87만3천섬이라는 엄청난 양이다. 이를 식량으로 쓰고 가공하거나,또 종자용으로 내놔도 1천4백7만섬이 남아 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식량으로 먹어 치우는 쌀은 3천5백54만2천섬,지난 85년 3천6백52만2천섬에 비하면 약 1백만섬을 덜 먹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처럼 쌀은 덜 먹고,쌀은 쌓이기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쌀을 사가라는 압력을 받아왔고,앞으로도 압력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 비정한 국제사회에서 시달림을 받지 않으려면 쌀을 사들이는 것이 최상의 해결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네 딱한 사정은 선뜻 쌀을 사들여 올 수 없다는 데 있다. 비행기로 씨앗을 뿌려 집채 만한 콤바인으로 거두는 농업대국의 광작을 어떤 재간으로 당해낼 수 없는 것이 한국 농촌의 현실인 것이다. 오늘날 농촌은 적자영농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래서 만의 하나라도 농업대국의 값싼 쌀이 밀려 올 경우 농촌은 더욱 피폐할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벼농사는 여러 농사 가운데서도 언제나 으뜸이었다. 그러나 쌀은 곧 재화라는 마음으로 벼농사를 지어왔다. 이 때문에 쌀 시장개방이 현실로 나타나는 날 농민들의 정신적 충격파 또한 대단할 것으로 염려되고 있다. ○농업기반 붕괴 막아야 재산을 「땅 몇섬지기」로 가늠하면서 「쌀 몇말어치」라는 식으로 쌀을 화폐기준으로 삼은 시대를 산 우리였다. 보잘 것 없는 작은 농사로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점심 한끼쯤은 걸러 뛴 채 아침밥 저녁죽(조반석죽)을 먹었다. 밥풀 하나라도 밥상에 흘릴라치면 「낱알마다에 피땀이 서렸다」(입입개신고)는 꾸중을 들었다. 모두의 어머니와 누님같은 여인들은 나락을 거두어간 늦가을 황량한 들녁에서 이삭을 주워다 양식에 보탰다. 그것은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과는 사뭇 다른,을씨년스러운 초겨울 문턱의 풍경이었다. 그런 끈끈한 고향이 있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과 땅을 잊고 있다. 쌀을 쌀나무에 열리는열매로 알고 자라는 후손들과 함께 도시에 살면서 고향을 영영 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또 쌀이 없어 밥 못 먹던 시절을 말하면 『라면 먹으면 되지…』라고 대꾸하는 그 어린이들과 더불어…. 최근 농업관계 단체들에 의해 「내고향 농산물 사주기운동」 같은 캠페인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농산물 시장개방에 대처하기 위한 한 움직임이 아닌가 한다. 이른바 UR(우루과이라운드)라는 이름의 탁상압력을 통해 밀물쳐올 외국농산물과의 경쟁에서 국내 농산물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있다면,그것은 먹어주는 일이다. 한때는 쌀의 소비절약을 미덕으로 여긴 적도 있다. 쌀을 다소 많이 먹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식생활을 오도했던 「쌀 귀한 시절」의 일이다. 이는 쌀 소비를 어느 정도 억제하는 데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몰라도 우리 전통식 생활의 패턴을 무너뜨렸다. 몇몇 기관과 학회가 요즘 내놓은 이론에 따르면 쌀에는 사람몸에 필요한 양질의 탄수화물과 고기에서 얻어지는 것과는 다른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 한 사람이하루 4공기반 정도의 쌀밥을 먹어야 퇴행성 질병류의 성인병도 예방할 수 있다는 권위있는 해석을 내렸다. 어떻든 쌀을 좀더 먹어야 할 판이다. 그리고 우리 쌀을 보호하려면 현행 농업구조의 재조정은 물론 고품질화를 위한 재배기술 향상 등 농업정책이 수반돼야 하는 모양이다. 과잉생산억제책에 의한 휴경제도 정착이나 재배·가공기술 개발에 성공한 일본 쌀농사를 굳이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더라도 여기 상응하는 근본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쌀 위주 식생활 바람직 한반도에서 쌀농사를 지었다는 흔적은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기원전 10세기 전후의 경기도 여주 흔암리와 전남 나주 가흥리,북한의 평양 남경 유적 출토 탄화미(불에 타서 숯이 된 쌀)는 한반도 쌀농사의 역사가 3천년 이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고고학 자료이다. 우리의 농경문화를 도작문화로 분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쌀 이야기를 해봤다. 쌀에 대한 너스레를 늘어놓으면서 20세기를 지배하는 농업대국에 대해 한마디 하고픈 말이 있다. 걸리버가 작은 사람들의 나라를 여행하는 마음으로 이 비좁은 땅의 벼농사가 한국의 기층문화임을 이해해 달라는 당부가 그것이다.
  • 신석기 암음유적지/경북 지방서 첫 발견

    【대구 연합】 경북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금릉군 구성면 송죽리에서 신석기시대 암음유적과 50여 편의 즐문토기가 발견됐다. 계명대박물관(관장 김종철)은 12일 송죽리의 속칭 「고목마을」과 이 마을의 서남쪽 6백m 떨어진 산기슭에서 신석기시대 거주지로 보이는 암음유적지와 토기 등 다량의 유물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 강철보다 질긴 「꿈의 섬유」나온다/첨단 신소재 어떤것이 있나

    ◎불에 안타고 가벼워… 항공기 부품에 사용/윤활유 필요없는 세라믹엔진도 곧 등장 녹이 슬지 않고 마모가 되지 않는 영구적인 면도날이 나온다. 강철보다 10배나 강한 꿈의 섬유가 개발된다. 또 서울에서 부산까지 불과 50분정도에 달리는 자기부상열차가 육상교통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꿈같은 이런 일들이 곧 실현된다. 그것은 신소재에 의해서 가능한 일이다. 이밖에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비행기·세라믹스를 이용한 자동차엔진이나 전자회로 등 신소재가 개척하는 기술의 미래는 감히 점칠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핵융합에서 광컴퓨터까지 미래의 우리 생활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꿔놓을 신소재와 첨단정보기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지를 알아본다. ▷FRP(섬유강화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일반적으로 깨지기 쉽고 열에 약하다. 또 흠이 나기 쉬운 결함이 있다. 이들 결함을 보강,개량한 신소재로 개발된 것이 바로 FRP(섬유강화 플라스틱(Fibre Glass Reinforced Plastic)이다. FRP는 제2차 세계대전중 개발돼 지난 30여년동안에 두드러지게 발전되어왔다. 가볍고 강하며 내식성이 뛰어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보트·낚싯대·라켓·욕조 등 생활용품에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의 뒤퐁사가 개발한 케블러섬유는 인장강도가 엄청나게 강해 직경 1㎜의 실로 2백20㎏의 하중에도 견딜 수 있다. 케블러로 로프를 만들면 강철의 5분의 1의 무게면 된다. ▷파인 세라믹스◁ 조직이 미세하다는 뜻의 「파인」(Fine)과 비금속물질을 고온처리해 나온 물질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는 「세라믹스」(Ceramics)의 합성어인 파인세라믹스는 특히 21세기 생활에서 활용이 보편화 된다. 파인세라믹스는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인 규소 등의 무기물을 원료로 하는데다 녹슬지 않고 불에 타지않아 응용범위가 넓기 때문에 갖가지 용도로 쓰인다. 21세기를 「새로운 석기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90년대부터 실용화한 가정용 칼이나 가위 등은 물론 인조보석이나 절삭공구·연마재 등이 모두 파인세라믹스를 활용한 것들이고 21세기에는 세라믹자동차엔진이 선보인다. 이 엔진은 열효율이 높고 가벼운데다 섭씨 1천도 이상의 고온에도 견딜 수 있어 냉각장치 등 주변부품을 줄일 수 있는 것은 물론 윤활유가 불필요하다. ▷초강력섬유◁ 세라믹스와 함께 21세기를 주도할 복합재료는 탄소섬유·아라미드섬유·세라믹섬유 등 초강력 섬유를 들 수 있다. 탄소섬유는 철보다 강하고 알루미늄보다 가벼운 「꿈의 섬유」로 일본에서 개발됐다. 탄소섬유는 불에 타지도 않을 뿐더러 보통섬유에는 없는 전도성과 여과 및 정제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벼우면서도 잘 휘고 튼튼해야 하는 낚싯대·골프채·스키용품 등 레저용품에서부터 항공기구조물·자동차부품·기계·선박·우주선구조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탄소섬유가 새삼 주목되고 있는 것은 NASA(미항공우주국)와 추진하고 있는 우주기지계획에 대량으로 사용될 가능성 때문이다. ▷광섬유△ 광섬유(Optical Fiber)란 빛을 통하는 가느다란 섬유를 말한다. 보통은 순도가 높은 유리를 직경 0.1∼0.2㎜ 굵기로 뽑은 것을 가리킨다. 단면은 원형이고 중심부는 코어로 불리는 굴절률이 높은재료,주변부는 크래드라는 굴절률이 낮은 재료로 이루어진다. 광섬유에 의한 레이저신호전달 방법은 화상·음성 등의 신호를 실은 근적외선 레이저를 굴절률 차이에 의해 먼거리까지 아주 적은 손실로 전달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동축케이블에 의한 방법보다 차세대 통신에 획기적인 장비로 각광받고 있다. 오는 90년대 중반이면 5대양 6대주가 이같은 광케이블로 연결돼 「꿈의 지구촌」실현을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 쿠바 마차시대로 뒷걸음(세계의 사회면)

    ◎소 원유공급 줄어 소비절약 “비상”/수도서도 트럭대신 말이용 늘어 말과 마차가 쿠바의 새로운 수송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적한 시골에서가 아니라 수도 아바나에서 그렇다. 시대를 거꾸로 사는 듯한 이같은 진풍경은 소련으로부터의 원유공급이 대폭 줄어들면서 쿠바정부가 유류절약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자동차사용 억제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기업과 개인들이 4륜 자동차 대신 네발 달린 짐승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체에너지로서 다시 마력에 눈을 돌린 것이다. 아바나의 노동자 거주지역인 마리아나오에 위치한 국영식료품공장은 요즘 인근 50여개 카페와 스낵바에 튀김과 음료수를 매일 공급하면서 3두마차를 이용하고 있다. 3대의 체코제 트럭은 식품재료를 가져오기 위한 장거리운행에만 투입한다. 『트럭보다 말이 훨신 효율적이다. 우선 펑크나 고장날 염려가 없다. 풀만 뜯어주면 만사 OK다』고 이 식료품공장 부지배인인 마리오 키농씨는 말한다. 다른 국영기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마리아나오 식료품공장도 지난 8월말부터 정부로부터 휘발유 배급을 50% 감량당했다. 내년에는 소련의 원유공급이 2백만t이나 줄어들 예정이다. 아바나에서는 마리아나오 식료품공장이 처음으로 동물을 사용했지만 지방에서는 말이나 당나귀 이용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심지어는 대중교통수단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긴즈마을에서는 50년대형 포드나 올즈모빌,시보레 등이 주종을 이루는 택시 대신 속도는 다소 느리지만 우아한 2륜마차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농촌에서는 가축들이 트랙터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 대통령은 지난달 40만마리의 황소를 쟁기 및 마차용으로 훈련시키고 있다고 밝혔었다. 카스트로는 연료가 없으면 황소로라도 논밭을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으나 쿠바의 최대 외화수입원인 사탕수수 추수만은 기계로 할 수 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개방과 개혁을 외면하고 폐쇄주의로 일관한다면 쿠바는 앞으로 석기시대 생활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 “통일길 엽시다”… 남과 북 한목소리/총리회담 첫날 이모저모

    ◎강총리,“자주 만나면 끊겼던 통로 복구”/만찬 대기실 요담 15분… 독대는 불발/연총리,“회담 많이 했지만 이번엔 유망” 북에서 온 「손님」들은 4일 서울 하늘아래서 체류 첫날을 보내며 남과 북은 하나라는 명제를 새삼 확인했다. 연형묵총리등 북한대표단 7명과 수행원 33명,기자단 50명 등 일행 90명은 이날 상오 판문점을 통과,승용차 10대와 버스 3대에 나눠타고 임진각을 떠나 통일로∼구파발∼불광동∼서대문로터리∼마포대교∼강변북로∼반포대교∼올림픽대로∼영동대로를 거쳐 회담장 겸 숙소인 인터콘티넬탈호텔에 도착,여장을 풂으로써 온겨레와 세계의 이목은 서울로 쏠리고 있다. 북한 대표단은 이날 저녁 강영훈국무총리가 힐튼호텔에서 베푼 만찬에 참석,우리측 각계 초청인사들과 만나 한핏줄의 뜨거운 정을 느꼈다. 북한대표들단들은 만찬이 끝난후 숙소 근처 무역전시관에서 문화영화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을 관람하며 문화적 동질감에 젖기도 했다. ▷환영만찬◁ ○…이날 저녁 서울 힐튼호텔에서 강총리가 연총리 등 북측 일행을 위해 베푼 환영만찬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예정시간을 30여분 넘겨 2시간 가까이 진행. 강총리는 이날 만찬사에서 『잡초를 갈라 길을 내듯,길없는 길을 오시느라 애쓰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전제,『만나고 또 만나노라면 잡초 우거지고 비바람에 끊겼던 통로라도 반드시 복구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화의 지속을 강조. 이어 연총리는 답사에서 『우리 대표단 일행중에는 이전에 서울에 와본 사람들도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초행길』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러나 우리 일행에게는 서울로 오는 길이 결코 생소한 감을 주지 않았으며 만나는 동포형제들마다 낯선 감도 없었다』고 말하고 그 이유는 동포의 정때문이라고 언급. 강총리와 연총리는 각각 만찬사와 답사를 끝낸 뒤 포도주(마주앙)로 상대편의 건승과 행운을 비는 건배를 교환. 연총리등 북측 일행은 이날 저녁 7시5분쯤 힐튼호텔에 도착,미리 와 기다리던 강총리의 영접을 받았으며 두 총리는 칵테일장소가 정리되기 전 만찬장소인 그랜드볼룸 옆의 대기실(오크룸)에서 15분여간 요담. 우리측은 이날 만찬전 요담이 두총리의 단독요담으로 이루어져 심도있는 얘기가 오가길 원했으나 림춘길ㆍ최봉춘씨 등 북측 수행원들이 『우리도 들어가야겠다』고 문을 밀고 들어가는 바람에 총리간 단독회동은 무산. 북한 대표단들은 만찬이 끝난 뒤 홍성철통일원장관,정호근합참의장,김종휘 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 등 우리측 대표와 함께 밤 9시50분부터 한국종합전시장(K0EX) 4층 국제회의실에서 1시간가량 문화영화를 관람. 「우리의 보배」라는 이 영화는 구석기시대부터 조선말기까지의 우리 역사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북측 기자단대표 김천일은 관람이 끝난 뒤 『이북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고 촌평하며 다소 불쾌한 표정. ▷숙소환담◁ ○…연총리 일행을 인터콘티넨탈호텔 현관에서 영접한 강총리는 우리측 대표단과 함께 북측 대표단을 연총리 숙소인 3229호실로 안내한 뒤 연총리 숙소에 마련된 접견실에서 10분동안 환담. 남북총리는 『악수좀 나눠주시지요』라는 사진기자들의 요구가 있자 『또』라는 말을 약속이나 한듯 동시에 연발하며자리에서 일어나 접견실안은 한때 웃음. 남북 보도진들에 대한 포즈를 취한 뒤 홍성철통일원장관이 『우리측 대표들은 판문점에서 모두 소개해 드렸으니 북측 대표단을 강총리께 소개해 달라』고 하자 연총리는 이름없이 직책만 호칭하며 북측 대표단을 일일이 소개. 인사가 끝나자 연총리는 『TV에서 여러번 뵌 것 같다』고 강총리에게 말을 건넸고 이에대해 강총리는 『연총리와는 전생에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우리 모두 비슷한 시기(88년말)에 총리가 됐고 총리가 된 직후 북측에서 부총리회담을 요구해 왔을 때 우리측에서 총리회담으로 하자고 수정 제의하자 이를 수락하지 않았느냐』고 응답. ○“우린 2년간 편지교환” 강총리의 전생 연분론에 연총리는 『동감이다』고 짤막하게 답한 뒤 『그러다 강총리와는 2년여동안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느냐』고 해 양측 대표단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강총리는 『쓸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썼다』고 응수. 연총리는 이어 『이런 큰 회담을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지요』라고 회담준비를 맡은 우리측의노고를 위로했고 강총리는 『피차 마찬가지지요. 승강기내에서 얘기드렸지만 지금까지 비가 내리다 연총리께서 도착하니 날씨가 쾌청해지는 걸로 보아 연총리가 복이 많은 모양』이라며 『날씨도 쾌청하니 회담도 잘 될 것』이라고 화제를 회담쪽으로 유도. 회담얘기가 나오자 연총리는 『내가 복을 갖고 서울에 왔다니 기쁘다』면서 『남북회담이 여러차례 있었지만 그렇게 잘 되지는 못했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이번 회담 전망은 유망할 것』이라며 역시 관망적 견해를 피력. ▷호텔도착◁ ○…북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낮 12시2분 숙소 겸 회담장인 인터콘티넬탈호텔에 도착,로비에서 영접차 기다리고 있던 강영훈국무총리와 반갑게 인사. 두 총리는 이번 회담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서인지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으며 강총리가 악수를 건네며 『안녕하십니까』하고 말하자 연총리가 『반갑습니다』라며 화답. ○…이날 북측 대표단과 수행원들은 인터콘티넬탈호텔에 도착한 뒤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숙소에 머물러 있었으나 북측 보도진들은 호텔 2층에 마련된 북한 기자실을 둘러본 뒤 우리측 기자실로 몰려와 안병수 북한대표단대변인의 서울 도착성명이 있으니 취재를 하겠다고 준비. ○북기자,회담장 답사 북한 보도진들은 그러나 우리측 기자들이 『소감이 어떠냐』 『취재계획은』 등 갖가지 질문을 쏟아붓자 몇번은 대답하다가 일부 북한보도진들이 『기자가 기자를 취재하느냐』 『나가자』며 모두 밖으로 나가 한때 어색한 분위기. 그러나 이들은 20여분후 다시 우리측 기자실로 들어왔고 장내정리가 어느 정도 된 뒤 안 북한대표단대변인이 도착성명 낭독을 시작. 안대변인은 도착성명에서 『뜻이 같으면 길도 열린다는 것처럼 통일에 뜻을 둔 우리는 평양과 서울의 길을 열었다』며 상당히 우호적 내용의 입장을 밝혔으나 성명말미에 문익환ㆍ임수경씨 등 방북건으로 구속당한 사람들의 가족과 친척을 방문하고 싶다는 엉뚱한 뜻을 피력해 북측의 저의를 드러내기도. ○프레스센터 ○우리측 차석대표인 홍성철통일원장관은 이날 하오 2시 프레스센터에서 내외신기자 회견을 갖고 이번회담 우리측대변인으로 첫 브리핑을 실시. 홍장관은 먼저 연정무원총리등 북한대표단의 판문점 영접과 관련,『본인을 비롯한 우리측 대표단 6명(강영훈국무총리를 제외한 전원)이 판문점에 나가 북한측 대표단을 따뜻하게 맞이했다』면서 『우리 대표단은 북한측 대표단과 함께 승용차에 동승,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울에 도착했다』고 아침 상황을 보고. 홍장관은 이어 『북한측 대표단이 회담장 겸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로 오는 도로상에서 약간의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다』고 운을 뗀 뒤 『마포에서 강변대교입구 사이의 지점에서 비행사차량이 대표단차량에 끼여드는 바람에 접촉사고가 일어났다』고 사고경위를 소개하고 『북한측 대표단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피력 홍장관은 특히 이 사고와 관련,『강총리가 우리측을 대표해서 연총리를 직접 방문,사과의 뜻을 전달할 예정이었으나 연총리가 『잘하려고 하다가 그런 사고가 난 만큼 굳이 올라오실 필요가 있느냐』고 사양해 강총리의 직접방문은 취소됐다』면서 『오늘 만찬에서 반드시 이같은 사과의 뜻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소개. ○문의ㆍ격려전화 빗발 ○…북한대표단의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는 4일 오후부터 이산가족의 안부를 묻는 문의전화와 회담에 대한 격려전화가 쇄도. 일반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밤늦게까지도 시민들은 『회담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는 격려와 문의전화를 계속 걸어 왔는데 이날 야간당직지배인 김광철씨는 『주로 실향민들이 고향의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북측 대표들을 통해 안부를 전할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전화가 많았다』고 소개.
  • 중앙아 소 카자흐공 잠불에 한반도 연관 선사유물

    ◎서울대 임효재교수 확인/“문화전파 경로 규명자료” 한반도 선사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중앙아시아 시베리아지역의 선사유적이 우리나라 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서울대 박물관장 임효재교수(고고학)에 의해 확인된 이들 선사유적은 소련 카자흐공화국 수도 알마타에서 6백㎞ 떨어진 잠불지역 등 20여군데의 구석기 및 신석기유적. 지난달 30일부터 15일동안 현지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이들 유적에서는 무스테리안 계통의 거북등모양 석기 등 구석기시대 유물과 토기편 등 신석기시대 유물이 수습되었다. 특히 신석기시대의 토기편에서는 한반도 서해안과 한강유역에서 나오는 신석기시대 토기문양과 똑같은 빗살무늬(절문)가 발견되어 주목을 끌었다. 시베리아 현지답사를 마치고 귀국한 임교수는 시베리아 빗살무늬토기의 존재에 대해 『시베리아와 중국 동북부해안,한반도를 잇는 문화의 전파경로 내지 상호의 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고고학 자료』라고 평가했다. 소련 카자흐공화국 과학아카데미 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한 임교수는현지에 체류하는 동안 그곳 과학아카데미와 서울대간에 선사유적발굴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오는27일 소련을 방문하는 서울대 조완규총장에 의해 정식 서명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4천년 신비」 드러낸 “전설적 왕조”하

    ◎중국 산동성서 성터 발굴… 실존 확인/채색 도자기ㆍ상형문자등 대량 발견/고대사 기원 바꿀 획기적자료 평가 지금까지 전설로만 알려져 왔던 중국의 가장 오래된 왕조 하나라의 성터(성지)가 최근 산동성장구현에서 발굴돼 전세계 사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12일 중국관영 신화사통신이 보도. 이 통신은 산동성 고고학연구소 장학해소장등 17명의 조사단이 4개월에 걸친 탐사끝에 약 20만㎡의 면적에서 남북 5백30m 동서 4백30m의 길이에 높이 8∼13m의 하나라 성터를 발굴했으며 이 성터는 지하 2.5∼5m의 깊이에 묻혀 있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성터 안에서 수많은 도기와 마제석기 및 골제의 화살촉을 발견했으며 거북이 등껍질이나 짐승뼈 등에 새겨진 상형문자의 형태가 하대 것임을 확실히 해주고 있다고 신화사가 보도했다. 또 주거지에는 한채의 집터에 방이 10여개나 되는 곳도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 통신은 장학해소장의 말을 인용,『도기의 무늬와 형태로 보아 당시 주민의 공예술이 매우 발달했으며 유적이 밀집된 점을 감안하면 하나라는 비교적 번영을 누린 왕조였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나라는 약 3천9백년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시조인 우임금은 황하의 치수를 잘 한 성군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하는 17대 걸왕이 총비 매희에 매혹돼 국사를 돌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은나라에게 망했고 주지육림이란 말이 생기게 된 것도 걸왕의 방탕과 폭정에서 비롯됐다. 하나라는 기원전 2205년부터 1766년까지 4백39년간 지속된 것으로 돼 있으나 그동안 유적ㆍ유물이 발견되지 않아서 중국의 실제 역사는 은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인정을 받았었다. 조사단은 이번 발굴된 하왕조의 유물이 채문토기를 중심으로 했던 신석기시대의 앙소문화에서 보다 다양한 도기제조와 농경기술을 자랑했던 용산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판정을 내렸다고 신화사가 덧붙였다.
  • 공주 석장리 구석기유적층서 석기유물 대량 출토/주먹도끼ㆍ톱날등

    충남 공주군 장기면 석장리 구석기시대 유적 각 층위에서 다량의 석기와 숯이 발굴되어 유물의 정확한 연대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확보했다. 한국선사문화연구소(소장 손보기)가 발굴한 이 유적은 맨 위에 중석기층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래쪽으로 후기구석기층,중기구석기층,전기구석기층으로 이루어졌다. 이 유적의 층위별 출토유물은 ▲중석기층의 간격지,수정새기개 ▲후기구석기층의 외날주먹도끼,둥근밀개,톱날 ▲중기구석기층의 주먹대패,자르개 ▲전기구석기층의 찌르개 등으로 되어 있다. 특히 지표 3.6m 아래서 숯이 발견되어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에 의한 이 유적의 형성과정과 연대를 파악할 수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 “「빼앗긴 문화재되찾기」캠페인을”/한ㆍ일 새 쟁점화…전문가들 견해

    ◎“석기유물등 일의 푸대접볼때 가슴아파”“사서ㆍ고문헌등 수만종 반환운동 벌여야” 한국인 골동품 중개상이 일본인 소장가로부터 우리 문화재를 뺏어온 사건은 한일문화재반환이라는 두나라간의 오랜숙제를 다시표면화시켰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일본인 소장가의 우리 문화재 기증의사 표현으로 일단락된데 반가움을 표시하면서 차제에 일본으로 유출된 우리문화재의 반환을 위해 한일 두나라 정부와 민간인 차원에서 적극적인 노력이 펼쳐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효재교수(서울대 박물관장)=결국 우리 문화재를 되찾게 됐다니 다행한 일이다. 문제의 문화재을 일본인 소장가가 한국에 기증하겠다고 한것은 일제시대부터 귀중한 우리문화재를 대량으로 강탈해간 일본의 한가닥 양심의 표현이라고 본다. 그같은 양심의 차원에서 앞으로 더 많은 문화재가 한국에 반환되기를 바란다. 반환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선지 일본의 박물관에서는 한국 문화재를 진열하지 않거나 진열하더라도 귀중한 유물은 빼 놓는 것을 보았다. 또한 우리의 귀중한 석기시대 유물이 대학박물관 창고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한일협정 당시 문화재반환문제를 소홀히 처리한 결과 수많은 우리 문화재가 일본에 남아있게 된 것인데 이번일을 계기로 문화재 반환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토개발을 앞세워 문화유적지를 불도저로 밀어붙이는등 우리의 역사를 스스로 비하시키는 태도를 고쳐야 하겠고 부동산 투기를 하듯 문화재를 투기 대상으로 삼는 태도 역시 삼가야 할 것이다. ◇박성수교수(정신문화연구원)=이번 사건의 방법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결과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문화재의 일본인 소장가들은 그 문화재가 어떻게 그들의 소유가 됐는지를 알 것이다. 일제의 무단통치시기 일본인들은 총독까지 관련될 만큼 조직적인 방법으로 한국의 문화재를 일본으로 빼돌렸다. 낙동강 가야유적의 경우는 송두리째 발굴하여 당시 화차 2대분량을 실어갔을 정도다. 귀중한 고문헌과 사서 수만종을 강제 몰수해 남산의 총독부관저 뒤뜰에서 불태우기도 했다. 차제에 양국정부와 민간인들이 합리적인 교섭을 하면서 우리 문화재의 반환과 소재확인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윤내현교수(단국대박물관장)=도난행위로 인해 이루어지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귀중한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게 되어 일단 기쁘게 생각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의 반환을 위해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우리 문화재가 가장 많이 유출된 곳은 물론 일본이지만 미국이나 영국 등 서양에 있는 것도 적지 않다. 이 모든 것을 하루 빨리 돌려받아야 한다. 물론 정부차원의 교섭도 중요하지만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민간차원의 교류와 설득으로 반환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화단체나 학술기관등 민간채널을 통해 많은 협조가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본다. ◇이기동교수(동국대)=일본인에 의해 우리 문화재가 되돌려진다는 사실이 여간 반갑지 않다. 지난 65년 한일기본조약체결이후 「국교정상화」란 정치적 이슈에 밀려 문화재반환청구 문제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일본으로 유출됐던 우리 문화재가 일본정부나 국립박물관ㆍ미술관등에 속속 귀속되면서 되돌려받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간혹 일본인들에 의해 우리 문화재가 반환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극히 드물었던 사실이고 보면 이번 경우 역시 희귀한 예가 아닐 수 없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번 일이 우리 정부의 문화재반환 노력에 불을 댕기고 특히 일본의 소규모 소장가들이 한국의 문화재를 반환하는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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